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불설대승보살장정법경(佛說大乘菩薩藏正法經) 24권
대승보살장정법경 제24권
서천 역경삼장 조산대부 시광록경 전범대사 사자사문 신 법호 등 한역
변각성 번역
7. 지계바라밀다품 ⑦
그때 세존께서는 이 게송을 마치시고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말한 모든 계경을 더욱 왕성하고 수순하는 근력(根力)으로 신해(信解)해야 한다.
사리자여, 또 눈 등은 비유하면 물거품과 같아서 잡을 수가 없다. 물거품에는 나도 없고, 사람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자(壽者)도 없으며, 보특가라(補特伽羅)도 없고, 의생(意生)도 없고, 유동(儒童)도 없으며, 짓는 자도 없고, 받는 자도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법은 생기는 것이 아니요, 일체의 상을 떠난 것임을 알아라. 거기에 무슨 탐애할 것이 있겠는가.
또 이 눈 등은 마치 아지랑이와 같아서 일체의 번뇌와 탐애가 모여 생긴 것이므로 과거와 미래에 나가 없고, 사람이 없으며, 중생이 없고, 수자가 없으며, 보특가라가 없고, 의생이 없으며, 유동이 없고, 짓는 자도 없고, 받는 자도 없다. 이렇게 알면 모든 행이 변하지 않음을 알아 일체의 상을 떠날 것이니, 여기에 무슨 탐애가 있겠는가.
또 이 눈 등은 마치 파초(芭蕉)와 같아서 그 본체가 진실하지 않으므로 이 파초 속에는 나가 없고 사람이 없으며……일체의 상을 떠날 것이니, 여기에 무슨 탐애가 있겠는가. 또 이 눈 등은 마치 환화(幻化)와 같아서 전도(顚倒)가 모여 생긴 것이므로 이 환화 속에는 나가 없고 사람이 없으며……일체의 상을 떠날 것이니, 여기에 무슨 탐애가 있겠는가.
또 이 눈 등은 마치 꿈속과 같아서 보는 것이 모두 진실이 아니므로 이 꿈 속에는 나가 없고 사람이 없으며……일체의 상을 떠날 것이니, 여기에 무슨 탐애가 있겠는가. 또 이 눈 등은 마치 골짜기의 메아리와 같아서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므로 이 골짜기의 메아리 속에는 나가 없고 사람이 없으며……일체의 상을 떠날 것이니, 여기에 무슨 탐애가 있겠는가.
또 이 눈 등은 마치 그림자와 같아서 모든 업혹(業惑)을 따라 나타난 것이므로 이 그림자 속에는 나가 없고 사람이 없으며……일체의 상을 떠날 것이니, 여기에 무슨 탐애가 있겠는가. 또 이 눈 등은 마치 뜬 구름과 같아서 모이고 흩어짐이 일정하지 않고 그 본체가 구경(究竟)이 아니므로 이 뜬 구름 속에는 나가 없고 사람이 없으며……일체의 상을 떠날 것이니, 여기에 무슨 탐애가 있겠는가.
또 이 눈 등은 마치 번갯불과 같아서 찰나에 멸하는 것이므로 이 번갯불 속에는 나가 없고 사람이 없으며……일체의 상을 떠날 것이니, 여기에 무슨 탐애가 있겠는가. 또 이 눈 등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나와 내 것[我所]을 떠났으므로 이 허공 속에는 나가 없고 사람이 없으며……일체의 상을 떠날 것이니, 여기에 무슨 탐애가 있겠는가.
또 이 눈 등은 마치 우치한 사람과 같아서 아무 지각이 없고, 또 초목ㆍ장벽(牆壁)ㆍ기왓장ㆍ돌 등 모든 무정물과 같아서 아무 지각이 없으므로 이 우치한 무정물 속에는 나가 없고 사람이 없으며……일체의 상을 떠날 것이니, 여기에 무슨 탐애가 있겠는가. 또 이 눈 등은 마치 모든 행과 같아서 다 변천하는 것이요, 또한 바람과 연과 같아서 인연이 모인 것이므로 이 모든 행 속에는 나가 없고 사람이 없으며……일체의 상을 떠날 것이니, 여기에 무슨 탐애가 있겠는가.
또 이 눈 등은 다 허망한 것으로서 모든 더러운 것이 모인 곳이다. 이 허망한 것에는 나도 없고 사람도 없으며……일체의 상을 떠날 것이니, 여기에 무슨 탐애할 것이 있겠는가? 또 이 눈 등은 거울 속의 영상과 같아서 물건을 따라 나타나는 것인데 잠깐 있다가 어느새 없어지며, 이것은 부서지는 법이다.
이 거울 속의 영상에는 나도 없고 사람도 없으며……일체의 상을 떠날 것이니, 여기에 무슨 탐애할 것이 있겠는가.
또 이 눈 등은 고통의 우물과 같다. 늙음ㆍ병ㆍ죽음ㆍ고통의 네 마리 쥐와 두 마리 쥐가 번갈아 침노하고 핍박한다. 이 고통의 우물 속에는 나도 없고 사람도 없으며……일체의 상을 떠날 것이니, 여기에 무슨 탐애할 것이 있겠는가.
또 이 눈 등은 진실이 없는 변제(邊際)이다. 부진(不塵)1)의 기관으로서 죽음의 침노를 받아 비로소 변제를 본다. 이 변제 가운데는 나도 없고, 사람도 없으며, 중생도 없고, 수자도 없으며, 보특가라도 없고, 의생(意生)도 없고, 유동(儒童)도 없고, 짓는 자도 없으며, 받는 자도 없다. 이렇게 일체의 상을 떠난 것임을 알면, 여기에 무슨 탐애할 것이 있겠는가.
사리자여, 온(蘊)ㆍ처(處)ㆍ계(界)의 법도 또한 이와 같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내심이 견고하여 진실과 상응하면 영원히 탐애의 법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탐애의 법에 떨어질 리가 없으며, 탐애의 법을 진실로 떠날 것이다. 사리자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계행의 청정이라 하느니라.
또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원만하고 청정한 계행으로 유정들을 해치지 않으며, 보잘것없는 유정까지도 다 이롭게 하며, 또한 신명을 아끼지 않고 일체에 두루 보시한다. 혹 남의 은혜를 받으면 다 잘 갚고 자타의 수용을 다 원만하게 한다.
또 보살마하살은 어디에서나 차라리 신명을 잃을지언정 갖가지 삿된 욕심의 행을 멀리 떠난다. 차라리 신명을 잃을지언정 거짓말과 이간질하는 말로 유정을 속이지 않고 언제나 자기 권속에 대해 기뻐하고 만족한다.
차라리 신명을 잃을지언정 꾸미는 말을 멀리 떠나고 항상 자애롭고 유순한 말과 반드시 정직한 말을 쓴다.
항상 제 몸을 보호하고 다른 티끌 경계에 탐애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차라리 신명을 잃을지언정 성을 내지 않고 남의 비방을 받아도 흔들리지 않으며, 어떤 욕설도 참고 받는다. 차라리 신명을 잃을지언정 삿된 견해를 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처님께 귀의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고 항상 계율을 지녀 범하지 않으며, 또한 세상의 지혜와 변재와 총명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오직 부처님의 지혜를 배우고 계율을 굳게 지녀 허물이 없으며, 험악한 더러운 법을 멀리 떠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율을 굳게 지녀 모든 악과 번뇌의 쌓인 습관을 멀리 떠나고, 항상 결백한 훌륭한 행을 성취하며, 과거보다 더 음식을 두루 보시한다. 또 계율을 굳게 지녀 마음의 욕심을 따르되 자유로이 행하여 안락하고 길상(吉祥)하며, 계율을 지녀 지혜로운 이를 헐뜯지 않고, 초저녁과 밤중과 새벽에 바른 생각을 잃음이 없다.
계율을 지니는 동안 온갖 비방을 떠나고, 아무 허물도 생기지 않으며, 모든 기관을 항상 굳게 지킨다. 계율을 지니는 동안 큰 명칭을 갖추고, 선법을 항상 섭수하고,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 알아 모든 공양에 항상 분수를 알며, 기쁘게 계율을 지녀 모든 반연을 끊고, 항상 정직을 행한다.
계율을 지녀 3업(業)을 항상 살피고, 들판에서 살기를 즐긴다. 계율을 굳게 지녀 모든 여인을 항상 싫어하고, 성인의 종족들을 항상 좋아한다. 계율을 굳게 지녀 맹세코 세간의 아름다운 경계를 보지 않으며, 두타의 행에 결함이 없다. 계율을 지녀 자기 선근을 남[他]으로 말미암아 일으키지 않아 말과 실행이 서로 응한다.
계율을 지녀 사람과 하늘을 속이지 않고 항상 인자한 마음을 내되 더욱 늘리며, 유정을 해칠 뜻이 없고, 큰 슬퍼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항상 계율을 지녀 일체 괴로운 일을 참고 받으며 기쁘게 계율을 지키고 모든 법을 즐기면서도 집착이 없어 항상 버리는 행을 닦는다. 계율을 지녀 역경(逆境)과 순경(順境)을 평등하게 대하여 자기 허물을 항상 잘 살피며, 남의 마음을 따라 항상 수호해 주고 일체 유정을 잘 조복한다.
계율을 지녀 단바라밀(檀波羅蜜:보시바라밀)을 원만히 하고, 계율을 지녀 계바라밀(戒波羅蜜)을 원만히 하며, 굳게 가지는 마음은 아무도 이기지 못한다. 계율을 지녀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을 원만히 하고 선법을 실현시킨다. 계율을 지녀 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을 원만히 하고 정려(精慮)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계율을 지녀 선바라밀(禪波羅蜜)을 원만히 하고 듣는 지혜를 닦되 간단이 없다. 계율을 지녀 지혜바라밀을 원만히 하고 선지식을 친근하기를 즐거워하느니라.
계율을 굳게 지녀 보리분법(菩提分法)을 쌓아 모으고, 나쁜 벗을 멀리 떠난다. 계율을 지녀 항상 온갖 험난을 여의고 자기가 영원한 존재라고 하는 생각을 여의며 싫어한다. 계율을 지녀 무상하다는 생각으로 늘 반성하고 수명을 또 버린다. 계율을 지녀 항상 세상에 오래 살기를 좋아하지 않고, 오직 항상 모든 상(相)의 위행(違行)을 멀리 떠난다.
계율을 지녀 제 마음을 극히 청정히 하여 모든 뜨거운 번뇌를 멀리 떠난다. 계율을 지녀 탐애를 멀리 떠나며, 스스로 잘난 체하지 않고 잘 겸허한다. 계율을 지녀 순직(純直)해 아첨함이 없으며, 부드럽고 화합한 말이 여실히 상응한다. 계율을 지녀 큰 이름을 얻으며, 일체를 두루하여 스스로 조복한다.
계율을 지녀 언제나 성내지 않고 고요함을 좋아하며 선한 말로 유정을 이롭게 한다. 계율을 지녀 여실히 말해 어기지 않으며, 4섭법(攝法)으로 유정을 포섭한다. 계율을 지녀 항상 바른 법을 보호하며, 자기의 법의 재물을 모자라지 않게 한다. 모든 지혜로운 사람은 이 계율 무더기를 구족하여 보살행을 잘 행하느니라.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은 이 지계바라밀로 용맹스러운 마음을 일으켜 모든 악마의 일과 악마의 권속들을 잘 막으며, 어떤 괴로운 일도 나타나지 않느니라.”
8. 인욕바라밀다품(忍辱波羅蜜多品) ①
“사리자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인욕바라밀다(忍辱波羅蜜多)인가? 그 보살마하살은 계율을 보호하기 위해 용맹스런 마음을 내어 구족한 인욕바라밀다를 수행한다. 이 행을 닦을 때는 세간의 침해와 해로운 일을 다 잘 참고 받는다.
혹 추위ㆍ더위ㆍ주림ㆍ목마름ㆍ폭풍ㆍ혹일(酷日)이나 혹은 모기ㆍ등에ㆍ거머리ㆍ독충 들이 모두 와서 괴롭히더라도 다 잘 참고 받는다. 혹은 중생들이 욕설을 하면서 와서 비방하거나 보살의 신명을 해치려 하더라도 보살은 두려워하지 않고 성내지도 않으며, 또 원수를 맺지도 않고, 이승과 저승에서 다 잘 참느니라.
사리자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인욕바라밀다를 완전히 수행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여, 나는 과거 오랜 동안 항상 이런 인욕관법(忍辱觀法)을 닦았다. 혹 일체 유정이 항상 와서 비방하고 성을 내며
마구 때리고 추악한 말로 갖가지로 비방하더라도 나는 그때 성내지 않고 미워하거나 괴롭히려 하지 않으며, 또한 해로운 일로 도리어 해치려 하지 않았다.
사리자여, 나는 인욕관을 성취한 뒤에 항상 슬퍼하는 마음으로 유정을 가엾이 여겼다. 분노와 성냄과 질투가 왕성하게 되면 번뇌 속에 떨어지는 것이다. 다시 묘한 갖가지 방편으로 그들을 깨우쳐 거기서 벗어나 묘한 과보를 얻게 하였다.
만일 유정이 보살을 등지고 좋은 교화를 따르지 않고 도리어 악행을 늘리면, 어디서나 항상 추루하고 뜻 같지 않은 과보를 받는다. 왜냐하면 분노의 행위는 더러운 인(因)이며, 불선의 업이며, 잡염의 업이요, 비열한 업이며, 정사(正士)의 업이 아니요, 좋은 벗의 업이 아니기 때문이니, 그것은 짓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알아야 한다. 분노 등 불선한 업은 사람을 끌어 3악도(惡道)에 떨어지게 하고, 사람을 끌어 염마라계(焰魔羅界)에 떨어지게 하며, 지옥ㆍ축생 세계에 떨어지게 하고, 염마라계의 권속이 되게 한다. 그런 분노 등 모든 악업은 재물이 없는 비열한 야차 세계로 끌고 가고, 재물이 없는 비열한 귀신 세계로 끌고 간다. 그런 분노 등 악업은 빈궁하고 하천하며 추루한 인간으로 끌고 가느니라. 사리자여, 나는 이전에 그런 행상(行相)을 짓지 않았으니, 보살마하살도 그런 행상을 지어서는 안 되느니라.
또 사리자여, 여기에 어떤 것이 다른 법이며, 어떤 것이 다른 지음인가? 우리의 지음이 선법과 상응하고, 저들의 지음이 비선법과 상응하면, 이것이 다른 법이요 다른 지음이다.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나를 따라 수학해야 한다.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수학할 때는 혹 어떤 유정이 와서 괴롭히더라도 성내지 말고, 모든 행상에도 또한 마음먹지 않으며, 항상 스스로 생각하고 인욕관을 지어 유정의 온갖 선근을 성숙시켜야 하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여, 가령 어떤 사람이 금ㆍ은ㆍ유리ㆍ차거(硨磲)ㆍ마노(碼瑙)ㆍ산호(珊瑚)ㆍ호박(琥珀)ㆍ마니주(末尼珠) 등을 4대주(大洲)에 가득 채워 보시하더라도 이 인욕바라밀다를 행하는 것만 못한다.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인욕을 행하기 때문에 유정을 윤회에 떨어뜨리지 않고 번뇌 없는 길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니라.
또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은 성내지 말고 항상 부처님과 법과 스님을 생각하기로 마음먹어야 한다. 왜냐하면 귀명한 공덕의 힘으로 한량없는 선근을 성취할 것이요, 또 유정들을 다 부처님과 법과 스님을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니, 이렇게 생각할 때에는 항상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나는 유정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선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악인가? 만일 부처님과 법과 스님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는 곧 성을 내어 언제나 악행에 얽매이게 될 것이다.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즉 만일 성을 내면 그것은 바른 이치가 아니요, 만일 인욕하면 그것은 바른 이치이다.
보살은 일체 분노의 행업을 멀리 떠나야 한다. 그리고 인욕바라밀다를 행할 때에는 먼저 부처님과 법과 스님이라는 보배를 생각해야 한다. 이 3보(寶)의 힘은 일체 유정들로 하여금 다 이 행을 행하게 한다.
사리자여, 나는 이런 행상을 성취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어 유정들을 위해
묘한 법륜(法輪)을 굴린다. 그러고 모든 여래께서 나를 거두어 주시기를 원한다. 선남자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낼 때 유정들을 위해 묘한 법륜을 굴리면 부처님의 뛰어난 걸림 없는 앎과 한량없는 지견을 얻을 것이다.
보살은 이 인욕바라밀다를 닦아 행상으로 분노와 미움의 악행을 대치(對治)하고, 또한 동방의 긍가(殑伽)의 모래 수와 같은 세계를 생각해야 한다. 거기에는 긍가의 모래 수 같은 여래ㆍ응공ㆍ정등정각께서 현재에 설법하여 유정들을 이롭게 하시는데, 저 보살은 그 여래의 기별을 받느니라.
선남자여, 나는 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어 유정들을 위해 설법해 교화한다. 이와 같이 남방ㆍ서방ㆍ북방과 4유(維)ㆍ상하에도 긍가의 모래 수 같은 세계가 있고, 거기에도 긍가의 모래 수 같은 여래ㆍ응공ㆍ정등정각께서 현재 계시면서 설법하여 유정들을 이롭게 하시는데, 보살은 그 여래의 기별을 받느니라.
선남자여, 나는 또 이와 같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어 유정들을 위해 설법하여 교화하며, 항상 인욕바라밀다를 칭찬하여 사자처럼 외치면서 분노와 성냄 등 모든 악행의 법을 아주 멀리 떠난다. 만일 어떤 중생이 혹 갖가지 유익한 일을 짓기를 좋아하면, 그때 보살은 유정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나도 또한 그를 따라 의리(義利)를 짓는다. 거기에 어찌 여러 가지 어렵고 쉬운 일이 있겠는가?
또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은 일체 유정을 위해 이와 같이 인욕바라밀을 수학해야 한다. 만일
그렇게 수학하지 않으면 그는 나의 좋은 벗이 아니요, 만일 나를 따라 그런 유익한 일을 하면 그는 나의 좋은 벗이다. 그러므로 알아서 침해하는 일이 없으면서 그런 유익한 일을 하면 나는 매우 즐거워하여 유정들을 버리지 않고 모든 외로운 이익을 지을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게송을 설하셨다.
나는 구지억 겁 동안
유정들의 의로운 이익이 아님의 책임을 지고
그 유정들이 온갖 괴로움을 받는 것을 볼 때는
잠깐이라도 버려두고 편히 있은 적이 없었다.
유정들의 그 종성(種性)은 본래 의로운 이익으로서
서로서로 가르쳐 보이면서 좋은 벗이 되었었다.
비록 갖가지 침해를 받을 때라도
의로운 이익을 위하여 언제나 참고 받았다.
일체의 염부제에 두루 채우고
부처님 세계 가운데서도 또한 그와 같이
일체의 보배를 모두 가득 채우더라도
좋은 벗을 위해서는 그 때문에 다 버렸다.
만일 혹 어떤 사람이 예리한 칼을 가지고
내게 와서 내 몸이나 사지를 베려 해도
나는 인욕하기 때문에 인자한 마음 내어
아무런 두려움이나 어떤 괴로움도 없었다.
혹은 어떤 분노하거나 성낸 이가 있어서
쓴 독을 가지고 와서 침해하려 하여도
인욕하는 힘으로 그를 칭양하고
편히 머물러 괴로움을 참으면서 고민 없었다.
어떤 이가 칼이나 몽둥이나 독약 가지고
분노한 얼굴로 와서 내게 해를 더하려 해도
유정들의 갖가지 선근을 이롭게 하기 위해
그런 모든 악한 짓을 능히 참고 받았다.
나는 지금 저 어리석은 사람들을 본받지 않고
또한 저런 비열한 행동을 익히지 않고
뛰어나고 훌륭한 이익의 인(因)을 널리 닦나니
장차 저 열반의 위없는 결과에 도달하리라.
“또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은 인욕바라밀다를 이렇게 수학해야 한다. 즉 백천만 구지 나유타 겁 동안 가령 어떤 사람이 몽둥이나 기왓장이나 돌 등 갖가지 흉기로 때려 잠깐 동안 기절하여 땅에 쓰러져 목숨이 끊어지려 하다가 한참 만에 깨어나더라도 보살은 그때
이렇게 생각하여야 한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나는 지금 다시 목숨을 얻었다.’
그리고는 또 이렇게 최상 최승의 인욕바라밀다를 수학해야 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내 머리ㆍ눈ㆍ골수ㆍ몸ㆍ살ㆍ손ㆍ발 등을 요구하되 긍가의 모래 수와 같은 한 대겁(大劫) 동안 계속했지만 나는 그때 끝내 인색한 일이 없었고, 또 분노하거나 성내는 악행을 일으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만일 분노하거나 성내는 악행을 일으켰다면, 내가 백천 겁 동안 모든 선근이 다 흩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다시 더욱 굳게 쌓고 모아 백천 겁 동안 심은 선근을 허물어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 얻기 어려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을 수습한다. 왜냐하면 우리 보살들은 인욕의 힘으로 갑옷과 투구를 삼기 때문이다.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은 대승의 마음에서 물러나 악마로 하여금 그 틈을 엿보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지 못할 것이다. 만일 보리심에서 물러나 마음을 산란하게 하면 그 악마의 일이 장애가 될 것이다.
어떤 것이 악마의 일인가? 이른바 제 음식에 탐착하는 것이니 이것이 악마의 일이요, 3의(衣)에 탐착하는 것이니 이것이 악마의 일이며, 분별하여 교화하는 것이 악마의 일이요, 이양(利養)을 위해 남을 찬탄하게 하는 것이 악마의 일이며, 제 이익을 즐기는 것이 악마의 일이요, 여러 가지 결백한 법을 끊는 것이 악마의 일이며, 나아가 사람을 고요히 있지 못하게 하고, 복과 지혜를 닦지 못하게 하며, 궤범사(軌範師)를 친근하지 못하게 하고, 보리행의 법을 닦지 못하게 하면, 이것이 악마의 일이니라.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이 만일 보리의 도에서
물러나 산란한 마음을 일으키면 일체 악마가 곧 그 틈을 탄다. 왜냐하면 모든 악마의 장애가 오랜 동안 그 틈을 엿보고 보살의 마음에 들어가서 분노를 더욱 자라게 하기 때문이다.
사리자여, 내가 옛날에 계율을 굳게 지켜 인욕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선법을 통달하고 그 이름을 선인(仙人)이라 하였었다. 그때 어떤 큰 마왕(魔王)이 5백 명의 장부의 무리로 변화하여 모두 사납고 큰 성난 얼굴로, 5백 년 동안 다니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밤낮 쫓아다니면서 몹시 성을 내었다. 혹은 길이나 도시나 마을이나 속가나 혹은 들판에서 항상 성을 내어 허망한 거짓으로 유정들을 미혹시켰다.
사리자여, 그 악마 무리들은 5백 년 동안 항상 내 곁에서 크게 성을 내어 온갖 허물을 저질렀다. 나는 그때 깊이 생각하다가 가엾이 여겼기 때문에 큰 인자한 마음을 내어 악마 무리들을 위해 묘한 법을 자세히 설하였다. 그때 악마 무리들은 설법을 듣고 그 갖은 악행을 다 그쳤었다.
사리자여, 나는 그때에 그 악마 무리들을 위해 설법하고는 모든 유정들의 선근을 성숙시켜 장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였다. 또 아첨하여 계율을 깨뜨리고 악법을 좋아하여 다스리기 어려운 유정들과 또 탐욕과 분노와 우치가 많은 유정들을 위해 좋은 인연을 지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게 하였다. 그리고 내가 장차 정각을 이루어 최초에 제도한 유정들을 다 열반을 얻게 하기를 원하였다.
사리자여, 나는 그때에 모든 망상을 없애고 항상 바른 생각을 내어 유정의 선행을 모두 이롭게 하고, 삼제(三際)에서 잠깐도 그들을 버리지 않았느니라.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할 때에는 인욕바라밀다를 구족해야 한다. 만일 보살이 자신에게 생겼거나 생기지 않았거나 갖가지 나쁜 병과 극히 중한 고뇌와 내지 죽음의 고뇌까지라도 있으면 보살은 그때에 인욕바라밀다를 구족하여 그것을 다 참고 받아야 한다.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은 보살의 인욕바라밀다에 굳게 머물러야 한다. 이른바 성내지 않을 줄을 알아야 하나니, 이것이 보살이 인욕하여 해롭지 않게 하는 것이요, 이것이 보살이 인욕하여 다투지 않는 것이며, 이것이 보살이 인욕하여 살해하지 않는 것이요, 이것이 보살이 인욕하여 제 신명을 보호하는 것이며, 이것이 보살이 인욕하여 남의 신명을 보호하는 것이요, 이것이 보살이 인욕하여
항상 몸ㆍ말ㆍ뜻의 업을 보호하는 것이며, 이것이 보살이 인욕하여 마음을 살피고 인욕행을 닦는 것이다. 이것이 보살이 인욕하여 탐애를 멀리 떠나는 것이요, 이것이 보살이 인욕하여 업보를 따르는 것이며, 이것이 보살이 인욕하여 몸ㆍ말ㆍ뜻의 업을 깨끗이 하는 것이요, 이것이 보살이 인욕하여 인욕의 힘으로 다시 인간과 천상의 아주 묘한 쾌락을 얻는 것이며, 이것이 보살이 인욕하여 다시 보살의 원만하고 뛰어난 상호를 얻는 것이요, 이것이 보살이 인욕하여
여래의 심묘하고 청정한 범음(梵音)을 얻고, 보살이 모으고 쌓은 견고한 선행을 얻는 것이며, 이것이 보살이 인욕하여 일체 세간의 고뇌를 멀리 떠나는 것이요, 이것이 보살이 인욕하여 어떤 이가 그의 허물을 찾더라도 보살은 그에게 손해를 주지 않는 것이며, 이것이 보살이 인욕하여……(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여래의 10력(力)과 18불공법(不共法)과 대자ㆍ대비ㆍ대희(大喜)ㆍ대사(大捨) 등 일체 훌륭한 법을 다 원만히 얻는 것이다.
알아야 한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인욕바라밀다에 편히 머무는 것이니라.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이 인욕행을 닦을 때는 혹 어떤 이가 와서 성을 내어 침해하더라도 보살은 그때 그것이 허깨비로서 골짜기의 메아리를 대하는 것 같음을 알고 그것을 갚지 않으며, 나아가 때려죽이려 하더라도 자세히 살펴 그것이 요술이나 허깨비와 같음을 알고 또한 갚으려 하지 않는다.
또 어떤 이가 와서 갖가지로 칭찬해도 기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살은 자신의 원만하고 진실한 공덕을 그 권속으로 삼기 때문이며, 또한 세간의 법에 탐착하지도 않는다. 자기 허물은 잘 참회하고, 남의 허물을 비방하지 않으며, 보리분법을 원만히 하기 위해 큰 불사(佛事)를 짓는다. 다시 생각하기를, 이미 지은 죄업은 다 허망하고 거짓이며, 온갖 틀린 행은 아무 의리(義利)가 없는 일이라 하고, 그것들을 다 버리느니라. 사리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인욕바라밀다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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