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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536 법원주림(法苑珠林) 93권

by Kay/케이 2024.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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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법원주림(法苑珠林) 93

 

 


법원주림 제93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93. 주육편(酒肉篇)[여기에는 3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음주부(飮酒部) 식육부(食肉部)

(1) 술의부(述意部)
대체로 술은 멋대로 거리낌없이 놀아나는 문[放逸之門]이라 큰 성인께서는 술이 고통의 근본임을 알려 주셨다. 그래서 술집을 멀리하고 술 먹는 일을 여의며, 술친구를 버리고, 법의 벗[法友]을 가까이 하며, 혼탁한 문을 나와서 깨달은 경지에 들어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고기를 먹는 것은 큰 자비의 종자[大慈之種]를 끊는 것이니 큰 성인께서는 그것이 살생의 원인임을 알려 주셨다. 그래서 비린내를 버리고, 몸과 입을 깨끗하게 하며, 채소를 먹으면서 정신을 맑게 하며, 자비와 선(善)을 부르면서 오래 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때문에 속서(俗書)에서도 “그 삶을 보고서야 차마 그를 죽이지 못하고, 그 소리를 듣고서야 차마 그의 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했으니, 이것 또한 죽이지 말라는 이치이다. 만일 술과 고기를 먹으면 곧 축생과 같아서 승냥이와 이리요 금수이다. 또한 온갖 권속을 갖추어 죽임으로서 그 여러 족속을 잡아먹는 것이니, 그 때는 도리어 원수가 되어 보복을 당하면서 여러 겁(劫) 동안 끊임이 없게 된다.
경론(經論)에서 말했듯이 “어느 한 여인이 5백 세상 동안 이리의 새끼를 살해하였으므로 이리 새끼도 5백 세상 동안 그의 어미를 살해하였다”고 하였고, 또 “어느 여인이 5백 세상 동안 귀신의 목숨을 끊었으므로 귀신 역시 5백 세상 동안 그의 목숨을 끊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6도(道)를 돌아다니면서 원수의 보복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혹은 세상을 지내오면서 스승이 되기도 하고, 혹은 부모가 되기도 하고, 혹은 형제가 되기도 하고, 혹은 자매가 되기도 하고, 혹은 자손이 되기도 하고, 혹은 벗이 되기도 한다.
지금은 범부의 몸이라 각자 도의 눈[道眼]이 없어서 분별하지 못하므로 도리어 서로 잡아먹어도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잡아먹히는 그 때의 생물은 영(靈)이 있으므로 곧
성을 내면서 그와 원수가 되고 그의 부모 형제가 되어서도 도리어 원수로 변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일을 어찌 생각하지 못하고 잠시 동안 혀끝으로 맛보는 한때의 맛을 다투다가 영원히 부모 형제와 더불어 길이 원수가 된다는 말인가? 참으로 애통한 마음 무어라 말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열반경(涅槃經)』에서도 “온갖 고기는 다 끊어라. 아울러 제 스스로 죽은 것도 그렇다”고 하였다. 제 스스로 죽은 것도 오히려 끊거늘 하물며 제 스스로 죽지 않은 것이겠는가? 또 『능가경(楞伽經)』에서도 이르되 “이익을 위하여 중생을 죽이고 재물 때문에 고기를 잡는 것은 두 업이 다 착하지 않은지라, 죽으면 규호(噭呼)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였다. 무엇을 재물 때문에 그물로써 고기를 잡는다고 하는가? 육지에서는 짐승을 잡기 위해 그물을 치고 물에서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그물로써 고기를 잡는다는 것이다. 만일 백정이 돈 때문에 고기를 산다면, 이것이 바로 재물 때문에 고기를 잡는 것이다. 만일 이 사람으로 하여금 재물 때문에 고기를 잡지 않게 한다면 나쁜 율의[惡律儀]를 익혀서 중생을 잡아 살해할 것이니, 이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입에다 공급하기 위해서며 또한 따로 생각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만일 따로 생각하는 바가 있다면, 고기를 먹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어찌 살생에 대한 몫이 없겠으며, 어찌 “나는 살생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분명히 경전의 글에 위배되는 것이므로 큰 자비의 종자를 끊고 그 장애로 부처님을 뵙지 못할 것이다.

(2) 음주부(飮酒部)

自述
이 하나의 가르침에는 권교(權敎)가 있고 실교(實敎)가 있다. 권교는 점차로 유도하여 가르치는 것이다. 가벼운 죄로써 무거운 죄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니, 처음 개시한 것은 범함이 없다. 그러나 진리를 장애한다는 데서 보면 허물이 없는 것도 아니다. 또 실교는 경죄와 중죄를 모두 금지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범하지 않아야 계를 지닌다[持戒]고 하는 것이다.
처음의 권교에 의거하여 설명하겠는데, 그러므로 『미증유경(未曾有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국왕의 태자 이름은 기타(祇陀)였는데,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열 가지 선도(善道)의 법이 과보가 그지없다는 것을 듣고는 길게 무릎을 꿇고 합장하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옛날 저로 하여금 5계를 받아 지니게 하셨지만 이제
도로 버리고자 하옵니다. 그 이유는 5계의 법 중에서 술의 계를 지니기 어려워서 죄를 얻을까 두렵기 때문이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술을 마실 때 무슨 악행을 한단 말이냐?’
기타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나라 안의 호강(豪强)한 이들이 때때로 술과 음식을 갖고 와서 함께 재미있게 즐기게 되므로 저절로 악이 없사옵니다. 왜냐 하면, 술을 만나도 계를 생각하면서 방일함이 없기 때문이오니, 술을 마시더라도 악을 행하지는 않사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도다. 기타야, 너는 이미 지혜의 방편을 얻었구나. 만일 세간 사람들이 너와 같을 수 있다면 종신토록 술을 마신다 해도 무슨 나쁜 일이 있겠느냐. 그렇게 행하는 이라야 복이 생기고 죄가 없느니라. 만일 사람이 술을 마시면서 악업을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기뻐지기 때문에 번뇌를 일으키지 않아서 착한 마음의 인연으로 착한 과보를 받게 된다면, 이와 같이 지닌 5계에 무슨 과실이 있겠느냐. 술을 마시면서도 계를 생각하면 그 복이 더욱 늘어나나니, 먼저의 5계를 지니면서 이제는 10선을 받아라. 공덕은 10선의 과보가 더욱 뛰어나느니라.’
그 때 파사닉왕(波斯匿王)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마음이 기쁠 때 악업을 일으키지 않음을 유루의 선[有漏善]이라 한다면, 그 일은 그렇지 않사옵니다. 왜냐 하면 사람이 술을 마실 때에는 마음이 기뻐지는 것이요, 마음이 기뻐지기 때문에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번뇌가 없기 때문에 해치는 일을 하지 않으며, 해치지 않기 때문에 3업(業)이 청정하고 청정한 도가 곧 무루의 업[無漏業]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기억하는 일이 있습니다. 옛날 사냥을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주방장을 데리고 오는 것을 잊고 깊은 산중에서 배가 고팠으므로 음식을 찾았더니 좌우의 신하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왕께서 아침에 떠나오실 때에 주방장을 데리고 가자는 명이 없었으므로 지금 바로 잡수실 음식은 없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말을 타고 궁중으로 돌아가서 음식을 가져오라고 하였나이다.
왕가의 주방장 이름은 수가라(修迦羅)였는데, 그 수가라가
≺현재 잡수실 음식은 없고 이제 만들어야 합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때 배는 몹시 고프고 성이 나서 생각하지도 않고 신하에게 명하여 주방장을 베어 죽이라고 하였나이다. 신하는 왕명을 받고 곧 함께 의논하기를 ≺온 나라 안에서 선발한다 해도 어질고 일을 잘하는 이는 이 한 사람뿐인데, 지금 죽여버린다면 다시는 왕을 위하여 왕의 뜻에 맞게 주방을 감독할 자가 없다≻고 하였나이다.
그 때 말리(末利) 부인이 수가라를 죽이라는 왕의 명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는 몹시 애석히 여겼습니다. 왕이 배가 고파서 그렇다는 것을 알고 곧 좋은 고기와 맛있는 음식을 마련시키고서 목욕하고 명향으로 몸을 단장한 뒤에 여러 궁녀들을 데리고 저에게로 왔나이다. 저는 부인이 화려하게 단장하고 궁녀들을 데리고 좋은 술과 고기를 가져 왔으므로 성을 냈던 마음이 이내 풀어졌습니다. 왜냐 하면 말리 부인이 5계를 지니면서 술을 끊고 마시지 않았으므로 저는 늘 한을 품고 있었는데 오늘 갑자기 술과 고기를 가져와서 함께 서로 즐기며 정을 풀어 주었기 때문이옵니다. 저는 부인과 함께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면서 뭇 풍악을 잡히고 기뻐하며 재미있게 즐겼으므로 성냈던 마음이 곧 사라져버렸나이다.
부인은 저의 성낸 마음이 풀어졌음을 알고 곧 내시(內侍)를 보내어 저의 명이라 전하면서 신하에게 주방장을 죽이지 못하게 하였으며 그 신하는 곧 명을 받들었나이다. 저는 다음 날 아침에 몹시 뉘우치면서 근심으로 음식도 먹지 않고 안색이 초췌해 있었습니다. 부인은 저에게 물었나이다.
≺무엇 때문에 근심하고 계십니까? 어디가 아프십니까?≻고 하기에,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어제 몹시 배가 고팠으므로 성을 내어 수가라를 죽이게 하였습니다.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이 나라 안에서 나의 주방을 감독할 수 있는 이로는 수가라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 때문에 뉘우치며 근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부인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그 사람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왕께서는 근심하지 마십시오≻라고 했는데 제가 거듭 묻기를 ≺사실이 그렇습니까. 장난으로 하는 말입니까?≻고 물었더니, ≺실지로 살아 있습니다.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고 하였나이다. 그리하여 저는 좌우의 신하로 하여금 주방장을 불러오게 하였더니, 심부름꾼이
곧 데리고 왔으므로 저는 크게 기뻐하면서 근심과 뉘우침이 이내 제거되었나이다.’
왕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말리 부인은 부처님의 5계를 지니고 달마다 6재(六齋)를 행하고 있사온데, 하루 동안에 종신토록 지닐 5계에서 이미 음주와 거짓말의 두 가지 계를 범하였고, 8재계 안에서는 단번에 여섯 가지 계를 범했사옵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하오리까? 계를 범한 죄는 경하옵니까, 중하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이와 같이 범한 계는 큰 공덕을 얻게 되지 죄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이익을 위해서 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부인이 선을 닦는 데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유루의 선이요, 둘째는 무루의 선입니다. 말리 부인이 범한 계는 유루의 선에 해당한 것이며, 계를 범하지 않은 것이라야 무루의 선이라 합니다. 말에 의거하여 논의하면 계를 깨뜨리면서 선을 닦는 것을 유루의 선이라 하며, 이치에 의거하여 말하면, 무릇 마음으로 일으킨 바 선은 모두가 무루의 업입니다.’
왕이 부처님께 말씀하셨다.
‘세존의 말씀과 같아서 술을 마셔서 계를 깨뜨려도 나쁜 마음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공덕이 있고 죄의 과보가 없다면, 온갖 인민들도 모두 그러하나이다. 왜냐 하면, 제가 생각건대 요사이 사위성 안의 호족(豪族)인 찰리족(刹利族) 왕공(王公)들은 사소한 다툼으로 인하여 크게 원수가 되어서 저마다 음모를 꾸며 병사를 일으켜서 싸움을 하였나이다. 양쪽이 다 국친(國親)이라 이러쿵저러쿵 싸운다 해도 붙잡아다 단속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치대로 간(諫)하지도 못해서 몹시 근심하고 있었나이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옛날 태자로 있을 때에 대신 제위라(提韋羅)와는 서로 분을 터뜨리고 있던 사이라 정실을 분간하지 않고 죽이고만 싶었다. 그런데 태후(太后)께서 술을 주어 함께 마신 뒤에 뜻이 화합했었다.≻
그리고 나서 곧 충신에게 명하여 좋은 술과 여러 맛있는 음식을 마련하게 한 뒤 나라 안의 호족과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영을 내려 모두 모이게 하고 ≺나라 안의 큰 일을 논하고 싶어서다≻고 하였나이다.
여러 신하들은
다투어 모였고, 양쪽에서도 권속 5백 명씩이 부름에 응하여 모였나이다. 왕의 대전(大殿) 위에는 큰 풍악을 장엄해 놓았고, 저는 충신에게 명하여 세 되들이 유리(琉璃) 주발을 마련하게 한 뒤에 그 보석으로 된 유리 주발 안에다 좋은 술을 가득히 채워 놓고 제가 먼저 대중 앞에서 한 주발을 들이키며 말했습니다.
≺이제 국사를 논할 뿐 다른 마음은 없습니다. 이제 각자 앞에 이 한 주발 감로(甘露)의 좋은 약을 마련해 놓았으니 이를 마신 뒤에 국사를 논합시다.≻ 그러자 모두가 ≺그렇게 하십시다≻고 하여서 크게 풍악을 잡혔나이다. 여러 사람들은 술을 얻은 데다가 음악까지 들었으므로 마음속이 기뻐지면서 원한의 마음을 잊어버렸나이다. 술로 인하여 다툼을 쉬고 태평함을 얻었으니, 이 어찌 술의 공이 아니겠나이까?
가만히 보건대, 세간의 가난한 이나 소인(小人)이나 종이나 오랑캐의 사람도 명절날 술집에 모여 술을 마시면, 마음이 기뻐지기 때문에 남이 가르치지 않아도 저마다 일어나 춤을 추게 되지만, 술을 얻지 못할 때에는 도무지 이런 일이 없나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술로 인하여 기쁨에 이르고, 마음이 기쁠 때에는 나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 나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면 곧 그것이 착한 마음이므로 착한 마음의 인연은 의당 좋은 과보를 받아야 할 줄 아옵니다. 원숭이도 술을 만나면 오히려 일어나 춤을 추거늘 하물며 세간 사람이겠나이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듯이 선을 베풀면 선의 과보를 받고 악을 베풀면 악의 과보를 받을 것이오니, 말리 부인은 모두가 전생에 좋은 것을 남에게 베풀었기 때문에 지금 좋은 과보를 얻었을 겁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5계를 지니고 달마다 6재를 행하게 하오리까? 6재의 날에는 향과 꽃을 달거나 옷을 좋게 장엄하지도 못하고 노래하거나 풍악도 잡히지 못하며, 또 부부간에 가까이서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자태도 허락하지 않으시면서 끝내 베푼 바가 무엇이기에 한갖 그 공을 말하오리까? 어찌 괴로운 일이 아니겠나이까?’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의 힐난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그러나 말리 부인이 나이 젊었을 때, 만일 내가 계법을
받아 지혜를 닦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오늘날의 덕으로 스스로를 제도하고 또 왕의 몸을 제도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러한 공을 다시 그 누구에게 돌리겠습니까?’”


自述
둘째 번의 실교(實敎)에서 말하면, 경하거나 중하거나 범하지 않아야 참으로 계를 지닌다고 한다. 그러므로 큰 성인께서는 때를 알고 근기를 헤아리면서 통(通)하게 하기도 하고 막기도 하신다. 통하게 한다는 것은 금한 것을 열어 주는 것이니, 그 때를 따라서 손해와 이익됨을 헤아리게 한다. 마치 파사닉왕이 주방장을 죽이려 하는 일이나 태자가 그 부인을 살해하려고 한 것과 같다. 이것은 술로 인하여 분함을 잊게 함으로서 신명을 온전하게 하여 더 큰 죄를 면하게 한 것이니, 가벼운 죄로써 중한 죄를 벗어나게 하였으므로 재앙을 받지 않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술을 마시는 허물에서 오는 과보의 죄가 없는 것은 아니므로 앞에서 열어 주었던 일들을 보고 덩달아 모두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저마다 모름지기 그 가르치신 뜻을 헤아려야 한다.
또 자기 몸의 행과 덕의 우열(優劣)을 살펴보아야 성인 안에 들 수 있나니, 파사닉왕과 말리 부인이 금계를 연 일은 이미 동일하지 않다. 이는 곧 경전에 의거하여야 하고 털끝만큼도 범하지 말아야 가장 수승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사분율(四分律)』에서 이르되 “그가 나의 제자라면 풀 끝에 맺힌 방울만큼의 술도 입에 넣지 않아야 하겠거늘, 하물며 많이 마시겠느냐”고 한 것이니, 그러므로 한 번 삼킬 때마다 바일제(波逸提)가 성립된다.
또 『성론(成論)』에서 말하였다.
“【문】 술을 마시는 것이 실로 죄가 되는가?
【답】 그렇지 않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술을 마셔도 중생을 괴롭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죄의 원인이 된다. 만일 사람이 술을 마시면 착하지 않은 문을 열게 되어 선정과 모든 착한 법을 막아 버리나니, 마치 여러 과일 나무를 심으려면 반드시 담장으로 막아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알라. 술의 허물은 마치 과일나무에 동산[園]이 없는 것과 같다.”
또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어떤 사람이 술을 즐겨 마시면 이 사람은 현세(現世)에서는 재물을 잃기가 쉽고 몸과 마음에 병이 많으며 항상 싸움하기 좋아하고 나쁜 이름이 멀리 퍼지며 지혜를 잃게 되고 마음에 부끄러워함이 없으며 악한 육체와 힘을 얻고 항상 모두에게 책망을 당하며 사람들이
보기를 좋아하지 않고 선행을 닦지 못할 것이니, 이것을 술을 마심으로써 현세에 받는 나쁜 과보라 한다. 그리고 이 몸을 버린 뒤에는 지옥에 있으면서 배고프고 목마르는 등, 한량없는 고뇌를 받게 되나니, 이것을 후세에 받을 나쁜 업의 과보라 한다. 설령 사람 몸을 받는다 해도 마음이 항상 산란하므로 생각을 붙잡아서 착한 법을 사유할 수가 없다. 이 하나의 나쁜 인연의 힘 때문에 온갖 바깥 물건과 살림이 모두 다 망가지게 된다.”
또 『장아함경(長阿含經)』에서 말하였다.
“술을 마시는 이에게 여섯 가지 과실이 있다. 첫째는 재물을 잃고, 둘째는 병이 생기며, 셋째는 싸움을 하고, 넷째는 나쁜 이름이 널리 퍼지며, 다섯째는 성을 갑자기 내고, 여섯째는 지혜가 날로 줄어든다.”
또 『지도론(智度論)』에서는 “술을 마시면 35가지 과실이 있다”고 했는데, 앞의 「수계편(受戒篇)」에서의 설명과 같다.
또 『사미니계경(沙彌尼戒經)』에서 말하였다.
“술을 마시지도 말고 술을 즐기지도 말며 술을 맛보지도 말라. 술에는 36가지 과실이 있어서 도를 잃고 집을 파멸하며 몸을 위태롭게 하고 생명을 잃게 하는 것은, 모두가 술 때문이다. 동쪽으로 끌리고 서쪽으로 끌리며 남쪽을 잡고 북쪽에 기댄다. 경을 독송할 수도 없고 3존(尊)을 공경하지 않으며, 스승과 벗을 가벼이 여기고 부모에게 불효한다. 마음이 닫히고 뜻이 막혀서 세상마다 어리석은 이가 되고, 큰 도를 만나지 못하며 그 마음이 무식해지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한다. 5음(陰)과 5욕(欲)과 5개(蓋)를 여의어서 다섯 가지 신통[五神通]을 얻고 다섯 갈래[五道]에서 제도되고자 하면 짐짓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한다.”
또 『살차니건자경(薩遮尼乾子經)』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술 마시면 대개가 방일(放逸)하게 되고
현세에선 항상 어리석어져서
온갖 일들을 잊어버리게 되고
늘 지혜 있는 이의 꾸지람을 받는다.

내세에선 늘 어둡고 무디어
모든 공덕을 많이 잃나니,
그러므로 슬기로운 사람은
술 마시는 허물을 여의느니라.


또 『십주바사론(十住婆沙論)』에서 말하였다.
“【문】 만일 어떤 사람이 술을 보시하면 죄가 되는가, 안 되는가?
【답】 보시한 이는 복을 얻지만 받은 이는 마시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논(論)에서는 ‘이 보살이 때로 온갖 것을 보시하길 좋아하므로 밥을 구하면 밥을 주고 마실 것을 구하면 마실 것을 준다. 만일 술을 보시하면 그는 응당 생각하기를 ≺지금 이 사람은 구하는 대로 보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뒤에는 방편을 써서 술은 주지 않게 해야겠다≻라고 해야 한다. 생각하는[念] 지혜를 얻으면 방일하지 않게 하나니, 왜냐 하면 단바라밀(檀波羅密)의 법은 모두 사람들의 원을 채워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에 있는 보살이 술을 보시한다 해도 죄는 없다.’”
또 『범망경(梵網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자기 손으로 남에게 술 그릇을 건네주어 술을 마시게 하면 5백 세상 동안 손이 없게 되거늘 하물며 자기 자신이 마시겠느냐? 온갖 사람에게 술을 마시게 하거나 온갖 중생에게 술을 마시게 하지도 않아야 하거늘, 하물며 자기 자신이 술을 마시겠느냐?”
또 『우바새오계상경(優婆塞五戒相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지제국(支提國) 발다라바제읍(跋陀羅婆提邑)에 계실 때였다. 이 곳에는 암라바제타(菴羅婆提陀)라는 나쁜 용이 있었다. 몹시 흉하고 사나워서 사람을 해쳤으므로 그곳에 가는 이도 없었고, 코끼리와 말도 가까이 할 수 없었으며, 모든 새들까지도 그 위를 통과할 수 없었다. 게다가 가을 곡식이 익을 때에는 모두 다 망가뜨렸다.
당시 장로 사가타(莎伽陀) 아라한 비구가 지제국을 유행(遊行)하다가 점점 발다라바제읍에 이르렀다. 그는 밤을 지나고 나서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마을로 들어가 걸식을 하였다. 그 때 이 읍에는 몹시 사나운 나쁜 용이 있어서 사람과 짐승을 해치고 가을 곡식까지 결딴낸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걸식을 마치고 아라바제타용이 있는 곳까지 가서 뭇 새들이 사는 나무 아래에 방석을 깔고 앉았다.
그 용은 옷 냄새를 맡고 이내 성을 내면서 몸으로부터 연기를 뿜었다. 장로 사가타도 곧 삼매(三昧)에 들어 신통력으로 역시 몸에서 연기를 뿜었다. 그러자 용은
갑절 더 성을 내면서 몸 위에다 불을 뿜어댔으므로 사가타도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들어가 용의 몸에 역시 불을 뿜어 댔다. 용은 다시 벼락을 쳤는데, 사가타는 그것을 변화시켜서 갖가지 환희환(幻戱丸)을 만들어 버렸다. 용은 다시 화살과 칼과 창을 퍼부었으며 사가타는 곧 그것을 변화시켜서 우발라꽃과 파두마꽃 등을 만들어버렸다. 용은 다시 독사, 지네, 살모사, 그리마를 퍼부었으며 사가타는 곧 그것을 변화시켜 우발라꽃의 영락과 첨복화(瞻蔔華)의 영락 등을 만들어 버렸다.
용은 그가 지닌 모든 힘을 다하여 사가타와 겨루어 보았으나, 모두 이기지 못하자 곧 위력과 광명을 잃어버렸다. 사가타는 용의 세력이 다해서 더 이상 활동할 수 없음을 알자 곧 조그마한 몸으로 변해서 용의 두 귀로부터 들어가 두 눈으로 나왔다가 다시 코로 들어가서 입 속으로 나온 뒤에 용의 머리 위로 올라가서 왔다갔다 거닐면서도 용의 몸은 다치지 않았다.
용은 이런 일을 보고 나자 크게 놀랍고 두려워서 털이 곤두섰으므로 합장하고 사가타를 향하여 말하였다.
‘나는 당신에게 귀의하겠습니다.’
사가타가 대답하였다.
‘너는 나에게 귀의하지 말고 나의 스승 부처님께 귀의하여야 한다.’
용이 대답하였다.
‘나는 지금부터 3보께 귀의하겠습니다. 나는 이 몸이 다하도록 부처님의 우바새가 되겠습니다.’
용은 삼귀의[三自歸]를 받고 부처님의 제자가 된 뒤에는 다시는 먼저와 같이 흉악한 일을 하지 않았으므로 모든 사람과 새와 짐승들이 자기 있을 곳을 찾게 되었고 가을 곡식도 상하지 않게 되었다. 이 소식이 모든 나라에 널리 퍼지자, 모두가 장로 사가타가 나쁜 용을 항복 받아서 착하게 만들었음을 알았다. 이로 인하여 사가타의 명성이 널리 퍼졌으므로 모든 사람들은 음식을 만들어 전하기도 하면서 다투어 그를 청하였다.
이 중에는 가난한 여인이 있었는데 믿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사가타를 청하여
소유(酥乳)로 쑨 죽을 대접하였다. 그리고는 생각하기를 ‘이 사문께서 소유로 쑨 죽을 잡수셨으니, 혹시 냉(冷)이 생길지도 모르겠구나’ 하고는 곧 물빛과 같은 술을 가져다 사문에게 주었다. 사가타는 보지도 않고 마셨다. 그리고는 그녀를 위하여 설법하고 절을 향하여 떠나왔다. 그 때 술기가 돌아서 절문 근처까지 와서 모르는 결에 땅에 넘어졌다. 승가리(僧伽梨)와 물 거르는 주머니와 발우와 지팡이가 저마다 흩어졌고 몸도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술에 취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아난과 함께 그 곳을 지나가시다가 이 비구를 보고 아시면서도 짐짓 물으셨다.
‘아난아, 이 사람이 누구냐?’
아난이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이 분은 장로 사가타이옵니다.’
부처님께서 곧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곳에 나를 위하여 자리를 깔아라. 그리고 물을 마련해 오고 비구들을 집합시켜라.’
아난은 분부를 받고 자리를 깔고 물을 마련하고서 비구들을 집합시킨 뒤에 부처님께 아뢰었다.
‘다 모였사옵니다.’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때가 온 것을 아시고 곧 발을 씻고 앉으신 뒤에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들은 일찍이 보고 들은 적이 있느냐? 암바라제타라는 용이 몹시 흉악하고 해를 끼쳤으므로 어떤 사람도 그 곳에 간 이가 없었고, 새와 짐승까지도 그 위를 갈 수가 없었으며, 가을 곡식이 익을 때에는 모두 다 망쳐버렸다. 그런데 사가타가 그 용을 조복하여 착하게 만들었으므로 새와 짐승도 샘에 갈 수 있게 되었다.’
그 때 그런 일을 보고 들은 비구가 있다가 말하였다.
‘들었사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선남자 사가타가 지금 두꺼비를 조복할 수 있겠느냐?’
‘조복할 수 없사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성인조차도 술을 마시면 오히려 이러한 허물이 있거늘 하물며 범부이겠느냐? 이와 같은 허물은 모두가 음주 때문이니, 지금부터는 ≺내가 부처님의 제자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술을 마시지 말 것이다. 나아가 작은 풀 끝에 맺힌 한 방울만큼도 마시지 말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갖가지로 술에 대한 과실을 책망하신 뒤에 계율에 의거해서 이
비구로 인하여 술 마시지 않는 계[不飮酒戒]를 제정하셨다.
【문】 천상에도 술이 있는가?
【답】 누룩과 쌀로 만들어진 술은 없다. 다만 업의 조화로 만들어진 술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정법념경(正法念經)』에서 말하였다.
“저 야마천(夜摩天)의 남자들이 천녀(天女)들과 함께 못에 들어가 재미있게 놀면서 하늘술[天酒]을 마시기는 하나, 술에 취하여 짓는 허물도 없고 쾌락의 공덕을 나타내면서 맛[味]과 촉감[觸]과 빛깔[色]과 향기[香]가 모두 다 구족하다. 그 하늘들 중에는 구슬 그릇으로 술을 마시는 이도 있고 소타(蘇陀)의 음식도 수용하는데, 그 빛깔과 촉감과 향기와 맛이 모두 다 구족하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이 물이 술이 되어서 우리로 하여금 마실 수 있게 하라’고 하면, 곧 생각하는 대로 하늘술이 되지만 술에 취하여 짓는 허물은 없다. 하늘들이 그것을 마시면 더욱 수승한 쾌락이 자라며 선업의 힘 때문에 마음에 기쁨이 생긴다. 그리고 그 모든 하늘들은 자기 업의 힘 때문에 이와 같은 쾌락을 누리는데, 상락(常樂)이라는 새가 있다가 그 하늘들이 환희하(歡喜河)에서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 그들을 위하여 게송으로 말한다.

방일하는 바다에 빠져 들어가
모든 경계를 탐착하고 있는데
이 술이란 마음을 헷갈리게 하거늘
무엇 때문에 또 술을 마실까.

경계의 불에 타게 되면서
짓고 짓지 않음을 모르고 있으니
동산 숲에서는 탐심이 날 터인데
무엇 때문에 또 술을 마실까?

저 상락새는 하늘들이 강물에서 술을 즐겨 마시는 것을 보고 그들을 조복하기 위하여 이렇게 게송으로 말한 것이다고 했다.”
또 『정법념경(正法念經)』에서 염라왕이 자주 죄인들을 책망하면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술은 사람 마음 산란하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양(羊)과 같이 되게 하며
지음과 짓지 않음 모르게 하나니
그러므로 술을 멀리 해야 한다.

사람이 술에 취하면
마치 죽은 사람과 다름이 없나니
만일 늘 죽지 않으려면
그 사람은 술을 버려야 한다.

술에는 모든 허물이 있고

매양 이롭지 못하며
온갖 나쁜 길[惡道]에 오르는 계단이며
캄캄한 곳이 그가 있을 곳이다.

술을 마시면 지옥에 가고
또한 아귀의 처소에 가며
축생의 업을 행하게 되나니
이는 술의 허물에 속은 것이다.

술은 독(毒) 중에서도 독이요
지옥 중에서도 지옥이며
병(病) 중에서도 큰 병이니
이는 지혜로운 이가 말한 바이니라.

만일 사람이 술을 마시면
기쁘게 될 인연이 없고
인연이 없는데도 성을 내고
인연이 없는데도 악을 짓는다.

부처님에 대한 어리석음은
세간과 출세간의 일[出世事]을 파괴하며
해탈을 태움은 불과 같나니
이른바 술이라는 이 한 법 때문이다.

만일 사람이 술을 버리고
법의 계율을 바르게 행하면
그는 으뜸가는 곳에 이르러서
죽음이 없고 나는 곳도 없다.

【문】 병이 없는데 마시면 죄가 되겠지만 병이 있어서 먹는 것은 어떠한가?
【답】『사분율(四分律)』에 의하면 “병이 들어서 다른 약으로 치료해도 낫지 않고 그 술만이 약이 된다면 먹어도 범한 것이 아니다”고 하였다.
【문】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가?
【답】 『문수사리문경(文殊師利問經)』에서는 “약을 짓는 의사의 말을 빌리면 약을 많이 섞을 때에는 술을 적게 하고 약을 많이 하면 된다”고 하였다. 또 『사리불문경(舍利弗問經)』에서 이르되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어떠하옵니까? 세존이시여. 차계(遮戒)의 법으로 말하면 꽃다지 씨만큼의 술도 마시지 말 것이오니, 그렇게 하면 파계라 하리이다’ 하였다.”
그러나 방일을 허락하는 문[開放逸門]에서 보면 어떠한가?
“가란타(迦蘭陀)의 죽원정사(竹園精舍)에 한 비구가 있었다. 병이 들어서 여러 해를 보냈는데 위독하여 죽게 되었다. 그 때 우파리(優波離)가 물었다.
‘당신에게는 무슨 약이 필요합니까? 나는 당신을 위하여 천상이나 인간이나 시방까지 가서라도 써야 할 약이면 모두 구해다 드리겠소.’
비구가 대답하였다.
‘나에게 필요한 약은 비니(毘尼)에 위반됩니다. 그 때문에 나는 구하지 않습니다.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차라리 신명을 버릴지언정 계율을 범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당신의 약이 무엇이란 말이오?’
‘술 다섯
말이 필요합니다.’
‘만일 병을 위해서라면 여래께서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를 위하여 술을 얻어 왔는데, 그 술을 먹은 뒤에 병이 나았다. 그러나 나은 뒤에는 부끄러워하면서 오히려 계율을 범했다고 여기고는 부처님께 가서 은근하게 허물을 참회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그를 위하여 설법하였으며, 설법을 들은 뒤에 그는 기뻐하면서 아라한의 도를 증득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술에는 많은 허물과 방일을 허락하는 문도 있다. 꽃다지의 씨만큼 마셔도 범죄는 벌써 쌓이지만 만일 병고를 없애기 위해서라면 미리 끊을 바는 아니다.’”


自述
앞의 글에 보이지 않는 것은 다 마셔도 되나 반드시 실제로 병이 중하여 죽게 될 병이어야 하되 그 먼저 다른 약을 써서 치료하였으나 낫지 않았고 반드시 술이 들어가야 나을 수 있는 일일 때만 앞의 방편에 의거하여 허락되는 것이다. 자주 보는 일이거니와, 무식한 사람은 몸과 힘이 강하고 왕성하여 날마다 쏘다니면서 뭇 위의에 의거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아픈 데가 있으면 곧 탐심이 자라나서 도업을 수호하지 않고 망령되이 경률(經律)을 인용하면서 말하기를 “부처님께서는 갖가지 탕약과 훌륭한 의복을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보시하는 것을 허락하셨다”라고 하고는 공적(公的)인 것을 개인적인 일에 빗대어 스님들과 속인들을 속인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사람은 계 지키기를 마치 목숨처럼 여기면서 감히 범하지 않을 것이다.
『살차니건자경(薩遮尼乾子經)』에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술은 방일하는 근본이 되므로
마시지 않으면 악도(惡道)를 닫는다.
차라리 백천 개의 몸을 버릴지언정
법의 가르침을 범하지 않겠으며
차라리 몸이 바짝 마르게 할지언정
끝내 이 술을 마시지 않으리라.

가령 계율을 헐고 범해서
수명을 백 년까지 채운다 해도
금지된 계율을 수호하다가
즉시 몸이 마멸되는 것이 더 낫다.

틀림없이 이 병을 낫게 할 수 있다 해도
나는 오히려 마시지 않겠거늘
하물며 꼭 낫고 낫지 않음을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음이랴.

이렇게 마음을 결정하면
마음에는 큰 기쁨이 생기면서
곧 진실한 이치를 보게 되어
아팠던 병이 이내 스러지리라.”

그러므로 알라. 중생의 온갖 병이란 모두가 탐냄ㆍ성냄ㆍ아만(我慢)이 원인이 된다. 원인으로부터 결과가 있으므로 이런 고통의 보(報)를 얻는 것이지,
약이 되는 술을 먹지 못해서 병이 낫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열반경(涅槃經)』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온갖 중생에게는 네 가지 독화살이 있어서 곧 병의 원인이 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탐욕이요, 둘째는 성냄이며, 셋째는 어리석음이요, 넷째는 교만(憍慢)이다. 만일 병의 원인이 있으면 병이 생기는 것이니, 이른바 애욕과 열과 폐의 병이거나 상기(上氣)가 있거나, 구역질이 나거나, 살갗이 훗훗하면서 마음이 답답하거나 설사를 하거나 딸꾹질을 하거나 오줌방울이 뚝뚝 떨어지거나 눈이나 귀가 쑤시고 아프거나 배와 등이 띵띵 붓거나 미친 병과 소갈증이 있거나 귀신과 도깨비에 홀리는 등, 이와 같은 갖가지 몸과 마음의 병이 곧 그것이다. 만일 병의 근본을 알아 악을 끊고 선을 닦으면 3세(世)의 괴로움의 과보가 영원히 제거되어 받지 않겠거니와 만일 이치를 관찰하지 않으면 비록 천하의 약술을 써서 치료한다 하더라도 그 병이 갈수록 더할 것이요, 낫기 어려우리라.”
또 『비니모경(毘尼母經)』에서 존자 미사색(彌沙塞)은 말하였다.
“사제(莎提) 비구가 젊었을 때 술에 의지하여 신명을 이어가고 있다가 뒤에 출가하고 나서는 술을 먹지 못했으므로 4대(大)가 고르지 못하였다. 그것을 보고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병이 든 이는 항아리 위에서 냄새를 맡는 것만은 허락한다. 만일 병이 나으면 더 맡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도 낫지 않으면 술로 몸을 씻는 것을 허락한다. 또 그렇게 해도 낫지 않으면 술을 밀가루에 섞어서 떡을 만들어 먹는 것을 허락한다. 그렇게 해도 역시 낫지 않으면 술 속에 담그는 것을 허락한다.’”
또 『신바사론(新婆沙論)』에서 말하였다.
“계경(契經)에서와 같다. 존자 사리자(舍利子)가 교살라국(憍薩羅國)의 한 숲 속에 머물러 있었다. 당시에 살아가기 위하여 출가한 외도가 역시 그 숲에 머무르고 있었다. 인근에 사는 귀한 이가 숲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여러 마을과 읍(邑) 가운데서 때마침 4월의 절일(節日)에 베푸는 연회를 널리 베풀고 있었다. 그 때 그 외도는 여러 마을과 읍을 돌아다니면서 돼지고기를 배불리 먹고 술도 마음껏 마신 뒤에 남은 것을 몰래 가지고 숲속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사리자가 한 나무 아래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술에 흐려 있던 터라 경멸하는 마음을 일으켰다.
‘나 이제
그와 함께 비록 출가했을지 모르지만, 나 혼자 부자요 쾌락을 누리는데 그만이 가난하고 고통을 받는구나’ 그리고는 곧 존자에게로 가서 이런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 이미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었고
또 남은 것을 몰래 가져왔소이다.
땅 위의 풀과 나무와 산이
모두가 금무더기처럼 보입니다.

사리자는 게송을 듣고 나서 생각하였다.
‘죽은 외도가 도무지 부끄러워함도 없이 무례하게 이런 가타(伽陀)를 말하고 있구나. 나 이제 그가 말한 게송에 응대해 주리라.’
그리고는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는 늘 모양 없음[無相]을 배불리 먹고
항상 공의 선정[空定]에 머무른다.
땅 위의 풀과 나무와 산은
모두가 침 뱉는 곳처럼 보이는구나.

지금 이 게송 안에서 존자 사리자는 사자의 외침으로 3해탈문(解脫門)을 말한 것이니, 첫째 구절에서는 무상(無相)의 해탈문을 설명하였고, 둘째 구절에서는 공(空)의 해탈문을 설명하였으며, 마지막의 두 구절에서는 무원(無願)의 해탈문을 설명하였다.”

(3) 식육부(食肉部)

自述
이 하나의 가르침에도 역시 권교(權敎)와 실교(實敎)가 있다. 권교는 비니(毘尼)의 율에 의거한다. 세존께서는 처음 도를 이루시고 거칠고 악한 범부를 제도하기 위하여 아직 세밀한 것은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선 점교(漸敎) 가운데서 죽이는 것을 보지 않고, 죽이는 소리를 듣지 않으며, 자기를 위하여 죽인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되지 않는, 즉 새가 먹다 남긴 것이거나 저절로 죽은 것 등의 세 가지 청정한 고기[三種淨肉]를 말씀하시면서 그것은 먹어도 된다고 허락하셨다. 거친 것[麤]을 먼저 하고 세밀한 것[細]을 뒤로 함으로서 점차로 허물을 여의게 한 것이니, 이는 별시(別時)의 뜻[意]이요 불요의(不了義)의 말씀이다. 또 실교(實敎)에 의거하면 처음 도를 증득해서부터 열반하는 밤에 이르기까지 시종 허락하지 않으셨다.
또 『열반경(涅槃經)』에서 말씀하셨다.
“온갖 중생이 그의 고기 냄새를 맡으면 모두 다
두려워하면서 자기도 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물과 육지와 공중으로 다니는 목숨 있는 무리는 모두 그를 버리고 도망치게 된다. 그러면서 다 함께 말하기를 ‘이 사람은 우리들의 원수다’ 하나니, 그러므로 보살은 고기를 먹지 않아야 한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고기 먹는 것을 비록 나타낸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먹지 않는 것이니, 다만 모든 중생이 집착하여 보는 것이 있을 뿐이다. 여래가 방편으로 한 말씀과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편벽되게 비니의 가르침을 국집하면서 말하기를 ‘부처님께서는 세 가지의 청정한 고기를 먹으라고 허락하셨다’고 하고, 또한 나를 비방하며 말하기를 ‘여래께서도 스스로 잡수셨다’고 하나니, 그런 어리석은 사람은 큰 죄장(罪障)을 이루어서 오랜 세월 동안 이익 없는 곳에 떨어지게 된다. 또한 현재와 미래에는 성현의 제자조차 만날 수 없거늘, 하물며 장차 모든 부처님 여래를 뵈올 수 있겠느냐?
대혜(大慧)야, 모든 성문(聲聞)들은 항상 쌀과 밀가루와 기름과 꿀 등을 먹으면서 청정한 생활을 해야 한다. 법이 아니게 저축하고 법이 아니게 받아가지는 것도 나는 부정(不淨)하게 여겨서 그것조차 오히려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거늘, 하물며 살과 피의 부정한 것을 먹으라고 하겠느냐. 고기를 먹으면 선을 파괴하고 도를 장애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삿된 생활을 하게 되어서 아첨과 굽은 마음으로 스스로 살기만을 구하게 되므로 역시 도를 장애하게 된다.”
또 『문수사리문경(文殊師利問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자기를 위하여 죽였으면 먹지 말 것이다. 만일 고기가 마치 나무조각 같거나 이미 저절로 썩어서 문드러진 것을, 먹고 싶으면 먹을 수 있다. 만일 고기를 먹고자 하면 의당 이 주문을 외워야 한다.

다지타 아나마아나마 아시파라아시파다 나사나사
多▼(口+絰)咃此言如是阿捺摩阿捺摩此言無我無我阿視婆多阿視婆多此言無壽命無壽命那舍那舍此言
타하타하 파부파부 사가율다미 사바하
失失陀呵陀呵此言燒燒婆弗婆弗此言破破僧柯慄多弭此言有爲莎 呵此言除殺去

이 주문을 세 번 외우고 나서야 비로소 고기를 먹을 수 있다. 밥도 먹지 않아야 한다. 왜냐 하면 만일 사유함[思惟]이 없으면 밥도 먹지 않아야 하겠거늘 고기를 먹어서야 되겠느냐?’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중생은 자비의 힘이 없어서 살해하려는 뜻을 품으니 이런 인연 때문에 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만일 살해하려는 마음을 품지 않고 큰 자비심으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라면 죄가 없다.’”
【문】 술은 정신을 화평하게 하는 약이요, 고기는 굶주림을 채우게 하는 음식이다. 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의미가 같거늘 어찌하여 유독 지금 비루하게 보면서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인가? 만일 불교의 청정한 금제를 상(喪) 중의 예제(禮制)처럼 하게 한다면, 그것은 마치 엄한 군주(君主)에 대하여 시속이 밥[俗食]을 내리도록 명하도록 한 것과 같다. 어찌 스님들에 관련된 허물이라 하여 막으면서 먹지 못하게 하는가?
【답】 재물을 탐하고 여색을 좋아하는 것을 지조 굳은 장부는 비루하게 보는 바요, 좋은 음식과 맛난 것만 즐기는 것을 청렴한 선비는 나쁘게 보는 바다. 애정을 끊고 도를 쫓는 것은 옛 성현들이 찬탄하던 바요, 욕심을 누르고 덕을 숭상하는 것을 옛날의 철인(哲人)들이 다같이 감탄했다. 하물며 고기는 생명을 죽여야 되고 술은 정신을 어지럽게 하므로 먹지 않는 것이 도리이거늘 어찌 그것이 잘못이라 하겠는가? 비록 위에서 억압한다 하더라도 끝내 엄히 끊어야 하고 비록 임금의 명을 어긴다 하더라도 도리어 불심(佛心)을 따를 것이다.’
【문】 고기는 생명을 죽여야 하므로 끊으라 하는 것은 우선 그렇다 쳐도 술은 생명을 죽이지도 않거늘 어째서 단번에 금제하는 것인가? 만일 손해가 없는데도 죄를 헤아리고 허물이 없는 데도 잘못이라 한다면, 음료를 마시고 밥을 먹는 것도 역시 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거늘 어째서 술만을 치우치게 끊으라는 것인가?
【답】 계율을 맺는 것은 사건에 따르고 죄를 얻는 것은 마음에 근거한다. 고기 자체가 살해된 것이므로 고기를 먹으면 죄가 되지만 술의 성질은 손상은 아니나 지나치면 정신을 피곤하게 함으로서 다른 곳에서 허물을 내게 한다. 그 허물이 생기는 것은 술 때문이므로 술을 끊으면 곧 없어지니 이 때문에 못 먹게 하는 것이요 술 자체를 죄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과는 같지 않다.
【문】 죄에는 차죄(遮罪)와 성죄(性罪)가 있다. 술 자체가 죄를 낳는다면, 술에 잘 견뎌내는
사람은 마셔도 취하지 않고 또 정신을 피곤하게 하지도 않을 뿐더러 죄가 생기지도 않으므로 이런 사람이 술을 마시면 응당 죄가 되지 않아야 한다. 이렇다면 술을 마셔도 과실이 없고 허물도 초래하지 않거늘, 무슨 관계로 술을 끊음으로써 계율의 선함을 이룬다는 것인가? 말하자면 마셔도 술을 견뎌내면 계율을 지닌다[持戒]고 해야 하고 조금만 마셔도 취하는 이는 큰 죄인이라고 해야 하리라.
【답】 계율을 제정하여 잘못을 막게 하는 근본은 선(善)을 내게 하기 위한 것이므로 계는 바로 선을 내는 것이다. 몸과 입으로 어김이 없고 심정(心情)으로도 그쳐서 차죄와 성죄 둘이 다 끊어져야 계율의 선함이라 하게 된다. 지금 술을 잘 견뎌내는 사람은 정신이 산란하지 않고 아직 다른 계를 깨뜨리지 않았으므로 실지로나 이치로 보아서는 죄가 아니다. 그러나 마구 마심으로써 죄는 생기는 것이니, 마심으로 인하여 밖으로는 차죄의 가르침을 어겼고 마음 속으로서는 범죄가 생겼으므로 오히려 죄가 있다고 하며, 술을 마시지 말라는 계를 어겼으므로 계율을 지닌 것이 아니다.”
첫째로 실교에 의거하여도 손해는 있다. 경에 의거하면 고기를 먹는 사람에게는 열 가지 과실이 있다.
그 첫 번째로 온갖 중생은 무시 이래로 지금까지 모두가 자기의 6친(親)이었으므로 고기를 먹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밝힌다.
그러므로 『입능가경(入楞伽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중생이 5도(道)에 윤회하는 것을 관찰하건대, 똑같이 나고 죽고 하면서 서로가 함께 나서 기르고 번갈아 부모 형제 자매와 내외종(內外從)의 남자와 여자와 6친의 권속이 되며, 혹은 다른 갈래인 선도(善道)와 악도(惡道)에 나면서 언제나 권속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인연을 내가 관하건대 중생들은 서로 고기를 먹으나 그들은 6친이 아닌 이가 없다. 고기를 먹는 맛으로 인해 서로서로 잡아먹으며 항상 해치는 마음을 내어서 괴로운 업을 더욱 자라게 하므로 생사에 유전(流轉)하면서 벗어날 수 없다.’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실 때에 악한 나찰(羅刹)들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모두가 악한 마음을 버리고 고기 먹는 것을 그치면서 서로가 보리의 마음[菩提心]을 내도록 권하였다. 그리하여 중생의 목숨을 보호하고 지나치게 스스로의 몸을 보호하면서 온갖 고기를 먹지 않고 슬피 울며 눈물을 흘리면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6도(道)를 자세히 관찰해 보니 저희들이 먹었던 고기는 모두가 저희들의 6친(親)이었습니다. 저는 비로소 고기를 먹는 중생은 바로 저희들의 큰 원수요, 큰 자비의 종자를 끊고 착하지 않은 업을 자라게 함으로서 큰 고통을 받는 근본임을 알았나이다. 저희들은 오늘부터 결단코 고기를 먹지 않겠사오며, 그리고 저희 권속들까지도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나이다. 여래의 제자로서 고기를 먹지 않는 이를 저희들은 밤낮으로 가까이 옹호하겠사오며, 고기를 먹는 이에 대해서는 저희들이 그에게 크게 이익되지 않는 일을 짓겠나이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大慧)야, 항상 고기를 먹는 나쁜 귀신인 나찰조차도 나의 말한 바를 듣고 오히려 인자한 마음을 내어 고기를 버리고 먹지 않거늘 하물며 나의 제자로서 착한 법을 행하는 이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허락하겠느냐? 만일 고기를 먹는 이가 있다면 이는 곧 중생의 큰 원수요 나의 성스런 종자를 끊는 줄 알지니라.
대혜야, 만일 나의 제자로서 나의 말한 바를 듣고서도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 고기를 먹는 이는 바로 전다라(旃陀羅) 종자요, 나의 제자가 아니며 나도 그의 스승이 아닌 줄 알지니라.’”
두 번째, 고기 먹는 중생을 보는 이가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힌다.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고기 먹는 사람은 중생이 그 냄새를 맡고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도주하며 멀리 떠난다. 그러므로 보살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여실(如實)한 행을 닦으면서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 비유하면 마치 전다라와 사냥꾼과 백정과 물고기와 새를 잡는 사람들이 어디를 가도 중생들은 멀리서 보고 생각하기를 ‘우리는 이제 영락없이 죽었다. 저기 오는 이는 아주 나쁜 사람이며, 죄와 복을 모른 채 중생의 목숨을 끊으면서 눈앞의 이익만을 구하고 있다. 지금 이 곳으로 오는 것은 우리들을 잡기 위한 것인데, 우리들은 모두 다 살이 있기 때문에 지금 그가 오고 있으니 우리들은 영락없이 죽었다’고 하는 것과 같으니라.
대혜야, 사람들이 고기를 먹기 때문에 중생으로 이를 본 중생들은 모두
이러한 놀랍고 두려운 마음을 내는 것이다. 대혜야, 온갖 허공과 땅에 있는 중생이 고기를 먹는 이를 보면 모두가 두려워하면서 이렇게 의심한다. ‘나는 이제 죽게 될까, 살게 될까? 나쁜 사람은 인자한 마음을 닦지 않으니 마치 승냥이와 이리가 세간을 돌아다니며 항상 먹을 고기를 찾는 것과 같고, 마치 소가 풀을 먹고 쇠똥구리가 똥을 쫓아가면서, 배부른 줄을 모르는 것과 같다. 우리의 몸은 고깃덩이라서 바로 그들의 먹이이다. 만나지 말아야겠다’ 그리고는 버리고 도망가면서 멀리 떠나버리는 것이 마치 사람이 나찰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으니라.”
세 번째, 고기를 먹는 사람은 다른 이의 신심(信心)을 무너뜨리므로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힌다.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만일 고기를 먹으면 중생은 곧 온갖 신심을 잃고 ‘세간에는 믿을 만한 이가 없구나’ 하면서 신근(信根)을 끊게 되나니, 그러므로 대혜야, 보살은 중생의 신심을 보호하기 위하여 모든 고기란 고기는 먹지 말아야 한다. 왜냐 하면 세간의 어떤 사람은 고기 먹는 것을 보고 3보를 헐뜯으면서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불법 중의 어디에 진실한 사문과 바라문으로 범행(梵行)을 닦는 이가 있다는 말인가. 성인으로서 본래 먹어야 할 음식을 버리고 중생을 먹는 것이 마치 나찰과 같으니 말이다.’
이처럼 나의 법륜(法輪)을 끊고 성스런 종자를 없애는 것은 모두가 고기 먹는 이의 허물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혜야, 나의 제자라면 악인이 3보를 헐뜯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고기라는 생각까지도 일으키지 않아야 하겠거늘 하물며 먹을 수 있겠느냐?”
네 번째, 인자한 마음과 욕심이 적은 수행인은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힌다.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보살은 생사를 벗어나기 위하여 의당 생각을 오로지 하고서 자비스런 행으로 욕심을 적게 갖고 만족할 줄을 알며 세간의 괴로움을 싫어하고 속히 해탈을 구하여야 한다. 만일 시끄러운 곳을 버리고 조용한 데로 나아가서
시다림(尸陀林)이나 아란야 처소[阿蘭若處]나 무덤 사이나 나무 아래 혼자 앉아 사유(思惟)하면서 모든 세간을 관찰하면 하나도 즐길 만한 것이 없음을 알 것이다. 처자와 권속은 마치 칼과 쇠사슬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궁전과 누각은 마치 견고한 감옥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보이는 모든 값진 보물은 마치 똥무더기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보이는 모든 음식은 마치 피고름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받는 모든 음식은 마치 종기의 상처에 바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하여 활기를 간직하고 생각을 거룩한 도(道)에 매어두면 술과 고기와 파ㆍ부추ㆍ마늘ㆍ염교 등의 훈채(葷菜) 맛을 탐내지 않게 되어서 모두 다 버리고 먹지 않을 것이다. 만일 이렇게 한다면 참으로 수행하는 자이라서 온갖 인간과 하늘의 공양을 받을 만하다. 만일 세간에 싫증을 내지 않고 술과 고기와 훈채의 모든 맛을 탐착하면서 다 먹는다면, 세간의 신시(信施)를 받아서는 안 되느니라.”
다섯 번째, 고기를 먹는 사람은 모두 과거 세상에 일찍이 나쁜 나찰이 된 일이 있어서 그 습기 때문에 지금 고기를 탐내고 있으므로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힌다.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어느 중생이든 다 과거에 일찍이 한량없는 인연을 닦았는지라 조그마한 선근(善根)이 있어서 나의 법을 듣게 되었고, 믿는 마음으로 출가하여 나의 법 안에 있게 되었거니와, 과거 세상에서 일찍이 나찰의 권속이나 범ㆍ이리ㆍ사자ㆍ고양이 및 삵 안에 태어난 적이 있는 이는 비록 나의 법 안에 있다손 쳐도 고기를 먹었던 그 남은 습기 때문에 고기 먹는 이를 보면 기뻐하면서 가까이 하며, 모든 성읍과 마을과 절에 들어가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모든 천하가 다 마치 나찰이 죽은 시체를 다투면서 먹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보고 있는데도, 그는 이미 나의 대중을 상실하고 나찰의 권속이 되었음을 모르고 있다. 비록 가사를 입고 수염과 머리를 깎았다 하더라도 그 명(命)을 살펴보면 마음에 두려워하기를 마치 나찰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이 하느니라.
여기서는 고기를 먹는 이가 과거 세상에 나찰이나 사자ㆍ범ㆍ이리ㆍ고양이 및 삵 등으로 태어났던 적이 있었고 지금은 이렇게 이승에 와 있음을 밝히고 있으니, 그러므로 응당
끊어야 한다.”
여섯 번째, 고기를 먹는 사람은 세간의 주술(呪術)을 배우는 것도 오히려 성취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출세간(出世間)의 법을 어떻게 증득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수행하는 이는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힌다.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삿된 소견을 지닌 세간의 모든 주술사가 만일 고기를 먹으면 성취하지 못한다. 삿된 술법을 이루기 위해서도 오히려 고기를 먹지 않거늘, 하물며 나의 제자로서 여래의 위없는 거룩한 도를 구하여 세간을 벗어나고 해탈하기 위하여 큰 자비를 닦는 자이겠느냐? 부지런히 고행(苦行)을 하여도 오히려 얻지 못할까 두렵거늘 어디에 해탈이 있을 수 있겠느냐? 저 어리석은 사람들은 고기를 먹으면서 해탈의 과보를 얻으려 한다. 그러므로 대혜야, 나의 모든 제자는 세간을 벗어나는 해탈과 즐거움을 구하기 위하여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느니라.”
일곱 번째, 중생 모두는 몸과 목숨을 자기와 다름이 없이 애착하니, 그러므로 수행하는 이는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힌다.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고기를 먹으면 색(色)과 힘이 씩씩해지므로 사람들은 거개가 즐기면서 탐착한다. 그러나 온갖 세간의 몸과 생명이 있는 것은 저마다 자기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죽는 고통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 자기 몸을 수호하고 애석히 여김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름이 없다. 차라리 옴이 오른 야간(野干)의 몸으로라도 살아 있기를 원하지, 목숨을 버린 뒤에 모든 하늘의 쾌락을 받는 것조차도 싫어한다. 왜냐 하면 죽음의 고통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로써 관찰하건대, 죽는 것은 큰 괴로움이요 두려워할 만한 법이다. 자기 몸은 죽기를 두려워하면서 어떻게 다른 이의 고기를 먹는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대혜야, 고기를 먹고자 하는 이는 먼저 자기 자신의 몸을 생각하고 다음에는 중생을 자세히 살필 것이니,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느니라.”
여덟 번째, 고기를 먹은 사람은 모든 하늘과 성현이 모두 다 멀리 떠나고 나쁜 귀신조차도 두려워하게 된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이는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힌다.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대개 고기를 먹는 이를 모든 하늘들도 멀리 하거늘 하물며
성인이겠느냐? 그러므로 보살은 성인을 뵙기 위해서도 자비를 닦아야 하고, 고기를 먹는 사람은 잠을 잘 때도 괴롭고 깨어 있을 때도 괴롭다. 꿈 속에서 갖가지 나쁜 일들을 보자 놀랍고 두려워서 털이 곤두서고 마음이 항상 불안한 것은 인자한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착한 힘이 모자라기 때문에 그가 고요한 곳에 혼자 있으면 대개 비인(非人)이 그의 틈을 엿보게 되며, 범ㆍ이리ㆍ사자 조차도 그에게로 와서 엿보고 있다가 그의 고기를 먹으려 하므로 마음은 늘 두렵고 안온할 수 없느니라.”
아홉 번째, 고기를 먹는 사람은 정육(淨肉)조차도 오히려 먹어서는 안 되거늘 하물며 부정육(不淨肉)이겠느냐? 그러므로 수행하는 이는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힌다.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나는 범부가 청정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청정한 음식을 먹을 적에도 오히려 아들의 고기와 같다는 생각을 내라고 하거늘 하물며 성인이 아닌 이의 음식을 먹으면서 성인으로서의 집착을 여읠 것을 허락하겠느냐? 고기는 한량없는 모든 과오를 내기 때문이다. 세간을 벗어나는 온갖 공덕을 설하는 내가 어찌 모든 제자들에게 살과 피가 있는 부정한 음식을 먹으라고 했겠는가? 내가 허락했다고 말한다면 그는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율(內律)에서 이르되 ‘산 목숨의 고기와 피를 먹으면 투란차(偸蘭遮)의 죄가 된다’고 했느니라.”
열 번째, 고기를 먹는 사람은 죽으면 도로 나쁜 나찰 등에 가서 나니, 이 때문에 수행하는 이는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힌다.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고기를 먹은 중생은 과거 세상에 고기를 먹은 그 훈습(熏習) 때문에 대부분이 다시 나찰이나 사자ㆍ범ㆍ이리ㆍ승냥이ㆍ표범ㆍ고양이ㆍ삵ㆍ솔개ㆍ올빼미ㆍ수리 및 새매 등으로 난다. 이 생명 있는 무리들은 각자 몸을 수호하고 틈을 주지 않으면서 굶주림의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에 늘 나쁜 마음을 일으켜 남의 고기를 먹으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목숨을 마치면 다시 악도로 떨어지게 된다. 이처럼 사람의 몸조차도 얻기가 어렵거늘 하물며
열반의 도를 얻을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고기를 먹으면 이러한 한량없는 허물이 있는 것이니, 이 때문에 수행하는 이로써 고기를 먹지 않는 이는 그것이 곧 한량없는 공덕의 덩어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또 『앙굴마경(鴦掘魔經)』에서 말하였다.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장(如來藏) 때문에 모든 부처님께서는 고기를 잡수시지 않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체 중생은 나고 죽고, 죽고 나고 하면서 부모 형제 자매가 아님이 없는 것이, 마치 재주부리는 아이가 끊임없이 변하는 것과 같나니, 자기의 살과 남의 살이 곧 같은 살이다.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께서는 고기를 잡수시지 않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일체 중생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곧 하나의 세계요, 먹는 살도 곧 같은 살이니,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두가 고기를 잡수시지 않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스스로 죽은 소의 주인이 그 가죽으로 신을 만들어서 계를 지닌 사람에게 보시하면 받아야 하겠느냐, 받지 않아야 하겠느냐? 받지 않는 것이 비구로서의 법이요 받으면 자비가 아니다. 그러나 파계는 아니니, 그 전전(展展)하는 것으로 보아서 살생하는 인연은 여의었기 때문이니라.’”
또 이 경에서 말씀하셨다.
“중생의 몸 속에는 80만 마리의 벌레가 있다. 만일 한 중생의 생명을 끊으면 곧 80만 마리의 벌레의 생명을 끊는 것이 된다. 만일 굽거나 삶거나 물에 담그거나 햇빛에 쪼이거나 하면, 거기에는 작은 벌레들이 있고 나비와 파리와 구더기가 붙어 있으므로 한량없는 생명을 죽이게 되나니, 비록 자기가 손수 죽인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죽이는 것이 된다. 그리고 백정이 자기 자신이 먹지 않는다 해도 고기 먹는 사람들을 위해서 죽이는 것이니, 그러므로 고기 먹는 사람은 곧 살생업(殺生業)의 죄까지 겸하게 되는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혹 어떤 출가한 승니(僧尼)는 몸은 가람(伽藍)에 있으면서도 모든 속인들과 공공연히 어울려서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며 훈채의 냄새나는 것으로 가람을 더럽히고 있으면서도 불상을 향해 부끄러워함이 없나니,
이렇게 혼탁한 일을 어찌 외도보다 낫다 하겠느냐?”
또 『니라부타지옥경(尼羅浮陀地獄經)』에서 말하였다.
“마치 조각난 살과 같은 것이 몸인데, 이것이 사람인 줄 모르고 있는 것은 모두가 술 때문이다. 출가한 승니(僧尼)로서 어찌 경전의 가르침을 깊이 믿으면서 큰 부끄러움을 내지 않고 스스로 바른 법을 버린 채 외도와 같이 어울릴 수 있겠는가. 만일 중생이 아버지의 고기를 먹는 것은 그 중생도 그 아버지의 고기를 먹는 것이요, 만일 중생이 어머니의 고기를 먹는 것은 그 중생도 그의 어머니의 고기를 먹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형제 자매와 아들과 딸의 6친(親)이 서로 마주 대하면서 원수가 또 원수가 되어 서로서로 갚으므로 벗어날 수가 없다.”
또 『사미니계경(沙彌尼戒經)』에서 말하였다.
“살생하지 말라. 중생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되 마치 부모가 아들을 생각하듯 가엾이 여겨야 하며, 꿈틀거리는 것도 마치 자기의 갓난아이처럼 여겨야 한다. 무엇을 살생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몸과 입과 뜻을 보호하면서 몸으로는 숨을 헐떡거리는 사람이나 짐승을 죽이지 않는 것이다. 자기 손으로도 죽이지 않고, 남을 시켜서도 죽이지 않으며, 죽인 것을 보면 먹지도 않고, 죽는 소리를 들어도 먹지 않으며, 죽인 것이라는 의심이 나도 먹지 않고, 자신을 위하여 죽인 것도 먹지 않는다.
입으로는 ‘죽여야 한다. 살해하여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말을 하지 말고, 또한 ‘죽어서 유쾌하다. 죽여서 유쾌하다. 아무개 살은 살찌고 아무개 살은 말랐다. 아무개 살은 많고 좋았다. 아무개 살은 적고 나빴다’ 하는 등의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뜻으로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니,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것을 마치 자기의 골수와 같이 여기고 아버지처럼, 어머니처럼, 아들처럼, 제 몸처럼 여기면서 차별함이 없을 것이며, 널리 한결 같은 마음으로 평등이 여기면서 항상 대승에 뜻을 두어야 한다.”
또 『현우경(賢愚經)』에서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파사닉왕(波斯匿王)에게 말씀하셨다.
‘과거의 오랜 옛적 아승기겁에 이 염부제에 바라내(波羅柰)라는 한 나라가 있었습니다. 당시 바라마달왕(波羅摩達王)이라는 왕이 있었는데, 네 종류의 병사들을 데리고 산에 들어가 사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왕은 진펄 위에 이르자 짐승을 발견하고서 달려가 쫓았는데, 그 수레에 혼자만이 탔었으므로 자기 혼자만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갔었습니다. 왕은 그 때 몹시 피곤했으므로 말에서 내려와 잠시 동안 쉬고 있었습니다. 그 때 숲 속에는 한 마리의 암사자가 음심(淫心)이
몹시 나서 그 짝을 구하러 다녔으나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숲 사이에 왕이 혼자 앉아 있는 것을 보자 음심이 더욱 왕성해졌으므로 왕과 교미하겠다는 생각으로 그의 곁으로 다가가서 꼬리를 든 채 등을 돌리고 서 있었습니다. 왕은 사자의 뜻을 알아차리고 생각하기를 ≺이 사나운 짐승은 힘이 세므로 나를 죽일 수도 있다. 만일 그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위해를 당할지도 모른다≻고 하고, 왕은 두려웠기 때문에 곧 사자의 뜻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난 뒤에 사자는 돌아갔고, 여러 병사들이 그곳으로 왔으므로 왕과 사람들은 곧 궁성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 사자는 새끼를 배어서 달이 다 찬 뒤에 한 아들을 낳았는데, 형상은 모두 사람과 같았고 다만 발에 얼룩점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사자는 그가 왕의 아들임을 알고 곧 물고 가서 왕 앞에다 놓아주었고, 왕 역시 그가 자기 아들임을 알았으므로 곧 거두어서 길렀는데, 발에 큰 얼룩점이 있었으므로 이름을 반족(斑足)이라고 지었습니다. 반족은 점점 장성해지자 재주가 뛰어났고 의지가 굳세었으며, 부왕이 죽게 되자 그 뒤를 이어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당시 반족왕에게는 두 부인이 있었는데, 첫째는 왕의 종족(種族)이었고 둘째는 바라문의 종족이었습니다. 반족이 놀러 나가면서 두 부인에게 자기 뒤를 따라 오도록 권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먼저 도착한 이와 하루 동안 지극히 재미있게 놀겠다. 그러나 뒤에 온 이와는 만나지도 않겠다.≻
그리고는 왕은 먼저 떠났으며, 나중에 두 부인은 아주 잘 치장하고서 수레를 타고 함께 떠났습니다. 가는 도중에 천사(天使)가 있었으므로 범지 종족의 부인은 수레에서 내려와 예배를 하고 가느라고 나중에 도착했습니다. 왕은 자기의 말대로 그녀를 앞에 오지도 못하게 하였는데, 부인은 성을 내면서 천신을 원망하였습니다.
≺당신에게 예배하느라 왕에게 구박을 당하였소. 만일 천신으로서 힘이 있다면 어째서 나를 보호하지 못했소.≻
그리고는 나중에 천사를 헐어버리고 편편한 땅으로 만들었습니다. 천사를 지키던 신은 몹시 슬퍼하고 괴로워하면서 궁성으로 가서 왕궁을 헐어버릴 작정이었으나 막혀서 들어가지를 못했습니다.
그 때 산중에 사는 한 선인(仙人)이 있었는데 왕이 늘 공양하고 있었습니다. 날마다
끼니때가 되면 궁중으로 날아 왔는데, 반찬이 하찮거나 밥이 거칠면 먹지도 않았습니다. 하루는 우연히 선인이 오지 않았습니다. 천신은 그것을 알자 그의 형상으로 변화하여 평소에 앉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밥을 먹으려 하지 않고 고기를 가져 오라 하였고, 그의 말대로 고기를 가져다 주자 먹고서 떠나갔습니다. 다음 날 먼저의 신선이 왔으므로 그에게 고기와 밥을 차려다 주자, 선인이 왕에게 성을 내었습니다. 왕이 말하였습니다.
≺큰 선인께서 어제는 그렇게 하라 하시고 오늘은 왜 잡수시지 않습니까?≻
선인이 말하였습니다.
≺어제는 몸이 좀 아파서 오지 못했소. 그 누구를 나라고 하는 것이오. 나를 업신여기며 시험하려 하는구려. 왕에게 이 뒤의 12년 동안은 늘 사람의 고기를 먹게 하겠소.≻
그리고는 날아서 산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 주방장이 고기를 준비하는 것을 잊어버리고서 미처 마련하지 못하였습니다. 때는 다 되고 어떻게 할 수 없자 바깥으로 나가서 고기를 구하다가, 죽은 어린 아이의 하얀 살이 땅에 있는 것을 보자 ≺우선 급한 대로 때우기로 하자≻고 생각하고는 머리와 다리를 잘라 가지고 가서 주방으로 들어가 온갖 맛있는 양념을 다하여 음식을 만들어서 왕에게 바쳤습니다. 왕은 그것을 먹어 보고 평소의 것보다 갑절 더 맛있음을 깨닫고 곧 주방장을 불러서 물었습니다.
≺이제까지 먹어본 고기는 이런 좋은 맛이 없었다. 이것이 무슨 고기냐?≻
주방장은 당황하고 두려워하면서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만일 왕께서 죄를 용서해 주신다면 사실대로 말씀하겠습니다.≻
왕이 그에게 대답했습니다.
≺사실대로만 말을 하라. 그러면 죄는 묻지 않겠다.≻
주방장이 앞에서 있던 일을 자세히 말하자 왕이 말하였습니다.
≺이 고기는 참으로 맛있구나. 앞으로는 그렇게 구하여다 장만하도록 하라.≻
주방장이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앞의 것은 우연히 죽은 아이를 만났습니다만 다시는 더 구할 수 없습니다.≻
왕은 또 말하였습니다.
≺너는 은밀히 붙잡아 오기만 하라. 설령 들킨다 해도 그 결단은 내가 할 것 아니냐?≻
주방장은 분부를 받고 밤이면 늘 몰래 아이를 잡아와 죽인 뒤에 날마다 왕에게 바쳤습니다.
당시 성안의 백성들이 저마다 울고 다니면서 말했습니다.
≺아이를 잃어 버렸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까?≻라고 서로서로 물었고, 모든 신하들은 모여 의논하다가 몰래 숨어서 엿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곧 거리의 곳곳에 몰래 숨어서 살피고 있다가 왕의
주방장이 어린 아이를 끌고 가는 것을 보았으며 곧 그를 붙잡아 포박하여 왕에게 데려가서 앞의 사실을 자세히 말하자, 왕이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시킨 것이다.≻
모든 신하들은 원한을 품고 각자 밖으로 나와 의논하였습니다.
≺왕은 곧 도둑입니다. 우리들의 아들을 잡아다 먹었으니 말이오. 사람을 잡아먹는 왕과 함께 어떻게 정치를 하겠소. 함께 제거하여 이 재앙을 없애야겠소.≻
그리고 모두가 마음을 같이 하여 함께 공모한 뒤에 일시에 모여서 왕을 포위한 뒤에 잡아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왕은 병사들이 모인 것을 보자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무엇 때문에 나를 포위하여 다가오는 것이오?≻
모든 신하들이 대답하였습니다.
≺대저 왕이란 백성을 양육함이 그의 일인데, 주방장을 시켜서 사람을 죽여 음식으로 삼고 있으니, 그 가혹한 일을 용서하지 못하겠소. 그 때문에 왕을 죽이려 하오.≻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지금부터는 다시 그런 일을 하지 않겠소. 용서만 해준다면 스스로 힘써 고치겠소.≻
그러나 모든 신하들이 말하였다.
≺놓아주지 못하겠소. 여러 말을 할 필요가 없소.≻
왕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은 틀림없이 죽게 될 것임을 알고 곧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비록 나를 죽일지라도 잠시 동안 말미를 주고 나의 말 한 마디만 들어 주시오.≻
그리고는 곧 서서 서원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 동안 닦은 선행으로 왕이 되어서 바르게 다스렸사오며 선인(仙人)을 공양하면서 많은 덕을 쌓았사오니, 그 공으로 오늘의 저로 하여금 변하여 날아다니는 나찰이 되게 하소서.≻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말대로 곧 허공을 날아가면서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들은 힘을 합쳐서 억지로 나를 죽이려 하였다. 나는 큰 행운을 얻어 스스로 다시 구제되었으니, 나는 이제부터 너희들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차례로 잡아먹을 것이다.≻
그리하여 산 숲 사이에 머무르고 날아다니며 사람들을 잡아 갖고 와서 음식을 삼았으므로 온 백성들이 두려워서 숨고 피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잡아먹었으며, 여러 나찰의 무리도 그에게 붙어서 돕고 따랐으므로 그 무리들은 점차 많아졌으며 피해도 갈수록 커졌습니다. 뒤에 여러 나찰들은 이 반족왕에게 아뢰었습니다.
≺우리들이 받들어 섬기며 왕으로 모시겠으니
한 패가 되어 주십시오.≻
그러자 왕은 곧 허락하며 말했습니다.
≺여러 왕들을 붙잡아 와서 5백 명을 채우도록 하라. 그러면 너희들과 한 패가 되겠다.≻
낱낱의 나찰이 모두가 가서 붙잡아다 깊은 산에 가두어 놓았으니, 벌써 499명이나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남았는데 그의 이름은 뒤에 수타소미왕(須陀素彌王)으로 불렸으나 그도 곧 붙잡혀 왔습니다. 그는 덕이 높은 사람인데 나찰왕에게 청하여 7일 간의 휴가를 받았습니다.
휴가가 다 끝나자 돌아 온 수타소미왕은 널리 반족왕을 위하여 설법하면서 살생의 죄와 그에 대한 악한 과보를 분별하였고, 다시 인자한 마음으로 살생하지 않는 복도 말해 주었습니다.
반족왕은 기뻐하면서 공손히 예배하였고, 그의 가르침을 받들어 다시는 살해하려는 마음이 없어지자, 곧 모든 왕들을 석방하여 저마다 그의 본국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수타소미왕은 곧 병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다시 반족왕을 그의 본국으로 돌려보내어 왕이 되게 하였습니다. 앞의 선인이 맹세한 12년이 다 찬 것입니다. 그로부터 다시는 사람을 먹지 않았으며 드디어 다시 패왕(霸王)이 되어서 백성을 옛날과 같이 다스렸습니다.
당시의 수타소미왕이 바로 지금의 나의 몸이며, 반족왕은 바로 지금 앙굴마라입니다. 그 때 12년 동안 반족왕에게 잡혀 먹힌 여러 사람들은 바로 지금 앙굴마라에게 죽음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사람들은 세상마다 늘 앙굴마라에게 죽음을 당했으며 나 또한 세상마다 그를 항복받아 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앙굴마라가 바로 지금의 지만(指鬘) 비구입니다.’
그러자 파사닉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만 비구는 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먹은 뒤에도 도를 얻었사온데, 장차 그 과보를 받나이까?’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행하면 반드시 과보가 있습니다. 지금 이 비구는 방 안에 있지만 지옥의 불이 털구멍으로부터 나와 극심한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하고 있는데 말로는 다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한 비구에게 명하셨다.
‘너는 문을 밀치고 지만의 방으로 가서 문구멍으로 정탐해 보아라.’
비구가 곧 분부를 받고 가서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스스로 불에 타며 녹고 있었다. 깜짝 놀란 비구는 돌아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행하면 그에 대한 과보가 그러한 것이니라.’
그리하여 왕과 모인 대중들은 믿고 이해하지 아니함이 없었다.
게송을 읊는다.

재물과 여색과 술을
세 가지 미혹[三惑]이라 이름하나니
신하가 빠지면 집을 잃게 되고
임금이 중히 여기면 나라가 망한다.

고기[肉]는 큰 자비를 장애하고
훈신채(葷辛菜)는 청정한 덕을 막나니
도(道)를 품고 있는 군자(君子)라 하면
이 더러움을 탐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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