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견정론(甄正論) 하권 6편
현의 지음
이한정 번역
선니(宣尼)의 이 같은 말에 비춰 보면, 노자가 서쪽으로 가면서 말한 것과 대체로 같다. 백양(伯陽)과 중니(仲尼)가 이 땅에서 성인이라 일컬어지는데, 두 사람이 모두 서방에 성인이 있었음을 알고 있었으니, 석가의 도가 광대하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공자가 말했다.
“제가 어려서 뜻을 품은 것이 당시에 명예나 훔치려는 것이었기에 한번 담론하면 그 언변을 칭찬받았습니다. 그러나 삼가 고론을 듣고 보니, 어눌한 바보가 창피스럽게 선니(宣尼)의 숭인(崇仞)을 바라보고, 누추한 초가에서 부끄럽게도 정령코 선생님의3) 화락한 얼굴을 뵙게 되니, 마침내 혼미하던 심식(心識)이 깨우쳐졌습니다. 이야말로 구만 리 장천(長天)에 드리운 날개를 활개쳐서 날아오르고, 삼천리 횡해(橫海)에 가로놓인 비늘로 물을 쳐서 나아가는 것을 알겠습니다. 다행히도 입김을 쏘이고서야 그 의혹이 모두 다하였습니다. 초야의 홍유(鴻儒)나 재야의 석학(碩學)들을 살펴보면, 팔짱끼고 기염을 토하는 선비들이 눈썹을 치켜세우고 상대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유가ㆍ도가ㆍ석가의 3교는 하나이니, 모두 선한 이치를 따르기에 셋이 아니다. 자비와 인서(仁恕)가 길은 다르더라도 목적지는 같으며, 만물을 이롭게 하여 제도할 때에 백려(百慮)가 모두 고르다’고 말합니다. 비록 벽계황마(碧雞黃馬)의 변(辯)이라도 이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비록 견백(堅白)이 다르다는 말로도 어찌 이를 구별할 수 있겠습니까? 매번 이 같은 말을 생각할 적마다 서로의 가슴만 답답해집니다. 청하건대 한번 상세하게 의논해주셔서 온갖 의혹을 없애주시기 바랍니다.”
선생이 말했다.
“그대는 무슨 말을 이리 하는가? 내 일찍이 논을 짓고자 하였으나 서둘러 탈고하지 못하였는데, 그대가 청하기에 내 뜻을 보여주겠노라. 대체로 3교를 그 무리에 따라 분류하면 9류(流)로 자잘하게 나눠지는데, 본래의 자취가 이같이 달라서 이치 또한 갈라진다. 단지 거칠고 얕은 것만이 서로 차이나는 것이 아니라 범부와 성현으로 완전히 현격해진다. 글에 따라서 서로 통용되듯이 보이더라도 이치를 궁구해보면 완전히 같지 않다. 8괘(卦)에서 상(象)을 이루고 6효(爻)로 정위(定位)하며 용도(龍圖)를 펼쳐 호(號)를 정하고 조적(鳥跡)을 관찰하여 서(書)를 지었다. 입덕(立德)과 입언(立言)의 3분(墳)은 삼황(三皇)의 교화를 펴는 것이고, 수훈(垂訓)과 수범(垂範)의 5전(典)은 오제(五帝)의 시책을 드날리는 것이니, 마침내 희대(姬代)의 주문공(周文公)에 이르러 예를 제정하고 악(樂)을 이루었고, 이남(二南)4)의 풍아(風雅)가 융성해졌다. 공보자(孔父子)가 시(詩)를 편수하고 역(易)을 찬술하되 십익(十翼)을 새겨 정미롭게 하였으며, 존귀함과 비천함의 차례를 세우고 군신과 부자의 도를 확정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 다음으로 장유(長幼)와 부부와 친구간의 유별(有別)을 밝히고, 충정을 다해 나라에 봉사하고, 효제(孝悌)를 기려서 가정을 윤택하게 하고, 공손함과 겸양을 쌓아 극기(克己)하고, 인서(仁恕)를 베풀어 만물을 대하고, 신의를 돈독히 하여 교제를 넓히며, 염치와 양보에 힘써 그 행을 짚어가는, 이와 같은 오덕(五德)이 입신(立身)의 이치이다. 문덕(文德)을 펴서 속세를 교화하고, 무공(武功)을 다스려 난리를 누르고, 연사(禋祀)를 닦아 신기(神祇)를 안녕케 하고, 종묘(宗廟)를 숭상하여 조상을 공경하면서, 사냥과 수렵을 늦추도록 인도하고, 그물 놓는 이치를 새로이 하고, 흥겹게 놀면서도 근원을 존중케 하고, 사냥하는 규정을 바르게 하였다. 무참히 살육하는 정전(征戰)의 노고를 치하하고, 축생의 도살을 다스려 천향(薦饗)하며 복을 구하고, 가슴에서 겨드랑이를 꿰뚫어 사냥하는 오락을 거듭하며 어린 목숨의 살가죽을 벗기는 것을 마음 푸는 낙으로 삼는지라, 형법과 예법(禮法)를 일으켜도 도리어 간사함이 일어나고, 부새(符璽)을 얻더라도 구차하게 살아간다. 나라를 빼앗고 왕기(王器)를 훔치게 되면 아비를 해치고 군주를 시해하며, 권력을 다투면서 이권으로 치달으면 종족을 멸하고 이족(夷族)을 없애니, 자비로운 큰 은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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