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1971 불교(고승전 13권 6편/ 高僧傳)

by Kay/케이 2023. 2. 25.
728x90
반응형

 

통합대장경 고승전(高僧傳) 136

 

10) 석혜경(釋慧敬)

혜경은 남해 사람이다. 어려서 형초(荊楚) 지방에서 유학하였다. 또한 경론에 널리 뛰어나고, 항상 복된 일을 짓기를 힘썼다. 그런 까닭에 교리를 이해하는 공부는 완전할 수 없었다. 무릇 가서 이르는 곳마다, 모두 탑과 불상을 일으켜 세워서 대중의 일을 도와 이루었다.

그 후 고향에 돌아와서도, 다시 운봉사(雲峯寺)ㆍ영안사(永安寺) 등 여러 절을 수리하였다. 혜경은 이미 계율 있는 절개에 정밀하고, 지조가 엄숙하고 밝았다. 이 때문에 영외(嶺外)의 비구와 비구니들이 모두 의지하여, 자문 받고 품수 받았다.

그 후 칙명을 받아 승주(僧主)가 되었다. 가르쳐 이끄는 데 공이 있었다. 혜경의 노비 하나가 사미가 되었을 때, 문득 귀신에게 얻어맞은 일이 있었다. 그 후 산의 요정이 모습을 나타내서 혜경을 찾아왔다. 자세히 허물과 실수를 사과하면서 말하였다.

부하 권속들이 알지 못하여, 엉뚱하게 법사의 권속을 어지럽혔습니다.”

얼마 후 모두가 평상대로 회복되었다.

 

모든 일으켜 세우는 복된 일을 모두 서방정토에 회향하였다. 임종하던 날에는, 방에 기이한 향기가 감돌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쳤다.

 

11) 석법헌(釋法獻)

법헌은 광주(廣州) 사람이다. 처음 북사(北寺)에 머물렀다. 절이 오래되어 조락하고 쇠해졌다. 그러자 법헌은 인연 있는 시주들을 거느리고, 다시 수리하고 지붕을 고쳤다. 이어 절 이름을 연상사(延祥寺)라 하였다.

그 후 장미산(藏薇山)에 들어가 절을 창건하였다. 절이 이룩된 후, 두 동자가 손을 잡고 찾아와 노래하였다.

 

장미산에 도와 덕이 있어

기쁨과 즐거움이 바야흐로 다하지 않네.

 

말이 끝나자 문득 보이지 않았다. 온 절이 놀라고 감탄하면서, 모두 그 신령하고 기이함에 경탄하였다. 법헌이 그 후 선정(禪定)에 들었을 때, 문득 어떤 사람이 나타나 말하였다.

경쇠줄이 끊어지려 하는데, 왜 고치지 않는가

법헌이 놀라 일어나서 가서 보니, 드리워진 줄이 곧 땅에 닿으려 하였다. 그가 손을 대어, 경쇠가 부러지고 손상된 것이 없었다.

법헌은 출가한 이래로 항상 복된 일로 시주하기를 권하였다. 마음을 선()과 계율에 깃들어, 한 번도 절개를 이지러뜨린 일이 없었다. 그 후 세상을 마친 곳은 알지 못한다.

 

12) 석법헌(釋法獻)

법헌의 성은 서()씨며, 서해(西海)의 연수(延水) 사람이다. 아버지가 외삼촌을 따라 양주에 이르자 곧 출가하였다. 원가(元嘉) 16(439)에 이르러, 비로소 서울로 내려와 정림상사(定林上寺)에 머물렀다. 경ㆍ율에 널리 뛰어났다. 뜻하는 일에 굳세고 날래서, 훌륭히 중생들을 구제하고, 절들을 수리하고 다듬었다.

앞서 도맹(道猛)이 서쪽에 노닐며, 두루 신령스럽고 기이한 것을 보았다는 말을 들었다. 몸을 버릴 각오로 서원하여, 그곳에 가서 성인의 자취를 보려 하였다.

전송의 원휘(元徽) 3(475)에 금릉(金陵)을 출발하여, 서쪽 파촉(巴蜀) 지방에 노닐었다. 길은 하남(河南)에서 출발하여 예예(芮芮)를 경유하였다. 우전국(于闐國)에 도달한 후, 파미르 고원을 넘고자 하였다. 그러나 때마침 벼랑에 가로놓인 다리가 끊어졌다. 마침내 우전국에서 되돌아왔다.

그 사이에 불치아[佛牙]한때, 사리 열다섯 과와 아울러 관세음멸죄주(觀世音滅罪呪)조달품(調達品)을 얻었다. 또 구자국(龜玆國)의 금퇴첩상(金槌鐷像)을 얻었다. 이에 돌아왔다. 그가 경유한 길은 위험하고 막혔음이 그의 별기(別記)에 보인다.

 

불치아는 본래 오전국(烏纏國)에 있었다. 오전국에서 예예(芮芮)로 왔고, 예예에서 다시 양()나라 땅으로 왔다. 법헌을 불치아를 모시고 서울로 돌아왔다. 15년 동안 비밀히 예배하고 섬겼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였다. 문선왕(文宣王)의 꿈에 감응하여, 비로소 도인과 속인들에게 이 사실이 전해졌다.

법헌은 계율의 행실이 맑고 순수하며, 덕이 남들의 모범이 되었다. 낭야(瑯琊)의 왕숙(王肅)과 왕융(王融), 오국(吳國)의 장융(張融)과 장권(張綣), 사문 혜령(慧令)과 지장(智藏) 등이 모두 몸을 맡겨, 발을 이어 그의 훈계를 숭상하였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