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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5765 불설제개장보살소문경(佛說除蓋障菩薩所問經) 10권

by Kay/케이 2025.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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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제개장보살소문경(佛說除蓋障菩薩所問經) 10

 

불설제개장보살소문경 제10권


서천 법호 한역
김달진 번역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곧 큰 바다와 같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큰 보배 덩어리가 되고, 둘째 깊어서 밑까지 통하기가 어려우며, 셋째 넓고 크기가 한량없고, 넷째 차츰차츰 깊어가며, 다섯째 죽은 시체를 묵히지 않고, 여섯째 다 동일한 맛이며, 일곱째 온갖 흐름을 용납해 받아들이고, 여덟째 조수가 때를 잃지 않으며, 아홉째 수족(水族)이 다 의지하고, 열째 끝남이 없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큰 보배 덩어리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마치 큰 바다가 온갖 보물을 널리 쌓음으로 해서 남섬부주 가운데의 일체 인민들이 다 그 보물을 채취하되 다함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일체 지혜의 공덕 보물을 널리 쌓음으로 해서 일체 중생들이 다 이 보물을 채취하지만 역시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보살이 큰 보배 덩어리가 되는 것이니라.
또 선남자여, 마치 큰 바다가 깊어서 밑을 통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 일체 중생들이 보살의 법에 대해 그 끝을 측량할 수가 없다. 또 마치 큰 바다의 넓고 크기가 한량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 공덕과 지혜가 넓고 크기가 한량이 없다. 또 마치 큰 바다가 차츰 차츰 깊어가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 일체 지혜가 깊어가고 일체 지혜가 점점 깊어가며 일체 지혜가 지극히 깊어 가느니라.
또 선남자여, 마치 큰 바다가 죽은 시체를 묵히지 않는 것은 그 큰 바다의 법이 으레 그렇기 때문인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 번뇌와 좋지 못한 벗과 함께 의지하지 않는 것은 그 보살의 법이 으레 그렇기 때문이니라.
또 선남자야, 마치 큰 바다에 흘러들어오는 온갖 물이 다 동일한 짠맛이 되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 쌓아 모든 그 일체 선한 법이 다 동일한 맛이니, 그것이 바로 일체 지혜의 맛이니라.
또 선남자여, 마치 큰 바다가 뭇 흐름을 다 용납해 받아들이지만 그 바다의 물이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은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 한량없는 그 선한 법의 물을 다 용납해 받아들이되 보살의 지혜는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느니라. 또 마치 큰 바다의 조수가 그때를 잃지 않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 그 응하는 대로 중생들을 성숙시키고 교화하고 제도하지만 역시 때를 잃지 않느니라.
또 선남자여, 마치 큰 바다가 모든 수족(水族)이 의지하는 장소가 되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 일체 중생과 일체 선한 법이 의지하는 장소가 된다. 또 마치 큰 바다의 물을 일체 중생들이 다 사용하지만 끝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 널리 중생들을 위하여 법요(法要)를 베풀어 말하지만 그 법이 끝이 없다. 그러므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큰 바다와 같으리라.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곧 미묘한 지혜를 얻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벗어남[出離]을 잘 구하고, 둘째 벗어나는 법을 잘 알며, 셋째 모든 법이 평등한 것을 잘 알고, 넷째 모든 법이 눈 홀림 같은 것을 잘 알며, 다섯째 일체 법의 형상을 잘 알고, 여섯째 깊고 깊어 측량하기 어려운 인연으로 생김의 법을 잘 알며, 일곱째 부사의한 업을 잘 알고, 여덟째 모든 말하는 이치를 잘 알며, 아홉째 참다운 이치를 깨닫고, 열째 그 진실함을 잘 관찰하는 지혜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벗어남을 잘 구하고 진실함을 잘 관찰하는 지혜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생각하기를, ‘나는 마땅히 모든 세간의 형상을 관찰함에 있어서 그 세간의 탐욕의 불이 이글거리고 진심(瞋心)의 연기가 자욱하며 우치(愚癡)의 어둠이 캄캄하게 가리어서 중생들이 의탁할 데가 없음을 관찰해 보리라’고 한다.
또 보살이 생각하기를, ‘이 모든 중생들을 어떻게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하고는 보살이 곧 부지런히 그 벗어남과 벗어나는 법을 구하느니, 벗어나는 법을 얻음으로 말미암아 곧 모든 법이 평등한 것을 알게 되고, 모든 법이 평등한 것을 앎으로 말미암아 곧 여실히 모든 법이 눈 홀림 같은 것을 알 수 있고, 모든 법이 눈 홀림 같은 것을 앎으로 말미암아 곧 일체 법의 형상을 여실히 알 수 있으며, 법의 형상을 앎으로 말미암아 곧 깊고 깊어 측량하기 어려운 그 인연이 생기는 법을 생각해 관찰할 수 있고, 인연으로 생기는 법을 생각해 관찰함으로 말미암아 곧 부사의한 업을 깨달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보살이 비록 세간의 모든 법이 그 참다움이 없는 줄을 알면서도 역시 갖가지의 업보를 나타나 보이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미묘한 지혜를 얻어 능히 모든 불보살께서 말씀하신 이치를 분명히 알고, 분명히 앎으로 말미암아 능히 참다운 그 이치를 깨달으며, 참다운 이치를 깨닫기 때문에 곧 진실함을 관찰하는 지혜를 얻고, 진실함을 관찰해 보기 때문에 능히 중생들을 제도하여 생사를 벗어나게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미묘한 지혜를 얻으리라.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곧 수순하여 응하는 변재(辯才)를 얻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모든 법을 열어 보이되 나라는 것이 없고, 둘째 중생이란 것이 없으며, 셋째 수명이란 것이 없고, 넷째 양육(養育)이란 것이 없으며, 다섯째 보특가라[補特迦羅]라는 것이 없고, 여섯째 조작하는 것이 없으며, 일곱째 느끼는 것이 없고, 여덟째 아는 것이 없으며, 아홉째 보는 것이 없고, 열째 일체 법이 공하여 도무지
주재(主宰)가 없기에 다 허망하여 참답지 않고 분별하는 모든 법이 다만 인연을 따라 나기 때문에 있는 것임을 나타내 보임이니라.
선남자여, 만약 일체 법이 나 없음을 얻어서 서로 알맞게 된다면 그는 곧 법성(法性)에 수순한 것이라, 이것으로 말미암아 일체 법에 내가 없고 중생이 없고 수명이 없고 양육이 없고 중생으로서의 내가 없고 조작하는 것이 없고 느끼는 것이 없고 아는 것이 없고 보는 것이 없어서 이치 그대로에 서로 알맞아 곧 법성에 수순하느니라.
또 이것으로 말미암아 일체 법이 공하여 도무지 주재가 없기에 다 허망하여 참답지 않고 분별하는 모든 법이 다하면 인연을 따라 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서 이치 그대로 서로 알맞아 곧 법성에 수순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약 법성에 수순한다면 곧 법성에 서로 어긋나지 않고, 어긋나지 않기 때문에 곧 모든 법을 바르게 말할 수 있으며, 법을 바르게 말하기 때문에 그 법성에 잘 들어가고, 법성에 들어가기 때문에 곧 저 일체 법을 열어 보일 수 있으며, 법을 열어 보이기 때문에 그의 변재를 이르되 수순하여 응하는 변재라 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수순하여 응하는 변재를 얻으리라.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곧 즐겁게 설하는 변재를 얻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집착함이 없고, 둘째 다함이 없으며, 셋째 끊임이 없고, 넷째 대중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다섯째 비겁하지 않고, 여섯째 겁내지 않으며, 일곱째 함께하지 않고, 여덟째 교만하지 않으며, 아홉째 치우침이 없고, 열째 거리낌이 없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와 같이 열 가지 법을 닦는다면 곧 즐겁게 설하는 변재를 얻으리라.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곧 맑고 깨끗한 변재를 얻으리니, 그 이른바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막히거나 되씹는 일이 없고, 둘째 잡되거나 어지러움이 없으며,
셋째 비열함을 멀리 떠나보내고, 넷째 말이 거만하거나 거세지 않으며, 다섯째 이치에 손실이 없고, 여섯째 문자에 결함이 없으며, 일곱째 음성이 모자라거나 빠짐이 없고, 여덟째 때를 모르는 일이 없으며, 아홉째 말씨가 무디지 않고, 열째 분명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보살로서의 모든 변재는 막히거나 되씹는 일이 없으니, 왜냐하면 보살은 어떤 대중 가운데에서라도 겁약함이 없기 때문이니라. 또 보살로서의 모든 변재는 잡되거나 어지러움이 없으니, 왜냐하면 보살의 지혜는 태연하여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니라. 또 보살로서의 모든 변재는 비열함이 없으니, 왜냐하면 보살이 대중 가운데 처해 있는 모습이 마치 사자가 모든 두려움을 없앤 것과 같기 때문이니라. 또 보살로서 모든 변재는 그 말이 거만하거나 거세지 않으니, 왜냐하면 보살은 이미 모든 번뇌를 떠났기 때문이니라.
만약 번뇌가 있다면 말이 곧 거만하거나 거셀 것이고, 없으면 곧 그렇지 않기 마련이며, 또 보살로서의 모든 변재는 이치에 손실이 없느니, 왜냐하면 이미 법을 얻었기 때문이니라. 만약 법을 얻지 못했다면 곧 이치 가운데 손실이 있는 것이고 얻었으면 곧 그렇지 않기 마련이니라. 또 보살로서의 모든 변재는 문자가 결함이 없느니, 왜냐하면 모든 의론을 널리 풀이하기 때문이니라.
만약 의론의 풀이가 좁다면 곧 문자에 결함이 있을 것이고 넓다면 그렇지 않기 마련이며, 또 보살로서의 모든 변재는 그 음성이 모자라거나 빠짐이 없느니, 왜냐하면 보살은 일체의 음성을 묘하게 풀이하기 때문이니라. 만약 풀이하지 못한다면 곧 그 음성이 모자라거나 빠짐이 있을 것이고 풀이한다면 곧 그렇지 않기 마련이며, 또 보살로서의 모든 변재는 그때를 모르는 적이 없어서 먼저 말해야 할 것을 뒤에 말하지도 않고 뒤에 말해야 할 것을 먼저 말하지도 않느니, 왜냐하면 보살은 모든 때를 잘 알기 때문이다.
또 보살로서의 모든 변재는 그 말씨가 무디지 않아서
모두들 뜻을 흐뭇하게 하고 다 즐거이 듣게 하느니, 왜냐하면 이미 말의 과실을 멀리 떠나보냈기 때문이니라. 만약 말의 과실이 있다면 그 말이 곧 무딜 것이고 없다면 그렇지 않기 마련이며, 또 보살로서의 모든 변재는 분명하지 않음이 없으니, 왜냐하면 보살은 그 근성(根性)이 영리하기 때문이며, 만약 우둔한 근성이면 곧 밝지 않고 이(利)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맑고 깨끗한 변재를 얻으리라.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곧 일체 중생이 기뻐하는 변재를 얻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사랑하는 말씨이고, 둘째 화락한 얼굴 모습으로써 빈축을 멀리 떠난 말씨이며, 셋째 이치 그대로의 말씨이고, 넷째 법 그대로의 말씨이며, 다섯째 평등한 말씨이고, 여섯째 스스로가 훌륭한 척하지 않는 말씨이며, 일곱째 남을 깔보지 않는 말씨이고, 여덟째 염착(染着)함이 없는 말씨이며, 아홉째 부닥쳐 괴롭힘이 없는 말씨이고, 열째 갖가지 변재를 두루 갖추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은 능히 사랑하는 말로서 중생들로 하여금 함께 환희심을 내게 하고, 또 보살은 항상 화락한 좋은 모습을 나타내어 빈축을 멀리 떠남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함께 환희심을 내게 한다. 또 보살은 항상 이치 그대로의 말씨와 아름답고 묘한 말씨를 냄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함께 환희심을 내게 하고, 또 보살은 항상 법다운 말씨와 이익 되는 말씨를 냄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함께 환희심을 내게 한다.
또 보살은 항상 중생들을 위해 평등하게 설법함으로써 그 중생들로 하여금 다 환희심을 내게 하고, 또 보살은 스스로가 훌륭한 체하지 않고 교만하거나 과장하는 허물을 멀리 떠남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다 환희심을 내게 한다. 또 보살은 남을 깔보지 않고 항상 중생들을 위해 공경 설법함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다 환희심을 내게 하고, 또 보살은 모두 염착을 여의고
깨끗한 바라밀을 갖춤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다 환희심을 내게 한다.
또 보살은 모든 촉뇌(觸惱)를 없애고 인욕의 힘을 많이 갖춤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다 환희심을 내게 하고, 또 보살은 갖가지 변재를 갖추어 항상 남의 뜻을 즐겁게 하는 말을 냄으로써 그 중생들로 하여금 환희심을 내게 하나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를 수행하는 이라면 곧 일체 중생들에게 환희심을 내게 하는 변재를 얻으리라.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곧 믿고 순종하는 설법을 할 수 있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법 그릇[法器]이 아닌 중생에게 설법하지 않고, 둘째 장애가 있는 자에게 설법하지 않으며, 셋째 어떤 소견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설법하지 않고, 넷째 사악한 외도들에게 설법하지 않으며, 다섯째 하고 싶은 의욕을 일으키지 않는 자에게 설법하지 않고, 여섯째 맑고 깨끗한 마음을 내지 않는 자에게 설법하지 않는다.
일곱째 아첨하거나 그릇된 마음이 있는 자에게 설법하지 않고, 여덟째 생활을 구하려는 자에게 설법하지 않으며, 아홉째 이익에 탐착하여 간탐과 질투에 얽매인 자에게 설법하지 않고, 열째 소경ㆍ귀머거리ㆍ벙어리인 자에게 설법하지 않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선남자여, 보살이 법을 아끼지 않고 법을 숨기지도 않아 그 모든 중생들을 다 가엾이 여겨서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 버리지는 않지만, 만약 중생으로서 법 그릇이 아닌 자가 있으면 보살이 곧 생각하기를, ‘이런 중생은 여래의 법률 가운데 버리는 행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하느니라.”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그러시다면 모든 불보살은 어떤 중생을 위해 설법을 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신심을 갖춘 중생이라면 불보살이 그를 위해 설법해야 하며,
또 선근이 이미 성숙된 자이거나 법 그릇인 자이거나 과거 부처님께 온갖 공덕의 뿌리를 심은 자이거나 아첨하고 속이는 일이 없는 자이거나 거짓으로 위의를 나타내지 않는 자이거나 이익에 탐착하지 않는 자이거나 깊은 마음을 두루 갖춘 자이거나 선지식들에게 포섭된 자이거나 훌륭한 모습을 두루 갖춤으로써 사람들이 보기를 좋아하는 자이거나 근본 성질이 총명하고 영리하여 법을 들은 가운데 그 이치를 다 풀이하는 자이거나 법을 얻음에 따라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는 자이거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능히 수행하는 자이라면, 이러한 중생에겐 보살이 곧 그를 위해 설법해야 한다.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믿고 순종하는 설법을 할 수 있으리라.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곧 설법하는 법사가 되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불법을 닦아 모으기 때문에 설법하지만 불법을 얻을 수 있다고 보지 않고 불법을 닦아 모을 것이 있다고 보지 않으며, 둘째 바라밀다를 닦아 모으기 때문에 설법하며 바라밀다를 얻을 수 있다고 보지 않고 닦아 모을 것이 있다고도 보지 않으며, 셋째 보살의 법을 닦아 모으기 때문에 설법하지만 보살의 법을 얻을 수 있다고 보지 않고 닦아 모을 것이 있다고도 보지 않고, 넷째 번뇌를 끊기 때문에 설법하지만 번뇌가 있다고 보지 않고 끊는다고도 보지 않는다.
다섯째 탐욕을 싫어 여의고 적멸(寂滅)하기 때문에 설법하지만 탐욕을 싫어 없애고 적멸할 수 있다고 보지 않고, 여섯째 수다원(須陀洹)1)과 아나함(阿那含)2)의 과위를 얻기 위해 그 때문에 설법하지만 수다원과 아나함을 얻을 수 있다고 보지 않고 그 과위를 보지도 않으며, 일곱째 아라한(阿羅漢)의 과위를 얻기 위해 그 때문에 설법하지만 아라한을 얻을 수 있다고 보지 않고 그 과위를 보지도 않고,
여덟째 연각의 과위를 얻기 위해 그 때문에 설법하지만 연각을 얻을 수 있다고 보지 않고 그 과위를 보지도 않으며, 아홉째 아집(我執)의 집착을 끊기 위해 그 때문에 설법하지만 아집을 끊으리라고 보지 않고 그 아집의 집착을 보지도 않는다.
열째 업보를 나타내 보이기 위해 그 때문에 설법하지만 업보를 얻을 수 있다고 보지 않고 그 업보를 보지도 않음이 그것이니라. 왜냐하면 이러한 일체의 법은 다 참다운 본체가 없어 다만 거짓 이름으로 베풀어 말할 뿐이고 이름마저도 없기 때문이니, 그 까닭이 무엇일까?
다시 말하자면 문자(文字)가 본래 제 성질이 없는 것이고 법은 그 문자를 떠났기 때문에, 다만 세속이 헛되고 거짓이어서 이름이 없는 그 가운데에 베풀어 펼쳤을 뿐이고 모든 법의 이름을 내세우기는 하지만, 저 이름 자체가 공하여 본래 헛되고 거짓일 뿐이다. 이 때문에 뛰어난 이치와 진리 가운데 헛되거나 거짓인 이름이 없고, 헛되거나 거짓인 이름이 없기 때문에 뛰어난 이치 가운데엔 허망한 법이 없으며, 허망한 법이란 어리석은 사람들을 속이고 의혹시키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설법하는 법사가 되리라.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능히 법성을 순조로이 관찰할 수 있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무엇인가? 법이란 첫째 보살이 비록 법성을 순조롭게 관찰하지만 빛깔과 모양을 파괴하지 않고, 비록 법성을 순조롭게 관찰하지만 느낌과 생각과 지어감과 의식의 모양을 파괴하지 않고, 둘째 비록 법성을 순조롭게 관찰하지만 요계(欲界)의 모양을 파괴하지 않으며, 셋째 비록 법성을 순조롭게 관찰하지만 형상 세계[色界]의 모양을 파괴하지 않고, 넷째 비록 법성을 순조롭게 관찰하지만 무형 세계[無色界]의 모양을 파괴하지 않는다.
다섯째 비록 법성을 순조롭게 관찰하지만 모든 법의 모양을 파괴하지 않고, 여섯째 비록 법성을 순조롭게 관찰하지만 모든 법의 수순한다는 모양을 보지 않으며, 일곱째 비록 법성을 순조롭게 관찰하지만 중생이란 모양을 보지 않고, 여덟째 비록 법성을 순조롭게 관찰하지만 없다는 소견[斷見]에 떨어지지 않으며, 아홉째 비록 법성을 순조롭게 관찰하지만 바른 도를 잃지 않고, 열째 비록 법성을 순조롭게 관찰하지만
지혜의 방편을 잃지 않음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능히 법성을 순조롭게 관찰할 수 있으리라.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법계의 이치를 잘 풀이할 수 있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지혜가 있어야 하고, 둘째 선지식들에게 포섭되어야 하며, 셋째 정진을 일으켜야 하고, 넷째 모든 장애의 더럽힘으로부터 떠나야 하며, 다섯째 맑고 깨끗한 실천을 잘 닦아야 하고, 여섯째 법을 존중하여 찬탄해야 하며, 일곱째 공의 관찰[空觀]을 잘 닦아야 하고, 여덟째 얻을 것이 있다는 소견을 떠나야 하며, 아홉째 바른 도로 나아가야 하고, 열째 진실한 법을 보아야 하는 것이라.
선남자여, 보살이 지혜를 갖춤으로써 모든 선지식을 부지런히 구할 수 있으며, 선지식을 봄으로써 환희심을 내어 스승과 같은 생각으로 친근하게 의지하며, 선지식들에게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정진을 일으켜 일체 옳지 못한 법을 끊고 일체 맑고 깨끗한 선법을 원만히 할 수 있고, 부지런히 수행하여 일체 장애의 더러움을 멀리 버림으로써 가벼우면서도 안락함을 얻어 맑고 깨끗한 실천을 잘 닦아 몸과 말과 마음의 일체 과실을 없앨 수 있느니라.
맑고 깨끗함으로 말미암아 그 얻은 법을 존중하고 찬탄하며, 법을 존중함으로 말미암아 공의 관찰[空觀]을 많이 닦을 수 있으며, 공의 관찰을 많이 닦음으로써 얻을 것이 있다는 소견을 일으키지 않으며, 얻을 것이 있다는 소견을 버림으로써 바른 도를 순조롭게 실천하며, 바른 도에 들어감으로써 진실함을 관찰할 수 있느니라.”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진실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사실 그대로의 이치가 곧 진실이니라.”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사실 그대로란 어떤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허망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 그대로라고 이르느니라.”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허망하지 않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진리가 그것이니, 진리 아닌 것이 없고
다른 진리도 없는 것이니라.”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을 진실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 법은 안으로서만 증득하고 문자로서나 언어로서는 표시할 수 없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이 법은 모든 문자를 벗어나기 때문이니, 모든 언어를 떠났기 때문이며, 일체 언어의 경계를 초월하고 언어의 길을 벗어나 모든 희론(戱論)을 없애며, 조작과 조작 아님을 떠나서 움직임도 없고 고요함도 없고 모든 머트러운[尋] 생각과 세밀한 생각을 떠난 이 부사의한 경계이며, 형상이 없는가 하면 형상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모든 형상의 경계를 멀리 떠나며, 범부의 실천을 벗어나고 마군의 경계를 초월하며 일체 번뇌의 경계를 초월하고 모든 의식의 경계를 떠나서 그 머묾이 없는 최상의 고요한 경계 즉 성스러운 지혜의 경계에 편히 머무는 것이니라.
이 때문에 이 법은 안으로서만 증득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때가 없고 더러움이 없는 결백하고 맑고 깨끗한 것이며, 최상이고 최승이자 제일이며 견줄 데 없어서 항상 머물러 견고하여 그 마지막 경계까지 파괴함이 없는 법인만큼, 여래가 세간에 출현하거나 세간에 출현하지 않거나 간에 이 법은 항상 머물기 마련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이 법을 구하기 위해 백천 가지 실천하기 어려운 고행을 겪느니라. 이런 까닭에 이 법을 얻고 나서는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다 이 법에 머물게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때문에 이 법을 말하되 ‘진리라 하고 참다운 경계라 하며, 일체 지혜라 하고 일체 종지라 하며, 부사의한 경계라 하며, 두 가지가 아닌 경계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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