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불설대승보살장정법경(佛說大乘菩薩藏正法經) 15권
대승보살장정법경 제15권
서천 역경삼장 조산대부 시광록경 전범대사 사자사문 신 법호 등 한역
변각성 번역
7. 여래부사의품 ⑨
“또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18불공불법(不共佛法)을 가지셨으니, 믿음에 머무르는 보살은 이 말을 들으면 마땅히 깨끗한 믿음을 내어 분별을 초월하며, 온갖 의혹을 떠나야 하며, 나아가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어야 하느니라.
그런데 여래께서는 이 18법을 구족하셨기 때문에 훌륭한 곳을 알아 대중 가운데서 사자처럼 외쳐 묘한 범륜(梵輪)을 굴리시는데,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굴리지 못하는 것이며, 일체 세간의 하늘ㆍ사람ㆍ악마ㆍ범천 중에 여래와 그 법을 같이하는 자가 없느니라.
어떤 것을 여래의 18법이라 하는가? 첫째, 여래께서는 3업(業)에 아무 허물이 없는 것이다. 이른바 신업(身業)에 허물이 없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여래와 그 법어(法語)를 같이할 자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님 세존은 신업이 청정하여 아무 허물도 없기 때문이다. 여래께서는 신상(身相)이 단정하고 곧으며, 모든 위의(威儀)에 있어서 진지(進止)가 볼 만하며, 향하거나 돌아서거나 구부리거나 펴거나 조금도 실수가 없다.
승가리(僧伽梨)를 입거나 발우[應器]를 들 때에 있어서는 승가리는 땅에서 4지(指)쯤 떨어지는데 비람바(毘藍婆) 바람이 불어도 펄럭이지 않으며, 발을 들거나 발을 내리거나 다니거나 섰거나 앉거나 눕거나 그 위의가 법다우며, 도시나 마을에 들어가거나 나올 때에 있어서 발로 땅을 디뎌도 발바닥의 천폭륜상(千輻輪相)이 상하지 않으며, 공중에서는 연꽃과 묘한 향이 내려온다.
또 여래께서 발을 땅에 댈 때에는 방생 세계의 모든 중생들은 이레 동안 모두 쾌락을 누리며, 목숨을 마치고는 모두 천상 세계에 난다.
부처님 몸의 광명은 두루 비쳐 밑으로 아비지옥에까지 이르는데, 그 중생들은 그 광명을 받아 모두 즐거움을 받는다. 이것이 여래의 몸에 허물이 없다는 것이니라.
또 여래께서는 어업(語業)에 허물이 없다. 이 어업에 허물이 없다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여래와 그 법어를 같이하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리자여, 여래께서 말씀하실 때에는 반드시 그 때를 아시기 때문이다. 이 여실한 말과 진실한 말과 평등한 말과 실천이 따르는 말과 잡되지 않은 말과 중생들을 기쁘게 하는 말과 중복되지 않는 말과 좋은 글과 좋은 뜻으로 묘하게 장엄한 말과 한 말[一語言]의 음성으로 중생들의 갖가지 좋아함을 따라 다 기뻐하게 하는 말 등이니, 이것이 여래의 말에 허물이 없다는 것이니라.
또 여래께서는 의업(意業)에 허물이 없다. 이 마음에 허물이 없다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여래와 그 법어를 같이할 자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항상 등인(等引:선정)의 마음에 머물면서 일체의 불사(佛事)를 버리지 않으며, 항상 시설하면서도 보는 바가 없으며, 일체 법에 대해 걸림이 없는 지견을 항상 운전하나니, 이것이 여래의 마음에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마음에 허물이 없는 법으로 중생들에게 설법하는 것도 또한 그러하여 모든 마음의 허물을 다 끊게 하나니, 이것이 여래의 첫째 불공불법이니라.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마음에 애착이 없으므로 일체의 악마와 그 무리 및 다른 사악한 외도들이 부처님 여래를 엿보아도 그 틈을 얻지 못한다.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순종하거나 거스르거나 존중하거나 해치거나 그것을 다 떠나셨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의 존중을 받더라도
마음이 우쭐하지 않고, 혹 존중을 받지 못하더라도 성내지 않느니라.
여래께서는 모든 하는 일에 대해 이미 한 일은 한 그대로 보고, 하나도 버리지 않으면서 애착을 일으키지 않으며, 또한 세간과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여래께서는 마음에 애착이 없기 때문에 다툼이 없는 행을 닦는다. 여래께서는 나가 없고 고집이 없으며 취함이 없어서 모든 결박을 벗어난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애착이 없나니, 그것이 없기 때문에 중생들을 위해서도 애착을 끊는 법을 연설하시는데, 이것이 여래의 둘째 불공불법이니라.
또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잊음이 없다. 만일 잊음이 있다면 곧 어리석어질 것이다. 여래께서는 어리석음이 없기 때문에 선정ㆍ해탈ㆍ등지(等持)ㆍ등지(等至) 등에 조금도 장애가 없는 것이다. 일체 중생들의 마음의 움직임을 두루 관찰하시고는 곧 그 근기를 따라 설법하신다.
잊음이 없기 때문에 모든 법의 뜻에 대해 즐겨 말씀하시는 변재 및 걸림이 없는 이해를 다 잊지 않으신다. 여래께서는 과거ㆍ현재ㆍ미래에 대해 걸림이 없는 지견을 갖추셨기 때문에 스스로 그것을 다 아시고는 곧 중생들을 위해 과거ㆍ현재ㆍ미래를 두루 말씀하시되 걸림이 없는 지견으로 법을 잊지 않으시나니, 이것이 여래의 셋째 불공불법이니라.
또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항상 삼마혜다(三摩呬多)에 머무르신다. 만일 다니거나 섰거나 앉거나 눕거나 밥을 먹거나 밥을 먹고는 잠자코 있지만 다음에는 아무 얻는 바가 없다. 여래께서는 이미 매우 깊은 삼마지(三摩地)의 법과 위없는 바라밀다를 얻으셨으므로 봄과 보이는 것에 아무 장애가 없다. 일체 중생과 중생의 세계에는 여래의 가지(加持)의 힘을 받지 않고는 아무도 여래의 마음을 보지 못한다.
여래께서는 항상 삼마혜다의 마음에 머물고는 곧 중생들을 위해 그 근기에 따라 삼마지 가운데서 버리는 법을 연설하나니, 이것이 여래의 넷째 불공불법이니라.
또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갖가지 생각이 없다. 갖가지 생각과 모든 경계에 대해 그 마음이 머무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국토 가운데서 갖가지 생각이 없나니 국토가 허공과 같아 다함이 없기 때문이며, 중생에 대해 갖가지 생각이 없나니 중생의 자성(自性)에 갖가지가 없기 때문이고, 부처에 대해 갖가지 생각이 없나니 법계에 차별이 없는 평등한 지혜이기 때문이며, 모든 법에 대해 갖가지 생각이 없나니 탐하는 법을 떠났기 때문이다.
여래께서는 중생들 가운데서 계율을 갖춘 자를 보아도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계율을 깨뜨리는 자를 보아도 교만한 마음을 내지 않으며, 풍부하지 못한 자를 보면 풍부하게 하나니, 풍부하지 못한 자를 다 풍부하게 하기 때문이다. 조복(調伏)하지 않는 자는 평등하게 조복하고, 사정취(邪定聚)인 자에 대해서도 가벼이 여기거나 업신여기지 않는다. 여래께서는 일체 법에 대해 평등한 행을 일으키시나니, 이것이 여래께서는 갖가지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이 법으로 중생들을 위해 갖가지 생각을 끊는 데 대해 설법하시는데, 이것이 여래의 다섯째 불공불법이니라.
또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모든 사법(捨法:평등)에 있으면서도 가리지 않음이 없다.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수도하는 자에 대해 사법을 행하지만 수도하지 않는 자도 버리지 않으시며, 마음을 닦는 자에 대해 사법을 행하지만 마음을 닦지 않는 자도 버리지 않으시며, 계율을 닦는 자에 대해 사법을 행하지만 계율을 닦지 않는 자도 버리지 않으시며, 지혜를 닦는 자에 대해 사법을 행하지만 지혜를 닦지 않는 자도 버리지 않으시느니라.
지혜로운 자에게 사법(捨法)을 행하면서 우치한 자도 버리지 않으시고, 세간을 벗어나 버렸음에도 세간을 버리지 않으시며, 출리(出離)한 거룩한 자에게 사법을 행하지만 출리하지 않는 자도 버리지 않으신다. 여래께서는 묘한 범륜을 굴려 사법을 행하지만 중생에 대해서도 대비의 마음을 버리지 않으신다. 여래께서는 스스로 평등한 사법을 증득해 이루어 대치(對治)를 빌리지 않고 잘 수순하시느니라.
또 여래께서는 사법 가운데서 높고 낮음이 없고 또한 머무름도 없으시니, 이미 움직이지 않게 되어 두 법을 떠나셨다. 나감도 없고 들어옴도 없으시며, 때를 의지해 버리되 때를 넘기지 않으신다. 흔들림이 없고 다름이 없으시며, 분별함이 없고 보는 것이 없으시며, 화합함이 없고 표시함이 없으시며, 성실이 없고 허망함이 없으시며, 또한 받아들임도 없으시느니라.
여래께서는 이와 같이 사법을 구족하시어 곧 이 법으로 중생들을 위해 광대하게 연설하여 사법을 원만하게 하시나니, 이것이 여래의 여섯째 불공불법이니라.
또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욕심이 줄어듦이 없으시다. 어떤 것을 욕심이라 하는가? 이른바 법의 욕심이다. 또 어떤 것을 줄어듦이 없다 하는가? 이른바 여래의 대자심(大慈心)의 욕심이 줄어듦이 없고, 대비심(大悲心)의 욕심이 줄어듦이 없으며, 설법의 욕심이 줄어듦이 없고, 중생을 구제할 욕심이 줄어듦이 없으며, 중생을 성숙시킬 욕심이 줄어듦이 없고, 살필 욕심이 줄어듦이 없으며, 보살을 가르칠 욕심이 줄어듦이 없고, 3보(寶)의 종자를 끊게 하지 않으려는 욕심이 줄어듦이 없느니라.
여래의 욕심과 향함은 지혜가 앞에서 이끄는데, 여래의 이러한 욕심은 다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위없는 일체지(一切智)의 열매를 원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근기를 따라 설법하는 것이니, 이것이 여래의 일곱째
불공불법이니라.
또 사리자여, 여래의 정진은 줄어듦이 없으니, 그 여래의 정진의 힘 때문에 일체 중생을 다 교화하여 정진을 버리지 않고 법을 듣는 이로 하여금 권태를 내지 않게 한다. 여래께서는 법을 듣는 자에 대해서도 얻는 바가 없으시며, 그를 법기(法器)라고 보았으면 그 근기를 따라 설법하되 권태를 느끼지도 않으시고, 또 중지하지도 않으시며, 설법할 때에는 음식을 생각하지 않으시고, 그 중간에도 중생을 버리지 않으신다.
여래께서는 긍가(殑伽)의 모래 수 같은 불찰(佛刹) 가운데에서 만일 한 중생이라도 제도되지 않은 중생이 있으면 3업(業)에 다 권태를 느끼지 않으시고, 3업이 가뿐하고 편안하여 정진을 일으켜 이치답게 부지런히 수행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거룩한 해탈을 얻게 하시나니, 이것이 여래의 중생들을 위하는 크게 정진하는 힘이다. 이것이 여래의 여덟째 불공불법이니라.
또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어디서나 무엇에 대해서나 모든 생각[念]이 줄어듦이 없으시다. 여래께서는 바른 생각을 조금도 잃음이 없으시나니,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 서로 이어 현재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결과를 증득하셨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이 가진 과거 미래 현재의 모든 마음을 여래께서는 다 자연스럽게 맡아서 관찰하신다. 여래께서는 끝까지 잊어버리는 일이 없어 중생들의 모든 마음의 활동을 다 아시느니라.
여래께서는 다시 생각하거나 관찰하지 않고 바른 생각이 줄어들지 않으시며, 3취법(聚法)에 머물러 중생들의 근성을 아시고, 중생들의 일체 좋아함을 이해하시며, 중생들의 행을 보신다. 여래께서는 또 생각하거나 살피지 않고 설법이 끊이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여래의 생각[念]이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기억함이 고요하여 모두 잃어버리지 않으신다. 이 법을 중생들을 위해 두루 설명하시나니, 이것이 여래의 아홉째 불공불법이니라.
또 사리자여, 여래의 등지(等持)는 줄어듦이 없다. 여래께서 가진 등지법에 있어서는 일체 법이 다 평등한데 그 말대로 모든 법이 평등하다. 어떤 것을 여래의 등지가 줄어들지 않는 것이라 하는가? 이른바 진여가 평등하면 곧 등지가 평등하고, 등지가 평등하면 그것은 곧 여래의 평등이니, 만일 이 평등한 법문에 들어가면 그것을 곧 삼마혜다(三摩呬多)라 한다.
만일 탐제(貪際)가 평등하면 그것은 곧 탐제를 떠난 평등이요, 진제(瞋際)가 평등하면 진제를 떠난 평등이며, 치제(癡際)가 평등하면 치제를 떠난 평등이다. 유위제(有爲際)가 평등하면 무위제(無爲際)가 평등하며, 생사제(生死際)가 평등하면 열반제(涅槃際)가 평등하다. 만일 이 평등의 법문에 들어가면 그것을 여래 등지가 줄어듦이 없는 것이라 한다. 왜냐하면 등지가 줄어듦이 없기 때문에 필경에 줄어듦이 없는 것이다.
또 여래의 등지법은 눈과 상응하지 않고, 귀ㆍ코ㆍ혀ㆍ몸ㆍ뜻과도 상응하지 않는다. 여래께서는 그 모든 근(根)에 있어서 조그만 결함도 없어서 지계(地界)에 의지하지 않으시고, 수계ㆍ화계ㆍ풍계에도 의지하지 않으신다. 욕계ㆍ색계ㆍ무색계를 의지하지 않으시고, 차계(此界)와 타계(他界)를 의지하지 않으신다. 의지하는 데가 없기 때문에 줄어듦이 없는 것이니, 이것을 필경에 줄어듦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 여래께서는 등지가 줄어듦이 없기 때문에 곧 중생들을 위해 이 법을 광대하게 연설하시어 그들로 하여금 모두 여래 등지의 법문을 얻게 하시는데, 이것이 여래의 열째
불공불법이니라.
또 사리자여, 여래의 지혜는 줄어듦이 없다. 여래의 훌륭한 지혜를 어떻게 아는가? 이른바 일체 법에 있어서 남의 믿음을 따르지 않는 지혜 중생과 수자(壽者)와 보특가라가 없으면서 법에 얻음이 있는 지혜, 다함이 없고 걸림이 없이 좋은 방편을 아는 지혜, 글귀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 한 글귀 속에서 백천 겁에 들어가 가지(加持)하고 연설하는 지혜, 무엇이나 질문하면 각각 설명하여 의혹을 풀어 주는 지혜,
어디로 가나 장애가 없는 지혜, 3승(乘)을 세워 잘 설명하는 지혜, 8만 4천의 마음 활동을 잘 아는 지혜, 8만 4천 법문을 물음에 따라 설명하는 지혜 등이니, 이런 여래의 최상의 훌륭한 지혜는 가없고 끝없어 다 말할 수 없다. 그 여래의 훌륭한 지혜는 줄어듦이 없어서 중생들을 위해 지혜의 무진한 법문을 연설하나니, 이것이 여래의 열한째 불공불법이니라.
또 사리자여, 여래의 해탈은 줄어듦이 없다. 어떤 것을 여래 해탈은 줄어듦이 없는 것이라 하는가? 이른바 그 근기를 따라 해탈시키는 것이다. 즉 성문의 무리들은 소리를 듣고 해탈하고, 연각의 무리들은 연생법(緣生法)을 깨달아 해탈하며, 부처님 세존은 모든 장애를 떠나 2취(取)에서 해탈한다.
여기서 말하는 해탈이란 과거의 부처님께서는 이미 가셨고, 미래의 부처님께서는 오지 않으셨으며, 현재의 부처님께서는 머물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눈과 빛깔의 2취에서 해탈하고,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의 2취에서 해탈한다. 취함이 없고, 집착함이 없으며, 의지함이 없어 해탈하는 것이다. 마음의 자성은 밝고 진실하기 때문에 지혜도 또한 그러하나니, 이것을 일러 한 심상(心相) 가운데서 훌륭한 지혜와 상응한다는 것이다.
여래께서는 이로 말미암아 현재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결과를 증득하시고,
증득하신 것에 걸맞게 그 법으로 중생들을 위해 광대하게 연설하시나니, 이것이 여래의 열두째 불공불법이니라.
또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일체 신업(身業)의 지혜를 길잡이로 삼아 그 지혜를 따라 행하신다. 여래께서는 이 신업을 구족하셨기 때문에 부처님의 몸을 보는 일체 중생은 다 조복되고,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자도 다 조복되며, 부처님의 침묵을 보는 자도 다 조복되고, 부처님께서 음식을 드시는 것을 보는 자도 다 조복되며, 부처님의 위의를 보는 자도 다 조복되고, 부처님의 모든 상(相)을 우러르는 자도 다 조복된다.
부처님의 묘호(妙好)를 보는 자도 다 조복되며, 부처님의 볼 수 없는 정수리 모양과 빛을 놓는 것을 보는 자도 다 조복되고, 부처님께서 발을 들고 내림과 도시나 촌락에 드나드는 것을 보는 자도 다 조복된다. 부처님께서는 4위의 가운데서 중생을 조복하는 일을 언제나 하시는데, 이것이 여래께서 신업의 지혜를 길잡이로 삼아 그 지혜를 따라 행하시는 것이니라. 이것이 여래의 열셋째 불공불법이니라.
또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일체 어업(語業)의 지혜를 길잡이로 삼아 그 지혜를 따라 행하신다. 왜냐하면 부처님 세존께서는 거짓 법을 말씀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끊임없는 법을 말씀하시고 즐겨 설법하신다. 여래의 모든 말씀은 모르는 자를 알게 하며, 높고 낮음이 없으시며, 번거로운 말이 없으시고, 왜곡하는 말이 없으시며, 추잡한 말이 없으시고, 어그러진 말이 없으시며, 험한 말이 없으시고, 부드러운 말씀을 잘하시며, 낡은 말이 없으시고, 경박한 말이 없으시며, 괴롭히는 말이 없으시고 빠른 말이 없으시며, 느린 말이 없으시고, 분명히 말씀하시며, 잘 연설하시고 잘 아는 말씀을 하신다.
묘하게 설하시는 모습과
묘한 음성은 결함이 없고 허물이 없다. 지극히 아름답고 광대하고 묘하며, 티끌을 떠나고 어두움이 없으며, 밝고 걸림이 없으며 화합하고 진실하며, 신통은 모자람이 없고 음향은 고우며 묘한 즐거움을 내며, 몸은 기쁨을 얻고 마음은 아주 유순하며, 탐애(貪愛)를 없애고 분노를 없애며 우치를 없앤다. 악마를 항복 받고, 죄업(罪業)을 제어하며, 외도의 말을 그치게 하고, 알아듣지 못할 말은 그치게 하신다.
북소리와 같고, 가릉빈가(迦陵頻伽) 소리와 같으며, 제석(帝釋)의 소리와 같고, 범왕(梵王)의 소리와 같으며, 바다 조수의 소리와 같고, 구름의 천둥소리와 같으며, 지진 소리와 같고, 큰 기러기 소리와 같으며, 큰 공작이 유희하는 소리와 같고, 구지라(拘枳羅) 소리와 같으며, 명명새[命命鳥] 소리와 같고, 큰 사슴 소리와 같으며, 공후(箜篌)의 소리와 같다.
분명히 알 소리, 기쁘게 들을 소리, 매우 깊고 맑고 밝아 어물거리지 않는 소리, 기쁜 마음으로 즐겨 들을 소리, 묘한 즐거움을 내는 소리, 선근을 내는 소리, 문구가 끊이지 않는 소리, 문구를 즐겨 말하는 소리, 뜻과 글귀가 화합한 소리, 법과 글귀가 화합한 소리, 때를 아는 소리, 때에 맞는 소리, 때를 넘기지 않는 소리, 자타의 근성을 알아 잘 연설하는 소리, 보시로 장엄한 소리, 계율이 청정한 소리, 인욕하는 부드러운 소리, 정진이 용맹스런 소리, 선정의 묘한 즐거운 소리, 지혜가 완전한 소리와 같다.
또 큰 사랑으로 화합하는 소리, 큰 슬픔으로 피로해하지 않는 소리, 큰 기쁨이 밝은 소리, 큰 버림이 완전한 소리, 3승(乘)을 세우는 소리, 3보의 종자를 끊이지 않게 하는 소리, 3취(聚)의 분위(分位)를 굳게 세우는 소리, 3해탈문이 청정한 소리, 4제(諦)를 관찰하는 소리, 관찰하는 지혜의 소리, 지혜를 깨뜨리지 않는 소리, 모든 성인을 칭찬하는 소리, 허공의 무량함을 아는 소리, 모든 상을 구족한 소리와 같으니라.
사리자여, 이것이 여래께서
일체 어업의 지혜를 길잡이로 삼아 그 지혜를 따라 행하는 것이니, 이것이 여래의 열넷째 불공불법이니라.
또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의업(意業)의 지혜를 길잡이로 삼아 그 지혜를 따라 행하신다. 왜냐하면 여래의 심법(心法)은 말할 수 없고, 여래의 의법(意法)과 식법(識法)도 지혜나 변재(辯才)로 잴 수 없기 때문이다.
여래의 지혜는 일체 중생의 마음을 따라 알고, 일체 중생의 뜻을 따라 들어가며, 일체 중생의 지혜를 통달한다. 모든 법은 결정되고, 모든 등지(等持)의 법도 다른 믿음이 없다. 반연되는 것을 초월하고, 인연으로 생기는 것을 떠나며, 3유(有)와 모든 나쁜 세계를 없앤다. 모든 악마의 법과 악마의 신통 변화를 초월하고, 모든 아첨과 꼭두각시의 법을 해탈하여 멀리 떠났으며, 나와 내 것을 버리고, 무명과 우치의 덮개를 없애며, 8정도(正道)를 닦아 모든 의혹을 떠나고, 허공과 같아서 법계에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
사리자여, 이와 같은 법이 여래께서 의업의 지혜를 길잡이로 삼아 그 지혜를 따라 행하신다는 것이니, 이것이 여래의 열다섯째 불공불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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