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제개장보살소문경(佛說除蓋障菩薩所問經) 11권
불설제개장보살소문경 제11권
서천 법호 한역
김달진 번역
그때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법을 어떻게 증득하고 어떻게 깨달을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출세간의 지혜라야만 곧 증득해 들어가서 안으로 스스로가 분명히 깨달을 수 있느니라.”
제개장보살이 여쭈었다.
“어찌 지혜로써 증명하는 그것이 곧 스스로가 마음속으로 깨달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노라. 선남자여, 왜냐하면 지혜란 다만 여실히 모든 법을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니, 자신이 증득해야 하기 때문이니라.”
제개장보살이 여쭈었다.
“저 여러 선남자들이 듣고 생각하고 닦는 지혜로써 법을 증득할 때, 곧 마음속으로 스스로가 깨달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노라. 선남자여, 그들이 지혜 닦을 것을 듣고 생각하는 것은 겨우 들었을 때 곧 마음속으로 스스로 깨달아 들어가는 것은 아니니, 내가 이제 비유를 들어 이 이치를 대략 밝히리라.
선남자여, 어떤 크나큰 들판 가운데 아주 뜨거운 여름철 무렵에 한 사람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오고, 다른 한 사람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온다고 하자. 혹독한 더위에 한창 목이 말라서 견디지 못할 때인지라, 서쪽에서 오는 사람이 동쪽에서 오는 사람에게 묻기를, ‘내가 이제 너무 더워서 갈증을 못 견디겠소. 그대가 오면서 길을 잘 밟았을 터이니 어느 곳에 흐르는 샘ㆍ시원한 못물이 있던가요? 바라건대 나에게 알려 주어 내가 그 물을 마셔 갈증의 괴로움을 덜게 해주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동쪽에서 오는 사람인만큼 동방의 모든 길을 잘 알고 또 물 있는 곳에 그 물 맛이 달고 아름다우며 깊고 얕은 것을 다 아는지라, 곧 대답하기를 ‘그대가 이제 앞을 향해 가면 한 곳에 두 갈래의 길이 있으리니 왼쪽 길을 가지 말고 오른쪽 길을 가시오.
거기에는 동산 숲이 울창한데, 그 가운데 못이 있어 맑은 물이 달고도 아름답고 출렁출렁 가득 찼을 것이오’라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네 생각엔 어떠하냐? 저 갈증 때문에 못 견디던 사람도 겨우 이 일러주는 말을 들음으로 해서 미묘한 못의 맑은 물을 생각할 때 바로 갈증의 괴로움을 제거하고 곧 안으로 스스로가 시원함을 얻겠느냐?”
제개장보살이 여쭈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갈증에 허덕이는 사람이 직접 저 물 있는 곳에 가서 못 가운데의 물을 마시고 나야 이 사람이 갈증을 제거하고 안으로 스스로가 시원해지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듣고 생각하고 닦는 지혜로서는 겨우 듣고 곧 스스로가 안으로 법성을 깨달아 들어감이 아닌 것도 역시 그러하느니라. 그대는 이제 알아 두어라. 크나큰 들판이란 바로 생사의 경계이고, 여름철 뜨거울 때 갈증에 허덕이는 사람이란 바로 일체 중생들이며, 혹독한 더위란 바로 번뇌와 6진(塵)의 애욕 경계이고, 길을 잘 아는 사람이란 바로 보살이 일체 지혜의 길을 잘 아는 것이며, 그 물을 마시는 사람이란 바로 스스로가 안으로 들어가 증명해 깨닫는 자로서 그 법 맛의 뛰어나고 경쾌하며 달고 아름다운 최고의 이치인 모든 법의 진실한 성질을 얻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너는 이제 들어라. 다시 비유로써 설명하리라.
가령 여래가 한 겁(劫) 동안 머물면서 이 남섬부주의 일체 사람들 앞에 하늘 소타(蘇陀)1)의 묘한 빛과 묘한 향내를 칭찬하며, 그 최상의 맑고 깨끗하며 정미한 맛을 마시는 자는 오묘하고 즐거운 감촉을 얻는다고 말한다면, 선남자여, 남섬부주의 사람들이 이러한 말을 들었다 해서 그 빛과 향내를 안으로 분명히 알 수 있겠느냐?”
제개장보살이 여쭈었다.
“알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런 때문에 알아두라. 겨우 들었을 뿐이고 들을 그때에 곧 스스로 안으로 깨달아 법성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니, 그대는 이제 다시 들어라.
만약 어떤 사람이 과일 가운데 어느 과일의 이름을 듣고 자신이 먼저 그 과일을 먹어보고 나서 아직 먹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그 과일의 맛과 빛과 향내를 설명한다면, 선남자여, 네 생각엔 어떠하냐. 저 먹어보지 못한 사람으로서도 그 과일의 맛을 알 수 있겠느냐?”
제개장보살이 여쭈었다.
“알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그러기 때문에 알아두라. 겨우 들을 그때에 곧 스스로 안으로 깨달아 법성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니라.”
그때에 제개장보살이 나아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잘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잘 말씀하셨습니다, 선서(善逝)이시여. 이와 같이 진리의 법은 안으로서만 증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선남자가 이 말씀을 한번 귀에 스치더라도 그는 곧 듣고 생각하고 닦는 법을 두루 갖추리니, 왜냐하면 이 사람은 이미 뒤바뀌지 않는 인(因)을 갖추었기 때문에 이 법을 얻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고 그러하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법계의 이치를 잘 깨닫게 되리라.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공의 경계를 잘 알 수 있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힘의 공함을 알고, 둘째 두려움 없음의 공함을 알며, 셋째 함께하지 않는 불법의 공함을 알고, 넷째 계율 쌓임[戒蘊]의 공함을 알며, 다섯째 선정 쌓임[定蘊]의 공함을 알고, 여섯째 지혜 쌓임[智慧蘊]의 공함을 알며, 일곱째 해탈 쌓임[解脫蘊]의 공함을 알고, 여덟째 해탈 지견 쌓임[解脫知見蘊]의 공함을 알며, 아홉째 공의 공함을 알고, 열째 뛰어난 이치의 공함을 아는 것이라.
비록 이러한 공함을 알더라도 공의 인연 때문에 거기에 어떤 소득이 있으리라는 상(相)을 갖지 않고 공함을 고집하지도 않으며, 공하다는 소견을 일으키지도 않고 공함에 의지하지도 않으며, 다시 그 공의 인연 때문에 없다는 소견[斷見]에 떨어지지도 않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공의 경계를 잘 알 수 있으리라.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곧 상 없는[無相] 행을 잘 닦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바깥의 상을 없애고, 둘째 안의 상을 없애며, 셋째 희론(戱論)의 상을 없애고, 넷째 일체 계교하는 상을 없애며, 다섯째 일체 소득이 있는 상을 없애고, 여섯째 일체 거동(擧動)하는 상을 없애며, 일곱째 일체 헛된 가식의 상을 없애고, 여덟째 일체 반연하는 상을 없애며, 아홉째 그 얻음이 있다고 인식하는 상을 없애고, 열째 그 아는 바의 경계를 인식하는 상을 없애는 것이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상 없는 행을 잘 닦으리라.”
그때에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실천의 상이 곧 보살의 닦는 상 없는 실천이라면, 여래께서 닦는 실천은 또 어떤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알아두어라. 이는 바로 부사의한 자리이니, 왜냐하면 마음의 경계를 떠났기 때문이니라. 일체 중생이 만약 ‘여래도 생각하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는 곧 광란(狂亂)한 말이니라. 모든 여래는 이 언덕[此岸]의 일이나 저 언덕[彼岸]의 일이나 마지막 극단의 일이나 끝내 볼 수도 없고 얻을 수도 없느니라. 왜냐하면 여래의 법은 부사의하여 깊고 깊어 측량하기 어렵고, 그 즈음에 알 수 없는 것이 허공과 같기 때문에 일체 심구[尋]와 사량[伺]의 경계를 벗어나고 일체 소득이 있는 상을 초월하여 모든 생각과 계교와 도량으로서 미칠 바가 아니니라.”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제가 이제 약간의 의심이 있어 감히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래ㆍ응공ㆍ정등정각께서 허락하신다면 제가 질문하겠으니, 바라건대 대략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개장이여, 그대가 이제 질문하려는 것은 이 떳떳한 일이라 하리라.”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누구나 스스로 훌륭한 척하는 자는 곧 정사(正士)가 아니거늘 어떻게 세존께서는 이제 큰 법왕이 되시어 스스로 칭찬해서 말씀하십니까? 혹시 스스로 훌륭한 척하는 것이 아닙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선남자여, 그대의 마음과 뜻이 깊고 굳어서 능히 이런 질문을 내는 것이니, 그대는 마땅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야 한다. 이제 그대를 위해 풀이할 것이니라.”
그때 제개장보살이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여래는 아만(我慢)하는 마음이 없고, 스스로 훌륭한 척하지도 않으며, 이익과 명성을 위해 아만을 내려 하지 않고, 남에게 알리기 위해서나 아첨하고 속이는 마음을 일으키기 위해 아만을 내지도 않느니라. 다만 자신이 얻은 법으로써 널리 일체 중생들을 이롭고 안락하게 할 뿐이니라. 왜냐하면 중생들로 하여금 여래께 맑고 깨끗한 마음과 환희하는 마음을 내게 하기 때문이니라. 또는 법 그릇[法器]이 될 수 있는 자로 하여금 일체의 선한 법을 얻어서 언제나 큰 이익을 길이 얻게 하기 때문이니라.”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중생들은 여래의 뛰어나신 공덕을 알지 못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저 중생들은 실상 알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이 불찰(佛刹) 가운데의 모든 중생들은 신해(信解)하는 마음이 좁고 뜻 가짐이 거칠며, 지혜도 적고 신심도 적으며, 선근이 미약하기 때문에 여래의 뛰어난 공덕을 알 수 없는 것이니라. 이 때문에 여래 자신이 곧장 모든 공덕을 찬탄해 말하는 것은 그 뜻이 중생들로 하여금 맑고 깨끗한 신심을 내게 하여 여래의 모든 뛰어난 공덕을 이룩하려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어떤 사람이 큰 의사가 되어 온갖 병을 잘 치료함으로써 나라에 견줄 사람이 없을 만큼 제일이기는 하지만 그 나라에 이 사람의 그 처방에 밝고 의사로서 뛰어난 공덕을 갖추고 있는 것을 아는 이가 없기 때문에 그때 저 의사가 질병의 고통에 쪼들려 견디지 못하는 자를 보고서
곧 생각하기를, ‘이 사람 질병의 고통은 약의 처방이 좋지 못한 것인즉 내가 이제 그를 위해 치료해 주어야 하리라’라고 한다.
이때 의사가 병자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서 그 병자에게 말하기를, ‘내가 바로 의사로서 의술의 처방에 밝아 온갖 병과 그 병의 원인을 잘 아노라. 이제 그대의 병 고통을 치료해 주겠노라’고 함으로써 그때 저 병자도 이 말을 듣고 곧 의사에게 신심과 존경하는 마음을 내어 그를 의지하게 되며, 저 의사가 즉시 그 병을 치료하여 낫게 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그대 생각엔 어떠하냐? 저 의사가 병자 앞에서 자기가 훌륭한 것을 말한 것이 자찬이라고 하겠느냐?”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것은 자찬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여래도 역시 그러한지라, 큰 의왕(醫王)이 되어 중생들의 모든 번뇌 병을 잘 치료함에 있어서 그 병의 원인을 알고 큰 법의 약을 베풀지만 중생들이 그 무명 따위 모든 번뇌 병에 쪼들릴 때 여래가 이것을 보고 곧 그 앞에 나아가서 여래의 뛰어난 공덕 갖춘 사실을 칭찬해 말하여 그 병고에 쪼들려 못 견디는 중생들로 하여금 여래가 말씀하는 뛰어난 공덕을 듣고 나서 능히 맑고 깨끗한 신심과 존중하는 마음을 내어 여래에게 의지하게 하느니라. 이 때문에 뛰어난 큰 의왕인 여래가 저 병자를 위해 큰 법의 약을 베풀어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그 번뇌의 중병을 함께 소멸하게 하노라.
선남자여, 어떤 것이 큰 법의 약이냐 하면, 이른바 탐욕이 많은 중생은 부정(不淨)하다는 관찰을 일으키고, 진심(瞋心)이 많은 중생은 자비한 관찰을 일으키며, 우치한 중생은 인연으로 생김[緣生]의 관찰을 일으켜서 곧 여래의 자찬하는 그 뛰어난 공덕을 보는 것이니라.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모든 바람[願]에 대한 집착을 없앨 수 있으리라.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비록 보시를 실천하여 바람을 세우지만 그 보시에 집착하지 않고, 둘째 계율을 지키지만 그 계율에 집착하지 않으며, 셋째 인욕을 행하지만 그 인욕에 집착하지 않고, 넷째 정진을 일으키지만 그 정진에 집착하지 않으며, 다섯째 선정을 닦지만 그 선정에 집착하지 않고, 여섯째 지혜를 닦지만 그 지혜에 집착하지 않는다.
일곱째 3유(有)에 의지하지만 그 세계에 집착하지 않고, 여덟째 보리를 구하지만 그 보리에 집착하지 않으며, 아홉째 바른 도를 행하지만 그 바른 도에 집착하지 않고, 열째 열반에 들어가지만 그 열반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보살은 모든 것에 집착을 떠나야 하므로 비록 세간의 일체 소행에서라도 모두 집착함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모든 바람을 얻고 집착을 없애게 되리라.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곧 인자한 몸의 두루 갖춤을 얻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차별이 없는 사랑이고, 둘째 종류가 없는 사랑이며, 셋째 법에의 사랑이고, 넷째 선정의 사랑이며, 다섯째 해치지 않는 사랑이고, 여섯째 이롭게 하는 사랑이며, 일곱째 일체 중생들에게 평등한 마음을 베푸는 사랑이고, 여덟째 평등한 마음으로서 성냄과 미워함이 없는 사랑이며, 아홉째 시방에 두루 넓고도 큰 사랑이고, 열째 세간에 뛰어난 사랑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인자한 몸의 두루 갖춤을 얻을 것이니라.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곧 가엾이 여기는 몸의 두루 갖춤을 얻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모든 고뇌의 중생으로서 구호 받을 데가 없거나 돌아갈 데가 없는 자를 보살이 보고는 보리심을 불러일으키고, 둘째 보리심을 불러일으키고 나서는 그 얻을 바의 법을 구하며,
셋째 괴로움을 겪어가면서 부지런히 법을 구해 얻어 성취해서는 널리 중생들에게 큰 이익을 일으키고, 넷째 간탐(慳貪)하는 중생에게는 그로 하여금 보시를 실천하게 한다.
다섯째 계율을 훼손하는 중생에게는 그로 하여금 계율을 지키게 하고, 여섯째 진심을 내는 중생에게는 그로 하여금 인욕의 실천을 닦게 하며, 일곱째 게으른 중생에게는 그로 하여금 정신을 일으키게 하고, 여덟째 마음이 산란한 중생에게는 그로 하여금 선정의 마음에 머물게 하며, 아홉째 지혜가 없는 중생에게는 그로 하여금 지혜를 닦게 하고, 열째 보살이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어떤 어려움과 괴로움이 있더라도 보리의 뛰어난 실천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가엾이 여기는 몸의 두루 갖춤을 얻을 것이니라.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곧 기뻐하는 실천을 잘 닦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보살 스스로가 3유(有)의 활활 타오르는 번뇌를 벗어나기 때문에 환희심을 내며, 둘째 오랫동안의 그 윤회ㆍ왕래ㆍ계박(繫縛:매고 묶여 있음)의 끈을 끊기 때문에 환희심을 내며, 셋째 보살이 갖가지의 심구(尋求)를 완전히 없애고서 스스로가 이미 생사 바다 속의 모든 추악하고 복잡한 것을 건넜기 때문에 환희심을 내고, 넷째 보살 스스로가 이미 오래된 교만의 당기[幢]을 부수었기 때문에 환희심을 낸다.
다섯째 보살이 지혜의 금강으로써 스스로가 이미 번뇌의 높은 봉우리를 부수어 가는 티끌 가루까지도 없기 때문에 환희심을 내고, 여섯째 보살 스스로가 안온함을 얻고 나서 다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 안온함을 얻게 하기 때문에 환희심을 내며, 일곱째 보살이 세간의 그 탐욕ㆍ애착ㆍ고집ㆍ계박ㆍ어두움에 덮여 자유를 얻지 못해 길이 수면 속에 잠겨 있는 가운데에서 스스로 잠에서 깨어 밝은 눈을 뜨고는 다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다 깨어나게 하기 때문에 환희심을 내고, 여덟째 보살 스스로 나쁜 갈래[惡趣]를 벗어나서
다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다 나쁜 갈래를 벗어나게 하기 때문에 환희심을 낸다.
아홉째 중생들이 오랫동안 생사의 넓은 벌판 험난한 가운데 처하여 홀로 짝 없이 돌아다녀 그 길을 모르고 방향을 모르기에 보살이 스스로가 그 모든 것을 벗어나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이끌어 주고 보여 주기 때문에 환희심을 내고, 열째 보살이 일체 지혜의 경계와 친근할 수 있기 때문에 환희심을 내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기뻐하는 실천을 잘 닦을 것이니라.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곧 버리는 실천을 잘 닦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눈으로 비록 물질을 보기는 하지만 버리는 행동을 실천하고, 또 눈의 알음알이와 물질의 경계에 더하고 덜함과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것을 보지 않으며, 둘째 귀로 비록 소리를 듣거나, 셋째 코로 비록 냄새를 맡거나, 넷째 혀로 비록 맛을 느끼거나, 다섯째 몸으로 비록 접촉하는 것을 깨닫는다.
여섯째 뜻으로 비록 법을 알긴 하지만 버리는 행동을 실천하고, 또 귀의 소리와 코의 냄새와 혀의 맛과 몸의 접촉과 뜻의 법인 그 모든 경계에 더하고 덜함과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것을 보지 않으며, 일곱째 비록 그 괴로움을 실천하는 것을 보기는 하지만 버리는 행동을 실천하고, 또 괴로움을 실천하는 그 더하고 덜함과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것을 보지 않으며, 여덟째 비록 그 더욱 괴로움[苦苦]과 버리는 행동을 실천하고 또 더욱 괴로움에 더하고 덜함과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것을 보지 않는다.
아홉째 비록 그 무너지는 괴로움을 보긴 하지만 버리는 행동을 실천하고, 또 무너지는 괴로움에 더하고 덜함과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것을 보지 않으며, 열째 할 일을 이미 끝낸 중생을 보고서 보살이 그에게 환희심을 내어 곧 생각하기를, ‘내가 그를 제도하려고 했는데, 그는 이미 스스로가 건넜구나’ 하고서, 이 때문에 버리는 실천을 닦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버리는 실천을 잘 닦을 것이니라.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곧 신통의 유희를 얻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목숨 버림을 나타내 보이고, 둘째 모태에 들어가 몸 받음을 나타내 보이며, 셋째 동자의 모습으로 궁중에서 유희하는 것을 나타내고, 넷째 출가하며, 다섯째 고행하고, 여섯째 보리의 도량에 나아가며, 일곱째 등정각(等正覺)을 이룩하여 마군에게 항복을 받고, 여덟째 적정(寂靜)한 모습을 나타내며, 아홉째 묘법의 바퀴를 굴리고, 열째 큰 열반에 들어감을 나타내는 것이니라.”
그때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보살이 도솔타천(兜率陀天)에의 목숨 버리는 것을 나타내 보이고, 큰 열반에 들어가는 것을 나타내 보이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도솔타천의 모든 중생들은 상견(常見)의 생각을 내는 자가 많으니라. 저 중생들이 보살의 그 일체 세간에서 최상 최승이고 또 높이 뛰어남을 보고는 보는 자가 싫어하지 않아 5가지 욕망의 경계에 더럽히지 않으며, 능히 목숨 버리는 생각을 내자 저 중생들이 이것을 보고는 상견의 생각을 바꿔 무상(無常)의 생각을 내고, 무상의 생각에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곧 방일하지 않는 실천을 일으킨다.
또 방일한 마음을 내는 중생으로써 비록 보살에게 즐겨 사랑하고 믿어 존중하는 마음을 내더라도 모든 경계에 애착하기 때문에 보살이 계신 곳에 와서 친근히 공경하여 받들어 섬겨 저 중생이 곧 생각하기를, ‘보살도 오랫동안 여기에 머물진댄 나 역시 오래 머물러 방일한 마음을 내리라’고 하느니라. 보살이 저 중생으로 하여금 싫어 없애려는 마음을 내어 방일하지 않게 하고 방일하지 않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물러나지 않게 하려고 하나니, 보살이 이 때문에
도솔타천에서 목숨 버림을 나타내 보였느니라.
선남자여, 만약 중생들 가운데 모태에 들어가 몸 받는 것으로써 제도할 자가 있으면, 보살이 곧 모태에 들어가 몸 받는 모습을 나타내어 그 보는 자로 하여금 희유하다는 마음을 내게 하고, 보살이 모태 안에 처해 있으면서 저 중생들을 위해 알맞은 설법을 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물러나지 않게 하나니, 보살이 이 때문에 몸을 받아 태어남을 나타내느니라.
선남자야, 또 중생들 가운데 동자로서 그 궁중에 유희하는 모습으로써 제도할 자가 있거나 신해(信解)하는 마음이 낮고도 용렬한 중생이 있으면, 보살이 그 뜰을 성숙시키고 법을 호지하기 위해 곧 동자로서 그 궁중에 유희하는 모습을 나타내며, 또 중생들 가운데 출가하는 모습으로써 제도할 자가 있으면 보살이 그들을 성숙시키기 위해 곧 출가하는 모습을 나타내느니라.
선남자여, 만약 집착하고 추악한 저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 따위를 마땅히 고행하는 모습으로써 제도할 수가 있으면, 보살이 곧 그들을 성숙시키기 위해서나 모든 외도들에게 항복을 받기 위해 고행하는 모습을 나타내느니라.
선남자여, 또 중생들 가운데 오랜 세월에 걸쳐 보살을 생각[念]하되 ‘내가 언제라도 보리의 도량에 나아가 수순하여 공양하는 일을 일으키리라’고 하는 자가 있으면, 보살이 그러한 중생을 성숙시키기 위해 곧 보리의 도량에 나아감을 나타내 보이고, 보리의 도량에 이르러서는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다 수순해 공양함으로써 저 공양하는 중생들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물러나지 않게 하노라.
선남자여, 만약 중생들 가운데 스스로가 아만(我慢)을 믿어 훌륭한 척하는 자가 있으면, 보살이 그로 하여금 아만의 마음을 고치게 하려고
도량에 앉아 등정각을 이룩하여서 마군들에게 항복을 받는 모습을 나타내며, 또 중생들 가운데 고요함을 좋아하여 이른바 뛰어난 최상의 증득을 얻는다고 하는 자가 있으면, 보살이 곧 그를 위해 등정각 이룩하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데 보살이 그 등정각을 이룩할 때 삼천대천세계의 갖가지 음성이 다 고요함으로써, 저 고요함을 좋아하는 중생이 이 삼천대천세계가 다 고요한 것을 보고 함께 발원하여 말하기를, ‘바라건대 저희들도 이와 같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위를 이룩하게 하옵소서’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중생들 가운데 스승이 되기를 좋아하여 오로지 한 가지 뜻으로 바람을 세워 구하기는 하지만 벗어나는 법을 알지 못하고 후세의 인과(因果)를 모르는 자가 있으면, 보살이 그 중생으로 하여금 선근을 성숙하여 법 그릇[法器]이 되도록 하기 위해 곧 바른 길을 열어 보이고 그 때문에 등정각을 이룩하고 나서는 가시국(迦尸國)에 나아가 열두 가지 행상(行相)의 묘법바퀴를 세 번 굴리느니라.
선남자여, 또 중생들 가운데 열반에 드는 모습으로써 제도할 자가 있으면, 보살이 곧 그를 위해 큰 열반에 드는 모습을 나타내 보이나니, 선남자여, 보살이 이 때문에 도솔타천에의 목숨 버림을 나타내 보이고 내지 큰 열반에 드는 모습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신통의 유희를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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