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광홍명집(廣弘明集) 18권
당 석도선 지음
이한정 번역
4. 법의편(法義篇) ①
서문
‘법(法)’이란 무엇인가? 수행에 따라 정신을 맑게 하고 미혹을 씻어내어 나아가는 것이다. 또 ‘의(義)’란 무엇인가? 깊고 깊어서 수천의 성인이라도 그 모습을 고치지 못하고, 만 가지 사악함이라도 그 이치를 고치지 못하는 것이다. 속법(俗法)의 5상(常)은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知)ㆍ신(信)이니, 백왕(百王)이라도 그 전(典)을 바꾸지 못하고, 여러 현자들이 받들어 도를 실추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도법(道法)에는 두 가지 진리가 있는데, 이른바 진제(眞諦)1)와 속제(俗諦)2)이다. 모든 부처님께서 이에 연유하여 태어나는 바이고, 군유(群有)가 그로 인하여 초월하여 깨달음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속에서 비록 5상을 지키더라도 미혹에 빠진 상태가 여전히 이어지나, 도법(道法)에서는 두 가지 진리를 귀감 삼아 훌륭한 지혜가 날로 밝아지게 된다. 진제와 속제는 출세간도(出世間道)3)의 디딤돌인지라, 이에 정법(正法)이 공(空)에 들어가는 자취로 삼는 것이다. 논서(論書)에서도, “속제가 아니면 진제에 통하지 못하고, 진제가 아니면 속제를 없애지 못한다”고 말하였다. 또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법도 늘 2제(諦)에 의거하시니, 이와 같이 하여야 대략이나마 가르침을 이루게 된다”고 하였다.
대ㆍ소의 반만(半滿)4)의 부류와 3협(篋)5)과 8장(藏)6)의 경전에 이르러서는 마음의 티끌에 어둡고 밝아짐을 분명히 하고, 업보(業報)가 갈래를 달리함을 깨닫게 된다. 지혜의 깨우침에 통달하여 어두운 마음을 거울같이 비추고, 세간의 모양을 깨우쳐 신묘한 비춤을 빛내는, 이와 같은 것을 일러 ‘법의(法義)’라 한다.
말씀에 따라 수행하여 영부(靈府)를 생각하고 선택하는 것에 이르러서는 사의법정(四依法正)7)으로 전도된 마음에 처한 심식(心識)을 가려 개창한다. 8직명도(直明道:8정도)로 망상의 경계에 처한 마음을 깨끗하게 독려하며, 3학(學)8)으로 현부(玄府)를 열어내서, 그 참다운 근원을 일관되게 거두어, 그 근저를 점차로 물들여 나가면 마침내 그 끝을 얻게 된다.
단지
그윽한 관문은 열기 힘들어서 장석(匠石)9)이라도 미혹되기 쉬우니, 말씀과 방편에 의지하지 않으면 말미암아 올라가 따를 자가 없어진다. 이에 예전부터 진도와 세속이 같이 나루터로 가는 길을 물어 보면서10) 정령(精靈)을 소통하였고 심술(心術)을 연마하였는데, 혹 논을 지어 그 이해를 돕기도 하였고, 혹 설법하여 그 감회를 묘사하기도 하였기에, 말로 인하여 성스러운 마음을 드러내고 자취에 기대어 그윽한 이치를 높이 들어올렸다.
예전에 양(梁)나라에서 이미 그 이치를 서술하였으나, 지금 당(唐)나라에 이르러 그 미진(微塵)한 바를 넓힌다. 각자 뜻하는 바가 있으니, 대대로 밝혀가야 이 같은 말씀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 양 『홍명집』 「법의편(法義篇)」의 총목
진(晉) 손작(孫綽)의 「유도론(喩道論)」
나군장(羅君章)의 「갱생론(更生論)」
정도자(鄭道子)의 「신불멸론(神不滅論)」
석혜원(釋慧遠)의 「보응론(報應論)」
석혜원(釋慧遠)의 「삼보론(三報論)」
석승순(釋僧順)의 「절삼파론(折三破論)」
양(梁) 고조(高祖)의 「신명성불의(神明成佛義)」
소침(蕭琛)의 「난신멸론(難神滅論)」
조사문(曹思文)의 「난신멸론(難神滅論)」
양(梁) 고조(高祖)의 「답신불멸칙(答臣不滅勅)」
석법운(釋法雲)의 「여조귀서(與朝貴書)」
습착치(習鑿齒)의 「여석공서(與釋公書)」
- 당 『광홍명집』 「법의편」의 총목
역대현명석제의혹의(歷代賢明釋諸疑惑義)에 대한 서문
진(晉) 대안공(戴安公)의 「석의론(釋疑論)」
진 대안공의 「여원법사서(與遠法師書)」와 답
주도조(周道祖)의 「난석의론(難釋疑論)」
대중(戴重)의 「여원법사서(與遠法師書)」
대중의 「답주거사난론(答周居士難論)」과 답
원법사(遠法師)의 「여대서(與戴書)」와 답
하승천(何承天)의 「보응문(報應問)」[유소부답(劉少府答)]
송(宋) 사령운(謝靈運) 「여제도인변종론(輿諸道人辨宗論)」과 서(書)
후진(後秦) 군주 요흥(姚興)의 「여안성후서술불의(與安成侯書述佛義)」
「통삼세등론(通三世等論)」과 나집법사답(羅什法師答)
요숭(姚嵩)의 「표문제의(表問諸義)」와 흥답(興答) 등
당(唐) 사문(沙門) 석혜정(釋慧淨)의 「석의론(析疑論)」과 석법림술(釋法 琳術)
제(齊) 경릉왕(竟陵王) 「여은사유규서(與隱士劉虬書)」 3수
제 심약(沈約)의 「내전서(內典序)」
제 심약의 「위황태자해강소(爲皇太子解講疏)」
제 심약의 「위경릉왕발강소(爲竟陵王發講疏)」와 송(頌)
제 심약의 「위경릉왕해강소(爲竟陵王解講疏)」 2수
양(梁) 태자(太子) 강(綱)의 「청제강(請帝講)」과 「답왕반(答往反)」 6수
양 육운(陸雲)의 「술어강금자파야서(述御講金字波若序)」
양 소자현(蕭子顯)의 「서강파야의(敍講波若義)」
황태자(皇太子) 사(謝)의 「강경계(講竟啓)」와 답
양(梁) 태자(太子) 강(綱)의 「상대법송(上大法頌)」과 표답(表答)
진(晉) 안왕(安王)의 「상태자현포강송(上太子玄圃講頌)」과 계답(啓答)
양(梁) 무제(武帝)의 「열반경소서(涅槃經疏序)」
양 상동왕(湘東王)의 「법보연벽서(法寶聯璧序)」
양 간문제(簡文帝)의 「성실론서(成實論序)」
양 원제(元帝)의 「내전비명집림서(內典碑銘集林序)」
당(唐) 사문 석현칙(釋玄則)의 「선림묘기집서(禪林妙記集序)」 2수
당 사원대부(司元大夫) 이엄(李儼)의 「법원주림서(法苑珠林序)」
양 소명태자(昭明太子)의 「답청강서(答請講書)」와 계답(啓答) 3수
소명태자의 「사칙뢰목서여의계(謝勅賚木栖如意啓)」
소명태자의 「입이제의(立二諦義)」와 도속이십인난급해(道俗二十人難及 解)
소명태자의 「입법신의(立法身義)」와 승육인왕반문답(僧六人往反問答)
소명태자의 「사칙간강해이계(謝勅看講解二啓)」
소명태자의 「사칙뢰열반경소강계(謝勅賚涅槃經疏講啓)」
소명태자의 「사칙뢰대집경강소계(謝勅賚大集經講疏啓)」
양(梁) 진안왕(晉安王)의 「여광신후서(與廣信侯書)」와 답
제(齊) 심약의 「입불법의론(立佛法義論)」 5수
제 심약의 「난범신신멸론(難范縝神滅論)」
진(陳) 사문 진관(眞觀)의 「인연무성론(因緣無性論)」과 주세경자연론(朱世卿自然論)
위수(魏收)의 「북제삼부일체경원문(北齊三部一切經願文)」
왕보주(王褒周)의 「장경원문(藏經願文)」
수(隋) 양제(煬帝)의 「보대경장원문(寶臺經藏願文)」
당(唐) 태종(太宗)의 「삼장성교서(三藏聖敎序)」와 표청사답(表請謝答)
금상(今上)이 기술한 「삼장성교서(三藏聖敎序)」와 사답(謝答)
당(唐) 저량(褚亮)의 「술주반야경서(述注般若經序)」
당 유선여(柳宣與)의 「번경대덕서(飜經大德書)」와 답
1) 석의론(釋疑論) 진(晋) 대안공(戴安公)
안처자(安處子)가 현명(玄明) 선생에게 물었다.
“대체로 듣자오니, 선(善)을 쌓는 집안은 반드시 나중에 경사가 있고, 불선(不善)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나중에 재앙이 있다고 합니다. 또 천도(天道)는 치우친 바가 없어 늘 어진 이와 함께 한다고 하는데, 이야말로 성스럽게 통달한 격언이며 만대의 굉표(宏標)라 이를 만합니다. 이처럼 행(行)을 자기 몸에 이루면 복이 후세에 흐르고, 악(惡)은 그 일에서 드러나기에, 유명(幽冥)11)에서 죄를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인이 선을 행하는 데 이치를 다하지 않음이 없고, 이치를 다하여 선을 쌓으면 대를 이어 변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선도 행하지 않으며, 악을 악으로 이어가면 이 또한 백세(百世)를 거치더라도 늘 어둡게 됩니다. 이 같은 선(善)에는 항상된 문이 있고 악에는 정족(定族)이 있으니 후세에 다시 수행한다고 해도 무슨 이로움이 있겠습니까?
또 속수(束修)12)를 바치고 도를 따르며 말과 행실에 손상됨이 없더라도, 하늘이 벌하고 사람이 고초를 겪게 하는 데 온갖 것이 모두 갖추어져 있습니다. 성품에 따라 마음대로 포악하게 행하였는데도, 목숨을 보존하고 귀함을 누리며 자손마저 번창합니다. 이것을 미루어 논해본다면 선을 쌓은 과보가 끝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다섯 가지 감정과 여섯 가지 욕심은 사람 마음에 늘 있는 것인데, 부조(斧藻)13)와 방한(防閑)14)은 외사(外事)의 지극히 고통스런 것입니다. 대체로 사람과 귀신이 나아가는 집에 서로 다른 것이 없는데, 어떻게 그 감미로움에 따르지 않고 억지로 고통스럽게 하겠습니까? 청하건대 의문을 풀어 미혹함을 없애 주십시오.”
이에 현명 선생이 말했다.
“그대의 질문이 참 좋구나. 사마천(司馬遷)도 말하기를, ‘하늘이 베푸는 바를 착한 사람이라고 어찌 할 것인가?’라고 하였다. 순열(荀悅)도 ‘그릇된 것을 꾸며 간특하게 하는 자는 한 세대만을 풍족시킨다. 도를 지켜 이치에 따르는 이는 춥고 굶주리는 걱정을 면하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두 가지 생은 앞에 것을 의심하여 이를 구별해 낼 수 없다. 그대가
후생(後生)에 미혹되는 것도, 어찌 마땅하지 않겠는가?
시험 삼아 말하자면, 사람은 2의(儀)의 성품을 품고 태어나서 5상(常)의 기운을 받아 길러진다. 성품에는 길고 짧은 기약이 있으니, 이 때문에 장수와 요절[彭殤]15)의 구분이 있게 되는 것이다. 기운에는 정밀하고 조잡한 차이가 있으니, 이 역시 어질고 어리석은 차별이 있다. 이는 자연이 정한 이치이기에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임금과 순임금이 대성(大聖)으로서 단주(丹朱)16)와 상균(商均)17)을 길렀고, 고수(瞽叟)가 하품의 어리석은 자라도 순임금을 낳았다. 안회(顔回)가 대현(大賢)이라도 일찍 죽어 후사마저 끊겼고, 상신(商臣)18)은 매우 악하였으나 그 자손이 번창하였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지극한 어짊으로도 산에서 굶주리다 굶어 죽었고, 도척(盜跖)이 무도하였지만 풍족하고 즐겁게 끝을 맺었다. 비간(比干)19)이 충직하고 올바른 데도 뒤로 물러날 사이도 없이 죽임을 당했고, 장탕(張湯)20)이 혹독한 관리였음에도 7세 동안 귀걸이를 걸고 털옷을 입었다.
대체로 이 같은 부류를 다 말할 수조차 없으니, 성현에게서 징험해 보더라도 그와 같고, 보통사람에게서 이를 찾아보더라도 그와 같다. 그러므로 어질고 어리석으며 착하고 악하며 장수하고 단명하며 궁핍하고 현달하는 것은 각자 그 운명이 나누어져 있는 것이니, 이는 행을 쌓아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천지가 아득하게 멀고 음양(陰陽)은 넓고 커서 사람이 그 가운데 있으니, 어찌 쌀 알갱이가 큰 창고 안에 있고, 터럭 끝이 말의 몸에 있는 것과 같을 뿐이겠는가?
필부의 자잘한 행실과 인사(人事)에 비근한 습관에 있어서 한 가지 선과 한 가지 악이 모두 암암리에 감응한다. 자연스럽게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을 옮겨서, 어리석음과 성인을 단주와 순임금으로 옮기고자 하는 것이 온당하지 못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을 쌓고 악을 쌓는다는 말도 대체로 가르침을 권하기 위해 이같이 말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것에 대해 말하는가 하면 사람이 태어나서 천지의 성품을 편안히 하는 것은 하늘의 성(性)이고, 만물에 감응하여 움직이려는 것은 성(性)의 욕(欲)이다. 성품의 욕심이 열리기만 하면, 그 흐름을 막을 수 없다. 성인이 그와 같은 폐단을 구하고자, 신도(神道)로써 가르침을 폈으므로 이치가 묘해지고 교화가 펼쳐졌다. 밀고 당기는 것에 따라서 누르거나 끌어당기니, 이 때문에 공(功)마다 위대해지고 일마다 적합해진다. 이에 육합(六合)의 이내에서는 논하더라도
말하지 못하고, 이를 뚫더라도 그 연유를 알지 못하며, 날마다 쓰면서도 그 지극함을 보지 못한다.
만약 예학(禮學)으로 크게 어두운 것을 열어 주고, 명법(名法)으로 그 자취를 단속한다면 현자(賢者)는 이에 기대어 그 뜻을 이루고, 불초한 이는 일을 도모하여 그 허물을 면한다. 효성스럽고 우애로움으로 은혜를 깊게 하고, 임금과 신하의 의리를 돈독히 하며, 어른과 아이의 예법을 절도 있게 하면서, 친구의 좋은 점을 드러내되, 이에 어긋나면 바로 도를 잃은 사람이 된다. 비난으로써 그것을 일으켜 나아가면 명교(名敎)의 선비가 되어 그로써 명예가 드러난다. 이처럼 군자는 행동하여 이미 마음에 두니, 어찌 잠깐 사이라도 선을 잊을 수 있겠는가? 어찌 가르침에 따라 참다움을 기대하면서 응보를 기약하겠는가? 성인의 가르침의 깊은 이치를 체득할 수 있고 운명이 모인 것을 살필 수 있다면 심부(心府)에서 막힌 것을 뚫어내고 명계(冥界) 가운데에서 징험이 있기를 기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안 처자가 자리에서 물러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치는 천년을 머금었고 생각은 한 생을 얽어맵니다. 지금 선생님의 크게 형통한 이론을 듣고 보니, 미혹에 막힌 것은 풀어 버리고 어두운 맺힘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제가 비록 민첩하지 못하나, 이 같은 말을 늘 명심하겠습니다.”
2) 여원법사서(與遠法師書:혜원 법사에게 보내는 편지)와 답
대안(戴安)이 합장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드립니다.
제자가 늘 경전을 살펴보나 모두가 화와 복이 오는 것은 행을 쌓는 것에서 연유합니다. 그래서 어려서는 속수(束修)하고, 머리가 하얗게 늙어서는 그 행실이 아는 것을 저버리지 않으며 말은 물류(物類)를 상하게 하지 않습니다. 한 평생 겪는 고초가 씀바귀처럼 쓰라리니, 경전을 가져다 행적을 되돌아보면 여전히 미진하기만 합니다.
오직 아득한 이치는 헤아리기 어렵고, 가까운 마음은 쉽게 얽어 매여 한밤중마다 마음에 비탄만 가득합니다. 비로소 목숨이 길고 짧으며 궁핍하고 현달(賢達)하는 것도 스스로 정해진 운명이 있음을 깨닫고 보니, 선을 쌓고 악을 쌓는다는 말도 모두가 권교(勸敎)의 말씀이었습니다.
근래에 이 같은 「석의론(釋疑論)」을 지었는데, 지금 증정하오니,
한가하실 때 살펴 주십시오. 대안공이 합장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드립니다.
- 원법사답(遠法師答:혜원 스님의 답서) 석혜원(釋慧遠)
석혜원이 머리를 조아려 인사드립니다.
당신께서 별도로 개시(開示)한 것을 살펴보니, 참으로 감개무량합니다. 이전에 비록 모두 다 생각하지는 못하였더라도 인물(人物)이 가고 오기에 잠시라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운명이 나뉘어 궁핍하고 현달한 것은 범상한 지혜로 헤아리지 못하나, 대종(大宗)에 의거하여 그 정해진 바를 대략이나마 살펴볼 수는 있습니다.
지난해 가을 여러 사람들과 당신의 논문을 함께 읽어 보았는데, 뜻을 같이하거나 달리하는 바가 있었습니다. 지금 주랑(周郎)이 답변하는 뜻을 살펴보면, 세상의 전적과 부처의 가르침은 이보다 조잡하다고 합니다. 그에 대하여 지금 동봉하여 증정하니, 한가하신 날 힘써 살펴봐 주십시오.
3) 난석의론(難釋疑論:「석의론」을 비평함) 주도조(周道祖)
요새 그대의 「석의론(釋疑論)」을 보았는데, 비록 속정(俗情)으로 쓰여졌으나 주요한 이치를 검토해 보면, 거의 들어맞습니다. 단지 나누어진 운명을 지킨다는 점을 살펴보건대, 아마도 그 근본을 비추지 못한 것 같습니다. 복(福)과 선(善)은 징험하기 어려워서 저도 늘 이것에 미혹합니다. 비록 여섯 가지 전적을 두루 살펴보더라도 그 막힌 것만 더할 뿐입니다. 경전의 가르침을 보고서야 비로소 귀의할 바가 분명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선각(先覺)을 청하여 지금 배운 것을 그대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대는 운명이 모이는 것을 살필 수 있다면 명계(冥界) 가운데에서 징험이 있기를 기대하지 않고, 나머지 경사의 말도 권교(勸敎)에 있다고 생각하십니다. 여기서 부디 나누어진 운명의 뜻을 살펴봐 주십시오.
이치에 사사로운 마음을 두고 그대로 맡겨 놓은 채 이를 도모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마음의 어둠을 잊고서 그대로 놓아둘 수 있겠습니까? 만약 이치에 사사로운 마음을 둔다면 이치에 대해서는 더 이상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선과 악이 서로 분분하여 그 거역하고 순응하는 것을 단속하지 못할 것입니다. 진실로 사리에 어둡고 이치를 버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를 도모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대로 내버려 두기만 한다면 앉아서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일이 이르면 반드시 감응하게 될 것입니다. 감응하는 것은 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감정 또한 그에 따라서 올라가고 내려감이 있습니다. 믿음을 내어 가피를 얻는 것이라면 어떻게 경사롭지 않겠습니까? 악을 행해도 벌을 내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원망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비록 마음으로 이를 잊고자 하여도, 어찌 그와 같을 수 있겠습니까?
바름을 자신에게서 구한다면 그 효험이 분명해질 것입니다. 또 권교를 행하는 것은 반드시 참된 것에 의지하여 움직이지만 단지 가르침을 행하는 방법은 한 가지 길로써는 다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혹 상반된 듯한 뒤에 나중에 부합되기도 하고, 혹 말을 하는 데서 우매함을 깨닫기도 합니다.
이에 도거(塗車)21)와 추령(芻靈)22)은 당실(堂室)마다 가르침을 달리하여, 혹 그 먼 것을 드러내기도 하고, 혹 가까운 것을 숨기기도 합니다. 가르침에 따르는 무리들은 정해진 기준[分表]을 구하는 것에 개의치 않으나, 음화(飮和)의 선비는 스스로 지키어 인의(仁義)에 만족합니다. 그러므로 깊고 얕은 것을 나란히 훈도하게 되니, 백성이 이를 듣고 어기지 않습니다. 신명(神明)의 그윽함은 묘한 물건에 쌓이는 것인데, 어찌 드러내 놓고 선(善)을 쌓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자리를 바로 하여 서리를 밟듯 해도, 그 일이 가르침과 어긋나고 이치가 말마다 그릅니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스스로 편안하여 사물에 대해 인내할 수 있었고[安忍], 안회(顔回)와 염유가 화(和)의 도를 실천하는 데 대해서 슬퍼하였으니, 아마도 유위(有爲)의 말은 혹 이것과는 다를 듯합니다.
만약 상신(商臣)의 무리에게 가르침이 미치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을 인도하여 바로잡으면 중지(中智)로 되돌릴 수 있어 편안하게 인(仁)을 생각하여 그 몸을 망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장회(臧會)23)가 반역하여 나중에 노(魯)나라로 돌아갔으니, 그 운명이 모이는 것을 어떻게 가려낼 수 있겠습니까? 어둡고 밝은 것을 창도할수록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이로써 옛날의 군자는 형통함과 곤궁함이 다가옴을 알았다 하나, 그와 같은 허물도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어질고 어리석으며 장수하고 일찍 죽는 것도 그 조짐이 옛날부터 분명합니다. 초(楚)나라 목공(穆公:商臣)은 복이 많은 데도 이미 죽게 되었고, 채령(蔡靈)24)은 선(善)이 적어 화를 입었으며, 치완(郗宛)25)은 죄가 깊어 구하지를 못하였고, 송환(宋桓)26)은 죄가 얕아 손쉽게 창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씻어 그 이치를 새기고, 형체를 단련하여 도(道)를 듣고서, 무명(無明)의 깊은 뿌리를 뽑아내며 탐욕의 총총한 그물을 가려야 합니다. 명계(冥界) 가운데에서 징험이 있기를 기대하지 않으니, 그림자와 메아리처럼 저절로 징험되고, 응보(應報) 가운데 존재함을 기약하지 않으니, 경사와 책벌이 이미 뚜렷합니다. 따라서 걸음을 기준[極]으로 돌이키면, 명경지수(明鏡止水) 같은 마음에 만유(萬有)가 비칠 것입니다.
단지 미명(微明)의 도리는 그 이치가 세상과 떨어져 있어, 요임금과 공자가 대강만을 구하더라도
다하지 못함이 있으며, 사마천(司馬遷)이 그 문에 이르더라도 방안[室]에는 들어가지 못했으니, 정법을 듣지 못하는 세상에 있었던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므로 햇수가 다하는 것에 늘 슬퍼하였는데, 그대가 나루를 이미 건넜으니 머지않아 터득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유명(幽明)에 의탁하는 것을 어찌 단순히 말로 논할 뿐이겠습니까? 오랫동안 두서 없는 글로 은근함을 대신합니다.
또 논문에서는 천지(天地)는 넓고 크고 인간사는 작고 가까워 한 가지 선과 한 가지 악은 암암리에 응하는 것과는 무관하다고 이르는데, 하늘의 그물이 아무리 성기다 해도 빠뜨리기야 하겠습니까? 그 숨긴 것을 보지 못하고 그 미미한 것을 드러내지 못한다 해도, 단지 차고 기우는 것은 매일의 쓰임새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 대체되는 것도, 다만 이치의 연(緣)에 어둡기 때문에 보고 듣는 것마다 어긋날 뿐입니다. 산이 무너지고 종이 울리듯 하는지라, 길이 멀다 해도 감응을 잃지는 않습니다. 불과 연못은 그 성품이 다르니 그 형상을 같이 하여도 가깝게 이루지 못합니다. 몇 가지 단서를 상세히 검토해 보면 약간이나마 깨우칠 수 있을 것입니다.
4) 중여원법사서(重與遠法師書:다시 혜원법사에게 보내는 편지) 대안 공
대안(戴安)이 합장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드립니다.
그 사이 「석의론」을 지어 그에 대한 감회를 스님에게 보냈습니다. 이는 장자(匠者)에게 증정하여 가르침을 받고자 한 것인데, 이미 황송하게도 다시 답서를 보내 주시어 근본 자취를 열어주신 데다, 아울러 주랑(周郞)의 난(難)까지 보내 주셨으니, 참으로 이를 만한 길이 있습니다.
단지 이치는 원래 같지 않고 그 소견 또한 다릅니다. 지금 다시 비루한 뜻을 펴서 주랑에게 답변하고자 합니다. 이를 다시 보내어 뜻을 정성스럽게 구하려는 것이지 말로 따지려는 것이 아닙니다.
부디 틈을 내시어 살펴 주십시오. 대안공이 합장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드립니다.
5) 답주거사난(答周居士難:주거사가 「석의론」을 비평한 것에 대한 답)과 답 대안공(戴安公)
요사이 한가해졌기에 이 같은 일로 감득(感得)에 이르자, 「석의론」을 탈고하여 법사 스님께 증정한 바 있습니다. 이미 황공하게도 다시 편지를 주신 데다 아울러 반론까지 보내 주셨습니다. 말의 비유가 맑고 풍부하여 참으로 뜻한 바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단지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 비록 먼저라고 해도 보는 자는 깨닫지 못합니다. 그 소견이
이미 다르니, 누가 이를 바로잡겠습니까? 참으로 마음속으로 이를 깨닫지 못했으니, 함께 이를 다하기를 청합니다.
제가 나누어진 운명을 살필 수 있다고 말한 것은 항상 균등한 것에서 식(識)을 발췌하고, 묘(妙)는 이종(理宗)에서 살피며 명(名)과 실(實)을 따지되 고금에 견주어 징험하려는 것일 뿐이지, 생사의 구역(區域)에 빠져서 잃고 얻는 무리를 기뻐하고 슬퍼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팽조(彭祖)와 요절하는 사람의 장수하고 단명하는 이치를 깨우친다면, 수명이 길고 짧은 것은 자연스러운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요임금과 순임금이 그들의 아들인 단주와 상균을 살펴본다면 바보와 성인(聖人)의 운명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안연(顔淵)과 상신(商臣)의 선과 악을 미뤄 보면, 명계(冥界) 가운데에는 벌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비간(比干)과 도척(盜跖)을 같다고 하면 화와 복조차 행해지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이와 같은 몇 가지 일을 체득하고 난 연후에 운명에 대해 살필 수 있으니 명보(冥報)를 기대하지 않게 됩니다.
만약 보내 주신 반론처럼 만약 마음을 이치에 살게 하였다면 이치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바름을 자신에게서 구한다면 그 효과는 분명해질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추구하는 것으로부터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치가 없는 것을 행하는 것으로부터 깨달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자신을 버리고 바깥을 살핀다면 반드시 머지않아 돌아올 것입니다.
반론에서는 “권교를 행하는 것은 반드시 참된 것과 움직이는 것으로, 곧바로 이를 가르치고자 하여도, 한 갈래 길로써는 다하지 못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다만, 제가 어찌 성인이 내리신 가르침이 참다움에 어긋나 헛되이 이룩한 것이라 말하겠습니까?
선과 악은 천리(天理)에서 생겨나고, 옳고 그름은 인심(人心)에 연유합니다. 천리에 기인하여 가르침을 베풀고 인심에 순응하여 힘쓰는 바를 이룹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그윽이 하여 인을 체득한 이는 그윽한 바람을 거머쥐고 기뻐하며, 마음을 멋대로 하여 규범을 벗어난 이는 명교(名敎)를 돌아보며 그 마음을 거머쥡니다. 공덕이 아득하고 만물이 드러나니, 날마다 쓰면서도 그 은혜로움을 잊어버립니다. 이치가 명적(冥寂)에 쌓인 것이 파도치듯 하여도 그 큰 줄기를 보지 못하니, 이는 가르침을 헛되다 하여 세상을 현혹시키려는 것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에 앞서 “신도(神道)로써 가르침을 폈으므로 이치가 묘해지고 교화가 펼쳐졌다. 밀고 당기는 것에 따라서 누르거나 끌어당기니, 이 때문에 공(功)마다 위대해지고 일마다 적합해진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반론에서는 “편안하게
인(仁)을 생각하여 그 몸을 망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장회(臧會)가 반역하여 나중에 노(魯)나라로 돌아갔으니, 그 운명이 모이는 것을 어떻게 가려낼 수 있겠습니까? 어둡고 밝은 것을 창도할수록 의심스럽기만 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에 대해 답변해 드립니다. 이처럼 선악이 결정되어 있는 이유가 행을 쌓는 것에 연유하지 않음을 밝히려는 때문입니다. 만약 어진 이가 선의 좋은 행을 꾀하면 그 마음을 편안히 하여 복을 받고, 어그러진 행동을 하는 자는 이치에 어긋나고 삿된 일을 꾸밉니다. 장회(臧會)가 이리하여 후생(後生)을 얻었습니다. 참으로 그 운명에 기인하여 죽게 되었으니 인(仁)을 실행한다고 운명이 옮겨지는 것이 아니고 나중에 어그러지는 행동을 하여 처벌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찌 비간(比干)이 충직하고 올바른 데도 가슴을 가르는 살육을 당했으며, 장탕(張湯)이 혹리(酷吏)였는데도 7세 동안이나 가호(加護)를 얻은 것과 다르겠습니까?
참으로 이와 같은 이치는 다르지 않으니 운명이 먼저 결정되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어둡고 밝은 것이 나누어진 것과 같으니 어찌 이를 마음속으로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반론에서 “옛날의 군자는 형통함과 곤궁함이 다가옴을 알았다 하나, 그와 같은 허물도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어질고 어리석으며 장수하고 일찍 죽는 것도 그 조짐이 옛날부터 분명합니다. 초(楚)나라 목공(穆公:商臣)은 복이 많은 데도 이미 죽게 되었고, 채령(蔡靈)은 선(善)이 적어 화를 입었으며, 치완(郗苑)은 죄가 깊어 구하지를 못하였고, 송환(宋桓)은 죄가 얕아 손쉽게 창도하였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답변하여 드립니다. 형통함과 곤궁함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장수와 요절이 과거에서 비롯되었다 하시니 이 같은 말씀이 참으로 믿을 만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말하는 각자 운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복이 많은 데도 죽게 되고, 죄가 깊은 데도 구하지 못한다면, 이와 같은 것이야말로 바로 보응(報應)이 도래한 것으로 그림자와 메아리와 같습니다. 채령이 선이 적어 화를 입었고, 상신은 죄가 지극하여 마땅히 재앙이 뒤따랐으며, 송환(宋桓)은 죄가 미약하니 쉽게 창도하였고 주문(邾文)은 선을 행하였으니 마땅히 햇수를 늘렸습니다.
그러나 죄는 같아도 벌이 다르고 복은 마찬가지이나 보응은 다릅니다. 어찌 채령(蔡靈)과 송환(宋桓)만을 귀감 삼고 홀로 초(楚)나라 목공(穆公)과 주문(邾文)에 대해서는 어두운 것입니까?
그대가 “명계(冥界) 가운데에서 징험이 있기를 기대하지 않으니, 그림자와 메아리처럼 저절로 징험되고, 응보(應報) 가운데 존재함을 기약하지 않으니,
경사와 책벌이 이미 뚜렷합니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막히게 됩니다.
반론에서는 “하늘의 그물이 아무리 성기다 해도 빠뜨리기야 하겠습니까? 그 숨긴 것을 보지 못하고 그 미미한 것을 드러내지 못한다 해도, 단지 차고 기우는 것은 나날의 쓰임새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 대체되는 것도, 다만 이치의 연(緣)에 어둡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답변 드립니다. 천리는 아득하고 깊어서 변화하는 모양을 밝히기 어렵기 때문에 마땅히 자신을 미루어 종고(終古)를 조짐하고 응보가 이룬 자취를 고찰할 뿐입니다. 선악(善惡)과 화복(禍福)에 이르러서는 혹 얼핏 보면 저절로 매사에 합치되는 것 같더라도 명사(冥司)의 진험(眞驗)은 아니니 어떻게 그것을 밝히겠습니까? 만약 유사(有司)가 있어 나라를 다스리고 가정을 돌보는데 착한 일에는 작은 것이라도 상주지 않는 것이 없고 악한 일에는 작은 것은 반드시 벌주지 않는다면 수행자에게는 그 소리(素履)를 보호하게 하고 반역하는 이에게는 혹독한 화를 받게 하니, 그런 연후에야 선을 쌓은 집안에는 나중에 후세에 다른 경사가 있게 될 것이고, 불선(不善)을 쌓은 집안에는 내세에 재앙이 흘러들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혹 죄악이 깊더라도 주살당하지 않고, 혹 선을 쌓더라도 화가 밀려들고, 혹 인의(仁義)를 실행하더라도 그 몸을 망치고, 혹 행실이 멋대로 포악하더라도 복이 내리니, 어찌 관리하지 않아도 운명이 자체로 있는 것이 아닙니까?
만약 “단지 차고 기우는 것은 매일의 쓰임새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 대체되는 것도, 다만 이치의 연(緣)에 어둡습니다”라고 한다면, 단지 과보의 대응이 늦어져 눈앞에 절실하지 못한 것 일뿐으로, 선과 악이 어긋나고 옳고 그름을 증험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 같은 것을 미루어 말하자면 사람의 삶이란 그 성품의 운명이 미리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어진 이는 저절로 어진 것으로 먼저 그 생이 있고 나서 나중에 선을 행하여 선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이는 저절로 악한 것이니, 본분(本分)에는 악함이 없다가 자라나면서 악을 행하여 악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궁핍하고 현달하며 선량하고 악하며 어리석고 지혜로우며 장수하고 요절하는 것은 운명이 아님이 없습니다. 운명은 명초(冥初)에 아득하게 결정되어 있는데, 행의 자취로 어찌 그 자연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하늘의 그물은 빠트리는 것이 없습니다. 숨은 것을 드러내고 미미한 것을 나타나게 한다는데,
이것은 단지 권교(權敎)의 말씀일 따름입니다. 현명(玄明)을 원래 정해진 극치라 이르지는 않습니다. 유종(有宗)을 묘하게 미루어 냄을 깨닫지 못하면서 어떻게 운명을 살필 수 있겠습니까? 앞서의 선각자들이 도리어 후오(後悟)가 될까 두렵습니다. 말과 행동을 꾸미지 않고 정직하게 적습니다.
- 답대처사서(答戴處士書:대안공에게 답하는 편지) 주도조(周道祖)
「석의론」을 다시 풀이하신 것을 보았는데, 참으로 말의 이치가 절실하게 징험되었고 실다움을 잘 비교하였습니다. 단지 저의 뜻과는 아직 같지 않으므로 그 속마음을 다시 말하고자 합니다.
하루는 법사를 모시고 앉았다가 그대에 대한 생각을 간략하게 여쭈었더니, “기력이 좋지 못하나 응당 답변을 해야 하니 그대가 논하는 이치는 겸유(兼有)의 소견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다시 그 불을 다소나마 되돌리지 못하나, 바로 이치를 이루고자 이를 보내드립니다. 그대가 운명을 살핀다는 것은 지극함을 체득한 사람이라도 모두 같지 않다고 말씀하셨고, 또 제가 말씀드렸던, 응보(應報) 가운데 존재함을 기약하지 않으니, 경사와 책벌이 이미 뚜렷하다고 한 말도 그대가 생각한 것과 다릅니다.
편지로는 말을 다하지 못하겠으니, 이로써 말을 그칩니다. 이 가운데 소소한 것도 아직 다 말하지 못한 것이 많으나, 그대로 둔 채로 편지를 봉하겠습니다.
6) 여대처사서(與戴處士書:대안공에게 보내는 편지)와 답 석혜원(釋慧遠)
그대가 주거사와 주고받는 것을 보아하니, 참으로 빈주(賓主)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정미(精微)하여 그 일로 따지기 어렵습니다. 그윽한 이치를 여러 번 되풀이하여 표명함에 이르렀지만 그 경전에 숨어 있는 뜻을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단지 그대가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으나, 아직도 성경(聖經)에 마음을 두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편지를 보내 논하고자 하여도 시작하기도 전에 잊어버리니, 해마다 쇠약해져 병환이 많기에 답서를 낼 틈이 없습니다. 강의를 끝낼 여가에 대충이나마 감회를 적어 보내니 함께 의심하는 이와 더불어 시험 삼아 살펴보십시오. 그 부족을 살펴보면 바로 비간과 상신의 무리들의 경우를
어찌 생각하지도 않고 알 수 있겠습니까?
석혜원이 머리를 조아려 아룁니다.
- 답원법사서(答遠法師書:혜원 법사에게 답하는 편지) 대안공
안공이 합장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드립니다.
황송하게도 편지와 함께 「삼보론(三報論)」을 보내 주셨는데, 참으로 비유하는 이치가 넓은 데다 그 이치의 줄기도 묘하게 풀어 내셨습니다. 되풀이 하여 읽어 보니 마음속에 흔쾌히 깨닫는 바가 있었습니다.
제자가 비록 법훈(法訓)을 가슴에 새기고 믿음을 정성스럽게 하였어도, 어려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노닐며 경학(經學)조차 섭렵하지 못했기에, 예전에 괴롭고 힘들 때에 즐겁게 「석의론」에 의탁하여 스스로 생각을 흩뜨렸습니다만, 이와 같은 것은 대체로 그 정(情)이 마음에서 발하여 말로 드러나는 것에 불과합니다. 속견(俗見)의 마음만으로 추리하였기에, 참으로 미진한 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3보(報)27)는 넓고 멀어서 말로써는 이를 따져 보기 어렵습니다. 제가 그 단서를 찾아 돌이켜야만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친히 말씀을 받들게 되니 그 막힌 것이 뚫리게 되었습니다. 온갖 감회를 주거사에게 다시 맡겨둡니다.
대안공이 합장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드립니다.
7) 보응문(報應問)과 답 하승천(何承天)
서방(西方)에서 보응(報應)을 말하는데, 그 지말은 비록 분명하나, 그 근본에는 아직 어두운 것이 있습니다. 그 말이 번잡하여 요긴한 것은 적고, 그 비유가 거리가 멀어 징험할 바가 없는 것이, 오경(五經)과 서로 다르니 그 견해가 예전의 성인을 저버리고 속정(俗情)에만 가까이하여 이를 부축이기 때문에 말세의 속인들에게 신임을 얻습니다.
일월의 운행을 알고자 하면 선기(璿機)로 살펴야 하고, 유명(幽冥)의 미더움을 펴고자 하면, 드러난 일에 부합되는 바를 취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감(鑑)28)과 수(燧)29)를 매달아 물과 불을 얻고 비가 스며들어 머물다가 바람과 구름이 만들어집니다. 이와 같은 것은 모두가 먼 것이 가까움에서 말미암음을 징험하고 그윽함으로 드러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위는 날짐승이지만 푸른 연못에 노닐면서 봄철에 돋아난 풀을 뜯어 먹더라도 중생이 움직여 그것을 범하지는 않습니다. 또 요리사가 이것을 잡게 되면 도조(刀俎)를 면하기 드물 것입니다. 제비가 날면서 먹을 것을 구하는데, 날아다니는 벌레만을 달게 여깁니다. 사람들마다 아껴주는데 비록 천막 위에 둥우리를 만들고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이는 이미 고니와
제비가 아닙니다. 군생(群生)의 만유(萬有)가 때때로 이와 같으니, 이로써 살생하더라도 죄악의 과보가 없고, 복을 짓더라도 선업(善業)의 보응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훈계하는 것이 그와 같고, 세상에 보여 주는 바는 이와 같으니, 나도 이에 몹시 미혹하였습니다. 만약 제비가 벌레가 아니면 달다 하지 않으면서도 이 때문에 죄가 미치지 않는데, 백성이 가축을 길러 잡아먹는다고 어떻게 홀로 재앙에 이른다 하겠습니까?
만약 금치(禽豸)30)는 무지하고 사람들은 경전의 가르침을 안다고 말한다면 경전의 가르침이 없었던 시절에는 고기를 잡느라 그물을 치는 것은 죄가 없을 것입니다. 연고도 없는 과법(科法)이 중국에 들어와서 백성이 이 때문에 구덩이에 빠지는데, 그와 같이 어진 사람이라면, 어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불경(佛經)이란 단지 거짓되게 권교(權敎)를 만드는 것에 불과하며, 사람들을 권장하여 선량하게 하려는 것뿐으로, 참다운 것을 서술하는 일과는 관계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로써 성인이 만든 제도로 그 덕을 미루어 만물을 가려야 하니, 내가 기르고 내가 배양하는 이 같은 것이야말로 하늘의 은덕(恩德)을 마음속에 품는 것입니다. 사냥하여 3품(品)을 얻어 빈포(賓庖)를 채우게 됩니다.31) 만약 그 살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 죽음을 차마 보지 못하고, 우는 소리를 듣고는 그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참으로 군자가 힘써야 할 바이나, 고명함을 바란다면 여기에 다시 세 번의 반성을 보태어야 합니다.
- 답하승천(答何承天:하승천에게 답하는 편지) 유소부(劉少府)
삼가 고명한 논리를 읽어 보니, 말마다 절실하고 인증(引證)도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른바 그와 같은 상인(上人)이란 참으로 응수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여래(如來)께서 이치를 새겨서 성품을 다하고, 감득에 기인하여 가르침을 이루셨으므로 다섯 가지 선으로 생각을 열었는데, 이 때문에 계품(戒品)이 설치되어 여섯 가지 폐단을 내치게 되었습니다. 반야(般若)로 비춰서 10선(善)으로 향기를 내고 깨끗이 하여 누(累)가 없게 하면, 끝내 해탈하여 보리(菩提)에 이르게 될 뿐입니다. 이것이 말단을 밝힐 수 있는 까닭은 실로 근본에 어둡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구(孔丘)가 효도에 힘써서 어짊으로 사해(四海)를 덮었고, 석가는 대자비(大慈悲)를 으뜸 삼아 그 교화를 오도(五道)에 두루 펴셨으니, 그 만물을 인도하는 자취가 어찌 그윽하지 않겠습니까? 단지
감응에는 거칠거나 정밀함이 있으나 끝내는 자체적으로 다를 뿐입니다. 대체로 반야의 여러 경전을 살펴보면, 참으로 의심할 만한 허점이 없지 않은데, 어떻게 공구의 책만 가져다 달달 외우면서 정교(正敎)를 버린다는 말을 내뱉겠습니까? 용귀(龍鬼)의 비루함으로도 성인에게 감득하여 가르침에 인도되어 미더움을 얻었는데, 이 같은 일이 어찌 말대(末代)의 세속뿐이겠습니까?
그대가 현재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3세(世)의 말씀을 탓하니, 그 번잡하고 우활하여 괴이쩍은 바가 참으로 달리 할 말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이처럼 인과(因果)가 틀림없음도 마치 형체에 그림자가 따르는 듯하고, 그 요체(要諦)의 효험을 징험하는 것도 마치 부절(符節)이 합치되는 듯합니다. 일월이 가고 오는 것, 유명(幽明)의 믿음, 물과 불이 내리고 바람과 구름이 만들어지는 일에 있어서도, 모두가 먼저 인(因)이 있고서야 나중에 과(果)가 있는 것이기에, 감응하는 도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연(緣)이 생기면 샘물에서 물을 이루고, 연이 없어지면 부싯돌로도 불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따라서 일체의 제법(諸法)이 연에 따라 일어나고 없어질 뿐입니다.
만약 거위가 죽게 되면 조리하여 조정(俎鼎)에 오르게 되고 제비가 풀려나게 되면 짠 소금과 신 매실을 취하여 맛을 조절하지 않습니다. 거위가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벌레가 제비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과 같습니다. 거위와 벌레가 현세(現世)에서 업을 받고 사람과 제비는 미래에 보(報)를 받습니다.
보(報)는 3업(業)에 기인하는데, 3업에는 늦고 빠름이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집안에서는 효성스럽고 나가서는 공손하여 왕의 조정에서 임금과 아비를 빛내더라도 끝내 쟁쟁해지지 못하고 결국 주살(誅殺)당하는 것은 현보(現報)가 빨라서 보고 듣는 것에 드러나는 경우입니다. 혹 충성스러워 유덕하더라도 가슴을 베이고 연못으로 떠밀리거나, 겁탈 당하고도 다행스럽게도 죽임 당하는 것을 간신히 모면하는 것은 후보(後報)가 더딘 것이니, 성기어 잃지 않는 것입니다.
선악의 업(業)은 그 업에 보응하지 않음이 없어서, 단지 과거와 미래는 눈과 귀로 얻어질 바가 아니기에, 이를 믿는 이는 적고, 그르다 하는 이는 많은 것뿐입니다. 과법(科法)이 청정하여 진루(塵累)를 씻어내어 지혜를 열어내는 데도, 중국이 이를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함정이라 말하니, 이는 내가 계책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진(秦)나라가 쓰지 않는 것뿐입니다.
사람에게 선을 권장하는데, 이 같은 말씀이야말로 참으로 정성스럽습니다. 권장하는 것도 진실로 헛되이 세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문왕(文王)이 백읍고(伯邑考)32)를 폐하고
무왕(武王)을 세운 것은 권도(權道)인 것입니다. 주(周)나라의 적자인 백읍고는 왕답지 못하였고, 발(發)에게는 천명이 있었습니다. 예(禮)는 소략한 제도이더라도 이치는 참으로 진실을 따랐으니, 백읍고를 폐하고 발을 세운 것은 참된 것입니다. 각각 그 진실에 따라 덕의 쓰임새가 서로 돌이켜지니, 큰 지혜가 아니라면 누가 이에 관여하겠습니까? 경전에서도 선권(善權)의 방편(方便)이 이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백성을 살리고 죽이는 것은 성(性)의 욕(欲)입니다. 피를 마시고 털을 깔고 앉았던 것은 상황(上皇)의 시대이나, 성인이 살생을 없애서 살생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단지 백성의 살생이 다하지 않기에 교화하여 점차로 줄여 나갔습니다. 비록 장차 3품(品)을 배양하여 풍성하게 제사 음식을 올리고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면서도 탕(湯)임금이 그물을 열어 놓았고33) 공자가 낚시질을 하면서도 그물을 쓰지 않았습니다.34) 『시경(詩經)』에서는 오파(五豝)로 돕고,35) 『예』에서는 그 몸으로 직접 죽이지 않았습니다.36) 그러므로 이를 근거하여 살펴보자면, 작자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지금 이를 참고 잡아먹지 않는 것은 자비로운 마음을 성심껏 다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 불인지심(不忍之心)을 보고 듣는 바깥으로 미루어내면, 보고 듣는 안에서도 똑같이 먹지 않을 것이니 지극하고도 지극합니다.
옛말을 꾸며대어 좁은 소견을 펼치나, 실상(實相)은 말이 없기에 말한다 하면 모두 우스운 논의가 됩니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똑같이 옳지 않은 것이 뚜렷해집니다. 혹 고명(高明)한 변론이 있기를 여러 군자들에게 청하는 바입니다.
8) 변종론(辯宗論)과 제도인왕위군문답(諸道人王衛軍問答) 사령운(謝靈運)
함께 수행하는 여러 도인들은 모두 마음을 신도(神道)에 두고서 해답을 말의 바깥에서 구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몸져누워 힘쓰지 못하고 헛되이 보낸 날만 많았습니다. 지금에서야 늘 생각하던 바를 말하려는 것도 종지(宗旨)의 깨달음을 정하여 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석씨(釋氏)가 논하는 것은 성도(聖道)가 비록 멀다고는 하나, 배움을 쌓으면 이룰 수가 있습니다. 누(累)가 다하여 귀감(龜鑒)이 생겨나면 점차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공씨(孔氏)가 논한 것은 성도(聖道)가 이미 묘하다는 것입니다. 비록 안회(顔回)가 도에 가까웠더라도 몸소 주나라를 귀감삼지 못하였으나, 이치상으로는 일극(一極)으로 돌아갑니다.
새롭게 논하는 어떤 도사는 ‘고요하게 비추는 것[寂鑒]은 미묘하여 단계조차 허용치 않으며 배움을 쌓는 것은 한도가 없는데 어떻게 스스로 끊을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석씨의 점차로 깨닫는
점오(漸悟)를 버리고 그 능히 이르는 것만[能至]을 취하며, 공씨(孔氏)의 도에 가깝다는 것[殆庶]을 없애고 그 일극을 취해도 일극은 점오(漸悟)와 다르고 능지(能至)는 태서(殆庶)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치적으로 없애야 할 것을 비록 제각각 취하여 합친다 하여도, 석가와 공자는 서로 다르다 할 것입니다.
제가 지금 두 가지 모두 만물을 구제하는 말씀이라 하였는데, 저 도가(道家)에서 창도(唱道)하는 득의양양한 설법의 내부를 분석해 보면, 제 자신도 신론(新論) 쪽이 옳다고 봅니다. 주고받은 답변에 마음을 기울인다면, 제가 더디더라도 깨닫는 바가 있겠습니다.
- 법욱(法勗) 스님의 첫 번째 질문
청아한 논문을 삼가 살펴보니 종극(宗極)은 비록 미묘하나 한 번의 깨달음을 갑작스럽게 이루게 됨을 밝혔습니다. 비록 새롭게 분석하는 것을 기뻐하여도 살펴보면 의심되는 곳이 있습니다.
명달(明達)이란 이치를 체득하여 욕심을 끊는 것이고, 유유(悠悠)함이란 혹(惑)에 현혹되어 누(累)에 매이는 것입니다. 욕심을 끊는다는 것은 견리(見理)를 근본으로 합니다. 누에 매인다는 것 자체가 연유하는 바가 종지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말하겠습니까? 경전에서는 “새로 배우는 이가 반야(般若)를 여의면 바로 실명한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이끌어 이치를 품지 않게 되면 멋대로 하는 것이 여기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만약 섭렵하여 구하는 것도 점차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대종(大宗)에 대해 우러르기를 희망하게 됩니다. 오히려 진구(塵垢)에 얽매인다면 영겁토록 수고롭고 과보를 기약하는 것이 아득한 데도 마음속으로는 도리어 이것을 기뻐하게 됩니다.
삼가 좋은 말씀을 기다립니다.
- 첫 번째 답변
진도(塵道)와 세속(世俗)은 이치가 어긋나 서로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방편으로 길을 삼는 것인데, 방편은 비록 헛된 것이나 뜻은 헛된 것이 아닌 데 있습니다. 지혜는 비록 참되다고 하나 참다운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참다움이 아닌 것으로 참다움을 상하게 하지 못합니다. 근본은 사물을 구제하는 데에 있습니다. 헛되지 않은 것으로 헛된 것을 이루지 못하니, 사물을 구제한다면 근본으로 돌아갑니다. 이와 같이 영겁토록 무(無)를 공(空)으로 삼습니다. 은근히 과보를 기약하는 것이 마치 해가 비치는 듯합니다.
- 법욱 스님의 두 번째 질문
논문을 살펴보면, 공자와 석가가 그 도가 같아서 만물을 구제하는 방편도 다르지 않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신도(神道)의 경지에서는 비록 안회(顔回)일지라도 공자가 깨우쳐 주지 못했고, 실상(實相)의 오묘함은 어리석다 하여도 석씨가 반드시 교화하였습니다. 어째서 두 분의 성인이 하신 말씀이 이렇게 차이가 납니까?
- 두 번째 답변
두 가지 가르침이 같지 않은 것은 사물의 모양새에 따라 교화하는 지역이 달라서입니다. 크게 나누어 그 백성을 살펴보면, 화하(華夏)의 사람은 이치를 깨닫기는 쉬우나 가르침을 받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그 배움을 쌓는 것을 닫아 버리고 한 가지의 지극함을 열게 됩니다. 변방 사람은 가르침을 받기는 쉬우나 이치를 깨닫기는 어려우니, 이 때문에 그 돈오(頓悟)를 닫아 버리고 점오(漸悟)를 여는 것입니다. 점오가 비록 지극해진다 하여도 돈오의 참다움에 어둡고, 일극(一極)이 비록 근거하는 것을 안다 하더라도 쌓아서 깨닫는 희망을 끊어 버립니다.
참으로 화하 사람은 이치를 점차(漸次)가 없다고 깨닫고 도(道)를 배움이 없다고 속입니다. 변방의 사람은 이치에는 배움이 있다고 깨닫고, 도에는 점오가 있다고 속입니다. 그러므로 권(權)과 실(實)이 비록 같더라도 그 쓰임새는 각기 다릅니다.
예전에 향자기(向子期)37)가 유가(儒家)와 도법(道法)을 한 가지라 하였고, 응길보(應吉甫)38)가 공자와 노자는 똑같다고 말했던 것은 모두가 그 종지를 엿보고자 했을 뿐인데, 어떻게 진실되다 하겠습니까?
- 법욱 스님의 세 번째 질문
답서(答書)를 다시 살펴보니, 화하와 변방에는 더디고 빠른 성품이 있는데, 이 때문에 두 분의 성인이 다르면서도 같은 가르침을 베풀어서 그 지역을 중시하고 풍속에 부합하였으니 참으로 아름답다고 말할 만합니다. 그러나 심오한 표준과 밝은 귀감을 가지고 위에서는 법칙을 만들고 어리석은 백성으로 무지몽매한 이는 그 아래에서 복종합니다. 이러한 까닭에 법칙을 만드는 것은 마땅히 그 다스림을 살피는 것이고, 복종을 하면 반드시 그 종지를 옳게 여기게 됩니다.
지금 공자가 성학(聖學)의 길을 폐하고 석가가 점오(漸悟)의 지름길을 열었습니다. 통발과 올가미[筌蹄]39)가 이미 뒤엉키었으니, 군려(群黎)가 무엇에 연유하여 참다움으로 돌아가겠습니까?
- 세 번째 답변
겨울철과 여름철은 그 성품이 다르기에, 봄과 가을을 충당하여 그 처음과 끝을 삼습니다. 낮과 밤은 그 쓰임새가 다르나, 새벽과 저녁을 이어서 왕복합니다. 하물며 지극하고 정밀한 이치가 어떻게 빠르게 지극히 조잡한 사람을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점오에 기대는 것은 은밀하게 돈오를 이루려는 때문이고, 예교(禮敎)에 의지하는 것은 드러내지 않고 성인에 대한 배움을 이루고자 함입니다. 성인을 배우는 것은 육경(六經)을 벗어나지 않으니, 육경으로써 돈오를 얻으면 3장(藏)을 보지 않고도 3장으로써 이루어냅니다. 통발과 올가미 또한 그렇습니다. 이를 어떻게 엉켰다고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물고기와 토끼를 이미 모두 잡았으니, 수많은 백성들이 이로써 제도됩니다.
- 승유(僧維) 스님의 질문
신론(新論)의 법사들을 계승하자면, 종극은 미묘하여 단계조차 허용치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학자들로 하여금 유(有)의 지극함을 궁구하게 하니, 자연의 무(無)는 마치 부계(符契)와 같은 데 어떻게 무(無)를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만약 무(無)를 충당하여 유(有)를 다한다면, 어찌 점오(漸悟)라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첫 번째 답변
누(累)가 이미 다하지 않았다면 무(無)는 얻을 수 없습니다. 누의 폐단을 다하여야 비로소 무(無)를 얻을 수 있습니다. 누(累)가 다하여 무(無)가 되어 참으로 부계(符契)와 같아야 그 누가 없어지게 됩니다. 반드시 가르침에 따라야 하더라도, 유(有)에 머무른 때에는 배우는 것이지 깨달음이 아닙니다. 깨달음은 유(有)의 바깥에 있으나, 배움에 의탁하여 지극하게 됩니다. 단지 단계적으로 어리석은 사람을 가르친다는 말은 한 번 깨우쳐 득의(得意)한 이론일 뿐입니다.
- 승유 스님의 두 번째 질문
논문에서 “깨달음이 유(有)의 바깥에 있으니 이를 터득하되 점차로 깨닫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배움을 섭렵하여 종지(宗旨)를 구하여 당일에 그 밝음으로 나아가는 것 보다는 밝음으로 나날이 나아가 더불어 함께하는 것만 못합니다. 만약 밝음으로 나날이 나아가고자 한다면 점차적으로 깨닫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두 번째 답변
밝음은 점차적으로 지극해지는 것이 아니고, 진실은 가르침에 연유하여 발명됩니다. 어떻게 이와 같이 말하는가 하면, 가르침에 연유하여 미더워지면 바로 나날이 나아가는 공덕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점차적으로 밝아지는 것이 아니기에 비춤이 들어오는 틈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도(道)를 향한다면 선심(善心)이 일어나고 누(累)를 줄인다면 구복(垢伏)을 만듭니다. 복(伏)은 무(無)와 같은 듯하고 선(善)은 어긋나는 것 같을지라도, 이와 같이 힘쓰는 것을 갖추지 않는다면 그 마음에 본래 누가 없다고 아니하겠습니까? 한 갈래의 깨우침에 지극해지면, 만 가지 막힌 것이 함께 다할 것입니다.
- 승유 스님의 세 번째 질문
답서에서, “가르침에 연유하여 미더워지면 바로 나날이 나아가는 공덕이 있습니다. 이는 점차적으로 밝아지는 것이 아니기에 비춤이 들어오는 틈조차 없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가르침을 존중하여 그 종(宗)을 따르자면, 비록 영원히 쓰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미루는 때에 어찌 잠시라도 무(無)에 합쳐지지 않겠습니까? 만약 잠시라도 합쳐지는 것을 허용한다면 오히려 합쳐지지 않는 것보다 낫습니다. 이야말로 점오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세 번째 답변
말씀하시는 ‘잠시’란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참다움이란 항상된 것입니다. 가지(假知)란 항상된 것이 없고, 상지(常知)에는 일시적인 것이 없습니다. 지금 어떻게 가지(假知)의 ‘잠시’로써 상지(常知)의 참다움을 침범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잠시 합치는 것이 합치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것은 참으로 여래의 말씀이니 그 미묘한 증거가 됩니다. 무신(巫臣)이 장왕(莊王)을 충간하던 때40)에는 하희가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치를 정(情)보다 우선시하였습니다. 이윽고 하희(夏姬)를 (자신이) 받아들이는 날이 되었을 때는 이미 하희와 관계하였기 때문에 정을 이치의 위에 두게 되었습니다. 정과 이치가 구름처럼 엉기고, 만물과 내가 서로 기울어지는 것은 또한 중지(中智)의 솔임(率任)입니다. 만약 자신에 대한 충간을 깨달음으로 삼는다면, 어찌 받아들이던 날의 미혹됨을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또 남쪽을 성스럽게 여기고 북쪽을 어리석게 여겼으니,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하는 것을 북쪽에 머문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남쪽을 향하여 북쪽을 등지는 것을 남쪽에 이르렀다고 칭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남쪽을 향하는 것은 실로 남쪽에 이르러 북쪽을 등지는 것으로, 이는 북쪽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실로 북쪽에 머무는 것이 아니기에, 이 때문에 어리석음을 없앨 수 있습니다. 또 남쪽에 이를 수 있기에, 이 때문에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 혜린(慧驎) 스님이 승유 스님의 질문을 보충한 질문41)
가지(假知)로 한 번 합치는 것은 진지(眞知)와 같습니까, 다릅니까?
- 첫 번째 답변
진지(眞知)와는 다릅니다.
- 혜린 스님의 질문
어째서 다릅니까?
- 두 번째 답변
가지(假知)는 누(累)를 굴복시킵니다. 그러므로 이치는 잠시 용(用)이 됩니다. 용(用)은 잠시 이치에 있어도 그 지(知)를 항상되게 하지 못합니다. 진지(眞知)는 고요하게 비추기 때문에, 이치는 항상 용(用)이 됩니다. 용(用)은 항상 이치에 있기 때문에 영원히 진지(眞知)가 됩니다.
- 혜린 스님의 세 번째 질문
누(累)는 저절로 제거되는 것이 아니니, 이 때문에 이치를 구하여 누를 제거하려는 것입니다. 지금 가지(假知)가 한 번 합쳐지는 것도 그 이치가 실로 마음에 있으니, 마음에 있어서 누(累)가 없어지지 않는다면, 장차 무엇으로 그것을 없애겠습니까?
- 세 번째 답변
누(累)가 일어나는 것도 마음에 기인하는 것이고, 마음에 접촉하여 누(累)가 이루어집니다. 누(累)를 늘 접촉하게 되면 마음이 나날이 어두워집니다. 가르침을 쓰임새[用]로 삼아야 마음에서 나날이 굴복시키게 됩니다. 누를 굴복시켜 오래되면 자연히 누가 없어지는데, 그 소멸된 때는 누가 굴복된 이후에나 있습니다. 누를 굴복시키는 것과 누를 소멸시키는 것이 그 모양이 같다 하나, 실상은 다르기에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를 소멸시키는 바탕은 만물과 나를 같이하면서 유(有)와 무(無)를 한 갈래로 보는 것입니다. 누를 굴복시키는 모양은, 남과 자기가 그 정을 달리하고 공(空)과 실(實)이 그 보는 바를 달리하는 것이다. 실과 공이 나뉘어 자신과 남을 달리하는 것이야말로 체(滯)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무(無)와 유(有)를 한결같이 하여 나와 만물을 같이 함으로써 비추는 것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 혜린 스님과 승유 스님의 질문
3세(世)는 소위 백 년보다 장구한 데다, 3천은 적현(赤縣)보다 넓으니, 사부대중은 호구(戶口)보다 많고 7보(寶)는 모래보다 묘합니다. 이 또한 사물의 모양도 크고 작음이 있는데, 이 때문에 교화에도 멀고 가까움이 있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 첫 번째 답변
일과 이치는 같지 않으나 늘 네 가지 단서를 이룹니다. 스스로 작고 큰 것이 있으나 각자 그 합당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진 이와 어리석은 이도 그 모양과 어긋나게 머물게 됩니다. 소위 세상은 같고 때가 다르며 만물은 옳으나 사람이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비유하자면 닭이나 잡는 정치에 소 잡는 칼42)과 옥새(玉璽)를 차고 만기(萬機)를 듣는다고 어떻게 모두 당우(唐虞)와 같다고 하겠습니까?
지금 자유(子游)의 몸은 이미 무성(武城)에서 다했어도 대대로 모두 천하에 퍼졌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또한 묘각(妙覺)이라 칭하더라도 그 국토에 좋고 나쁨이 있는 법이니, 국토의 좋고 나쁨으로 성인의 우열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자취의 응함은 본래 징험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 승유 스님의 두 번째 질문
논문에서 “혹은 도는 넓으나 일은 협소하며 혹은 일은 옳으나 사람이 잘못되었다. 지금 일의 작고 큰 것으로 도가 조잡하고 오묘한 것을 가릴 수는 없다”고 하였으니, 참으로 이 같은 말이 미덥습니다. 단지 의심스러운 바가 이것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설사 주공(周公)과 공자(孔子)가 실제로 지극함을 다하지 못하고 이와 같이 세상에 응하여 스스로 종(宗)에 거처하였더라도, 이 같은 세상은 이미 지나갔고 성인도 멀어졌으니 그 지극함을 밝히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묘하게 강림하여 단계를 헤아려 조잡한 군려(群黎)를 접인(接引)하였으니, 이는 조잡한 이로는 헤아릴 바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단계를 헤아리는 오묘함은 지극한 오묘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니, 이로써 미루어 말하자면 세상을 위무(慰撫)하는 자가 조잡함으로 오묘함을 삼았으니 오묘하다 하여도 여전히 조잡한 것이 됩니다. 오묘함으로 조잡함을 구하게 되면 가서 다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조잡함으로 오묘함을 구한다면 그 근원을 보지 못합니다. 가서 다하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이것을 이치를 궁리한다 말하고, 그 근원을 보지 못하기에 이 때문에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다고 합니다. 지금 어떻게 안회가 숭상한 것에 나아가 극묘(極妙)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 두 번째 답변
지금 안회가 숭상하는 것에 의지하여 그것을 극(極)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안회가 도에 가깝다[庶幾]라고 말한다면 공자는 그 기미(幾微)를 알았던 것입니다. 또한 우(禹)임금의 창언(昌言)43)을 허용해도 공자가 본래 말한 것이 아닙니다. 요(堯)임금은 하늘을 본받았다고 해도 체(體)는 이것과 같지 않습니다. 함께 체득함이 지극한데, 어찌 유(有)의 크고 작음으로 헤아릴 수 있습니까?
- 승유 스님의 세 번째 질문
세상 사람들이 모두 헤아리지 못하는데 창언(昌言)하였다고 모두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까?
- 세 번째 답변
현자(賢者)를 창언(昌言)하는 것도 오히려 그 현자를 인정하는 것인데 성자(聖者)를 창언하는 것이 어찌 도리어 성자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날마다 쓰면서도 백성의 무지몽매함이라면 오로지 부처님의 궁극을 다한 것은 실상(實相)의 숭고함입니다. 지금 숭고한 실상을 가지고 그 무지몽매한 백성을 알게 하려 했던 적은 아직 없었습니다. 정말로 모르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그 창언으로써 믿음으로 삼지 않겠습니까? 또 석가의 창언을 옳다고 생각하면서, 어떻게 공자의 창언을 잘못되었다고 하겠습니까?
- 축법강(竺法綱) 스님의 질문
삼가 고담준론을 들춰 보니 참으로 지극한 종지를 연구했고, 권(權)과 실(實)을 교묘하게 판정하였습니다. 그 뜻은 유도(儒道)의 남겨진 가르침과 공자와 석가의 창언입니다. 이것을 절충하여 신론(新論)으로 빛내었으니, 참으로 격한 흐름을 근원으로 인도하고 닦아내어 맑고 깨끗하게 하여 빛을 발하였습니다.
법욱(法勗) 스님과 승유(僧維) 스님의 질문에 대한 답서를 상세히 살펴보니, 혹 권도(權道)에 기인하여 형통하고 혹은
배워서는 깨우치지 아니한다고 말하였으니, 현묘한 말을 헛되이 만들어도 가슴 속의 정리(情理)에는 상관이 없는데, 이는 참으로 타당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이같이 말하는 것입니까? 도형(道形)은 하늘과는 거리가 멀고 기이(幾二)44)는 험절합니다. 배워서 종지에 점차로 나아가지 않으면 일찍이 비슷한 바도 없어집니다. 유(有)의 끝으로만 치달리더라도 생각이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니, 신애(神崖)는 어디로 연유하여 올라가고 기봉(機峰)은 어디를 따라서 초월할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유(有)에 은근하게 힘써서 앉은 채로 무(無)를 체득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마치 붓을 종장(鍾張)45)의 법식대로 휘두르는 것과 같고, 공은 예양(羿養)46)의 능력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렇게 명확하지는 않으나 같은 유(有)로써 특별하게 제한된 것이 아니더라도 오히려 이것을 완상하고서 저것을 좋게 여길 수 없는데, 하물며 유(有)와 무(無)가 지극하게 어긋나는데 도리어 서로 통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또 “누(累)가 이미 다하지 않았다면 무(無)를 얻을 수 없습니다. 누의 폐단을 다하여야 비로소 무(無)를 얻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논하여 말씀드립니다. 대도(大道)에 눈멀고 그윽한 길에서 수레바퀴를 끊는 것은 제한된[封有] 누(累)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유(有)는 유(有)를 없앨 수 없으니, 유(有)를 없애는 것은 반드시 무(無)가 있지 않는 것입니다. 먼저 유(有)의 누(累)를 다한 연후에 무(無)를 얻게 됩니다. 말한 것에 나아가 누를 다하게 되면 무(無)가 있게 될 것입니다.
누(累)가 되는 것이 저절로 없어진다면 실로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 없습니다. 진실로 기다림이 없지 않다면 무(無)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無)에는 귀함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 저와 같은 깊은 어둠이 저절로 밝아진다면, 빛나는 태양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빛나는 태양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면 베풀지 않을 수 없는데 밝음도 그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등급을 떨어뜨려 돈오(頓悟)에 의탁한다 하나, 장차 여기에서 거꾸러질 것입니다. 여가가 있는 대로 잘 생각하여 스스로 풀어내십시오.
- 석혜림(釋慧琳)의 질문
세 번 그 뜻을 자세히 하여 이가(二家)를 분별하여 유도(儒道)를 짐작(斟酌)하였으니, 참으로 그 논을 가슴에 새길 만합니다. 그러나 석가의 점오(漸悟)를 내치고 공자의 도에 가깝다는 것을 남기는 것에 이르러서는 우매하여 그 미혹함이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석가를 점오가 있다 하면서, 스스로
형체 있는 것은 점오가 있다 하고, 공자는 점오가 없다 하면서, 스스로 도를 이뤘기에 점오가 없다 하는데, 어떻게 그와 같음을 구별해낼 수 있겠습니까?
중품(中品)의 사람에게는 상품(上品)을 말해줄 수 있으니,47) 오래 익히면 그 성품이 옮겨질 수 있다는 것이 소위 공씨(孔氏)의 교훈입니다. 도량에 한 번 합치되고 10지(地)가 단계를 거쳐 올라가는 바가 아니라는 것이 석가의 창도(唱導)입니다. 이와 같이 점차로 문론(文論)과 두 분 성인의 자세한 말을 끊는다면 어찌 홀로 변방이라 하여 그 가르침에 묶이고, 화하(華夏)라 하여 그 이치에 구속될 뿐이겠습니까? 아마도 두려운 것은 서로 비판하는 변론과 말이 신론(新論)보다 뛰어난 듯한 것입니다.
법욱 스님이 “욕심을 끊는 것은 그 이치를 체득하는 것에서 연유합니다”라고 평하였으니, 마땅히 날마다 없앤다[日損]48)는 것은 이치로써 스스로 깨닫는 것입니다.
논문에서 “도와 세속은 이치가 어긋나 본래 서로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방편으로 통하니 만물을 구제한다면 근본으로 돌아갑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묻겠습니다. 방편이 빌려 익히는 바의 마음이란 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깨닫는 날과 경(經)의 헛된 이치는 모두 스스로 돌아가는 것입니까? 만약 그와 같이 공(空)의 말씀에 영원히 등진다면, 이는 도리어 말설(末說)이 되는 것입니다. 그대가 만약 시종일관 서로 부축한다면, 가르침의 닦음이 지극하게 될 것입니다.
승유 스님과 혜인 스님에게 답한 것을 보면, 헛된 깨달음 가운데 그 문체를 달리 꾸며 논조를 이룩한 것이 실로 어긋나도 한참 어긋납니다. 헛된 것이란 미혹에 맴돌면서 이치가 없는 것이니, 나무를 비비어 불을 피워 미혹에 이르게 된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남쪽으로 향하면 월(越)나라에 이를 수 있고, 북쪽을 등지면 연나라를 떠날 수 있다는 것으로 연나라는 북쪽, 월나라는 남쪽에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공(空)을 숙고하여야 마음을 씻어낼 수 있고, 유(有)를 덜어내야 누(累)를 버릴 수 있어서, 유(有)는 어리석고 공(空)은 성(聖)입니다. 이와 같이 반야(般若)에 은근히 하여 나날이 잊어가면서 영로(郢路:초나라의 도읍)를 바라보며 매진한다면, 다시 어떻게 잃을 곳을 근심하겠습니까? 아마도 두려운 것은 ‘한 번 깨달음’을 주창하는 것이 다시 남북간의 비유에 걸려서 잘못될 듯합니다.
- 답강림이법사서(答綱琳二法師書:축법강 스님과 혜림 스님 두 분의 비평에 대한 답과 편지)
두 통의 평론을 펼쳐보니 기쁘기가 존안을 마주 한 듯합니다. 아름다운 문체와 해박한 논조가 눈에 가득 서리니, 참으로 보통 사람의 변론을 뛰어넘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두어도 싫증나지 않습니다.
지난번 즐겁게 제 생각을 폈는데 마주하여 말씀을 나눌 방법이 없어 손에 붓을 쥐니 참으로 감회가 깊습니다.
사령운이 합장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드립니다.
- 답강공난(答綱公難:축법강 스님의 비평에 대한 답)
보내 주신 평론에서 “같은 유(有)로써 특별하게 제한된 것이 아니더라도 오히려 이것을 완상하고서 저것을 좋게 여길 수 없는데, 하물며 유(有)와 무(無)가 지극하게 어긋나는데 도리어 서로 통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익숙한 것에 구애받아 이러한 의심이 생겨날 뿐입니다. 오로지 편지 쓰는 것을 즐기는 자는 스스로 활과 화살을 다듬지 않습니다. 활과 화살을 이미 다듬고서 다시 편지 쓰기를 즐기는 자는 무엇을 하든 겸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유(有)에 갇힌 채 종지로 향하지 않는다면, 이는 스스로 갇혔다는 허물이 있게 됩니다. 무(無)로 나아가 막힌 것을 없애는데 어찌 어긋나지 않겠습니까?
겸하지 못하는 유(有)를 빌려서 겸할 수 있는 무(無)를 힐난하시니, 이는 종호(鍾胡)49)가 갱이(更李)50)에게 활 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예양(羿養:羿와 養由基)이 나조(羅趙)51)에게 붓글씨를 부끄럽게 여기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비슷한 경우의 잘못은 바야흐로 교력(巧歷)52)의 탄식만 보탭니다. 지금 그 근본에 따를 것을 청하니, 무(無)에 근거하여 유(有)를 굴복하고 굴복하는 것이 오래되면 유(有)는 잊게 됩니다. 굴복하는 때는 알 수 없습니다. 알게 되면 다시 이것을 분별하지 않습니다. 이같이 앉아서 잊고 나날이 없앤다는 말은 가까이는 노장(老莊)에게서 나왔고 연(緣)을 헤아려 없앤다는 것은 경전의 오랜 말씀입니다. 이와 같다면 어찌 누(累)가 저절로 없어지고 진실로 무(無)가 구제한 바이겠습니까?
또 밝음도 새벽이 되면 새로운 공(功)도 타오르는 해에 있으나, 타오르는 해는 어둠에게 공을 자랑하지 않고, 반야는 어리석은 이에게 은혜로움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로써 지나간 것을 미루어 보면 어찌 기약함이 많다고 이르겠습니까?
- 답임공난(答琳公難:석혜림 스님의 비평에 대한 답)
공자가 비록 상품(上品)을 말해줄 수 있다고 했지만 성인은 단계로 이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석가는 한 번 합치는 것만 오직 말하여 만물마다 불성(佛性)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만물마다 불성이 있다면 그 도에 돌이킴이 있으니 바로 점교(漸敎)가 아닐까 싶으며, 성인은 단계로 이르는 것이 아니니 그 이치의 고귀함이 도에 가깝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찌 두 분의 성인이 길을 달리한 것이 입장의 차이가 그렇게 만든 것이겠습니까? 비평하는 문제의식에는 처음부터 의도하는 것이 있으니 뛰어난 논의는 각궁(角弓)53)의 시와 같지 않겠습니까?
평론에서 “만약 그와 같이 공(空)의 말씀에 영원히 등진다면, 이는 도리어 말설(末說)이 되는 것입니다. 그대가 만약 시종일관 서로 부축한다면, 가르침의 닦음이 지극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셨는데, 참으로 공손(公孫)54)의 사변(辭辯)에 갇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혜는 권(權)의 근본이고 권(權)은 지혜의 쓰임인데, 지금 성인의 뜻을 취한다면 지혜입니다. 경(經)의 말에 나아간다면 권(權)이 됩니다. 권(權)에 의지하는 것으로써 준칙[檢]이 됩니다. 그러므로 3승(乘)55)이 모두 통발과 올가미가 됩니다. 이미 그 뜻을 종지로 돌이킨다면 이 때문에 반야는 물고기와 토끼가 됩니다. 참으로 백성이 어리석음이 많은 것에 연유하여 가르침도 멀어졌습니다. 만약 사람마다 모두 뜻을 얻는다면, 깨달음을 거두는 것보다 귀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가지(假知)의 논지를 유(有)에서 밝히는 자는 이치에 두루 통하는 간언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관계하는 것과 떨어져 있는 것이 서로 의존하는 것이고, 도를 깨닫는다는 것을 말하는 바가 아닙니다. 그 입론(立論)과 무슨 차이점이 있겠습니까?
연(燕)나라는 북쪽에 있고 월(越)나라는 남쪽에 있습니다. 유(有)는 어리석고, 공(空)은 성인입니다. 그 이치는 이미 합당하니 자못 마음속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열심히 노력하는 자는 나날이 잊고 이를 보는 자는 나아간다는 것도, 참으로 진실된 여래의 말씀입니다.
다만 열심히 노력하여도 얻지 못하고 바라보아도 이르지 못한다는 것은, 바로 그때를 맞이하여 종(宗)으로 향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미 얻고 이미 이르렀으니, 한 번 깨달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같지 않은 것을 가지고 고삐를 잡고 달리면서 어찌 그 자취가 다르다고 말해야 합니까?
- 문사영가(問謝永嘉:사령운에게 질문함) 왕홍(王弘)
그대가 논하여 “가르침에 연유하여 미더워지면 바로 나날이 나아가는 공이 있습니다. 점차적으로 밝아지는 것이 아니니 비춤이 들어오는 틈조차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묻습니다. 가르침에 연유하여 미더워지고 비춤이 들어갈 틈이 없다면 이는 성인을 맹신하는 것입니다. 만약 성인을 맹신한다면 이치는 마음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 다스림에
실로 성인의 뛰어나지 아니한 바가 없을 텐데, 무엇에 연유하여 날로 나아가는 공(功)이 있겠습니까?
그대는 “잠시란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참다움이란 항상된 것입니다. 가지(假知)란 항상된 것이 없고, 상지(常知)에는 일시적인 것이 없습니다”라고 논하면서, 다시 “가지(假知)는 누(累)를 굴복시킵니다. 이치는 잠시 용(用)이 됩니다. 용(用)은 잠시 이치에 있어도 그 지(知)를 항상되게 하지 못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묻습니다. 잠지(暫知)가 가지(假知)라면 알지 아니함이 없습니다. 단 이치를 보았다 하나 오히려 얕으니 늘 쓰일 수 없을 뿐입니다. 비록 진지(眞知)와 똑같이 비출 수는 없더라도 어찌하여 비춤이 들어갈 틈이 없기야 하겠습니까? 만약 잠지(暫知)가 이러한 이치를 본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치가 잠시 용(用)이 될 수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또 알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지(知)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대가 논하여 “가르침을 쓰임새[用]으로 삼아야 마음에서 나날이 굴복시키게 됩니다. 누를 굴복시켜 오래되면 자연히 누가 없어집니다”고 하였습니다.
묻습니다. 이는 가르침을 쓰임새[用]로 삼아 누복(累伏)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굴복한다는 것입니까? 만약 이치를 보지 못했다면, 그 마음으로 한결같이 이치를 보지 못하였으니 그 마음이 오로지 맹신뿐일 텐데, 마땅히 그 마음을 오로지 하여 신심을 내는 것을 누를 굴복시켰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은 숙고하여도 나란히 할 수 없으니, 이 때문에 저것이 폐해지는 것뿐입니다. 이치와 누(累)가 서로 방편 삼아서 굴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심수(心數)는 누구인들 그렇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이와 같이 굴복하여야 근본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 의탁하고 한 번 굴복하여 돌고 돌아 멈추지 않는다면, 비록 아무리 오래되더라도 누(累)가 어떻게 소멸될 수 있겠습니까?
왕홍경(王弘敬)은 “한 번 깨달음의 이야기가 언제나 마음에 있다고 말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같고 다른 변론을 절충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뒤섞어 어지럽히는 것을 비난하게 됩니다.
근자에 논하는 바를 살펴보면, 풀이하는 바가 참으로 많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점들이 있습니다. 시험삼아 그 조항을 위와 같이 정리하였으니, 받아들일 만하다고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의심은 다하지 않으니 그대로 하여금 나의 뜻을 모두 다 살펴보게 하고자 한다면 잘 모르는 것에 대하여 아울러 무릎을 마주하고 논의해야 합니다.
붓을 들어도 감회만이 늘어나니, 진실로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 답왕위군문(答王衛軍問:왕위군의 질문에 대한 답)과 편지
사령운(謝靈運)
왕위군이 묻기를, “가르침에 연유하여 미더워지고 비춤이 들어갈 틈이 없다면 이는 성인을 맹신하는 것입니다. 만약 성인을 맹신한다면 이치는 마음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 다스림에 실로 성인의 뛰어나지 아니한 바가 없을 텐데, 무엇에 연유하여 날로 나아가는 공(功)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답합니다. 안자(顔子)가 두 가지를 체득하였어도 비춤에는 미치지 못하였으니, 이는 선(善)을 향하는 것입니다. 이 위로 맹신 아닌 것이 없으나 단지 가르침에는 연유할 만한 이치가 있습니다. 내가 이치를 구하는 뜻이 있기에 이 때문에 마음에 관계된다고 말하니, 두 가지를 내리면 해는 열 가지를 되돌리니, 어떻게 단지 허물만을 면하겠습니까? 실로 나날이 진보하는 공이 있습니다.
왕위군이 “잠지(暫知)가 가지(假知)라면 알지 아니함이 없습니다. 단 이치를 보았다 하나 오히려 얕으니 늘 쓰일 수 없을 뿐입니다. 비록 진지(眞知)와 똑같이 비출 수는 없더라도 어찌하여 비춤이 들어갈 틈이 없기야 하겠습니까? 만약 잠지(暫知)가 이러한 이치를 본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치가 잠시 용(用)이 될 수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또 알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지(知)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답합니다. 알지 못하는 것을 지(知)라고 말하는 것은 잠지(暫知)가 아니라면 무엇이겠습니까? 그 쓰임새를 늘 하지 않으니, 어떻게 이를 늘 한다고 이르겠습니까? 이미 늘 하는 것이 아니기에 관계하는 것과 떨어져 있는 것이 서로 의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충간할 때는 정리(政理)를 말하고, 자신을 기쁘게 할 때는 그 아는 바를 침범하는 것입니다. 만약 충간하는 때로서 비춤을 삼는다면, 어찌 기뻐하는 때의 침범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지(知)를 이치로 말하는 것은 헛된 얘기고, 지(知)를 침범하는 것은 미혹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판단해 보면, 성인에서부터 하품(下品)에 이르기까지 그 비추임에 깊고 얕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품 사람의 성품(性品)에는 그 마음에 기리고 멀리하는 것[崇替]이 있을 뿐입니다.
왕위군이 “이는 가르침을 쓰임새[用]로 삼아 누복(累伏)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굴복한다는 것입니까? 만약
이치를 보지 못했다면, 그 마음으로 한결같이 이치를 보지 못하였으니 그 마음이 오로지 맹신뿐일 텐데, 마땅히 그 마음을 오로지 하여 신심을 내는 것을 누를 굴복시켰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은 숙고하여도 나란히 할 수 없으니, 이 때문에 저것이 폐해지는 것뿐입니다. 이치와 누(累)가 서로 방편 삼아서 굴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심수(心數)는 누구인들 그렇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이와 같이 굴복하여야 근본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 의탁하고 한 번 굴복하여 돌고 돌아 멈추지 않는다면, 비록 아무리 오래되더라도 누(累)가 어떻게 소멸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답합니다. 누복(累伏)한다는 것은 이것에 속하고 저것을 폐한다는 것이니, 진실한 여래의 말씀이십니다. “그 심수는 누구인들 그렇지 않겠는가?”라는 말도 여래의 뜻입니다. 배운 사람에게 나아가 말을 하지 않고 항물(恒物)로써 비난한 것을 한탄할 뿐입니다. 비유하자면 효험 있는 약은 질병을 쉽게 고치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치가 묘하면 인색함을 씻어낼 수 있는데, 인색함을 씻어내었다면 어찌 다시 돌고 돌겠습니까? 병이 치료되면 어찌 일어나고 소멸함이 있겠습니까?
일마다 꾀하지 않으면서 오롯하게 이미 분별하였으니 단지 무루(無漏)의 공덕은 세속의 선을 기반으로 삼습니다. 선한 마음에도 비록 5품(品)의 수(數)가 있으나 삼계(三界)의 바깥으로 나설 수 있습니다.
평숙(平叔)56)이 동지날의 음(陰)을 이야기 했고 보사(輔嗣:왕필)57)도 멀리까지 가서 반드시 (양을) 지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였습니다만, 이 같은 말을 빌려서 무과(無果)에 들어가 (음양 사이에) 간격이 없음에 견줍니다.
사령운 제가 한 번 깨달음의 이치를 말하였는데, 그 바탕은 경전의 고(誥)일지나 속된 문장의 얘기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편지에서는 비록 그 뜻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과거의 격언은 그윽하고 편벽되어 일도 없고 동행한 도인들과 함께 충정을 구합니다. 외람되게도 고매한 비평을 받아 말의 미묘한 뜻을 이치로 분석하여 정밀하게 연구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날마다 열람해 보니, 기쁘기가 잠시 마주 대한 것과 같습니다. 번번이 예전의 논을 되풀이하여 말하였으니, 비록 말로 응수하지 않았더라도 질문을 보내어 풀어 주시니, 이 또한 마음을 드러내 보일 뿐입니다. 바다와 산이 험하여 회포를 풀 날을 기약할 바가 없습니다. 흰 종이를 마주하여도 감회만 늘어날 뿐으로, 더불어 탄식만 깊어집니다.
사령운이 다시 절 올립니다.
- 중답사영서(重答謝永書:사령운에게 다시 답하는 편지) 왕홍(王弘)
예전에 답서를 다시 보내 주시어 거듭 살펴보았으나 깨달음을 일으키는 것 또한 알지 못하겠습니다. 다르게 되는 원인은 바로 이런 것일 뿐입니다. 축도생(竺道生) 스님에게 보여 드렸는데, 이처럼 도인들도 조금씩 다른 점이 있습니다. 마땅히 얼굴을 서로 마주 대하여야 말놀음에서 벗어나 약간이나마 시원해질 것입니다. 흰 종이에 쓰는 것으로는 이를 의탁할 수 없기에 실로 어긋나는 바가 많을 것입니다.
- 답왕위군서(答王衛軍書:왕위군에게 답하는 편지) 축도생(竺道生)
사령운의 좋은 이론을 살펴보았는데 모두가 빈틈이 없습니다. 유동(有同)이 묘한 선(善)과 같은지라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단월(檀越)이 비평하는 이치도 아주 요긴하니, 궁구하면 반드시 아름답게 통하리라고 절실하게 생각합니다. 시험 삼아 간략하게 논의(論意)를 취하여 기쁨의 회포를 펴는 것으로써 만약 이를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미더움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가르침에 연유하여 미더워진다는 것이 반드시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저것의 지(知)를 기반으로 합니다. 이치는 나의 밖에 있습니다. 저것에 의지하여 나에 이를 수 있더라도 이로써는 나날이 진보하는 공(功)이 없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데 무엇에 연유하여 비춤에 들어가는 틈이 있겠습니까? 어찌 이치를 바깥에서 보는 것으로써 다시 완전히 어둡게 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는 것이 자신의 안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비칠 수 없을 것입니다.
9) 여안성후요숭서(與安成侯嵩書:안성후 요숭에게 보내는, 뜻으로써 부처를 서술한 편지)와 답 후진주(後秦主) 요흥(姚興)
내가 일찍이 마음속으로 마하연(摩訶衍)의 여러 가지 뜻을 소통하였다. 구마라집(鳩摩羅什) 스님과 더불어 그 속내를 상세히 평론하고자 하였으나, 애석하게도 그 이치를 결정하지 못했다. 오래지 않아 구마라집 스님에게 변고가 있었다. 이로부터 나를 잊고 서로를 찾았으나 다시는 일에 뜻이 없어 드디어 잊어버렸다. 최근에 사신을 시켜 성상(聖像)을 보내오심에, 경과 더불어 소(疏)를 짓고자 하였다. 책 상자 가운데서 홀연히 예전에 그 본말을 조목조목 나눈 것을 얻었기에, 지금 경(卿)에게 보내어 이를 보여 주니, 천천히 살펴보라. 만약 경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바로 이것을 비평해 보라. 경이
오래지 않아 바로 이것을 비웃을 듯하다.
내가 예전에 시험 삼아 성인(聖人) 삼달관(三達觀)에 통하여 구마라집 스님에게 자문을 받았는데, 스님께서 바로 답장을 보내 주셨으니, 지금 함께 동봉하여 보낸다. 이 같은 일을 청하는 것도 모두가 예전에 뜻하던 바이나, 지금은 도무지 감회가 일지 않으니 어찌하겠는가?
- 통삼세론(通三世論) [구마라집 법사에게 자문함]
일찍이 여러 법사들께서 3세(世)를 밝히시되 있다고도 하고 없다고도 하였는지라 따라야 할 바를 결정하지 못했다. 이 또한 대법(大法) 가운데의 한 처소이나, 그 있고 없음을 판별하지 못하겠다. 마음속으로 매번 이를 개탄하며, 이로써 미흡한 마음을 소통시키고자 시험 삼아 맹랑한 말을 써본다. 참으로 그 말이 맹랑하여 이치에 회통(懷通)하기에 미흡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으나, 가슴 속에는 약간이나마 생각이 남아 있으니, 경마저 이에 대해 침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불현듯 갈래를 소통시킨 것을 증정(贈呈)하니, 지혜로운 이는 그 속내를 가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3세를 한 가지로 거두며 ‘가고 옴’으로 그 쓰임새를 삼았는데, 과거가 비록 멸했더라도 그 이치가 늘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이유는 아비담(阿毘曇)58)에서 주석한 말씀과 다르게, 5음(陰)59)의 덩어리가 그대로인지라, 발이 땅을 밟는 것과 같다. 진족(眞足)이 비록 지나갔더라도 그 자취는 여전하고, 미래는 불이 나무에 있는 것과 같아서, 나무 속에 불이 있다고 말할 수야 있겠는가? 이것을 살펴보아도, 보이지 않는다고 불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다만 인연(因緣)이 합해져야 불이 나오는 것이다. 경전에서는 “성인이 3세(世)를 보되 없듯이 한다”고 하였으니, 성인도 보는 바가 없다는데, 이를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늘 하는 것을 범하고 밝은 것을 싫어하여 과거와 미래가 비록 없더라도 눈이 이치를 마주하여 항상 서로 인(因)하니, 비록 말미암는 이치가 끊어지지 않더라도, 성인이 3세를 보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
- 구마라집 법사의 답서
청아한 논조가 크게 형통해서 몹시 아름답습니다. 과거와 미래는 정해져서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통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색음(色陰)을 말씀하시되, 3세(世)의 화합(和合)을 총체적으로 색(色)이라 이름하셨으니, 5음(陰)도
모두 이와 같습니다. 마음에서 마음이 생기는 것이 마치 곡식에서 곡식이 생겨나는 것과 같다 하셨으니, 이로써 과거가 있어야만 무인(無因)의 허물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6식(識) 가운데의 의식(意識)은 이미 소멸된 생각을 근본 삼는 것에 의지하여 의식이 생겨난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정견(正見)은 과거의 업과 미래 가운데의 과법(果法)을 이름합니다. 또 10력(力) 가운데 두 번째 역(力)은 3세의 여러 가지 업을 안다고 합니다.
또 만약 과거의 업이 없으면 3도(塗)의 보(報)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학인(學人)이 만약 유루심(有漏心) 가운데 처하게 되면 ‘성인’이라 이름하지 못한다고도 말하였으니, 이와 같은 것을 서로 비교해 보면, 과거가 없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과거와 미래가 없다고 하면 경전의 이치에 형통하지 않은 것이니, 법리(法理)로도 이를 허락하지 못합니다.
또 12인연(因緣)은 불법 가운데의 깊은 이치이니, 만약 과거와 미래가 있다고 결정하면 이 같은 법과 어긋납니다. 왜냐하면 씨앗이 땅과 물과 때가 맞아야 싹과 뿌리가 생겨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미리 결정되어 있다면 유(有)를 기다릴 바가 없게 됩니다.
만약 예전부터 있었다면 연(緣)에 따라 생긴다고 이름하지 못합니다. 또 만약 예전부터 있었다면 이는 늘 전도(顚倒)된 것이니, 이 때문에 있다고도 결정하지 못하고 없다고도 결정하지 못합니다. 있다거나 없다는 설법이 오직 시법(時法)에서만 합당하다 하겠습니다.
과거법(過去法)으로 행업(行業)을 일으킨다면 없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또 지금은 눈과 마주하지 않는다면 유(有)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눈에 마주하지 않기에 있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청아한 이론의 그 형통함이 참으로 지극합니다. 또 대품(大品)에서 밝히는 것은 과거의 여(如)는 미래와 현재의 여(如)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래와 현재의 여(如) 역시 과거의 여(如)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 또한 없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경전 가운데의 큰 요체이니, 식견 높은 이를 기다려서야 이를 형통하여 다할 수 있습니다.
성인이60) 형통하여 법에 머물지 않고 반야에 머무르거나 중생이 도(道)로 나아가지 않는 이유도 집착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성인의 가르침은 언제나 집착을 없애는 것을 일삼으니, 이 때문에
반야에 머물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비록 대성(大聖)이 현감(玄鑒)에 감응하여 실로 비추는 바가 끝이 없으나, 이 또한 집착할 수 없으니, 집착이 있으면 화근이 됩니다. 행인(行人)으로 하여금 나와 남을 잊고 의탁하는 것을 버리게 합니다. 배를 띄우는 것이 매어 놓지 않은 배와 같으니, 의탁하는 것이 없어야만 이치에 합당해집니다.
- 통성인방대광명보조시방(通聖人放大光明普照十方:통달하여 성인이 대 광명을 발하여 시방을 두루 비침) 후진주(後秦主) 요흥(姚興)
성인의 가르침은 그윽하게 통달하여 끝이 없으므로, 여러 모양새마다 감응(感應)에 이르니, 한 갈래 길을 만들어 구할 수 없고 한 가지 이치로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조잡함으로 조잡함에 응하고 세밀함으로 세밀함에 응하는 것은 이치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큰 광명을 놓아 여러 가지 신변(神變)을 나투시는 이유도 이처럼 시방의 여러 대보살들에 응하여 존위를 잇고자 하실 뿐이다. 만약 속세에 처하면서 조잡한 것만 마주한다면, 어찌 이 같은 일을 용납하겠는가?
『아함경(阿含經)』에서 “석가가 천축에서 40여 년 간 머물렀으니 의복과 음식으로 여러 가지 근심과 고통을 받으신 것이 사람들과는 구별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경전에서는 또 “성인이 사슴과 말로 들어가 도탈(度脫)61)하셨다”고 말씀하시니, 당연히 사슴과 말에 있어서 어찌 말과 사슴과 다르겠는가? 만약 말과 사슴이 세상의 항상된 흐름에 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면 이 같은 신변을 기다리지 않는 것이 명확하다. 매번 일마다 스스로 예전의 사물과 같도록 해야 하니, 그런 연후에야 그 교화를 행할 수 있을 뿐이다.
- 통삼세(通三世:3세를 통함)
중생이 3세를 두루 섭렵하는 것이 마치 돌고 도는 것과 같다. 과거와 미래가 비록 눈에 마주하지 않으나 그 같은 이치는 늘 있다. 이에 성인이 그 가는 바를 찾아보고 그 가는 곳을 알며 거꾸로 헤아려 미래를 알게 된다.
- 통일체제법공(通一切諸法空:일체의 제법이 공함을 통함)
도(道)란 무위(無爲)를 줄기로 삼으니, 만약 무위라면 어찌 다시 있는 바이겠는가?
- 사후진주요흥주상표(謝後秦主姚興珠像表:후진 임금 요흥의 주상에 감사하는 표) 요숭(姚嵩)
신이 삼가 아룁니다.
삼가 구슬로 만든 성상(聖像)을 봉안하였으니 이는 황후(皇后)의 유촉을 세운 것입니다. 날마다 예를 갖추어 이를 우러러보니, 추모하는 마음이 참으로 망극하기만 합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지나간 일을 생각할 때마다 감회가 늘어납니다.
신이 삼가 아룁니다.
전대(前代)의 업을 이어 폐하께서 친히 성상을 조성하시고 일마다 지극한 마음으로 섬기면서 바라는 바를 늘리시니, 잠시나마 한 번 예경하는 것으로는 성은(聖恩)이 드리움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다시 신에게 이 같은 성상을 공양케 하시니, 그 공이 보배롭고도 귀중합니다. 이리하여 제작하는 이치에 맞도록 하여 마치 신명(神明)이 이룩한 것처럼 되었습니다.
구슬로 만든 성상을 뵙고 보니 참으로 기묘하기만 합니다. 게다가 이 같은 서신(書信)을 내리시어 다시 틈을 내어 살펴보게 되니, 삼가 기쁘기가 무량합니다. 하늘의 베풂을 받으면 보답할 길이 없고 큰 은혜를 입으면 고마워할 길이 없습니다. 비록 어리석은 마음으로 우러러 펴고자 하더라도 다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삼가 신이 이같이 아룁니다.
신이 삼가 아룁니다.62)
폐하께서 여러 가지 형통한 이치를 내리셔서 그 이치를 맛보니, 그윽하면서 문체가 청아하기만 합니다. 이치를 간략케 한 것이 이편(二篇)을 넘어서고 묘하게 다한 것이 중관(中觀)과 함께 합니다. 이를 읽고 음미하며 종이를 수고롭게 하여도 마음에 싫증이 나지 않으니, 참으로 당대의 고창(高唱)이며, 누겁(累劫)의 종범(宗範)이라 말할 만합니다.
그러나 신이 완고하여 생각이 그윽함에 미치지 못하니 날마다 펴보고 노래 삼아 읊으면서도 틈이 없어 깨닫지 못합니다. 널리 자비를 베풀어 잘 이끌어 같이 함께하여 묻고 평론하고자 합니다. 감히 우둔함을 잊어버리고 그 감회를 베풀고자 하여도 어찌 이를 논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자문하고자 하여도 실로 깨치는 바가 없습니다. 삼가 신이 이 같이 아룁니다.
신이 삼가 아룁니다.
위의 「통삼세론(通三世論)」은 참으로 이치가 깊습니다. 이미 성인의 마음에 멀리 계합(契合)하였으며 겸하여 온갖 이설(異說)을 억눌러 바로잡았습니다. 그 줄기가 되는 길이 첩첩한지라 평상(平常)의 경계를 뛰어넘었고 흔쾌히 깨우쳐 지극한 것이 맛볼수록 더욱 깊어져만 갑니다. 게다가 구마라집 스님은 해박함을 겸비하셨으니, 실로 어리석은 신이 칭찬하더라도 이를 다하지 못할 것입니다.
마땅히 가슴 속에 새겨서 마음으로 끌어안아 마음의 요체로 삼을 뿐입니다. 삼가 신이 이 같이 아룁니다.
신이 삼가 아룁니다.
위에서 “형통하여 법에 머물지 않고 반야에 머무르거나 중생이 도(道)로 나아가지 않는 이유도 집착이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였으니, 실로 성인의 마음에 그윽한 이치로 실로 다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육도(六度)63)에 자리를 표방함에 이르러서는 집착이 없는 것을 종지로 삼습니다. 마음으로 이를 취하여야 참으로 밝은 가르침과 같습니다. 일로만 나아가서는 유(有)를 벗어남이 지극하지 못합니다.
무릇 집착이 없는 것은 비록 미묘한 것과 비슷하지만 참다움에 나아가지 않고 두 가지 어둠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참다움에 나아가지 않고 두 가지 어둠이 있다는 것은 아마도 마음으로 잊었다고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가만히 그윽한 가르침을 살펴보면 다시 있는 듯합니다.
삼가 간첩[牒]에다 말을 만들어 어리석은 소견을 적었습니다. 그러므로 경전에서는 “법을 버리지 않고서 단바라밀(檀波羅蜜)64)을 구족한다. 이 같은 세 가지 일이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으니, 이 세 가지가 이미 유무(有無)에 아득합니다. 무(無)는 마땅히 무(無)이니 이치에 마땅하다면 환화(幻化)와 같이 됩니다. 이로써 미루어 보면, 저 머물지 않는다는 이치가 그대로 나와 남을 잊어서 의탁하는 바를 버린 것이 아닌가 합니다.
- 난상통성인방대광명보조시방(難上通聖人放大光明普照十方:「통성인방대광명보조시방」에 대해 비평하여 올림65)
조칙에서 “대광명을 펼치는 여러 신변(神變)은 시방의 여러 대보살의 장래에 존위를 잇는 것에 응할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치의 그윽함으로써 실로 식견이 짧고 얕은 사람이 참여할 바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하지 않는 정(情)은 오히려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만유(萬有)는 같지 않아서 정밀함과 조잡함도 다릅니다. 저것에 응하는 것이 비록 다를지라도 성인의 마음은 늘 매한가지이니, 늘 한 가지인 까닭에 원만하게 응하게 됩니다. 같지 않기 때문에 방편으로 이를 제도하니, 비록 사슴과 말일지라도 처음부터 그 큼을 어긴 것이 아닙니다. 비록 신변(神變)을 나타내었어도 그 미세함을 처음부터 남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정명경(淨名經)』에서 “여래께서 혹 광명(光明)으로 불사(佛事)를 짓기도 하고, 혹 적막(寂寞)으로 불사를 짓기도 하니, 드러내고 침묵하는 것이 비록 다르더라도
끝내 둘이 아님에 이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크고 작은 사이라 하니, 아마도 이 때는 그 말씀이 약간 교차되었을 뿐입니다. 『화수경(華手經)』에서 “처음 부처님께서 덕장(德藏)을 위해 대광명을 발하시어 여러 중생들이 널리 그 윤택함을 입게 하였다”고 말씀하시고, 또 『사익경(思益經)』가운데서는 “망명(網明)66)이 질문한 바 여래는 서른세 가지의 광명이 있고 일체의 만나는 이마다 모두 이익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법화경(法華經)』에서는 “부처님께서 미간(眉間)의 상호에서 광명을 놓으시자, 사부대중과 팔부대중 모두 의심을 내었다”고 말씀하셨고, 또 “어둠에 처한 중생이 각자 서로 볼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그 연(緣)이 있다면 비록 작다 하더라도 반드시 이로움이 있고, 만약 인(因)이 없다면 비록 크다 하더라도 어긋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야경(般若經)』에서는 “만약 중생이 이 같은 광명을 만나면 반드시 무상도(無上道)를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신변(神變)으로 3악도(惡道)의 중생을 모두 천상에 태어나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로써 말하자면 광명과 신변의 일은 평등한 것 같습니다. 자비롭게 살펴 주심에 인연하여 감히 어리석은 생각을 다할 뿐입니다. 만약 다시 불쌍히 여기셔서 거듭 이끌어주신다면 어찌 단지 미천한 신만이 홀로 그 같은 은혜로움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 난통일체제법개공(難通一切諸法皆空:「일체제법개공」에 대해 비평 함67)
조칙에서 “도(道)란 무위(無爲)를 종(宗)으로 삼으니, 만약 무위라면 어찌 다시 소위(所爲)가 있겠는가?”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극한 이치가 깊고 맑아서 참으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건너감을 구하는 땅에 처해서는 근본을 찾아 깨우침을 이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를 밝히는 무위를 당연하다고 살피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바탕을 삼겠습니까?
만약 오묘함을 줄기로 삼는다면, 비록 천제(天帝)가 앞선다 하나 지극하지 못합니다. 만약 유(有)가 없음으로 오묘함을 삼는다면, 반드시 무(無)가 아닌 인(因)이 있게 됩니다. 그 같은 인으로 모두 그윽하지 못하다고 말하는데, 어떻게 ‘둘이 아닌 도’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논서에서는 “없는 것을 없게 하는 것은 반드시 있는 것을 있게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으니, 있고 없는 모양을 비유하자면 장수하고 단명하는 모양과 서로 같습니다. 무(無)의 이치가 비록 그윽하나 두려운 것은 저
단상(斷常)68)에 같이 하는 것입니다. 항상 하는 것도 불가능한데 하물며 다시 끊어지겠습니까?
그러나 유무(有無)의 나루가 있으면 바로 변견(邊見)이 남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론(中論)』에서는 “세제(世諦)를 깨뜨리지 않는 까닭에 진제(眞諦)를 깨뜨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논서에서는, “제법(諸法)이 실답다면 2제(諦)도 없다. 제법이 만약 공하다면 죄와 복도 없다. 만약 죄와 복이 없다면 범부와 성인을 판가름할 것이 없어진다. 진실로 판가름할 것이 없다면 도에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이 어리석어 종지를 깨우치지 못하였으니, 바라건대 어진 자비로 다시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 답안성후요흥(答安成侯姚崇:안성후 요숭에 대해 답하다) 후진주 요흥
경이 논하여 물어본 것이 인용하는 비유가 풍부하면서도 그 이치가 아주 깊다. 실로 용렬한 이로는 답변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지금 마땅히 모두 바로잡아 서로 응수할 뿐이다.
경이 『반야경(般若經)』에서 “만약 중생이 이 같은 광명을 만나면 반드시 무상도(無上道)를 얻는다”란 말씀을 인용하였는데, 경전의 말씀 가운데 범부로서 광명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을 듣지 못했다. 석가가 대광명을 발하여 시방을 널리 비추는데, 이때에 경전에서는 군품(群品)이 있어 그 괴이함을 보고서 이상하게 여겼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 모두 이것을 넓게 밝혔다. 다만 이 같은 말을 정하여 군소(群小)라고는 하지 않았다. 경이 이처럼 중생을 의심하였다면 백억의 보살도 어찌 중생이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경전에서는 다시 “보명(普明)이 석가를 참배하자, 모든 선남자(善男子)ㆍ선여인(善女人)과 더불어 여러 가지 꽃과 향을 가지고 와서 석가를 공양하였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공양을 드리는 무리들이 스스로 널리 그 윤택함을 입었다고 한다. 단지 광명을 일으킨 근본은 선남자ㆍ선여인을 위한 것이 아니니, 이로써 그 여파(餘波)를 입은 이가 있다 하나, 이는 마치 파리가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천 리를 달려간 것과 같을 뿐이다.
경이 또 “신변(神變)으로 3악도(惡道)의 중생을 모두 천상에 태어나게 한다”는 대목을 인용하였는데, 이처럼 사슴에게는 사슴이 되고 말에게는 말이 되어 도탈(度脫)하는 것이, 어떻게 신변이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화수경(華手經)』ㆍ『사익경(思益經)』ㆍ『법화경(法華經)』의 여러 경전에서 말씀하신 큰 광명을 놓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은 스스로 감응함에 있어 실로 『대품』과 차이가 없다. 만약 하나하나의 광명이 앞의 사물에 응하여 미쳤다면, 이러한 작용은 인천(人天)에 크게 형통한 바가 아니다. 광명과 적막이란 것은 바로 뜻을 내는 데는 일정하지 않으나 그 헤아림은 하나이다.
경이 경전의 말을 인용하여 “보시하는 이나 받는 이나 재물을 얻을 수 없다. 법에 머물지도 않고 반야에 머물지도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하였는데, 이 같은 두 가지는 바로 처음과 끝의 가르침이다. 통괄하여 말하자면 모두가 집착을 깨뜨리는 말일 뿐인데, 어떻게 죄와 죄 아닌 것과 베푸는 이와 받는 이와 재물을 모두 얻을 수 없다 하는가? 만약 모두 얻을 수 없다면 다시 무엇에 집착하겠는가? 이것은 집착이 없도록 권장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경이 또 묻기를 도를 밝히는데 무위를 종(宗)으로 삼는 것이 같은지 질문하였는데, 제법(諸法)은 원래가 공하여 묘공(妙空)이니, 어찌 무(無)로서 지극함을 이루겠는가?
또 논서 가운데 2제(諦) 사이의 말씀을 인용하였으니 생각건대 무위(無爲)한 도가 의지하는데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도(道)로써 무위를 그친다고 한다면, 이는 그 줄기가 되는 이유를 상세히 하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중생이 생사에 윤회하는 이유는 모두가 집착 때문이다. 만약 마음으로 욕심을 그친다면 다시 태어나지 않게 될 것이니, 바로 생사가 없게 된다. 정신을 그윽이 하여 아득하고 막막한 것이 공(空)과 더불어 그 바탕을 합치면 이를 ‘열반’이라 이름할 뿐이다. 이미 열반이라 말하였는데, 다시 어떻게 그 사이에 이름할 것이 있겠는가?
도는 의탁하지 않는 것을 줄기로 삼으니, 만약 그 있는 바에 의탁하는 것을 구한다 하면, 아마도 미혹함이 클 것이다. 내가 밝히는 무위는 유(有)로 삼을 수 없다. 뜻과 일이라는 것은 만약 몰래 구하려고 한다면 혹 작은 비난을 받기도 하므로
지금 다시 앞서의 이치를 펴고자 한다.
경이 인용한 『중론』이야말로 바로 내 이치의 줄기이다. 제법(諸法)이 만약 공하지 않다면 2제(諦)도 없고, 만약 유(有)가 아니더라도 2제(諦)가 없다. 이는 유(有)와 무(無)가 서로 나누어지지 않음을 분명히 한 것인데, 어떻게 유(有)라는 말로 결정하고서 무(無)로써 고사(高士)를 발탁해내겠는가? 만약 무(無)를 밝히는 것이 결정되면 무(無)로써 상류(常流)를 구제하게 된다. 이에 성인이 유와 무를 겸하여 끌어안고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가(諸家)들이 제일의(第一義)에 형통하면 확연하게 공적(空寂)해서 성인도 없다 하는데, 이에 대해 내가 늘 너무 특별나게 원대하여 사람의 마음에 가깝지 않다고 여기는 바이다. 만약 성인이 없다면 무(無)를 아는 이는 도대체 누구이겠는가?
- 중상후진주요흥표(重上後秦主姚興表:후진 임금 요흥에게 올리는 두 번째 표) 요숭
신이 삼가 아룁니다.
다시 삼가 조칙을 내리시어 가르치심이 참으로 세밀하십니다. 날마다 엎드려 살펴볼수록 참으로 감개무량하기만 합니다. 폐하가 덕음(德音)을 발하시니 그 광명이 어둠의 끝까지 비추시고, 도의(道義)의 문을 개척하셔서 여래의 깊은 이치를 연출(演出)하시니 그윽한 줄기가 사라졌다가 다시 드러나고, 현비(玄扉)가 가리웠다가 다시 열렸습니다. 문외(文外)의 뜻이 참으로 빛나서 어둠을 밝게 하였다고 말할 만합니다. 이치의 그윽함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으며, 일의 묘함이란 보통 하는 말로 기리지 못합니다. 비록 마음으로 우러르며 읊조리고자 하더라도 그 다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신이 어리석은 데도, 외람되이 폐하께서 몸소 아름다운 글을 내려 주시는 은혜를 입었으니, 참으로 기쁘기 짝이 없으며 그 은혜를 실로 견주지도 못하겠습니다. 미묘한 말씀을 우러러 맛보며 이를 연구하며 읊조리니, 참으로 지극합니다. 그 깨달음에 힘입으니, 어찌 절반의 이로움뿐이겠습니까?
단지 신이 바깥의 업무에 힘쓰느라 친히 말씀을 받들지 못하기에, 매번 먼 구름만 바라보며 한탄하니, 참으로 망극한지라 목 놓아 우러러봄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이와 같이 아룁니다. 신 요숭이 아룁니다.
- 중답안성후요숭(重答安成侯姚崇:안성후 요숭에 대한 두 번째 답서)
첫 번째와 두 번째 표주문을 받았다.
나는 평범한 재주에 일은 많은 데다 무지몽매하니, 마주치는 일마다 담장에 막힌 듯하여 도리를 모르는데, 어찌 돌이킬 수 있다 하겠는가?
경이 현법(玄法)을 즐기기에 이로써 맹랑한 말로 말해본 것이다. 그러나 보내온 말에 참으로 칭찬이 지나치니 더욱 불안할 뿐이다.
10) 석의론(析疑論) 당(唐) 사문 석혜정(釋慧淨)
태자중사(太子中舍) 신서(辛諝)가 학문이 문사(文史)에 해박하였는데 이를 자랑삼으면서 마음을 도술(道術)에 두고 불법(佛法)을 업신여겼다. 글로 논을 지어 석종(釋宗)을 대략 논하였는데, 이때에 답변하는 이가 있으면, 신서가 이를 땅바닥에 집어던지면서 스님들 사이에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였다.
혜정 법사가 그 모욕을 참지 못하고, 이에 논을 지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높은 논조를 열어 보니 널리 연구한 것이 정미하고 이치가 넉넉한 데다 글이 화려한지라 마음이 두근거리고 눈이 부시다. 언변이 자과(炙輠)69)를 뛰어넘고 이치가 연환(聯環)을 타넘으니, 그윽한 비평은 종횡으로 성하고 화려한 문장이 계속 이어지니, 현명한 선비가 아니고서야 누가 그 마음에 들겠는가? 저와 같은 상인(上人)을 살펴보니 참으로 대적하기 어렵다. 지닌 것이 가벼워 날래지 못하니 차라리 저 논객이 비난하는 것에나 응수하기로 한다.”
【論】 한 말씀으로 연설(演說)하여 그 부류에 따라 터득한다면 꿈틀거리는 중생도 모두 불성(佛性)이 있다. 그러므로 불타(佛陀)와 선각(先覺)은 말이 세속에 따라 다르지만 지혜와 반야(般若)는 그 뜻이 본래 심원하게 같다. 지각을 익혀도 뛰어난 인연이 아닌 듯하고, 부처의 지혜를 생각하더라도 어찌 묘과(妙果)에 오른다 하겠는가?
【답】참으로 이같이 거론하는 것이 웅대하다. 깊고 그윽하며 원대하면서도 이치로 섭렵하여 의혹을 불식하는구나. 지금 당연히 그대를 위해 그 대강을 진술하겠다. 같게 물어도 답은 다른 듯하다.70)
문장은 공자의 책에서 빛나는데, 그 이름은 한 가지이나 이치는 실로 어긋난다. 도리는 석가의 전적에서 밝혔으니 이름도 같고 이치의 다름도 허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를 묻는다면 다른 대답을 얻지 못한다. 이 같은 경우가 이미 올라가면 저것은 아울러 스스로 가라앉게 된다. 만약 깨우침이 있지 않다면 다시 제시하여 훈계하겠다.
머무를 곳이 없는데 머무르는 것은 만 가지 선이 겸하여 닦는 까닭이 되고 행하여 행하지 않음이 없는 것은 한 말씀으로 똑같이 응하는 까닭이 된다. 어찌 다만 성인을 끊고 지혜를 버려서
한 가지를 끌어안고 유약한 태도를 견지하여 냉랭하게 홀로 착하게 하여 의리로써 아울러 제도함이 없겠는가? 서로 비교하여 우열을 말하더라도 어찌 견줄 수 있겠는가? 두 가지 종지가 이미 가려졌으니, 백 가지 반론이 여기서 막히었다.
【論】 반드시 저것과 이것의 이름과 말을 분별해야 한다. 한 말씀으로 각자 터득한다는 것은 헛된 소리를 즐기는 것이다.
【論】 참으로 여래의 이치도 분별을 해야 하겠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소요유」에서 같음을 말했으나71) 대붕과 메추라기가 9만 리를 함께하지 못하고, 초목이 무성하고[榮] 시드는 것[枯]이 같다 하나 대춘(大椿)과 조균(朝菌)은 8천의 해를 함께하지 못한다는데, 하물며 횃불이 해와 달을 꾀하며 물을 대는 것이 때맞춰 단비가 내리는 것에 견주겠는가? 어떻게 그 갈래가 명백함과 윤택함을 같이하며 그 빛나고 윤택함이 균등하겠는가?
산과 터럭 끝이 그 크고 작음을 한 가지로 하고, 팽조(彭祖)와 상(殤)이 그 장수와 요절을 균등히 하며, 풀줄기[莛]와 기둥[楹]이 그 종횡을 어지럽히고, 시려(施厲)72)는 연치(姸媸)를 혼동시키니, 이로 말미암아 서로를 마주하여 정하지 않고 서로 빼앗아 잊을 수 있다.
장생(莊生)이 이로써 그 한계 지워진 것[有封]을 끊은 이유는 태초부터 만물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내가 분별하여 그대의 분별을 다스리려는 것이다. 그대가 분별을 잊으면 나도 분별을 잊을 것이다.
군자의 치열한 담론은 다행스럽게도 헛된 논의가 아니다. 말 한마디 실수는 천리마라도 쫓기 어려우니, 이 같은 말이야말로 훈계가 된다고 할 텐데, 그대야말로 참으로 근신해야 할 것이다.
【論】 제행(諸行)이 무상한데 부류에 접촉하여 연(緣)이 일어나니, 후심(後心)은 기다림이 있고 기(氣)에 의지하여 두루 구한다. 그렇게 하니 나의 깨끗함은 훈수(熏修)73)에서 받고 혜정(慧定)은 다스려 이기는 데[繕剋]에서 이루어진다.
【답】무상(無常)이란 예전에 나에게서 떠난 것이고, 연기(緣起)란 새롭게 나에게 오는 것이다. 예전에 나에게서 떠난 것인데 내가 어찌 항상되겠는가? 새롭게 나에게 오는데 내가 어찌 끊을 수 있겠는가?
새로움이 예전 것을 서로 이어가니 훈수(熏修)를 빌려서 청정함을 이루고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갱신하니 선극(繕剋)이 아니고서야 공(功)을 이루기 어렵다. 이처럼 생멸(生滅)은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을 깨뜨리고 인과(因果)를 중관(中觀)에서 드러냈으니, 이는 진실로 장자와 석가가 그윽하게 같고 동쪽과 서쪽이 이치로 만나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대가 저것을 버리고
이것만 취하니, 어찌 잘못이 없겠는가?
【論】 물오리의 짧은 다리를 늘이고 학의 긴 다리를 자르려고 하니, 이로써 어떻게 진여(眞如)라 하겠는가? 풀이 꽃을 피고 벌이 나는 것이 어떻게 약상(弱喪)74)이라 하겠는가?
【답】자연이란 그 과보의 운명이다. 훈수는 업의 이치이다. 과보의 운명이 이미 정해졌으니 두 마리 새가 서로의 다리가 길고 짧은 것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업의 이치가 연(緣)에 의지하니, 한 쌍의 벌레가 마주하여야 날아가고 부화한다. 그렇다면 사상(事像)은 의심하기 쉽고 침명(沈冥)은 어둠에 빠져 깨닫기 어려우니, 구하는 것에 어두운 선비는 미혹에 빠져서 쉬지를 못한다. 도(道)는 4과(果)에 원만하여 오히려 의주(衣珠)75)에 어둡고 지위가 10지(地)보다 훌륭하여도 오히려 나곡(羅縠)76)에 어두워짐에 이르러서는 성현(聖賢)도 참으로 이러할진대 하물며 용렬한 자들에 있어서야 어찌하겠는가? 스스로 3명(明)77)을 귀감삼고 7변(辯)78)을 웅비하지 않는다면 어찌 현극(玄極)에 묘하게 계합하겠으며 유미(幽微)를 추구하겠는가?
빈도(貧道)로써 가문에 업을 받음에 의지하여 친구가 이에 따라 의탁한다. 능히 선을 가려서 감히 추요(芻蕘)79)를 올린다. 또 쟁쟁하게 빛나고자 하면 금첩(金牒)을 상세히 살펴보기를 바란다.
마침내 신씨(辛氏)가 이 같은 글을 공손히 받들어 순식간에 삿된 그물을 잘라 냈다.[이는 예전에 이미 말한 것이다. 주나라 사문 요도안(妖道安)의 「이교론(二敎論)」에서 이미 풀어낸 것이다. 단지 보지 못한 이들이 신씨가 창도하였다고 말하였다.]
이원문(李遠問)이란80) 사인(舍人)이 있었는네 이 같은 논문을 읽었으나 뜻을 상세히 가리지 못하고, 바로 사문 법림(法琳) 스님에게 보이고 그 이치의 부류를 다시 넓혀 달라고 청하였다.
법림 스님이 이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신씨(辛氏)가 혜정(慧淨) 법사와 더불어 재물을 논한 것을 보이면서 대략 두 가지 질문이 있었다. 말뜻이 넓고 맑으며 이치가 그윽하게 뛰어나니 이미 의부(義府)를 열고 문봉(文鋒)을 크게 빛냈다.
불성(佛性)의 평등하다는 말을 거론하고 군생(群生)이 각각 터득한다는 얘기를 분별하였으니, 서로 간에 두 가지 반론을 진술하여 현동(玄同)이 하나의 문(門)임을 가렸다. 그와 같은 환내(寰內)에 부합하지 않고서야, 누가 이와 같은 고담준론을 떨치겠는가? 아름답고도 아름답구나.
의혹이 의혹을 더하니 어떻게 상황(上皇)의 조철(朝徹)를 찾겠으며 비로소 선각(先覺)의 이름을 유포하겠는가? 법왕(法王)이 만물에 응현하시되, 불타(佛陀)라는 명호를 표방하시는데, 지혜란
대체로 분별의 작은 술수이며, 반야(般若)는 무지(無知)의 큰 줄기이다. 분별은 연기(緣起)하여 이로써 ‘선각’이라 억지로 부르는 것이고, 성적(性寂)하여 이로써 ‘불타’라 헛되이 이르는 것이다.
분별은 이미 바깥에서 헤아림이 있다. 무지(無知)는 안에서는 마음이 없다. 바깥에서 헤아림이 있다면 분별의 견해는 없어지지 않는다. 안에서 마음이 없다면 유인하는 공(功)은 다함이 없다. 이것은 참으로 터럭 끝을 태산과 비기고 1척의 메추라기를 대붕에 비기는 것보다 심하다. 햇수를 같이하여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장생(莊生)이 내가 옳고 그름을 없앴으나 저것과 이것을 없애지 못하였다 하였으니, 이 어찌 그렇겠는가?
이러한 까닭으로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 햇수가 적은 것은 햇수가 긴 것에 미치지 못한다. 오로지 팽조(彭祖)의 일이 기특하게 들리더라도 이는 보통 사람으로 다다를 바가 아니다. 하물며 3세(世)의 이치는 어김이 없고 2제(諦)의 문호는 징험할 수 있으니, 이로써 성인이 인과(因果)를 세웠기에 범부가 성인이 되는 기약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도(道)를 자연(自然)이라 칭하여 배우는 이가 도를 이룰 희망이 없어졌다. 미묘함에 따라 드러내니 이로써 선극(繕剋)을 빙자하여 바야흐로 다듬게 되었다. 인(因)을 타고 과(果)로 나아가서 훈수(熏修)에 의지하여 바야흐로 보게 된다. 그가 이미 알면서도 일부러 물어보는 것이니, 나 또한 간단하게 적어서 대답하기로 하겠다.
자세히 살펴보면 한 말씀으로 널리 가피를 내리니, 약상(弱喪)이 이로 말미암아 같이 돌아가게 된다. 네 가지 지혜가 넓어지고 진여(眞如)가 이로써 스스로 드러난다. 스스로 드러난다는 것은 미묘하기도 하고 뚜렷하기도 하고 같이 돌아가게 된다는 것은 누가 오고 누가 떠나가는 것인가?
대체로 업에 따라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을 안다면, 두 마리 새가 다리가 길고 짧음을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습한 것에 기인하여 생을 이루는 두 마리 벌레가 비화(飛化)를 택하지 않는 것은 기다리거나 기다리지 않는 것에 말미암는 것이 아니다. 기다림에 나아가 기다리지 않는 것을 밝힌다.
청컨대, 시험삼아 논해 보자. 예전에 감택(闞澤)81)이 말하기를, ‘공자와 노자는 하늘을 본받으나 여러 하늘은 도리어 부처님을 본받는다. 홍범(洪範)과 구주(九疇)는 하늘을 이어 그 쓰임새를 만들었으나, 상방(上方)의 10선(善)은 부처님의 자비로운 풍화를 받들었다’고 하였다. 만약 공자와 노자를 성존(聖尊)에 필적한다고 한다면
자공(子貢)은 중니(仲尼)보다도 어질다고 하는 것이니, 이는 절름발이 자라가 천리마를 능멸하는 것이고, 발해(渤澥)를 보고자 하면서 다시 시냇물의 흐름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그 눈을 가리고 터럭 끝만을 보려고 들며, 발걸음을 멈추고 영로(郢路)를 구하려 드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응할 바가 아니다.
왕도(王導)82)와 주의(周顗)83)는 재보(宰輔)의 관개(冠蓋)이고, 왕몽(王濛)84)과 사상(謝尙)은 인륜(人倫)의 우의(羽儀)이다. 그 다음으로 치초(郗超)와 왕밀(王謐) 및 유구(劉璆)와 사객(謝客) 등 강좌(江左)의 뛰어난 선비 70여 명은 모두가 그 학문이 구류(九流)를 종합하고 재주가 천고(千古)에 빛났는데, 그들 모두가 ‘성령(性靈)의 참다운 요체로 몸을 가꾸면서 세속을 구제할 수 있는 것은 석씨의 가르침을 넘어서는 것이 없다’고 말하였다. 아울러 송문제(宋文帝)가 하상지(何尙之)와 왕현보(王賢保) 등과 함께 이와 같은 말을 했으니, ‘우내(宇內)에서 이 같은 요술(要述)을 따른다면, 내가 마땅히 앉아서 태평을 누리리라’고 하였다.
하상지가 또 ‘10선(善)이 번창하면 하늘과 사람이 부흥되고, 5계(戒)가 행해지면 귀신과 축생이 끊어진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실로 세상을 구제하는 그윽한 모범인데 어찌 잠깐 사이라도 이를 탓할 수 있는가? 중사(中舍)가 학문이 넉넉하고 재주가 높으며 문장이 아름답고 이치가 간절하여 진(秦)나라는 한 글자를 내걸고 촉땅에서 천금을 걸었는데, 법림 내가 다만 칼을 갈아 연마하더라도 어떻게 이같이 기특하고 수려함을 맞설 수 있겠는가?
구멍 속의 미욱한 소견을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고 경솔하고 비루한 촌사람의 말만 늘어놓아 이것에 상대하려 드니, 이는 삼베 줄로 인수를 대신하려고 드는 짓이다.”
이사인(李舍人)이 범림 스님의 거듭된 해석을 얻고, 환하게 마음으로 깨우쳐 거듭된 의혹이 잠깐 사이에 없어졌다. 이리하여 이 같은 논을 널리 보고 듣게 하였는데, 이로써 두 가지 글이 짝지어 드러났으니 각자 그 뜻을 함께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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