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544 법집요송경(法集要頌經) 1권

by Kay/케이 2024. 7. 23.
728x90
반응형

 

 

 

통합대장경 법집요송경(法集要頌經) 1

 

 


대송신역삼장성교서(大宋新譯三藏聖教序)1)


어제(御製)



위대하구나,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이여. 헤매는 중생들을 교화해 인도하시고, 으뜸가는 성품을 널리 드날리셨도다. 넓고 크고 성대한 언변이여, 뛰어나고 훌륭한 자도 그 뜻을 궁구하지 못하는구나. 정밀하고 은미하고 아름다운 말씀이여, 용렬하고 우둔한 자가 어찌 그 근원을 헤아릴 수 있으랴. 뜻과 이치가 그윽하고 현묘한 진공(眞空)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으며, 만상(萬象)을 포괄하는 비유는 끝이 없네. 법 그물[法網]의 벼릿줄을 모아 끝이 없는 바른 가르침을 펴셨고, 사생(四生)을 고해에서 건지고자 삼장(三藏)의 비밀스러운 말씀을 풀어주셨다. 하늘과 땅이 변화하여 음과 양을 이루고, 해와 달이 차고 기울며 추위와 더위를 이뤘으니, 크게는 선과 악을 말씀하셨고, 세밀하게는 항하의 모래알에 빗대야 할 정도네. 다 서술할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의 온갖 일들을 마치 상법(像法)2)을 엿보듯이 하고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이 하였다. 이는 육정(六情)3)을 벗어나 길이 존재하고 천겁이 지나도록 오래갈 만한 것이며, 마치 수미산이 겨자씨에 담기 듯 여래께서 끝없는 세계에서 걸림이 없으신 것이다.
달마(達磨)께서 서쪽에서 오시자 법이 동토에 전해졌고, 오묘한 이치를 선양하시자 대중이 돌아갈 길을 순순히 따랐으니, 피안(彼岸)은 보리요 애욕의 강은 생멸이라, 오탁의 악취(惡趣)에서 보살행을 실천하고, 삼업(三業)의 길에서 빠진 자들을 건지셨다. 세상에 드리운 경은 궁구하기 어렵지만 도는 사사로움이 없어 영원히 태평하도다. 설산(雪山)의 패엽(貝葉)4)이 눈부신 은대(銀臺)와 같고, 세월의 연라(煙蘿)5)가 저 멀리 향계(香界)6)를 일으켰지만 높고 우뚝하여 측량하는 자가 드물고, 멀고 아득하여 이름을 붙이기 어렵다. 이런 까닭에 도(道)를 깨달은 십성(十聖)7)과 덕(德)을 갖춘 삼현(三賢)8)께서 지극한 도를 건원(乾元)9)에서 일으키고 온갖 오묘함을 태역(太易)10)에서 낳아 무성한 생명체들을 총괄해 어둠을 뚫고 한 가닥 빛을 비추었으며, 저 시시비비를 단절하고 이 몽매함을 깨우쳤던 것이다.
서역의 법사 천식재(天息災) 등11)은 항상 사인(四忍)12)을 지니며 삼승(三乘)을 일찌감치 깨달은 분들이니,
불경의 참된 말씀을 번역하여 인간과 천상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이었다. 이는 꽃망울이 거듭 터진 것이요, 국운이 창성할 때를 만난 것이니, 문장(文章)에서 오성(五聲)13)을 윤택하게 하였고, 풍율(風律)14)에서 사시(四始)15)를 드러냈다. 당당한 행동거지에 온화하고 아름답도다. 광대한 세월 어둠에 빠졌던 세계가 다시 밝아 현묘한 문이 환하게 드러났으며, 궤범이자 두루한 광명인 오묘한 법이 청정한 세계에서 이름을 드날렸다. 유정을 이롭게 하여 함께 깨달음의 언덕에 오르고, 장애를 만드는 일 없이 병들고 지친 자들을 모두 구제하였으며, 드러내지 않고 자비를 행하며 만물 밖으로 광대하게 노닐고, 부드러움으로 탐학한 자들을 조복해 어리석음을 씻고 깨우쳐 주었다. 소승의 성문(聲聞)을 연설하여 그 위의에 합하고 대승의 정각(正覺)을 논하여 그 성품을 정립하자, 모든 생명체들이 깨달아 복을 받았고, 삼장의 교법에서 결락된 것들이 다시 흥성하였다.
허깨비에 홀려 길을 잃은 것이니, 화택(火宅)16)은 심오한 비유로다. 부처님께서 비록 이런 가르침을 시설하셨지만 알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 이에 “선념(善念)이 생기면 한량없는 복이 남몰래 찾아오고, 악업(惡業)이 일어나면 인연 따라 모두 타락한다”17)는 말씀으로 사부대중을 길들이고 시방세계에서 보살행을 쌓았다. 금륜왕[金輪]18)에게 꽃비를 쏟아 붓고 대궐에서 항하 모래알처럼 많은 세계를 보호하였으니, 유정천(有頂天)에 부는 바람19)도 파괴하지 못할 것이고, 끝이 보이지 않는 홍수도 휩쓸지 못하리라. 맑고 고요해 담담한 것이 원만하고 밝으며 청정한 지혜요, 성품이 공하여 물듦이 없는 것이 망상으로부터 해탈하는 인연이니, 이로써 마음의 밭에서 번뇌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이로써 우주에서 청량을 얻을 수 있으리라.
짐은 부끄럽게도 박학하지도 못하고 석전(釋典)20)에 능통하지도 못하니, 어찌 감히 서문을 써서 후인에게 보일 수 있는 자이겠는가? 반딧불이나 횃불과 같아 찬란한 태양과 견주기에 턱없이 부족하니, 작은 소라로 바다를 측량하려다 그 깊은 연원을 끝내 밝히지 못하는 자일 따름이로다!

법집요송경(法集要頌經) 제1권
존자(尊者) 법구(法救) 편찬
서천 중인도 야란타라국(惹爛馱囉國) 천식재(天息災) 한역
1. 유위품(有爲品)

능히 번뇌를 깨닫고
마땅히 기쁜 마음을 내어
내가 모은 이 글을 잘 들어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 게송이니라.
일체지(一切智) 가운데 스승이시니
이와 같으신 불세존(佛世尊)께서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 위하여
진실한 말 널리 말씀하셨네.
모든 행은 덧없는 것으로서
모두 다 흥하고 쇠하는 법이니라.
무릇 생겨난 것은 이내 죽나니
적멸(寂滅)이 가장 편하고 즐거우니라.
마치 촛불이 밝게 타오를 때에
물건을 어둠 속에 던져 버리듯
그 지혜의 등불을 찾아내어
늘 번뇌에 덮여 있게 하지 말라.
사람의 몸뚱이 형상 있는 기관들이
죽어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때
해골은 집비둘기 빛과 같거늘
그것을 보면 무슨 즐거움 있으랴.
비유하면 사람이 첫날밤에
그 식신(識神)이 어머니의 태(胎)에 들면
날이 갈수록 자꾸만 변하여
가 버리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 같다.
아침에 보았던 그 좋은 일도
어느새 밤이 되면 보이지 않고
어제 저녁 보았던 온갖 일들도
오늘 저녁엔 없어지고 말았네.
왕성한 불꽃 같던 부귀 영화도
무상(無常)한 것이라 시절(時節)이 없고
귀하고 천함 가릴 것 없이
언제고 염라대왕에게 잡혀간다네.
혹 태(胎) 안에 있을 때 죽기도 하고
혹은 태어나자마자 죽기도 하며
젊어서도 죽음을 면치 못하니
늙어서 죽는 것은 달게 받아라.
늙은이나 혹은 젊은이
그리고 또 중년의 사람들
언제나 죽음의 침범 받나니
그 어찌 두렵지 않은가?
목숨은 마치 열매가 저절로 익어
떨어질까 늘 두려워하는 것 같다.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이 있나니
누가 그것을 면할 수 있으랴.
비유하면 저 옹기장이가
진흙을 이겨 그릇을 만들지만
그 그릇들 언젠가는 다 깨지고 말듯이
사람의 목숨 또한 그러하니라.
비유하면 사람이 거문고나 비파를 탈 때
온갖 오묘한 소리가 나오지만
줄이 끊어지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듯이
사람의 목숨 또한 그러하니라.
비유하면 죄수가 결박을 당해
장터로 끌려나갈 때에는
걸음마다 죽음의 길로 향하는 것처럼
사람의 목숨 또한 그러하니라.
비유하면 급히 흐르는 저 강물이
한 번 가면 다 돌아오지 못하듯
인생(人生) 또한 그와 같아서
가고 나면 모두 돌아오지 못한다.
온갖 근심이 모여 이 몸이 되었나니
세상에 태어나면 고뇌가 많으니라.
사람의 목숨도 그와 같아서
늙음과 죽음이 항상 엿본다네.
누구나 지어서 이룬 공로(功勞)로
영원토록 세상에서 안락(安樂)을 누리려 하지만
마치 지팡이로 급히 흐르는 물을 치면
잠깐 갈라졌다 다시 합쳐지는 것 같다네.
마치 어떤 사람이 채찍을 잡고
나다니며 소를 먹여 기르는 것처럼
사람의 목숨도 그와 같건만

모두들 그 목숨 애써 기르네.
사람으로서 공덕을 세우려거든
밤낮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이미 사람의 몸을 얻어 태어난 이상
목숨 끝날 것 일심으로 생각하라.
잠 못 이루는 이에게 밤은 길고
피로한 이에게 길은 멀다.
미련한 이에게 생사(生死)는 길고
묘한 법을 듣기는 참으로 어려워라.
자식이 있고 재산이 있다고
탐하고 아끼지만 언젠가는 없어진다네.
스스로 볼 줄 모르는 미련한 사람아
어찌 그 자식과 재산을 믿고 있나?
백천의 이루 다 셀 수 없는
문벌 좋은 부귀(富貴)한 남녀들
아무리 많은 재산 쌓고 모았다 한들
죽어 사라지지 않는 이 없다네.
부귀는 거룩한 재산이 아니어서
언제나 무상(無常)이 엿보고 있거늘
비유하면 꼭 눈 먼 장님이
스스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 같구나.
모여 쌓인 것 언젠가는 무너져 흩어지고
높은 것은 반드시 추락(墜落)하게 마련이다.
생겨난 것은 모두 다 끝이 있나니
중생들도 또한 다 그러하니라.
악(惡)을 행하면 지옥에 들어가고
선(善)을 닦으면 하늘에 태어나는 법
만약 누구든 선을 닦으면
번뇌가 없어지고 열반 얻으리라.
모든 부처님과 보살(菩薩)들
연각(緣覺) 그리고 성문(聲聞)들도
유위(有爲)의 몸을 버렸거늘
더구나 모든 중생들이야 말하여 무엇하리.
허공도 아니요 바다 속도 아니요
산 속의 토굴에 든다 해도 아니 되니
죽음을 받지 않고 벗어날 만한
그런 곳 아무 데도 없느니라.
만약 현재 세상에 머물러 있거나
과거 세상이나 또는 미래 세상의
지어지는 모든 일들은
마침내 다 무너짐으로 돌아가리라.
지혜로운 사람은 결박을 끊고
늘 바른 생각으로 잘 관찰하며
무루(無漏)의 도를 항상 생각하나니
그야말로 진실로 지혜로운 사람이다.
마치 저 죄수가 결박을 당해
무엇을 하려 해도 할 수 없듯이
또 저 썩고 낡은 수레가
머지않아 부서지고 마는 것 같네.
젊은 몸 변해 늙어지고
그리워하는 집은 감옥과 같거늘
죽음이 닥치는 것 깨닫지 못하나니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렇게 모른다네.
제 아무리 백 살을 산다 해도
죽음은 언제나 따라다니며
늙음과 질병의 핍박을 받아
그 걱정 끝내는 후세까지 이르리.
늙음이 오면 고통이 몸을 얽어
밤낮으로 고통과 번민이 많네.
천만 가지로 괴로움 받는 것
잿불 속에 든 고기와 같다.
강물은 잠깐도 그치지 않고
급하게 흘러가곤 돌아오지 않듯
고름이 줄줄 흐르는 이 몸뚱이
아끼고 보호해도 붙들 수가 없다.
4대(大)로 이루어진 이 몸뚱이
무상하여 오래 머물 수 없네.
지계(地界)가 무너져 흩어질 때에

식신(識神)은 공(空)한 것이라 무엇에 쓰리.
이 몸은 온갖 장애와 괴로움만 많고
고름 흘러 항상 질병에 시달리건만
미혹하고 어리석은 이 탐하고 애착하여
열반[寂滅]의 길 구하기 싫어하네.
올해가 아무리 있다 하여도
겨울ㆍ여름은 오래가지 못하거늘
범부는 세상의 쾌락만 탐하여
그 중간에서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버지 어머니, 형과 아우들
그리고 처자와 모든 권속들
죽음이 밀려와 끌고 가건만
어느 누구도 그걸 구제 못하네.
이와 같이 모든 중생들
영화와 쾌락을 탐하여 허덕이며
죽음과 늙음과 질병의 침략 받아도
생(生)의 고뇌를 깨닫지 못하네.
머리를 깎고 필추(苾芻)가 되었거든
부디 지관(止觀)을 잘 닦아라.
천마(天魔) 수라(修羅)가 엿보지 못하게 하면
이 생을 건너서 저 언덕에 이르게 되리.
2. 애욕품(愛慾品)
애욕아, 나는 너의 근본을 안다.
뜻에서 온갖 생각이 생겨나나니
내가 너를 생각하지 않으면
곧 너 애욕은 존재할 수 없다.
탐욕으로 인해 번뇌가 생기고
탐욕으로 인해 두려움 생기나니
탐욕을 여의면 해탈을 얻어
두려움도 번뇌도 없어지리라.
애욕으로 인해 번뇌가 생기고
애욕으로 인해 두려움 생기나니
애욕을 여의면 해탈을 얻어
두려움도 번뇌도 없어지리라.
먼저는 달다가 나중엔 쓴 과실처럼
애욕도 또한 그와 같아서
훗날엔 지옥의 고통을 받으며
무수한 겁 동안 불에 타리라.
어리석은 사람은 애욕을 탐하여
처자를 그리고 집착하다가
애욕에 빠지고 결박을 당하고 마니
그 결박 견고해 벗어나기 어렵다.
현성(賢聖)은 애욕과 모든
장엄(莊嚴)된 것들 잘 보여 주면서
처자의 곁을 멀리 떠나서
견고하게 지키면 이익 있다 하였네.
탐욕에서 벗어나기 정말 어려워
탐욕을 여의는 것이 진정한 출가라네.
탐하지 않으면 쾌락(快樂)을 누리리니
지혜로운 사람은 탐욕이 없다.
이 세상에 탐욕 있는 사람들
갖가지 그릇된 생각 하나니
만일 그 탐욕 항복 받으면
그야말로 정말 욕심 버린 사람이지.
어떤 사람이든 늘 탐욕 가지면
결박을 당해 벗어나기 어렵다.
지혜로운 사람만이 분별할 능력 있어
번뇌를 끊어 생겨나지 않게 한다.
바른 생각을 항상 일으켜
고요해지면 그 탐욕 버리기 쉽지.
계율[法戒]로 탐욕을 스스로 억제하여
범하지 않으면 선(善)이 자라나리라.
항상 탐욕을 일삼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과 친근하지만
생각이 일정해 방일(放逸)하지 않으면
차례차례 번뇌는 없어지리라.
잠깐이나마 지관(止觀)을 닦아서

죄악의 때를 여읠 수 있다면
잘난 체하는 마음 저절로 없어지고
해탈하여 안락(安樂)을 얻게 되리라.
만일 누구든 애욕을 끊지 못하면
가죽[皮]이 불에 타는 것 같아
타는 동안은 찰나(刹那)이건만
받는 고통은 한량없다네.
필추여, 부디 욕락(欲樂)을 삼가라.
방일하면 근심과 걱정 많나니
그러므로 만일 애욕을 여의면
바른 생각으로 쾌락 누리리.
싫어하지 않는데 무슨 만족 있으며
만족하지 않는데 무슨 즐거움 있으랴.
즐거움 없는 곳에 무슨 근심 있으며
애욕이 있는 곳에 무슨 즐거움 있으랴.
고요함과 지혜가 충족되면
번뇌 없는 도[無漏道] 자랄 수 있지만
탐하고 사랑하여 만족할 줄 모르면
법답지 않게 일찍 죽게 되리라.
물질[色]을 보고 마음이 미혹하여
스스로 무상함을 관찰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아름답고 좋다 생각하며
그것이 진실이 아님을 알지 못하네.
어리석은 사람 탐욕으로 제 자신을 결박하여
저 언덕으로 건너가기 바라지 않고
재물 탐하고 사랑하는 욕망 때문에
남도 해치고 제 자신도 결박한다.
세간에선 온갖 묘한 욕심 수용하지만
그 욕심 가장 맛이 적다네.
그것을 천상의 즐거움에 비한다면
가리쇄파나(迦哩灑跛拏)21)에 불과한 것을.
온 산들이 모두 금(金)으로 변하고
그 산이 다시 철위산(鐵圍山)만큼 커지더라도
이것은 오히려 만족할 줄 모르는 것
부처님께선 그것을 모두 다 잘 아신다네.
이 세간 온갖 괴로움의 과보는
모두 다 탐욕이 그 원인이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잘 항복 받나니
그러므로 그렇게 배워야 한다.
3. 탐품(貪品)
탐욕의 끝을 잘 보여 주었건만
중생들 의심하는 마음 품는다.
만일 거기에 탐욕의 마음 더하면
스스로 단단한 결박을 지으리.
탐욕을 여의고 잘 관찰하면
의심하는 마음은 곧 없어지고
탐심과 애욕을 버려 버리면
단단한 결박은 저절로 풀리리.
욕심의 그물로 제 자신 얽어매고
애욕의 덮개로 제 자신을 덮으며
우매한 마음은 제 자신을 묶나니
어부 손아귀에 든 고기 같다네.
죽음이 항상 와서 핍박하는 것
송아지가 어미 소를 좇는 것 같고
탐하고 집착하여 방일(放逸)한 사람
과일 나무를 만난 원숭이 같네.
탐하는 마음 매우 견고하므로
갔다가 와서는 다시 또 나아가네.
탐심과 애욕이 윤택해지면
망상은 그것 따라 뻗어나간다.
탐욕은 너무 깊어 밑이 없나니
늙음과 죽음도 그 때문에 불어 나간다.
탐심과 애욕은 거짓이 많고
탐심과 애욕은 또 인색하다.
만일 지혜로 그것을 분별하여
바르게 관찰하면 안락 얻으리.
탐욕으로 말미암아 생사를 받아

내달리는 물처럼 앞으로 치달린다네.
중생들은 슬기로운 눈이 없어서
스스로 관찰할 능력이 없네.
우매한 사람은 탐욕에 붙들리고
거기에 빠져서 깨닫지 못한다.
만일 누구라도 유가행(瑜伽行)을 닦으면
악마의 왕도 엿보지 못하리라.
송아지가 어미 소를 그리워하듯
탐욕의 번뇌는 없애 버리기 어렵다네.
탐욕을 여의면 생사의 허덕임을 면하고
탐욕을 여의면 해탈을 얻으리.
탐욕 때문에 다툼만 불어가고
애욕 때문에 비방만 늘어난다.
필추여, 부디 지관(止觀)을 닦아
열반의 결과를 직접 얻어라.
탐하는 마음은 저 비옥한 밭이
바람과 비를 만나면 무성해지는 것 같다네.
탐심과 애욕을 멀리 여의면
어떤 번뇌도 침노하지 못하리.
만일 탐욕의 기운이 줄어들어
연잎에 떨어지는 물방울 같아지면
저 번뇌 쉬이 없어지리
지혜로운 사람이라 말할 수 있으리.
나무를 베되 뿌리를 뽑지 않으면
아무리 베어도 다시 자라나는 것처럼
탐욕을 뽑되 뿌리까지 없애지 않으면
아무리 뽑아도 다시 자라나리라.
탐욕은 마치 밭에 종자를 심을 때
밭을 갈고 또 잡초를 없애는 것 같아
애욕의 잡초를 없애 주지 않으면
좋은 열매가 여물지 못하리라.
탐심과 애욕심을 분별해 보면
그것은 본래 둘이 아니다.
함께 악을 짓고 함께 고통 받나니
어떻게 뉘우치지 않을 수 있으랴.
탐심의 성질은 종자가 되고
애욕의 성질은 태(胎)를 받건만
중생들은 끊임없이 그걸 사랑해
가고 오면서 벗어나지 못한다.
온갖 하늘과 모든 사람들
애욕에 의지하여 머무나니
애욕이 가는 곳에 온갖 번뇌가 따라
그 또한 잠시도 쉬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근심이 생기다
지옥에 들어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쉬지 않는 애욕의 흐름 멈추지 않아
애욕의 그물이 상처 난 뿌리를 덮어
가지와 넝쿨은 기갈(飢渴)만 더해
갈수록 한량없는 고통 받는다.
비유하면 제 자신이 화살 만들어
도리어 제 몸을 해치는 것처럼
마음의 화살도 그와 같아서
애욕의 화살이 중생 해친다.
이런 줄을 잘 깨달아 알라.
애욕과 고통은 생존을 만든다.
애욕이 없으면 망상 또한 없나니
필추여, 진정 세상을 건너라.
4. 방일품(放逸品)
계율은 감로(甘露)의 길이라 하고
방일(放逸)은 죽음의 길이라 하나
탐하지 않으면 죽지 않고
도를 잃으면 저절로 죽는다.
슬기로운 사람은 훌륭한 도(道) 잘 지켜
끝끝내 미혹되거나 취하지 않는다.
탐하지 않으면 기쁘고 즐거움 이루나니
이를 따라 거룩한 도를 얻는다.
늘 선(善)한 법 닦기를 생각하고

항상 자기 자신을 굳게 지켜라.
지혜로운 사람은 적정(寂靜)을 구하나니
이보다 더 나은 길상(吉祥)이 없다네.
미혹하고 취하기를 스스로 금하여
그것을 버린 사람 현인(賢人)이라 하나니
그는 이미 지혜의 전당(殿堂)에 올라
위태로움 버리고 평온함을 얻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미련한 이 보기를
마치 저 산이나 땅을 보듯 하나니
부디 교만(憍慢) 버리기를 생각하라.
슬기로운 사람은 밝은 지혜 익힌다.
바른 행 일으켰거든 방일(放逸)하지 말고
몸을 단속하고 마음을 길들여라.
지혜의 등불을 잘 밝히게 되면
어둠은 저절로 무너지리라.
언제나 바른 생각을 일으키고
마음이 고요하면 악을 쉬이 없애리.
법의 목숨으로써 제 자신 억제하여
범하지 않으면 좋은 명성 얻으리라.
뜻을 전일(專一)하게 하여 방일하지 말고
모니(牟尼)께서 설하신 계율 닦아 익혀라.
비루(卑漏)한 법 친하지 말고
방일한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라.
삿된 소견의 뿌리 심지 않으면
이 세상의 악은 자라지 않으리라.
바른 소견은 증상(增上)의 도이니
세속의 지혜로도 살필 수 있다.
백천 생(生)을 지낸다 해도
끝끝내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
방일함을 닦고 익히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친하게 따른다.
지관(止觀)을 닦으면 산란하지 않나니
재주(財主)가 보물 창고 지키듯 하라.
탐하거나 싸우기를 좋아하지 말고
그리고 또 욕락(欲樂)도 즐기지 말라.
방일하지 않기를 늘 생각하면
그로써 큰 안락(安樂) 얻을 수 있으리.
어느 때나 방자하게 멋대로 놀지 말고
스스로 억제하면 번뇌가 없어지리.
방자하게 행동하면 악마가 틈을 얻어
사자가 사슴을 덮치듯 하리라.
방일에는 네 가지 나쁜 일 있다.
남의 아내 범하기 좋아하면
첫째는 지옥 가고, 둘째는 복이 줄며
셋째는 비방 받고, 넷째는 잠이 많다.
복리(福利)가 없으면 악도(惡途)에 떨어져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여 즐거움 적다.
왕법(王法)에 의하여 중한 죄 받고
죽게 되면 지옥으로 들어가리라.
본래의 성정(性情)은 스스로 짓지 않나니
그 성정은 스스로 행하지도 않음을 알라.
삿된 길이라면 생각조차 말아야 하거늘
어리석은 사람은 애써 구하기를 힘쓴다.
지혜로운 사람을 밝은 등불에 비유하나니
어둠 속에 있는 사람 그를 따라 등불 얻는다.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인도하는 것
눈 밝은 이가 장님을 인도하는 것 같네.
만일 선하지 않은 일을 지으면
저 눈 없는 사람과 같아서
길 가기가 너무도 고생스럽고
험한 길에서 두려움에 떨게 된다.
만일 선한 법이 자꾸 불어나면
악마도 그 틈을 얻지 못하고
번뇌는 없어지고 열반을 증득하여
진실한 과보 얻게 되리라.
그러나 악한 법이 자꾸 불어나면
악마ㆍ나찰(羅刹)이 늘 틈을 노릴 것이고
그는 저 열반의 길을 잃고는

고통 받음이 다함없으리라.
이른바 법을 지닌다는 것
반드시 많이 외우고 익히는 것 아니다.
설령 들은 것이 적다하여도
몸소 법을 행하여 구족(具足)하면 된다.
아무리 많은 이치를 외우고 익혀도
방일하게 굴고 바른 법 따르지 않으면
목동이 남의 소를 세는 것 같아
사문의 과위 얻기는 어려우리라.
나쁜 말을 들어도 참아 견디고
수행하는 사람을 칭찬해 말하며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녹여 없애면
그 사람 사문의 본래 성품 얻으리.
방일하지 않은 사람 기리어 찬탄하고
한편으론 방일한 사람들을 나무라면
그는 항상 인간이나 천상의 과보 받아
가장 뛰어나고 특별히 훌륭하리라.
누구든 방일하지 않은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에게 칭찬을 받고
지은 바 선행이 자라나고 불어나
능히 온갖 선한 법을 지어내리라.
누구라도 방일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현재 세상에도 아무 이익이 없네.
마음을 안정하여 흔들리지 않아야
비로소 지혜롭다 말할 수 있으리.
필추여, 부디 삼가고 조심하라.
방일하면 근심과 허물 많다.
마치 수렁에 빠진 코끼리와 같아서
깊은 바다 같은 고통 면하기 어려우리.
필추여, 부디 삼가고 조심하라.
방일하면 근심과 허물 많다.
온갖 죄악 떨어 버리기를
바람이 나뭇잎 떨구듯 하라.
필추여, 부디 삼가고 조심하라.
방일하면 근심과 허물이 많다.
깊이 얽히고 설킨 번뇌를
불이 마른 섶을 태우듯 하라.
필추여, 부디 삼가고 조심하라.
방일하면 근심과 허물이 많다.
제각기 그 차례를 따라
온갖 번뇌를 모두 없애라.
필추여, 부디 삼가고 조심하라.
방일하면 근심과 허물이 많다.
이치를 깨닫고 글귀를 분별하여
마음이 고요하면 언제나 편안하리.
필추여, 부디 삼가고 조심하라.
방일하면 근심과 허물이 많다.
만일 번뇌가 다 사라지면
열반(涅槃)의 즐거움 얻을 수 있으리.
방일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선한 법을 잘 닦아야 하리니
이승에서는 물론 후세까지도
법을 행하는 즐거움 누릴 수 있으리.
방일한 마음 일으키지 않으면
번뇌는 저절로 항복할 것이요
선한 법을 굳세게 배워 익히면
결정코 열반을 얻을 것이다.
오래도록 방일한 행만 일삼아
한 찰나 잠깐도 멈추지 않으면
목숨을 마치고는 지옥에 들어가
그 고통 잠깐도 쉬지 않으리.
방일한 행동, 기억하지 못하는 것
또한 위의(威儀)를 익히지 않는 것
잠에 빠져 깨려고 하지 않는 것
이것들은 모두 계율의 장애가 된다.
항상 여의어 호응하지 않되
한번 먹은 마음 무너지지 않게 하라.
마음 항복 받기를 늘 생각하면

온갖 번뇌 소멸할 수 있으리.
필추여, 부디 삼가고 조심하라.
계행 잘 지켜 깨뜨리지 말고
제 마음을 잘 지키고 보호하되
금세(今世)에는 물론 후세까지 그리하라.
필추여, 부디 방일하게 행동하지 말고
집을 버리고 부처님 가르침 따라
무상함의 군사를 떨어 버리되
코끼리가 연못에서 나오듯 하라.
이런 계율의 법[毘尼法]을 의지해
방일한 행동을 생각하지 않으면
생사의 수레바퀴 다 소멸되어
영원히 고뇌가 없어지리라.
5. 애락품(愛樂品)
사랑이 있는 곳에 근심이 생기고
사랑이 있는 곳에 두려움 생기나니
만일 사랑하거나 좋아하지 않으면
무엇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랴.
사랑 때문에 걱정이 생기고
사랑 때문에 두려움이 생긴다.
사랑하는 생각을 멀리 여의면
마침내 어지러운 행이 없으리.
사람들은 누구나 근심 걱정 지녀서
이 세상에 괴로움 끝이 없으리.
그것은 은애(恩愛)를 생각하기 때문이니
그 생각 없으면 걱정도 없어지리.
그러므로 부디 그런 생각 내지 말라.
생각이란 바로 죄악의 결박이니라.
그에게 아무런 결박이 없게 되면
생각함도 없고 생각하지 않음도 없으리.
부디 잘 생각하여 방편 구하되
이치가 아니거든 방편을 쓰지 말라.
방편과 지혜로 큰 도를 이루어
스스로 제일 높은 이 되리라.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지 말고
사랑하지 않는 이와 함께하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 못 만나면 괴롭고
사랑을 못 받으면 근심하나니
그 가운데서 근심과 슬픔이 생겨
사람의 착한 근본 소멸시킨다.
사랑하는 생각은 저승까지 따라가
친한 벗들과 많은 친척 권속들
오랜 세월 근심하고 서러워하나니
사랑을 떠나는 것 매우 괴롭다.
황금빛같이 아름다운 얼굴 사랑해
하늘 몸을 받아서 따로 살아도
즐거움 다하면 해로움이 닥치나니
염라왕[死王]의 문서에 오르게 되네.
만일 사람이 밤이나 낮이나
형색을 사랑하는 생각 없애되
깊은 근원을 스스로 파내 버리면
어떻게 죽음의 길 넘지 못하랴.
좋지 않은 형상을 좋은 빛깔이라 하고
사랑스런 빛깔은 사랑스럽지 않다 하고서
그 빛깔 좋아하여 집착한다면
그는 방일(放逸)의 부림을 받느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싶거든
악한 사람과 같이 살지 말라.
이것은 진실로 얻기 어렵나니
쾌락은 온갖 악(惡)의 근본이 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싶거든
마땅히 제 자신을 잘 지켜 보호하되
마치 국경에 성을 쌓고 적을 막을 때
담과 참호를 튼튼히 하듯이 하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싶거든
모든 감관을 튼튼히 단속하되
마치 국경에 성을 쌓고 적을 막을 때
안팎을 모두 튼튼히 하듯이 하라.
부디 스스로 잘 막아 보호하라.
뒷날 이내 헛되이 후회하리니
때가 지나면 근심이 생겨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리라.
시방 세계로 두루 돌아다니며 구해
중생들 마음속을 관찰할 때
혹 이런 무리들이 있느니라.
제 몸은 사랑하지 않고 남을 사랑하거나
제 목숨을 남의 목숨에 견주는 이이니
그러므로 그 사람은 남을 해치지 않는다.
누구나 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칼과 몽둥이를 무서워하지 않는 이 없다.
제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견주어 보아
남 목숨 죽이거나 몽둥이로 때리지 말라.
마치 오랫동안 여행하던 사람이
멀리서 좋은 일 가지고 돌아올 때에
친척들 모두 편안하고 온화한 맘으로
돌아온 것을 기뻐하는 것처럼.
복 짓기 좋아하고 선한 일 행한 사람은
이 언덕에서 저 언덕에 이르러
스스로 그 많은 복 받으리니
친척이 돌아온 것 기뻐하는 것 같으리.
일어나 성인의 가르침을 따라
선하지 않은 마음 금해 막아라.
도를 가까이하는 이 사랑 받나니
도를 멀리하는 사람과 친하지 말라.
도를 가까이하는 이와 멀리하는 이
그들이 가는 곳 제각기 다르다.
도를 가까이하면 하늘에 나고
가까이하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
법을 좋아하고 계율을 성취하고
믿음을 이루어 즐겨 익히며
자기 몸을 잘 경계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 받는다.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
모두 자기 자신이 지은 탓이니
현세에서는 좋은 이름을 얻고
죽어서는 천상에 태어난다.
바른 법 가르쳐 받들게 하고
법답지 못한 행 억제해 못하게 하면
선한 사람들에게 사랑 받나니
악한 사람을 마땅히 멀리하라.
선한 것과 또 선하지 않은 것
그 둘은 다 특별한 것 아니다.
선한 사람은 천상에 나고
악한 사람은 지옥에 떨어진다.
6. 지계품(持戒品)
지혜로운 사람은 계율을 잘 지켜
그 복으로 세 가지 과보 받는다.
현세에서는 명예와 이익을 얻고
죽고 나면 저 천상에 태어난다.
마땅히 계율 지키는 이 보고 나서
잘 보호하면 밝은 지혜 있는 이라 하나니
그는 참되고 바른 그런 소견 이루어
이 세상의 안락과 고요함을 얻는다.
계율을 가지면 쾌락을 누리고
그 몸에는 번뇌가 없으리.
밤에는 편안하게 잠을 이루고
깨어서도 항상 기쁘고 즐거우니라.

계율은 늙거나 죽어서도 끝내 편안하고
계율은 매우 고요하고 안온하기도 하다.
지혜는 사람의 보배가 되고
복덕(福德)은 도적도 뺏어 가기 어렵다.
어떠한 법이 가장 선(善)하고
어떠한 법이 가장 편안하고 고요하며
어떠한 법이 사람의 보배가 되고
어떤 것을 도적도 빼앗지 못하는가?
계율의 법이 가장 편안하고
계율의 법이 안온하고 고요하며
지혜는 사람의 보배가 되고
복덕만은 도적도 훔쳐가지 못한다.
계율 닦고 보시 행하여
복을 지어서 좋은 복전(福田)이 되면
이 세상에서 저 언덕에 이르러
언제나 안락한 곳에 도달하게 되리라.
필추여, 부디 계율의 덕을 세워서
모든 감관의 문 지키고 보호하라.
음식에 대해선 양을 절제할 줄 알고
자나 깨나 생각으로 서로 호응케 하라.
마음은 항상 또렷이 깨어 있어서
밤이나 낮이나 부지런히 공부하면
번뇌가 끊어지고 마음이 밝아져서
열반[圓寂]의 도에 이를 수 있으리.
지혜로운 사람은 계율을 굳게 세워
마음을 오로지해 지혜 익힌다.
필추로서 번열의 괴로움 없으면
온갖 고통 남김없이 없어지리라.
계율 지켜 항상 그 마음 항복 받고
잘 지키고 보호하여 바른 선정 가지며
안으로는 지관(止觀) 법을 닦아서
잊지 않으면 바른 지혜 이루리라.
온갖 더러운 죄 떨어 버리고
교만 없애고 의심 내지 말며
몸이 마치도록 계율의 법을 구해
거룩한 생각을 잠시도 여의지 말라.
계율과 선정과 지혜의 해탈
꼭 이것을 잘 관찰해야 하나니
그가 이미 티끌과 때를 여의었으면
번뇌가 다하여 다시 나지 않으리.
희고 깨끗함 모아 해탈(解脫)하면
그로써 무지(無智)는 모두 없어지고
악마[魔羅]의 경계를 뛰어넘어서
마치 햇빛처럼 밝게 비치리.
잘난 체하고 미혹에 빠지는 일
필추여, 부디 멀리 피하라.
계율ㆍ선정ㆍ지혜 이 세 가지 행
원만하기 구하여 멀리 떠나지 말라.
이미 스스로 방탕하지 않고
어떠한 존재도 생각하지 않아
그 때문에 몸과 마음의 번뇌 버리면
어떠한 장애도 생기지 않으리라.
필추로서 계율을 잘 지키고
항상 살피어 이것을 공부하면
열반의 길로 바로 나아가
이와 같은 청정을 빨리 얻으리.
부용(芙蓉)이나 전단향(栴檀香) 같은
꽃향기는 바람을 거스르지 못하지만
덕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풍기나니
덕이 있는 사람, 그 향기 두루 퍼진다.
오발(烏鉢)ㆍ박리사(嚩哩史)와
다아라(多誐羅)ㆍ전단향(栴檀香)
이와 같은 꽃과 나무 향기는
계율의 향기에 견줄 수 없다.
어떤 사람이든 계율을 잘 지키고
청정하게 지내고 방일하지 않으면
바른 지혜로 해탈을 얻으리니
그것을 안락한 곳이라 한다.

이 도(道)보다 더 이상의 것 없나니
선정을 방해하는 악마를 소멸하고
성현의 덕은 헤아리기 어렵나니
여덟 가지 바른 길에 이를 수 있다.
7. 선행품(善行品)
몸으로 짓는 악행(惡行) 잘 단속하여
스스로 몸으로 짓는 행 바르게 단속하라.
몸으로 짓는 악행 잘 단속하는 사람은
마땅히 몸으로 늘 선행을 닦는다네.
입으로 짓는 악행 잘 단속하여
스스로 입으로 짓는 행 바르게 단속하라.
입으로 짓는 악행 잘 단속하는 사람은
언제나 입으로 늘 선한 말만 행한다네.
뜻으로 짓는 악행 잘 단속하여
스스로 뜻으로 짓는 행 바르게 단속하라.
뜻으로 짓는 악행 잘 단속하는 사람은
언제나 뜻으로 늘 선행을 닦는다네.
몸으로 짓는 악행 당연히 버려야 하고
또 입으로 짓는 악행도 버려야 하며
뜻으로 짓는 악한 행까지 다 버려
온갖 더럽고 나쁜 법을 모두 버려라.
몸으로 마땅히 선행을 닦아야 하고
입으로 닦는 선행 또한 그러해야 하며
뜻으로도 반드시 선행을 닦아서
욕심 없어지면 온갖 번뇌 사라지리.
몸으로 마땅히 선행을 닦아야 하고
입과 뜻으로도 그렇게 하면
금생(今生)에서나 후생(後生)에서나
언제나 좋은 곳에 태어나리라.
인자한 마음 지녀 살생하지 않고
항상 잘 그 몸을 거두어 잡으면
그는 다함이 없는 지위를 얻어
어디를 가나 걱정 없으리.
살생하지 않는 것 인(仁)이라 하니
항상 말조심하여 잘못 말하지 않으면
그는 다함이 없는 지위를 얻어
어디를 가나 걱정 없으리.
과거에 몸으로 지은 악업(惡業) 때문에
스스로 뉘우치고 한탄하는 것
현재 세상에서 몸이 방일하지 않으면
지혜 생기고 죄악이 없어지리.
과거에 입으로 지은 악업 때문에
스스로 뉘우치고 한탄하는 것
현재 세상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지혜 생기고 죄악이 없어지리.
과거에 뜻으로 지은 악업 때문에
스스로 뉘우치고 한탄하는 것
현재 세상에서 뜻이 늘 청정하면
지혜 생기고 죄악이 없어지리.
몸을 조심하는 것 용맹하다 하고
입을 조심하는 것 또한 그렇다 하네.
뜻을 조심하는 것 용맹하다 하고
모든 번뇌에 대해서도 그렇다 하네.
그 법은 죽지 않는 법이라 하니
어디를 가나 근심 걱정 없으리.
몸을 단속하는 것 좋은 일이요
입을 단속하는 것 또한 좋은 일이다.
뜻을 단속하는 것 좋은 일이요
모두를 단속하는 것 또한 그러하나니
필추여, 일체를 잘 단속하라.
온갖 괴로움 완전히 없어지리라.
입과 뜻을 단속해 깨끗이 하고
그 몸으로 끝끝내 악을 짓지 말라.
이 세 가지 업(業) 깨끗이 하는 것

이러한 도는 부처님[大仙]의 말씀이니라.
8. 어언품(語言品)
거짓말하면 지옥에 들어가며
그런 일 하고서도 안 했다 하면
뒷날에 두 가지 죄 함께 받나니
그런 행은 제 몸을 끌고 간다네.
항상 포악한 마음 품은 사람은
도끼가 그 입 속에서 나와
그것으로 제 몸을 해치나니
그것은 모두 악한 말 때문이다.
설법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며
입으로는 한량없는 도를 말하지만
나로 하여금 애를 배게 했다 하는구나.22)
그런 위의가 부끄럽지 않은가?
악한 이를 칭찬하고 악한 이에게 칭찬 받는 것
이 두 가지 모두 다 나쁜 일이다.
입으로 서로 다투기를 좋아하면
그들은 뒷날에 모두 편치 않으리.
조그만 이익 때문에 서로 다투되
큰 재물을 잃은 듯이 생각한다.
그 때문에 사람들과 다투고 싸워
그 뜻을 나쁜 길로 향하게 한다.
백천 개의 니라부(尼羅浮) 지옥과
365개의 지옥이 있나니
성현을 헐뜯고 비방하는 사람은
그 입과 뜻으로 악한 원을 세우는 것이다.
도가 없으면 나쁜 세계 떨어져
스스로 지옥의 고통을 더하나니
무지한 이 멀리하고 참는 마음 닦으며
진리를 생각하면 죄 짓지 않으리.
부처님 말씀인 경전을 의지하고
또 성현들을 의지하여 생활하여라.
어리석은 사람은 나쁜 길에 떨어지면서도
오히려 삿된 소견 갖기 원하네.
지금 이 좋은 모임 놓쳐 버리면
다시 서원 세워 구하더라도
끝내 거룩한 진리 못 보겠거늘
더구나 구경(究竟)의 자리 볼 수 있으랴.
대와 갈대는 열매 맺곤 저절로 말라
도리어 제 몸을 해쳐 죽인다.
만일 말을 하려거든 좋은 말만 하고
나쁜 법 가르치는 말은 하지 말아라.
선(善)을 따르면 해탈을 얻고
악(惡)을 행하면 해탈하지 못한다.
잘 해탈한 이를 현자(賢者)라 하는데
그는 나쁜 세계를 벗어난 이라네.
성현의 해탈은 저 어리석은 사람이
얻었다는 해탈과는 같지 않다네.
필추는 언제나 그 뜻을 겸손히 갖고
말이 조급하지 않고 충직함 얻어
이치를 말하고 법답게 말하나니
그 말은 부드럽고 맛이 있다네.
성현의 가르침을 잘 설명하되
법을 법답게 말하는 데 두 가지23)가 있고
생각을 생각대로 말하는 데 세 가지24)가 있으며
진리를 진리대로 말하는 데 네 가지25)가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말하는 사람은
반드시 마음에 걱정이 없게 하고
굳이 중생을 이기려 하지 않으면
그를 잘 말하는 사람이라 하리라.
말을 하되 남의 뜻에 꼭 맞게 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기쁘게 하고
또 나쁜 뜻을 품지 않게 하리니

그 사람이 하는 말 모두 다 옳다 하리라.
지극한 정성으로 감로법(甘露法) 말하면
그보다 뛰어난 설법은 없을 것이요
진리를 법답게 자세히 말해 주면
그것으로 도의 근본 세우게 된다.
부처님의 말씀처럼 말하는 사람
그는 상서로워 열반을 얻고
능히 괴로움을 끝까지 끊나니
그 말은 말 중의 최상이니라.
9. 업품(業品)
한 가지 법을 멀리 여의어야 하나니
이른바 거짓말하는 사람이니라.
그는 모든 악을 빠짐없이 행하고
후세의 고통을 면하지 못한다.
차라리 불에 달군 쇠 탄알을 삼키거나
구리쇠 끓인 물을 마실지언정
계율을 지키지 못하는 몸으로써
남이 믿음으로 주는 보시 먹지 않으리.
계율을 범하고 방일하게 행동하는 사람
그 나라 안의 그냥 고깃덩어리 같은 존재다.
부끄럼 없고 죄를 겁내지 않다가
뒤에 가서 지옥의 재앙 받으리.
누구든지 괴로움의 과보 두려워하거나
또 괴로움 받는 것 좋아하지 않거든
부디 온갖 나쁜 짓 행하지 말라.
나쁜 일 생각하면 곧 후회하리라.
마음을 다해 온갖 악(惡)을 행하되
제 자신도 행하고 남을 시켜 행하면
괴로움의 과보 면하지 못하리니
피하려 애써 봐도 아무 소용없으리.
허공도 아니요 바다 속도 아니며
깊은 산 바위틈에 들어도 아니 된다.
전생에 지은 악으로 받는 재앙
그런 곳에서는 피할 수 없다.
중생들에겐 누구나 고뇌가 있어
늙고 죽음 면할 길이 없나니
오직 인자하고 지혜로운 사람만이
죄의 결박을 면할 수 있다.
거짓말하여 뇌물 구하고
스스로 지은 일 바르지 못한 데다
선량한 사람을 원망하고 모함하며
착한 사람을 억울하게 다스리면
그 죄는 그런 사람을 단단하게 결박하여
깊고 험한 구덩이에 떨어뜨린다.
대개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포악한 사람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저마다 스스로 자기 몸만 위하면
그 과보 끝내 없어지지 않으리.
몸을 움직이거나 또 몸을 굽히거나
그 그림자만은 항상 붙어 다니나니
일어나거나 가거나 또 오거나
그림자는 그 몸을 떠나지 않는다.
그림자가 그 형체를 따를 뿐만 아니라
형체도 그림자를 스스로 따르나니
선(善)한 짓을 하든지 악한 짓을 하든지
끝내 그 몸을 떠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전에 한 말을 따르지 않고
맛을 탐하여 독한 음식 먹다가
결국은 그 독(毒)의 해침을 받고서야
비로소 그 이치 스스로 깨달았구나.
어리석은 마음이 열리지 않아
악을 익히며 내 말을 따르지 않다가
지옥의 고통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그 교훈을 깨달았으리.
장난으로 웃으며 악을 짓지만

이미 지은 죄는 제 몸이 스스로 받네.
울부짖으며 죄의 과보 받나니
그 행을 따라 그 죄가 온 것이다.
악의 과보 당장 받지 않는 것이
마치 금시 짜낸 소젖과 같다.26)
죄는 그늘에 숨어서 엿보나니
마치 재[灰]에 덮여 있는 불과 같다.
악의 과보 당장 받지 않는 것이
마치 저 날카로운 칼날 같나니
뒷세상 일을 걱정하지 않지만
반드시 그 고통의 과보 받게 되리라.
악을 저질러 악에 얽매이건만
악을 저지르고도 깨닫지 못하다가
악의 과보 닥쳐서야 악의 과보 이른 줄 알고
악의 과보 받고서야 악의 근원을 안다.
마치 쇠에서 더러운 녹[垢]이 생겨
도리어 그 쇠를 삭게 하는 것처럼
제 마음에서 악이 생겨나
도리어 그 몸을 망치게 한다.
10. 정신품(正信品)
마음ㆍ부끄러움ㆍ계율ㆍ보시
높은 선비들 이 법을 칭찬하고
또 이 도는 밝은 지혜 가진 이의 말씀이니
이 도를 닦으면 천상 세계에 태어나리라.
어리석은 사람 하늘의 행 닦지 않고
또한 보시도 칭찬하지 않지만
정직하고 보시하기 좋아하는 이
그는 뒷세상에 복락을 누리리.
믿음은 진인(眞人)의 제일 으뜸이요
바른 법 생각하면 머무는 곳 편안하다.
가까이하면 그 뜻이 최상이 되고
지혜의 수명은 수명 중의 제일이라네.
사람의 업으로는 무엇이 제일이며
무엇을 행하면 기쁨을 이루는가?
어떠한 법이 해탈하는 법이며
어떤 수명이 수명 중의 제일인가?
믿음은 진인의 제일 으뜸이요
바른 법 생각하면 머무는 곳 편안하다.
진실하면 그 뜻이 최상이 되고
지혜의 수명이 수명 중에 제일이다.
믿음의 재물은 곧 도(道)를 얻어
저절로 열반(涅槃)의 법 이루고
잘 들으면 그 따라 지혜 얻어
일체의 결박에서 벗어나리라.
믿음과 또 계율의 법
그리고 지혜의 생각 잘 닦으면
건장한 장부는 분노를 이겨낼 수 있어
그로 인해 생사(生死)의 늪 벗어나리.
믿음은 계율을 성취시키고
수명과 지혜를 얻게 하나니
어디 있으나 그것을 잘 행하면
그 사람 어딜 가나 공양 받는다.
보시와 다툼이 함께 모여 있으면
그런 업(業)엔 지혜가 머물지 않나니
보시할 때요 싸울 때가 아니다.
빨리 보시하지 무엇을 망설이는가?
이 세상에 출세(出世)할 이익 살펴볼 때
슬기와 믿음이 지혜의 어머니 된다.
그 재물은 세상 벗어나는 보물이요
집 안의 살림이란 덧없는 것이니라.
온갖 진실한 것, 보고 싶거든
법의 가르침 듣기를 좋아하며
인색한 더러운 마음 버리면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믿음이니라.

믿음은 생존의 강을 건너고
그 복은 어느 누구도 빼앗기 어렵다.
그것은 어떠한 도적도 막아내나니
그래서 한가하고 고요한 사문은 즐거우니라.
사문이 언제나 찾아오는 것
지혜로운 사람은 즐겨 맞으며
독실히 믿는 다른 사람도
그 말을 들으면 기쁜 마음 생긴다.
만일 어떤 사람이 고민을 품고
남의 의복과 음식을 탐하면
그 사람은 밤낮으로 어느 때나
삼마지(三摩地)를 얻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든 탐욕 끊기를
마치 다라수(多羅樹)27)를 베어내듯 하면
그 사람은 밤낮으로 그 어느 때나
삼마지를 얻게 되리라.
믿음도 없고 수행도 하지 않으며
올바른 법의 말씀 해치기 좋아하면
마치 맑은 샘물을 파려 할 때에
샘물 파다 진흙만 일으키는 것 같다.
지혜로운 사람은 믿음과 수행 익혀서
맑게 흐르는 물 우러러 즐기는 것 같나니
그는 마치 샘물을 잘 뜨는 사람이
시원한 맛 휘저어 흐리지 않는 것 같다.
믿음 있고 지혜로운 이 남에게 물들지 않고
다만 지혜롭고 어진 이와 사귄다.
좋지 않으면 그 곁을 멀리 떠나고
좋아할 만하면 그 곁에서 법을 배운다.
즐겨 믿을 것과 즐기지 않을 것을
고요한 속에서 잘 생각하여
믿음이 없는 이는 멀리 여의고
믿음과 자비를 행해야 한다.
무상(無常)과 욕탐(欲貪)
방일(放逸)과 애락(愛樂)
계(戒)ㆍ선행(善行)ㆍ어언(語言)
업(業)과 정신(正信) 모두 10품(品)이다.
11. 사문품(沙門品)
번뇌를 끊고 다른 것 항복 받으며
욕심을 떠난 것 범행(梵行)이라 하나니
모니(牟尼)의 계율 범하지 않으면
어떤 원도 이루지 못할 것 없다.
수행의 힘 만약 느슨하면
선(善)하거나 선하지 않은 행 짓고
범행(梵行)이 청정하지 못하면
좋고 큰 결과 이루지 못하리.
느슨한 모든 행동과
비열한 뜻 모두 버리고
청정한 행(行) 닦아 익히면
그 얻는 결과 끝이 없으리.
비유하면 예리한 칼을 잡을 때
느슨히 잡으면 손을 다치는 것처럼
사문이 금계(禁戒)를 지키지 않으면
지옥에 결박되어 끌려가리라.
비유하면 날카로운 칼을 잡을 때
바짝 잡으면 손을 다치지 않듯이
사문이 계율 잘 지켜 억제하면
열반의 길 점점 가까워지리.
깨닫기 어렵고 알기도 어려우니
사문으로서 만일 지혜가 적으면
온갖 생각으로 혼란만 많을 것이니
어리석은 사람은 고뇌에 이른다.
사문으로서 무슨 일을 행할 때
뜻대로 놀아 절제하지 못하면
걸음마다 자꾸만 집착 생겨서

다만 생각을 따라 치달릴 뿐이다.
공부하기 어렵고 죄 버리기 어려우며
속가(俗家)에 살기란 더욱 어렵고
모여 살 때 이익을 같이하기 어렵다지만
이 몸보다 괴로운 것 또한 없어라.
어깨에 가사를 걸쳤다 해도
악한 짓 일삼으며 버리지 않고
항상 악한 일 행할 것 생각하는 이
그 사람 곧 나쁜 길에 떨어지리라.
죄를 범하고 두려워하는 사람
거짓으로 사문이라 이름하면서
그 몸에 가사를 걸쳤지마는
사라(娑羅)나무 껍질을 쪼개는 것 같다.
이른바 장로(長老)란
꼭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다.
몸은 늙고 머리털은 희었더라도
어리석고 용렬하여 죄를 모른다.
죄와 복을 잘 아는 사람은
몸으로 범행(梵行)을 깨끗이 닦고
심오한 이치 알고 순수하고 깨끗하면
그야말로 장로라 할 수 있으리.
이른바 사문이라 불리는 사람
꼭 수염과 머리만 깎아서가 아니다.
거짓말 잘하고 탐애(貪愛) 많으며
욕심이 가득하면 범부(凡夫)와 같다.
세상 사람 그대를 사문이라 부르고
그대도 스스로 사문이라 일컫지만
형상과 입은 옷은 사문 같으나
마치 고기 엿보는 두루미 같구나.
욕심을 여읜 듯하나 실은 여의지 못했고
가사를 입었지만 번뇌는 못 버렸으며
발우를 가졌지만 실은 가진 게 아니니
이는 속인도 아니요 사문도 아니니라.
이른바 사문이란
솔토라(窣兎羅)를 녹여 없애고
조그만 허물도 조심해야만
진실로 범행(梵行) 닦는다 할 수 있으리.
이른바 사문이란
마음을 쉬고 잡생각 없애고
더러운 때 모두 없앤 자이니
그러므로 출가한 사람이라 한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