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불설대승보살장정법경(佛說大乘菩薩藏正法經) 12권
대승보살장정법경 제12권
서천 역경삼장 조산대부 시광록경 전범대사 사자사문 신 법호 등 한역
변각성 번역
4. 여래부사의품 ⑥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이치를 거듭 밝혀 게송을 설하셨다.
부처님께서는 지처(至處)의 힘을 아시고
모든 정정취(正定聚)의 그 인(因)을 아시며
그리고 부정취(不定聚)의 모든 중생들
그 성숙한 모양 다 밝게 아신다.
세 가지의 탐처를 부처님께서는 잘 아시고
분노와 어리석음의 세 가지도 또한 그렇다.
세 가지 번뇌의 각기 다른 문
부처님께서는 인연처를 다 아신다.
고처(苦處)를 아시는 예리한 근성
느리고 완만한 신통, 부드러운 근성
낙처(樂處)의 예리한 근성도 그러하여
느리고 완만한 모양을 부처님께서는 다 아신다.
느리고 완만한 곳에서 느리고 완만한 힘으로
혹은 느리고 완만한 곳에서 예리한 근성으로
신속한 곳에서 예리한 근성으로 알아
신속한 신통과 다른 모양이 없다.
어떤 이는 결택하는 힘 있으나 수습하는 힘 없고
어떤 이는 수습하는 힘 있으나 결택하는 힘 없으며
결택하는 힘과 수습하는 힘을 다 갖춘 이도 있고
두 가지가 다 없는 이가 있는데 이를 모두 환히 아신다.
어떤 이는 뜻으로 좋아함을 두루 갖추었지만
행의 업은 원만하지 못하다.
모두 있고 모두 없는 두 가지 문을
부처님께서는 두루 관찰해 모두 밝게 아신다.
어떤 이는 신업은 청정하지만
어업과 심업이 청정하지 않은 것 또한 그렇고
어떤 이는 어업과 신업이 청정할 때에
심업이 청정하지 않은 이치 이와 같도다.
어떤 사람은 심업이 청정하지만
어업과 신업이 청정하지 않은 이치 또한 그렇고
어떤 사람은 어업과 심업이 청정할 때에
신업이 청정하지 않은 이치 또한 이와 같도다.
신업과 어업과 심업이 다 청정하면
부처님께서는 두루 관찰해 모두 잘 아시되
그가 이룬 바 적정(寂靜)한 문 그와 같나니
이것이 부처님의 여섯째 훌륭한 지혜의 힘이네.
“사리자여, 이것이 여래의 여섯째인 지처도(至處道)에 대한 지혜의 힘이니,
여래께서는 이 훌륭한 지혜의 힘으로 훌륭한 곳을 아시는 것이다.……세간에는 여래와 그 법을 같이하는 자가 없느니라.
또 사리자여, 어떤 것을 여래의 선정ㆍ해탈ㆍ등지(等持)ㆍ등지(等至)ㆍ염정(染淨)이 일으킨 지혜의 힘이라 하느냐? 이른바 부처님 여래께서는 자타에 있는 선정ㆍ해탈ㆍ등지ㆍ등지ㆍ염정 등의 법을 다 여실히 아신다는 것이다. 어떻게 아시는가? 일체 중생의 갖가지 잡염법(雜染法)에서 그 인(因)과 연(緣)을 다 여실히 아시고, 또 그 중생들의 청정한 법의 인과 연도 여실히 아시느니라.
어떤 것이 인이며, 어떤 것이 연인가? 이른바 일체 중생이 모든 잡염에서 이치답게 작의(作意)하지 않는 것이 인이고 무명이 연이며, 무명이 인이고 행위가 연이요, 행위가 인이고 식(識)이 연이며, 식이 인이고 명색(名色)이 연이요, 명색이 인이고 6처(處)가 연이며, 6처가 인이고 촉(觸)이 연이요, 촉이 인이고 수(受)가 연이며,
수가 인이고 애(愛)가 연이요, 애가 인이고 취(取)가 연이며, 취가 인이고 유(有)가 연이요, 유가 인이고 생(生)이 연이며, 생이 인이고 소연(所緣)이 연이며, 번뇌가 인이고 업(業)이 연이요, 견(見)이 인이고 애(愛)가 연이며, 수면(隨眠)이 인이 되어 일으킨 연이 일체 중생의 모든 잡염이니, 이런 인과 이런 연을 여래께서는 하나하나 모두 여실히 아시느니라.
또 인연이란, 일체 중생이 청정한 법 가운데 두 가지 인과 두 가지 연이 있으니, 만일 중생이 남의 수순한 말과 음성을 들으면 각각 깊고 굳게 마음을 먹고, 삼마지(三摩地)를 잘 관상(觀想)하여 심일경성(心一境性)에 잘 머무는 것이다.
또 두 가지 인과 두 가지 연이란, 이른바 일어난 지혜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지혜이다. 또 두 가지 인과
두 가지 연이란, 이른바 나는 법을 자세히 살펴 열반을 증득하지 않는 것이다. 또 두 가지 인과 두 가지 연이란, 이른바 명행(明行)을 구족하여 해탈을 증득하는 것이다. 또 두 가지 인과 두 가지 연이란, 이른바 해탈문을 닦아 익히고 자성(自性)이 해탈하는 지혜이다. 또 두 가지 인과 두 가지 연이란, 이른바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이다. 또 두 가지 인과 두 가지 연이란, 이른바 진실한 깨달음과 진실한 소득이니, 이와 같이 일체 중생의 청정한 법 가운데 이런 인연이 있음을 여래께서는 하나하나 모두 여실히 아시느니라.
또 사리자여, 일체 중생에는 여러 종류가 있어 청정을 반연하고 잡염을 반연한다. 어떤 이는 청정의 반연함을 취하나니 여실히 사찰(伺察)하기 때문이요, 어떤 이는 잡염의 반연함을 취하나니 여실히 사찰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잡염의 반연함 가운데서 청정의 반연함을 취하나니 여실히 사찰하기 때문이며, 어떤 이는 청정의 반연함 가운데서 잡염의 반연함을 취하나니 증상만(增上慢)에 집착하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여, 여래의 훌륭한 지혜는 광대무변(廣大無邊)하여 모든 것을 남김없이 여실하게 아는 지혜를 두루 굴리나니, 이른바 모든 죄업을 떠나 선법을 사찰하여 이생희락(離生喜樂)의 초선정문(初禪定門)에 들어가고, 초선정으로 들어가 멸수상정(滅受想定)에 이르러 태어나며, 나아가 멸수상정으로 들어가 초선정에 이르러 일어난다.
8해탈이란, 이른바 순입(順入)과 역입(逆入)과 역순입(逆順入)이다. 여덟 가지란, 첫째 색관(色觀)으로 모든 색에서 해탈하는 것이고, 둘째 안에는 색상관(色想觀)이 없고 밖으로 모든 색에서 해탈하는 것이며, 셋째 깨끗하게 해탈한 몸을 완전히 증득하여 머무는 것이고, 넷째 공무변처(空無邊處)의 해탈이며, 다섯째 식무변처(識無邊處)의 해탈이요, 여섯째
무소유처(無所有處)의 해탈이며, 일곱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해탈이요, 여덟째 멸수상(滅受想)의 해탈이다.
이 8해탈을 역이나 순으로 등지(等至)ㆍ등지(等持) 및 삼매야(三昧耶)로서 모두 잘 관찰한다. 그러나 부처님 여래께서는 삼마지에서 전혀 분별이 없으며, 또한 소연(所緣)과 소입(所入)도 없다. 여래께서는 하나의 삼마지 중에서 일체의 삼마지문에 두루 들어가 하나의 선정에서 일어나는데, 다른 여러 선정도 또한 그러하다.
여래께서는 등인(等引:선정)의 마음에서 상속(相續)함이 없고 얻는 마음이 없으며 관찰하는 마음이 없다. 소유하는 일체 연각의 삼마지는 성문의 삼마지를 뛰어넘고, 보살의 삼마지는 연각의 삼마지를 뛰어넘으며, 부처의 삼마지는 보살의 삼마지를 뛰어넘는다.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증상(增上)의 훌륭한 지혜를 두루 굴리시기 때문이니라.
가령 성문의 마음을 낸 사람의 경우에 그 말과 가르치는 법을 여래께서는 다 아시며, 연각의 마음을 내었거나 보살의 마음을 낸 사람도 또한 여실히 알아 그 응함을 따라 설법하여 가르치시느니라.
사리자여, 이것이 여래의 일곱째 선정ㆍ해탈ㆍ등지(等持)ㆍ등지(等至)ㆍ염정으로 일으킨 지력이니, 이것은 가없어 허공과 같다. 믿음에 머무는 보살이 이 말을 들으면 깨끗한 믿음으로 분별을 초월하고 온갖 의혹을 떠나며, 다시 몸과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즐거운 모양을 일으키고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이치를 거듭 밝혀 게송을 설하셨다.
모든 중생들의 잡염의 성품과
또 모든 중생들의 청정의 인(因)을
거룩한 대무외(大無畏)께서는 잘 아시고
아시고 나서는 응함 따라 설법하신다.
모든 번뇌의 인이 되는 것은
저 무명의 반연에서 나는 것이다.
무명이 인이 되고 행이 반연이 되어
유지(有支)에 이르러서 모든 고통이 생긴다.
모든 번뇌의 근본 원인은
이치답지 않은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이 인연을 따라 유지(有支)가 생기나니
부처님은 잘 아시고 그 때문에 깨우치네.
모든 업의 근본은 이른바 그 행인데
무명과 또 식이 그 반연이 된다.
나아가서 모든 고통은 유지에서 생기는데
사람의 음성 따라 모든 법을 일으킨다.
깊고 굳게 마음먹고 마음을 관찰하면
두 가지의 인과 두 가지 연을 자세히 안다.
중생들은 여실히 그 인을 깨닫는데
그 인으로 말미암아 능히 고요해진다.
만일 중생들이 해탈의 인을 구하려면
마땅히 모든 반연하는 법을 잘 관찰해야 한다.
조어장부(調御丈夫) 거룩한 어른은 다 아시고
깊고 굳게 편히 머물러 계율이 청청하다.
여실히 자세하게 공(空)한 법을 관찰하고
해탈문을 잘 닦아 익히고
삼계의 괴로움과 어려움을 벗어나서는
여실히 청청하게 잘 깨우쳐 주신다.
중생들은 부처님의 청청한 법을 믿는데
그것은 공(空)ㆍ무상(無想)ㆍ무원(無願)의 해탈문이며
삼마발저(三摩鉢底)로 다시 잘 설명하나니
성문ㆍ연각들의 저 모든 선정이다.
중생들이 모든 번뇌를 다 가졌기에
선정과 해탈문을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고
잡염 없는 일곱째의 지혜의 힘을 완성하여
다루기 어려운 것 다스림을 부처님께서는 잘 설하시네.
“사리자여, 이것이 여래의 일곱째 지혜의 힘이니, 여래께서는 이 훌륭한 지혜의 힘을 갖추었기 때문에 훌륭한 곳을 알며……여래와 그 법을 같이하는 이가 없느니라.
또 사리자여, 어떤 것을 숙주수념(宿住隨念:과거세의 일을 아는 부처님의 지혜)의 지혜의 힘이라 하느냐? 이른바 여래께서는 위없는 지혜로 자기나 남이나 무수한 여러 가지 전생 일을 마음대로 아신다는 것이다. 즉 1생ㆍ2생ㆍ3생ㆍ4생ㆍ5생이나 혹은 10ㆍ20ㆍ30ㆍ
40ㆍ50생이나 혹은 백 생ㆍ천 생 및 백천 생 내지 무수 구지 나유다 백천 생의 일을 마음대로 다 아신다.
혹은 성겁(成劫)이나 혹은 괴겁(壞劫)이나 혹은 성괴겁(成壞劫), 내지 무수한 성괴겁 동안에 어떤 곳에서 전생에 어떤 중생은 어떤 이름, 어떤 종족, 어떤 성, 어떤 얼굴, 어떤 모습, 어떤 형체, 얼마의 수명으로 얼마나 오래 살았으며, 어떻게 고생하고 어떻게 즐거움을 누리고,
어디서 죽고 어디서 나고, 어디서 죽어서는 다시 어디서 났으며, 혹은 표시가 있었거나 혹은 표시가 없었거나 하는 이러한 자타의 무수한 여러 가지 전생 일과, 혹은 어떤 중생은 어떤 인(因)이 있었는데, 그 인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나왔다는 일을 여래께서는 하나하나 여실하게 모두 아시고는 그를 위해 설법하시느니라.
일체 중생들의 과거의 심행(心行)을 여래께서는 다 자연스럽게 맡아서 아시되, 마음의 상속(相續)이나 마음의 반연한 바와 마음의 일어남과 그 반연한 마음의 멸하지 않음을 아시느니라.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한 중생에 있어서 그 마음이 상속하기 때문에 아시고, 나아가 어떤 마음을 상속하느냐를 여실히 아시되 어떤 마음으로 일어난 것임을 아시는데, 이것은 긍가의 모래 수 같은 겁을 지내도록 말하여도 다할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알아야 하나니, 부처님 여래께서는 일체 중생의 심행을 알되, 그 한계가 없어 구지 겁을 지내어도 다 말할 수 없으며, 여래의 위없는 지혜도 그 한계가 없느니라.
사리자여, 이것이 여래께서 과거세의 일을 여실하게 아시는 부처의 지혜의 힘이며, 불가사의하여 견줄 데도 없고 한량도 없으며, 셀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다.
중생들이 처한 가없는 경계를 부처님께서는 신통의 지혜의 힘으로 마음대로 잘 아시나니, 만일 중생들이 갖가지 선근을 일으키면 그에 따라 불승(佛乘)이나 연각승이나 성문승이나, 혹은 모든 선법을 여래께서는 생각에 따라 모두 잘 아신다.
여래께서는 큰 위력으로 중생들의 선근이 반연하는 바를 따라 곧 그를 위해 설법하여 그 중생들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결과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시며, 그 신해와 같이 혹은 성문승의 마음을 내거나 연각승의 마음을 내거나 위없는 정등보리심을 내거나 다 출리를 얻느니라.
사리자여, 이것이 여래의 여덟째 숙주수념작증(宿住隨念作證)의 지혜의 힘이니, 그것은 가없어 허공과 같다. 믿음에 머무는 모든 보살이 이 말을 들으면 깨끗한 믿음으로 분별을 초월하고 온갖 의혹을 떠나며, 나아가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이치를 거듭 밝혀 게송을 설하셨다.
백 구지(俱胝) 겁은 가없는데
부처님 세존의 등불은 전생 일을 비추어
자타의 다섯 무리 마음을 두루 다 알되
손바닥의 암마(菴摩) 열매를 보는 듯하다.
수만의 겁의 수와 또 색상과
생멸하는 중생들이 일으키는 인과
법기를 갖춘 이도 또한 다 알되
과거의 가없는 일 등을 안다.
세간의 중생들의 심(心)과 심소(心所)가
간단없이 상속하여 일어나는 것
성존(聖尊)의 큰 지혜는 두루 다 알고
과거의 한량없는 심법(心法)을 안다.
한 중생의 마음을 부처님께서는 아시는데
긍가의 모래알 수 같은 중생의 일도 아신다.
3유(有)는 끝이 없고 또 가없고
나아가서는 미래도 그 한계 없다.
이와 같이 행을 아는 지혜는 다함없고
수도 없고 한량도 없다.
세존의 지혜 바다 넓어 끝이 없는데
중생들이 좋아함을 모두 안다.
높고 거룩하신 능인(能仁)께서는 한량없음 갖추시어
신통과 지혜 힘이 모두 광대하나니
전생에 닦은 바의 선법의 인을
위신의 큰 힘으로 잘 생각하신다.
이와 같이 한량없는 큰 복된 일을
세 가지 지혜의 신통으로 잘 생각하는데
물러나지 않는 큰마음에 편히 머물러
이미 훌륭한 행의 해탈하는 길 닦았다.
선서의 바른 지혜는 끝도 한량도 없어
일체 중생들 마음 잘 아신다.
여덟째의 지혜의 힘 넓어 끝이 없나니
불자들은 마땅히 청정한 믿음 내어야 하네.
“사리자여, 이것이 여래의 여덟째 지혜의 힘이니, 여래께서는 이 훌륭한 지혜를 갖추셨기 때문에 훌륭한 곳을 알며……여래와 그 법을 같이하는 자 없느니라.
또 사리자여, 어떤 것을 여래의 천안수념작증(天眼隨念作證)의 지혜의 힘이라 하느냐? 이른바 부처님 여래께서는 위없는 지혜로 육안보다 뛰어난 청정한 천안으로 세간의 일체 중생을 관찰하시어 그들의 나는 때와 멸하는 때, 존귀함과 비천함, 선한 상(相)과 악한 상, 선취(善趣)로 나아감과 악취로 나아감, 중생들이 업보의 성숙함을 따라 받는 바의 그 과보를 여래께서는 다 아신다.
만일 중생이 몸과 말과 뜻의 업으로 온갖 불선을 짓되 성현을 훼방하며 삿된 견해를 일으키면 삿된 견해의 인을 쌓았기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악취인 지옥ㆍ아귀ㆍ축생의 세계에 떨어진다. 만일 중생이 몸ㆍ말ㆍ뜻의 업으로 온갖 선행을 짓되, 성현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일으키면, 그 바른 견해의 인을 쌓았기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천상 세계에 난다.
또 여래께서는 청정한 천안으로 시방의 일체 부처님 세계, 즉 허공계와 같이 한계가 없고,
법계와 같이 한량이 없으며, 말할 수 없는 시방 긍가의 모래 수와 같은 일체 부처님 세계를 두루 관찰하신다.
여래께서는 지혜의 광명으로 다 비추어 보신다. 혹은 일체 큰 불꽃이 일어나는 것을 보시고, 혹은 일체의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따위의 모양을 보시며, 혹은 중생들이 광명 속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혹은 중생들의 나는 때와 죽는 때를 보시며, 혹은 보살이 광명 속에 나타나는 것을 보시고, 혹은 보살이 도솔천에서 내려와 인간의 어머니 태에 들었다가 태어나서는 곧 일곱 걸음을 걷는 것을 보시며, 모든 보살이 어머니 태에 머물거나 태에 드는 것을 다 보시느니라.
혹은 제불 세존께서 광명 속에 나타나는 것을 보시고, 혹은 보살이 정각(正覺)을 이루는 것을 보시며, 혹은 모든 부처님께서 큰 법륜을 굴리는 것을 보시고, 혹은 모든 부처님께서 수명을 버리고 인연을 따라 큰 열반에 드시는 것을 보며, 혹은 성문들이 광명 속에 나타나는 것을 보시고, 또 성문이 열반에 나아가서 증득하는 것을 보시며, 혹은 연각들이 광명 속에 나타나는 것을 보시고, 또 연각들이 신통을 나타내어 크게 청정하게 되는 것을 보시며,
혹은 중생들이 부처님의 광명을 타고 오지 못하는 것을 보시나니, 이른바 외도와 5통(通) 신선들은 성문ㆍ연각ㆍ보살과는 다르기 때문에 광명을 타고 오지 못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청정하고 최상인 천안의 지혜의 힘의 광명으로 모두 광명을 타고 오시며, 혹은 여래께서 수레바퀴만한 광명을 나타내실 때는 모든 중생들이 그 광명을 타고 오느니라.
이와 같이 삼천대천세계 내지 한량없고 가없는 중생계와 일체의 천인들은 다 여래의 지혜의 광명 속에 나타나느니라.
또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청정한 천안으로 일체
불국토에 있는 중생계의 어떤 중생을 교화할 수 있을까 두루 관찰한다. 그렇게 관찰하고 나서 구제할 수 있는 중생이 있으면 곧 그 앞에 나타나 교화하여 제도하시는데, 그 중생이 제도된 것을 다른 중생은 모두 모르느니라.
사리자여, 이것이 여래의 아홉째 천안작증의 지혜의 힘이니, 이것은 가없어 허공과 같다. 믿음에 머무는 보살은 이 깨끗한 믿음을 들으며……(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희유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이치를 거듭 밝혀 게송을 설하셨다.
선서(善逝)의 천안은 청정하여 때[垢]가 없는데
구지 겁 동안 선업의 인을 쌓았었다.
부처님의 눈은 시방을 두루 관찰하나니
부처님 세계는 넓고 커서 불가사의하여라.
혹은 이루어지고 혹은 무너지는 모든 일의 모양
혹은 불꽃이 왕성히 일어나는 큰 화만(火鬘)을 보고
혹은 많은 세계들이 혼연히 텅 빈 것을 보나니
부처님의 자연(自然)의 지혜는 모두 밝게 비춘다.
넓고 커서 생각하기 어려운 중생 세계들
색계거나 무색계도 또한 그렇다.
혹은 좋은 세계나 나쁜 세계에 떨어지는 것
부처님의 자연의 지혜는 모두 밝게 비춘다.
현재의 구지 수의 모든 여래와
이미 열반에 드신 모든 성존(聖尊)과
연각과 모든 성문들을
부처님의 자연의 지혜는 모두 밝게 비춘다.
보살이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
닦아 행한 바의 모든 보리의 행과
깨달음의 지혜를 밝게 통달하여 간직한 것을
부처님의 자연의 지혜는 모두 밝게 비춘다.
이와 같이 선서의 때 없는 눈은
중생들의 미세한 일도 모두 능히 보신다.
아홉째 지혜의 힘은 생각하기 어렵나니
불자들은 마땅히 깨끗한 믿음을 내어야 하네.
“사리자여, 이것이 여래의 아홉째 지혜의 힘이니, 여래께서는 훌륭한 지혜를 갖추셨기 때문에 훌륭한 곳을 아시며……여래와 그 법을 같이하는 자가 없느니라.
또 사리자여, 어떤 것을 여래의 누진작증(漏盡作證)의 지혜의 힘이라 하느냐? 부처님 여래께서는 위없는 지혜의 힘으로 모든 번뇌를 다 없애어 번뇌가 늘어나지 않으며, 마음이 잘 해탈하고 지혜가 잘 해탈하여 스스로의 신통을 증득한 뒤에 모든 행하는 바를 따라 ‘내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마쳐 뒷몸을 받지 않는다’고 하시는 것이다. 여래께서는 이 번뇌가 없어진 지혜의 힘으로 맑고 밝게 일체 종자의 습기를 다 끊었으니, 그것은 성문이나 연각과 비교할 것이 아니니라.
성문으로서 번뇌가 다한 자는 그 한량이 있어서 습기를 끊지 못하고, 연각으로서 번뇌가 다한 자도 또한 한량이 있어서 대비(大悲)를 버리고 변재를 떠나지만, 여래로서 번뇌가 다한 이는 모든 상을 구족하고 일체 종자 습기를 다 끊으며 대비로 중생을 포섭하고 두려움 없는 변재로 깊게 살피므로 일체 세간에서는 아무도 그보다 나을 자가 없으며, 일심(一心)의 상에 머무는데, 그것은 화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이미 업의 종자가 없어졌기 때문이요, 번뇌 종자가 없기 때문이며, 그 위의에 있어서 잘못이 없기 때문이니라.
저 허공이 청정하고 트이어 연기나 구름이나 안개가 물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여래의 번뇌가 다한 지혜의 힘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번뇌 종자가 다 물들이지 못한다. 여래께서는 이와 같이 청청한 번뇌가 다한 지혜의 힘에 편히 머무시면서 번뇌가 다 없어진 뒤에 번뇌가 다한 법을 말씀하시며, 또 집착을 끊는 법을 설명하시어 중생들로 하여금 일체의 허망한 분별과 모든 집착을 알아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시며, 중생들로 하여금 여실히 살펴보게 하시느니라.
여래께서는 훌륭한 방편으로 비유를 말씀하시어 중생들로 하여금 저 모든 번뇌의 진실이 아닌 법을 여실히 알아 모든 법에 대해 조금도 집착하지 않게 하시고,
모든 집착이 다 고요히 사라지게 하시느니라.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일체 중생의 모든 번뇌가 모이는 것과 모든 번뇌가 멸하는 법과 모든 번뇌가 멸(滅)로 향하는 길을 아신다. 여래께서는 그것을 여실히 아시고는 그 응함을 따라 법요(法要)를 설하신다. 믿음에 머무는 보살은 부처님 여래의 누진작증의 지혜의 힘을 듣고는 깨끗한 믿음으로 분별을 초월하고 온갖 의혹을 떠나며, 나아가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이치를 거듭 밝혀 게송을 설하셨다.
번뇌 없는 지혜[漏盡智]의 힘을 부처님께서는 원만히 갖추시어
광대하고 무량하고 깨끗하여 장애가 없으며
10력(力)의 훌륭한 지혜의 문을 원만히 이루시고
위없는 보리의 결과를 증득하셨다.
성문들의 번뇌 다한 지혜와는 같지 않나니
성문들은 종자 습기와 한량이 있어 결박당하는 장애가 있다.
인간 세상에서 가장 높으신 거룩한 부처님께서는
종자 습기와 한량을 모두 없애셨다.
저 모든 연각들의 번뇌 다한 지혜는
대비와 변재를 모두 다 버렸지만
세존께서는 번뇌 다한 지혜를 원만히 이루시어
대비와 변재가 모두 한량이 없으시다.
부처님께서는 번뇌 다한 지혜에 편안히 머무시어
세간 번뇌의 진실하지 않음을 다 아시고
일체의 허망한 법 가운데 계시면서
이 이치를 여실히 모두 잘 아신다.
세간의 지독한 괴로움을 가엾게 생각하시고
나 없음[無我]과 공(空)과 무상(無常)을 설하시니
허망하고 거짓이어서 진실하지 않은 상 가운데서
최상의 고요한 경지를 마땅히 보아야 하네.
나도 없고 남도 없으며 중생도 없고
짓는 자도 받는 자도 모두 다 없다.
일체의 법이 허망한 그 가운데서
부처님께서는 대비의 마음으로 해탈의 길을 보셨다.
여래께서는 이미 모든 고달픔과 게으름을 떠나시고
진실한 지혜도 또한 잊는 법이 없으며
능인(能仁)께서는 언제나 상응(相應)하는 문에 머무르시면서
세간을 널리 이롭게 하려고 바른 법을 설하신다.
10력(力)께서는 능히 다른 법들을 무찌르시고
10력(力)께서는 가없어 허공과 같으시다.
훌륭하게 10력에 편히 머무시면서
최상의 범륜(梵輪)을 굴리심이 견줄 데 없네.
“사리자여, 이것이 여래의 열 종류의 지혜의 힘이다. 여래께서는 이 열 종류의 지혜의 힘을 갖추셨기 때문에 훌륭한 곳을 아시고 천상과 인간 세상에서 사자처럼 외쳐 묘한 범륜을 굴리시는데, 그것은 일체의 하늘ㆍ사람ㆍ악마ㆍ범천들은 굴리지 못하는 것이니, 여래와 그 법을 같이하는 자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에 머무는 보살은 이 부처님 여래의 불가사의한 최상의 지혜의 힘에 대해 깨끗한 믿음으로 분별을 초월하고 온갖 의혹을 떠나며, 다시 몸과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알맞다는 생각을 일으켜 희유하다는 마음을 내어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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