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불설대승보살장정법경(佛說大乘菩薩藏正法經) 27권
대승보살장정법경 제27권
서천 역경삼장 조산대부 시광록경 전범대사 사자사문 신 법호 등 한역
변각성 번역
9. 정진바라밀다품 ③
“또 사리자여, 그때 그 하늘 대중들은 그 동자(童子)에게 다시 게송을 설하였다.
저 욕락(欲樂)에 탐착하는 모든 사람들
일체의 경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리석기 때문에 바른 이치 아님으로 말미암아
장차 지옥의 나쁜 세계에 떨어지리.
만일 바른 도에서 집 떠나기를 구하면
마땅히 받아 쓰는 모든 경계를 버려야 하리.
당신은 능히 모든 바른 이치를 열어 보이나니
그렇기 때문에 세간에 상응하는 이라 하네.
사리자여, 그때 그 동자는 하늘 대중에게 다시 게송을 설하였다.
나는 지금 하늘 무리 그대들에게 말하노니
그대들은 바른 도를 아직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이 상응하는 진실하고 바른 이치
그것을 설명해 그대들로 하여금 다 알게 하리.
그리하여 동자는 이 게송을 마치고 대중들과 함께 저 비바시(毘婆尸)여래에게 가서 머리로 그 발에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는 한쪽에 서서 비바시여래를 우러러 잠깐도 눈을 떼지 않았다. 그때 동자는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게송을 설하였다.
세 가지 밝음 두루 갖추고 감로(甘露)를 베푸시어
능히 세간을 위하여 좋은 이익을 짓는다.
용상(龍象)의 사자(師子) 왕에게 머리 조아리나니
그러므로 나는 지금 언제나 찬탄하며 예배하네.
부처님의 지혜의 광명은 참으로 희유하나니
그것은 마치 해와 달이 세간을 비춤과 같다.
또한 그것은 저 우담발라꽃이 나타난 것과 같아
묘한 색상(色相)에 견고하고 편히 머무시네.
이 세간의 유정들은 모두 무거운 장애가 많아
부처님의 성스러운 도를 잘 알지 못하나니
마치 저 장님이나 어리석은 사람과 같아
험악한 길에 떨어지는 것을 깨닫지 못하네.
원하나니 나는 장래에 바른 깨달음 이루어
마치 비바시 세존처럼
저 유정들로 하여금 온갖 괴로움을 떠나
세 가지 독의 불을 멸하고 시원함을 얻게 하리.
또 한량이 없는 저 유정들로 하여금
나를 따라 이와 같은 서원을 널리 내어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최상의 가르침을 듣고
모두 보리의 도를 열어 보일 수 있게 하리.
그때 동자는 이 게송을 마치고 다시 이렇게 말했다.
‘비바시 여래ㆍ응ㆍ정등각에게 귀의하나이다. 법요(法要)를 잘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8만 4천 구지 대중들도 이렇게 말했다.
‘비바시 여래ㆍ응ㆍ정등각에게 귀의하나이다. 법요를 잘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세 번 찬탄하고는 다시 말했다.
‘원하옵나니 우리도 장래에 정등정각을 이루어 비바시여래처럼 법요를 잘 말하여지이다.’
그때 비바시여래께서는 그 동자와 8만 4천 구지의 대중들이 기별을 받을 수 있음을 알고 곧 신변(神變)을 나타내어 그 입에서 결정승(決定勝)이라는 광명을 놓았는데, 이 광명에는 다시 한량없는 갖가지 색상이 있었으니, 이른바 파랑ㆍ노랑ㆍ빨강ㆍ하양ㆍ분홍ㆍ파지가(頗胝迦)ㆍ금빛 등이니, 이런 색상이 한량없는 세계를 두루 채웠다. 그것은 환히 비추어 위로 범천 세계[梵世]에 사무쳐 색변제(色邊際)에까지 이르렀고, 해와 달빛이 다 가려졌다. 그 빛은 다시 돌아와 부처님 정수리 위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백천 번을 돌고 홀연히 사라졌다.
사리자여, 그때 비바시여래에게는 한 시자 필추가 있었는데, 그는 부처님 신변의 광명을 보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여미고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부처님 존안을 우러러보면서 게송으로 여쭈었다.
비바시부처님은 참으로 희유하사
모든 성인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성인이시네.
나는 지금 여쭈옵나니 선서존(善逝尊)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그 광명을 나타내시옵니까?
그때 필추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큰 신변을 나타내어 그 광명을 놓으십니까? 원하옵나니 여래께서는 큰 사랑으로 가엾이 여겨 저희들을 위해 의심을 풀어 그 일을 말씀해 주소서.’
다시 무량 백천 대중이 부처님 앞에 섰다.
‘듣고자 합니다. 저희들은 지극한 마음으로 자세히 듣겠사오니 이 유정들을 위해 자비로 가르쳐 주소서. 여래시여, 큰 슬픔은 세간의 눈이 되어 일체를 구호하시고 집과 같아서 일체를 덮어 주십니다. 원하옵나니 여래께서는 대자로 가엾이 여기시어 의심 그물을 끊어 주소서.
유정들의 과거 미래 현재의 소행과 생각과 일체의 행업(行業) 및 온갖 의혹을 여래께서는 모두 다 아십니다. 또 저 모든 부처님 세계에 있는 유정들의 3세(世) 가운데의 일체 지혜와 말의 차별을 여래께서는 모두 다 통달하십니다. 여래께서는 법왕(法王)이 되시어 여덟 가지 말소리[言音]를 구족하시어 어떤 설법에도 자재하십니다.
무슨 인연으로 큰 신변을 나타내시고 이 광명을 놓으십니까? 원하옵나니 여래께서는 저희들의 모든 의심 그물을 끊어 주시고, 또 일체 근심 슬픔과 고뇌를 없애 주소서. 저희들은 지금 이렇게 세 번 청합니다.’
이와 같이 한마음을 쏟아 합장 공경하고 듣기를 원하였다.
사리자여, 그때 비바시여래께서는 그 시자 필추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동자가 내 앞에서 합장하고 서 있는 것을 보느냐?’
‘예, 봅니다, 선서시여.’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동자는 옛날 친근하고 칭찬하고 공경하고 예배하고
다시 의복 침구와 갖가지 약으로 8만 4천 구지 나유타 부처님께 공양하여 온갖 선근을 심고, 정등보리를 성취하기 위해 항상 범행(梵行)을 닦았었다.’
부처님께서는 필추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또 이 8만 4천 구지 대중이 내 앞에서 합장하고 서 있는 것을 보는가?’
‘예, 저는 봅니다, 선서시여.’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저 사람들은 다 전생에 이 동자의 부모였는데 생생(生生)에 모두 내 교화를 따라 발심하고 후후세(後後世)에 다 여자 몸을 받지 않기를 원하여 모두 닦아 익히면서 다 같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었다. 그래서 나는 저들에게 기별을 주기 위해 이 인연으로 큰 신통을 나타내어 이 광명을 놓은 것이다.’
그때 비바시여래께서는 그 시자 필추와 대중들을 위해 게송을 설하셨다.
그대들은 보는가? 내 앞에 있는 대중들을.
이 동자를 따라 모두 다 모여 왔다.
8만 4천 구지 사람들
한마음을 오로지 쏟아 내 말을 듣는다.
부처님의 설법에서 말하는 자재를 얻어
나는 지금 친히 너희 필추들에게 말하노라.
나는 아노니, 이 동자는 많은 겁 동안
모든 부처님을 친근하여 또 공양하였다.
다시 한량이 없는 부처님께 나아가
지극한 마음으로 견고히 집 떠나기 구하고
최상의 맑고 깨끗한 행을 닦아 지니고
다시 잘 천상 인간 무리를 이롭고 즐겁게 했다.
또 내 앞에 있는 이 대중들은
그 수가 8만 4천 구지인데
날 때마다 일찍이 그 부모가 되어
교화하여 기뻐하기 항상 간단이 없었다.
다시 옛날 무수한 겁에
끝이 없는 온갖 큰 서원을 널리 내어
날 때마다 언제나 그 부모가 되어
다 함께 위없는 큰 보리를 구하였다.
이와 같이 편히 머물면서 생사를 떠났나니
마땅히 나를 따라 함께 공부하면서
위없는 묘한 보리를 구하기에
나는 지금 저들을 위해 친히 기별을 주어야 하리.
저들은 결정코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리니
그러므로 나는 큰 신통을 나타내는 것이다.
나는 능히 너희들 마음속에
다니거나 섰거나 앉았거나 누웠거나 의혹을 없게 하리.
너희들 하늘과 용과 또 사람들
나유타 수가 모두 내 앞에 있다.
저들을 위해 친히 기별을 준다는 말을 함께 들으리니
오래지 않아 반드시 이족존(二足尊)이 되리라.
사리자여, 그때 동자는 부처님의 수기(授記)라는 말을 듣고는 기뻐 뛰면서 빨리 부모에게로 가서 진실한 말로 게송을 설하였다.
이와 같은 8만 4천의 무리들
옛날에는 다 내 부모로서
다 함께 보리심을 내었는데
오늘의 내 부모는 또한 어떤가.
사리자여, 그때 그 부모는 그 동자를 위해 게송을 설하였다.
너가 말한 바와 같이 저 사람들
이미 다 각각 보리심을 내었다.
우리도 지금 일체지(一切智)에게 귀의하나니
너와 같이 발원하여 다름이 없다.
이와 같이 나아가 구경(究竟)의 도를 구하나니
너의 지금의 몸은 우리가 낳은 것이다.
너와 더불어 다 같이 진실한 마음 내어
보리의 열매를 성취하기를 우리는 원한다.
사리자여, 그때 그 동자는 부모를 위해 다시 게송을 설하였다.
내가 만일 가장 먼저 부처를 이루게 되면
맹세코 일체 유정을 위해 다 열어 보여
우리 부모와 모든 대중과
다 함께 위없는 큰 보리를 이루기 원하네.
또 사리자여, 그때 비바시여래께서는 그 동자와 대중들을 위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너에게 부처의 기별을 주리니 의혹을 내지 말고 스스로 위안하여 다른 견해를 내지 말라. 왜냐하면 너는 옛날 대자재천왕(大自在天王)이었고, 나는 그때 너를 위해 부처의 기별을 주었었다. 그 뒤로
구지 나유타 겁을 지내는 동안 너는 악취(惡趣)에 떨어지지 않았었다.
또 구지 나유타 겁을 지나 거기서 전륜성왕의 종족 가운데 태어나 부처가 되었는데, 이름을 대비(大悲) 여래ㆍ아라하(阿羅訶)ㆍ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라 하였고, 큰 명예를 갖추었었다. 아버지 이름은 정반(淨飯)이었는데 모든 우치(愚癡)를 떠났었으며, 어머니 이름은 마야(摩耶)였는데 모든 근심을 떠났었다. 그 아들은 그 때도 내 아들과 같아서 이름을 라후라(羅睺羅)라 하였는데, 세상에 나와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었었다.
보리의 도를 성취한 부처님 수명은 만 10만 세였으며, 그 부처님 광명은 10만 유선나 국토를 두루 밝게 비추었다. 그 세계에 있는 일체 유정들은 인연이 있거나 없거나 다 부처님께서 비추시는 광명을 받았었다.
그때 그 부처님 광명 속에 백 구지, 나유타 구지, 백천 나유타 구지의 큰 성문들이 다 모여 왔었다. 그리고 한 구지 무리는 다 아라한으로서 깨끗한 법을 구족하고 번뇌를 없애어 그 마음이 자재하며 여덟 가지 해탈을 갖추고 여섯 가지 신통을 얻었었다.’
사리자여, 이런 큰 아라한들이 모두 와서 모였었다. 다시 한량없는 큰 보살들이 다 와서 모였었고, 또 그 부처님의 과거의 모든 부모들도 다 와서 모였었다.
그때 대비(大悲)여래께서는 설법하고 교화하여 무량 아승기의 유정들이 다 물러나지 않는 자리에 머물렀으며, 그들에게 좋은 이익을 주시고는 곧 반열반(般涅盤)에 드셨는데, 바른 법은 1구지 년 동안 세상에 머물렀다. 그 부처님의 사리는 세상에 널리 퍼졌는데, 그것은 내가 멸도한 뒤에 퍼지는 사리와 같아서 다름이 없었다.
사리자여, 이렇게 말할 때 여러 정사(正士)들은 용맹하고 광대한 정진을 일으키고 심사(尋伺)를 일으켜 세간을 관찰하고는 유정들을 이롭고 즐겁게 하면서 마음에 물러남이 없었다.
또 보살마하살들은 바른 생각을 일으키되 더욱 늘리어 마음에 간단이 없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였다. 이와 같이 무량 아승기겁 동안 나고 죽고 떠도는 동안에 유정을 교화하여 이롭게 하면서 부처의 보리를 구하기를 원하였었다. 사리자여, 나도 그때에 이런 원을 세웠다. 즉 나고 죽는 동안에 정진의 갑옷을 입고 유정들을 교화해 이롭게 하고, 일체 정진의 행원을 원만히 하기를 원하였으며, 용맹 정진하는 마음이 물러나지 않아 보리를 이루기를 원하였었다.
또 사리자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물러나지 않는 용맹 정진인가? 보살마하살이 물러나지 않는 용맹 정진행을 행할 때 비록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불 무더기를 보더라도 여래의 정등보리를 구하기 위해서는 용맹 정진을 일으켜 그 불 속에 들어가서도 잘 참고 게으름을 내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 보살은 이 법을 들을 때에는 곧 1겁을 채우는 정진의 행을 초월하느니라. 또 그 보살이 이 법을 들을 때에는 물러나지 않는 용맹 정진에서 한량없는 선근을 더욱 자라게 하느니라.
또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이 물러나지 않는 용맹 정진을 행할 때에는 일체 유정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 열반을 구하되, 순일하여 섞임이 없고 항상 굳세게 머물러 선과 불선에 대해 사랑과 동정을 일으키며, 모든 유정들에게 상응한 행을 행하느니라.
또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은 용맹 정진을 행하되,
모두 게으르지 않아 어디서나 발을 들거나 발을 내리거나 항상 보리심을 떠나지 않으며, 3보를 관찰하여 항상 눈앞에 두면서도 일체 유정들을 버리지 않으며, 또한 일체 번뇌를 따르지도 않느니라.
또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은 용맹 정진을 행하되 모두 게으르지 않으며, 이미 났거나 아직 나지 않은 모든 선근의 힘을 다 보리의 바른 도에 회향하며, 다시 선근을 늘리어 다함이 없게 하느니라.
사리자여, 비유하면 모든 냇물이 큰 바다로 들어가 그 물이 다함이 없는 것처럼 이제 이 선근을 보리로 회향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이 다함이 없나니, 그러므로 물러나지 않는 용맹 정진이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이 물러나지 않는 용맹 정진을 행할 때에는 모두 게으르지 않고, 모든 바른 행에 있어서 일체지지(一切智智)로 선근을 모아 쌓으며, 다시 일체 유정들을 이롭고 즐겁게 하나니, 그러므로 물러나지 않는 용맹 정진이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여, 나는 지금 보살마하살 내지 일체 유정이 얻는 복 더미와 내지 유학(有學)ㆍ무학(無學)ㆍ성문ㆍ연각이 얻는 복 더미를 대충 말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여래의 한 털끝만큼 얻는 복 더미에도 미치지 못하거늘 하물며 여래 온몸의 털구멍이 가진 복 더미이겠는가? 그것은 여래께서 무량겁 동안 광대한 복 더미를 수행하고 쌓아 모았기 때문이다.
비록 어떤 이가 광대하게 복 더미를 쌓아 모았다 하더라도 이런 행상의 백분 천분도 여래의 한 대인상(大人相)에도 미치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여래의 일체의 상호이겠는가? 또 저 복 더미는 여래의 미간백호(眉間白毫)가 짓는 하나의 가월(珂月) 모양에도 미치지 못하거늘
하물며 백천으로 맴돈 백호 속의 공덕이겠느냐? 또 저 복 더미는 여래의 볼 수 없는 한 정수리 모양에도 미치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여래의 대장부상이겠으며……오슬이사(烏瑟貳沙)의 모든 기관의 상호가 내는 백천 구지의 공덕이겠는가?
또 저 복 더미는 여래의 큰 법라(法螺) 소리의 한 설법 모양에도 미치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여래의 광대한 법음(法音)이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가득 차 유정들로 하여금 모든 기관이 조화되어 모두 기뻐하게 하고, 그 훌륭한 이해를 따라 잘 조복하게 함이겠는가? 이런 얻기 어려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이해해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보살은, 한량없는 세계에서 여래께서 큰 소리를 내어 유정들을 다 듣게 하는 것을 배우면서 정진의 갑옷을 입고 견고한 뜻을 가지고, 보살의 물러나지 않는 용맹 정진의 행을 즐겨 익히느니라.
또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이 정진행을 닦을 때에는 물러서지 않는다. 설령 삼천대천세계 일체 유정들로 하여금 훌륭한 이해와 지혜의 힘을 구족하게 하더라도, 만일 유정들이 이 보살장(菩薩藏)의 정법을 따라 지혜의 힘을 완전히 성취한 데 비하면 그 공덕은 백분 천분 백천만억분 내지 오파니살담분(烏波尼殺曇分)의 일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요약해 말하면 이런 삼천대천세계 일체 유정들로 하여금 다 수다원(須陀洹)의 지혜의 힘, 사다함(斯陀含)의 지혜의 힘, 아나함(阿那含)의 지혜의 힘, 아라한(阿羅漢)의 지혜의 힘을 얻게 하고, 또 10신(信)ㆍ10주(住)ㆍ10행(行)ㆍ10회향(回向)ㆍ불퇴전지(不退轉地)의 지혜의 힘과 일생보처(一生補處) 보살의 자리를 얻게 하고……(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한량없는
세계의 일체 유정들로 하여금 다 일생보처 보살의 지혜의 힘을 얻게 하더라도,
만일 어떤 유정이 여래의 분별없고 또 분별 있는 지혜의 힘 등을 듣고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그때에 차례로 그 깊은 지혜의 힘을 즐거워하면 앞의 공덕은 이것의 백분 천분 백천만억분 아승기분 내지 오파니살담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보살은 용맹 정진을 일으키기를 좋아하여 차라리 신명(身命)ㆍ머리ㆍ눈ㆍ골수ㆍ뇌와 일체 사지를 다 버릴지언정 여래의 지혜의 힘에 있어서 잠깐도 닦아 익히는 것을 끊기를 좋아하지 않고, 이와 같이 버리면서 용맹 정진하나니, 나는 이것을 보살의 물러서지 않는 용맹 정진행이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물러나지 않는 자리를 닦고 배워야 하며, 나아가 한 마음을 일으켜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일체 유정들의 한량없고 가없는 마음의 차별에 두루 들어가야 한다. 만일 어떤 유정이 탐욕ㆍ분노ㆍ우치 등 일체의 번뇌를 두루 채웠다가 다시 보살의 마음으로 돌이켜 들어가면 그때 보살은 지혜의 힘으로 비유하고 말하여 갖가지로 추구한다.
이와 같이 용맹 정진을 일으켜 이 색상(色相)을 가진 일체 유정이 탐욕ㆍ분노ㆍ우치 등에 타는 것을 보고는 그때 보살은 온갖 방편으로 일체 번뇌를 두루 그치게 하되, 다 탄 재가 다 흩어져 남음이 없는 것처럼 하며, 다시 열반의 길을 닦아 나아가게 하나니, 나는 이것을 보살의 물러나지 않는 정진행이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이 물러나지 않는 정진행을 닦을 때에는, 이른바 몸으로 선업을 짓고, 말로 선업을 지으며, 뜻으로 선업을 짓고,
나아가 일체 정진바라밀다는 다 몸과 말과 뜻의 업을 닦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3업이 정진을 내는 데에는 뜻이 제일이다. 어째서 뜻이 제일인가? 이른바 분별이 없음과 분별이 있음이다.
어떤 것을 분별이 없음이라 하는가? 이른바 보리심이다. 어떤 것이 분별이 있음인가? 이른바 일체 유정에 대해 대비심을 일으키는 것이다. 어떤 것이 분별이 없음인가? 이른바 인욕의 지혜로 무아(無我)의 이치를 깨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분별이 있음인가? 이른바 일체 유정을 잘 섭수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분별이 없음인가? 이른바 비록 일체 유정을 섭수하더라도 취하는 상이 없는 것이다. 어떤 것이 분별 있음인가? 이른바 윤회를 싫어해 떠나는 것이다.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삼계에 전연 소득이 없는 것이다. 분별이 있음이란 이른바 모든 재보를 즐거움을 따라 보시하는 것이며,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보시할 때 상을 취하지 않는 것이다. 분별이 있음이란 이른바 계율을 지님에 있어서 쌓아 모음이 있는 것이며,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계율을 지킬 때 상을 취하지 않는 것이다. 분별이 있음이란 이른바 괴로움을 달게 참는 것이며,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찰나에도 마음에 머무름이 없는 것이다. 분별이 있음이란 이른바 모든 선근의 법을 일으키는 것이다.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항상 생각이 고요한 것이다. 분별이 있음이란 이른바 선정에 쌓아 모음이 있는 것이며,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항상 마음이 결정되어 편히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분별이 있음이란 이른바 듣는 지혜를 닦아 만족함이 없는 것이며,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마음을 오로지 방편에 쏟는 것이다. 분별이 있음이란 이른바 듣는 지혜로 모든 법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며,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법의 성품을 전연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분별이 있음이란 이른바 지혜에 닦음이 있는 것이다.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모든 법에 실없는 말이 없는 것이다. 분별이 있음이란 모든 범행을 짓고 모으는 것이며,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모든 슬기의 성품을 다 버리는 것이다. 분별이 있음이란 이른바 다섯 가지 신통을 잘 원만히 하는 것이며,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모든 유루(有漏)를 다 없애는 것이다. 분별이 있음이란 이른바 관상(觀想)을 항상 생각하는 것이며,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마음으로 항상 바로 생각하는 것이다. 분별이 있음이란 이른바 네 가지 정단(正斷)을 다 교묘히 하는 것이다.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일체 선근을 능히 초월하는 것이다. 분별이 있음이란 이른바 문자의 상에 집착하여 출리를 구하려 하는 것이며,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광대한 복의 과보에 두루 상이 없는 것이다. 분별이 있음이란 이른바 모든 유정들의 그 소질을 잘 아는 것이며,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모든 선근의 법을 잘 관찰하면서도 얻음이 없는 것이다. 분별이 있음이란 이른바 모든 힘에 닦고 익힘이 있는 것이다.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옳은 것을 파괴하지 않는 것이다. 분별이 있음이란 이른바 능히 보리분법(菩提分法)을 내는 것이며,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모든 법을 분별하는 지혜를 떠나는 것이다. 분별이 있음이란 이른바 바른 도를 잘 구하는 것이며,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온갖 신통 변화를 허공과 같다고 보는 것이다. 분별이 있음이란 이른바 선정의 문을 잘 쌓아 모으는 것이며,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사마타(奢摩他)에 머물러 오직 한 경계인 것이다. 분별이 있음이란 이른바 비발사나(毘鉢舍那)를 잘 쌓아 모으는 것이다.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법의 성품에 잘 들어가는 것이다. 분별이 있음이란 이른바 인연법을 잘 이해해 들어가는 것이며,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인연법이 아닌 것을 잘 아는 것이다. 분별이 있음이란 이른바 승의(勝義)의 소리에 집착하기 때문이며,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바른 법의 행을 행하기 때문이다. 분별이 있음이란 이른바 법신을 장엄하는 것이며,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법신의 장엄을 버리는 것이다. 분별이 있음이란 이른바 언어를 장엄하는 것이다.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모든 성인에 의지하여 항상 침묵하는 것이다. 분별이 있음이란 이른바 세 가지 해탈문에 의지하여 욕심을 내는 것이며,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증상아(增上我)가 없기 때문이다. 또 분별이 있음이란 이른바 네 가지 악마의 일을 멀리 떠나는 것이며,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번뇌와 습기(習氣)의 종자를 잘 버리기 때문이다. 분별이 있음이란 이른바 교묘한 방편을 잘 알기 때문이다.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지혜를 여실히 알고 보는 것이다. 분별이 있음이란 이른바 반연을 떠나 소견이 있기 때문이며,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소견을 떠나 초월하기 때문이다. 분별이 있음이란 이른바 상념(想念)의 봄이 있는 것이며, 분별이 없음이란 이른바 뜻의 업의 견해이다. 이것을 의업의 정진이라 하나니, 정진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다. 나는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물러나지 않는 정진행이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여,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물러나지 않는 정진행을 행할 때에는 다섯 가지 최상의 극히 묘한 법을 행하여 위없는 정등보리를 빨리 증득하나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 최상의 극히 묘한 법인가?
첫째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심을 항상 생각하는 것이요, 둘째는 선지식(善知識)을 잘 친근하는 것이며, 셋째는 항상 좋은 때를 만나는 것이요, 넷째는 모든 선근의 법을 항상 쌓고 모아 항상 견고하게 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보살마하살의 구족한 계품(戒品)을 배워 원만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을 다섯 가지 최상의 극히 묘한 법이라 하며, 이로 말미암아 보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리 얻느니라.”
그때 존자 사리자는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혹 보살이 이 다섯 가지 최상의 극히 묘한 법을 버리더라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겠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리자여, 만일 보살이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심을 항상 생각하지 않고 선지식을 친근하지 않으며, 좋은 때를 만나지 못하고 선근의 법을 쌓고 모으지 못하거나 견고하게 하지 못하며, 보살마하살의 구족한 계품을 원만하게 하지 못하는 등 이런 다섯 가지 최상의 극히 묘한 법을 멀리 떠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리 얻지 못하나니, 그것을 어기고도 얻는다면 그럴 리 없느니라.
사리자여, 어떤 것이 재가(在家) 보살로서 다섯 가지 법을 멀리 떠나는 것인가? 이른바 왕의 가신(家臣)처럼 대중 가운데서 그 위세를 믿고 많은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것이다. 또 그는 대중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희들을 위해 갖가지 일을 해 주리라’라고 하면서 속이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며, 나아가 그런 거짓말을 하고도 태연히 있다. 사리자여, 이런 거짓으로 말미암아 천상의 좋은 세계에 나지 못하며, 그런 행상은 좋은 때도 만나지 못한다.
사리자여, 또 이런 행상을 가진 재가 보살은 오직 자기 살림살이만을 갖출 줄 알고 남을 이롭게 하지 못하며, 또한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심을 만나지도 못하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리 얻지 못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여, 또 재가 보살은 도시에 살면서 여러 가지 장애와 어려움에 항상 괴로워한다. 어떤 것이 도시의 여러 가지 장애와 어려움인가?
사리자여, 저 여래께서 세상에 나와 정각을 이루시고는 여러 하늘ㆍ사람ㆍ아수라 등을 위해 설법하여 교화하시면 처음도 중간도 마지막도 좋고, 그 이치가 심원하며, 그 말은 교묘하고 깨끗한 범행의 상을 구족하시며, 4부 대중이 호위하고 공경한다. 또 필추ㆍ필추니ㆍ우바새ㆍ우바이를 친근하여 공양하고 예배한다. 그러나 저 촌락이나 도시나 거리나 집에 사는 백성과 국왕ㆍ대신ㆍ장자ㆍ거사 들은 다 그 안에서 산다. 이 인연으로 그들은 청정한 계율 무더기를 구족하지 못하나니, 나는 이것을 성안의 장애와 어려움이라 하는 것이다.
만일 재가 보살이 이런 5욕(欲)을 즐겨 집착하면 그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심을 생각하지 못하고, 나아가 위없는 정등정각을 빨리 이루지도 못하느니라.
또 사리자여, 재가 보살은 스스로 말하는 현행 법률에 또 장애와 어려움이 많다. 이른바 부모ㆍ자녀ㆍ처첩ㆍ노비ㆍ자매ㆍ형제ㆍ친구ㆍ권속 등이 언제나 장애와 어려움이 되는 것이다. 사리자여, 이와 같은 법들은 재가 보살의 온갖 장애와 어려움이 되어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심을 좋아하지 않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빨리 이루지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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