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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22 불교(개원석교록 9권 9편 / 開元釋敎錄)

by Kay/케이 2021.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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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99

 

지승 지음

 

천후 증성(證聖) 원년 을미(乙未. 695)에 동도(東都) 대내(大內)의 대변공사(大遍空寺)에서 화엄경을 번역하였다. 천후는 친히 임하여 법좌(法座)를 환히 밝히고 서문을 지었다. 또 스스로 붓을 들어 첫머리 제목과 품명을 썼다. 남인도 사문 보리류지(菩提流志)와 사문 의정(義淨)이 범본을 같이 펴서 알리고, 뒤에 사문 복례(復禮)와 법장(法藏) 등에게 넘겨주어 불수기사(佛授記寺)에서 번역하게 하여 성력(聖歷) 2년 기해(己亥 699)에 이르러 다 마쳤다.

또 구시(久視) 원년 경자(康子, 700)에는 삼양궁(三陽宮) 안에서 대승입릉 가경(大乘入楞伽經)을 번역하고, 서경(西京) 청선사(淸禪寺)와 동도의 수기사에서 문수사리수기경(文珠師利授記經)등을 번역하였다. 전후에 총 19부를 번역하였다. 사문 파륜(波崙)ㆍ현궤(玄軌) 등이 받아썼고, 사문 복례 등이 문장을 엮었으며, 사문 법보(法寶)와 홍경(弘景) 등이 증의하였고, 태자중사(太子中舍) 가응복(賈鷹福)이 감호(監護)하였다.

장안(長安) 4(704)에 이르러 실차난타는 모친이 연로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문안하려고 표()를 여러 번 올려 비로소 윤허를 얻게 되었다. 황제는 칙명으로 어사(御使) 곽사광(霍嗣光)에게 명하여 우전국까지 호송하게 하였다.

뒤에 화제(和帝) 용흥(龍興)이 황제가 되자, 불일(佛日)이 다시 빛나게 되어 칙명으로 재차 불렀으므로 비로소 서울[帝城]로 오게 되었다. 경룡(景龍) 2(708)에 이 나라에 도착하자, 황제는 만승(萬乘)의 높은 몸을 굽혀 친히 개원문(開遠門) 밖까지 나가 영접하였고, 서울의 승려들은 온갖 당()과 번()을 갖추어 길에 줄지어 서서 인도하였으며, 치장하여 꾸민 푸른 코끼리를 타고 성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그리고 칙명으로 대천복사(大薦福嗣)에 모시게 하였는데, 미처 번역할 겨를도 없이 병이 들어 오래 끌다가 경운(景雲) 원년(710) 1012일에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대고 다리를 포개고 대천복사에서 입적하였으니, 그의 나이 59세였다. 승려들은 슬픔에 흐느끼면서 법의 동량이 갑자기 꺾였음을 탄식하였고, 속인들은 울부짖으며 중생의 길잡이를 상실하게 된 것을 한탄하였다.

황제가 조칙을 내려 외국법에 의하여 장사지낼 것을 허락하니, 1112일에 개원문 밖의 고연등대(古然燈臺)에서 화장하였다. 장작이 다 타고 불이 꺼졌는데도 그의 혀는 그 때까지도 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으니, 이야말로 법을 널리 폈던 아름다운 서상(瑞相)이었다. 1223일에 본국의 문인(門人) 비지(悲智)와 칙사(勅使) 가서(哥舒)ㆍ도원(道元)이 남은 유해와 그 신령한 혀를 우전국으로 돌려보내서 탑을 세우고 공양하였다. 그리고 후인이 다시 화장했던 자리에 칠층탑(七層搭)을 세웠다.

(25) 이무첨(李無諂)

불공견삭다라니경(不空羂索陁羅尼經) 1권일명 보문(普門)이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16()이 있으며 이것은 범본(梵本)을 초록한 경으로 사문 파륜(波崙)이 서문을 지었으며, 두 번째 번역되어 나왔다. 보사유(寶思惟)가 번역한 3권의 경과는 동본이다.

이상은 11권이며, 그 경본이 현재 남아 있다.

바라문(波羅門) 이무첨은 북인도 남파국(嵐波國) 사람이다. 그는 식견과 도량이 총명하고 민첩하여 내전(內典)과 외전(外典)에 널리 통하였고 당나라 말과 범어 두 가지 말을 환히 알아 막힘이 없었다. 삼장 아니진나(阿儞眞那)와 보리류지(菩提流支) 등이 여러 경을 번역할 때는 모두 이무첨이 말을 통역하였다.

천후(天后) 시대 성력(聖歷) 3년 경자(康子, 700) 3월에 신라국(新羅國) 스 님 명효(明曉)가 멀리 당()나라 법화(法化)를 관찰하고 돌아가려 할 때 그는 총지문(摠持門)에 대하여 먼저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다. 마침내 저 변두리 나라 사람들도 다 같이 이런 비밀한 교[秘敎]를 듣게 하기 위하여 이 진언(眞言)을 번역하여 주기를 은근히 청하였다. 이에 무첨은 불수기사(佛授記寺)의 번경원(翻經院)에서 명효를 위하여 불공견삭다라니경1부를 번역하였는데, 사문 파륜(波崙)이 받아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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