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1966 불교(고승전 13권 1편/ 高僧傳)

by Kay/케이 2023. 2. 24.
728x90
반응형

 

통합대장경 고승전(高僧傳) 131

 

석혜교 지음

추만호 번역

 

8. 흥복(興福)

 

1) 석혜달(釋慧達)

혜달의 성은 유()씨며, 본래 이름은 살하(薩河)이다. 병주(幷州) 서하(西河)의 이석(離石)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사냥을 좋아하였다. 나이 서른한 살 때 문득 잠시 죽었다가, 하루가 지나서 다시 소생하였다. 지옥의 고통스런 과보를 두루 보았다. 그때 한 도인을 만났는데, 그가 말하였다.

나는 그대의 전생의 스승이다.”

그리고 그를 위하여, 설법하고 훈화하여 출가하게 하였다. 단양(丹陽)과 회계(會稽)와 오군(吳郡)에 가서 아육왕(阿育王) 탑과 불상을 찾았다. 예배하고 허물을 뉘우쳐서, 전생에 지은 죄를 참회하게 하였다. 깨어나자 곧 출가하였다.

도를 배우며 이름을 혜달이라 고쳤다. 부지런히 복업을 짓기에 정진하면서, 오직 예참만을 우선으로 삼았다.

()의 영강(寧康) 연간(373375)에 서울에 이르렀다. 이에 앞서 간문황제(簡文皇帝)가 장간사(長干寺)에 삼층탑을 조성하였다. 탑이 이루어진 후로 저녁마다 방광하였다. 혜달은 월성(越城)에 올라가 사방을 돌아보고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이 당간 끝에 홀로 이상한 빛이 나는 것을 보았다.

곧 그곳을 찾아가 예배드리며 공경하였다. 아침저녁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드렸다. 밤에 당간 아랫녘을 보니, 이때 광명이 나오는 곳이 있었다. 이에 곧 사람들에게 알려서, 함께 그곳을 팠다. 한 길 가량 파내려 가니, 세 개의 돌 비석을 발견하였다.

 

중앙의 비석은 가운데가 덮여 있었다. 그곳에 쇠 상자가 있었다. 쇠 상자 속에 다시 은상자가 있고, 은상자 속에 금상자가 있었다. 금상자 속에는 세 과의 사리가 있었다. 또한 하나의 손톱과 하나의 머리카락이 있었다. 머리카락을 펴니 길이가 몇 자 가량 되었다. 그러나 말면 소라모양이 되었고, 눈부시게 빛이 났다.

이는 곧 주()나라 경왕(敬王) (기원전 541498) 아육왕(阿育王)84천 개의 탑을 세웠는데, 그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하여 도인과 속인들은 신비함을 찬탄하였다. 옛 탑의 서쪽에 다시 당간을 세워, 사리를 안치하였다. ()의 태원(太元) 16(391) 효무황제(孝武皇帝)가 다시 3층의 탑을 더하였다.

또한 예전에 단양(丹陽) 수령 고회(高悝)가 장후교(張候橋) 갯벌 안에서, 하나의 금불상을 캐냈다. 빛나는 받침대가 없었으나, 제작 상태는 매우 뛰어났다. 앞에는 범어로 쓰여있었다.

이는 아육왕의 넷째 딸이 조성한 것이다.”

고회가 이것을 싣고 장간사 골목 입구에 이르렀다. 그러자 소가 다시 더 걸어가지 않았다. 사람의 힘으로는 몰 수 없었다. 이에 소가 가는 데로 맡기니, 곧바로 장간사로 달려갔다.

그 후 1년 가량 지나서 임해(臨海)의 고기잡이 장계세(張係世)가 바다 입구에서, 구리로 만든 연꽃 받침대가 물 위에 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곧 이를 건져서 고을로 보냈다. 고을에서는 표를 대각(臺閣)에 올렸고, 칙명으로 그것을 불상의 발 밑에 안치하였다. 그러자 맞추기나 한 듯이 서로 어울렸다.

그 후 서역의 다섯 승려가 고회를 찾아와서 말하였다.

예전에 천축국에서 아육왕이 조성한 불상을 가져왔습니다. 업도(鄴都)에 이르러 난리를 만나 강가에 숨겨 두었습니다. 조정의 길이 다시 열리면서 찾아보아도 그 소재를 잃었던 차에, 근간에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알려주었습니다. ‘불상은 이미 강남에서 나와 고회가 얻었다고 하기에, 짐짓 멀리 산과 바다를 넘고 건너왔습니다. 한 번 보고 예배드리고자 할 따름입니다.”

고회는 곧 그들을 인도하여 장간사에 이르렀다. 다섯 승려는 불상을 보고 흑흑 흐느끼며 울었다. 그러자 불상에서는 곧 빛이 발하여, 법당 안을 비추었다.

다섯 승려가 말하였다.

본래는 둥근 빛이 나는 광배가 있습니다. 지금은 먼 곳에 있으나, 역시 곧 이곳에 이를 것입니다.”

()의 함안(咸安) 원년(371)에 교주(交州) 합포현(合蒲縣)에서, 진주를 캐는

 

동종지(董宗之)가 바다 밑에서 불상의 광배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곳 자사(刺史)가 표를 올렸다. ()의 간문제(簡文帝)가 칙명으로 이 불상에 베풀게 하였다. 구멍이 꼭 같고, 빛의 색깔도 똑같이 겹쳤다. 무릇 40여 년에 걸쳐 동서에서 상서로운 감응이 일어난 것이다. 이로써 빛나는 받침대가 비로소 갖추어졌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