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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2152 불교(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 30권 / 根本說一切有部毗奈耶)

by Kay/케이 2023.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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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根本說一切有部毗奈耶) 30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 제30권


의정 한역


18. 고방신좌와탈각상학처(姑放身坐臥脫脚牀學處)
어느 때 박가범께서 실라벌성의 서다림 급고독원에 계셨다.
때에 구수 오파난타(鄔波難陀)는 그곳의 나이 어린 필추들이 있는 곳에 가서 권유하였다.
“너희들은 나와 함께 세상을 널리 다니며 반드시 다른 종교를 항복시키고 스스로 명예를 얻도록 하자. 너희들이 독송하고 선사(禪思)를 닦을 때와 옷과 음식 및 병에 걸렸을 때 필요한 것은 모두 부족하지 않도록 해 주겠다.”
나이 어린 필추들은 비록 이러한 권유를 듣기는 하였지만 오파난타의 품성과 악행을 다 알고 있어서 함께 기거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끝내 한 사람도 함께 떠날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 어떤 걸식하는 필추가 같이 길을 떠날 사람을 찾는다는 말을 듣고 오파난타에게 말하였다.
“제가 대덕과 함께 세상을 널리 돌아다니겠습니다.”
어떤 동행인(同行人)이 걸식 필추에게 말해 주었다.
“이 오파난타는 남에게 못된 짓을 하는데, 당신이 이제 그를 따라가면 반드시 고통스럽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함께 범행(梵行)을 하는 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10하안거(夏安居)를 수행하였소. 나는 그에게 의지해 머물지도 않고 또한 그에게 나아가 학업을 받으려고도 하지 않을 텐데, 그가 내 처소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소?”
친구가 그에게 말했다.
“말로써는 할 수 없고 뒤에 스스로 알게 될 것이오.”
그는 권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고 드디어 오파난타와 함께 길을 떠났다. 길을 나서서 경계 밖에 이르자 오파난타가 그에게 말했다.
“걸식하는 이여, 당신이 나를 위하여 나의 옷과 자루를 들어 주게. 나는 나이가 많고 쇠약한데다가 또한 서로 돕는 것이 마땅하다.”
걸식 필추가 대답하였다.
“대덕께서는 어찌하여 불법승보(佛法僧寶)의 뛰어나고 묘한 복전(福田)을 보고도 그것으로 받들어 베풀지 아니하고, 이것들을 많이 쌓아둔 채 번뇌를 일으키는 것입니까?”

그러자 오파난타가 걸식하는 필추에게 말하였다.
“내가 당신에게 물건을 들게 하였더니, 당신이 기꺼이 들지 않는 것도 사리에 어긋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너는 나의 두 스승이 아닌데도 문득 꾸짖다니, 어찌 합당한 일이겠느냐?”
그때 오파난타는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걸식하는 필추와 말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차마 같이 갈 수 없는 것은 뒤에 스스로 알 것이다.’
드디어 점차 유행하여 어느 마을에 이르렀다. 곧 수풀 밖의 우물가에 가서 함께 쉬고 있는데, 마을 안에 있는 절에서 건치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걸식하는 필추는 그 소리를 듣고 오파난타에게 말하였다.
“대덕이여, 절에서 건치를 울리니 제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오파난타가 그에게 말했다.
“구수여, 이것은 흑발의 무리들이 선품 닦기를 게을리 하여 건치를 울려서 대중들을 모아놓고 따로 일을 시키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길을 걸어오느라 피곤하니, 누가 능히 그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걸식하는 필추가 말했다.
“혹시 이익을 나누어 주는 건치인지도 모르니, 제가 기꺼이 가서 이치에 맞게 그것을 얻어 보겠습니다.”
오파난타는 말했다.
“당신이 가보는 것이 좋겠다. 만약 이익을 나누어 주는 건치라면 또한 나의 몫도 가져오도록 하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드디어 절 안에 가러 물어본 뒤 그것이 이부자리를 나누어 주는 건치인 것을 알았다.
주지인 필추가 말했다.
“아유솔만(阿瑜率漫)4)이여, 마땅히 이부자리를 받으십시오.”
걸식하는 비구가 주지에게 말했다.
“나에게는 큰 사람이 있으니, 또한 받을 수 있을까요?”
“그가 누구입니까?”
“대덕 오파난타입니다.”
“그 사람이라면 대중들이 잘 압니다. 또한 몫을 가져가십시오.”
곧 두 사람의 이부자리를 다 받았다. 그때 오파난타는 우물가에 있었는데,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묻고 아울러 설법을 하였다(갖추어 말한 것은 앞에서와 같다). 여러 사람들이 흩어지고 나자 해가 져서 어둑어둑하였다. 곧 절 안에 들어와 높은 소리로 크게 소리쳐 불렀다. 그 걸식하는 필추는 누각 아래의 방에서 문을 닫고 누웠다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말하였다.
“대덕께서는 어찌하여 큰 소리를 내십니까? 저는 방에 이미
잠자리를 펴고 발을 씻는 기구도 한쪽에 같이 두었습니다. 그곳으로 가시어 눕도록 하십시오.”
그러자 오파난타가 그에게 말했다.
“걸식 필추는 방문을 여는 것이 좋겠다. 좀 따져야겠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만약 방에 들어오도록 하면 아침이 될 때까지 말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마땅히 누워서 문을 열어주지 말아야겠다.’
그래서 그에게 말했다.
“대덕이여, 저는 길을 오느라 몹시 피곤하여 따지고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설사 품평할 일이 있더라도 내일 아침까지 기다립시다.”
그때 오파난타는 그가 작정하고 문을 열어주지 않을 생각임을 알고 곧 윗방으로 가서 발을 씻고 방에 들어가 물었다.
“발에 바르는 기름은 어느 곳에 있는가?”
그가 대답했다.
“가까이 있는 상(牀) 곁에 있습니다.”
오파난타는 성상(聲相)을 잘 알았기에 그가 누워 있는 곳을 살폈다. 그리고는 즉시 상다리를 옮겨서 그의 머리맡에 놓아두고 몸을 함부로 하고 앉으니 상다리가 빠지면서 그의 머리가 깨졌다.
그에게 말했다.
“대덕이여, 나의 머리가 깨어져 지극히 고통스럽습니다.”
오파난타가 그에게 말했다.
“걸식 필추여, 어떻게 머리를 다쳤는가?”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만약 듣기 싫은 말을 하면 또 때릴지도 모르니 잠자코 머물자.’
새벽이 되자, 곧 다른 곳에 나가서 그에게 말했다.
“대덕이여, 나는 이제 떠나가렵니다.”
“그대는 어디로 가려 하는가?”
“실라벌성으로 갑니다.”
“잠시 머무르게. 내가 당신에게 필요한 약을 주겠소.”
“대덕이여, 저는 본래 병이 없는데 일부러 나의 머리를 깨뜨렸습니다. 설사 다시 병이 있다 하더라도 어찌 당신한테 치료를 받겠습니까?”
이렇게 말을 하고 나서 그를 버리고 떠나갔다.
서다림에 돌아오니, 범행(梵行)을 같이 하던 이들이 보고 큰 소리로 잘 왔다고 하며 물었다.
“여행길은 안락하였습니까, 그렇지 못하였습니까?”
“머리를 맞아서 깨어졌는데 어떻게 편안하였겠습니까?”
인연을 갖추어 알렸다. 그러자 여러 필추들이 이 일을 듣고 나서 다 미워하고 천하게 여기는 마음을 내었다.
‘어떻게 필추가 시렁 위에 누우면 상다리가 빠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몸을 함부로 하고 앉아서 상다리를 빠지게 해서 남의 머리를 깨뜨리는가?’

이 인연을 세존께 낱낱이 아뢰니, 세존께서는 대중을 모으시고 오파난타에게 물으셨다.
“참으로 이렇게 괴롭히는 일을 하였느냐?”
“참으로 그러하였나이다.”
세존께서는 갖가지로 꾸짖으셨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여러 필추들을 위해 알맞은 계율을 제정하노니, 이와 같이 말하노라.
만약 다시 필추가 승가의 머무는 곳에서 중방(重房)의 시렁 위에 있는 다리가 빠지는 상과 다른 앉을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몸을 함부로 하여 앉거나 눕는다면 바일저가이니라.
‘만약 다시 필추’란 오파난타를 이르는 말이다. 나머지 뜻도 앞에서와 같다. ‘승가의 머무는 곳’도 위에서와 같다. ‘안다’는 것은 그때에 스스로 하거나 혹은 남을 시켜서 하는 것을 말한다. ‘중방(重房)’이란 중각(重閣)에 있는 위험하고 노후한 방이다. ‘시렁 위에 있는 다리 빠지는 상(牀)’이란 상의 다리가 위의 덮개까지 이어지지 않은 것을 말한다. ‘다른 앉을 것에 이르기까지 몸을 함부로 하여 앉거나 눕는다’는 것은 극히 심하게 몸을 함부로 하여 앉거나 누워서 일부러 상다리를 벗어나게 함으로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바일저가’의 자세한 풀이는 앞에서와 같다.
여기서 죄를 범한 모양은 그 일이 어떠한가? 만약 필추가 승가의 방사(房舍)에 다리가 빠지는 상이 있는 줄 알면서 몸을 함부로 하여 앉거나 누워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려 하면 모두가 타죄를 얻는다.
만약 판자로 된 시렁이거나, 벽돌을 깐 땅이거나, 다리를 판자로 지탱한 것이거나, 혹은 때때로 높이 붙인 것이면 이는 모두 범하는 것이 아니다. 또 범함이 아닌 것은 최초로 범한 사람과 혹은 어리석거나 미쳤거나 마음이 어지럽거나 매우 고통스러운 것에 얽매인 경우이다.”

19) 용충수학처(用蟲水學處)
부처님께서 교섬비 구사라원(燆閃毘瞿師羅園)에 계셨다.
그때 구수 천타(闡陀)가 벌레가 있는 물을 풀과 흙과 쇠똥 등에 뿌렸다.
여러 필추들이 보고 말하였다.
“구수 천타여, 벌레가 있는 물을 풀과 흙과 쇠똥 등에 뿌리지 마시오.”
천타가 그들에게 대답했다.
“어찌하여 생명들이 내가 부른다고
오겠는가? 어찌 다시 사람의 운수로 서로 붙들어 줄 수 있겠는가? 어찌 떠나려고 하는데 내가 들어주지 않겠습니까? 사해(四海)가 넓고 긴데 무엇 때문에 떠나가지 않을 것이며, 강물과 연못ㆍ물동이ㆍ항아리에 어찌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욕심이 적은 필추들은 이 말을 듣고 나서 다함께 미워하고 천하게 여기는 마음을 내었다.
“어찌하여 필추가 벌레 있는 물을 스스로 풀에 뿌리거나 남에게 시켜서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는가?”
그때 여러 필추들이 이 인연을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는 이 인연으로 여러 필추들을 모으시고 천타에게 물으셨다.
“네가 참으로 벌레가 있는 물을 사용했고 그리고 남에게 시켜서 풀 등에 뿌렸느냐?”
“참으로 그러하였나이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갖가지로 꾸짖으시면서 출가한 사람으로 할 일이 아니라고 하시고는 욕심이 적고 계율을 존중하는 자들을 찬탄하셨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걸맞은 계율을 제정하노니, 이와 같이 말하노라.
만약 다시 필추가 물에 벌레가 있는 줄 알면서도 스스로 풀이나 땅이나 소의 똥에 뿌리거나 남을 시켜서 뿌리게 하면 바일저가이니라.
‘만약 다시 필추’란 천타를 이르는 말이다. 나머지 뜻은 앞에서와 같다. ‘안다’는 것은 스스로 알거나 다른 사람이 알고 말해 주는 것이다. ‘물’이란 우물물 등을 말한다. ‘벌레’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눈에 보이는 것과 그물에 걸리는 것이다. 스스로 하거나 남을 시켜서 풀에 뿌리고 흙에 뿌리고 쇠똥 등에 뿌리면 바일저가죄를 얻는다. 바일저가의 뜻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여기서 죄를 범한 모양은 그 일이 어떠한가? 만약 필추가 벌레가 있는 물에 벌레가 있다는 생각을 일으켜서 스스로 하거나 남을 시켜서 그 물을 풀 등에 뿌리면 바일저가를 얻는다. 의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만약 물에 벌레가 없는데 벌레가 있다고 생각을 일으켜 뿌릴 때에는 악작죄를 얻는다. 의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만약 필추가 강이나 연못의 물에 있는 많은 벌레와 물고기를 죽이려는 마음으로 그 물을 뿌려
벌레와 고기들의 목숨을 끊을 때에는 모두 타죄를 얻는다. 죽지 않으면 모두가 악자죄를 얻는다.
이 물이 있는 곳에서 그것을 뿌려 끊어지게 하고, 그 아래의 둑에서 물을 따라 벌레의 목숨이 끊어지거나 혹은 그때에 죽지 않더라도 앞에서와 같은 죄를 얻는다. 만약 죽이려는 마음이 없으면 범하는 것이 아니다.
또 범함이 아닌 것은 최초로 범한 사람과 혹은 어리석거나 미쳤거나 마음이 어지럽거나 매우 고통스러운 것에 얽매이는 것을 이른다.”

20) 조대사과한학처(造大寺過限學處)
부처님께서 교섬비 구사라원에 계셨다.
그때 육중필추는 늘 다른 절에서 업신여기고 천하게 여기는 마음을 내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 절은 다 쓰러져가는 모습이 마치 객사(客舍)가 코끼리나 말을 매어두는 마구간과 같다.”
여러 필추들이 이 말을 들은 뒤 그에게 말했다.
“구수여, 당신들은 이 절에 머물러 거주하지만 스스로 주춧돌 하나도 갖다 놓지 않고 다른 처소에 의지했으면서 굳이 헐뜯고 혐오하는가?”
육중필추는 이 말을 듣고 나자, 그 때에 난타(難陀)와 오파난타(鄔波難陀)가 함께 말하였다.
“우리들은 항상 여러 흑발들에게 이러한 업신여김을 당하면서 ‘당신들은 항상 다른 절에 붙어살면서 스스로는 기거할 곳도 없고, 더 나아가 하나의 돌도 갖다 놓지 않았다’고 말한다. 우리들은 이제 마땅히 절을 하나 짓되, 여러 흑발의 무리들이 아직까지 보지 못한 것을 짓도록 하자.”
그러자 난타가 오파난타에게 말했다.
“우리 여섯 사람이 모두 짓는다면, 다른 흑발의 무리들이 우리에게 트집을 잡으면서 ‘육중필추는 선품을 닦지 아니하고 모두가 집만 짓는다’고 말하여 우리에게 먹을 것을 보시해 주는 집을 꾀어 마음을 변하게 할 것이다. 우리들은 마땅히 여섯 사람 가운데서 총명하고 민첩하여 설법을 훌륭하게 잘하는 한 사람을 골라내어 가느다란 바늘을 거친 막대기에 끼워 넣는 것처럼 하자. 우리들 여섯 사람 가운데 누가 능히 이런가?”
오파난타가 말했다.
“구수 천타(闡陀)는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고
변재(辯才)가 걸림이 없으니, 능히 이와 같이 바늘과 막대기가 서로 따르게 할 것이다.”
아설가(阿說迦)가 말했다.
“그렇다면 다 같이 가서 그 사람에게 청하여 그 일을 맡도록 권하는 것이 좋겠다.”
곧 다 같이 가서 천타에게 말했다.
“구수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늘 흑발의 무리들에게 조롱을 당하면서 ‘그대들은 항상 다른 절에 머무르면서 나무라고 탓하는 생각을 많이 하며, 더 나아가 스스로 돌 하나도 갖다 놓지 않았다’고들 합니다. 이제 마땅히 절을 하나 지어서 흑발의 무리들로 하여금 일찍이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고 하도록 절을 잘 지어야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 함께 절을 지으면, ‘지난날에는 육중필추이더니 오늘에는 일꾼이로구나’ 하는 비난을 불러올까 걱정입니다. 우리가 함께 그 가부(可否)를 상의해서 ‘대덕이여, 당신께서 용맹스런 뜻을 내서 일을 맡은 사람이 되어 승가들을 위하여 하나의 거주처를 지으십시오’라고 청하기로 하였습니다.”
천타가 말했다.
“좋습니다. 이미 훌륭한 복전이 되었으니, 제가 마땅히 해 보겠습니다.”
그리하여 천타는 여럿의 권고를 받고 나서 곧바로 발을 씻고 자기 방 안에 들어가 결가부좌를 한 채 밤새도록 자지 아니하면서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어떤 방편으로써 내가 능히 승가를 위하여 큰 절을 지을 것인가?’
또 다시 생각하였다.
‘지금 이 세간(世間)의 인간계와 천상계에 사는 여러 중생들은 세존이 계신 곳에서 널리 공경하고 믿는 마음을 일으키고 있다. 저 아무개의 집은 마승(馬勝)5)의 처소에 두루 공경하고 믿는 마음을 일으키며, 그 집은 폐다라(吠陀羅)6)의 처소에, 그 집은 바삽파(婆澁波)7)의 처소에, 그 집은 대명(大名)8)의 처소에, 그 집은 만자(滿慈)9)의 처소에, 그 집은 무구(無垢)10)의 처소에, 그 집은 우왕(牛王)의 처소에, 그 집은 사리자(舍利子)의 처소에, 그 집은 대목련(大目連)의 처소에 두루 공경하고 믿는 마음을 일으키며, 그 밖에도 여러 대필추(大苾芻)들은 모두가 시주(施主)가 있어서 따로 공경하고 믿는 마음을 일으킨다. 나는 이미 별다른 시주를 의지할 데가 없으니 누구에게 알려서 절을 지을까?’
그때 이 성(城) 안에는 한 장자가 있었는데 큰 부자로 재산이 많으나 품성이 인색해서 설거지한 더러운 물까지도
남에게 베풀지 않았다. 만약 그를 교화해서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게 할 수 있다면 가히 승가를 위하여 큰 절을 짓게 할만 했다. 이때에 천타는 아침이 되자 옷과 의발을 챙겨 입고서 교섬비(橋閃毘)에 들어가 걸식을 하였다. 먼저 다른 집에서 보릿가루를 얻고 나서 곧장 그 장자의 집으로 가서 집 안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그때 문지기가 말했다.
“성자여, 여기는 대장자(大長者)의 집이므로 함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천타가 그에게 말했다.
“불ㆍ세존(佛世尊)의 말씀처럼 걸식하는 사람은 단지 다섯 가지 처소에만 들어가지 않습니다. 첫째는 창령(唱令)의 집이고, 둘째는 음녀(婬女)의 집이고, 셋째는 술을 파는 집이고, 넷째는 전다라(旃茶羅)11)의 집이고, 다섯째는 왕의 집입니다. 어찌하여 이 집이 앞에 말한 다섯 종류이겠습니까?”
그러자 그 문지기가 대답했다.
“성자께서는 크게 놀리시는군요. 여기는 창령(唱令)도 아니고 더 나아가 왕의 집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이곳 아무개 장자의 댁에 당신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때에 천타는 곧 이렇게 생각했다.
‘옷자락 잡기를 구하여도 가까이 할 수가 없거늘 다른 물건을 구하는 것이야 얻을 수 있겠는가?’
그때에 한 장자가 있었는데 이제 막 아기를 낳았다. 그는 매우 기쁘고 경사스럽게 생각해서 각종 악기를 연주하고 춤추는 사람들을 많이 데리고 그 문 앞을 지나갔다. 문지기는 그것을 보려고 문을 떠났다. 천타는 몰래 문 안으로 들어갔다. 때에 그 구수의 위의(威儀)는 마치 욕심을 여읜 사람과 같았다.
장자가 멀리서 보고 말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대덕 천타여, 이곳에 앉아서 잠시 머물러 계십시오.”
아직 그 기회를 얻지 못한 까닭을 말하다가 장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미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걸식을 하여 보릿가루를 조금 얻었습니다. 당신께서 체로 좀 쳐 주셨으면 합니다.”
장자가 계집종에게 말했다.
“보릿가루를 체로 쳐 드려라.”
그 계집종이 체질하였다.
이때에 천타는 체로 쳐지는 보릿가루를 보고 있었다.
장자가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천타가 말했다.
“나는 벌레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만약 벌레가 있으면 먹어서는 안 됩니다.”

장자가 그에게 말했다.
“만약 벌레를 먹는다면 어떤 허물이 있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만약 살생을 하고 거듭 그 같은 업을 닦아 익히면, 그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져 죽을 때는 지옥ㆍ아귀ㆍ방생(傍生; 축생)에 떨어져 갖가지 고통을 받게 됩니다. 설사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명이 짧고 병이 많게 됩니다.”
그런데 천타 필추는 삼장(三藏)에 아주 익숙하고 걸림이 없는 변재(辯才)를 얻은 데다 시기의 적절함을 잘 알아서 상대의 근기(根機)에 따라 법을 말했기 때문에 즉시 장자를 위하여 법요(法要)를 널리 말하고 10선(善)을 닦는 것을 찬양하고 10악(惡)의 행실을 비난했다.
그 장자는 법을 듣고 나자 공경하고 믿는 마음이 생겨서 즉시 집에 들어가 갖가지 좋은 음식을 갖추고 아울러 여러 가지 기이한 맛이 나는 음식을 상에 가득 차려서 대접하도록 명하였다.
천타가 이것을 보자 ‘내가 듣건대 나무로 만든 솥은 한 번 불을 때면 곧 못쓰게 된다고 하였다. 만약 이 보시를 받으면 앞의 음식도 또한 뒤의 공양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곧 그에게 말했다.
“시주여, 나는 이미 저곳에서 보시한 보릿가루를 받아들였습니다. 어찌 그것을 버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겠습니까?”
장자가 말했다.
“우리들 세속의 법도로는 먼저 거친 음식을 얻고 나중에 좋은 음식을 만나면 앞의 나쁜 음식을 버리더라도 참으로 아무 허물이 없습니다.”
천타가 그에게 말했다.
“장자여, 속인들은 계율이 없으니 마음대로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계품(戒品)을 받았으니, 어찌 그들처럼 남의 신심 있는 시주를 받아서 함부로 가벼이 여겨 버릴 수 있겠습니까?”
이때 장자는 그 말을 듣고 나서 두 배로 깊은 신심을 내었다.
천타는 곧 사양을 하고 떠나갔다.
장자가 말했다.
“대덕이시여, 때때로 지나는 길에 저의 집에 들러주십시오.”
천타가 그에게 말했다.
“저는 참으로 자주자주 들르고자 합니다만 문을 지키는 사람이 마치 포악한 염마옥졸(琰摩獄卒)과 같아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장자는 문지기를 불러서 말했다.
“성자 천타께서 들어오시는 것을 볼 때는 막아서는 안 된다.”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이때에 천타는 곧 생각했다.
‘만약에
다시 다른 흑발의 필추가 들어온다면 기연의 마땅함을 알아채지 못해서 장자로 하여금 믿는 마음을 잃게 할 것이다. 내가 이제 마땅히 미리 방편을 베풀어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겠다.’
문지기에게 말했다.
“이 보시게, 당신은 이제 아는가? 이 집의 장자는 나와 큰 인연이 있어서 그로 하여금 존경하고 믿게 했다는 것을……”
“제가 이미 알았습니다.”
“당신은 지금 이후로 다른 흑발의 무리들은 함부로 이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오. 만약 마음대로 들어가게 한다면 내가 장자로 하여금 당신을 매로 때리게 하고 문지기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게 할 것이오.”
“당신께서 이 문에 들어가는 것도 저의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닌데, 어찌 다른 사람을 함부로 들어가게 하겠습니까? 아무쪼록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때에 천타는 때때로 그 집에 가서 장자 부부를 위하여 묘법(妙法)을 널리 드러내어 삼귀의(三歸依)를 하게 하고 오계(五戒)를 지니게 하였다.
장자가 천타에게 말했다.
“성자여, 의식주(衣食住) 가운데에서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저의 집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가져가십시오. 청컨대 다른 데서 하지 마십시오.”
천타는 그의 말을 듣기는 하였지만 하나도 받지 않았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또다시 그 집에 들러서 장자를 위하여 일곱 가지 복업(福業)의 일을 찬양하여 말하였다. 장자는 복리(福利)를 말하는 것을 듣고 깊이 환희심을 내었다.
천타에게 말했다.
“성자여, 제가 이제 일곱 가지 복업의 일을 닦고자 합니다.”
“현수여, 지금이 바로 적절한 때입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하십시오.”
“어떤 일을 하여야 합니까?”
“여러 승가를 위하여 절을 짓는 것이 좋겠습니다.”
장자는 곧 생각하였다.
‘내가 이미 여러 번 집의 재물을 갖고서 받들어 보시하였고, 나아가 옷가지를 보시하였지만 일찍이 받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제 받을 것을 허락하였지만 이 또한 승가를 위한 것이니, 이를 보건대 만족할 줄을 아시는 분이다. 내가 깊이 공경하고 소중하게 여겨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난 뒤에 장자가 아뢰었다.
“대덕이시여, 지금 저의 집 안에는 많은 재물이 있어서 승가를 위하여 절을 세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를 도와서 감독할 사람이 없습니다.”

천타가 말했다.
“제가 당신을 도와서 이 복된 일을 이루어 볼까 합니다.”
그리고 다시 장자에게 말했다.
“당신은 이제 승가의 처소에 가서 대중에게 의견을 물어 나를 감독으로 삼을 것을 청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장자가 그에게 말했다.
“좋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곧 천타와 함께 절에 가서 대중 가운데로 들어갔다. 스님의 발에 예배하고 나서 대중에게 아뢰었다.
“이 성자 천타께서 즐거이 승가를 위하여 절 짓는 일을 일으키시기에 제가 시주가 되기로 하였습니다. 바라옵건대 승가께서는 수사인(授事人; 일을 맡을 사람)을 뽑아 주시고 자비로써 허락해 주십시오.”
그때 사리자(舍利子)는 대중의 상좌(上座)였다. 그는 장자가 청하는 것을 보자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육중(六衆)의 무리들은 여러 번 대중의 명을 받지 아니하고 항상 대중을 괴롭혀 왔다. 하물며 지금 명을 받게 되면 서로가 괴로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말했다.
“구수 천타여, 내가 예전에 서다원림(逝多園林)을 조성할 적에 누가 다시 나에게 시켰으며, 구수 대준타(大准陀)가 이 구사라원(瞿師羅園)을 조성할 때에 또한 누가 시켰던가? 네가 만약 승가를 위하여 절을 지으려거든 마땅히 스스로 감독할 것이지 어찌하여 대중이 시키기를 기다리는가?”
천타는 듣고 나서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흑발의 무리들은 나를 보려고도 하지 않는데, 하물며 나를 뽑아 수사인(授事人)이 되기를 허락하겠는가?’
대중이 허락을 하지 않자 곧 장자와 함께 일어나서 장자의 집에 가서 돈과 재물을 많이 가지고 벽돌 만드는 사람에게 가서 말하였다.
“현수여, 당신들은 능히 하루에 삼층의 절과 일백 개의 방을 지을 벽돌을 만들 수 있습니까?”
벽돌 만드는 사람이 대답했다.
“돈과 재물을 많이 주신다면 여럿이 함께 만들어 준비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약간의 돈을 찾아다 그에게 주었다.
다음에는 벽돌을 쌓는 장인이 있는 곳에 가서 말했다.
“현수여, 당신은 능히 하루 안에 벽돌을 다듬어서 삼층의 절을 지을 수 있습니까?”
다음에는 목수가 있는 곳에 가서 말했다.

“현수여, 당신들은 능히 하루 안에 여러 목수들을 한데 모아서 삼층의 절을 지을 수 있습니까?”
다음에는 진흙을 다루는 장인과 화공(畵工)의 처소에 가서 각각 그들의 일에 따라 앞에서처럼 묻고 대답하였다.
다음으로 일꾼들을 많이 수배하여 절 안으로 데려온 뒤 함께 일하고 서로 도와서 삼층으로 된 절을 지어서 하루 만에 완성시켰다. 그런데 그 절을 지을 때 아래에는 물을 내보내는 수챗구멍이 없었고, 위에는 버리는 도랑이 없었고, 지게문의 창문을 전혀 설치하지 않아서 소통시킬 곳이 없었고, 모양은 대나무로 만든 네모진 곡식 창고와 같았다. 다만 작은 문이 있어서 겨우 출입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절을 다 짓고 나자 곧 그 장자의 집으로 가서 말했다.
“장자여, 절을 이미 완성을 하였습니다. 마땅히 경사를 축하해야겠습니다.”
장자가 대답했다.
“지금은 준비가 안 되었으니 내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에 세존께서는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육중 천타가 지은 절은 후야분(後夜分; 밤에서 아침 사이)에 반드시 무너질 것이다. 만약 나와 승가가 지은 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시주는 절이 무너진 것을 보고 크게 고뇌하다가 반드시 뜨거운 피를 토하고 죽게 될 것이다.’
세존께서는 아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구사라원(瞿師羅園)의 필추들 처소에 가서 ‘너희들 여러 필추들은 내가 매번 설법하기를 선행(善行)을 남모르게 닦고 여러 죄를 숨기지 말고 드러내라고 하였으니, 너희들이 만약 뛰어난 정(定)을 얻었다면 마땅히 정력(定力)으로써 초야분(初夜分)에 천타가 지은 절 안에 나아가 각각 선품을 닦도록 하라’고 알려라.”
아난타는 부처님의 명을 받들고 여러 필추들에게 알렸다.
“여러 구수여, 세존께서, ‘내가 매양 말하되 선행을 남모르게 닦고 여러 죄를 숨기지 말고 드러내라고 하였으니, 그대들이 만약 뛰어난 정(定)을 얻었다면 마땅히 정력(定力)으로써 초야분(初夜分)에 천타가 지은 절 안에 나아가 각각 선품을 닦도록 하라’고 하시는 가르침이 있으셨습니다.”

그때에 여러 필추들은 이 말을 듣고 나서 뛰어난 정(定)을 얻은 자는 부처님께서 명하신 것처럼 그 절에 가서 선품을 닦았다. 세존께서도 중야시(中夜時)에 또한 절 안으로 가셔서 세속의 마음을 일으키셨다.
여러 부처님의 상법(常法)에서 만약 세속의 마음을 일으키면, 제석(帝釋)의 여러 하늘들이 모두 뜻을 안다. 이때에 제석의 여러 하늘들이 부처님 계신 곳에 와서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나서 한쪽에 앉았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모든 법의 무상함을 널리 말씀하시니, 그들은 부처님의 발에 예배한 뒤에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나서 필추들은 부처님과 함께 떠나갔다.
후야시(後夜時)에 이르자 사방에서 구름이 일어나고 바람이 소리를 냈다. 이윽고 벼락이 치더니 큰 비가 내리면서 그 절 안을 가득 채웠는데, 모양이 마치 커다란 대나무 창고와 같아서 물이 빠져 나갈 곳이 없었다. 그 물이 깊이 배어들자 절이 곧 무너졌다.
아침이 되어서 이 소식을 들은 육중필추는 모두 두려운 마음을 내고서 도망가 버렸다. 그러나 시주는 잔치를 벌이려고 갖가지 훌륭한 음식들을 수레에 싣고 절이 있는 곳으로 왔다.
“제가 지은 절이 어느 것입니까?”
한 필추가 있었는데 늦게 출가해서 육중필추와 예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었다. 그가 장자에게 말했다.
“이것이 당신의 절입니다. 마치 낙타가 쭈그려 엎드린 것처럼 무너졌으니, 당신은 생각을 편안히 하고 뜻을 보존해서 절 안에 들어가되 문의 현판에 머리를 부딪치지 않도록 하시오.”
장자는 무너진 절을 보자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배와 재물을 투자하였거늘 미처 써 보지도 못하고 무너져 버렸구나.’
이내 원통함을 참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끝내 기절하여 땅에 넘어졌다. 여러 친족들이 차가운 물을 얼굴에 뿌려서 얼마 후에 깨어났다.
세존께서는 그때 구수 아난타에게 명하셨다.
“네가 지금 그 장자에게 가서 알리기를, ‘많은 시주를 하여 여래(如來)를 받들기 위하여 방사를 지었으니, 불세존(佛世尊)께서 끝내 그것을 수용하지 않으셨더라도
그 시주에게 복은 그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다. 하물며 당신이 세웠던 절은 초야시에 나이 많고 덕행을 갖춘 필추들이 모두 들어가서 수용하였고, 후야분에는 세존께서 몸소 왕림하셨으며 제석의 여러 하늘들이 모두 구름처럼 모여 와서 당신의 절 안에 들어가 함께 수용하여 묘법(妙法)을 널리 말씀하셨으니, 당신의 복과 이익은 한량없고 그지없을 것입니다. 반드시 기뻐하고 슬퍼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여라.”
아난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나서 장자의 처소에 가서 부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 주었다.
장자는 듣고 나서 아난타에게 말하였다.
“대덕이여, 대비하신 세존께서 저의 절 안에 들어오셔서 수용을 하셨나이까?”
아난타가 말했다.
“이미 수용을 하셨습니다.”
장자가 말했다.
“대덕이시여, 불세존께서 저의 절 안에 들어오시어 이미 수용을 하셨다면, 제가 능히 매일같이 받들어 세존을 위하여서 절을 짓겠나이다.”
그때에 장자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제가 잘 아는 육중필추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신가?”
육중필추는 장자가 물었다는 말을 전해 듣자 모두 황급히 와서 장자의 처소에 이르렀다. 장자는 그들에게 음식을 공양하고 나서 새 모직으로 만든 요를 하나씩 드렸고, 필추가 필요한 물품들을 뜻에 따라 공급하였다.
그때 여러 필추들은 이 일을 보고 나서 육중필추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장자를 위하여 큰 절을 세웠지만 실제로 그것은 곡식 창고였다.”
육중필추가 대답했다.
“당신은 어찌하여 비난을 하는가? 우리들 여섯 사람은 능히 장자로 하여금 깊이 공경하고 믿는 마음을 내게 하였다. 비록 재물을 손실하였지만 우리들을 공경하고 믿는 마음은 더욱 두터워서 훌륭한 음식을 공급하고 모직으로 만든 요를 하나씩 주었으며 사문으로서 필요한 물품을 뜻에 따라 공급해 주었다.”
욕심이 적은 필추들은 이 말을 듣고 나서 다 함께 미워하고 천하게 여기는 마음을 내었다.
‘어찌하여 육중필추는 지은 일의 이치가 마땅히 수치스러운데도 도리어 더욱 스스로를 높이는가?’
그때
여러 필추들은 곧 이 인연을 세존께 낱낱이 아뢰니, 세존께서는 대중을 모아 놓으시고 육중필추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참으로 이와 같이 단정하고 엄숙하지 못한 일을 하였느냐?”
육중필추가 아뢰었다.
“참으로 그러하였나이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갖가지로 꾸짖으셨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여러 필추들을 위하여 걸맞은 계율을 제정하노니 이와 같이 말하노라.
가령 필추가 큰 절을 지을 때에는 문의 울짱 가장자리에 가로지른 빗장과 여러 창문을 설치하고 물구멍을 설치해야 하며, 담장을 만들 때에는 축축한 진흙을 두 겹 세 겹으로 울짱에 나란히 가로질러야 한다. 만약 이를 넘어서면 바일저가이니라.
‘만약 다시 필추’라고 한 것은 육중필추를 이르는 말이다. ‘큰 절’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시물(施物)의 큰 것이요, 둘째는 모양과 수량이 큰 것이다. 여기서는 모양과 수량이 큰 것을 말한다. ‘머무는 곳’이라는 말은 그 안에서 행주좌와(行住坐臥)의 4위의사(威儀師)를 할 수 있는 곳을 이르는 말이다. ‘짓는다’는 것은 스스로 하거나 혹은 남에게 시켜서 하는 것이다. ‘문의 울짱 가장자리에 가로지른 빗장과 창문과 물구멍을 설치하고 담장을 만들 때에는 축축한 진흙’이라는 것은 처음에 땅을 재고 터를 닦아서 담장과 벽을 쌓아 만들 때부터 젖은 진흙을 반드시 두, 세 겹으로 거푸집 벽돌을 펴는 것이다. 이것을 지나치게 쌓는다면 바일저가를 얻는다. 뜻을 해석한 것은 앞에서와 같다.
여기서 죄를 범한 모양은 그 일이 어떠한가? 만약 필추가 승가를 위하여 큰 절을 짓는데, 축축한 진흙으로 만든 벽돌과 땅에 끌리는 진흙으로 만든 거푸집을 써서 두, 세 겹을 넘어서서 짓는다면 모두 타죄를 얻는다.
만약 굳은 벽돌과 돌이나 나무를 가지고 짓거나, 혹은 시주가 빨리 완성시키고자 한다면 설사 겹으로 쌓는 수를 넘어서더라도 모두 범하는 것이 아니다. 또 범함이 아님은 최초로 범한 사람이거나 혹은 어리석거나 미쳤거나 마음이 어지럽거나 매우 고통스럽거나 한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어느 때 여러 필추들이 의심스러운 점이 있어서 세존께 청하였다.

“구수 천타가 승가의 명을 받아서 수사인(授事人)이 되기를 구하였을 때에 어떤 인연이 있었기에 존자 사리자(舍利子)는 그것을 방편으로 막고 수사인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까?”
부처님께서 여러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리자는 다만 이번에만 선방편(善方便)으로 천타를 제지한 것이 아니라 지나간 옛날에도 제지한 적이 있으니, 너희들은 마땅히 들으라.
과거세에 설산(雪山)의 매우 깊고 험한 곳에 큰 무리의 새가 서로 의지하여 살았느니라. 그 중에 새의 왕이 있어서 그 무리들을 다스렸지만 질병을 만나서 끝내 죽고 말았다. 여러 무리의 새들은 임금이 없자 이내 서로 속이는 등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느니라. 그때에 여러 무리의 새들은 함께 한 곳에 모여서 말하였다.
‘우리들은 임금님 없이는 오래 견딜 수가 없다. 우리의 왕을 찾아서 관정식을 올린 뒤에 함께 세워야 한다. 그런데 새 임금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늙은 수리부엉이가 있었으니, 여럿이 모두 의논하였다.
‘이 새는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으니 왕이 될 만하다. 우리들이 만약 힘을 도우면 큰 이익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앵무새가 한 마리 있는데, 품성이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근기(根機)의 마땅함을 아주 잘 안다. 그에게 가서 수리부엉이를 도와 우리의 임금으로 삼는 일이 옳은지 그른지를 물어 보자.’
곧 함께 앵무새가 있는 곳에 나아가서 물었느니라.
‘수리부엉이를 세워서 임금으로 삼으려 하는데, 이 일이 옳은가요, 옳지 않은가요?’
이때에 앵무새는 수리부엉이의 얼굴을 보고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나는 수리부엉이가
여러 새들의 왕이 되는 일을 좋아하지 않나니
성을 내지 않은 때의 얼굴이 이와 같은데
성을 내었을 때에는 어떠할 것인가?

그러자 여러 무리의 새들은 이 말을 듣고 나서 그를 왕으로 삼지 아니하고 그 대신 앵무새를 세워서 임금으로 삼았다. 너희 여러 필추들은 이상하다는 생각을 내지 말라. 그때에 앵무새는 곧 사리자이고, 늙은 수리부엉이는 곧
천타이니라. 옛날에는 도와서 왕이 되는 것을 방편으로 막았고 지금에는 대중의 명으로 수사인이 되는 것을 또한 방편을 써서 들어 주지 아니했느니라.
또 범함이 아님은 최초로 범한 사람이거나 혹은 어리석거나 미쳤거나 마음이 어지럽거나 매우 고통스럽게 된 때를 이르는 말이다.12)
세 번째 게송으로 대신하여 말씀하셨다.

어김없이 해는 저무는데
먹을 것과 두 가지 옷을 위하여
길을 함께 가는 것과 배를 타는 것
두 가지가 교화식(敎化食)을 물리치네.

21) 중불차교수필추니학처(衆不差敎授苾篘尼學處) ①
안에서 총체적인 게송으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난탁가(難鐸迦)로 하여금
필추니를 가르치고 훈계하게 하시니
그들에게 깊고 깊은 경을 말해서
모두가 아라한을 증득하였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실라벌성의 서다림 급고독원에 계셨다.
부처님께서는 이곳에서 여름 안거를 하시면서 오천 명의 필추와 함께 하셨다. 나이 많은 필추니가 또한 이 왕원사(王園寺)에 있으면서 안거를 하였으니, 이른바 준타(准陀) 필추니ㆍ민타(民陀) 필추니ㆍ말랍바(末臘婆) 필추니ㆍ대의(大衣) 필추니ㆍ선행(善行) 필추니ㆍ광야(曠野) 필추니ㆍ명월(明月) 필추니ㆍ안은(安隱) 필추니ㆍ소력(少力) 필추니ㆍ교답미(憍答彌) 필추니ㆍ연화색(蓮華色) 필추니ㆍ대세주(大世主) 필추니 등의 대성문니(大聲聞尼)로서 모두가 이곳에 머물렀다.
그때에 대세주 필추니가 오백 명의 필추니를 거느리고 함께 부처님 계신 곳에 가서 부처님 발에 예배를 드리고 나서 한쪽에 앉았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대세주 등을 위하여 널리 법요(法要)를 말씀하시고 가르침을 보여서 이익과 기쁨을 주어 환희케 하신 뒤에 말씀하셨다.
“대세주여, 때가 이르렀으니 그만 가는 것이 좋겠다.”
대세주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서 정수리로
받아 지닌 채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는 곧 떠나갔다. 세존께서는 대세주가 밖으로 떠나가는 것을 보신 후에 여러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나는 이제 노쇠하고 기력이 떨어져서 다시는 능히 사중(四衆)인 필추ㆍ필추니ㆍ우바새ㆍ우바이를 위하여 법요를 널리 말할 수가 없느니라. 너희들은 지금부터 나이 많고 경험이 많은 필추가 마땅히 차례대로 필추니를 가르치도록 하여라.”
그리하여 여러 필추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나서 곧 차례로 가르쳤다. 구수 난탁가(難鐸迦)가 다음에 가르칠 차례가 되었지만, 여러 필추니들에게 가서 가르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다. 대세주 필추니는 다시 오백 명의 필추니와 함께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갔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앞에서와 같다). 그들은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돌아갔다.
부처님께서는 대세주가 떠나간 후에 아난타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누가 필추니들을 가르쳐야 할 차례인가?”
아난타가 말씀드렸다.
“요즈음에 나이와 경험이 많은 필추들이 차례로 가르쳐 왔습니다. 이제 구수 난탁가의 차례가 되었는데 필추니들을 기꺼이 가르치려고 하지 않나이다.”
그때 난탁가도 부처님 주변의 대중 사이에 있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난탁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마땅히 필추니들을 가르쳐야 되나니, 응당 여러 필추니들을 위하여 법요(法要)를 널리 말하도록 하여라. 무슨 까닭인가? 난탁가여, 나는 마땅히 힘에 맞게 필추니를 가르쳐야 하고, 너도 마찬가지로 필추니를 가르쳐야 하느니라. 나는 여러 필추니들을 위하여 법요(法要)를 널리 말하고, 너도 또한 이와 같이 법요를 널리 말하여야 하느니라. 이런 까닭으로 저 필추니들로 하여금 큰 이익을 얻게 하고 큰 광명이 있게 해서 능히 널리 증장케 하여 구경처(究竟處)를 얻게 하느니라. 너는 저 필추니들을 가르치는 것을 사양해서는 안 된다.”
난탁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나서
잠자코 받아들였다.
구수 난탁가는 밤이 지나 새벽녘이 되자 하루의 초분(初分)에 의발을 챙겨 가지고 실라벌성에 들어가서 차례로 걸식을 하였다. 먹을 것을 얻고 난 뒤에는 곧장 본래의 처소로 돌아와서 먹은 뒤에 의발을 거두고 이를 닦고 발을 씻고서는 방 안에 들어가 고요히 머물렀다. 구수 난탁가는 포후시(哺後時)에 정(定)에서 깨어나 설법할 때 입는 승가지(僧伽胝)13)를 입고 한 사람의 필추를 뒤따르게 한 채 필추니를 가르치려고 왕원사로 향하였다. 그 곳에 도착하자 여러 필추니들은 난탁가가 오는 것을 멀리서 보고 아뢰었다.
“잘 오셨습니다. 대덕이시여.”
곧 자리를 펴고 편히 앉도록 청하였다. 여러 필추니들은 난탁가의 발에 예배를 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난탁가가 여러 필추니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제 여러 자매들을 위하여 문답 법문(問答法門)을 말하노니, 여러분은 잘 들으시오. 만약 알아들었거든 알았다고 말하고, 못 알아들었거든 모른다고 말을 할 것이며, 뜻을 잘 알았거든 이치와 같도록 수행을 하고, 뜻이 확실치 아니하거든 마땅히 거듭해서 ‘대덕이여, 이 말씀의 뜻은 제가 아직 알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시오.”
여러 필추니들은 이 가르침을 듣고 나서 난탁가에게 아뢰었다.
“대덕이시여, 저희가 훌륭하신 가르침을 입으니 희유(稀有)하다는 생각이 나면서 기쁨이 그치지 않습니다. 이처럼 대덕께서 저희들을 잘 가르쳐 주시니, 저희들 모두는 가르치신 일에 따라 문답을 하고 이치를 좇아서 수행하겠나이다.”
구수 난탁가가 여러 필추니에게 말하였다.
“자매여, 그대들은 눈의 감각 기관에 ≺나≻와 내것이 있다고 아느냐?”
여러 필추니들이 대답했다.
“대덕이시여, 저희는 있다고 보지 않나이다.”
“자매여, 눈의 감각 기관에서 이미 그런 것처럼 마침내 귀ㆍ코ㆍ혀ㆍ몸ㆍ의지의 감각 기관까지도 ≺나≻와 내것이 있느냐, 없느냐?”
“대덕이시여, 있다고 보지 않나이다.
왜냐하면 저희들은 바른 행(行)을 수순해 닦아서 실로 이러한 견해를 지은 것이니, 바른 지혜의 견(見)으로써 안의 육근(六根)에는 참으로 ≺나≻가 없어서 마음으로 신해(信解)를 낼 뿐 끝내 ≺나≻는 없다고 관찰했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난탁가는 여러 필추니에게 말했다.
“훌륭하구나, 자매여, 말로 설명한 뜻을 잘 알았구나. 이 여섯 가지 감각 기관에는 ≺나≻도 내것도 없나니,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라. 또 색(色)에는 ≺나≻와 내것이 있느냐, 없느냐?”
여러 필추니가 대답했다.
“대덕이시여, 저희는 있다고 보지 않나이다.”
“자매여, 색에서 이미 그러한 것처럼 마침내 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法)에 이르기까지도 ≺나≻와 내것이 있느냐, 없느냐?”
“대덕이시여, 저희는 있다고 보지 않나이다. 대덕이시여, 그 까닭은 저희는 바른 행을 수순해 닦아서 실로 이러한 견해를 지은 것이니, 바른 지혜의 견해로써 여섯 가지 인식 대상에는 참으로 ≺나≻가 없어서 마음으로 신해를 낼 뿐 끝내 ≺나≻는 없다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난탁가는 여러 필추니에게 말했다.
“훌륭하구나. 자매여, 말로 설명한 것의 뜻을 잘 알았구나. 이 여섯 가지 인식 대상에는 ≺나≻도 내것도 없나니,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라. 다음으로 자매여, 눈과 색(色)을 인연하여 능히 안식(眼識)이 생겨나는데, 이 식성(識性:아는 성품)에는 ≺나≻와 내것이 있느냐, 없느냐?”
“대덕이시여, 없나이다.”
“이와 같이 의지와 법(法)을 인연하여 능히 의식(意識)이 생겨나는데, 이러한 것들의 식성(識性)에는 ≺나≻와 내것이 있느냐?”
“없나이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오면…… (위에서 자세히 말한 것과 같다)”
“더 나아가 이와 같이 마땅히 알라. 다음으로 자매여, 눈과 색(色)이 인연이 되어 능히 안식(眼識)을 낳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하는 까닭에
촉(觸)을 생겨나게 하나니, 이 촉에는 ≺나≻와 내것이 있느냐, 없느냐? 더 나아가 의(意)ㆍ법(法)ㆍ식(識) 세 가지가 능히 촉을 생겨나게 하나니, 이 촉에는 능히 ≺나≻와 내것이 있느냐, 없느냐?”
“없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자세히 말한 것은 위에서와 같습니다.”
“더 나아가 이와 같이 마땅히 알라. 다음으로 자매여, 이 눈ㆍ색(色)ㆍ식(識) 세 가지가 화합하여 촉(觸)을 낳고 능히 수(受)를 생겨나게 하나니, 이 수에는 ≺나≻와 내것이 있느냐, 없느냐? 더 나아가 뒤의 세 가지 촉(觸)을 인연하여 수(受)를 내나니, 이 수에는 ≺나≻와 내것이 있느냐, 없느냐?”
“없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자세히 말한 것은 위에서와 같습니다.”
“더 나아가 이와 같이 마땅히 알라. 다음으로 자매여, 이 눈[眼]ㆍ색(色)ㆍ식(識) 세 가지가 화합하여 촉(觸)을 낳고, 이 촉은 수(受)를 낳으며, 이 수는 애(愛)를 낳나니, 이 애에는 ≺나≻와 내것이 있느냐, 없느냐? 더 나아가 뒤의 세 가지의 애(愛)에는 ≺나≻와 내것이 있느냐, 없느냐?”
“없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자세히 말한 것은 앞에서와 같습니다.”
“더 나아가 이와 같이 마땅히 알라. 다음으로 자매여, 비유하자면 그릇과 기름과 심지와 불로 인하여 불꽃이 생겨나는 것과 같나니, 자매여, 불꽃이 항상하지 않는 것처럼 불ㆍ심지ㆍ기름ㆍ그릇도 또한 항상하지 않느니라. 자매여,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그릇과 기름과 심지와 불이 비록 무상(無常)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것들에 의지하여 생겨나는 불꽃은 참으로 견고하여 변하거나 무너지지 아니하고 항상 머무르는 법이다’라고 말을 할 때에 이 사람이 참다운 말을 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대덕이시여, 그것은 참다운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그릇과 기름 등이 모두 항상하지 않기 때문이니, 생겨난 불꽃이 어찌 항상됨을 얻을 수 있겠나이까?”
“자매여, 이와 같이 여섯 가지 감각기관은 항상하지 않느니라.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이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은 비록 무상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들에 의해서 생겨나는 기쁨과 즐거움은 참으로 견고하여 변하거나 무너질 수 없는 것이요 항상 머물러 있는 법이다’라고 말할 때에 이 사람이 참다운 말을 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대덕이시여, 이것은 참다운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대덕이시여, 저희들은 올바른 행을 수순해 닦아서 이런 견해를 짓고, 바른 지혜의 견(見)으로써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이 모두 무상함을 보아서 믿고 이해하는 마음을 내니,
‘그것과 그것의 법이 생겨나는 까닭에 이것과 이것의 법이 생겨나며, 그것과 그것의 법이 없어지는 까닭에 이것과 이것의 법이 없어진다’고 믿고 이해해서 마침내 능히 고요하고 청량한 해탈의 경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난탁가가 여러 필추니에게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자매여, 만약 말로 설명한 뜻을 완전히 알아서 믿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무상을 요달하면, 그것과 그것의 법이 없어진 까닭에 이것과 이것의 법이 없어져서 끝내 능히 고요하고 청량한 해탈의 경계를 얻을 수 있느니라.
다음으로 자매여, 비유하자면 큰 나무가 뿌리ㆍ줄기ㆍ안팎의 가지ㆍ잎사귀ㆍ꽃ㆍ과일ㆍ열매를 갖추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으니라. 이 큰 나무의 뿌리는 무상하고, 나아가 꽃과 잎도 또한 모두 무상한 것이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이 나무의 뿌리 같은 것들은 모두가 다 무상한 것이다. 그러나 나무의 그림자는 결정코 견고한 것이라 변하거나 무너질 수 없는 것으로 항상 머무르는 법이다’라고 말을 한다면, 이 사람은 참다운 말을 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대덕이시여, 이것은 참다운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큰 나무의 뿌리ㆍ줄기ㆍ가지ㆍ잎 내지 꽃과 과실은 모두가 무상한 것이고, 만약 뿌리 같은 것의 의지할 물건이 없으면 능히 그것을 의지하는 그림자가 모두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난탁가가 말했다.
“자매여, 여섯 가지 인식 대상이 모두 무상함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와서 ‘여섯 가지 인식대상은 모두 무상한 것이지만, 이 여섯 가지 인식 대상에 의지해서 생겨나는 낙촉(樂觸)은 결정코 견고한 것이라서 변하거나 무너질 수 없는 것으로 항상 머무르는 법이다’라고 말한다면, 이 사람이 참다운 말을 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대덕이시여, 이것은 참다운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더 나아가 끝내 해탈의 경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자매여, 다시 비유로 말하노니, 너희들은 마땅히 들으라. 여러 지혜 있는 자들은 비유를 통하기 때문에 능히 그 뜻을 알 수 있느니라. 소를 솜씨 있게 도살하는 사람과 그 제자가 손에 날카로운 칼을 쥔 채 그 소의 목숨을 끊어서 방편으로 가죽을 벗기고 살을 바르는데, 가죽과 살은 모두가 손상되지 않은 채 뱃속에 있는 간ㆍ밥통ㆍ창자ㆍ위를 세밀하게 가르고 끊어서 모든 것을 제거하여 버리고 거듭하여 그 가죽을 가져다가 널리 펴서 덮는 것과 같으니라. 자매여, 어떤 사람이 그것을 보면서 ‘이 소와 가죽은 서로 이어져서 떨어지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은 살아있는 소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이 사람은 참다운 말을 하였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대덕이시여, 이것은 참다운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소는 잡는 사람과 여러 제자들이 손에 날카로운 칼을 쥐고서 소의 목숨을 끊을 때에 비록 가죽과 살은 손상되지 않았으나 뱃속에 있는 간ㆍ밥통ㆍ창자ㆍ위장 등은 갈라져서 절단되어 제거되었고 다만 거듭하여 그 가죽을 가져다가 널리 펴서 덮어 놓았을 뿐이니, 이 고기와 가죽은 서로 이어져서 붙어 있지 아니한 까닭입니다.”
“자매여, 나는 이 비유를 들어서 나머지 뜻을 깨닫게 하고자 하나니, 이치와 같이 마땅히 알라.
내가 말한 ‘소’란, 색신(色身)이 있고 번뇌에 속박되어 있는 사대(四大)로서 부모의 정혈(精血)과 갈랄라(羯剌羅; 태 안에서 7일 동안 이루어진 상태) 등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 다시 음식을 가지고 서로 자양(資養)하여 향을 바르고 목욕을 하는 등 짐짓 임시로 의지하다가 끝내 닳아 없어지는 데로 돌아가서 깨지고 무너지고 녹아서 흩어지는 것이다.
안에 있는 살이라고 하는 것은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을 이르는 말이고, 바깥의 가죽이라고 말한 것은 여섯 가지 인식 대상을 이르는 말이다. 뱃속에 있는 오장(五臟)은 욕심과 탐욕 등을 말하는 것이다. 소를 솜씨 있게 도살하는 사람과 그 제자들이란 들은 것이 많고 날카로운 지혜가 있는 성문 제자(聲聞弟子)를 이르는 말이다.
날카로운 칼이라고 말한 것은 지혜의 칼을 이르는 말이니, 불제자가 마음에 지혜의 칼을 가지고 그 상응하는 계박번뇌(繫縛煩惱)와 여러 수혹(隨惑)을 끊고 손상되고 무너지는 것을 마주 다스려서 모두 다 버리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러한 까닭에 너희들은 마땅히 이 일을 완전히 마치고 나서 마땅히 부지런히 닦고 배워야 한다.
방일(放逸)한 후에 뉘우치고 한스러워하는 마음을 내어서는 안 되느니라.
자매여, 너희들은 정(情)에 물든 애착과 쾌락의 처소에서 마땅히 마음을 잘 막아야 할지니, 물듦을 아직 끊지 못한 까닭이니라. 성을 낼만한 경계에서 마음을 잘 막아야 하나니, 성내는 것을 아직 끊지 못한 까닭이니라. 어리석은 경계에서 마음을 잘 막아야 하나니, 어리석음을 아직 끊지 못한 까닭이니라. 사념주(四念住)14)에서 마음을 잘 보호하고 바르게 관(觀)하여 머물러야 하느니라. 염주(念住)를 닦고 나서는 칠보리분법(七菩提分法)15)에서 잘 익히고 닦으며, 닦고 나서는 팔지도(八支道)16)에서 정념(正念)을 성취해서 능히 욕루(欲淚)17)를 제거하며, 욕루를 제거하고 나서는 유루(有漏)와 무명루(無明漏)18)를 마음으로 싫어하여 버려야 하며, 싫어하여 버리는 마음을 내는 까닭에 곧 해탈을 얻으며, 해탈을 얻고 나서는 해탈지견(解脫知見)을 증득하느니라. 그 결과 곧바로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梵行)은 이미 서며, 해야 할 일은 이미 갖추어지고, 후유(後有)19)를 받지 않는 것을 환히 깨달아 알 수 있느니라.
너희들 자매들이여, 이와 같이 배울지니라.”
구수 난탁가는 여러 필추니들을 위하여 설법의 네 가지인 시(示)ㆍ교(敎)ㆍ이(利)ㆍ희(喜)20)를 설하고, 이미 법을 말하고 나서는 자리에서 떠나갔다.
다음 날 대세주는 오백 명의 필추니들과 함께 부처님 계신 곳에 와서 평상시와 같은 위의(威儀)로 묘법(妙法)을 듣고 나서 부처님께 예배를 드리고 떠나갔다.
부처님께서는 필추니들이 떠나가는 것을 보신 후에 여러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이 난탁가가 저 오백 명의 필추니를 위하여 바르게 가르치고 바르게 훈계하여 해탈을 얻게는 하였으나 아직 구경(究竟)을 증득하지는 못한 것을 보아라. 만약 오늘 목숨이 다하게 되면 나는 저 여러 필추니들에게 하나의 계박번뇌(繫縛煩惱)가 있어서 제거해 끊지 못하는 것을 보지 못하리라. 이 결혹(結惑)에 얽매이는 까닭에 이 세상에 거듭 와서 다시 생(生)을 받는 것이니라. 너희들 필추여, 비유컨대 백월(白月)의 14일 달이 공중에 떠있는데, 사람들이 보고서
‘이 밝은 달은 보름달인가, 보름달이 아닌가?’라고 의심한다. 그러나 이 밝은 달은 둥그렇게 찬 보름달이 아니니, 아직 구경(究竟)에 이르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난탁가 필추는 저 오백 명의 필추니를 바르게 가르치고 바르게 훈계하여 그들을 해탈을 얻게는 하였으나 아직 구경을 증득하게 하지는 못하였으니, 만약 오늘 목숨이 다한다면 나는 그 여러 필추니들이 하나의 계박번뇌(繫縛煩惱)가 있어서 제거하여 끊지 못하는 것을 보지 못하리니, 이 결혹(結惑)에 얽매이는 까닭에 이 세상에 거듭 와서 다시 생을 받는 것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저 오백 명의 필추니들이 불환과(不還果)를 얻지 못한 것을 기억하시고 난탁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마땅히 여러 필추니들을 가르치고 훈계하여 그들에게 묘법(妙法)을 말하여 속히 벗어나게 하여라. 무슨 까닭인가. 나와 네가 여러 필추니들을 가르치고 훈계하여 그들을 해탈케 해야 하느니라.”
난탁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나서 아무 말 없이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구수 난탁가는 다음날이 되자 초분시(初分時)에 의발을 챙겨서 큰 성 안에 들어가 차례로 걸식을 하고 본래의 처소로 들어와서 걸식한 것을 모두 먹은 뒤에 의발을 거두고 양치를 했으며, 그리고는 밖에서 발을 씻고 방에 들어와 편안히 앉았다. 그리고 일포시(日哺時)가 되자 정(定)에서 일어나 설법할 때에 입는 승가지를 입고 한 명의 필추를 거느리고 그의 시중을 받으며 필추니들을 가르치려고 왕원사(王園寺)에 나아갔다.
그곳에 도착하자 여러 필추니들이 멀리서 난탁가가 오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대덕이시여.”
곧 자리를 펴고 그에게 편히 앉기를 청하였다. 여러 필추니들은 난탁가의 발에 예배하고 나서 한쪽에 앉았다. 난탁가는 여러 필추니들을 위하여 법요(法要)의 네 가지인 시(示)ㆍ교(敎)ㆍ이(利)ㆍ희(喜)를 자세히 설하고, 이미 법을 설하고 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대세주 필추니는
오백 명의 필추니를 데리고 세존께서 계신 곳에 가서 세존의 발에 예배드렸다(이하 자세한 것은 앞에서와 같다). 더 나아가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떠나갔다.
세존께서는 필추니들이 떠나간 후에 여러 필추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이 난탁가 필추가 이미 오백 명의 필추니들을 바르게 가르치고 훈계하여 모두 다 해탈케 해서 구경처(究竟處)를 얻게 한 것을 보았느냐? 이 여러 필추니들이 만약 오늘로 목숨이 다하더라도 나는 그 한 사람이라도 나고 죽는 길에서 거듭 떠돌게 되는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니, 이제는 모든 고통의 경계[苦際]를 다했느니라. 너희들 필추들은 비유컨대 초하루부터 15일까지 달이 공중에 처하자 사람들이 다 보면서 다시는 ‘이 명월은 꽉 찼는가 차지 않았는가?’라고 의심하지 않으니, 이 명원은 지극히 원만해서 구경(究竟)을 말미암기 때문이다.
이처럼 난탁가 필추는 저 오백 명의 필추니를 위하여 바르게 가르치고 바르게 훈계해서 해탈을 얻게해서 구경처에 이르게 하였느니라. 만약 오늘로 목숨이 다하더라도 나고 죽는 길에 유전(流轉)함을 끊어서 다시는 생(生)을 받지 않으리라.”
그때 세존께서는 저 오백 명의 필추니가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은 것을 수기하시니, 여러 필추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기뻐하며 믿고 받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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