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불설대승보살장정법경(佛說大乘菩薩藏正法經) 33권
대승보살장정법경 제33권
서천 역경삼장 조산대부 시광록경 전범대사 사자사문 신 법호 등 한역
변각성 번역
10. 선정바라밀다품 ③
“또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은 물러나지 않는 신통을 얻어 혹은 생각이나 혹은 사업은 다 유희하는 신통이 짓는 것이며, 다시 어디서나 광대하게 편히 머무르면서 온갖 지음을 나타내나니, 그것을 짓는 신통 지혜의 힘은 세간에서 제일이어서 그 짓는 일이 비록 상을 갖추었으나 잘 가지고 결정하여 다시 세간과 출세간 제일의 법을 증득함을 나타내느니라.
보살의 신통은 다함없는 상을 나타내는데 마치 허공이 모든 곳을 두루하는 것과 같다. 보살의 신통은 일체의 상과 색(色)과 무색(無色) 등을 나타내며, 다시 일체의 소리를 따라 들어가는데 전생의 음성에도 평등하다. 보살의 신통은 일체 유정의 마음의 활동을 관찰하고, 그 체성(體性)을 반연을 따라 나타내며, 모든 겁 가운데서 그 생각을 따라 과거와 미래에 간단이 없고, 일체에서 오직 신경(神境)의 변화를 나타내되 결정코 앞에 나타내어 다른 행상이 없느니라.
보살의 신통은 누진지(漏盡智)를 통달하고 때를 보아 넘김이 없으며, 훌륭히 세간을 뛰어나 모든 법을 가려 결정하나니, 일체의 성문이나 연각으로서는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다. 보살의 신통은 그 뜻이 매우 깊어 뭇 악마를 무너뜨리고 저 외도들을 항복 받으며, 보리도량에서 일체 불법을 모두 지니어 정각을 구하며, 그 종류를 따라 바른 법륜을 굴려 일체 유정을 잘 조복시키고 관정위(灌頂位)에 이르러 법에서 자재를 얻느니라.
사리자여, 이 물러나지 않는 신통을 가진 보살마하살은 모든 사업에 아만(我慢)이 없고, 그 마음이 청정하고 바로 잘 조복되어
빛나고 조촐하며 자재하고, 모든 더러운 욕심과 다른 번뇌를 떠나 미묘하게 고요하며 모든 선업을 다 성취한다. 선정ㆍ해탈ㆍ삼마지ㆍ삼마발저에서 바른 생각을 일으켜 생사 가운데서 조금도 얽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생업(生業)은 모든 번뇌의 결박과 집착을 떠나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생사 가운데서 조금도 얽매임이 없느니라.
그리고 다시 대승을 무너뜨리지 않고 일체 불법을 증득한다. 그러나 그 불법은 시방 어디고 찾아보아도 얻을 수 없다. 또 일체 법은 다 불법을 따른다. 그러므로 불법이 곧 일체 법이다. 만일 일체 법도 여실히 찾아보면 그것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산수법이나 산수가 아니거나 평등하게 초월하여 조금도 없다. 이 말은 법도 없고 법 아닌 것도 없다는 것이니, 만일 법과 법 아닌 것을 두루 다 알면 그 때문에 거기에 조금도 집착이 없는 것이다.
또 법의 이치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만일 이치에 집착하면 그것은 큰 이치의 이익이 아니다. 또 만일 이치와 이치 아닌 것에 다 집착이 없으면 비록 이치를 보더라도 지혜가 걸림이 없으며, 만일 지혜가 걸림이 없으면 곧 변계(徧計)가 없을 것이요, 만일 변계가 없으면 곧 상대가 없을 것이며, 만일 상대가 없으면 곧 머무름이 없을 것이요, 만일 머무름이 없으면 곧 간단이 없을 것이며, 만일 간단이 없으면 곧 헛지음이 없을 것이요, 만일 헛지음이 없으면 곧 헷갈린 어지러움이 없을 것이요, 만일 헷갈린 어지러움이 없으면 곧 나와 내 것이 없을 것이요,
만일 나와 내 것이 없으면 논쟁이 없을 것이며, 만일 논쟁이 없으면 그것은 사문(沙門)의 법이요, 만일 논쟁 없는 것이 사문의 법이면 저 허공을 비유하여 편편한 손바닥과 같다 할 것이며, 만일 허공을 비유하여 편편한 손바닥과 같다고 하면 그는 욕계ㆍ색계 및 무색계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요, 만일 일체의 곳에 떨어짐이 없으면 곧 형색(形色)이 없고 현색(顯色)이 없으며 분위(分位)도 없을 것이며, 만일 형색도 현색도 분위도 없으면
그는 곧 그대로 따라 깨달을 것이요, 만일 그대로 따라 깨달으면 그는 곧 그렇게 깨달아진 것을 따를 것이다.
어떤 것을 깨달음과 깨달아짐을 따르는 것이라 하는가? 이른바 만일 극히 미세한 법을 다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 그것을 깨달음과 깨달아진 것을 따르는 것이라 한다. 여기서 평등하게 알면 곧 보살마하살의 희유한 법을 성취할 것이다.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희유한 법인가? 이른바 자(慈)에 나가 없고, 비(悲)에 중생이 없으며, 희(喜)에 수자(壽者)가 없고, 사(捨)에 보특가라가 없으며, 보시하여 저 주고 뉘우치는 마음이 없고, 계율을 지켜 저 고요한 마음을 내며, 인욕하여 저 다함이 없는 마음을 내고, 정진하여 저 최상의 마음을 내며, 선정에서 저 산란한 마음이 없고, 승혜에 저 희론(戱論)할 마음이 없으며, 염처(念處)에 염처를 다짐하는 마음이 없고, 정단(正斷)에서 저 생멸하는 마음을 따르며, 신족(神足)에서 유희하려는 마음을 떠나고, 신진념정혜(信進念定慧)에서 저 갈림이 없고 자연스러우며 평등하게 이해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와 같이 5근(根)과 5력(力)에서 저 깨뜨리거나 굴복시킬 수 없는 마음을 일으키고, 7각지(覺支)에서 저 보리를 분별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8성도(聖道)에서 저 관찰하고 바로 아는 마음을 일으키고, 사마타에서 저 평등한 마음을 일으키며, 비발사나에서 성제(聖諦)를 관찰하고 희유하게 두루 아는 마음을 일으키고, 유정을 성숙시켜 본래 청정하다는 마음을 내며, 저 법계에서 바른 법을 섭수하여 산란한 마음이 없고, 생멸이 없는 법인(法印)에서 얻을 수 없다는 마음을 일으킨다.
옮기지 않는 자리에서 옮기되 옮김이 없다는 마음을 일으키고, 얻어지는 상에서 상이 없다는 마음을 일으키며, 장엄한 보리도량에서 저 삼계에 순응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뭇 악마를 제복(制伏)할 때 저 유정을 섭수한다는 마음을 일으키며, 모든 법의 자성(自性) 보리에서 저 깨달음을 따르는 마음을 일으키고,
법륜을 굴릴 때 저 굴림이 없다는 마음을 일으키며, 큰 열반에서 저 윤회를 나타내는 자성이 평등하다는 마음을 일으킨다.
사리자여, 이렇게 말하는 것이 곧 보살마하살이 깨달음과 깨달아지는 것을 따라 희유한 법을 성취하는 것이다.
또 사리자여, 어떤 것이 선정인가? 이른바 보살이 선정에 탐착함이 없이 여래의 삼마지를 원만하게 이루되 다시 선열(禪悅)의 맛을 즐기지 않는 것이다.
보살은 비록 몸이 적절히 기쁘나 거기 집착하지 않고 다시 선정에서 항상 대비(大悲)를 즐기나니, 이 인연으로 더러운 의혹에 머무르고, 또 선정에서 등지(等持)에서 물러나지 않나니, 이 인연으로 욕계를 싫어해 떠나며, 또 선정에서 신통의 업을 닦나니, 이 인연으로 일체 유정의 마음 활동을 알고, 또 선정에서 실제를 통달하나니, 이 인연으로 심지(心智)가 자재하게 되며,
또 선정에서 등지(等至)의 지혜를 얻나니, 이 인연으로 일체의 색계와 무색계를 두루하느니라. 또 선정에서 지극히 고요하나니, 이 인연으로 성문과 연각의 삼마발저에서 증장을 구하고, 또 선정에서 동란(動亂)이 없나니, 이 인연으로 극구경(極究竟)에 머무르며, 또 선정에서 항상 다스림을 행하나니, 이 인연으로 저 상속하는 습기에 머무르지 않고, 또 선정에서 최상의 지혜를 얻나니, 이 인연으로 세간에서 제일이 되며,
또 선정에서 먼저 유정들의 마음을 모두 아나니, 이 인연으로 모든 유정 가운데서 최상이 되며, 또 선정에서 항상 자재하게 3보를 즐기나니, 이 인연으로 여래의 무진한 공덕을 얻느니라. 또 선정에서 최상의 높고 훌륭함을 얻나니, 이 인연으로 항상 삼마혜다에 머무르고,
또 선정에서 항상 자재하게 활동하나니, 이 인연으로 일체 사업을 잘 원만히 하며, 또 선정에서 아무것도 받음이 없나니, 이 인연으로 큰 지혜를 얻는다. 사리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선정이니라.
또 사리자여, 선정바라밀다는 무엇을 우선으로 하는가? 이른바 결정하는 마음을 우선으로 하고, 한 경계의 마음을 우선으로 하며, 산란하지 않는 마음을 우선으로 하고, 편히 머무르는 마음을 우선으로 하며, 사마타의 마음을 우선으로 하고, 삼마지의 마음을 우선으로 하며, 감관의 등지(等持)를 우선으로 하고, 힘의 등지를 우선으로 하며, 정등(正等)의 등지를 우선으로 하고, 정해탈(定解脫)을 우선으로 하며, 9차제정(次第定)을 우선으로 하고, 어기지 않음을 우선으로 하며, 선법을 우선으로 하고, 번뇌의 적을 항복시킴을 우선으로 하며, 삼마지 무더기의 원만함을 우선으로 하고, 보살의 삼마지를 우선으로 하며, 부처의 삼마지를 우선으로 한다.
사리자여, 이와 같은 고요한 법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행하는 행으로서 선정바라밀다에서 우선으로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 뜻을 거듭 밝히기 위해 게송을 설하셨다.
선정ㆍ해탈 바라밀
많은 겁에 언제나 이 행을 행하라.
저 모든 세간의 법에 집착하는 마음 없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적조(寂照)삼마지라 한다.
만일 저 갖가지의 바라밀을 통달하면
번개 같은 장엄이 아주 높이 나타나
용맹스레 온갖 번뇌를 떠나리니
이것을 이름하여 월광(月光)삼마지라 한다.
근심이 없는 계율의 덕의 광명 성취하여
모든 법 가운데서 자재하게 활동하고
이 법은 높고 씩씩해 수미산과 같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법광(法光)삼마지라 한다.
법으로 장엄한 저 자리에서
바른 법은 묘한 청정을 모두 지녔다.
이 마음은 남의 마음을 잘 살피나니
바른 법의 지혜가 자재하게 구름[轉]이라 한다.
선정은 모든 번뇌를 능히 꺾고 끊나니
당기의 구슬 그물이 아무 장애 없음 같다.
10력(力) 가운데서 훌륭한 해탈이여,
이것을 악마의 힘을 깨뜨리는 삼마지라 한다.
이길 수 없는 것을 이기는 수미(須彌)의 등불이여,
그 이름을 지혜 광명의 맑고 깨끗한 눈이라 한다.
이른바 합장하고 선을 찬탄해 말하나니
이것을 묘주지지(妙住持地)의 삼마지라 한다.
그로써 능히 공(空)과 무상(無相)을 잘 아나니
무원(無願)과 고요한 자리도 또한 그렇다.
법을 생각하는 공덕의 지혜가 자재하나니
모든 부처님의 끝이 없는 삼마지니라.
소난타(蘇難陀) 용왕과 사자의 왕은
가거나 오거나 언제나 편안하고 고요하며
맑고 깨끗한 눈의 힘은 깜빡거리지 않나니
이 선정 이름은 갖가지 생각을 멀리 떠남이라 한다.
금강의 선정은 금강의 땅과 같고
높이 나타나 움직이지 않는 것 수미산 같다.
맑고 깨끗한 음성을 두루 떨치나니
번뇌를 멀리 떠나는 삼마지이네.
넓고 큰 일체의 공덕의 모양
마치 저 허공과 같아 그 한계가 없고
지혜의 생각을 두루 갖추고 더욱 키우고
그 변제의 연설은 모두 다함이 없다.
유정들을 관찰하고 선을 짓게 하되
끝도 없고 다함도 없으며 무너짐도 없다.
사랑은 능히 선근이 아닌 것을 부드럽게 다루고
기쁨은 구극의 기쁨에 들어가 두 장애를 버린다.
해탈이 견고하여 기쁨을 내고
연꽃보다 나은 금강의 당기 같다.
지혜의 바다와 지혜의 광명이 모두 끄떡 않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법의(法義) 삼마지라 한다.
끝이 없는 해탈의 광명 바다에
여래께서는 선정 지혜 서원으로 장엄했다.
최상의 바른 깨달음의 묘한 고요함이여,
이 선정을 움직이지 않는 조복법이라 한다.
광명과 서원으로 장엄한 세계 얻고
유정들의 마음을 모두 기쁘게 한다.
바른 깨달음의 도를 언제나 따라
보배 상투 바라밀도 장엄하였다.
빠르기 바람과 같아 한계가 없고
또한 바다 창고와 같아 온갖 보배 간직했다.
참 감로(甘露)의 해탈문을 보시하고
일곱 깨달음의 꽃을 피우는 삼마지이다.
큰 신통의 이치로 묘하게 섭수하고
통달하여 끝이 없고 다 원만하다.
이와 같은 부처님의 경계를 두루 나타내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적석산왕(積石山王)의 선정이라 한다.
만일 선정바라밀을 닦으면
등인(等引)의 선정 경계와
보살의 한량없는 공덕문에 편히 머무르리니
이것을 이름하여 적정 삼마지라 한다.
등인 가운데서 마음먹은 그대로
말하는 그 말은 모두 법답고
나아가서는 다니고 앉는 모든 위의가
그리하여 모두가 언제나 방일 없다.
또 이 온갖 법은 가장 고요해
나도 없고 사람도 없으며 수자(壽者)도 없고
또한 분별도 분별 아닌 것도 없나니
오직 이것만이 남음 없이 저 언덕에 오른다.
만일 이 선정바라밀을 닦으면
얻는 것은 끝이 없는 공덕의 바다이다.
저 지혜로운 모든 보살은
저 유정들을 가엾이 여겨야 하네.
11. 승혜바라밀다품(勝慧波羅蜜多品) ①
그때 부처님께서는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승혜(勝慧)바라밀다인가? 사리자여, 만일 보살이 물러나지 않는 보살행을 행할 때 이 보살장 정법의 뛰어난 이치를 끝까지 수지하고 독송하며 광대한 가르침을 듣고 남을 위해 해설하면 승혜의 상을 얻을 것이다.
또 승혜의 상은 어떠하며, 어떻게 깨쳐 들어가는가? 이른바 승혜의 듣는 상을 뜻을 따라 깨쳐 들어가는 것이다. 또 어떤 것이 듣는 상인가? 이른바 즐기는 욕심의 상이요, 뜻으로 원하는 상이며, 잘 화합하는 상이요, 잘 아는 상이며, 변화하는 상이요, 돌이키는 상이며, 고귀한 상이요, 존중한 상이며, 오른쪽으로 도는 상이요, 극히 자재한 상이며, 친근한 상이요, 바깥 경계를 듣지 않는 상이며, 받들어 섬기는 상이요, 결심하는 상이며, 산란하지 않은 상이며, 보배를 구하는 것 같은 상이요, 의사를 구하는 것 같은 상이다.
일체 병고를 멸하는 상이요, 그릇을 생각하는 상이며, 보리를 통달한 상이요, 다스려 깨닫는 상이며, 부처의 지혜에 들어가는 상이요, 듣기를 싫어하지 않는 상이며, 법의 보시를 모으는 상이요, 보시하고 후회하지 않는 상이며,
많이 아는 이를 친근하기를 좋아하는 상이요, 선행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상이며, 큰 기쁨이 몸에 두루한 상이요, 마음이 크게 적절하게 기쁜 상이며, 듣기에 권태를 느끼지 않는 상이요, 바른 법을 즐겨 듣는 상이며, 즐겨 들어 무지(無智)와 접촉하지 않는 상이요, 바라밀다를 즐겨 듣는 상이며, 보살장(菩薩藏) 정법을 즐겨 듣는 상이다.
일을 수습함을 즐겨 듣는 상이요, 선교한 방편을 즐겨 듣는 상이며, 범행을 즐겨 듣는 상이요, 신통을 즐겨 듣는 상이며, 4념처(念處)를 즐겨 듣는 상이요, 4정단(正斷)을 즐겨 듣는 상이며, 4신족(神足)을 즐겨 듣는 상이요, 12연생(緣生)을 즐겨 듣는 상이며, 무상(無常)ㆍ고(苦)ㆍ무아(無我)ㆍ적정(寂靜)을 즐겨 듣는 상이요,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ㆍ해탈을 즐겨 듣는 상이며, 선근이 아닌 행을 쌓아 모으지 않음을 즐겨 듣는 상이요, 선근의 행을 쌓아 모음을 즐겨 듣는 상이며, 홀몸을 즐겨 듣는 상이다.
법륜 굴림을 즐겨 듣는 상이며, 잡되고 더러운 가운데서 산란한 생각이 없는 상이요, 일체 번뇌의 생각을 항복 받는 상이며, 지혜로운 이에게 귀의하는 상이요, 성현을 친근하는 상이며, 계율이 아닌 행을 멀리 떠나는 상이요, 성인의 말을 즐겨 듣는 상이며, 5근(根)의 말을 즐겨 듣는 상이요, 생각을 따라 관찰하는 말을 즐겨 듣는 상이며, 7각지(覺支)를 즐겨 듣는 상이요, 8성도(聖道)를 즐겨 듣는 상이며, 여래의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4무량(無量)과 18불공불법(不共佛法)을 즐겨 듣는 상이니라.
사리자여, 이 가운데서 곧 닦는 슬기에 대해 듣는다. 왜냐하면 이른바 보살장의 정법에 즐거움을 내어 그것을 듣고 잘 알며 알고는 수행하기 때문이다. 만일 보살장의 정법을 듣기 원하면 잘 화합하고 선지식을 가까이한다. 변화하거나 섭수하여 오른쪽으로 돌거나 극히 자재하거나 많이 들은 이를 친근하고 바깥 경계를 듣지 않거나 많이 들은 이에게 편히 머물면서 씩씩하고 부지런하게 결심하되 보배를 구하는 생각과 같고 의사를 구하는 생각과 같아서 탐욕과 분노와 우치를 가지려는 생각을 멸한다.
만일
모든 법의 뜻을 통달하고 또 즐기어 지혜를 더욱 자라게 하면 그것 듣기를 싫어하지 않는다. 즉 보시의 말을 듣고는 용기 있게 보시하고, 계율의 말을 듣고는 깨끗한 계율을 잘 보호하며, 인욕의 말을 듣고는 잘 인욕하고, 정진의 말을 듣고는 게으름이 없으며, 선정의 말을 듣고는 산란하지 않고, 승혜의 말을 듣고는 마음의 번뇌를 없애고, 많이 듣기를 즐거워하여 법을 듣고는 몸과 마음이 기쁘다.
대승을 듣고는 훌륭한 욕심을 내며, 섭수의 일을 듣고는 마음으로 섭수를 행하고, 4념처(念處)를 듣고는 신(身)ㆍ수(受)ㆍ심(心)ㆍ법(法)의 생각에 머무르며, 4정단(正斷)을 듣고는 이미 생긴 불선은 멸하게 하고, 아직 생기지 않은 불선을 잘 버리며, 이미 생긴 선근은 더욱 자라게 하고, 아직 생기지 않은 선법을 잘 일으킨다.
분쟁을 떠나라는 말을 듣고는 몸과 마음의 욕심이 다 가벼워지고, 선정이라는 말을 듣고는 마음으로 결정하며, 4무량이라는 말을 듣고는 일체 유정에 대해 큰 사랑을 일으키고, 그 즐겨 집착하는 이에게는 큰 슬픔을 일으키며, 바른 법에 대해서는 큰 기쁨을 일으키고, 불선한 것에 대해서는 큰 버림을 일으킨다.
5근(根)에 대한 말을 듣고는 믿음ㆍ정진ㆍ생각ㆍ선정ㆍ지혜를 마음으로 잘 행하고, 7각지(覺支)를 듣고는 일체 법에 대해 마음으로 깨달으며, 8성도(聖道)를 듣고는 마음을 일으켜 열반으로 나아간다. 만일 여래의 10력ㆍ4무소외ㆍ4무량ㆍ18불공법과 나아가 한량없는 불법을 배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라는 말을 들으면 그는 그것을 듣고는 알고, 알고는 잘 닦느니라.
사리자여, 이상에서 말한 것이 갖가지 들음의 상이니, 뜻을 따라 깨쳐 들어가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승혜바라밀다(勝慧波羅蜜多)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여, 보살이 승혜바라밀다행을 행할 때에
이 보살장 정법의 뛰어난 뜻을 수지하고 독송하며 광대한 가르침을 듣고 남을 위해 해설하면 모든 법의 바른 행을 얻는다.
어떤 것이 모든 법의 정행(正行)인가? 이른바 이 법에서 그 말대로 편히 서서 바로 행하는 것이다. 사리자여, 법의 정행이란 만일 순응하면 모든 법을 섭수한다. 왜냐하면 이른바 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곧 정행이니, 만일 집착에 머무르면 그리 될 수 없으며, 보특가라의 법에서 출리(出離)를 구한대로 또한 그리 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보특가라의 법에 집착하지 않으면 그것을 정행이라 하고, 의혹이 없게 된다면 그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수행하는 사람이 정법을 따르고 섭수하면 아무 지장이 없어 곧 정행이 될 것이다.
또 사리자여, 만일 모든 법과 존중한 법에 대해 집착이 없고 취함이 없으며 생멸이 없으면 그 모든 법이 비록 바른 도리에 맞는다 하더라도 또한 취함이 없을 것이니, 이렇게 말하는 것을 곧 정행이라 한다. 나는 지금 조금도 말하는 것이 없고, 또 소견도 없다. 이와 같이 소견도 없고 취함도 없는 것이 곧 모든 법의 상이다.
어떤 것을 상(相)이라 하는가? 이른바 상이 있기도 하고 상이 없기도 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상이, 상이 없는 것[無相]이니, 이것을 상이 없는 것이라 한다. 또 이 상이란 모든 법에 대해 조금도 아는 것이 없다. 이 상이 없음이란 소견도 없고 취함도 없는 것이니, 이것을 곧 정행이라 한다. 그러므로 이 정행을 잘 닦고 현재에 모든 법을 증득하면 아무 장애가 없게 될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 뜻을 거듭 밝히려고 게송을 설하셨다.
만일 보살장에
결정을 내지 않으면
이런 지혜로운 이는
바른 행에 편히 머물게 되리.
또 만일 이 법에
혹은 집착하거나
또 변집(邊執)을 일으키면
그것은 곧 바른 행이 아니다.
법을 비록 얻을 수 없으나
공(空)이라 생각하지 말라.
하물며 이 바르고 묘한 법은
허공과 같지 않거니
만일 법이 허공 같다면
세간엔 깨달음 없으리.
그 깨달음 없기 때문에
그것은 곧 바른 행 아니네.
또 이 바르고 묘한 법은
취함도 취하지 않음도 없다.
그러므로 법이라 법 아니라
거기에 집착을 내지 말라.
그 집착이 없기 때문에
이것이 곧 법의 상이니
이와 같은 행의 상을
말하여 바른 행이라 한다.
또 이 바르고 묘한 법은
일찍이 집착한 일이 없다.
그 따라 그런 줄 알면
거기 아무 손해 없으리.
아무 손해가 없기 때문에
지혜는 도무지 아는 것 없다.
이와 같은 행의 모습을
말하여 바른 행이라 한다.
또 지혜로운 사람으로
욕심 적은 공덕에 머무르려면
이 바른 법 가운데서
선행을 잘 닦아야 한다.
만일 선에 편히 머물러
위의의 바른 행을 행하면
향하는 곳 어디서나
알맞은 청정 얻으리.
향하는 바 청정으로
이와 같은 바른 법 알면
그는 곳곳마다 어디서나
저 유정들 마음을 알리.
또 그 지혜로운 사람은
저들의 마음을 다 알고는
이와 같은 행상 가운데서
바른 법을 잘 연설하리라.
또 이 매우 깊은 법은
승의제(勝義諦)를 환히 알고
이와 같은 이치 가운데서
항상 결정을 얻으리라.
또 지혜로운 사람은
많이 들음이 큰 바다 같아
이 가장 깊고 넓음으로
한량이 없는 공덕 행하며
글과 뜻을 빌지 않고도
바른 도리를 잘 통달하고
한량이 없는 글과 뜻에서
견고함 얻어 흔들리지 않네.
“또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이 승혜바라밀다행을 행할 때에 이 보살장의 정법의 뛰어난 이치와 이익을 듣고는 나아가 남을 위해 자세히 해설하면 능히 승혜의 광명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법 가운데서 무명의 어두움과 눈먼 장애를 모두 멸하고, 승혜의 광명을 빨리 성취하게 되며, 선하고 선하지 않은 법을 여실히 알고, 나아가 목숨을 마치고도 모든 선하지 않은 법을 끝까지 끊어 버리며,
온갖 선법을 듣고 그대로 깨달으며, 좋은 침묵에서 잘 연설할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 뜻을 거듭 밝히려고 게송을 설하셨다.
비유하면 어두운 곳에 들어가
앞에 나타나는 모든 색상을
그 눈은 보지 못하고
불로 어두움을 부수는 것처럼
이와 같이 현재의 겁에서
저 생사에 있는 사람은
선하거나 선하지 않은 법
그것을 듣지도 보지도 못한다.
이 법을 듣기 때문에
부디 죄를 짓지 말고
이치와 이익이 아닌 것 없애면
빨리 열반에 나아가리라.
스승과 벗을 즐겨 친하여
듣는 지혜를 자라게 하라.
그 지혜가 청정하기 때문에
묘하고 즐거운 이치 얻으리.
옳은 지혜를 듣는 사람은
법 아닌 것 보고 거기서 떠나
깨끗한 법에서 용맹스럽게
뛰어나고 묘한 즐거움 얻는다.
만일 보살장을 듣고
법의 성품에 머물면
광명으로 세간 비추어
진실로 보리행을 행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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