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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1982 불교(고승전 13권 17편/ 高僧傳)

by Kay/케이 2023.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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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고승전(高僧傳) 1317

 

천축국의 풍속은 불법의 말씀을 노래하고 읊조리면, 이것을 모두 범패(梵唄)라 한다. 그러나 이 땅에 이르러서는 경을 읊조리면 전독(轉讀)이라 하고, 노래하고 찬탄하면 범패라 부른다. 예전에 모든 천신(天神)들이 찬탄한 범패는 모두가 운율을 거문고 가락에 맞춘 것이다. 오부대중은 이미 속인과는 다르다. 그런 까닭에 마땅히 소리와 곡조로써 미묘함을 삼아야 한다.

근원적으로 말하면, 무릇 범패가 일어난 것도 진사왕(陳思王)에게서 조짐이 비롯하였다. 처음 태자송(太子頌)과 섬송(睒頌) 등을 지어서, 이것을 위하여 소리를 만든 것이다. 뱉고 마시며 누르고 올림은 모두 신()이 전수한 것을 법삼았다. 지금의 황황고유(皇皇顧惟)’는 아마도 그 기풍이 강하게 남은 것이리라.

그 후 거사(居士) 지겸(支謙)도 역시 범패 3()를 전하였다. 그러나 모두 사라지고 없어져서 남아 있지 않다. 세간에 있는 공의(共議)’라는 1()이 혹 지겸이 남긴 법칙인지 모른다. 오직 강승회(康僧會)가 만든 열반범패(涅槃梵唄)’만은 지금까지도 전한다. 곧 경알(敬謁)이라는 한 계문(契文)이 두 권의 열반경에 나와 있기 때문에, 이것을 열반범패라 한다.

()나라 시대에 이르러 도생(道生) 법사가 처음으로 그 자취를 찾아 전수하였다. 지금의 행지인문(行地印文)’이 곧 그 법이다. 담약(曇籥)이 만든 육언(六言)범패는 곧 대자애민일계(大慈哀愍一契)’, 지금도 때로 이를 부르는 사람이 있다.

근간 서량주(西凉州)의 범패는 근원이 관우(關右)지방에서 나와 진양(晋陽)지방에 흘러 들어온 것으로, 지금의 면여만월(面如滿月)’이 그것이다. 무릇 이 모든 가락은 모두가 이름난 스승들이 제작하여 나온 것인데, 후세 사람들이 이어 부름에 대부분 와전되고 누락되었다. 때로는 사미나 어린아이들끼리 서로 전수하는 경우도 있어서, 예전에 이룩된 규칙은 거의 하나도 남은 것이 없다. 아쉽다. 이는 이미 다 같이 소리의 예로서 드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논하는 끄트머리의

 

말미에 갖추어 둔다.

 

10. 창도편(唱導篇)

 

1) 석도조(釋道照)

도조의 성은 국()씨며, 평서(平西)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편지를 잘 썼다. 아울러 경전과 역사에 널리 뛰어났다.

열여덟 살 때 출가하여 서울의 기원사(祇洹寺)에 머물렀다. 뭇 경전을 열어 보았으며, 선창(宣唱)을 일삼았다. 토하는 음성은 맑고 밝아, 번뇌에 시달리는 마음을 씻어 깨닫게 하였다. 일을 맡으면 때맞추어 하고 말만 앞세우지 않았다. 전송의 초기에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전송의 무제(武帝)가 어느 날 내전에서 재()를 마련하였다. 도조는 초저녁에 간략히 말하였다.

사람의 한평생, 백 년이란 세월은 빠르게 흘러 죽음은 갑자기 닥쳐오고, 그 사이 괴로움과 즐거움은 들쑥날쑥 고르지 않으나, 반드시 인과로 말미암아 일어납니다. 부처님의 자비는 육도중생에 응하시듯, 폐하는 모든 백성을 쓰다듬어 어여삐 여기소서.”

황제는 말하였다.

좋다.”

오랜 후에 재가 끝나자, 따로 3만 냥의 돈을 보시하였다. 임천왕(臨川王) 유도규(劉道規)는 그에게서 5계를 받고는, 받들어 가문의 스승으로 모셨다.

원가(元嘉) 30(453)에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나이는 66세이다.

 

혜명(慧明)

도조의 제자인 혜명은 성이 초()씨며, 위군(魏郡) 사람이다. 마음이 뛰어나게 걸출하였다. 스승의 도풍을 그대로 이어 익혀서, 역시 당시에 명성이 있었다.

 

2) 석담영(釋曇穎)

담영은 회계(會稽) 사람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계율의 행실에 삼갔다. 10여만 글자의 경을 외웠으며, 장간사(長干寺)에 머물렀다. 성품이 공손하고 검소하여 오직 좋게 권유하는 일을 우선으로 삼았다. 짐짓 뜻을 선창(宣唱)에 두었다. 목소리가 천연적으로 유독 빼어났기 때문이다. 요청하는 사람들에게는 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찾아갔다. 또한 빈부를 막론하고 같은 법에 따랐다. 장창(張暢)이 그의 소리를 듣고 감탄하여 말하였다.

토해내는 말이 흐르듯 하여, 곧 머나먼 이치를 치솟게 할 만하다.”

담영은 어느 날

 

부스럼병[癬瘡]을 앓아 오래도록 치료하였다. 그러나 제거되지 않았다. 방안에서 항상 관세음보살상에 공양드리며, 아침저녁으로 예배하면서 이 병이 낫기를 기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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