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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5058 불설대승보살장정법경(佛說大乘菩薩藏正法經) 20권

by Kay/케이 2024.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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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불설대승보살장정법경(佛說大乘菩薩藏正法經) 20

 

대승보살장정법경 제20권


서천 역경삼장 조산대부 시광록경 전범대사 사자사문 신 법호 등 한역
변각성 번역


7. 지계바라밀다품 ③

“또 사리자여, 보살은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낸다.
‘세간의 중생들은 마땅히 다음과 같이 생각을 할 것이다. 즉 나는 긴 밤 동안에 선지식(善知識)을 멀리 떠나고 악지식을 친근하며, 게으르고 비열한 정진을 내고, 어리석고 피곤하여 벙어리와 같다. 봄도 없고 참음도 없으며, 좋은 사랑도 없다. 악한 업도 없고 악한 과보도 없으며, 선한 업도 없고 선한 과보도 없으며, 잡된 업도 없고 잡된 과보도 없다.
스스로도 모르면서 또한 사문ㆍ바라문이나 아사리에게도 묻지 않는다. 즉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불선이며, 무엇이 죄가 있고, 무엇이 죄가 없는 것인가? 어떤 이를 친해야 하고, 어떤 이를 친하지 않아야 하는가?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일을 하지 않아야 하는가? 어떤 일을 하고는 긴 밤 동안에 의의도 없고 이익도 없이 갖은 고뇌를 내는가?
그 때문에 아만(我慢)이 불어나고, 선의 근본을 알지 못하며, 오직 일체 불선의 업만을 짓는다. 비록 사람의 몸을 얻더라도 모든 기관의 결함이 있다. 또 인간에서 살아갈 수 없어 보시를 행하지 못한다. 또 인간에서 장님이나 귀머거리나 벙어리가 되고, 얼굴이 못났으며, 좋은 말과 나쁜 말을 모두 모른다.
그 때문에 보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마땅히 돌이켜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어야 하리라. 즉 만일 내가 사람의 몸을 얻으면 모든 기관이 완전하며 잘 살아갈 수 있어 보시를 행하되 신명을 아끼지 않으며, 얼굴이 잘나고 좋은 말과 나쁜 말을 다 잘 알리라.
또 스승과 지혜로운 이에게 물으리라. 즉 어떤 것이 선이며, 어떤 것이 불선인가?
어떤 것이 죄가 있고, 어떤 것이 죄가 없는가? 어떤 이를 친근하고, 어떤 이를 친근하지 않을 것인가? 어떤 일을 할 때에 성문ㆍ연각의 법에 어긋나고, 보살장(菩薩藏)의 이치에 순응하는 것인가? 모든 아사리를 친근하여 받들어 섬기되 그 하는 일을 따르며, 이 진실하지 않은 몸을 싫어하고, 견고하고 진실한 몸을 취하며……(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물병을 받들어 올리리라.’
이것이 보살의 일곱째 발심이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이치를 거듭 밝히려고 게송을 설하셨다.

선한 벗을 가까이하여 이익된 일 지으려고
나는 멀리 떠나나니, 여러 백 겁 동안에
선과 악의 문과
죄가 있고 죄가 없음과 과보 따위를 묻지 않는다.

증상만(增上慢)의 마음은 저 지옥과
방생(傍生)과 아귀의 모든 세계 속에 떨어지고
죄의 업의 모든 벗들을 친하고 가까이하면
많은 겁 동안 고통을 겪으면서 다함이 없다.

비록 사람의 몸을 얻더라도 결함이 많고
많은 천 겁 동안에 윤회 받으며
선과 악의 문을 알지 못하고
죄가 있고 죄가 없음과 과보 등을 알지 못한다.

만일 사람의 몸을 버리면 어려움과 고통 떠나고
모든 기관을 완전히 갖추어 좋은 상이 원만하며
사람의 상을 완전히 갖추고 고난 떠날 때
그것은 마치 외눈 거북이 뜬 나무 만난 것 같다.

세간의 등불의 밝은 빛을 볼 수 있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에서는 더러움이 없는 법을 들으리니
그 때는 세간의 높은 어른에게 물으리라.
모든 선과 선하지 않음과 과보 등을.

인색한 사람은 어떤 곳으로 가고
인색하지 않은 사람은 능히 보시 행하며
탐욕과 아첨으로 계율을 깨뜨리는 이는 어떠하며
또 깨끗한 계율을 깨뜨리지 않는 이는 어떤가.

어떻게 하면 성내고 악한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며
어떤 것이 게으르고 산란한 마음인가.
정진과 선정의 즐거움은 어떤 것이며
나쁜 지혜와 어리석음의 어두움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저 진실한 지혜를 얻으며
어떤 것을 보리의 행의 방편이라 하는가.
여섯 가지 현명한 행은 필경 어떤 것이며
인자한 마음은 넓고 커서 세상에서 훌륭한가.


나쁜 세계의 중생들을 어떻게 구제하고
어떻게 하면 법을 즐기는 마음 싫증 안 날까.
보리의 행의 창고를 널리 부지런히 구하여
시방의 세계 가운데서 잘 편히 머무를까.

어떻게 하면 친히 세간의 높은 이에게 나아가며
어떻게 예배하고 받들어 모든 복을 꾀할까?
보현행(普賢行)의 그 문은 또 어떠할까?
만일 내가 지금에 잘 친하고 가까이한다면.

어떻게 하면 아사리에게 청해 물을까?
스승에게 존중한 일을 듣기 바란다고.
아사리에 대해 기뻐하는 마음을 내며
이 마음을 내면 진정한 불자이다.

복의 힘과 지혜의 힘이 더욱더욱 늘어나
이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넓고 큰 지혜
지혜의 힘이 더욱 강해지고 훌륭한 마음 내어
물병을 받들어 올리고 기뻐하는 마음 내리.

“사리자여, 이것이 보살의 일곱째 발심이니라.
또 사리자여, 보살은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낸다.
‘세간 중생들은 마땅히 다음과 같이 생각할 것이다. 즉 나는 긴 밤 동안에 선지식을 멀리 떠나고 악지식을 친근하며 게으르고, 비열한 정진을 일으켜 우치하고 피로하기 벙어리와 같다.
세간의 일체 문구는 뜻과 글귀가 합하고 법과 글귀가 합한다. 법과 글귀가 합하기 때문에 고요함에 머물러 탐심을 버림과 합하고, 사문ㆍ바라문ㆍ열반과 함께 머무른다. 어디서나 나를 버린다 하면서 글과 뜻과 글귀의 합함을 알지 못하고……열반과 함께 머무르지 못하며, 또한 받아 지녀 읽고 외우지 못하며, 또한 그 힘이 없다.
또 정진이 없고, 장부의 힘이 없으며, 장부의 기세도 없고, 장부의 부지런함과 용기도 없으며, 최상의 정진도 없고,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다. 중생의 번뇌도 인도 없고 연도 없으며, 중생의 잡염(雜染)도 인도 없고 연도 없으며, 중생의 청정함도 인도 없고 연도 없다. 이런 인이 없음의 의지하는 모든 견해는 지을바 선업을 알지 못하고
오직 악업만 지어 비록 사람의 몸을 얻더라도 모든 기관에 결함이 있다.
또 사람의 세계에 살 수 없어 보시를 행하지 못하여 우치와 헷갈림에 덮여 장님과 귀머거리와 벙어리가 되면 몸의 힘이 없고 글과 뜻과 글귀의 합함을 알지 못하며……열반과 함께 머무르지 못하며, 또한 받아 지니며 읽고 외우지 못하므로 선행과 선법을 친하지 못한다.
나는 지금 돌이켜 이 마음을 낸다. 즉 선법을 친근하며……신명을 아끼지 않으며, 글과 뜻과 글귀의 합함을 알고, 출리(出離)의 도에서 열반과 함께 머물며, 보살장의 정법을 부지런히 구해 닦아 익히며,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정진을 발동하고 아사리를 친근해 받들어 섬기리라.
보살장의 정법을 받아 지녀 읽고 외우며 이 진실하지 않은 몸을 싫어하고 견고하고 진실한 몸을 취하리라. 복과 지혜의 훌륭한 힘을 원만히 갖추고, 복과 지혜의 힘을 원만히 갖추기 때문에 그 하는 일의 관습이 보살장의 정법을 잘 쌓아 모으며, 아사리를 친근해 받들어 섬기되 그 행을 따르며……(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물병을 받들어 올리리라.’
이것이 보살의 여덟째 발심이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이치를 거듭 밝히기 위해 게송을 설하셨다.

모든 법과 뜻이 서로 응하기 때문에
바른 도분(道分)에서 도의 행을 닦는다.
적멸(寂滅)한 이치 가운데 증득하는 문을 짓고
열반의 도에서 진실함을 얻는다.

만일 이 법을 멀리 떠나면
모든 법에 아무 이익 없으리.
이치와 이익이 없는 글귀가 서로 응하더라도
저 바른 법에는 친근할 수 없으리라.

힘도 없거니와 또한 정진도 없고
장부의 세력 활동도 모두 없으며
다른 부지런함과 용기도 또한 그러하나니
어디에서나 아무 소득이 없다.


그의 견해로는 부처도 없거니와 법도 없으며
아비도 없고 어머니도 종친도 없다.
이런 선과 악의 업이 모두 없음에 의해
일체의 모든 보응(報應)이 모두 다 없다.

이 모든 이와 같은 죄업을 보는 견해에서
언제고 친근하는 죄의 뿌리가 깊어
한결같이 어려움과 악은 날로 더욱 많아서
지옥 속에 떨어져서는 오랜 겁을 지낸다.

지옥에서 나와서는 방생의 과보를 받고
아귀의 세계 속에서는 죄가 다시 깊었다.
그 뒤에는 비록 인간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귀머거리로 어리석고 미련하며 또 혀가 없다.

남은 업으로 다시 벙어리의 과보 받아
어리석고 어두우며 결함 있어 고통 다시 더하며
다시 지옥의 재앙을 받나니
알지 못하기 때문에 타락하는 것 당연하다.

오랜 시간을 지내다가 뒤에 다시 받을 때
사람의 몸이 완전하고 좋은 상이 원만하다.
모든 기관을 이미 갖추어 훌륭한 힘이 더하고
때를 따라 깨끗이 머무르면서 잘 생각한다.

만일 모든 법의 뜻에 잘 응하면
곧 다 함께 출리(出離)의 도로 돌아가
보리의 도를 닦아 보리를 증득하리라고
나는 마땅히 이와 같은 일을 생각하리라.

있는 바의 큰 보살의 창고는
매우 깊은 바른 법의 이치와 화합한 것으로서
구지의 천 겁을 지내는 동안
청정한 믿음을 내더라도 극히 얻기 어렵다.

여기서 고통하다가 만일 광대한 수가 남으면
모든 부처님의 묘한 법은 사의할 수 없나니
모든 닦고 지음 따라 잘 받들어 지니면
부처님 보리의 훌륭한 그 근본이 되리라.

나는 마땅히 친근하고 또 받들어 섬기고
존중하며 또한 믿고 받들리라, 저 아사리를.
그리고 부처님과 보살에게도 또한 그렇게 하면
곧 최상의 맑고 깨끗한 믿음을 얻으리라.

이와 같은 깨끗한 마음을 내면
그것은 곧 보살의 넓고 큰 마음이니
훌륭한 지혜와 방편을 모두 원만히 이루어
물병을 받들어 올리고 언제나 정진하리라.

“사리자여, 이것이 보살의 여덟째 발심이니라.
또 사리자여, 보살은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낸다.
‘슬프다. 세간의 일체 중생들은 그 신명에 애착하기 때문에 항상
일체의 의리(義利)가 없는 행을 위해 착각을 쫓아다닌다.’
어떤 것을 의리가 없는 행이라 하는가? 이른바 그 중생은 신명에 애착하여 보리분법(菩提分法)을 좋아하지 않고, 아견(我見)을 길잡이로 삼아 집착하는 마음이 견고하고 어리석음에 덮이어 파괴하고 무너뜨리면서 뭇 일을 따라 다니나니, 이것을 의리 없는 행이라 한다.
또 중생들은 신명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아견을 길잡이로 삼아 처자와 벗에 애착하며, 애착하는 마음에 덮이고 어리석어 모든 유익한 일을 멀리 떠나나니, 이것을 의리 없는 행이라 한다. 또 중생들은 신명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아견을 길잡이로 삼아 종과 하인들을 아껴 망보고 붙잡나니, 이것을 의리 없는 행이라 한다.
또 세간의 일체 중생들은 의리 있는 행을 항상 따른다. 이른바 중생이 만일 신명을 아끼지 않고 보리분법을 좋아하며, 보리심을 길잡이로 삼아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잘 닦는다면, 이것을 의리 있는 행이라 한다. 또 만일 중생이 신명을 아끼지 않고 항상 보리분법을 좋아하며, 길잡이로 삼아 보시바라밀다를 쌓아 모으고……반야바라밀를 쌓아 모으면, 이것을 의리 있는 행이라 한다.
또 중생이 신명을 아끼지 않고 항상 보리분법을 좋아하며 보리심을 길잡이로 삼아 보시와 다정한 말과 이로운 행과 일을 같이하는 것 등을 행하여 일체 중생을 두루 포섭하면, 이것을 의리 있는 행이라 한다. 또 중생이 신명을 아끼지 않고 항상 보리분법을 좋아하면서 보리심을
길잡이로 삼아 염처(念處)와 정근(正勤)과 신족(神足)과 근력(根力)과 각도(覺道)와 훌륭한 보리분을 닦아 익히면 이것을 의리 있는 행이라 한다.
또 중생이 신명을 아끼지 않고 항상 보리분법을 좋아하며, 보리심을 길잡이로 삼아 부모와 아사리의 가르침을 듣고 예배하고 찬탄하며 공경히 믿고 합장하며 그 하는 일들을 받들면 이것을 의리 있는 행이라 한다. 또 중생이 신명을 아끼지 않고 항상 보리분법을 좋아하며, 보리심을 길잡이로 삼아 항상 깨끗한 마음으로 3보(寶)의 일을 경영하면, 이것을 의리 있는 행이라 하느니라.
또 중생은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는 신명을 아끼기 때문에 의리가 없는 일이 항상 나를 따라다닌다. 나는 부지런한 정진을 내어 아사리를 친근하여 받들어 섬기되 신명을 아끼지 않고 그가 하는 일을 따르며, 이 진실하지 않은 몸을 싫어하고 견고하고 진실한 몸을 취하며, 복과 지혜의 훌륭한 힘을 원만히 갖추고, 원만히 갖추기 때문에 하는 일과 관습을 다 잘 성취하고, 보리의 도량에 나아가 성과(聖果)를 증득하리라.’
사리자여, 이것이 보살의 아홉째 발심이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이치를 거듭 밝히기 위해 게송을 설하셨다.

만일 누구나 그 신명을 사랑하고 아까워하면
그 때문에 그는 보리분법을 즐겨 받지 못한다.
세 가지 불선의 업을 모두 지어 이루면
그는 곧 어리석은 사람이요, 이생(異生:범부)의 무리이다.

자기의 몸과 또 그 아내와
또 아들과 딸들이 권속들을 사랑하고 좋아하면
그것은 의리 없는 행에 집착하는 마음이니
삼계를 돌고 도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또 노비들이나 그 하인들에 대해
깨치지 못한 마음으로 돌아보고 사모하면
그는 의리 없는 행에 애착하는 마음이 깊어
먹고 살기 위해 네발짐승 등을 기르는 것이다.


온갖 재물과 곡식을 많이 모아 쌓으면서도
스스로도 쓰지 않고 남에게도 주지 않네.
그것은 의리 없는 행에 애착이 깊은 것이다.
숨겨둔 창고를 비밀로 간직해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의리 없는 행에 집착하기 때문에
그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은 사랑하며 아끼지만
보살의 좋은 마음속으로 돌아오면
그것들 모두 버리고 사랑하거나 즐기지 않네.

만일 능히 그 신명을 아끼지 않고
보리의 훌륭한 분법(分法)을 사랑하고 즐기어
세 가지 좋은 업을 지어 원만히 이루면
그것을 곧 의리 있는 행이라 하느니라.

보시와 지계와 인욕과 정진
선정과 훌륭한 지혜도 또한 그러하나니
저 방편의 행과 더불어 서로 잘 응하면
그것을 곧 의리 있는 행이라 하느니라.

부모를 받들어 섬기는 것을 길잡이로 삼고
스승을 받들어 섬기는 것도 또한 그러해
세 가지 보배의 문을 자세하고 분명히 생각하면
이것을 곧 의리 있는 행이라 하느니라.

모든 큰 보살들의 매우 깊은 법의 창고
그것은 일체 훌륭한 법문을 두루 포섭하나니
받들어 지니고 읽고 생각하면서 널리 드날리면
그것을 곧 의리 있는 행이라 하느니라.

이 의리가 있는 모든 훌륭한 행
그것은 모든 부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이다.
그 말씀하신 뜻과 같이 서로 잘 응하면
그것을 곧 불자의 넓고 큰 행이라 한다.

이와 같은 큰마음을 낸 뒤에
다시 청정하고 확실히 믿는 마음을 일으키어
아사리를 친히 가까이하고 받들어 섬기되
물병을 받들어 올리고 그 하는 일을 따르네.

“사리자여, 이것이 보살의 아홉째 발심이니라.
또 사리자여, 보살은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낸다.
‘슬프다. 세간의 일체 중생들은 그 마음을 이치답게 통제하지 못하고 아사리의 가르침을 어기며, 그는 아사리의 재물을 얻지 못한다.’
어떤 것을 아사리의 재물이라 하는가? 이른바 믿음의 재물과 계율의 재물ㆍ들음[聞]의 재물ㆍ버림의 재물ㆍ지혜의 재물ㆍ제 부끄러움의 재물ㆍ남부끄러움의 재물 등이니, 이런 7법을 아사리의 재물이라 한다.
이런 재물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탐욕의 고뇌를 받아 그 마음을 괴롭힌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 마음을 잘 항복 받고, 아사리의 가르침을 따라 보시를 행하고, 선업을 지어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그 마음을 잘 항복 받고 그 가르침을 따라 보시를 행하면, 그는 곧 아사리의 재물을 얻을 것이다.
또 어떤 것을 아사리의 재물이라 하는가? 이른바 보살장의 정법을 얻고, 일체 보살의 훌륭한 행으로 잘 항복 받는 법을 두루 포섭하는 것이다. 이렇게 알고는 보살장의 정법을 부지런히 구하고 닦아 익혀 남을 위해 연설해야 한다. 만일 보살장에 편히 머물면 곧 탐욕의 고통을 끝까지 끊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나아갈 것이다.’
이렇게 발심하고는 곧 아사리의 가르침을 따라 보시 등을 행하며, 이 진실하지 않은 몸을 싫어하고 견고하고 진실한 몸을 취하기를 바라면서 아사리를 친근해 받들어 섬기되 그 행하는 바를 따르며……(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물병을 받들어 올리느니라.
사리자여, 이것이 보살의 열째 발심이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이치를 거듭 밝히기 위해 게송을 설하셨다.

저 항복 받기 어려운 모든 중생들
속마음은 아첨하고 속이며 또 험악하다.
그 스승의 가르치는 말씀을 어기면서
그것을 참고 감당하여 분명히 받지 못한다.

그 항복 받기 어려운 줄을 이미 알았다면
마땅히 스승의 가르치는 말씀을 따라야 하고
그 가르치는 영을 따라 펴서 드날리면
그는 곧 큰 선인의 거룩한 재보 얻으리.

그것은 이른바 믿음의 재물과 계율의 재물이며
들음의 재물과 버림의 재물도 또한 그렇다.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지혜의 재물인데
부끄러움 등의 재물, 모두 일곱 가지다.

이와 같은 거룩한 재물을 분명히 알면
그 일곱 가지 복장(伏藏)은 써도 다함이 없다.

그들 중에서 혹 만일 모르는 사람 있으면
그런 이야말로 바로 법의 그릇 아닐 것이다.

만일 그가 법의 그릇인 중생이라면
그는 곧 모든 부처님의 법을 원만히 갖추리니
아첨함이 없고 잘 제어하여 칭양(稱揚)할 만하고
부지런한 정진을 내고 보시의 행을 닦으리.

훌륭하고 묘한 법의 욕심은 존중할 만하나니
그 신명을 버리기는 어렵다 할 것 없다.
부처님의 보리를 닦아 법의 그릇 이루고
자기를 알고는 닦고 지니기 언제나 끊임없다.

법계는 평등하여 차별 없다고
이것은 부처님 조어장부[調御尊]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다.
이 보살장의 바른 법의 문은
능히 보리에 편히 잘 머무를 수 있느니라.

그 말씀하신 바와 같이 넓고 큰 법은
그것은 바로 모든 부처님의 진실한 재물로서
일체의 법의 나[我]가 없는 문이 되나니
상(相)도 없거니와 또한 공상(空相)도 없느니라.

그 수명도 없고 지은 이도 없으며
또한 희론(戱論)도 없고 간직한 것도 없나니
일체의 법의 자성 가운데에
남[生]이 없고 모양 없음이 본래 이러하니라.

모든 법은 이룩됨도 없고 무너짐도 없나니
모든 법이 본래 모양 없음을 자세히 보라.
잘 통제한 사람은 가르침과 같이 행하여
모든 가르침의 영을 따라 잘 닦고 짓느니라.

만일 부처님의 자연의 지혜를 볼 수 있으면
스스로 경계를 따라 해탈의 문에 들어
그 믿음의 재물과 또 계율의 재물과 같이
들음과 버림과 부끄러움과 지혜 등 일곱도 그러하다.

이와 같은 거룩한 재물의 위없는 보배인
일곱 가지 법을 원만히 이루면 써도 다함이 없나니
그 법장(法藏)의 넓은 보시의 문을 듣고
마음을 잘 통제한 사람은 다 그대로 따른다.

모든 착한 벗을 언제나 친해 가까이하고
일체의 선한 행을 언제나 닦고 지으면
중하고 위없는 큰 보리를 머리에 이리니
모든 법을 부지런히 행함도 또한 그러하니라.

이와 같은 훌륭한 마음을 낸 뒤에
목마른 사람이 물을 생각하듯 게으름이 없으면
맑은 물이 깨끗한 그릇 안에 가득히 차서
넓고 큰 좋아하는 마음으로 받들어 올리리라.

“사리자여, 이것이 보살의 열째 발심이다. 이 발심으로 말미암아 곧 보살장의 정법을 부지런히 구해 닦아 익히며, 모든 아사리를 친근하고 받들어 섬기되
그 하는 일을 따르며……(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물병을 받들어 올린다.
이 가장 훌륭한 선근의 힘으로 말미암아 보살행을 닦으면 네 가지 법을 얻는다. 어떤 것을 네 가지 법이라 하는가? 첫째는 아사리의 말과 같이 일체의 선법을 빨리 얻고, 둘째는 아사리의 말을 따르며, 셋째는 수행을 빨리 성취하고, 넷째는 법인(法因)을 원만히 수행하는 것이다.
또 사리자여, 보살행을 닦는 사람은 인간에 나서 네 가지 법을 얻는다. 어떤 것을 네 가지라 하는가? 첫째는 많은 사람을 가르치고 일체 선법을 따라 편히 머무르는 것이요, 둘째는 바위굴 속에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얻어 다 기뻐하게 하는 것이며, 셋째는 광대한 마음으로 밤낮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가는 것이요, 넷째는 일으키는 바가 없이 목숨을 바치고는 천상 세계에 나는 것이다.
또 사리자여, 보살행을 닦는 사람은 천상에 나서 네 가지 법을 얻는다.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첫째는 그 하늘 무리를 얻어 최상의 자리에 앉는 것이요, 둘째는 어디로 가나 그 하늘 무리들을 얻어 그 얼굴 모양을 보는 것이며, 셋째는 그들의 말을 다 알아듣는 것이요, 넷째는 때때로 제석천왕에게 가서 의심나는 것을 묻되 다른 하늘 무리들에게는 가지 않고 천상에서 그 궁전의 수용을 받는 것이다.
사리자여, 보살행을 닦는 사람은 저 천상에 나서 이런 네 가지 법을 얻고, 혹 인간에 나더라도 또한 무량 백천의 법문을 얻느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이치를 거듭 밝히기 위해 게송을 설하셨다.

천상에서 저 높고 훌륭한 자리를 얻는데
다시 하늘 무리의 항상된 공경과 믿음을 얻고

일체 하늘 무리들의 우러름을 받으면서
이와 같이 언제나 좋은 설법을 듣는다.

일체의 하는 일은 모두 지혜로운 사람으로
제석천왕에게 법을 묻되 인색한 마음 없고
뛰어나고 묘한 궁전을 저 천상에서 얻고
천상에서 죽은 뒤에는 인간 세계로 내려온다.

다시 인간에서는 훌륭한 곳에 나게 되어
전륜성왕이 되어 사주(四州)를 통치하다가
인간에서 죽어서는 다시 천상에 도로 나는데
그 천상에서는 훌륭한 즐거움을 받는다.

천상에서는 다시는 괴로움을 받지 않는데
그것은 스승을 예배하고 존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이 네 가지의 훌륭하고 묘한 문이니
언제나 이와 같은 넓고 큰일을 얻느니라.

이와 같은 집착이 없는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에
스승을 예배 존중하여 그 행이 좋고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물병을 올리면서
좋아하고 존중하되 언제나 게으름 없다.

또 일체의 하늘과 사람과 용을 얻어
그 응함을 따라 공양하고 항상 존중한다.
그 나는 바 천상 세계 가운데서도
또한 다시 그 네 가지 법을 얻네.

어떤 것을 그 네 가지 법이라 하는가?
전생에서 지은 바 업을 모두 잘 알고
선한 행과 선한 인(因)을 쌓아 모으고
현재 생에서 짓는 것이 언제나 줄지 않네.

다시 그 선한 법을 말미암기 때문에
나거나 사라지는 곳을 다 잘 안다.
현재 생에서 움직임이 없는 것도 또한 아나니
그 때문에 모든 법의 행을 다 아느니라.

능히 모든 하늘을 위해 널리 연설하는데
법에 의해 나타내 보이고 또 잘 가르친다.
이익과 기쁨의 훌륭한 행의 문을 널리 짓고는
그 뒤에는 다시 천상 세계로부터 사라진다.

“또 사리자여, 보살행을 닦는 사람은 네 가지 법을 얻는다.[이 글에서는 네 가지 법이라 하였으나 다만 첫째와 둘째뿐이요, 셋째와 넷째는 없다. 그러나 범본에 원래 없기 때문에 덧붙일 수 없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천상에서 죽어 인간에 와서 같은 계율을 지키는 사람과 같은 신분으로 나는 것이요, 둘째는 인간에 나서는 현생(現生)에서 다섯 가지 비법(悲法)을 얻는 것이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현생에서 선법 가운데 나는 것이요, 둘째는 현생에서 위의의 모양이 원만한 것이며, 셋째는 현생에서 깨끗한 계율이 원만한 것이요,
넷째는 현생에서 권속이 많은 것이며, 다섯째는 현생에서 중생들에게 자심관(慈心觀)을 일으키는 것이다.
또 다섯 가지 무너지는 않는 법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선지식이 언제나 무너지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몸이 빨리 무너지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풍부하고 즐거운 수용이 항상 무너지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일으킨 보리심이 견고하여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며, 다섯째는 흉년이 들었을 때 법의 즐거움이 풍부하고 성숙한 것이다.
또 다섯 가지 희유한 법을 얻을 것이다. 그 다섯 가지 법이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빈 병을 한 곳에 두면 맑은 물이 저절로 거기 차고 그 물 속에 온갖 묘하고 진기한 보배가 차는 것이요, 둘째는 목이 말라 물이 필요할 때에 여덟 가지 공덕을 가진 물이 저절로 그 앞에 나타나는 것이며, 셋째는 그 몸이 온갖 재난을 떠나는 것이니, 이른바 독ㆍ칼ㆍ물과 혹은 위광(威光)을 마시고 혹은 두려움을 삼키는 것이다.
넷째는 도병겁(刀兵劫) 때와 질역겁(疾疫劫) 때와 기근겁(饑饉劫) 때와 화재겁(火災劫) 때와 수재겁(水災劫) 때와 풍재겁(風災劫) 때와 갈핍겁(渴乏劫) 때와 재열겁(災熱劫) 때와 야차난(夜叉難) 때에 염부제에 난 사람은 곧 천상 세계에 나서 갖은 쾌락을 누리며, 그 받는 쾌락은 금강의 놀이와 같은 것이니, 이것이 그 희유한 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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