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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2171 불교(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 49권 / 根本說一切有部毗奈耶)

by Kay/케이 2023.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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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根本說一切有部毗奈耶) 49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 제49권


의정 한역


83) 사언부지학처(詐言不知學處)
그때 박가범께서는 실라벌성에 있는 서다림의 급고독원에 계셨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반월반월(半月半月)에는 마땅히 바라제목차계(波羅提木又戒)1)를 설해야 하느니라.”
그때 모든 필추들은 가르침을 받들어서 계를 설하였는데, 육중필추는 계율을 설하는 것을 들을 때 이렇게 말했다.
“구수여, 저희는 지금 비로소 이 법이 계경(戒經) 속에 설해져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 필추들이 그에게 말했다.
“어찌하여 구수께서는 반월반월(半月半月)에 계경(戒經)을 설할 때에 듣지 않았습니까?”
육중필추가 대답했다.
“저희들이 어찌 계경만을 듣기만 하고 다른 일은 없었겠습니까? 다른 여러 욕망의 경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고 분별했습니다.”
여러 필추들이 부처님께 아뢰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러한 어리석은 사람들은 계율을 가벼이 여기고 함부로 하느니라. 내가 열 가지 이로움을 관해서 모든 제자들을 위하여 마땅한 학처(學處)를 제정하느니, 마땅히 이와 같이 말하노라.
만약 다시 필추가 반월반월(半月半月)에 계경(戒經)을 설할 때에 ‘구수여, 저는 지금에야 비로소 이 법이 계경(戒經) 가운데에 설해져 있음을 알았습니다’라고 한다면, 모든 필추들은 이 필추가 만약 두 번이나 세 번을 함께 포살을 한 것을 아는데 하물며 그 이상으로 포살을 하였으므로 마땅히 그에게 말하되, ‘구수여, 몰랐다고 해서 그 죄를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당신이 죄를 범한 것을 마땅히 법답게 뉘우쳐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해주어라.
마땅히 권유하여 말하되, ‘구수여, 이 법은 드물고 기이해서 참으로 만나기 어려운 것인데, 당신은 계를 설할 때에 공경스럽게 하지 아니하고, 마음을 두지 아니하고, 은근하고 소중하게 하지 아니하고, 뜻을 모으지 아니하고, 생각을 한결같게 하지 아니하고,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생각을 다잡아서 법을 듣지 않는다면
바일저가(渡進底迦)입니다’라고 하여라.
‘만약 필추’란 육중필추를 이르는 말이다. 나머지의 뜻은 위에서와 같다. ‘계경(戒經)을 설할 때’란 사타승(四他勝)에서부터 나아가 칠멸쟁법(七滅諍法)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설하여 그 중요한 뜻을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지금에야 비로소 알았습니다’라는 등은 육중필추가 다른 필추들과 더불어 몇 번이나 계경을 들었는데도 그가 고의로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다른 필추들로 하여금 근심하게 하려고 하는 까닭이며 당시의 대중들을 걱정하게 만들려고 하는 까닭이다. 여러 필추들이 권유하는 말을 하는 것 등은 분명히 공경하지 않는 태도들에 잘못됨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죄를 범한 상태는 필추가 사타승(四他勝)을 설하는 것을 볼 때에 사타승 나아가 십삼승잔(十三僧殘)2)과 칠멸쟁법(七滅諍法)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이 말을 한다면 하나하나 설할 때마다 모두 바일저가죄를 얻는다.
만약 실제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면 모른다고 하더라고 범하는 것은 없다.
또 범함이 없는 것은 위에서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다.”

84) 작침통학처(作針筒學處)
부처님께서는 실라벌성의 서다림에 있는 급고독원에 계셨다.
물건을 만드는 장인이 한 사람 있었는데 이름을 달마(達摩)라 하였고 뼈를 잘 다루었다. 예전에는 옷을 입지 않는 외도에게 마음으로 공경하고 믿는 마음을 내었었는데, 절에 왔다가 걸식하는 필추에게 나아가 법요(法要)를 듣고는 마침내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는 마음을 깊이 일으켰다. 다시 그에게 복업(福業)을 짓는 일곱 가지 일을 자세히 설해주니, 그는 듣고 나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예전에 지혜롭지 못하여 맨몸을 드러낸 자에게 귀의하였다. 그는 머리카락을 뽑는 것으로 업을 삼고 육신을 괴롭히는 수행을 하면서 삿된 변견(邊見)에 처하여 중도(中道)를 통하지 못하였다. 나는 이제 그의 거짓된 가르침을 버리고 참된 가르침을 생각해서 금생(슥生)에 제도되기를 기대해야겠다. 그러나 나는 가업이 가난해서 복업(福業)을 닦기 어려우므로
응당 스스로 힘써 일을 하여 남에게 은혜를 베풀어야겠다.’
그리고는 자신의 재주를 가지고 필추들에게 말하였다.
“저는 뼈를 잘 다룹니다. 만약 바늘을 넣는 바늘통이 필요하시다면, 제가 마땅히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때 어떤 필추가 상아로 만든 바늘통을 만들게 하였는데 솜씨 있게 잘 만들어서 사랑할 만하였다. 다른 필추들이 그것을 보고 찬탄하고 새로운 것에 놀라워하면서 다시 만들게 하였다. 이와 같이 돌고 돌아서 만들어 달라고 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장인이 갖고 있던 상아가 이로 인해 동이 났다. 다시 뼈로 만들게 하니 뼈도 동이 나고, 뿔을 써서 만드니 뿔도 동이 났다. 장인은 이 일로 인해 빈곤해져서 몸을 가릴 옷도 없게 되었고 먹을 것도 없게 되었다.
그때 맨몸의 외도가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당신이 예전에 우리에게 귀의하였을 때는 집이 풍족하였는데, 지금은 머리 깎은 중들에게 의지하다가 마침내 곤궁하게 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누가 더 뛰어난 사람이겠는가?”
욕심이 적은 필추들이 이 말을 듣자 곧 함께 싫어하고 천하게 여겼다.
“어찌하여 필추가 다른 장인을 시키면서 적당한 정도를 헤아릴 줄을 모르고 그를 빈궁하게 만드는데다 나무람까지 받게 한단 말인가?”
이 일로 인하여 부처님께 아뢰니, 부처님께서는 여러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한 것은 위에서와 같다)… 나아가 마땅한 학처(學處)를 제정하노니, 마땅히 이와 같이 말하노라. 만약 다시 필추가 뼈와 어금니와 뿔을 써서 바늘통을 만들고 만들어진 것을 깨뜨리지 않는다면 바일저가이니라.
‘만약 다시 필추’란 이 법 가운데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뼈와 어금니와 뿔은 일 따위란 걸 알 수 있다. 두 가지 바늘통이 있으니, 하나는 통으로 된 것이고 하나는 뚜껑이 있는 작은 그릇으로 된 것이다. 만약 뼈와 어금니와 뿔을 가지고 만든다면 두 가지가 모두 허용되지 아니한다. 자기나 남이나 모두 만들지 말아야 하며, 만약 만들어진 것은 마땅히 깨뜨려 부수고 그 죄를 뉘우친다고 말해야 한다. 그와 마주한 사람은 마땅히 묻기를 “당신은 바늘통을 깨뜨렸습니까, 아직 깨뜨리지 아니하였습니까?”라고 물어야 하고, 만약 묻지 않는다면 악작죄(惡作罪)를 얻으므로 물어보아야만 뉘우치게 되는 것이다.
필추는 마땅히 대나무나 갈대로 바늘통을 만들거나 혹은 모직물 조각 같은 것으로
바늘을 안전하게 한 뒤에 때때로 자주 살펴보아서 때가 끼지 않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모두가 범하는 것이 없다.
또 범함이 없는 것은 앞에서 자세히 설한 것과 같다.”

85) 작과량상학처(作過量牀學處)
부처님께서 실라벌성에 있는 서다림에 계셨다.
그때 어떤 필추가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서다림의 문에 이르렀다. 해가 저물어 문이 닫혀있자 문 아래 있는 낮은 평상 위에 앉아서 발을 씻고는 몸을 추스려서 정(定)에 들었다.
이때 뱀이 서늘한 곳을 좋아해서 평상 앞에 있다가 필추가 머리를 드리운 것을 보고는 그 이마를 물었다. 필추는 죽어서 삼십삼천에 태어난 뒤에도 단정히 두 손을 마주 잡고 앉아 있었다. 이때 제석천(帝釋天)은 5백 명의 시녀를 보내어 시중을 들게 하였다. 천녀(天女)는 영락이 구르는 듯한 묘한 음성을 내어서 그 소리를 듣는 이로 하여금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내게 하였다. 그 천자(天子)는 비록 그 음성을 듣기는 하였으나 눈 여겨 보지도 아니한 채 손가락을 튕겨서 말하였다.
“자매여, 어찌하여 내 마음을 번거롭게 하는가?”
천녀는 그 모습을 보고서 기이함을 찬탄하였다. 드디어 그 일을 가지고 제석천에게 아뢰니, 제석천이 말했다.
“너희들은 큰 거울을 가지고 가서 그의 앞에 놓아 보아라.”
천녀들이 큰 거울을 갖다 놓자, 그 천인은 자신의 몸이 갖가지 영락으로 둘러싸여 장엄하게 꾸며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매우 싫어하여 여의고자 하는 마음을 내면서 가타로 말했다.

이 세간 일 가운데에서
사람의 몸을 받기가 가장 어렵지만,
여래의 가르침을 바르게 믿고
출가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네

이렇듯 만나기 어려운 일을
나는 이미 일찍 얻고도
어찌하여 법안(法眼)을 잃고
감옥에 떨어졌는가?

내가 정견(正見)을 얻어서
끝내 욕락(欲樂)을 떨쳐버리지 못한다면
이로 말미암아 해탈에 장애가 되어
마땅히 악취(惡趣)에 떨어지리라.

내가 천녀(天女)들 속에 산다는 것은
귀신에게 둘러싸인 것과 같으니
이러한 어리석음의 숲에 들어섰으니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는가?

모든 법이 그러하듯이, 천(天)들은 처음에 막 태어날 때 세 가지 마음을 얻는다. 즉 ‘나는
어느 곳에서 죽었으며, 이제 어느 곳에 태어났으며, 다시 어떤 업력(業力)으로 그렇게 된 것인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천인(天人)이 관찰을 하니, 사람으로 있다가 죽어서 삼십삼천에 태어났고 이는 청정하게 계율을 지키고 선업을 닦았기 때문임을 알았다.
이때 천녀들이 천자(天子)에게 말했다.
“대선(大仙)이여, 이제 제석천께 가서 예배를 드리고 우리들과 함께 즐겁게 지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천자가 대답했다.
“자매여, 천주(天主)인 제석천은 이미 능히 염(染)ㆍ진(瞋)ㆍ치(癡)를 멀리 여의었는가?”
“아직 여의지 못하였습니다.”
천자가 말했다.
“자매여, 나는 예전에 염ㆍ진ㆍ치를 여읜 큰 스승이신 세존께 귀의하여 예배 공경하였는데, 어찌하여 지금 삼독(三毒)을 갖춘 이에게 예배를 드리겠는가? 자매들은 능히 제석으로 하여금 나에게 예배 공경하게 할 수 있는 인연이 있는가?”
“아주 뛰어난 동산이 있는데 이름을 묘지(妙地)라 합니다. 그 가운데에 머물 곳이 있는데, 이는 천선(天仙)이 머무는 곳입니다. 만약 그 가운데에 있으면서 출가를 하면 제석이 스스로 와서 예배하고 공경할 것입니다.”
이때 천자(天子)는 시녀인 천녀들을 귀신이라 생각해서 그녀들을 버리고 묘지 가운데 있는 천선(天仙)의 거주처로 갔다. 그리고 그들 무리 안에서 출가하였는데, 제석은 그 일을 듣자 동산 가운데로 나아가 몸소 예배 공경하고 훌륭함을 칭송한 후에 물러갔다.
천자는 스스로 생각하였다.
‘내가 만약 세존께 가서 예배하지 아니하고 천상의 즐거움을 받아들인다면, 이것은 마땅한 일이 아니다. 이제 나는 먼저 세존의 발에 예배드려야겠다.’
이때 천자는 하늘의 네 가지 꽃을 옷자락 안에 넣고 갖가지 묘한 영락으로 몸을 장엄하게 꾸민 후에 마치 힘센 장사가 팔을 움츠렸다 펴는 짧은 순간에 천궁(天宮)에서 자취를 감추어 서다림에 나타났다. 그의 천광(天光)의 위신력으로 말미암아 광명이 환하게 빛나면서 서다림의 온 숲을 두루 비추었다. 그는 세존이 계신 곳으로 나아가 두 발에 정례(頂禮)하였다. 그리고는 하늘 꽃을 부처님 앞에 두루 펼쳐 놓고 경건하게 지성껏 공양을 한 뒤에
부처님 주위를 세 번 돌고 한 쪽에 앉아서 묘한 게송으로 세존께 청하였다.

저는 천녀(天女)들 속에 있는 것이
마치 귀신에게 둘러싸인 듯했나이다.
어리석음과 우매함의 우거진 숲에 들어갔사오니
어떻게 벗어나기를 닦으오리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아주 뛰어나게 평등하고 바른 도리는
물러나거나 처하거나 두려움이 없고
바른 이치를 큰 소[牛]로 삼으면
수레를 끌어도 어지러운 소리가 없네.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책상과 이부자리에 가득 찼으니
일념(一念)을 시종으로 삼아라.
지혜로써 수레와 사람을 몰고
바른 견해로 앞을 인도하여라.

만약 선남선녀가 있으면
이 편안한 수레에 싣고
한 마음으로 다른 반연을 두지 않으면
가장 훌륭한 곳에 도달할 수 있으리.

그때 세존께서는 천자의 생각과 근성(根性)을 살펴서 근기에 맞게 법을 설하여 그를 개오(開悟)케 하시니, 그는 바로 앉은 자리에서 금강저(金剛杵)로 스무 가지 살가야견(薩迦耶見)의 산을 무너뜨리고 예류과(預流果)를 얻었다.
이미 진리를 보고 나자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갖가지 고난 가운데에서 해탈을 얻게 하셨으니, 이는 부모ㆍ고조(高祖)ㆍ인왕(人王)과 여러 천중(天衆)ㆍ사문ㆍ바라문ㆍ친구ㆍ권속들이 능히 할 수 있는 바가 아니옵니다. 제가 세존 대선지식을 만나 뵌 까닭에 지옥ㆍ축생ㆍ아귀의 삼악도에서 벗어나 인천(人天)의 수승하고 묘한 곳에 안치되었으며, 나고 죽는 고통을 다 없애고 열반도(涅槃道)를 얻었으며, 혈해(血海)를 마르게 하고 골산(骨山)을 뛰어 넘었으며, 무시(無始)이래로 쌓여온 신견(身見)3)을 지혜의 방망이로 깨뜨리고 초과(初果)를 얻었사오니, 저는 이제 불ㆍ법ㆍ승보(佛法僧寶)에 귀의하옵고 오늘부터 목숨이 남아있는 날까지 오계(五戒)를 받아서 살생하지 아니하며 나아가 술을 마시지 않겠나이다.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제가 우바새(優婆塞)임을 증명하여 주소서.”

그리고는 부처님 앞에서 스스로 경사스러워하는 송(頌)으로 말씀드렸다.

저는 부처님의 힘을 말미암아
영원히 삼악도를 벗어났나이다.
하늘의 묘한 문을 열었사오며
길이 열반의 길에 올랐나이다.

저는 세존께 의지한 까닭에
청정한 지혜의 눈을 얻었으며
참된 성도(聖道)를 깨달아서
유해(有海)4)의 언덕을 뛰어넘었나이다.

부처님은 인천(人天)을 초월하시어
나고 늙고 죽는 허물을 여의셨나니
유해(有海) 가운데에서는 만나 뵙기 어려운데
제가 만나 뵙고 이제 과(果)를 얻었나이다.

저는 몸을 장엄하게 꾸미고
기쁜 마음으로 부처님 발에 예배드리나이다.
제원자(除怨者)5)를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이제 천궁(天宮)으로 가나이다.

그때 그 천(天)은 생사(生死) 속에서 얻지 못하였던 것을 얻고 부처님의 발에 예배드린 뒤에 천화(天花)로써 지성껏 공양을 하고는 천궁으로 돌아가서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서다림의 수사필추(授事苾蒭)는 새벽이 되어 절 문을 열었다가 그 필추가 작은 평상 위에서 단정히 앉은 채 죽어있는 것을 보았다. 다시 독사가 그 평상 아래에 있는 것을 보고서 이 일을 세존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화장을 하도록 하여라.”
다시 여러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작은 평상 위에서 누워 자지 말도록 할 것이며, 또한 마땅히 평상 앞에서 발을 씻지 않도록 하여라. 이것을 어기는 경우에는 월법죄(越法罪)를 얻느니라.”
육중필추는 이 금하는 가르침을 듣자 드디어 높은 평상을 만들어서 다리의 길이를 칠주(七肘)가 되게 하고는 사다리를 놓고 오르내렸다. 바라문ㆍ거사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싫어하고 천하게 여기자, 여러 필추들이 이를 인연하여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이것으로 인하여 모든 필추들에게…(생략)… 나아가 적절한 학처를 제정하노니, 마땅히 이와 같이 말하노라. 만약 다시 필추가 크고 작은 평상을 만들 때 그 다리의 길이를 마땅히 부처님의 팔지(八指)가 되게 할 것이니, 만약 이것보다 벗어나게 만들면 바일저가이니라.”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모든 필추들에게 계율을 제정하셨는데,
구수 오타이는 체구가 커서 평상에 앉게 되면 평상의 아래턱에 무릎이 닿았다. 필추들이 부처님께 아뢰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앞의 것은 처음으로 제정한 것이고, 지금의 것은 인연에 따라 여는 것이니, 마땅히 이와 같이 말하노라. 만약 다시 필추가 크고 작은 평상을 만들게 되면 다리의 높이는 마땅히 부처님의 팔지(八指)가 되도록 하되 울짱목[○木]에 들어가는 것은 제외하느니라. 만약 이것을 넘어서는 경우에는 마땅히 잘라내야 하며 바일저가이니라.
‘만약 다시 필추’란 여섯 필추를 이르는 말이다. ‘크고 작은 평상을 만든다’는 스스로 만들거나 남을 시켜서 큰 평상과 작은 평상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마땅히 높이는 부처님의 팔지(八指)로 해야 한다’는 부처님은 대사(大師)를 이르는 것이므로 부처님 팔지(八指)의 길이는 보통 사람의 일주(一肘)이다. ‘울짱목에 들어가는 것을 제외한다’는 상다리가 들어가는 울짱목을 제외하는 것을 말하니, 이것은 헤아리지 않는다. ‘만약 넘어서서 만든다면’이란 헤아려 보아서 만약 길이가 길면 마땅히 잘라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죄에 따라 뉘우친다고 말해야 하는 것은 앞에서처럼 해야 한다. 이 가운데 죄를 범한 모양은 그 일이 어떠한가? 만약 필추가 승가를 위하여 만들든 스스로를 위하여 만들든 팔지(八指)를 넘어서게 되면 마땅히 잘라내야 하며, 설죄(說罪)6)한 것은 제외한다.
다른 필추에게 설죄할 경우 앞에 있는 자는 마땅히 ‘상의 다리를 잘랐습니까, 자르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어야 한다. 만약 묻지 않는다면 악작죄(惡作罪)를 얻고 그 죄를 마땅히 뉘우친다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 만약 헤아려서 만든 경우라면 범하는 것이 없다. 또 범함이 없는 것은 위에서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다.”

86) 용초목면저상학처((用草木綿貯牀學處)
부처님께서는 실라벌성의 급고독원에 계셨다.
오파난타는 큰 평상을 나누어 받았는데 목면(木綿)으로 속을 대어서 누웠다. 나이 많은 필추가 다른 곳에서 왔으므로 이부자리를 합해 그에게 주기로 했다. 나누어 주기로 한 사람이 차례로 조금씩 거두어서 오파난타의 방에 이르자 그 연로한 필추를 위하여 평상을 얻었다. 오파난타는 곧 속을 떼어내고 목면을 분산시켜서 그 필추에게 잠을 자게 해주었다. 필추가 그곳에 누웠다가 새벽이 되어 방에서 나오니
입은 옷이 모두 하얗게 되었다.
여러 필추들이 그것을 보고 말하였다.
“상좌께서는 어찌하여 갈대 이삭이 쌓여있는 곳에서 누워계셨습니까?”
위의 사연을 갖추어서 필추들에게 알리니, 여러 필추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모든 필추를 위하여 마땅한 학처를 제정하노니, 마땅히 이와 같이 말하노라. 만약 다시 필추가 목면 따위로 승가의 평상이나 앉을 것에 속을 대었다면 마땅히 덜어낼 것이니 바일저가이니라.
‘만약 다시 필추’란 오파난타를 이르는 말이다. 나머지의 뜻은 위에서와 같다. 속을 대는 물건으로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목면(木綿)이고, 둘째는 초면(草綿)이며, 셋째는 포대(浦臺)이며, 넷째는 겁패(劫貝)7)이며, 다섯째는 양모(羊毛)이다.
만약 다시 필추가 다섯 가지 물건으로 스스로 속을 대거나 남을 시켜서 속을 대면 모두가 타죄(墮罪)를 얻으니, 이 죄는 마땅히 뉘우친다고 말해야 한다.
여기에서 죄를 범한 모양은 그 일이 어떠한가? 필추가 만약 승가 또는 사사로운 개인의 평상이나 좌구에 목면 같은 것으로 속을 댄다면 모두가 타죄(墮罪)를 얻으니, 솜은 마땅히 떼어내야 하곤 죄는 마땅히 뉘우친다고 말해야 한다. 설죄(說罪)할 경우 앞에 있는 자는 마땅히 ‘솜을 떼어냈습니까, 아직 떼어내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어야 하나니, 만약에 묻지 않는다면 악작죄(惡作罪)를 얻고 그 죄는 뉘우침을 말하지 않아야 한다.
자세히 설한 것은 위에서와 같다.”

87) 과량작니사단나학처(過量作尼師但那學處)
부처님께서는 실라벌성의 급고독원에 계셨다.
세존께서 ‘너희 모든 필추들이 만약 승가의 와구(臥具)와 다른 사람의 물건과 나아가 사사로운 물건을 수용할 경우에는 마땅히 덧씌운 홑이불을 써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해야 하는데, 필추들이 그 크기를 알지 못하여 크게 만들 뿐 작은 것은 버리거나 혹은 길고 짧은 것을 싫어하여서 항상 번다한 일을 하느라고 선품(善品)을 닦는데 방해가 되었다.
…(생략)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아가 모든 필추들을 위하여 마땅한 학처를 제정하노니, 마땅히 이와 같이 말하노라. 만약 다시 필추가 니사단나(尼師但那)8)를 만드는 경우에는 마땅히 크기를 헤아려서 만들어야 한다. 알맞은 크기로는 길이는 부처님의 두 손을 벌린 만큼으로 하고, 폭은 한 손을 펼친 것에 그 반을 더한 만큼으로 하여라. 만약 그보다 크게 만들어진 경우에는 잘라내야 하니 바일저가이니라.”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모든 필추에게 계율을 제정하였는데, 구수 오타이의 몸이 장대하여 매번 드러누울 때가 되면 와구(臥具)를 보호하려고 그의 발 주변에 나뭇잎들을 덮고 누웠다. 세존께서 방사를 살피다가 나뭇잎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시고 물었다. 그 사정을 아시고 나서 여러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지난 번 것은 최초로 제정한 것이고, 이번 것은 거듭해서 여는 것이니…(생략)… 또한 마땅히 이와 같이 말하노라. 만약에 다시 필추가 니사단나를 만드는 경우에는 마땅히 크기를 헤아려서 만들어야 한다.
알맞은 크기로는 길이는 부처님의 두 손을 벌린 만큼으로 하고, 폭은 한 손을 펼친 것에 그 반을 더한 만큼으로 하며, 길이는 다시 한 손 반을 더한다. 만약 이것을 넘어서서 만든 경우에는 마땅히 잘라내야 하니 바일저가이니라.
‘만약 다시 필추’란 이 법 가운데의 사람을 말한다. ‘니사단나(尼師但那)’란 부구(敷具)를 말한다. 스스로 만들거나 남을 시켜 만들게 하면 모두 범하는 것은 같다. ‘마땅하게 크기를 헤아린다’는 것은 글자의 뜻처럼 알 수 있다. 부처님의 한 손을 펼친 것은 일반 사람의 세 손을 펼친 것과 같으니 총 길이는 아홉 손을 펼친 것으로 네 팔꿈치 반이다. ‘폭은 한 손 반을 펼친 만큼으로 한다’는 일반 사람의 네 손을 펼친 데다가 다시 여섯 손가락 마디가 더 있는 것과 같다.
[여기에서 제정한 뜻은 니사단나가 본래 홑이불로 만들어진 와구(臥具)인데도 본래의 뜻을 상실하고 다른 용도로 쓰일까 걱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개의 크기는 자신의 몸과 같게 하고 머리 위에서 한 손바닥 정도를 남기는 것이니, 이는 바로 와구(臥具)와 같은 것이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 비해 몸이 세 배이신데 두 배라고 말한 것은 대개 부위(部位)에 따라 다른 것이다. 만약 두 배라는 설에 따른다면, 니사단나는 그 크기가 모두 작아서 이부자리로 감당할 수가 없다. 땅에다 니사단나를 깔고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경문에 보이지 아니하므로 성인의 말씀에 위배된 것이니, 누가 마땅히 죄를 대신하겠는가? 그 옳고 그름을 자세히 논하는 것은 다른 곳에서와 같다.]
만약 필추가 이 크기를 넘어서서 만든다면 마땅히 잘라내야 하고, 죄는 마땅히 뉘우친다고 말해야 한다. 나머지 문답 따위는 모두가 위에서 자세히 설한 것과 같다.”

88) 작부창의학처(作覆療衣學處)

부처님께서는 급고독원에 계셨다.
세존께서 설하신 바와 같이 몸의 부스럼을 덮어 가리는 옷을 만드는데, 필추들이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몰라서 그 크기가 너무 크거나 혹은 너무 작았다.
여러 필추들이 부처님께 아뢰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아가 마땅히 이와 같이 말하노라. 만약 다시 필추가 부창의(覆瘡衣)를 만드는 경우에는 마땅히 크기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 그 알맞은 크기의 길이는 부처님의 네 손을 펼친 것과 같이 하고, 폭은 두 손바닥을 펼친 것만큼 하라. 만약 이보다 크게 만들었다면 잘라낼 것이니 바일저가(波逸底迦)이니라.
‘만약 다시 필추’ 등의 뜻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창(覆瘡)이란 몸의 부스럼을 덮는 것이다.
부처님의 손바닥을 펴신 길이와 그보다 큰 것을 잘라내는 것과 죄를 설하는 것 둥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89) 작우욕의학처(作雨浴衣學處)
부처님께서는 실라벌성의 급고독원에 계셨다.
석 달의 여름 안거(安居)를 할 때에 비사거녹자모(毘舍佉鹿子母)는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가서 두 발에 예배드리고 한 쪽에 앉았다. 부처님께서는 그녀를 위하여 설법을 하셔서 이롭고 기쁜 가르침을 보이시고는 잠자코 계셨다.
그때 비사거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을 하고는 공경스럽게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하옵건대 부처님과 스님들께서는 내일 저의 집에 오시어 저의 보잘 것 없는 공양을 받으소서.”
그때 세존께서는 잠자코 그 청을 받아들이셨다. 비사거는 부처님께서 받아들이신 것을 알자 부처님 발에 정례(頂禮)하고 하직하여 물러났다. 집에 도착하자 그날 밤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날 밤 새벽 무렵에 동쪽에서 많은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셨는데, 그 구름의 모양이 마치 둥근 발우 따위가 허공에 가득 찬 것과 같았다. 이와 같은 구름은 능히 큰 비를 내려서 도랑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이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아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가서 여러 필추들에게 이렇게 알리도록 하여라.
‘지금 이런 구름이 일어나니 반드시 큰 비가 내릴 것이다. 이 비가 적시는 것은 큰 위력이 있으니, 이 비에 목욕을 하게 되면 능히 갖가지 병을 없앨 수 있다. 만약 여러 필추들이 즐거이
목욕을 하고자 한다면 빈 터에 가서 마음대로 목욕을 하도록 하여라.’”
아난타는 명을 받고 나서 부처님의 말씀을 여러 필추들에게 알렸다. 필추들은 모두 빈 터에 가서 비오는 가운데 서서 목욕을 하였다.
이때 비사거모는 음식 준비를 끝낸 뒤 앉을 것을 설치하고 깨끗한 물을 갖다 놓고는 하인에게 서다림으로 가서 부처님과 스님들께 ‘시간이 되었습니다’라고 아뢰도록 시켰다. 하인은 문이 있는 곳에 이르러서 필추들을 찾았는데, 모든 필추들은 문을 닫고 목욕을 하고 있었다. 하인은 문틈으로 필추들이 모두 알몸으로 절 안에서 목욕하는 것을 멀리서 보고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안에는 필추는 보이지 않고 모두 알몸을 드러낸 외도들만 있구나.’
그리하여 집으로 돌아와서 비사거모에게 아뢰었다.
“저는 절 안에서 필추는 한 사람도 보지 못하고 알몸을 드러낸 외도들만이 비오는 가운데 서서 목욕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비사거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오늘 비가 내리니 성중(聖衆)들께서 비오는 가운데에 서서 알몸으로 목욕을 하시는구나. 외도들이 아니다.’
즉시 다른 사람을 보내어 문을 두드리면서 “성자여, 비사거모께서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게 하였습니다”라고 말하게 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대중들과 함께 옷을 입으시고 발우를 챙겨서 비사거의 처소로 가셨다. 자리를 정하고 나자 먼저 깨끗한 물을 차례로 돌리고 다음으로 맛있는 음식을 드셨는데, 갖가지 맛있는 음식이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었다. 대중들이 식사를 마치자 물과 양치하는 나무를 받아서 양치하기를 마치고 나서 모두 발우와 그릇을 거두었다.
그때 비사거는 부처님 앞에서 병으로 물을 쏟음으로써 발원을 들어달라고 한 뒤 부처님 발에 예배드리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하옵건대 자비를 베푸셔서 저에게 보잘 것 없는 원이나마 허락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지니, 무슨 원을 세우고자 하는가?”
비사거가 말씀드렸다.
“저에게 여덟 가지 원이 있나이다. 하나는 필추들께 비로 목욕을 하실 때 입는 옷을 드리고자 함이고, 둘째는 필추니들께 비로 목욕을 하실 때 입는 옷을 드리고자 함이고, 셋째는 객으로 오신 필추들께
먼저 저의 집에 오시어 공양을 하시게 함이고, 넷째는 장차 길을 떠나시려고 하는 필추들께서는 먼저 저의 집에서 공양을 드시고 나서 떠나시도록 하고자 함이고, 다섯째는 병환이 있으신 필추들께는 제가 음식을 베풀어 드리고자 함이고, 여섯째는 병을 간호하시는 필추께도 제가 또한 음식을 베풀어 드리고자 함이고, 일곱째는 병환이 있으신 필추들께 의사나 약이 필요하시다면 제가 마땅히 공급해 드리고자 함이고, 여덟째는 항상 승가에 죽을 베풀어 드리고자 함입니다.”부처님께서 비사거에게 말씀하셨다.
“당신은 무슨 인연으로 비로 목욕을 할 때에 입는 옷을 보시하려 하는가?”
“대덕이시여, 오늘 공양 드실 때가 되어서 하인을 시켜 문으로 가게 하였더니, 여러 필추들께서 알몸을 드러내고 비에 목욕하시는 것을 하인이 보고는 외도라고 말을 하였나이다. 대덕이시여, 저는 이로 인하여 비에 목욕을 할 때 입는 옷을 보시하여 모든 성중들께서 몸을 가리고서 목욕을 하시게 하려는 것이옵니다.”
“또 비사거여, 당신은 무슨 인연으로 필추니들에게 비에 목욕할 때 입는 옷을 보시하려 하는가?”
“대덕이시여, 제가 생각해보니 일찍이 여러 필추니들께서 강물 가운데에서 몸을 드러내고 목욕하는 것을 보았는데, 속인들이 나무라고 부끄럽게 여기면서 미워하는 말을 하였나이다. 이 때문에 옷을 보시하여 몸의 추한 모습을 가리고서 어디서나 목욕을 하도록 하고 싶습니다.”
“또 비사거여, 당신은 무슨 인연으로 객으로 이제 막 온 필추들에게 음식을 보시하려 하는가?”
“대덕이시여, 이제 막 오신 분들께서는 걸식하는 차례를 아직 잘 알지 못하옵고 또한 피곤하신 탓에 맛있는 음식을 드셔야 합니다. 이 때문에 제가 보시를 하고자 하나이다.”
“또 비사거여, 당신은 무슨 인연으로 장차 먼 길을 떠나려는 필추에게 음식을 보시하려 하는가?”
“대덕이시여, 무리를 지어 길을 떠나는 필추들께서 걸식을 하시다가 도반들을 놓칠까 걱정스러운 까닭에 제가 음식을 보시하고자 하나이다.”
“또 비사거여, 당신은 무슨 인연으로 병이 난 필추에게 음식을 보시하려 하는가?”
“대덕이시여, 병환이 있으신 필추들께서 음식을 얻지 못하신다면 병이 더욱 치성해질 것이오니, 이러한 까닭에 제가 보시를 하고자 하나이다.”
“또 비사거여, 당신은 무슨 인연으로 병을 간호하는 필추에게 음식을 보시하려하는가?”
“대덕이시여, 만약 병을 간호하는 사람이 걸식을 하러 간다면 시중드는 것을 빠뜨리게 되어서 탕약이나 필요한 것을 제때에 드릴 수 없으니, 이러한 까닭에
제가 보시를 하고자 하나이다.”
“또 비사거여, 당신은 무슨 인연으로 병이 난 필추에게 필요한 의사와 약을 보시하려 하는가?”
“대덕이시여, 만약 의사와 약이 없다면 병에 차도가 있기 어려워서 오랜 시간 병을 앓느라 선품(善品) 닦기를 중지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제가 보시하고자 하나이다.”
“또 비사거여, 당신은 무슨 인연으로 필추들에게 죽을 보시하려 하는가?”
“대덕이시여, 만약 여러 필추들께서 죽을 드시지 않는다면 배고픔과 목마름을 이기지 못할 것이오니, 이러한 까닭에 제가 보시하고자 하나이다.”
그때 비사거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듣자오니 아무 곳의 필추가 임종하게 되면, 부처님께서는 그 사람이 예류과(預流果)를 얻었는지를, 또 일래(一來)ㆍ불환(不還)ㆍ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는지를 기억하신다 하였나이다. 대덕이시여, 저 여러 성인들은 일찍이 실라벌성에 와서 제가 드리는 공양을 받았나이까, 받지 않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받은 일이 있느니라.”
비사거가 말씀드렸다.
“만약 받은 일이 있으시면 제가 베푸는 바의 복은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복과 지혜가 원만함을 얻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비사거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당신이 베푸는 바의 복은 공덕이 원만하리라.”
이때 비사거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물러났다.
부처님께서는 이 인연으로 여러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필추들이 비가 올 때 목욕하면서 입는 옷을 갖고 있다가 각자가 있는 곳에서 목욕할 것을 허락하노라.”
그때 여러 필추들은 알맞은 크기를 몰랐기 때문에 너무 길거나 너무 짧거나 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와 같이 해서는 안 되느니라. 마땅히 크기를 헤아려서 만들어야 한다. …(생략)…, 나아가 마땅히 이와 같이 말하노라. 만약 다시 필추가 비가 올 때 목욕하면서 입는 옷을 만들 때에는 마땅히 그 크기를 헤아려서 만들어야 한다. 적당한 크기는 길이가 부처님 손바닥을 여섯 번 펼친 만큼으로 하고, 폭은 부처님 손바닥을 두 번 반을 펼친 만큼으로 하여라. 만약 이보다 크다면 마땅히 잘라낼지니 바일저가이니라.
‘만약 다시 필추’ 등의 뜻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비가 올 때에 목욕을 하면서 입는 옷[雨浴衣]’은 비가 내릴 때에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스스로 만들거나 남을 시켜서 만들거나 마땅히 크기를 헤아려서 만들어야 한다. 길이와 폭은 위의 글에서와 같다. 만약 지나치게 크게 만든다면 얻는 죄는 앞에서와 같고, 뉘우친다고 말해야 하는 것과 문답해야 하는 것 등
앞에서 자세히 말한 것과 같다.

90) 동볼의량작의학처(同佛衣量作衣學處)
부처님 인연의 처소는 앞에서와 같다.
그때 오파난타가 부처님과 같은 크기로 옷을 만들었는데, 다만 한 쪽 끝만을 걸치고 나머지는 어깨 위로 몰리게 하였다. 여러 필추들이 보고서 말했다.
“이 새로 객으로 온 필추가 피로를 풀려고 하는가 보다.”
오파난타는 그들에게 말했다.
“나는 새로운 필추가 아니라, 부처님의 옷과 같은 크기로 지벌라(支伐羅)9)를 만든 것이오.”
필추들은 그를 나무라고 싫어하며 말했다.
“어찌하여 필추가 이렇게 맞지 않는 옷을 만든단 말인가?”
이 인연을 부처님께 아뢰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이 일로 인하여 모든 필추에게 마땅한 학처를 제정하노니, 마땅히 이와 같이 말하노라. 만약 다시 필추가 불의(佛衣)와 같은 크기로 옷을 만들거나 혹은 그보다 더 크게 만든다면 바일저가이니라. 부처님의 옷과 같은 크기란, 길이는 부처님의 손바닥을 열 번 편 것과 같고, 폭은 부처님의 손바닥을 여섯 번 편 만큼이니, 이것이 부처님의 옷과 같은 크기이니라.
‘만약 다시 필추’란 오파난타를 이르는 말이다. ‘불의(佛衣)’란 부처님의 옷을 말한다. ‘길이가 부처님의 손바닥을 열 번 편 만큼’이란 일반 사람의 손바닥을 서른 번 편 만큼이니 열다섯 팔꿈치에 해당된다. ‘폭이 부처님의 손바닥을 여섯 번 편 만큼’이란 일반인의 손바닥을 열여덟 번 편 만큼이니 아홉 팔꿈치에 해당된다. 혹은 이보다 지나친다면 모두가 타죄(墮罪)를 범한다. 나머지 자세한 것은 위에서 설한 것과 같다.


6. 사바라저제사니법(四波羅底提舍尼法)10)

총체적인 게송으로 말한다.

친속이 아닌 필추니에게서 음식을 받아먹는 것과
제가인(在家人)의 집에서 음식을 나누는 것과
청을 받지 않고서 신심이 돈독한 이의 집에 가서 음식을 받는 것과
절 밖에서 음식을 받는 것이다.

1) 종비친니수식학처(從非親尼受食學處)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죽림원 안에 계셨다. 그때 득차시라성(得叉尸羅城)에 한 장자가 있었다. 아내를 얻은 지 오래 되지 아니하여 딸을 낳았는데, 몸에 세 가지 덕이 있는 것이 마치 청올발라화(靑嗢鉢羅花)와 같았다. 첫째는 몸이
황금색으로서 마치 꽃수술과 같았으며, 둘째는 눈이 감청색(紺靑色)으로 마치 꽃잎 같았으며, 셋째는 향내가 나는 것이 마치 꽃의 향기와 같았다. 태어난 지 21일이 되자 여러 친족들이 모여서 이름을 지어주고자 하였다.
“이 아기는 몸이 마치 청련화(靑連花)와도 같으니, 마땅히 이름을 청련화라고 지어주어야겠다.”
세월이 흘러 장성해지자 같은 성에 있는 장자의 아들에게 시집을 보내고는 집에 들어와 살게 하였다. 그리고 오래지 아니하여 청련화의 아버지가 병으로 죽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정절을 지키지 못하고 드디어 딸의 남편과 몰래 정을 통하게 되었다. 청련화는 먼저 딸을 낳아서아기가 아직 어렸을 때였는데, 그녀는 은밀한 곳에서 자신의 어머니와 남편이 함께 법답지 못한 짓을 저지르는 것을 보았다. 청련화는 화가 치밀어 즉시 어린 딸을 데리고 가서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은 믿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 어린 딸과도 법답지 못한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어찌 믿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나무 위에 내던지니 딸의 머리가 찢어져 피가 흘러내렸다. 청련화는 화가 나서 돌아보지도 아니하고 수건으로 머리를 덮어쓴 채 밖으로 나가 길 가는 무리들을 찾았다. 상인의 무리가 미도성(未度城)으로 가는 것을 보자 이내 무리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따라 떠나갔다.
그때 상주(商主)가 청련화의 위의와 용모가 단정한 것을 보고 물었다.
“당신은 누구에게 속해 있소?”
“만약 능히 입을 것과 먹을 것을 제공하여 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마땅히 그에게 몸을 맡기겠습니다.”
상주는 곧 옷과 먹을 것을 공급해 주고 아내로 맞은 뒤에 본가로 데리고 가서 함께 산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상주는 재화를 가지고 득차시라성으로 갔는데 함께 갔던 친구가 상주에게 말했다.
“돈은 많지만 즐겁지 아니하니, 어느 때를 기다려 예쁜 여자를 구해서 아내로 삼겠는가?”
상주가 대답했다.
“만약 청련화만큼 위의와 용모가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결혼을 하겠다.”
그 친구가 말했다.
“아무개의 집에 딸이 있는데 청련화보다 두 배는 더 아름답다네.”
그래서 함께 그 집에 가서 보니 마음에 들었다. 즉시 혼례를 준비하고
맞아들여 아내로 삼은 뒤 함께 미도성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나이 어린 아내를 머물게 하고는 재화의 반을 주었다.
집에 돌아오자 아내가 말했다.
“재화가 어째서 적은가요?”
“도적을 만나서 빼앗겼소.”
“어찌하여 빨리 찾아보지 않았죠?”
“내가 지금 그것 때문에 가서 찾아보려고 하오.”
상주가 집을 나간 후에 친구가 와서 물었다.
“상주는 어디에 갔나요?”
그에게 말했다.
“도적을 찾으러 간다고 하더군요.”
친구가 말했다.
“도적을 찾으러 간 것이 아니라 아내를 보러 갔을 겁니다.”
그 일을 갖추어 청련화에게 말해 주었다. 오래지 않아서 상주가 집에 돌아오자 청련화가 말했다.
“당신은 도적을 만난 것이 아니라 일부러 나를 속였군요. 이미 또 다른 아내를 두었다면 어찌하여 데리고 오지 않는 것인가요?”
“한 집안에 아내가 둘이 있으면 물을 마실 겨를도 없이 다투는 일이 있을까 걱정이 되어서 데리고 오지 않은 것이오.”
“내가 능히 용납해줄 수 있으니 성내고 다투는 일은 없을 거예요. 만약 나이가 나와 비슷하다면 자매와 같이 볼 것이고, 나이가 나보다 워낙 어리다면 딸과 같이 생각할 테니까요.”
남편은 아내의 말을 받아들여서 드디어 나이 어린 아내를 맞아들여 집으로 돌아왔다. 청련화는 그녀와 자신이 고향이 같다는 말을 듣자 더욱 자애롭게 생각을 하였다. 한 번은 한가한 날에 나이 어린 아내와 함께 머리를 빗다가 그녀의 머리에 흉터가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너의 이 흉터는 어떻게 하여 생긴 것이냐?”
나이 어린 아내가 말했다.
“저는 거의 기억할 수가 없지만 집안사람들에게 들으니, 제가 어린 아기일 적에 어머니께서 어떤 일로 아버지에게 성을 내면서 저를 나무 위에 내던졌다고 합니다. 그때 상처를 입은 까닭에 이 흉터가 생긴 것입니다.”
다시 거듭해서 물었다.
“어느 동네에서 살았으며 대문은 어느 쪽으로 나 있었던가?”
여인은 갖추어 대답했다.
청련화는 이 여인이 바로 자신의 딸인 것을 알자 가슴 깊이 아파하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이 바로 나의 딸이니 어찌할 것인가. 옛날에는 어머니와 더불어 남편을 함께 하였더니, 이제는 다시 딸과 더불어 남편을 함께 하다니! 아아! 슬프구나. 어찌 이다지도 심한가.’
그리고는 다시 수건으로 머리를 덮어쓰고 집을 떠나
다시 동행할 무리들을 찾아서 광엄성(廣嚴城)으로 갔다. 그곳에 도착한 뒤 창녀가 되지는 않았으나 다른 사람과 몰래 정을 통했는데, 오래지 아니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미모를 공유하였다.
여러 창녀들이 함께 그녀의 집에 와서 말했다.
“당신은 우리의 법을 훔쳐 생계를 꾸려나가면서도 우리와 함께 서로 의사를 나누지 않았다.”
그리고 치마를 당겨서 억지로 끌어낸 뒤 모두 와서 물었다.
“당신은 무슨 기술이 있기에 많은 사람들을 유혹할 수 있었는가?”
“참으로 별다른 기술은 없습니다. 젊은 사람치고 나를 보기만 하면 따르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창녀들이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 이 성 안에는 향을 파는 남자가 하나 있는데 부정관(不淨觀)을 이루어서 모든 여인들에게 오래 전부터 싫어하는 마음을 내고 있다. 그의 행실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우리는 당신을 창녀의 우두머리로 삼을 것이지만, 만약 깨뜨리지 못한다면 마땅히 벌금으로 60금전을 내야 한다.”
창녀들에게 물었다.
“그는 장부인가요, 아닌가요?”
“장부이다.”
“만약 그러하다면 그 사람인들 어찌 장애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그 남자 가까이에 머물렀다. 그리고 거짓 방편으로 사랑하는 남편을 돌보는 척하며 심부름하는 여인을 시켜서 몸에 바르는 향을 사고 다시 갖가지 약을 사면서 ‘남편의 몸에 병이 나서 필요한 것’이라고 말을 하게 하였다. 향을 파는 남자는 이 일을 듣고 나서 ‘이 여인은 필시 정숙한 부인이라서 남편에게 마음을 다 쏟는구나’ 생각하고는 드디어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내었다.
청련화는 마침내 거짓으로 남편이 죽었다고 말을 하고는 슬프게 소리 내어 통곡하면서 향을 파는 남자의 문 앞으로 지나갔다. 남자는 그 모습을 보자 더욱 애착하는 마음이 생겨서…(생략)… 끝내 그 여인에 의해 관행(觀行)을 무너뜨리게 되었다.
여러 창녀들은 이 일을 보고 찬탄하면서 드디어 그녀를 창녀의 우두머리로 삼았다. 청련화는 이미 향을 파는 남자와 오랫동안 정을 통하고 돌아갔는데, 그 뒤 곧 임신을 하였다. 이때 광엄성의 동쪽과 서쪽의 두 성문에는 각각 문을 지키는 남자가 있었는데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 함께 이렇게 의논했다.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즐겁게 지낸 지가 오래되었으니, 만약 아들ㆍ딸을 낳게 되면 반드시 혼인을 시키도록 하세.”
청련화는 오래지 아니하여 아들을 낳자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아이를 기르느라 몸이 깨끗하지 않으면 남자들이 싫어하여 오지 않을까 걱정이니, 나는 이제 이 아이를 버리는 것이 좋겠다.’
그녀는 심부름하는 여자에게 아기와 함께 등불을 주면서 말했다.
“네가 이 아기를 가지고 가서 길 가운데에 놓아두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가 이 아이를 데려가는지 엿보아라.”
심부름하는 여인은 아기를 동쪽 성문 가까이에 버리고 아울러 등불을 놓아두었다. 그때 문을 지키는 자가 멀리서 이 등불을 보았다. 가까이 다가와서 살펴보다가 아기를 보고는 집으로 데리고 가서 아내에게 주며 말하였다.
“마땅히 은혜롭게 잘 길러서 당신의 아들로 삼도록 하시오.”
그때 문을 지키는 자는 큰 모임을 열어서 종친들에게 알렸다.
“저의 아내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서쪽 성문을 지키는 자는 동쪽 문을 지키는 자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자 곧 예물을 가지고 그에게 가서 축하해 주었다. 청련화는 뒤에 또 딸을 낳았는데, 예전처럼 생각해서 스스로 기르지 아니하고 심부름하는 여인을 시켜서 밤을 틈타 서쪽 문에 버리게 하였다. 이때 문을 지키는 사람은 앞에서와 같이 거두어 기르면서 경사스럽고 즐거운 일로 여겼다. 두 집의 아들ㆍ딸은 모두 성인이 되었다. 동쪽 문지기의 아들은 명절 때에 친구들에게 함께 놀자고 하였다. 친구들은 60금전을 가지고 청련화와 함께 꽃동산에 같이 가서 놀게 되었는데, 모두가 규칙을 정하기를 ‘만약 오늘 함께 어울리지 않는다면 벌금으로 60금전을 물린다’고 하였다. 동쪽 문지기의 아들이 함께 즐기는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자 친구들은 벌금을 물리려고 하였다. 그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아래를 내려 보고 위를 올려보다가 마지못해 같이 따라서 놀았다. 이미 함께 즐기고 나자 사랑하고 중히 여기는 마음이 생겨서 청련화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 함께 살았다.
그때 광엄성의 여러 사람들이 다들 논의하였다.
“어찌하여 문지기의 아들이 우리들의 창녀를 데리고 가서 혼자서만 집 안에 둔단 말인가?”
동쪽 성문 문지기의 아들은
이 말을 듣자 사람들에게 사죄를 하고 즐겁게 노는 모임을 후하게 베풀고는 청련화에게 장가를 들어서 아내로 삼았다. 그 동쪽문의 문지기가 서쪽문의 문지기에게 말했다.
“자네의 딸이 장성하였으니 예전의 약속을 이루는 것이 좋겠네.”
그에게 말했다.
“자네의 아들은 지금 창녀를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어떻게 혼인을 하자고 할 수 있는가?”
“설사 많은 아내를 맞아들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무슨 허물이겠는가?”
그는 예전의 약속대로 딸을 그에게 결혼시켜 동쪽 문지기의 집에 들여보냈다.
존자 대목건련(大目乾連)이 급히 이 집에 와서 이제 갓 시집온 여인에게 말해주었다.
“당신은 지금 아십니까, 모르십니까? 당신의 남편이 전부터 데리고 있는 아내는 바로 당신의 어머니이고, 당신의 남편은 바로 당신의 오라버니입니다. 당신은 다시 그에게 질투심을 내는 것으로 인하여 악업을 짓는 일은 하지 말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말을 하고는 떠나갔다. 나중에 다른 때에 청련화는 다시 한 아들을 낳았다. 그때 서쪽 문지기의 딸로서 시집을 온 여인은 그 아기를 안고 문 앞에서 아기를 어르고 있었는데, 어떤 관상을 보는 바라문이 그곳에 와서 게송으로 물었다.

당신의 얼굴은 마치 묘한 꽃과도 같고
삼보(三寶)에 깊은 신심이 있는데
데리고 노는 아기는
당신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요?

그때 여인은 곧 게송으로 대답했다.

바라문께서는 잘 들으십시오.
이 아기는 나의 동생이며
또한 오라버니의 아들이기도 하고
또한 나의 아기이기도 하네.

다시 남편의 동생이기도 하며
이 아기의 아버지는 나의 남편이라서
아버지이기도 하고 남편이기도 하니
성자께서는 자비를 베푸시어 일러 주십시오.

바라문은 이 말을 듣자 웃으면서 떠나갔는데, 청련화가 방 안에서 이 말을 듣고는 그 까닭을 이상히 여겨서 심부름하는 여인에게 물었다.
“이 여인이 아기를 안고 바라문과 더불어 무슨 말을 한 것이냐?”
심부름하는 여인이 그 일을 갖추어 청련화에게 일러주니, 청련화는 이 말을 듣자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무슨 업이 있기에 전에는 어머니와 더불어 남편을 같이하고,
나중에는 딸과 더불어 남편을 같이하고 이번에는 아들을 남편으로 삼으면서 또한 딸과 함께 남편을 같이 하는가?’
이렇게 생각한 그녀는 몸을 던져 땅에 쓰러져서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다가 집을 뛰쳐나왔다. 왕사성으로 가는 무리들을 찾아서 그들과 함께 광사성에 이르렀다. 이곳에 머문 지 오래지 않아서였다. 성 안에 있는 5백 명의 사람들이 늘 함께 모여 놀았는데 청련화 이야기를 듣고는 함께 말했다.
“그 여자는 자태와 용모가 세상에서 드물게 뛰어났는데, 지금 이곳에 와 있으니 함께 즐기도록 하자.”
그리고는 5백 금전을 청련화에게 주고 꽃동산에 데려가서 즐거움을 탐닉하면서 머물렀다. 그때 존자 대목련은 청련화가 교화를 받아들일 수 있음을 알고는 그 동산으로 가서 나무 아래에서 이리저리 거닐고 있었다. 그때 무리 가운데에 한 젊은 사람이 청련화에게 말했다.
“당신은 저 존자가 보입니까? 대위신력이 있고 계행이 청결해서 탐욕의 진흙구덩이라도 능히 그를 더럽힐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능히 그로 하여금 청정하지 못한 마음을 내게 할 수 있겠습니까?”
청련화가 말했다.
“그거야 무어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일찍이 향을 파는 남자가 부정관(不淨觀)을 닦고 있었으나, 내가 그로 하여금 마음에 염착십(染著心)을 일으키게 하였는데 하물며 이 사람이겠습니까?”
사람들이 그녀에게 말했다.
“성자께서는 견고하여 당신이 능히 움직일 수 없을 것이오.”
청련화는 존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갖가지 교태를 부리면서 몸을 가까이 대었다. 존자는 몸을 허공으로 솟구쳐서 게송으로 말했다.

당신의 몸뚱이는 싫어할만한 백골로 이루어져
힘줄과 혈맥으로 서로 얽혀져 있네.
원래 부모의 정혈(精血)로 이루어지고
남을 의지해 살면서 나를 경멸하는구나.

가죽 주머니에는 더러운 것이 가득 찼고
밤낮으로 쉼 없이 드나들어
아홉 개의 구멍으로 항상 흘러서 부스럼이 낫지 아니하고
종횡으로 더러운 기운이 몸에 가득 찼구나.

만약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이것을 알게 한다면
마치 내가 너의 몸이 더럽다고 아는 것과 같아서
비유컨대 여름철의 측간처럼 다가갈 수 없으니
이것을 버리고 멀리 떠나면 애착심이 없을 것이네.


저들은 어두워서 지혜의 눈이 없는 까닭에
항상 어리석음의 꺼풀에 덮였나니
이 때문에 마음이 미혹되어 너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이
마치 늙은 코끼리가 진흙 구덩이에 빠져드는 것과 같으니라.

청련화는 눈으로 존자의 신통력이 기이함을 보았다. 그리고 자기의 몸을 살펴보고 깨끗하지 않음을 알고는 멀리서 존자께 예배드리고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저는 싫어할만한 백골로 이어져 있는 이 몸뚱이가
힘줄과 혈맥으로 두루 얽혀져 있으며
원래 부모의 정혈(精血)로 이루어졌고
남에게 의지하여 살면서 함부로 경멸한 것을 알았나이다.

저의 몸은 더러운 것이 항상 가득 찼고
밤낮으로 쉼 없이 드나들며
아홉 개의 구멍으로 항상 흘러서 부스럼이 낫지 아니하고
종횡으로 더러운 기운이 몸에 가득 차 있습니다.

만약 여러 사람들이 이것을 체득하여 아는 것이
대성자(大聖者)께서 깨끗지 못함을 아시는 것과 같다면
비유컨대 여름철의 측간처럼 다가갈 수 없으니
그것을 버리고 멀리 떠나면 애착심이 없을 것입니다.

저들이 어두워 알지 못하는 까닭에
항상 어리석음의 꺼풀에 덮였으며
이 때문에 마음이 미혹되어 저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이
마치 늙은 코끼리가 진흙 구덩이에 깊이 빠져드는 것과 같나이다.

원하옵건대 대성(大聖)께서는 몸을 내려오게 하시고
저에게 미묘법을 자세히 설해주시어서
가장 훌륭한 가르침에 출가하게 하여
발원하고 항상 욕심을 여의는 행(行)을 닦게 하소서.

그때 대목련은 그녀를 불쌍하게 여긴 까닭에 몸을 놓아 내려와서 근기를 살펴 법을 설하여 진제(眞諦)를 보게 하였다. 그녀는 이미 과(果)를 얻고 나자 존자의 발에 정례(頂禮)하고 출가하기를 구하였다.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돈을 돌려주고 사죄하니, 사람들은 덩달아 기뻐하면서 일시에 함께 와서 존자의 발에 예배드렸다.
대목련은 청련화를 데리고 세존이 계신 곳으로 가서 발에 정례(頂禮)하고 나서 그 일을 갖추어 말씀드렸다. 그때 세존께서는 청련화를 위하여 편지를 써서 실라벌성의 대세주 필추니에게 알려서 그녀가 출가할 수 있도록 허락해 가르치도록 하시고, 청련화에게 편지를 가지고 가도록 명하셨다. 그곳에 도착한 청련화는
대세주의 처소에 나아가 출가를 하고 가르침을 받아서 쉼 없이 부지런히 닦았다. 오래지 아니하여 아라한과를 얻으니, 부처님께서는 필추니 중에서 대신력(大神力)이 제일이라고 칭찬하기에 이르렀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여러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관찰하여라. 생사의 바다 가운데에 윤회하는 것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 아니하니, 누군들 부모가 아니며, 누군들 아들 딸과 다른 친지와 아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청련화는 현생(現生)에 이처럼 부모ㆍ친족 중에서 함께 법답지 않은 일을 행하는 경우를 당하였거늘, 하물며 생(生)을 달리한 것이겠느냐? 성과(聖果)를 증득하지 않고서는 윤회에 빠지는 것을 면할 수 없나니, 이런 까닭에 너희들은 삼계(三界) 가운데에서 벗어날 것을 부지런히 구하기를 마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하여라. 세간에서 탐욕의 경계는 만족하기를 기약할 수 없나니, 마땅히 빨리 버리고 떠나서 무상상(無常想)을 닦고 취시상(臭尸想)을 지어서 밤낮으로 마음을 한곳에 묶어 수행하여라.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이때 여러 필추들은 모두가 의심되는 것이 있어서 세존께 아뢰었다.
“무슨 인연으로 청련화 필추니는 몸에 세 가지 덕을 갖추어 남자가 부족하지 아니하였는데도 자기의 친족과 항상 난잡한 짓을 하게 되었으며, 출가하고 난 뒤에는 아라한과를 얻게 되어 신력(神力) 중에 제일이라고 부처님께서 칭찬하시게 되었나이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이 청련화 필추니의 인연을 잘 들어라. 옛날에 한 상주가 있어서 재물을 가지고 이익을 얻기 위해 다른 지방으로 갔다. 그의 아내는 뒤에 번뇌에 빠져서 욕망의 마음을 태웠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창녀의 집이 있었는데, 매양 남자들이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마음에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이 생겨서 한 노파에게 물었다.
‘어떤 복업(福業)을 지어야 구하는 일을 모두 마음에 맞게 할 수 있나요?’
‘행업(行業)을 성취한 훌륭한 사람에게 음식과 함께 온갖 공양을 드리면 구하는 일을 마음대로 얻을 수 있다.’
그때 독각성자(獨覺聖者)가 있었는데, 노파가 그에게 음식을 공급해드리게 하자 청련화는
받들어 공양을 하였다. 성자가 신통변화를 나투니, 여인은 깊은 신심을 내면서 발원하였다.
‘나의 이 복으로 미래세에는 단정한 몸을 얻어 푸른 연꽃처럼 색과 향기를 원만하게 구족해서 마음에 구하는 대로 남자들이 부족하지 않게 하시고, 나아가 대신력(大神力)을 얻고 부처님을 만나서 친히 받들어 모실 수 있게 하소서.’
또 거듭해서 전생에 여러 번 중매장이[媒婆]가 되어서 다른 부모ㆍ형제 자매ㆍ아들ㆍ딸의 친속들로 하여금 법답지 못한 일을 저지르도록 하였는데, 공양을 드리고 발원을 한 까닭에 아름다운 몸을 얻고 꽃과 같이 세 가지 덕이 있어서 남자들이 부족할 때가 없었다. 그리고 친족들에게 중매장이 노릇을 하였기 때문에 지금에는 여러 친족들에게 악한 과보를 받았는데, 다시 원력을 세운 것으로 말미암아 목련을 만났고, 나를 만나서 세간을 버리고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이룬 것이니라.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실라벌성에 계셨다. 청련화 필추니는 아라한과를 얻고 나서 삼보를 공경하고 존중하여 항상 이러한 발원을 하였다.
“맨 처음 걸식하여 얻은 음식을 가져다가 승가에 받들어 올리고 다음으로 걸식하여 얻은 것으로 내가 먹으리라.”
다른 날에 먼저 얻은 음식을 승가에 바치고 다음에 자기가 먹으려 하였는데, 걸식하는 필추가 빈 발우로 가는 것을 보고는 곧 자기 몫을 그 사람에게 보시하고는 하루 동안 음식을 먹지 아니하고 머물렀다. 다시 이튿날 처음 받은 음식을 승가에 바치고 다음으로 자신이 먹으려 하는데, 오파난타도 걸식하러 왔다가 청련화를 보고는 곧 이렇게 생각했다.
‘이 필추니는 다만 승가에게만 공양을 바치는 것인지, 또한 넓은 뜻을 가져 다른 사람에게도 그러한지 내가 지금 시험해 보아야겠다.’
그는 청련화에게 나아가 먹을 것을 구했다. 청련화 필추니는 은근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자기는 부족하더라도 남을 구제하기 위해서 자기 몫을 존자에게 받들어 보시하고는 전날과 같이 굶었다. 사흘째가 되자 몸에 열이 나는 바람에 걸식하는 도중에 굶주리고 지쳐서 기절하여
땅에 쓰러졌다. 그때 어떤 외도인 속인이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논의하였다.
“내가 들으니 청련화는 욕심을 여의고 과(果)를 얻었다는데, 어찌하여 지금 스님들의 용모가 단정함을 보고 욕망에 물든 마음을 일으켜서 몸을 던져 땅에 쓰러져있는가?”
여러 필추들이 듣고는 다 같이 나무라고 싫어해서 이 일을 부처님께 아뢰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모든 필추들을 위하여 마땅한 학처를 제정하노니, 또한 마땅히 이와 같이 말하노라.
만약 다시 필추가 마을의 길에서 친족이 아닌 필추니로부터 스스로의 손으로 음식을 받아먹었다면[自手受食食], 이 필추는 마땅히 마을 밖의 주처(住處)로 돌아와서 필추들이 있는 곳에 나아가 각자에게 따로따로 알리되 ‘대덕이여, 제가 대설악법(對說惡法)11)을 범하였사오니, 이는 할 바가 아니라서 이제 대덕을 마주 하고서 고백하고 참회합니다’라고 해야 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대설법(對說法)이라고 하느니라.
‘만약 다시 필추’란 오파난타를 이르는 말이다. 나머지의 뜻과 나아가 친속이 아니라는 것은 위에서 설한 바와 같다. ‘필추니’란 이 법 가운데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 ‘마을의 길’이란 길을 가는 도중이라는 말이다. ‘스스로의 손으로’란 자신이 직접 받는 것을 말한다. ‘음식‘이란 오감식(五噉食)과 오작식(五嚼食) 같은 것을 이르는 말이다. 뒤에 있는 ‘식(食)’은 목구멍 안으로 삼키는 것을 말한다. ‘이 필추’란 잘못을 범한 사람을 말한다. ‘마을 밖의 주처’란 절이 있는 곳에 이른다는 말이다. ‘필추들이 있는 곳에 나아간다’는 것은 절 안의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각자에게 따로따로 알린다’는 말은 따로따로 마주 대하고 말하는 것을 말한다. ‘제가 악법을 범하였습니다’라고 함은 착하지 않은 행위로서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다고 말로 드러내어 고백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죄를 범한 모양은 그 일이 어떠한가? 만약 필추가 친족이 아닌 필추니에게 친족이 아니라는 생각과 의심을 하면서 마을길에서 직접 오감식이나 오작식을 받아서 먹는다면 모두가 대설죄(對說罪)를 얻는다. 만약 친족인 필추니에게 친족이 아니라는 생각과 의심을 하면 악작죄를 얻는다.
범함이 없는 것은
앞에서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다.”

2) 수필추니지수식학처(受苾蒭尼指授食學處)
부처님께서는 실라벌성의 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흉년이 들어서 걸식하기가 어려웠다. 육중필추는 굶주림으로 고생을 하다가 12명의 필추니가 있는 처소로 갔다. 그녀들이 보고 나서 약간의 음식을 권하니, 육중필추는 받지 아니하고 말했다.
“자매들이여, 당신들이 만약 나와 대중들에게 정식(正食)을 청할 때는 당신들이 지시하고 가르쳐서 그 시주가 우리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많이 주도록 하시오. 그럼 우리들은 그 음식을 먹을 것이오.”
그때 어떤 시주가 부처님과 스님들을 청해서 집에 오시어 음식을 드시도록 하였다. 여러 필추들이 그의 집에 갔지만 세존께서는 가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계율을 제정하고자 하신 때문이었다.
스님들이 공양을 할 때에 토라난타 필추니가 시주에게 알렸다.
“이 성자 난타께서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세속을 버리고 출가하시어 삼장(三藏)에 아주 익숙하신 대법사이십니다. 맛있는 음식을 많이 드리도록 하십시오.”
아울러 나머지 다섯 명에게도 모두 찬탄을 하였다. 그 시주는 여섯 명에게는 몇 배로 음식을 많이 주어서 여러 필추들로 하여금 음식을 먹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필추는 그것이 법답지 못하고 평등한 마음이 없는 것임을 알고서 드디어 나무라고 비난하는 생각을 내었다. 이때 부처님의 공양을 대신 가지러 갔던 필추가 이 일을 부처님께 아뢰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학처를 제정하노니…(생략)… 나아가 마땅히 이와 같이 말하노라. 만약 다시 대중들이 재가인(在家人)의 집에 가서 음식을 먹을 때에 필추니가 어느 필추를 가리키면서 이 필추에게 마땅히 맛있는 음식을 많이 드리라고 말을 한다면, 다른 필추들은 그 필추니에게 ‘자매여, 우선 잠시 멈추고 여러 필추들이 먹기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십시오’라고 말을 해주어야 한다. 만약 한 사람도 이렇게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면, 이 필추들은 마땅히 마을 밖의 절로 되돌아 와서
여러 필추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 각자에게 따로 고하되, ‘대덕이시여, 제가 대설악법(對說惡法)을 범하였습니다.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라 이제 대덕을 마주하여 말씀드리고 뉘우칩니다’라고 해야 한다. 이것을 이름하여 대설법(對說法)이라고 하느니라.
‘여러 대중들’이란 두, 세 사람 이상을 이르는 말이다. ‘재가인(在家人)의 집’이란 사성(四姓) 등의 집을 이르는 말이다. ‘음식을 먹을 때’라는 것은 공양 요청을 받아서 음식을 먹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필추니’란 토라난타 필추니를 말한다. ‘가르켜서 준다’는 일을 가리켜서 처분하는 것을 말한다. ‘이 필추에게는 마땅히 맛있는 음식을 많이 주어야 한다’는 양을 지나치게 많이 주는 것을 말한다. ‘여러 필추들’이란 꾸짖어서 그만두게 말하는 사람을 말한다. ‘만약 한 사람도 말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최소한의 단위로 말을 한 것이니 모두가 본죄(本罪)를 얻는다. ‘마땅히 마을 밖의 절로 되돌아와…’ 하는 등등의 말은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는 법을 가리킨 것이니, 자세히 설한 것은 앞에서와 같다.
여기에서 죄를 범한 모양은 그 일이 어떠한가? 만약 필추가 누각 위에서 음식을 먹고 또 누각 중간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데, 위의 누각에서 필추니가 있다가 그 음식을 가리키면서 더 주라고 말한다면, 그 필추와 또한 한 사람이라도 마땅히 꾸짖어서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만약 꾸짖지 않는다면 여러 필추들은 대설법(對說法)을 범한다. 가운데 누각에 있는 필추들은 마땅히 위의 누각에 있는 필추들에게 필추니를 꾸짖은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물어야 한다. 묻지 않고서 먹는다면 모두 악작죄(惡作罪)를 얻는다.
만약 필추가 누각 아래에서 음식을 먹고 문옥(門屋) 안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데, 누각 아래에서 필추니가 음식을 가리켜서 더 주라고 말을 한다면, 앞에 준하여 꾸짖고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묻지 않는다면 본죄(本罪)를 얻는다. 문옥(門屋) 아래의 사람은 중책(中柵)에 준하여 묻고, 묻지 않으면 악작죄를 얻는다.
또 만약 필추가 문옥에서 나오고 다시 어떤 필추가 밖에서 들어오는데 필추니가 가리키며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마땅히 나간 사람에게 누가 필추니를 꾸짖었는지 아닌지를 물어야 한다. 묻지 아니하고 음식을 먹는다면 악작최를 얻는다. 이와 같이 마땅히 알아야 한다. 한 시주집의 여러 곳에서 공양을 하는데, 필추니가 가리켜서 말을 한곳에서는 모두가 본죄(本罪)를 얻는다. 나머지는 모두가 가벼운 죄를 범한다. 위에서의 경우나 아래에서의 경우는 일에 따라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그 시주가 이 필추니를 인해서 승가에 음식을 보시했다면,
필추니가 비록 가리키며 말을 하더라도 필추는 범하는 것이 없다. 혹은 비록 가리켜 말을 했더라도 마음에 차별하는 마음이 없거나, 혹은 음식을 얻지 못한 자를 보고서 그에게 주도록 한 것이라면, 모두가 범하는 것은 없다.
또한 범함이 없는 것은 위에서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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