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부법장인연전(付法藏因緣傳) 6권
부법장인연전 제6권
길가야1)ㆍ담요2) 공역
심삼진 번역
용수보살이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자 큰 제자인 가나제바(迦那提婆)에게 말했다.
“선남자야, 들어라. 부처님께서 대비로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감로 맛을 연설하여 미래 세상을 이익되게 하셨다. 차례에 따라 서로 부촉하여 나에게까지 이르렀다. 나는 이제 세상을 떠나려고 너에게 부촉하니 너는 반드시 지극한 마음으로 받아서 널리 퍼뜨리고 유지시켜라.”
제바존자가 공경히 승낙하였다.
“반드시 높은 가르침을 계승하겠습니다.”
가나제바존자도 진실한 법장을 널리 말하였고, 지혜의 힘으로 다른 도를 배우는 이들을 항복 받았다. 널리 알고 깊게 보아 변재가 남달리 뛰어나 온 천하에 이름을 드날리니 여러 나라에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는 처음에 남천축국 바라문 집안에 태어났는데 존귀하고 호걸다웠으며 뛰어난 인물이었다. 자재천(自在天)의 상(像)에 있는 눈을 망가뜨렸기 때문에 마침내 그의 눈도 하나만 남게 되었는데 이것이 원인이 되어 이름을 가나제바라고 하였다. 지혜가 깊고 넓었으며 근기[機]가 뛰어나며 내적으로 발달하였다. 자신을 돌이켜 관찰하니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었으나 오직 그 말만으로써는 사람들이 아직 믿지 않고 도로써 교화함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아 밤낮으로 걱정하였다.
그 나라 안에 한 천신의 상이 있었는데 금을 두드려 입상으로 만들었고 높이는 여섯 길쯤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대자재천신(大自在天神)이라고 불렀다. 상 앞에 나아가 구하고 원하는 이가 있으면 나타나서 과보를 얻게 해주었다. 제바가 사당에 가서 들어가 신상을 보려고 하자 사당을 관리하던 이가 말했다.
“천신의 상은 지극히 신령스러워 사람으로서 감히 바로 볼 수 없으며 바로 보는 이가 있으면 돌아간 뒤에 백 일 동안 넋을 잃게 된다. 그대는 지금 다만 문에 나아가 소원하는 것만 빌 것이지 그 위에 다시 무엇을 구하려고 보고 싶어 하는가?”
제바가 대답했다.
“나는 신이 이와 같은가를 살피기 위하여 보기를 원한다. 가령 이와 같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거기에 온 사람들이 제바의 말을 듣고 모두 그가 의도하는 것이 신기하여 따라서 사당에 들어간 사람이 수천만 명이었다.
제바가 신상 앞에 이르러 머리 숙여 절하자 천신상의 눈이 움직이며 성난 눈으로 제바를 노려보았다.
제바가 말했다.
“천신은 실로 신령스럽다고 하는데 지금 보니 매우 비천하고 졸렬하구나. 무릇 신이라면 마땅히 정령으로써 여러 중생들을 조복해야 한다. 그런데 황금ㆍ파리(頗梨)를 빌어다가 장엄을 하니 중생들을 현혹시킴이 어찌 적겠는가?”
곧 높은 사다리를 높고 올라가서 파리를 박은 그 천신상의 눈을 뽑아버렸다.
그때 그의 그러한 행동을 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의심하였다.
‘대자대천은 위엄과 덕망이 높고 원대하거늘 어찌 이 젊은 바라문이 망가뜨리는 치욕을 당하고 있을까? 아마도 저 신의 명성이 그의 실제보다 지나친 것은 아닐까?’
그때 제바가 뭇 사람들을 깨닫게 해주려고 말했다.
“신의 밝음[神明]은 원대합니다. 가까이에서 섬기는 나를 시험하니 나도 저 신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깊이 아는 까닭으로써 금이 산처럼 쌓인 무더기에 올라가 눈인 파리 구슬을 뽑아 일체 모든 이들로 하여금 정령(精靈)은 순수(純粹)하여 형태나 성질을 빌리지 않는 것임을 알게 하였습니다. 나는 이미 아만심(我慢心)으로 한 짓이 아니니 신이 어찌 욕하겠습니까?”
이렇게 말하고 사당에서 나가 버렸다.
곧 그 날 밤에 제바는 모든 공양물을 준비하여 다음날 첫새벽에 공경히 천신에게 제사지냈다. 이러한 일로 가나제바의 이름과 덕은 널리 알려지고 지혜가 신에게도 알려졌으며, 그가 한 말에 반응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하룻밤 사이에 공양물을 준비하여 제사를 지내니, 대자재천은 키가 네 길이나 도는 몸을 나타내었는데 왼쪽 눈이 없었다. 천천히 걸어 위엄 있게 와서 자리에 나아가 마련한 제물을 죽 훑어보더니 일찍이 보지 못했던 것이라고 감탄하며 제바가 지닌 덕의 힘이 능히 미치는 바를 가상하게 여기면서 말했다.
“착하도다. 대사(大士)야, 나의 마음을 깊이 알고 지견(智見)으로써 공양을 베풀었으니 그대는 진실로 나를 공경하고 믿는 것이다. 세상 사람은 어리석어 나의 모습만 알아 음식으로 봉헌(奉獻)하고 두려워하여 나에게 아첨한다. 그대가 지금 공양으로 베푼 음식은 차림새와 맛이 구족하였으니 나의 왼쪽 눈을 돌려주어 사물을 보는 데 불편함이 없게 해준다면 참으로 최상의 보시일 것이다.”
제바가 말했다.
“좋습니다.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곧 왼손으로 눈을 뽑아 그에게 주었다. 천신의 신통력 때문에 뽑으면 따라서 생하여 그것을 구하는 일도 끊이지 않았는데 눈을 뽑은 것이 수만 번이였다. 천신이 찬탄하며 말하였다.
“기특하도다. 마납(磨衲)3)아, 진실로 최상의 보시로다. 그대가 하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인가? 반드시 그대의 뜻에 만족하도록 해주겠다.”
그때 제바가 천신에게 말했다.
“저는 바깥 것을 빌리지 않고 밝게 아는 것을 찾습니다. 오직 나의 가르침을 사람들이 믿고 받지 않는 것을 한탄할 뿐입니다. 진정한 소원은 저의 말이 후세에 반드시 유포되는 것입니다.”
신이 말했다.
“매우 훌륭하구나.”
이렇게 말한 천신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이 사건이 있은 뒤 제바는 용수보살의 처소에 나아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출가하여 법을 받고 천하를 두루 다니며 교화하여 중생을 널리 제도하였다.
남천축국의 임금은 많은 나라를 통틀어 다스렸는데 공고(貢高)한 마음을 지니고 삿된 도를 믿어 사문인 부처님 제자[釋子]는 만나지 않았다. 백성들이 멀거나 가깝거나 관계없이 모두 다 그의 교화를 받았다.
제바존자는 생각하였다.
‘나무의 밑둥치를 베지 않고 가지만 제거하기 어렵다. 임금을 교화하지 못하면 어찌 부처님의 법을 유포시키겠는가?’
그런데 그 나라의 법에 왕가(王家)에서 돈을 대고 사람을 고용하여 숙직하면서 나라를 지키는 제도가 있었다. 그때 제바존자가 거기에 응모하여 장수가 되었고 창을 들고 왕 앞에서 말을 달리며, 단위별로 편성된 군대를 조절하고 통솔하여 거느리되 위엄과 덕망과 은혜와 어짊으로 하니 사람들이 그 의 다스림을 좋아하였다. 왕이 그 뜻을 가상하게 여겨 물었다.
“어떤 사람인가?”
시자가 대답하였다.
“이 사람은 모집하는데 응했던 사람으로서 봉록을 주어도 받지 않고 또한 돈을 취하지 않으나 일을 할 때는 공손하고 조심하며 성품이 한가하게 익히는 것을 좋아합니다만 아직 그가 마음속으로 무엇을 구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임금이 곧 그를 불러 자세히 그의 뜻을 묻자 제바존자가 대답하였다.
“대왕님, 저는 지혜를 지닌 사람으로 논리적인 말을 잘합니다. 임금님 앞에서 시험해 보여 증명하려 합니다.”
임금이 곧 허락하고 존자를 위하여 논의할 자리를 준비해 주었다.
그때 제바존자는 곧 ‘첫째, 일체 성인 가운데 부처님이 최고이며 특별히 뛰어나시다. 둘째, 모든 법 가운데 부처님의 법에 견줄 수 있는 법은 하나도 없다. 셋째, 세간을 구원하는 복밭 가운데 여러 스님들이 제일이다’라는 세 가지 말을 명제로 삼고 말했다.
“팔방의 논사(論士)들 가운데 누구든지 이 세 가지 말을 파괴할 논리를 펼치는 자가 있으면 나는 반드시 머리를 베어 사죄하고 굴복하겠다. 왜냐하면 명제를 세웠는데 분명하지 못하면 이것은 어리석은 것이니 이와 같은 머리는 내가 아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팔방에서 논사들이 다 와서 구름처럼 모이더니 그들도 각각 말하였다.
“나를 만약 굴복시킨다면 머리를 베어 사죄하겠다. 어리석은 머리는 내가 좋게 여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바존자가 말했다.
“내가 닦는 법은 인자하여 만물을 살리는 것이니, 만약 논리적 대응으로 이기지 못하는 이는 반드시 머리를 깎고 제자가 될 것을 약속하고 머리를 베지는 말아라.”
이렇게 약속하고 나서 곧 함께 논의를 펼쳤다.
모든 외도 가운데 이치[情]와 지혜가 얕은 이는 한마디 말에 굴복하고 지혜가 뛰어난 이라도 이틀이 되자 말과 이치가 함께 궤멸되어 모두 머리를 깎고 제도되어 출가하였다.
그때 어떤 외도의 제자가 흉악하고 고집쟁이며 지혜가 없어 그 스승이 굴복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몸뚱이는 비록 무리들을 따랐으나 마음속으로는 원한과 분함이 맺혀 독을 품음이 극도에 도달하여 칼을 깨물고 스스로 ‘제바의 입이 나보다 뛰어나지만 나의 칼은 너를 굴복시킬 것이다’라고 맹세하였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날카로운 칼을 지니고 항상 밤낮으로 틈을 엿보고 있었다. 그때 제바존자가 삿된 견해를 깨뜨리려고 대중의 처소를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백론경(百論經)』을 짓고 있었다. 제자들도 각기 흩어져 나무 아래에서 사유하였다. 제바보살이 정(定)에서 깨어나 경행(經行)하는데, 외도의 제자가 그곳에 이르러 칼을 들고 제바보살을 궁지에 빠뜨리며 말했다.
“너는 옛날 일찍이 지혜로써 나의 스승을 항복시켰으니 나는 지금 칼로써 너의 배를 갈라 버리겠다.”
곧 칼을 휘두르니 제바보살의 오장(五臟)이 바깥으로 쏟아졌으나 아직 생명이 끊어지지 않았다. 제바보살은 미치고 어리석은 자를 가엾게 여기며 말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가사[衣]와 발우가 내가 앉았던 자리에 있으니 너는 그것을 가지고 급히 산 위로 도망가거라. 나의 제자들 가운데 아직 도를 증득하지 못한 자들이 만약 도주하는 너를 만나면 반드시 붙잡을 것이다. 만약 왕에게 보내어지면 너는 적지 않게 곤욕을 치룰 것이다. 무릇 몸이라는 것은 뭇 근심의 근본이니 너는 지금 정신이 헷갈려 헤매며 아쉽고 아깝게 여기는 마음이 무겁다. 이러한 까닭으로 반드시 스스로를 잘 방어하고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
그때 모든 제자들 가운데 먼저 온 이가 그 스승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소리치고 슬프게 울어 모든 문도(門徒)가 다투어 구름처럼 몰려와 놀라고 두려워하며 부르짖고 울며 땅에 나뒹구는가 하면 실성하여 날뛰기도 하였다. 제 정신을 지닌 제자들이 함께 상의하고 서로 역할을 분담하여 추격하면서 길목을 지켜 상해 입힌 자를 붙잡으려 하였다. 그때 가나제바존자가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모든 법은 본래 공하여 나[我]와 내 것[我所]이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롭게 하는 이도 없고 해로움을 받는 이도 없거늘 누구와 친하고 누구와 원수지고 누가 괴롭히고 상해하겠는가? 너희들은 지금 어리석음에 덮여 도리에 벗어난 망령된 견해를 내어 좋지 못한 업[不善業]을 심으려 하는구나. 저 사람이 상해한 것은 내가 옛날에 상해한 것을 갚은 것이지 나를 죽인 것은 아니다.”
이렇게 말하고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몸을 벗어나 멸도하였다.
가나제바존자가 아직 살아 있을 때 나후라(羅睺羅)존자에게 말하였다.
“부처님이신 바가바(婆伽婆)께서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하여 묘한 법을 널리 말씀하셔서 미래의 세상에 이익을 주시려고 차례로 법을 위촉하여 나에게까지 이르렀다. 내가 만약 멸도하거든 반드시 너에게 부촉하리니 너는 꼭 깊은 경전인 보장(寶藏)을 수호하고 유지시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널리 모두 이익되게 하여라.”
나후라가 말했다.
“좋습니다.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뒤에 깊은 경전의 묘한 법을 널리 펼쳤고, 지혜의 힘으로써 삿된 도를 꺾어 없앴으니 세 번 설법을 듣고 모두 받아서 유지하였다.
용수보살과 가나제바보살과 이 나후라대사의 이름과 덕망은 나란히 드러났으며 다 훌륭한 평판이 자자하였다.
그 당시에 어떤 바라문이 있었는데 총명하여 지혜롭고 기묘하게 깨달아 논의를 함에 있어 아주 뛰어났으며, 귀신 이름의 책[鬼名書]을 지었는데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웠고, 장구(章句)가 넓어 게송이 십만 송이나 되었다. 세 대사를 위하여 그것을 읽었는데 용수는 한 번 듣고 문득 깨달아 기억하여 마치 예부터 외우고 익힌 듯하였고, 제바는 한 번으로 알지 못해 반복하여 자세히 말하자 이미 두 번 듣고는 곧 분명히 알았으며, 제바보살이 나후라를 위하여 다시 자세히 분별하여 그 장구를 자세히 말하자 나후라도 듣고 뜻을 분명하게 알았다. 그때 바라문은 문득 크게 놀라고 괴상하게 여기며 마음속으로 ‘이 모든 사문은 재주와 지혜가 이와 같이 뛰어난가? 나의 책을 읽은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날카롭게 꿰뚫어 잘 분별하는 것이 흡사 예부터 익힌 것과 같구나’라고 생각하였다.
곧 믿고 항복하여 그 삿된 마음을 고쳤다.
저 나후라의 총명과 지혜가 이와 같으니 좋은 방편이 있어 중생을 교화하였다. 그런 뒤에 법을 승가난제(僧伽難題)에게 부촉하여 그로 하여금 유포하여 중생을 이익되게 하였다.
승가난제는 큰 공덕이 있었고, 지혜가 깊고 크며 보살의 행을 닦아 견고한 서원(誓願)으로써 스스로를 장엄하여 성문과 연각의 경계를 초월하였다. 일찍이 어느 때 무거운 짐4)을 벗고 모든 공덕을 구족한 아라한이 있었다. 승가난제가 그를 시험하고자 한 게송으로써 그에게 물었다.
전륜왕 종족으로 태어났으나
부처도 아니고 나한도 아닌 채
뒷세상에 있음도 받지 않으나
또한 벽지불도 아니라네.
“대덕아, 걸맞게 반드시 잘 살피고 관찰하여라. 위의 게송에서 말하는 것은 어떤 것이겠는가?”
그때 나한이 곧 삼매에 들어가 깊고 자세히 생각했으나 알아낼 수가 없자 곧 신통의 힘으로써 다른 몸을 만들어 허공으로 치솟아 도솔타천(兜率陀天)에 계시는 미륵(彌勒)보살의 처소에 가서 위의 사실을 빠뜨림 없이 여쭈어 의심하는 것을 끊어 주도록 청하였다. 그때 미륵보살이 그 나한에게 말하였다.
“세상의 흙덩이로써 물레 위에 얹으면 이겨진 진흙은 기와가 된다. 이와 같은 기와가 어찌 모든 성인과 같아서 뒷세상까지 이르겠는가?”
그때 그 나한은 문득 이해하고 염부제로 돌아와 이 사실에 대하여 자세히 말하자 승가난제가 말하였다.
“대덕아, 이것은 반드시 미륵보살이 그대를 위하여 자세히 말하셨고 그런 뒤에 그대가 이해한 것이오.”
이와 같은 지혜와 신통의 힘과 변화로써 여러 중생을 제도한 것이 헤아릴 수 없었다. 할 일을 이미 다하고 장차 몸을 버리려고 한 나무 아래에 이르러 손으로 나뭇가지를 잡고 갑자기 목숨을 버리니 여전히 이 나무를 의지하는 것 같았다. 여러 나한들이 그 주검을 옮겨 평탄한 곳에 안치하고 땔감을 모아 야순(耶旬)하려고 했으나 수미산과 같아 도저히 움직이게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신통의 힘을 다 써 보았으나 또한 나뭇가지를 잡은 상태가 조금도 달라짐이 없었다. 곧 문득 여러 마리 크고 흰 코끼리로써 힘을 합하여 그 주검을 당겼으나 겨자씨만큼도 이동할 수 없었다. 있는 그대로 향나무를 쌓고 그 아래에 불을 붙이니 그 불길이 맹렬하여 몸을 다 태웠으나 나무는 더욱더 우거져 울창하고 조금도 불길에 그을린 흔적이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목격한 사람들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감탄하면서 사리를 수습하여 탑을 세우고 공양 올렸다.
승가난제가 몸을 버린 뒤 승가야사(僧伽耶舍)라는 아라한이 있어 차례로 부촉함을 받아 법안(法眼)을 유포시켜 널리 중생을 교화하고 모든 고뇌에서 건져 주었으며 큰 지혜가 있었고 말솜씨가 뛰어났다. 옛날에 비록 절[山家]에서 아직 도의 자취를 증득하지 않았을 때, 큰 바닷가를 거닐다가 칠보로 장엄한 한 궁전의 광명이 특별히 뛰어난 것을 보고 승가야사가 공양할 때가 이미 되어 궁전에 들어가 게송으로써 밥을 빌었다.
굶주림은 병 중의 병이며
수행은 고통 중의 고통이니
이와 같이 법을 아는 이는
열반의 도를 증득할 수 있다네.
그때 궁전 주인이 곧 나와 영접하여 모시고 들어가 자리를 마련하고 앉기를 청하였다. 승가야사가 그 집 안을 둘러보니 두 아귀가 있었는데 그 아귀들은 벌거벗은 채로 시커멓게 병들고 굶주리고 허기져 여위고 쇠하였다. 그 몸과 머리에 쇠사슬을 매고 각각 한 평상[床]에 묶여 있었다. 또한 한 발우에 향기로운 밥이 가득 담겨 있었고, 그 곁에 물을 담은 병이 놓여 있었다. 그때 궁전의 주인이 이 밥을 받들어 비구에게 보시하면서 말했다.
“대덕님, 이 음식을 아귀에게 주지 마십시오.”
그때 비구가 그들이 굶주리고 곤궁함을 보고 곧 약간의 밥을 그들에게 주었다. 아귀들이 그것을 먹자마자 곧 피고름을 온 바닥 여기저기에 토하여 궁전을 더럽혔다. 그때 비구가 괴이하게 여기면서 그 이유를 물었다.
“이 아귀들은 무슨 인연으로써 이러한 죄의 과보를 받습니까?”
주인이 대답하였다.
“이 아귀는 지난 세상에서 나의 자식과 며느리였습니다. 제가 옛날 보시하여 공덕을 지으면 저 부부는 항상 성내고 아까운 마음을 품었습니다. 제가 자주 가르쳤으나 도무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인연으로 ‘이와 같은 죄업은 반드시 나쁜 과보를 얻게 되나니 만약 죄업을 받을 때가 되면 내가 반드시 너희들을 볼 것이다’라고 서원을 세웠습니다. 그 인연을 말미암아 이러한 고뇌를 얻었습니다.”
조금 다시 앞으로 가서 한 곳에 이르니 집을 갖가지로 장식하여 꾸며 놓았는데 여러 스님들이 가득히 경행하며 좌선한 채 사유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공양할 시간이 가까워져 건추(犍椎)를 쳐서 모이게 하였다. 밥이 장차 다 되어갈 때쯤 반찬들이 피고름으로 변해 버렸다. 문득 발우로써 함께 서로 치고 던져 머리가 깨어지니 피가 흘러 온몸을 적시며 “왜 옛날에 밥을 아꼈다가 지금 이러한 과보를 받는가?”라고 소리 질렀다.
승가야사가 앞으로 나가 그 이유를 묻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장로님, 저희들은 먼저 세상인 가섭불(迦葉佛) 시절에 한곳에 같이 살았는데 손님으로 비구가 오면 모두가 성내고 음식을 감춘 채 나누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인연 때문에 지금 이러한 고통을 받습니다.”
승가야사존자는 큰 바다에 노닐고 두루 다니며 관찰하여 지옥 오백 곳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결과로 곧 싫어하는 마음을 내고, 깊이 삼유(三有)를 근심하며, 오욕을 꾸짖고 깊이 두려운 마음을 내며 문득 생각하였다.
‘세간에서 업을 지으면 끝끝내 없어지지 않는다.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으니 누가 업을 버리거나 떠날 수 있겠는가? 나는 지금 반드시 방편으로써 면함을 구하겠다.’
관찰하는 마음이 지극하자 아라한도를 증득하였다. 여섯 가지 신통에 걸림이 없고 세 가지 밝음을 훤히 꿰뚫었다. 어느 산림(山林)에 오백 명의 선인들이 부지런히 고행(苦行)을 닦으며 범천(梵天)의 복덕을 희망하고 있었다. 승가야사가 그곳에 가서 그들을 위하여 세 게송을 자세히 말하고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을 찬탄하자 오백 명 선인들이 모두 도의 자취를 증득하였다.
이와 같이 존자는 널리 불사(佛事)를 하여 교화하는 인연을 이미 끝내자 문득 열반에 들었다. 사리를 수습하여 탑을 세우고 공양을 올렸다. 승가야사가 아직 멸도하지 않았을 때 정법으로써 구마라타(鳩摩羅䭾)에게 부촉하면서 그에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정법으로써 대가섭에게 부촉하셨으며, 이와 같이 부촉하여 나에게까지 이르렀다. 나는 열반하고자 유지한 정법을 너에게 부촉하니 반드시 지극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지켜 보호하기를 더하여라.”
구마라타가 대답하였다.
“가르침대로 하겠습니다.”
이에 차례로 깊은 법의 보장(寶藏)을 자세히 말하였다. 그의 공덕은 매우 깊고 넓고 컸으며, 큰 서원을 내어 보살의 도를 행하였으며, 지혜와 변재가 큰 바다와 같았다.
소년 시절에 이름이 알려져 백성들이 높이 우러러보았으니 구마라타는 한자어로 동자(童子)라는 뜻이다. 소년 시절에 훌륭한 이름이 있었으니 훌륭한 이름이 붙여진 인연을 드러내고자 한다.
어떤 장자(長者)가 일 때문에 먼 길을 떠나면서 한 옹기에는 금을 많이 담고 다른 한 옹기에는 금을 적게 담아 그의 친구에게 맡기면서 말했다.
“나는 다른 곳에 가려고 이것을 가지고 자네에게 부탁하네. 내 아들의 뜻대로 만약 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그에게 주도록 하게.”
뒷날 장자의 아들이 아버지의 친구를 찾아가 금을 찾았는데 금이 적게 든 독을 돌려주었다. 아들은 곧 성을 내고 그 옹기의 금을 취하려 하지 않았다. 드디어 서로 함께 이끌고 분쟁을 해결해 주는 관청을 찾아가서 위의 일을 자세히 말하고 판결해 주기를 구하였으나 여러 관리들이 분명하게 판단해 주지 못하였다.
그때 동자였던 구마라타가 길에서 놀이하다가 그 소송하는 소리를 듣고 즉시 이렇게 말하였다.
“아이가 많은 금을 가져야 마땅한데 왜 수고롭게 다툽니까? 그 아버지의 본래 말대로 아들이 하고 싶은 것을 따르면 지금 많은 금이 들어 있는 것이 저절로 그에게 돌아가는 것이 순리입니다.”
그때 판결하는 사람들이 동자의 말을 그대로 사용하여 사건을 해결하였다.
이 일 때문에 이름이 사방에 널리 알려지고 사람들이 아름다운 이름의 동자라고 부르게 되었다.
출가하여 도를 배우니 재주와 지혜가 세상 사람을 훨씬 뛰어넘었다.
어떤 나라에 이르니 사람이 매우 완고하고 도리에 어두워 비록 법으로 가르침을 듣는다 해도 도무지 믿고 받아들이지를 않았다.
구마라타가 그 나라의 백성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이 지금 무장한 기병(騎兵)의 말 만 필을 모아서 사람들이 이것을 타고 내 앞을 지나가게 하여라.”
곧 그의 말과 같이 빠짐없이 준비하여 지나가게 하였다. 구마라타는 잠깐 동안 한 번 보았을 뿐인데 사람의 이름, 말의 색깔, 의복의 모습 등을 모두 분별하여 자세히 말했는데 하나도 착오난 것이 없자, 그 나라 사람들이 이 때부터 항복하고 믿었다. 여러 경과 논을 짓고 세간에 다니면서 교화하였다. 할 일을 이미 마치고 곧 멸도하였다.
구마라타가 멸도할 때가 되어 사야다(闍夜多) 비구에게 말했다.
“장로야, 마땅히 알아라. 사람이 바다를 건널 때 반드시 배나 뗏목을 사용하는 것과 같이 중생도 마찬가지로 삼계를 떠나고 싶다면 좋은 법[善法]을 닦고 행한 뒤에라야 벗어날 수 있다. 이러한 까닭으로 내가 지금 법을 그대에게 부촉하고자 하니 마땅히 잘 익히고 배워 세상과 하늘에 이익되게 하여라.”
사야다가 말했다.
“예.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드디어 깊은 법을 부연하여 세간을 제도하고 교화하였다. 사야다는 큰 공덕이 있었고 용맹하게 정진하고 고행을 부지런히 닦았으며, 금계(禁戒)를 잘 지켜 빠뜨리거나 실수함이 없었으니 세존께서 수기(授記)하신 최후의 율사였다.
일찍이 대중 가운데 한 비구가 있었다. 형수가 절에 밥을 가지고 와서 비구에게 주었다. 갑자기 음욕의 불길이 일어나 음행을 저질렀다. 십중금계[重禁]5) 가운데 음행을 깨뜨리고 나서 문득 스스로 뉘우치고 자책하며 더할 수 없는 부끄러움에 젖어 ‘나는 크게 어리석어 이렇게 나쁜 업을 저질렀으니 지금 나는 결코 사문석자(沙門釋子)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가사와 발우를 모두 삼기장(三奇杖)6) 위에다 매달고 곳곳을 다니며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죄인이니, 다시 부처님 법의인 염의(染衣)를 입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의 허물이 이미 무거우니 반드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어느 곳에 가야 구제되어 보호함을 얻을 것인가?”
그때 사야다가 이 비구에게 말했다.
“그대가 지금 만약 나의 말을 따른다면 반드시 그대의 죄로 하여금 곧 저절로 소멸하게 해주었다.”
비구가 환희하면서 말하였다.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그때 사야다가 곧 신통변화로 불길이 거센 불구덩이를 만들어 놓고 그 비구로 하여금 직접 그 불구덩이에 뛰어들게 하였다. 그때 비구는 죄업을 없애기 위하여 몸을 큰 불구덩이 안에 던졌다. 바로 그때 맹렬한 불길이 깨끗한 물로 바뀌고 겨우 무릎 정도여서 조금도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 그때 사야다가 비구에게 말했다.
“너는 좋은 마음으로써 지성으로 허물을 뉘우쳤으니 너에게 있던 모든 죄업이 지금 모두 없어졌다.”
곧 그를 위하여 설법하니 아라한도를 증득하였다. 이 인연을 말미암아 세상 사람들이 모두 청정하게 계율을 지키는 분이라고 불렀다.
또 어느 때 모든 제자들을 데리고, 그들에게 에워싸여 덕차시라성(德叉尸羅城)으로 나아가 그 성에 도착하였을 때 시야다가 슬프고 참혹하게 얼굴을 찡그렸다. 제자들이 의심하고 괴이하게 여기면서 그 스승의 뜻을 물으니 대답하였다.
“지금 말하지 않고 나중에 적당한 때에 자세히 말하겠다.”
조금 다시 앞으로 나아가다 길에 한 마리 까마귀가 보였다. 그때 존자는 기쁜 마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모든 제자들이 다시 스승에게 말하였다.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찡그린 까닭과 웃으신 까닭에 담겨 있는 그 인연을 말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사야다가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처음 성에 도착하여 그 문 아래에 있는 아귀(餓鬼)의 아들을 보았다. 굶주림이 지나쳐 여위고 피곤한 모습으로 나에게 말하였다.
‘어머니가 저를 낳고 밥을 구하기 위하여 성에 들어가 이별한 지가 오백 년이 되었습니다. 굶주리고 허기지고 궁핍하여 오래 살지 못할 것입니다. 존자께서 만약 성에 들어가셔서 저의 어머니를 보시거든 저를 위하여 저의 어려운 상황을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처음 성에 들어와 그의 어미를 보고 그 아들의 굶주린 상태를 자세히 말했더니 그의 어미가 나에게 말하였다.
‘제가 성에 들어온 지 오백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일찍이 한 사람의 침도 얻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첫 아이를 낳느라고 기력이 지치고 피로한 상태이므로 설사 조금의 침을 얻는다 할지라도 모든 귀신에게 빼앗겼습니다. 비로소 오늘 한 사람의 침을 만나 주위에 다른 귀신이 없어 이것을 얻었습니다. 성 밖으로 나가 아들과 나누어 먹으려 하지만 문 아래에 큰 힘을 지닌 귀신들이 많이 있으니 그들에게 빼앗길까 두려워 다시 감히 밖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오직 존자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제가 이것을 가지고 성을 나가 아들놈과 만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때 아귀의 어미를 데리고 성 밖으로 나가 지금 아들과 함께 먹도록 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네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느냐?’
아귀가 답하였다.
‘저는 이 성이 일곱 번이나 생겼다가 파괴되고 국토가 풍족하고 안락하며 백성들이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또 헐리고 무너져 하나도 남음이 없는 폐허도 보았습니다.’
내가 그 말을 듣고 나고 죽으면서 받는 고통이 오랫동안 끝이 없는 것을 깊이 탄식하였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슬프고 참혹하여 얼굴을 찡그렸다.
저 까마귀의 인연을 말할 테니 잘 들어라.
지나간 과거 구십일 겁 전에 비바시불(毘婆尸佛)께서 세상에 계시면서 교화하셨다. 나는 그때 장자의 아들이 되어 마음으로 오욕을 싫어하고 항상 출가할 것을 생각하였다. 내가 만약 그때 사문이 되었다면 반드시 모든 번뇌[結]를 끊고 아라한도를 증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부모는 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억지로 장가보내 나의 뜻을 막으려 하였다. 나는 부모님의 명령을 어기지 못하고 장가들었다. 장가들고 난 뒤에도 다시 출가하려고 하였으나 부모님께서 말씀하셨다.
‘너와 아내를 위하여 바로 대 잇기를 구하니 만약 아들을 하나 낳으면 반드시 놓아 주겠다.’
나는 곧 말씀하신 대로 아내와 같이 교합하여 남자 아들 하나를 낳았다. 아이의 나이 여섯 살이 되자 부모님께서 그때 아이에게 ‘너의 애비가 만약 출가하여 사문이 되려 하거든 너는 반드시 그의 발을 안고 아비에게 말하기를, ≺아버님께서 만약 저를 버리신다면 저를 누가 양육하여 생활하겠습니까? 먼저 반드시 저를 죽인 후에 가십시오≻라고 하라’고 가르쳤다. 그때 이 아이가 부모님의 가르침대로 울면서 나를 안고 매우 슬퍼하였다. 나는 그때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곧 아들에게 ‘나는 너를 위하여 다시는 출가하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그 아이를 말미암아 도를 증득하지 못하고 구십일 겁을 나고 죽음에 헤매면서 다섯 갈래 중에서 일찍이 그를 보지 못하다가 지금 도의 눈으로써 저 까마귀를 관찰하니 전생에 내가 낳은 아들이었다. 그 애가 어리석어 오랫동안 나고 죽음에 있는 것이 불쌍하였다. 이러한 인연으로써 미소를 지었느니라.”
이와 같이 존자는 법의 요점을 잘 말하였으니 변재의 힘으로써 세간에 다니면서 교화하다가 할 일을 다하고 반열반(般涅槃)에 들었다.
사야다존자가 멸도에 이르러 바수반타(婆修般陀)비구에게 말하였다.
“너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옛날 천인사(天人師)께서 헤아릴 수 없는 겁 동안 부지런히 고행을 닦아 최상의 묘법으로 지금 만족하게 중생을 이익되게 하였고, 나에게 부촉해 준 것을 나는 지극한 마음으로 수호하고 유지하였다. 지금 그대에게 부촉하려고 하니 그대는 반드시 깊이 억념(憶念)하여라.”
바수반타가 말했다.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이로부터 그 뒤에 경장(經藏)을 널리 통달하여 많이 들은 것과 지혜와 변재 등 이와 같은 공덕으로써 자기를 장엄하였으니 일체 수다라(修多羅)의 뜻을 잘 알았으며, 분별하고 자세히 말하여 널리 중생을 교화하였다. 지어야 할 것을 짓고 나서 문득 생명을 버리고 가 버렸다.
다음으로 마노라(摩奴羅)비구에게 부촉하여 그로 하여금 위없고 최상으로 뛰어난 법을 유포하게 하였다. 그 마노라는 지혜가 뛰어났고 적은 것으로 만족함을 알아 부지런히 고행하여 오묘함만 말하여 중생들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삼장(三藏)의 뜻을 잘 통달하여 남천축국에 큰 이익을 일으켰다.
그때 야사(夜四)라는 존자가 있었다. 변재와 지혜가 총명하고 민첩함이 매우 깊고 크고 넓어 마노라와 더불어 공덕이 동등하였으며, 또한 삼장의 뜻을 능숙하게 알아 훤하였으며, 이름이 널리 알려져 모두가 높이 우러러보았다. 일찍이 어느 때 마노라가 북천축에 이르니 야사존자가 그에게 말했다.
“항하(恒河) 이남의 두 천축국의 사람들은 삿된 견해를 가진 자와 총명하고 말 잘하며 예리한 지혜를 지닌 자가 많습니다. 장로님께서는 음성의 논리에 대하여 잘 아시니 그곳에서 다니며 교화하십시오. 저는 이곳에서 반드시 중생을 이롭게 하고 편안히 하겠습니다.”
그때 마노라는 곧 그 말과 같이 두 천축국에 도착하여 널리 비라(毘羅)7)와 아(我)가 없다는 논리[無我之論]를 설명하여 일체 다른 도를 배우는 이들의 삿된 견해를 꺾어 항복 받았다. 할 일을 이미 갖추고 몸을 버렸다.
이후 다음에 학륵나(鶴勒那)라는 존자가 있었고, 야사가 세상에 나와 부촉하는 법을 받아 널리 자세히 퍼뜨렸는데 복과 덕망이 깊고 컸으며, 재주가 영명(英明)하고 크고 넓어 세상의 미혹함을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바른 길에 나아가게 하고 할 일을 다 마친 뒤에 몸을 버렸다.
다시 사자(師子)라는 비구가 있어 계빈국에서 불사(佛事)를 크게 지었다. 그때 국왕인 미라굴(彌羅掘)은 삿된 견해가 치성하고 마음으로 불법을 공경하거나 믿음이 없었고, 계빈국에서 탑과 절을 파괴하고 뭇 스님들을 살해하였다. 곧 날카로운 칼로써 사자존자의 목을 베었는데 목을 벤 자리에서 피가 솟지 않고 젖이 용솟음쳤다.
서로 부촉하던 법과 사람이 여기에서 갑자기 끊어졌다. 이와 같은 법은 크게 밝은 등불로 세간의 어리석음과 어둠을 밝혀 줄 수 있었다. 이러한 까닭으로 이와 같은 모든 현성(賢聖)들 모두 함께 높이 받아 유지시켜 지키고 보호하였으며, 다시 서로 부촉하여 항상 법륜(法輪)을 굴려 모든 중생을 위해 큰 이익을 일으켰다. 악한 길을 막아 단절하고 사람과 하늘에 태어나는 길을 열었으나 최후에 이르러 이 법이 쇠퇴하여 사라졌다. 어진 성인들이 숨고 사라져서 건립할 수가 없었으니 세간이 어두워 영원히 큰 밝음을 잃고 악업(惡業)을 짓고 열 가지 좋지 못한 일을 하니 목숨을 마치면 모두 삼악도(三惡道)와 여덟 가지 어려움[八難]8)에 떨어졌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지혜로운 이는 반드시 위없이 뛰어난 법은 큰 공덕과 미묘하고 심원한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이 있음을 관찰해야 한다.
비유하면 장사하는 사람이 큰 바다를 지나고 싶으면 반드시 배를 탄 뒤에라야 건널 수 있는 것과 같다. 일체 중생도 이와 같아서 삼계의 나고 죽는 큰 바다를 벗어나려고 하면 반드시 법이라는 배를 빌려야만 바야흐로 제도되고 해탈할 수 있다. 법이 청량하니 번뇌의 열병을 제거하며, 법은 묘약으로 번뇌의 병을 치유할 수 있으며, 곧 중생들에게 참된 선지식으로 큰 이익이 되어 모든 고뇌를 건져 준다. 왜냐하면 일체 중생의 성품은 결정된 모습[相]이 없기 때문에 물들고 익힌 바에 따라 선악(善惡)의 업을 일으킨다. 만약 외도의 삿된 견해를 익히고 가까이하면 그의 가르침과 계율을 받아 영원히 헤매어 끝남이 없으니, 이것을 선지식이라고 하지 않는다.
만약 어떤 사람이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켜 현성을 친근하고 오묘한 법을 듣고 받으면 이 법을 들은 공덕의 인연으로써 욕망의 진흙창을 벗어나고자 하며 최고로 뛰어난 즐거움을 받는다. 이런 까닭으로 이러한 사람을 선지식이라고 하나니, 반드시 부지런한 마음으로 익히고 가까이하며 공양 올려라. 그렇게 하면 꼭 사람들로 하여금 세 가지 나쁜 갈래의 고통을 여의게 한다.
옛날에 화씨국왕(華氏國王)에게 한 마리 흰 코끼리가 있었는데 기운이 용맹하고 힘이 뛰어나 원수와 적을 무찌르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만약 죄인이 있으면 코끼리로 하여금 밟아 죽이게 하였다. 그 후 어느 때 마구간에 불이 나서 코끼리를 잠시 동안 다른 곳으로 옮겨 두었는데 마침 절 가까운 곳이었다. 비구 스님들이 “착한 짓을 하면 하늘 나라에 태어나고 악한 짓을 하면 연못 같은 진흙창에 빠진다”는 법의 구절을 외우자 그것을 듣고 마음이 갑자기 부드러워져 자비의 마음이 일어났다. 뒤에 죄인을 코끼리 앞에 세웠으나 도무지 죽이지 않고 다만 코로써 냄새만 맡고 핥다가 가 버렸다.
왕이 이것을 보고 마음 속으로 크게 두려움이 일어나 지혜로운 모든 신하를 소집하여 이 일에 대하여 모의를 하였다. 그때 어떤 한 신하가 왕에게 말했다.
“이 코끼리를 매어 두었던 근처에 절이 있었으니 반드시 묘한 법을 들었을 것이고, 그 까닭에 이렇게 되었을 뿐입니다. 지금부터 도살장 근처에 매어 두고 저 도살하는 것을 보게 하면 악한 마음이 반드시 치성하게 될 것입니다.”
왕이 그 계책을 사용하여 코끼리를 도살장 근처에 매어 놓고 살육하고 가죽 벗기는 것과 목을 베는 것을 보게 하니 악한 마음이 맹렬하고 치성해져서 잔학한 행위가 더하게 되었다. 이러한 까닭으로 반드시 중생의 부류는 그 성품이 결정되지 않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축생도 오히려 법을 듣고 자비심을 내었다가 도살하는 것을 보고 문득 잔학해지는데, 하물며 사람이거늘 습기에 물들어 선악의 업을 일으키지 않겠는가?
이러한 까닭으로 지혜로운 이는 반드시 삿된 견해와 악한 법은 손해를 입힘이 많으니 버리고 여의어 부지런히 방편을 만들어 성인의 법을 익히고 가까이하며, 받고 유지하여 널리 퍼뜨려 대사(大師)의 생각을 일으킬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미묘한 공덕의 인연을 말미암아 영원히 세 가지 나쁜 갈래의 고통을 벗어나서 나고 죽음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즐거움을 받는 것이다.
또 이 법이란 것은 도를 얻어 이롭게 하는 전분(全分)9)의 인연이니 이러한 까닭으로 또한 참선지식이라고 한다.
옛날 아난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선지식이라 하는 것은 도를 얻어 이롭게 하는 데 반 푼의 인연이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선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곧 도를 얻는 데 전분의 인연이니라. 아난아, 이 염부제에서는 대가섭과 사리불 등을 제외한 여타의 중생은 만약 나를 만나지 못했다면 항상 나고 죽음에 헤매어 해탈을 기약할 수 없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러한 까닭으로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선지식이라는 것은 크게 이익되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연으로써 부처님의 법은 최고로 높고 최고로 묘하여 위가 있을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이 성취한 것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러한 까닭으로 세존이 처음 정각을 성취하고 보리수 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생각하였느니라.
‘일체 세간에서 만약 부모와 스승[師長]이 없었더라면 단독으로 외롭게 드러나 영원히 믿고 의지할 데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 반드시 누구를 의지하여 법을 세울 것인가?’
다시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과거ㆍ미래ㆍ현재 모든 부처님께서 모두 뛰어난 법으로써 사범(師範)을 삼으셨으니 나도 삼세의 부처님과 같이 깊고 묘하고 뛰어난 법으로써 스승을 삼아야 하겠다.’
이러한 인연을 말미암은 까닭으로 부처님도 항상 이와 같이 묘한 법을 공경하여 지성스런 마음으로 예배하고 은근히 지키고 보호함을 더하였느니라. 이 법은 매우 희유하니 이러한 까닭으로 지혜로운 이는 반드시 받아서 유지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또 옛날에 어떤 바라문이 사람의 해골[髑髏]을 가졌는데 그 숫자가 매우 많았다. 화씨성 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팔았으나 오랫동안 도무지 사는 사람이 없자 문득 성내어 높은 소리로 ‘이 성 안에 사는 사람으로서 만약 나의 해골을 사지 않는 사람은, 내가 반드시 너희들 모든 사람은 어리석고 암둔한 사람이라는 나쁜 소문을 온 세상에 퍼뜨릴 것이다.’라고 외쳤다.
그때 성 안에 살던 모든 우바새(優婆塞)들이 이러한 말을 듣고 그가 헐뜯어 비방하는 것을 꺼려서 곧 돈과 재물을 지니고 해골을 파는 데에 가서 구리줄로써 그 귀를 꿰뚫으면서 ‘만약 이것이 뚫리면 곧 많은 값을 줄 것이고, 반만 뚫리면 값이 점점 작아질 것이고, 전혀 뚫리지 않는 것은 조금도 값을 줄 수 없다’고 하자, 그때 바라문이 우바새에게 물었다.
‘나의 이 해골은 모두 꼭 같아서 차이가 없는 것인데 무슨 까닭으로 값에 차등을 매기는가?’
우바새가 말하였다.
‘앞의 해골과 같이 잘 뚫리는 해골은 이 사람이 살았을 때 부처님의 묘한 법을 들었으니 지혜가 높고 뛰어나 귀함이 이와 같으므로 많은 값을 주는 것이고, 그 반만 뚫리는 것은 비록 묘한 법을 들었으나 아직은 잘 분별하지 못했으니 이 인연 때문에 그대에게 조금만 주려는 것이며, 전혀 뚫리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이 조금도 부처님 법을 듣지 못한 자이니 내가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값을 조금도 주지 않겠다는 것이오.’
이 해골을 산 우바새는 성 밖으로 가지고 가서 탑을 세우고 공양을 올렸는데 죽고 나서는 천상에 태어났다.
이러한 인연으로 묘한 법은 큰 공덕이 있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 것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우바새는 법을 들은 사람의 해골로써 탑을 세우고도 오히려 천상 위에 났거늘 하물며 지극한 마음으로 이 법을 듣고 공양 올리고 공경하며 경전을 유지시키는 사람이야 어떠하겠느냐? 이러한 사람이 받는 복의 과보는 다 헤아리기가 어려우며, 미래 세상에 반드시 위없는 도를 성취할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모든 중생들이 위없이 안온한 쾌락을 얻고자 하면 중생을 교화하는 큰 이익을 짓기 위하여 모두 반드시 이와 같이 뛰어난 법을 받아서 유지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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