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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5049 불설대승보살장정법경(佛說大乘菩薩藏正法經) 11권

by Kay/케이 2024.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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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불설대승보살장정법경(佛說大乘菩薩藏正法經) 11

 

대승보살장정법경 제11권


서천 역경삼장 조산대부 시광록경 전범대사 사자사문 신 법호 등 한역
변각성 번역


4. 여래부사의품 ⑤

“또 사리자여, 어떤 것을 여래의 갖가지 신해(信解)의 지혜의 힘이라 하느냐? 이른바 부처님 여래께서는 모든 중생과 모든 보특가라(補特伽羅)가 소유한 신해의 갖가지 차별을 일일이 여실히 아신다는 것이다.
만일 중생들이 본래 탐애(貪愛)에 머물면 분노에 신해를 일으킨다. 자세한 것은 경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만일 중생들이 본래 우치에 머물면서 분노에 대해 신해를 일으키면 여래께서는 낱낱이 여실히 아신다. 만일 중생들이 본래 불선한 법에 머물면서 불선한 법에 대해 신해를 일으키면 여래께서는 낱낱이 여실히 아신다. 만일 중생들이 본래 선법에 머물면서 선법에 대해 신해를 일으키면 여래께서는 일일이 여실히 아신다.
만일 중생들이 하열(下劣)한 행을 닦으면서 뛰어난 법에 대해 신해를 일으키면 여래께서는 다 여실히 아신다. 만일 중생들이 뛰어난 행을 닦으면서 하열한 법에 대해 신해를 일으키면 여래께서는 다 여실히 아시느니라. 또 만일 중생들이 하열한 행을 닦으면서 뛰어난 분위(分位)에 대해 신해를 일으키면 여래께서는 다 여실히 아신다. 만일 중생들이 뛰어난 행을 닦으면서 하열한 신해를 일으키면 여래께서는 다 여실히 아신다.
또 만일 중생들이 사정취(邪定聚)에 대해 신해를 일으키면서 정법(定法)을 취하면 여래께서는 다 여실히 아신다. 만일 중생들이 정정취(正定聚)에 대해 신해를 일으키면서 저 정법을 취하면 여래께서는 다 여실히 아신다. 만일 중생들이 정정취에 대해 저 해탈을 취하면 여래께서는 다 여실히 아신다.
만일 중생들이 욕계(欲界)의 정법을 신해하고
욕계를 따라 들어가면 여래께서는 다 여실히 아신다. 만일 중생들이 색계(色界)의 정법을 신해하고 그 색계로 따라 들어가면 여래께서는 다 여실히 아신다. 만일 중생들이 무색계(無色界)의 정법을 신해하고 무색계로 따라 들어가면 여래께서는 다 여실히 아신다. 만일 중생들이 삼계의 정법을 신해하고 삼계로 두루 들어가면 여래께서는 여실히 아시느니라.
만일 중생들이 본래 하열한 분위에 머물면서 뛰어난 법을 얻으면 여래께서는 다 여실히 아신다. 만일 중생들이 본래 뛰어난 분위에 머물면서 하열한 법을 얻으면 여래께서는 다 여실히 아신다. 만일 중생들이 갖가지 신해, 갖가지 색상(色相), 갖가지 수용(受用), 갖가지 영납(領納)을 일으키면 여래께서는 여실히 아신다.
만일 중생들이 먼저 업을 신해하기 때문에 내세에 타락하면 여래께서는 여실히 다 아신다. 만일 중생들이 해탈하는 법을 신해하고 그 해탈을 취하면 여래께서는 여실히 다 아신다. 여래께서는 이와 같이 다 아시고는 그 응하는 바를 따라 설법하시느니라.
사리자여, 이것이 여래의 신해에 대한 지혜의 힘인데, 한계가 없어 허공과 같다. 믿음에 머무는 보살은 부처님 여래의 갖가지 신해에 대한 뛰어난 지혜의 힘을 들으면 신해가 청정해지고 분별을 떠나고 온갖 의혹을 떠나며, 다시 몸과 마음으로 기뻐하여 즐거운 모양을 일으키고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이치를 거듭 밝혀 게송을 설하셨다.

이 세간의 갖가지 신해하는 법
과거ㆍ미래ㆍ현재에 한량없는데
그들의 신해를 그 생각대로
세상에 높은 부처님 다 밝게 아신다.


탐욕에 신해를 일으키거나
분노의 분위(分位)에 머물렀거나
분노나 우치에도 또한 그러해도
부처님께서는 신해 따라 모두 아신다.

탐욕이나 우치 따위에 모두 머물러
마음 따라 가지는 것 헤아리기 어렵고
끊임없이 계속해 두루 행해도
능인(能仁)의 훌륭한 지혜는 모두 밝게 아신다.

만일 중생들이 하열한 행으로써
도리어 넓고 큰 법 신해하거나
행이 뛰어나고 신해가 하열한 그 이치도 그러하면
조어사[調御尊] 부처님께서는 모두 밝게 아신다.

만일 중생들이 사정취(邪定聚)를 취하고
갔다 왔다 일으킴도 또 그러하면
거기 있는 삼계의 모든 해탈문
부처님께서는 신해 따라 모두 밝게 아신다.

나는바 색상(色相)들이 각각 다르며
수용하는 차별도 또한 그러해
먼저 업을 따르므로 과보도 차별 없나니
이족존(二足尊)이신 어른 모두 밝게 아신다.

그 신해를 따라 다 밝게 아시고는
그 응함을 따라 그를 위해 설법하나니
셋째인 훌륭한 신해의 지혜의 문에 대해
불자들은 마땅히 청정한 믿음을 내어야 하네.

“사리자여, 이것이 여래의 셋째 신해에 대한 지혜의 힘이다. 여래ㆍ응공ㆍ정등정각께서는 이 훌륭한 지혜의 힘을 갖추셨기 때문에 승처(勝處)를 잘 알아 대중 가운데서 사자처럼 외쳐 법륜을 굴리시는데, 일체 세간의 하늘ㆍ사람ㆍ악마ㆍ범(梵)으로서는 굴리지 못하는 것이며, 여래와 그 법을 같이하는 자가 없느니라.
또 사리자여, 어떤 것이 여래의 갖가지 계(界)에 대한 지혜의 힘인가? 이른바 부처님 여래께서는 갖가지 계(界)를 여실히 아신다는 것이다.
만일 중생들이 모든 세간에서 복행(福行)으로 장양(長養)을 삼으면 여래께서는 그것을 다 여실히 아시며, 만일 중생들이 복행이 아닌 것을 장양으로 삼으면 여래께서는 그것을 다 여실히 아신다. 만일 중생들이 부동(不動)의 행을 장양으로 삼으면 여래께서는 그것을 여실히 다 아시며,
만일 중생들이 출리(出離)의 행을 닦으면 여래께서는 그것을 여실히 아시느니라.
또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안계(眼界)ㆍ색계(色界)ㆍ안식계(眼識界)를 여실히 아시는데, 어떻게 아시는가? 이른바 부처님께서는 내공(內空)ㆍ외공(外空)ㆍ내외공(內外空)을 아시기 때문이며, 나아가 의계(意界)ㆍ법계(法界)ㆍ의식계(意識界)도 다 여실히 아시는데, 어떻게 아시는가? 이른바 부처님께서는 내공ㆍ외공ㆍ내외공을 아시기 때문이다. 또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지계(地界)ㆍ수계(水界)ㆍ화계(火界)ㆍ풍계(風界) 및 허공계(虛空界)를 다 여실히 아시는데, 어떻게 아시는가? 이른바 허공계와 같기 때문에 또한 아시느니라.
여래께서는 욕계ㆍ색계 및 무색계는 분별에서 일어난 것임을 다 아시고, 유위계(有爲界)는 조작(造作)의 모양임을 아시며, 무위계(無爲界)는 바로 조작의 모양이 없음을 아시고, 잡염계(雜染界)는 바로 객진번뇌(客塵煩惱)의 모양임을 아시며, 청정계는 자성(自性)이 밝은 모양임을 아시고, 제행계(諸行界)는 이치답지 않은 작의의 무명의 모양임을 아시며, 열반계는 이치다운 작의의 명지(明智)의 모양임을 아시느니라.
또 사리자여, 혹은 모든 계의 의지(依止)와 모든 계의 안주(安住)와 모든 계의 수순(隨順)과 모든 계의 건립과 모든 계의 작용과 모든 계의 의취(意趣)와 모든 계의 적정(寂定)과 모든 계의 주착(住著)을 여래께서는 일일이 여실히 아신다. 아시고는 곧 그를 위해 설법하시느니라.
사리자여, 이것이 여래의 갖가지 계에 대한 지혜의 힘인데, 이런 훌륭한 힘은 그 한계가 없는 것이다. 믿음에 머무는 보살은 부처님 여래의 이런 지혜의 힘을 듣고는, 깨끗한 믿음으로 분별을 초월하고 온갖 의혹을 떠나며, 다시 몸과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즐거운 모양을 일으키고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이치를 거듭 밝혀 게송을 설하셨다.

일체 세간의 모든 중생들
갖가지의 계(界)로 의지를 삼으며
구르는 계취(界趣)를 따르는 뜻도 그러하나니
위없는 높은 어르신 그것을 밝게 아신다.

복행(福行)과 복행 아님과 그리고 부동의 행
모든 계를 출리하는 뜻도 또 그러하며
모든 계취를 따라 편히 머무는 마음
열반은 움직임이 없어 언제나 고요하다.

모든 안계와 모든 색계와
저 안식계도 또한 그러하며
귀ㆍ코ㆍ혀ㆍ몸ㆍ뜻 등의 그 계를
여래께서는 여실히 다 밝게 아신다.

그 법계를 모두 아는데
저 의식계도 또한 그렇다.
모든 법의 내외공을 다 아시나니
이것이 능인(能仁)의 큰 지혜의 힘이다.

지계와 수계와 또 화계와
저 풍계도 또한 그렇다.
이와 같이 모든 계를 두루 알되
마치 허공과 같아 다름이 없다.

모든 욕계와 또 색계와
저 무색계도 또한 그렇다.
그리고 그것들이 분별에서 일어난 것
여래께서는 이와 같이 두루 아신다.

저 허공이 한계 없는 것처럼
모든 계의 한계 없음 또한 그렇다.
부처님께서는 일체를 비록 두루 아시지만
내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잘 아신다.

모든 계의 나는 바 없음을 아시고
모든 계의 멸하는 바 없음도 아신다.
이와 같이 모든 계의 고요한 마음
위없는 대장부는 다 밝게 아신다.

저 허공이 한계가 없는 것처럼
부처님의 지혜 한계 없음 또한 그렇다.
걸림 없는 지혜로 다 아시나니
갖가지의 신해로 다 해탈하신다.

마음에서 일어남을 알고 신해하시고는
구지(俱胝)의 중생들을 모두 다스리신다.
여래께서는 넷째 지혜의 힘을 이루셨나니
불자는 청정한 믿음을 내어야 하네.

“사리자여, 이것이 여래의 넷째 지혜의 힘이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여래와 그 법을 같이하는 자가 없느니라.

또 사리자여, 어떤 것을 여래의 근성의 승렬(勝劣)에 대한 지혜의 힘이라 하느냐? 이른바 중생들의 승렬을 여래께서는 일일이 여실히 아신다는 것이다. 어떻게 아시는가? 이른바 하근과 중근과 또 이근(利根)을 잘 아시고, 또 뛰어난 모든 근성과 나아가 모임을 두루 아시는 것이다.
탐욕에서 일어나는 모든 업의 근성과 우치에서 일어나는 모든 업의 근성을 분별하여 여래께서는 다 아신다. 이와 같이 모든 업을 분별하여 허망에서 일어나는 탐욕ㆍ분노ㆍ우치 등을 다 여실히 아시고, 이와 같이 모든 근성을 분별하여 탐욕ㆍ분노ㆍ우치가 조금 일어나는 것을 여래께서는 다 여실히 아시며, 모든 근성을 분별하여 탐욕ㆍ분노ㆍ우치가 광대하게 일어나는 것도 여실히 아시고, 모든 근성을 분별하여 탐욕ㆍ분노ㆍ우치가 집착에서 일어나는 것도 여실히 아시느니라.
혹은 선인(善因)의 근성, 혹은 불선인의 근성, 혹은 부동인(不動因)의 근성, 혹은 출리인(出離因)의 근성을 여래께서는 다 여실히 아시느니라.
또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일체 중생의 안근(眼根)ㆍ이근(耳根)ㆍ비근(鼻根)ㆍ설근(舌根)ㆍ신근(身根)ㆍ의근(意根)을 두루 아시고, 여근(女根)ㆍ남근(男根)ㆍ명근(命根)ㆍ고근(苦根)ㆍ낙근(樂根)ㆍ우근(憂根)ㆍ희근(喜根)ㆍ사근(捨根)ㆍ신근(信根)ㆍ정진근(精進根)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ㆍ혜근(慧根)ㆍ미지당지근(未知當知根)ㆍ이지근(已知根)ㆍ구지근(具知根) 등 이러한 22근을 여래께서는 다 여실히 아시느니라.
또 모든 근 중에 혹은 안근의 인통(因通)과 이근의 분위(分位)는 비근ㆍ설근ㆍ신근이 아님을 여래께서는 여실히 다 아시며, 혹은 이근의 인통과 비근의 분위, 혹은 비근의 인통과 설근의 분위, 혹은 설근의 인통과 신근의 분위,
혹은 신근의 인통과 안근의 분위 등 이런 모든 근인(根因) 및 분위를 여래께서는 다 여실히 아시느니라.
만일 중생들이 보시의 근성이 있으면서 지계의 행을 닦으면 여래께서는 자타의 근성을 아시기 때문에 곧 그를 위해 보시의 법을 설명하시고, 만일 중생들이 지계의 근성이 있으면서 보시의 행을 닦으면 여래께서는 자타의 근성을 아시기 때문에 곧 그를 위해 지계의 법을 설명하신다. 만일 중생들이 인욕의 근성이 있으면서 정진의 행을 닦으면 여래께서는 자타의 근성을 아시기 때문에 곧 그를 위해 인욕의 법을 설명하신다.
만일 중생들이 정진의 근성이 있으면서 인욕의 행을 닦으면 여래께서는 자타의 근성을 아시기 때문에 곧 그를 위해 정진의 법을 설명하시느니라. 만일 중생들이 선정의 근성이 있으면서 승혜(勝慧)의 행을 닦으면 여래께서는 자타의 근성을 아시기 때문에 곧 그를 위해 선정의 법을 설명하시며, 만일 중생들이 승혜의 근성이 있으면서 선정의 행을 닦으면 여래께서는 자타의 근성을 아시기 때문에 곧 그를 위해 승혜의 법을 설명하신다. 통틀어 말하면 보리분법(菩提分法)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이렇게 설명하시느니라.
만일 중생들이 성문의 근성이 있으면서 연각승의 행을 닦으면 여래께서는 자타의 근성을 아시기 때문에 곧 그를 위해 성문승의 법을 설명하시며, 만일 중생들이 연각의 근성이 있으면서 성문승의 행을 닦으면 여래께서는 자타의 근성을 아시기 때문에 곧 그를 위해 연각승의 법을 설명하신다.
만일 중생들이 대승의 근성이 있으면서 성문이나 연각승의 행을 닦으면 여래께서는 자타의 근성을 아시기 때문에 곧 그를 위해 대승의 법을 설명하시고, 만일 중생들이 최상승의 근성이 있으면서 대승의 행을 닦으면 여래께서는 자타의 근성을 아시기 때문에
곧 그를 위해 최상의 승법(乘法)을 설명하시느니라.
만일 중생들이 책임을 감당할 수 없는 법기(法器)가 아닌 근성이면 여래께서는 책임을 감당할 수 없는 법기가 아님을 아시고는 곧 버리시며, 만일 중생들이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법기이면 여래께서는 곧 그를 위해 정법(正法)을 연설하시느니라.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일체 중생 중에서 만일 그 근성을 관찰하시면 다 아시고, 관찰하시지 않아도 또한 다 아신다. 만일 출리의 근성이면 그것을 다 아시고, 출리의 근성이 아니더라도 또한 다 아신다. 그 중생이 어떤 근성인가에 따라 행하는 법이거나 뜻으로 즐기는 인(因)이거나 혹은 반연이거나, 혹은 장애이거나, 혹은 구경처(究竟處)이거나, 혹은 최후의 근성임을 여래께서는 일일이 다 아시느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이치를 거듭 밝혀 게송을 설하셨다.

저 언덕을 향해 나아가는 모든 근성
중생의 근성과 그 좋아함 알고
세간의 모든 근성 다 아시고는
사람 중의 사자(師子)로서 바른 법을 설하신다.

상ㆍ중ㆍ하의 근기(根器)를 두루 관찰하시고
미증유(未曾有)의 지혜를 두루 일으켜
해탈의 근기인 모든 중생 아시고
지혜를 설법하여 다 깨치게 하신다.

결정코 번뇌는 일어나는 곳 없으니
중생들의 근성의 적고 많음 따른다.
모든 근성 그대로 두루 다 알아
지혜와 행하는 법 연설하신다.

만일 중생들이 선근을 가졌거나
혹은 불선한 근성 갖추었으면
안근(眼根)과 이근ㆍ비근ㆍ설근ㆍ신근 또 의근과
고근(苦根)ㆍ낙근(樂根)ㆍ우근(憂根)ㆍ희근(喜根) 또 사근(捨根)과

신근(信根)ㆍ정진근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 또 혜근 등도 그러하고
남근(男根)ㆍ여근(女根)ㆍ명근(命根)도 또한 그렇다.
설명하신 저 신근 그것과 같이
다른 근의 훌륭한 뜻 또한 그렇다.

근성과 소행(所行)과 또 모든 모양 등
중생들 뜻을 따라 두루 운전해

근성 따라 훌륭한 법문을 설하되
그 지혜는 모든 고법(苦法)을 환히 잘 안다.

성문들의 모든 근성 해탈하기 어려운데
오직 부처님 보리만이 잘 출리한다.
성문은 부처님의 지인(智因) 알지 못하기에
그를 위해 보리의 최상의 힘을 설명한다네.

“사리자여, 이것이 여래의 다섯째 지혜의 힘이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여래와 그 법을 같이 하는 자가 없느니라.
또 사리자여, 어떤 것을 여래의 지처도(至處道)에 대한 지혜의 힘이라 하느냐? 이른바 부처님 여래께서는 모든 곳에서 향해 나아가는 길을 두루 다 여실히 아신다는 것이다. 어떻게 아시는가? 중생계의 정정취(正定聚)에 머무는 자, 부정취(不定聚)에 머무는 자, 사정취(邪定聚)에 머무는 자를 일일이 아시는 것이다.
만일 정정취의 중생계에 머무는 자면 그는 그가 가진 인력(因力) 및 그의 선행(先行)을 다 구족하고 밝힌 이근(利根)이므로, 여래께서는 그가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해탈의 그릇임을 아시고, 그 과거의 인력(因力)을 설법하신다.
만일 부정취의 중생계에 머무는 자면, 그는 연력(緣力)이 성숙한 상이기 때문에 그 응함을 따라 설법하고 교수하여 곧 해탈을 얻게 하며, 만일 연력이 성숙하지 못했으면 곧 해탈할 수 없으므로, 여래께서는 그 인연의 화합을 기다려 부처님의 출세를 만나 그에게 설법하나니, 그는 그 설법을 듣고는 깊고 굳게 부지런히 수행하여 곧 훌륭한 결과를 얻는다.
만일 사정취의 중생계에 머무는 자면, 바른 업을 닦지 않고 근성이 미련하여 바른 그릇이 아니므로 여래께서는 그를 위해 설법하지 않는다. 그는 책임을 감당할 수 없는 해탈의 그릇이 아니기 때문에 여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곧 그를 버리실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부지런히 수행하여 정진의 갑옷을 입어야 할 것이다.
또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세 종류의 탐처(貪處)를 아신다. 이른바 어떤 탐처는 좋은 상에서 일어나고,
또 어떤 탐처는 변제(邊際)의 상에서 일어나며, 또 어떤 탐처는 과거의 인(因)에서 일어난다. 또 여래께서는 세 종류의 진처(瞋處)를 아신다. 이른바 어떤 진처는 뇌해(惱害)의 상에서 일어나고, 또 어떤 진처는 탐심의 불만에서 일어나며, 또 어떤 진처는 과거의 습관에서 일어난다. 또 여래께서는 세 종류의 치처(癡處)를 아신다. 이른바 어떤 치처는 무명의 인(因)에서 일어나고, 또 어떤 치처는 몸이 있다는 견해의 인에서 일어나며, 또 어떤 치처는 의혹의 인에서 일어남을 여래께서는 일일이 여실히 아시느니라.
또 사리자여, 여래께서는 모든 고처(苦處)를 신속한 신통으로 잘 아시나니, 그것은 이근(利根)이기 때문이다. 혹은 고처를 느린 신통으로 아시나니, 그것은 부드러운 근(根)이기 때문이다. 또 여래께서는 모든 낙처(樂處)를 신속한 신통으로 잘 아시나니, 그것은 이근이기 때문이며, 혹은 낙처를 느린 신통으로 잘 아시나니, 그것은 부드러운 근이기 때문이다.
또 느리고 완만한 곳[遲緩處]을 느리고 완만한 신통으로 잘 아시나니, 도를 장애하기 때문이다. 느리고 완만한 곳을 신속한 신통으로 아시나니, 가뿐함을 얻게 하기 위해서요, 신속처를 느리고 완만한 신통으로 잘 아시나니, 필경에 안온하지 않기 때문이며, 신속한 곳을 신속한 신통으로 잘 아시나니,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또 어떤 곳에서는 결택(決擇)하는 힘을 얻어서 원만해지는데 수습(修習)하는 힘이 아니며, 어떤 곳에서는 수습하는 힘을 얻어서 원만해지는데 결택하는 힘이 아니며, 어떤 곳에서는 수습하는 힘과 결택하는 힘이 다 원만하고, 어떤 곳에서는 수습하는 힘과 결택하는 힘이 다 원만하지 않은데, 여래께서는 이것을 하나하나 여실히 아신다.
또 어떤 곳에서는 뜻으로 좋아함은 구족하나 행이 구족하지 않으며,
어떤 곳에서는 행은 구족하나 뜻으로 좋아함이 구족하지 않으며, 어떤 곳에서는 뜻으로 좋아함도 구족하고 행도 구족하며, 어떤 곳에서는 뜻으로 좋아함도 구족하지 않고 행도 구족하지 않은데, 여래께서는 이것을 하나하나 여실히 아시느니라.
또 어떤 곳에서는 신업(身業)은 청정하나 어업(語業)과 심업(心業)은 청정하지 않고, 어떤 곳에서는 심업은 청정하나 신업과 어업이 청정하지 않으며, 또 어떤 곳에서는 신업ㆍ어업ㆍ심업이 다 청정하지 않고, 또 어떤 곳에서는 신업ㆍ어업ㆍ심업이 다 청정한데, 여래께서는 이것을 하나하나 여실히 아시느니라.
사리자여, 일체 중생이 모든 곳에서 그 지은바 인업(因業)은 움직이거나 고요한데, 여래께서는 걸림 없는 지혜로 중생을 따라 변화하느니라.
사리자여, 이것이 여래의 지처도에 대한 지혜의 힘이니, 그것은 가없어 허공과 같다. 믿음에 머무는 보살들은 이 말을 듣고 깨끗한 믿음으로 분별을 초월하고 온갖 의혹을 떠나며, 다시 몸과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즐거운 생각을 일으켜 희유하다는 마음을 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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