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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1990 불교(고승전 14권 1편/ 高僧傳)

by Kay/케이 2023.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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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고승전(高僧傳) 141

 

석혜교 지음

추만호 번역

 

서록(序錄)

 

원래 지극한 도는 어렴풋하여 방편[蹄筌]의 힘을 빌린 뒤에야 드러난다. 그윽한 이치는 깊이 엉켜서 스승에게 기대야만 쓰임을 이룬다. 이로 말미암아 성인의 자취가 번갈아 일어나고, 어질고 능력 있는 이들이 의탁한 곳을 달리한다. 그러면서도 효성과 자비를 말하여서 임금을 공경하는 도리를 정하고, ()ㆍ서()ㆍ예()ㆍ악()을 밝혀서 풍속의 가르침을 이룬다.

혹 공을 잊고 일을 버려 저 텅 비움을 숭상하기도 한다. 혹 몸을 영고성쇠(榮枯盛衰)에 맡겨 이 세상에서 영달함을 무겁게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가르침은 다만 한정된 영역 안에 국한된다. 그 공로도 오직 가까운 이익에만 둔다. 이는 무릇 점차로 물들게 하는 방법이며, 아직 그 깊고 신비한 본성을 다한 것은 아니다.

가령 부처님의 훈계에 이르러서는, 그 일과 과보의 그윽하고 미묘함을 헤아린다면, 3세를 순환한다. 그 지극한 이치의 높고 미묘함을 말한다면, 온갖 신령함을 다 꿰뚫는다. 만약 무릇 10()의 경지를 열어 지혜의 근원을 말하여, 3()를 밝힘으로써 지혜의 곳집을 가려낸다면, 정신을 다하고 본성을 다한 가르침은 한결같이 중추적이고 극치를 이루는 이치를 맡는다.

불교 밖의 나머지 가르침을 이에 견준다면, 마치 수많은 흐름이 거대한 구렁으로 돌아가고, 수많은 별들이 북극성 주위를 받드는 것과 같다. 그러니 멀고도 아득하도다. 참으로 말로는 아직도 그 경지에 이르기는 어려워라.

마침내 그 가르침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하고, 그 형상이 육도에 두루한 데 이르러서는, 모두가 그윽이 어두운 곳의 중생들을 이끌어내어, 큰 이익이 되고자 한 까닭에서이다.

그러나 깨끗함과 더러움은 듣는 것에 따라 달라지고, 위로 오름과 아래로 떨어져 내림은 보는 것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 까닭에 서방에서는 소리와 형태의 근본을 앞세우지만, 동쪽 나라에서는 보고 듣는 이익을 뒤로 돌린다. 구름 속의 용이 동터오르는 새벽에 나타나듯, 바람을 몰아오는 호랑이가 밤중의 꿈에 나타나듯, 큰 바람을 부채질하자 불법의 큰 교화가 이에 무르녹는다.

그때부터 서역의 이름 높은 승려가 때때로 이 땅에 이르렀다. 혹 경법을 전도하기도 하고, 혹 선도(禪道)를 교수하기도 하며, 혹 기적을 나타냄으로써 사람들을 교화하기도 하고, 혹 신통력으로 중생들을 구제하기도 하였다.

()나라에서 우리 양()나라까지는

 

시간과 연대가 더욱 멀다. 세상으로는 6()를 건너오고 햇수로는 5백 년에 가깝다. 이 땅의 사문(沙門)들 사이에서도, 아름다운 재질을 머금고 빼어나게 일어선 이가, 무리를 이룬 영준한 승려들 사이에서 간혹 나온다. 시대를 번갈아 가며 그런 사람들이 있다.

많은 사람의 기록에 따라, 서술하고 기재한 내용이 각기 다르다. 사문 법제(法濟)는 치우쳐 고일(高逸)한 한 가지 자취만을 서술하였다. 사문 법안(法安)은 다만 지조와 절개의 지절(志節)한 행실만을 나열하였다. 사문 승보(僧寶)는 오직 유방(遊方)한 한 과목만을 지었다. 사문 법진(法進)은 곧 전론(傳論)을 통틀어 모아썼지만, 말과 일에 빠지고 줄인 곳이 있었다. 모두 나란히 서로 번거롭고 간결한 차이가 있으며, 나오거나 빠진 것이 달라서, 행한 일을 살펴보아도 아직 그 귀결이 드러나지 않는다.

전송(前宋)의 임천강왕(臨川康王) 유의경(劉義慶)선험기(宣驗記)유명록(幽明錄), 태원왕(太原王) 유염(劉琰)명상기(冥祥記), 팽성(彭城) 유준(劉俊)이 쓴 익부사기(益部寺記), 사문 담종(曇宗)이 쓴 경사사기(京師寺記), 태원왕(太原王) 유연수(劉延秀)감응전(感應傳), 주군태(朱君台)징응전(徵應傳), 도연명(陶淵明)수신록(搜神錄)등에도, 모두 한편으로는 여러 승려들의 전기가 나와 있어 그 평소의 풍모를 서술한다. 그러나 이는 모두 덧붙여 본 것이어서, 성글고 빠진 것이 많다.

제 경릉(竟陵) 문선왕(文宣王)삼보기전(三寶記傳)은 혹 불교의 역사라고 칭하기도 하고, 혹 승록(僧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럴 만큼 이미 삼보를 함께 서술한 것이어서, 말뜻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뒤섞이고 넘쳐서 진실을 구하기 어렵고, 또한 거칠고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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