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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1979 불교(고승전 13권 14편/ 高僧傳)

by Kay/케이 2023.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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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고승전(高僧傳) 1314

 

9) 석승변(釋僧辯)

승변의 성은 오()씨며, 건강(建康) 사람이다. 출가하여 안락사(安樂寺)에 머물렀다. 어려서부터 경 읽기를 좋아하여, 담천(曇遷)과 법창(法暢) 두 스승에게서 수업하였다. 처음에는 비록 그들의 기풍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하지만 만년에는 다시 생각을 기울이고, 나름대로 짐작을 더하였다. 그리하여 애절하고 아름다운[哀婉] 소리를 절충하니, 북제의 초기에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어느 날 신정(新亭)의 유소(劉紹)의 집에 재()가 있었다. 승변이 초저녁의 경 읽기에서 처음으로 한 번 가락을 바꾸자, 문득 무리를 이룬 학들이 내려왔다. 섬돌 아래에 모여들었다가, 승변이 책 한 권을 마치자 일시에 날라 떠나갔다. 이로 말미암아 그의 명성은 천하에 진동하였다. 멀고 가까운 곳에 이름이 알려져, 후에 찾아온 배우는 이들이 그를 종사로 섬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영명 7(489) 729일에 사도(司徒)인 경릉(竟陵) 문선왕(文宣王)이 꿈에 부처님 앞에서 유마경한 가락을 읊조리다가, 소리와 함께 꿈에서 깨어났다. 이에 곧 일어나 불당 안에 이르렀다. 그러더니 문득 꿈속에서 본 법과 같기에, 다시 옛 유마경을 한 가락 읊조렸다. 문득 소리 운율의 흐름이 좋게 느껴지면서, 여느 때보다 솜씨가 났다.

이에 이튿날 아침에 곧 서울에서 좋은 소리를 지닌 사문들을 모았다. 용광사(龍光寺)의 보지(普智)ㆍ신안사(新安寺)의 도흥(道興)ㆍ다보사(多寶寺)의 혜인(慧忍)ㆍ천보사(天保寺)의 초승(超勝)과 승변 등이었다. 그들을 저택에 모아 소리를 짓게 하였다. 승변이 전한 옛 유마경한 가락과 서응경(瑞應經)7() 게송(偈頌) 한 가락이 가장 뛰어난 작품이었다. 후세 사람들이 혹 때로 전하는 말은 모두 와전된 것으로, 그 큰 바탕을 잃은 말들이다.

승변은 복제의 영명(永明) 11(493)에 세상을 떠났다.

 

승공(僧恭)

당시 중흥사(中興寺)의 승공이 승변과 명성을 나란히 하다가, 후에 도에서 물러났다[退道].

 

 

10) 석담빙(釋曇憑)

담빙의 성은 양()씨며, 건위(揵爲) 남안(南安) 사람이다. 어려서 서울에 노닐었다. 경을 돌려가며 읽기를 배우면서, 백마사(白馬寺)에 머물렀다.

음성의 가락이 매우 공교로웠다. 아침이 지나도록 스스로 일을 맡았으나, 당시 사람들은 아직 그를 추대하지 않았다. 이에 오로지 규범과 법도에 정성을 쏟았다. 갈고 익히는 공부를 더하여, 만년에는 드디어 무리에서 빼어나니, 모두들 달리 보았다. 삼본기경(三本起經)을 외울 때는 그 소리가 더욱 좋았다.

그 후 촉()으로 돌아가서 용연사(龍淵寺)에 머물렀다. 파한(巴漢)에서 소리를 생각하는 사람은 모두가 그의 소리를 모범으로 숭상하였다. 범패 소리를 한 번 토해낼 때마다 새와 말이 슬피 울고, 길 가던 사람이 발길을 멈추었다. 이어 그는 동종(銅鍾)을 제조하여, 미래 세상에 항상 8()1)4(四無碍辯)이 있기를 원하였다. ()과 촉()에 구리로 만든 종이 있게 된 것은 여기에서 비롯하였다. 그 후 머물던 절에서 세상을 마쳤다.

 

도광(道光)

당시 촉 중에는 승령(僧令)인 도광도 경을 돌려가며 읽기를 약간 잘하였다.

 

11) 석혜인(釋慧忍)

혜인의 성은 궤()씨며, 건강(建康) 사람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북다보사(北多寶寺)에 머물렀다. 다른 행실이나 이해력은 없고, 오직 음성을 애호하였다. 처음 안락사의 승변(僧辯)에게서 수업하여, 그의 법을 갖추어 터득하였다. 그러나 구슬프고 아름다우며, 가늘고 미묘한 소리에서 특히 승변의 경지를 넘어서려 하였다.

북제의 문선왕이 꿈에 감응한 후에, 여러 경 잘 읽는 승려들을 모았다. 이에 혜인도 함께 옛 소리를 헤아리고 가려내었다. 새롭고 다른 소리를 품평하여, 서응경(瑞應經)42박자를 만들었다. 혜인이 터득한 소리가 가장 뛰어나고 미묘하였다.

이에 혜만(慧滿)ㆍ승업(僧業)ㆍ승상(僧尙)ㆍ초랑(超朗)ㆍ승기(僧期)ㆍ초유(超猷)ㆍ혜욱(慧旭)ㆍ법률(法律)ㆍ담혜(曇慧)ㆍ승윤(僧胤)ㆍ혜단(慧彖)ㆍ법자(法慈) 40명에게 명령하여, 모두 혜인에게 나아가 수업하게 하였다. 드디어 그 법이 지금까지 전한다.

혜인은 융창(隆昌) 1(494)에 죽었다. 그때 나이는 40여 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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