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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2071 불교(광홍명집 22권/ 廣弘明集)

by Kay/케이 2023.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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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광홍명집(廣弘明集) 22

 

 

당 석도선 지음

이한정 번역

 

 

4. 법의편

 

37) 입불멸의론(立佛滅義論)

(1) 불지불이중생지의(佛知不異衆生知義:부처의 앎이 중생의 앎과 다르지 않다는 논의)  심약(沈約)

()’이란 깨우친다는 것이고, ‘()’이란 안다는 것이다. 범부와 불지(佛地)는 선()을 세우고 악을 아는 것이 무시이래(無始以來)로 같지 않았다. 단지 불지(佛地)에서 아는 것은 선()을 얻는 바른 길이고, 범부가 아는 것은 선()을 잃는 삿된 길이다. 범부가 바른 길의 지식을 얻으면 부처님이 아는 것과 다르지 않으나, 바로 선한 것을 선하지 않다고 말하기 때문에 바른 길을 잃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범부가 아는 것과 부처님이 아는 것이 다르지 않으니,

 

아는 바의 일이 다른 것에서 연유하고, 아는 것은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범부가 아는 바는 그 아는 바가 선하지 않다고 말하지 못하나, 선을 구한다 하더라도 불선(不善)에 도달하게 될 뿐이다. 만약 이와 같이 선을 구하는 마음을 쌓아서 선으로 돌아가는 길을 만나거나, 혹 그 길을 얻는다면 부처에 이르게 된다. 이와 같이 중생으로 불성(佛性)을 삼는 것이니, 진실로 성()을 알아서 항상 전함에 있다.

 

 

(2) 육도상속작불의(六道相續作佛義:육도가 서로 계속되어 부처를 만들었다는 뜻) 심약(沈約)

일체종지(一切種智)1)5()6()의 중생은 더불어 함께 수지(受知)의 나눔을 갖지만 나눔에는 다름이 없다.

수지(受知)는 지()가 아닌가?

아니다.

이것은 무엇으로 바탕을 삼는가?

서로 이어져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서로 이어져 없어지지 않으니, 이로써 수지(受知)할 수 있게 된다. 만약 금생(今生)에 연마하는 공()이 점차로 쌓이면, 내세(來世)의 과보에 소식(所識)의 이치가 정미하게 돌이켜진다. 정미하게 돌이켜지는 지()는 내세에 마땅히 부처님에 이르기까지 끊어지거나 단절되지 않는다. 만약 금생에 밝음이 없으면, 오는 세상의 과보에 소식(所識)이 어둠으로 돌이켜진다. 어둠으로 돌이켜진 지()는 오는 세상에 마땅히 6()에 다다르게 된다. 수지(受知)의 갖춤은 연()에 따라 수지(受知)한다. ()의 아름답고 추악함은 이 수지(受知)의 갖춤과 관련되지 않는다.

()가 지()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명()을 들은 것이 된다. 수지(受知)가 수지(受知)라면 스스로 서로 이어져 멸하지 않는 것이 된다. ()가 자연의 인연(因緣)에서 도래하니, 이 같은 수지(受知)의 갖춤은 이치에 따라 서로 관련을 짓는다.

이와 같이 서로 이어져 소멸하지 않음은 자연의 인과(因果) 가운데에서 도래한다. ()도 있고 과()도 있는데, 어떻게 선()도 없고 악()도 없음을 얻을 수 있는가?

 

(3) 인연의(因緣義) 심약

함령(含靈:중생)의 성품은 삶을 즐기지 않음이 없으나, 삶을 구하는 길은 서로 엇갈려 하나만이 아니니,

 

하나의 생각으로 유전(流轉)하면서도 그 갈래는 각각 다르다. 한 생각 사이에 온갖 연()이 서로 일어나고 한 가지 인()마다 한 가지 과()가 안으로 서로 엇갈린다.

삶을 좋아하는 성품은 만품(萬品)이 모두 같은데, 이는 자연적으로 부여된 것으로 연()에 의해 만들어지는 바가 아니다. 삶을 즐기는 것은 인연에 연유하지 않고, 인연은 즐거움에 연유하지 않는다는 것을 진실로 알아야 한다. 이처럼 삶도 비록 모두 그 형해(形骸)에 깃들어 각각 한 물건에 해당하는 것이다.

한 생각에서 이미 온갖 연()을 불러 모으니, 온갖 연이 각각 마음에 따라 일어난다. 이처럼 선과 악의 두 가지 생각은 참으로 같지 않다. 모두 외부의 도움으로 충당되는 것이나 일 자체는 한 헤아림에서 연유하는데, 비유하면 물이 없고 흙 없이는 곡식의 씨앗이 자라나지 않는 것과 같다. 인연의 성()과 식()은 그 근본이 이미 다르다.

인과에 미혹하지 않으면 비록 필연이라 하더라도 선과 악이 홀로 일어나게 되면 모두 장애를 받는다. 비록 홀로 일어난다고 말할지라도 일어나면 바로 인()을 이루니, 안쪽의 인()과 바깥의 연()이 이에 빌미를 삼는다.

 

(4) 형신론(形神論) 심약(沈約)

보통 사람이 생각을 한 번 할 때마다 7() 모두 그 생각한 토대에 관여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은 한 번 생각하지만 성인은 생각을 다하지 않음이 없기에 성인에게는 그침이 없다.

7척이 본래 공()과 같으나, ()과 같은 7척으로써 다하지 아니함이 없는 만 가지 생각을 다스린다. 그러므로 능히 보통 사람과 다를 수 있다. 보통 사람이 생각을 한 번 하는데 그와 같은 7척의 때를 잊는다면, 눈으로 보는 것을 폐하고 발로 밟는 것을 폐하게 된다. 그 눈을 잊고 발을 잊는 것이, 눈도 없고 발도 없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보통 사람의 일시적인 무()는 실유(實有)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어느 순간에 바뀌어 유()가 이미 그것을 따르지 않음이 없다. 생각과 형체가 어긋나면 잠시나마 잊지만, 생각이 마음에 함께 기울면 다시 합쳐진다.

생각이 7척의 한 곳에 있게 되면 바로 다른 곳이 될 터이니, 다른 사람과 더불어 같아져서 나 아닌 것과 다르지 않다. 단지 보통 사람이 잠시나마 그 없음을 없이 하는 것은 몹시 가깝고,

 

성인이 오래도록 그 없음을 없이 하는 것은 아주 멀다.

보통 사람이 성인과 더불어 그 가는 길이 원래 같은데도, 한 번 생각하는 동안 잠시 잊게 되면 바로 범부의 품류(品類)가 되나, 만 가지 생각을 모두 잊으면 대성(大聖)이 된다. 이것으로 말하자면 형체와 정신이 얼마나 차이가 있겠는가?

혹 어떤 사람은 인과(因果)가 서로 주인이 됨이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것을 의심하나, 선과 악이 도래하는 것은 모두가 정업(定業)이다. 그러므로 6()를 닦는 것은 모두가 힘써 이루는 것에 바탕을 둔다. 만약 이와 같이 힘써 노력하게 되면 다시 결과에 앞서는 인()이 있게 된다. ()이 성숙하여 과()가 이루어지는데 저절로 서로 감응하여 부르게 되면 힘써 노력하는 공을 다시 들일 필요가 없으니, 6도를 닦는 것이 거의 없어질 것이다.

석가가 9() 동안 용맹스럽게 정진하여 이루었으니, 그 용맹의 인()은 무시이래(無始以來)로 정해져 있었다. 본래 9겁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으니, 어떻게 9겁 동안 생겨났다고 말하겠는가?

나는 인과(因果)와 정조(情照)는 원래가 두 가지 물건이라 생각한다. 먼저 정조가 있고서야 뒤이어 인과가 있게 된다. 정조가 이미 움직이고 나서야 인과가 이에 따르게 되는데, 정조가 없다면 인과가 어디에 의탁할 것인가?

()과 식()의 두 갈래는 합쳐져서 근본이 다르다. 근본이 이미 다르니, 그 바탕 또한 같지 않다. 정조가 별다르게 일어나는 것은 이치에서 장애되지 않으나 6도와 9겁은 참으로 의심할 수 없다.

 

(5) 신불멸론(神不滅論:신은 멸하지 않는다는 논) 심약

함생(含生)의 부류는 식감(識鑒)이 서로 현격해서 그 등급이 달라 천 가지 누()와 만 가지 답()을 이룬다. 곤충은 날짐승에 미치지 못하고, 날짐승은 개와 말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이를 그렇지 못하다고 말할 수 없다.

또 인품(人品) 이상은 어질고 어리석은 성품이 달라서 서로 엿보지 못하고 서로 이해하지도 못한다. ()나라가 북쪽에 있고 월()나라가 남쪽에 있어 서로 짝하였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어리석은 이는 콩과 보리조차 구별하지 못하고, 도리에 어긋난 이는 아끼고 존중함을 모른다. 이 이래로 성()과 식()은 점차로 넓어졌으니, 반고(班固)9()2)도 일찍이 그 만 가지 중의 하나도 개괄하지 못했다.

 

현명한 자와 어리석은 이는 어떻게 구별되는가?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으로 말미암는다. 어리석은 이는 아는 것이 적고, 현명한 이는 아는 것이 많다. 그러나 만물이 서로 보태고 군방(群方)이 넓디넓어 마음의 성품에는 깨달음과 미혹함이 있고 도리의 갈래는 깊고 그윽하기만 하다. 그 길에 연유해서 도리를 구하더라도 이미 깨닫고 막히는 차이가 있어서 높고 낮은 차별이 이루어진다. 이로부터 서로 기울어져서 품급(品級)이 갈수록 높아진다. 그 근원을 궁리하여 그 종극을 다하게 되면 서로 추앙(推仰)하여 마땅히 다하는 바가 있게 된다. 그 길을 다하면 조금이라도 다하지 아니함이 없으니, 이 또한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5() 또한 각각 나뉜 영역이 있으니, 눈과 귀가 각각 관장하는 부분이 있다. 마음을 부리면 형체를 잊게 되고 눈을 쓰게 되면 귀가 폐지되는데, 어떻게 정령(情靈)을 가벼이 하고 심려를 잡스럽게 하겠는가?

생각을 한 번 하는 동안이라도 겸()하면 연고 없이 이르게 되지만 이미 겸하지 못하면 분란이 연이어 내습한다. 생각을 한 번 이루지 못하면 다른 단서가 서로 일어나니, 서로 일어나는 온갖 단서는 다시 예전과 같다. 서로 겸하지 못하는 이유는 천박함과 미혹함에 연유한다. 천박함에 미혹하면 근심이 되고, 근심은 유()에 막히게 된다.

천박하지 않고 미혹하지 않는 것은 함께 잊어버리는 것[兼忘]으로부터 나온다. 이렇게 함께 잊어버리는 것으로써 함께 비추는 것[兼照]을 얻는다. 범부로부터 정각(正覺)에 이르고, 미혹으로부터 미혹하지 않는 데에 이르고, 겸하지 않는 것에서 겸할 수 있는 것에 이르는 것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곤충의 목숨이 짧은 것이 함령마다 다르지 않다. 혹 아침에 태어났다가 저녁에 죽기도 하고, 혹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하기도 하니, 이로부터 그 나아감이 짧고 긴 것이 한 가지가 아니다. 이미 짧은 것이 있으니 어떻게 긴 것을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허비하면 목숨을 손상시키지만 잘 길러주면 목숨을 늘릴 수 있게 되는데 헛되이 세월만 낭비하니 잘 보양하여야 목숨을 늘리게 되는데, 잘하고 잘하는 것을 어찌 무시할 수 있겠는가? 이 또한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삶이 이미 요절해 버렸다면 장수는 없을 것이며 요절하는 것이 이미 없다면 그 삶이 끝내 지극해질 수 없다. 형태와 정신의 구별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형태를 이미 기를 수 있다면, 어찌 정신만 유독 이와 다르다 하겠는가?

정신은 묘하고 형태는 조잡하니, 잘 비교하면 가려낼 수 있다. 형태를 길러서도

 

썩지 않음에 이를 수 있는데, 마음을 길러서 어찌 다함이 있는 것을 얻겠는가?

정신을 길러도 다하지 않으니, 이는 태어나지도 못하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처음과 끝을 비교해 보면 어찌 그 사람이 없겠는가?

범부에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함령의 이치는 평등한 것이다. 단지 일마다 정밀하고 조잡함이 있는데, 이 때문에 사람마다 범부와 성인이 있게 된다. 성인은 이미 오래도록 존재하는데, 범부는 유독 멸하기만 한다. 근본은 같으나 말단이 다른 것도, 이치를 겸통(兼通)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성(大聖)께서 가르침을 주셨는데, 어찌 이것에 미혹하겠는가?

 

38) 난범진신멸론(難范縝神滅論:범진의 신멸론에 대한 반론) 심약

보내 주신 논문에서, “형체(形體)가 바로 신명(神明)이며 신명이 바로 형체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몸은 한 가지이니, 이로써 신명을 달리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아론(雅論)에서와 같이 이 같은 두 가지의 물건이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면, 칠규(七竅)와 백체(百體)에 신명 아닌 곳이 없을 것입니다. 칠규의 쓰임새가 이미 다르고 백체를 운영하는 바가 이미 한 가지가 아닌데, 신명 역시 일에 따라서 응하고 그 이름도 또한 응하여 일에 따라 바뀌어야 합니다. ‘신명이란 형체에 상대한 이름입니다. 형체 가운데의 형체마다 각기 쓰임새가 있으니, 응하여 신명 가운데의 신명도 각기 그 이름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형체를 거론한다면 사지(四支)와 백체의 다름이 있으며, 펴고 굽히고 듣고 느끼는 구별이 있어서 각기 이름이 있고 각기 쓰임새가 있습니다.

신명이 오직 하나의 이름일 뿐이라 하더라도 쓰임새는 백체로 나눠지니, 이는 참으로 깊어서 깨우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만약 형태가 신명과 상대한다면 조금이라도 어긋나지 말아야 하는데, 어떻게 형체의 이름은 많고 신명의 이름은 적습니까?

만약 보내 주신 논문의 7척의 신명과 같다면 신명은 처하여 형체가 아닌 것이 없고, 형체는 처하여 신명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칼은 오직 칼날이 날카롭기 때문이니, 칼날이 아니라면 날카롭다는 이름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칼날은 그 몸을 거론하는 호칭이기에 날카로움은 한 곳의 조목[]에 해당합니다. 칼이 날카로움과 이미 같지 않듯이 형체와 신명도 어찌 함부로 합쳐질 수 있겠습니까?

 

또 예전의 칼을 지금 주조하여 검을 만들었다면, 검의 날카로움이 바로 칼의 날카로움입니다. 그러나 칼의 형태가 검의 형태는 아니지만 날카로움의 쓰임새에 있어서는 바뀐 것이 없습니다. 그 바탕의 형태는 이미 바뀌었으니, 전생에 갑()이었다가 그 다음 생에 병()인 것과 같습니다.

하늘과 사람의 도()가 혹 다르더라도 왕식(往識)의 신명이 오히려 전해져 대검이 칼이 되고 칼이 검이 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또 칼 하나 바탕을 나누어 두 개의 칼이 된다면 형태는 이미 나뉘고 각각 날카로움도 지니게 됩니다. 지금 소 한 마리를 가져다 베어 보면 둘로 나뉩니다. 바로 마시고 씹는 생명력은 곧 없어지게 되지만 그 임무의 중요한 쓰임은 나뉘지 않습니다. 다시 어찌 칼과 날카로움으로써 형체와 정신으로 비유를 할 수 있겠습니까?

보내 주신 논문에서, “칼이 날카로움과 같듯이 형태에 신명이 있다. 칼은 그 몸을 거론하자면 하나의 날카로움이듯이, 형태도 그 몸을 거론하자면 하나의 신명이다고 하였습니다. 신명이 그 몸에 쓰이면 바로 눈ㆍ귀ㆍ손ㆍ발의 구별이 있게 됩니다. 손의 쓰임새는 발의 쓰임새로 삼지 못하고, 귀의 쓰임새는 눈의 쓰임새로 삼지 못합니다. 그러나 날카로움의 쓰임새는 가능하지 못한 것이 없습니다. 구렁이도 끊을 수 있고 기러기도 자를 수 있습니다. 한 곳에 편중된 것이 아니기에 동릉(東陵)의 오이를 자를 수도 있으며, 한 곳에 편중되더라도 남산(南山)의 대나무를 자를 수 있습니다.

만약 날카로움을 쓰임새로 삼아서 나눌 수 있다면, 바로 발로써 물건을 잡을 수 있어야 하고, 눈으로써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칼등에도 날카로움이 있고 양 모서리에도 날카로움이 있다고 말한다면 단지 쇠를 불려서 날카롭게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날카로움이 만약 사방에 드리워져 있다면, 바로 날카로움의 몸은 다시 설 곳이 없을 것입니다. 형체가 네모나거나 곧거나 날카로움을 드리울 수 없으니, 날카로움을 쓰임새로 삼는 것은 바로 한 가장자리에 한 올의 티럭이 있는 곳일 뿐입니다. 신명이 형태와 더불되 그 몸을 거론하여 이처럼 합쳐진다고 하면, 다시 어떻게 같다고 할 수 있습니까?

칼이 만약 그 몸을 거론하여 날카롭다 하면, 신명의 쓰임새가

 

그 몸에 따라 나눠짐도 칼이 날카로움과 같은 것처럼 그 이치는 매한가지입니다. 어깻죽지 밑에도 눈을 안치할 수 있으며, 등 뒤에도 또한 코를 드리울 수 있다 하면, 어찌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참으로 가능하지 못합니다.

만약 이 같은 비유를 들어 다하였다고 생각한다면 다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근본으로 다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비유할 수 없습니다. 만약 형태가 바로 신명이고 신명이 바로 형태가 되어 두 가지가 서로 충당하되 그 이치에 편중되게 시드는 것이 없다면 신명이 없어지는 날에 형체는 마땅히 사라지게 됩니다. 지금 지각(知覺)이 있는 신명이 망하고 지각이 없는 형태만이 남아 있으니, 이 같은 신명의 근본은 형태가 아니고 형태의 근본도 신명이 아닙니다. 또 억지로 한 가지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만약 백체의 바탕을 총괄하여 형태라 말하고, 백체의 쓰임새를 총괄하여 신명이라 말하며, 지금 백체마다 각각 나눔이 있다면 눈은 눈의 형태이고 귀는 귀의 형태이지, 눈의 형태는 귀의 형태가 아니고, 귀의 형태는 눈의 형태가 아닙니다. 즉 신명은 또한 백체에 따라서 나눠지니, 눈에는 눈의 신명이 있고 귀에는 귀의 신명이 있는 것이지, 귀의 신명은 눈의 신명이 아니고 눈의 신명은 귀의 신명이 아닙니다.

한편으로 시들어 버린 몸은 절반이나 이미 시들어 버렸는데, 이미 시들은 절반은 그 일이 목석과도 같으니, 비유해 보면 저 강시(僵尸:송장)가 영원토록 썩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바로 이 같은 절반의 신명이 이 같은 절반과 더불어 함께 없어져야 하는데도, 절반의 신명이 이미 없어졌는데도 절반의 몸은 그대로 남아 있으니, 형태와 신명이 함께 시든다고 할수록 더욱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부(二負)3)의 시체는 억 년이 지나도 훼손되지 않았고, 단개(單開)4)의 몸은 나부산(羅浮山)에 오히려 바탕을 남기고 있습니다. 신명과 형태가 만약 합쳐진다면, 이 두 사람의 신명은 이것에 응하지 않고 형태만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보내 주신 논문에서, “다시 불꽃처럼 살고 불꽃처럼 죽으면 점차로 살고 점차로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청하건대 그대의 길을 빌려서 그대의

 

()을 공격하기로 하겠습니다.

점차로 없어진다는 것은 죽은 사람의 형해(形骸)가 처음에는 지각이 없다가 점차로 썩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형태가 신명과 더불어 근본적으로 한 가지 물건으로, 형태가 이미 병들었으니 신명도 병들었고, 형태가 이미 시들었으니 신명도 시들었다고 말해야 합니다. 점차로 쓰임새를 삼는 것이 형체와 더불어 갖춰진다면, 형체가 없어지기 시작하여 썩지 않은 채로 점차로 죽어간다면, 어떻게 신명만이 유독 시종일관 점차로 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보내 주신 논문에서는, “또 살아 있는 이의 형해가 변하여 죽은 이의 해골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보내 주신 논문에서처럼, “살아 있는 신명이고 살아 있는 형해인데, 이미 해골로 변하였다고 한다면, 살아 있는 신명이 유독 그 형태를 따라 변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만약 형태에 따라서 변한다면, 형태와 더불어 그 몸이 같아야만 합니다. 만약 형해가 해골이 되었다면, 바로 죽은 신명이 달리 살아 있는 신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죽음은 정해져 있으나 자신은 아직 죽지 않았다고 지난번에 말한 바입니다. 만약 형해가 해골이 아니라면, 살아 있는 신명이 죽은 신명으로 변합니다. 살아 있는 신명이 변하여 죽은 신명이 되었다면, 바로 3세에 어떻게 그 불멸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신명이 만약 형태를 따른다 하더라도, 형태는 이미 지각이 없습니다. 형태가 이미 지각이 없으니, 신명도 근본적으로 바탕이 없습니다. 지각이 없으면 바로 신명이 없는 것인데, 신명이 없더라도 형태가 남아 있으나, 두루 통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형태에는 비록 지각이 없더라도 신명에는 오히려 지각이 있으니 형태와 신명이 이미 다르다고 하더라도 어제 죽어 가는 형태가 다시 돌이켜 고목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39) 인연무성론(因緣無性論)과 서문 진() 석진관(釋眞觀)

(1) 서문

천정(泉亭)의 영덕(令德)에 주삼의(朱三義)란 자가 있는데, 외학(外學)만 형통한 것이 아니라, 내법(內法)의 신심을 깊이 밝혔다. 늘 마음으로 대승(大乘)을 중히 여기며 입으로는 반야(般若)를 외우고 홀연히 자연론(自然論)을 저술하여 바로 유성(有性)

 

집착을 흥하게 하였다. 혹은 삿된 소견을 보여 같이하고, 혹은 진실로 전도된 마음을 일으켰다. 서로 다시 정도(正道)를 훼손하고 지극한 도를 상하게 하였다.

즐겁게 뒤의 논의를 마름질하여 저와 같은 집착을 없앴다. 비록 말은 가려 낼 수 없더라도 이치는 혹 볼 만하다. 만약 나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은 함께 자세히 살펴보기 바란다.

 

(2) 성법자연론(性法自然論) 주세경(朱世卿)

우자(寓玆) 선생이 탄식하며 말했다.

만 가지 법과 만 가지 성품이 모두 자연의 이치이다. 자연이란 옮겨 바뀌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비록 선의 의지할 만한 것이 없음을 알더라도 착한 사람은 끝내 한때라도 악을 저지르지 않는다. 악한 사람은 다시 그 악함을 훈계할 수 없기 때문에 악한 사람은 잠깐이라도 선을 행하지 못한다. 어짊을 체득한 이는 그 선한 일을 하는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고, 어리석음을 체득한 이는 그 악한 일을 하는 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도, 모두 자연적으로 그리되는 것이다.”

오른쪽에 앉아 있던 손님인 가씨대부(假氏大夫)가 갑자기 낯빛이 변하며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선생의 말씀이 대도(大道)에 어긋나고 성인의 말을 그르치는 것입니다.”

그러자 선생이 물었다.

대도는 누가 주재하며 성인은 무슨 말을 하였습니까?”

이에 대부가 대답하였다.

대도에는 주재가 없으면서도 주재하지 않는 바가 없습니다. 성인은 말이 없으나 말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자 선생이 말했다.

그 말한 바를 한번 말해 봅시다. ()과 명()이 말미암아 이르는 곳을 말해 보십시오. 청컨대 그 주재하는 바가 선악의 보응(報應)을 주재한다는 것에 대해 말해 보십시오.”

이에 대부가 말했다.

어째서 그렇지 않겠습니까? 대체로 천지(天地)가 대도(大道)의 공을 도와서 기르니, 성인은 천지의 덕을 합쳐서 가르침을 펴고, 인의(仁義)5()을 차례로 하여 그 마음을 거두었으며, ()ㆍ서()6()를 말하여 그 업을 가르쳤습니다. 이와 같은 것이 성인의 말씀입니다.

만약 선을 쌓는 집이라면 반드시 나중에 경사가 있고,

 

불선(不善)을 쌓는 집이라면 반드시 나중에 재앙이 미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친함이 없이 늘 착한 사람과 함께한다’5)고 말했습니다.

6()6)을 다스려 악한 사람을 벌주고 오복(五福)을 베풀어 착한 마음을 권장합니다. 3()에 걸쳐 장수가 되어 망하는 권력을 보고7) 7세 동안 선업을 닦아서 성품을 융성하게 하였습니다. 진상(陳賞)은 총애했지만 제후로 삼지 않았고, 병창(邴昌)은 소원했지만 나라를 계승한 것이야말로 도가(道家)의 효험입니다. 어떻게 선생께서는 모든 자연의 이치가 옮겨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까?”

이에 선생이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응수하였다.

세간에서 이른바 먹줄을 다루는 사람은 먹줄이 다하더라도 옮길 줄을 모른다고 하는데 대부(大夫)야말로 이 같은 무리입니다. 삼가 협소하고 비루한 견해를 다해서 그대에게 자세히 말해 주겠습니다.

대체로 이의(二儀)를 만들자 육자(六子:六爻)8)를 베풀어 백성을 기르고 오재(五材)9)를 부렸습니다. 따라서 이 같은 말씀을 사용하는 것은 만 가지 법을 사이에 두고서도 모두 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생명이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영험한 것으로 자연의 빼어난 기운을 안고서 아름답고 추하고 넉넉하고 부족한 자질을 받았으며, ()ㆍ노()ㆍ애()ㆍ락()의 정()을 품으며 곤궁하고 현달하며 장수하고 요절하는 명()을 뽑아내어 어리석고 슬기로우며 착하고 악한 성품으로 구별지어졌습니다.

희ㆍ노ㆍ애ㆍ락은 정()에 숨었으니, 만물에 감응하여 움직이게 됩니다. 곤궁하고 현달하고 장수하고 요절하는 일은 명()에 거두어져 일이 생겨난 후에야 밝아집니다. 아름답고 추하고 넉넉하고 부족한 것은 형체에 드러나 있는데, 태어남이 있고서야 겉으로 드러납니다. 어리석고 슬기로우며 착하고 악함은 성질에 갖춰져 있는데, 쓰임새를 마주하여 그 자취가 드러납니다.

앞의 말은 인간사(人間事)를 총괄하여 다한 것으로, 모두 자연(自然)의 수()에 연유하는 것이기에 실제로 이것을 창조한 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창조한 이가 있다면 반드시 수고롭고, 출입하는 이가 있다면 반드시 틈이 있으며, 수작하는 이가 있다면 반드시 어긋날 것이기에 이 세 가지는 조물주의 공()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묵자(墨子)‘3년 동안 조화(造化)하여 겨우 잎사귀 하나를 이루었다는데, 천하가 잎사귀만큼 작더란 말인가?’라고 비웃었습니다.

성인은 묘하게 권도(權道)를 만들어 가르침을 이루고, 비슷한 일을 빌려서 위세를 권장한다.

 

강하게 함부로 하는 포악함을 보면서는 형벌과 살육으로 금할 수 없는 것을 두려워하며 화음(禍淫)의 위세를 떨쳐서는 돈독한 선에 힘쓰는 것을 도리어 상하게 하기에 성()과 명()이 옮겨지지 않음을 알아서 복()과 선()을 순서 짓고 그것을 장려합니다. 그러므로 그 말을 듣고 어긋나지 않으며, 그 같은 일을 구하더라도 만에 하나도 징험이 없습니다.

그대가 뿌리와 줄기를 번식시킨다면 이렇게 도가 나아갈 바를 실천하여 증상(蒸嘗)에 주재(主宰)가 없는 것은 행()이 초래하는 것을 버리는 것에서 연유합니다. 몸이 편안하고 즐거운 것으로 선사(善士)의 밝은 과보로 삼고, 몸이 곤궁에 처하는 것으로 악한 사람이 살육을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손숙(孫叔)이 어려서 뱀을 묻지 않았다면 자라나서 영윤(令尹)의 귀함이 없었을 것

 

이고,10) 병길(邴吉)11)이 조상의 음덕(陰德)이 없었다면 승상(丞相)의 존엄함이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와 같다면 천도(天道)가 중화(重華)와 문명(文命)으로서 곤()과 수()12)의 지극한 어리석음에 답하고, 상균(商均:요임금의 아들)과 단주(丹朱:순임금의 아들)로서 요임금과 순임금의 지극한 성스러움에 답하였습니다. 태백(太伯)3() 동안 병사를 부리는 허물이 없었는데도 중우(仲虞)에게 재위를 넘겼으며, 한조(漢祖)7대의 선조는 독실한 선행(善行)이 있음을 듣지 못했는데도 하늘에 짝하는 업을 이루었습니다. 기자(箕子)는 오복(五福)을 누릴 만한데도 베어 죽는 고통을 껴안았으며, 공자(孔子)는 선을 쌓으며 경사가 뒤따른다고 말하였으나 몸소 떠도는 자의 설움을 겪었으며, 안자(顔子)는 칠십 제자 가운데 최고였으나 꽃이 피지 못하는13) 안타까움이 있었고, 염경(冉耕 :伯牛)14)(공자 문하에서) 사과(四科)의 제1의 덕행에 있었으나 이와 같은 사람의 탄식을 이루었다.15) 상신(商臣)16)은 여러 차례 형남(荊南)에서 왕노릇 하였고, 묵돌(冒頓)17)은 대대로 변경의 북쪽에 거주하였습니다. 수양산(首陽山)에는 낯빛을 펴서 웃는 귀신이 없었고,18) 멱라수(汨羅水)에는 원한 품은 혼백만 있습니다.19)

강성(康成)20)은 성씨(姓氏)로써 마을을 바꿨으나 소성(小聖)의 화()를 구제하지 못하였으며, 왕부(王裒)21)가 슬퍼하며 무덤의 나무를 바꾸었어도 비망(非妄)의 재난을 받았으며, 이생(二生)이 위나라에 머물면서 배를 타야 했던 괴로움은 누구의 죄이겠습니까?22) 또 삼인(三仁)23)이 호읍(毫邑)에 있었는데 그 심장을 도려낸 가혹함은 누구의 허물이었습니까?

이처럼 방기(邦畿)에 가깝고 세대에 가까워 분적(墳籍)에 실린 바가 아니라 눈과 귀 바로 앞에 있는 것입니다. 가슴에는

맹문(孟門)24)의 음험함을 감추고 마음에는 시훼(豺虺)의 악독함만 거두었으니, 마음을 쓰되 오로지 남을 해치는 것으로 생각을 삼고, 행하는 바는 반드시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우선하였습니다. 송곳과 칼로는 그 뾰족함과 예리함을 강구하고, 계곡과 골짜기는 가득 채우기 어려운 것을 의심하였습니다.

끝내 백량(百兩)으로 바깥을 호화롭게 하고 천종(千鍾)으로 안을 채우고, 능라 비단에 편안히 눕고 감미롭게 줄지어 앉아 기름진 음식을 먹으며, ()을 울리고 옥()을 연주하며, 부귀하고 편안하게 그 신세를 끝내게 되며, 품안에 백벽(百壁)을 간직하여 마음으로 삼고, 명주(明珠)로 장식하여 성품으로 삼게 됩니다.

마음으로 계칩(啓蟄)의 살생을 할 수 없고, 손으로는 길게 늘어진 가지조차 차마 꺾지 못한다면, 아무리 기특한 재주를 품었더라도 누가 이를 알아주겠으며, 아름다운 뜻을 쌓았더라도 누가 이를 보아주겠습니까?

분잡한 가운데 한편으로 섞여서 향려(鄕閭)의 말단에서 끝을 보게 되며, 마침내 굶주림과 추위를 껴안고 갑자기 죽거나 고라니와 사슴과 더불어 함께 묻히니, 향상(享嘗)25)의 제사가 적막하여 과부와 어린아이는 의지할 곳도 없게 되며 그 이름자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연기처럼 묻혀 번개처럼 사라지는데, 이와 같이 한스러운 이가 어찌 한 사람뿐이었겠습니까?

이에 걸왕(桀王)과 도척(盜跖)의 난폭하고 흉악함도 미래의 화()가 장차 그 몸에 미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민자건(閔子騫)과 증삼(曾參)이 돈독히 행했음에도 뒤에 경사스런 일이 많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갈관자(鶡冠子)26)()이란 자연(自然)이다. 어진 이라도 반드시 얻는 것이 아니고 불초한 이라도 반드시 잃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바로 이것을 말하였다 하겠습니다.”

이에 대부가 말했다.

선생처럼 백가(百家)의 말을 인용한다면, 열자(列子)이름을 내는 자는 반드시 청렴하다. 청렴하면 궁핍하다. 이름을 내는 자는 반드시 양보한다. 양보하면 비천해진다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빈천이라고 하는 것은 이름을 세워야 할 선비가 강구하여 도달하여야 할 것이고, 부귀라고 하는 것은 탐욕스런 경쟁의 무리가 구하여 얻어야 할 바이니, 어떻게 자연의 수()라고 이름하겠습니까?”

선생이 말했다.

이는 한 모퉁이만을 보는 말일 뿐이지 이치를 두루 살핀 말이 아닙니다. 넉넉함과 존귀함은 원래가 누구나 탐내고 구하는 것이겠으나, 넉넉함과 존귀함을 탐내고 구한다고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궁핍함과

 

미천함은 원래가 청렴하고 양보하는 것이겠으나, 궁핍함과 천박함은 청렴하고 양보함으로써 구할 바가 아닙니다. 원래부터 넉넉함과 존귀함은 탐낸다고 얻을 수 있는 바가 아니며, 궁핍함과 미천함은 청렴하고 양보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자가 드물게 명()을 말하여27) ‘도는 사람에 연유하여 넓어진다’28)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과 명()의 이치는 선성(先聖)조차 말하기를 꺼렸던 것입니다.

선과 악의 보응은 천도(天道)의 상()이 있어 관계하는 것으로, 비유하면 따뜻한 바람에 꽃이 피고 매서운 바람에 눈이 날리는 것과 같습니다. 똥오줌[溲糞]의 밑에 처하는 것도 있고 옥계(玉階)의 위에 포개지는 것도 있으나, 바람은 두텁고 얇은 것에 무심하며, 꽃을 피우고 싸락눈이 내리는 것에는 더럽고 깨끗함을 달리하는 나눔이 있습니다. 천도는 사랑하고 미워함에 무심하나 성()과 명()에는 곤궁하고 형통함을 달리하는 술책이 있습니다.

그대도, 우공(于公)이 봉작(封爵)을 기다리다 마침내 봉작에 이르렀고,29) 엄모(嚴母)가 죽음을 기다리다 죽음에 이르렀던 일을 들었을 것입니다.30) 만약 착한 사람을 보면 그 나중이 반드시 번창하다 말하고, 만약 악한 사람을 보면 그 나중이 반드시 망한다고 말하니, 이는 마치 살아 있는 동안 나무 그루터기나 지키면서 교활한 토끼가 잡히기만 바라는 것일 뿐입니다.”

대부가 마침내 낯빛을 거두며 사과하며 말하였다.

마부가 좁은 길을 따라가게 되면 넓은 길에 어둡고, 좁고 가까운 길만을 지키면 멀고 광활한 길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덕음을 받들어 확연하게 깨우치게 되었으니, 비유하면 소촉(疎蜀)의 복시(伏尸)가 만고를 거쳐서 홀연히 깨우친 듯하고, 중산(中山)이 술에 취하여 천조(千朝)를 다하지 못하고서 갑자기 깨어난 듯합니다. 청하건대 이 같은 말을 섬기어 띠[]에다가 새겨 놓겠습니다.

혹 다시 여쭙겠습니다. 주자(朱子)가 빙허(憑虛)의 말에 의탁하여 방촌(方寸)의 근저(根底)를 창달하니, 마음을 논하고 일을 지목하매 참으로 도달함이 있습니다. 단지 예전의 전적으로 비춰보자면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바가 있습니다.

사람의 희ㆍ노ㆍ애ㆍ락의 정리(情理)는 선하고 악한 성품을 싸안았으나 이를 접대하는 방책(方策)이 부족합니다. 따라서 다투고 빼앗는 일은 여기에서 일어나니, 재주와 식견이 고르게 겸비된 자라도 잘 다스려 통제할 수 없습니다.

하늘이 어진 성인을 낳아 사목(司牧)을 부리게 하였고, 음악은 성인이 만든 것이고, 예법(禮法)도 선왕(先王)이 창제한 것입니다. 3천 가지 위의(威儀)로 그 자취를

 

단속하고 5()의 조화로 그 마음을 인도하면서 작위를 만들어 선을 권장하고 형벌을 두어 악을 징계하되 털끝만치도 빠뜨리지 않으니, 그 주고받는 것이 마치 메아리 같습니다. ‘옥백(玉帛)을 일컫는 것이겠는가?’31)라고 말한 것은 천거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 아닙니다. 종과 북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어찌 자연에 따라 어울리는 것이겠는가? 눈에 가득한 수많은 조목은 모두 힘써 노력해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으며, 아주 다양하고 수많은 규범은 모두 지혜로운 생각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집니다.

선생께서는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의 신하이고, 주공과 공자의 학도(學徒)로서 호유(戶牖:출입문)로 출입하면서 명교(名敎)를 가슴에 새기되, 착한 사람은 그 착함에 의지할 수 없는 것을 알며, 악한 사람은 그 악함을 탓할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착함이 경사를 부르지도 않고 화근이 악()을 응보하지도 못한다고 말하니, 이 얼마나 이치에 어긋난 말씀입니까?

날아가는 새[翾翔]와 꿈틀거리는 벌레[蠕動]조차도 오히려 나아갈 바를 아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하물며 자연의 사물과 같겠습니까? 이 어찌 고상하고 돈후한 시()에다 어떻게 짝이 아닌 비유를 취하겠습니까? 제가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하겠으니, 분명히 답변을 삼가 기다립니다.”

이에 대답하였다.

옛날에 노오(盧敖)가 북쪽에서 약사(若士)를 만났으나 스스로 자취를 넓히지 못함을 아파하였습니다.32) 하종(河宗)이 동쪽으로 명해(溟海)을 엿보고 바야흐로 추수(秋水)가 크지 않음을 한탄하였습니다.33) 그대가 가까운 것만 익히다가 그만 성품이 되었으니, 더불어 원대함을 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금 그대가 굽히고 펴며 내려보고 올려다보는 것[屈伸俯仰]은 마음과 생각이 이루는 바이나, 새기는 것과 자르고 다듬는 것[彫鏤剪琢]은 몸과 손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예법과 음악은 성인이 만든 것이고, 성인이란 천지가 낳은 바입니다.

청하건대 그대를 위해 가깝게 몸에서 취한다면, 멀리 사물에 통할 수도 있습니다. 그대가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발로 밟고 손으로 잡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은 누가 그렇게 시킨 것입니까? 몸에 병이 나고 춥고 더운 것조차 스스로 잘 모르는데, 희ㆍ노ㆍ애ㆍ락이 어디서 일어나고 없어지는 것입니까? 어떤 곳에서 유식자(有識者)는 스스로 지식을 갖고 있는 바이고, 유지자(有智者)는 스스로 지혜가 있는 바이겠습니까?

만약 식()이 몸 가운데에 두루한다면

 

그 몸을 상하게 되매 식()도 상하게 됩니다. 만약 지()가 일에 따라 일어난다면 일이 없어지매 지()도 사라질 것입니다. 끝내 식()은 식()을 알지 못하고 지()는 지()를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가까운 것을 미루어 먼 것을 이해하게 되며, 그 부류를 짝하여 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법과 음악은 연유를 알지 못하면서 만들어졌고, 성인도 스스로 연유를 알지 못하면서 태어났으며, 양상(兩像)도 그 연유를 알지 못하면서 세워진 것입니다.

따라서 형태를 달리하고 생각을 달리하면서 모여 쌓이고 가득해져서 고요함과 움직임이 합쳐지고 흩어지면서 저절로 생겨났다 저절로 없어지는 것입니다.

움직임과 고요함이란 그 주재(主宰)를 알지 못하고, 태어나고 없어지는 것도 그 근원을 깨닫지 못하니, 여기서 자연의 이치가 뚜렷해집니다. 이른바 자연이 아니란 것이 바로 대자연(大自然)이며, 이와 같이 유위(有爲)’라는 것이 바로 대무위(大無爲)입니다.

공자가 하늘이 성인을 낳아 사목(司牧)으로 삼았다고 하였습니다. 어째서 당()ㆍ우()에 성인이 겹쳤는데도 다섯의 충신을 보태었으며, ()ㆍ무()에 광채가 거듭되었는데도 10()34)을 더하였겠습니까? 어찌 천도라 하면서 그 시작과 끝을 한결같이 하지 못하면서 장차 말대(末代)에 이르러 천지에 허물을 돌리겠습니까?

대순(大舜)과 대요(大堯)가 어찌 불초한 자식을 낳고자 하였겠습니까? 용봉(龍逢)과 비간(比干)이 어찌 죽어서 몸이 찢겨짐을 달가워하였겠습니까? 공자(孔子)가 어찌 천지를 쏘다니며 죽으면서도 말 채찍 잡는 자의 짓이라도 꺼리지 않겠다고 말하였겠습니까?35) 안자(顔子)()가 어찌 감히 죽겠습니까?”라고 말했어도36) 마침내 그의 아버지는 그가 죽어 수레를 청하였습니다.37) 저와 같은 삼성(三聖)과 삼인(三仁)38)이 버리고 취함을 묘하게 하였다고 말할 만합니다.

하늘이 동해를 완전히 마르게 할 수 있더라도, 효부(孝婦)의 원망을 다스리는 것만 못합니다. 땅이 비록 산을 높이고 구덩이를 다시 덮더라도 기량(杞梁)39)의 죽음을 구제하는 것만 못합니다. 그러므로 번영하고 쇠락하며 죽고 사는 것은 모두가 자연의 정해진 운명에 불과합니다. ()과 인()과 같은 것도 스스로 이를 면할 수 없으니, 이같이 비루한 말에 깊게 맛들였어도 그 이치는 여전히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3) 인연무성론 진() 석진관(釋眞觀)

청의(請疑) 공자가 통민(通敏) 선생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2(:하늘과 땅)

 

처음으로 나뉘자 서류(庶類)가 이에 따랐으며, 7(:日月五星)가 높이 매달리자 조민(兆民)이 이를 우러러보았습니다. 그러나 태어나기 이전과 죽은 이후의 현상(現象)을 이음이 분명하지 못합니다. 예전에 가고 지금에 오는 것을 현성(賢聖)조차도 밝히지 못했습니다.

현리(玄理)를 바라는 군자들은 서로 치달려 연구하였으며, 이치(理致)를 사모하는 명인(名人)들도 서로 다투어 캐어 보았으나, 말하는 바에 따르면 자연을 잘 분별하게 됩니다. 가씨(假氏)가 밝힌 것은 보응(報應)에 대해 소리를 높인 것으로 비록 자연(自然)의 봉적(鋒鏑)이 앞에서 이기고, 보응(報應)의 간과(干戈)가 뒤에서 패했더라도 이처럼 어리석은 마음으로 어느 것이 옳은지 깨닫기 힘들고, 어두운 식견으로는 이 같은 논리에 미혹되기 쉽습니다. 두 가지 이치가 서로 교차하니 어느 것이 옳은지를 모르겠습니다.”

이에 통민 선생이 손을 내저으며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두 갈래의 청론(淸論)을 돌이켜보면, 실로 각각 한 모서리만을 휘둘렀습니다. 자연(自然)이란 노장(老莊)에 의지하는 것이고, 보응(報應)이란 주공(周公)과 공자(孔子)를 조술(祖述)하는 것이니, ‘()나라를 이미 잃었으니 제()나라도 얻지 못한다고 할 만합니다.

지금 당신을 위해 이를 규명해서 열거해 보겠습니다.

삼분(三墳)과 오전(五典)은 선악(善惡)의 이치를 밝히지 못했으며, 팔색(八索)과 구구(九丘)도 유명(幽明)의 길을 오히려 막았습니다. 하물며 칠원(漆園)의 거만한 관리40)는 황홀(恍惚)함이 미친 듯이 홀로 조화(造化)의 종주(宗主)라 칭하며, 자연(自然)의 성품에 편중되게 의거하면서 한때나마 세속을 바로잡았으나 이치의 그윽한 계책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물으니, 자연의 근본은 무엇으로 이치를 삼습니까? 인과(因果)가 있다는 것입니까? 만약 자연에 있어 오히려 인과를 논한다면, 그 일이 모순될 터이니, 두 가지 말로 서로 식언(食言)하는지라 어리석은 사람은 비웃을 터이고 지혜로운 이는 한탄할 것입니다. 그대로 두어도 기울어질 것인데 애를 써서 번잡하게 할 것이 없습니다. 만약 영원히 보응이 없다고 하여 갑작스럽게 인과를 끊게 되면 군신(君臣)과 부자(父子)간에 이 같은 도가 행해지지 않을 것이고, 인의(仁義)와 효자(孝慈)와 같은 이러한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바로 악을 만들어도 경사를 초래하고 선을 행하여도 재앙을 만난다는 것은 마치 부싯돌을 쳐서 얼음을 얻는다는 격이며 콩을 심어서

 

보리가 나온다는 것으로, 소리가 조화로운데 메아리는 어긋나고 형체는 굽었는데 그림자가 똑바르다는 것을 일찍이 보지 못했습니다.

만약 이처럼 상품(上品)의 성인으로 공()을 떨치더라도 단주(丹朱)를 낳아 길렀고, 중화(重華)의 지극한 덕을 갖추고도 고수(瞽叟)에게서 출생한 것은 바로 자연이 그렇게 하였는데, 생각하건대 저는 이와 같은 이치를 취하지 못하겠습니다.

지친(至親)의 도를 천성(天性)이라 말하니, 각기 행업(行業)에 따르되 일찍이 서로 상관하지 않습니다. 요임금과 순임금이 지난 세상에 공덕을 심었기에 이 같은 신령한 지혜를 받았고, 고수는 전생에 악업을 지었기 때문에 이같이 완고한 성품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중연(重緣)을 맺어 그 모양을 되돌려 그림자를 드러내니, 이로써 범부로 인하여 성인을 드러나게 하고 지혜로운 이로써 어리석은 이를 교화하게 합니다. 만약 고수의 흉악함이 없다면, 어찌 조화로움의 아름다움을 알겠습니까?

방훈(放勳:요임금)의 성품이 아니라면 누가 만유(慢遊)의 악을 교화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아난(阿難)41)과 조달(調達)42)이 모두 세존의 동생이었고, 라후(羅睺)43)와 선성(善星)44)이 모두 여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난은 늘 가까이서 시중을 들었으나, 조달은 매번 반역만을 꾀하였으며, 라후는 구슬을 지켜 범하지 않았으나, 선성은 그릇을 깨어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로써 보면 그 이치를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각각 자성(自性)이 있어 바꿔질 수 없다고 말하더라도, 이것은 특히 그렇지 않습니다. 매가 변화하여 기러기가 되면 그 본심이 순식간에 다하고, 귤이 변하여 탱자가 되면 예전의 맛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예전에 넉넉하였다가 지금 궁핍해진다고 정해진 성품의 이치는 빼앗기 힘들다거나, 예전에 존귀하였다가 나중에 비천해졌다고 명()을 부여했다는 말이 도대체 어디에 근거하겠습니까?

여망(呂望)45)이 도살장의 백정이었는데도 끝내는 태사(太師)의 자리를 누렸고, 이윤(伊尹)46)은 솥에 불을 때던 사람이었는데 졸지에 승상이 되었습니다. 대연(戴淵)47)이 사방에서 환란을 겪다가 나중에는 고명하게 되었고, 주처(周處)3()48)의 단서였으나 늦게는 영덕(令德)이라 칭하였습니다. 아사세왕(阿闍世王)49)이 무간지옥의 죄악을 돌이켜 그 나아갈 바를 고치고, 아육왕(阿育王)50)이 막대한 죄를 지었어도 홀연히 선()을 따를 수 있었으니, 만약 자성(自性)의 이치에 의한다면 어떻게 이 같은 이치를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착한 사람이 선행을 닦는다고 하면

 

잠깐이라도 악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며, 악한 사람이 늘 악함만 짓는다고 하면 한 생각이라도 선행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번영하고 쇠퇴하며 총애받고 욕보이는 것이 모두가 필연적으로 지켜진다고 하면, 어리석고 지혜로우며 존귀하고 비천한 것이 영원히 바뀌지 못하게 되는데,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결단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또 만약 덕을 닦은 사람이 다시 척행(戚行)을 근심하고 선행을 행하는 사람이 도리어 죄악에 빠지는 것을 자연의 명()이라 여기는 일도 옳지 못합니다. 만약 선을 행하면서 보응을 기약하게 되면 선에서 더욱 멀어지고, 덕을 닦으면서 이름을 구한다면 덕에서 벗어나 점점 멀어집니다.

만약 규장(珪璋:예식 때 장식하는 옥으로 인품이 높음을 비유)의 성품을 뽑아내고 완염(琬琰:아름다운 옥)의 마음을 품으며, 원래부터 이름나는 것에 뜻을 두지 않고 일찍이 넉넉하고 존귀함을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영예로운 명성은 반드시 미약해지지만 좋은 경사가 모여들게 됩니다. 만약 혹 지음(知音)을 만나지 못하면 바로 산목(散木)과 같아지고, 별옥(別玉)51)을 만나지 못하면 바로 진흙덩어리와 같아서 잠시 용이 물 속에 잠겨 있어 이지러짐이 없더라도 봉황의 덕을 어찌 용납할 것입니까?

천양(天壤)을 휘저으며 세간을 어지럽히면서 스스로 궁함을 굳게 지키어 뜻을 잃으매 번민하지 않았으니, 태백(太伯)52)이 드높이 양보하여 그 아름다움을 천사(千祀)에까지 흘러가게 하였으며, 중니(仲尼 :孔子)가 액()을 당해서도 이름을 만대(萬代)로 전하였으며, 안회(顔回)가 일찍 죽었다고 말하여졌으나 특히 명업(命業)이 길지 않습니다. 염유가 병에 걸렸어도 병으로 인하여 명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자(二子:공자와 자로)가 주살되었더라면 위()나라 영공(靈公)의 악함만 더욱 드러내고, 삼인(三仁:微子, 比干, 箕子)이 살육을 받았어도 은()나라 주()임금의 죄를 한층 드러내 보이게 됩니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수양산(首陽山)에서 굶어죽었어도 명예를 구한다는 책망을 면치 못하였으며, 굴원(屈原)이 멱라수에서 빠져죽었어도 원한을 품었다는 허물을 입었습니다. 결정된 업은 신통력으로도 구하지 못하니, 반드시 그 보()를 받아야만 하는데, 어찌 성인의 지혜로 이를 피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예전에 인()을 일으킨 것으로 금생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만약 도살을 업으로 삼더라도 목숨이 백 살에 이르고, 도둑질만 생각하더라도 재물이 풍족하여 수억인 것도 모두 정해진 성품이 그리된 것이라고 한다면 비유할 것도 없습니다.

이처럼 지난 생의 조그마한 선행(善行)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목숨과 재물에 감득하게 되었고,

 

금생에 무거운 재앙이 과보를 부르지 않아서 그 죄가 이미 크고 고통을 받은 것이 의당 많게 되었습니다. 죽임을 늦추어 마땅히 그 악함을 용서하더라도 하루아침에 재앙이 가득하고 잘못이 쌓이게 되면 둥지를 엎어서 알을 깨뜨려 격자(鬲子)의 니리(泥犁:지옥)에 오랫동안 돌아가게 되고, 무간지옥에 영원토록 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서경(書經)에서도 악이 쌓이지 않으면 그 몸이 멸하게 되는 것이 없다고 말하였으니,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과보(果報)를 초래함을 보고 일마다 보고 듣게 됩니다. 왕망(王莽)53)이 찬탈하였다가 참수대에서 목을 매달았으며, 동탁(董卓)54)이 흉악하여 저잣거리에 시체가 널렸으며, 진후(晋侯)가 조삭(趙朔)을 죽이고 측간에 빠지는 슬픔을 맛보았으며, 제주(齊主)가 팽생(彭生)을 해치고 수레에서 떨어지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나라의 국조(國祚)가 끝난 것도 걸()임금의 죄이고, ()나라의 종사(宗社)가 다한 것은 주()임금의 허물입니다. 그러므로 인과의 이치가 뒤섞여서 참으로 헤아리기 어렵고 업보의 이치가 어지럽고 복잡하여 정해져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으니, 이른바 생보(生報)와 현보(現報) 및 후보(後報)라 말합니다.”

청의 공자가 말했다.

만약 자연의 계책이란 게 이치적으로 불가하다면 보응의 구별도 말로써만 가능합니다. 앞서의 뜻을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의 군자가 진술한 것이 모두 이치에 들어맞지 않으니, 이 같은 마음으로 들을 수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통민 선생이 말했다.

당신이 은근하게 몇 번이고 청하니, 내가 열심히 상대해서 대답하겠습니다. 다만 스스로 살펴보아도 평범하여 오묘함을 다 말하지 못할 뿐입니다. 법을 살펴보면 근본적으로 유()가 아니니, ()가 아니기에 생()도 없습니다. 이치는 원래 무()가 아니니, ()가 아니기에 멸()도 없습니다. 생도 없고 멸도 없는데 제법(諸法)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도 아니고 무()도 아니니, 만물이 어디에 의지하겠습니까?

평탄하여 청정하니 길을 따르고자 하여도 이미 끊어졌고, 탁 트여 평등하니 버리고 취하는 길이 따를 바가 없는데, 어떻게 보응의 이치를 구할 수 있고 선악의 사고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바로

 

범품(凡品)의 중생들은 이 같은 이치를 깨우치지 못했으니, 이 때문에 다툼만 제멋대로 일으키고 억지로 분별만 낳습니다. 이른바 목마른 사람이 불구덩이로 기어 들어가나, 물은 강이나 연못에 있습니다. 눈병에 걸려 꽃을 보더라도 헛되어 일찍이 꽃을 피우는 나무조차 없습니다. 단지 가까운 정()을 인도하고 거듭된 의혹을 없애고 미묘하게 인과를 보여 주고 업연(業緣)을 간략하게 드러내며 정성(定性)으로써 제거되고 자연스럽게 그치게 될 것입니다. 만약 바른 이치에 통달하여 이 같은 바른 도리를 깨우쳤다면, 다시 어느 곳에 있으며, 어느 곳에 없겠습니까?”

마침내 두세 사람의 군자가 서로 돌아다보며 마음을 놀래어 기쁘게 깨달았습니다. 자리에서 물러나 공경스럽게 고개 숙이고 엎드리면서 지금 참으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을 수 있다. 헛되게 나아가다가 진실되게 돌이키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쌓여서 통하지 못한 것이 모두 기울어지니, 마치 가을바람의 낙엽과도 같고 맺혀 있던 의심이 풀리는 것이 봄빛에 얼음이 녹는 듯합니다. 삼가 예전의 미혹함을 버리고 후세의 업을 다 함께 따르기로 하겠습니다.”

40) 북제삼부일체경원문(北齊三部一切經願文) 위수(魏收)

3()55)로 구역(區域)을 갈랐고 4()56)으로 성품을 받았습니다. 함께 화택(火宅)을 떠돌면서 모두 욕해(欲海)에 빠지니, 이로써 법왕(法王)이 주저(洲渚)의 운수를 감당하며, 각자(覺者)가 수레의 기약에 응하였습니다. 그와 같이 미혹에 빠진 이를 인도하여 이와 같은 훌륭한 땅으로 돌이켰으니, 보배 구름이 서쪽에 드리우자 법의 강물이 동쪽으로 흘러서 감로가 널리 퍼져 바람결에 이를 감득하게 되었습니다.

황가(皇家)가 하늘을 이어 도를 높이고 법을 기렸으나, 유대(有待)에서 군품(群品)을 건지고 불이(不二)로 중생을 몰았습니다. 이에 그 성상(聖像)을 전단나무에 새기고 비단에 그렸으며, 돌을 쪼고 금을 먹인 불상이 만국(萬國)에 두루 퍼져서 마치 항하의 모래알과 같았습니다.

다시 조칙을 내려 이를 보살펴 관리하도록 하면서 치문(緇門:승려)과 소의(素衣:속인)가 모두 다시 불법을 섬기도록 하였으니, 그 정성이 피골(皮骨)을 뛰어넘고 게송이 용궁(龍宮)까지 이르렀습니다.

금구(金口:부처님의 설법)로 베풀되 종합하여 엮고 베껴서 거두었으니, 각각 3부가 있습니다. 도합 약간의 권수(卷數)가 되었으니, 이 같은 공덕을 짓되 마음을 허공과 같이 하여 평등하게 베풀었기에 사람마다 흡족하지 않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저의 이 같은 원력으로 모두 함께 상지(上智)의 과보(果報)로 올라갈 것입니다.

 

 

41) 주경장원문(周經藏願文) 왕포(王褒)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아무개가 합장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드리며 다음과 같이 아룁니다.

대체로 듣자오니, 구하(九河)가 그 자취를 소통하면서부터 책간(策簡)은 영구(靈丘)에서 쌓이고 사시사철 법도에 맞게 되면서부터 서적은 군옥산(群玉山)에 보관되었습니다.

또한 청구(靑丘)의 자부(紫府)에 있는 삼황(三皇)에 관하여 돌에 새긴 글이나 녹검황승(綠檢黃繩)57)의 육갑(六甲)ㆍ영비(靈飛)의 문자이더라도 어찌 여래(如來)의 비밀장(祕密藏)이 명주(明珠)에 비유되는 것만 하겠으며, 제불(諸佛)이 스승으로 삼는 것이 저 깨끗한 거울과도 같은 것만 하겠습니까? 녹야원(鹿野園)에서의 4()의 법과 니원(尼園)에서의 팔건(八犍)의 글은 향산(香山)의 커다란 힘으로도 어찌 이를 짊어질 수 있겠습니까?

세성(歲星)이 소양(昭陽) 지역에 있는 해에 용이 천정(天井)에 모였으니 받들어 이와 같이 아룁니다.

받들어 일체경장(一切經藏)을 이룩하오니, 바야흐로 생멸(生滅)의 가르침에서 시작하여 니원(泥洹)의 말씀에 이르기까지 논의하는 것이 드물게 있었다. 짧은 게송과 긴 행문(行文), 청수(靑首)의 은함(銀函)과 현문(玄文)의 옥갑(玉匣)은 양태산(陽台山)의 이약(餌藥)을 능가하고 도관(道觀)의 선자(仙字)에 머뭅니다. 관윤(關尹)58)이 기운(氣運)을 바라보며 현언(玄言)을 받았어도 용수(龍樹)의 이근(利根)은 애초에 없다 할 것입니다.

제목(題目)을 보아도 두루하지 못하니, 아사타선(阿斯陀仙)59)의 미천한 행으로 자리를 함께 한다는 것은 일찍이 듣지도 못했습니다. 천축(天竺)의 소리를 다하고 패다(貝多)의 잎[]을 다하였으며, 그 재[:불사리]는 여덟 나라로 나누고, 문장은 계빈(罽賓)으로 옮기고 돌은 육수(六銖)를 다하며 글을 큰 바다로 돌이켰습니다.

우러러 바라건대 과거의 신령이 이 같은 도력(道力)을 타고 무생인(無生忍)을 얻으며 위의(威儀)를 구족하사이다.

다시 원하오니 국조(國祚)가 장구하고 신민(臣民)이 날로 경사스러우며, 사방이 모두 귀속하며 만 가지 복이 앞에서 드러나며 육취(六趣)의 원수 맺고 친한 이가 다 함께 정각(正覺)에 오를 것이다.

 

42) 보대경장원문(寶臺經藏願文) () 양제(煬帝)

보살계(菩薩戒) 제자 양광(楊廣)이 합장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드립니다.

여래께서 세간(世間)에 응현(應現)하시어, 성교(聲敎)로 만물을 보우하고 비밀한 이치를 은근히 하셔서 법장(法藏)을 결집(結集)하시며 제석(帝釋)과 윤왕(輪王)에게 이를 부촉하셨으니, 마침내 보살과 성문(聲聞)이 크게 교화를 떨쳐 생사의 괴로움을 초월하고 번뇌를 해탈하여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지존(至尊)께서 물에 빠진 이를 건지심에 백왕(百王)마저

 

한 가지로 섞이고, 사해(四海)가 평안하게 다스려지던 날 도속(道俗)마다 이지러짐이 없게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동남(東南)의 어리석은 백성이 꺼져가는 불씨를 서로 부치고 묘략(廟略:朝廷의 계책)을 이어받아 다시 바닷가를 조용히 하면서, 부역(賦役)조차 군사를 수고롭게 하지 않아 평안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다시 신령한 성상(聖像)과 존귀한 경전(經典)이 대부분 불타 버리고 결만(結鬘:불상)과 승묵(繩墨:法度)도 구덩이에 파묻혀 버려졌던 것을 깊게 생각하였습니다. 이에 뭇 군사(軍士)에게 널리 명하여 가는 곳마다 걷어 모으게 하였으니, 기월(朞月)이 차지 않아서 날랜 배로 모두 거두어들임에 이르렀습니다. 이리하여 학사(學司)에게 명하여 제목에 따라 순서대로 기록하게 하고 아울러 도량에 진설하게 되었습니다.

이치로써 깊게 생각하고 그 연유를 증명하면서 뜻으로 미루어 비교하여 본래의 부류를 대부분 얻게 되었으니, 장엄하게 다시 꾸며 옛 모습을 더욱 새롭게 하였습니다.

보대(寶臺)의 사장(四藏)은 모두 10만 축()이 되었으니, 이로써 큰 서원을 발하여 영원히 유통되도록 하기 위해 서원문(書願文)을 써서 권수의 뒷면마다 모두 첨부하여 빈번하게 알현하여 공을 드러내는 일을 비로소 끝마쳤습니다. 지금은 다만 보대의 정장(正藏)만은 몸소 수지(受持)하니, 그 다음 장() 이하는 혜일법운도량(慧日法雲道場)과 일엄홍선령찰(日嚴弘善靈札)과 이 외에 경도(京都)의 사탑(寺塔)과 제방(諸方)의 정사(精舍)에 둡니다. 범궁(梵宮)은 크고 작은 것이 있고 승도(僧徒)들은 많거나 적으니, 모두 경부(經部)의 다소에 따라서 짐작하여 분부하였습니다. 주는 자는 이미 간절하여 지극하였으며, 받는 자는 의당 신중해야 합니다.

오래도록 법의 근본을 남겨서 달마(達摩)를 널리 펼치니 반드시 그 글을 전하고자 하면 절에 들어와 서사(書寫)하되 누락됨이 없게 하여 두 가지 허물이 일지 않게 하십시오.

예전의 부처님과 나중의 부처님께서 참으로 금구(金口)와 같이 하시니, 그 가르침에 마주하여 가르침을 이어 내리시는데, 어떻게 옥첩(玉諜)마다 다르겠습니까? 수미산 위에서 여러 성인들이 함께 간직하고 금강해저(金剛海底)의 천룡(天龍)이 극진히 보호하듯이 염부제(閻浮提)에 흩어진 것도 이와 같게 하십시오.

이것을 이룩한 이들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정성이 참으로 지극하니, 마음과 손으로 힘써 이뤘으니 어찌 그 공덕을 헤아리겠으며, 희사(喜捨)한 깨끗한 재물을 어찌 그 양을 계산할 수 있겠습니까?

감로의 단비로 충당하여 메마른 싹을 비옥케 하니 제불(諸佛)의 출생도 반야(般若)에 근본합니다.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기에 몸소 받아들여 깊이 생각한다면 바로 스스로가 만든 것입니다.

지금 이 같은 뜻을 펼치는 것이 마치 집착하듯 하나, 만약 경각심을 내지 않는다면 깊고 굳건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스스로 행하면서 다른 이를 교화하는 일은 경전과 율장마다 갖추어져 있으나, 못난 식견을 돌이켜보면 사방에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서로 인과를 유추해 보는 것이 어찌 눈으로 보는 것과 다르겠습니까? 어찌 홀로 선하여 최승무(最勝無)가 제일락(第一樂)이 됨을 알지 못합니까? 내전(內典)의 오묘한 법은 대중 스님들에게 달려 있는데, 무슨 일로 구구하게 서로에게 멋대로 부담을 지웁니까?

단지 숙세(宿世)에서 심은 것에 의지해 왕궁(王宮)에서 태어나 성장하여 폐하를 뵙고 조정으로 달려가서 원대함을 도왔습니다. 지방으로 나아가서는 나라의 울타리가 되어 언제나 공경을 다하고, 비단 예()ㆍ악()ㆍ형()ㆍ정()으로 한결같이 임금의 뜻을 따랐을 뿐 아니라 배를 타고 나아감에도 더욱 그 뜻을 받들어 실추함이 없었습니다.

()60)과 설()61)을 버리고 원기(園綺)62)와 같이 하며, 보살을 바꾸어 성문(聲聞)이 되는 것을 용납함이 없었다. 이에 법도에 어그러진 것에 대해서는 이미 독실하게 믿을 수 없었으나 부여받은 것은 삼가 인()에 합당하게 했다. 그러나 5()의 법사(法師)는 모두 6()의 청정(淸淨)을 얻어서 설법과 같이 수행하여 열반에 아주 가까이 다가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만 경전과 율장만을 지켜서 부처님의 계율을 따르지 않고, 입으로만 공()을 말하면서도 마음은 유()에 빠져 있습니다. 무상(無上)의 의왕(醫王)이 병에 따라 약을 내리시고, 우유와 함소(唅蘚)를 열어 주시되 방소(方所)마다 달리하고, 달고 차갑고 쓰고 따뜻함을 치료하시는 때마다 달리하십니다.

비유하건대 전후의 가르침의 문은 근기의 성품에 따라 구별되어 나아가니, 뿌리ㆍ줄기ㆍ가지ㆍ잎사귀가 윤택함을 입는 것이 끝내 가지런합니다. 모두 나루터와 다리에서 만나 도()에 들어가지 않음이 없으니, 마치 효()를 묻고 어짊을 묻는 것이 공자의 주고받음과는 비록 다름이 있다 하나, 몸을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리는 오랜 뜻은 서로 어긋남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길은 달라도 돌아감을 함께하여 백 가지 생각이 한 갈래에 이르니, 안과 밖이 서로 융합되어 이치가 다 함께 합쳐지는데, 어찌 비담(毘曇)63)을 배운다고 성인이 되지 못하겠습니까?

여야(黎耶)64)를 따르면 참다움을 깨닫게 됩니다. 사자(師子)의 단단한 갑옷은 도리어 달팽이 껍데기[嚴鎧]를 손상시키고, 코끼리의 땅바닥에 발을 디딜 적마다 도리어 땅벌의 소굴을 무너뜨립니다. 마음은 검극(劍戟)과 같고 다툼은 물과 불을 넘어섭니다. ()의 뜻과 논()

 

이치는 모두 이와 같지 않습니다. 경을 형통하고 논을 형통하는 데는, 대체 어떠한 인()이라야 이와 같이 되겠습니까? 감로(甘露)를 베풀어도 다시 독약이 될까 두렵더라도 만약 그 법해(法海)의 맛을 균등하게 한다면 제호(醍醐)65)를 이루게 될 뿐입니다.

임금의 다스림은 감보(紺寶)로써 하늘을 날고 금륜(金輪)이 구름을 움직이듯 하니, 만 가지 선()을 인수(仁壽)에서 받으시고 1()을 보회(普會)에서 거두어서 함식(含識)을 열어주어 군생(群生)을 제도하십니다.

지금 전하는 경전이 우내(宇內)에 두루 퍼지고 중성(衆聖)의 잠재력이 반드시 다른 지역으로 퍼지니 다 함께 보리(菩提)에 올라 일찍이 상락(常樂)을 증득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커다란 서원을 끝없이 펼쳐서 평등하고 평탄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제창하고 밝혀서 두루 알리니 알아 체득하는 생각을 이룬다면 그에 따라 기쁠 것입니다.

 

43) 삼장성교서(三藏聖敎序)

(1) 청어제삼장성교서표(請御製三藏聖敎序表) 당 삼장법사 현장

사문 현장(玄奘)이 말씀드립니다.

현장이 정관(貞觀) 원년(627)에 서역(西域)으로 떠나가 여래(如來)의 비장(祕藏)을 구하고, 석가의 유지(遺旨)를 수집하여 총 657부를 얻었습니다. 백마(白馬)에다 이것을 싣고 정관(貞觀) 18(644)에 경읍(京邑)으로 귀환하였습니다. 얼마 안 있어 칙지를 받들어 홍복도량(弘福道場)에서 이를 펼쳐 번역하였습니다.

지금 이미 보살장(菩薩藏) 등의 경전을 번역하여 출간하였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은혜를 내리셔서 경전의 서()를 지어 주시고, 다시 칙지를 내려 중하(中夏)에 널리 선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서역전(西域傳)1부 총 24권을 찬술하였습니다. 삼가 사인(舍因) 이경(李敬)의 편에 1부를 진상드리오나, 참으로 송구스러움을 이기지 못합니다.

삼가 표를 올려 이와 같이 말씀드립니다. 삼가 올립니다.

 

(2) 답현장법사전표칙(答玄奘法師前表勅:현장 법사의 전표에 답하는 칙)

보내주신 글을 잘 살펴보고 그 뜻을 알았습니다.

법사께서 높은 뜻을 일찍 펴시어 행적(行蹟)이 진표(塵表)를 벗어나 보배의 배를 띄워 피안에 이르렀으며 묘한 도를 찾아 법문(法門)을 여시면서 대유(大猷)를 널리 천양하여 온갖 죄악을 씻어 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자비의 구름이

 

거두어지려고 하자 그것을 다시 펼쳐내어 사생(四生)을 덮어주시고, 지혜의 태양이 장차 어두워지려고 하자 이를 다시 밝혀서 팔극(八極)을 비추셨습니다. 이것을 펼쳐내고 밝히신 분은 오르지 법사뿐인 듯합니다.

짐이 배운 것이 비천하고 마음이 졸렬하여 사물에 대해 미혹함이 있는데, 하물며 부처님의 가르침이 그윽할진대, 어찌 우러러 헤아려 볼 수 있겠습니까? 경전의 제호를 청하셨으나, 저로서는 일찍이 듣지도 못한 것입니다. 또 새롭게 서역기(西域記)를 찬술하셨다고 말씀하시니 마땅히 내가 열람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하다.

 

(3) 중청삼장성교서계(重請三藏聖敎序啓:삼장성교서를 거듭 청하는 계) 본궐(本闕)66)

 

(4) 삼장성교서(三藏聖敎序) 당 태종(太宗) 문황제(文黃帝)

대체로 듣자니, 이의(二儀)에 상()이 있어 감싸고 보호하며 생()을 품고, 사시(四時)는 형체가 없이 추위와 더위를 번갈아 가며 만물을 변화시킨다고 한다. 따라서 하늘을 엿보고 땅을 귀감 삼으니 용렬하고 어리석은 이마저 모두 그 단서를 알아서 음()을 밝히고 양()을 통찰하게 되나, 현자와 철인도 그 수()를 다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천지가 음양을 쌓아 알기 쉬운 것은 상()이 있기 때문이며, 음양(陰陽)이 천지에 처하여 다하기 어려운 것은 형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 나타나서 징험할 수 있다면 비록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미혹되지 않으나 형체가 잠기어 보지 못한다면 지혜가 있더라도 오히려 미혹됨을 알 수 있다. 하물며 불도(佛道)가 허()를 높이고 그윽함에 의지하고 고요함을 추구함에 있어서랴?

널리 만물을 구제하고 시방을 다스리며 위령(威靈)을 높이어 위가 없고 신력을 눌러 아래가 없다. 크게 생각한다면 우주보다 크고 작게 생각한다면 터럭 끝으로도 거둬진다. ()도 없고 생()도 없어서 천 겁을 거쳐도 오래지 않고, 숨은 듯 드러내듯 하며 백복(百福)을 운행하여도 지금껏 장구하기만 하다. 신묘한 도리는 심원한 것[]에 모여 이것을 따를지라도 그 끝을 알지 못하며, 법의 흐름이 맑고 고요하니 이것을 잡아도 그 원천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아둔한 어리석은 범부와 구구(區區)한 비루한 이들이 그 나아갈 뜻을 던져버리고 의혹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대교(大敎)의 발흥은 그 기틀을 서쪽 땅에 두었고, 한나라 조정에 이르러서 꿈속에 나타나 동쪽 구역을 비추어 자비를 펼쳤다. 예전의 형체와

 

자취에 따라 나뉘던 때에는 말이 이르지 않고도 교화를 이루었으나 상도(常道)를 드러내던 시대가 되어서는 백성들이 덕을 우러르고 존귀함을 알게 되었다. 그림자를 숨기고 참다움으로 돌아가며 규범을 옮기고 세속을 넘어서게 됨에 미쳐서는 금빛 얼굴이 색을 가리어 삼천의 광명을 비추지 못하고 빼어난 형상으로 대도(大圖)를 열고 공()하여 32()을 단()하였다.

따라서 미언(微言)이 널리 퍼지고 3()에서 함류(含類)를 건져 내며, 남겨진 가르침을 멀리 펼쳐서 군생(群生)10()로 인도하였다. 그러나 참다운 가르침은 우러르기 어려워서 그 지귀(指歸)를 하나로 할 수가 없었다. 잘못된 배움은 따르기가 쉽기 때문에 삿된 것과 바른 것이 이로써 분분해졌다. 이리하여 공()과 유()의 논리가 세속에서 익힌 것에 따라 시비를 나누었고, 대소(大小)의 승()이 잠깐 사이에 때로 말미암아 융성함이 변하였다.

현장 법사는 법문(法門)의 영수(領袖)이다. 어려서 품은 뜻이 영민하고 방정하여 일찍이 3()67)의 심지(心志)를 깨달았으며, 자라서는 신묘한 정()에 계합하여 앞서서 4()68)의 행()을 끌어안았다. 솔바람과 물 위에 뜬 달조차 이와 같은 청화(淸華)에 견줄 수가 없는데, 신선의 이슬과 빛나는 구슬일지라도 어찌 그 밝고 윤택함에 비길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지혜로써 무루(無累)에 형통하고 신명으로 형체가 없는 것을 헤아리며 6()을 뛰어넘어 멀리 벗어났으니, 천고에 비길지라도 마주할 짝이 없다. 마음을 내경(內境)으로 거두며 정법(正法)의 흩어짐을 슬퍼하였으며, 생각을 현문(玄門)에 두고서 깊은 글이 와전됨을 개탄하였다. 조목을 나누고 이치를 분석하여 저 앞서 들은 것을 넓히며 거짓됨을 잘라내어 참다움을 이어 이 후학에게 열어 주고자 생각하였다.

마음을 정토(淨土)에 두고서 서역(西域)으로 떠나갔으니, 위험을 무릅쓰고 나아가며 지팡이에 의지하여 홀로 건너갔다. 쌓인 눈이 아침마다 날려 도중에 길을 잃기도 하였고, 모래 바람이 휘몰아쳐 허공 바깥으로 하늘까지 자욱하였다. 만 리의 산천마다 그 연기와 노을을 휘저으며 그림자처럼 나아갔으니, 백 겹의 추위와 더위를 무릅쓰고 서리와 비를 밟으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성심(誠心)이 막중하여 수고로움조차 가벼이 여기고 깊이 구하여 소원을 이루었으니, 서쪽 나라를 다니며 10년 하고도 7년째가 지나 대도(大道)의 국토를 샅샅이 유력하며 정교(正敎)를 물어 구하였다. 쌍림(雙林)의 팔수(八水)에서 도를 맛보고 바람을 마시며, 녹야원(鹿野園)과 영취봉에서

 

그 기특함을 살펴보고 그 기이함을 우러렀다. 선성(先聖)의 지극한 말씀을 계승하여 상현(上賢)에게 참다운 가르침을 받고, 묘한 문의 자취를 찾아내어 오묘한 업을 정밀하게 궁구하였다. 1()과 오율(五律)의 도()는 마음의 밭에서 달렸고, 팔장(八藏)69)과 삼협(三篋:三藏)의 글이 구해(口海)에서 파도쳤다.

마침내 나라마다 다니면서 삼장의 요긴한 글을 모두 거두었는데, 대체로 657부였다. 이것을 번역하여 중하(中夏)에 퍼뜨려 성업(聖業)을 선양하였고, 서극(西極)에서 자비로운 구름을 끌어다가 동수(東陲)에 법의 단비를 뿌렸다.

성스런 가르침이 결핍되었다가 다시 온전해지고 창생(蒼生:백성)이 죄만 짓다가 다시 복을 누리게 되었고, 화택(火宅)의 마른 불길을 적시어 미혹의 길에서 다 함께 건져내며, 애욕(愛欲)의 물길의 어두운 파도에 빛을 비추어 함께 저 피안에 이르렀다. 이것으로 악은 업에 의해서 추락하고, 선은 연()에 의해서 고양되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고양하고 추락하는 단서는 오로지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이니, 비유하건대 계수나무는 높은 산봉우리에서 태어나 이슬을 받아 먹으며 그 꽃을 피우게 되고, 연꽃은 맑은 물결에서 피어나 흩날리는 먼지가 그 잎사귀를 더럽히지 못하는 것과 같다. 연꽃의 성품이 본래 청결하고 계수의 바탕이 본래 바른 것이 아니다. 진실로 의지하는 것이 높다면 미물(微物)이라도 더럽힐 수 없고 의지하는 것이 바르다면 더러운 부류라도 더럽힐 수 없다. 지각이 없는 풀이나 나무조차 잘 기르면 잘 자라는데, 하물며 지각을 가진 인륜(人倫)에 있어서 경사스런 일을 말미암지 않고 경사로움을 구하겠는가?

이와 같은 경전이 유포되어 장차 일월과 같이 다하지 않고, 이와 같은 복이 널리 베풀어지되 하늘과 땅과 더불어 길이 장구하기를 바란다.

 

(5) 사칙재경서계(謝勅齋經序啓:가져온 경의 서문을 칙서로 보내주신 데 대한 감사 장계) 석현장(釋玄獎)

사문 현장이 말씀드립니다.

듣자오니 육효(六爻)에 대해 깊게 탐구해 보더라도 태어나고 죽는 것에 국한될 뿐이고, 백 가지 물건의 이름을 바르게 해도 진여(眞如)의 경계를 건너지 못합니다. 복희의 서책70)에서 멀리 징험해 보더라도 그 오묘함을 엿보지만 그 신명을 헤아리지 못하고 멀리 헌도(軒圖)71)를 생각해 보더라도 두루 가려 뽑지만 모두 그 아름다움으로 되돌려집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황제 폐하께서 옥대(玉臺)에 바탕을 내리고, 금륜(金輪)으로 하늘을 다스리시며 선왕(先王)의 구주(九州)를 넓히고,

 

백천의 일월을 가려서 열대(列代)의 구역(區域)을 개척하고, 항하의 법계(法界)를 받아들였습니다. 드디어 급원정사(給園精舍)를 제봉(提封:제후의 봉지)에 들게 하고 패엽(貝葉)의 신령한 글을 모두 책부(冊府)로 귀속하게 하였습니다.

현장이 예전에 석장(錫杖)을 휘두르며 기사굴산(耆闍崛山)을 찾아가는데, 거쳐간 길이 만 리일지라도 하늘의 위엄에 기대어 마치 지척인 양하였고, 천엽(千葉)을 타지 않고도 쌍림(雙林)을 찾아가되 마치 한 식경이 지난 듯하였습니다. 삼장(三藏)을 수색하여 용궁(龍宮)에 갖춘 것을 다하였으며, 1()을 연구하여 취령(鷲嶺)에 남기신 뜻을 궁리하였습니다. 아울러 백마(白馬)에 싣고 와서 자신전(紫宸殿)에 받쳤습니다.

얼마 안 있다가 조칙을 내리심에 힘입어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현장 저의 식견이 용수(龍樹)72)에 어긋나고 전등(傳燈)의 영화로움에 누를 끼치며 재주가 마명(馬鳴)73)과 달라 사병(瀉甁)의 민첩함에 매우 부끄럽습니다.

번역하는 경론마다 엇갈리는 바가 특히 많았으나, 천은(天恩)을 입어서 정신을 가다듬어 서문을 지어 주셨습니다. 문장은 상계(象繫)의 겉을 뛰어넘어 마치 해가 모여 천 갈래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그 이치는 온갖 오묘한 법문을 통괄하여 법운(法雲)이 백 가지 초목을 적셔 주듯 하였습니다.

한 말씀의 설법이라도 억 겁 동안 만나기 어렵기에 미미한 중생으로는 친히 거룩한 메아리조차 받들지 못합니다. 뛸 듯이 기쁜 것이 마치 수기(授記)를 듣는 듯합니다. 참으로 지극한 은혜를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표를 올려 궐내(闕內)로 보내면서 아뢰니 잘 살펴봐 주십시오.

삼가 말씀드립니다.

 

(6) 답사재경서계칙(答謝齎經序啓勅:가져온 경서에 서문을 지어 주심을 감사하는 장계에 대한 칙답) 당 태종 문황제

짐은 재주가 규장(珪璋)을 사양하는 데다 말조차 박식하매 부끄럽기만 합니다. 특히 내전(內典)에 이르러서는 살필 것이 없습니다. 어제 서문을 지어 보았으나 참으로 졸렬하기만 합니다.

생각건대 금빛 죽간에 한묵(翰墨)으로 더럽히고, 주림(珠林)에 기와 조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두렵기만 합니다. 갑자기 편지를 보내 주시어 도리어 칭찬해 주시니, 아무리 생각해도 더욱 낯이 뜨거워질 따름입니다. 참으로 칭찬받을 만큼 글이 좋지 못한데도, 이처럼 법사께서 손수 감사를 표하시도록 폐만 끼치게 되었습니다.

 

44) 술삼장성교서(述三藏聖敎序:삼장성교서를 서술함) 당 고종황제

정교(正敎)를 드러내자면 지혜 없이는 그 글을 넓히지 못하고

 

미언(微言)을 높게 천명하자면 어질지 않고서는 그 이치를 정할 수 없다. 대체로 진여(眞如)의 성스러운 가르침은 제법(諸法)의 그윽한 바탕이며 온갖 경전의 바퀴축이다.

종합하여 개괄함이 크고도 원대하며 오묘한 이치가 아득하고 깊으니, ()과 유()의 정미함을 지극히 하였고, ()과 멸()의 요긴한 기틀을 체득하였다. 말이 무성하고 도는 넓으니, 이를 찾더라도 그 근원을 궁구하지 못하며, 글은 드러나 있으나 이치가 그윽하니 이를 밟더라도 그 끝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인이 자비로움을 내리셔서 그 업()에 선하게 이르지 않음이 없게 하시고, 묘한 교화를 내리시어 그 연에 악업(惡業)이 잘리지 않음이 없게 하심을 알게 된다.

법망(法網)의 강기(綱紀)를 열고 6()의 정교(正敎)를 넓혀서 군유(群有)를 도탄(塗炭)에서 건져내고 삼장의 비밀 문을 여니, 이로써 날개가 없이도 드높이 날아가며 도의 뿌리가 없어도 영원히 굳다고 이름한다.

()의 이름이 경사스러움을 퍼뜨려 예부터 수고(遂古:上古)를 거치면서도 늘 머물렀으며, 감득(感得)으로 나아가 그 몸을 응하심이 진겁(塵劫)을 거치더라도 시들지 않았다. 새벽의 종소리와 저녁의 범패(梵唄)는 영취봉(靈鷲峰)에서 두 개의 소리를 교차하였고, 지혜의 해와 법의 흐름은 녹야원(鹿野園)에서 한 쌍의 수레바퀴를 굴렸다. 허공을 물리치는 보개(寶蓋)는 상서로운 구름과 짝하여 함께 날아갔으며 풀이 무성한 들판과 봄날 숲속은 하늘 꽃과 더불어 이채를 더하였다.

삼가 엎드려 생각하니, 황제 폐하께서는 최상의 그윽함으로 복에 바탕이 되니 팔짱을 끼고 옷자락을 내려뜨린 채 팔황(八荒)을 다스려 덕이 검려(黔黎:백성)에 미치며, 옷자락을 여미어 만국(萬國)이 조공하니 은혜가 골수에까지 보태졌다. 석실(石室)에 패엽(貝葉)의 글월을 거두니, 혜택이 벌레까지 미쳐서 금궤(金匱)마다 범설(梵說)의 게송이 넘쳤다. 이리하여 아뇩달(阿耨達)의 물이 신전(神甸)의 팔천(八川)으로 통하게 하였으며, 기사굴산(耆闍崛山)이 숭산(嵩山)과 화산(華山)의 취령(翠嶺)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법의 성품은 적막한 것이나 마음으로 돌아가 통하지 않음이 없으며, 지혜의 자리는 그윽하고 오묘한 것이나 간절한 정성에 감동하여 바로 드러나게 된다. 어찌 캄캄한 밤중에 지혜의 횃불이 빛을 밝히며, 화택(火宅)의 아침에 법의 단비를 내린다고 말하는가?

마침내 백 갈래 냇물이 흐름을 달리하더라도 바다에서 다 같이 만나고, 만 가지로 갈려진 이치가 끝내는 진실에서 거두어 이루어지니, 어찌 탕왕(湯王)

 

무왕(武王)과 더불어 그 우열을 가리겠으며, 요임금과 순임금과 함께 그 성스런 덕을 따지겠는가?

현장 법사는 일찍이 총명함을 갖추시고 뜻을 세워 번잡하지 않게 유지하고 초츤(齠齔)74)의 나이에 신명이 청명(淸明)하여 그 몸을 헛된 세상에서 건져 올리고, 그 마음을 선정의 방안으로 거두면서 자취를 그윽한 바위 속으로 감추었다. 삼선(三禪)에 머물면서 10()를 두루 다니고 6()의 경계를 넘어서서 가유라위(迦維羅衛)로 홀로 발걸음을 옮기며 1()의 이치를 회통하였다.

근기(根機)에 따라 만물을 교화하고자 하였으나, 중화(中華)에 그 바탕이 없기에 인도의 진문(眞文)을 찾아서 멀리 항하수를 건너면서 마침내 그 글을 이해하기를 기대하였다. 설령(雪嶺)을 자주 오르며 다시 반쪽짜리 구슬을 얻으니, 도를 찾아 오고감이 10년하고도 7년째였다. 오로지 석가불(釋迦佛)의 전적을 형통하게 갖추어 만물을 이롭게 하는 것에만 뜻을 두었다.

정관(貞觀) 19(645) 26일에 홍복사(弘福寺)에서 조칙을 받들어 성스러운 가르침의 요긴한 글을 번역하였으니, 대체로 657부이다. 큰 바다의 물결을 끌어다가 진로(塵勞)를 씻어 다하지 않으며, 지혜 등불의 긴 불꽃을 전하여 어둠을 밝혀 늘 환하게 하였다. 스스로 오랫동안 훌륭한 연()을 심은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 같은 이치를 드러낼 수 있겠는가?

이른바 법상(法相)이 상주하여 삼광(三光)의 밝음을 가지런하게 한 것은 우리 황제의 복업(福業)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니, 이의(二儀)의 견고함과 같다.

엎드려 어제중경논서(御製衆經論序)를 살펴보면, 참으로 옛것을 비추어 지금에 옮겼으니, 이치는 금과 돌의 소리를 머금고 글은 바람과 구름의 윤택함을 껴안았다.

() 내가 이에 진세(塵世)를 가벼이 하고 태산을 밟으니, 이에 감로가 내려 그 흐름에 보태진다. 그 대강을 간략히 거론하되 이와 같이 적는다.

 

- 답법사현장사계서(答法師玄奘謝啓書:현장 법사의 감사 장계에 대한 답서) 당 고종

()는 원래 재주와 학문이 모자르고 성품도 영민하지 못합니다. 내전(內典)의 여러 글은 특히 살펴보지 못하였는데, 이로써 논의 서문을 지으니 참으로 조잡하기만 합니다.

갑자기 편지를 보내 주셔서 그 찬술을 칭찬하셨으나, 제 자신을 돌아보아 스스로를 반성함에 부끄러움과 송구스러움만 교차합니다. 법사께서 멀리 가시는데 도리어 폐만 끼쳤는지라 참으로 부끄럽기만 합니다.

 

 

45) 금강반야경주서(金剛般若經注序) 저량(褚亮)

만약 대괴(大塊)가 형체를 고루하고 지혜를 부려 만물에 따른다면, ()은 이로써 습관을 고치고 성품이 사려(思慮)와 더불어 옮겨질 것이다. 그렇다면 통달하여 보고 궁리하여 살핀다면 선각(先覺)보다 빛나고 지혜의 횃불을 비추어서 깊은 어둠을 벗어나며 애욕(愛欲)의 강물에서 건져내어 피안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것을 만 겁 동안 윤회하여 6()에 덮이고 물들며 휩쓸리거나 숨어서 끝없는 것을 따르며 내달려서 지름길을 쫓아가는 것과 어떻게 같은 차원에서 말할 수 있겠는가?

영천(穎川)의 유()는 어려서 일찍부터 독실한 믿음을 넓히고 반야(般若)를 밝힘으로써 정도(正道)로 귀의하였다. 대승(大乘)의 이름과 모양을 드러내고 머물지 않는 종극(宗極)을 표방하여 심려(心慮)의 기준을 벗어났으며 언상(言象)의 바깥을 끊었다. 그리하여 머리를 묶고 수지(受持)하며 몇 년 동안 곳곳을 다니면서 비록 오묘한 소리로 연설하며 암송하여 어그러지지 않았더라도 영혼의 근원은 깊고 깊어서 혹 깨닫지 못함이 있다. 미혹된 곳이 멀지 않음을 한탄하며, 수양의 길을 돌아보며 크게 한숨 쉰다.

이에 혜정(慧淨) 법사에 의지하여 오묘한 이치에 널리 통달하고, 변론은 자과(炙輠)75)와 같이 하고 이치를 따지는 것은 연환(連環:쇠사슬)처럼 하였다. 유생(庾生)이 입실하여 기미를 연구하고 선유(善誘)를 가슴에 새겼으니, 이 같은 서원에 올라타서 주석(註釋)하여 서술할 것을 간구하였다.

법사는 거울을 드리워 피곤함을 잊고 구준(衢罇)을 스스로 채웠으니, 위로는 신명이 감응하는 도()에 의지하고, 곁으로는 심기(心機)의 쓰임새를 다하여 미묘한 말씀을 창달하고 지극한 이치를 선양하자 지난해의 오래된 의심은 얼음이 녹듯 풀렸다. 지금 이 같은 묘한 이치는 안개가 걷히듯 밝아졌으니, 상법(像法)의 동량이 되어 군생(群生)의 눈과 귀를 변하게 하였다.

예리한 말씀이 빼어나 우뚝하니, 영취산을 비추며 높음을 견주고, 샘물 같은 말씀이 흐름을 세게 하여 앞다투어 멀리 용궁(龍宮)으로 나아갔다. 석가의 가르침이 서쪽에서 발흥하여 도의 흐름이 동쪽으로 흘렀으니, 세상에서는 현명함과 지혜로움을 두루 살펴보고 재주는 넉넉하게 두루 겸하여 면밀하게 예지(睿旨)를 갖추었으니 참으로 그러한 사람을 보기 드물었다.

지금 묘한 법문을 다시 천명하여 당세에 그 전적을 깊이 하였으니, 이 같은 현종(玄宗)을 생각하면

 

그 울창하기가 으뜸이라 할 수 있다. 태세(太歲)가 엄무(閹茂)76)에 있는 때에 비로소 마음속에 품게 되었고, 달이 중려(仲呂:4)에 있을 때에 붓을 놓았다. 치문(緇門)과 세속(世俗)이 우러러 헌개(軒蓋)의 그늘을 드리웠다. 종을 쳐서 그 크고 작음에 따르고 검을 울려 그 광채를 발하니, 일시의 학려(學侶)가 전문(專門)으로 업을 받아 다 같이 파도를 건너 번갈아 서로 이어 전수하였다. 바야흐로 진()나라의 지통림(支通林)과 혜원(慧遠) 법사를 가볍게 보게 되었고, 도안(道安) 법사를 내려다보면서 홀로 큰 길을 걸어나가 정법을 마주 거양하였다.

요동(遼東)의 진본(眞本)을 매달아 놓은 금처럼 우러러보면서도 이것을 새겨내지 않았고, 진리의 표준이 의지하는 것은 모두 군옥산(群玉山)77)에 거두어 썩지 않게 하였으니, 어찌 성대하지 않겠는가? 어찌 또 성대하지 않겠는가?

 

46) 금강반야경집주서(金剛般若經集註序) 당 이엄(李儼)

새 발자국을 보고 글자를 만들고78) 커다란 규범을 팔체(八體)로 떨치며, 기린이 잡힌 것에 대해 눈물을 흘리고79) ()을 펼치니 커다란 파도가 구류(九流)80)로 흩어졌다. 그러나 그 자취를 밟는 자는 환역(寰域)을 넘지 못하고, 그 근원을 건너는 자는 겨우 인의(仁義)로 돌이켜질 따름이니, 누가 지성(至聖)으로써 때를 타고 능인(能仁)으로써 법을 밝히는 것과 같겠는가?

추호(秋毫)를 십지(十地)로 쪼개고 사계(沙界)를 거두어 대도를 새기며, 봄철의 얼음을 1()으로 녹이면서 진겁(塵劫)에 우뚝하게 교화를 펼친다. 모양이면서 모양이 아닌 듯하고 공()이면서 공이 아닌 듯하니, 깊어서 헤아릴 수 없고 넓어서 상()이 없다. 그 이름과 말을 빌려서 바탕을 세우고, ()과 실()을 포괄하여 쓰임새를 삼으며, 비추임 없는 비춤을 다하여 꿈결 같은 경계에서 거듭 미혹한 이들을 인도한다. 앎이 없는 앎을 운용하여 무너지는 집안에서 군미(群迷)를 끌어내는데, 그 실상을 연구하면 바로 반야(般若)를 종지로 삼는 것이다.

진용(眞容)이 서쪽에서 사그러들자 상교(像敎)가 동쪽으로 흘러 향성(香城)이 면구(綿區)81)로 옮겨 세워지고 보대(寶臺)가 중양(中壤)으로 옮겨 이루어졌다. 비늘 달린 것과 날개 달린 것들이 모여 모두 그 법을 따르며 구름과 안개를 걷어 내는 자들은 이미 그 진리를 깨달았다. 참으로 지극하니

 

칭할 만한 말이 없다.

이 같은 범본(梵本)이 진()나라 홍시(弘始)82)에 도착하였는데 구마라집 삼장이다. 장안성(長安城)에서 1권을 처음으로 번역하면서 사위국(舍衛國)’이라 이름하였다. 그 이후로 뒤이어 후위(後魏) 선무제(宣武帝)의 치세에 보리류지(菩提流支)83) 삼장이 낙양성(洛陽城)에서 다시 1권을 번역하면서 사바제(舍婆提)’라 이름하였다. 강남(江南)에서 양나라 말엽에 진제(眞諦) 삼장이 다시 1권을 번역하면서 기수림(祇樹林)’이라 이름하였다. ()나라 초엽 개황(開皇) 연간에 불타야사(佛陀耶舍) 삼장이 다시 1권을 번역하면서 기타림(祇陀林)’이라 이름하였다. 대당(大唐)에서는 현장(玄奘)84) 삼장이 다시 1권을 번역하면서 서다림(誓多林)’이라 이름하였다. 비록 수레를 나누어 재갈을 날리어 다 함께 지극함으로 돌이키고자 하더라도, 말로 담아 이치를 분석하여 그 갈래를 달리 한 것뿐이다.

그러나 보리류지의 번역에는 천친(天親)석론(釋論)3권을 겸하고 있으며, 다시 금강선론(金剛仙論)10권을 번역하였다. 수나라 초엽에 불타야사 삼장이 다시 무착(無著)석론(釋論)2권을 번역하였다. 이 세 가지 논을 비교해 보면 문장의 뜻이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신본(新本)은 이치가 은밀하고 글이 간략하며 구본(舊本)은 기교[]가 드러나고 뜻이 두루 미쳐 있다. 다시 진()나라 치세의 구마라집과 진()나라 왕실의 사령운과 수대(隋代)의 담침(曇琛)과 황조(皇朝)의 혜정(慧淨) 법사 등은 기업(器業)이 융성하여 그 넓고 단아함이 두루 알려졌다. 이 같은 경전을 탐미하여 모두 주석을 붙이면서 비밀스런 이치를 고찰하여 모두 별도의 이치를 드러내었다.

이때의 장안 서명사(西明寺)의 석도세(釋道世) 법사는 자()가 현운(玄惲)이다. 덕은 그윽한 흐름을 비춰 주고 도는 평소 쌓은 것에 바탕을 두었다. 성스러운 가르침을 가슴으로 새기며 이 같은 글을 바르게 여겨 좋아하여 여러 문호를 해석하고 주석하여 찾아보고 규명하여 수고로움을 다하였어도, 그 아름다움을 종합하여 하나로 관철하는 것만 못하였다. 이어 여러 사가(史家)를 한데 묶어 집주(集註)’를 지었으니, 제목을 붙이고 과목(科目)을 분류하여 부()로 새기고 묶어서 3권을 이루어 집주반야(集註般若)라 이름하였는데, 아울러 의소(義疏)3권과 현의(玄義)2권을 출간하였다.

현재의 쓰이는 요체를 사용하여 문장의 이치를 두루 갖추었다. 자못 영산(靈山)에 한 삼태기의 흙을 보태어

 

하늘의 높음보다도 더욱 높게 하고 큰 바다가 냇물을 받아들여 연일(沿日)의 파도보다도 더욱 넓기를 바랐다. 그 글을 열어 보는 자는 그 이치를 다하기를 원하였고, 도를 강의하는 자는 그 성품을 꿰뚫어 통달하였다. 배우는 무리들은 수고로이 하지 않고도 공이 갑절이나 되었으며, 담소하는 객들은 아울러 채집하는 것과 같이 하였다. 금석(金石)의 묘한 이치는 이요(二曜)를 가림으로써 길게 매달리고, 옥축(玉軸)의 미언은 삼재(三才)를 꿰뚫어 끊어짐이 없게 하였는데, 어찌 다만 소리는 취령(鷲嶺)에서 울리고 그 글자가 용궁(龍宮)에 쌓일 뿐이겠는가?

 

47) 여번경대덕등서(與翻經大德等書:역경하시는 대덕 스님 등에게 보내는 편지) 당 유선(柳宣)

 

- 귀경게(歸敬偈)

 

모든 부처님께 머리 숙여 절하오니

신령스런 위엄으로 보호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간절히 청하오며

혹 원망하거나 비방하는 것은 없습니다.

 

고해(苦海)에 빠져 깨우치지 못하오니

부디 원각(圓覺)으로 거두어 주십시오.

애욕의 바다에 오래 빠져들어

배를 타고 노 저어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이견(異見)의 주장만 내세워 어긋나게 다투니

다시 화합하여 귀의합니다.

현리(玄理)를 없애고 유()만 취하여

이치가 끊어져서 지나치게 어긋났습니다.

 

거만한 마음으로 8정도(正道)에 어긋나고

우습게도 백비(百非)에 빠져들어

취하고 내침을 함께 구별하면서

바름과 혼탁의 조짐을 같이하였습니다.

 

금옥을 골라 자갈을 제거하고

옥을 쪼아 빛을 더하며

능인(能仁)께서 널리 살펴보시고

생각 다듬어 기미를 궁리합니다.

 

지성(至誠)으로 대도(大道)에 마주하니

누가 감히 비방하겠습니까?

기탄없이 공덕을 기리지만

오로지 쇠퇴하기만 합니다.

 

원하옵건대 저를 받아주시고

저를 빛나게 하십시오.

부끄럽게 삼가면서 성실하게 나아가니

위대한 가르침을 내려 주소서.

 

삼가 정성껏 귀의하며 아룁니다.

예전에 능인(能仁)께서 왕궁으로 시현하시고 쌍수(雙樹)에서 잠시 열반에 드시자, 미묘한 말씀이 이미 창도되고 지극한 이치가 넓혀져서 찰토(刹土)마다 섭수하는 은혜를 입고 회생(懷生)마다 부활하는 혜택을 받았습니다.

깨달음의 나무가 서쪽에서 그늘을 드리우며, 그 깨달음의 그림자가 동쪽에 이르자 한()나라와 위()나라가 이것으로 남상(濫觴:사물의 시초)을 삼았으며, 전진(前秦)의 부씨(符氏)와 후진(後秦)의 요흥(姚氏)은 그 풍채를 성대히 하였습니다. 이로부터 이름난 스님들이 이어나오고 통달한 선비들이 연이어 무성하였으니, 지혜의 태양이 길게

 

드리우고 법륜(法輪)을 늘 몰게 되었습니다.

개척의 공은 마등(摩騰) 스님과 법현(法顯) 스님에게서 시작되었고, 널리 천양하는 힘은 구마라집(鳩摩羅什) 법사와 도안(道安) 스님에게 힘입었습니다. 별도로 단도개(單道開)가 있어 멀리 나부산(羅浮山)으로 갔고 불도징(佛圖澄) 법사가 가깝게 조()나라와 위()나라에 출현하셨는데, 비록 규각(圭角)의 성긴 말이라 세세히 개진하지 못하였으나 공()과 유()1()으로 분별하고 고집(苦集)4()로 논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사물이 도리를 빌려서 유()를 밝혔으나, 끝내 유위(有爲)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말을 그치고 도를 밝히고서야 비로소 응적(凝寂)을 증득하였습니다.

오히려 현()에 집착하고서 현을 구하는 것은 현하면서 현의 이치가 아닙니다. 혹 현으로 인하여 현을 잊어버리게 되면 혹 이것은 현의 뜻이 됩니다. 비록 어두움이 그윽한 길에서 회통하고 일은 언상(言象)을 끊더라도 중생을 거두어 적막으로 되돌리는 것은 끝내 통발과 올가미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미 말을 세운다면 시비가 첨예하게 일어나 마치 전쟁에서 창과 칼이 다투듯 하였습니다. 패배한 사람은 기색을 감추고 이긴 이는 앞장서 외쳤는데, 이로써 마군(魔軍)에게 항복받고 여러 외도(外道)를 제압하였습니다. 스스로 무외(無畏)의 변재가 아니더라도 비난에 답변하는 것마다 방책이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여러 무리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우리들을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이로써 마음을 오로지 하여 도로 나아가 한 가지 뜻으로 총지(摠摠)하며 법당(法幢)을 세우고 법고(法鼓)를 멀리 울렸습니다.

마침내 법기(法旗)와 법고(法鼓)가 이미 바르게 되자, 대적하는 이들이 저절로 꺾였습니다. 법륜이 이미 굴려지자 미처 굴복하지 않았던 이들마저 제압하였으니, 마치 바람을 쳐다보면서 기가 쓰러지듯이 하였습니다. 어려움에 대응하여 입을 다물면서 삼보(三寶)를 널리 천양한다면 이런 곳은 일찍이 없습니다.

상약(尙藥)85) 여봉어(呂奉御)는 공유(空有)의 문으로 들어가서 정견(正見)의 길로 달려들어서 예전의 현자를 본받는 것을 지녔으며, 미묘함을 통찰하는 것은 지나간 철인을 꾀하였습니다. 그 말은 분별력이 있었고, 그 뜻은 밝았으며, 그 덕이 참되고 그 행이 뚜렷하였습니다.

이미 8()86)의 흐름에 목욕하고 다시 7()87)의 나눔을 깨우쳤으니, 그림자와 메아리가 가르침을 이룬 것은 마치 정명(淨名)이 암라원(菴羅園)을 찾아간 것과 같고, 도를 듣고 반드시 구한 것은 파륜(波崙)이 무갈(無竭:曇無竭)에 귀의한 것과 같습니다. 뜻을 불교를 널리 펴는 데 두고 인명(因明)88)의 소()를 논파하였으니, 그것이 옳다면 반드시 그 장점되는 바를 옳게 여겼고, 그것이 그르다면 이치를 따져서 그 잘못을 지적하였습니다.

 

지금 스님들이 운집하여 다 함께 타산(他山)의 돌을 캐어내시는 것을 조야(朝野)가 모두 전해 들었습니다. 여군(呂君)이 이로움을 청하니 옆에서 듣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어나가는 것[瀉甁]을 모두 우러르며 후회하는 근원을 씻어내어 의심과 분노의 쌓임을 없앴습니다.

태사령(太史令) 이순풍(李淳風)이 이 소식을 듣고 나아가 말하기를, “제가 마음속으로 바른 길을 생각하며, 행동으로는 귀의를 따릅니다. 실제로써 대각(大覺)의 현구(玄軀)를 삼으며, 무위(無爲)로써 법체(法體)를 조어(調御)합니다. 그러므로 빛나는 해가 하늘에 떠 있어 진실로 상현(上玄)의 운용을 돕게 되고, 어진 스님들이 법을 천양하니, 실로 천사(天師)의 묘한 도를 돕습니다. 이로써 신심(信心)으로 섭수하는 바이고, 그 마음을 편안케 하는 바입니다. 단지 황엽(黃葉)을 금()으로 삼고 산 꿩을 봉황으로 삼으며, 남곽(南郭)이 잘못 연주하고[濫吹],89) 치수(淄水)와 승수(澠水)의 흐름을 섞지 않을 뿐입니다. 혹 이의(異議)가 있다 하나, 어찌 제 본심이겠습니까, 제 본심이겠습니까?”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학림(鶴林)90) 이후로 세월이 2천 년 가까이 흘렀으니, 정법시대가 이미 지나가고 말법시대의 초엽을 밟게 되었습니다. 그윽한 이치는 울창하나 드러나지 않고 깨달음의 길은 잠겨 점차로 쇠퇴해집니다.

현장 법사는 법계(法界)에 두타(頭陀)하며 멀리 가유라위에 이르러서 눈으로 도의 나무와 금하(金河)의 흐름을 보았습니다. 이리하여 7()8()91)를 엿보며, 비야리성(毘耶離城)과 영취봉(嶺鷲峯)에서 몸소 그곳의 마을로 들어가 사라(紗羅)의 보배 계단을 눈으로 직접 보고 그 허실을 몸소 징험하였습니다. 심지어 왕사성(王舍城)ㆍ단특산(檀特山)ㆍ항하수(恒河水)까지 둘러보았으니, 이 같은 것들은 말로도 다하기 쉽지 않은 것입니다.

게다가 서역의 이름난 스님들이 친히 얼굴을 마주하여 반야(波若)를 말씀하시지 않음이 없었기에 동쪽에서의 의심스러운 이치를 모두 그와 같은 스님들에게 물어보았던 것입니다. 비니(毘尼)의 장()을 이미 받들어 지니며 버리지 않고, 비담(毘曇)의 밝은 이치조차 통찰하여 항상되게 하며, 소투로(蘇妬路:脩多羅)는 이미 성명(聲明)에서 얻었고, 욕다라(耨多羅)도 의심으로 막힌 것을 갈라 끊었습니다. 법에는 크고 작음이 없으나 가슴속에 새기지 않음이 없었으며, 이치에는 깊고 얕음이 없으나 모두 총명하게 생각하는 것으로서만 터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삼장(三藏)’의 이름은 진단(震旦)에서 미루어 정해지고, ‘마하(摩訶)’의 호칭이 가유라위(迦維羅衛)에서

 

함께 칭하여지는 바가 되었습니다. ()과 실()의 사이가 어떻게 도라고 칭해질 수 있습니까?

그러나 여군(呂君)의 학식이 해박하고 의리(義理)에 정통하며 언행(言行)과 추기(樞機)가 상세하게 갖추어 있습니다. 다라불(陀羅佛)에 이르러서 스스로 생이지지(生而知之)를 받았으니, 걸림없는 변재가 어떻게 엎드려 배우는 것에 연유하겠습니까? 단지 인명(因明)의 이치가 숨겨져서 소견이 같지 않는 것이 마치 코끼리를 만지며 각기 그 형체를 달리 봄과 같으며, 그릇에 음식을 함께 담아도 색깔이 다른 것과 같습니다.

여군(呂君)이 이미 도속 간에 마음을 두고 가리켜 정하기를 희망하여 추상가을 서리가 이미 내리고, 그 곁에서 홍종(鴻鍾)의 울림을 듣고자 하며, 법운(法雲)이 이미 드리웠으니 벼락을 떨구기만 바랍니다. 단지 신룡(神龍)과 코끼리가 차고 밟는 것이 노새가 감당할 바가 아닌 것은 스님[緇服]의 호오(壺奧)를 속인이 실천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멈칫거리며 나아가지 못함[龍鍾]에서 벗어나 설()에 대항하여 진구(塵垢)를 없애고 의심을 풀어냄이 바로 필추(苾芻:비구)의 실담(悉曇)92)이더라도, 이 또한 우바(優婆)가 애써야 할 바입니다. 이처럼 보잘것없는 뜻을 전해 올립니다만, 부디 귀찮게 여기지 말아 주십시오.

만약 막히어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삼장법사께 자문 받아 처리하기를 바랍니다. 다시 이를 받들어 사부대중에게 전하여 제시한다면, 정도(正道)가 번창하고 부장(覆障)이 영원히 끊어질 터이니, 삼보(三寶)의 흥륭도 이에 있지 않겠습니까? 이번 기회를 그대로 지나쳐 보내면, 다시는 소상히 말씀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제자(弟子) 유선(柳宣) 올림

 

- 답박사유선(答博士柳宣)과 송() 석명준(釋明濬)

 

환술송(還述頌)

 

지고하신 대성(大聖)께서

종각(種覺)이 원만하며 밝으시니

그윽하게 살피지 않으심이 없어

마치 소리가 메아리 치듯 한다.

 

여경(餘慶)의 복록에 의지하지 않고

누가 지성으로 귀의하여 깨우치려나

훌륭한 도를 우러러보며

미혹한 중생을 인도한다.

 

백 갈래 냇가 사도(邪道)의 파도가

일미(一味)로 합쳐지니

만물마다 취하고 버림이 있으나

이는 차고 기움이 없구나.

 

여덟 가지 삿됨이 예봉을 다투고

4()로 이름을 다투려 하나

아무리 꾸며도 옳음을 보지 못하는구나.

무거운 짐을 덜어내어 가볍게 한다.

 

햇살 비추매 얼음이 녹고

맑은 물에 보배구슬 던져 넣으니

상덕(上德)이 드러나고

대도를 체득하고 정()에 머무네.

 

중생이 멋대로 욕하거나 탓하여도

동요됨 없이 영화로움 남기시는구나.

높고 높으신 영철(令哲)이시여

무성하고 무성한 함정(含情)이여

 

 

달관(達觀)을 기다려

이 같은 권형(權衡)을 정하고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드러내어

아름답고 훌륭함을 가려내네.

 

다시 이같이 되돌려 말씀드립니다.

이윽고 편지를 열람하며, 귀경게(歸敬偈)의 말씀을 읽어 보니 문채(文彩)가 빛나는 것이 어찌 수려하기만 하겠습니까? 그 정성스러움을 따져보더라도,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슬프게도 애욕(愛欲)의 바다가 하늘 높이 물결치고, 사견(邪見)의 산자락이 해를 가리기에, 그만 인아(人我)에 막힌 자는 거꾸로 떨어지게 되니, 이를 어찌 하겠습니까? 만결(慢結)을 믿는 자는 끝없이 표류하며 62()93)에 이르러 다투어 무성하게 자처하며, 95()94)에 이르러서는 앞다투어 의지하고 복종하여 돌아감이 없습니다.

여래께서 본원(本願)의 대비(大悲)로 연()을 잃고 굽어 응하시니, 안으로는 네 가지 지혜가 원만하고 바깥으로는 6신통(身通)을 드러내며 10()을 움직여 천마를 항복받고 7()을 날려서 외도(外道)를 꺾었습니다.

이러한 애욕의 바다를 다하고 품식(稟識)3()으로 제도하며, 그와 같은 사견(邪見)의 산자락을 없애고 소형(宵形)95)8()으로 몰아서 인()을 가리키고 과()를 드러내어 근본을 거슬러 근원으로 되돌렸으니, 참으로 지극합니다. 자비의 지혜가 쓰임새가 오묘하니, 참으로 칭할 만한 덕조차 없습니다.

예전에 도의 나무에서 등용(登庸)되어 성교(聲敎)가 백억의 중생에게 덮이며, 견림(堅林)에서 자취를 거두며 그 빛을 남기시어 삼천대천세계에 떨치셨습니다. 불일(佛日)이 서쪽으로 기울며 남은 빛이 동쪽을 비추니, 주나라 때에는 밤에 별이 떨어지는 서상(瑞相)96)을 감득하였고, 한나라 때에는 한밤에 선몽하는 징조에 감통했습니다. 마등(摩騰) 스님과 법란(法蘭) 스님은 지혜의 횃불을 앞에서 밝혔고, 불도징(佛圖澄) 스님과 구마라집 법사가 뒤에서 등불을 이어 전하였습니다. 경전을 번역하여 법을 홍포(弘布)하고, 신묘한 기적으로 시절을 제도하였으며, 높은 변론으로 사도(邪道)를 항복받고, 선정에 편안히 하여 만물을 숙연케 하였습니다. 찢어진 벼리를 잇는 자는 무()를 접하고 끊어진 끈을 매는 자는 어깨를 마주하여 따랐으니, 이융(夷戎)이나 화하(華夏)가 그 풍화를 기뻐하여 유계(幽界)나 명계(明界)에 교화를 드리우지 않음이 없었으며, 그 꽃다움이 연이어 바뀌지 않았음을 대략이나마 상세히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삼장 법사가 온령(蘊靈)이 특출하여 장절(章節)을 머금어 한 갈래 맛을 체득하니, 가르침을 이어 전함으로써 5()을 넉넉히 하고, 가신 성인은 더욱 멀어짐을 슬퍼하고, 오는 가르침은 누락이 많음을 불쌍히 여겨 그 이치를

 

원만히 할 것을 멀리 생각하고 그 몸으로 도에 따르며 마음과 입으로 스스로 도모하였으니, 마치 형체와 그림자가 서로 문안하듯 하였습니다. 옷자락을 펄럭이고 석장을 들어 올리며 근원을 토론하여 찾고 옥관(玉關)을 벗어나 멀리 떠나가 금하(金河)를 가리키며 한 번 쉬었습니다.

의심을 범우(梵宇)에 쌓아놓고 그윽함을 찾아 미묘함을 통찰하고서 신주(神州)로 교화를 돌이켜 참다움을 높이 들어 올려 그릇됨을 없앴습니다. 통발을 없앤 진전(眞典)97)을 이날 크게 갖추고, 방등(方等)의 원종(圓宗)은 전대의 빛을 더욱 넓혔습니다. 밝힌 바의 훌륭한 이치의 묘함은 환중(環中)의 가운데에서 끊어지고 참다운 성품과 참다운 공()의 지극함은 방외(方外)의 바깥으로 넘어섰습니다. 취함이 있는 것으로써도 취함이 있어 그 참다움을 잃고, 통틀어 구함이 없더라도 구함이 없어 실다움을 해치게 됩니다. 이변(二邊)의 자취를 불식(拂拭)하여 중도(中道)의 모양만을 잊은 때에는 누()를 내쳐서 바꾸지 않으며, 그 깊이를 더하여 공()을 거듭하였으니, 무엇으로 지극함에 이르겠습니까? 그 요긴하면서도 참으로 오묘하고, 지극하면서도 참으로 장대합니다.

마음으로 이를 계합하고, 그런 연후에 그로써 법을 삼습니다. 마음을 두어 법으로 삼고 말을 드러내어 가르침으로 삼으니, 법에는 자상(自相)과 공상(共相)98)이 있고 가르침에는 차전(遮詮)과 표전(表詮)99)이 있어서 순수한 뜻과 텅 빈 바탕[沖宗]이 어찌 잠깐 사이에 자세하게 살필 수 있겠습니까?

법사가 신명을 거두고 지혜를 부려 그 자초지종을 상세히 바로잡았으니, 가다듬으며 그윽한 경전을 빛나게 하면서 유관(幽關)을 크게 열었습니다. 암암리에 소리가 따르기를 바라면서 대소이승(大小二乘)을 두드렸으니, 이치의 바다를 넓혀서 조종(朝宗)처럼 크고 작음을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이에 본방(本方)의 대덕과 이역(異域)의 고승들이 가슴에 새겨 도를 묻고 쌓인 의심이 이롭기를 청하며, 참으로 강물을 마시어 배를 채우더라도 그 얕고 깊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 말씀을 듣고 놀라니 누가 그 멀고 가까움을 알겠습니까?

인명(因明)의 소도(小道)에 이르러서는 비유를 드러내어 미묘함을 덮었으니, 이로써 초학(初學)의 방우(方隅)를 가리키며 입론(立論)의 기치를 들었습니다. 영추(靈樞)의 비밀스러운 열쇠와 묘한 근본의 공()을 이루는 데 있어서는 오묘한 서책을 갖추었으니, 이에 대해 말할 것이 없습니다.

여봉어(呂奉御)는 정신과 풍채가 시원스레 특출나서 어려서부터 다재다능하고, 도량이 커서 해박함을 갖추어 만물을 널리 드러내었다. 무덤을 열어 얻게 된 전적100)에서 가려내고, 무너진 벽에서 얻게 된 책101)을 구심(鉤深)하여 그

 

부류에 마주하여 길러나가고, 여러 수술(數術)에 응하면서 사변(四辯)의 울타리에서 거센 바람을 떨쳤으며, 한림(翰林)에서 광채를 퍼뜨리고 구름 가운데로 머리를 치솟으며, 해가 떨어지매 먼저 울었습니다. 오행(五行)으로 그 필삭(筆削)을 보충하고 육위(六位)로 고담(高談)을 기다렸으니, 한 번 태현(太玄)을 깨닫고 질문에 응하여 곧바로 풀이하였습니다. 다시 언상(言象)를 찾아서 시도해 보고 곧바로 이루었습니다.

실로 진대(晋代)의 무선(茂先)102)과 한대(漢代)의 만천(曼倩)103)과 같은 사람은 없는 듯합니다. 이미 군략(群略)의 날개를 펼치고도 남은 공이 있으니, 이로써 대승(大乘)을 공경스럽게 사모하고 일찍부터 성신(誠信)을 돈독히 하였습니다. 최근에 친구가 농담하는 것을 계기로 해서 홀연히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밝음에 인하는 것[因明]은 스승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에 따라 천착하며, 여러 소()를 비교하여 결정해서 잘못된 것을 추구하는 것을 지적하여 비평하였습니다. 조정에서 논의하여 잠시 사이에도 드러나니, 그 뜻을 살펴보더라도 그 앎을 규명하기 어려우니 진실로 미혹될 만합니다.

이 논()1권으로 부()를 이루고 다섯 장의 종이로 권()을 이루어 삼소(三疏)를 탐구하였습니다. 과거에 한번 두루 살펴보니 거론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는데도 스스로 옳은 것이 한 가지도 없었습니다. 자신에게 이미 옳은 것이 없는데도 옳다고 말할 수 있었고, ()에는 본래 잘못된 것이 없는데도 잘못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잘못됨을 말해도 잘못되지 않고, 옳은 것을 말해도 옳지 않습니다. 옳은 것을 말했는데 옳지 않다면 옳은 것을 옳다고 해도 항상 잘못입니다. 잘못된 것을 말했는데 잘못되지 않다면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해도 항상 옳습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해도 항상 옳다면 잘못된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옳은 것을 옳다고 해도 항상 잘못되었다면 옳은 것이 옳은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폄하(貶下)하면 미혹(迷惑)의 병이 생겨날 것입니다. 또한 생인(生因)과 요인(了因)에 의거하여 한바탕에 집착하여 두 가지 이치를 잃어버립니다. 능료(能了)와 소료(所了)는 한 가지 이름으로 한정하였으나 두 가지 바탕으로 미혹됩니다. 또 종()으로써 종()에 의지하여 남겨두고 의지하여 체를 제거함으로써 종()으로 삼습니다. ()를 깨우쳐 의지하여 체를 없애고 남기어 의지하여 유()가 됩니다. 이 같은 두 가지에 연하여 망령되게 여러 가지 의심이 일어나고 미혹되어 극성(極成)을 하나로 하여 어긋나 7()이 생겨납니다.

단지 두 가지 논의를 연구하여 궁리해 보면 스승은 이미 일심(一心)일 뿐입니다. 문구(文句)를 위아래로 걸쳐두고 자음(字音)의 평성(平聲)과 거성(去聲)을 잘못 놓아

 

다시 수론(數論)으로써 성론(聲論)을 삼고 생성(生成)을 거론하여 멸성(滅成)을 삼았습니다. 어떻게 분리되고 합쳐지는 종인(宗因)을 차별할 수 있겠습니까?

대체로 도치(倒置)되고 순전(順前)하는 앞뒤가 어긋나니, 이 또한 비루한 말과 잘못된 음운으로 범본(梵本)을 본뜨려 하다가 그 소리가 바뀌어진 곳이 비록 넓어졌으나 일곱 종()을 미루어 보면 단지 일전(一轉)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일곱 개의 항목뿐만 아니라 바로 제8의 호성(呼聲)이 있으니 잡스럽고 어긋나며 와전된 것이 어디에서 생겨났겠습니까?

다시 승론(勝論)에 따르면 항상 극미(極微)의 수를 세워서 체()를 다함이 없습니다. 오직 극소(極小)는 다시 점차로 화합하여 여러 자()를 낳습니다. 미수(微數)는 항상 배로 감소되며, 미체(微體)는 또한 부모(父母)보다 배로 증가합니다. 종극에 이르러서는 체()는 대천세계에 두루하고, 그 다하는 바를 살펴보면 수()는 오직 하나[]를 이루게 됩니다.

여공(呂公)()계사(繫辭)에서 태극(太極)에서 이의가 생기고, 이의에서 사상(四象)이 생기고, 사상에서 팔괘(八卦)가 생기고, 팔괘에서 만물이 생긴다는 대목을 인용하여, “이것과 저것은 말은 다르지만 이치는 같다. 지금 살펴보면 태극은 무형(無形)으로서 처음 유상(有象)을 낳으매 근원(根元)의 일기(一氣)에 의지하여 마침내 만물을 이루었다. 어떻게 많은 것에서 한 가지가 생겨나며, 하나를 예로 하여 많은 것이 생겨나겠는가?”라고 말하였습니다. 부류를 인용하여 이를 드러내고자 널리 열거해 보면 그 이치가 어긋나니, 다시 무엇에 의탁하겠습니까?

설사 대례(大例)를 인용하더라도 생()의 이치는 같습니다. 만약 이를 풀이하더라도 사견(邪見)과 같아질 것이니, ()를 깊이 하면서 어떻게 스스로 면할 수 있으며, 어찌 시절의 명예만을 구차하게 구하여 바름을 혼동하여 삿됨과 같이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몸이 아닌 원수가 어찌 여기에 이르겠습니까? 대체로 문란하고 어지러운 바를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다스림에 연유하더라도 여기에 이르러서는 낭패를 볼 것입니다. 뿌리가 이미 바르지 않다면 가지와 잎사귀는 저절로 기울어지며 오류(誤謬)에 따라 의혹만 더하면서 의혹에 따라 비난만 생겨나니, 구부러진 형체에 어찌 바른 그림자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시험삼아 두세 가지를 거론하여 그 대의(大意)를 상세히 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복잡한 실마리를 깊이 문제 삼으면 답변이 그대로 구별될 것입니다. 살펴보면 여공(呂公)의 두루 통달한 식견이 어찌 맹랑하게 여기에 이르겠습니까?

진도와 세속은 운니(雲泥)104)처럼 차이가 심하고, 어렵고 쉬운 것도 초()나라와 월()나라처럼 차이가 심함을 보입니다. 그로 인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은

 

크고 원대하며 정법(正法)이 깊이 서려 있음을 드러내는 것도 비유하면 커다란 화로에 한 줌의 눈을 던져 불을 꺼뜨릴 수 없으며, 발해(渤澥)를 일엽편주로 건널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태사령(太史令) 이군(李君)이 충효를 실천하며 영부(靈府)에 비밀함을 감추고 가슴속에 원대한 꿈을 품었습니다. 구수(九數:옛날의 算法)에 정통하며 육효(六爻)를 두루 섭렵하며 도전(圖典)을 널리 고찰하고, 운물(雲物)을 우러러 살피며 위굉(衛宏)105)이 법도를 잃은 것을 천하게 여기며 비조(裨竈)106)가 정교하지 못함을 비루하게 여긴 채 정신은 쓰임에 막힘이 없고 신령이 막힘없이 쓰이고 진실을 바라보면 그대로 있습니다.

이미 여공의 다른 논의에 맡기고 난 후에는 이간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실제로써 대각(大覺)의 현구(玄軀)를 삼고 무위(無爲)로써 조어(調御)의 법체(法體)를 삼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믿음으로 받아들여 증품(證禀)에 나눔이 있게 되어 자연스럽게 이룰 수 없었습니다. 참으로 말은 그럴 듯하더라도 뜻은 그렇지 못하고, 말로써 가까이 가더라도 이치는 점점 멀어지는 듯합니다. 그러나 천사묘도(天師妙道)107)가 다행히 여기에 다시 있게 되고, 또한 구씨천사(寇氏天師:寇謙之)와 최군(崔君:崔好)이 특별히 천거하여 함께 이러한 허물을 남겼으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비록 치승(淄澠)에 섞이지 않는다고 말할지라도 대체로 저절로 금유(金鍮)에 넘칠 뿐입니다.

오직 공은 도량이 크고 너그럽고 활달하여 학문은 분삭(墳索)108)을 다하고 인의(仁義)로써 몸을 가리고 추기(樞機)로써 만물에 응하며 공경히 하고 풍족하게 할 뿐입니다. 경절(勁節)을 발탁하여 구름을 막고 청란(淸瀾)을 즐겨 땅을 누르며 문원(文苑)에 향기를 날리고, 그 직책은 유림(儒林)에 처하였습니다. 구주(九疇)의 종지(宗旨)를 줍고 이재(二載)109)의 말을 상세히 따져서 경례(經禮)의 삼백(三百)과 곡례(曲禮)의 삼천(三千)110)에 이르러서는, 그 이치가 손바닥을 마주치듯 들어맞지 않음이 없습니다. 일마다 엎드려 줍는 듯하니 준조(罇俎)를 천거하고 그 법도에 적확함은 반드시 자황(雌黃)111)을 기다려야 합니다. 상서(相鼠)112)의 시()는 들판에서 들리지 않고 어려(魚麗)113)의 노래가 조정에서 귀에 가득하게 들립니다.

오로지 명과 실이 선을 다하고 아름다움을 다하였습니다. 정성과 공경의 무거움을 부여받음은 일찍부터 이루어졌고, 넓게 보살피는 마음은 본래부터 쌓여 왔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시끄러운 논의에 휘말리어 오래된 병을 가진 것을 함께 부끄러워합니다.

그러므로 날카로움을 버리고 아교를 바르듯 굳건히 하여 진실로 대의(大義)를 빛낼 수 있다고 해도

 

재주가 안팎을 겸하고 진실을 비추어 기미에 접근하지 못한다면 어찌 맑고 탁함을 분명히 구별하여 세속을 구제하고 참다움을 바로잡을 수 있겠습니까?

예전에 구마라집 스님의 문하에서 도에 종사한 자가 3천이었는데, 지금 이 회중(會中)에서 함께 법을 듣는 이가 마치 저잣거리와 같습니다. 빈도(貧道)는 외람되게 천하고 비루하여 강연의 말석을 차지하였으나, 비록 경사스럽게 아침에 도를 듣더라도 저녁에는 걱정만 하게 되는 것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자세하게 3()114)에 이르러 소통하고 이것으로 5()을 관통하여 통달하여도 높은 담장은 들여다보기 어렵고 사봉(辭峯)은 우러르기 어렵습니다. 마침 상양(商羊)115)이 북 치고 춤추니 못에 큰 비가 내려 반드시 두루 적셔지고 말씀이 우레같이 빠르게 나와서 막을 겨를이 없을까 두렵습니다.

모두 의논하였습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가지 하나에도 날개를 드리울 수 있는데 어찌 등림(鄧林)116)을 번거롭게 하겠는가? 작은 웅덩이에도 물고기가 헤엄칠 수 있는데 어찌 창해(滄海)를 기다리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고 나약하다고 해서 핍박을 주거나 허무(虛無)를 부과하지는 않습니다. 거절하더라도 죄를 면할 수 없으니 조잡하게 대강을 개진하였습니다. 비록 제 말에 취할 바가 없으나 이치는 혹 볼 만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저의 평범함과 부족함을 돌아보매 더욱 송구스럽기만 합니다. 대강 적어서 답서를 보내니, 여타의 것은 적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석명준이 아룁니다.

 

- 중청삼장성교서계(重請三藏聖敎序啓)117) 석현장(釋玄奘)

삼가 묵칙(墨勅)을 받들면서 외람되이 권장하는 말씀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공경스럽게 윤언(綸言)을 받들고 정미하게 진월(震越)을 지켰습니다.

현장 저는 그 업행(業行)이 공허하고 천박하여 법려(法侶)에 그릇되게 참여하였는데, 다행히도 구영(九瀛)이 다스려지고 사해(四海)에 근심이 없는 때를 만나서 실로 황령(皇靈)에 의지하여 멀리 떠나게 되었고, 나라의 위엄만 믿고서 도를 찾았습니다.

먼 길에 위험을 무릅쓰고 오직 어리석은 성심(誠心)만을 책려하였으니, 다른 것을 모으고 변방 지역을 품었습니다. 진실로 이것은 조정(朝廷)의 교화에 근거합니다. 얻어온 경론은 칙령을 받아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축권(軸卷)을 이루고 보니 서문이 아직 없습니다.

삼가 폐하는 밝은 생각이 구름처럼 드리우고 하늘 꽃이 빛나며 이치는 계상(繫象)118)을 포괄하고 조율은 함영(咸英)보다 우수하고 천고(千古)를 뛰어넘어 성예를 드높였으며 백왕(百王)을 가리고 진실됨을 높였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신묘한 힘은 정해진 것이 없으며, 신묘한 사려가 아니면 그 이치를 이해하기에도 부족합니다. 성교(聖敎)가 현묘하고 원대하니, 성조(聖藻)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 근원을 서문으로 지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위엄을 무릅쓰고 감히 제목을 청하는 바입니다.

황제의 돌보심이 아득하여 허락을 내리지 않으시니 친히 어루만지면서 한숨을 내시며 탄식하면서 서로 돌아다보며 꾀함을 잃었습니다.

현장 제가 듣자오니, 일월(日月)이 하늘에 걸려 있어 이미 집의 창문에 나누어 빛나고, 강하(江河)가 땅을 다스려 흘러가서 암벽을 적시며 운화(雲和)119)가 널리 조화롭게 연주되며 귀먹고 어두운 이에게도 잘 울릴 것입니다. 금벽(金璧)의 아름다움이 어찌 어리석고 눈먼 이에게 그 빛을 가리겠습니까? 감히 이 같은 이치로 인하여 이에 다시 간청하는 바입니다.

삼가 청원하니 뇌우(雷雨)를 완곡하게 내리셔서 천문(天文)을 굽어 비추시고, 양의(兩儀)에 짝하여 함께 오래되게 하고, 이요(二曜)와 더불어 함께 매달리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영취산의 미언(微言)은 신필(神筆)을 빌려서 더욱 원대해지고, 계원(鷄園)의 오묘한 이치가 뛰어난 말에 의탁하여 멀리 선양될 것이니, 어찌 다만 구구한 범중(梵衆)이 홀로 은혜로움을 짊어지겠습니까? 이 또한 우매한 미생(迷生)이 바야흐로 진루(塵累)를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삼가 표()를 받들어 이와 같이 상주하여 알려드립니다.

삼가 말씀드립니다.

 

황제가 바로 조칙을 내려 이를 허락하면서 부마(駙馬) 고리행(高履行)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예전에 짐에게 그대의 아비를 위해 비문을 지어달라고 청하였는데, 지금은 기력이 예전만 못하다. 만약 공덕을 짓고자 원한다면, 법사를 위해 서문을 지어 드리겠다. 내가 이제 늙어서 비문을 짓지 못한다는 것쯤은 그대 스스로가 잘 알리라.”

황제가 정관(貞觀) 22(648) 옥화궁(玉華宮)에 행차하여 현장 스님을 모시고 어떠한 경전을 번역하셨습니까?”라고 여쭙자, 스님이 바로 유가(瑜伽)를 번역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주상이 어떠한 성인이 지은 것이고, 어떠한 이치를 밝힌 것입니까?”라고 다시 여쭙자, 스님이 모두 상세히 답변하였다. 이에 주상이 친히 논()을 가져다가 스스로 열람하고, 이에 바로 조칙을 내려 새로이 번역한 경론을 아홉 본()을 베끼게 하여 옹주(雍州)ㆍ낙주(洛州)ㆍ상주(相州)ㆍ연주(兗州)ㆍ형주(荊州)ㆍ양주(楊州) 등의 아홉의 대주(大州)에 배부하도록 하였다.

현장 스님이 이에 다시 경전의 제목을 청하자, 주상이 이에 서문을 지었는데,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序)’라 이름하였다.

명월전(明月殿)에서 홍문관(弘文館) 학사(學士) 상관의(上官儀)에게 명하여 대신들에게 이를 낭독하게 하였다.

 

- 사황태자성교서술계(謝皇太子聖敎序述啓:황태자가 성교서를 서술 해준 데 대한 감사 장계) 석현장

현장이 듣자오니, 칠요(七曜)가 그 빛을 퍼뜨리고, 높은 하늘에 의지하여 광경(光景)을 흩뜨리며, 구하(九河)가 씻어내고 적셔주어 두터운 땅에 인하여 그 흐름이 형통합니다. 서로 근본이 되는 아름다움은 만물에 처하여 이미 그러합니다. 법을 설하는 것도 사람에 의지하는 것은 이치에 의혹됨이 없기 때문입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황태자 전하가 예조(睿藻)를 발휘하시고 다시 천문(天文)을 설하셔서 대승(大乘)을 찬미하고 실상(實相)을 장엄케 하였으니, 구슬을 돌리고 옥을 굴리듯 하면서 노을처럼 아롱지고 비단처럼 펼쳐지니, 일월과 함께 빛을 발하며 함영(咸英)과 더불어 운()을 맞출 것입니다.

현장이 다행히도 생()을 가벼이 하여 특별히 은혜를 입었으니, 참으로 마음속에 깊이 새겨 잊지 않겠습니다.

계를 받들어 올리니 살펴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삼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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