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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2153 불교(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 31권 / 根本說一切有部毗奈耶)

by Kay/케이 2023.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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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根本說一切有部毗奈耶) 31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 제31권


의정 한역


21) 중불차첩교수필추니학처 ②
안으로 거두어서 게송으로 말한다.

육중필추의 가르침은 바른 이치가 아니니
대로(大路)1)와 소로(小路)2)에게
부처님께서 훌륭한 덕을 밝게 드러내시어
자세히 옛날의 인연을 말씀하시네.

쥐가 많은 재물을 얻었기 때문에
의왕(醫王)은 마음에 게으름을 일으켰네.
그를 위하여 지혜로운 말[馬]의 일을 말씀하시니
성인이 아니거든 헤아리지 말지니라.

어느 때 세존께서는 나이 많은 여러 필추들로 하여금 필추니들을 차례로 가르치도록 이르셨다.
그때 육중필추는 필추니들을 가르칠 차례인 날짜가 되자 곧 그 필추니의 처소에 갔다. 그런데 그들은 여러 필추니들과 말을 주고받으며 농담을 하면서 몸과 손을 서로 더듬어 잡기도 하고, 필추니 중에서 사랑스러운 자와 함께 법답지 못한 일을 저지르기도 하였으니, 만약 사랑스럽지 않으면 그를 따르지 아니하다가 끝내는 복도에서 경행을 하며 욕을 하였다. 그러자 필추니로서 욕심이 적고 계율 지키기를 좋아하는 자가 즉시 그 일을 필추에게 가서 말하였다. 필추는 들은 뒤에 세존께 낱낱이 아뢰니,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비록 차례가 되더라도 육중필추에게는 필추니를 가르치지 못하도록 하여라.”
그런데 육중필추는 비록 이 같은 가르침을 듣기는 하였으나 제멋대로 차례를 만들어서 여러 필추니들을 가르쳤는데, 이전과 같이 비법(非法)을 저질렀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약 대중이 차출하지 아니했으면 가르쳐서는 안 된다.”
이때 육중필추는 이 말씀을 듣고 나서 모두가 지경 밖으로 나가 자기들끼리 서로 차출해 보내서 예전과 같은 허물을 일삼았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경 밖에서 서로 차출하여 보내서는 안 되느니라.”
이 말씀을 듣고 나자 육중필추는 곧 지경 안에서 병이 난 사람의 욕구[欲]를 취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묻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별도의 대중에게 사람을 보내는 경우에는 15일마다 포쇄타(褒灑陀)를 행할 때에 여러 스님네들이 다 모여서 필추니를 가르칠 사람을 보내되 마땅히 이와 같이 보내야 한다. 먼저 ‘너 아무개는 능히 필추니를 가르칠 수 있느냐, 없느냐?’라고 물어서 그가 ‘내가 능히 가르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하거든 한 사람의 필추로 하여금 백갈마(白羯磨)가 되게 하여 이와 같이 해야 하느니라.
‘대덕 승가는 들으십시오. 이 필추 아무개가 필추니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아무개는 즐거이 필추니를 가르치고자 합니다. 만약 승가에서 때가 이르러서 승가가 허락을 하시면, 승가는 이제 이 아무개를 보내어 필추니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게 해야 합니다. 이 아무개는 즐거이 필추니를 가르치고자 합니다. 이와 같이 알립니다.’
다음으로는 이와 같이 갈마를 하여라.
‘대덕 승가는 들으십시오. 이 필추 아무개가 필추니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아무개는 즐거이 필추니를 가르치고자 합니다. 만약 승가에서 필추 아무개를 보내어 필추니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을 허락하시면, 이 아무개는 즐거이 필추니를 가르치고자 합니다. 만약 여러 구수께서 아무개를 보내어 필추니를 가르치는 사람으로 만들기를 허락하신다면 잠자코 계시고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말씀하십시오. 승가는 이제 아무개를 보내어 필추니를 가르치도록 하는 것을 허락하여 마쳤으니, 까닭인즉 아무 말 없이 잠자코 계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제 이와 같이 지니겠습니다’라고 해야 하느니라.”
그리하여 필추들은 세존께서 필추니를 가르치는 사람을 보내도록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서 드디어 간택하지 아니하고 곧바로 차출하여 보내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스스로 조화롭게 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조화롭게 할 수 있다고 하거나, 스스로 고요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고요하게 할 수 있다고 하거나, 스스로 편안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고 하거나, 스스로 끊어 없애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끊어 없애게 할 수 있다고 하거나, 스스로 욕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으면서 다른 사람을 구제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옳지 않느니라.”

이어서 여러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간택을 하지 아니하고서 함부로 보내어서는 안 된다. 만약 필추가 일곱 가지 법을 갖추고 있다면 대중은 그를 차출하여 필추니를 가르치게 하여라. 무엇을 일곱 가지라고 말하는가. 첫째는 계율을 지키는 자요, 둘째는 들은 것이 많은 자요, 셋째는 기숙위(耆宿位)에 머물러 있는 자, 넷째는 도성어(都城語)를 잘 하는 자, 다섯째는 일찍이 몸으로 필추니를 더럽히지 않은 자, 여섯째는 8타승법(他勝法)3)을 잘 분별하는 자, 일곱째는 8존중법(尊衆法)4)을 잘 해석할 수 있는 자이니라.
계율을 지키는 자란 무엇을 말하는가. 4바라시가법(波羅市迦法)에서 하나도 어그러뜨리거나 범함이 없는 자를 말하느니라.
들은 것이 많은 자란 무엇을 말하는가. 이부계경(二部戒經)을 잘 외우는 자이니라.
기숙위(耆宿位)에 머무르는 자란 무엇을 말하는가. 구족계를 받고 20하안거(夏安居)를 모두 채웠거나 이것을 넘어선 자를 말하느니라.
도성어(都城語)를 잘 하는 자란 무엇을 말하는가. 능히 왕도(王都)의 말을 잘 알고 그 말이 시골에서도 통하는 자를 말하느니라.
몸으로 필추니를 더럽히지 않은 자란 무엇을 말하는가? 일찍이 필추니와 더불어 몸을 접촉하지 않은 자로서 설사 일찍이 몸을 접촉하였더라도 이 죄를 이미 법답게 뉘우친 자를 말하느니라.
8타승법을 분별하는 자란 무엇을 말하는가? 처음 여덟 가지에서 개차(開遮)5)를 잘 아는 자이니라.
8존중법을 잘 아는 자란 무엇을 말하는가? 여덟 가지 일을 잘 열어서 설명할 줄 아는 자이니라.
만약 필추가 일곱 가지 법을 갖추었으면 대중이 마땅히 차출하여 필추니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게 해야 하느니라.”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만약 일곱 가지 법을 갖추었으면 필추니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차출했다. 그러나 육중필추는 대중이 보내지도 않았는데도 곧장 가서 가르쳤다.
욕심이 적은 필추들은 이 소식을 듣고 미워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내었다.
‘어찌하여 필추가 대중이 차출하지도 않았는데도 스스로 가서 필추니들을 가르치는가?’
이 인연을 세존께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이 인연으로 필추들을 모으시고 곧 육중필추에게 물으시고……(자세히 말씀하신 것은 앞에서와 같다). 여러 가지로 꾸짖으셨다.
“내가 이제 여러 필추들을 위하여 걸맞은 계율을 제정하나니,
이와 같이 말하노라.
만약 필추가 승가에서 차출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가서 필추니를 가르치고 훈계한다면 바일저가이니라.”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여러 필추들을 위하여 계율을 제정하여 마치셨다.
부처님께서 실라벌성의 서다림 급고독원에 계셨다.
이 성 안에 사는 어떤 바라문의 아내는 아이를 낳기만 하면 아이가 곧 죽었다. 나중에 아내가 또 임신을 하였는데, 바라문은 이 일을 알자 손으로 턱을 괴고 근심하며 앉아 있었다. 이웃집의 할머니가 그곳에 와서 물었다.
“바라문이여, 무슨 까닭으로 근심스럽게 턱을 괴고 있는가?”
“저의 아내가 박복하여 매번 아이를 낳으면 곧 죽었습니다. 이제 또 임신을 하였으니, 설사 아기를 낳더라도 곧 죽으리니 어찌 근심이 되지 않겠습니까?”
할머니가 그에게 말했다.
“만약 너의 아내가 아이를 낳는 날이 되거든 마땅히 나를 부르도록 하여라.”
뒤에 그 아내가 아이를 낳는 날이 되자 즉시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는 부인이 있는 곳으로 가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난 것을 보았다. 할머니는 아기를 데려다가 깨끗이 목욕시킨 뒤에 곱고 흰 담요로 몸을 싸고 좋은 소(酥)를 입 안에 넣어 주고서 심부름하는 여자에게 주며 말하였다.
“너는 이 아기를 안고서 큰 길 네거리에 놓아 두어라. 만약 사문이나 바라문이 그곳을 지나가면, 너는 아주 은근하게 공경을 다하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이 어린 아기가 성자의 발에 예배드립니다’라고 고하여라. 해질 무렵에 이르도록 목숨이 붙어 있거든 안고 돌아오고, 목숨이 붙어 있지 않거든 아무 데나 버리고 너만 돌아와도 좋다.”
심부름하는 여인은 일러준 대로 아기를 안은 채 큰 길 네거리로 가서 길가에 놓아두었다. 여러 외도의 무리가 새벽에 여러 천(天)의 사당에 예배드리고 길을 건너서 지나갔다. 그러자 심부름하는 여인은 멀리서 그들이 오는 것을 보고는
곧 공경을 다하여 아기를 가리켜 보이면서 말하였다.
“성자여, 이 어린 아기가 성자의 발에 예배드립니다.”
그들은 축원(祝願)하였다.
“당신의 아기가 무병장수하고 천신(天神)이 옹호해서 부모의 염원이 모두 다 원만히 성취되기를.”
또 수많은 나이 많은 필추들이 실라벌성에 들어와 걸식하려고 그곳을 지나갔다. 심부름하는 여인은 그들을 보고 역시 앞에서처럼 말하였다. 그러자 여러 필추들은 위에서와 같이 축원을 하였다.
그때 세존께서는 하루의 초분(初分)에 의발을 챙기시고는 실라벌성에 들어가 걸식을 하시려고 역시 이곳을 지나가셨다. 그 심부름하는 여인은 세존께서 오시는 것을 보자 아주 은근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오륜(五輪)6)을 땅에 대고 세존께 예배드리고 나서 아기를 가리켜 보여 드리며 합장한 채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어린 아기가 세존의 발에 예배드리나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의 아기가 무병장수하고 천신이 옹호해서 부모의 염원이 모두 다 원만히 성취될 것이다.”
이와 같이 공경을 다하다가 해질 무렵에 아기를 살펴보니 목숨이 아직 붙어 있었다. 여인이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자 집안사람들이 그녀를 보고 물었다.
“아기가 살아 있느냐?”
“살아 있습니다.”
“이 아기를 안고 어느 곳에 놓아두었더냐?”
“큰 길 가에 두었습니다.”
부모가 기뻐하면서 곧 종친들을 모아 크게 잔치를 베풀고는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주려고 여러 사람들이 의논하였다.
“이제 이 아기를 처음 태어나자마자 큰 길에 갖다 두었으니, 마땅히 아기의 이름을 대로(大路:범어로는 莫訶半託迦)라고 짓는 것이 좋겠다.”
이 대로 동자(大路童子)는 아주 좋은 음식으로 인해 무럭무럭 자라나면서 갖가지 예능(藝能)과 쓰기와 계산하기 등의 재주를 배웠다. 자세한 것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바라문이 지니는 법식(法式)과 옷을 입고 밥을 먹으며 씻고 깨끗이 하는 법도(法度)와 암송하는 것과 음성이 모두 묘함을 다하였고, 4명론(明論)을 잘 하고 6작업(作業)7)을 잘 알고
큰 지혜를 갖추니, 오백 명의 아이들이 그에게 나아가 배웠다.
한편 바라문은 능히 욕심을 여의지 못하였으니, ‘사람이 심하게 목이 마를 때 바닷물을 먹으면 갈증이 더욱 심해지는 것이 마치 음란한 것을 탐하는 자가 욕정에 익숙해지면 탐심이 더욱 증장되는 것과 같다’고 하는 말과 같았다. 바라문은 욕정에 물든 마음을 버리지 못해서 아내가 또다시 임신을 하였다. 막 아기를 낳으려 할 때에 다시 할머니께 말씀을 드렸다. 그 할머니가 와서 해산을 보살펴서 아들을 또다시 낳자 다시 예전처럼 몸을 깨끗이 씻기고 흰 담요를 둘러서 심부름하는 여인에게 주며 일렀다.
“이 아기를 데리고 가서 큰 길 가에 놓아두어라.”
그리고는 앞에서처럼 하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때에 심부름하는 여자는 성품이 게을러서 아기를 안아다가 작은 길가에 놓아두었다. 사문ㆍ바라문ㆍ외도ㆍ필추와 부처님께 예전처럼 가리켜 보여드리자 모두가 아기를 위해 축원하였다. 자세히 말한 것은 앞에서와 같다.
해질 무렵이 되었는데도 아기가 살아 있자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는 기뻐하면서 심부름하는 여인에게 물었다.
“너는 이 아기를 안고 어디에 갖다 놓았었느냐?”
“작은 길가에 놓아두었습니다.”
부모는 곧 널리 큰 모임을 베풀고 아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다들 말하였다.
“이 아이는 작은 길가에 놓아두고 수명이 길기를 바랐으니, 마땅히 이 아이의 이름을 소로(小路)라고 지어 주어야겠다.”[범어로는 주다반탁가(朱茶半託迦)라고 하는데, 주다(朱茶)는 작다는 뜻이고 반닥가(半託迦)는 길이라는 뜻이다. 예전에 주리반특가(周利槃特迦)라고 한 것은 와전이다].
아이가 점차 자라매 아이를 가르치고자 그 스승은 먼저 실담장(悉曇章)8)을 읽게 하였다. 그러나 품성이 우둔하여 담(談)을 말하면 실(悉)을 잊어버리고 실(悉)을 말하면 담(談)을 잊어버렸다.
그때에 친교사(親敎師)가 아이의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내가 일찍이 여러 아이들을 가르쳐 보았지만 이렇게 우둔한 아이는 아직 보지 못하였습니다. 대로 동자는 조금 가르쳐 주면 많은 것을 알아듣는데, 이 아이는 ‘실’을 말하면 ‘담’을 잊어버리고 ‘담’을 말하면 ‘실’을 잊어버리니 나는 이 아이에게 정말 학문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이 말을 듣고 곧 생각하였다.

‘모든 바라문이 문자를 잘 아는 것은 아니니, 이 아이에게는 명론(明論)의 암송을 가르치는 것이 좋겠다.’
그리하여 아이를 데리고 명론을 가르치는 스승에게 부탁해서 외우는 것을 가르치게 하였다. 스승은 명론을 외우게 하였는데, 봉(蓬)을 말하면 옹(瓮)을 잊어버리고 옹(瓮)을 말하면 봉(蓬)을 잊어버렸다[이 봉ㆍ옹의 두 소리는 바라문의 4명론(明論) 중의 비밀 글자로서 능히 여러 뜻을 포함하여 인신(人神)을 도맡아 다스릴 수가 있다. 이것을 익혀 외우는 자는 널리 복과 지혜가 생겨난다고 해서 무릇 초학자들은 모두 손을 가지고 소리를 따르면서 그것을 외워 익힌다. 또한 천타성(闡陀聲)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마디마디로 나눈 뜻이다. 그러나 실(悉)ㆍ담(談)ㆍ봉(蓬)ㆍ옹(瓮)의 글자는 번역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이런 까닭에 그 범운(梵韻)은 그대로 둔다].
이때 그 스승이 아이의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내가 일찍이 많은 아이들을 가르쳐 보았는데 이렇게 우둔한 아이는 아직 보지 못하였습니다. ‘봉’을 말하면 ‘옹’을 잊어버리고 ‘옹’을 말하면 ‘봉’을 잊어버리니, 나는 참으로 이 아이에게 외워 익히는 것을 가르치지 못하겠습니다.”
바라문은 이 말을 듣고 나서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모든 바라문이 외우고 익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종성 바라문(種姓婆羅門)이기만 하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데, 무엇하러 또 고생을 시키겠는가?’
이 아이의 품성이 우둔한 까닭에 당시 사람들은 모두 ‘우로(愚路)’라고 불렀다. 아버지는 우로를 지극히 사랑하여 청하는 곳이 있으면 반드시 그를 데리고 다녔다.
뒤에 아버지 바라문은 무거운 병이 들었다. 의사가 온갖 약을 써 보았으나 점점 쇠약해지자 대로에게 말하였다.
“내가 죽은 후에라도 너는 아무 걱정이 없으나 우로는 아는 것이 없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아이를 업신여기지 말고 편안하든 위험하든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서로 도와서 형제의 의리를 다하도록 하여라. 나의 말을 명심할지니,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쌓아 모인 것은 모두 흩어져 없어지나니
높은 산이라 해도 반드시 무너지느니라.
만나서 모인 것은 끝내 흩어지나니
목숨이 있는 것은 모두 다 죽음으로 돌아가느니라.”

이와 같이 말을 하고 나서 곧 운명하였다.
두 아들은 슬피 울며 장례를 갖춘 후에 숲으로 옮겨 화장을 했다. 그리고 나서 슬퍼하며 돌아갔다.

이때에 사리자와 대목련이 오백 명의 필추와 함께 교살라국(憍薩羅國)에 가서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실라벌성에 이르렀다. 성 안의 사람들이 사리자와 대목련이 오백 명의 필추와 함께 온다는 소식을 듣고 성 밖으로 나가 맞아드렸다. 그때 대로는 성 밖의 어느 나무 아래서 오백 명을 거느리고 학업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여러 대중이 함께 성 밖으로 가는 것을 보고 학생에게 물었다.
“지금 이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것이냐?”
학생이 대답했다.
“이 사람들은 사리자와 대목련께서 오백 명의 필추와 함께 이곳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나가서 영접하려는 것입니다.”
대로가 물었다.
“그 두 사람에게는 어떤 볼 만한 것이 있느냐? 내가 예전에 들으니, 그들은 두 사람 다 가장 높은 바라문 종족을 버리고 두 번째 종족인 찰제리 종족의 사문인 교답마(憍答摩)의 처소에 출가하였다고 하는데, 어찌 영접할 만한 것이겠느냐?”
그 문인(門人) 가운데에 마납박가(磨衲縛迦)로서 삼보를 존숭하던 청년이 있었는데, 그가 앞으로 나아가 스승께 아뢰었다.
“스승께서는 그런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그분들은 성과(聖果)를 얻으셨으니 범부의 지혜로는 헤아릴 수 없는 크고 부사의한 덕이 있으십니다. 만약 스승님께서 그분들의 설법을 들으시면 반드시 뒤따라서 출가하실 것입니다.”
그때에 여러 학도들은 틈이 있는 날이면 늘 성의 저자 거리를 살피거나, 혹은 선거(仙渠)9)에 가거나, 혹은 제사 지낼 때 쓰는 땔감을 모으거나, 혹은 천(天)의 사당에 예배하였다. 뒤에 쉬는 여가에 학도들이 밖으로 나가자 대로는 생각하였다.
‘마납박가가 부처님의 법을 칭찬하니 내가 이제 몰래 가서 들어 보아야겠다.’
곧 성 밖으로 나가서 한 필추가 나무 아래에서 경행하는 것을 보고 그곳에 나아가 청하였다.
“필추여, 세존의 묘하신 법을 조금만 말하여 주십시오.”
그 필추는 곧 십악업도(十惡業道)와 십선과보(十善果報)를 자세히 말해주었다. 대로는 듣고 나서 공경하고 믿는 마음이 생겨서 말했다.
“필추여,
저는 잠시 후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떠나갔다. 뒷날 쉬는 날에 다시 필추의 처소에 가서 설법을 청하자, 필추는 곧 십이연생(十二緣生)을 자세히 말해 주었다. 그는 듣고 나자 깊은 신심이 두 배나 일어나서 말하였다.
“성자여, 제가 법률(法律)을 잘 말하는 곳에서 출가하여 여래께서 계신 곳에서 범행(梵行)을 닦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그 필추는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마땅히 이 사람이 출가하는 것을 허락하여 법(法)의 조종간을 잡게 하고 법의 횃불을 들게 해야겠다.’
그리고 나서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
바라문이 말했다.
“저는 이곳에서는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진 탓에 출가를 할 수 없습니다. 마땅히 다른 곳에 가서 출가를 해야겠습니다.”
필추는 곧 그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서 출가하는 것과 아울러 구족계를 받도록 해 주고 그에게 말하였다.
“구수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두 가지 업(業)이 있으니, 독송(讀誦)과 선사(禪思)입니다. 이 두 가지 가운데에서 당신은 어떤 일을 좋아합니까?”
그가 대답했다.
“오파타야(鄔波駄耶)여, 두 가지를 다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낮에는 여러 경전을 독송하여 오래지 않아 삼장(三藏)에 아주 익숙해졌고, 초야(初夜)와 후야(後夜)에는 관찰과 사유로 모든 번뇌를 끊었다. 그리하여 아라한과를 증득해서 삼명 육통(三明六通)을 얻고 팔해탈(八解脫)을 구족하여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梵行)은 이미 섰으며 해야 할 일을 이미 갖추어 후유(後有)를 받지 않는다’고 하는 여실(如實)한 지견(知見)을 얻었다. 마음에 아무 장애가 없는 것이 마치 손으로 허공을 가르는 것과 같았으니, 칼로 몸을 찢고 가르든 그곳에 향을 발라 낫게 해주든 상대에 대해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마치 금덩이를 흙이나 다름없이 보듯이 온갖 명예와 이익을 모두 버렸으니, 제석과 범천의 여러 하늘들이 모두 공경하였다.
그때에 대로는 이미 아라한과를 얻고 나서 스스로 생각하였다.
‘나는 자주 독송을 하고 부지런히 사유하여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을 이제 이미 얻었다. 이제 실라벌성으로 가서 세존의 발에 예배드리고 받들어 섬기며
공양을 올려야겠다.’
드디어 오백 명의 문도들과 함께 의발을 챙겨서 점차로 유행하다가 실라벌성에 이르렀다. 그때에 이 성 안의 사람들은 구수 대로가 오백 명을 데리고 교살라로부터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이곳에 오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자 모두 나와서 맞아들였다. 그때 저 우로는 형과 이별한 뒤로 가업이 나날이 쇠퇴하다가 끝내 빈궁해지자 걸식을 하며 목숨을 이어나갔다. 그는 여러 사람들이 나가는 것을 보고서 물었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성곽 밖으로 나가는 것인가요?”
여러 사람들이 그에게 말했다.
“성자 대로께서 오백 명의 사람들과 함께 교살라국으로부터 지금 이곳으로 오고 계시다. 이런 까닭에 여러 사람들이 성 밖으로 나가서 영접하는 것이다.”
우로는 이 말을 듣고 나서 생각하였다.
‘이 사람들은 형제 사이도 아니고 종친 사이도 아닌데도 나가서 맞아들이는데, 하물며 그의 아우인 내가 어찌 나가지 않을 것인가.’
즉시 함께 따라 나가서 형을 만났다.
형이 위로하여 물었다.
“우로야, 오랫동안 너와 헤어져 있었는데 그 동안 잘 지냈느냐?”
“고생스럽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출가를 하지 않느냐?”
“저는 지극히 어리석고 둔한데, 누가 기꺼이 저를 출가시키려 하겠습니까?”
대로는 곧 생각했다.
‘이 아우에게 선근(善根)이 있는가?’
즉시 관찰하여 선근이 있음을 알았다.
‘비록 선근은 있으나 누구에게 맡겨야 할 것인가?’
자기에게 맡겨진다는 것을 관하고는 그에게 말했다.
“내게 오너라. 네가 출가하는 것을 허락한다.”
“좋습니다.”
이내 출가를 허락하고 아울러 구족계를 준 뒤에 하나의 가타(伽他)를 주어서 부지런히 익혀 외우도록 하였다.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업(業)에서 악을 짓지 말고
세간의 여러 유정(有情)을 괴롭히지 말라.
정념(正念)으로 욕망의 대상이 공함을 관하여 알아서
아무 이익이 없는 괴로움을 멀리 여읠지니라.

우로는 이 가타(伽他)를 외웠으나 3개월이 지나가도 능히 외울 수가 없었다. 소를 치는 사람들이 여럿이 있었는데, 그가 외우는 소리를 듣고는 모두가 그 가타를 외웠다.
그러자 우로는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서 소치는 사람들이 있는 처소에 가서 가타(伽他)를 달라고 청하니, 그들은 곧 말해 주었다.
그런데 부처님들의 상법(常法)에서는 두 가지 때에 성문 제자(聲聞弟子)가 모두 함께 모이도록 되어 있으니, 하나는 5월 15일에 안거를 하려고 할 때이고, 또 하나는 8월 15일에 수의(隨意)를 하는 때이다. 첫 번째 이유로 인해 모이게 되면 각자 스승이 계신 곳에서 사유와 독송의 학업을 받는다. 그것을 받고 나면 곧 성읍이나 마을에서 안거를 하였다. 두 번째 이유로 인해 모이게 되면, 일찍이 받은 경전을 시험하여 다시 새로운 업(業)을 청하고 깨달은 것이 있으면 모두 알렸다.
그때에 구수 대로가 데리고 있는 제자 문인들은 각처에서 안거하기를 마쳤다. 그리고 두 번째로 모이는 때가 되자 대로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서 일찍이 받은 경전을 시험하고 다시 새로운 업을 청하여 깨달은 것이 있으면 아뢰었다. 그런데 우둔한 사람은 육중필추의 곁에 머물면서 그들을 모시고 섬겼는데, 우로도 또한 육중필추의 가까이에 있었다.
육중필추가 말하였다.
“우로야, 너와 함께 배우는 이들은 각자 스승께서 계신 곳에 가서 학업 받기를 청하는데, 너는 어찌하여 가서 새로운 업을 받기를 청하지 않느냐?”
“저는 3개월 동안 가타(伽他) 하나도 아직 외우지 못했는데, 어느 겨를에 새로운 것을 구하겠습니까?”
육중필추가 말했다.
“구수여, 어찌 ‘받은 업(業)을 익히지 못하면 나날이 더욱 어려워진다’고 말하는 것을 듣지 못했는가? 어찌하여 가타를 외울 수 없겠느냐? 너는 이제 송(誦)을 가르치는 자를 찾는 것이 좋겠다.”
우로는 그들의 강력한 권고를 받고서 친교사(親敎師)에게 가서 아뢰었다.
“스승이시여, 저에게 송을 가르쳐 줄 사람을 주십시오.”
대로는 이 말을 듣고 나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우로가 스스로 이런 마음을 낸 것인가, 주변 사람이 부추긴 것인가?’
다시 관찰하다가 다른 사람의 권고를 받은 것임을 알았다. 그러자 그는 다시 생각하였다.

‘우로는 내가 권하여 칭찬하는 것으로 교화할 수 있을 것인가? 꾸짖는 것으로 교화하여 제도할 수 있을 것인가?’
마침내 꾸짖는 것으로 교화할 수 있음을 관하자 손으로 정수리를 눌러서 방 밖으로 내쫒으며 꾸짖었다.
“너는 지극히 어리석고도 둔하구나. 네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그러자 우로는 방 밖에서 눈물을 옷가슴까지 줄줄 흘리면서 길게 탄식하였다.
“나는 속가에 있는 것도 마땅치 아니하고 다시 출가를 하여도 마땅치 아니하니, 이제 이 괴로움을 어디에 하소연할 것인가?”
세존의 상법(常法)에서는 때때로 산이나 시냇가에서 노니시거나, 혹은 숲 속이나 묘지에 노니시거나, 혹은 절에서 노니시는 일이 있다. 이때도 세존께서는 인연이 있으셔서 대로의 방에 가셨는데, 도착하자마자 우로가 방 밖에서 슬피 우는 것을 보시고 물으셨다.
“너는 어찌하여 방 밖에서 슬피 우느냐?”
“세존이시여, 저는 성품이 우둔하고 총명한 지혜의 능력이 없어서 친교사에게 방 밖으로 쫓겨났나이다. 이미 속인도 아니고 다시 출가인도 아니오니, 이제 이 괴로움을 하소연할 곳이 없나이다.”
세존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치가 그와 같지 아니하니라. 모니(牟尼)의 성스러운 가르침은 너의 스승이 3무수대겁(無數大劫) 동안 무량 백천의 고행을 갖추어 닦고 육바라밀행을 원만히 닦아 성취해서 가져 온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성스러운 가르침은 다만 내가 오랜 시간에 만행(萬行)을 갖추어 닦아서 스스로 가져온 것이니라. 너는 능히 내 곁에서 친히 외는 것을 받을 수 있겠느냐?”
그러자 우로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지극히 어리석고 둔한데, 어떻게 부처님께 친히 학업을 받겠나이까?”
그때 세존께서는 가타(伽他)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이 스스로 어리석다고 말을 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지혜로운 사람이라 하느니라.
어리석은 사람이 망령되이 스스로 지혜롭다 일컬으면
이것을 참으로 어리석다고 이르느니라.


그러나 불세존께서 배우는 자에게 친히 구자(句字)를 가르친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는 아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우로를 가르치는 것이 좋겠다.”
아난타는 그에게 독송하는 것을 가르치라는 분부를 공손히 받았으나, 그는 학업을 받아 지니질 못했다. 그러자 아난타는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 나아가서 부처님의 두 발에 예배드리고 나서 한쪽에 서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미 부처님을 모시고 법장(法藏)을 받아 지녀서 무리에게 지시하여 바라문들이 그에게 설법을 하였사오나, 저는 우로를 가르칠 방법이 없나이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곧 우로를 부르시어 두 구절로 된 법을 주셨으니, ‘나는 먼지를 털어내고, 나는 때를 없앤다’는 것이었다. 이것도 말에 따라 기억을 하지 못하자, 세존께서는 보시고 나서 그 업장의 무거움을 아시고 이를 소멸시키고자 우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능히 여러 필추를 위하여 신발을 털어 줄 수 있겠느냐?”
부처님께 아뢰었다.
“능히 할 수 있나이다.”
“너는 이제 가서 여러 필추들을 위하여 신발을 털도록 하여라.”
우로는 이내 가르침을 받들고서 신발을 털었지만, 여러 필추들이 허락하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막지 말라. 이 사람으로 하여금 업장을 제거해 주려는 것이니라. 그 두 구절로 된 법을 너희는 마땅히 가르치도록 하여라.”
여러 필추들은 신발을 털게 하고 두 구절로 된 법을 가르쳤다. 우로는 정성껏 부지런히 이 법을 언제나 외웠는데, 쉼 없이 공을 들인 끝에 마침내 통하게 되었다. 그때 우로 필추는 후야시(後夜時)에 이렇게 생각하였다.
“세존께서 나에게 외우도록 하신 두 구절로 된 법, ‘나는 먼지를 털어내고 나는 때를 없앤다’는 글귀의 뜻이 무엇일까? 먼지와 때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안이고 둘은 밖이다. 이 법언(法言)은 안을 드러낸 것일까, 밖을 드러낸 것일까? 곧바로 말씀하신 것일까, 은밀하게 말씀하신 것일까?”
이렇게 사유하다가 홀연히 통하여 깨달으면서 선근이 발기하고 업장이 소멸했다. 그러자 일찍이 배우지 않은 세 가지 묘한 가타(伽他)가
그 자리에서마음으로부터 명백하게 나타났다.

이 먼지는 욕심을 말하지 흙먼지가 아닌데도
은밀히 이 욕심을 흙먼지라고 말하셨네.
지혜로운 사람은 이 욕심의 물듦을 능히 없애나니
부끄러움을 모르거나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네.

이 먼지는 성내는 마음이지 흙먼지가 아닌데도
은밀하게 이 성내는 마음을 흙먼지라고 말하셨네.
지혜로운 사람은 능히 이 성내는 마음을 없애나니
부끄러움을 모르거나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네.

이 먼지는 어리석음이지 흙먼지가 아닌데도
은밀하게 이 어리석음을 흙먼지라고 말하셨네.
지혜로운 사람은 능히 이 어리석음을 없애나니
부끄러움을 모르거나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네.

이때 우로는 이 게송의 뜻을 생각하고 이치에 맞도록 수행해서 삼독(三毒)을 깨끗이 제거했다. 그는 부지런하고 용맹스러우면서도 게으름 없이 갖가지 번뇌를 끊어서 잠깐 사이에 아라한과를 증득하였으니, 평등하게 마음을 움직여서 사랑과 미움이 둘이 아니고, 무명(無明)의 껍질을 깨뜨려서 영원히 나고 죽음의 울타리를 벗어나자 제석과 범천 등 여러 하늘이 존중하여 공양하게 되었다. 자세히 말한 것은 앞에서와 같다.
그는 곧 그 처소에서 가부좌를 하고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대로가 다니다가 그가 단정히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아라한은 관(觀)하여 보지 아니하면 지견(智見)이 나지 아니하는지라 그의 팔을 잡아끌면서 이름을 부르며 말하였다.
“구수여, 일어나서 송(誦)을 익힌 연후에 사유하여라.”
우로 필추는 형이 자비스런 마음으로 팔을 잡아당기면서 부르자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로 그 손을 길게 펴서 마치 코끼리의 코처럼 뒤따라갔다.
대로는 뒤를 돌아보다 그 희유한 모습을 보고 물었다.
“구수여, 그대는 능히 이 뛰어난 덕을 증득하여 알았는가?”
우로는 잠자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 우로 필추가 뛰어난 과보를 얻고 나자, 여러 외도의 무리들이 함께 헐뜯고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켰다.
“사문 교답마는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깊고 깊은 미묘한 법을 증득하였으니, 알기 어렵고 깨닫기 어려우며 사량(思量)하는 사람이 능히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대단히 총명하고 지혜 있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알 수 있다’고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망령된 말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 우로는
지극히 어리석고 둔한데도 오히려 증득하여 들어갔으니 무엇이 깊고 깊은가?”
세존께서 아시고 이와 같이 생각하셨다.
‘나의 이 제자가 덕이 묘고산(妙高山)과 같다면 어찌하여 여러 사람들이 헐뜯고 싫어할 것인가? 이번에 마땅히 그 덕을 드러내어 드날리는 것이 좋겠구나.’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아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가서 우로에게 필추니를 가르치도록 일러라.”
아난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고서 우로가 있는 곳에 가서 말하였다.
“구수여, 부처님께서 구수로 하여금 필추니를 가르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로는 듣고 나서 곧 이렇게 생각했다.
‘세존께서는 무슨 뜻에서 나이 많고 경험 많은 대덕 필추들을 제쳐놓고 나로 하여금 필추니들을 가르치게 하시는 것일까? 나로 하여금 스스로 뛰어난 덕을 드러내게 하려고 하시는구나. 나는 이제 마땅히 부처님의 뜻을 만족시켜 드려야겠다.’
그때에 어떤 필추니가 절 안에 들어와서 가르쳐 줄 스승을 청하여 수사 필추(授事苾芻)에게 물었다.
“성자여, 누가 우리를 위하여 교수사(敎授師)가 되셨습니까?”
“구수 우로입니다.”
그 필추니는 그 말을 듣고 나서 스스로 말하였다.
“그대 여러 대덕들이 여자를 멸시함을 알만하다. 이 필추는 석 달 동안에 하나의 송(頌)도 받아 지니지 못하였는데, 어떻게 여러 필추니들을 가르치라고 보내려 하는가? 저 여러 필추니들은 삼장에 익숙하고 변재가 걸림이 없는데, 대법사(大法師)께서는 어찌하여 그로 하여금 와서 가르치도록 하셨는가? 우리들은 시험 삼아 나아가 그 발에 예배드려야겠다.”
그리고 나서 우로에게 가서 공경을 다하여 아뢰었다.
“아차리야여, 잊지 마소서. 왕원사(王園寺)의 필추니들은 서다림의 스님을 멀리 떨어져서 뵈옵고 대덕께 받들어 여쭙니다.
병과 고뇌가 적으시고 기거하시는데 편안하오며 안락하게 다니시는지요? 이제 저희들이 교수사를 청하나이다.”
우로가 대답했다.
“오비가10)
[오비가(奧箄迦)라 번역하면 방편(方便)이라는 뜻이 된다. 이 말의 뜻은 네가 진술한 것은 모두가 열반에 나아가는 방편이라고 말한 것이다. 만약 번역을 하여 ‘호(好)’라고 하거나 ‘이(爾)’라고 하면, 비록 이전의 것과 다르지는 않더라도 곧 방편의 이치와는 어그러지게 된다.
이 때문에 본래의 글자를 그대로 둔 것이다.]
그 필추니는 듣고 나서 스스로 말하였다.
“이 분도 또한 ‘오비가(奧箄迦)’라고 말하는 것을 아는구나.”
곧 작별하고 떠나가서 필추니의 절에 이르렀다. 여러 필추니들이 물었다.
“자매여, 누가 우리들을 가르치러 오시는가?”
“성자 우로입니다.”
그러자 열두 명의 필추니들이 이 말을 듣고 서로 말하였다.
“그대들은 여러 대덕이 여인을 멸시함을 보십시오. 그 필추는 석 달 동안에 하나의 송(頌)도 받아 지니지 못하였는데, 어떻게 그를 보내어 필추니들을 가르치게 하려는 것인가?”(자세히 말한 것은 위에서와 같다)
드디어 서로 말하였다.
“자매여, 우리들 여섯 사람은 마땅히 사자좌를 12주(肘)의 높이로 설치하고 여섯 사람은 마땅히 실라벌성에 가서 여러 마을의 큰 길에서 널리 여러 사람들에게 이렇게 알리기로 합시다.
‘마땅히 아십시오. 내일 왕원사에 대법사로서 변설이 막힘이 없으신 분이 오셔서 여러 필추니들을 가르치시고 뛰어난 법을 말씀하실 것입니다. 만약 능히 듣는 이는 반드시 견제(見諦)를 얻어서 생사 속에 다시는 윤회를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여러 사람들이 와서 그 법을 들을 것이며, 우로 필추는 필경 잠자코 아무런 말도 주고받지 못해서 틀림없이 대중들의 비웃음을 살 것입니다.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어리석은 사람들이 다시는 필추니들을 가르치러 오지 않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상의하고 나서 여섯 사람은 급히 높은 자리를 설치하고, 여섯 사람은 성과 동네에 널리 알려서 계획한 것을 모두 끝냈다.
이때 우로는 하루의 초분(初分)에 의발을 챙겨 실라벌성에 들어가서 차례로 걸식을 했다. 음식을 다 얻고 나자 본래의 처소로 되돌아와서 걸식한 것을 먹고 난 뒤에 의발을 거두고 발을 닦고 나서 즉시 방 안에 들어가 생각을 한 곳에 매어 두고 머물렀다. 포후시(哺後時)가 되자 선정에서 일어나 한 명의 필추를 데리고 왕원사로 갔다.
그때 그 절 안에는 무량 백천의 대중들이 구름같이 모여 있었는데, 혹은 전생의 선근에 의해 경각(警覺)된 이도 있었고,
혹은 현재의 인연으로 서로 깨우친 이도 있었다. 그 대중들은 구수 우로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고 서로 물었다.
“두 사람이 함께 오시고 있으니 누가 법사이냐?”
어떤 사람이 말했다.
“앞에 있는 분이 법사이시다.”
여러 대중들은 저마다 업신여기는 마음을 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 필추니가 일부러 우리를 고민하게 하는구나. 이 우로는 석 달 동안에 하나의 송(頌)도 받아 지니지 못하였는데, 어찌 능히 가르칠 수 있고 우리를 위하여 설법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말을 하였다.
“우리들은 잠시 보자. 만약 능히 설법을 할 수 있다면 마땅히 그것을 듣겠지만, 일부러 조롱하는 것이라면 뒤에 일어나서 떠나가도 손해는 아니니, 그때 가서 떠나가도 또한 늦지 않다.”
여러 사람들이 다 앉아서 함께 득실(得失)을 살펴보았다.
구수 우로는 사자좌가 높은 것을 보자 이렇게 생각하였다.
‘조롱을 하는 것인가, 공경을 하는 것인가.’
그는 서로 괴롭힐 뿐 공경의 마음이 없음을 관찰해서 알았다. 그래서 구수 우로는 곧 오른쪽 손을 코끼리의 코처럼 펴서 그 높은 사자좌를 어루만져 낮고 조그맣게 한 뒤에 편안하게 나아가 앉았다. 이때에 대중들의 처소가 넓어서 두루 다 볼 수가 없었다. 법사는 곧 마음을 거두어들이고 정(定)에 들었다. 정에 들어가자 몸을 숨겨 나타내지 않은 채로 즉각 동쪽에서 허공으로 올라가 위에서 사위의(四威儀)를 나투고 몸에서 물과 불을 내면서 열여덟 가지 변화를 일으켰다. 남쪽ㆍ서쪽ㆍ북쪽에도 또한 이와 같이 하였다. 신통을 나투기를 마치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머물면서 여러 필추니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석 달 동안에 하나의 가타(伽他)를 받았으니, 너희들은 그 뜻을 즐거이 듣고자 하느냐? 가령 내가 7일 밤낮에 하나하나 자구(字句)의 뜻을 분별하더라도 또한 능히 다할 수 없느니라.”
그리고는 그들을 위하여 가타의 뜻을 말하였다.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업에서 악을 짓지 않는다는 것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유정으로 하여금 여러 악업을 짓지 않게 하라’고 하신 것이다.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악은 죽이는 것ㆍ훔치는 것ㆍ삿된 음행을 하는 것이요,
말로 하는 네 가지 죄는 거짓말 하는 것ㆍ이간시키는 말을 하는 것ㆍ남에게 화를 내게 하는 거칠고 나쁜 말을 하는 것ㆍ교묘하게 꾸며서 말을 하는 것이며, 뜻으로 짓는 세 가지 죄는 탐내는 것ㆍ성내는 것ㆍ삿된 견해를 짓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죄를 세존께서 모든 유정으로 하여금 마음대로 짓지 않도록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반송(半頌)을 훌륭하게 비유하면서 말하였는데,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중 가운데 일만 이천 유정이 함께 번뇌의 먼지와 때를 멀리 여의면서 법안정(法眼淨)을 얻고 진제(眞諦)를 밝게 보았으며, 혹은 난법(煖法)을 얻고 혹은 정법(頂法)과 인법(忍法)을 얻었으며, 혹은 세제일법(世第一法)을 얻었으며, 혹은 예류과(預流果)ㆍ일래과(一來果)ㆍ불환과(不還果)를 얻었으며, 혹은 출가하여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하였으며, 혹은 성문보리(聲聞菩提) 혹은 독각보리(獨覺菩提) 혹은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일으켰다.
이때에 대중들은 다 같이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여 일찍이 없던 것이라고 찬탄하였다. 구수 우로는 이미 여러 사람을 위하여 법요를 가르쳐 보이고,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고, 필추니들은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열두 명의 필추니들은 마음먹었던 것을 이루지 못하자 잠자코 얼굴을 붉히고 부끄러워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때 육중필추들은 멀리서 우로가 바깥에서 오는 것을 보고는 각기 이렇게 생각했다.
‘오늘 우로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공경하고 믿는 마음을 내게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육중필추는 우로를 마주 보자 면전에서 묻지 못하고 따라갔던 필추에게 물었다.
“우로가 오늘 몇 사람의 중생에게 믿지 않게 했느냐?”
“참으로 드물고 기이합니다. 일찍이 믿지 않는 마음을 내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불세존께서는 바라니사 시록림(婆羅泥斯施鹿林)에서 인천(人天)의 중생들을 위하여 세 번 설법하셨다. 우로는 이번에도 다시 때를 좇아서 설법을 하여 반송(半頌)의 가타를 말하였는데, 그의 설법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러 대중으로 하여금 과(果)를 얻게 한 것이 끝이 없었고 삼보리심(三菩提心)을 일으켜 삼보에 귀의하게 하였다.
이때 우로는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의 두 발에 예배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여러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여러 필추여, 나의 성문 제자 가운데 마음으로 훌륭하게 해탈한 사람은 바로 우로이니라.”
이때 세존께서는 계율을 지켜야 빨리 해탈할 수 있다고 찬탄하시고, 계율을 헐뜯고 파괴하면 나고 죽는데 빠진다고 하시고는 여러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앞의 것은 처음으로 제정한 것이고 이것은 따라서 여는 것이니, 내가 이제 여러 필추들을 위하여 이와 같이 말하노라.
만약 다시 필추가 승가에서 보내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가서 필추니를 가르치고 훈계한다면 뛰어난 법을 얻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바일저가이니라.
‘만약 다시 필추’란 육중필추를 이르는 말이다. ‘승가’의 뜻은 앞에서와 같다. ‘보내지 않았다’는 것은 백이법(白二法)을 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필추니’란 이 법 가운데의 필추니를 말한다. ‘가르치고 훈계한다’는 것은 계정혜(戒定慧)의 법을 갖고서 가르친다는 것이다. ‘뛰어난 법을 얻은 경우를 제외한다’는 것은 만약 뛰어난 법을 얻었으면 보내지 않아도 허물이 없는 까닭에 제외한다고 말한 것이다. 나머지는 위의 해석과 같다.
여기서 범한 모양은 그 일이 어떠한가? 만약 여러 필추가 지경 밖에 사람을 보내면 대중은 악작죄를 얻는다. 그 보내진 사람이 만약 가서 가르치고 훈계하면 타죄를 얻는다. 비록 지경 안에서라도 사람을 보냈는데 포쇄타일(褒灑陀日)이 아니면 대중은 악작죄를 얻고, 보내진 사람이 가서 가르치고 훈계를 하면 타죄를 얻는다. 비록 지경 안에 사람을 보내고 또 그 날이 포쇄타일이기는 하였지만 대중이 모이지 않았으면 얻는 죄는 앞에서와 같다. 만약 보내는 법에는 허물이 없어도 계율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면 얻는 죄는 앞에서와 같다. 비록 계율을 지녔더라도 들은 것이 많은 사람이 아니거나, 20하안거를 채우지 않은 사람이거나, 비록 20하안거를 채웠더라도 도성(都城)의 말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거나, 비록 방언을 잘 안다 하더라도 일찍이 필추니를 몸으로 더럽히고서 법답게 후회하여 죄를 소멸시키지 아니하였거나, 비록 다시 청정해졌더라도
팔타승법(八他勝法)을 능히 분별하여 필추니에게 가르쳐 보일 수 없거나, 비록 능히 말할 줄 알더라도 팔존법(八尊法)을 분별하지 못하는 등 이러한 법들을 구족하지 못하였으면, 대중들은 악작죄를 얻고 보내진 사람은 다 같이 타죄를 얻는다.
만약 보내는 일이 법답게 이루어지고 여러 덕이 원만한데다 대중들이 허물이 없으면 가르치는 것은 범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머무르는 곳에 필추니들을 가르쳐 줄 사람이 없으면 가르치는 법을 생략해야 하며, 필추니가 와서 가르치는 사람을 청할 때에는 상좌나 수사인(授事人)은 마땅히 그에게 다음과 같이 알려야 한다.
‘자매여, 필추니 승가는 화합하고 청정하여 허물을 범한 것이 없습니까, 있습니까? 이제 이곳의 대중들 중에는 즐거이 가서 필추니들을 가르칠 사람이 없으니, 당신들 승가께서는 마땅히 삼가고 신중히 하여 방일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필추니는 ‘오비가(奧箄迦)입니다’라고 대답한 뒤 필추니는 마땅히 발에 예배하고 떠나가야 한다.
또 범함이 없는 것은 최초에 범한 사람이거나 혹은 어리석거나 미쳤거나 마음이 어지럽거나 매우 고통스러움에 얽매인 경우를 가리킨다.”
그때에 여러 필추는 모두 의심스러운 것이 있어서 의혹을 끊어 없애주길 청하려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열두 명의 필추니가 있었사오며, 또한 열두 명의 필추니들은 무슨 까닭으로 구수 우로에게 이익이 없는 일을 하였는데도 도리어 우로는 큰 이익을 얻었나이까? 바라옵건대 세존께서는 그 인연을 말씀하여 주소서.”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 필추여, 다만 오늘만 이익이 없는 일을 해서 큰 이익을 이루게 한 것이 아니니라. 지난 옛날에도 이 여러 필추니들은 이익 없는 일을 해서 이익을 얻게 하였느니라. 너희들은 마땅히 들으라. 과거(過去) 세상에 어느 마을에서 어떤 바라문이 아내를 얻었는데, 오래지 아니하여 아들 한 명을 얻고 나중에 다시 아들을 하나를 낳으면서 이런 식으로 열둘의 아들을 낳았느니라. 세월이 지나자 다들 자라서 각자 아내를 얻어 넓게 집을 지었느니라. 그 어머니는 오래지 아니하여
병이 들어서 죽고 아버지도 나이 들고 노쇠해서 눈 뜬 장님이 되어 하나도 보이지 않았느니라. 그런데 그의 새 며느리는 남편이 집에 있지 않을 때는 외부 사람과 함께 사악한 일을 하였느니라. 바라문은 목소리를 잘 알아들었기 때문에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 그가 자기 아들인지 다른 사람인지를 알았는데, 그가 말하는 소리를 듣고서 자기 아들이 아닌 줄을 알자 즉시 새 며느리를 꾸짖었느니라.
‘너는 이와 같은 사악한 짓을 하지 말라.’
그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눈치 채고 화를 내자 외간 남자와 상의하였다.
‘이 바라문은 당연히 우리들에게 해로운 일을 할 것이니, 우리는 이제 그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지 않는 것이 좋겠소.’
그리고는 거친 밥을 주고 신 음료를 던져 주었다. 그러자 바라문은 여러 아들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의 아내들이 나에게 거친 밥을 주고 신 음료를 던져주니, 어찌 능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겠느냐?’
아버지의 말을 들은 아들들이 자기 아내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찌하여 아버님께 거친 밥과 신 음료를 드리는 거요?’
아내들이 남편에게 말하였다.
‘늙은이가 복이 다한 것이지 우리야 무슨 허물이 있겠어요. 매번 밥을 지을 때마다 그 솥 가운데 흰 쌀을 두고 지어도 붉은 밥이 되어버리고 아주 좋은 우유로 만든 음료를 넣어도 신 것이 된답니다.’
남편이 말했다.
‘어찌 그런 이치가 있겠는가?’
아내가 대답했다.
‘당신이 못 믿겠다면 직접 해보시구려.’
그리고 나서 아내들이 상의하였다.
‘우리가 이미 남편들에게 말하였으니 잘못을 면해야겠다.’
드디어 그녀들은 질그릇 굽는 사람에게 가서 말하였다.
‘현수여, 능히 두 개의 솥을 만들되 입은 하나이고 배는 두 개로서 각각 여러 되가 들어가는 크기로 만들 수 있습니까?’
질그릇 굽는 사람이 말했다.
‘당신이 나에게 두 배로 값을 치르면 내가 만들겠소.’
‘좋습니다.’
그릇 굽는 사람이 다 만들자, 부인은 곧 값을 치르고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노인을 위하여 밥을 짓는데, 몰래 가려진 곳에서 두 개의 솥 중 하나는 칸을 막아서 한 칸에는 붉은 쌀을 넣고 한 칸에는 신 음료를 넣어서 남편 앞에 보여주고, 다른 솥도 한 칸에는 흰 쌀을 넣고
한 칸에는 좋은 우유로 만든 음료를 넣어서 두 솥을 함께 익혀가지고 남편에게 말했다.
‘먼저 아버님께 드릴까요? 당신이 먼저 먹겠어요?’
남편이 말했다.
‘먼저 아버님께 드리시오.’
그 아내는 곧 한 솥에서 붉은 밥을 푸고 다음에 한 솥에서 신 음료를 떠서 갖다 드리고, 다음에는 남편 곁에 가서 흰 쌀밥을 주고 맛있는 우유를 놓았다.
그 아들은 그것을 보고 나서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아버님께서는 복덕이 참으로 다 없어졌습니다. 똑같은 솥에다가 흰 쌀을 넣고 맛 좋은 우유 음료를 두었는데, 그것이 다 익고 나니 붉은 밥과 신 음료가 되어 버리는군요.’
아버지는 이 말을 듣자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거짓말로 남을 속이지 않고 생계를 꾸려서 법답게 모든 재물을 구하였는데, 무슨 까닭으로 이제 복업이 다하였겠는가? 이것은 분명 악행을 저지르는 며느리들이 스스로 거짓된 행실로 나를 속이려 하는 것이 틀림없다.≻
노인은 곧 사람이 없는 때를 틈타서 혼자 부엌에 들어가 여러 솥과 그릇들을 더듬어 보았다. 이윽고 두 솥이 모두 솥의 배 안에 칸막이가 있는 것을 알자 즉시 그 솥을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겼다. 아들들이 오자 그 솥을 가지고 말하였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나의 복이 다된 것이 아니라 솥이 복을 다하게 하는 것이다.’
가타로 말하였다.

여러 아들들아, 너희는 마땅히 알라
그 솥이 입과 배가 하나이더니
내가 이제 복업이 다하매
한 솥에 두 개의 배가 생겨났구나.

그때 아들들은 이런 일을 당하자 저마다 아내들에게 화를 내면서 엄하게 매질을 하며 말했다.
‘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더욱 때려주고 집에서 내쫓겠다.’
이때 여러 부인들은 이 말을 듣고 나자 서로 말했다.
‘이 늙은 바라문이 아들과 함께 계교를 꾸며서 우리를 해치려고 한다. 우리는 마땅히 다른 방편을 써서 그 목숨을 끊어야겠다.’
그때 뱀을 가지고 희롱하는 사람이 그 집에 들어왔다.
‘독이 있는 뱀을
살 수 있습니까?’
‘어떤 뱀을 필요로 합니까? 산 것인가요, 죽은 것인가요?’
그에게 말했다.
‘죽은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무슨 생각으로 부인들이 죽은 뱀을 찾는 것일까? 어찌 이 늙은 바라문을 죽이려는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물었다.
‘얼마를 주시겠습니까?’
‘당신이 바라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독사들은 핍박을 당하게 되면 독이 두 곳, 즉 머리와 꼬리에 있게 된다. 그래서 뱀을 다루는 사람은 검은 뱀 한 마리를 꺼내서 막대기로 때려 성을 내게 한 뒤에 머리와 꼬리를 잘라버리고 가운데 배를 취하여 부인에게 갖다 주었다. 그녀들은 뱀을 얻자 그것을 가지고 국을 만들었다. 국이 다 끓자 그것을 갖고 노인이 있는 곳으로 가서 말하였다.
‘대옹(大翁)이시여, 좋은 고깃국이 있습니다. 드실 수 있는지요?’
그때 바라문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어디서 얻은 고기이기에 나에게 고깃국을 끓여주는 것일까? 어찌 방편으로 나를 죽이려는 것이 아닐까보냐?≻
다시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늙고 병이 들었다. 고쳐줄 생각을 하는 사람도 없으니 어떻게 살 것인가? 옳은 데서 온 것이든 그른 데서 온 것이든 나는 마땅히 먹어야겠다.≻
그리고는 며느리에게 말했다.
‘고깃국이 있거든 가져오너라. 내가 먹겠다.’
국을 다 먹고 나자 국의 기운으로 말미암아 눈이 다시 열리면서 점차로 사물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바라문은 거짓으로 말하였다.
‘내가 죽는구나. 내가 죽어.’
여러 부인들은 그 말을 듣자 빨리 죽기를 바라면서 아뢰었다.
‘아직도 남은 국이 있으니 다 드실 수 있으시겠어요?’
‘먹을 수 있다.’
그 부인들이 모두 가져다주자 거듭 그것을 먹고 눈이 밝고 맑아졌다. 좌우를 돌아보니 모든 것이 다 밝게 보였다. 속으로는 기뻐하면서도 거짓으로 누워서 일어나지 않자, 여러 부인들은 노인의 눈이 안 보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가 있는 데서도 갖가지 그릇된 짓을 하였다. 바라문은 막대기를 잡고 급히 일어나면서 말하였다.
‘내가 이제 너희들을 보고 있으니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말라.’
이때 여러 부인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을 붉히면서 대답하지 못하였느니라.
너희들 필추여,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 예전에 바라문이었던 자는 바로 우로이고 열두 명의 며느리들은 바로 열두 명의
필추니들이다. 지나간 때에 그의 목숨을 해치려다가 도리어 큰 이익을 얻게 하였고, 지금도 치욕을 받게 하려다가 도리어 성덕(聖德)을 드러나게 하였느니라.”
여러 필추들은 다시 의심스러운 것이 있어서 세존께 여쭈었다.
“구수 우로는 예전에 어떤 업을 지었기에 사람 몸을 받으면서 지극히 우둔한 겁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이 우로 필추는 일찍이 지은 업이 증장되다가 때가 되어서 과보가 드러난 것이니라. 너희들 필추여, 무릇 유정들 스스로 지은 업(業)의 선하고 악한 과보는 외계(外界)의 지수화풍(地水火風)에서 그것을 성숙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기 자신의 온계처(蘊界處) 가운데에서 스스로 성숙되나니 가타로 말하노라.

가령 백겁을 지내더라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아니하니
인연이 모이고 만나는 때에
과보를 스스로 받게 되느니라.

너희 필추들이여, 지나간 과거에 사람의 수명이 이만 살일 때에 가섭파(迦葉波)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셨으니 여래(如來)ㆍ응(應)ㆍ정등각(正等覺)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佛)ㆍ박가범(薄伽梵)이니라.
그때에 성문(聲聞)의 무리 이만 명이 함께 바라니사국에 머물렀느니라. 우로는 이 대중 가운데 있었다. 그는 삼장에 밝고 익숙하여 대법사가 되었지만, 품성이 법을 아껴서 일찍이 남을 가르치지 아니하였고 나아가 네 구절로 된 가타조차 말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목숨이 다한 후에 천궁(天宮)에 태어났다가 그곳에서 죽자 인취(人趣)에 떨어져 돼지고기를 파는 집에 태어나면서 나이가 들자 돼지를 잡는 것으로 생업을 삼았느니라. 그 마을 곁에는 큰 강이 있었고, 그 강 건너 멀지 않은 곳에 한 마을이 있었는데, 잔치를 하는 날이 되자 돼지 잡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느니라.
≺내가 이제 많은 돼지를 잡아서 고기를 팔겠지만 빠른 시간에 팔지 못하면 고기가 모두 상해서
고기값을 손해 볼 것이 틀림없다. 마땅히 산 돼지를 그 마을에 몰고 갔다가 잔칫날에 잡아서 그 고기를 팔아야겠다. 그러면 손실이 없고 얻는 이익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드디어 돼지를 끈으로 묶어서 배 위에다 놓았는데, 돼지가 서로 부딪치면서 배를 요동시켰느니라. 그러자 돼지와 배가 일시에 기울면서 가라앉았는데, 건져줄 방도가 없자 돼지는 다 죽었느니라. 그때 돼지 잡는 사람도 또한 물에 떠내려갔는데, 강가에는 오백 명의 독각(獨覺)들이 숲에 의지하여 머무르고 있었느니라. 이때 한 독각이 강가에서 물을 긷다가 멀리 한 사람이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였느니라.
≺이 떠내려 오는 사람은 살았을까, 죽었을까?≻
자세히 살펴보고서 살아있는 사람인 것을 알자, 그는 곧 신통으로 오른팔을 마치 코끼리의 코처럼 길게 펼쳐서 그 사람을 끌어올린 후에 마른 모래톱에 얼굴을 대도록 눕혀 놓고 떠나갔느니라. 물에 빠진 사람은 물을 토하고 일어나서 사방을 살피다가 사람 자취가 있는 것을 보고 그 자취를 찾아갔다. 그리하여 독각들의 처소에 이르자 지극한 예를 갖추어 예배하면서 의지하여 머물 것을 구하였다. 그는 매일매일 독각들을 위하여 꽃과 과일을 따오고 갖가지 뿌리와 줄기를 공급하며 모셨다. 그때 그 독각(獨覺)은 각자가 남은 음식을 가지고 함께 살았느니라.
여러 독각들은 모두가 가부좌를 하고 정려(靜慮)하면서 머물렀는데, 도살하던 사람도 그것을 보고 또한 가부좌를 배워 수행하기를 그치지 않다가 무상정(無想定)을 얻었다. 나중에 목숨이 다하여서는 무상천(無想天)에 태어났고, 그곳에서 죽어서는 인간계에 태어났느니라.
너희 여러 필추들은 이상하다는 생각을 내지 말라. 그때 돼지를 잡던 사람이 바로 이 우로 필추이니라. 그가 옛날에 법을 아껴서 네 구절의 가타(伽他)조차도 남을 위해 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 축생들을 많이 도살하였던 까닭에 다시 무상천(無想天)에 태어났으나 그 업연(業緣)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어리석고 지극히 둔하였느니라.

이런 까닭에 너희들 필추여, 마땅히 법을 아끼지 말고 청정한 마음을 가지고 남을 위하여 법을 말하여라.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라. 여러 유정들에게 항상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내고 삿된 정(定)을 멀리 여의어라.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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