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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1968 불교(고승전 13권 3편/ 高僧傳)

by Kay/케이 2023.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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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고승전(高僧傳) 133

 

예언에 의하면, ‘절이 건립된 후 30년이 지나면, 하늘이 내린 불로 불탈 것이라 하였다. () 효무제(孝武帝)의 태원(太元) 21(396)7월 밤에 이르러, 저절로 불이 났다. 절의 승려 수십 명이 아무도 원인을 알지 못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보니, 탑은 이미 잿더미가 되었다. 이에 황제가 말하였다.

이는 나라에 상서롭지 않은 징조이다.”

곧 양법상(楊法尙)ㆍ이서(李緖) 등에게

 

명령하여, 속히 수복하게 하였다. 9월에 이르러 황제가 죽었다.

그곳에는 대안도(戴安道)가 제작한 다섯 구의 불상과, 대옹(戴顒)이 주조(鑄造)16척의 금불상이 있었다.

예전에 주조한 불상이 처음 이룩되자, 얼굴과 머리가 너무 여위게 보였다. 여러 장인들이 어찌할 수 없어서, 이에 대옹을 맞아 이를 보게 하였다. 대옹이 말하였다.

얼굴이 여윈 것이 아니라, 팔뚝과 어깻죽지가 살찐 것이다.”

줄로 갈아 팔뚝과 어깻죽지를 줄였더니, 얼굴상이 스스로 원만해졌다. 여러 장인들로서 탄식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또한 이곳에는 사자국(師子國)에 있던, 42촌의 옥으로 된 불상도 나란히 있었다. 예전에 사자국 왕이, ‘진의 효무제가 불법을 받드는 데 정성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짐짓 사문 담마억(曇摩抑)을 멀리서 파견하여 헌납한 것이다. 이 불상은 전해지는 데 10여 년이 걸려, 의희(義熙) 연간(405418)에 진나라에 도달하였다.

사도(司徒)인 왕밀(王謐)이 어느 날 대부(臺府)로 들어갔다. 동액문(東掖門)의 입구에 절이 있는 것을 보았다. 거기에서 사람들이 윷을 던져 윷놀이를 하였다. 그 윷가지가 닿는 곳에서 곧 광명이 비쳤다. 이상하게 생각하여 파보게 하니, 금불상 하나가 발견되었다. 빛나는 받침대와 합치면, 길이가 72촌이나 되었다. 왕밀은 곧 전송의 고조(高祖)황제에게 알려, 이를 영접하여 대부로 들어가 공양하게 하였다.

그 후 전송의 경평(景平) 연간(423424) 말기에 와관사(瓦官寺)로 보내졌다. 그러다가 지금은 용광사(龍光寺)로 옮겼다.

 

4) 석혜수(釋慧受)

혜수는 안락(安樂) 사람이다. ()의 흥녕(興寧) 연간(363365)에 서울에 와서 노닐었다. 푸성귀를 먹으며 고행하여, 항상 복업을 닦았다. 어느 날 왕탄지(王坦之)의 장원을 지나다, 방문하였다.

꿈에 문득 장원 안에 절을 세우는 꿈을 꾸었다. 이와 같은 일이 몇 번 되풀이되자, 혜수는 왕탄지를 찾아가, 한 칸의 집을 지을 땅을 빌리려 하였다. 그러나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였다. 이전에 장원을 지키던 장원지기인 송기(松期)를 찾아가, 이를 말하였다. 송기가 말하였다.

왕씨 집안의 장원은 아마도 도모하지 못할 것입니다.”

혜수가 말하였다.

지성으로 감응하면, 무엇 때문에 얻지 못할 것을 근심하겠는가

곧 왕탄지를 찾아가 그의 뜻을 진술하였다. 그러자 왕탄지는 크게 기뻐하여 곧 허가하였다.

처음에는 작은 집을 한 채 세웠다. 저녁마다 다시 꿈에 푸른 용이 나타나, 남쪽에서 와서 당간으로 화하였다. 이에 혜수는 사미를 거느리고 시험 삼아 신정강(新亭江)에 이르러 찾아보았다.

 

그러니 긴 나무 하나가 흐름을 따라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혜수는 말하였다.

반드시 내가 꿈에 본 나무일 것이다.”

이에 사람을 고용해서 끌어올려 바로 세워서, 당간으로 삼아 한 층으로 꾸몄다. 도인과 속인들이 다투어 모여들어, 모두 그 신령하고 기이함에 감탄하였다.

왕탄지는 곧 장원을 희사하여 절로 삼았다. 혜수의 본고향 이름을 따서, 안락사(安樂寺)라 불렀다.

이 절의 동쪽에는 단양(丹陽) 수령 왕아(王雅)의 저택이 있고, 서쪽에는 동연(東燕) 태수 유투(劉鬪)의 저택이 있으며, 남쪽에는 예장(豫章) 태수 범영의 저택이 있었다. 모두 보시하여, 절을 이루었다. 그 후 사문 도정(道靖)과 도경(道敬) 등이 다시 보수하고 꾸미기를 더하여, 지금까지도 크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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