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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5063 불설대승보살장정법경(佛說大乘菩薩藏正法經) 25권

by Kay/케이 2024.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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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불설대승보살장정법경(佛說大乘菩薩藏正法經) 25

 

대승보살장정법경 제25권


서천 역경삼장 조산대부 시광록경 전범대사 사자사문 신 법호 등 한역
변각성 번역


8. 인욕바라밀다품 ②

“또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의 인욕바라밀다(忍辱波羅蜜多)는 이른바 자신의 최상의 인욕이니, 나[我] 등의 상(相)이 있으면 최상의 인욕이 아니다. 왜냐하면 만일 누가 와서 성을 내어 침해할 때와 또 잘 참으면 마음과 경계 가운데서 그것을 다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어떤 것이 분노이며, 어떤 것이 인욕인가? 법수(法數) 가운데서 어째서 눈 등에 분노가 있는가?’
또 살펴보아도 12처(處)의 인욕을 얻을 수 없다. 유정들의 상을 아무리 따져 들어가도 다 얻을 수 없다.
또 이 인욕도 진실한 최상이 아니다. 심지어 인욕이라는 이름도 빈 골짜기의 메아리와 같은 것이니, 이것을 고(苦)ㆍ공(空)ㆍ무상(無常)ㆍ무아(無我)라 한다. 인욕 등에 대해 이렇게 안다. 즉 이 인욕도 최상이 아니니, 이른바 ‘이 법에 나는 착각이 없고 저 사람은 착각이 있다’ 하여 인욕행에 대해 높고 낮은 생각을 낸다.
또 ‘이 인욕도 진실한 최상이 아니니, 이른바 이 법에서 나는 해탈했으나 저 사람은 해탈하지 아니하였다’ 하여 인욕행에 있어서 서로 응하지 않는다. 또 ‘이 인욕도 최상이 아니니, 이른바 이 법에서 나는 정도(正道)에 살지만 저 사람은 정도에 살지 않는다’ 하여 인욕행에 있어서 두 가지 상을 낸다.
또 이 인욕도 진실한 최상이 아니다. 이른바 이 법과 공(空)에서는 잘 참지마는 견(見)에서는 참지 못하고, 상(相)이 없는 데서는 잘 참지마는 상이 있는 데서는 참지 못한다. 혹은 원(願)이 없으면 구하지 않는 데서는 잘 참지마는 원이 있고 구함이 있는 데서는 잘 참지 못하고,
혹은 반연의 쌓임이 없으면 잘 참고 반연의 쌓임이 있으면 참지 못하며, 혹은 번뇌가 없는 곳에서는 잘 참고 번뇌가 있는 곳에서는 참지 못한다.
또 좋은 곳에서는 잘 참고 좋지 않은 곳에서는 참지 못한다. 혹은 허물이 없는 곳에서는 잘 참고 허물이 있는 곳에서는 참지 못하며, 혹은 무루법(無漏法)에서는 잘 참고 유루법(有漏法)에서는 참지 못하며, 혹은 출세간법에서는 잘 참고 세간법에서는 참지 못하며, 혹은 청정한 법에서는 잘 참고 더러운 법에서는 참지 못하며, 혹은 열반법에서는 잘 참고 생사법에서는 잘 참지 못한다. 이런 인욕은 대치(對治)가 있기 때문에 진실한 최상이 아니다.
어떤 것을 최상의 인욕이라 하는가? 만일 공성(空性)에 순응하면 보거나 안 보거나 그것은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만일 공성에 순응하면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 구하거나 구하지 않거나 그것은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만일 공성에 순응하면 반연의 쌓임에 있어서 그것은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만일 공성에 순응하면 청청한 법이거나 더러운 법이거나 그것은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닌 것이다.
만일 공성에 순응하면 선법이거나 불선법이거나 그것은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만일 공성에 순응하면 허물이 있거나 허물이 없거나 그것은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만일 공성에 순응하면 모든 행과 열반법은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니, 이것을 최상의 인욕이라 한다. 왜냐하면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법은 다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온갖 반연도 다함이 없고 인욕도 다함이 없느니라.
만일 이 법이 유위(有爲)도 아니요
무위(無爲)도 아니며, 또 화합한 것도 아니며, 또한 늘거나 줄지도 않고, 이루어지거나 무너지지도 않으며, 짓는 것도 아니요 기르는 것도 아니면 그것은 생기지 않는 것이니, 그 때문에 이것을 다함이 없는 것이라 하며, 이것을 진실한 인욕이라 하느니라.
사리자여, 이와 같이 보살이 이 행을 잘 행하면 그것은 대보살마하살의 인욕바라밀다라 한다. 만일 그 보살마하살이 이 보살과 상응한 행을 잘 행할 때에는 일체 마왕과 그 권속들이 모든 악마의 일과 다툼 등을 짓더라도 다 나타나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최상의 인욕바라밀다를 성취한 것이라 하느니라.”

9. 정진바라밀다품(精進波羅蜜多品)

“또 사리자여,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정진바라밀다라 하는가?”
부처님께서는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정진바라밀다와 상응한 행을 닦을 때에는 먼저 악마의 일이 사라져 나타나지 못하게 하고, 다음에는 물러나지 않고 구족한 용맹 정진을 일으켜 신명을 아끼지 않고 견고하고 용맹하게 구하고 익혀야 하나니, 이것이 보살장의 정법이요 명문(明文)이다. 다시 쓰고 베끼며 받아 가지며 듣고 읽고 외우면서 그 뜻을 알고 남을 위해 해설해야 한다. 또 보살마하살은 모든 경전을 남을 시켜 듣고 쓰고 베끼고 받아 가지며 읽고 외우면서 그 뜻을 알고 남을 위해 해설해야 하느니라.
사리자여, 비유하면 진실한 행을 행하는 어떤 사람이 갖가지 금강의 무기를 가지고 백 사람과 싸우면서도 아무 두려움이 없이 사나운 적과 신명을 아끼지 않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정진행을 행하는 것도 그와 같아서 최상의 정진을 굳건히 일으켜
보살의 바른 법을 구하되, 버림이 없고 훌륭한 해행(解行)을 내고 정근에서 물러나지 않아야 하느니라.
또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이 견고한 정진행을 행할 때에는 삼천대천세계 가운데 있는, 난생(卵生)ㆍ태생(胎生)ㆍ습생(濕生)ㆍ화생(化生)ㆍ유색(有色)ㆍ무색(無色)ㆍ유상(有想)ㆍ무상(無想)ㆍ비유상(非有想)ㆍ비무상(非無想), 내지 유정의 수에 떨어지는 자 가운데서 1찰나, 1납박(臘縛), 1모호율다(牟呼栗多), 이렇게 차례로 1겁을 채운 뒤에 옛날부터 생을 받지 않고 오다가 지금 비로소 생을 받아 사람의 몸을 얻었으므로 정진하여 읽고 외우고 받고 가지며, 나아가 남을 위해 연설하여 남으로 하여금 받아 지니게 하여야 하느니라.
사리자여, 나는 지금 비유로 이 뜻을 밝히기를 좋아한다. 비유하면 진정한 행을 행하는 사람이 예리한 칼을 가지고 나쁜 벗을 막을 뿐 아니라 그 신명을 끊어 완전히 이기는 것처럼, 사리자여, 저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일심으로 용맹한 정진을 일으켜 아무 두려움 없이 보살장의 정법을 잘 받들어 지니느니라.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은 물러나지 않는 자리의 정진행을 구족하고 다시 빨리 무량한 정진의 힘을 구족하나니, 이른바 깨끗한 마음의 용맹과 계율을 가지는 용맹과 인욕하는 용맹과 정진하는 용맹과 삼마지의 용맹과 훌륭한 지혜의 용맹과 훌륭한 행의 용맹이니라.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은 능히 이런 온갖 용맹을 일으키되 한 생각도 살해할 뜻이 없나니, 그것은 나쁜 벗이 용맹심을 일으켜 살해하는 것과는 다르니라.

또 사리자여, 나는 말하노니, 이 보살마하살은 마치 범왕(梵王)과 같고, 천제석(天帝釋)과 같으며, 묘고산(妙高山)과 같아서 흔들림이 없으며, 대자대비와 훌륭한 이해로 다시 물러나지 않는 자리의 신통 경계를 통달하여 유정들의 갖가지 마음을 알고, 마음은 대지와 같아 일체에 평등하며, 물과 불과 바람 및 허공 등과 같이 그 마음이 다 평등하고, 또 탐욕ㆍ분노ㆍ우치 등 일체 허물을 잘 없애느니라.
또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은 비유하면 긍가(殑伽)의 모래 수 같은 세계에 가득한 7보를 가지고 보시하더라도, 그것은 이 대승 보살장의 정법을 듣고는 정진하고 생각하며 수행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과를 이루는 것만 못하나니, 여러 보살마하살 등은 마땅히 고요히 생각하고 이렇게 수학해야 하느니라.
사리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광대하게 수순하여 수학하면 그는 곧 원만하고 한량없고 광대한 선근을 얻을 것이요, 이와 같은 정진바라밀다를 들음으로 말미암아 가장 훌륭하고 묘한 결과를 성취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리자여,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즐기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이 보살장의 정법 가운데서 그것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읽고 외우며 쓰고 베끼며 받아 가져 사람을 위해 연설하려면 용맹한 정진을 일으켜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모든 험난한 곳을 굳세게 나아가도 괴로움이 없다. 어떤 것이 가기 어려운 데를 능히 가는 것인가? 이른바 묘하게 열반으로 나아가 악마 파순으로 하여금 그 틈을 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 보살 정사(正士)를 상응한 행을 닦는 자라고 말하는 것은,
용맹 정진으로 이런 3승(乘)의 열반의 길을 구하기 위하여 3악취(惡趣)에서 저 유정으로 하여금 더러운 법을 능히 없애게 하고, 지계(持戒)와 인욕 등 바라밀다를 많이 듣고 닦아 익혀 출리(出離)를 구하게 하느니라. 그리고 만일 어떤 유정이 악업과 게으름을 행하면 그들을 가엾이 여겨 다 용맹 정진을 내게 하느니라.
사리자여, 보살마하살로서 지혜로운 사람은 게으른 유정을 멀리 떠나고 정진하는 유정과는 함께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리자여, 오직 열반의 최상이요, 제일인 청정한 해탈을 구하기 때문이다. 사리자여, 또 보살마하살이 정진바라밀다를 행할 때에는 일체 유정들을 함께 행하게 하고, 다시 일체 유정을 이롭게 하며, 바른 행을 잘 설명하여 모두 깨치게 하나니, 그들을 위없는 도에 끌어들이기 위해서이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게송을 설하셨다.

용맹 정진이 모두 걸림이 없고
언제나 존경 받아 견줄 이 없나니
보살장의 정법 가운데서
그것을 맡아 지니는 큰 지자라 한다.

위없는 바른 법의 뜻을 항상 생각하고
불가사의한 지혜의 문을 얻고
다시 바른 법에서 출리(出離)하기 구하나니
마땅히 여래께서 친히 주시는 기별을 받으리라.

용맹하게 크고 훌륭한 슬기를 닦아 익히고
보리나무 밑에 앉아 바르게 생각하며
모든 악마들로 하여금 두려워해 물러나게 하나니
지혜와 정진의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일체 계율의 맑고 깨끗함을 두루 나타내고
세간의 사업들을 다 잘 익히며
다시 저 유정들을 이롭고 즐겁게 하고
정진을 두루 갖추되 줄어듦이 없네.

부처님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멸도(滅度)한 5백 년에 만일 어떤 유정이 이 행을 행할 때 모든 경전을 즐겨 받아 지니면,
그는 한량없이 뛰어난 지혜와 복덩이와 부귀와 존엄을 얻고, 또 여래의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4정단(正斷)과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喜)와 부처님의 18불공법(不共法) 내지 일체 불법을 얻을 것이며, 통틀어 말하면 각각 다 알고, 마음이 청정하여 악마의 일을 없애고, 유정들로 하여금 생사의 고통을 없애고 열반으로 향하게 할 것이며, 다시 그 때에는 일체의 위순경(違順境)을 다 버릴 것이다.
사리자여, 만일 그때에 저 유정들이 지혜가 상응하고 선교한 방편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면, 그들은 깨끗한 계율을 닦아 지니고 항상 많이 듣기를 좋아하며, 온갖 선정을 익히고, 지혜의 업과 훌륭한 해탈과 해탈지견을 닦아 불법을 구하며, 일체 유정들을 이롭고 즐겁게 하기를 좋아하고 삿된 견해를 끊고는 바른 견해를 즐겨 구하고 윤회를 벗어나며 성도를 수행하고 정법을 연설할 것이다. 또 그 때에는 모든 악마의 장애를 부수고, 탐욕ㆍ분노ㆍ우치를 다 없애고, 무명의 어두움을 끊고 밝은 지혜를 나게 할 것이다.
사리자여, 만일 이런 법을 잘 들어 받으면 일체 선근이 생장할 것이며, 최상의 정진을 쌓아 성취할 것이다. 만일 이렇게 정법을 들으면 악마도 그 틈을 못 탈 것이요, 일체 불법에 대해 의혹을 내지 않을 것이다.
사리자여, 그때 그 유정은 복과 힘을 두루 갖추고 마음을 바로 써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다. 또 이 유정은 모든 경전을 잘 듣고 외우며 즐겨 받아 가져 매우 기뻐하며, 보살장의 정법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며 수행하고 성취하여 매우 기뻐하는 것도 또한 그럴 것이다. 나는 말하노니, 이 사람은 모든 여래의 가르침을 다 성취할 것이다.

비록 어떤 사람이 오로지 독송하지 않더라도 이 인연 때문에 잠깐 와서 들으면 마음먹고 좋아하여 크게 기뻐할 것이며, 다시 최상이요 제일 견고한 정진과 나아가 이와 같은 보살장의 정법에서 진실하고 미묘한 행상(行相)을 얻을 것이며, 조금이나마 남을 위해 설명할 것이다.
사리자여, 비유하면 큰 바다 가운데 잘 익은 과일들이 있는데 빛과 향기를 다 갖추어 물 위에 떠 있는 것과 같다. 어떤 장부가 그 과일들을 보고는 큰 용맹 정진의 훌륭한 행을 일으켜 그 바다로 들어갈 때 사나운 물결을 보았으나 빠질 것을 불고하고 두 손으로 그 과일을 줍되, 하나나 둘이나 셋을 집어 바닥에서 나온다.
그리하여 조용한 곳에서 그것을 보고 또 맛을 보고는 생각한다.
‘나는 이전에는 이 과일을 몰랐다. 또 이런 빛깔이나 냄새나 맛도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큰 용기를 내어 또 바다에 가서 이런 과일을 다시 얻으리라.’
그러나 그 과일은 나타나지 않고 다만 보이는 것은 사나운 물결뿐이다. 그는 괴로워하면서 돌아와서는 그 과일의 빛깔과 향기와 맛의 뛰어나고 사랑스러움을 생각하고는, ‘내가 아까 더 많이 취하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고 한다.
사리자여, 내가 멸도한 뒤 5백 년이 되어 법이 멸하려 할 때에는, 혹 유정이 있더라도 보시ㆍ계율ㆍ지혜ㆍ정진에 대해 조금 신해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이 인연으로 모든 경전을 듣고 칭찬하며 수지하고 독송하며 남을 위해 한 사구게(四句偈)나마 연설해도, 악마 파순의 괴롭힘을 받아 수지 독송을 건립하지 못하며, 공양을 일으키고 갖가지로 칭찬하는 것도 이 때문에 모두 버리느니라.
다시 나아가
조금 듣고 독송하며 칭찬하고 수지하며, 고요한 곳에서 생각하고 수습하더라도 악마가 틈을 타서 어디서나 항상 타락하게 한다. 그때 그 수행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아, 괴로워라. 내가 여래의 위없는 법에서 타락하게 되면 진실한 법에 있어서 우리들로 하여금 듣고 수지하며, 나아가 모호율다(牟呼栗多) 때에도 여래 정등정각을 생각하는 것조차 못하게 하느니라.
또 사리자여, 필추들이 악마에 붙들리면 모든 경전을 듣고 독송하지 못한다. 그때 악마 파순은 대중 앞에 나타나 갖가지로 비방하기를, ‘이 경전들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다. 이것은 다만 세간의 거짓 문식(文飾)일 뿐이다’ 한다. 사리자여, 그 대중 가운데 있던 필추들은 이 말을 듣고는 어디서나 악마의 힘에 눌려 모두 경전을 듣지 않느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게송을 설하셨다.

만일 누구나 이 바른 법 들으면
저 모든 악마 무리를 멀리 떠나게 하고
일체의 부처님 법에 대해
결정코 믿고 알아 의혹을 제거한다.

만일 혹 박복한 모든 유정들
이 바른 법을 듣지 못하면
그 유정은 박복하기 때문에
들어도 또한 믿고 이해하지 못한다.

혹 누구나 복의 힘을 두루 갖춘 자로서
듣고 받들어 지니고 믿고 또 이해하면
이 바른 법을 조금만 듣더라도
능히 일체의 악마의 일을 없앨 수 있다.

이와 같이 박복한 모든 유정들
이 바른 법에 대해 믿음을 내지 못하면
그는 믿지 않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나니
마치 저 장님이 아무것도 못 보는 것 같다.

만일 누구나 복의 힘을 두루 갖춘 자로서
이 바른 법을 깊이 믿고 이해하면

깊이 믿기 때문에 좋은 세계에 태어나나니
그 빠르기는 마치 연유[酥]를 물에 던지는 것 같다.

한 무리의 복이 적은 저 유정은
법을 듣고도 자꾸자꾸 번뇌를 낸다.
그 사람은 긴 밤 동안에 고뇌 받나니
어리석기 때문에 해탈 못 하고
부처님의 보리를 모두 버리고
나쁜 세계 속으로 빨리 떨어져간다.

“사리자여, 여래에게는 청정하고 결백한 지혜라는 법이 있다. 사리자여, 4중(衆) 중에서 만일 한 무리의 필추ㆍ필추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여래께서 멸도하신 뒤 법이 멸하려 할 때에 모든 경전을 듣고 독송하며 즐겨 수지하는 자가 있으며, 또 한 무리의 유정들이 어디서나 즐겨 수지하고 독송하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여래께서는 그것을 낱낱이 아신다.
또 어떤 유정이 이 경전을 듣고는 바른 행을 일으켜 이치대로 수행하면 네 가지의 완전하고 청정하며 결백하고 걸림 없는 법을 얻을 것이다. 그 네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완전하고 청정하며 결백한 계바라밀다의 장애 없는 법을 얻는 것이요, 둘째는 항상 여래를 만나 묘한 상과 완전하고 청정하며 결백하고 장애 없는 법을 보는 것이며, 셋째는 자씨(慈氏) 여래를 보고 완전하고 청정하며 결백하고 장애 없는 법을 얻을 것이요, 넷째는 이치와 상응한 모든 선근의 힘과 완전하고 청정하며 결백하고 장애 없는 법을 얻는 것이다.
사리자여, 이상이 네 가지의 완전하고 청정하며 결백하고 장애 없는 법이니라.
사리자여, 만일 내가 멸도한 뒤 법이 멸하려 할 때에 대승행의 이와 같은 행상에서 상응한 행을 닦는 자는 뛰어난 정진의 행을 일으킬 것이며, 다시 모든 경전을 수지 독송하고 남을 위해
연설하여 계속해 듣게 할 것이다.
그때에 그 유정에게는 다시 열 가지 마사(魔事)가 있으니,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다 알고 거기에 따르지 않으며, 다시 용맹 정진을 일으켜 불사(佛事)를 성취하느니라.
그 열 가지 마사란 어떤 것인가? 사리자여, 만일 어떤 필추가 경전에 대해 욕심을 내어 수지 독송하면 그때 악마 파순이 와서 괴롭히는데 이것이 첫째 마사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런 줄 알고 거기에 따르지 않아야 하느니라.
사리자여, 만일 어떤 필추가 경전을 욕심내어 수지 독송하면 그때 악마 파순이 와서 괴롭히되 눈에 온갖 병이 나게 하나니, 이것이 그 둘째 마사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런 줄 알고 물러나지 않아야 하느니라.
사리자여, 만일 어떤 필추가 경전에 욕심을 내어 수지 독송하면 그때 악마 파순이 와서 괴롭히되 그 몸에 온갖 병이 나게 하나니, 이것이 그 셋째 마사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런 줄 알고 물러나지 않아야 하느니라.
사리자여, 만일 어떤 필추가 경전에 욕심을 내어 수지 독송하면 그 마음을 산란하게 하여 본래 살던 곳을 좋아하지 않게 하나니, 이것이 그 넷째 마사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런 줄 알고 따르지 말아야 하느니라.
사리자여, 만일 어떤 필추가 경전에 욕심을 내어 수지 독송하면 그로 하여금 몹시 화를 내어 서로 다투게 하여 그 경전에서 굳건히 서지 못하게 하나니, 이것이 그 다섯째 마사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런 줄 알고 따르지 않아야 하느니라.
사리자여, 만일 어떤 필추가 경전을 욕심내어 수지 독송하면
그들로 하여금 서로 다투게 하여 함께 왕난(王難)을 겪게 하고 서로 욕설하며 예리하기가 독화살과 같은 것으로 서로 해치게 한다. 이런 행상은 그 경전들을 유포하지 못하게 하며, 서로 싸우는 업으로 빨리 타락하게 하나니, 이것이 그 여섯째 마사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런 줄 알고 따르지 알아야 하느니라.
사리자여, 만일 어떤 필추가 경전에 욕심을 내어 수지 독송하면 그때 악마 파순이 와서 꾀어 속가에 살게 하며, 다시 갖가지 싸움을 일으키게 한다. 이런 행상은 경전을 수지하지 못하고 비방하게 하며, 싸우는 업으로 말미암아 빨리 파괴되나니, 이것이 그 일곱째 마사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런 줄 알고 따르지 않아야 하느니라.
사리자여, 법이 멸하려 할 때, 어떤 어린 필추는 이 법에서 출가한 지 오래지 않았으나 그는 경전을 사랑하여 수지하고 굳게 신해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다. 그때 그 필추는 이 경을 듣고 크게 기뻐한다.
그 친교사(親敎師)는 그 어린 필추들에게 말한다.
‘이것은 부처님의 보리가 아니요, 부처님의 법률이 아니니 수지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그 필추들은 이 말을 듣고 얼마 동안 부처님의 보리를 믿지 않는다. 그리고 서로 말한다.
‘우리는 옛날 부처님의 보리법을 닦아 익혔는데 지금은 우리들을 즐겨 닦아 익히지 못하게 하여 과거의 모든 선근의 힘을 끊어지게 하며, 도리어 이렇게 더러운 법에 떨어지게 하였다. 나아가 목숨을 마치고는 악취에 떨어져 큰 고뇌를 받게 한다.’
사리자여, 이런 것은 다 악마의 말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온갖 지옥의 업을 쌓아 모으는 것이다. 저 유정들이 3보를 비방하고 부처님 말씀을 따르지 않는데 여래께서는 3세(世)의 일을 다 아신다. 또 저 유정들이 정진을 일으켜 대승행을 닦는 것도 여래께서는 여기서 다 아신다.
사리자여, 나는 이제 저 보살들로 하여금 네 가지 생각을 일으키게 한다. 그 네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제 몸의 업을 잘 조복하는 것이요, 둘째는 선을 닦음에 있어서 묘하게 관찰하는 것이며, 셋째는 남이 짓는 바를 즐겨 관찰하지 않고 저 유정들에 대해 대비심을 일으키는 것이요, 넷째는 고요한 곳에서 다니거나 섰거나 앉거나 눕거나 자타의 마음을 잘 방호하는 것이니, 이것이 네 가지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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