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제개장보살소문경(佛說除蓋障菩薩所問經) 13권
불설제개장보살소문경 제13권
서천 법호 한역
김달진 번역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항상 묘한 선정[等引]1)에 머무는 마음을 얻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몸의 생각 두는 곳[身念處]을 잘 실천하고, 둘째 느낌의 생각 두는 곳[受念處]을 잘 실천하며, 셋째 마음의 생각 두는 곳[心念處]을 잘 실천하고, 넷째 법의 생각 두는 곳[法念處]을 잘 실천하며, 다섯째 경계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고, 여섯째 고요함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며, 일곱째 도시ㆍ성읍ㆍ촌락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고, 여덟째 명예와 이익 따위 일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며, 아홉째 여래가 시설한 학문(學門)에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고, 열째 번뇌와 딸린 번뇌의 잡염(雜染)의 생각 두는 곳을 잘 끊는 것이라.
선남자여, 보살이 몸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자신의 몸으로부터 일어나는 그 죄와 옳지 못한 법을 뛰어난 지혜로써 세밀히 생각해 골라내어 모두 완전히 없애며, 또 몸의 모든 허물을 관찰하되 아래 발꿈치로부터 위로 이마 꼭대기에 이르기까지의 힘줄과 맥이 서로 연결된 온 몸을 두루 관찰함에 있어 일체 나라는 것이 없느니라. 그래서 잠시도 머물지 않고 파괴되어가는 법이 바로 이 몸의 깨끗하지 않고 모든 성숙되지 않은 것이어서 냄새 나고 더럽고 싫증이 나는 뭇 나쁜 빛깔과 모양이 함께 쌓인 것이라고 관찰하는 것이 그것이니라.
보살이 이런 관찰을 할 때 만약 몸을 탐애하는 모든 욕심으로 몸을 헤아리거나 나라는 생각을 하거나 몸에 집착을 갖는다면 이러한 법은 다 있을 수 없느니라. 이 때문에 몸과 함께하는 모든 옳지 못한 법은 자유롭지 못하고 몸을 떠난 일체 옳은 법은 자유롭기 마련이니라. 이러한 것이 이른바 보살이 몸의 생각 두는 곳을 잘 행하는 것이니라.
다음 보살이 느낌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생각하기를, ‘모든 느낌이 다 괴로움이거늘, 어째서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가운데 뒤바뀐 생각을 내어 즐거움이라 하는가? 어리석은 자는 괴로움과 즐거움을 알지 못하고 성인들만이 이 괴로움을 다 아시리라’ 하고는, 보살이 스스로 부지런히 실천하여 그 괴로움의 느낌을 끊고 나서 다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역시 다 자기처럼 그렇게 수학(修學)하게 하며, 보살이 이런 관찰을 할 때 또 그 느낌에 애착을 내지 않고, 성내거나 미워함을 일으키지도 않으며, 스스로 부지런히 실천하고 나서 다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역시 그와 같이 수학하게 하는 것이니라. 이러한 것이 이른바 보살이 그 느낌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이니라.
다음 보살이 마음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생각하기를, ‘마음은 실상 무상(無常)한 것인데 헤아려서 상(常)이라 집착하고, 괴로움을 즐거움이라 여기며 나 없음[無我]을 나[我]라 하고, 맑고 깨끗하지 않는 것을 맑고 깨끗하다고 여기느니라. 이 마음의 움직임이 잠시도 머물지 않아 마치 가볍게 흔드는 바람과 같으니, 이것이 곧 번뇌의 최초 근본이 되고 다시 모든 딸린 번뇌의 인연이 되어서 나쁜 갈래의 문을 열어 좋은 갈래를 파괴하느니라.
또 이것이 인연이 되어 탐욕과 진심(瞋心)과 우치를 내도다. 그런가 하면 일체 법과 더불어 그 뛰어난 주재(主宰)가 되어서 일체 법 가운데 마음이 바로 선도(先導)인 만큼 만약 마음이 알음이 있으면 일체 법도 알음이 있는지라, 마음은 마치 화가(畵家)가 모든 물건의 모양을 그리는 것과 같아서, 마음이 마음을 보지는 않지만 마음은 눈이 옳은 업과 옳지 못한 업을 쌓아 모으나니, 이 마음이 돌고 도는 것은 마치 불을 돌리는 바퀴[火輪]와 같고, 이 마음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달아나는 말[馬]과 같으며, 마음은 들불이 활활 거침없이 타오르는 것과 같고, 마음은 큰물이 만물을 자라내는 것과 같도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니라.
보살이 이런 관찰을 할 때 실상 그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므로 모든 보살은 스스로가 그 마음을 다스리느니, 마음이 다스려지면 곧 일체 법이 다 다스려지기 마련이니라. 이러한 것이 이른바 보살이 그 마음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이니라.
다음 보살이 법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옳지 못한 법에 있어서 탐욕ㆍ진심ㆍ우치 따위와 거기에 의지하는 탐욕의 모든 옳지 못한 법과 진심ㆍ우치의 모든 옳지 못한 법을 사실대로 분명히 알아서 그것을 대치(對治)하는 것이니라. 보살이 이 옳지 못한 법을 부지런히 끊어 제거하고는, 곧 일체 옳은 법을 분명히 알아 그 옳은 법 가운데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내어 바른 생각에 머물며, 나아가선 저 법에 성취할 것을 구하여 스스로 실천하고 나서 다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와 같이 수학(修學)하게 하나니, 이러한 것이 이른바 법(法)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이니라.
다음 경계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그 뜻에 맞거나 뜻에 맞지 않거나 모든 빛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접촉의 경계 가운데에 탐욕의 애착을 내지 않고 진심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그것이니라. 이럴 때 보살이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이 형체도 모양도 없는 법 가운데 욕심을 내고 애착을 내지 않아야 하리라. 만약 욕심을 낸다면 이는 곧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은 성질을 갖추는 것으로 바로 명료(明了)하지 않는 성질이고 옳지 못한 성질이리라.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만약 욕심을 낸다면 곧 염착하는 어리석음의 계교와 고집을 일으켜 옳은 법과 옳지 못한 법을 분별할 수 없을 뿐이다. 더구나 이 때문에 나쁜 갈래 가운데 떨어지리라’고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이 공한 법 가운데에 진심을 내지 않을지니, 진심을 내는 자는 곧 스스로가 성내고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이어서 모든 성인들의 꾸지람과 범행(梵行)을 같이하는 이들의 버림을 받기 마련이라’고 한다. 보살이 이런 관찰을 할 때 그 경계 얻을 것에 탐착하지 않을 것을 보살 스스로가 실천하고 나서 다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역시 그와 같이 배우게 하나니, 이러한 것이 이른바 그 경계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이니라.
다음 보살이 그 고요함[阿蘭若]2)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생각하기를, ‘다툼이 없는 실천과
적정(寂靜)한 실천이 곧 고요한 곳에 머무는 것일진대, 모든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 따위로서도 남의 마음을 아는 자라면 능히 나의 이 마음과 마음의 작용하는 법을 알 것이라. 이 때문에 나는 이제 이치답지 않은 뜻 가짐과 그 밖의 다른 생각을 완전히 없애고, 일체 장소에 있어서 이치답지 않은 뜻 가짐을 항상 없애며, 나아가 이치다운 법 가운데에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법을 늘어내고 넓히기 위해 수습(修習)하리라고 하는 것이니라. 이러한 것이 이른바 보살이 그 고요함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이니라.
다음 보살이 도시ㆍ성읍ㆍ촌락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도시ㆍ성읍ㆍ촌락에 들어갈 때 마땅히 보살로서의 실천할 행동을 일으켜서 가서는 안 될 모든 곳을 다 버리고 출가한 사람으로서 가서는 안 될 모든 곳도 다 버리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출가한 사람으로서의 가서는 안 될 곳인가? 이른바 왕관(王官)의 집과 도박의 모임과 술 가게 또는 환락이 어지러운 연회의 자리와 노래하고 춤추는 광대들이 머무는 장소와 그 밖의 일체 출가한 사람으로서 가서는 안 될 곳이 그것이니라. 이 모든 곳을 멀리 떠나서 결코 가지 말아야 하느니, 이러한 것이 이른바 보살이 그 도시ㆍ성읍ㆍ촌락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이니라.
다음 보살이 명예와 이익 따위 일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모든 명예와 이익 따위 일에 있어서 다만 시주를 위해 복밭[福田]이 되어야 하니라. 이 때문에 시주가 마음을 쓰는 대로 받기는 하지만, 그 받는 것에 대해 탐애(貪愛)를 일으키지 않고 취착(取着)을 내지 않으며, 또 계교하거나 고집하지 않고 내 것이라는 생각을 갖지도 않고 내 것이라는 상(相)을 일으키지도 않으면서, 얻는 것에 따라 곧 일체 중생들과 더불어 함께하여 모든 고뇌에 허덕이는 자를 구제해 길러 주어야 하는 것이니라.
이 때문에 보살은 언제나 명예와 이익 따위의 일에 훌륭한 척하지 않고 아만을 내지 않으며,
함부로 교만하거나 방일하지 않고서 보살 스스로가 생각하기를, ‘모든 명예와 이익 따위의 일은 자신의 일이건 남의 일이건, 다 잠시 일어나 오래 머물지 않고, 오래 머물지 않기 때문에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일체 얻는 것이 없는 것이니라. 그 누가 슬기로운 자로서 이 무상하고 오래가지도 않으며 견고하지 않고 안온하지도 않은 법 가운데에 염착하는 마음과 탐애하는 마음을 내겠으며, 또 훌륭한 척하거나 아만을 부리거나 함부로 교만하고 방일하겠느냐?’고 하나니, 이러한 것이 이른바 보살이 그 명예와 이익 따위 일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이니라.
다음 보살이 여래께서 베풀어 설치하신 학문(學門)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생각하기를, ‘과거세의 일체 여래께서 다 이렇게 배우셨고, 이렇게 배우셨기 때문에 이미 바른 깨달음을 이룩해 큰 열반에 드셨구나. 미래세의 일체 여래께서도 다 이렇게 배울 것이고, 이렇게 배우기 때문에 앞으로 바른 깨달음을 이룩해 큰 열반에 드실 것이며, 현재세의 일체 여래께서도 다 이렇게 배우고, 이렇게 배우기 때문에 현재 바른 깨달음을 이룩하여 큰 열반에 드셨도다’ 하고는, 이 때문에 보살이 이 학문에 맑고 깨끗한 마음을 일으켜서 존경함과 동시에 부지런히 힘써 수습한다. 이러한 것이 이른바 보살이 여래께서 베풀어 설치하신 학문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이니라.
다음 보살이 번뇌와 딸린 번뇌의 잡염(雜染)의 생각 두는 곳을 잘 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바른 생각 때문에 일체 딸린 번뇌의 잡염(雜染) 따위 법이 무슨 인(因)으로 일어나고 무슨 연(緣)으로 생기는가를 잘 깨달아 아는가 하면, 보살이 이러한 인으로 일어나고 이러한 연으로 생겨나는 것을 다 분명히 깨달아 앎으로써 그 모든 잡염을 다 완전히 없애는 것이니라. 이러한 것이 이른바 번뇌와 딸린 번뇌의 잡염 따위 법의 생각 두는 곳을 잘 끊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항상 묘한 선정에 머무는 마음을 얻으리라.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항상 누더기 옷[糞掃衣]3)을 입을 수 있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서원(誓願)을 굳게 하고, 둘째 마음을 겸손하게 하며, 셋째 지치거나 게을리 하지 않고, 넷째 모든 집착을 없애며, 다섯째 과실로 보지 않고, 여섯째 공덕으로만 보며, 일곱째 스스로 자랑하지 않고, 여덟째 남을 헐뜯지 않으며, 아홉째 계행이 두루 갖추어지고, 열째 성현들에 친근한 것이 그것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서원을 굳게 하고 성현들에 친근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스스로가 맑고 깨끗한 신심을 갖고 뜻이 두루 갖추어져 모든 여래의 신뢰를 받음으로써 설혹 생명을 보호해야 할 인연을 만나더라도 서원 세운 것을 파괴하지 않고 능히 서원 그대로를 고치거나 바꾸는 일이 없으며, 저 서원을 굳게 함으로 말미암아 곧 그 마음을 겸손하게 하여 아만을 내지 않느니라.
또 마음이 겸손하기 때문에 능히 일체 사람들의 버려둔 누더기 물건을 끌어 모아 깨끗이 씻고 물들이며 바느질을 하지만 싫어하지도 않고 지치거나 게을리 하지도 않고, 싫어하지 않고 지치거나 게을리 하지 않기 때문에 그 하는 일에 따라 모든 집착을 없애고 뛰어난 업을 닦아 나아가 성취하되 능히 이 누더기 옷을 과실로 보지도 않느니라. 그런가 하면 비록 이 옷이 허물어지고 낡아빠진데다가 다시 벼룩과 이가 수두룩하여 온 몸을 덮은 더러운 때가 주렁주렁하더라도 보살은 끝내 그것을 과실로 보지 않으니라.
왜냐하면 이 옷을 공덕으로만 보기 때문이니라. 다시 말하자면 이 옷은 선인(仙人)들의 입는 옷이므로, 비록 욕심을 없앤 성자(聖者)라도 다 여기에 수순함을 그 성종(聖種)4)에 수순하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도 좋은 상서라고 칭찬하신 만큼 이 때문에 스스로가 자랑하지 않고 남을 헐뜯지 않나니, 스스로가 자랑하지 않고 남을 헐뜯지 않기 때문에 곧 계행을 두루 갖출 수 있는가 하면,
맑고 깨끗한 계행을 두루 갖추었기 때문에 일체 성현들에게 친근할 수 있어 그 모든 부처님들이 칭찬하고 모든 보살들이 수호하며, 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한 무리들도 다 서로 돕고, 모든 바라문ㆍ찰제리와 일체 백성들도 함께 와서 예경하고 범행(梵行)을 같이하는 이도 모두들 찬탄하기 마련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항상 누더기 옷을 입을 수 있으리라.”
그때 제개장보살이 나아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은 으레 광대한 실천을 갖추는데, 무엇 때문에 이 추잡하고 졸렬한 실천을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보살이 세간을 구호하기 위해 세간에 수순하여 움직이기 때문에 곧 이러한 실천을 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보살로서도 큰 세력을 갖춘 자가 있고 갖추지 못한 자가 있으므로 저 큰 세력을 갖추지 못한 자로 하여금 대치(對治)를 일으켜서 번뇌를 자라내지 못하게 하므로 이러한 실천을 하는 것이니라.
또 선남자여, 그대 생각엔 어떠하냐?. 그대는 여래의 실천과 풀이[行解]를 관대하다고 하겠느냐? 아니면 천열(淺劣)하다고 하겠느냐?”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변재가 없어 대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의 실천과 풀이를 측량할 이가 없을 뿐더러 여래께서는 법을 증(證)할 것도 없고 법을 볼 것도 없으시니, 이 때문에 여래께서는 어떤 법을 실천하고 풀이할 것이 없으시리라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 생각엔 또 어떠하냐? 여래가 무엇 때문에 이 4대주(大洲)의 모든 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한 무리들과 그 밖의 믿고 아는 것이 저열한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들 가운데에서 이 추잡하고도 졸렬한 실천을 나타내며, 한편으로 또 그들 앞에서 두타(頭陀)의 공덕을 찬탄하는 것이겠느냐?”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모든 중생들을 위해 화도(化度)하려 하시기 때문이고,
또는 처음 대승에 머무는 보살들로 하여금 대치(對治)를 일으켜서 번뇌를 자라내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그러한 실천을 하시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렇고 그러하니라. 큰 힘을 지닌 보살로서 중생들을 성취하고 화도하기 위해 누더기 옷을 입는 것은 이 또한 졸렬하거나 추잡한 실천이 아니니라. 이런 까닭에 보살이 항상 누더기 옷을 입는 것이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다만 3의(衣)를 받고서 지낼 수 있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만족함을 기뻐하고, 둘째 욕심을 적게 부리며, 셋째 희구(希求)하는 것은 완전히 없애고, 넷째 쌓아 모으는 것을 완전히 없앤다.
다섯째 쌓아 모으는 것을 없애기 때문에 헐리거나 잃어버림이 없고, 여섯째 헐리거나 잃어버림이 없기 때문에 모든 고뇌를 없애며, 일곱째 즐겁지 않는 뜻을 없애고, 여덟째 근심과 한탄을 완전히 없애며, 아홉째 느끼는 것이 없고, 열째 부지런히 수습(修習)하기 때문에 번뇌를 다 끊을 수 있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족함을 기뻐하고 부지런히 수습하기 때문에 번뇌를 다 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그곳을 얻음에 따라 만족하게 여겨 기뻐하기 때문에 능히 욕심을 적게 하고, 욕심을 적게 하기 때문에 희구하는 것이 없어 모든 쌓아 모은 것을 없애며, 쌓아 모으는 것이 없기 때문에 헐리거나 잃어버림이 없고, 곧 헐리고 잃어버림이 없기 때문에 곧 헐리고 잃어버림에서 생기는 고뇌를 없애느니라. 즐겁지 않는 뜻이 없기 때문에 곧 근심과 한탄이 없고, 근심과 한탄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느낌이 없으며, 느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부지런히 수습하여 곧 번뇌를 다 끊을 수 있다.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3의만을 받고서 지낼 수 있으리라.
또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곧 다른 실천을 따르지 않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탐욕의 실천을 따르지 않고, 둘째 진심(瞋心)의 실천을 따르지 않으며, 셋째 우치의 실천을 따르지 않고,
넷째 미워하거나 해치는 실천을 따르지 않으며, 다섯째 간탐하거나 질투하는 실천을 따르지 않고, 여섯째 아만의 실천을 따르지 않으며, 일곱째 다른 벗들이 명예가 되는 일을 찾는 실천을 따르지 않고, 여덟째 이익 되는 일을 바라는 실천을 따르지 않으며, 아홉째 천마(天魔)를 공경하는 실천을 따르지 않고, 열째 훌륭한 척하거나 애착하는 실천을 따르지 않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다른 실천을 따르지 않으리라.
또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항상 걸식을 실천하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중생들을 거둬 주기 위해 걸식을 실천하고, 둘째 차례대로 걸식을 실천하며, 셋째 지치거나 게을리 하지 않고서 걸식을 실천하고, 넷째 만족함을 기뻐하여 걸식을 실천하며, 다섯째 분포(分布)하기 위해 걸식을 실천하고, 여섯째 탐착하지 않기 때문에 걸식을 실천하며, 일곱째 분량을 잘 알기 때문에 걸식을 실천하고, 여덟째 좋은 품행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걸식을 실천하며, 아홉째 모든 선근을 원만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걸식을 실천하고, 열째 몸의 생각을 없애기 때문에 걸식을 실천하는 것이라.
선남자여, 보살이 중생들을 거둬 주고 나아가 몸의 생각을 없애기 때문에 걸식을 실천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모든 중생들 가운데 고뇌를 받는 자의 그 선근이 미약한 것을 보고는 그들을 거둬 모든 선근을 두루 갖추게 하기 때문에 걸식을 실천하느니라. 보살이 도시나 촌락에 들어갈 때에는 바른 생각에 머물러서 그 몸을 단정히 하고 행동을 볼 만하게 하며 위의를 올바르게 하고 모든 감관을 고요히 하여, 순리대로 휘둘러보고 옳은 법에 생각을 두어 다니는 곳마다 걸식하지만 차례에 의지함으로써
끝내 빈곤한 사람의 집을 버린 채 바라문ㆍ찰제리ㆍ장자ㆍ거사 등 큰 부호의 집만을 골라 걸식하지 않느니라.
한 집에서 또 한 집으로 차례차례 걸식하여 그 얻어지는 음식의 분량을 알아 만족하면 그치지만, 걸식하러 가지 않는 곳이 있으니, 그 곳은 사나운 개를 기르는 집과 송아지를 갓 나은 집, 맑고 깨끗한 계율을 파괴하여 지옥에 떨어져 능히 요란을 일으킬 자의 집, 그 밖의 남자ㆍ여인ㆍ동남ㆍ동녀들이 다 싫어하는 집들이 그것이니라.
이러한 곳만을 다 멀리 떠나고 그 차례에 따라 걸식하기 때문에 지치거나 게으르지 않고 나무라거나 헐뜯음도 없으며, 저 중생들에게 염애(染愛)하지 않고 성냄과 미워함을 일으키지도 않고 싫어하여 버리지도 않으며, 그 얻는 음식을 주는 대로 받되 곧 만족하고 기뻐하면서 받고나서는 자신이 거처하는 승방(僧坊)에 돌아와 그 옷과 발우를 거두고 손발을 씻고 여래의 불상 앞에서나 여래의 탑 앞에서 존중 공경하여 공양을 마치느니라.
그리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그 걸식한 음식을 네 몫으로 나눠서, 한 몫은 범행(梵行)을 같이 하는 이에게 주고, 다른 한 몫은 빈곤한 중생에게 보시하고, 또 한 몫은 나쁜 갈래에 떨어진 자에게 보시하고, 나머지 한 몫을 자신이 먹느니라. 그런가 하면 보살이 그 음식을 받음에도 염애(染愛)를 내지 않고 교만하거나 방일하지도 않으며, 다만 몸을 유지하기 위해 먹기는 하지만 역시 그 몸을 너무 수척하게 하지도 않느니라.
왜냐하면 만약 너무 수척해질 경우엔 옳은 법을 닦을 때 방해가 되고, 너무 비대해질 경우엔 졸음과 잠만을 증장하기 때문이니라. 보살이 그 옳은 품행을 나타낼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음식을 받으면 바로 정진을 일으켜 모든 게으름을 없애고 점점 보리의 옳은 법을 닦아 나아가 원만하게 하며, 그 보리의 법을 닦아 나아가 원만케 함으로써
아집을 일으키지 않고 아집이 없기 때문에 그 몸의 살[身肉]로써 중생들에게 보시할 수 있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항상 걸식을 실천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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