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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609 불교(견정론 하권 9편 / 甄正論)

by Kay/케이 2021.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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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견정론(甄正論) 하권 9

 

현의 지음

이한정 번역

 

조균(朝菌)이 대춘(大椿)보다 길다고 하여 길고 짧음에 매이는 것도 바야흐로 허상이라 하였다. 이 또한 장주가 속정(俗情)의 망집(妄執)이 생기면, 길고 짧고 곱고 미운 것의 실정에 따라 인아(人我)의 탐욕심을 일으키므로 자신을 이롭게 하고자 만물을 해치면 환난을 초래한다고 풀이한 것이다. 여기서 한 생 내에 이와 같이 전도되면, 수명을 짧게 하여 목숨을 해치고 유()에 끌려 몸을 망친다고 논하는 것으로, 미래 명보(冥報)의 이치가 없고, 과거 업연의 이치가 없고, 당대에 선악을 지어서 그 소행에 따라 당대에서 보를 받는다고 하므로 유가의 서책에서 말하는 것과 큰 뜻은 대체적으로 같지만, 이로써 불교와 도가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밝히기에 충분하다.”

공자가 말했다.

삼교가 현격한 것이 이같이 다르다면, 한 가지 이치라 말하더라도 어찌 같다고 하겠습니까? 이처럼 자휴(子休)가 마음을 재계하여 몸을 잊는 것은 다른 이에게 복을 비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선니가 재계하여 음식을 바꾸는 것이 어찌 인()에 근거하여 과()를 구하는 것이겠습니까? 설사 도가에서 공양하여 명조(冥助)를 구하고 천존을 날조하여 구제받는 공을 희망하는 것도 어찌 헛된 낭비이겠습니까? 어찌 헛된 낭비이겠습니까? 이리하여 지금 후대에 거의 멸하는 바가 드물겠습니다. 그러나 장표(章表)ㆍ초의(醮儀)의 법과 부적ㆍ금방(禁方)의 술법과 그 행을 비교해 보면 때때로 효험이 있는데, 이 같은 일은 어떠합니까? 청하건대 상세하게 논의해 주십시오.”

선생이 말했다.

그대의 이 같은 질문은 참으로 일리가 있다. 장표와 초의라는 것은 제사의 부류이니, 기도하는 일은 원래부터 그 내력이 오래된 것으로 오직 장도릉의 법만이 아니라, 황제와 태공의 시대에도 이 같은 술법을 행하였다. 초의란 제사의 별명으로 예전(禮典)에 그 이치를 드러내었듯이 장도릉이 이에 근거해서 닦았다. 그 법을 행하는 것을 제주(祭酒)라 이름하였는데, 이는 속세에서의 술사의 재주이다. 도사가 그 법을 훔쳐다가 자양(資養)을 구하나, 본래가 도교의 종지가 아니다. 이것은 귀도(鬼道)와 신기(神祇)의 이치에 섭수되니, 속제(俗諦)의 허망한 정리(情理)로는 그와 같은 일이 없다고는 못한다. 대체로 사무(邪巫)ㆍ음양(陰陽)ㆍ복서(卜筮)ㆍ교사(郊祀)ㆍ시축(尸祝)의 부류이다. 이 같은 법을 행하는 일은 태상시(太常寺)에서 맡아 하였기에, 승니(僧尼)를 관장하는 사빈시(司賓寺)에 속하지 않는다. 사빈시에 속하는 까닭은 불법은 서쪽 나라에서 전래되어 왔기에 외국의 빈객과 동일한 반열에 처하기 때문이다. 도사는 원래가 빈객이 아니기에 자연히 사빈시의 관할에 속하지 않는다. 또 장표와 초의로써 제사를 행하는 법은 사례시(司禮寺)의 일이다. 단지 사찰에 도관이 짝하게 되자 이로 인해 사빈시에 차츰 귀속된 것이나, 사실로써 이를 논하자면 기()를 교사(郊社)에 합쳐 관할하고 있다. 또 부적이란 귀록(鬼籙)으로, 귀신의 도를 행하여 영험이 있게 하는 것이니, 이 어찌 괴이하지 않겠는가?”

공자가 이에 말끔히 의문을 풀고 나자 기뻐하며 절을 하고서 이같이 사례하였다.

제가 쓰고 달고 매운 맛에 절은 어물전에 살면서 냄새를 잊었으며, 이에 빠져 뜻을 잃고 세월만 보냈습니다. 지금 빛이 흐려지며 서쪽으로 지는데, 방성(房星)이 나타남에 비로소 미쳐서 동으로 달리지 않는 폐단을 깨달았으니, 아침에 이를 듣고 저녁에 죽더라도 마음에 깊은 위안이 되겠습니다. 앞으로 삼가 명을 받들겠습니다. 다시 청하건대 이 같은 뜻을 받들고자 글로 묶어 스스로 계책하면서 미래에 전하여 저 거꾸로 달려가는 무리의 우매한 습속에 젖은 마음을 개혁시키겠으니, 널리 펴서 선비들이 진여(眞如)의 이치를 이해하도록 바로 기록해서 논을 만들어 여러 후대에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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