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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2103 불교(근본설일체유부니다나 1권 / 根本說一切有部尼陀那)

by Kay/케이 2023.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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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근본설일체유부니다나(根本說一切有部尼陀那) 1

 

대당용흥삼장성교서(大唐龍興三藏聖教序)1)


어제(御製)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은 별자리를 늘어놓아 형상을 드러내고, 아득히 이어진 넓은 땅은 강과 산을 펼쳐놓아 형상을 이룬다”고 들었다. 천문(天文)을 우러러 관찰해보면 이미 그와 같고, 지리(地理)를 굽어 살펴보면 또한 이와 같다. 무릇 오묘한 뜻[妙旨]은 그윽하고 미묘해 이름이나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진여(眞如)는 맑고 고요해 성품이나 형상으로 이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귀머거리와 같이 어리석은 마음을 일깨우려면 메아리가 요동치는 법의 천둥에 의지해야 하고, 길을 잃고 헤매는 중생을 이끌려면 방향을 알려주는 깨달음의 우두머리를 기다려야 한다. 따라서 임시로 이름을 붙였지만 영원한 이름을 파괴하지 않고 설법을 즐기셨지만 결국 말할 게 없음을 설명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형상 밖의 형상을 홀로 삼계의 존자라 칭하고 하늘 가운데 하늘을 이에 육신통을 갖춘 성인이라 표현한다면, 법왕께서는 날카로운 견해로 72명의 군왕을 낳아 기르시고2) 범천과 제석이 다스린 세월마저 1만 8천년으로 가두신 것이 된다.3) 주나라 시절에 별이 빛을 잃었다는 말씀은 성인이 태어날 징조와 부합하였고,4) 한나라 시절에 태양이 상서로운 빛을 흘렸다는 기록은 신과 소통한 꿈과 맞아떨어졌다.5) 따라서 부처님은 능히 모래알처럼 오랜 겁 동안 위의를 떨치시고, 티끌처럼 수많은 세상에서 교화를 행하시는 것이다.
옥호(玉毫)6)에서 빛을 놓아 어둠을 없애고, 금구(金口)7)로 널리 선포하여 막힌 곳을 뚫으셨으니, 번뇌의 적을 물리침에 어찌 창과 방패를 쓰겠는가, 생사의 군대를 파괴함에 오직 지혜의 힘만 의지하셨다. 원만하고 밝은 세계를 열어 가없는 중생을 널리 받아들이고, 영원한 행복의 문을 열어 심식(心識)이 있는 생명을 두루 포용하셨으니, 하늘을 뒤덮는 욕망의 물결일지라도 경계의 바람이 그침에 단박에 맑아졌고, 해를 가리는 망정의 먼지일지라도 법의 비가 적심에 곧바로 쓸려가 버렸다. 귀의하는 자는 재앙이 소멸되고 복을 받았으며, 회향하는 자들은 위험이 제거되고 안락을 얻었으니, 가히 높고도 우뚝한 것이 그가 이룩한 공이 있겠지만 드넓고 아득하여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분이라 하겠다.
다만 꼬물꼬물 어리석은 사생(四生)8)은 무상(無常)을 깨닫지 못하고, 아득한 육취(六趣)9)는 모두들 유결(有結)10)에 묶였으니, 허공의 꽃이 실재가 아니고 강에 비친 달이 견고하지 못하다는 것을 어찌 알리오. 오음(五陰) 속으로 치달리고 삼계의 영역에서 옮겨 다닐 뿐이니, 온갖 만물을 거둬들여 결국 법문을 기다려야만 했다.
백마가 서쪽에서 와11) 현묘한 말씀이 동토에 전해지고부터서야 세존께서 곧 근기의 부류에 따라 법을 연설하시고, 중생이 이에 성품을 쫓아 미혹을 깨쳤으며, 마명(馬鳴)은 고귀한 책에서 아름다움을 뽐내고, 용수(龍樹)는 보배로운 게송에서 향기를 드날렸다. 이에 아득한 진단(震旦)12)까지 통하고 염부제(閻浮提) 멀리까지 유통되어 반자교(半字敎)13)와 만자교(滿字敎)14)가 구역을 나누고, 대승과 소승이 나란히 질주하였으며, 맑고 편안한 준덕들이 수승한 도량에서 실력을 겨루고, 아름답고 원대한 고사들이 법의 집에서 줄지어 거닐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미묘한 말씀이 규범으로 드러나 천고의 세월을 거치면서 아름다운 명성을 드날렸고, 지극한 도리가 법규로 흘러 시방에 두루 미치면서 무성한 과실을 맺었다.
그러나 후주(後周) 시절에 마군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시운을 만나15) 결국 온 천하 초제(招提)16)가 모조리 허물어지고 피폐해졌으며, 온 세상 법려(法侶)가 평민들 속으로 자취를 숨겨야 했다. 아, 적막한 선정의 거처에는 좌선하던 자리만 휑하니 남았고, 황량한 지혜의 동산에는 경행하던 흔적이 다시는 없게 되었다. 개황(開皇)에 이르러 거듭 보수하고 건립하였지만17) 다시 대업(大業)을 맞아 또 일부가 붕괴되는 일을 겪었으니,18) 귀신이 통곡하고 신령이 앓았으며, 산이 울고 바다가 들끓었다. 이미 도탄(塗炭)에 빠졌는데 가람(伽藍)이 어찌 남아나랴. 정법은 침몰해 사라지고, 사견은 더욱 늘어만 갔다. 이에 사람들이 깨달음의 길을 미혹해 고(苦)와 집(集)의 구역으로 되돌아갔고, 세속이 참된 종지를 뒤덮어 번뇌와 장애 속의 굴레에 속박되었다.
우리 대 당나라가 천하를 차지하여 위로 유소씨(有巢氏)19)와 수인씨(燧人氏)20)를 능가하고 아래로 복희씨(伏羲氏)21)와 헌원씨(軒轅氏)22)를 굽어보자 삼성(三聖)23)이 거듭 빛을 발하고, 만방(萬邦)이 하나로 통일되었다. 위엄을 보여 일제히 정비하고 은택을 끝없이 베풀었으며, 대지의 맥락을 걷어잡아 순박함으로 돌이키고, 하늘의 강유를 널리 선포하며 정성을 바쳤다. 부처님의 태양을 다시 걸고 범천(梵天)24)을 거듭 보수하자 용궁(龍宮)의 여덟 기둥이 가지런히 안정되고
영취산[鷲嶺]의 다섯 봉우리가 높이를 다투었으니, 석존의 가르침을 크게 홍포한 것은 진실로 우리 황조라고 하겠다.
대복선사(大福先寺)에서 경전을 번역한 삼장법사 의정(義淨)은 범양(范陽) 사람이다. 속성은 장씨(張氏)이니, 한(韓)나라 이후로 5대에 걸쳐 제상을 지내고 진(晉)나라 이전에 삼태(三台)25)의 벼슬을 지내면서 붉은색과 자주색26)으로 빛깔을 나누고 초미(貂尾)와 선문(蟬文)27)으로 광채를 합한 가문이다. 고조(高祖)께서 동제군수(東齊郡守)를 지내던 시절에는 어진 교화의 바람[仁風]이 부채를 따라 일어났고 단비가 수레를 따라 내렸으며, 육조(六條)28)로 교화를 펼치고 십부(十部)29)로 정치를 행하셨다. 이 무렵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러서는 모두 세속의 영화를 싫어하여 하나의 언덕30)에서 맘대로 살면서 세 갈래 오솔길31)을 소요하였다. 온화함을 품고서 몸을 소박하게 하고, 천성을 기르면서 정신을 편안하게 하였다. 그렇게 동쪽 산에서는 돋아난 영지를 따고 남쪽 개울에서는 맑은 물을 길었으니, 가히 저 멀리 붉은 산마루를 찾아갔다가 흰 구름에 깃들어 누웠다고 하겠다. 언덕의 학32)은 이에 울음을 삼켰고, 마당의 망아지33)는 이 때문에 그림자만 묶였다.34)
법사께서는 허깨비를 뽑아버린 밝은 총명함으로 일찌감치 총명함과 민첩함을 드러냈다. 자두를 변별할 나이35)를 넘기자마자 즐거운 마음으로 출가하였고, 사내가 낙양에서 노닐 나이36)를 넘기자마자 서쪽 나라로 찾아갈 뜻을 세웠다. 이후 경사(經史)37)를 두루 학업 하여 학문이 고금을 꿰뚫었고, 삼장(三藏)의 현묘한 중추를 손아귀에 쥐고서 일승(一乘)의 오묘한 뜻을 밝혔다. 그러고 나서는 한가롭게 지내며 고요함을 익히고 사려함을 쉬고서 선정에 안주하였으며, 저 산림에 의탁하여 이 티끌 같은 세상의 속박을 멀리하였다. 그러다 37세에 비로소 평소 품었던 뜻을 결행하여 함형(咸亨) 2년(671)에 발걸음이 광부(廣府)에 이르렀다. 출발할 때 의기투합한 숫자는 열 명이었지만 노 저어 떠날 때 뱃머리에 오른 사람은 오직 그 하나뿐이었다.
그렇게 남해를 돌아 아득히 흐르고 서역을 향해 길이 내달리면서 천 겹 바위산을 지나고 만 리 파도를 넘어 갔다. 조금씩 천축에 다다라 차례로 왕사성(王舍城)에 도착하니, 부처님께서 『법화경(法華經)』을 설하신 영취산(靈鷲山) 봉우리가 여전히 그대로였고, 여래께서 성도하신 성스러운 자취도 여전히 남아있었다. 폐사성(吠舍城)38)에는 일산을 바쳤던 흔적39)이 사라지지 않았고, 급고독원(給孤獨園)에는 황금을 깔았던 땅40)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세 갈래 보배 계단41)이 확연한 것을 눈으로 목격하였고, 여덟 개의 크고 신령한 탑42)이 아득한 것을 직접 관찰하였다.
그가 경유한 곳은 30여 국이고 편력한 세월이 20여년이었으니, 보리수 아래에서 수차례나 가지를 꺾으면서43) 오랫동안 체류하였고, 아뇩달지(阿耨達池)44) 가에서 몇 번이나 갓끈을 씻고45) 거울을 닦았다.46)
법사께서는 자비(慈悲)로 방을 짓고 인욕(忍辱)으로 옷을 삼아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면서 항상 재계하였고, 여섯 때47)에 게으름이 없이 늘 좌선하였다. 또한 예전의 번역자들은 먼저 범문을 송출한 다음에 이를 바탕으로 한문으로 번역하면서 단어를 선택함에 있어서는 바야흐로 학자들에게 의지해야만 했고, 뜻을 설명함에 있어서는 별도로 승려들에게서 도움을 받아야만 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법사께서는 그들과는 같지 않아 이미 오천축(五天竺)의 언어에 능통하였고, 또 이제(二諦)48)의 그윽한 종지를 상세히 밝혔다. 그래서 번역한 뜻과 엮어낸 문장이 모두 자기에게서 나왔고, 단어를 선택하고 이치를 확정할 때도 주변 사람의 도움을 빌리지 않았다. 이는 한나라 시절의 가섭마등(迦葉摩騰)49)을 능가하고, 진나라 때의 구마라집(鳩摩羅什)50)을 뛰어넘은 것이다.
법사께서는 거의 400부에 도합 50만 송의 범본 경전과 금강좌진용(金剛座眞容) 1포, 사리 300과를 가지고 증성(證聖) 원년(695) 여름 5월에 비로소 도읍에 도착하였다. 측천대성황제(則天大聖皇帝)께서는 동쪽에서 솟아51) 천명을 받고, 하늘로 날아올라 기강을 거머쥐고는 선왕들의 사업을 계승해 번창시키는 것으로 임무로 삼고, 사해의 백성을 널리 구제하는 것으로 마음을 삼는 분이셨다. 이에 모든 관료들에게 명령하고 아울러 사부대중을 정비하셨으니, 무지개 깃발이 해를 쓸어버리고, 봉황의 노래52)가 구름을 걷었으며, 육수의 향기가 퍼지고53), 오색의 꽃잎이 흩날렸다. 그렇게 쟁쟁하고 성대하며 휘황하고 찬란하게 상동문(上東門)에서 맞이하여 불수기사(佛授記寺)에 안치하셨다.
법사께서는 우전삼장(于闐三藏)54) 및 대복선사(大福先寺) 주지 사문 복례(復禮), 서숭복사(西崇福寺) 주지 법장(法藏) 등과 함께 『화엄경』을 번역하였고, 이후 대복선사에서 천축삼장 보사(寶思)55)와 말다(末多)56) 및 불수기사 주지 혜표(惠表), 사문 승장(勝莊)・자훈(慈訓) 등과 함께 근본부(根本部)의 율(律)을 번역하였다.57) 이 대덕들은 모두 사선(四禪)의 선정에 잠겨 육바라밀[六度]을 그윽이 품고는
마음의 받침대에다 법의 거울을 높이 걸고, 성품의 바다에서 계율의 구슬을 환희 밝히셨던 분들이다. 이들은 문장의 숲에서 빼어난 재능을 드러내 깨달음의 나무를 가져다가 줄줄이 꽃망울을 터트렸고, 지혜의 횃불을 환하게 드날려 달을 맑히고 그림자와 합하였다. 순금과 박옥이란 진실로 이런 분들에게 해당하니, 진실로 범천 궁궐의 기둥이요 대들보이며, 참으로 불법 문중의 용이요 코끼리이다. 이들이 이미 여러 경율 200여권을 번역하고는 교정과 필사를 마치고 곧바로 모두 황궁에 진상하였으며, 그 나머지 계율과 여러 논서들은 바야흐로 다음 작업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편(五篇)58)의 가르침이 온전히 규명되고, 팔법(八法)59)의 원인이 빠짐없이 밝혀졌으니, 구슬을 삼킨 거위60)마저 보호하고, 벌레의 목숨마저 해치지 않게 하였으며, 부낭(浮囊)61)은 반드시 썩지 않은 것을 취하고 기름 그릇62)은 끝까지 엎어버리지 말게 하며, 성교(聖教)63)의 기강을 받들고 모든 생명체의 이목을 열어주게 되었다.
삼가 바라옵니다. 위로 밑거름이 되어주신 선대 성황들께서 칠묘(七廟)64)의 기반을 길이 융성하게 하시고, 아래로 황위를 계승한 미미한 제가 구천(九天)65)의 명령을 항상 보좌하게 하소서. 모든 생명을 인수의 영역66)으로 옮기고, 천박한 풍속이 순수한 근원에 이르게 하시며, 해마다 풍년들고 절기마다 온화하며, 먼 곳은 안정되고 가까운 곳은 정숙되도록 하소서.
돌아보건대, 온갖 업무를 총괄해야 하고 사해의 일들이 너무나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을야(乙夜)67)의 여가를 틈타 하늘을 뒤덮는 덕을 돕고자 허공을 살피고 적멸을 두드려 이렇게나마 서문을 지었다.


근본설일체유부니타나 제1권
(根本設一切有部尼陁那)


대당(大唐) 삼장법사(三藏法師) 의정(義淨) 한역
백명성 번역


대문(大門) 총섭송(總攝頌)

처음은 구족계를 받는 것으로 시작하였고
그 다음은 죽은 자의 물건을 나누는 것으로
그리고 둥그런 단과 문고리ㆍ보살상에 대한 것들을
시작으로 하는 오문(五門)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1. 별문(別門) 첫 번째 총섭송

구족계를 받았다 할 수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그리고 필추가 날 수[日數]는 알고 있어야 함을 말했다.
경계가 다르면 청정함의 통고나 갈마를 할 수 없으며

경계를 겹치게 하지 말고 다른 곳에 있는 사람은 함께 갈마를 행할 수 없다.
큰 경계는 75리 정도로 물과 산꼭대기를 경계로 삼으며
오중(五衆)은 안거(安居) 중 잠시 경계를 떠날 수도 있다.
필추는 통옷을 입고 마을에 들어갈 수 없으며
다섯 종류의 짐승 가죽으로는 신을 만들지 못하고
아플 경우에는 고기를 먹을 수 있다.


1) 첫 번째 자섭송(子攝頌)

구족계[近圓]1)를 받을 때 남자가 여자의, 여자가 남자의 태도를 짓거나
구족계를 받지 않은 이가 스승이거나
곤란한 사항이 있거나 열 사람의 스승이 참석치 않았거나
나에게 주지 말라고 했다면 받았다고 할 수 없으며 만 칠 세 미만의 어린이는 사미가 될 수 없다.

그때 박가범(薄伽梵)께서 실라벌성(室羅伐城) 서다림(逝多林) 급고독원(給孤獨圓)에 계셨다.
제자 오바리(鄔波離)가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나아와 두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합장하며 공경스럽게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世尊)이시여, 만약 필추(苾芻)가 다른 이에게 구족계를 줄 때에 그가 만일 성(性)이 바뀌었다면[根轉], 구족계를 잘 받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구족계를 받은 것이나, 응당 필추니의 처소로 옮겨 가야 할 것이다.”
다시 또 묻기를 “세존이시여, 만일 필추가 다른 남자에게 구족계를 줄 때에 그 남자가 여인의 음성과 여인 같은 생각과 몸가짐과 행동을 하였다면, 그 사람이 구족계를 받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바리야, 그것은 구족계를 받은 것이나, 여러 필추들은 월법죄(越法罪)를 지은 것이다.”
“만약 필추니가 다른 여인에게 구족계를 줄 때에 그 여인이 남자의 음성과 남자 같은 생각과 몸가짐과 행동을 하였다면, 그 사람이 구족계를 받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구족계를 받은 것이나, 여러 필추니들은 월법죄를 지은 것이다.”
“만약 구족계를 받지 않은 사람을 친교사(親敎師)로 삼았다면 그 사람이 구족계를 받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구족계를 받은 것이나, 여러 필추들은 월법죄를 지은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구족계를 받기에 곤란한 사항이 있고 스스로도 있다고 말하였는데, 여러 필추들이 구족계를 받게 하였다면, 그 사람은 구족계를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구족계를 받았다고 할 수 없고, 여러 필추들은 월법죄를 지은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곤란한 사항이 없으나 스스로는 있다고 말하였는데, 여러 필추들이 구족계를 받게 하였다면 그 사람은 구족계를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구족계를 받은 것이고, 여러 필추들은 월법죄를 지은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실제로는 곤란한 사항이 있는데도 스스로는 곤란한 사항이 없다고 말하여 필추들이 구족계를 받게 하였다면, 그 사람은 구족계를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구족계를 받았다고 할 수 없으며, 여러 필추들은 잘못이 없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실제로도 곤란한 사항이 없고 스스로도 없다고 말하여 여러 필추들이 구족계를 받게 하였다면, 그 사람이 구족계를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잘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필추가, 출가자가 아직 10계(戒)를 받지 않았는데, 그에게 구족계를 주었다면 그 사람은 구족계를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받았다고 할 수 있으나, 여러 필추들은 월법죄를 지은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구족계를 받을 때에 ‘나에게 구족계를 주지 말라’고 말하였는데 여러 필추들이 받게 하였다면, 그 사람이 구족계를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구족계를 받은 것이나, 여러 필추들은 월법죄를 지은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구족계를 받을 때에 ‘나에게 구족계를 주지 말라’고 말하였는데 여러 필추들이 받게 하였다면, 그 사람이 구족계를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구족계를 받은 것이나, 여러 필추들은 월법죄를 지은 것이다.”
“세존께서는 만약 어떤 아이가 만 일곱 살로서 까마귀를 쫓을 수 있다면 출가 시킬 수 있다고 하셨는데, 가령 대덕(大德)이 데리고 있는 아이가 겨우 여섯 살인데도 절의 주방에서 절의 주방에 모여드는 까마귀를 쫓을 수가 있다면, 그 아이를 출가시켜도 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 일곱 살의 경우를 허락한 것이니, 그러한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

“만약 만 일곱 살로서 까마귀를 쫓지 못하는 데도 출가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출가시킬 수 없다. 까마귀를 쫓을 수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2) 두 번째 자섭송

일수(日數)는 언제나 알고 있어야 하며
고지(告知)하는 날 저녁은 반드시 뺀다.
설계(設戒)는 6일과 18일에 하고
설계(設戒)를 자주 하여서는 안 된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실라벌성에 계셨다.
바라문과 거사들이 필추의 처소(필추들이 있는 곳)에 와서 “아리야(阿離耶)2)여, 오늘이 며칠입니까?”라고 묻자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여러 사람들이 이르기를 “성자여, 외도(外道)의 무리들도 날짜와 성력(星曆)3)에 대해서는 모두 잘 알고 있으니, 그대들 역시 날짜와 성력을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들을 알지 못하면서 출가를 하였단 말입니까?”라고 하였다.
필추들이 이에 대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이 일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여러 필추들이 일수와 성력을 알아야 된다고 결정하노라.”
그때 여러 필추들이 모두 성력을 헤아리고 계산하는 방법을 배웠으나, 곧 혼란스러워하며 그 일을 그만 두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응당 한 사람이 대표로 계산법을 배우도록 하여라.”
비록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기는 하였으나, 누가 계산하는 데 합당한 사람인지 알 수 없어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리 중에 제일 위인 상좌(上座)로 하여금 계산하게 하여라.”
그때 상좌가 계산한 것을 잊어버리고 지사인(知事人)도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진흙 구슬이나 대나무 산(算)가지를 만들어 열다섯 개를 채워가지고 매일 하나씩 옮기도록 하여라.”
이렇게 하였더니 때때로 바람에 날려 뒤섞이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길이가 네다섯 뼘 되는 대쪽 열다섯 개를 가져다가 한쪽 끝에 구멍을 뚫어 끈으로 꿰어 벽에 걸어 놓고 매일 하나씩 옮기도록 하여라.”
그때 무리 중의 모든 사람들이 다 산가지를 옮겨 놓았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상좌와 지사자만이 옮기도록 하여라.”
그때 바라문과 거사들이 필추의 처소에 와서 묻기를 “성자여, 오늘이 며칠입니까?”라고 하였다.
필추들이 곧 대답하기를 “그대들은 지금 상좌와 지사자(知事者)에게 물어보도록 하시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여러 사람들이 이르기를 “그대들도 계산 당번을 두어 일수를 알고 있어야 할 사람들이 아닙니까?”라고 하였다.
그때 필추들이 묵묵히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이 일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응당 일수를 고지하여 널리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주도록 하여라.”
그때 여러 필추들이 가는 곳마다 고지하니,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는 곳마다 고지하여서는 안 된다. 그러나 대중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상좌 앞에서 고지하되 ‘대중들은 마땅히 알라. 오늘은 달의 첫째 날이다’라고 할 것이다.”
여러 속인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는 다시 이르기를 “그대들은 어찌하여 한 달을 흑월(黑月)과 백월(白月)로 반분(半分)하여 말하지 않는가?”라고 하니, 그리하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다.
필추들이 이 일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땅히 흑월ㆍ백월로 나누어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할 것이다. 가령 신시(申時:오후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이후 대중들이 모였을 때, 한 필추가 상좌 앞에서 합장하고 서서 일심(一心)으로 공경스럽게 ‘대덕 스님들은 들으십시오. 오늘은 흑월 첫째 날입니다. 그대들은 절을 지어 준 시주들과 절을 보호해 주시는 천신(天神)님과, 그리고 예전부터 계시는 천신님을 위하여 각기 경(經) 중의 청정한 게송을 외우도록 하십시오’라고 고지하여야 할 것이다.”
그때 여러 필추들이 비록 매일매일 고지하기는 하였지만 절을 지어 준 시주의 이름을 말하지 아니하였다.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땅히 절을 지어 준 시주의 이름을 일컬어야 할 것이며, 내일 음식을 진설할 시주의 이름도 일컬어 그 시주로 하여금 원하는 대로 복(福)과 좋은 일이 늘어나게 하여 주어라. 만약 그 밖에 다른 시주가 있거든 모두 이와 똑같이 말하여라. 그리고 그 외의 천중(天衆)4)과 팔부(八部)5)의 무리들과, 회상과, 부모는 모두 다 이름을 일컬어 일체의 중생들에게 알려 모두 복리가 증진되도록 해 주어라.”
그때 필추들이 이 말씀을 듣고는 곧 모두 각자 청정한 게송을 노래하였다.

보시를 한 사람은
반드시 의로운 이익을 얻으리니
안락함을 위하여 보시하였다면

뒤에 반드시 안락함을 얻으리라.

여러 보살님의 복으로 보답함이
허공처럼 다함이 없으니
시주들은 이와 같은 결과를 얻어
끊임없이 발전하리라.
그때 어떤 시주(施主)가 필추들에게 청하여 공양을 베풀겠다고 하였는데, 필추들이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위해 시주의 이름과 사는 곳을 널리 알리지 아니하였다.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응당 미리 시주의 이름을 널리 알리되 ‘시주 아무개가 내일 대중들을 위해 음식을 진설하는데, 사는 곳은 아무 곳입니다’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다시 바라문과 거사들이 필추의 처소에 와서 묻기를 “성자여, 오늘이 며칠입니까?”라 하니, 15일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들이 다시 묻기를 “요즘 사람들은 모두 14일이라고 하는데 어찌하여 당신들은 15일이라고 하십니까? 어찌하여 필추들은 밤을 빼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하니, 빼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다.
그때 여러 필추들이 이 일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응당 밤을 빼야 할 것이다.”
그때 여러 필추들이 자주 반 달마다 밤을 빼었다. 속인(俗人)이 “성자여 오늘이 며칠입니까?”라고 물으니, 필추들이 14일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가 “성자여, 요즘 사람들은 모두 15일이라고 하는데 어찌하여 당신들은 자주 반 달마다 밤을 빼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그때 필추들이 이 일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자주 반 달마다 밤을 빼서는 안 된다. 그러나 반 달이 지난 후 날짜를 계산할 때에는 응당 밤을 빼야 할 것이다.정월 16일부터 2월 15일까지가 반달이다. 2월 16일부터 2월 말까지가 바로 반 달이다. 하룻밤을 빼어 작은 달로 삼는다. 나머지도 모두 이와 같이 하니, 동과 서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면 1년에 6일은 14일마다, 6일은 15일마다 장정사(長淨事)6)를 하게 될 것이다.”
그때 바라문과 거사가 필추에게 와서 묻기를 “성자여 지금이 무슨 달입니까?”라고 하니, “지금은 실라말나(室羅末拏) 달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5월 16일부터 6월 15일에 해당된다.
그러자 그들이 다시 “성자여 여러 사람들이 모두 지금은
아사다(阿沙茶) 달[4월 16일부터 5월 15일까지]이라고 하는데 당신들은 실라말나 달이라고 하니, 어찌하여 그대들은 윤달을 두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묻자 필추들이 두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모든 사람이 다 비웃었다.
그때 여러 필추들이 이 일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응당 윤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때 여러 필추들이 해마다 언제나 윤달을 두었는데, 속인이 와서 묻기를 “성자여 지금이 무슨 달입니까?”라고 하니, 아사다 달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들이 다시 “성자여 여러 사람들이 모두 지금은 살라말나 달이라고 하는데, 당신들은 아사다 달이라고 하니, 어찌하여 그대들은 해마다 윤달을 두는 것입니까?”라고 묻자 필추들이 해마다 윤달을 둔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전처럼 모든 사람이 다 비웃었다.
필추들이 이 일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매년 윤달을 두어서는 안 되고, 여섯 해 만에 윤달을 두어야 할 것이다.즉 5곱하기 6이라 30이 된다. 이것은 옛날 방법으로서 지금과는 같지 않다.
그때 국왕이 2년 반에 한 번 윤달을 두게 하였는데, 필추들은 이를 따르지 않아 사람들이 의아해하며 부끄러운 짓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필추들은 응당 왕법에 따라 윤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별의 운행 궤도에 차이가 생기면 별의 궤도를 참작해 활용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필추들은 응당 해, 달, 별의 분포를 알고 시속과 함께 행하여, 와서 책잡으려고 하는 여러 외도들에게 허점을 보이지 않도록 하여라.”
“대덕이시여, 필추가 거처하는 곳에서 학인들에게 자주 설계(設戒)를 해 주어도 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안 된다.”

3) 세 번째 자섭송

경계가 다르면 청정함을 통고하지 못하며
또한 갈마(羯磨)7)도 행할 수 없느니라.
하늘을 날아가서는 욕(欲)8)을 전달한 것이 아니며
앞의 경계를 풀고서야 뒤의 경계를 맺느니라.

그때 부처님께서는 실라벌성에 계셨다.
제자 우바리가 세존께 여쭈어 보았다.
“경계 안에 거주하는 사람이 경계 밖의 사람에게 청정함을 통고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할 수 없다.”
“경계 밖에 거주하는 사람이 경계 안의 사람에게 청정함을 통고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할 수 없다.”
“경계 안에 거주하는 사람이 경계 밖의 사람을 위하여 갈마를 행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할 수 없다.”
“경계 밖에 거주하는 사람이 경계 안의 사람을 위하여 갈마를 행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할 수 없다.”
“만약 하늘을 날아 ‘찬성의 뜻’을 지니고 갔다면 ‘찬성의 뜻’을 전달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할 수 없다. 응당 다시 ‘찬성의 뜻’을 전달해야 한다.”
“만약 앞의 경계를 풀지 않았다면 뒤의 경계를 맺을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맺을 수 없다. 응당 백사갈마(白四羯磨)로 앞의 경계를 풀고 나서야 뒤의 경계를 맺을 수가 있는 것이다.”

4) 네 번째 자섭송

경계를 겹치게 하지 말 것이며 경계가 취소되는 방법과
나무로 계상(界相)을 삼음은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경계에는 넘을 수 없는 것과 넘을 수 있는 것이 있고
집행자가 죽었을 경우에도 갈마의 성립 여부가 갈린다네.

우바리(鄔波離) 존자가 세존께 여쭈었다.
“자못 어떤 경계를 다른 경계에 겹치게 할 수가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할 수 없다.”
“서로 겹쳐질 수 없는 경계는 몇 종류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작은 설법 장소[小壇場]와 현재 물이 정지되어 있는 곳과, 그리고 필추 경계와 필추니 경계를 말하니, 이곳들은 모두 겹쳐져서는 안 된다.”
“만약 먼저 경계가 맺어졌다면 그것이 취소되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대중이 모두 환속할 경우, 둘째는 대중이 동시에 성(性)이 바뀌었을 경우, 셋째는 대중이 계율을 내놓고 떠날 것을 결심한 경우, 넷째는 대중이 같은 시간에 목숨이 다했을 경우, 다섯째는 백사갈마(白四羯磨)를 행하여 해제하였을 경우이다.”
“나무 하나를 두 경계의 표식으로 삼을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각각 한 면[一邊]을 취한다면 세 경계의 표식으로 삼을 수도 있고, 더러는 네 경계의 표식으로도 삼을 수가 있으니, 영역을 구별할 수만 있다면 모두 가능한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가시국(迦尸國)에서 두루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교화하셨다. 세존께서 한 곳에 이르러서는 문득 미소를 지으셨다.
세존의 상법(常法)에 따르면, 세존께서 미소를 지으실 때에는
곧 입 속에서 청색ㆍ황색ㆍ적색ㆍ백색ㆍ홍색의 다섯 가지의 빛이 쏟아져 나와, 어떤 때는 아래를 비추기도 하고 어떤 때는 다시 위로 올라가기도 한다. 아래를 비추며 내려간 빛은 등활지옥(等活地獄)ㆍ흑승지옥(黑繩地獄)ㆍ중합지옥(衆合地獄)ㆍ호규지옥(號叫地獄)ㆍ대호규지옥(大號叫地獄)ㆍ소연지옥(燒然地獄)ㆍ대소연지옥(大燒然地獄)ㆍ무간지옥(無間地獄)ㆍ포형지옥(疱形地獄)ㆍ연포지옥(蓮疱地獄)ㆍ아타타지옥(阿吒吒地獄)ㆍ아가가지옥(阿呵呵地獄)ㆍ아호호지옥(阿呼呼地獄)ㆍ청련화지옥(靑蓮花地獄)ㆍ홍련화지옥(紅蓮花地獄)ㆍ대홍련화지옥(大紅蓮花地獄)에까지 이르는데, 뜨거운 열기로 푹푹 찌는 곳은 모두 시원해지고, 찬 얼음같이 오싹하게 추운 곳은 곧 따뜻한 온기가 감돌게 된다. 그래서 그 곳에 있던 유정(有情)들이 제각기 안락함을 얻게 되자, 모두 이러한 말을 하게 된다.
“나와 너와 우리 모두가 이곳에서 죽어 다른 곳에 태어난 것은 아닌가?”
그때 세존께서 그 유정들에게 신심(信心)이 생겨나게 하시려고 다시 다른 모습들을 나타내시니, 그들이 그 모습들을 보고는 모두 “우리들이 그 곳에서 죽지 않고 다른 곳에 태어났구나. 그러나 우리들은 반드시 ‘세상에 드물게 나타나시는 위대한 분[希有大人]’9)의 위신력(威神力)10) 덕택으로, 몸과 마음이 안락한 곳을 알아 머물게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미 공경스러운 믿음이 생겨났으니 그들은 지옥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괴로움들을 끊어 버리고, 인간계와 하늘계에서 훌륭한 몸으로 태어나 법기(法器)11)로서 의당 진리를 깨치게 될 것이다.
위로 올라간 빛은 사대왕중천(四大王衆天)으로부터 삼십삼천(三十三天)ㆍ야마천(夜摩天)ㆍ도사다천(覩史多天)ㆍ낙변화천(樂變化天)ㆍ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ㆍ범중천(梵衆天)ㆍ범보천(梵輔天)ㆍ대범천(大梵天)ㆍ소광천(少光天)ㆍ무량광천(無量光天)ㆍ극광정천(極光淨天)ㆍ소정천(少淨天)ㆍ무량정천(無量淨天)ㆍ변정천(遍淨天)ㆍ무운천(無雲天)ㆍ복생천(福生天)ㆍ광과천(廣果天)ㆍ무번천(無煩天)ㆍ무열천(無熱天)ㆍ선현천(善現天)ㆍ선견천(善見天) 그리고 색구경천(色究竟天)에까지 이르렀는데,
그 빛 속에서 고(苦)ㆍ공(空)ㆍ무상(無常)ㆍ무아(無我) 등의 도리를 가르쳐 주시고, 아울러 다음과 같은 두 개의 게송을 일러 주셨다.

너희들은 의당 괴로움 속에서 벗어나리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부지런히 닦아서
생사의 번뇌 이겨 내기를
마치 코끼리가 초막을 부숴 버리듯 하여라.

그와 같으신 부처님의 법을 지켜
언제나 제멋대로 하지 않는다면
번뇌의 바다 다 말라 버리고
한없는 괴로움 모두 끊어지리라.
그때에 그 밝은 빛이 한량없이 커다란 세계[三千大千世界]를 두루 비추고서는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되돌아왔다. 만약 부처님께서 과거의 일을 말씀하신다면 빛이 등으로부터 들어갈 것이요, 만약 미래의 일을 말씀하신다면 빛이 가슴으로부터 들어갈 것이요, 만약 지옥의 일을 말씀하신다면 빛이 발 아래로부터 들어갈 것이요, 만약 방생(傍生)12)의 일을 말씀하신다면 빛이 발뒤꿈치로부터 들어갈 것이요, 만약 아귀(餓鬼)의 일을 말씀하신다면 빛이 발가락으로부터 들어갈 것이요, 만약 사람의 일을 말씀하신다면 빛이 무릎으로부터 들어갈 것이요, 만약 역륜왕(力輪王)의 일을 말씀하신다면 빛이 왼쪽 손바닥으로부터 들어갈 것이요, 만약 전륜왕(轉輪王)13)의 일을 말씀하신다면 빛이 오른쪽 손바닥으로부터 들어갈 것이요, 만약 하늘의 일을 말씀하신다면 배꼽으로부터 들어갈 것이요, 만약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이나 그러한 일[聲聞]에 대해 말씀하신다면 빛이 입으로부터 들어갈 것이요, 만약 타인의 가르침 없이 홀로 수행하여 깨닫는 사람이나 그러한 일[獨覺]에 대해 말씀하신다면 빛이 눈썹 사이로부터 들어갈 것이요, 만약 더할 나위 없이 바르고 평등하게 두루 깨닫는 일[阿耨多羅三藐三菩提]14)에 대해 말씀하신다면 빛이 정수리로부터 들어갈 것인데, 이때 밝은 빛이 부처님 주위를 세 번 감돌고는 정수리로부터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때 아난타(阿難陀)15) 존자가 합장하고 공경스럽게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래(如來)께서는 바르고 두루 깨달은 분[正等覺]이시니, 기뻐하시거나 미소를 짓는 데에도 아무런 이유가 없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이제 게송을 지어 바치며 이유를 말씀해 주시길 청하나이다.”

입에서 가지가지 묘한 밝은 빛 쏟아져 나와
온 세상에 충만하니 한 가지 모습만이 아니시네.
시방(十方)의 여러 나라 두루 비추시기를
마치 햇빛이 모든 허공 비추는 듯 하시네.

부처님은 중생이 받드는 가장 훌륭한 분이시라
교만함과 게으름과 걱정들을 없애 주신다네.
그러나 이유 없이 입[金口]을 열진 않으시니

미소 지으심은 귀한 말씀 해 주시기 위해서라네.

찬찬하고도 밝은 지혜의 부처님께서는
듣고자 하는 자를 위해 말씀해 주시는데
마치 사자가 크게 포효하듯이 하시어
우리들의 의심하는 마음 끊어 주시고

마치 큰 바다 한가운데 있는 수미산처럼
아무 이유 없이는 꿈쩍도 않으신다네.
지극히 자비로우신 분께서 미소 지으셨으니
목마르게 원하는 자들을 위해 이유 말씀하소서.

그때 세존께서 아난타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그러하다. 아난타여, 이유가 없지 않으니 여래는 바르고 두루 깨달았으므로 문득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아난타여, 이곳은 바로 과거(過去)의 가섭파(迦攝波) 부처님16)께서 성문의 무리들을 위하여 설법하시던 곳이니라.”
이때 아난타가 이 말씀을 듣고는 서둘러 상의[七條衣]를 가져다 네 겹으로 포개어 자리를 만들고서는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미 자리를 마련했사오니 부처님께서는 이 자리에 앉으실 때가 되었음을 아실 것이옵니다. 원컨대 이 장소로 하여금 바르게 깨달으신 두 분, 즉 가섭파 부처님과 지금의 세존께서 앉으셨던 자리가 되게 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 아난타에게 말씀하셨다.
“좋은 말이로다. 좋은 말이로다. 내 아직 말해 주지도 아니하였거늘 네 스스로 때를 알고 있구나.”
그때 세존께서 곧 자리에 나아가 앉으시고는 다시 아난타에게 일러 주셨다.
“이 지역은 가섭파 부처님께서 머무시던 절터로서, 이곳은 그분이 거니시던 곳이었고, 이곳은 행랑처에서 발을 씻으시던 곳이었으며, 이곳은 부엌이 있던 곳이었고, 이곳은 욕실 자리였으니, 너희들은 마땅히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니라.”
그때에 우바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정(淨)한 곳과 부정(不淨)한 곳을 말씀하셨으나, 저희는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나누는 한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부처님의 바른 법[正法]이 세상에 남아 있는 경우라야 정이니 부정이니 하는 것이지, 만일 바른 법이 없어져 버렸다면 모두 부정한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바른 법이 세상에 남아 있는 경우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이며, 없어져 버렸다고 하는 것은 또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일러 주셨다.
“우바리야, 갈마를 시행하고 있으며 부처님 말씀대로 실천하고 있다면 이러한 경우를 일컬어 바른 법이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하고,
갈마를 시행하지 않으며 부처님 말씀대로 실천하지 않는 경우를 일컬어 바른 법이 없어져 버렸다고 하는 것이니라.”
우바리가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만약 무상대사(無上大師)가 경계 밖에 있다면 필추들이 갈마를 시행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할 수 없다.”
“만약 대사(大師)가 경계 안에 있다면 다른 사람이 갈마를 시행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할 수 있다.”
“또 세존으로써 스님의 숫자를 채울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럴 수 없다. 부처님과 스님은 그 바탕[體]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덕이시여, 넘을 수 없는 경계가 몇 가지나 되는지 알지 못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두 다섯 가지가 있으니, 필추의 경계, 필추니의 경계, 작은 설법 장소, 현재 물이 정지되어 있는 곳, 두 경계의 중간이 그것이다.” “대덕이시여, 만일 넘을 수 없는 자연 경계인 깊은 도랑이나 강, 시내들이 경계 안에 있다면 그것들을 넘을 수도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항상 다리가 놓여 있다면 넘어가도 허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그 다리가 파괴되어 버렸다면 시간적으로 어느 정도까지나 넘을 수 있는 경계로 인정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7일까지는 인정될 수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수리하려는 마음이 있을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니, 수리하려는 마음이 없을 경우는 다리가 파괴되는 즉시 넘어가서는 안 된다.”
“만약 필추가 바로 경계를 맺었을 때 갈마를 집행하는 자가 갑자기 수명이 다하였다면 경계를 맺었다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필추들이 표상(標相)17)을 알고 있다면 갈마의 많은 부분이 진행된 것이니, 비록 그가 수명이 다했다 하더라도 경계를 맺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표상을 알지 못하다면 갈마의 많은 부분이 진행되지 않은 것인데 이때 집행자의 수명이 다했다면 경계를 맺었다고 할 수 없다. 필추니가 경계를 맺었을 때의 성립 여부도 이에 준해서 알도록 하여라.”

5) 다섯 번째 자섭송

땅이나 담장 등에 있는 사람이 함께 갈마를 행할 수 없고
경계 맺은 다음에는 욕(欲)을 위탁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곳에 앉아서도
네 경계의 갈마를 할 수가 있다.


이러한 일이 실라벌성에서 있었다.
우바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어 보았다.
“땅에 사는 사람이 땅에 거주하는 사람과 함께 멀리서 갈마를 행하였다면, 그 갈마의 집행이 성립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성립될 수 없다. 그러나 찬성의 뜻은 전달할 수 있다.”
“대덕이시여, 땅에 있는 사람이 담장에 있는 사람과 함께 갈마를 행하였다면, 그 갈마의 집행이 성립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성립될 수 없다.”
“대덕이시여, 땅에 있는 사람이 나무 위에 있는 사람과 함께 갈마를 행하였다면, 그 갈마의 집행이 성립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성립될 수 없다.”
“대덕이시여, 땅에 있는 사람이 허공에 있는 사람과 함께 갈마를 행하였다면, 그 갈마의 집행이 성립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성립될 수 없다. 나무ㆍ담장ㆍ허공으로 첫머리를 삼았을 경우에도 각기 같은 논법의 네 문답이 있을 수 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대로 여러 가지 갈마가 있는데, 찬성의 뜻을 위탁할 수 있는 경우는 몇 가지나 되고, 찬성의 뜻을 위탁할 수 없는 경우는 몇 가지나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경계를 맺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찬성의 뜻을 위탁할 수 있다.”
“대덕이시여, 만약 신변환술(神變幻術)로써 표상을 삼는다면, 그것으로써
표상이 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될 수 없다. 신력환술(神力幻術)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혹 해, 달, 별자리로 표상을 삼았을 경우라면, 그것들은 표상이 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될 수 없다. 해, 달, 별자리들은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파도치는 물일 경우라면, 그것으로 표상으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삼을 수 없다. 그 물결들이 빠르게 옮겨 가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필추가 다른 필추를 위해 청정함과 찬성의 뜻을 가지고 허공을 날라서 갔다면, 그것은 청정함과 찬성의 뜻을 전달하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할 수 없다. 응당 다시 찬성의 뜻을 전달하여야 한다.”
“만약 어떤 필추가 사주처(四住處)에서 하나의 갈마를 집행하였을 경우 그 갈마가 성립되었다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그 네 경계에 각각 네 명의 참석자가 있게 되는 경우라면 성립되었다 할 수 있다. 가령 각각의 처소에 별도의 세 사람이 있고 갈마를 집행하는 자가 방석이나 평상, 널빤지, 풀방석 등을 네 경계가 중첩되는 곳에 놓고 앉아 있는 경우라면, 갈마를 집행하는 자가 그 네 경계 안의 네 사람 속에 각각 중복되어 들어가니, 이러한 경우라면 갈마가 모두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럴 경우 네 경계 안에서는
각기 다른 갈마를 행할 수도 있으니, 구빈갈마(驅擯羯磨)ㆍ금포갈마(今怖羯磨)ㆍ절복갈마(折伏羯磨)ㆍ구사갈마(求謝羯磨)ㆍ불견죄갈마(不見罪羯磨)ㆍ불여법회갈마(不如法悔羯磨)ㆍ불사악견갈마(不捨惡見羯磨)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갈마를 행할 때에 갈마 집행인 저 네 경계가 서로 연접해 있는 곳에 방석이나 평상ㆍ널빤지ㆍ풀 방석 등을 깔고 앉아 있다면 갈마는 모두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6) 여섯 번째 자섭송

큰 경계는 75리[兩驛半] 정도이니
아래로는 물이 있고 위로는 산꼭대기까지.
이견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새벽이 지나더라도 관계없으며
하안거 중 5중(衆)은 7일 간 외출할 수도 있다.

우바리 존자가 세존께 여쭈어 보았다.
“세존의 말씀대로라면 큰 경계를 맺으려면 영역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큰 경계라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큰 경계는 양유선나 반(兩踰膳那半:75리)쯤 되어야 경계를 맺을 수 있느니라.”유선나라고 하는 것은 30리에 해당되니 이것이 바로 한 역[一驛]이다. 유순(由旬)이라고 하는 것은 틀린 말이라,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역(驛)이라고 한 곳을 두었다.
“만일 75리를 넘는다면 그것 역시 큰 경계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75리를 넘는다면, 큰 경계가 아니다.”
“아래로는 어디까지를 한계로 하여 큰 경계라고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강가까지를 한계로 하여 큰 경계라고 한다.”
“75리 밖에 강가가 있을 경우 그 사이의 남는 공간도 경계라고 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경계라고 할 수 없다.”
“위로는 어디까지를 한계로 하여 큰 경계라고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위로는 나무 끝 혹은 담장까지를 큰 경계라고 한다.”
“대덕이시여, 75리 밖에 나무 끝이나 담장이 있을 경우 그 사이의 남는 공간도 경계라고 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경계라고 할 수 없다.”
“만일 산꼭대기에서라면 어디까지를 한계로 하여 경계라고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물이 있는 곳까지를 한계로 하느니라.”
“75리 밖에 물이 있다면 그 사이의 남는 공간도 경계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하안거(夏安居) 중 스님 대중의 화합이 깨졌을 때
어떤 필추가 법을 지키는 무리[法黨]를 따르다가 법을 지키지 않는 무리[非法黨]를 따른다면 그것은 하안거의 규칙을 깨뜨린 것입니까, 깨뜨린 것이 아닙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필추가 이단의 의견[異見]을 좋아하여 나쁜 무리의 처소에 가서 새벽이 지나도록 있었다면 하안거의 규칙을 깨뜨린 것이지만, 만일 이단의 의견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나쁜 무리의 처소에 가서 새벽이 지나도록 있었다고 하더라도 하안거의 규칙을 깨뜨린 것은 아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안거 중에 일이 있어 경계 밖으로 나가야 할 경우에는 7일간 떠날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어떠한 사람이 허락 받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5중(衆) 즉 필추ㆍ필추니ㆍ정학녀(正學女)18)ㆍ사미ㆍ사미니 등이 허락 받을 수 있다.”
“그들이 어느 곳에서 허락 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경계 안 어느 곳에서나 마음대로 받을 수 있으나, 한 필추 앞에서 합장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즉 ‘존자여, 기억하여 주십시오. 필추인 저 아무개는 이곳에 머물며 3개월간의 전(前) 하안거(혹은 후 하안거)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필추인 저 아무개는 스님 대중[僧伽]의 일로 7일간 경계 밖으로 나가고자 합니다. 만일 어려운 일이 없다면 이곳으로 돌아와 금년 여름은 이곳에서 안거를 하겠습니다’라고 세 번 말해야 하는 것이다.
혹 6일에서 하루 동안의 볼 일이 있을 경우에도 7일의 경우를 기준으로 하여 경계 안에서 허락을 받아야 할 것이니라.”

7) 일곱 번째 자섭송

5중(衆)은 안거를 할 수 있으며
친척 등이 부르면 잠시 떠날 수 있고
경전의 내용에 대해 의문점이 있어
이해하고자 하는 자는 떠나갈 수가 있다.
우바리 존자가 세존께 여쭈어 보았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대로 응당 하안거(夏安居)를 하여야 할 터인데 누가 안거에 합당한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5중(衆) 즉 필추, 필추니, 정학녀(正學女), 사미, 사미니 등은 안거하기에 합당한 자들이다. 조용한 곳에서 한 필추와 마주 보며 그 앞에 무릎 꿇고서 다음과 같이 말하여라.
‘존자여, 기억하여 주십시오. 지금 스님 대중이 5월 16일에 하안거를 시작합니다.
필추인 저 아무개도 역시 5월 16일부터 하안거를 하겠습니다. 필추인 저 아무개는 이곳에 머물며 경계 안에서 3개월간의 전(前) 하안거를 하겠습니다. 아무개를 시주로, 아무개를 영사인(營事人)으로, 아무개를 간병인[瞻病人]으로 하겠습니다. 이곳에 머물다 만일 거처가 무너지거나 옷이 뚫어지면 보수하면서 저는 올 여름 이곳에서 안거하겠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도 이렇게 말할 것이며 전(前) 하안거를 할 것인지 후(後) 하안거를 할 것인지는 마음대로 하여라. 필추니 역시 필추니 앞에서 필추가 한 것을 기준으로 해서 말할 것이며, 사미는 필추 앞에서, 정학녀와 사미니는 필추니 앞에서 해야 할 것이니라.”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필추가 하안거를 할 적에 오바색가(鄔波索迦)등이 부르는 일이 있으면 7일간 떠나갈 수 있다고 하셨는데, 만약 외도나 친족 등이 부르는 일이 있다면 그 역시 떠나갈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한 경우에도 역시 떠나갈 수 있다.”
“만일 삼장(三藏) 가운데 의문점이 있어 자문하고자 할 경우에도 역시 떠나갈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떠나갈 수 있다.”
“만약 필추가 얻지 못하여 얻으려 하거나, 이해하지 못하여 이해하려고 하거나, 증득하지 못하여 증득하려고 하거나, 의심스런 마음이 있어 가서 해결하려고 할 경우, 이러한 일들을 위해서라면 역시 7일간 떠나갈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두 떠나갈 수 있다. 하루나 이틀 정도 떠나는 것을 허락 받는 것도 이러한 경우들을 기준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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