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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235 불교(개원석교록 6권 4편 / 開元釋敎錄)

by Kay/케이 2021.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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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64

 

지승 지음

 

그리하여 무제(武帝) 영명 10년 임신(壬申, 492) 가을의 9월에 번역하여 제()나라 글로 만들었으니, 이것이 곧 백유경(百喩經)이다. 그리고 다시 수달경십이인연경을 번역하였다. ()나라 대명(大明, 457~464) 이후에는 번역한 경이 거의 끊어졌는데, 이 법보(法寶)를 널리 유포하게 하였으므로 세상에서는 모두 그를 찬미하였다.

구나비지는 사람됨이 넓고 후하면서 식견과 법도가 있었으며, 중생을 접하여 깨우치기를 잘하였고, 몸소 부지런히 도를 행하면서 밤이나 낮이나 게으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외국의 승려들이 만 리 밖에서 모여들었고 남해(南海)의 상인(商人)들도 모두 존경하고 섬겨 공양과 선물이 1년 내내 끊이지 않았다. 성품이 자못 복이 쌓인 분이어서 재보(財寶)가 넉넉하였다. 그러나 그 재물은 불사(佛事)를 경영하는 데만 썼고 사사로운 데에는 쓰는 일이 없었다. 건업(建業)의 회수(淮水) 곁에 지관사(止觀寺)를 지어 중각(重閣)7)ㆍ층문(層門)ㆍ전방(殿房)을 정연히 장식하고, 학도를 기르면서 교화를 베풀었으므로, 그의 덕업(德業)은 아주 크게 드러났다. 중흥(中興) 2(502) 겨울에 입적하였다.

 

(6) 석담경(釋曇景)

마하마야경(摩訶摩耶經) 1권두 번째 번역되어 나왔다. 일명 불승도리천위모설법경(佛昇忉利天爲母說法經), 또는 마야경(摩耶經)이라고도 한다. 2권으로 되어 있다. 왕종록(王宗錄)보창록(寶唱錄)법상록(法上錄)등의 세 목록에 보인다.

미증유인연경(未曾有因緣經) 2도라후라사미(度羅睺羅沙彌)의 서문이다. 또한 바로 미증유경(未曾有經)이라고도 하며, 두 번째 번역되어 나왔다. 시흥록에 보인다.

이상은 23권이며, 그 경본이 모두 있다.

 

사문 석담경은 어디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나라 때에 마하마야경2부를 번역하였다. 여러 목록에서는 바로 제나라 때에 번역되어 나왔다라고 하였다. 연대를 나타내지 밝히지 않아서, 어느 제왕(帝王) 때인지는 자세하지 않다.

 

(7) 석법화(釋法化)

복중녀청경(腹中女聽經) 1권다섯 번째 번역되어 나왔다. 무구현녀경(無垢賢女經)과 같은 동본이다. 장방은 고록(古錄)에 보인다라고 하였다.

이상은 11권이며, 그 경본은 궐본이다.

 

사문 석법화는 폐제(廢帝) 보권(寶卷) 영원(永元) 연간(499~500)복중녀청경1부를 외워서 번역하였다[誦出].

여러 목록에서는 서로 이어받아 모두 외워내었다고 말하고 있다. 송출하였다는 뜻은 자세하지 못하나 전례에 의하여 나열한 것이다. 먼저의 번역이 있기 때문에 의혹이나 허물은 면할 수 있다.장방록(長房錄)내전록(內典錄)등의 목록에서는 ()나라 때 강주(江州) 사문 도정(道政)미륵성불경(彌勒成佛經)1권을 깎아 내고 고치고 하였다라고 하였으나, 이것은 옳지 못하다. 뒤의 대승록(大乘錄)에서 자세히 기술한 것과 같다. 또 장방 등은 다시 제나라 때 사문 법도(法度)가 양도(楊都)에서 회하경(灰河經)1권과 비발률(毗跋律)1권을 번역하여 내었다라고 하였다. 이제 이 회하경잡아함경에서 나왔다. 비발률은 수()나라 법록(法錄)에는 법도(法度)가 거짓으로 만들어僞造 함부로 계율이란 이름을 쓰고 있어 이제는 없애고 여기에 두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장방 등은 또 제나라 때 사문 석법니(釋法尼)익의경(益意經)2권을 번역하였다라고 하였다. 이제 이 경은 곧 제나라 말 양나라 초에 승려 법니가 눈을 감고 외워 낸 것인데, 지금 현재도 경본이 있으나 그 글과 이치가 서로 어긋나서 유행할 수조차 없었다. 만일 제나라 말에 번역되어 나왔다면 승우록에서는 무엇 때문에 기재하지 않았겠는가? 지금은 의부(疑部)에 편입되어 있으므로 정록(正錄)에는 두지 않는다. 장방 등은 또 제나라 때 사문 도비(道備)구상경(九傷經)55권을 번역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여러 목록에서는 모두 의경(疑經)이라 하였으므로, 이제는 옛 설()에 의거하여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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