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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5076 불설대승보살장정법경(佛說大乘菩薩藏正法經) 38권

by Kay/케이 2024.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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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불설대승보살장정법경(佛說大乘菩薩藏正法經) 38

 

대승보살장정법경 제38권


서천 역경삼장 조산대부 시광록경 전범대사 사자사문 신 법호 등 한역
변각성 번역


11. 승혜바라밀다품 ⑥

“또 사리자여, 보살의 한 가지 성도(聖道)를 간단히 말하리니, 이른바 이 보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단 혼자요 둘이 없다. 즉 스스로의 용맹으로 큰 용맹 정진의 힘을 깊은 마음으로 거두어 가지고, 다른 반연과 남의 가르침을 빌지 않고 스스로 매우 큰 역용(力用)을 성취한다. 이런 견고한 갑옷을 입고 모든 유정들의 얻기 어려운 것을 능히 얻으며, 저 새로 발심한 이가 보살승(菩薩乘)에 머무르면서 얻지 못한 것을 이제 얻는다. 또 일체 보시하기 어려운 것을 능히 보시하나니, 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승혜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또 바라밀다에서 세우지 못한 것을 이 보살은 모든 바라밀다에서 다 건립한다. 요약해 말하면, 광대한 깨달음과 갖가지 선근에 있어서 아무도 미치지 못하는데, 이런 법행을 다만 혼자요 둘이 아니면서 보리도량에 나아가 금강좌(金剛座)에 앉아 악마의 힘을 꺾어 항복 받고 한 찰나 사이에 승혜와 상응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결정코 평등하여 다시는 물러나지 않나니, 사리자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승혜바라밀다로 보살의 성도의 선교를 얻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보살의 연생(緣生)의 선교인가? 이른바 이 보살은 밤이나 낮이나 혼자 고요히 앉아 좋은 관찰로 온(蘊)은 어디서 일어나며, 어떤 힘에 의하는 것인가 한다. 즉 이러한 이치답지 않은 결심을 내어 무명(無明)을 내고, 무명은 행(行)을 반연하며, 행은 식(識)을 반연하고, 식은 명색(名色)을 반연하며,
명색은 6입(入)을 반연하고, 6입은 촉(觸)을 반연하며, 촉은 수(受)를 반연하고, 수는 애(愛)를 반연하며, 애는 취(取)를 반연하고, 취는 유(有)를 반연하며, 유는 생(生)을 반연하고, 생은 노사(老死)ㆍ우비(憂悲)ㆍ고뇌(苦惱) 및 수번뇌(隨煩惱)를 반연하여 방편이 모여 일어나는 것이다.
또 이런 법으로 말미암는 것은 본체도 없고, 짓는 이도 없으며, 주재(主宰)도 없는 것이다. 이른바 선의 인(因)과 악의 인(因)과 무기(無記)의 인이니, 일체는 반연에서 생기는 것이다. 또 저 유정들은 각기 분량이 있나니, 이른바 근인(根因)ㆍ증상근인(增上根因)ㆍ업인(業因)ㆍ과인(果因)과 유무변제구경(有無遍際究竟) 등의 인(因)인데, 모두가 모여 나는 것을 다 아나니, 이것을 연생의 선교라 한다.
또 온의 멸이니 어떤 것이 멸인가? 이른바 이치답지 않은 뜻[作意]이 멸하면 곧 무명이 멸하고,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하면 식이 멸하고, 식이 멸하면 명색이 멸하며, 명색이 멸하면 6입이 멸하고, 6입이 멸하면 촉이 멸하며, 촉이 멸하면 수가 멸하고, 수가 멸하면 애가 멸하며, 애가 멸하면 취가 멸하고, 취가 멸하면 유가 멸하며, 유가 멸하면 생이 멸하고, 생이 멸하면 노사ㆍ우비ㆍ고뇌가 멸하나니, 이 가운데서 이런 지혜를 얻는다.
또 연생(緣生)의 선교란, 이른바 모든 법은 인연의 화합에 매여 있어 유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도 없고 사람도 없으며 중생도 없고 수자도 없다. 그래서 이런 법에 헤아림이 없는 것이다. 저 보살은 이 연생에서 다시 일체 불법과 보리의 상을 건립하여 멸함이 있음에서 묘한 관찰에 응하고, 멸함이 없음에서 유정을 섭수하여 교화한다.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은 승혜바라밀다에서 이런 연생의 선교를 얻느니라.
어떤 것이 보살의 일체 법의 선교인가? 일체 법이란, 이른바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이니, 보살은 유위와 무위의 선교를 이렇게 알아야 한다. 즉 유위의 선교란, 이른바 몸과 말과 뜻의 모든 선행을 유위의 보리라 관찰하고일체지(一切智)로 향하나니, 이것을 유위의 선교라 한다.
또 유위의 선교란, 이른바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 등 다섯 가지 바라밀다를 쌓아 모으는 것이다. 만일 다시 승혜바라밀다에서 무위의 지혜를 얻고, 다섯 바라밀다에서 또한 그것을 버리지 않고 일체 바라밀다를 잘 구하여 무루의 보리라 신해(信解)하고 일체지로 향하나니, 이것을 무위의 선교라 하느니라.
또 유위의 선교란, 이른바 유정에 대해 네 가지 섭사(攝事)를 행하되 대치(對治)하는 바가 없고, 비록 유정을 섭수하더라도 실은 섭수할 나도 없고, 사람도 없는 것이다. 섭사의 선교에도 취함이 없고, 무위의 보리를 신해하여 일체지로 향하나니, 이것을 무위의 선교라 한다.
또 유위의 선교란, 이른바 모든 행이 상속하는 결박을 끊으면 곧 윤회와 번뇌의 결박을 끊고, 보리의 상에서 그가 가지고 상속하는 결박은 조금도 모으지 않나니, 이것을 유위의 선교라 한다. 만일 공과 무상과 무원에서 지혜로 관찰하고, 모든 법의 인연을 잘 알고, 보리의 행을 닦으면서도 무위를 취하지 않으면 이것을 무위의 선교라 한다.
또 비록 삼계에 다니더라도 그 삼계의 번뇌에 얽매여 집착하지 않으면 이것을 유위의 선교라 한다. 만일 지혜로 삼계를 벗어날 줄 알면서 삼계를 떠나지 않고 또한 타락하지 않으면 이것을 무위의 선교라 한다. 만일 일체 법의 선교를 말하면 일체지란 다 덧말이니,
만일 일체지를 통달하고 원만히 하여 조금도 감손함이 없으면 이것을 승혜의 선교라 하며, 또 이것을 일체 법의 선교라 한다.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이 승혜바라밀다행에 안주할 때는 그 승혜에서 이런 열 가지 선교를 얻느니라.”
부처님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승혜이며, 어떤 것이 바라밀다인가? 승혜란 이른바 선하고 선하지 않은 법을 관찰해 아는 것이니 이것을 승혜라 하며, 또 한량없는 여실한 법문을 분별하면 이것을 승혜라 하고, 또 모든 견해를 통달하여 걸림이 없는 법을 얻으면 이것을 승혜라 하며, 또 일체의 바른 원에 안주하여 모든 원을 진실로 버리면 이것을 승혜라 하고, 모든 뜨거운 번뇌를 떠나 가뿐하고 편안하게 되면 이것을 승혜라 하며, 또 모든 반연을 끊고 큰 법락(法樂)을 얻으면 이것을 승혜라 한다.
또 뜻을 따라 관찰하면 이것을 승혜라 하고, 또 일체보리분의 법에 머무르게 되면 이것을 승혜라 하며, 또 상(相)과 무상을 여실히 알면 이것을 승혜라 하고, 또 지혜로 모든 법의 체성(體性)을 비추어 알면 이것을 승혜라 하며, 또 모든 험난을 뛰어나 장애가 없게 되면 이것을 승혜라 하고, 또 정달(正達)을 섭수하면 이것을 승혜라 하며, 또 모든 선법을 다 청정하게 하면 이것을 승혜라 하고, 또 번뇌의 습기(習氣)를 끊으면 이것을 승혜라 하며, 또 일체 선법을 먼저 닦아 깨달으면 이것을 승혜라 한다.
또 자연생(自然生) 등에서 깨달음을 일으켜 멀리 떠남으로 인도하면 이것을 승혜라 하고, 또 삼계에 집착하지 않으면 이것을 승혜라 하며, 또 모든 거룩한 원을 상속해 끊어지지 않게 하면 이것을 승혜라 하고, 또 모든 상 없음으로 변계(遍計)를 제거하되 다스림이 청정하면 이것을 승혜라 하며, 또 어둡고 미련함을 떠나 일체 상응한 행의 자리를 성취하면
이것을 승혜라 하고, 또 일체지지(一切智智)로 광명의 길에 머무르면 이것을 승혜라 한다.
또 무명의 어두움에서 밝은 눈이 되면 이것을 승혜라 하나니, 이와 같이 신해(信解)하여 무루(無漏)의 눈을 얻으면 이것을 승혜라 하고, 또 눈의 경계의 길에서 저 승의(勝義)를 뛰어넘으면 이것을 승혜라 하며, 또 진실로 뛰어나 흔들리지 않고 조복하면 이것을 승혜라 하고, 또 지혜의 문을 무궁무진하게 비추면 이것을 승혜라 하며, 모든 곳에 두루하여 서로 어긋남이 없으면 이것을 승혜라 하고, 해탈의 길을 항상 높이 나타내면 이것을 승혜라 하며, 모든 번뇌와 장애되는 법을 떠나 다 함께 머물지 않으면 이것을 승혜라 하느니라.
사리자여, 모든 보살은 이 승혜로 일체 유정들 마음의 나아가는 업행의 차별과 번뇌의 문을 다 알며, 나아가 이런 지혜로 집지문(執持門)에서 일체 성문ㆍ벽지불ㆍ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를 두루 아나니, 이것을 승혜라 한다. 그러므로 모든 보살들은 이 글귀의 뜻을 다 배워야 하느니라.
또 사리자여, 바라밀다란 이른바 이 승혜로 모든 선하고 선하지 않은 법을 아는 것이니, 이것을 바라밀다라 한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이 글귀의 뜻을 다 배워야 하나니, 이것을 바라밀다라 한다.
또 보살행을 뛰어넘고 원만하게 하는 것을 바라밀다라 하고, 일체지지가 원만한 것을 바라밀다라 하며, 유위법과 무위법에 다 집착이 없는 것을 바라밀다라 하고, 윤회의 허물을 깨닫게 하는 것을 바라밀다라 하며, 다함없는 법장(法藏)을 다 아는 것을 바라밀다라 하고, 모든 반연을 떠나 해탈이 원만한 것을 바라밀다라 한다.

또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승혜를 두루 깨닫게 하는 것을 바라밀다라 하고, 선교(善巧)를 성취하여 유정의 세계에서 일체를 인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무생법인(無生法忍)이 원만하여 물러나지 않는 자리에 이르게 하는 것을 바라밀다라 하며, 부처님 국토를 원만히 하고 유정을 교화해 제도하며, 보리도량에 이르러 악마의 원한을 제거하고 원만한 일체 불법을 얻는 것을 바라밀다라 하고, 또 이와 같이 대승보살장의 정법을 잘 건립하는 것을 바라밀다라 하느니라.
사리자여, 모든 보살들은 이 정법장을 이렇게 배우고는 저 언덕에 이르나니, 그러므로 이 대승의 일체 바라밀다를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또 사리자여, 만일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보살장의 정법을 수지하고 독송하며 광대하게 열어 남을 위해 연설하면 열 가지 칭찬할 공덕을 얻느니라.
그 열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이 생을 지내고는 일체 사업에 통달하는 것이요, 둘째는 거룩한 종족으로 나는 것이며, 셋째는 큰 명예를 갖추는 것이요, 넷째는 그가 하는 말을 사람들이 다 기뻐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큰 부자가 되는 것이요, 여섯째는 하늘과 사람들이 다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전륜성왕이 되는 것이요, 여덟째는 범천에 나는 것이며, 아홉째는 [범본에 원래 없다.], 열째는 모든 곳에 두루하여 보리심을 얻고는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니라.
또 열 가지 칭찬할 공덕을 얻나니, 그 열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니건타(尼乾陀) 등과 함께 살지 않게 되는 것이요, 둘째는 나라는 견해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사람이란 견해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중생이란 견해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며, 다섯째는 수자란 견해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요, 여섯째는 항상되다는 견해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며, 일곱째는 끊어졌다는 견해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요,
여덟째는 모든 진기한 노리개를 버리는 것이며, 아홉째는 깨끗한 신심을 내어 항상 출가를 즐기는 것이요, 열째는 이름과 글귀와 글을 빨리 깨쳐 들어가는 것이다.
또 열 가지 칭찬할 공덕을 얻나니, 그 열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바른 생각이요, 둘째는 총명하고 영리한 것이며, 셋째는 모두 지니는 것이요, 넷째는 훌륭한 지혜이며, 다섯째는 찰나가 구족한 것이요, 여섯째는 숙주념(宿住念)을 얻는 것이며, 일곱째는 탐하는 성질이 적은 것이요, 여덟째는 성내는 성질이 적은 것이며, 아홉째는 어리석은 성질이 적은 것이요, 열째는 왕성한 3독(毒)에 타지 않는 것이니라.
또 열 가지 칭찬할 공덕을 얻나니, 그 열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드물게 있는 승혜(勝慧)요, 둘째는 민첩한 승혜이며, 셋째는 예민한 승혜요, 넷째는 아주 빠른 승혜이며, 다섯째는 광대한 승혜요, 여섯째는 매우 깊은 승혜이며, 일곱째는 결단하고 가리는 승혜요, 여덟째는 걸림이 없는 승혜이며, 아홉째는 현재에서 여래를 뵈옵고 게송으로 찬탄하는 것이요, 열째는 다시 여래와 깊은 마음으로 문답하는 것이니라.
또 열 가지 칭찬할 공덕을 얻나니, 그 열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이른바 악지식(惡智識)을 잘 보호하는 것이요, 둘째는 모든 악마의 결박을 푸는 것이며, 셋째는 모든 악마의 군사를 쳐부수는 것이요, 넷째는 모든 더러운 의혹을 끊는 것이며, 다섯째는 모든 행에서 교만을 제거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모든 선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며, 일곱째는 열반의 문으로 향하는 것이요, 여덟째는 보시와 보시 받음이 모든 윤회를 뛰어넘는 것이며, 아홉째는 보살의 도를 모두 따라 배우는 것이요, 열째는 모든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니라.
사리자여, 보살장의 정법을 수지하고 독송하며 광대하게 열어 보여 남을 위해 설법하면 이런 칭찬할 공덕을 다 얻느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이 뜻을 다시 밝히기 위해
게송을 설하셨다.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문구(文句)의 뜻을 잘 아나니
이 경 가운데의 왕(王)을 가지면
한량없는 승혜 얻으리.

저 비구 법사(法師)는
언제나 이 법의 보시 행한다.
이 경 가운데의 왕을 가지면
최승(最勝)의 기쁨을 낸다.

법을 듣는 이들을 위해
이러한 법을 연설하고
이 경 가운데의 왕을 가지면
탄미(歎美)하는 공덕 얻으리.

이 승혜를 얻은 뒤에
법을 손상시키지 않고
다시 훌륭한 염력(念力)으로
위없는 글귀를 잘 설명한다.

법요(法要)를 잘 말하는 사람
항상 부처님의 가르침을 찬탄하고
이 경 가운데의 왕을 가지면
많이 들음을 항상 구족하리.

이 법을 듣고 수지하는 이
문자에 집착하지 않고
뜻을 따라 항상 관찰하면
부처님의 지혜를 더욱 늘리며

지혜의 끝없음에 의해
승의제(勝義諦)를 깊이 통달하고
포교하면서 시방으로 나아가
이 법을 들으면 칭찬 얻으리.

또 탐욕과 분노와 우치로 하여금
이로 말미암아 모두 점점 적어지게 하고
최상의 청정한 마음으로
이 법을 들으면 칭찬을 얻으리.

날마다 쓰는 생활 도구가
도리에 맞나 생각해 보고
진실한 것이 아님을 알고는
집을 버리고 나와 해탈 구하되
한적한 곳에 즐겨 살면서
법을 듣기에 싫증 안 낸다.

세존께 여쭈어 보아
법 보시에 아낌없나니
지혜를 더욱 자라게 하여
그 깨끗함이 손실이 없네.

그때 세존께서는 이 게송을 마치고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이 보살은 승혜바라밀다의 행에서 씩씩하게 네 가지 섭사(攝事)로 긴 밤 동안을 유정들을 섭수해야 하나니, 그 네 가지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보시와 애어(愛語)와 이행(利行)과 동사(同事)이니, 이것을 네 가지라 한다.
보시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재시(財施)와 법시(法施)와 무외시(無畏施)이다. 애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설법을 듣는 자에게 유순한 말을 쓰는 것이다. 이행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자타의 좋아함이 원만한 것이다. 동사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이 지혜로 공덕이라는 생각을 내어 유정들을 섭수하여
이 법에 안주하게 하는 것이다.
또 보시란 일체 구걸하러 오는 자에 대해 그 뜻이 극히 청정한 것이다. 애어란 모든 합집(合集)을 끊는 것이다. 이행이란 그를 비굴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동사란 대승(大乘)으로 회향하는 것이다. 또 보시란 대자심(大慈心)을 운전하여 아까워함이 없는 것이요, 애어란 마음을 따라 기꺼이 주는 것이며, 이행이란 모든 유정들을 위해 용감한 마음으로 큰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는 것이요, 동사란 마음의 높고 낮음을 버리고 일체지로 향하는 것이다.
또 보시란 법답게 추구한 모든 도구를 주는 것이요, 애어란 바른 법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이행이란 스스로의 이익과 남의 이익이 다 평등한 것이요, 동사란 유정을 이롭게 하여 다 함께 일체지에 대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또 보시란 스스로 일체 안팎의 법을 주는 것이요, 애어란 모든 법행(法行)의 공덕과 지혜를 좋은 방편으로 칭찬하는 것이며, 이행이란 자기 이익을 버려 남의 이익으로 돌리는 것이요, 동사란 보리를 성숙시키는 것이니, 마치 손바닥의 암마륵(菴摩勒)의 열매를 일체에 보시하여 나약하지 않게 하는 것과 같다.
또 사리자여, 법시(法施)란 그가 들은 그대로 남을 위해 설명하는 것이요, 애어란 바로 깨우쳐 주되 바라는 것이 없는 것이며, 이행이란 남을 위해 연설하되 권태를 느끼지 않는 것이요, 동사란 일체지에 대해 매우 깊은 법을 즐겨 들어 버릴 마음이 없는 것이다. 또 법시란 설법을 청하는 이에게 산란한 말이 없는 것이요, 애어란 멀리 다른 곳에 가서 모든 법을 연설하는 것이며, 이행이란 법의 뜻을 알기 위해 모든 법사들에게 음식ㆍ의복ㆍ침구ㆍ약품 내지 몸으로 감싸 시중을 드는 것이요, 동사란 거기에 습관을 들여 그 종족에 편히 안주하는 것이다.
또 법시란 모든 보시 중에서 제일인 것이요,
애어란 의리(義利)를 분별하는 것이며, 이행이란 뜻을 따르고 문구를 따르지 않는 것이요, 동사란 일체 불법을 원만하게 하는 것이다. 또 보시란 곧 보시바라밀다이며, 애어란 곧 지계ㆍ인욕 바라밀다이며, 이행이란 곧 정진바라밀다요, 동사란 곧 선정ㆍ승혜 바라밀다이다.
또 보시란 곧 최초로 발심한 보살이요, 애어란 곧 승해행(勝解行)을 행하는 보살이며, 이행이란 곧 물러나지 않는 자리의 보살이요, 동사란 곧 일생보처의 보살이다. 또 보시란 곧 보리의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이요, 애어란 곧 보리의 싹을 키우는 것이며, 이행이란 곧 보리의 꽃을 피우는 것이요, 동사란 곧 보리의 열매를 열게 하는 것이다.
사리자여, 이러므로 보살마하살은 긴 밤 동안에 네 가지 섭사(攝事)로 유정들을 포섭하고, 모든 보리의 행과 모든 바라밀다를 잘 운전하는 것이니, 여기에는 다시 한량없고 가없는 모든 섭사 등이 있느니라.”
그때 부처님께서는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저 대온(大蘊) 여래ㆍ응공ㆍ정등정각께서는 정진행(精進行) 태자를 위해 보리의 도를 다 바로 열어 보이시고, 또 과거ㆍ미래ㆍ현재 모든 부처님 세존의 칭찬을 받는 것이다. 그때 정진행 태자는 그 부처님에게서 이런 보리의 바른 도를 듣고, 또 3세 부처님 세존의 칭찬을 받고는 시원하게 좋은 이익을 얻고 매우 기뻐하였다. 그리고 다시 그 부처님과 큰 성문들에게 99구지(俱胝) 년 동안
의복ㆍ음식ㆍ침구ㆍ약품으로 공양하고 공경하며 존중하고 찬탄하였다.
사리자여, 그 대온 여래ㆍ응공ㆍ정등정각께서는 곧 그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기별을 주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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