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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5769 불설제개장보살소문경(佛說除蓋障菩薩所問經) 14권

by Kay/케이 2025.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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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제개장보살소문경(佛說除蓋障菩薩所問經) 14

 

불설제개장보살소문경 제14권


서천 법호 한역
김달진 번역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곧 한 번의 법[一坐法]을 얻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한번 보리의 도량 가운데 앉음으로써 모든 마군들이 놀라고 겁내어 아주 움직이지 않으며, 둘째 출세간의 선정을 증득함으로써 아주 움직이지 않으며, 셋째 출세간의 혜(慧)를 갖춤으로써 아주 움직이지 않으며, 넷째 출세간의 지(智)를 얻음으로써 아주 움직이지 않으며, 다섯째 공의 성질을 깨달아 증득함으로써 아주 움직이지 않으며, 여섯째 모든 법을 사실대로 깨달아 앎으로써 아주 움직이지 않으며, 일곱째 바른 도법을 얻음으로써 아주 움직이지 않으며, 여덟째 진리의 경지에 머묾으로써 아주 움직이지 않으며, 아홉째 진리의 성질을 증득함으로써 아주 움직이지 않으며, 열째 일체 지혜를 이룩함으로써 아주 움직이지 않는 것이 그것이라.
선남자여, 이 일좌(一坐)란 것은 바로 일체 지혜의 자리란 말이고, 법좌(法座)라는 말이니라. 이 때문에 보살이 한번 그 자리에 오르면 아주 움직이지 않느니, 이것이 이른바 일좌의 법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일좌의 법을 얻으리라.
또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항상 일식(一食)을 받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탐욕을 내지 않고, 둘째 염착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니라. 이를테면 일식을 받고나서는 그때이건 때가 아니건 간에 몸을 돕는 모든 다른 음식은 마땅히 받지 않아야 할 것은 다시 받지 않으니, 이른바 소유(蘇油)ㆍ석밀(石密)과 식물의 뿌리ㆍ줄기ㆍ꽃ㆍ열매 등 갖가지 맛 좋은 것을 다 받지 않는다.
셋째 다른 사람이 받는 그 소유(蘇油) 따위 맛 좋은 것을 볼 때 미워하거나 해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넷째 질투하는 마음을 내지도 않으며, 다섯째 보살이 만약
때 아닌 중병에 걸려 먹어야 하는 것은 병을 치료하기 위해 마땅히 받고, 여섯째 보살이 만약 생명에 어려움이 있어서 먹어야만 할 때도 마땅히 받으며, 일곱째 보살이 만약 옳은 법에 장애가 있어서 먹어야 할 때도 마땅히 받고, 여덟째 보살이 받고 나서 후회하지 않으며, 아홉째 보살이 받고 나서 의심하지 않고, 열째 보살이 그 받을 때마다 약(藥)이라는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항상 일식(一食)을 받으리라.
또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곧 고요한 곳[阿蘭若]에 잘 머무르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오래도록 범행(梵行)을 닦고, 둘째 율의(律儀)를 잘 알며, 셋째 모든 감관이 원만하고, 넷째 다문(多聞)을 갖추며, 다섯째 큰 능력을 지니고, 여섯째 아집을 없애며, 일곱째 마치 들 짐승[野獸]과 같고, 여덟째 몸이 멀리 머물 수 있으며, 아홉째 현전에 바로 고요하고, 열째 염리(厭離)함도 없고 애착함도 없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오래도록 범행(梵行)을 닦아 물리어 떠나는[厭離] 일도 없고 애착함도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부처님의 그 최상 법률 가운데 집을 버리고 출가하여 3(輪)이 맑고 깨끗하며 계행을 두루 갖추고 체성(體性)이 훌륭함으로써 율의(律儀)를 잘 알아 그 거동이 올바르며,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상ㆍ중ㆍ하의 법을 모두 수학함으로써 다른 인연을 빌리지 않고서도 이른바 그 가르침이 이치와 출리(出離)하는 법을 스스로가 다 깨달아 알며, 또 모든 죄와 그 죄를 벗어나는 법을 아는가 하면, 이러한 것은 마땅히 완전히 없애고 이러한 것은 마땅히 공경해야 한다는 것까지 모두 아느니라.
또 그 죄와 나무람과 헐뜯음을 받아야 할 것은 널리 참회하고 덮거나 숨기지 않으며,
또 이런 것은 죄가 있고 이런 것은 죄가 없는 줄을 아는가 하면, 그 가볍고 무거운 상ㆍ중ㆍ하의 죄까지도 모두 알며, 또 세간에서 모든 업으로 달리 이룩되는 과(果)를 다 사실대로 깨달아 아느니라. 그리하여 이러한 보살은 모든 감관이 줄지 않아서 몸매가 원만하고 몸이 원만하기 때문에 곧 고요한 곳에 생활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머물기 때문에 이곳이 고요하여 모든 요해(嬈害)가 없는가 하면, 가까운 것도 먼 것도 아니어서 걸식하기에 편리하고 샘물이 달고도 깨끗하여 사용하기에 수고롭지 않느니라.
또 이곳이 사랑스러운 것은 나무숲이 울창하고 꽃과 열매가 무성하여 다 두루 갖추고 모든 벌레와 짐승을 떠나 바위굴이 안온하며, 비록 높기는 하지만 평평하기에 마음이 쾌락하고도 흐뭇해서 잠잠히 홀로 있으며, 나아가 보살이 이 같은 고요한 곳에 의지해 편안이 머물게 됨으로써 그 익혀 외울 것과 과거에 들었던 모든 전교(典敎)를 밤낮 6시(時)1)로 읽고 외워 음운(音韻)이 창달되어서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고, 동작이 고요함과 동시에 마음이 바깥으로 끌리지 않고서 다 맑고 깨끗하여 모든 경계를 휴식시키고, 교의(敎義)를 생각함에 있어 그 졸음과 잠을 없애느니라.
만약 저 고요한 곳에 머물러 있다가 혹시 국왕이나 국왕의 신하, 사문ㆍ바라문ㆍ찰제리, 그 밖의 일체 백성들이 보살이 있는 처소에 오면, 즉시 그 앞에 공경을 일으켜 맞이하면서 말하기를, ‘잘 왔습니다. 대왕이여, 이제 여기에 앉으시오’라고 한다. 그리고는 곧 편한 대로 그 자리를 깔아 주지만 왕이 앉을 때에는 같이 앉고 왕이 앉지 않으면 같이 서며, 다시 왕을 관찰하되 만약 그 모든 감관에 어떤 동란(動亂) 있는 것이 보이면 즉시 칭찬하여 말하기를, ‘쾌합니다. 대왕이여, 왕께서는 훌륭한 이익을 얻어 크나큰 국경을 통치할 것입니다. 왕의 경내에 계율을 지키는 이와 큰 덕을 갖춘 이가 많이 있고, 또 다문(多聞)한 사문과
바라문들이 함께 모여 있으며, 도적이나 왕관(王官)들의 요란을 꾸미는 일도 없습니다’고 하느니라.
다시 왕을 관찰함에 있어서 왕의 모든 감관이 고요하고 거동이 조용하여 법을 받을 수 있으면 곧 갖가지 법을 베풀어 말하되, 왕이 만약 갖가지 법을 좋아하지 않을 때에는 모든 염리(厭離)해야 하는 법과 순수해야 하는 법을 베풀어 말하고 이 염리해야 하는 법마저 좋아하지 않을 때에는 곧 여래의 그 광대한 위덕과 뛰어난 법을 베풀어 말하며, 혹은 그 밖의 바라문ㆍ찰제리들이나 일체 인민들이 오더라도 그들의 응함에 따라 다 이렇게 해야 하리라.
보살이 이 다문(多聞)을 갖춤으로 말미암아 큰 세력을 지녀 능히 법을 잘 말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큰 환희심을 내고 맑고 깨끗한 마음과 애락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며, 또 보살이 이 세력을 갖춤으로 말미암아 곧 힘을 불러일으켜 중생들의 번뇌를 대치(對治)하고 다문과 세력을 얻게 한다.
이 때문에 보살이 곧 아집에서 떠나는가 하면, 아집에서 떠나기 때문에 고요한 곳에 머물러 자유로워 두려움이 없고 놀라거나 겁내지도 않고 이 현전의 고요함에 처하여 모든 시끄러움을 떠나는 것을 마치 들짐승처럼 한다. 그러나 보살은 그들 짐승이 항상 놀라고 겁내고 또 허물이 있는 것과는 같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그들 짐승들이 사람과 사람의 거처하는 곳을 멀리 떠나 피해 달아나고 멀리 도망치는 것은 그 생명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보살이 시끄러운 곳을 멀리 떠나는 것은 다만 일체 세간에 휩쓸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고, 남자ㆍ연인 또는 동남ㆍ동녀들의 그 시끄러운 일이 서원(誓願)을 세운 마음을 산란케 하여 방해되지 않을까를 염려하기 때문이니라. 이런 까닭에 지식(止息)하는 실천을 닦아 현전의 고요함을 얻는가 하면, 고요함을 얻으므로 말미암아 그 고요한 곳에 뛰어난 공덕이 있음을 볼 수 있고,
공덕을 보고서 고요함에 머물기 때문에 곧 염리(厭離)함도 없고 염착(染着)함도 없느니라. 나아가 이 때문에 염리할 것이 없는 법과 염착할 것이 없는 법을 성취할 수 있나니, 이것이 이른바 보살이 오래도록 범행을 닦아 염리함도 없고 염착함도 없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고요한 곳에 잘 머무를 수 있으리라.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항상 나무 밑에 앉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마을과 너무 가까운 거리의 나무 밑에 의지해 앉지 않으며, 둘째 마을과 너무 먼 거리의 나무 밑에 의지해 앉지 않으며, 셋째 가시 숲이 우거진 나무 밑에 앉지 않으며, 넷째 덩굴풀이 엉클어진 나무 밑에 앉지 않으며, 다섯째 마른 잎나무 밑에 앉지 않으며, 여섯째 원숭이가 있는 곳의 나무 밑에 앉지 않는다.
일곱째 나는 새가 있는 곳의 나무 밑에 앉지 않으며, 여덟째 사나운 새가 머무는 곳의 나무 밑에 앉지 않으며, 아홉째 도로에 가까운 곳의 나무 밑에 앉지 않으며, 열째 나쁜 사람이 머무는 곳의 나무 밑에 앉지 않음이니라. 왜냐하면 보살이 이러한 곳을 떠나서 나무 밑에 의지해 앉아야만 곧 몸이 경쾌하고 편안하며 마음이 흐뭇해지기 때문이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항상 나무 밑에 앉으리라.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항상 맨땅에 앉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 언제나 장벽(墻壁)에 의지해 앉지 않으며, 둘째 나무숲 밑에 의지해 앉지 않으며, 셋째 풀 쌓아 둔 곳에 의지해 앉지 않으며, 넷째 산 중 허리 사이에 의지해 앉지 않으며, 다섯째 강 언덕 옆에 의지해 앉지 않으며, 여섯째 추위를 막는 도구를 두지 않으며,
일곱째 바람을 막는 도구를 두지 않으며, 여덟째 비를 물리치는 도구를 두지 않으며, 아홉째 더위를 피하는 도구를 두지 않으며, 열째 이슬을 받는 도구를 두지 않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비록 항상 맨 땅에 앉더라도 혹시 중병에 걸려 몸이 극도로 쇠약해졌을 때에는 당연히 저 승방(僧坊) 가운데에 머물러야 하지만 보살이 그때 생각하기를, ‘승방에 머무는 것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번뇌를 대치(對治)하여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애착을 없앴기 때문이라. 부처님께서 두타(頭陀)의 공덕을 칭찬해 말씀하신 만큼, 나도 이제 역시 승방에 머물러 있긴 하지만 이는 다만 번뇌를 끊어 없애고 애착을 없앴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보살이 모든 시주들을 거둬 주기 위해 비록 승방에 머물러 있더라도 항상 맨 땅이라는 생각을 일으켜야 하리니,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항상 맨 땅에 앉으리라.
또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능히 무덤 사이에 머무르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보살이 곳곳마다 좋은 데를 머물게 되어도 다 염리(厭離)하는 생각을 내고, 둘째 그 어느 때에서나 항상 죽음의 생각을 일으키며, 셋째 항상 남아 있는 생각을 일으키고, 넷째 두루 붉은 빛을 꿰뚫어보는[觀] 생각을 하며, 다섯째 두루 검푸른 어혈[瘀]을 꿰뚫어보는 생각을 하고, 여섯째 두루 피고름을 꿰뚫어보는 생각을 하며, 일곱째 두루 부풀어 터짐을 꿰뚫어보는 생각을 하고, 여덟째 바짝 말라버림을 꿰뚫어보는 생각을 하며, 아홉째 이리저리 흩어짐을 꿰뚫어보는 생각을 하고, 열째 항상 뼈만 얽혀있다고 꿰뚫어보는 생각을 하는 것이라.
선남자여, 무덤 사이에 머무는 모든 보살은 항상 인자한 마음을 일으키고 이롭게 하는 마음을 넓혀 일체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며, 계행을 맑고 깨끗하게 닦아 가지는 것을 두루 갖추어 고기를 먹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무덤 사이의 주위에 사람 아닌 무리들과 귀신이 많이 의지해 머무는지라, 혹시 그들이 보살이
고기를 먹는 것을 볼 때 맑고 깨끗한 마음과 애락(愛樂)하는 마음은 내지 않고 도리어 희롱하고 괴롭힐 생각을 하기 때문이니라.
또 선남자여, 무덤 사이에 머무는 보살이 만약 승방에 들어가면 먼저 여래의 탑 앞에 공경 예배한 다음에 늙은이와 존자에게 받들어 경례하고 끝으로 젊은 비구들에게 문안하되 대중 스님들의 평상에는 앉지 않아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세간의 상(相)을 호지하기 때문이며, 또다시 무덤 사이에 머무는 보살은 성자(聖者)에게 수순하고 세간의 모든 우부(愚夫)들을 멀리하는지라, 어떤 홀로 사는 비구가 자기의 상좌를 가져와서 저 무덤 사이의 보살을 받들어 그 상좌에 앉기를 청하더라도 보살이 그럴 때 굳이 사양하고 않지 앉느니라.
그러나 다시 이 비구의 뜻이 끝내 변하거나 후회함이 없을 것을 자세히 살펴보고 다른 비구들이 헐뜯거나 나무라지 않을 것을 관찰하고 나서 그 상좌에 앉기는 하지만 즉시 마음을 낮추어 저 전타라(旃陀羅)와 동자들과 다름이 없어야 한다.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무덤 사이에 항상 머물 수 있으리라.
또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항상 앉을 수 있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고뇌에 쪼들리는 몸 때문에 항상 앉는 것이 아니고, 둘째 고뇌에 쪼들리는 마음 때문에 항상 앉는 것이 아니며, 셋째 졸음에서 벗어나려고 하여 항상 앉는 것은 아니고, 넷째 몸의 피로를 위해 항상 앉는 것이 아니며, 다섯째 보살이 보리의 실천을 원만케 하기 위해 항상 앉는 것이고, 여섯째 마음을 전일한 경계에 머물게 하기 위해 항상 앉는 것이며, 일곱째 성스러운 도를 바로 눈앞에 나타나게 하기 위해 항상 앉는 것이고, 여덟째 보리의 도량에 오르기 위해 항상 앉는 것이며, 아홉째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항상 앉는 것이고, 열째 모든 번뇌를 끊기 위해 항상 앉는 것이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항상 앉을 수 있으리라.
또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곧 편함에 따라 평상을 설치하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그 평상에 탐착하지 않으며, 둘째 스스로가 평상을 설치하지 않으며, 셋째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평상을 설치하게 하지 않으며, 넷째 모양을 내기 위해 평상을 설치하지 않으며, 다섯째 혹은 다른 처소의 풀이나 잎에도 편함에 따라 앉을 수 있으며, 여섯째 모든 처소의 그 독한 벌레ㆍ모기ㆍ등에 따위 있는 굴(窟)은 멀리 피하여 평상을 설치하지 않아야 한다.
일곱째 보살이 누울 때 오른 옆구리를 평상에 대고 발을 포개고서 누워 옷으로 몸을 덮고는 바른 사상ㆍ바른 지식으로써 명확한 생각과 전일한 생각만을 일으키며, 여덟째 수면(睡眠)의 달콤한 맛에 집착하지 않으며, 아홉째 오른쪽으로 누운 것이 피로하다 해서 왼쪽으로 돌아누워 다시 수면의 달콤함을 구하지 않으니, 이는 다만 네 가지 원소[四大]인 몸을 기르기 위한 때문이며, 열째 항상 모든 옳은 법을 생각하며 바로 눈앞에서 얻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편함에 따라 상좌를 설치하리라.
또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곧 상응[瑜伽]하는 실천을 이룩하리니, 이른바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부정하다고 꿰뚫어보는[不淨觀] 실천을 많이 닦으며, 둘째 인자한 마음으로서의 꿰뚫어보는[慈心觀] 실천을 많이 닦으며, 셋째 인연으로 난다고 꿰뚫어보는[緣生觀] 실천을 많이 닦으며, 넷째 모든 과환(過患)을 잘 끊어 없애며, 다섯째 공하다고 꿰뚫어보는[空觀] 실천을 많이 닦으며, 여섯째 무상하다고 꿰뚫어보는[無相觀] 실천을 많이 닦으며, 일곱째 상응함을 꿰뚫어보는[瑜伽觀] 실천을 많이 닦으며, 여덟째 항상 부지런히 수습(修習)하며, 아홉째 마음이 변화[變悔]하지 않으며, 열째 계행을 두루 갖추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부정하다고 꿰뚫어보는 실천을 닦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홀로 외진 곳에 머물러 현전에 고요해서 그
단정한 몸이 조용한데다가 명료(明了)한 뜻을 일으켜 가부좌하고 앉아서 바른 생각에 편히 머물러 마음이 바깥으로 반연하지 않고 생각하기를, ‘인간의 일체 음식은 그 맑고 깨끗한 맛이거나 최상의 맛이거나 묘한 향내가 두루 갖추거나 혹은 거칠고 메마른 맛이거나, 이 모든 음식은 다 몸에 촉감되는 욕심의 불이어서 부정한 냄새와 싫증낼 만한 더러움을 이룩하는 것이로다.
그런데도 세간의 어리석은 범부들은 이에 어긋나는 소견을 고집하여 그 맛에 대한 애착을 내는구나. 우리들 성자(聖者)는 바른 법률에 의지해 바른 지혜로써 사실대로 관찰하느니, 이 때문에 항상 염리(厭離)하는 마음을 내어야 하리라’고 하느니, 이것이 곧 이른바 보살이 부정하다고 꿰뚫어보는 실천을 닦는 것이니라.
다음 보살이 인자한 마음으로서의 꿰뚫어보는 실천을 닦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홀로 외진 곳에 머물러 그 단정한 몸이 조용한데다가 명료한 뜻을 일으켜 가부좌하고 앉아서 바른 생각에 편히 머물러 마음이 바깥으로 반연하지 않고 생각하기를, ‘만약에 중생으로서 성내고 해치는 마음을 많이 내어 옳지 못한 업을 짓되 나에게 아무런 까닭도 없이 원망하고 침해함을 일으키거나, 또는 과거세ㆍ미래세ㆍ현재세의 3세 가운데 일체 중생으로서 나에게 일체 원망하고 침해하는 마음을 내면, 그 모든 것을 다 소멸시키고서 그들로 하여금 보리의 도량에 앉게 하리라’고 한다. 보살이 이러한 깊은 뜻으로 항상 생각하는 것은 다만 말로서가 아니고 사실 그대로 실천하기 때문이라. 이것이 이른바 보살이 그 인자한 마음으로서 꿰뚫어보는 실천을 닦는 것이니라.
다음 보살이 인연으로 난다고[緣生] 꿰뚫어보는 실천을 닦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그 이미 탐욕을 내고 진심을 내며 해치는 마음을 낸 것에 대해 이러한 법 가운데에서 생각하기를, ‘만약에 법이 나는 것이 있다면 다 인연을 따라 나는 것이라, 이 인연의 법이 바로 인연을 따라 나는 것인 만큼 그 인연을 낸 것이 이미 인연법에 속했거늘 어찌 슬기로운 자로서 이 인연으로 나는 공한 법 가운데에
내[我]가 있다는 생각을 내겠느냐?’고 하느니, 이것이 이른바 보살이 그 인연으로 난다고 꿰뚫어보는 실천을 닦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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