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114 불교(개원석교록 2권 6편 / 開元釋敎錄)

by Kay/케이 2021. 6. 23.
728x90
반응형

 

통합대장경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26

 

지승 지음

 

하늘이 이 물건을 내어 사람을 위하여 집을 지키고 짖게 한 것이니, 만일 내가 당신의 집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 개는 끝내 나를 물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그 허물이 나에게 있지, 그 개에게는 없습니다. 만일 그 개를 죽임으로써 나의 상처가 낫는다 하여도 오히려 그렇게 할 수 없거늘, 하물며 나에게는 아무런 이익도 없을 터인데 공연히 큰 죄만 짓겠습니까? 또한 짐승이란 아무 지각(知覺)도 없거늘, 어찌 이치로 꾸짖을 수 있겠습니까?”

이로 말미암아 그 이웃 사람은 그의 말에 감동되어, 드디어 다시는 개를 죽이지 않게 되었다.

열 살에 한문을 배우고 열세 살에 바라문의 책을 읽어 모두 정통하게 되었고, 여섯 나라의 말에 달통하였다.

이보다 앞서 환제(桓帝)에서 영제(靈帝)에 이르는 기간(146~189)에 지참(支讖)이 법전(法典)을 번역하였다.

또 지량(支亮)이라는 이의 자()는 기명(紀明)인데, 지참의 제자가 되어 가르침을 받았다. 지겸은 또 지량에게서 수업을 받았는데, 널리 경적을 보아 밝게 익히지 못한 것이 없었으며, 세간의 기예도 두루 익혔다.

그의 모습은 몸은 호리호리하고 피부는 검고, 얼굴은 야위고 눈은 희며, 눈동자는 황색이었다. 이에 당시 사람들이 그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지랑(支郎)의 눈은 황색이고 몸은 호리호리하지만, 지혜주머니이다.”

그는 본래 큰 법을 받들면서 경의 뜻을 정밀하게 연마하였다. 헌제(獻帝) 말년(220)에 한나라가 크게 혼란해지자, 고향 사람 수십 명과 함께 오()나라로 피하였다. 처음 출발하던 날에 옷은 한 벌만 입고 있었다. 큰 추위에 옷을 입지 못한 어느 한 나그네가 그를 따라 왔다. 지겸[]은 그 나그네를 불러서 함께 잤는데, 한밤중이 되자 나그네는 그의 옷을 빼앗아 입고 도망쳐 버렸다. 다음 날 아침에 그의 동료들이 그가 입고 있던 옷의 소재를 묻자, 지겸이 말하였다.

어제 밤에 나그네에게 빼앗겨 버렸소.”

그러자 동료들이 모두 말하였다.

어째서 우리에게 알리지 않았소?”

지겸이 대답하였다.

내가 만일 고발하게 되면, 그대들은 틀림없이 그에게 겁탈한 죄를 주었을 것입니다. 어찌 옷 한 벌을 가지고 한 사람을 죽이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모든 이들은 탄복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뒤에 오나라 임금 손권(孫權)이 그가 학문이 박식하고 재주와 지혜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불러 만났다. 경전 안에 있는 깊고 은밀한 뜻을 물어 보자, 지겸은 근기에 맞추어[應機] 어려운 것을 해석하여 의심나는 것마다 풀어 주지 않음이 없었다. 손권은 크게 기뻐하여 절을 하고, 박사(博士)9)로 삼아 동궁(東宮)을 돕고 이끌어 주게 하였으며, 총애가 아주 대단하였다.

지겸은 비록 대교(大教)10)로서 가르치고 있지만, 경에는 범어로 된 글[梵文]이 많아서 이해하는 자가 없었다. 이미 중국과 서융[]의 말을 잘하였는지라, 여러 경본들을 수집하여 중국어[吳語]로 번역하였다.

손권 황무(黃武) 2년 계묘(癸卯, 223)로부터 양() 건흥(建興) 2년 계유(癸酉, 253)에 이르기까지 30여 년 동안 대명도무극경[大明度經]88부를 번역하였는데, 곡진하게 성인의 뜻에 들어맞으면서도, 말의 뜻이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무량수경[無量壽]중본기경(中本起經)에 의거하여 보살련구(菩薩連句)범패삼계(梵唄三契)를 지어 찬탄하였고, 요본생사경(了本生死經)에 주()를 달았는데, 모두 세상에 유행하였다.

뒤에 태자가 왕위에 오르자, 마침내 궁애산(穹隘山)으로 들어가 숨어 살면서 세상일과는 인연을 끊었다. 축법란(竺法蘭) 도인으로부터 다시 5()를 받아 지켰는데, 무릇 함께 노는 이들은 모두 사문들뿐이었다. 뒤에 그 산에서 입적하였으니 춘추 60세였다. 오나라 임금 손량(孫亮)과 여러 승려들은 글로써 말하였다.

지공명(支恭明)은 자신의 병을 다스리지 않았으며, 그가 하는 일과 행실은 꾸밈없이 수수하여서, 처음부터 끝까지 숭앙할 만하였다. 그를 위하여 몹시 슬퍼함을 그치지 못했다. 그때에 애석하게 여긴 바가 이와 같았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