본문 바로가기
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1983 불교(고승전 13권 18편/ 高僧傳)

by Kay/케이 2023. 2. 26.
728x90
반응형

 

통합대장경 고승전(高僧傳) 1318

 

훗날 갑자기 뱀 한 마리가 나타났다. 관음상 뒤에서 벽을 타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그러더니 잠시 후 쥐 한 마리가 지붕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뱀이 묻힌 침으로 목욕한 것 같았으며, 모습은 이미 죽은 듯하였다.

담영이 살펴보니, 아직은 살릴 수 있을 듯하였다. 이에 곧 대나무를 갖고 와서 침을 제거하였다. 뱀이 삼킨 쥐는 부스럼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곧 뱀이 묻힌 침을 닦아내어 부스럼 부위에 발랐다. 바른 것이 두루 퍼지자 쥐도 다시 살아났다. 이틀 밤 사이에 부스럼이 완전히 없어졌다. 비로소 뱀과 쥐가 모두 관세음보살께 기원하여 요청한 덕분에 이루어졌음을 깨달았다.

이에 부지런히 정진하며 교화하였다. 창도하여 굳센 절조가 더욱 굳어졌다. 전송의 태재(太宰)인 강하왕(江夏王) 유의공(劉義恭)이 가장 알아주고 존중하였다. 그 후 머물던 절에서 세상을 마쳤다. 그때 나이는 81세이다.

 

3) 석혜거(釋慧璩)

혜거는 단양(丹陽) 사람이며, 출가하여 와관사(瓦官寺)에 머물렀다. 경론을 읽고 열람하면서 역사를 섭렵하였다. 여러 잡기에도 대부분 능숙하였다. 하지만 더욱 창도(唱導)를 잘하여, 말이 나오면 문장을 이루고, 말이 움직이면 작품이 되었다. 시절에 맞게 다다르고 너르게 채택하였다. 그러니 모두 다 묘한 경지에 이르지 않은 것이 없었다.

전송의 태조와 문제(文帝)ㆍ거기(車騎)장군 장질(藏質)이 나란히 손잡고, 좋은 벗으로서 서로 숭상하고 사랑하였다. 그 후 초왕(譙王)이 형주(荊州)에 주둔하자, 요청하여 더불어 동행하였다. 그 후 초왕은 반역하여 조정으로 돌아오다, 양산(梁山)에서 법회를 마련하였다. 얼마 후 초왕이 패배하자, 혜거는 서울로 돌아왔다.

그 후 전송의 효무제(孝武帝)가 재를 마련하였을 때, 혜거가 창도의 역을 맡았다. 황제가 혜거에게 물었다.

오늘의 모임을 양산과 비교하면 어떠한가

혜거가 대답하였다.

하늘의 도는 순리를 돕는 것인데, 하물며 반역을 위하겠습니까

황제는 기뻐하여 이튿날 아침 따로 1만 냥의 돈을 보시하였다. 그 후 칙명으로 서울의 도유나(都維那)직을 맡았다.

대명(大明) 말년(464)에 절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나이는 72세이다.

 

4) 석담종(釋曇宗)

담종의 성은 괵()씨며, 말릉(秣陵) 사람이다. 출가하여 영미사(靈味寺)에 머물렀다.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여, 많은 경전에 두루 뛰어났다. 창설(唱說)의 공교함은 당시 세상에서

 

독보적이었다. 그의 구변은 시절에 알맞아, 변화에 응하는 재능이 끝이 없었다.

어느 날 효무제(孝武帝)를 위하여 창도의 소임을 맡아, 보살의 다섯 가지 법의 예를 행하여 마쳤다. 황제가 웃으면서 담종에게 말하였다.

짐은 무슨 죄가 있기에, 참회를 해야 하는가

담종이 말하였다.

예전에 우()ㆍ순() 임금은 지극한 성인이었으나, 오히려 나는 그대를 보필하는 공을 어겼다고 하였습니다. 탕왕(湯王)과 무왕(武王)도 역시 만백성에게 죄가 있으면 그것은 나 한 사람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왕이 허물을 자신에게 끌어당기는 것은, 무릇 세상을 자신이 본받을 법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폐하의 덕은 지난 시대보다 뛰어나며, 성인인 우()ㆍ은()과 나란하십니다. 도를 실천하여 텅 비움을 생각함에서만, 어찌 홀로 예전의 성군과 다르겠습니까

황제는 크게 기뻐하였다.

그 후 은숙의(殷叔儀)가 죽었을 때와 21일 동안 재 모임을 마련하였을 때에, 모두 담종을 초청하였다.

담종은 바야흐로 세상의 도는 부초와 같고 거짓되어, 은혜롭고 사랑스런 이와 반드시 헤어지게 됨을 탄식하였다. ()씨의 맑은 덕을 찬탄하고, 그 영화로움과 행복함을 채 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였다. 당년에 맺을 열매가 스러지고, 꽃다움을 오늘날 거두어들인 것을 아쉬워하였다.

하는 말이 지극히 처량하여, 황제는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고, 남다른 포상이 더욱 깊었다. 그 후 머물던 절에서 세상을 마쳤으며, 경사탑사기(京師塔寺記)두 권을 지었다.

 

승의(僧意)

당시 영미사(靈味寺)의 승의도 창설을 잘하였다. 섬경신성(晱經新聲)을 지었다. 애달프고도 밝은 소리가 차례가 있었다[哀亮有序].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