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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1973 불교(고승전 13권 8편/ 高僧傳)

by Kay/케이 2023.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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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고승전(高僧傳) 138

 

북제(北齊)의 건무(建武) 연간(494497)에 도인과 속인들을 불러 결속하였다. 처음 조각하기 시작하여, 대충 바위를 뚫는 데 한 해를 보냈다. 겨우 대략의 얼굴 모습이 이룩되자, 얼마 후 승호가 병을 만나 죽었다. 임종 때 서원하였다.

내가 조성하는 석상이 본래 한 생에 완성되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두 번째 태어나서, 그 서원한 결과를 이루리라.”

그 후 사문 승숙이

 

그가 남긴 공사를 모아 이어갔다. 그러나 재원[資力]을 마련할 길이 없어 성취하지 못하였다.

()의 천감(天監) 6(507)에 이르러 시풍(始豊) 현령인 오군(吳郡)의 육함(陸咸)이 벼슬살이를 그만두고, 나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밤에 섬계(剡溪)에서 유숙하던 중, 비바람을 만나 하늘이 캄캄하게 어두워졌다. 위태하고 두려워하다가 잠깐 눈을 부친 상태에 빠졌다. 문득 꿈에 세 도인들이 나타나서, 알려 주었다.

그대는 앎과 믿음이 굳고 바르기 때문에, 자연히 안온해질 것이다. 건안(建安) 전하께서 환후가 아직 낫지 않으셨다. 그대가 만약 섬현을 다스리거든, 승호가 조성하던 돌부처를 성취시킬 수 있는 사람을 얻는다면, 반드시 전하의 병이 나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치라고 하여 허망한 것은 아니니, 잘 개발함이 좋으리라.”

육함은 서울로 돌아가서, 1년이 지나도록 전에 꿈꾼 일을 거의 잊었다. 후에 문을 나서다가 곧 한 승려를 만났다. 그가 말하였다.

강론을 듣기 위해 기숙한다.”

이어 말하였다.

지난해 섬현에서 부탁한, 건안왕의 일을 아직도 기억하는가

육함이 당시 두려운 생각이 들어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니, 도인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는 곧 떠나갔다.

육함은 그가 비범함을 깨달았다. 곧 신발을 거꾸로 신고, 묻고 찾고자 뒤따랐다. 백 걸음 거리까지 미쳤으나, 홀연히 보이지 않았다. 육함은 탁 트이면서 그 뜻을 해득하였다. 전에 꾼 꿈을 모두 기억해보니, 그는 곧 섬계에서 꿈에 본 세 번째 승려였다.

육함은 곧 상계[]를 올려 건안왕에게 알렸다. 왕은 곧 이것을 주상에게 알려 칙명으로 승우(僧祐) 율사를 파견하여, 석상 조성의 일을 전임하였다. 왕은 곧 깊은 믿음이 더욱 더해, 뛸 듯한 기쁨이 두루 충만해졌다. 금패물을 뽑아 희사하여, 성스런 불상이 성취되기를 맹서하였다.

처음 승우 율사가 채 그곳에 이르지 못한 어느 날이다. 그 절의 승려인 혜정(慧逞)의 꿈에, 검은 옷을 입은 큰 신()이 나타났다. 양쪽으로 따라온 시종의 행렬이 매우 웅장하였다. 그 신이 감실이 있는 곳에 서서 분수를 상략하였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승우율사가 그곳에 이르렀으니, 그 신이한 응험이 이와 같았다.

승호가 과거에 뚫은 감실은 지나치게 얕았다. 곧 다섯 길을 깎아 들어가, 다시 정수리와 육계(肉髻)를 시공하였다. 몸 모습이 이루어져서, 아름답게 닦는 일이 끝나려 하였다. 밤중에 문득 만자가 있는 곳에서 빛깔이 붉게 솟아나왔다. 지금 불상의 가슴 부분의 만자처(萬字處), 아직도 금박을 씌우지 않아서

 

붉은 빛깔이 남아 있다.

돌부처는 천감(天監) 12(513) 봄에 착공하여 천감 15(516) 봄에 끝났다. 앉은 분의 높이가 5장이고, 서 있는 분의 모습은 10장이다. 감실 앞에는 3층의 대를 가설하였다. 또한 문각과 전당을 조성하였다. 아울러 대중의 기업을 세워서 공양에 충당하게 하였다. 사방 먼 곳의 선비와 서민들이 모두 향과 꽃을 들고, 만 리 밖에서 찾아와 모여, 공양하고 시주하노라 오갔다. 그들의 발자취가 골짜기를 메웠다.

돌부처가 조성된 후로, 건안왕이 고통 받던 병도 조금씩 치유되었다. 마침내는 건강을 회복하였다. 그 후 건안왕은 다시 봉작을 받았다. 지금의 남평왕(南平王)이 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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