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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714 부법장인연전(付法藏因緣傳) 5권

by Kay/케이 2024.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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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부법장인연전(付法藏因緣傳) 5

 

부법장인연전 제5권

길가야1)ㆍ담요2) 공역
심삼진 번역

상나화수존자가 열반할 때가 되어 법을 우바국다에게 부촉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옛날 바가바(婆伽婆)께서 위없는 법으로써 마하가섭존자에게 부촉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크게 밝은 횃불을 잡게 하여 영원히 모든 고통을 여의고 열반의 즐거움을 받게 하셨다. 가섭존자가 다음으로 나의 스승이신 아난존자에게 부촉하셨고, 아난존자는 다시 나에게 부촉하셨다. 내가 멸도하려고 지금 너에게 부촉하니 네가 만약 뒷날 열반을 하려고 하면 마돌라국에 어떤 선남자가 세상에 나올 것이며, 그의 이름은 제다가(提多迦)일 것이다. 오래 전부터 서원과 행을 닦아 변재가 다함이 없을 것이다. 너는 반드시 뒤에 제도하여 출가하게 하고 정법 안장[法眼]으로써 모두 그에게 부촉하도록 하여라.”
우바국다가 말하였다.
“예. 가르침을 받아 그 존자에게 이르도록 하겠습니다.”
우바국다가 교화하는 인연을 장차 끝내고 열반에 들려고 마음먹고 제다가가 세상에 태어났는지 아닌지를 관찰했다. 사유하다가 문득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알았다.
그때 우바국다존자가 비구들을 데리고 그 집에 갔다. 점점 숫자를 줄여 나중에는 혼자 갔다. 그의 아버지인 장자가 물었다.
“큰 성인이시여, 어찌 권속도 없이 홀로 다니십니까?”
우바국다존자가 대답하였다.
“장자님, 출가한 사람이라 시봉이 없습니다. 만약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시혜를 베풀도록 하십시오.”
장자가 다시 말했다.
“저는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니 스님이 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이후에 아들을 낳으면 반드시 시봉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바국다존자가 말했다.
“그 뜻이 훌륭합니다. 반드시 그 마음을 지켜 변하거나 후회하지 마시오.”
이 장자가 몇 차례 여러 아들을 낳았으나 모두 나이가 어릴 때 번번이 죽어 버렸다. 맨 끝으로 낳은 아들의 이름은 제다가였고 얼굴 모습이 매우 아름답고 총명하고 영리하여 배움을 받아들임이 아주 능숙하여 모든 경과 논[經論]을 기억하였다. 과거에 수행하여 선의 근본을 깊이 심었다.
우바국다가 가서 그를 찾으니 장자가 기뻐서 손수 주었다. 데리고 절[僧坊]에 이르러 제도하여 출가하게 했는데 나이가 이십 세가 되자 구족계(具足戒)를 받던 중 처음 말할 때 견제(見諦)3)의 결(結)을 끊어 수다원을 증득했고, 첫째 갈마(羯磨)에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 사다함을 획득하였으며, 둘째 갈마에 욕계(欲界)의 결이 다하여 아나함을 증득하였고, 셋째 갈마에 갑자기 삼계의 번뇌가 끊어지고 범행이 이루어져 아라한을 성취하였다. 세 가지 밝음[三明]이 멀리 비치고 여섯 가지 신통[六通]을 구족하였고 유보(遊步)함에 숨거나 드러남이 뜻대로 되어 막힘이 없었다.
우바국다가 그에게 말했다.
“지혜의 태양이신 세존께서 자비로 널리 덮으시고, 중생을 나고 죽는 큰 고통에서 제도하시려고 헤아릴 수 없는 겁 동안 모은 법을 마하가섭존자에게 부촉하여 크게 밝은 등불을 만들어 세간의 어두움을 널리 비춰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배우고 닦아 애욕의 그물을 끊고 진흙창에서 벗어나게 하셨다. 가섭존자가 다음으로 아난존자에게 부촉하셨고, 아난존자가 멸도하면서 나의 스승인 상나화수존자에게 부촉하셨으며, 상나화수존자는 나에게 부촉하셨다. 이와 같이 서로 이어 항상 법륜(法輪)을 퍼뜨렸고 감로를 뿌려 맛보게 하여 번뇌의 갈증을 해소시켰다.
그러나 나는 지금 할 일을 다하여 열반의 시기가 왔으니 멸도가 멀지 않았다. 이 법보(法寶)로써 너에게 부촉하나니 너는 받아서 유지시켜 받들어 모시고 부지런히 수호하기에 힘써 법보로 하여금 빠뜨려 잃어버림이 없게 하고 법을 연설하는 광명이 어리석음의 어두움을 비추게 하여라.
또한 제다가야, 여래께서 열반하시자 현성들도 열반하시어 있던 일체 뜻이 깊은 경전과 보장(寶藏)도 점점 쇠퇴하여 땅에 묻혀 버리고 세간이 어두워졌으며 나고 죽음에 떠돌았다. 왜냐하면 옛날 나의 스승이신 상나화수존자께서 이미 멸도하신 뒤에 칠만 칠천의 본생(本生)을 말씀하신 모든 경전과 일만의 아비담장(阿毘曇藏)과 팔만의 청정한 비니(毘尼) 등 이와 같은 법들이 모두 따라서 감소되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열반하면 뭇 법이 쇠퇴하여 감소하거늘 하물며 많은 현성들이 함께 모두 멸도하였으니 어떠하겠느냐? 청정하고 미묘하며 뛰어난 법이 영원히 남은 것이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지금 간절히 너에게 맡기노라. 너는 나의 뜻을 공경하고 따라서 모든 중생들에게 크게 자비로운 마음을 내고 정법을 받아서 유지하고 유포하여 단절됨이 없게 하여라.”
제다가가 말했다.
“공손히 높으신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저는 반드시 이와 같은 정법을 옹호하고 미래의 세상을 위하여 벗을 청하지 않는 벗이 되겠습니다.”
이에 차례로 말하여 위없는 법을 맛보였으니 그가 교화하여 제도시킴이 매우 크고 넓었다. 인연이 끝나자 열반했는데 사람과 천신이 슬퍼하며 사리를 수습하여 칠보탑을 세우고 향을 피우고 꽃을 뿌리는 등 갖가지로 공양 올렸다.
옛날 제다가가 멸도에 들 때 정법으로써 제일 큰 제자인 미차가(彌遮迦)에게 부촉하였다. 들은 것이 많고 널리 통달하였으며 큰 변재가 있었다.
제다가가 말했다.
“부처님께서 정법을 대가섭(大迦葉)에게 부촉하셨고, 이와 같이 한 분 한분께 부촉하여 나에게까지 이르렀다. 내가 장차 열반하려고 너에게 부촉하니 너는 반드시 후세에 법의 눈[法眼]을 유포하여라.”
마차가가 말했다.
“좋습니다.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이에 정법보장(正法寶藏)4)을 두루 유포시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열반의 길을 열게 하고, 교화할 인연을 이미 마치고는 멸도함에 다다라 다시 정법으로써 불타난제(佛陀難提)존자에게 부촉하여 그로 하여금 불법을 유포하고 뛰어난 감로로써 맛보이게 하였다. 난제가 뒤에 널리 두루 분별하여 큰 법륜을 퍼뜨려 마군과 원적들을 항복시킨 뒤 불타밀다(佛陀蜜多)에게 부촉하였다. 그 사람이 지닌 덕의 힘은 매우 깊어 헤아릴 수 없으며,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으로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나쁜 견해를 여의고 가장 뛰어난 도에 나아가도록 했으며, 큰 지혜로써 스스로를 장엄하였고, 청정한 법을 연설하여 다른 도를 배우는 이들을 항복시켰다. 이와 같은 공덕을 말로 다 표현할 수는 없다.
내가 지금 그의 행적을 따라 약간만을 말하겠다.
어떤 큰 나라의 임금이 온 천하를 거느렸다. 재주와 용맹이 뛰어났으며, 많이 듣고 널리 통달했으나 근본적으로는 다른 가르침을 섬기고 삿된 견해를 믿고 수용하며, 불ㆍ법ㆍ승은 항시 경멸하고 훼손하려는 뜻을 품었다.
불타밀다는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나의 스승이신 난제존자께서 법을 나에게 부촉하셨거늘 나는 어떻게 하면 뛰어난 눈[勝眼]을 부연(敷演)하여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널리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할 것인가?’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임금은 삿된 견해가 매우 크니 나는 꼭 먼저 가서 이를 조복시켜야 하겠다. 비유하면 나무를 벨 때와 같으니 만약 밑둥치를 잘라 버리면 가지와 잎과 꽃과 줄기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이러한 생각을 하고 나서 십이 년 동안 몸소 붉은 변기[幡]를 가지고 왕 앞에서 걸어갔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왕이 전혀 묻지 않았다. 이렇게 시간이 흐른 뒤 문득 그것을 물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기에 나를 앞서 가고 있는가?”
문득 명령하여 불러서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묻자 불타밀다존자가 말했다.
“대왕이시여, 저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담론(談論)을 매우 잘합니다. 임금님 앞에서 한번 시험해 주실 것을 청하옵니다.”
그때 대왕이 곧 두루 명령하여 나라 안에 있는 바라문(婆羅門)과 장자(長者)와 거사(居士)로서 총명하고 널리 통달하고 말을 잘하는 이는 모두 나의 정승전(正勝殿)에 모여 한 사문(沙門)과 함께 논리에 대하여 토론[議論]하라고 하였다.
이에 일체 삿된 견해를 지닌 외도로서 변재가 심오하고 지혜가 널리 통달하고 천문과 지리 등 종합하여 익히지 아니한 것이 없는 이들이 성내며 독한 마음을 품고 다투어 와서 구름같이 모였다.
그때 그 대왕이 정전(正殿) 위에 공양거리를 뛰어나게 차려 놓고 깔개를 펴고, 한편 향을 피우고 꽃을 뿌려 장엄한 것이 화려하게 밝고 깨끗하였다.
불타밀다존자가 법좌(法座)에 올라 모든 외도와 함께 부정론[無方論]5)을 세우자 얕은 지혜를 지닌 이들은 한마디 말에 굴복하고, 총명과 변재가 많은 이라도 두 번째에서 문득 말문이 막혔다.
왕이 모든 사람들을 보니 이치적으로 모두 몹시 부족하였다. 임금이 밀다와 더불어 스스로 함께 논리를 토론하더니 말을 시작하자 실마리를 잡혀 곧 꺾이고 말았다.
불타밀다존자는 ‘내가 왕과 더불어 논의하여 이긴 것을 드러내지 말자’라고 생각하고서 임금에게 말했다.
“이 뜻의 매우 깊고 얕음은 임금님께서 스스로 아십니다.”
그때 그 왕은 곧 자신이 굴복한 것을 알고, 삿된 마음을 고쳐 정법을 공경하고 믿었으며, 스스로 삼귀의(三歸依)를 받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나라에 널리 불도로써 교화를 베풀었다.
그때 이 나라 안에 어떤 니건(尼乾)이 한 사람 있었는데 삿된 견해가 불길같이 번졌고 정법을 헐뜯어 비방하였다. 변재와 지혜로 총명하며 널리 통달했으며, 특히 수학[數算]에 뛰어나게 능숙하였다. 불타밀다가 그를 교화시키고 싶은 까닭에 니건에게 가서 제자가 되어 그들의 술법을 받아 배우고 익혔는데 오래지 않아 모두 훤히 통달하였다. 그 니건자가 큰 소리로 부처님을 꾸짖고 욕하거늘 불타밀다가 니건자에게 말하였다.
“그러한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라. 너는 죄를 얻었으니 이 업보로 반드시 큰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니건자가 말했다.
“너는 어찌하여 이와 같은 일을 잘 아는가?”
밀다존자가 말했다.
“믿지 못하겠거늘 네가 이것을 추산(推算)해 보아라. 이미 추산하고 나면 반드시 깨달아 알 것이다.”
그때 그 니건자가 곧 스스로 추산해 보니 자신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질 것이 보였다.
곧 크게 두려워하며 깊이 근심하고 뉘우치는 마음을 내고, 불타밀다를 향하여 다섯 활개를 땅에 던진 채로 말하였다.
“어지신 분이여, 저는 어떻게 하면 이 허물을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불타밀다가 말했다.
“니건아, 땅에 넘어진 자는 땅을 짚고 일어나는 법이니 네가 만약 부처님께 귀의하면 이 죄업을 소멸할 수 있다.”
그때 니건자는 크게 믿는 마음을 일으켜 오백의 게송으로써 여래를 찬탄하고 먼저 지은 죄업을 회개하고 참회하며 스스로를 매우 꾸짖었다.
불타밀다가 그에게 말하였다.
“너는 이러한 마음과 선업의 인연 때문에 죽으면 반드시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
니건자가 다시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제가 하늘에 태어날 것을 아십니까?”
불타밀다가 말했다.
“네가 믿지 못하겠다면 스스로 그 진실을 추산해 보아라.”
니건자는 즉시 추산해 보더니 자신의 죄업이 소멸되어 하늘에 날 것임을 스스로 확인하고는 곧 크게 기뻐하며 출가하기를 애원하였다.
밀다가 말했다.
“오늘 꼭 그대의 권속에게 알린 뒤에라야 반드시 제도하여 출가하게 하겠다.”
니건자의 제자가 무릇 오백 사람이었다. 곧 그들의 처소에 가서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뛰어난 이치를 보았으니 마음으로 매우 사랑하고 좋아한다. 부처님의 법에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자 하니, 너희들은 지금 너희들 뜻에 따라 하고 싶은대로 다시 밝은 스승에게 알리고, 뛰어난 법을 여쭈어 받도록 하여라.”
그때 제자들이 모두 스승에게 말하였다.
“본래 스승을 받들어 우러름을 큰 구름이 덮는 것처럼 하였는데, 스승께서 뛰어난 도에 들어가시니 마음으로 즐거이 따르겠습니다.”
그때 니건자가 오백 사람과 함께 존자의 처소에 이르러 함께 출가하였다.
이에 불타밀다존자의 아름다운 소리가 온 염부제에 널리 퍼졌고 그는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을 교화하였다. 인연이 다하여 목숨을 버리니 제자들이 슬픈 마음으로 사리를 수습하여 탑을 세우고 공양 올렸다. 옛날에 불타밀다존자가 교화할 인연을 마치고 목숨을 버리려할 때 협(脇)이라는 비구에게 말했다.
“너는 반드시 뒤에 널리 거룩한 가르침을 부연하고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여라.”
협존자가 불타밀다존자에게 말하였다.
“큰 스승님, 공경히 높은 가르침을 받들어 저는 반드시 지극한 마음으로 정법을 수호하겠습니다.”
그 협비구는 숙업을 말미암은 까닭에 어머니의 태에 육십여 년이나 있었다. 날 때부터 털들은 호호백발이었고 오욕락을 싫어하고 세속에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불타밀다존자에게 가서 머리 숙여 발에 절하고 도를 배우는 서열에 있기를 청하였다. 곧 제도하여 출가하게 하였고 그를 위하여 법요를 말하니, 깨끗하고 산뜻한 흰 천이 쉽게 물들여지듯이 문득 앉은 자리에서 아라한도를 증득하였다. 세 가지 밝음이 비춰 확 트이고 여섯 가지 신통이 걸림 없었으며, 부지런히 고행을 닦고 정진함이 용맹하였다. 일찍이 옆구리를 땅에 대고 누워 본적이 없었다. 이 때문에 그 당시 사람들이 협비구(脇比丘)라고 이름 붙였다.
법요를 잘 말하여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할 일을 마치고 문득 열반에 드니 사리를 수습하여 탑을 세우고 공양 올렸다.
그 협비구가 멸도할 때를 당하여 한 비구에게 말했는데 이름이 부나사(富那奢)였다.
“장로야, 반드시 알아라. 부처님의 법은 미묘하여 큰 공덕이 있다. 이러한 까닭으로 모든 성인들이 가장 높이 받들어 유지했으며, 내가 부촉을 받아 이 법을 수호했으나 이제 열반하려 하면서 너에게 부촉하니 너는 꼭 지극한 마음으로 옹호하고 받아서 유지시켜라.”
그때 부나사가 대답하였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에 미묘하고 뛰어난 법을 자세히 말하여 그는 헤아릴 수 없는 중생들을 제도하였다. 뒤에 어느 때 한림(閑林) 아래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으면서 고요히 사유하였다. 어떤 한 명의 대사(大士)가 있는데 이름이 마명(馬鳴)이며 지혜가 깊고 밝으며 아는 것이 뛰어나 견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어려운 질문을 해도 꺾어 버리고 항복 받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비유하면 사나운 바람이 불어 썩은 나무를 뽑아 버리는 것과 같았다. 초개같은 중생들에게 큰 교만심을 일으켜 진실로 아(我)가 있다고 생각하고 매우 스스로를 높이 여기고 있었다.
부나사라고 이름하는 존자가 지혜가 매우 깊고 많이 들어 널리 통달했으며, ‘모든 법은 공하고 나[我]도 없고 인(人)도 없다’고 말한다는 소문을 듣고 경솔하게 교만심을 품은 채로 그의 처소에 나아가 이러한 말을 했다.
“일체 세간에 있는 언론은 내가 헐고 파괴하여 우박 맞은 풀과 같은 꼴이 되었소. 이 말이 만약 헛되고 진실하지 않다면 반드시 나의 혀를 잘라 버리고 물러나 굴복할 것을 약속하오.”
부나사존자가 말했다.
“부처님의 법에 두 가지 진리[二諦:眞諦ㆍ俗諦]가 있소. 만약 세속적인 진리에 나아가면 거짓 이름으로 아(我)라고 하지만 제일의제에 나아가면 모두 공하고 고요한 것이오. 이와 같이 추구한다면 나라는 것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겠소.”
그때 마명은 마음을 아직 조복(調伏)하지 않고 스스로의 기교 있는 지혜를 믿고 오히려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했다.
부나사존자가 말했다.
“그대는 자세히 사유하여 헛된 말을 하지 마시오. 내가 지금 그대와 더불어 누가 이겼는가를 결정하였소.”
이에 마명이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세속의 진리로 거짓 이름한 것은 진실한 것이 아니다. 제일의제란 성품이 다시 공하고 고요한 것이라 하니, 이와 같은 두 진리랄 모두 얻을 수 없다. 이미 있는 것이 없으니 어떻게 파괴할 수 있겠는가? 나는 지금 저 분에게 도저히 미칠 수 없다.’
문득 혀를 자르고 물러나 굴복하려고 하였다.
부나사존자가 마명의 뜻을 알고 말했다.
“우리의 법은 인자(仁慈)하니 그대의 혀를 자르지 마시오. 반드시 머리를 깎고 나의 제자가 되는 것이 마땅하오.”
그때 존자가 제도시켜 출가했으나, 마음은 오히려 부끄러움과 회한에 젖어 있었다. 그가 목숨을 버리려 할 때 부나사는 아라한도를 증득하였다. 정(定)에 들어 관찰하다가 그의 마음을 알고 존자가 먼저 경전을 암실에 가져다 두고 문득 마명으로 하여금 거기에 가서 그것을 가져 오게 하였다.
마명이 말했다.
“큰 스승님, 이 방은 어두운데 어떻게 들어갈 수 있습니까?”
부나사가 말하였다.
“가 보아라. 반드시 너로 하여금 보도록 해주겠다.”
그때 존자가 곧 신통의 힘으로써 오른손을 멀리 펴서 집 안에 넣고 다섯 손가락으로 광명을 내니 밝게 비추어 암실에 있는 것이 모두 드러나 나타났다. 그때 마명이 마음으로 이것이 환술인가라고 의심하였다. 무릇 환술의 법은 이것이 환술인 줄 알면 곧 소멸한다. 그러나 이 광명은 더욱더 밝아졌다. 그의 기술을 다 동원하여 이 광명을 없애려 하다가 결국 지치기만 하고 끝내 달라지는 모양이 없자, 스승께서 하신 것임으로 알고 곧 꺾어 항복하였다. 부지런히 닦고 고행하여 다시는 물러남이 없었다.
이와 같이 존자는 선(善)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해야 할 일을 다하고 나서 열반에 드니 사부대중이 감동하고 그리워하며 탑을 세우고 공양 올렸다.
부나사존자가 열반할 때에 다다라 법으로써 제자 마명에게 부촉하면서 그에게 말하였다.
“비유하자면 암실에서 크게 타는 밝은 횃불이 모든 사물을 다 비추듯이 법의 밝은 등불도 이와 같다. 세간에 유포시켜 어리석음의 어두움을 없애라. 이러한 까닭으로 여래께서 이 정법을 연설하셔서 널리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닦고 행하게 하셨다. 모든 현성인이 항상 수호함을 더하고 함께 서로 위촉하여 나에게까지 이르렀고 나는 뛰어난 눈으로써 유지하다가 베풀어 너에게 부촉하나니 너는 반드시 뒤에 지극한 마음으로 받아서 유지하여 미래의 중생으로 하여금 널리 이익을 얻게 하여라.”
마명이 공경히 승낙하고 말하였다.
“반드시 높은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이에 심오한 법장을 널리 반포하고 큰 법의 깃대를 세워 삿된 견해를 꺾어 없애며, 화씨성에 노닐면서 교화하였다. 그 성의 모든 중생을 제도하려고 묘한 음악을 지었는데 이름이 뇌타화라(賴吒啝羅)였다. 그 소리는 청아(淸雅)하고 슬프고 완곡하였으며 곡조가 부드럽고 맑았으며, 괴롭고[苦] 공하고[空] 아가 없는[無我] 법을 두루 말하였다. 유위(有爲)6)는 허깨비와 같고 유술[化] 같으며, 삼계는 감옥이요, 포승줄이니 하나도 즐거워할 것이 없다. 왕위는 높이 드러나고 세력이 자재하지만 무상함이 이미 이르면 누가 생존함을 얻을 것인가? 공중의 구름과 같아 눈 깜짝할 사이에 흩어지고 없어지니 이 몸은 허위여서 파초(芭蕉)와 같다. 원수요 도적이니 친근할 수 없는 것이다. 독사 상자와 같으니 누가 반드시 사랑하고 좋아할 것인가? 이러한 까닭으로 모든 부처님께서 항상 이 몸을 나무라셨다. 이와 같이 널리 공하고 아(我)가 없다는 뜻을 설하였다.
음악을 작곡한 사람으로 하여금 이 소리를 연주하게 하니, 그때 모든 연주자들이 내용을 잘 알지 못하여 곡조와 음절이 모두 어긋났다. 이렇게 되자 마명이 흰 옷을 입고 연주하는 사람들 가운데 들어가 스스로 종과 북을 쳐 거문고와 비파에 조화시키니 음절이 애절하며 청아하고 곡조가 이루어져 모든 법은 괴로움이고 공하고 아가 없음을 자세히 말하였다. 그때 이 성 안에 있던 오백 명의 왕자가 동시에 깨닫고는 오욕을 싫어하고 도를 위하여 출가하였다.
그때 화씨성의 왕[華氏王]은 백성들이 이 음악을 듣고는 가법(家法)을 버리면 국토가 텅 비어 왕업(王業)이 허물어질까 두려워 곧 그 국토의 백성들에게 ‘지금부터 다시 이 음악을 연주하지 말라’고 널리 명령하였다. 그 화씨성에는 구억의 백성이 살았다.
월지국(月支國)의 임금은 위엄과 덕망이 불길같이 무성하였는데 이름은 전단계닐타(栴檀罽昵吒)였다. 지조와 기상이 웅장하고 용맹하며 건강하여 세상을 뛰어넘어 토벌하려고 한 것은 꺾어서 쓸어버리지 못한 것이 없었다. 곧 네 종류의 병사를 무장시켜 이 나라를 향하였다. 함께 서로 공격하여 싸운 뒤에 그 나라가 귀순하여 항복하자 곧 구억의 돈을 요구하였다. 그때 그 나라의 국왕은 그 나라에 있던 마명과 부처님의 발우와 한 마리의 자비심[慈心]을 지닌 닭이 각각 삼억에 해당하여 이것을 계닐타왕에게 주었다. 마명보살은 지혜가 특별히 뛰어나고, 부처님 발우의 공덕은 여래께서 가지시던 것이며, 닭은 자비심이 있어서 벌레가 있는 물을 먹지 않았다. 모두 일체 원한이 있는 적을 소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구억의 돈에 해당하였다. 계닐타왕이 크게 기뻐하며 이것을 받고 곧 병사의 무리들을 되돌려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 계닐타왕은 큰 공덕이 있으니 큰 서원의 갑옷을 입었고 뜻과 서원이 견고하였다. 일찍이 진흙덩어리를 탑 위에 올려놓고 그리고 나서 서원을 세워 말하였다.
“만약 내가 내세에 천 불의 숫자 가운데 들어 정각을 증득하여 성취할 것이라면 지금 이 흙덩이가 변하여 불상(佛像)이 될 것이다.”
이러한 서원을 하자마자 걸맞게 곧 이루어졌는데 위의와 모습이 기이하고 특별한 것이 흡사 그림을 그린 것과 같았다. 마음이 크게 기뻐 날뜀이 끝이 없었다.
왕이 뒤에 어느 때 길을 가고 있다가 칠보로 장엄된 외도의 탑을 보고 곧 크게 기뻐하며, 여래의 탑인 줄로 알고 앞에 이르러 머리 숙여 절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공경하여 향을 피우고 꽃을 뿌리며 게송으로써 찬탄하였다.

일체의 지혜를 구족하시고
탐욕과 번뇌의 장애를 끊으셔서
뭇 신선 가운데 최고로 뛰어나고 높으신 분
그 이름 삼계에 두루하시네.

제유(諸有)를 해탈해 여의시고
군맹(群萌)의 유(類)를 불쌍히 여기시니
말씀하신 것은 진실한 진리
삿된 논리의 깃대 꺾어 버렸네.

이런 이유로 제가 지금
응공존(應供尊)께 정례합니다.

이 게송을 읊고 나자 그때 맞춰 보배 탑이 무너져 분산되어 버렸다. 왕이 보고 놀라며 두려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복이 다하여 왕위를 잃으려 하는 것인가? 무슨 까닭으로 내가 이 보배탑에 나아가 절하자 문득 무너지는가?”
어떤 사람이 말했다.
“왕이 절한 탑은 외도의 탑입니다. 그 위엄과 덕이 낮고 천하며 적어서 임금님과 같은 복과 덕이 있는 사람의 예배를 받고 견디지 못하여 무너진 것뿐입니다.”
곧 부서진 탑 밑에 니건(尼乾)의 시체가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감탄하여 말했다.
“기이하다. 대왕의 복과 덕의 힘은 깊고 두터워 이 삿된 탑에 절하여 그것으로 하여금 무너지게 했으니 임금님의 공덕은 범천(梵天)에 비교 되겠다.”
또 계닐타왕은 일찍이 어느 때 이발사로 하여금 이발을 하게 했는데 그때 이발사가 임금님 앞에 서서 이러한 말을 했다.
“저의 자식 놈이 단정하고 지혜로움이 보기 드문 정도이니 대왕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공주님으로써 아내로 삼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왕이 크게 성내며 그에게 말했다.
“너는 하천한 종성으로 비열하거늘 어떻게 나의 공주로써 네 아들의 아내를 삼겠다는 것이냐?”
곧 다른 곳으로 쫓아 버렸더니 그때부터 저절로 그러한 말이 없었고 감히 다시는 왕에게 말하지 못했다. 뒤에 다시 불러 이발을 시켰더니 그 자리에 서서 예전과 같은 말을 세 번이나 하였다. 그러자 왕은 생각해 보고 말했다.
“지금 이 땅 아래에는 반드시 보배가 깊이 감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이 사람으로 하여금 감히 이런 말을 하게 한다.”
곧 사람을 시켜 아래를 발굴하게 하여 곧 여러 종류의 보배를 찾아내었으니 임금의 지혜가 그 일과 같았다.
또 계닐타왕은 어느 때인가 여러 신하를 방문하여 말한 적이 있었다.
“온 국토 가운데 뛰어나게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면 자문하고 공경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때 한 비구가 있었는데 달마밀다(達摩蜜多)라 이름했으며 지혜가 매우 깊었고 공덕을 구족하여 삼매정상(三昧定相)7)을 아주 능숙하게 통달하였다.
남천축국에 두 비구가 있었는데 마음이 유화하고 깊이 선법을 좋아하였다. 본래부터 존자가 좌선이 제일이라는 소문을 듣고 곧 함께 그곳에 가려고 했다. 그가 머무는 곳에는 세 개의 굴이 있었다. 그때 두 사람이 아랫굴에 이르러 한 비구가 해진 옷을 입고 누추한 모습으로 부엌 앞에 단정히 앉아 스님들을 위하여 불을 때고 있는 것을 보고, 두 비구가 물었다.
“달마밀다장로는 어느 곳에 계십니까?”
“지금 제일 위의 굴에 계시니 그대들은 빨리 가서 그를 뵙는 것이 마땅할 것이오.”
그때 두 사람이 위의 굴에 이르니 조금 전의 비구가 이미 굴 안에 좌정하고 있는 것을 보고 한 비구가 그 도반(道伴)에게 말했다.
“이 늙은 비구는 어찌하여 조금 전에 본 이와 이렇게도 흡사한가?”
다른 비구는 슬기롭고 재치가 있어 깨달아 곧 도반에게 말하였다.
“지금 이 존자께서 능숙하시기가 이와 같으니 소문이 널리 퍼졌다. 그러니 어찌 이곳에 이르러 좌정하시지 않겠는가?”
곧 앞에 머리 숙여 절하고 말하였다.
“대덕의 위엄 있는 이름은 세간에 드무신데 무슨 까닭으로 스스로를 낮추어 스님들을 위하여 불을 때십니까?”
달마밀다가 비구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반드시 들어라. 내가 나고 죽음에서 괴로움을 받은 것은 오랜 긴 세월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머리와 손으로 하여금 불때는 일을 하게 할 수 있다면 나는 반드시 스님들을 위하여 불을 때는 일을 끝까지 하겠거늘 하물며 할 수 있는 몸으로 불을 때는데 어찌 어렵다고 하겠는가? 내가 옛날을 생각하면 오백 세상 가운데 항상 개의 몸을 받아 굶주리고 곤궁하여 고달프고 수척하였고, 오직 일찍이 두 번 배불렀다. 옛날 어느 때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술에 취하여 땅에 구토하였다. 나는 그때 그것을 먹고서 만족하였다. 또 한 번은 옛날에 일찍이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이 그릇에 죽을 쑤어 놓고 외출을 했는데, 내가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그 집 안에 들어가 머리를 그릇 안에 넣고 죽을 먹고 배가 부른 뒤, 머리를 빼내려고 했으나 결국 머리를 빼지 못했다. 외출했던 남편과 아내가 돌아와 그 죽을 먹어 버린 나를 보고, 매우 심하게 성내더니 곧 날카로운 칼로써 내 머리를 잘랐다. 오백 세상 가운데 개의 몸을 받아 비록 두 번 배불렀지만 죽음을 당하였다. 이로써 생각하면 나고 죽음에서 길고 오랫동안 다섯 갈래[五道]8)를 헤매며 받은 고통이 헤아릴 수 없었다. 이러한 까닭에 지금 나는 부지런히 일하는 것을 꺼리지 않고 몸으로 뭇 스님들을 위하여 직접 불을 때는 것이다.”
그때 두 비구는 이 말씀을 듣고 나서 깊이 나고 죽는 동안 헤아릴 수 없는 잘못이 있었음을 관하더니 때맞게 수다원도를 증득함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달마밀다의 지견(知見)은 높고 멀리까지 이름이 퍼졌다.
왕과 모든 신하들은 본래부터 그 이름을 들었었다. 신하들이 함께 말했다.
“대왕이시여, 꼭 아십시오. 계빈산(罽賓山) 가운데 한 비구가 있는데 이름은 달마밀다라고 합니다. 재주와 지혜가 견줄 사람이 없고[超倫] 복과 덕이 깊고 두텁다 합니다. 임금님께서 거기에 가셔서 공양하고 문안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때 계닐타왕은 곧 수레를 타고 앞뒤로 둘러싸여 오백여 리나 되는 계빈산을 향해 가면서 혼자 생각하였다.
‘만약 그 비구의 복과 덕이 깊고 넓다면 나의 공경과 예배를 받을 수 있을 것이고, 만일 박복한 사람이면 끝내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달마밀다는 그 성격이 꾸밈없이 소박한 것을 좋아하여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얼굴은 초췌하였다.
존자의 제자들이 모두 말하였다.
“계닐타왕의 위엄과 명성은 대단합니다. 수레를 끌고 이곳에 와서 스님께 절하고 뵈려 하니 직접 치장을 하시고 새롭고 깨끗한 복장을 하셔서 그 왕으로 하여금 경솔하고 천박하게 여김이 없게 하십시오.”
달마밀다가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옛날에 만약 부호나 귀족을 만나거든 재빨리 몸을 단장하라고 가르치신 일이 없다. 또 출가한 사람은 천이 좋지 못하고 너덜너덜한 옷을 입는 것이 상례이거늘 이미 적당하게 되었는데 어찌 모습을 고치란 말이냐?”
그때 왕이 곧 앞으로 나아가 머리 숙여 절하고 공경히 ‘안녕하십니까?’라고 문안하였다.
달마밀다가 그의 마음을 알고 곧 가래를 돋워 왕으로 하여금 타기(唾器)를 받들게 하니 그때 닐타가 꿇어앉아 합장하고 가래를 받아 버리자, 물었다.
“내가 지금 대왕의 공양을 견딜 만합니까?”
왕이 곧 기가 꺾여 항복하고 공경하며 믿는 마음이 갑절이나 더하였다.
존자가 말하였다.
“대왕은 옛날부터 일찍이 뛰어난 갈래[勝道]에서 왔거늘 지금 본래의 길로 돌아가시오.”
이미 이 말을 듣고 가르침을 받아 귀국하였다.
그때 군신(群神)들이 모두 ‘왜 대왕께서는 본래 뛰어난 사람을 방문하여 이미 만나고도 전혀 자문하지 않으셨는가?’ 하고 혐오하는 마음과 분한 마음을 내었다.
왕이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어찌 그대들이 이와 같은 일들을 알 수 있겠느냐? 내가 옛날 복된 행위를 쌓고 닦아서 지금 임금이 되어 재주와 지혜가 세상을 뛰어넘었다. 존자께서 나로 하여금 ‘돌아가 본래의 업을 닦아라’고 이미 가르침을 주셨거니 다시 무엇을 묻겠는가?”
왕이 뒷날 닐타탑에 이르러 앞길에 있던 겉인 오백 사람을 보니, 같은 소리로 통사정하며 구걸하기를 ‘나에게 보시하소서’라고 하였다. 왕이 이 말을 듣고 나서 크게 걸인들에게 금ㆍ은ㆍ유리ㆍ코끼리ㆍ말ㆍ전답ㆍ집 등을 보시하고 돌아와 여러 가지 보시하는 모임을 만들어 가난하고 궁핍한 이들을 구휼하고 고아나 노인을 찾아 안부를 묻고 위로하며 정법으로써 세상을 다스리고 어질게 온 세상을 편안히 살게 하였다.
그때 천법(天法)이라는 신하는 문득 ‘어찌하여 대왕께서 이 걸인들을 보시고 이와 같은 공덕과 뛰어난 업적을 일으켰을까?’라고 생각하면서 곧 왕에게 물었다.
“지금 임금님께서는 어떤 인연으로 이 걸인들을 보시고 널리 이 복을 지으십니까?”
그때 대왕이 천법에게 말했다.
“걸인들은 나에게 큰 이익을 주었다. 그들은 몸과 말로써 깨달음을 보여 주려고 한 것이다. 나는 옛날에 왕 노릇 하면서도 복의 인연을 닦지 못하여 그 까닭으로 지금 백성이 주리고 춥고 곤궁하고 몸이 여위는 모든 고통을 받는 것이다. 왕이 만약 구걸하고 궁핍함을 구제하지 못하면 미래의 세상에서도 반드시 당연히 지금 나의 백성과 같이 주리고 춥고 여윌 것이다. 그 걸인들의 일이 이와 같아서 내가 이 일을 깨닫고 복된 일을 하는 것이다.”
천법이 임금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은 지위만 천하에서 제일 뛰어나신 것이 아니라 지혜도 만국(萬國)을 제어하십니다.”
그때 이웃 나라 안식국의 왕[安息王]은 성품이 매우 완고하고 포악하여 장차 네 종류의 병사를 거느리고 계닐타를 정벌하려고 하였다.
계닐타왕도 엄중히 경계하다가 두 진영이 맞닥뜨려 교전을 하였는데 칼날이 계속 번뜩이더니 계닐타왕이 승리하였는데, 안식국 사람이 구억이나 전사하였다. 여러 신하들에게 계닐타왕이 물었다.
“지금 나의 이 죄업이 소멸될 수 있을까?”
모든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대왕이시여, 살육 당한 이들이 무려 구억 명입니다. 죄업이 이미 매우 중대하고 심각한데 어떻게 없앨 수 있겠습니까?”
그때 계닐타왕이 문득 큰 가마솥을 걸게 하고 이레 동안 물을 끓이니, 끓는 물이 용솟음치고 파도까지 일어나 치열한 열기가 불꽃을 이루었다. 거기에 한 개의 금반지를 던져 놓고 여러 신하들을 죽 훑어보고 말했다.
“누구든 교묘한 방편으로써 이 반지를 건져내어 보아라.”
그때 어떤 한 신하가 왕의 명령에 따라 문득 냉수를 가마솥에 붓고서 반지를 찾아내니 손이나 팔에 아무 상처도 없었다.
왕이 신하들에게 말했다.
“내가 지은 죄는 저 끓는 물과 같다. 참회하면 반드시 없앨 수 있으니 냉수로써 처리함과 같다. 죽은 사람이 비록 구억이라고 하지만 죽여서 무거운 죄를 받을 만한 사람은 두 사람 반뿐이었다. 내가 죽일 때에 두 명의 훌륭한 신자가 있었는데 ‘나무불(南無佛)’ 하면서 죽었다. 내가 이들을 죽였으니 이 죄는 매우 중대하고 심각하다. 다른 한 사람은 입으로 ‘나무’라는 말만 하고 아직은 ‘불’이라는 말을 알지 못했으니 부란나(富蘭那)9)였는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이 사람을 죽였으니 이런 까닭으로 반 사람이라고 한다.
그때 어떤 아라한 비구가 계닐타왕이 이러한 악업을 지은 것을 보고 그 왕으로 하여금 두려워하여 허물을 참회하도록 하려고 곧 신통의 힘으로 그에게 지옥을 보여 주었다. 곧 도끼로 찍어 쪼개고 검륜(劍輪)으로 몸뚱이를 분해하니 슬퍼 울부짖고 고통을 참기 어려웠다. 왕이 이것을 보고 나서 두려움을 더할 수 없어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나는 매우 어리석어 이 죄업을 지었다. 미래에 반드시 이와 같은 고통을 받을 것이다. 만약 내가 이와 같은 나쁜 과보를 먼저 알았던들 이 몸으로 하여금 사지의 마디마디를 분해하는 한이 있어도 끝내 원수와 적에게 가해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게 하였을 것이거늘, 하물며 착한 사람에게 한 생각이라도 악함을 내었겠는가?’
그때 불안에 떨고 있는 왕에게 마명보살이 말했다.
“임금님, 지극한 마음으로 나의 설법을 들으소서. 나의 가르침을 따르고 받들어서 수지하면 임금님으로 하여금 이 죄업으로 지옥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계닐타왕이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이에 마명보살이 그 임금을 위하여 널리 청정한 법을 말하여 그 무거운 죄업으로 하여금 점점 엷어지게 하였다.
또한 한 명의 의원이 있었는데 이름이 차륵(遮勒)이었다. 약방문을 잘 알며, 총명하고 민첩하며 많이 듣고 예리한 지혜에 변재까지 뛰어났고, 자비롭고 화목하여 어진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였다.
계닐타왕이 본래 그 이름을 듣고 언제나 만나고 싶어 하였는데 그가 스스로 왕궁으로 찾아와 그를 만나게 되었다. 왕은 의원이 도착했다는 기별을 듣고 곧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몸이 잘 조절되어 오른쪽으로 눕고 음식을 절제함이 이와 같은데 의원이 어디에 소용 있을까?”
차륵이 말했다.
“임금님께서 이와 같이 능숙하다면 출가하심이 마땅합니다. 대개 왕이 된 이는 감정을 따라 탐욕이 끝없으며, 몸과 입을 조심하지 않습니다. 지금 임금님께서는 오히려 거두어 잡도록 하시고 막고 보호하시는데 왜 이 왕위를 탐하여 오랫동안 세상에 사십니까?”
왕이 이 말을 들으니 자기의 이론이 굴복당한 것을 알고 곧 불러서 들어오게 하여 서로 위문하였다.
의원이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만약 저의 가르침을 믿고 받아서 따르시고 거역하지 않으신다면 반드시 왕의 몸이 색력(色力)이 충족하게 되고 음식이 잘 소화되며 끝내 병환이 없을 것입니다.”
왕이 말했다.
“좋습니다. 공경히 받들겠으니 와서 가르쳐 주시오.”
그 뒤 오래지 않아서 사랑하는 부인이 임신한 것을 알았다. 열 달이 되자 사내 아이 하나를 낳게 되었는데 이미 목숨이 끊어져 태에서 거꾸로 나왔다. 그 어머니도 고통으로 생명이 위독하였다. 그 뒤부터 계속해서 태어남이 번번이 이와 같았다. 그때 차륵이 손을 태 안에 넣어 그 아이의 얽힘[衣]을 푼 뒤에야 태어났다. 이에 산모는 안온하고 안전하게 되었다.
의원이 말했다.
“대왕이시여, 지금부터 다시는 이 부인에게는 은총을 내리지 마십시오. 만약 이 부인을 가까이하면 반드시 지금과 같아질 것입니다.”
계닐타왕은 음욕이 불길 같아서 자제하지 못하고 다시 이 부인을 총애하였다. 뒤에 계속 아이를 낳다가 괴로움과 참혹함이 앞과 같았다. 그때 의원 차륵은 비로소 오욕이 근심의 근본임을 깨닫고 생각하였다.
‘계닐타왕을 내가 몸소 가르쳤지만 나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더니 이러한 괴로움에 이르렀도다. 반드시 알아야겠다. 애욕은 매우 좋아할 것이 아니구나. 덕을 깨뜨려 몸을 상하게 함은 이것을 말미암지 아니함이 없고 좋은 이름을 깨뜨리고 범행을 더럽히고 욕되게 하는구나. 범부는 미혹하여 버리지 못하고 지혜로운 이는 이것을 알고 원수와 도적과 같은 것임을 관찰하는구나. 나는 지금부터 반드시 나쁜 법을 버리고 숲 속에 은거하여 조용히 앉아서 생각하고 정에 들리라.’
이에 왕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출가하여 도를 배웠다. 높은 재주로 세상을 멀리하고 지극히 밝게 널리 통달하여 기론(記論)10)을 자세히 말하고 세간에 다니며 교화하였다.
또한 마탁라(摩啅羅)라는 한 신하가 있었는데 지혜가 무리 중에 제일이고 재주와 기예가 세상에 드물었다.
계닐타왕에게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만약 신의 가르침을 따를 수 있다면 반드시 대왕으로 하여금 위엄으로 사해(四海)를 항복 받으시고 일체가 높이 우러러보고 팔표(八表:八方)가 위덕에 귀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반드시 신의 말을 살피셔서 드러나지 않도록 하십시오.”
왕이 말했다.
“매우 훌륭하구나. 반드시 그대의 말과 같이 하겠다.”
그때 대신이 널리 용맹한 장수를 모아 네 종류 병사를 훈련시켜 가는 곳마다 모두 항복시키니 마치 우박이 풀을 꺾어 버리는 것과 같았다. 세 방면[三海]의 백성들이 다 와서 신민으로 예속하였다. 계닐타왕이 탔던 말이 길을 가다가 다리가 부러지자 왕이 말했다.
“나는 세 방면을 정벌하여 모두 이미 귀화(歸化)시켰는데 북쪽 방면[北海]만은 아직 와서 항복하지 않았다. 만약 그것을 얻는다면 다시는 말을 타지 않겠다. 나의 일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으니 어떻게 하여 이러한가?”
그때 군신들이 왕의 이러한 말을 듣고 함께 의논하였다.
“계닐타왕은 욕심이 많고 포악하고 도리를 지키는 경우가 없다. 다른 나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자주 출정하고 백성들을 부리되 만족할 줄 모르며 온 천하[四海]에 임금이 되려고 변방 먼 곳을 지키게 하여 친척과 떨어지게 했으니 이와 같은 괴로움이 어느 때에야 그칠 것인가. 한마음으로 함께 그를 제거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한 뒤에라야 우리는 반드시 편안해질 것이다.”
왕이 학질을 앓는 틈을 타서 이불로 덮고는 사람들이 그의 위에 앉으니 잠깐 사이에 기운이 끊어졌다.
마명보살이 설법하는 것을 들은 인연으로 말미암아 큰 바다 가운데 머리가 천개 달린 고기로 태어났다. 칼이 빙빙 돌며 그 머리를 베었는데 베고 나면 바로 머리가 생겨 차례대로 다시 베어 이와 같이 하기를 끝없이 하니 잠깐 사이에 벤 머리가 바다에 가득하였다. 그때 어떤 아라한이 스님들의 유나(維那)11)가 되어 있었고, 고기가 된 왕이 아라한에게 말하였다.
“지금 이 칼이 돌아가다가 건추(揵椎)의 소리가 들리면 문득 정지합니다. 그 중간에 고통이 조금 그치니 오직 대덕께서는 불쌍히 여기시고 건추 울림을 늘려 오래도록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라한이 불쌍히 생각하고 이것을 계속 치니 이레 만에 받던 고통이 문득 끝났다. 이 절 위에는 그 왕을 인연한 까닭으로 차례대로 서로 전하여 계속 건추를 쳤는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본래와 같이 하였다.
이와 같이 마명보살은 큰 행원으로써 감로의 맛을 연출하여 계닐타왕을 위해 큰 이익을 일으켰으며, 그가 제도하여 해탈시킨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었다. 의례히 해야 할 것을 하고 곧 목숨을 버리니 그 사리를 모아 탑을 세우고 공양을 올렸다.
마명보살이 목숨을 버림에 다다라 비라(比羅)비구에게 말했다.
“장로야, 반드시 알아라. 부처님 법은 순결하고 청정하여 번뇌의 때를 제거하나니 너는 마땅히 뒷날 유포하고 공양 올려라.”
비라가 대답했다.
“좋습니다.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이로부터 뒷날 널리 정법을 펴 미묘한 공덕으로 스스로를 장엄하였으며, 말이 기교가 있고 지혜가 깊어 외도의 삿된 논리를 꺾지 못한 것이 없었다. 남천축에서 큰 이익을 일으켰고 『무아론(無我論)』을 지었으니 일백의 게송을 충족하였다. 이 논이 이르는 곳에 꺾이고 쓰러지지 않는 것이 없었으니, 비유하면 금강석[金剛]이 모조품을 깨뜨리는 것과 같았다.
멸도할 때에 다다르자 법장으로써 한 대사(大士)에게 부촉하였는데, 그 이름이 용수(龍樹)였다. 그런 뒤에 목숨을 버렸다.
용수는 뒤에 널리 중생을 위하여 뛰어난 눈[勝眼]을 유포하니 미묘한 공덕으로써 스스로를 장엄하였으며, 천성적으로 총명했고 기묘하게 깨달아 어떤 일을 다시 묻지 않았으며 법의 깃발을 세워 이교도를 항복 받았다. 이와 같은 공덕이 말로 일컬을 수 없지만 지금 사실에 따라 그 인연을 드러내겠다.
처음 태어난 곳은 남천축국 범지(梵志)의 종족으로 큰 부자이며 귀한 집이었다. 처음 태어날 때 나무 아래 있으면서 용을 말미암아 도를 증득했기 때문에 용수라고 불렸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재주와 학문이 세상을 뛰어넘었다. 본래 동자 시절 강보에 싸였을 때 모든 범지들이 외우는 네 가지 위타[四偉陀]12)를 들었는데 그 책은 크고 방대하여 게송이 사만 개였다. 게송 하나에 글자가 서른두 자로 채워져 있었지만 모두 다 밝게 깨치고 그 구절의 의미도 통달하였다. 약관에 이름이 사방으로 퍼졌고 모든 나라를 마음대로 다녔다. 천문(天文)과 지리(地理)와 성위(星緯)와 도참과 그 밖의 주술도 통틀어 익히지 아니한 것이 없었다.
세 명의 벗이 있었는데 타고난 기이한 수재들로서 서로 상의하였다.
“천하의 바른 도리는 신명(神明)을 깨달아 유지(幽旨)를 개발하고 지혜를 더 늘리는 것이다. 이러한 일을 우리들이 다 통달하였는데 다시 무슨 방법으로써 스스로 즐길 것인가?”
다시 이러한 말을 하였다.
“세간에서 오직 호색을 추구하는 것이 있을 뿐이니 감정을 좇아 색욕이 지극하면 이것이 일생에 최상의 쾌락이다. 그러나 범지의 도는 세력이 자재하지 아니하니 기이하고 영화롭지 못하다. 이 즐거움은 갖추기가 어려우니 함께 몸을 숨기는 약을 구하는 것이 좋겠다. 일이 만약 좋은 결과를 얻는다면 이 소원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함께 말했다.
“좋구나. 이 말은 유쾌하구나.”
곧 술법하는 사람을 찾아가 몸을 숨기는 방법을 묻자 술법하는 사람이 생각하였다.
‘이 네 범지는 재주와 지혜가 높고 큰 교만심을 내어 모든 사람들을 지푸라기[草芥]와 같이 생각하는데 지금 술법 때문에 나를 찾아와 고개 숙이는 것이다. 이들은 연구하여 널리 통달하였고 모르는 것은 오직 이 천박한 술법뿐이다. 이 약방문을 주면 곧 영원히 나를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우선 약을 주면 약을 만드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약이 다하면 오랫동안 반드시 와서 술사인 나에게 물을 것이다.’
곧 네 사람에게 파란 약 한 알씩을 주면서 말했다.
“그대들에게 준 이 약을 물로써 그것을 갈아 눈꺼풀에 바르면 모습이 반드시 스스로 숨겨질 것이다.”
곧 술사의 가르침을 받아 각각 그 약을 갈았다. 용수는 약의 향기를 맡고 곧 그것의 성분을 알았다. 즉, 재료의 많고 적은 무게까지 확실히 알았다. 돌아와 술사에게 그 약의 제원을 자세히 말하였다. 이 약에는 일흔 가지 재료가 필요하다는 것과 재료의 이름과 양과 수가 약방문과 같았다. 술사가 듣고 깜짝 놀라며 알게 된 연유를 물으니 용수가 대답하였다.
“대사야, 반드시 아시오. 일체 모든 약은 기분(氣分)이 있으니 이것을 인하여 그것을 아는 것이 무슨 괴이한 일입니까?”
술사가 그 말을 듣고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고 감탄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이러한 사람은 듣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내가 직접 만났으니 이 술법을 아끼겠는가?’
곧 그 비법을 네 사람에게 빠짐없이 전수했고, 네 사람은 약방문에 의지해 화합하여 이 약을 만들어 그들의 몸을 숨기게 되자 나다니는 것이 자유롭게 되었다. 곧 같이 왕의 후궁에 들어가 궁중의 미인들을 다 침략(侵掠)하여 백여 일 뒤에 임신한 이들이 많았는데, 곧 왕에게 가서 말하니 허물을 면해 주었다. 그러나 왕은 이 사실을 듣고 몹시 마음이 상하였다. 이것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상서롭지 못하고 괴이하도다. 이에 모든 지혜로운 신하들을 불러 그 일을 함께 의논하였다. 그때 한 신하가 임금에게 말했다.
“이 일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도깨비의 짓이며, 둘째는 방술(方術)하는 이의 짓입니다. 가는 흙을 모든 문 안에 뿌려 두고 사람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고 왕래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만약 이들이 방술하는 자들이라면 발자국이 저절로 나타날 것이며, 가령 도깨비라면 들어와도 반드시 발자국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병사로써 제거하고 도깨비라면 주술로 쫓아 버리면 됩니다.”
왕이 그 계책대로 모든 준비를 했다. 과연 네 사람의 발자국이 문에서부터 흙에 나타나자 지키는 이들이 급히 왕에게 보고하였다. 왕이 용사 수백 사람을 데리고 와서 칼을 공중에 휘둘러 세 사람의 머리를 잘랐다. 왕의 주위 일곱 자 이내에는 칼질이 미치지 않았고, 용수는 몸을 거두어 왕을 의지해 서 있었다. 이때서야 비로소 애욕은 고통의 근본이며 패덕은 몸을 위태롭게 하고 범행을 더럽힌다는 것을 깨달았다.
곧 스스로 맹세하였다.
‘내가 만약 이 위기를 벗어난다면 반드시 사문들에게 나아가 출가하여 법을 받겠다.’
그곳을 벗어나서 산에 들어가 한 부처님의 탑 앞에 이르러 애욕을 여의고 출가하여 도를 배우기 시작한 지 구십 일 만에 염부제에 있는 경론(經論)을 모두 통달하고, 다시 다른 전적들을 찾았으나 도무지 얻을 데가 없었다. 드디어 설산(雪山)을 향하여 가다가 한 비구를 만나니 마하연(摩訶衍:大乘)을 용수에게 주니 읽고 외우며 좋아하며 공경히 공양 올렸다. 비록 진실한 뜻을 알기는 했으나 아직 도를 얻어 증득하지 못했다. 변재가 다함이 없고 언론에 능숙하여 외도와 다른 학문을 하는 사문이나 의사(義士)들을 모두 꺾어 항복 받으니 곧 청하여 사범(師範)을 삼았다. 용수 자신이 스스로 일체지(一切智)가 있는 사람이라 말하며 교만한 마음을 내어 매우 크게 높이며 문득 구담(瞿曇)의 문에 들어가고자 하였다.
그때 문을 맡아 지키는 신(神)이 용수에게 말했다.
“지금 그대의 지혜는 오히려 모기와 등에와 같다. 여래의 지혜에 견주어 말할 것이 못 되며, 깜박거리는 반딧불을 휘황찬란한 해와 달과 같다고 하고, 수미산을 겨자씨와 같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내가 어진 분을 관찰하니 일체지가 아닌데 어찌 이 문에 들어오려고 하는가?”
이 말을 듣고 나서 낯을 붉히며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그때 어떤 제자가 용수에게 말했다.
“스승께서는 언제나 스스로 일체지가 있는 사람이라 말씀하시더니, 지금 와서 굴욕스럽게 부처님의 제자가 되려 하십니까? 제자의 법은 스승님께 물어 이어 가는 것입니다. 물어 이어간다면 부족한 것이며 일체지가 아닙니다.”
그때 용수는 할 말을 잃었고 굴욕감을 느끼며 스스로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세상의 법 가운데 나루와 길은 헤아릴 수 없다. 부처님의 경전이 비록 묘하지만 구절의 뜻이 아직 다하지를 못하니 내가 지금 반드시 이것을 부연하여 뒷날 배우는 이를 깨닫게 하여 중생들을 이롭게 하겠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나서 문득 이것을 행하려고 수계사[師]를 세워 계를 가르치고, 다시 의복을 고쳤고 부처님의 법에 부속시키려고 하였으나 조금도 같지 않았다. 중생들의 미혹된 생각을 제거하고 배움을 받지 않았음을 보이고자 좋은 날을 선택하여 문득 그것을 이루고자 하였다. 그리고 혼자 고요한 집인 수정방(水精房)에 있었다. 대룡(大龍)보살이 그의 이와 같음을 안타깝게 여겨 곧 신기한 힘으로 영접하여 큰 바다에 들어갔다. 그 궁전에 이르러 칠보함을 열고 모든 방등(方等)의 심오한 경전과 헤아릴 수 없는 묘한 법을 용수에게 주었다. 용수는 구십 일 동안 통달하여 이해한 것이 매우 많았다. 그는 마음으로 깊이 들어가 참된 이로움을 체득하였다. 용왕이 용수의 마음을 알고 그에게 물었다.
“그대가 지금 경전을 보았는데 두루 다 보았는가?”
용수가 대답하였다.
“그대가 소장한 경전은 헤아릴 수가 없어 다 본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읽은 것만 해도 족히 염부제에 있는 경전의 열 갑절이나 됩니다.”
용왕이 말했다.
“도리천의 석제환인(釋帝桓因)이 지니고 있는 경전은 이 궁전에 있는 경전보다 곱절이나 되고 여러 곳에 있는 경전을 이곳에 있는 것과 견주면 백천만 갑절이나 되니 숫자로는 일컬을 수 없답니다.”
그때 용수보살은 이미 모든 경전을 얻었고 활연히 통달하여 한 모습[一相]을 잘 이해하여 깊이 무생법인(無生法忍)13)을 구족한 경지에 들어갔다. 용왕은 용수가 도를 깨달은 것을 알고 궁궐 밖에까지 나와 환송하였다.
그 당시 남천축의 왕이 삿된 견해가 심하고 외도를 받들고 섬기며, 정법을 헐뜯고 비방하였다. 용수보살이 그를 교화하기 위하여 왕 앞에서 직접 붉은 번기를 들고 가는 일을 칠 년 동안이나 했다. 왕이 비로소 이상하게 여기고 물었다.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내 앞에 번기를 들고 다니느냐?”
“저는 일체지(一切智)를 지닌 사람입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나서 매우 크게 놀라면서 그에게 물었다.
“일체지를 지닌 사람은 매우 드물거늘, 그대는 스스로 일체지를 지녔다 하니 무엇으로 증명하겠는가?”
용수보살이 대답하였다.
“대왕께서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물어 보십시오. 그것을 말한 뒤에 증명하여 아시게 하겠습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곧 곰곰이 생각하였다.
‘나는 지혜의 주인이며, 큰 논의사(論議師)라고 하는데 이 사람에게 물어서 굴복시키는 것은 기이한 일이 못 되고, 만일 그를 굴복시키지 못한다면 내 명성에 손해가 너무 크다. 그렇다고 말없이 있는 것도 도리가 아니다.’
이와 같이 생각하고 한참 동안 결정을 못하였다. 일이 이미 몹시 곤란해지자 용수보살의 아래 위를 훑어보다가 물었다.
“모든 천신들이 지금 무엇을 하는가?”
“대왕님, 천신들은 지금 아수라(阿修羅)14)와 교전(交戰)하고 있습니다.”
왕이 이미 들었으나 목이 메인 사람처럼 삼키지도 못하고 뱉지도 못하는 것과 같은 지경이었다. 설사 그 말이 그르다고 해도 증명할 수가 없었고, 그의 말을 수용한다고 해도 밝히기도 어려웠다.
용수보살이 다시 말했다.
“이 말은 허황된 말이 아니니 왕은 우선 기다려 보십시오. 잠깐 동안에 꼭 증명하겠습니다.”
말이 끝나는 즉시 공중에서 칼이 날아서 내려오더니 긴 창과 짧은 병장기가 계속하여 떨어졌다.
왕이 다시 말하였다.
“방패와 창이 비록 무기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반드시 이것이 천신과 아수라의 싸움인 줄 아는가?”
용수보살이 대답하였다.
“비록 허황된 말 같지만 진실로써 꼭 증명하겠습니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아수라의 귀와 코가 공중에서 쏟아졌다.
왕이 비로소 놀라 깨닫고서 머리 숙여 절하며 공경히 존중하여 용수보살의 도와 교화를 받았다.
그때 전각[殿上]에 있던 만 명의 바라문들이 그 신기한 덕을 보고 처음 있는 일이라고 감탄을 하면서 머리와 수염을 깎고 출가하였다. 또 한편으로 모든 외도들이 이러한 일을 전해 듣고 모두 구름처럼 몰려와 질투하고 성내며 서로 말재주 부리기를 청하였다. 이에 용수보살이 큰 지혜와 방편의 말로써 모든 외도와 더불어 널리 서로 논쟁하였다. 어리석은 이는 일언지하에 문득 굴복하고 약간 총명하고 지혜로운 이들은 이틀이 되자 말과 이치가 바닥 나서 모두 항복하고 머리와 수염을 깎아 버리고는 출가하였다.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는 삿된 도를 배우는 무리를 제도하니 궁중에서 언제나 수레 열 대의 승복과 발우를 보내었고 한 달이 되자 모두 다하였다. 이와 같이 점차로 헤아릴 수 없는 데까지 이르렀다. 마하연의 이치를 널리 열고 분별하여 『우바제사(優波提舍)』15) 십만 게송을 지었고, 『장엄불도론(莊嚴佛道論)』ㆍ『대자방편론(大慈方便論)』 이와 같은 논 각각 오천 게송을 지어 마하연을 세상에 빛내고 널리 퍼지게 하였으며, 『무외론(無畏論)』16) 십만 게송을 지었고, 『중론(中論)』17)이 무외부(無外部) 가운데서 나왔으니 오백의 게송이며, 거기에 부연한 의미는 깊고 깊어 일체 외도의 뛰어난 깃대를 꺾어 항복 받았다.
그때 천축국(天竺國)에 어떤 바라문이 있었는데 삿된 견해가 대단했고 주술(呪術)을 잘 알았다. 자기가 능히 용수보살과 더불어 명성을 다투어 보겠다고 왕에게 직접 말했다.
“대왕이시여, 제가 저 사문과 함께 도력(道力)을 다투려 하오니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저 사문이 저를 이기면 제가 반드시 그에게 예속되겠으며 제가 만약 저 사문을 이기면 반드시 나에게 예속되어야 합니다.”
왕이 말하였다.
“대덕아, 그대는 매우 어리석구나. 이 보살은 밝음이 해와 달과 같고 지혜가 뭇 성인들과 가지런하시다. 그대는 지금 용렬하거늘 어찌 견줄 수 있겠는가? 연뿌리에서 나오는 실로 수미산을 매달고 소 발자국의 물로 큰 바다의 물과 같다고 생각하려는 구나. 내가 지금 그대를 관찰하니 또한 이와 같구나. 스스로 생각하여 높은 덕을 이지러지게 함이 없게 하기를 바란다.”
바라문이 말하였다.
“임금님은 지혜로운 분으로 일체 백성이 우러러보기를 해나 달과 같이 관찰하지 아니함이 없습니다. 저의 말이 허황한지 진실한지는 반드시 이치로써 증명될 것인데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반대로 업신여김만 보이십니까?”
그때 임금은 그의 뜻이 지극함을 보고 수레를 준비해 가지고 용수보살에게 청하였다.
맑은 날 이른 아침에 함께 정덕전(正德殿)에 모였다. 바라문이 곧 주술의 힘으로써 넓고 깨끗한 큰 연못을 만들고 연못 안에 잎이 천 개나 되는 연꽃을 솟아나게 하고 직접 그 꽃 위에 앉아 용수보살에게 말했다.
“그대는 땅에 있으니 축생(畜生)과 같은 종류이고 나는 꽃 위에 있으니 지혜가 청정하거늘 어찌 감히 나와 더불어 대항하여 토론하려 하는가?”
그때 용수보살이 주력으로써 흰 코끼리를 만들었는데, 코끼리는 금실 은실로 치장을 한 여섯 개의 어금니를 가지고 있었다. 천천히 연못으로 들어가더니 그 꽃을 뽑아 코로써 칭칭 감더니 높이 쳐들어 땅에 내동댕이쳤다. 그러자 바라문은 등줄기에 부상을 입고 곤란함에 처해 곧 항복하고 용수보살에게 귀명하였다.
“제가 매우 어리석고 미련하여 큰 스승님께 죄를 짓고 거역하였습니다. 불쌍히 여기시고 저의 허물을 참회하오니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용수보살은 자비로 불쌍히 여기고 제도하여 출가하게 하였다.
그때 어떤 소승(小乘)을 좋아하는 법사(法師)가 용수보살이 식견이 높고 사리에 밝은 것을 보고 항상 질투하고 성내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용수보살이 해야 할 일을 이미 마치고 장차 이 땅을 떠나려 할 때 그 법사에게 물었다.
“그대는 지금 내가 세상에 오래 머무는 것이 좋은가?”
그가 대답하였다.
“어지신 분이여, 진실로 오래 머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용수보살이 곧 조용한 방으로 들어갔는데 하루가 지나도록 방에서 나오지 아니하자 제다들이 다 괴이하게 여기고 문을 부수고 드디어 그 스승을 보니 매미가 허물을 벗은 듯 이미 속세를 초연히 벗어나 열반하였다. 천축의 모든 나라에서 각각 절을 짓고 여러 가지로 공양 올리고 공경하여 섬김이 부처님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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