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5051 불설대승보살장정법경(佛說大乘菩薩藏正法經) 13권

by Kay/케이 2024. 11. 2.
728x90
반응형

 

 

 

통합대장경 불설대승보살장정법경(佛說大乘菩薩藏正法經) 13

 

대승보살장정법경 제13권


서천 역경삼장 조산대부 시광록경 전범대사 사자사문 신 법호 등 한역
변각성 번역


4. 여래부사의품 ⑦

“또 사리자여, 어떤 것을 여래의 4무소외(無所畏)의 불가사의라 하느냐? 믿음에 머무는 보살은 마땅히 깨끗한 믿음을 내어 분별을 초월하고 온갖 의혹을 떠나 나아가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어야 하느니라.
사리자여, 여래의 무소외법에는 네 종류가 있으니, 여래께서는 4무외를 갖추셨기 때문에 훌륭한 곳을 아시고 대중 가운데서 사자처럼 외쳐 묘한 범륜(梵輪)을 굴리시는데,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은 굴리지 못하는 것이며, 일체 세간의 하늘이나 사람이나 악마나 범천 중에 여래와 그 법을 같이하는 자 없느니라.
사리자여, 어떤 것을 4무소외라 하느냐? 첫째 일체지(一切智)의 무외이니, 이른바 부처님 여래께서는 최상의 지혜를 원만히 갖추시어 대중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나는 위없는 정등정각을 이루었다’고 말씀하신다.
이 법은 오직 부처님만이 스스로 증지(證知)하신 것으로서 다른 천인이나 세간의 사람들은 부처님과 그 법어(法語)를 같이할 자 없으며, 여래께서는 이 법으로 등정각을 이루셨느니라.
무엇 때문에 여래께서는 등정각을 이루었다고 하느냐? 이른바 부처님 여래께서는 일체 법에 평등하기 때문에 정각을 이루었다고 한다. 모든 법에 대해 높고 낮음이 없나니, 이생(異生:범부)의 법이나 성인의 법이나 부처의 법이나, 유학(有學)의 법이나 무학(無學)의 법이나, 연각의 법이나 보살의 법이나 세간의 법이나 출세간의 법이나 죄 있는 법이나 죄 없는 법이나, 유루법(有漏法)이나 무루법이나, 유위법(有爲法)이나 무위법 등 이런 일체 법에 대해
여래께서는 평등하시기 때문이니, 이 때문에 여래께서 현재에 정각을 이루셨다고 하느니라.
이 가운데서 무엇 때문에 평등이라 하느냐? 이른바 공(空)을 평등하게 보는 것이 자성(自性)이기 때문이요, 상(相)이 없는 평등한 상이 자성이기 때문이며, 원(願)이 없는 평등한 삼계(三界)가 자성이기 때문이며, 생(生)이 없는 평등한 생이 자성이기 때문이요, 지음이 없는 평등한 지음이 자성이기 때문이며, 일어남이 없는 평등한 일어남이 자성이기 때문이며, 간직함이 없는 평등한 간직함이 자성이기 때문이며, 말한 바와 같은 평등한 3세(世)가 자성이기 때문이요, 밝은 해탈이 평등한 무명의 자애(自愛)가 자성이기 때문이며, 열반이 평등한 모든 행이 자성이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여, 이와 같이 모든 법에 평등하기 때문에 여래께서는 현재에 정각을 이루셨으며, 여래께서는 대중 가운데서 두려움이 없게 되시어 이런 법을 대중에게 가르쳐 대중으로 하여금 기쁨을 내게 하시며, 몸으로 기쁨을 얻기 때문에 마음으로 지극히 믿어 순종하므로 그들로 하여금 기쁘고 즐겁게 하시느니라.
여래께서는 대비(大悲)에 상응(相應)하시나니 진실을 갖추셨기 때문이요, 평등한 성품이시기 때문이며, 여실한 성품이시기 때문이요, 다른 성품이 없으시기 때문이며, 갖가지 성품이 없으시기 때문이요, 보는 바가 없는 성품이시기 때문이며, 남[生]이 없는 성품이시기 때문이요, 떠남이 없는 성품이시기 때문이며, 취함이 없는 성품이시기 때문이니라.
여래께서는 갖춘바 무외법 가운데서 실은 조그만 법도 취하시는 바 없고, 또한 취함이 없으신 것도 아니다. 여래께서는 무외법 가운데서 거짓이나 속임이 없으시고 여실하기 때문에 평등하시며 법계에 평등하시다. 이 평등한 법 가운데서 일체 세계를 두루 다하여 걸림이 없는 여래의 여실한 법을 펴시는데, 매우 깊고 미묘하여 이해하기 어렵고 알기도 어려우니라.
여래께서는 대비심을 일으키시나니, 곧 이 법으로 갖가지 방편을 일으켜 중생들을 위해 거룩한 출리(出離)의 법을 광대하게 연설하시어 모든 고통을 없애 주신다.
여래께서는 큰 원력으로 일체 중생으로서 스승이 없는 자에게는 스승이 되어 주시고, 정각을 이루지 못한 자에게는 정각을 이루게 하신다. 일체 중생으로서 모든 경계와 단견(斷見) 등에 흘러 다니는 자에게 여래께서는 무외법으로 다 청정하게 하시느니라.
사리자여, 여래의 무외법은 가없고 끝없어 허공과 같다. 저 허공의 한계를 알고자 하면 곧 여래의 무외법의 한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믿음에 머무는 보살이 이 법을 들으면 마땅히 깨끗한 믿음을 내어 분별을 초월하고 온갖 의혹을 떠나야 하며, 나아가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어야 한다. 이것이 여래의 첫째 무외법이니라.
또 사리자여, 둘째 번뇌가 다한 무외이니, 이른바 부처님 여래께서 최상의 지혜를 갖추어 대중 가운데에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모든 번뇌를 없애고 무소외를 얻었노라’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일체 천인과 세간에서는 부처님과 그런 법어(法語)를 같이할 자 없다. 그러면 어떻게 여래께서는 모든 번뇌를 다하셨느냐? 이른바 부처님 여래께서는 욕심의 번뇌가 다하고 마음이 해탈을 얻어 일체 탐하는 행의 종자를 끊으셨다.
여래께서는 존재의 번뇌가 다하고 마음이 해탈을 얻어 일체 성내는 행의 종자를 끊으셨으며, 여래께서는 무명의 번뇌가 다하고 마음이 해탈을 얻어 일체 우치한 행의 종자를 끊으셨고, 여래께서는 견해의 번뇌가 다하고 마음이 해탈을 얻어 일체 번뇌의 행의 종자를 끊으셨으니, 이것이 여래의 모든 번뇌가 다했다는 것이니라.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다 세속제(世俗諦)로 이루어지는 것이요, 승의제(勝義諦)가 아니다. 승의제란, 이른바 최상의 거룩한 지혜에 있어서는 안다거나 끊는다거나 닦는다거나 증득한다거나 해도 조그만 법에 머무름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 말한 바와 같이 그대로 진실하게 알며,
만일 중생이 출리의 행을 닦으면 여래께서는 여실히 아시기 때문이니라.
또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안계(眼界)와 색계(色界)와 안식계(眼識界)를 여실히 아신다. 어떻게 잘 아시느냐? 이른바 여래께서는 내공(內空)과 외공(外空)과 내외공을 아시기 때문이며, 나아가 의계와 법계와 의식계를 다 여실히 아시기 때문이다. 어떻게 잘 아시느냐? 이른바 부처님께서는 내공과 외공과 내외공을 다 아시기 때문이니라.
또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지계(地界)와 수계와 화계와 풍계와 허공계를 다 여실히 아신다. 어떻게 다 아시느냐? 이른바 허공과 같기 때문에 또한 그렇게 아신다. 여래께서는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가 다 분별이 일으킨 것임을 다 아시고, 유위계(有爲界)는 지은 모양임을 아시며, 무위계는 지은 모양이 아님을 아시며, 잡염계(雜染界)는 객진번뇌(客塵煩惱)의 모양임을 아시고, 청정계는 자성의 밝은 모양임을 아시며, 모든 행계(行界)는 이치답지 않게 마음먹은 무명의 모양임을 아시고, 열반계는 이치답게 마음먹은 밝은 지혜의 모양임을 아시느니라.
또 사리자여, 모든 경계[界]의 의지함과 모든 경계의 머무름, 모든 경계의 순응, 모든 경계의 건립, 모든 경계의 작용, 모든 경계의 의식, 모든 경계의 의향, 모든 경계의 고요함, 모든 경계의 주착(住著) 등을 여래께서는 하나하나 모두 여실하게 아시며, 알고 나서는 곧 그를 위해 설법하시느니라.
사리자여, 이것이 여래의 갖가지 계에 대한 지혜의 힘이니, 이 지혜의 힘은 그 한계가 없다. 만일 믿음에 머무는 보살이 부처님 여래에 대해 이러한 지혜의 힘에 대해 들으면, 깨끗한 믿음으로 분별을 초월하고 온갖 의혹을 버리며, 다시 몸과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즐거운 생각을 일으켜 희유하다는 마음을 내느니라.

여래의 무외의 한계에 대해 말해 보자. 믿음에 머무는 보살이 이 법을 들으면 깨끗한 믿음을 내어 분별을 초월하고 온갖 의혹을 버리며, 나아가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이것이 여래의 둘째 무소외법이니, 여래께서는 무소외를 갖추셨기 때문에 일체 천인 세간으로서는 여래와 그 법을 같이하는 자가 없느니라.
또 사리자여, 셋째 장도(障道)를 말하는 무외이니, 부처님 여래께서는 최상의 지혜를 갖추시어 대중 가운데서 ‘나는 성도(聖道)를 장애하는 장도의 법을 말하노라’ 하신다.……일체 천인 세간에서는 부처님과 법어(法語)를 같이할 자가 없느니라.
어떤 것을 장도의 법이라 하느냐? 한 가지 법이 성도를 장애하나니, 그 한 가지 법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청정하지 못한 중생의 마음이다. 두 가지 법이 성도를 장애하나니, 이른바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고, 남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다. 세 가지 법이 성도를 장애하나니, 이른바 몸으로 악을 짓고, 말로 악을 지으며, 뜻으로 악을 짓는 것이다. 네 가지 법이 성도를 장애하나니, 그 네 법은 다 악취(惡趣)에 떨어지는 것으로서, 이른바 탐욕이 악취에 떨어지고, 분노가 악취에 떨어지며, 우치가 악취에 떨어지고, 두려움이 악취에 떨어진다.
다섯 가지 법이 성도를 장애하나니, 이른바 살생과 도둑질과 간음과 거짓말과 술 마시는 것이다. 여섯 가지 법이 성도를 장애하나니, 이른바 부처님을 존중하지 않고, 법을 존중하지 않으며, 승가를 존중하지 않고, 계학(戒學)을 존중하지 않으며, 선정을 존중하지 않으며, 두타행(頭陀行)을 존중하지 않고 닦지 않는 것이다. 일곱 가지 법이 성도를 장애하나니, 이른바 만(慢)과 과만(過慢)과 만과만(慢過慢)과 아만(我慢)과 사만(邪慢)과 증상만(增上慢)과 비만(卑慢)이니라.
여덟 가지 법이 성도를 장애하나니, 이른바 삿된 견해와 삿된 생각ㆍ삿된 말ㆍ삿된 업ㆍ삿된 생활ㆍ삿된 부지런함ㆍ삿된 기억ㆍ삿된 선정이다. 아홉 가지 법이 성도를 장애하나니,
이른바 내 몸의 지음이 의리(義利)가 없고, 남을 해칠 마음을 일으켜 이미 짓고 현재에 짓고 장차 지을 것이며, 내가 사랑해 지음이 의리가 없고, 남을 해칠 마음을 일으켜 이미 짓고 현재에 짓고 장차 지을 것이며, 내가 사랑하지 않는 지음이 의리가 없고, 해칠 마음을 일으켜 이미 짓고 현재에 지으며 장차 지을 것이다. 열 가지 법이 성도를 장애하나니, 이른바 생물을 죽임과 도둑질ㆍ간음ㆍ거짓말ㆍ꾸미는 말ㆍ이간질하는 말ㆍ욕설ㆍ탐욕ㆍ분노ㆍ삿된 견해 등이니라.
사리자여, 이상의 법이 성도를 장애하고, 나아가 이치답지 않게 마음을 일으키는 것과 상응해서 번뇌를 내는 것이다. 이런 법은 맛이 없는 것이니, 이것은 볼 것도 아니요, 행할 것도 아니다. 뒤바뀐 근행(勤行)으로 말미암아 해탈하지 못하며, 일체의 사랑하는 견해를 일으켜 몸과 말과 뜻의 업에 집착하므로 애착은 더욱 성하게 된다.
여래께서는 모든 법이 성도를 장애함을 아시되, 여실히 아시고는 중생들을 위해 장도하는 법을 광대하게 연설하시어 중생들로 하여금 그 애착을 그치게 하신다. 그것을 끊는 법을 말씀하시고 가르쳐 그들로 하여금 기뻐하게 하시는데, 그들은 몸이 아주 기뻐지기 때문에 마음이 극히 유순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느니라.
여래께서는 대비(大悲)에 상응하고 진실을 갖추셨나니, 평등한 성품이기 때문이요, 여실한 성품이기 때문이며, 다름이 없는 성품이기 때문이요, 종류가 없는 성품이기 때문이며, 보는 바가 없는 성품이기 때문이요, 남[生]이 없는 성품이기 때문이며, 떠남이 없는 성품이기 때문이요, 취함이 없는 성품이기 때문이니라.
여래께서 갖추신 무외법 가운데에는 실로 취할 조그만 법도 없고, 또한 취함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여래의 무외법 가운데에는 또한 거짓이나 속임도 없다. 여실하기 때문에 평등이며 법계에 평등하다. 이런 평등한 법 가운데에는 일체 세계를 모두 다하여 걸림이 없이 펴느니라. 이런 불가사의하고 한량없고 셀 수 없이 많으며 매우 깊은 바른 법을
여래께서는 다 완전히 갖추시고는 대비의 마음이 매우 간절하시기 때문에 중생들을 위하여 장도를 끊는 법을 말씀하시어 모두 고요하고 그치게 하시느니라.
사리자여, 여래의 무소외법은 가없어 허공과 같다. 만일 저 허공의 한계를 알고자 한다면 곧 여래의 무외법의 한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믿음에 머무는 보살은 이 법을 듣고는 깨끗한 믿음을 내어 분별을 초월하고 온갖 의혹을 떠나야 하며, 나아가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어야 하느니라. 이것이 여래의 셋째 무소외법이다. 여래께서는 이 무소외법을 갖추셨기 때문에 일체 천인 세간에서 여래와 그 법을 같이할 자가 없느니라.
또 사리자여, 넷째 진고도(盡苦道)의 무외이니, 이른바 부처님 여래께서는 최상의 지혜를 갖추시어 대중 가운데서 ‘나는 성인의 출리(出離)의 법을 말하였으며, 고도(苦道)를 다했다’고 하시는 것이다. 나아가 일체 천인 세간에서 부처님과 법어를 같이하는 자가 없느니라.
어떤 것을 성인의 출리의 법이고 고도를 다한 것이라 하느냐? 한 가지 법이 있으니, 이것이 성인의 출리의 도이다.
어떤 것을 한 가지 법이라 하느냐? 이른바 중생들의 마음이 다 청정한 것이다. 두 가지 법이 성인의 출리의 도이니, 이른바 사마타(奢摩他)와 비발사나(毘鉢舍那)이니라. 세 가지 법이 성인의 출리의 도이니, 이른바 공(空)과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이니라. 네 가지 법이 성인의 출리의 도이니, 이른바 신념처(身念處)와 수념처(受念處)와 심념처(心念處)와 법념처(法念處)이다.
다섯 가지 법이 성인의 출리의 도이니, 이른바 신근(信根)과 정진근(精進根)과 염근(念根)과 정근(定根)과 혜근(慧根)이다. 여섯 가지 법이 성인의 출리의 도이니, 이른바 부처님 생각ㆍ법 생각ㆍ승가 생각ㆍ계율 생각ㆍ보시 생각ㆍ하늘 생각이다. 일곱 가지 법이 성인의 출리의 도이니, 이른바 택법각지(擇法覺支)ㆍ정진각지(精進覺支)ㆍ희각지(喜覺支)ㆍ경안각지(輕安覺支)ㆍ
사각지(捨覺支)ㆍ염각지(念覺支)ㆍ정각지(定覺支)이니라. 여덟 가지 법이 성인이 출리(出離)하는 도이니, 이른바 정견(正見)ㆍ정사유(正思惟)ㆍ정어(正語)ㆍ정업(正業)ㆍ정명(正命)ㆍ정정진(正精進)ㆍ정념(正念)ㆍ정정(正定)이니라.
아홉 가지 기쁨의 근본법 이것이 성인의 출리의 도이니, 이른바 기쁨ㆍ알맞음ㆍ가뿐하고 편함ㆍ즐거움ㆍ등지(等持)ㆍ여실히 알고 봄ㆍ고요함ㆍ더러움을 떠남ㆍ해탈이다. 열 가지 법이 성인의 출리의 도이니, 이른바 살생을 멀리 떠나고, 도둑질을 멀리 떠나며, 간음을 멀리 떠나고, 거짓말을 멀리 떠나며, 꾸미는 말을 멀리 떠나고, 이간질하는 말을 멀리 떠나며, 욕설을 멀리 떠나고, 탐욕을 멀리 떠나며, 분노를 멀리 떠나고, 바른 견해를 갖추는 것이다.
사리자여, 이상이 다 성인의 출리의 법이니, 이와 같은 것은 능히 고도(苦道)를 없애고, 나아가 모든 선의 보리분법(菩提分法)인 계온(戒蘊)과 상응하고, 정온(定蘊)과 상응하며, 혜온(慧蘊)과 상응하고, 해탈온과 상응하며, 해탈지견온과 상응하고, 4성제법(聖諦法)과 상응한다. 이와 같은 말이 다 성인의 출리의 도(道)이니라.
또 성인의 출리의 도가 있으니, 이른바 바른 소행이다. 이 바른 소행은 행할 법이 없고 또한 행함이 없는 것도 아니다. 들어옴도 없고 나감도 없으며, 취하거나 버림이 없다. 왜냐하면 이미 행했거나 장차 행할 것이거나 이 두 가지 법은 다 저 일체의 법을 떠났으며 둘이 없는 것도 또한 그렇기 때문이다. 이 여실한 지견이 곧 성인의 출리의 도이니, 여래께서는 이 출리의 도를 스스로 아시고는 중생들을 위해 광대하게 연설하여 그들로 하여금 다 기쁨을 내게 한다. 몸이 기쁨을 얻었기 때문에 마음이 극히 유순해지는데 다시 대중으로 하여금 기쁘고 즐겁게 하느니라.
여래께서는 대비(大悲)와 상응하나니 진실을 갖추셨기 때문이요, 평등한 성품이기 때문이며, 여실한 성품이기 때문이요, 다름이 없는 성품이기 때문이며, 종류가 없는 성품이기 때문이며, 보는 바가 없는 성품이기 때문이며,
남[生]이 없는 성품이기 때문이요, 떠남이 없는 성품이기 때문이며, 취하는 바가 없는 성품이기 때문이니라.
여래께서 갖추신 무외법 가운데에 실로 조그만 법도 취하는 바가 없고 또한 취함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여래의 무외법 가운데에는 또한 거짓이나 속임이 없다. 여실하기 때문에 평등하고 법계가 다 평등하다. 이 평등한 법 가운데서 일체 세계를 모두 걸림 없이 펴신다. 이와 같은 것이 불가사의하고 한량없고 무수한 매우 깊은 바른 법이다. 여래께서는 이것을 다 구족하시고 간절한 대비심 때문에 중생들을 위해 성인의 출리법을 광대하게 연설하여 그들로 하여금 다 깨달아 고통을 끝까지 없애게 하시느니라.
사리자여, 이것이 여래의 넷째 무소외법이다. 여래께서는 이 4무소외를 갖추셨기 때문에 훌륭한 곳을 아시고 대중 가운데서 사자처럼 외쳐 묘한 범륜을 굴리시는데,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은 모두 일으키지 못하는 것이며, 나아가 일체 세간의 천인과 악마와 범천 중에 여래와 그 법을 같이 하는 자가 없느니라.
사리자여, 여래의 이 4무소외는 가없고 한계가 없어 허공과 같다. 만일 저 허공의 한계를 알고자 하면 곧 여래의 무외의 한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에 머무는 보살은 여래의 이러한 불가사의한 무외법을 듣고는, 반드시 깨끗한 믿음을 내어 분별을 초월하고 온갖 의혹을 버리며, 다시 몸과 마음의 기쁨을 일으켜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어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이치를 거듭 밝혀 게송을 설하셨다.

저 모든 법이 다 평등하나니
부처님께서는 자연의 지혜로 다 아신다.
그 때문에 현재에 부처님의 보리를 증득하시나니
여래께서는 평등하게 두루 관찰하신다.

세간의 저 모든 이생(異生)의 법이
부처님의 법과 다 평등하다.

유학 무학의 모든 법문과
연각의 법도 또한 그렇다.

모든 세간의 일체의 법과
저 세간을 벗어난 훌륭한 법문과
선악에 움직이지 않는 법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모두 열반의 도와 동등하니라.

모든 공법(空法)과 무상(無相)의 법과
저 무원의 법도 또 그러하나니
남도 없고 지음도 없는 저 모든 법을
여래께서는 평등하게 다 같이 보신다.

이 평등한 법을 모두 아시고
부처님께서는 중생 위해 두루 연설하시어
중생들을 교화해 다 해탈시키나니
모니(牟尼)의 첫째 무소외법이라네.

세간의 세 가지 법을 해탈하시어
중생 위해 해탈문을 연설하신다.
부처님께서는 대무외로 인간에서 존귀하니
이것을 둘째 무외법이라 한다.

부처님께서 바른 법을 연설하시는 줄 알면서
무엇 때문에 친근하여 해탈하지 않느냐?

마음이 깨끗하지 않고 부끄러움이 없기에
그 때문에 한 가지 두 가지가 장애가 된다.
몸과 말과 뜻의 세 가지 업으로 말미암아
계법(戒法)을 쫓지 않고 악을 짓는다.

탐욕ㆍ분노ㆍ우치ㆍ공포 등 네 가지 허물 일으키며
저 모든 살생과 도둑질과
간음과 거짓말과 술 마시기 등 다섯 가지와
여섯 가지 존중하지 않음과 일곱 가지 교만 생긴다.

여덟 가지 삿된 법이 다시 일어나고
아홉 가지 괴로운 곳의 허물이 많아지고
다시 열 가지 불선업을 일으켜
해탈의 길에 장애가 된다.

깊고 굳게 마음먹을 줄 알지 못하여
어리석음과 어두움에 덮이어 있고

허망함과 미혹(迷惑)에 집착하여서
전도된 행을 부지런히 행함을 알고
이에 다시 바른 법문을 친근하나니
이것을 셋째의 무외법이라 한다.

맑고 깨끗한 법문은 한량없는데
바른 법을 가까이하면 보리를 증득하나니
오직 부처님 지혜만이 열반의 문을 알고,
알고 난 후에는 감로(甘露)의 법을 널리 베풀어 준다.

부처님께서는 보리분(菩提分)을 가장 칭찬하시어
나아가서 모든 선법이 넓어지고 많게 하며
익히고 가까이하시나니, 해탈문을 위하여
열 가지 힘을 가지신 부처님께서는 잘 설하신다.


깊고 굳게 부지런히 수행해 더러움을 버리고
그 선한 법에 모두 다 상응하며
옳은 법에도 그른 법에도 집착하는 마음 없어
고요하고 해탈하여 근심과 두려움 떠나셨다.

일체의 선한 법을 여실히 알아
허공처럼 탁 트여 걸림이 없다.
법에 집착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나니
그는 능히 3유(有)의 바다를 떠나셨다.

3유의 바다 속을 헤매고 집착하는 사람
그것은 업에서 생긴 것이라고 10력(力)께서는 말씀하신다.
거기서 해탈시키려는 부처님의 가엾게 여기는 마음
네 가지 무외의 법은 허공과 같네.

“사리자여, 이와 같이 말하는 여래의 4무외법은 불가사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에 머무는 보살은 이 법을 듣고는 마땅히 깨끗한 믿음을 내어 분별을 초월하고 온갖 의혹을 떠나야 하며, 나아가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어야 하느니라.”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