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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236 불교(개원석교록 6권 5편 / 開元釋敎錄)

by Kay/케이 2021.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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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65

 

지승 지음

 

14) 전량(前梁) 시대

()나라 소()씨는 건업(建業)에 도읍하고 있었다.혹은 전량(前梁)이라고도 한다. 무제(武帝) 천감(天監) 원년 임오(壬午, 502)로부터 경제(敬帝) 태평(太平) 2년 정축(丁丑, 557)에 이르기까지 무릇 4() 56년을 지나는 동안 승려들과 속인 8인이 번역하여 낸 경()ㆍ율()ㆍ논()과 여러 전기(傳記) 등과 아울러 새로 모은 실역(失譯)의 모든 경은 총 46201권이다.이 중에서 40191권은 그 경본이 현재 있으며, 610권은 궐본이다.

 

사문 석승우(釋僧祐)339. ()ㆍ록(錄)ㆍ집()

사문 만다라선(曼陁羅仙)311.

사문 승가바라(僧伽婆羅)1032. 경ㆍ논ㆍ전()

사문 석보창(釋寶唱)254. 경ㆍ집ㆍ니전(尼傳)

사문 석명휘(釋明徽)11. 니계(尼戒)

왕자(王子) 월파수나(月婆首那)11.

사문 파라말타(波羅末陁)1124. 경ㆍ논

사문 석혜교(釋慧皎)114. 승전(僧傳)

신집실역제경(新集失譯諸經)1425. 경ㆍ논ㆍ집

 

(1) 석승우(釋僧祐)

석가보(釋迦譜) 10권제()나라 때에 지었으며 따로 5권 본이 있다. 이것들은 자세함과 간략함에 차이가 있다. 장방은 “4권이다라고 하였으나, 착오인 것 같다. 승우록장방록(長房錄)내전록(內典錄)등의 목록에 보인다. 제록(齊錄)에 편입시키는 것이 옳은데, 사람에 따라 양록(梁錄)에 덧붙인다.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 15승우록에는 자신이 “10권이다라고 하였으나 15권본도 보인다. 장방록내전록두 목록에는 “16권이다라고 하였다. 승우록장방록내전록등 목록에 보인다. 역시 제나라 때 지었다.

홍명집(弘明集) 14승우록등 세 목록에서 모두 “10권이다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14권이 보인다. 승우록장방록내전록등 목록에 보인다.

이상은 339권이며, 그 경본이 현재 모두 있다.

 

사문 석승우는 양도(楊都)의 건초사(建初寺) 스님이다. 속성은 유()씨이며, 그의 선조는 팽성(彭城)의 하비(下邳) 사람이다. 아버지 대()에 건업(建業)에 와서 살았다. 승우는 나이 겨우 몇 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 건초사에 들어가 예배를 드렸는데, 뛸 듯이 도()를 좋아하여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부모는 그의 뜻을 가상히 생각하여 우선 입도(入道)하는 것을 허락하고 승범(僧範) 도인을 스승으로 섬기게 하였다.

나이 14살이 되었을 적에 집안사람들이 비밀리에 혼처를 구했는데, 승우가 이를 알아차리고 피하여 정림사(定林寺)에 이르러 법달(法達)법사에게 몸을 맡겼다. 법달 또한 계덕(戒德)이 자세하고 엄숙하여 법문(法門)의 동량(棟梁)이었다. 승우는 그를 스승으로 받들면서 정성을 다하였다. 그 후 나이가 차서 구족계를 받았으며, 지조가 굳고 밝았다.

처음에 법영(法潁)스님에게 수업을 받았다. 법영은 이미 한 시대의 명장(名匠)이었고, 율학(律學)의 종조였다. 승우는 이에 생각을 다하여 깊이 연구하고 구하길 새벽부터 밤까지 게으르지 않았다. 마침내 율부(律部)에 크게 정통하여 선철(先哲)들의 격려를 받았다.

무제(武帝) ()도 서로 만나보고 깊이 예우하였다. 승단(僧團)의 일에 관한 의문은 모두 칙명으로 그에게 나아가서 심의 결정하도록 하였다. 나이가 들어 노쇠하고 다리에 병이 생기자 칙명으로 가마를 타고 내전에 들어오는 것을 윤허하였고, 육궁(六宮)이 계()를 받게 하였으니, 그가 조정에서 존중을 받음이 이와 같았다.

그리고 제() 경릉왕(竟陵王)과 문선왕자(文宣王子) 양량(良梁)과 임천왕(臨川王) ()과 남평왕(南平王) 위의동(偉儀同)과 진군(陳郡)의 원앙(袁昻)과 영강(永康) 정공주(定公主)와 귀빈(貴嬪) 정씨(丁氏) 등도 모두 그의 계범(戒範)을 숭배하여 스승과 제자의 예를 다하였으며, 무릇 도인과 속인으로서의 문도(門徒)가 된 자가 만여 인에 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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