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불설대승보살장정법경(佛說大乘菩薩藏正法經) 18권
대승보살장정법경 제18권
서천 역경삼장 조산대부 시광록경 전범대사 사자사문 신 법호 등 한역
변각성 번역
6. 보시바라밀다품 ②
“또 사리자여, 열 가지 칭찬할 법이 있다. 보살이 만일 청정하게 구족했으면 보시를 행해야 한다.
이 칭찬할 법이란, 이른바 유위(有爲)를 벗어나기 때문에 유위의 결과를 얻는 것이니, 보살이 이렇게 보시하면 열 가지 칭찬할 법을 얻을 것이다.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 먹는 것을 보시하는 것이니 장수(長壽)를 얻고, 둘째 마실 것을 보시하는 것이니 일체 갈애(渴愛)의 번뇌가 쉬어지며, 셋째 수레를 보시하는 것이니 이롭고 즐거운 일을 얻고, 넷째 좋은 의복을 보시하는 것이니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일으켜 금 일산[金蓋]을 얻는 것 같으며, 다섯째 바르는 향과 화만을 보시하는 것이니, 계율ㆍ다문(多聞)ㆍ등지(等持)의 묘한 향을 바르는 장식을 얻을 것이다.
여섯째 묘한 향과 가루 향을 보시하는 것이니 사지가 부드럽고 향기로운 향을 얻고, 일곱째 온갖 맛있는 것을 보시하는 것이니 맛 가운데 상미(上味)와 사람 가운데의 묘한 상을 갖추고, 여덟째 의지할 곳을 보시하는 것이니 일체 중생을 위해 집이 되고 섬이 되며 구원이 되고 귀의가 되며 나아갈 곳이 되며, 아홉째 병에 대한 의약을 보시하는 것이니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감로(甘露)의 묘한 즐거움을 원만히 구족하고, 열째 만일 갖가지 도구를 보시하면 보리분법(菩提分法)의 훌륭하고 묘한 도구를 원만히 구족할 것이다.
이런 열 가지 보시는 칭찬할 법이니, 보살이 보리를 구할 때는 일체의 칭찬을 받을 것이다.
또 열 가지 칭찬할 법이 있다. 보살이 만일 청정히 하면
보시를 행해야 한다.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 만일 등불을 보시하면 곧 여래의 5안(眼)의 청정함을 얻을 것이요, 둘째 만일 아주 묘한 노랫소리를 보시하면 곧 하늘 귀의 청정함을 얻을 것이며, 셋째 만일 금ㆍ은ㆍ유리ㆍ차거(硨磲)ㆍ마노(瑪瑙)ㆍ산호ㆍ호박(琥珀)ㆍ마니(摩尼)ㆍ진주 및 다른 보배를 보시하면 곧 여래의 32종류의 대장부의 상을 얻을 것이다.
넷째 만일 갖가지 묘한 보배와 갖가지 묘한 꽃을 보시하면 곧 여래의 80종호(種好)를 얻을 것이며, 다섯째 만일 코끼리ㆍ말ㆍ수레를 보시하면 곧 많은 대중의 호위를 받을 것이며, 여섯째 만일 뛰어나고 묘한 동산 숲을 보시하면 곧 선정ㆍ해탈ㆍ등지(等持)ㆍ등지(等至)를 원만히 구족할 것이며, 일곱째 만일 재물이나 곡식 창고를 보시하면 곧 법보(法寶)의 창고를 원만히 구족할 것이다.
여덟째 만일 종과 하인을 보시하면 곧 하는 일이 자재하고 부처님처럼 자연의 지혜를 원만히 구족할 것이며, 아홉째 만일 처자와 권속을 보시하면 곧 가장 훌륭하고 사랑스럽고 위없는 정등정각(正等正覺)을 원만히 구족할 것이요, 열째 만일 4대주(大洲)의 주인이 풍부하고 즐거운 자리를 보시하면 곧 보살의 일체 선법을 얻고 일체지를 원만히 구족할 것이다.
이런 열 가지 보시는 칭찬할 법이니, 보살이 보리를 구할 때는 일체의 칭찬과 거둠을 얻을 것이다.
또 열 가지 칭찬할 법이 있다. 만일 보살이 청정할 수 있으면 보시를 행해야 한다.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 만일 5욕(欲)의 묘한 즐거움을 보시하면 계율ㆍ선정ㆍ지혜ㆍ해탈ㆍ해탈지견(解脫知見) 등 모든 무더기가 청정해질 것이요, 또 일체 오락 등이 다 뜻대로 될 것이다. 둘째, 만일 두 발을 보시하면 곧 법의(法義)의 발을 원만히 갖추어 보리의 도량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만일 두 손을 보시하면 곧 법의 손으로 항상 남에게 원만하고 구족하게 줄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만일 그 귀를 보시하면 곧 모든 기관을 원만히 갖추어 결함이 없을 것이다. 다섯째, 만일 그 코를 보시하면 모든 기관을 원만히 갖출 것이다.
여섯째, 만일 그 몸의 모든 지분(支分)을 다 보시하면 몸에 아무 결함이 없고 부처님 몸처럼 청정해지리라. 일곱째, 만일 그 눈을 보시하면 곧 법안(法眼)이 청정해질 것이다. 여덟째, 만일 그 피와 살을 보시하면 일체 중생의 진실한 신명과 진실한 보시로 그 목숨을 잘 보호할 것이다. 아홉째, 만일 그 골수를 보시하면 곧 금강처럼 견고한 무너지지 않는 몸을 얻을 것이다. 열째, 만일 위로 머리를 나누어 보살마하살에게 보시하면 곧 최상의 삼계에 편히 머물러 현재에서 원만하게 구족한 일체지(一切智)를 증득할 것이다.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이 보리를 구할 때 이렇게 보시하면 이런 상은 일체 불법을 원만히 하여 칭찬을 받을 것이다.
사리자여, 지혜로운 보살은 그 매우 깊은 지혜로 세간이 즐기는 재물을 즐기지 않고, 다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부지런히 구하고, 감로의 법을 구하며, 큰 깨달음의 지혜를 구하고, 고요한 열반을 구한다. 보살은 세간의 일체 좋아하는 물건과 묘한 즐거움을 모두 버리나니,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의지하기 때문이다.
사리자여, 비유하면 저 세간의 농사짓는 사람이 먼저 밭을 갈려고 하면 우선 견고한 나무를 의지하고 다음에는 연장을 만들고 소를 앞세워 땅을 갈고 김을 매는 것과 같다. 그리고 농사의 수확으로 신명(身命)을 기르는데,
그 농부가 신명을 보존하기 위해서다. 금은 보물도 다 마련하고 재물과 곡식과 의복 등도 다 마련한다. 왜냐하면 재물이 곡식만 못하고 곡식이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보살마하살도 이와 같아서 만일 때와 장소를 따라 세간이 좋아하는 재물을 보시하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의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저 소들이 먼저 푸른 풀을 먹고, 다음에는 차거나 더운 물을 마신다. 물과 먹이가 조화되면 곧 젖[乳]이 되고, 다음에는 타락[酪]이 되며, 뒤에는 연유[生酥]가 되고, 다음에 숙소(熟酥)가 된다. 이렇게 차례로 다 되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먼저 세간이 좋아하는 재물로 보시하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의지하여 좋아하는 대로 다 성취한다.
혹은 저 전륜성왕이 되고, 혹은 세 가지 훌륭한 상을 성취하나니, 이른바 보살의 10지(地)와 여래의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이다. 또 천 가지 사업을 성취하여 18불공불법(不共佛法)을 얻고, 또 천 가지 사업을 성취하여 부처의 60가지 청정하고 묘한 음성을 얻으며, 또 백 가지 사업을 성취하여 여래의 한 대인상(大人相)을 얻고,
또 2백 가지 사업을 성취하여 가장 뛰어나고 청정한 여래의 육계(肉髻) 모양[烏瑟膩沙頂相]을 얻으며, 또 백 가지 공덕의 묘한 상을 성취하여 여래께서 가진 큰 법라(法螺)의 소리를 원만히 갖추고, 또 백천 구지(俱胝) 공덕의 묘한 상을 성취하여 여래의 곱고 희며 가지런하고 빽빽하고 묘한 치아의 모양을 얻느니라.
사리자여, 그러므로
여래의 훌륭한 업의 과보를 보살이 다 성취함을 알아야 한다. 만일 한 생각 자심(慈心)을 일으켜 모든 거지들에게 그 요구를 따라 보시하면 저 긍가의 모래 수와 같은 마음을 내어 부처의 삼마지를 성취할 것이다. 모든 부처님은 삼마지에서 일어난 것임을 알아야 하나니, 여래ㆍ응공ㆍ정등정각께서는 낱낱 털구멍에서 백 가지 삼마지를 나타내시어 그 교화가 자재하느니라.
사리자여, 이와 같은 여래의 모든 신통한 사업과 불법의 훌륭한 모양은 다 보살이었던 전생에 큰 행을 닦아 세간이 좋아하는 재물을 여래께 보시하고 여래께서 거두어 주셨기 때문이며, 감로의 법을 구하고 열반을 구했기 때문이다.
사리자여, 이 때문에 보살마하살이 세간이 좋아하는 재물을 보시하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결과를 의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사리자여, 과거 아승기겁 이전, 다시 무량 무수 불가사의 겁 이전의 일을 나는 생각한다. 그때 세간에 나타나신 부처님께서 계셨으니, 그 이름은 복생(福生) 여래ㆍ응공(應供)ㆍ정등정각(正等正覺)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었다. 그 부처님의 수명은 천 세이며, 그 회중에는 백천의 큰 필추들이 있었는데 다 큰 아라한으로서 번뇌를 모두 없애고 마음의 자재를 얻어 저 언덕에 이르렀었다.
그때에 베 짜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얼굴이 단엄하여 누구나 그를 좋아하였다. 그 사람의 집은 부처님 세존께서 계시는 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다. 그는
집에서 하던 일을 다 마치고 해가 져서 항상 나갈 때가 되면 그 집을 나와 먼저 세존이신 복생여래께서 계신 곳으로 갔다.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서는 청정한 마음을 내어 세존께 실 하나를 바치면서 말씀드렸다.
‘저는 지금 이 실을 세존께 바칩니다. 부처님께서는 가엾이 여겨 받아 주십시오. 저는 이 선근(善根)으로 오는 세상에 온갖 섭법(攝法)을 얻기를 원하나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그것을 받으셨다. 그는 그 뒤로부터 부처가 될 때까지 그렇게 차례로 5백 개의 실을 세존께 바쳤다. 그 때문에 15겁 동안은 악취에 떨어지지 않았다. 또 그 선근으로 천 구지의 생 동안 전륜성왕이 되었고, 또 그 선근으로 천 구지의 생 동안 제석천왕이 되었으며, 또 그 선근으로 장차 사람의 몸을 얻으면 부드러운 상이 사랑스럽게 될 것이었다.
최초에는 훌륭한 사업을 하면서 천 구지의 부처님을 친근하여 공양하고 존중하였다. 향ㆍ꽃ㆍ등불ㆍ바르는 향ㆍ음식ㆍ의복ㆍ당기[幢]ㆍ번기[幡]ㆍ보배 일산[寶蓋]ㆍ의약ㆍ도구 등을 공양하고, 최후에는 다시 아승기겁을 지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것인데, 그 이름을 선섭수(善攝受) 여래ㆍ응공ㆍ정등정각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세존이라 할 것이다.
그 부처님 세존께서 세상에 머무시는 수명은 20구지 년이며, 그 회중에는 20구지 나유다(那庾多)의 큰 필추들이 있는데, 모두 아라한으로서 번뇌를 모두 없애고 마음의 자재를 얻어 피안에 이를 것이다. 5구지의 큰 보살들은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편히 머물러 바른 법을 연설하여 한량없고 무수한 중생들을 널리 제도하고 이익과 즐거움을 준 뒤에 대열반에 들 것이다. 그 부처님 세존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바른 법이 만(滿) 천 년 동안 세상에 머물 것이다. 그리하여 불사를 널리 지을 것인데, 지금 내가 열반 등에 드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사리자여, 그대는 보아라. 이와 같이 그 베 짜는 사람이 청정한 마음을 내어 한 오라기 실을 여래께 바치고, 그와 같이 차례로 불법을 성취하였으니, 그것은 청정한 마음이 광대했기 때문이다.
사리자여,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만일 마음이 광대하지 않고 또 정근하지 않으면 뛰어난 과보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만일 마음이 청정하여 세간이 좋아하는 재물을 의지하여 힘을 따라 조금이라도 보시하면 곧 모든 좋은 과보를 얻을 것이다.
또 지혜로운 보살은 뛰어난 지혜의 힘으로 훌륭한 이익을 많이 짓나니, 왜냐하면 힘이 광대하기 때문이요, 한량없이 지은 바를 회향하기 때문이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이치를 거듭 밝혀 게송을 설하셨다.
보시는 좋은 색상(色相)을 구하지 않고
수용(受用)과 풍요(豊饒)함도 구하지 않고
다만 위없는 부처님의 보리만을 구하나니
조그만 보시 때문에 많은 이익을 얻는다.
명칭이나 좋은 영예를 구하지 않고
이 세간의 쾌락도 또한 구함이 없다.
생겨났다 사라지는 모든 일에 바람을 끊고
부처님의 큰 과보 이외에 다른 법 안 구하네.
음식이나 의복이나 또 다른 모든 도구
어디를 가나 그것들은 다 구하지 않고
털끝만큼이나 보시할 그 마음을 내어
감로(甘露)의 문을 활짝 열기를 항상 구한다.
보시 행할 때에는 높고 낮음의 차별이 없고
또한 아첨하거나 아끼는 마음이 전혀 없으며
거기서 또 게으른 마음 모두 없애고
씩씩하게 세간의 이로운 일을 펴 나간다.
재물이나 곡식으로 그 신명을 도와주고
그 밖의 모든 것으로 보시 행하며
보시하고는 넓고도 큰 기쁜 마음 내나니
그 보리와 해탈을 얻기 어렵지 않다.
부모나 처자나 그 밖의 사랑스러운 것을
와서 청구하는 이 있으면 모두 다 준다.
보시를 행하면서도 그를 미워하는 마음 없나니
이것이 최상의 보리를 닦는 행이다.
무릇 보는 모든 것에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
나쁜 벗도 언제나 착한 벗과 같이 본다.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위안을 주고
어떤 일에 대해서도 집착하는 마음이 없다.
왕의 자리도 구하지 않고 법에 대한 욕심내고
언제나 생사를 벗어나는 바른 법문을 말한다.
법의 보시를 모든 중생들에게 두루 행하여
세간을 이롭게 하면서 항상 그것을 버리지 않네.
저 천상의 묘한 즐거움도 구하지 않고
오직 위없는 부처님의 보리만을 구한다.
보시로써 큰 명예를 바라지 않고
자기 몸이나 그 밖의 다른 것 다 버린다.
오직 부처님의 보리만은 언제나 버리지 않고
안식과 색의 모양을 구하는 바 아니며
저 여러 하늘에 나는 것도 구하지 않고
다만 열반의 최상의 즐거움만을 구한다.
하는 일 그 모든 것 의지하는 곳 없고
이루어지거나 무너지는 것 모두 구함이 없다.
지혜로운 사람은 언제나 바른 지혜의 마음 내어
일체의 바른 도의 법을 분명히 깨닫는다.
“또 사리자여,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보시바라밀다를 부지런히 행해 익히나니, 이것이 보살의 훌륭한 행을 널리 닦는 것이다.”
7. 지계바라밀다품(持戒波羅蜜多品) ①
또 부처님께서는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지계바라밀다(持戒波羅蜜多)를 닦아 익히는 것이며, 곧 보살의 훌륭한 행을 널리 닦는 것이라 하는가?
사리자여, 보살은 세 가지 법이 항상 좋은 행이다. 어떤 것을 세 가지라 하는가? 이른바 몸과 말과 뜻으로 행하는 모든 선행이다. 어떤 것이 몸의 선행인가? 보살은 살생과 도둑질과 사음[邪染]을 멀리 버리나니,
이것을 신업(身業)의 선행이라 한다. 또 보살은 거짓말과 꾸미는 말ㆍ이간질하는 말ㆍ욕설을 멀리 버리나니, 이것이 어업(語業)의 선행이다. 또 보살은 탐욕과 분노가 없고 견해가 바르다. 이것이 의업(意業)의 선행이니라.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어떤 것이 몸과 말과 뜻의 선행인가? 만일 몸으로 업을 짓지 않으면 살생과 도둑질과 사음이 없을 것이니, 이것을 몸의 선행이라 한다. 만일 말로 업을 짓지 않으면 거짓말ㆍ꾸미는 말ㆍ이간질하는 말ㆍ욕설이 없을 것이니, 이것이 말의 선행이다. 만일 뜻으로 업을 짓지 않으면 탐욕과 분노와 사견이 없을 것이니, 이것이 뜻의 선행이다.’
보살은 또 이렇게 살핀다.
‘만일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업이 있으면 모든 법을 어떻게 표시할까? 몸과 말과 뜻으로 무엇을 시설할까? 청색ㆍ황색ㆍ적색ㆍ백색ㆍ홍색ㆍ자색(紫色)ㆍ벽색(碧色)ㆍ녹색 등을 어떻게 표시할까? 안식의 표시가 없을 것이요, 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ㆍ의식의 표시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고 내어지며 일어나고 일어나짐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것이 없다면 모든 업은 무엇을 시설할 것인가?’
보살은 이렇게 생각하고는 계상(戒相)이 현재에 지음이 없음을 알았다. 만일 지음이 없다면 무슨 표시가 있겠는가? 만일 표시가 없다면 취착(取著)도 없을 것이니, 이것이 곧 보살의 선행이다. 그 계상에서 보는 바가 없으니, 계상이 취향(趣向)이 없기 때문에 곧 보는 바가 없는 것이다. 만일 이렇게 본다면 몸이 있다는 견해도 일어날 수 없고, 몸이 있다는 견해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계율을 지키거나 깨뜨리거나 이치대로 살펴보면 다 볼 수 없는 것이며, 만일 이렇게 보면 곧 계법(戒法)의 법도와 경계를 알 바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지계는 자타에 대해 다 소득이 없고,
또 소행이 없는 것이다. 만일 자타에 대해 소행이 없으면 그 때문에 계율을 깨뜨림도 없고 취할 것이 없으며, 만일 자타가 소득이 없으면 계율도 또한 소득이 없는 것이며, 만일 계율에 소득이 없으면 계학(戒學)에도 깨뜨림이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계율을 취할 것이 없는 것이니, 무엇 때문에 취함이 없는가? 모든 법에 취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체 법에는 자타가 없거늘 나가 없는 가운데 어떻게 취할 것인가?”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이치를 거듭 밝혀 게송을 설하셨다.
몸의 업이 청정하고 말도 또한 그러하며
뜻도 항상 청정하여 깨끗한 행 닦는다.
계율이 청정하고 다시 항상 행하나니
이것을 보살이 깨끗한 계율을 가지는 것이라 한다.
열 가지 선업의 도는 착하며 또 훌륭한데
지혜로운 사람, 보살은 그것을 잘 관찰한다.
몸과 말과 뜻에 모두 닦음 없나니
이것이 지혜로운 사람이 깨끗한 계율을 가짐이다.
닦음도 없고 훌륭함도 없고 또 주는 것도 없고
얼굴빛이나 나타나는 빛도 다시는 없다.
만일 얼굴빛과 나타나는 색상이 없다고 본다면
어찌 능히 모든 경계의 나타남을 보겠는가?
만일 계율이 함이 없고[無爲] 닦거나 지을 것 없다면
눈으로 빛깔 경계를 능히 볼 수 없으며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또한 그러하여
갖가지의 경계를 능히 나타내 보일 수 없다.
근식(根識)이 만일 서로 끌어낼 수 없다면
슬퍼하는 마음도 마땅히 그렇게 관찰하라.
계율이 청정하다 해도 계율도 또한 없나니
계율 가운데는 얻을 것 없고 머무를 것도 없다.
이와 같이 나[我]가 없다는 생각을 잘 알면
보호할 계율 없는 것이 계율을 잘 보호하는 것이네.
계율이라는 생각 없고 계율 닦음 없어서
보리의 행 가운데는 모든 견해 떠났다.
만일 모든 견해에서 관찰하는 것 없으면
견해도 없거니와 또한 지해(知解)도 없다.
이 견해 없는 그것조차 또한 없나니,
여기에는 가지거나 범하거나 받아들일 것 없다.
만일 보호할 것이 없는 정법의 이치에 들면
계율 가운데의 법도는 생각하거나 말할 수 없다.
참으로 보호하는 문을 만일 잘 깨달으면
계율도 없거니와 또한 얻을 것도 없네.
나라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계율도 얻음이 없고
나도 없거니와 또한 계율 가운데도 없다.
말하는 바는 언제나 두려움을 떠나는 마음을 내나니
깨끗한 계율이란 바로 나가 없다는 말이다.
계율에 깨달음이 없음은 곧 나가 없음이니
계율이 의지할 곳도 또한 없도다.
계율도 없고 구함도 없고 나라는 말도 없고
가짐도 없고 범함도 없고 취함도 없다.
계율에는 나가 없기 때문에 일어남이 또 없고
나가 없으면 곧 능히 나라는 생각도 없다.
보살의 행은 바로 깊은 지혜의 문이니
이와 같이 계율의 모양은 두려움 없게 된다.
모든 계율을 깨뜨림도 얻을 것이 없나니
가지는 사람은 다 성스러운 힘이 더하기 때문이다.
모든 법에 얻음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건만
어리석은 사람들을 위하여 지키고 범함을 말하네.
위대하여라. 깨끗한 계율을 잘 지키는 사람
계율의 훌륭한 결과에 있어서 묶거나 풂이 없다.
모든 견해가 끊어졌기 때문에 죄가 생기지 않아
3악취(惡趣)에 다 떨어지지 않네.
계율은 가질 것도 아니고 받을 것도 없으며
나라는 견해는 나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네.
이 가운데서 이와 같이 계율을 분명히 알면
이것이 바로 지킴도 없고 범함도 없는 것이다.
만일 나와 법을 볼 수 없다면
3유(有) 가운데서도 또한 볼 것이 없다.
하물며 지키고 범하는 소행이 있겠는가?
이렇게 보는 이가 계율을 잘 지키는 자이네.
“또 사리자여, 보살의 열 가지 선법은 저 청정한 뜻에서 나오고, 저 정진의 훌륭한 행에서 나오며, 저 최상의 좋은 욕심과 광대한 업보의 신해(信解) 가운데서 나오는 것이다. 저 성인을 친근하여 받들어 섬기고, 스승에 대해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다. 성인이나 스승에게서 바른 법을 듣고 집착 없기를 애써 구하며, 보리에 뜻을 두어 구하면서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느니라.
사리자여, 계율을 가지는 보살의 이와 같은 열 가지 뛰어난 법은 다 보살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만일 이런 열 가지 법에 편히 머무르면 곧
일체의 선법을 쌓아 모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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