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법집요송경(法集要頌經) 3권
법집요송경 제3권
법구 편찬
천식재 한역
24. 광설품(廣說品)
비록 백 개의 게송을 외우더라도
글귀의 뜻을 바르게 다 알지 못하면
차라리 한 글귀의 뜻이나마 잘 이해하여
듣고 나서 해탈(解脫)을 얻느니만 못하리.
비록 백 개의 게송을 외우더라도
밝게 알지 못하면 무슨 이익 있으리.
차라리 한 글귀의 뜻이나마 잘 이해하여
듣고 나서 마음을 쉬느니만 못하리.
아무리 많은 게송 안다 하여도
행하지 않으면 무슨 이익 있으리.
한 글귀의 뜻이나마 잘 실천하여
익히고 닦아 도를 얻느니만 못하리.
사람이 백 년 동안 오래 살아도
계율을 깨뜨리고 그 뜻이 쉼이 없으면
단 하루나마 계율을 지니고서
공양하는 사람만 못하리.
사람이 백 년 동안 오래 살아도
게으르고 느려서 정진하지 않으면
단 하루나마 용맹(勇猛)스럽게
정진(精進)하는 것만 못하느니라.
사람이 백 년 동안 오래 살아도
생멸(生滅)하는 법을 관찰하지 않으면
단 하루나마 나고 멸(滅)하는
그 법을 아는 것만 못하리.
사람이 백 년 동안 오래 살아도
성패(成敗)하는 일을 관찰하지 않으면
단 하루나마 미세한 일을 살펴
기피해야 할 것을 아느니만 못하리.
사람이 백 년 동안 오래 살아도
무루(無漏)의 글귀를 보지 못하면
단 하루나마 무루의 도(道)를
얻어 보는 것만 못하리.
사람이 백 년 동안 오래 살아도
흔들림이 없는 글귀 보지 못하면
단 하루나마 흔들림이 없는
그 도를 보는 것만 못하리.
사람이 백 년 동안 오래 살아도
보기 힘든 글귀를 보지 못하면
단 하루나마 미묘한 도를
보는 것만 못하리.
사람이 백 년 동안 오래 살아도
남이 없는[無生] 글귀를 보지 못하면
단 하루나마 남이 없는 도를
얻어 보는 것만 못하리.
사람이 백 년 동안 오래 살아도
지음이 없는[無作] 글귀 보지 못하면
단 하루나마 지음이 없는 도를
얻어 보는 것만 못하리.
사람이 백 년 동안 오래 살아도
최상(最上)의 글귀를 보지 못하면
단 하루나마 최상의 도를
얻어 보는 것만 못하리.
사람이 백 년 동안 오래 살아도
적멸(寂滅)의 글귀를 보지 못하면
단 하루나마 적멸의 도를
얻어 보는 것만 못하리.
사람이 백 년 동안 오래 살아도
감로(甘露)의 글귀를 보지 못하면
단 하루나마 감로의 맛을
얻어먹는 것만 못하리.
사람이 백 년 동안 오래 살아도
번뇌[垢]가 없는 글귀 보지 못하면
단 하루나마 청정(淸淨)한 도를
얻어 보는 것만 못하리.
사람이 백 년 동안 오래 살아도
번뇌[垢]를 여읜 글귀 보지 못하면
단 하루나마 그 번뇌를 여의고
해탈을 얻는 것만 못하리.
아무리 백 년 동안 오래 살면서
숲 속에서 불의 신[火神]에 제사지내도
잠깐이나마 몸을 관찰하면서
수행을 쌓느니만 못하리.
아무리 백 년 동안 오래 살면서
숲 속에서 불의 신에 제사지내도
잠깐이나마 올바른 견해로써
해탈을 얻는 것만 못하리.
이 달이 지나가고 저 달이 이르도록
어리석은 사람들 음식을 활용한다지만
저 사람들 부처님을 믿지 않으면
16분의 1조차도 얻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여러 해를 지내는 동안
신에게 제사하며 그 복을 바라지만
그 사람 그것으로는 바라는 복의
4분의 1조차도 얻지 못한다.
이 달이 지나가고 저 달이 이르도록
어리석은 사람들 음식을 활용한다지만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내지 않으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달이 지나가고 저 달이 이르도록
어리석은 사람들 음식을 활용한다지만
그 사람 법수(法數)를 알지 못하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달이 지나가고 저 달이 이르도록
항상 평등한 모임을 행하여도
그 사람 부처님을 믿지 않으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달이 지나가고 저 달이 이르도록
항상 평등한 모임을 행하여도
그 사람 법을 믿지 않으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달이 지나가고 저 달이 이르도록
항상 평등한 모임을 행하여도
그 사람이 승단(僧團)을 믿지 않으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달마다 항상 천 번을 제사지내고
한결같이 평등하게 보시하여도
그에게 자비한 마음 없으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달마다 항상 천 번을 제사지내고
한결같이 평등하게 보시하여도
그가 곤충까지도 불쌍히 여기지 않으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달마다 항상 천 번을 제사지내고
한결같이 평등하게 보시하여도
가엾이 여기는 마음 없으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달마다 항상 천 번을 제사지내고
한결같이 평등하게 보시하여도
원망하고 한(恨)하는 마음 가지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달마다 항상 천 번을 제사지내고
한결같이 평등하게 보시하여도
열반의 법[擇滅法]을 보지 못하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달마다 항상 천 번을 제사지내고
몸이 마치도록 그치지 않는다 해도
잠깐 동안이나마 한결같은 마음으로
참다운 법 생각함만 못하리니
한결같이 생각한 복(福) 끝이 없어서
저 한평생 제사지낸 것보다 나으리라.
아무리 백 년의 목숨 마칠 때까지
저 불의 신을 받들어 제사지낸다 해도
잠깐 동안이나마 불(佛)ㆍ법(法)ㆍ승(僧)에
공양하는 것만 못하리니
한결같은 생각으로 공양한 복은
저 한평생 제사 지낸 것보다 나으리라.
25. 선우품(善友品)
믿음은 없고 미워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가져
이 사람 저 사람과 어지럽게 싸우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들의 꺼림을 받건마는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즐거워한다.
믿음이 있고 미움과 질투 없으며
정진하고 진실로 많이 들어 알면
지혜로운 사람에게 존경받나니
성현은 그것을 즐거워한다.
나쁜 벗들과 친하지 말고
법이 아닌 모임에 참여하지 말라.
착한 벗들과 가까이하고
항상 바른 법의 모임에 참여하여라.
길을 갈 때에는 늘 조심하라.
계율 지키고 많이 들은 사람은
한량없는 경계를 생각하나니
그들은 그 좋은 가르침 듣고
저마다 모두들 그 차별을 안다.
악을 가까이하면 스스로 악에 빠지고
선을 익히면 좋은 이름 불러온다.
묘한 것은 언제나 저절로 묘하나니
그것은 그 몸이 참되고 바르기 때문이다.
선(善)한 사람은 끝까지 선하나니
그것은 선량함을 친근히 했기 때문이다.
지혜를 최상(最上)이라 여기고
계율을 잘 지키면 영원히 적멸(寂滅)하리라.
고기가 모여들어 비린내 날 때
사람들은 탐하여 앞다투어 잡으면서도
비린 냄새를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악(惡)을 익히는 것 그와 같아라.
다아파라(多誐波羅)45)의 잎을
사람들이 탐내어 다투어 딸 때
그 잎의 향기가 멀리 퍼지는 것처럼
선(善)을 익히는 것 그와 같아라.
나쁜 벗들을 친하여 가까이 지내면
그 더러운 죄업(罪業) 밤낮으로 늘어나나니
비유하면 저 돼지의 몸은 깨끗하지 못해
제 몸도 더럽히고 남까지 더럽히는 것과 같다.
스스로는 악(惡)을 익히지 않아도
악을 익힌 사람들과 친하여 가까이 지내면
다른 사람들의 업신여김과 비웃음 받고
나쁜 이름은 밤낮으로 성해가리.
익혀야 할 것을 관찰해 그것 익히고
가까이할 것을 알아서 그것 친하라.
독 묻은 화살이 그 묶음 속에 있으면
깨끗한 다른 것도 그 더러움 입는다.
용기 있는 장부는 더러움을 없애고
악한 사람을 떠나 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 지혜로운 사람은
그 과보를 모두 분별해 안다.46)
친하지 않아야 할 사람 친하지 말고
친하려 하거든 어진 사람과 친하라.
필추여, 부디 도를 닦아 행하여
괴로움 참아내고 온갖 번뇌 다 없애라.
어리석은 사람은 목숨이 다하도록
지혜로운 사람을 받들어 섬겨도
참다운 법[眞法]을 알지 못하나니
국자[杓]로 음식을 푸는 것 같다.
지혜로운 사람은 잠깐이나마
성인(聖人)이나 현인(賢人)을 받들어 섬기면
참다운 법을 낱낱이 다 아나니
마치 혀가 온갖 맛 아는 것 같다.
지혜로운 사람은 한 글귀 연구하여
한량없는 그 이치 풀어내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천 글귀를 외워도
한 글귀의 이치도 알지 못한다.
한 글귀의 이치나마 성취하려고
지혜로운 사람은 공부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부처님의 말씀
멀리 떠나는 것을 즐거워한다.
원한과 미움도 지혜로써 이기나니
친한 벗의 의리 따윈 따르지 않는다네.
어리석은 사람은 그릇된 도를 가르쳐
차츰차츰 지옥의 길로 나아가게 해서라네.
어리석은 사람도 스스로 어리석다 말하면
그 사람 지혜로운 사람인 줄 알아야 하겠지만
어리석은 사람이 스스로 지혜롭다 말하면
그야말로 너무나 어리석은 사람이니라.
혹 어떤 이는 어리석은 이를 칭찬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헐뜯고 비방하나니
지혜로운 이를 비방함은 그래도 낫지만
어리석은 사람 칭찬함은 더욱 나쁘다.
어리석은 이를 보거나 그의 말을 듣지 말고
또한 그들과 함께 기거하지 말라.
어리석은 사람과 함께 살기 어렵기는
마치 저 원수와 함께 사는 것과 같다.
어리석은 이를 보거나 그의 말을 듣지 말고
또한 그들과 함께 기거하지 말라.
어리석은 사람과 함께 살기 어렵기는
마치 저 원수와 함께 사는 것과 같다.
부디 사람을 가려 함께 기거하되
친척들과 함께 모여 살듯이 하라.
그러므로 많이 들어 아는 사람과
또는 계율을 잘 지키는 이를 섬겨라.
그런 사람은 사람 중의 최상(最上)으로
마치 별들 속에 있는 달과 같다네.
26. 원적품(圓寂品)
거북이 여섯 기관 감추는 것처럼
필추여, 그 생각 거두어 잡아라.
의지하지도 않고 남을 해치지도 않아
원적(圓寂)에 들면 아무 말도 없느니라.
인욕(忍辱)하는 것을 제일의 도라 하고
부처님께서는 원적을 최상(最上)이라 하셨나니
마음에 뜨거운 번뇌를 품거나 하여
남 해치지 않는 자를 사문(沙門)이라 한다.
부디 추하고 거친 말은 쓰지 말고
설법은 언제나 변재(辯才) 있게 하여라.
들은 것 적으면서 남과 논란 벌이면
도리어 그들에게 굴복하게 되리라.
스스로 자주 번뇌를 일으키면
그는 마치 부서진 그릇 같으리니
생사(生死)에 자꾸만 흘러 돌아서
영원히 빠진 채 나올 기약 없으리.
만일 스스로 번뇌하지 않으면
완전하고 튼튼한 그릇 같나니
그리하여 그는 원적에 이르게 되어
온갖 먼지의 가림 영원토록 없으리.
병이 없는 것 제일가는 이익이요
만족할 줄 아는 것 제일가는 부자이며
친한 친척이 바로 제일가는 벗이요
원적(圓寂)이 제일가는 즐거움이다.
굶주림이 제일가는 근심이 되고
행(行)이 제일가는 괴로움 되나니
이런 줄을 여실히 아는 사람은
원적이 제일가는 즐거움이니라.
가장 묘한 성인의 가르침은
흘러 퍼져서 그 끝이 없나니
세상 사람들 서로 전하여 익히되
조금도 싫증을 내는 이 없다.
어느 것도 그것과 짝할 수 없는
말씀하신 저 좋은 가르침
몸을 핍박하는 괴로움 중에
굶주림의 괴로움보다 더한 것 있으랴.
선(善)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적고
악(惡)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많다.
이런 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은
저 원적(圓寂)을 서둘러 구한다.
인연이 있어 좋은 세계에 나고
인연이 있어 나쁜 세계에 나며
인연이 있어 열반에 드나니
이와 같이 모두 다 인연이 있다.
사슴들은 들판으로 돌아가고
새들은 허공으로 돌아가며
이치는 모두 분별로 돌아가고
진인(眞人)은 다 적멸(寂滅)로 돌아간다.
게으르고 나태한 생각으로
비겁하고 나약한 곳에 이르지 말아야 하리니
저 원적을 구하려고 하거든
온갖 결박과 집착 태워 버려라.
필추여, 빨리 배 안의 물 퍼내라.
물을 퍼내면 그 배는 가벼워지리.
탐욕(貪欲)의 정(情)을 끊기를 구하라.
그러고 난 뒤라야 원적에 이르리라.
내가 가진 것 본래 없던 것이요
본래 있던 것 지금 내게는 없다.
없는 것도 아니요 있는 것도 아니니
지금에 있어서는 얻을 수 없다.
보기 어려운 진리는 움직이지 않는 것
잘 관찰하여 움직이지 말고
애욕이 다하는 근원을 관찰하라.
그것을 온갖 업(業)의 끝이라 한다.
애욕(愛欲)을 끊고 탐욕(貪欲)을 버려라.
강을 말리면 흐름의 징조 없으리.
이 애욕의 근본을 밝게 알면
그것을 괴로움의 끝이라 한다.
몸을 없애고 생각마저 없애면
모든 고통 시원해지고
온갖 행을 아주 쉬어 버리면
망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리니
만일 이런 줄을 사실대로 알면
그것을 괴로움의 끝이라 한다.
머물면 동요하고 비우면 고요해지나니
동요함을 가까이 하지도 말고 쾌락도 가지지 말라.
동요됨이 없어야 가뿐하고 편안해지며
고요해지면 비로소 원적을 얻으리라.
그것은 가고 오는 데 있지 않나니
가고 오는 것과 생멸(生滅)을 끊으면
늙고 죽는 번뇌가 없어질 것이요
괴로움을 끊으면 원적을 얻으리.
내게는 이미 왕래(往來)가 없으니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다.
죽지도 않고 또한 나지도 않나니
이런 경지를 원적이라 말한다네.
이 생(生)의 본말(本末)을 잘 알고 나면
유위(有爲)도 무위(無爲)임을 알 수 있지만
나고 죽음에 얽매여 있으면
그 결박 진실로 끊어내기 어렵다.
이와 같이 4대(大)로 된 몸에는
5온(蘊)의 고뇌가 모여 있나니
편안하게 머물러 진실로 고통 관찰하라.
그 고통 없애면 원적을 얻으리라.
모든 법(法)에는 왕래가 없건만
왕래하면서 항상 생멸(生滅)하기 때문에
늙음ㆍ병듦ㆍ죽음에 떠돌아다니나니
그 번뇌 다 없애면 원적을 얻으리라.
필추여, 이 세상에 태어났기에
지음 있는 것이니 다시는 지어 행하지 말라.
이 몸은 남[生]도 없고 존재하는 것도 아니거니
지음이 없을 때엔 행(行) 또한 없으리.
필추여, 나는 이미 알았다.
다시는 모든 땅의 경계도 없고
그리고 또 허공의 경계도 없으며
아무것도 없는 경계도 없다.
생각 없고 생각 아닌 경계도 없으며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해와 달이라는 생각도 없고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다네.
음식을 좇아 인연이 있게 되고
음식으로 근심과 즐거움이 생기나니
이것을 기어이 없애 버려야
온갖 괴로움의 법 끊어지리라.
음식이 아니면 목숨을 건지지 못하나니
어느 누가 음식을 먹지 않으랴.
그러므로 음식을 내세워 우선해야만
비로소 저 도(道)에 이를 수 있으리.
땅의 요소와 물과 불의 요소일 때
그 때에 만일 바람이 불지 않고
광명의 불꽃이 비치지 않았으면
그것들의 참 모양을 보지 못했으리.
달이 아니면 빛이 있을 수 없고
해가 아니면 밝게 비춤이 있을 수 없다.
이것을 자세히 관찰하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진정한 원적에 호응할 수 있으리.
단정(端正)한 빛[色]은 조용하여
일체의 고통을 벗어났으니
빛깔도 아니요 빛깔 없는 것도 아니어서
제일가는 괴로움을 벗어난다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두려워하지 않고
결박에서 풀리면 의심이 없어지리니
생존에 대한 욕망의 가시 끊지 못했다면
이 몸의 근심됨을 어떻게 알리.
이른바 그 마지막이란
원적이 제일이 되나니
온갖 생각과 집착 끊어 없애라.
이 문구는 조금도 틀림이 없다.
절제할 줄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지만
가장 훌륭한 이는 존재의 행(行) 버리고
마음으로 그 행을 생각해
마치 알[卵]이 그 막(膜)을 깨는 것처럼 한다네.
온갖 보시 중에 법(法) 보시가 으뜸이요
온갖 즐거움 중에 법의 즐거움 제일이며
온갖 힘 가운데선 참는 힘이 최상이요
애욕 다한 원적의 경지가 가장 즐겁다.
27. 관찰품(觀察品)
자기의 허물을 잘 관찰하고
자기를 밖으로 드러내지 말라.
사람은 누구에게나 허물이 있나니
가벼운 티끌을 날리는 것 같아라.
자기에게 허물이 없다고 말하면
죄(罪)와 복(福)이 한꺼번에 올 것이요
단지 다른 사람의 허물만 보면
언제나 무명(無明)의 생각만 품으리라.
부끄러움 아는 것이 수명 중에 최상이니
어찌하여 탐욕으로 제 몸을 결박하랴.
역사(力士)는 두려움이나 꺼려함이 없으니
그런 사람들 수명 길지 못하네.
부끄러움을 알면 그 수명 끝이 없나니
한결같이 청정한 행(行)을 구하라.
위의(威儀)에 결함이 없게 하려면
진실하고 청정한 수명에 대해 관찰하라.
세상 사람들 모두 눈이 어둡고
지혜의 눈 가진 이 아주 적구나.
온갖 새들 모두 그물에 걸리고 마니
하늘에 태어나는 중생이야 말해 무엇하리.
이 세상의 온갖 쇠하는 법 관찰할 때
다만 모든 물질의 변함만 보일 뿐인데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얽매여서
어둠 속에 겹겹이 싸여 있다.
그리하여 어떤 행(行)도 볼 수 없고
보고도 또한 아무 가짐도 없다.
중생들 모두 나라는 것 있다고 하여
그 때문에 온갖 근심 걱정 생긴다.
그들은 하나하나 서로 보지 못하고
삿된 소견의 가시를 보지 못한다.
그 가시의 인연을 관찰할 때에
중생들 대부분 그것에 집착하여
내가 지은 것이요 그의 소유 아니며
그가 지은 것이요 나의 소유 아니라 하네.
중생들 교만의 끈에 얽매여 있고
그 교만에 물들어 집착하고 있다.
또한 그 소견에 미혹되어서
생사(生死)의 영역 벗어나지 못한다.
이미 얻은 것이거나 장차 얻을 것
이 두 가지는 다 같이 번뇌를 받나니
갖가지 병의 근본을 배워 익히고
배워야 할 모든 것 배워라.
계율을 지키는 모든 사람들과
범행(梵行)이 청정한 사람들을 관찰하고
병들고 약한 사람을 보살펴 주면
그런 사람을 마지막 경지에 이르렀다 한다.
이 몸은 물 위의 거품 같다고 관찰하고
또한 허깨비나 아지랑이처럼 보아라.
이 몸을 이와 같이 보지 않으면
저 죽음이 닥쳐와도 보지 못하리.
이 세상을 물 위의 거품 같다고 관찰하고
또한 허깨비나 아지랑이처럼 보아라.
이 세상을 이와 같이 보지 않으면
또한 죽음의 왕도 보지 못하리.
온갖 빛깔로 장식한 왕의 수레와 같다고
이 몸을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하건만
어리석은 사람은 거기에 집착하나니
그러므로 그것을 멀리 여의기를 구하라.
온갖 빛깔로 장식한 왕의 수레와 같다고
이 몸을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하건만
어리석은 사람은 거기에 집착해 버리고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멀리 떠난다.
온갖 병(病)의 원인이라고
이 몸을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한다네.
병과 어리석음이 한데 모인 것이니
어떻게 그것을 믿을 수 있으랴.
저 마니(摩尼) 구슬처럼 검푸른 머리털도
그림 속의 형상(形像)이라 관찰해야 하건만
어리석은 사람은 거기에 묶여 버려
저 언덕으로 건너려 하지 않는다.
저 마니 구슬처럼 검푸른 머리털도
그림 속의 형상이라 관찰해야 하건만
어리석은 사람은 거기에 묶여 버리고
지혜로운 사람은 싫어하고 걱정한다.
애써 물감으로 형상을 그리고
추하고 더러운 몸 아름답게 꾸미면
어리석은 사람은 거기에 묶여 버려
제 몸47)을 구제하여 해탈하려 하지 않네.
여덟 갈래로 머리털을 갈라 땋고
두 귀에 아름다운 귀걸이를 박으면
어리석은 사람은 거기에 집착하여
제 몸을 구제하여 해탈하려 하지 않네.
애욕에 집착하고 탐욕에 물들어
그 번뇌[結使]의 인연을 밝히지 않네.
그런 번뇌 생기지 않게 하려면
욕유(欲有)의 흐름을 벗어나야 한다.
동산[園]을 비난하고 거기에서 나왔다가
나왔던 동산으로 다시 들어가듯이
부디 그런 사람을 잘 관찰하여라.
결박에서 벗어났다 도로 묶이는구나.
나는 지금 천왕의 자리도 버리고
생사의 근본도 짓지 않으며
지옥의 고통을 여의려고 하나니
원컨대 원적의 즐거움 설명하소서.
하인[靑衣]이 흰 일산 받쳐 들고
어자(御者)가 한 수레 몰아가더라도
저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보이거든
그 결박과 집착을 끊도록 노력하라.
대부분 사람들은 제 의지할 곳 찾아서
산이나 냇가나 나무의 신에게 귀의하고
또는 사원[園觀]이나 신을 모신 사당
이런 데 기대어 괴로움과 환란을 면하려 한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훌륭한 귀의가 아니요
또한 거기에는 좋은 이익 없나니
만일 그런 곳에 귀의하는 사람은
어떤 고통도 벗어나지 못한다.
만일 누구나 스스로 부처님께 귀의하고
그 가르침과 또 비구 대중에 귀의하고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諦] 닦아 익히면
그것은 지혜로운 이의 소견과 같은 것이다.
괴로움의 인연에서 괴로움 생기나니
부디 이 괴로움의 근본을 벗어나라.
저 성현의 여덟 가지 길[八品道]48)은
모든 번뇌 없어진 감로의 경지이다.
이것이 최상(最上)의 귀의가 되고
좋은 이익은 모두 거기에 있네.
만일 누구든지 그렇게 귀의하는 이는
일체의 고통에서 벗어나리라.
현재에도 과거에도 미래에도 관찰하고
관찰하지 못한 것 반드시 관찰하라.
관찰하고 다시 되풀이해 관찰하되
이미 관찰한 것이면 다시는 관찰하지 말라.
관찰하고 다시 되풀이해 관찰하여
그 성질의 근본을 분별(分別)하라.
낮을 헤아려 밤이라 생각하면
보배스런 몸도 머지않아 부서지리.
관찰하되 되풀이해 관찰하지 않으면
비록 보았다 해도 본 것이 아니니
만일 보았어도 본 것이 아니라면
관찰했으면서도 보지 못한 것이다.
어떤 것이 본 것이고 보지 못한 것이며
어떤 것을 보고 보지 못한 것이라 말하는가?
무엇 때문에 보고 보지 못하는 것이며
무엇을 보아야만 생사(生死)를 해탈하는가?
아직도 괴로움을 보지 못하였거든
언제나 깊이 스스로 관찰하라.
그리하여 괴로움의 근본을 알면
그것을 밝고 묘한 관찰이라 한다네.
무엇이 저 범부들로 하여금
온갖 행의 근본을 못 보게 하는가?
그것으로 인하여 잘 관찰하면
어둠을 버리고 큰 밝음 보리라.
28. 죄장품(罪障品)
어떠한 나쁜 업[惡業]도 짓지 말고
모든 선한 업[善業]을 받들어 행하라.
생각과 행동거지 스스로 깨끗이 하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보시 행하면 복의 과보 얻나니
성내는 마음 품어 간직하지 말라.
선(善)으로써 그 악(惡)을 없애 버리면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 남지 않으리.
혼자서 행할지언정 어리석은 이 좇지 말고
일행을 구하려거든 지혜로운 이를 따라라.
지혜로운 사람이 악을 없애는 것은
학(鶴)이 젖을 가려서 먹는 것 같다.
세상의 여러 가지 변화를 관찰하여
모든 법 생기고 사라지는 자취를 알라.
현성(賢聖)은 이 세상을 좋아하지 않고
어리석은 사람은 어진 이와 함께 살지 않는다.
아주 맛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 알고
쉬어 그침의 이치를 잘 생각하면
번열도 없고 굶주림의 생각도 없나니
부디 법의 맛을 맛보아야 한다.
사람이 그 마음 손상하지 않고
또한 그 뜻을 훼손하지 않으며
선으로써 악을 아주 멸해 없애면
나쁜 길에 떨어질 걱정 없으리.
사람이 그 정신 단련시키려 하면
반드시 자주 갈고 닦아야 한다.
지혜 있는 이는 새기고 꾸미기 쉬우므로
세상의 대장부(大丈夫)라 하나니
그런 이와 친해서 가까이할 수만 있으면
안온(安穩)하여 걱정과 번뇌 없으리.
아주 쉬어 보다 나을 이 없는 사람은
부드럽고 온화하여 사납고 경솔하지 않나니
그런 사람 온갖 나쁜 법 불어 버리기를
바람이 나뭇잎을 떨구듯이 한다네.
까닭 없이 다른 사람 두려워하고
청정한 사람을 헐뜯고 비방하면
곧바로 악(惡)이 위력을 얻어
그 사람 바람에 날리는 구름 같으리.
사람이 선이나 악을 행할 때
저마다 스스로 그것을 아나니
선을 닦으면 선의 과보를 얻고
악을 행하면 나쁜 세계에 떨어진다.
자기의 깨끗하고 더러움 알면 그만이지
무엇 하러 남의 더러움을 염려하랴.
어리석은 사람 스스로 단련하지 못하여
마치 쇠로 순전한 강철을 베는 것 같다.
만일 눈으로 그릇된 일을 보더라도
영리한 사람은 방편(方便)을 구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온갖 나쁜 일 행하지 않는다.
장사꾼은 길가면서 두려워하나니
동행은 적고 재물은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험난한 곳을 지나갈 때는
수레 굴대 부러질까 걱정을 한다.
몸이 있어도 부스럼이 없으면
독(毒)으로 인한 해를 입지 않는다.
부스럼이 없는데 독인들 어찌하리.
악이 없으면 지을 것 또한 없네.
여러 가지 악을 많이 행하면
반드시 그 몸에 재앙[累]이 되나니
선을 베풀고 은덕을 펴는 일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장하여라, 선(善)을 닦는 사람이여,
안타까워라, 악(惡)을 행하는 이여,
악한 사람 악한 일 하기는 쉽지만
악한 사람이 선한 일 하기는 어렵다.
어리석은 이 스스로 바르다 말할 때는
아직 악이 완전히 성숙하기 전이다.
악이 이미 완전히 성숙되었을 때는
온갖 괴로움도 그 따라 성숙된다.
어진 사람은 악한 일을 보더라도
그 악한 일 때문에 물들지 않나니
만일 그 악이 아직 익지 않았거든
악한 사람이여, 그 악을 관찰하여라.
어진 사람은 악한 일을 보더라도
나아가 그 현명함에도 집착하지 않나니
가령 그 현명함에 집착하게 되면
어진 이여, 그 어진 것 스스로 관찰하라.
사람이 비록 악을 행했더라도
그 악을 되풀이해 행하지 말라.
그것에 대해 뜻으로 즐거워 말라.
그 악이 괴로움이 되는 줄 알아야 하리.
사람이 능히 복을 짓게 되거든
부디 그 복을 되풀이해 지어라.
그것에 대해 뜻으로 즐거워하면
그 복의 과보를 잘 사랑하리라.49)
마땅히 먼저 선한 마음을 짓고
악의 근본을 잘 거두어 잡아
그로써 복의 업을 일으켜야 하나니
마음이란 악을 즐거워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지은 악이 적다 하여도
뒷세상에 받는 고통은 매우 심하다.
장차 끝없이 받을 그 과보(果報)50)
마치 독이 뱃속에 있는 것 같다.
비록 지은 복이 적다 하여도
뒷세상에 큰 복덕(福德) 받으리.
그가 장차 얻게 될 큰 과보
종자 심어 알찬 열매 얻는 것 같다.
아무 허물도 없는데 억지로 무시하고
성내지도 않았는데 억지로 침해하면
그는 장차 십품처(十品處)51)에 해당하여
반드시 그 길로 가게 되리라.
아프고 가려운 말 추하고 또 거칠다.
이 몸은 반드시 무너져 못 쓰게 되리니
모질고 악한 온갖 병에 시달리면
마음이 어지러워 안정하지 못하리라.
종족(宗族)들 모두 이별하여 흩어지고
재물은 남김없이 소모해 다하리니
저 도적들에게 겁탈(劫奪) 당할 때
어떤 소원도 뜻대로 안 되리라.
혹은 또 무수한 재변(災變)을 당하기도 하고
화재(火災)를 만나 모두 태워지기도 하며
몸은 무너지고 지혜(智慧)가 없으므로
그 또한 저 열 가지의 곳으로 가게 되리라.
악을 지으며 죄 없다 말하지 말라.
누구나 죄 짓고도 죄 없다 말하거나
남 몰래 지으면서 죄 없다 말하는 것
그런 데엔 모두 증험(證驗)이 있으리라.
악을 지으면 근심 있다 하고
오래도록 지어도 근심 있다 하며
남 모르는 곳이라도 근심 있다 하나니
그것을 근심하고 과보 또한 근심한다.
여기서도 근심하고 저기서도 근심하며
악한 행은 두 곳에서 다 근심한다.
저기서의 근심은 과보 때문이니
행한 것 보면 곧 그 증험을 알 수 있다.
여기서도 기뻐하고 저기서도 기뻐하며
복 짓는 행은 두 곳에서 다 기뻐한다.
그러한 행으로 거기에서 과보 받나니
행한 것 보면 저절로 청정함을 안다.
여기서도 불로 지지고 저기서도 지지며
죄 지으면 두 곳에서 모두 지진다.
그러한 지짐으로 거기에서 과보 받나니
행한 것 보면 곧 그 증험을 알 수 있다.
복을 짓고 죄악(罪惡)을 짓지 않는 것
모두 전생(前生)에 행한 법 때문이다.
마침내 죽음 길도 두려워하지 않나니
마치 배가 물결 가르고 건너는 것 같다.
29. 상응품(相應品)
반딧불이가 어두움을 비출 때에는
아직 해가 뜨기 전의 일이다.
햇빛이 큰 광명 펴게 될 때는
반딧불이는 곧 새카매지고 만다.
관찰하는 사람이 광명을 펼 때는
아직 부처님께서 나오시기 전이다.
부처님께서 나오시어 큰 광명 놓으시면
관찰하는 이도 없고 성문도 없다.
단단하지 못한 것을 단단하다 생각하고
단단한 것은 단단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뒷날 단단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것,
모두가 삿된 소견 일으킨 때문이다.
단단한 것을 단단한 줄 아는 이는
단단하지 않은 건 단단하지 않은 줄 안다.
그 사람은 곧 단단한 것을 구하여
바른 다스림으로 근본을 삼는다.
어리석은 사람은 단단하다 생각하여
도리어 아홉 가지 결박을 받는데
마치 새가 그물에 걸리는 것 같나니
그것은 애욕이 깊고 단단한 때문이다.
금생(今生)에서나 후생(後生)에서나
모든 중생들 의심 품는다.
선정은 그것들 다 없앨 수 있어
괴로움 없이 범행(梵行)을 닦게 한다.
번뇌를 떠나 번뇌가 없어지면
그 사람은 이 가사 입을 만하다.
어자(御者)도 없고 이를 데도 없는 사람
그 사람은 이 법복 걸맞지 않다.
만일 능히 더러운 때를 버리고
계율ㆍ지혜ㆍ선정을 평등하게 닦으면
그는 으레 업(業)을 생각하리니
그 사람은 이 법복 입을 만하다.
부드럽고 온화한 말 쓰지 않아도
명성이 사방에 퍼지는 수 있고
좋은 얼굴빛을 가진 사람도
간교하고 거짓된 마음 품기도 한다.
이런 것 잘 끊을 수 있는 사람은
그 뿌리까지 영원히 뽑아 버린다.
지혜로운 사람이 온갖 더러움 버리면
비로소 좋은 안색(顔色) 가질 수 있다.
조용한 그 얼굴빛 따르지 말고
잠깐 보고도 그 사람의 마음을 알라.
세상엔 행동과 어긋난 사람이 많아
이 세계를 마음대로 노닐고 있다.
저 허위(虛僞)의 놋쇠 속에는
순수한 구리쇠가 있다고 속이듯
혼자 놀아 겁내고 거리낌 없는 사람
속도 더럽지만 겉도 더럽다.
음식을 탐하여 절제하지 못하면
수시로 3전(轉)을 행하더라도
우리 안에 기르는 돼지와 같아
자주자주 어미의 태(胎)를 받을 것이다.
누구나 그 마음 오로지하여
음식에 있어서 만족할 줄 알면
음식은 다만 그 몸을 지탱하는 것
목숨 기르고 도(道)를 지키려 함이니라.
깨끗하다고 보고 스스로 깨끗이 여겨
모든 감각 기관 잘 단속하지 않고
음식을 대하여 만족할 줄 모르면
그런 것은 모두가 범부의 행이다.
갈수록 탐욕(貪欲)만 자꾸 불어나
마치 집이 부서져 새는 것 같다.
부디 더러운 행이라고 관찰하여
모든 감각 기관에 결함이 없고
음식을 대하여 만족할 줄 알며
믿음 가지고 열심히 정진(精進) 행하면
탐욕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니
마치 바람에 끄떡 않는 태산 같으리.
한적한 곳은 매우 즐길 만하건만
사람들은 그것을 즐기지 않네.
탐욕이 없는 사람 항상 사는 곳이요
탐욕이 있는 사람 사는 곳 아니라네.
옮기기도 어렵고 흔들기도 어려움이
마치 저 육중한 설산(雪山) 같건만
현인이 아니면 나타내지 못하나니
마치 깜깜한 밤에 활 쏘는 것 같다.
어진 사람도 수천 명 있고
지혜로운 사람도 숲처럼 많다.
그 뜻과 이치 제아무리 깊어도
지혜로운 사람은 다 분별한다.
중생의 종류 제아무리 많아도
쏘지 않으면 맞지 않는다.
이제 그 이치 관찰한다면
계율 없는 사람이 부끄러워할 일이다.
생존[有]을 관찰하여 두려워할 줄 알라.
그 생존도 변하면 없는 것[無]이 된다.
그러므로 생존이란 즐길 만한 것 아니니
부디 멀리 여의기를 언제나 생각하라.
믿음도 없고 은혜를 갚을 줄도 모르면
담장을 뚫는 저 도적과 같다.
저 희망하는 생각을 끊어 버리면
그를 일러 용감한 사내라 할 수 있으리.
그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연과
왕의 지위와 또 두 가지를 버리며
그 경계를 두루 없애 버리고
번뇌 없는 것 범행(梵行)이라 한다.
혹은 어떤 사람은 의지하는 데 없고
저 먹는 음식 귀한 줄 알며
공(空)과 무상(無相)과 무원(無願) 삼매를
생각[思惟]하는 것으로써 행을 삼는다.
새가 저 허공을 날아갈 때
그 자취가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마치 저 수행(修行)하는 사람이
나갈 곳 없다고 말하는 것 그와 같아라.
모든 사람들 존재의 근본 잘 끊어
그렇게 되기 전에 의지하지 말고
공과 무상과 무원 삼매를
생각하는 것으로써 행을 삼아라.
드문 일이로다. 저 모든 중생들
대부분 그 성품을 따르지 않는구나.
해탈하거나 해탈하지 않는 이 있고
열반에 들기란 매우 어렵다.
모든 것 평등하게 고루 말하고
그 법과 법 모두 서로 관찰하여
온갖 번뇌[結使] 모조리 끊어 버리면
다시는 뜨거운 고뇌 없으리.
가는 길 다시는 근심이 없고
종일토록 해탈을 얻은 사람
모든 번뇌 아주 다 없어져서
다시는 아무 괴로움도 없으리.
저 허공을 날아가는 새에겐
아무런 걸림도 없는 것처럼
수행하는 사람은 무루(無漏)를 얻어
공ㆍ무상ㆍ무원의 선정 이룬다.
저 허공을 날아가는 새에겐
아무런 걸림도 없는 것처럼
수행하는 사람 저 언덕에 이르러
공ㆍ무상ㆍ무원의 선정 얻는다.
짓지도 말고 또 되풀이해 짓지도 말라.
짓는 사람은 번뇌를 받으리라.
짓는 것도 아니요 짓는 것 없지도 않으면
앞에서도 근심하고 뒤에서도 근심하리.52)
지으려면 선하고 묘(妙)한 것 지어라.
그리하면 짓고서도 근심하지 않으리.
그리고 지으면서 즐겁게 지으면
하늘에 태어나 즐거움 누리리라.
허공에는 수레바퀴 자국이 없고
사문(沙門)에겐 다른 생각이 없다.
모든 사람 누구나 악을 좋아하지만
오직 부처만이 깨끗해 더러움 없다.
허공에는 수레바퀴 자국이 없고
사문에겐 다른 생각이 없다.
이 세간(世間)은 모두 무상(無常)하지만
부처님께는 나다, 내 것이다 하는 것 없다.
모든 하늘이나 세상 사람들
일체의 행이 이치에 부합하면
모든 괴로움에서 해탈을 얻고
애욕을 떠나 생사(生死)를 면하리라.
어떤 하늘이나 세상 사람들,
일체의 행이 이치에 부합하면
능히 온갖 악한 업(業) 멀리함으로
저 나쁜 세계에 떨어지지 않으리.
또 만일 변론을 할 줄 모르면
현인(賢人)과 어리석은 이의 차별이 없겠지만
그러나 만일 변론할 줄 잘 알면
그의 말에는 때[垢]의 자국 없으리.
법의 이론에 알맞은 설명으로
선인(仙人)의 법 깃발 세워야 한다.
법의 깃발을 선인이라 하고
선인을 법의 깃발이라 한다.
혹은 잠자코 남몰래 꾸짖기도 하고
혹은 대중 있는 앞에서 꾸짖기도 하며
때로는 나직한 소리로 꾸짖기도 하나니
세상에서 꾸짖지 않는 이 없다.
한번 비방하고 한번 칭찬하는 것
다만 그 이름만 이롭게 할 뿐이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또한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좋은 것이거나 혹은 추한 것이거나
지혜로운 사람은 칭찬 받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빠뜨림 없이
지혜와 선정으로 해탈을 얻어
마치 저 자마(紫摩)의 순금처럼
안팎이 모두 맑게 트였다.
마치 저 안명산(安明山)53)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도 그와 같아서
비방이나 칭찬에 흔들리지 않는다.
만일 저 나무에 뿌리 없으면
가지도 없으려니 하물며 잎 있으랴.
건장한 사내는 결박을 풀었거니
누가 능히 그 덕을 비방(誹謗)하랴.
번뇌가 없으면 집착도 없겠거늘
몸의 구덩이에 쓴 종자를 심는다.
가장 훌륭한 이는 애욕이 없으므로
천상(天上)이나 인간에서 아는 이 없다.
우거진 숲에 그물 친 것 같아서
애욕이 없거늘 다른 것이 있으랴.
부처님은 한량없는 행이 있지만
아무 자취가 없는데 누가 자취 잡으랴.
만일 누구든지 나고 싶지 않거든
났더라도 다시는 몸 받으려 하지 말라.
부처님은 한량없는 행이 있지만
아무 자취가 없는데 누가 자취 잡으랴.
만일 그 생각 없애려 하거든
안팎의 모든 인(因)을 없애 버려라.
색(色)이란 집착보다 더한 것 없나니
네 가지 버리면 어떤 생(生)도 받지 않으리.
앞의 것도 버리고 뒤의 것도 버리고
중간 것도 버리면 존재를 초월하리.
일체를 모두 다 버리고 나면
다시는 나고 늙음 받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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