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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5054 불설대승보살장정법경(佛說大乘菩薩藏正法經) 16권

by Kay/케이 2024.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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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불설대승보살장정법경(佛說大乘菩薩藏正法經) 16

 

대승보살장정법경 제16권

서천 역경삼장 조산대부 시광록경 전범대사 사자사문 신 법호 등 한역
변각성 번역


4. 여래부사의품

“또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지난 세상에 집착함이 없고 걸림이 없는 지견으로 법륜을 굴리는 곳에 따라 법륜을 굴리셨다. 무엇을 말하는가. 사리자여, 이른바 지난 세상의 모든 불찰(佛刹)에서 이루어지거나 파괴되는 일체의 일을 여래께서는 산수(算數)의 방편으로 다 잘 아신다.
또 그 불찰에 있는 일체의 약초와 수림을 다 잘 아시고, 또 그 불찰에 있는 일체 중생의 무리와 중생들의 시설을 다 잘 아시며, 또 그 불찰에 있는 일체 중생들의 갖가지 성행(性行)과 갖가지 색상(色相)과 주위의 광대한 것을 다 잘 아시고, 또 그 불찰에서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와 교화하신 일과 나아가 하나하나 널리 중생들을 위해 바른 법을 두루 연설하신 일을 모두 다 잘 아시느니라.
혹 성문의 법으로 화도(化度)할 중생이 있거나 혹은 연각의 법으로 화도할 중생이 있거나 혹은 대승의 법으로 화도할 중생이 있거나, 나아가 불찰의 광대함과 필추 무리의 광대함과 수량(壽量)의 광대함과 바른 법의 세상에 머무름의 광대함과 중생들이 음식을 수용(受用)한 일 등과 내지 중생들이 호흡한 일, 이와 같은 일체 중생들의 지난 세상의 일체 현상인 생멸과 그 태어난 곳과 갖가지 근성과 갖가지의 기호를 다 잘 아시느니라.
여래께서는 집착하지 않는 마음으로 일체의 법을 다 자연스럽게 맡아서 아시고, 끝없는 그 마음들과 그 마음들의 일어남을 산수의 방편으로 다 잘 아신다.
여래께서는 현량(現量)의 지혜로 지난 세상의 모든 중생들의 마음을 관찰하신다. 이와 같은 여래께서는 최상의 지혜로 간단없이 중생들을 위해 알맞게 설법하시나니, 사리자여, 이것이 여래의 열여섯째 불공불법이니라.
또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오는 세상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고 걸림이 없는 지혜로 법륜을 굴리는 곳에 따라 법륜을 굴리신다.
이른바 오는 세상에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 세상에 나오실 것을 부처님께서는 다 잘 아시며, 나아가 그 때에는 겁화(劫火)가 크게 일어나며, 큰 홍수가 넘치고, 사나운 바람 불어도 어떤 불찰은 안전하여 요동하지 않으며, 어떤 불찰은 일체 땅덩이가 다 부서져 가루가 되며, 일체의 약초와 수림이 타고, 모든 별들의 모양이 변할 것을 다 잘 아신다.
나아가서는 모든 불찰에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고, 연각이 세상에 나오며, 성문이 세상에 나오고, 보살이 도를 깨치는 것과 중생들의 호흡과 그들이 먹는 음식 등과 다니거나 서 있는 일, 내지 일체 중생들의 주위의 광대함과 낱낱 중생들이 해탈로 나아가는 것과 혹은 성문승과 연각승, 혹은 대승으로 해탈하는 일 등을 그 일체 여래께서는 다 아신다.
또 두루한 일체 불찰과 모든 중생들이 태어나는 곳과 그들의 마음과 심소(心所)의 일어남을 그 일체 여래께서는 다 아신다. 비록 이렇게 아시기는 하지만 여래께서 오는 세상의 중생들을 맡으신 것은 아니고, 다만 오는 세상을 여실히 관찰하여 그들을 위해 바른 법을 연설하신다는 것이니, 사리자여, 이것이 여래의 열일곱째 불공불법이니라.

또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현재 세상에서 집착하지 않고 걸림 없는 지견(智見)으로 법륜을 굴리는 곳을 따라 법륜을 굴리신다.
이른바 현재의 시방 일체 불찰을 여래께서는 세 종류의 산수 방편으로 다 잘 아신다. 현재의 일체 부처님과 일체 보살과 일체 연각과 일체 성문을 여래께서는 다 잘 아신다. 나아가 현재의 일체 별[星宿]의 현상도 두루 아신다. 그리고 현재의 일체 약초와 수림도 다 아신다. 나아가 시방의 일체 지계(地界)가 다 부서진 티끌 수도 산수의 방편으로 다 잘 아신다.
또 시방 일체 수계(水界)의 털끝만한 물방울이 솟아오름과 또 시방 일체 화계(火界)가 빠르게 생겨났다 없어졌다 하는 것과 또 시방 일체 풍계(風界)가 갖가지 모양으로 부는 것을 산수의 방편으로 다 잘 아신다. 또 시방 일체 공계(空界)가 털끝만큼 모이는 것도 산수의 방편으로 다 잘 아신다. 또 현재의 세 종류의 중생 세계를 다 잘 아신다.
또 현재 일체의 지옥 중생 세계가 생긴 원인과 일어난 원인을 다 잘 아신다. 또 현재 일체 축생 세계가 생긴 원인과 일어난 원인을 다 잘 아신다. 또 현재의 일체 아귀 세계가 생긴 원인과 일어난 원인을 다 잘 아신다. 또 현재 일체 인간 세계가 생긴 원인과 멸하는 원인을 다 잘 아신다. 또 현재 모든 천상 세계가 생긴 원인과 멸하는 원인을
다 잘 아신다.
또 현재 일체 중생과 중생들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맡아서 번뇌가 있거나 번뇌를 떠난 것을 다 잘 아신다. 또 현재 일체 중생들의 근성을 따라 화도(化度)할 것과 화도하지 못할 것을 다 아신다. 그러나 부처님 여래께서는 종류를 따라 식(識)이 변화하는 두 가지가 없다. 여래께서는 두 이치가 없는 최상의 법문으로 중생들을 위해 연설하시나니, 사리자여, 이것이 여래의 열여덟째 불공불법이니라.
또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이런 18불공불법을 다 갖추었기 때문에 시방 일체 세계를 두루하여 대중 가운데서 광명을 내어 비추는데, 이것은 원구일체위광(圓具一切威光)이라 이름하는 것으로서 최상의 길상(吉祥)이요, 희유한 법이니라.
또 사리자여, 여래의 18불공불법은 마치 허공과 같아 그 한계가 없는 것이다. 만일 허공의 한계를 알고 싶어한다면 곧 여래의 18불공불법의 한계를 알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여래의 이런 18불공불법을 듣고는 깨끗한 믿음으로 분별을 초월하고 온갖 의혹을 떠나며, 다시 몸과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이치를 거듭 밝혀 게송을 설하셨다.

조복한 성인은 허물이 없어
몸과 말과 뜻의 업이 모두 움직임이 없어
근성 따라 설법하여 중생들을 이롭게 하나니
이것이 훌륭한 어른의 불공법(不共法)이다.

부처님의 마음에는 높고 낮은 사람 없어
일체의 거슬리고 순종함이 모두 쉬었다.
다툼이 없는 행을 닦아 해탈한 마음
이것이 훌륭한 어른의 불공법이다.


부처님은 조복한 어른, 잊음이 없고
해탈하는 행의 법을 모두 아신다.
네 가지 걸림이 없는 이해가 이미 뚜렷이 밝았나니
이것이 훌륭한 어른의 불공법이다.

여래께서는 다니거나 섰거나 또 앉았거나 누웠거나
그 일체가 모두 등인(等引)의 마음에 머무르신다.
중생이라는 생각도 없고 산란한 마음도 없나니
이것이 훌륭한 어른의 불공법이다.

선서(善逝)께서는 이미 갖가지의 생각이 없어
모든 부처님 세계와 중생들에 대하여
평등한 행과 큰 명예를 일으키셨나니
이것이 훌륭한 어른의 불공법이다.

부처님의 마음을 가리거나 버림이 없어
결정코 바른 도를 잘 관찰하신다.
분별하거나 분별을 떠나거나 함이 전혀 없나니
이것이 훌륭한 어른의 불공법이다.

능인(能仁)께서는 선법에 대한 욕심이 줄지 않아
가엾이 여기는 방편의 문을 항상 행하여
한량이 없는 저 중생들을 조복하시나니
이것이 훌륭한 어른의 불공법이다.

일찍이 정진을 조금이나마 늦추시는 일이 없고
광대하고 끝이 없는 여러 가지 소견을 조복하신다.
몸과 말과 뜻을 잘 제어하는 것도 그러하나니
이것이 훌륭한 어른의 불공법이다.

여래께서는 바른 생각을 줄이지 않고
보리를 깨달으려 도량으로 나아갔다.
법을 깨닫고도 깨달았다는 마음 없나니
이것이 훌륭한 어른의 불공법이다.

분별하거나 분별을 떠났거나 함이 부처님에게는 없어
평등하게 등지(等持)의 마음에 편안히 머무셨다.
결정코 어떤 법에도 의지하는 바 없었나니
이것이 훌륭한 어른의 불공법이다.

부처님의 지혜는 한 찰나에 결정코 아시는데
저 모든 중생들의 행을 모두 아시고
그들의 좋아함을 따라 법문을 밝히시나니
이것이 훌륭한 어른의 불공법이다.

소리를 따라 깨달아 아는 것을 성문이라 하고
인연으로 생기는 법이라 생각하는 이를 연각이라 하네.
집착을 떠나 더러움 없어 허공 같나니
이러한 크게 평등한 마음이 부사의하다.

옛날에 깨달음이 없는 마음에 편히 머물러
제 성품이 해탈한 마음을 맡아 가졌다.
그 해탈한 법을 근성을 따라 연설하나니
이것이 훌륭한 어른의 불공법이다.

위의(威儀)의 도를 나타내어 대중이 우러르는데
곧은 몸과 단정한 눈매로 성안으로 드신다.

상호와 장엄과 갖가지의 위광으로
중생을 바라보니 모두 다 조복되네.

중생들 부처님의 진실한 광명 보고
많은 구지(俱胝)의 무리들이 묘한 즐거움 얻네.
그 광명을 두루 비추어 중생들을 조복하시나니
이것이 훌륭한 어른의 불공법이다.

부처님께서 한 음성으로 법을 연설하실 때
중생들은 뜻을 따라 모두 다 잘 듣는다.
소리에 메아리 오듯 그 이치에 걸맞나니
이것이 훌륭한 어른의 불공법이시다.

선서(善逝)의 마음의 업은 본래 없지만
지혜로 짓는 바는 모두 다 잊지 않네.
성인의 지혜는 중생들의 마음 따라 들어가나니
이것이 훌륭한 어른의 불공법이다.

선정과 등지가 서로 잘 어울리고
그 어떤 희론도 행하는 일 없다.
평등하게 행하는 법 허공 같나니
이것이 훌륭한 어른의 불공법이다.

여래께서는 지난 세상의 일을 모두 아시고
일체의 법을 운전하시되 아무 장애가 없으시다.
해탈한 지혜로 모든 갈래의 일을 다 아시나니
이것이 훌륭한 어른의 불공법이다.

장차 올 세상의 갖가지의 법
거기서 얻을 것과 얻지 못할 것
거기 있을 중생 세계와 또 여래들을
부처님께서는 게으름 없이 모두 아신다.

부처님의 마음은 흐트러지는 일이 없어
장차 올 세상일을 그대로 관찰하되
중생들과 법을 아심도 또한 그러하니
이것이 훌륭한 어른의 불공법이다.

현재의 세상에서 변화하는 모든 일들
여래께서는 다 아시면서도 집착하지 않으며
부처님 조어자(調御者)는 저 허공과 같나니
이것이 훌륭한 어른의 불공법이다.

여래께서 가지신 갖가지의 불공법
열여덟 가지 그것은 모두 불가사의하다.
여실히 열어 밝혀 허공 같나니
보살들은 마땅히 깨끗한 믿음을 내어야 하네.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이런 18불공불법을 구족하셨기 때문에 여래ㆍ응공ㆍ정등정각께서는 훌륭한 곳을 알아 대중 가운데서 사자처럼 외쳐 묘한 범륜(梵輪)을 굴리시나니,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ㆍ하늘ㆍ사람ㆍ악마ㆍ범천 등은 굴리지 못하는 것이며,
여래와 그 법을 같이하는 자가 없느니라.
사리자여, 믿음에 머무는 보살들은 여래의 이런 불가사의한 법을 듣고는, 마땅히 청정한 믿음을 내어 분별을 초월하고 온갖 의혹을 떠나며, 다시 몸과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어야 하느니라.”

5. 자비희사품(慈悲喜捨品) ①

“또 사리자여, 부처님 세존께서는 믿음에 머무는 보살이 보살의 바른 법을 감당할 수 있는 법기(法器)임을 아신다.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는 곧 거기 가셔서 그들을 위해 보리도법(菩提道法)을 설하시느니라. 사리자여, 그런 까닭으로 믿음에 머무는 보살이 곧 큰 법기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사리자여, 나는 과거 세상 아승기겁(阿僧祇劫) 이전에 다시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아승기겁을 지난 일을 생각한다. 그때 세상에 나오신 부처님께서 계셨는데, 그 이름은 대온(大蘊) 여래ㆍ응공(應供)ㆍ정등정각(正等正覺)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었다.
그 부처님께서는 그 세간의 하늘ㆍ사람ㆍ아수라(阿脩羅)ㆍ사문ㆍ바라문 등 모든 대중 가운데서 그 신통의 힘으로 성과(聖果)를 증득하시고, 모든 대중들을 위해 정법을 설하셨는데, 그것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으며 마지막도 좋았고, 글 뜻은 심원하고 순일하여 잡되지 않았으며, 원만하고 청정한 범행(梵行)의 모양이었다.
사리자여, 대온 여래ㆍ응공ㆍ정등정각의 회중(會中)에는 72나유다(那庾多) 성문 대중이 있었는데,
그들은 다 아라한으로서 번뇌를 없애고 마음이 자재하여 저 언덕에 도달한 사람들이었다.
그때에 최승당(最勝幢)이라는 나라가 있었고, 그 국왕의 이름은 최승수(最勝壽)였다. 그는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렸고, 국토는 광대하고 안온하고 풍요하였으며, 인민은 치성하였다. 그 왕자의 이름은 정진행(精進行)이었는데, 색상이 단엄하여 사람들이 보기를 좋아하였다. 그는 전생에 선근을 심어 과거의 백천 나유다 구지 부처님 여래를 친근하여 공경하고 공양하였다.
그때 태자는 그 관속(官屬)들과 함께 어떤 아주 묘한 큰 동산에 있었다. 그때 대온 여래ㆍ응공ㆍ정등정각께서는 그 정진행 태자가 보살장(菩薩藏)의 정법을 맡을 수 있는 부처님의 법기임을 아시고, 동산으로 가서 그 공중에서 정진행 태자에게 보리도법을 말씀하셨다.
‘태자여, 어떤 것을 보리도라 하느냐? 이른바 일체 중생에 대해 자바라밀다(慈波羅密多)를 일으켜 그 변화를 따라 포섭하는 법이니, 이것을 보리도라 하느니라.
또 어떤 것을 일체 중생에 대한 자바라밀다라 하느냐? 태자여, 이른바 보살은 중생계에서 광대한 자(慈)를 행한다. 저 중생계는 허공계와 같다. 마치 허공이 탁 트이고 광대한 것처럼 보살의 자심(慈心)도 그런 것이다. 중생계와 중생취(衆生聚)에 대해 광대한 자심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태자여, 알아야 한다. 저 중생계가 한량이 없는 것처럼 보살의 자관(慈觀)도 한량이 없다. 또 허공이 변제(邊際)가 없는 것처럼 중생계도
변제가 없으며, 중생이 변제가 없으므로 자심도 그 변제가 없다.
태자여, 알아야 한다. 저 중생계의 그 수(數)는 광대하여 지계와 수계ㆍ화계ㆍ풍계와 같지 않다. 지금 비유로 이 이치를 밝혀 중생계의 광대무량함을 나타내리라.
태자여, 비유하면 동방의 긍가(殑伽)의 모래 수와 같은 모든 세계이다. 즉 서방ㆍ남방ㆍ북방과 네 간방[四維]과 상하의 시방에 두루한 긍가의 모래 수와 같은 세계가 있고, 그와 같은 큰 바다가 있으며, 거기 충만한 물은 동일한 근원이라 하자.
이와 같은 시방의 일체 긍가의 모래 수와 같은 중생계 가운데 있는 중생취(衆生聚)를 모두 백 조각으로 부수고, 나아가 한 털끝만한 분량의 물방울을 들고 다시 앞에서와 같이 그 긍가의 모래 수와 같은 수량을 50조각을 내고, 나아가 그 한 털끝만한 분량의 물방울 하나를 들고 다시 앞에서와 같이 그 긍가의 모래 수와 같은 중생의 수량을 다시 50조각으로 부수고, 나아가 그 한 털끝만한 수량으로 만들었다 하자.
태자여,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그 큰물의 무더기는 산수의 방편으로도 저 중생계 수의 무량무변함과는 견줄 수 없는 것이다. 그 중생계가 무량무변하기 때문에 보살의 자심도 또한 그와 같다.
태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모든 보살의 자관(慈觀) 선근의 분량을 그대는 알 수 있느냐?’
태자는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닙니다, 선서(善逝)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의 자관(慈觀) 선근이 무량무변한 것도 그와 같으니라.
또 태자여, 보살의 자심(慈心)은 자기를 잘 수호하고 남에게 이익을 준다.
그 자심 때문에 남에 대해서 성내지 않고 게으르지도 않으며, 분노를 떠나고 허물이 없으며, 위순(違順)을 보지 않으며, 청정함을 나타내어 모든 더러움을 없앤다.
몸과 말과 마음에서 항상 묘한 즐거움을 내며, 오염을 없애고 두려움을 쉬게 하며, 해침에서 잘 보호하고 청정한 뜻을 일으킨다. 싸움을 없애고 칼이나 막대기를 들지 않고, 해탈의 문을 향해 모든 해침을 떠난다. 일체 아첨하는 마음과 난잡한 문자와 거짓된 말을 모두 버리며, 재리(財利)를 옮겨 처리하여 신명(身命)을 기른다.
제석과 범왕의 공경을 항상 받으며 위엄스런 덕으로 장엄하여 지혜로운 사람이 칭찬하며, 어리석은 자를 보호하고, 깨끗한 행을 지니고 욕계(欲界)에 집착하지 않으며, 해탈의 도 따위를 모두 내어 잘 포섭하며, 모든 유(有)의 복행(福行)은 좋아하지도 않고 또 쌓지도 않으며, 일체 최상의 복행을 항상 늘린다.
32상(相)과 80종호(種好)로 장엄하여 일체의 비열하고 잔약한 모든 근(根)을 다 제거한다. 좋은 갈래인 열반의 바른 도를 좋아해 나아가고, 일체 나쁜 갈래를 찰나에 멎게 하며, 일체 법의 사랑으로 스스로 즐거워하며, 모든 욕심으로 큰 부자와 왕위를 수용하고 기쁨을 늘리면서도 애착하지 않는다.
중생들에 대해 평등한 마음을 일으켜 보시를 행하고, 모든 이상(異想:중생과 다르다는 생각)을 떠나 일체의 계학(戒學)을 잘 닦으면서 계율을 깨뜨린 사람까지도 잘 보호해 준다. 인욕(忍辱)의 힘을 나타내어 악마와 교만 따위를 멀리 떠나고, 정진의 힘을 내어 출리(出離)를 바로 행하며, 선정ㆍ해탈ㆍ등지(等持)ㆍ등지(等至)로써 근본 번뇌를 결정적으로 출리하고자 하며, 훌륭한 지혜와 정인(淨因)으로 일체의 자문총지(慈聞摠持)를 낸다.
자분(自分)과 타분(他分)에는 다 거스르거나 해침이 없어
일체 악마의 번뇌분(煩惱分)을 제하며, 다니거나 섰거나 앉았거나 눕거나 일체 묘한 즐거움의 화합을 늘리고, 일체의 자성(自性)과 모든 작의(作意)를 아주 없애며, 부끄러움의 묘한 향으로 항상 장식하고 일체 악취의 장애와 번뇌 등을 멸하며, 항상 인자한 마음을 일으켜 세간을 구호하고 큰 자심으로 자기의 즐거움을 버리고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
또 태자여, 저 성문들이 일으키는 자심은 다만 자기 이익만을 위하지만 보살의 자심은 항상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한다. 즉 처음 발심한 보살은 중생연(衆生緣)의 자심을 행하고, 수행위(修行位)의 보살은 법연(法緣)의 자심을 행하며, 인욕을 얻은 보살은 무연(無緣)의 자심을 행한다.
태자여,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다 보살마하살의 큰 자심을 행하는 것이다. 만일 보살이 자심에 머무르면 그는 능히 중생들을 위해 광대한 자심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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