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불설대승보살장정법경(佛說大乘菩薩藏正法經) 35권
대승보살장정법경 제35권
서천 역경삼장 조산대부 시광록경 전범대사 사자사문 신 법호 등 한역
변각성 번역
11. 승혜바라밀다품 ③
“또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진리[諦]의 선교를 얻어낸 이 5온이 다 괴로움임을 알기 때문에 만일 5온의 괴로움의 모습으로 하여금 그치게 하되 마치 허공과 같게 하면 이것이 고성제(苦聖諦)이다. 또 이 5온은 의혹을 따르는 애견(愛見)이니, 만일 애견 등에 집착하는 인(因)으로 하여금 일어나 모이지 않게 하면 그것은 집성제(集聖諦)이다.
또 이 5온은 끝내 다 없어지는 것이니, 만일 과거에 나지 않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으며, 현재에 머무르지 않게 하면 이것은 멸성제(滅聖諦)이다. 만일 괴로움의 지혜와 모임의 지혜와 멸함의 지혜를 잘 증득하여 그 지혜의 상속으로 잘 조복하여 바른 행을 끌어 나아가면 이것이 도성제(道聖諦)이다.
또 이 모든 제에서 관(觀)을 나타내어 잘 심사(尋伺)하고 두루 다 관찰하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진리의 선교라 하느니라.
또 모든 수(受)는 괴로움임을 알고, 나아가 수가 모든 결택(決擇)하는 지혜를 끌어 포섭하면 이것을 고성제라 한다. 만일 수로 인해 모음을 끌어내는 것을 여실히 알면 이것을 집성제라 한다. 또 만일 수에서 가뿐하게 되고 수와 수 아님에서 수 아닌 것은 곧 멸한다고 다시 관찰하여 멸을 증득하면 이것을 멸성제라 한다. 또 만일 수가 인도하는 도(道)가 저 세간과 같이 수도 아니요, 도도 아닌 것을 쌓아 모으고 구하여 저 괴로움을 멸하고 바른 행으로 끌어 나아가게 하면 이것을 도성제라 한다.
만일 이와 같이 4제의 평등함을 보되 마침내 봄이 없으면 이것을 청정이라 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진리의 선교라 하느니라.
또 멸에서 현증(現證)을 일으키고 다시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 것이라 관찰하면 이것이 괴로움의 지혜이다. 만일 어떤 인연이 유(有)와 유를 떠남을 내면
이것이 모음의 지혜이다. 일체의 남은 본래 남이 아니요, 멸도 멸함이 없다고 알면 이것이 멸의 지혜이다. 이와 같은 도에서 그 종류를 따라 심구(尋求)하고, 사찰(伺察)하여 그 지혜에 들어가게 하면 이것이 도의 지혜이다. 만일 이와 같은 진리의 지혜에 편히 머무르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승혜바라밀다행에서 진리의 선교를 얻는 것이라 하느니라.
사리자여, 또 보살마하살은 네 가지 정지(正知)의 선교를 얻는다. 그 네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뜻의 정지요, 둘째는 법의 정지이며, 셋째는 세간 전적(典籍)의 정지요, 넷째는 변재(辯才)의 정지이니라.
어떤 것이 뜻의 정지인가? 이른바 법의 모든 승의구(勝義句)를 상속하면 원인의 지혜와 반연의 지혜와 모음의 지혜와 끝없음을 통달하는 지혜, 연기(緣起)를 아는 지혜, 법계를 분별하는 지혜, 진여를 따라 들어가 아는 지혜, 실제(實際)에 머무르지 않는 지혜, 여실히 법이 공(空)한 지혜, 상(相)이 없음을 살피는 지혜, 원(願)에 있어서 원이 없는 지혜, 행에서 행이 없는 지혜, 하나의 바른 이치로 들어가는 지혜, 나가 없음을 아는 지혜, 중생이 없음을 아는 지혜, 수자(壽者)가 없음을 아는 지혜, 보특가라가 없는 승의의 지혜이다.
또 과거 세상에서 장애가 없는 지혜, 미래 세상에서 한량이 없는 지혜, 현재 세상에서 모든 곳을 두루하는 지혜, 온(蘊)을 요술과 허깨비로 아는 지혜, 처(處)를 결정코 공(空)이라는 하는 지혜, 계(界)를 헤아리는 지혜, 안 몸이 고요한 지혜, 밖으로 변행(徧行)이 없는 지혜, 티끌 경계를 벗어나는 지혜, 생각이 머무름이 없는 지혜, 들어감이 없음을 아는 지혜, 뛰어난 지혜로 관찰하는 지혜, 4제(諦)를 환히 아는 지혜, 모든 괴로움이 있다는 지혜, 모든 모음의 행이라는 지혜, 모든 멸이 상이 없다는 지혜, 모든 도를 뛰어넘는 지혜니라.
또 모든 법구를 분별하는 지혜, 모든 근성을 잘 아는 지혜, 어떤 힘도 굴복시킬 수 없는 지혜, 사마타(奢摩他)의 가지(加持)하는 지혜, 비발사나(毘鉢舍那)의 광명의 지혜,
모든 환화(幻化)가 일었다 사라지는 지혜, 아지랑이에 헷갈림이 없는 지혜, 꿈의 경계를 알맹이가 없다고 보는 지혜, 골짜기의 메아리가 인연으로 생긴다고 아는 지혜니라.
그림자에 모임이 없다는 지혜, 갖가지의 상(相)이 오직 한 상이라는 지혜, 바른 화합에는 화합해짐이 없다는 지혜, 모든 경안(輕安)에 얻음이 없는 지혜이며, 성문승에서 말소리를 아는 지혜, 연각승에서 연생(緣生)을 아는 지혜, 최상승에서 일체 선근을 모으는 지혜이니,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살의 뜻의 정지라 하느니라.
또 뜻의 정지란, 만일 뜻을 수순하면 곧 모든 법을 수순하는 것이니, 그 수순하는 뜻이 곧 모든 법의 성품이다. 왜냐하면 모든 법의 뜻은 끝내 공(空)과 같기 때문이다.
만일 뜻이 공과 같다면 모든 법의 뜻은 끝내 상이 없는 것이요, 만일 법의 뜻이 상이 없으면 모든 법의 뜻은 마침내 원이 없는 것이며, 만일 법의 뜻이 원이 없으면 그 법의 뜻은 증득할 것이 없는 것이요, 만일 뜻이 증득할 것이 없으면 모든 법은 마침내 수자(壽者)가 없고, 보특가라가 없는 것이며, 만일 뜻이 보특가라가 없으면 이 뜻에서 법상(法相)을 통달할 것이다.
만일 뜻에 머무름이 없고 다함이 없다고 한다면 말하는바 뜻을 깨달을 것이니,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그 승혜의 여실한 정지를 기꺼이 인가(印可)하실 것이다. 만일 승혜로 여실히 정지하면 어디에서나 허물이 없을 것이니, 이것을 보살의 뜻의 정지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법의 정지라 하는가? 이른바 바른 법을 잘 아는 지혜이다. 만일 선하고 선하지 않음과 허물 있음과 없음, 번뇌 있음과 없음, 세간과 출세간, 유위와 무위, 더러움과 깨끗함, 윤회와 열반, 법계와 지계(智界) 등 이런 것이 본래 스스로 평등하여 깨달을 것이 없는 줄을 알면, 이것을 보살의 법의 정지라 하느니라.
또 법을 바로 아는 이는 저 탐행(貪行)의 마음을 잘 바로 안다.
이른바 거짓의 탐행과 견고한 탐행ㆍ미세한 탐행ㆍ광대한 탐행과 과거의 탐행을 끝없이 관찰하고, 현재의 탐행을 인연을 따라 안다.
혹 어떤 유정은 안으로 탐하고 밖으로 탐하지 않으며, 혹 어떤 유정은 밖으로 탐하고 안으로 탐하지 않으며, 혹 어떤 유정은 안으로 탐하고 밖으로도 탐하며, 혹 어떤 유정은 앞으로도 탐하지 않고 밖으로도 탐하지 않는다. 혹은 또 빛깔을 탐하고 소리를 탐하지 않으며, 소리를 탐하고 빛깔을 탐하지 않으며, 빛깔도 탐하고 소리도 탐하며, 빛깔과 소리를 모두 탐하지 않는다. 빛깔을 탐하고 냄새를 탐하지 않으며, 소리를 탐하고 냄새를 탐하지 않는다. 냄새를 탐하고 맛을 탐하지 않으며, 맛을 탐하고 감촉을 탐하지 않으며……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의 탐행 등이 서로 엇갈린다.
이와 같이 의리(義利)가 아닌 문, 즉 2만 1천의 탐행과 2만 1천의 진행(瞋行)과 2만 1천의 치행(癡行) 등 이와 같은 탐행ㆍ진행ㆍ치행과 2만 1천의 중등분(衆等分)의 행을 안다.
이와 같이 말하는 8만 4천의 심행(心行)을 아는 지혜와 그 말과 같이 행과 상응하는 지혜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지혜와 백의 욕계를 초월하는 지혜와 뛰어난 법기(法器)의 지혜와 진실한 말의 지혜 등을 보살의 법의 정지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세간 전적(典籍)의 정지인가? 이른바 만일 일체 소리에 대한 지혜에 들어가면 하늘의 소리와 용의 소리ㆍ야차의 소리ㆍ건달바의 소리ㆍ아수라의 소리ㆍ가루라의 소리ㆍ긴나라의 소리ㆍ마후라가의 소리ㆍ사람의 소리ㆍ비인의 소리 등을 잘 알고, 5취(趣) 유정들의 추하고 고움과 높고 낮음과 설법을 계속해 끊이지 않음과 음성과 문자를 잘 알며, 저들의 혹 한 번 말하고 두 번 말하며 여러 번 말함과 남자 소리와 여자 소리,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것의 소리와 자세히 말함과 간략히 말함, 비루한 말과 교묘한 말,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말, 한 글자의 상응과 많은 글자의 상응 등을 다 잘 아나니, 이것을 세간 전적의 정지라 하느니라.
또 세간 전적의 정지란, 글에 익숙하고 뜻을 환히 알며, 온갖 공포를 떠나고 아무 허물이 없으며, 세속과 승의에 대해 제 마음의 지견과 매우 깊고 교묘한 갖가지 장엄으로 저 유정들을 다 기뻐하게 하나니, 이것을 보살의 세간 전적에 대한 정지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의 변지의 정지라 하는가? 이른바 말에 막힘이 없고 끊임이 없으며, 진실한 기별(記別)과 빠른 변재와 결정코 과보를 얻는 변재, 물음과 같은 변재, 손실이 없는 변재, 단멸(斷滅)이 없는 변재, 논쟁이 없는 변재, 선법을 즐기는 변재, 인내에 머무르는 변재, 매우 깊은 변재, 좋고 교묘한 변재, 세속과 승의의 변재이다.
또 모든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승혜 등을 건립하는 변재와 염처(念處)ㆍ정단(正斷)ㆍ신족(神足)ㆍ근력(根力)ㆍ각지(覺支)ㆍ성도(聖道)ㆍ사마타(奢摩他)ㆍ비발사나(毘鉢舍那) 등을 건립하는 변재와 일체의 제지(諦智)ㆍ선정ㆍ해탈ㆍ삼마지ㆍ삼마발저 등에 들어가는 변재와 일체의 승(乘)을 깨치는 변재, 일체 유정들의 심행(心行)을 아는 변재, 더듬거림이 없는 말의 변재, 서두름이 없는 말의 변재, 난잡함이 없는 말의 변재, 윤택한 말의 변재, 청정한 말의 변재이다.
또 해탈하는 말의 변재, 장애 없는 말의 변재, 존중하는 말의 변재, 인자한 말의 변재, 상응하는 말의 변재, 결함이 없는 말의 변재, 감미로운 말의 변재, 유창한 말의 변재, 비방하지 않는 말의 변재, 성인의 말을 칭찬하는 말의 변재이니, 끝없는 국토의 유정 등을 환히 알아 묘한 범음(梵音)으로 가장 잘 나타낸다.
이런 변재는 저 유정인 보특가라에 대해 잘 설법하여 부처님께서 인가하시는 것이니,
그가 만일 설법하여 해탈하는 사람이 없다면 어찌 모든 괴로움을 다 없애어 바른 행을 성취할 수 있겠는가?
사리자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승혜바라밀다의 행에서 변재의 선교를 얻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의 수순(隨順)의 선교라 하는가? 다시 네 가지가 있으니, 그 네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뜻을 따르고 글을 따르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지혜를 따르고 지식을 따르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요의경(了義經)을 따르고 불료의경을 따르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법을 따르고 사람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을 뜻이라 하고, 어떤 것을 글이라 하는가? 이른바 만일 출세간법의 행을 알면 이것을 뜻이라 하며, 세간법을 통달하면 이것을 글이라 한다. 만일 정숙하여 묘한 즐거움을 보시하면 이것을 뜻이라 하고, 실없는 말이 없이 항복 받고 제지시키면 이것을 글이라 한다. 만일 윤회에 대해 두루 잘 설명하면 이것을 뜻이라 하고, 소득이 없음을 광대하게 열어 보이면 이것을 글이라 한다.
만일 열반의 덕을 두루 잘 칭찬하면 이것을 뜻이라 하고, 열반법의 본체에 분별이 없으면 이것을 글이라 한다. 만일 3승의 분위(分位)를 그대로 연설하면 이것을 뜻이라 하고, 지혜가 오직 한 가지 교리만을 통달하면 이것을 글이라 한다. 모든 유정에 대해 보시를 연설하면 이것을 뜻이라 하고, 3륜(輪)이 청정하면 이것을 글이라 한다. 만일 3업(業)의 위의(威儀)를 잘 연설하여 모든 두타(頭陀)의 공덕을 쌓으면 이것을 뜻이라 하고, 만일 몸ㆍ말ㆍ뜻의 청정하고 뛰어난 행을 다 얻지 못하면 이것을 글이라 한다.
만일 분노와 원한과 괴롭힘ㆍ미워함ㆍ거만함ㆍ교만함을 굳세게 참는 것을 잘 연설하면 이것을 뜻이라 하고, 무생인(無生忍)을 얻으면 이것을 글이라 한다. 만일 모든 선근에 기꺼이 정진하기를 잘 연설하면 이것을 뜻이라 하고, 그 정진에 들어가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면 이것을 글이라 한다. 만일
정려(靜慮)와 해탈과 등지(等持)와 등지(等至)를 잘 연설하면 이것을 뜻이라 하고, 등지(等至)의 지혜를 멸하면 이것을 글이라 한다. 모든 지혜의 뿌리를 많이 듣고 모두 가지면 이것을 뜻이라 하고, 뜻을 설명할 수 없으면 이것을 글이라 한다.
만일 37품(品)과 보리분법(菩提分法)을 잘 열어 보이면 이것을 뜻이라 하고, 만일 보리분의 행과(行果)를 깨친 것을 나타내면 이것을 글이라 한다. 만일 고제(苦諦)ㆍ집제(集諦)ㆍ도제(道諦)를 잘 열어 보이면 이것을 뜻이라 하고, 멸제(滅諦)를 증득한 것을 나타내면 이것을 글이라 한다. 만일 무명(無明)을 우선으로 하여 잘 열어 보이고 나아가 노사(老死)에 이르기까지 잘 열어 보이면 이것을 뜻이라 하고, 무명이 멸하고 나아가 노사까지 멸하면 이것을 글이라 한다.
만일 지관(止觀)을 쌓는 것을 말하면 이것을 뜻이라 하고, 해탈의 지혜를 밝히면 이것을 글이라 한다. 만일 탐욕ㆍ분노ㆍ우치 등 분류한 행법을 분별하면 이것을 뜻이라 하고, 만일 해탈하는 마음에 흔들림이 없으면 이것을 글이라 한다. 만일 모든 장애되는 법을 열어 보이면 이것을 뜻이라 하고, 만일 해탈에 장애 없는 지혜를 증득하면 이것을 글이라 한다. 만일 한량없는 3보(寶)를 잘 칭찬하는 것을 열어 보이면 이것을 뜻이라 하고, 법성(法性)과 무위의 공덕을 탐하기를 떠나면 이것을 글이라 한다.
만일 보살이 최초로 발심하여 학습하는 공덕과 나아가 보리도량을 설명하면 이것을 뜻이라 하고, 한마음의 상과 일체지지(一切智智)와 위없는 정각 내지 통틀어 8만 4천 법온(法蘊)의 상응을 말하면 이것을 글이라 한다. 또 만일 일체 음성과 언어와 문자, 내지 말할 수 없는 뜻을 함께 말하면 이것을 뜻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불료의경(不了義經)이라 하는가? 이른바 설명한 글이 말한 것과 같아 광대하게 알면 이것을 불료의경이라 한다. 어떤 것을 요의경이라 하는가? 이른바 설명한 뜻이 말한 것과 같아 광대하게 통달하면 이것을 요의경이라 한다. 또 말이 보특가라를 따라 해탈할 수 없으면
이것을 불료의라 하고, 설법과 같이 곧 해탈하면 이것을 요의라 한다.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승혜바라밀다행으로 수순의 선교를 얻느니라.
어떤 것이 보살의 문구(文句)의 선교인가? 이른바 모든 보살들이 이 두 법에서 승혜바라밀다를 잘 수행하는 것이다. 두 법이란, 첫째는 좋은 의식[意識]이요, 둘째는 좋은 지혜이다. 어떤 것을 의식이라 하는가? 네 가지에 의해 머무르는 것이다. 그 네 가지란, 첫째는 의식이 색(色)을 의지해 머무르는 것이요, 둘째는 수(受)를 의지해 머무르는 것이며, 셋째는 상(想)을 의지해 머무르는 것이요, 넷째는 행(行)을 의지해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의식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지혜라 하는가? 이른바 만일 취(取)하는바 5온(蘊)을 알면 이것을 지혜라 한다. 또 지계(地界)와 수계(水界)와 화계(火界)와 풍계(風界), 이것을 만일 알면 지혜라 한다. 또 만일 네 가지 법계에 머무르고 그 법계를 잘 분별하면 이것을 지혜라 한다.
사리자여, 다시 의식을 말하면, 이른바 눈이 빛깔을 보는 것을 나타냄이라 하고, 귀가 소리를 듣는 것을 나타냄이라 하며, 코가 냄새를 맡는 것을 나타냄이라 하고, 혀가 맛을 아는 것을 나타냄이라 하며, 몸이 감촉을 깨닫는 것을 나타냄이라 하고, 뜻이 법을 아는 것을 나타냄이라 하나니, 이것을 의식이라 하느니라.
또 만일 안으로 몸이 고요하고 밖으로 변행(徧行)이 없으며, 지혜가 잘 수순하고 법에 취할 바가 없으면 이것을 지혜라 한다. 또 만일 변계(徧計)와 집착을 일으키면 이것을 의식이라 하며, 집착과 취함과 나타냄이 없고 분노가 없으면 이것을 지혜라 한다. 또 의식이 생멸에 머무르는 유위의 행법임을 알면 이것을 의식이라 하나니, 무위는 의식의 변행이 없기 때문이다. 또 지혜는 무위로서 생멸에 머무르지 않나니, 이것을 지혜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요의경이라 하며, 불료의경이라 하는가? 이른바 말한 것이 도로 끌고 나아가면 이것을 불료의라 하며, 과(果)로 끌고 나아가면 이것을 요의라 한다. 세속의 행을 말하면 이것을 불료의라 하고, 승의를 연설하면 이것을 요의라 한다. 업행(業行)을 끌고 가면
이것을 불료의라 하고, 업의 번뇌를 없애면 이것을 요의라 한다. 만일 염분(染分)을 말하면 이것을 불료의라 하고, 만일 정분(淨分)을 말하면 이것을 요의라 한다. 또 저 윤회에 싫증을 내면 이것을 불료의라 하고, 윤회와 열반이 두 법이 아님을 깨치면 이것을 요의라 한다.
문구에 교묘하면 이것을 불료의라 하고, 매우 깊어 알기 어려우면 이것을 요의라 한다. 모든 문구를 즐기면 이것을 불료의라 하고, 적은 문구로 결정을 내리면 이것을 요의라 한다. 또 나ㆍ사람ㆍ사부(士夫)ㆍ명자(命者)ㆍ의생(意生)ㆍ유동(儒童)과 지은이와 받은 이, 갖가지 언어와 혹은 주재(主宰)가 있다. 주재가 없다 하면 이것을 불료의라 하고,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의 세 가지 해탈문에서 나ㆍ사람ㆍ사부 내지 보특가라라는 상을 일으키지 않으면 이것을 요의라 한다.
어떤 것을 보특가라 및 법이라 하는가? 이른바 만일 모든 법에 대해 보특가라라는 견해에 편히 머무르면 그 견해를 일으킴으로 말미암아 다시 법지(法智)와 법계에 편히 머무르나니, 이것을 보특가라 및 법이라 한다.
또 보특가라란, 이른바 이생(異生) 보특가라ㆍ선이생(善異生) 보특가라ㆍ순신(順信) 보특가라ㆍ순법(順法) 보특가라ㆍ팔배(八輩) 보특가라ㆍ입류(入流) 보특가라ㆍ일래(一來) 보특가라ㆍ불환(不還) 보특가라ㆍ응공(應供) 보특가라ㆍ연각(緣覺) 보특가라ㆍ보살(菩薩) 보특가라이니라.
만일 한 보특가라만 세상에 나타나더라도 갖가지 묘한 즐거움을 끌어내어 저 세간의 하늘ㆍ사람 등을 매우 가엾이 여겨 온갖 좋은 이익을 짓겠거늘, 하물며 여래ㆍ응공ㆍ정등정각께서 세속에 편히 머무르시면서 일체 보특가라를 위해 모든 유정들로 하여금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에 의해 의로운 이익에 들어가게 함이겠는가?”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것을
법에서 각각 낙욕(樂欲)을 따라 유정들을 끌어 이치에 편히 머물게 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법이라 하는가? 이른바 지음도 없고 짓지 않음도 없으며, 머무름도 없고 머무르지 않음도 없으며, 일체의 곳에서 본래 스스로 평등하고 모두 함께 의지하는 것이다. 또 모든 법의 모양은 그 자성이 본래 공(空)이어서 평등ㆍ불평등이 없고, 모든 분별을 떠나 반연하는 것이 없어 다 해탈하는 것이니, 이것을 그 법의 성품을 잘 따라 물러남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른 이치의 법문에 일체 법성을 알게 되는 것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승혜바라밀다로 네 가지 수순의 선교를 성취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의 복지(福智)의 선교라 하는가? 보살행의 문에 두 가지가 있으니, 그 두 가지란 무엇인가? 첫째는 복의 행이요, 둘째는 지혜의 행이다. 어떤 것을 복행이라 하는가? 이른바 보시의 복행과 지계의 복행과 수관(修觀)의 복행이니, 평등한 자심(慈心)과 대비의 상에 머물러 모든 유정들로 하여금 모든 허물을 뉘우치게 하고, 일체 선근을 다 일으키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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