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1976 불교(고승전 13권 11편/ 高僧傳)

by Kay/케이 2023. 2. 26.
728x90
반응형

통합대장경 고승전(高僧傳) 1311

 

그 후 채음(菜愔)과 진경(秦景)이 서역에서 돌아오자, 비로소 모직물에 그린 석가모니 상을 전하였다. 이에 양대(凉臺)와 수릉(壽陵)에서 나란히 그 형상을 그렸다. 이때부터 형상과 탑묘가 시대와 더불어 다투어 줄을 이었으며, 우리 큰 양()나라에 이르러서는 그 남긴 빛이 더욱 성해졌다.

무릇 법신은 형상이 없으나, 감응에 인연하기 때문에 형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감응이 나타나는 것은 들쑥날쑥 같지 않기 때문에, 형상 또한 당연히 다른 구별이 있다. 만약 마음의 길이 아득하다면, 창된 모습을 대하더라도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심정과 지조가 간절하다면, 나무나 돌덩어리라도 마음을 열 것이다.

그런 까닭에 유은(劉殷)의 지극한 정성으로 감응이 일어나 곡식그릇에 새김글이 생겨났으며, 정란(丁蘭)은 온화하고 맑아 정성을 다함으로써 매화나무가 색이 변했다. 노양(魯陽)은 창날을 돌림으로써 해가 바뀌었고, 기부(杞婦)가 눈물을 흘림으로써 성이 무너졌다.

이는 모두가 숨겨진 측은한 마음이 그들의 본성 속에 들어갔기 때문에, 상서로운 징험이 사람들의 이목을 비춘 것이다. 혜달(慧達)이 광명을 당간 끝에 불러들이고, 혜력(慧力)이 탑의 기단에서 상서로움에 감응하며, 혜수(慧受)가 물에 뜬 나무에 정성을 펴고, 승혜(僧慧)는 옮겨가는 등불에서 증명을 드러냈다. 승홍(僧洪)과 승량(僧亮)은 나란히 불상을 주조하느라 자기 몸을 잊었고, 법의(法意)와 법헌(法獻)도 모두 가람을 위해 명이 다하였다. 법헌이 부처의 어금니 뼈에 뜻을 오로지하니, 경릉(竟陵) 문선왕의 꿈에 감응이 나타나고, 승호(僧護)가 석성산에서 포부를 비축하여

 

남평(南平) 건안왕이 감응을 얻었다.

근간 광택사(光宅寺)19척의 금불상이 경기 지방에 뚜렷이 빛나게 된 것 등의 일에 이르러서는, 전송의 황제가 네 번 녹여도 이루지 못한 것을, 우리 양()나라 황제는 한 번 녹여 형상이 갖추었다. 미묘한 형상이 뛰어나서 훼손된 곳이 없고, 상서로운 구리가 적었는데도 다시 충족되었다. 그런 까닭에 도는 사람의 힘을 빌려 넓어지고, 신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감응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어찌 허탄하다 하겠는가

그런 까닭에 신에게 제사드릴 때에 신이 존재하는 것과 같이 하면, 신의 도와 교접하는 것이다. 불상을 공경하기를 부처님을 대하듯 하면, 법신이 감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문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지혜를 근본으로 삼아야 하고, 지혜는 반드시 복덕으로 기초를 삼아야 한다. 비유하면, 새가 두 날개를 갖추어야만 훌쩍 천 길 하늘 위로 올라가고, 수레는 두 수레바퀴가 충족되어야만 한 번에 천 리를 달리는 것과 같다. 어찌 부지런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힘쓰지 않을 수 있으리요

찬하노라.

 

부처님의 빛나는 모습 사라졌으나

쇠와 돌이 빛남을 전하도다.

여기 탑과 불상 있으니

그리워하는 이들 의지하네.

 

기적이자 지극함으로

상서로움이자 위신력으로

바위에 숨거나 땅에서 솟거나

물 위에 뜨거나 공중을 날도다.

 

도탑도다, 마음의 길이여.

반드시 들어맞아 어김없으리.

 

9. 경사편(經師篇)

 

1) 백법교(帛法橋)

백법교는 중산(中山)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경을 돌려 읽기를 즐겼다. 그러나 소리가 모자라서 늘 유창하지 못한 것을 개탄하였다. 이에 곡식 먹기를 끊고 7일을 밤낮으로 참회하면서, 관세음보살에게 과보가 일어나기를 기원하였다. 동학들이 간절하게 충고하였다. 그러나 서원하여 고치지 않았다. 그리하여 7일째가 되자 목구멍 속이 탁 트이는 느낌이 생겼다. 곧 물을 찾아 씻고 양치질하고 나서 말하였다.

나에게 감응이 있었다.”

이에 게송을 세 번씩 소리 내어 읽었다.

 

그러자 목소리가 마을 가까이까지 사무쳤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놀라고 감탄하여, 모두 찾아와 보고 들었다.

그 후 수십만 글자의 경을 외우고, 밤낮으로 소리 높여 읊조렸다. 그 소리가 구슬프고 아름다워 신과 통하였다. 나이가 90에 이르러서도 소리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의 목제(穆帝)의 영화(永和) 연간(345356) 하북(河北)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때는 곧 석호(石虎)의 말기였다.

 

승부(僧扶)

제자인 승부도 계행이 맑고 높았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