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광홍명집(廣弘明集) 16권
당 석도선 지음
이한정 번역
3. 불덕편(佛德篇) ②
10) 사술불법사서계(謝述佛法事書啓) 14수
(1) 봉아육왕사전계(奉阿育王寺錢啓:아육왕사의 조성에 금전을 받드는 계) 양(梁) 간문제(簡文帝)
신(臣)이 삼가 아룁니다.
신이 듣자오니, 여덟 개 나라가 그 섬기는 바를 같이하여 일마다 법본(法本)을 높이고, 7구(區)를 모두 쌓아가며 이치마다 용천(涌泉)110)을 갖춘다 합니다. 그러므로 상아로 만든 평상과 흰 양산[白繖]111)도 아무 때나 이유 없이 보는 것이 아니고, 금으로 만든 병과 보배 상자112)도 연(緣)이 있어야 이곳에 나온다 합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폐하께서 이 나라에 하늘의 거울을 걸어 놓고, 우내(宇內)를 큰 권세로 움직입니다. 3유(有)가 모두 꿈결 같은지라 지혜의 해가 임하게 되고, 백 가지 약이 함께 시들게 되니 자비의 비로써 윤택하게 합니다. 움직이고 고요함에 내가 없어서, 가고 머무는 것이 만물에 달렸으니, 이것에 대해 이름을 불일 수도 없는데, 신이 어떻게 이것을 달리 말할 수 있겠습니까?
조광(照光)과 적서(赤書)를 이전 역사의 상서로움으로 삼는 것을 비천하게 여기고, 이지(珥芝)와 경옥(景玉)을 지나간 대(代)의 진귀함으로 삼는 것을 비웃었습니다. 참으로 만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여래의 진형사리(眞形舍利)입니다. 빛을 보배 병에 비추고, 광채를 덕의 물결에 띄우니 마치 구쇄(鉤鎖)를 보는 것 같고, 용주(龍珠)를 보는 것과 유사합니다. 참으로 성덕(聖德)의 위신이 아니라면 이같이 보기 드문 일을 만나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사람이 은혜에 감사하며 멀고 가까운 곳에서 모두 마음으로 귀의합니다.
엎드려 듣자오니 아육왕사(阿育王寺)를 장엄케 하는데, 거만 금을 시주하고, 단월의 십장(十藏)을 넉넉하게 하며, 보배를 하부(河府)에 늘어놓고, 샘은 수형(水衡)에서 나오며 비구가 흙을 져다가 큰 건물을 지으며, 나한이 끈을 끌어다가 매우 높은 탑을 올린다니, 참으로 기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금전 백만 냥을 받듭니다. 성심은 참으로 꽃을 뿌려 부처를 공양하는 것과 같아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미미하기가 한 방울의 물과 같으며 누추하기가 인공(隣空)113)보다도 심합니다. 가볍게 세속의 일을 전해 듣고 엎드려 아룁니다. 황송하고 부끄러워 땀이 납니다[悚汗].
삼가 아룁니다.
(2) 사칙고행상병불적등계(謝勅苦行像幷佛跡等啓:부처님 고행상과 불적을 조성하라는 황제의 조칙에 대한 감사 장계)
신이 삼가 아룁니다.
사인(舍因) 고섭(顧疌)이 삼가 칙지를 선포하여, 금동고행불(金銅苦行佛)과 불적(佛跡)을 조성하는데 이에 공양구(供養具) 등을 하사하는 것으로 공양하셨습니다.
삼가 6년간 도의 나무를 길러 4마(摩)를 뛰어넘었으니, 천 겹의 족륜(足輪)으로 공덕이 만선(萬善)에 원만합니다. 그러므로 듣고 볼 수 있어야 깨칠 수 있고, 만나는 이마다 진구(塵垢)를 내치게 됩니다. 천청(天聽)의 은혜로움이 융성하여 곡진하게 가피(加被)케 하시니, 삼가 가내를 잘 정돈하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 자비로운 빛을 우러러보게 됩니다.
엎드려 빛의 드리움을 기다림에, 천 가지 말과 네 가지 변재(辯才)로써도 그 마음을 풀지 못하는데, 터럭 끝보다 가벼운 짧은 서간으로, 어찌 이를 다할 수 있겠습니까? 내려주신 은혜를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아뢰오니 잘 살펴봐 주십시오. 삼가 올립니다.
(3) 사칙참영불계(謝勅參迎佛啓:부처님을 맞이하여 봉안하라는 황제의 조칙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장계)
신이 삼가 아룁니다.
주서(主書) 주앙(周昂)이 칙지를 받들어 선포하여 몸소 은사(恩賜)를 내리셨습니다. 이에 신이 바로 건원사(建元寺)로 가서 법신(法身)을 받들었습니다. 금산(金山)에 이르자 왕의 사자[王人]가 그 수고로움을 위무하며 영예로운 은혜를 누차 받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말씀드리고자 하여도 뭐라 드릴 말씀이 없으니, 마음속에 있는 것을 다하지 못합니다.
삼가 아뢰오니 잘 살펴봐 주십시오. 삼가 올립니다.
(4) 답칙청종사리입전예배계(答勅聽從舍利入殿禮拜啓:사리를 대전으로 모시어 예배하라는 황제의 조칙에 대한 회답 장계)
신이 삼가 아룁니다.
사인 왕경요(王景曜)가 칙지를 받들어 선포하여 곡진하게 논의를 세우고 신이 사리를 대전(大殿)으로 받들어 모시고 예배하는 일을 심의하였습니다. 삼가 이를 받들어 밝게 가을 색처럼 비추어 그 서상(瑞相)을 미리 표하였으니, 신이 몸과 마음에 걱정이 없어졌습니다. 보배 상자를 밝게 지키면서, 삼가 허리 굽혀 공손하게 다다르니 단지 날개도 없고 신통을 빌리지도 못할 뿐이오나, 몸이 정토에 올라 드높은 창합(閶闔)114)을 거닐 듯하고, 발은 연꽃을 밟는 듯하니, 참으로 이에 비길 바가 없습니다.
보배 계단을 밟고 오르더라도, 이에 비하면 중하지 않습니다. 인도하시는 각별한 은혜에 힘입어 실다움으로 돌이켜짐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같이 속진(俗塵)에 얽힌 몸을 돌아보며 기쁘게 내려주신 은혜를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올립니다.
(5) 사칙뢰동공조선각사탑노반계(謝勅賚銅供造善覺寺塔露盤啓:황제가 선각사 탑의 노반 공사에 구리를 하사하신 것에 대한 감사 장계)
신이 삼가 아룁니다.
주서(主書) 진승총(陳僧聰)이 칙지를 받들어 선포하되, 구리 1만 3천 근을 하사하여 선각사(先覺寺) 불탑의 노반(露盤)을 조성하는 데 공급하셨으니, 이야말로 추양(杻陽)의 진보(珍寶)115)라 칭할 만하고 참으로 곤오(昆五)의 보배116)라 말할 만합니다. 건조함과 습기에도 변함이 없어 구시(九市)로 그 기이함을 보이고, 추위와 더위에 적당하여 육률(六律)이 그 쓰임새를 이룹니다. 하물며 신룡(神龍)이 아이를 업었으니 그 빛이 묘한 탑에 이르고, 금까마귀가 끈을 물어와 이같이 드높은 표상(表象)을 장식합니다.
함곡(函谷)조차도 그 노래 부름을 부끄러워하고,117) 임치(臨淄)조차도 상서로운 서응(瑞應)을 겸연쩍어합니다.118) 양수(陽燧)가 빛을 머금은 것은 도리어 일륜(日輪)에 비길 만하며 감로가 노반에 서리는 것을 천주(天酒)라 할 만합니다. 신이 사림(辭林)조차 원래 보잘것없는 데다, 변재(辯才) 또한 부끄럽기만 합니다. 헛되이 크신 은혜만 짊어지고도 이를 끝내 제대로 말씀드리지 못하니, 내려주신 은혜를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아뢰오니 잘 살펴봐 주십시오. 삼가 올립니다.
(6) 사칙사입광엄전예배계(謝勅使入光嚴殿禮拜啓:광엄전에 참배하라는 황제의 조칙에 대한 감사 장계)
신이 삼가 아룁니다.
사인(舍人) 왕경요(王景曜)가 칙지를 받들어 선포하여, 곡진히 수고로움을 위문하고, 아울러 광엄전(光嚴殿)에 들어가 법신에 예배하라 명하셨습니다.
삼가 받듭니다. 신이 조악함에도 은혜를 받들어 밝음을 만들며 개통됨을 지키어 공손하게 다가가되, 드디어 힘들게 정토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람이 쌓이고 물이 풍부해지는 것으로도 비유할 수 없습니다. 마음은 뛸 듯하나 참으로 이를 말씀드리려 해도, 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으니, 도리어 기쁜 마음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삼가 아뢰오니 잘 살펴봐 주십시오. 삼가 올립니다.
(7) 사칙사감선각사기찰계(謝勅使監善覺寺起刹啓:선각사의 불탑 조성을 감독하라는 황제의 조칙에 대한 감사 장계)
신이 삼가 아룁니다.
엎드려 칙지를 받자오니, 사인(舍人) 왕담명(王曇明)ㆍ재관장군(材官將軍) 심휘(沈徽)ㆍ어장(御仗) 오경(吳景) 등에게
선각사(善覺寺)에다 찰간(刹竿)을 이룩하는 일을 감독하라고 하셨습니다.
성은(聖恩)을 받드니 곡진하게 신력(神力)을 내려, 이와 같은 일을 집행하라고 명하시니, 이를 수리하여 길이 드러나게 하였습니다. 보탑을 구름에 닿도록 이룩하여 희원(喜園)을 기다리지 않았고, 수정(水精)을 특별히 이룩하였으니 용해(龍海)에 손색이 없습니다. 큰 거북이 진흙을 짊어지니 많다고 하지 못하고, 백로[鶖鷺]가 줄을 잡아당기니 그 취하는 바가 모자라기만 합니다.
삼가 자비로운 은혜를 우러르며 기쁨을 이기지 못하나, 숙세의 원력을 굽어보면 사사로움만 늘었기에 눈물만 나오니, 참으로 내려주신 은혜를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아뢰오니 잘 살펴봐 주십시오. 삼가 올립니다.
(8) 사어행선각사간찰계(謝御幸善覺寺看刹啓:황제가 친히 행차하여 선각사의 사찰을 둘러본 일에 대한 감사 장계)와 답
신이 삼가 아룁니다.
오늘 선각사로 행차하시니, 그 위신의 가피력으로 금표(金表)가 건립되었습니다. 기둥이 우뚝하게 치솟고 고루(庫樓)가 연이어 이어졌으니, 그 웅장함이 정토(淨土)와 같습니다. 이와 같이 불사(佛事)를 짓는 것도 하늘과 인간을 영원토록 이익되게 하는 것입니다. 신이 머리에 받드는 정성됨이 평소의 백 배나 됩니다. 내려주신 은혜를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아뢰오니 잘 살펴봐 주십시오. 삼가 올립니다.
- 칙답(勅答) 양 무제
네 자비의 보찰(寶刹)을 이룩한다고 하니, 제불(諸佛)의 위신력으로 많은 공을 들이지 않아도 바로 세워질 것이다. 유계(幽界)와 현계(顯界)도 기뻐하며 우러를 것이고, 나 또한 이것을 따라 기뻐할 것이다. 너와 함께 우러러 예배하지 못하는 것이 한이 될 뿐이다.
이에 칙(勅)한다.
(9) 사칙뢰전병백단향충법회계(謝勅賚錢幷白檀香充法會啓:법회에 쓰도록 금전과 백단향을 하사한다는 황제의 조칙에 대한 감사 장계)
신이 삼가 아룁니다.
조칙을 전하시어 칙지를 받들어 선포하였으니, 신이 증명하는 법회에 20만 냥을 하사하시고, 백단훈(白檀薰)과 살잔향(薩棧香) 각각 10근씩 하사하시며, 황지(黃紙)의 조칙으로 미리 천부(泉府)119)를 열어 놓으셨기에, 청운(靑雲)의 좋은 기운이 차례로 계궁(桂宮)120)으로 운집하였습니다. 물품들은 문채나는 거북의 등껍질[文龜]보다 귀중하고 향기가 고운 풀보다 더합니다. 만금을 흩뜨려 처마 아래에서 돈을 퍼뜨려도 단지 군리(軍吏)들에게 미치며 곡식을 쌓아둔 넉넉한 집안들은 겨우 그 친족들만을 돌볼 뿐입니다. 차라리 이 같은 양전(良田)에 희사(喜舍)하여 5개(蓋)121)를 열어내고, 이 같은 법도(法度)에 들어가서
길이 4류(流)122)를 벗어나느니만 못합니다. 그릇된 말로 조상을 섬긴다고 핑계를 삼으니, 참으로 그 같은 일이 수치스러워 적기도 힘듭니다.
말재주로 모면하고자 해도, 임금과 공경대부가 그 말 같지 않음을 알기에, 참으로 내려주신 은혜를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아뢰오니 잘 살펴봐 주십시오. 삼가 올립니다.
(10) 사칙뢰백찰주병동만근계(謝勅賚栢刹柱幷銅萬斤啓:잣나무 찰간의 기둥과 구리 1만 근을 하사한다는 황제의 조칙에 대한 감사 장계)
신이 삼가 아룁니다.
조칙을 전하여 여문강(呂文强)이 칙지를 받들어 선포하였습니다. 신에게 잣나무 찰간 기둥 1개와 구리 1만 근을 하사하시어 천중천사(天中天寺)를 이룩하라 하셨습니다.
구목(九牧)123)이 조공 올린 금과 천 심(尋)이나 자란 나무가 범륜(梵輪)을 영원히 빛나게 하니, 이로써 보탑이 바야흐로 이룩되게 되었습니다. 이에 하(夏)나라도 그 신령한 가마솥을 부끄러워하고,124) 진(晉)나라도 상풍(相風)을 부끄러워 하니, 저와 같은 땅을 복되게 하고자 제방을 이루는 공이 실로 바깥에 있지 않습니다.
신이 용렬하나 이처럼 훌륭한 선법(善法)을 이어서 즐겁게 마음 가득히 받아들이니, 은광(恩光)이 안색에 드러납니다. 내려주신 은혜에 대해 감사드릴 말이 없습니다. 머리에 받들어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아뢰오니 잘 살펴봐 주십시오. 삼가 올립니다.
(11) 천불원문(千佛願文)
듣자오니, 구토(九土)는 그 구역을 나누었고 사민(四民)은 그 풍속을 달리 합니다. 미혹의 파도에 물들기는 쉬우나, 지혜의 업을 기틀 삼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법신의 고요한 거울은 비춤이 있으면 이에 감응하여, 욕심의 바다에서 무명(無明)을 씻어내고 보배로운 나룻배로 창생(蒼生)을 건네주십니다. 혹 가벼운 자비로 사(捨)125)를 인도하고 엷은 미소로 슬픔을 이끄십니다. 부드럽게 입으로 선포하고 그 빛을 돌려 정수리로 거두니, 녹야원(鹿野園)의 나무가 빛을 발하고 금하(金河)에서 그 빛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므로 상법(像法)의 중생은 그 형태라도 모시기를 바라니, 비록 천성(千聖)의 자취가 다르더라도 한 갈래 지혜는 늘 같습니다.
제자 아무개[某甲]가 미혹의 파도에 오래 잠기고 고해의 물거품에 늘 떠돌았기에, 생각의 나무를 심지 못하고 아직도 마음의 등불을 켜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하나의 생각을 일으켜 천불(千佛)을 정성스럽게 이룩합니다. 비록 다시 무상(無上)과 무위(無爲)의 지극한 모양으로도 이를 표현하기 어려운데, 공(空)도 아니고 유(有)도 아닌 묘한 지혜를 그 누가 살필 수 있겠습니까? 검은 머리카락은 햇빛 같고 연꽃 같은 눈동자는 달과 같으시니, 참된 정성을 늘 드러내며, 영원히 의지할 수 있도록 마음속으로 기도합니다.
(12) 위인조장팔협저금박상소(爲人造丈八夾紵金薄像疏:사람들을 위해 협저금박의 장육불상을 조성하는 일의 협조를 청원하는 상소)
비구 아무개가 공경스럽게 아룁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문득 지혜의 태양이 그림자를 감추고 자비의 수레가 감응을 그치니, 업은 고뇌에 쫓겨 더욱 휘날리고 애욕은 정(情)에 따라 무성해졌습니다. 다만 옷에 보배를 달고 이름난 진귀한 보석을 끌어안고도 깨우치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고 엽금(葉金)126)과 헛된 말에 의혹되어 울음을 그치는 것을 탄식합니다. 스스로 이와 같이 훌륭한 업을 기려서 저 묘한 인연을 심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이 마음의 집[心堂]을 없애서 몸뚱이의 동굴[身窟]을 옮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수정(水精)의 용탑(龍塔)에 수염을 남겨 영원히 탄식하고, 명경(明鏡)의 석감(石龕)에 홀로 그림자를 남겨 배회하는 것입니다.
아무개 제가 오랫동안 소원을 발하여 6도(道)와 4생(生)을 위하여 협저 장팔불상 1구를 조성하고자 하였으나, 해와 달만 헛되이 흐르고 인연조차 변하기 쉬운지라, 잠시 존재하는 몸이 홀연히 화수(畵水)를 따르고 무(無)로 돌이키는 과보는 빠르기가 번갯불 같아 항상 두렵습니다. 이제 곧 성심을 다하여 건립하여 이 본래의 서원을 이루어 내겠습니다. 명월(明月)을 모아 그 용안(容顔)을 뵙고 금산(金山)으로 그 자취를 드러내게 하여, 형체를 보면 선을 일으키고 이름을 들으면 악을 버려서, 6근(根)의 고통을 뽑아내고 5소(燒)127)로 고통 받는 일을 없애고자 합니다.
단지 네 가지 보배[四寶]128)가 자주 텅 비고 일곱 가지 재물[七財]129)이 늘 부족하므로, 쌍연(雙蓮)을 우러르며 홀로 한탄하였고, 만자(萬字)를 쳐다본들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만약 5가(家)130)를 약하게나마 벗어나고 사사(四事)를 미약하게나마 버리며 이러한 명자(冥慈)를 맺고 함께 인과를 이룬다면 바로 소첩(素氎)의 공131)이 비단 옛날에만 있었던 게 아니며 꽃을 뿌리며 부처님을 기리는 과보가 다가오는 연(緣)을 징험하게 될 것입니다. 좋은 말을 하여 꾸밈이 없으나 말이 너무 장황해졌습니다.
삼가 아룁니다.
(13) 여승정교(與僧正敎:승정에게 보내는 교서)
본주(本州)의 가람(伽藍)과 지제(支提:탑)의 기틀은 비록 장엄하게 이룩한 것이 많고 공양구(供養具)의 마련이 성대하여 그 바깥 자취만을 보더라도 반드시 화려함을 다했다 하겠으나, 마음의 땅[意地]은 실제로 넓히지를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금을 녹이고 나무를 새기며 칠을 먹이고 기와를 굽는 것은, 대체로 응신(應身)을 우러러 전하고 멀리 영각(靈覺)을 새기려는 까닭입니다.
이 모두가 용병(龍甁)132)의 새로운 새벽을 부러워하고, 학림(鵠林)133)의 남은 그리움을 잊지 않고자 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제사를 지내실 때에는 선조가 계신 듯이 하였습니다.134) 신(神)을 공경하는 도가 이미 지극하여 성인과의 거리는 멀지만 성인을 생각하는 이치는 반드시 깊게 되었습니다.
이 땅의 여러 사찰들은 응생(應生)의 날에는 잠시 형상을 열거하는 것에 그치고 이 이후로는 상자에 봉해 둡니다. 나뭇잎 옷[葉服]135)은 몸을 떠나고 심염(尋炎)136)은 정수리를 떠나고 혹은 10존(尊)과 5성(聖)을 하나의 방안에 함께 모셔두거나, 혹 대사와 여래를 모두 하나의 상자에 보관해 두기도 합니다. 참으로 마음과 일이 어긋나며 그 겉모양은 옳다고 하더라도 마음은 그르다고 말할 만합니다. 불상을 늘리려는 마음은 많으나 도업(道業)에 정진하려는 마음은 적습니다.
예전에 탑 안의 붉은 상자는 다만 사리를 전하였고, 상두(象頭)의 백산(白繖)137)도 온 몸을 덮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상(聖像)을 그려서 추모하여 펼쳐놓는 것도 오히려 관료와 백성들이 그 존경을 알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금을 녹여서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은 월주(越主)138)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려 함입니다. 용아(龍阿)139)같은 명검을 칼집에서 빼는 것은 호시(虎兕)에 견주자면 그들이 우리에서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하물며 가장 크고 원만한 자비와 무상선취(無上善聚)로 돌아감에 있어서이겠습니까? 그 이름을 듣고 번뇌를 씻으며 그 모양을 보고 도에 들어가서 이 같은 조향(雕香)을 덮고 목밀(木櫁)을 간직하며 옥호(玉毫)를 숨겨두고 금장(金掌)을 봉안할 수 있습니다.
이미 나열(羅閱)이 오랫동안 사천(四天)에 들어간 것과도 다르고 또 기원(祈洹)에서 문을 3개월 동안 닫은 것과도 다릅니다.140) 보전(寶殿)이 텅 빈 채로 임하고 경계(瓊階)가 텅 빈 채로 남아 있어 장막을 둘러쳐 개방하지 않으니, 이 어찌 동중서(董仲舒)의 곡학(曲學)이 아니겠습니까? 붉은 담으로 길게 가려 놓으니 빈경(邠卿)이 원수를 피하려는 것141)과 같습니다.
또한 넓은 대궐에 구름이 드리우고 높은 기와에 새가 앉으니, 만약 옥좌(玉座)를 펼치고 금세공으로 장식한다고 해도 해를 어둡게 하거나 달을 이지러지게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유리와 같은 꽉 막힌 창문으로는 가벼운 바람도 새어들기 어렵고 용수초(龍鬚草)로 짠 촘촘한 그물은 나는 새도 통과하기 어렵습니다. 경건한 이치를 반드시 높이고, 발자취를 잇는 마음을 갈수록 무겁게 해야 합니다. 힘써서 영원히 이대로 시행해야 합니다.
(14) 여광신후서(與廣信侯書:광신후에게 보내는 편지)
소강(蕭綱)142) 제가 말씀드립니다.
소식이 뜸하지 않도록 매번 연락드립니다. 바람이 거세고 추위가 매서우니, 부디 몸조심하도록 하십시오.
삼가 정명(淨名:유마거사)의 법석을 잇고, 친히 금구(金口)를 계승하니, 말은 녹야원에서 귀해지고 이치는 영취산에서 적합해집니다. 비밀스러운 비장(秘藏)이 이로써 융성하였고, 장엄한 도량이 이로써 널리 퍼뜨려지니, 어찌 마음의 등잔이 밤에만 비추고 생각의 꽃이 아침에만 피어나겠습니까?
이치를 생각하여 밝음을 넓혀야 근본적으로 내교(內敎)를 키우게 됩니다. 지금 10선(善)의 수레를 타고서 8정(正)의 길을 열어내고, 반야[波若]143)의 물을 흘려 의식의 더러움을 씻어냅니다. 이같이 봄철에 싹이 돋아나야 바야흐로 가을에 열매를 맺게 됩니다.
제가 매번 화림(華林)144)의 훌륭한 모임을 생각하며 말석이라도 탐을 냅니다. 아침이 지나고 밤이 되면, 묘한 말씀에 목욕합니다. 자리가 파하여짐에 이르러서는 해가 지면 물러나 쉬면서 옆에서 반성합니다. 손을 맞잡고 나아가 담소하면서, 9층의 드높음을 우러러보고 백 척의 깊이를 굽어보면, 금지(金池)에서는 달이 움직이고 옥수(玉樹)는 바람을 머금으니, 이때가 되어야 법락(法樂)이라 칭할 수 있습니다.
지금 두루마리에 적힌 부질(剖帙)의 그 한 모퉁이만을 전하더라도, 지혜의 단비가 흘러넘침을 듣고서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다만 현하(懸河)145)만을 우러르나 이를 본받을 길이 없습니다. 공(空)하여 가진 바가 없으니, 정령(情靈)을 꾸미지 않고, 어리석음에 연하여 애욕만 남아서, 스스로 건져내기 어려움을 한탄합니다. 수레를 내린 이래로 뜻 깊은 말씀은 더욱 적어졌고, 옛 기억마저 이미 다했으나, 새로운 깨우침은 미처 입에도 대지 못하였습니다. 이미 입으로 외우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다시 마음으로 변론함을 잘못되었다고 하여 병을 쏟는 것[瀉甁]146)을 사양하고 마침내 모포에 물들이는 것[染㲲]을 부끄러워합니다. 이리하여 자비로운 구름을 이미 포용하고 지혜의 바다 또한 깊어졌으니 말단적인 그림자와 남겨진 파도는 때로 씻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단지 흩어지고 어긋나는 것이 갈수록 쌓이고 어지럽게 일어나는 말이 눈앞에 가득합니다. 부디 삼가 거두어 주십시오. 말로는 제 마음을 다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아룁니다.
(15) 여혜염법사서(與慧琰法師書:혜염 법사에게 보내는 편지)
오예(五翳)가 허공을 가리니 빛나는 광채가 드러나다가 마디마디 끊어집니다. 백화(百華)의 이채로운 빛깔이 수놓은 듯 봄이 다가왔는데, 몸은 어떠신지요? 늘 편안한지 궁금합니다. 청허함을 마주 익히니
이미 풍운(風雲)이 드러나고, 마음을 거두어 도리를 섭렵하니 정(定)과 혜(慧)의 즐거움이 많으시리라 믿습니다.
제자가 세간 일에 어지러운 데다 수고로움이 특히 심한지라, 피곤한 눈으로 북쪽 산봉우리를 보노라니, 성현을 흠모하는 마음만 쌓여갑니다. 다시 만나 뵐 때를 기약하느라 몸만 마르고 인연을 일마다 기다리느라 기갈만 듭니다. 스님의 모습을 그리느라 하루가 여삼추(如三秋) 같은데, 이롭게 보살펴 주신 것을 생각해 보면 이치가 합당해서 어그러지는 것이 없습니다. 손으로 써서 이렇게 편지만 보낼 뿐 마음을 담지는 못하였습니다.
강이 합장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드립니다[和南].
아침나절 드리운 추위가 매서우나 정법을 따른 지 오래되니 도리어 기력을 얻게 됩니다. 비록 타방(他方)의 법계(法界)에서 화연(化緣)이 다했더라도 기원사(祇洹寺) 안에는 거룩한 말씀 여전합니다. 은혜를 그리는 마음이야 때 없이 쌓이는데 큰 스승을 빌미 삼아 자주 방촌(方寸)을 그려보며 웃음 짓는 스님이 나루터에 이르게 된 것을 알지 못할 뿐입니다. 용상(龍象)147)이 다 함께 자리하고 응공(應供)148)이 다 같이 모여 지혜의 횃불로 마음을 밝히고 감로가 정수리에 들어가며 좋은 법문(法文)을 들으면 기쁨이 특별하니 가슴 속에 새기고 맛보아 무극(無極)으로 돌이킵니다.
예전에 어린 시절 제지사(制旨寺)에서 불경을 배웠는데 배운 것이 짧아서 얼굴을 맞대고도 깊지가 못하였습니다. 선나(禪那)149)가 다르더라도 일은 화수(華水)150)와 같습니다. 지금은 서하(西下)에 기대어 본마음을 쌓습니다. 이치를 추구하고 의문점을 묻는 것은 덕을 밝히는 데에 달려 있으니 반야(般若)는 어려움을 남기고 현재의 병이 낫지 않았는데 학문의 목표를 묻는 것[問津]에도 근거가 없으니 탄식을 어찌 그칠 수 있겠는가 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삼가 마차를 타고 가람에 찾아가기를 바랍니다. 이때에 한 번 만나 뵐 수 있다면 청두(靑豆)의 방에서 변론하고 의혹은 적화(赤華)의 집으로 보내며 지난날의 오래전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오늘의 마음을 풀어내고 싶습니다. 이 일과 이 기대는 반드시 어그러뜨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강이 합장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드립니다.
(16) 답상동왕서(答湘東王書:상동왕에게 답하는 편지)
늦은 봄 아름다운 경치에 풍운조차 수려하며, 난초의 잎사귀를 휘어잡아 기천(沂川)에서 목욕할 만합니다.
동생이 소남(召南)에서 송사(訟事)가 적을 때에는 때때로 감당(甘棠)의 그늘에서 글을 지으며, 기주(冀州)에서 정무(政務)를 돌볼 때에는 잠시 건첨(褰襜)의 업무를 그치고 넓고 크게 대언부(大言賦)를 올리며 고리처럼 이어지는 변론을 편안하게 읊어 노닐면서 완상하는 아름다움을 다하니 지극히 즐겁지 않습니까?
제가 초봄에 병이 심하여 몹시 쇠약해졌습니다. 비록 서산(西山)의 백록(白鹿)151)이라도 낫게 하지 못하고, 자예(子預)와 적환(赤丸)이라도 움직이게 하지 못할 터입니다. 육안(六安)152)을 베고 높이 누워서 매번 편작(扁鵲)의 문진만 생각하고, 조용히 사옥(四屋)에 있어서는 수도(修都)의 향기가 끊어지는 것을 생각하니 어떻게 문수(文殊)가 오기를 바라겠습니까? 홀로 오(吳)나라 유세가의 논변을 생각할 뿐입니다.
황상(皇上)의 자비가 솔토(率土)에 미치고 감로가 두루 펼쳐집니다. 보방(寶坊)에서 은고(銀鼓)를 울리고 향지(香地)에서 금륜(金輪)을 굴리니, 법의 우레 소리가 춘몽(春夢)을 깨우고 지혜의 태양이 아침을 밝힙니다. 진도(塵道)와 세속(世俗)이 고루 모여서 원근에서 모두 운집하니, 법을 듣는 대중이 하루에도 2, 3만이나 됩니다. 홀로 병에 걸려 도를 듣는 데 지장이 있으니, 어찌 다만 양복(楊濮)153)에서 관외(關外)만 손상될 뿐이겠습니까? 주남(周南)에서 유체(留滯)의 한(恨)을 일으킵니다.154)
13일이 지나 처음으로 법연(法筵)을 가졌습니다. 이 때문에 오래 칩거하다가 최근에 돌아와서 아직까지도 붓을 들지 못하였습니다. 조상들을 공경하고 앞으로 매진하고자 하나, 매번 생각만 간절할 뿐입니다. 강수(江水)가 멀기만 한지라, 자나깨나 그리워할 뿐입니다. 매번 동생의 편지를 받으면 병이 가벼워지며 병이 낫는 듯합니다. 조만간 또 편지 쓰겠습니다. 이로써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합니다.
11) 사찰불탑제명송(寺刹佛塔諸銘頌)
(1) 지원사찰하석기(枳園寺刹下石記) 2수 심약(沈約)
부처님의 가르침이 동쪽으로 흘렀으나, 아직 빛나지 못했다. 바야흐로 낙경(洛京)에서 시작되어 강좌(江左)에서 무성해졌으니, 진(晋)나라의 옛 거기장군(車騎將軍) 낭야(琅耶) 왕소(王劭)가 그 그윽함을 홀로 깨쳐서 믿음의 이해가 깊고 미묘하였다. 조부 문헌공(文獻公)을 이어받아 청묘(淸廟)의
북쪽에 지원정사(枳園精舍)를 이룩하였는데, 처음에 향기 나는 지수(枳樹)로 울타리를 삼았으므로 그 이름이 붙여졌다. 비록 방사(房舍)와 전각(殿閣)이 엄정히 다스려졌더라도 아름다운 사찰은 미처 세워지지 않았다.
왕소의 현손(玄孫) 상서(尙書) 복야 남서주(南徐州)의 태수(太守) 왕환이 법상(法相)에 깊이 통달하고 종지를 이해하며 정성껏 힘써 수행하여 밖으로 들어나고 어짊으로 거두어 안으로 넓어졌다. 식사도 정오를 넘기지 않는 것이 이미 11년째이니 비록 조정의 수장으로 힘쓸지라도 일은 내포(柰圃)에 가까이하였다. 하루는 글을 지어 상주(湘州)에서 대장의 깃발을 꽂아 굴복시켰다. 그 지위가 해마다 올라 녹봉이 더하고 세미(歲米)가 후해졌다.
돌아보면, 은혜가 융성해서 주상도 돌아보았으니 마침내 총애를 입어 황제의 마음에 들었다. 동방(東方)에 근무하며 밖의 울타리로서 힘써 마음을 기울여 다만 능력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하지 않는 것이 없음을 알고자 하였다. 아래로는 저 백성들에게 부드러이 가피내리고 위로는 성택(聖澤)을 펼쳤다. 그러나 그 힘은 약한데 길은 멀기만 하니, 마침내 효험이 적은 것을 창피하게 여겼다. 그 뜻이 지금의 생(生)에 그치고 보(報)가 미래의 과(果)에 어긋나서, 크게 내려주신 것을 명진(冥津)에서 갚고 한결같은 성실함을 하겁(遐劫)에서 펼치려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수레를 몰아 형고(衡皐)155)에 다다랐고 비녀를 뽑아 사직하고 파저(派渚)156)하였다. 옛 절에 5층탑을 빛나게 세우기로 서약하고 번(蕃)의 녹봉을 덜어서 그 십분의 일을 보냈다. 대체로 거둔 것이 36만 냥이었다. 제(齊)나라 영명(永明) 6년(488) 6월 3일은 목운(木運)이 장차 열려서 별자리를 호령하고 상제(上帝)가 천상을 디디는 좋은 날이었다. 푸른 구름 사이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하고 그윽한 땅에다 문 두 짝을 세웠다.
우러러 궁성이 하늘의 보호를 받아 복(福)이 돌아갈 곳으로 삼게 되기를 바란다. 8신(神)이 궁실을 놀라 깨우고 만기(萬祇)가 그 몸을 도와서 보배로운 복이 아득히 융성하고 수미산에 견줄 만큼 견고하니, 신령스럽게 영원함을 헤아리고 항상 머물 것을 고르게 따른다.
여러 성인은 상서로움을 이끌고 천화(天和)를 소극(少極)으로 끌어당기며 번왕(藩王)이 크게 융성하여 뛰어난 종족을 무성하게 전파하여, 군후(群后)가 극기(克氣)와 겸양(謙讓)의 기풍에 휘감기니, 서민에게는 북돋을 수 있는 덕이 드리우고 함생(含生)마다 즐거움을 누리며 물건마다 성품을 저버리지 않게 하소서. 해마다 풍년을 이루고 논밭에 곡식이 남게 하소서.
변두리의 오랑캐가 굴복하여 변방의 성곽마다 빗장을 풀고 집집마다 10선(善)을 갖추고 사람마다 6도(度)를 머금어 마군이 이마를 조아리고 외도가 무릎 꿇게 하며, 장작을 뽑아내 불을 끄고 칼을 분지르고 창을 꺾어서 무택(無擇)에서 고통 받는 이를 구하게 하소서. 신묘한 교화가 유정천(有頂天)에 이르러 삼계(三界)와 5도(道)가 모두 이와 같기를 바란다. 돌을 깎고 흙을 두텁게 하여 그 마음을 밝힌다.
(2) 제경릉왕제불광문(齊竟陵王題佛光文:제나라 경릉왕이 제호한 불광문) 1수
이치는 공적(空寂)함을 꿰뚫어 규범을 만들더라도 전할 수 없다. 업의 움직임이 감응에 따르니 형체와 모습으로써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태양은 빛나고 달은 아롱져서 하늘 바깥에서 빛나며, 방토에 뿌려진 빛과 속진의 장소는 서로 지척간이다.
태조 황제가 지혜의 물로 흉금을 씻고 정토에서 마음을 가다듬어 세속의 요폐(瑤陛)를 싫어하여 신령스런 영기(靈氣)를 보배로운 땅으로 옮겨갔다. 경릉왕[이름은 기휘한다]이 명대(明臺)가 임하지 않은 것에 눈물 흘리고 고산(高山)이 멀어진 것을 애통해 하였다. 병왕(缾王)의 뜻을 사모하고 쌍수(雙樹)의 열반(涅槃)을 개탄하듯 하였다. 이로써 영원히 신공(神功)을 발휘하고 묘한 업을 숭고하게 할 수 있었으나, 금을 다듬어 사경(寫經)을 하며, 공인(工人)을 불러다 거룩한 모습을 전하는 것만 못하다.
황제(皇齊) 4년 월일자에 공경스럽게 석가상 1구를 만들었다. 그 거룩하고 수려하기가 실로 하늘이 만든 것이지 세간에서 이룩한 바가 아니었다. 그 색은 유영(留影)157)에 부합하고 오묘하기가 전단향158)을 넘어섰다. 참으로 곡림(穀林)159)의 생각을 만겁 동안 드날리게 하여 빛나는 자취를 새기어 영원토록 드리운다고 한다.
(3) 미타불명(彌陀佛銘)
법신(法身)은 모양이 없으니
상주하는 것은 형체가 아니다.
그 이치 공(空)한데도 감응 있으니
지혜가 멸하여 령(靈)이 된다.
고요함이 다하여 음향이 울리니
한밤중에 어둠을 연다.
아득하구나. 그 수명이
나이도 없고 목숨도 없는데
만물은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은 보배 장식을 즐겨하네.
일마다 검약하여야 흥기하며
마음이 충만해야 죄업(罪業)이 그친다.
지극하다. 그윽한 성인이시여.
어질어 측은함을 이루는구나.
저 세상의 마음을 따라서
이 같은 원력을 이룬다.
정토(淨土)를 생각해 보면
아름답고도 장중하구나.
옥으로 깔아 길마다 이채로우니
수풀과 연못조차 빛나노라.
아이를 배지도 않고 임신도 하지 않고
다른 국토에서 저절로 태어나네.
여기에 맡겨 태어나
청방(靑房)에 자줏빛 둘러지네.
돌아보고 편안하게 길러짐을 말하고
말마다 나아가니
보(報) 받는 길이 비록 길더라도
마음은 지척간일 뿐이다.
그윽한 성심(誠心)으로 의지하고
신령함을 다하여 겉모습 드러내니
존귀한 모습이 흡사하며
금에다 그리고 돌에다 새기네.
물에 떠 있는 옥모래
오고감도 잠깐이어라.
아롱진 보배나무
바람소리 들리네.
원하오니 저 나라에 가고프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워 하니
일곱 가지 보배가 부럽지 않고
3달(達)을 우러른다.
(4) 서석상명(瑞石像銘)과 서문
신령한 감응(感應)이 그윽하고 아득하나 따를 만한 자취마저도 없다. 마음으로 그 길을 비추어 형통하기만 하면 감응이 있어 이에 따르게 된다.
우리 황제가 신령함을 체득하고 지극함을 다스리시어 슬기로움을 거머쥐고 하늘에 임하시며 유계(幽界)와 현계(顯界)가 그 차례를 이루니 마음속으로 굴복하지 않음이 없다. 만약 2의(義)가 덕과 화합하고 5정(精)이 교화를 돕는다면, 아래로는 깊은 샘이 뚫리고 위로는 창천(蒼天)에 도달할 것이다. 하늘에서는 길한 기운이 끊임없고 땅에서는 상서로움이 그치지 않으니, 10주(住)가 흡사 임형(林衡)160)과 같아지며 응진(應眞:나한)이 맑은 밤에 매우 많다.
터럭 같이 가느다란 달이 떠올라도 청정한 범실(梵室)에 빛을 뿌린다. 오묘한 자취와 신령스런 행동은 초전(椒殿)161)에서 굳셈을 펼쳐 내었다. 일이 상첩(緗諜)162)에 부합됨에 이르러서는 이미 신선의 상서로운 그림에 드러나며 구름이 있고 눈이 내리거나 안개가 끼는 일들이 모두 문서[簡策]에 가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막흑(莫黑)163)은 세 번 일어났다가 멀리 천년이 지나서야 다시 나타났다. 구름과 단비가 순일하게 어우러지고 봉개(鳳蓋)를 바라보며 섬돌을 적시었다. 이런 모든 일이 순임금 시대에는 적혀 있지도 않았고 요임금 시대에 거의 나타난 적이 없었다. 어찌 다만 붉은 까마귀[朱烏]164)가 그 빛깔을 떨치며, 검은 기장[玄秬]165)이 함께 익어갈 뿐이겠는가?
좋은 옥이 멀리 북융(北戎)에서 나오니 약수(弱水)에 다리 놓아 폐백을 보냈다. 윤택한 괴기(瓌奇)는 대대로 보지 못한 것이고 백금(白金)은 가까이 동쪽 산에서 생겨나 유암(幽巖)을 갈라서 상서로움을 드러내 천하의 끝까지 미쳤으니 홍령(鴻靈)이
아직 펼쳐내지 못한 것이다. 비록 다시 소환(素環)과 같은 뛰어난 하사품과 빛나는 은과 같은 보배라도 이 같은 것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금석은 모두 굳센 것으로써 본래 떠다니는 얼음의 바탕이 아니므로 덕을 쏟아내고 허물을 감추며 극(極)을 감(感)하고 령(靈)을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무겁게 가라앉는 몸을 변화시켜 가볍게 뜨는 모양을 나타내려 하는가?
영명(永明) 7년(483) 모월에 상서로운 돌이 묘하게 천진(天津)에서 출발하였는데, 바다에 떠서 조류에 밀렸으나 마침내 흐름을 돌이켜 여기에 다다랐다. 절강(浙江)에서 이채롭게 드러나자 이를 가져다 금포(禁圃)에 헌납하였다. 윤택하기가 마치 옥 같고 섬세하여 빛나는 것이 황금과도 견줄 수 있으니, 황제가 위로는 바뀌어 열리는 그윽한 세계를 돌아보고 일정한 형체가 없는 현응(玄應)을 자문해 보았다. 비록 그 일을 가려 보더라도 마음으로는 지척간이다. 그 바르고 항상된 성품을 아끼고 그 오랜 모습을 기쁘게 여기는 것은 전단향에 묘한 성상(聖像)을 그려 넣고 기수(祇樹)에 남기신 자취를 모사하는 것만 못하였다.
그래서 이름난 공장(工匠)을 불러다 이를 새기고 조각하였는데, 신령스러운 모습이 드러나자, 그 빛나는 것이 마치 신령이 이룩한 것과 같았다. 새기고 난 뒤 돌에다 끌로 새겨 넣었다. 네모나거나 둥그런 크고 작은 다른 돌들은 물에 넣기만 하여도 잠겼다. 깃발을 세우고 황제의 행차를 머물게 하여 친히 배석하여 시험하였으나, 참으로 법신(法身)이 의탁한 것으로 인하여 옥이 가라앉는 못에 넣어도 가라앉지 않았다. 쪼개고 잘라 분리하고 나서 금(金)을 띄울 물을 필요로 하였다. 지극하다! 정부(禎符)가 이와 같이 오묘하구나. 이에 그 보배로운 은사를 새기니 하늘과 사람에 길이 축복 있으리라.
이에 그 사(詞)를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멀구나. 드높은 깨우침이여,
넓구나. 신묘한 공덕이여,
4선(禪)은 모양이 없고
3달(達)은 모두 비었네.
성령(聖靈) 드리워 세상에 임하니
감로를 내려 어둔 세상 밝히며
오로지 대성(大聖)의 인우(仁宇)에서
보배로운 교화가 무르녹는다.
도(道)는 자취 없는 곳에 응하고
일마다 감득하네.
정기(精氣)를 드리워 바탕을 띄우니
저 멀리 총령(葱嶺)으로부터.
유유히 흐르는 물
아득하게 바람으로 인하여
저 멀리 요갈(遼碣)166)에 떠서
상서로움 우리 동쪽 나라 비추네.
황덕(皇德)에 짝하니
궐내의 마음도 섬기고
취실(鷲室)에 말씀 영원하니
범궁(梵宮)에 정성이 깃드네.
조각마다 법도(法道)를 담았으니
모사하는 것마저 재주를 다하고
이 같은 묘한 힘에 의지하니
국조(國祚)가 늘어나고 대업(大業)이 융성하리.
면류관 쓰고 남쪽으로 앉으니
그 목숨 화산(華山)과 숭산(嵩山)에 견주노라.
(5) 석가문불상명(釋迦文佛像銘)
지혜를 쌓아 밝게 이루고
인(因)을 늘려 업(業)을 이루며
능인(能仁)을 시원스럽게 느끼어
묘법(妙法)을 외치셨네.
빛이 하늘에 머물자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나시니
처음에 네 대문을 벗어나고서
마침내 9겁(劫)167)을 넘어 서셨네.
아득한 영성(靈性)을 구하여
밝게 현진(玄軫)을 따르시니
대도(大道)에 문이 있다 하나
그 자취 조짐조차 없으리.
물건과 아상(我相)이 함께 시들고
마음과 행동이 다 같이 묻혔으니
후심(後心)168)을 뒤따르는 마음을 한 번에 없애고
백비(百非)조차 다했어라.
느낌은 이치에 근거하여 깨달으니
말씀으로 베풀기도 하고
말씀으로 잡아당기지 않아도
그것을 나오게 하는 것은 몸이네.
찾아오면 반드시 감응하니
진흙이 녹로 위에 있는 것과 같다네.
형태에 짝하고 소리에 답하니
물건이나 사람이나 모두 그러하구나.
나에 응하여 형체를 나투니
나의 눈이 멀었네.
긴긴밤을 굳게 지켜서
어찌 이 고통을 없애리.
우러러 신령한 성상(聖相)을 찾는다면
법의 말씀 토해내고
존의(尊儀)가 있지 않다면
뉘라서 거룩함을 뵙게 되리.
(6) 천불송(千佛頌)
대도(大道)로 함께 나아가니
이치를 둘로 돌아감이 아니라
비추고 고요함이 이와 같아서
형상이 모두 아니네.
천각(千覺)이 굽어 응하시며
그윽한 기틀[冥機] 번갈아 두드리시니
일곱 분 부처님 아득하게
감응하여 시들어 먼저 벗어나네.
지나가고 없어졌으니
미래에 모습이 없으리.
한 찰나에 멈추지 않고
3념(念)169)이 함께 가네.
상주하지 않으시니
지금이 아니면 거두지 못하네.
현겁(賢劫)이 길다 하여도
메아리처럼 빠르게 나타난다.
숲 속에 깃들고 나무에 의지하여
처자식 여의고 속가를 등지네.
예전 부처님 나중 부처님
그 자취 높고 낮음 없네.
혹은 견고(堅固)170) 속에서 노닐며
혹은 용화수(龍華樹)171) 그늘에 깃든다네.
이 이치에 능통하면
항하사(恒河沙)를 견줄 수 있네.
무리지어 떠들썩해도
이같이 묘한 이치 고루하리라.
더디고 이른 차이가 나도
각자가 원력에 따르네.
밀적(密迹)172)이 대도를 넓히고
수명이 다하여 곧 나아가리라.
맹세하고 오는 운세 내다보고
영원히 함식(含識)에 전하리라.
(7) 미륵찬(彌勒讚)[황태자가 돌미륵을 만들고 태관령이 찬을 짓다]
승교(乘敎)는 본래 하나이니
정법에 드는 문은 둘이 아니네.
업(業)은 누명(累明)에 기초하고
공(功)은 적지(積地)에 연유한다.
아득하구나, 장진(長津)이여.
멀구나, 후손이여.
대도(大道)는 언제나 존귀하나
마음속에는 항기(恒器)가 없네.
왕가(王家)의 고귀함 헌신처럼 내던지고
보배로운 부처 자리 이으시니
지혜의 태양 아침에 떠오르고
향기로운 단비가 하늘에서 떨어지네.
감득하여 반드시 따르고
연(緣)에 의지하여 다다르니
나야말로 거룩한 태자(太子)일지니
하늘을 본받아 거듭 행하네.
오히려 용가(龍柯)173)를 생각하고
말을 돌아보고 아첨함을 생각하며
돌에 새겨 아름다음을 그리고
금을 녹여 비밀을 베낀다네.
지극함을 바라고 기교를 다하며
빛을 들고 고루 이루니
뛰어나구나, 복이 모임이여.
조화롭게 이치가 갖추어졌구나.
공경스럽게 그윽한 자취를 새기고
그로써 먼 아름다움을 전하네.
(8) 수상제찬(繡像題贊)과 서문
제나라 영명(永明) 4년(486) 병인년(丙寅年) 가을 8월 기미삭(己未朔) 2일 경신일(庚申日)에 세 번째 황손 소생의 진(陳) 부인이 미묘법(微妙法)을 머금고 도리에 머무르며 그 지혜를 밝히어 허공에 임하였다. 말을 보위(寶位)에서 맺고 마음을 정각(正覺)에 올려두었다.
공경스럽게 낙림사(樂林寺)의 주지 비구니 석보원(釋寶願)으로 인하여 무량수존상(無量壽尊像) 1구를 비단에 수놓고자 하였다. 이에 찬시(讚詩)를 부친다.
그 모습 드러내어 위의가 이채로우니
전하는 모양새 하나만이 아니므로
옥을 새겨서 광채를 그려내고
금을 새겨서 바탕을 그린다네.
착한 이가 있어서
향기를 머금으며 자신을 다스리니
올을 당겨 수놓은 마음이
그윽이 보배로운 재주에 담기는구나.
아롱진 무늬마다 안으로 빛나고
신령한 모습이 밖으로 넘치니
물가에 금모래가 반짝이고
나무에는 보옥(寶玉)이 늘어지네.
현세에 깨끗한 과보를 보이니
오는 과보가 책갈피에 있구나.
대궐의 규방에서 마름을 기르고
청정한 법당에서 빛을 발하네.
이 같은 햇수 억 년을 가고
이 같은 날 만년을 이어가리.
(9) 광택사찰하명(光宅寺刹下銘)과 서문
광택사는 황제의 예전 처소이고 행궁(行宮)의 예전 자리이다. 양주(楊州) 단양군(丹陽郡) 말릉현(秣陵縣) 모향(某鄕) 모리(某里)의 땅에 있다. 이 빈호(邠毫)를 떠나서 경보(京輔)로 와서 집을 넓혀 동제(東第)로 삼았는데 가까이 성곽이 있었다.
성심(聖心)이 조용하고 소박함을 사랑하였기에, 옮기어 남곽(南郭)을 등진 것은 의로움이 거풍(去酆)174)과 같으며 일은 호(鎬) 땅으로 옮긴 것과 같다. 범람하는 물을 다스리고 이 같은 보운(寶運)을 받는 데에 이르러서는 제혼(帝閽)175)에게 명하여 넓게 문을 열게 하고 태미성(太微星)176)으로 나아가 집을 삼았다. 이미 한나라 고조가 풍패(豊沛)에서 운수를 일으킨 것과 같고 또한 광무제(光武帝)가 남양(南陽)을 그리워하는 것과 같았다.177) 성인의 자취를 영원히 흐르게 하여 썩지 않게 계승하는 방법을 생각하였다. 지금의 일은 수미(須彌)와 동등하게 하고, 그 이치는 천지와 함께 무궁하니, 보탑을 빛나게 이룩하여 그 교훈을 후세에 전하느니만 못하다.
이리하여 대량(大梁) 천감(天監) 6년(507) 세차(歲次) 성기(星紀) 월려(月旅) 황종(黃鐘)의 윤10월 23일 무인(戊寅) 중동(仲冬)의 절기에 그윽한 땅에 찰간을 세워서 하늘 높이 구름 사이로 우뚝하도록 하였고, 그 밑으로는 그윽한 샘을 파서 성한(星漢)을 우러러보게 하였다. 바야흐로 현겁(賢劫)에서 큰 돌을 녹이고 인토(忍土)178)에서 미래를 지극히 하였다. 붉은 광채가 빛나는 것이 노을이 비치듯 하였으니, 단지 하늘의 돌봄만이 아니라 땅의 덕마저 아우르는 것이다.
황제가 이에 창합(閶闔)을 열고 배를 만들어 회수의 물가에 띄우자, 신풍(神風)을 만난 듯 빠르게 나아갔다. 물 위에 띄어놓은 다리를 넘어서 곧장 건너갔으니, 지개(芝蓋)가 번성하고 비취꽃이 무성하였다. 가마를 내려 황제의 행차를 멈추게 하고 친히 몸을 숙여 정성스럽게 예배하였는데, 널리 사부대중을 모으고 자취를 헤아려 그 흐름을 함께하였다. 이러한 광인(廣因)을 넓혀서 가피(加被)에 벗어남이 없게 하였다. 같이 그 길로 말미암아 다 함께 도량에 이르렀으니, 이에 명문(銘文)을 다음과 같이 짓는다.
8유(維)는 넓디넓은데
9복(服)은 황량하구나.
성령(聖靈)이 멈추어도
모두 그 상서로움 드러낸다.
수구(壽丘)179)에 구름이 성하여
북극성의 빛을 빠르게 감싸네.
넓은 벌판 어루만지며
다섯 별[五緯]이 방성(房星)에 드네.180)
이같이 아득하고 멀어서
이름만 남기고 거처는 없어지니
어찌 약수(若水)181)를 알고
어찌 궁상(窮桑)을 말하겠는가?
하늘이 내어놓은 바
우리 황제 생각해 보면
그 기틀 전생부터 조짐이 보이니
나룻배 되어 세상을 건지네.
무거운 처마 얽히어
멀리 찰토(刹土)는 높이 뛰어오르고
그 땅이 정국(淨國)이고
그 자리가 금상(金床)이러니
이 같은 태극(太極)으로 인하여
물가에서 날아간다네.
어찌 삼계(三界)에 그칠 것이며
어찌 시방(十方)에 멈출 것인가.
만고에 은혜를 드리우니
백왕(百王)조차 손을 내미네.
한 생각에 화답하시니
부디 만수무강하시라.
해님처럼 오래하시며
하늘처럼 길이 하시라.
(10) 서선정사명(栖禪精舍銘)
이 절은 정서(征西) 채공(蔡公)이 이룩한 것이다. 옛날 변경의 번인[厠蕃]182)의 예반(預班)183)을 지휘하였으며 창건의 시조가 된다. 지금 다시 이 땅을 밟으면서 둘러보자니 옛정이 마냥 새롭기만 하다. 이에 명문(銘文)을 지어 그윽한 자취를 전하고자 한다.
영주(郢州) 영휘(永徽) 3년(652) 세차(歲次) 모시(某時) 모월(某月) 모삭(某朔) 모일(某日)에 다음과 같이 짓는다.
위대하신 성령(聖靈)이 유람하다가
먼 땅에서 선정(禪定)에 드셨구나.
난방(蘭房)은 난초로 이어 놓고
뾰족한 용마루에다 봉화를 피우네.
남쪽으로 무야(巫野)184)를 보고
북쪽으로 회천(淮天)185)을 바라본다.
아득하구나. 저 못과 수풀이여,
광활하구나. 강과 논밭이여.
마음 비우고 고요히 관조(觀照)하며
지혜로써 순수한 통발을 돌아보네.
수도의 길 오매불망 그렸으나
세월만 하릴없이 보내네.
자비를 펴신 곳 멀기만 해서
집에서 향 피우며 귀의하고자
신묘한 원림(苑林)을 이룩하고
신령한 서까래를 얽어 놓았네.
금원을 보고서 포원(圃苑)을 개척하였고
영취(靈鷲)를 우러러 동산을 쌓았으니
큰 돌을 새겨서 그 영광 새기되
다듬고 다듬어 오묘함을 다하였다.
깃대를 옮겨서 펼치고
아득하게 송천(松泉)을 구별하였다.
동국(東國)에 끈을 맡기고
서연(西蓮)에서 자취를 바꾸네.
언덕과 늪을 평평하게 고치고
무성한 낙엽 옮겨 치우네.
거듭 은하(銀河)에 의지하여 멀어지고
다시 깃대를 옮기어 펄럭이네.
가서 묘악(妙幄)을 마다하고
이제 범연(梵筵)을 이었네.
해학(海鶴)은 여덟 번이나 날개짓 하고
암선(巖蟬)은 아홉 번이나 울었다.
화려한 패물 오래도록 가리고
아름다운 자취 헛되게 전하네.
구름에 의지하여 맞잡고
감히 상서로운 인연을 알리네.
'매일 하나씩 > 적어보자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어보자] #2067 불교(광홍명집 18권/ 廣弘明集) (0) | 2023.03.15 |
---|---|
[적어보자] #2066 불교(광홍명집 17권/ 廣弘明集) (0) | 2023.03.15 |
[적어보자] #2064 불교(광홍명집 15권/ 廣弘明集) (0) | 2023.03.14 |
[적어보자] #2063 불교(광홍명집 14권/ 廣弘明集) (0) | 2023.03.14 |
[적어보자] #2062 불교(광홍명집 13권/ 廣弘明集) (0) | 2023.03.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