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633 보살영락경(菩薩瓔珞經) 4권

by Kay/케이 2024. 8. 10.
728x90
반응형

 

 

통합대장경 보살영락경(菩薩瓔珞經) 4

 

보살영락경 제4권

축불념 한역
장용서 번역

9. 음향품(音響品)
그때에 부처님께서 다시 여래 신족의 한량없는 법의 뜻을 거듭 펴시고자 문득 하나의 게송을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가득 차게 하셨다. 이때 부처님께서 즉각 게송을 말씀하셨다.
있고 없음은 공(空)으로부터 생기나니
저 소리는 내 것이 아니로다.
소리 소리마다 각각 다르니,
이 때문에 존귀한 법의 가르침을 말하도다.
부처님의 행(行)은 헤아릴 수 없나니
있음도 아니고 또한 없음도 아니로다.
한 목소리로 모든 법을 설하시니,
이로 말미암아 부처를 이루었도다.
이때에 부처님께서 이 게송을 말씀하시고 나서 문득 시방의 부처님들을 보시고 각각 찬탄하면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모든 부처님은 청정하고 온갖 행이 가지런히 똑같으시고[齊同], 시방의 무앙수 세웅최승(世雄最勝:부처님)께서는 똑같은 한 목소리로 모든 법을 연설하신다. 6바라밀의 하나하나 바라밀 속에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의 종성(種姓)이 있도다. 다함없는 법은 불가사의한데, 어떻게 종성은 불가사의한가.가령 시방의 부처님께서는 모두 똑같은 음향으로 한 게송의 뜻을 널리 시방의 한량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다함없는 법문에 모두 들어가게 하여 누구나 똑같은 지취(志趣)로 한 날 한시에 도를 이루게 하느니라. 다시 한 목소리로 한량없는 항하 모래 수효와 같이 많은 국토에 두루 가득 차게 하여 저 중생들로 하여금 이 음성을 듣고서 자연히 얽매인 것을 인식하여 영원히 해탈하게 하느니라.”당시 보살이 있었으니 그 이름을 해석(解釋)이라고 하였다. 그 보살은 이미 뭇 망령됨을 버리고 온갖 법을 다 깨달았으며, 뭇 지혜가 자재하여 불기법인(不起法忍)에 이르렀는데,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위의를 가다듬고서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꿇어앉아 합장한 채 부처님 앞에서 여쭈었다.“매우 기이하시고 매우 훌륭하나이다. 지금 부처님의 일음(一音)ㆍ일향(一響)을 듣사오니, 한 바라밀 속에 법전(法典)을 다 설하고 뭇 행을 갖추었사오니, 이는 아라한ㆍ벽지불의 경지로도 능히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옵나이다. 이제 여쭙고자 하옵니다. 어떻게 음향 속에 여래의 온갖 행의 법을 갖추시었기에 저 중생이 먼저 온갖 법을 얻고 나서 나중에 이 소리를 듣고 비로소 깨달음을 얻사옵니까? 그리고 음성 가운데서 온갖 법의 이름이 나오게 되나이까?”이때 부처님께서 해석보살이 묻는 것을 들으시고 곧 답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도다, 족성자여. 그대가 이제 공(空)하여 형상 없는 법을 묻는구나. 이것은 아라한이나 벽지불이 미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니라. 이제 그대를 위하여 마땅히 낱낱이 분별하리니, 살펴 듣고 살펴 들어서 잘 생각하고 생각하여라. 여래의 음향은 허공처럼 형상이 없으므로 온갖 법을 낳음이 불가사의하니라.”해석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어떻게 여래의 음향은 허공처럼 형상이 없사오며, 어떻게 다시 말씀하시기를 온갖 법을 낳는다고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해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래의 음향은 형상이 있느냐?”
대답하였다.
“형상이 없나이다.”또 물으셨다.
“음향이 형상이 없으면 메아리는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대답하였다.
“4대(大)의 인연으로 식(識)을 두어 분별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물은 여래의 음향은 허공처럼 형상이 없느니라. 어떻게 형상 없는 법이 온갖 법을 낳는가? 메아리는 4대(大)를 따를 뿐, 공법계(空法界)가 아닌가?”대답하였다.
“그렇지 않나이다.”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여래 음향의 근본이 4대(大)에서 나왔다고 하면, 메아리가 멸해 없어질 경우 다시 어디로 돌아가는가?”
대답하였다.
“메아리는 돌아가는 데가 없나이다.”부처님께서 다시 물어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다른 허공이 있어 이 메아리를 내느냐?”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나이다. 다른 허공으로부터 음향이 나오지 않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른 허공도 아니고, 이 허공도 아니며, 장차 여래도 아니라고 하면, 그대의 말에는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닌가?”해석보살이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세존께서 여래의 음향은 허공처럼 형상이 없어서 문득 온갖 법을 능히 낳는다고 스스로 일컬으셨기 때문에 이 법이 여래의 메아리로 말미암아 비로소 온갖 법을 낳는 것이라고 살펴 알았사온데, 어째서 다시 허공계에서 온갖 법을 다시 낳는다고 말씀하시나이까? 마치 사람이 어두움 속에서 밝음을 구하는 것 같아서 얻기가 매우 어렵나이다. 이제 제가 품은 의심은 전보다 갑절이나 더 심해졌나이다.”부처님께서 다시 해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지금 이 온갖 법의 이름이 생겨남은 어떻게 해서 있는가? 공으로부터인가, 공으로부터가 아닌가?”
대답하였다.
“이제 온갖 법의 법성(法性)은 스스로 본래 공이요, 공의 성품도 또한 공이옵나이다. 공의 공함도 스스로 공이거늘, 어찌 온갖 법이 있겠습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옳고 옳도다. 그대가 말한 대로 여래의 온갖 법은 허공처럼 형상이 없으며, 4대(大)의 음향은 4대(大)에서 나온다. 여래의 음향과 허공계가 어찌 다르지 않겠느냐?”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나이다. 제가 질문한 바는 여래의 음향이 근본의 4대(大)에서 나와서 문득 일체 모든 법을 낳았다면, 이것은 곧 의심하지 않사옵니다. 그러나 어째서 허공이 다시 온갖 법을 낳는다고 말씀하시나이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족성자여, 이제 그대가 물음을 발한 것은 모두 여래의 위신(威神)이시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여래의 음향은 있는 것이냐?”
대답하였다.
“없는 것이옵나이다.”“어째서 족성자여, 여래의 음향은 없는 것이냐?”
답하여 아뢰었다.
“여여(如如)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다시 물어 말씀하셨다.
“여래의 음향은 ‘있음’도 아니요 ‘없음’도 아니다. 마땅히 이 법을 무엇이라고 이름 짓겠는가?”
대답하였다.
“이 법은 마땅히 공이라고 일컬어야 하나이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공은 스스로 형상이 없어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며 또한 중간도 없거늘, 어떻게 공이라고 일컬을 수 있겠느냐?”
해석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장광설(長廣舌)로 공의 성품을 스스로 말씀하시면서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며 또한 ‘약간도 없다’고 하셨지만, 제가 보는 바로는 본래 이 공이 없는데 하물며 제가 어찌 공의 명호(名號)를 다시 세울 수 있겠습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족성자여, 공은 ‘있음’도 아니요 ‘없음’도 아니요 또한 중간도 없느니라. 가령 내가 오늘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의 열 가지 명호를 갖추었지만, 또한 ‘있음’도 아니요 ‘없음’도 아니요 또한 중간도 없으니, 설해진 온갖 법도 또한 마찬가지니라. 어찌하여 여래의 말을 비방하여 공의 이름이 여래에게서 나왔다고 일컫겠느냐.”그때 부처님께서 모인 대중들의 마음속 의심을 풀어주고자 문득 사부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여래는 한소리[一音]로 문득 일체의 모든 법을 능히 낼 수 있으니, 이 말은 허망하지 않아서 옳지 않음이 없느니라. 다만 중생은 계교와 집착의 상념을 내기 때문에 미혹에 처하여 영원히 4류(流:煩惱)에 있느니라. 여래의 신령스런 지혜는 불가사의해서, 가령 불식(佛識)이 염(念)하는 바는 한량없는 행의 근본으로써 온갖 중생이 응하는 과보를 다 알 수 있으니, 이는 아라한이나 벽지불의 경계가 아니니라. 이런 까닭에 여래의 한소리는 일체의 모든 법을 다 낳을 수 있느니라.”그때 해석보살이 다시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매우 기이하시고 매우 훌륭하시나이다. 중생의 경계는 불가사의합니다. 혹은 큰 서원이 있어 대승에 나아가기도 하며, 혹은 아라한이나 벽지불의 마음을 발하며, 혹은 공정(空定)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즐겨하며, 다시 천상과 인간 세상에서 복 받는 것을 즐겨하는 이도 있어, 이와 같은 부류는 불가사의합니다. 저 중생마다, 저 심식(心識)마다 생각하는 바가 같지 않고 행도 또한 동일하지 않은데, 어떻게 한소리로 온갖 법을 낳아서 온갖 중생에게 다 두루할 수 있나이까?”부처님께서 해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래의 신령스런 지혜는 형상이 없어서 볼 수 없느니라. 어떤 지혜는 그 이름을 속질자재(速疾自在)라고 하는데, 중생 심식(心識)의 깊고 얕음을 두루 알아서 모두 능히 분별하느니라.”
해석보살이 다시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중생의 신식(神識)은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오며, 혹은 ‘항상한다’고 계교하고 혹은 ‘무상하다’고 계교하나이다. 어떻게 해야 속질자재(速疾自在)의 지혜로 일체지(一切智)를 능히 다 낼 수 있나이까?”부처님께서 해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그대에게 비유를 들어 보리니, 지혜 있는 이는 비유로써 스스로 이해하느니라. 어떠한가, 족성자야. 가령 일천자(日天子)가 받은 4대(大)의 몸은 12유순이고, 내궁(內宮)의 담장과 밖의 담장의 거리는 7유순인데, 그 사이에 광명의 비춤이 갑절이나 밝아서 한량이 없다. 그리고 제2의 궁전 담장과 제3의 궁전 담장의 거리가 다시 7유순으로 광명이 더욱 줄어들고, 나아가 제7에 이르기까지 각각 서로의 거리가 7유순으로 광명의 비춤도 저마다 같지 않다.가장 밖의 제7 담장 밖에는 다시 호위 담장이 있어서 서로의 거리가 2유순인데, 광명이 더욱 같지 않다. 안에 있는 제1 궁전의 담장은 그 이름을 여의주로 만든 것[如意隨珠所作]이라고 하는데, 그 사이의 뜨거움은 근본 없는 불과 같다. 제2의 담장은 그 이름을 수염주로 만든 것[隨焰珠所造]이라고 하는데, 그 뜨거움은 흑승(黑繩)지옥의 불과 같다. 제3의 담장은 그 이름을 불꽃 광명의 그림자[焰光影]라고 부르는데, 그 뜨거움은 불꽃과 같다. 제4의 담장은 그 이름을 용맹한 불꽃 구슬[勇焰珠]이라고 부르는데, 그 뜨거움은 재 끓이는 불과 같다.제5의 담장은 그 이름을 지극한 불꽃의 그늘[極焰陰]이라고 하는데, 그 뜨거움은 구리 잎사귀의 불과 같다. 제6의 담장은 그 이름을 유리(琉璃)라고 하는데, 그 뜨거움은 붉은 연꽃의 불과 같다. 제7의 담장은 그 이름을 수정(水精)이라고 부르는데, 그 뜨거움은 푸른 연꽃의 불과 같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이 일천자가 하루 낮 하루 밤에 네 구역을 두루 다니는데 그 행(行)이 몹시 빠르고, 그 광명이 네 천하를 비추는데 푸르고 노랗고 붉고 희고,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하고, 성곽과 언덕, 성씨와 이름을 다 능히 스스로 보아서 낱낱이 분별하느니라.어떠한가, 족성자여. 중생이 한량이 없어서 형품(形品)이 똑같지 않은데 어떻게 일천자의 광명이 능히 저들을 다 비추어 모두 동일한 빛을 드러내는가? 햇볕 속으로부터 한량없는 광명을 내어서 한량없는 형상을 비출 수 있으며, 한 광명으로부터 한량없는 형상을 비출 수 있느냐?”
이때 해석보살이 앞에 나아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제가 물어 여쭌 바와 같나니, 여래께서 한소리로 한량없는 온갖 법을 낳는 것이니, 이 소리는 4대(大)로부터 나오는 것이어서, 오는 세상ㆍ지나간 세상ㆍ지금 세상에 내시는 언교(言敎)는 제가 의심하지 않사온데, 오늘의 광명의 성분(性分)은 스스로 그러할 뿐이니, 어떻게 언교(言敎)와 그것이 같나이까?”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의 4대(大)에서 나오는 음향은 다 저마다 가르침이 있으며, 모두 일체의 온갖 법을 능히 다 낳을 수 있다. 모든 부처님이 법을 설하실 때는 또한 말을 염(念)하지 않아서 설해도 옳고 그냥 두어도 옳으니, 마음이 고요히 멸해서 약간(若干)도 염(念)하지 않는다. 마치 일천자(日天子)의 한 광명이 비추는 바가 여러 지역에 두루하는 것처럼 나의 비추는 바를 염(念)하지 아니해서 그 광명을 입는 이는 각자 나아갈 곳을 아느니라. 이것을 해석보살아, 여래의 속질자재(速疾自在) 지혜라고 하니, 이는 이로움이 많아서 시방의 형상 있는 식을 두루 알아 교화하여 제도한다고 말하느니라.”이때 해석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내시는 음향은 광명이 있거나 광명이 없거나 어둠이 있거나 어둠이 없거나 모두 능히 나아가서 도의 가르침을 이루지만, 그러나 햇빛이 비춤은 상하게 하는 일이 많아서 어둠을 즐겨하는 이가 많거늘, 어째서 이것으로써 비유를 삼으시나이까?”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마치 사람이 공(空)에 노닐지만 뜻이 미혹하면 깨치기 어려운 것처럼, 그대도 지금 이처럼 나의 비유를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내가 이제 설한 바는 여래의 음향이 4대(大)로부터 벗어나서 일체 모든 법을 능히 내는 것이고, 일광 천자의 광명은 온갖 형상 있는 것을 능히 두루 비추는 것이니라. 첫째는 온갖 법을 능히 낳는 것이고, 둘째는 형상 있는 것을 능히 두루 비춤이니, 무슨 차별이 있기에 의심을 품는가.”그때 해석보살은 깊이 스스로 사유한 끝에 확연히 크게 깨닫고 다시 거듭 부처님에게 아뢰었다.
“거룩하시고 거룩하나이다. 부처님이시여,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형상 없는 법이므로 형상으로써 가르치시고, 말없는 교법이므로 말로써 가르치시나이다. 이제 거듭 여쭙나이다. 오직 원하오니, 여래께서는 때에 맞게 발견(發遣)하시어 의심을 없애 주옵소서.”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옳도다. 족성자여, 여래는 마땅히 권도의 방편으로써 발하여 보내주겠노라.”
“부처님이시여, 어떤 것이 항상함이 있는 신통[有常神通]이고 항상함이 없는 신통[無常神通]이며, 스스로 전생 일을 아는 신통[自識宿命神通]이고 남의 전생 일을 아는 신통[識他宿命神通]이며, 안식(眼識)의 신통이고 이식(耳識)의 신통이옵나이까. 이 여섯 가지 법의 뜻에 무슨 차별이 있나이까?”부처님께서 해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렇고 그렇도다. 그대가 물은 대로 이 6신통은 각각 다르지 않느니라. 이제 그대를 위하여 마땅히 설명하리라.
보살마하살이 항상함이 있는 신통[有常神通]을 얻어서 만물을 다 관하니 생겨나고 생겨나면서 끊어지지 않지만, 전생은 전생이요 후생은 후생이다. 만일 한 겁을 지나 백천 겁에 이르더라도 겁이 일어나면 일어나고 겁이 멸하면 멸한다. 이 식을 관하여 보니 또한 썩어 없어지지 않으니, 왜냐하면 무명의 뿌리가 깊어서 망가뜨릴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다시 다음에 항상함이 없는 신통[無常神通]에서도 다시 온갖 중생의 형상 있는 무리를 관하여 보니, 생겨나는 자와 멸하는 자가 있다. 한 겁으로부터 백천 겁에 이르기까지 겁이 일어나면 일어나고 겁이 멸하면 멸한다. 저 형체 받은 것은 다 마멸(磨滅)로 돌아가서 항상 존재할 수 없느니라.
이상을 보살마하살이 항상함이 있는 신통과 항상함이 없는 신통을 각각 차별한다고 말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해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족성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스스로 인식하는 신통[自識宿命神通]을 얻은 이라면, 문득 한 몸, 두 몸으로부터 백천 몸에 이르기까지 능히 스스로 보아서 겁으로부터 겁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지내온 것을 능히 다 스스로 인식하여 ‘나는 아무 나라 아무 고을에 나서 성명은 이와 같고 종성(種姓)은 이와 같다’고 하느니라. 다시 처음에 받은 4대(大)와 형상을 받은 약간(若干)을 능히 스스로 인식하고 알아서 그 선ㆍ악의 행을 능히 분별하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는 신통이라고 스스로 말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로서 다른 사람의 신통지혜[識他宿命神通]를 얻은 이라면, 이 욕계와 색계로부터 유상천(有想天)ㆍ무상천(無想天)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나아가는 바를 능히 다 분별하고, 한 살에서부터 백천만 살에 이르기까지, 한 겁으로부터 백천만 겁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성공하고 실패하면서 지나온 곳을 모두 능히 분별하여 다 인식하고 아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다른 사람을 아는 신통이라고 말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안식(眼識)의 신통을 얻어서 삼천대천세계를 보매 형상을 받은 이와 형상을 받지 않은 이를 알아서 모조리 형상 있는 것을 보는데, 한 살에서부터 백천만 살에 이르기까지, 한 겁에서부터 백천만 겁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다 살펴보아서 잘못된 혼란이 없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눈의 신통을 갖추어서 집착한 바가 없음이라고 말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이식(耳識)의 신통을 얻으면, 시방 중생 중 괴로움과 즐거움이 있는 소리와 괴로움과 즐거움이 없는 소리를 다 듣고, 선악의 과보를 받는 소리와 선악의 과보를 받지 않는 소리를 듣되, 모두 다 들어 알아서 잘못된 혼란이 없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귀의 신통을 갖추어서 집착한 바가 없음이라고 하느니라. 이상을 여섯 가지 법 각각의 차별이라고 말하느니라.”이때 해석보살이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항상함이 있는 신통의 보살이 그 신통을 얻으면 형질(形質)이 있는 것은 생겨나고 생겨나면서 끊어지지 않음을 모두 알고, 항상함이 없는 신통을 얻으면 생겨나고 생겨나도 멸함을 아나이다. 이제 관하여 보면 전생은 후생이 아닌데, 어째서 생겨나고 생겨나면서 끊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나이까?다시 다음에 여래께서는 스스로 인식하는 신통을 얻으셨기 때문에 전생 일을 아시나이다. 한 몸, 두 몸에서 백천 몸에 이르기까지, 한 겁, 두 겁에서 백천만 겁에 이르기까지 지금의 몸이 뒤의 몸이 아니며, 이 몸이 앞의 몸과 다르고, 지금의 식이 뒤의 식이 아니며, 이 식이 뒤의 식과 다르나이다. 식이 이 식을 여의면 곧 중생과 같거늘, 어째서 부처님께서는 전생의 일을 아는 신통[宿命通]을 스스로 인식하신다고 말씀하시나이까?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살마하살로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신통을 얻은 이는 온갖 중생의 심식의 아는 바를 다 안다’고 하셨고, ‘스스로 인식하는 마음의 신통은 또한 자기 마음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신통도 또한 자기 마음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안다’고 하셨는데, 이 두 가지 신통에 무슨 차별이 있나이까? 가령 부처님의 말씀으로는 ‘보살마하살로서 눈의 신통을 얻은 이는 시방의 욕계에서부터 위로 유상무상천(有想無想天)에 이르기까지 형상을 받은 이, 형상을 받지 않은 이, 선악의 과보를 받은 이, 선악의 과보를 받지 않은 이를 다 관하여 본다’고 하셨고,다시 말씀하시기를 ‘귀의 신통을 얻은 보살은 시방의 괴로움과 즐거움이 있는 소리와 괴로움과 즐거움이 없는 소리를 모조리 듣고, 선악의 과보를 받는 이, 선악의 과보를 받지 않는 이를 듣는다’고 하셨나이다. 눈의 신통도 보고, 귀의 신통도 듣는데, 이 둘에 무슨 차별이 있나이까?
오직 원하옵나이다, 부처님이시여. 거듭 설하시고 분별하시어서 저희들로 하여금 영영 의심이 없게 해 주십시오.”부처님께서 해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항상함이 있는 신통을 얻으면 모든 법의 앎의 머묾과 법의 성품은 변하지 않음을 깨달아 알 것이며, 보살마하살이 항상함이 없는 신통을 얻으면 모든 법은 변하여 바뀌는 것이라고 깨달아 알 것이니, 이것을 항상함이 없는 신통이라고 말하느니라.다시 다음에는, 모든 법의 체성도 스스로 그러해서 부처가 있든 부처가 없든 또한 나고 멸함이 없으니, 이것을 항상함이 있는 신통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모든 법의 항상함이 없는 신통’이란 다 마멸(磨滅)로 돌아가서 오래 존속하지 못하고 생겨나고 생겨나면서 머물러 있지 못함이니, 이것을 항상함이 없는 신통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보살마하살이 항상함이 있는 신통을 얻으면 문득 여래의 갖가지 법인 4의지(意止)ㆍ4의단(意斷)ㆍ4신족(神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의(覺意)ㆍ8현성도(賢聖道)를 갖추게 된다. 이것이 항상함이 있는 신통이 되느니라.다시 다음에 모든 법은 오는 세상ㆍ지나간 세상ㆍ지금 세상에서 좋은 법과 악한 법이 다 있는 바가 없으니, 이것을 항상함이 없는 신통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보살마하살은 다시 중생이 3승의 도를 발해서 나한을 얻으려고 스승을 찾아가 깨쳐서 그 과(果)가 원하는 대로 필연이라서 의심하지 않음을 보며, 다시 중생이 연각의 마음을 발하여 넓은 들에 혼자 사는데 그 과(果)와 같이 필연임을 의심하지 않음을 보며, 다시 중생이 보살의 마음을 발하여 그 원하는 바대로 필연임을 의심하지 않음을 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항상함이 있는 신통이라고 말하느니라.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에 아라한이나 벽지불의 도를 구하다가 비로소 보살의 도를 행하는데, 중간에서 물러나 범부의 경지에 있으면서 성취하지 못한 자라면, 이것을 항상함이 없는 신통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스스로 전생 일을 아는 신통을 이미 얻고 무수한 전생 일을 스스로 알게 되어서 처음으로 도의 뜻을 발하여 공덕을 세우고 여러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면 도과(道果)를 반드시 얻는데, 다시 스스로 4대(大)를 받지 않았음을 스스로 기억해 알아서 공(空)에 의지하거나 색(色)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스스로 전생 일을 안다[自識宿命]고 말하느니라.혹은 어떤 보살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신통을 얻었지만, 저 받은 몸마다, 저 받은 형상마다 본래 쫓아온 곳을 능히 알지 못하니, 이것을 세속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지혜[世俗他心智]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신통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지혜를 이미 얻어서 안팎의 신통을 모두 능히 갖추었다면, 이것을 스스로 인식한 신통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지혜라고 말하는데 저마다 구별이 있느니라.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눈의 신통을 이미 얻었다면 안팎이 청정하여서 3세(世) 중생의 근원을 모두 보느니라. 혹 어떤 보살은 천안(天眼)으로 1천 국토를 보며, 혹 어떤 보살은 2천 국토를 보며, 혹 어떤 보살은 삼천대천 국토를 보며, 혹 어떤 보살은 천안(天眼)으로 하나의 불국토를 보며, 두 국토를 보며, 세 국토를 보면서 그 중에서 퇴전(退轉)하는 자와 퇴전하지 않는 자를 다 아는데,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천안통(天眼通)을 얻어서 온갖 계(界)를 다 알면서도 있는 바가 없다고 말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이미 이통(耳通)을 얻어 시방 모든 찰토의 음향을 다 듣는데, 선한 소리가 있고 선한 소리가 없으며, 좋은 소리가 있고 좋은 소리가 없다. 다시 선남자나 선여인이 1천, 2천, 3천 찰토를 들으며, 혹은 어떤 보살이 하나의 불국토ㆍ두 불국토ㆍ세 불국토, 나아가 무수한 불국토의 음향을 듣느니라.”이때 부처님께서 해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섯 가지 일의 법에서 문득 갖춤을 얻어 저마다 차별이 있느니라.”
그때에 해석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어, 여래께서는 큰 사랑으로 설하신 한량없는 변재로 중생의 견고함을 하나하나 분별하여서 6신통의 불가사의함을 말씀하시오니, 이것은 나한이나 벽지불이 능히 알지 못하는 것이옵나이다.세존의 말씀대로 6신통은 법행(法行)에 집착이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오히려 의심을 품고 있나이다. 세존의 말씀대로 항상함이 있는 신통은 열반법을 말씀하고, 항상함이 없는 신통은 유위법(有爲法)을 말씀하나이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으로 하여금 유위의 신통을 얻게 하오면, 문득 신의(身意)가 곧 멸도(滅度)하는 것입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느니라.”
해석보살이 여쭈었다.
“일체의 모든 법은 생겨남도 없고 멸함도 없나이다. 오늘 여래의 신식(身識)이 곧 멸도하시면, 어떻게 다시 언교(言敎)가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항상함이 있는 열반을 말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또한 항상함이 없는 신통을 말한 것도 아니다. 다만 나는 신통으로 ‘있음’을 알고 ‘없음’을 아는 까닭에 설하였을 뿐이니라.”그때에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항상함이 있는 신통을 얻으면 문득 이름하여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라 할 것이요, 항상함이 없는 신통을 얻으면 이 사람은 성현의 자리에 있거나 범부의 자리에 있음이니, 이것을 두 가지 일이 각각 차별이 있다고 말하느니라.”이때 해석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이미 안식(眼識)의 신통을 얻으시어, 오는 세상ㆍ지나간 세상ㆍ지금 세상의 3세(世) 중생을 다 능히 요달해 볼 수 있으므로 이름하여 신통이라고 말하며, 이식(耳識)의 신통을 얻으시어, 귀로 오는 세상ㆍ지나간 세상ㆍ지금 세상의 무수한 세상의 소리를 듣는다고 하옵나이다. 만일 눈으로 본다면 과거의 색(色)입니까. 과거가 이미 멸하였다면 미래의 색이옵나이까. 아직 형상의 조짐도 있지 않은데 눈이 지금 현재의 법계를 인식한다면 저는 의심하지 않나이다.
오직 원하오니, 부처님이시여. 들은 것 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길이 깨달음을 얻게 하여 주십시오.”그때에 부처님께서 해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똑똑히 듣고 자세히 들어서, 잘 생각하고 생각하여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그 뜻을 마땅히 분별해 주리라. 어떠한가, 족성자야. 어떤 중생이 천안(天眼)을 이미 얻었다면, 온갖 형상 있는 색상(色相)을 두루 보고서 모두 능히 분별하여 의혹이 없으리라. 과거의 색을 생각하면 홀연히 앞에 있어서 모두 다 요달하여 걸림이 없으며, 이식(耳識)의 신통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염(念)하면 또한 앞에 있어서 귀의 장애가 없어 모조리 다 요달하느니라.”해석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지금 들은 것에 대해서는 의심이 갑절이나 더 납니다. 어떻게 안통(眼通)과 이통(耳通)은 과거의 일을 보고 과거의 소리를 듣나이까. 가령 저의 현재 자기 식(識)의 숙명(宿命)이라면 문득 숙명의 일을 능히 스스로 알 것이오며, 저의 이식이 현재라면 현재의 일을 알 터인데, 어찌 과거나 미래를 알 수 있습니까?”부처님께서 해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혹은 안통(眼通)의 안정식(眼定識)이 있기도 하고, 혹은 안통의 안정식 아님이 있으며, 혹은 이통(耳通)의 이정식(耳定識)이 있고, 혹은 이통의 이정식 아님이 있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안식정의 신통과 이식정의 신통을 얻으면, 문득 능히 이것을 처음 형상을 받으면서부터 지금의 후신(後身)에 이르기까지 보면서 크든 작든 그 중간에서 분별하여 정의(定意)의 신통을 잃지 않느니라. 보살마하살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이 정의(定意)에 들어간 이는 한 부처님의 경계를 보고, 다시 이 세계를 부수어서 무수한 찰토를 관하는데, 그 가운데서 5음(陰)을 성취함과 5음을 성취하지 않음을 변하여 나타내는데,혹은 불의 5음을 나타내며, 혹은 지(地)의 5음을 나타내며, 혹은 물의 5음을 나타내며, 혹은 4천하의 5음을 나타내며, 혹은 보배산의 5음을 나타내며, 혹은 수미산의 5음을 나타내며, 혹은 철위산의 5음을 나타내며, 혹은 큰 철위산 5음을 나타내며, 혹은 인간 세상의 성곽과 촌락의 5음과 유희하고 목욕하며 사는 거처의 5음을 나타내며, 혹은 여러 하늘이 사는 궁전의 5음을 나타내며, 혹은 용궁의 5음을 나타내며,혹은 8부 귀신의 5음을 나타내며, 혹은 욕계 중생의 형상을 나타내며, 혹은 색계와 색계를 짓는 중생의 형상을 나타내며, 혹은 무색계와 무색을 짓는 형상을 나타내며, 혹은 작은 세계와 작은 세계를 짓는 형상을 나타내며, 혹은 1천세계, 2천세계 내지 3천세계를 나타내며, 혹은 중생이 과보를 받는 것과 과보를 받지 않음을 나타냄으로써, 한 때ㆍ하루ㆍ한 달ㆍ한 해, 이루어지는 겁과 무너지는 겁, 청정함과 혼탁함, 좋음과 추함, 좋은 갈래와 나쁜 갈래, 온갖 부처님의 세상 출현과 보살의 추종 등을 다 능히 분별함이니, 이것을 정안식의 신통, 정이식의 신통이라고 말하느니라.여래의 신식(神識)을 얻으면 그 감동이 시방의 부처님 국토에 이르러서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면서 공양하고, 다시 여러 보살을 보고 의복ㆍ음식ㆍ침대ㆍ이부자리ㆍ병 치료에 쓰이는 의약을 가져다 공양하며, 다시 부처님 국토의 청정한 것과 청정치 못함을 보며, 다시 중생으로서 범행을 닦는 이와 범행을 닦지 않는 이를 보며, 5도(道:趣)의 중생이 행을 받음이 똑같지 않고 닦는 바가 각각 다름을 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정안식의 신통을 얻고 정이식의 신통을 얻으면 오는 세상ㆍ지나간 세상ㆍ지금 세상의 현재 일을 모두 보아서 잃는 것이 없다고 말하느니라.다시 다음에 보살마하살이 안식의 신통을 얻으면, 권도(權道)로 나타낸 무수한 중생 경계의 불가사의함이 문득 가지가지의 진기한 보배를 능히 변화시킨다. 어떤 중생들이 가서 진기한 보배를 취하려고 하면 모조리 보시하여 다 만족함을 얻게 하며, 혹은 다시 모든 부처님 나라의 본행(本行)이 청정함을 나타내 보이고서 다 마치고 나면 다시 새로움을 만들지 않음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정식안(定識眼)의 신통을 얻고 정식이(定識耳)의 신통을 얻으면 온갖 뭇 행을 모두 능히 갖춘다고 말하느니라.”그때에 해석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정안식의 신통을 얻고 정이식의 신통을 얻으면, 이들 선남자나 선여인은 어떠한 경지[地]에 있게 되며 몇 때나 부처님께 공양하게 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선남자나 선여인은 정안식의 신통과 정이식의 신통을 받들어 지니고 닦아 익혀서, 지나간 세상에 항하 모래알같이 많은 여러 부처님께 이미 공양하였으며, 총지(摠持)의 불퇴전행을 이미 얻어서 온갖 근(根)이 벌써 갖추어지고 상호를 성취하였으며, 부모가 단정하여 종성을 성취하였느니라.다시 어떤 보살은 비록 여러 부처님에게 공양하게 되어서 한 부처님 나라에서부터 한 부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여러 부처님을 받들어 모시면서 예경하지만, 그러나 안식의 신통과 이식의 신통은 얻지 못하느니라.
혹 어떤 보살마하살은 비록 안통은 얻었으나 뭇 행의 근본을 능히 갖추지 못하여서 신족의 힘으로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노닐며 여러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느니라.혹 어떤 보살마하살은 비록 안통과 이통은 얻었으나 정식(定識)을 얻지 못하여, 중생의 생각하는 것을 능히 모조리 알지 못하고 부처님 나라를 청정히 하고 중생을 능히 교화하지 못하느니라.
혹 어떤 보살마하살은 6신통이 청정하고 밝아서 안팎이 걸림이 없으나 네 가지 법문의 행을 능히 갖추지 못하였느니라.
혹은 어떤 보살은 한 불찰(佛刹)에 있으면서 두루 교화하면서도 물들어 집착한 바가 없으나 중생의 근원을 아직 능히 갖추지 못하였느니라.
혹은 어떤 보살은 그의 국토를 스스로 청정하게 해서 음행ㆍ성냄ㆍ어리석음 없는 중생이 그 나라에 태어나나니, 비록 그 나라에 태어났지만 고(苦)의 뿌리는 끊지 못하느니라.혹은 어떤 보살은 이런 커다란 서원을 발하길 ‘만일 내가 멸한 뒤에 나의 나라에 태어나는 이는 나의 나라 사람으로 하여금 3승이란 이름이 없게 하리라’라고 하나, 이 보살들은 정안식의 신통과 정이식의 신통임은 얻지 못하느니라.
다시 어떤 보살은 이런 커다란 서원의 마음을 발하길 ‘나의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구하겠다는 나의 본래 서원은 내 나라 사람으로 하여금 다 동일한 행을 하게하고, 국토를 청정하게 하여 동일한 형상을 하게 하려 함이다’라고 하니, 그의 소원대로라는 것은 이미 의심되지 않지만, 이와 같은 보살도 아직 정안식의 신통과 정이식의 신통은 얻지 못하였느니라.다시 어떤 보살은 이런 큰 서원의 마음을 발하길 ‘내가 나중에 성불할 때에는 온갖 중생 중에서 내 나라에 있는 이는 한 날에 도를 이루어서 모두 멸도(滅度)를 취하도록 하겠다’고 하나, 이와 같은 보살마하살도 아직은 정안식의 신통과 정이식의 신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다시 어떤 보살은 이런 큰 서원의 마음을 발하길 ‘만일 내가 나중에 부처를 이룰 때에는 내 국토의 온갖 중생으로 하여금 똑같은 날에 부처를 이루게 하리라’라고 하니, 이와 같은 보살은 정안식의 신통과 정이식의 신통을 문득 얻느니라.”
그때에 해석보살이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자못 어떤 보살마하살이 ‘만일 내가 성불했을 때에 온갖 중생도 모두 똑같은 때에 성불함을 얻을 수 있게 되기를……’ 하고 큰 서원의 마음을 발하면 안 되겠나이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나간 세상 무수한 아승기겁에 부처님이 계시었으니, 그 명호는 주무주(住無住) 여래ㆍ지진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이고 불세존이라 칭하였다. 나라 이름은 법묘(法妙)인데, 사람의 목숨은 3만 세였다. 그때에 주무주 여래의 목숨은 10만 세였는데, 큰 서원의 마음을 발해서 자기 국토의 중생이 같은 날 같은 시(時)에 다 불도를 이루고 바로 그 날에 다 멸도를 취하게 하였느니라.”해석보살이 다시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자못 어떤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 큰 서원의 마음을 발하여 ‘만일 내가 나중에 부처를 지을 때에 나의 시방세계 허공신식(虛空神識)으로 하여금 모두 불도를 얻게 하기를 바랍니다’라고 하는 일은 안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안 되느니라. 왜냐하면 중생의 경계는 불가사의하고 허공의 변제(邊際)는 끝과 바닥이 없으며, 지난 세상의 멸진(滅盡)도 측량할 수 없고, 장래에 오는 세상에 태어나는 것도 또한 한정이 없느니라.”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이 현겁(賢劫) 전 과거의 무수(無數) 아승기겁이란 이 수효를 지나고 나서 다시 무수 아승기겁을 지나서 부처님이 계셨으니, 그 이름은 평등 여래ㆍ지진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이고 불세존이라 칭하였다. 세상에 출현하실 때 사람의 목숨은 1천 세요, 국토는 청정하였다. 하루 안에 시방의 무수한 온 허공계의 형상 있는 무리를 나타내서 다 동일한 날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모두 이루어 가지고 똑같은 날에 모두 열반에 들었느니라.”그때 해석보살이 다시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평등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이미 성불하시고 나서 다시 온갖 중생에서 시방 한량없는 세계 허공의 변제(邊際) 없는 중생을 다 동일한 날에 불도를 이루게 하셨다는데, 어째서 오늘날 여래와 저희들이 다시 있사오며, 온갖 중생도 있사오며, 어째서 다시 천도ㆍ인도ㆍ축생ㆍ아귀ㆍ지옥도가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해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만둬라, 그쳐라, 족성자야. 나는 우선 사람의 몸을 얻은 이를 이미 말하였고 나머지 갈래는 말하지 않았느니라.”그때에 해석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자못 어떤 보살마하살이 큰 서원의 마음을 발하면, 하루 동안에 5도(道)의 중생으로 하여금 자기와 똑같이 똑같은 날에 성불시킬 수 있나이까 없나이까?”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없느니라. 왜냐하면 중생 성품의 행과 지취(志趣)가 같지 않기 때문이니, 어찌 아귀ㆍ축생ㆍ지옥의 형상으로써 부처를 이루겠는가. 이 일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비신(非身)으로는 사람 가운데 존귀한 이를 끝내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방편으로 나타내 보여서 임시로 두루 제도할 수 있을 뿐이니라.”부처님께서 다시 해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무수한 부처님께서 과거에 본래 큰 서원을 발하시어 온갖 중생의 형상이 있는 무리와 허공계로 하여금 모두 성불하여 열반에 들게 하였다. 그러나 저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곧 그날로 3악도의 중생을 먼저 교화하여 그 고통의 근본을 뽑아주어서 모두 사람의 몸으로 회복시켜 놓으셨다. 사람의 갈래[人道]를 얻고 나서 6근(根)이 갖추어지고 6정(情)이 완전히 갖춰진 연후에 하루 동안에 똑같이 부처님 도를 이루어 뭇 상호를 갖추었느니라. 가령 오늘날 나의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신통의 지혜가 자재하고 변재가 걸림이 없어서 모두 열반을 취하였느니라.”그때에 해석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큰 서원을 발한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는 가운데 고행을 하면서 한량없는 겁을 경과하였는데, 무슨 까닭에 3악도 중생에 대하여서는 모두 부처님 도를 이루게 하지 않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도를 이룰 수 없느니라. 족성자야, 왜냐하면 이 3악도는 3선도(善道)가 아니기 때문이니라. 그러하니 어떻게 이 가운데서 부처님 도를 이룰 수 있겠느냐. 이 일은 그렇지 못하느니라. 비유해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7보(寶)를 구하고자 하는데, 7보(寶) 더미를 버리고 도리어 허공에서 구하려는 것과 같으니, 이 사람이 능히 얻겠는가, 못 얻겠는가?”대답하였다.
“부처님이시여, 얻지 못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족성자여, 3악도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 도를 이루게 하고자 하지만, 이 일은 이룰 수 없느니라.”
10. 인연품(因緣品)
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정안식(定眼識)과 정이식(定耳識)을 받아 지니고 읊고 외운다면 문득 열 가지 공덕을 얻으리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인가?
여기에서 보살마하살이 견줌이 없는 마음[無等心]으로 허공의 상(像)을 얻어서 언교(言敎)로 중생을 교화하여 부처님의 나라를 청정하게 하지 않으리라. 선남자와 선여인은 무수한 형상과 식(識)의 본말을 스스로 알고, 그 공(空)하고 적멸하여 있는 바가 없음을 알아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일으키느니라.다시 족성자여,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앉아서 문득 법계의 청정을 능히 갖추는데, 다만 여래 일상(一相)의 형상 없음이 될 뿐이니라. 혹은 어떤 보살이 하나의 법인(法印)을 얻어서 한량없는 여래의 교법을 연설하는데, 스승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연히 깨친 것이니라.
다시 족성자여, 하나의 법을 행함이 본래 광대하고 밑바닥도 없어서 모습 없는 법으로 온갖 법의 근본을 낳으니, 무엇을 모습 없음[無相]이 모습 있음[有相]을 내는 것이라 하는가?”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령 밖에 있는 색(色)이 푸르고, 희고, 붉고, 검고, 노란 것이 있음과 같으니라.”
해석보살이 아뢰었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신(神)은 허공에 있어서 과거ㆍ미래ㆍ현재가 아니오며, 또한 5음(陰)의 이름도 없사온데, 어찌하여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희고 검은 것을 말씀하시나이까. 이 인연법은 불가사의합니다. 중생이 스스로 반연된 상념을 일으킴으로 말미암아 행이 있으면 곧 식이 있고, 식을 말미암아 어리석음을 낳으면 곧 사람의 몸을 이루나이다.”해석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의 말씀처럼 허공은 형상이 없지만 4대(大)의 색(色)인 땅ㆍ물ㆍ불ㆍ바람으로 말미암아 색이 있나이다. 이제 여래께 여쭙나이다. 어째서 이름하여 땅ㆍ물ㆍ불ㆍ바람, 그리고 푸르고 누르고 희고 검다고 말씀하시나이까. 부처님의 말씀과 같다면, 가령 푸름ㆍ노랑ㆍ하양ㆍ검정ㆍ공(空)과 식(識)은 허공 속에 있거늘, 어찌하여 푸름ㆍ노랑ㆍ붉음ㆍ하양 중의 푸르고 노랗고 붉고 흰 것이 모두 공이 아니라고 말씀하지 않으시나이까?”대답하여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각각 스스로 공하기 때문이니라. 공의 성품은 성품 있음을 알지 못하고, 성품 있음은 성품 없음을 알지 못하느니라. 마치 보살마하살이 일념(一念) 사이에 한량없는 항하 모래 수효 찰토의 여러 부처님 세계를 아는 것과 같으니라. 이루어지는 겁과 무너지는 겁을 낱낱이 알고, 그 중도를 알아서 다른 상(相)이 없느니라. 온갖 법의 인연은 스스로 나고 스스로 멸하며, 본래의 나는 공으로 인하여 생겨나고 생겨나면서 멸하지 않느니라.다시 한량없는 아승기의 찰토를 관하고, 여러 보살이 지혜를 받아서 장엄한 찰토를 관하여 보니, 청정한 무리가 종자를 낳고 그로 인해 저 부처님 나라에 도의 가르침을 연설하여 펼치고 있다. 아승기의 여러 부처님께서는 나온 곳을 모조리 알아서 낱낱이 분별하시지만 또한 ‘나’라는 상념[我想]은 없느니라. 다시 여러 부처님 여래ㆍ지진ㆍ등정각에게 깊은 법요(法要)를 듣고서 받들어 지니고 이어받아서 모든 법의 근본을 버리지 않느니라.그때에 보살은 또한 ‘나 있음’과 ‘나 없음’을 스스로 보지 않고, 보살의 행을 행하면서도 행 있음을 보지 않으니, 이것을 있음[有]으로 인하여 모습 없음을 일으킨다고 말하느니라. 그 가운데에서 상을 스스로 멸하지 않으니, 몸이 비록 관(觀)을 낳더라도 또한 스스로 보지 않아서 깨달아 아는 바가 없느니라. 이미 깨달아 아는 바가 없다면 또한 이 ‘나’라는 상념도 일으킴이 없느니라. 스스로 계교하고 나서 문득 일체 모든 법을 능히 분별하는데, 무명(無明)은 행을 반연하고, 행은 식을 반연하고, 식은 명색(名色)을 반연하고, 명색은 갱락(更樂:觸)을 반연하고, 나아가 나고, 늙고, 죽음 또한 마찬가지니라.”그때에 구행(具行)보살이 이런 생각을 다시 했다.
‘일체 모든 법은 인연으로 서로 생겨나고 인연으로 서로 멸한다. 처음 뜻을 발함으로부터 성불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여러 가지 법의 모습을 관하여 요달한다. 연(緣)이 생겨나면 생겨나고 연이 멸하면 멸하나니,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하면 식이 멸하고, 식이 멸하면 명색이 멸하고, 명색이 멸하면 갱락이 멸하고, 갱락이 멸하면 애착함이 멸하고, 애착함이 멸하면 수(受)가 멸하고,수(受)가 멸하면 있음[有]이 멸하고, 있음이 멸하면 생겨남이 멸하고, 생겨남이 멸하면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고달픔이 멸한다. 요점을 취하여 말하면, 5음(陰)은 뭇 행의 근본이니 의지함이 없고 의지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일어나 좇아 온 곳을 알고 저 스스로 모든 법계를 살펴서 관하니 법의 지혜가 청정하여 변재를 버리지 않느니라.보살마하살이 12인연(因緣)을 생각하여 분별하는데, 어떻게 무명은 행을 반연하는가? 여기에서 선남자나 선여인이 무명의 근본을 말미암아 착하고 악한 행을 지어서 열두 가지 착하지 못한 근본을 다 낳아 차츰차츰 5음의 형상을 이룸이니, 이것을 무명이 행을 반연한다고 말하느니라. ’그때에 과행(過行) 비구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팔을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한 채 부처님께 여쭈었다.
“제가 배운 12인연의 깊고 깊은 법을 제가 이제 마땅히 말씀드리겠나이다. 무명(無明)이 행(行)을 반연하여 문득 열두 가지를 내고, 행이 식(識)을 반연하여 문득 열두 가지를 내고,식이 명색(名色)을 반연하여 문득 열두 가지를 내고, 명색이 갱락(更樂)을 반연하여 문득 열두 가지를 내고, 갱락이 6입(入)을 반연하여 문득 열두 가지를 내고, 6입이 애착함[愛]을 반연하여 문득 열두 가지를 내고, 애착함이 수(受)를 반연하여 문득 열두 가지를 내고, 수(受)가 있음[有]을 반연하여 문득 열두 가지를 내고, 있음이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슬프고 괴롭고 고달픔을 반연하여 다시 열두 가지를 내나이다.가령 제가 이해한 12인연은 어리석음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하면 식이 멸하고, 식이 멸하면 명색이 멸하고, 명색이 멸하면 갱락이 멸하고, 갱락이 멸하면 6입이 멸하고, 6입이 멸하면 애착함이 멸하고, 애착함이 멸하면 수(受)가 멸하고, 수(受)가 멸하면 있음이 멸하고, 있음이 멸하면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과 고달픔이 멸하나이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는 법상(法相)을 헐지 말라. 마치 요술쟁이[幻師]가 이 땅에 머물면서 그 요술[幻法]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 요술은 이 땅을 손상하지 않고 땅도 또한 요술을 손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요술쟁이는 이 조화(造化)를 만들어냄이 낮과 밤이 없이 하니, 이 요술을 보는 자가 있다면 모두 다 믿고 아는 것과 같이, 보살마하살도 마찬가지니라. 신족의 힘으로 12인연을 분별하면 부처님의 경계에 그 찰토(刹土)를 나타냄이 없고, 본래 세상은 있지 않지만 지금은 세상 있음을 나타낸다.다시 부처님이 있는 찰토로써 부처님이 없는 찰토를 능히 나타내고, 색(色) 없는 찰토로써 형색(形色)이 있는 것을 나타낸다. 하나로써 둘을 헐지 않고, 둘로써 하나를 헐지 않는다. 왜냐하면 저 요술은 능히 온갖 세계로 하여금 다 요술 같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니, 마치 일체 세계가 사람들이 기뻐하는 바를 따라 다 요술이 되는 것과 같다. 요술[幻]은 약간(若干)이 있어서 한 가지 법이 아니니라.혹은 어떤 환법(幻法)은 그 이름을 한량없는 온갖 법문이라고 하는데, 이 환법을 얻은 보살은 문득 일체 모든 법을 나타내기를 모두 요술처럼 할 수 있느니라. 이미 환법을 얻으면 문득 환지(幻智)를 얻어서 잊거나 잃어버리지 않느니라. 이미 환지를 얻었다면 문득 환행(幻行)을 얻어서 뭇 고통을 능히 다 없애느니라.
보살마하살이 환지와 환행을 이미 얻었으면, 문득 그 가운데에서 환지로써 온갖 행을 다 분별할 수 있고 낱낱이 사유하여 본제(本際)를 잃지 않느니라.가령 저 환법은 안의 땅에 의지하지 않고, 바깥 법을 나타내도 또한 밖을 의지하지 않아서 여러 중생으로 하여금 안의 법[內法]이 있음을 나타내게 하느니라. 보살마하살도 또한 마찬가지이니, 공의 성품으로 안팎을 분별하지 않기 때문이며, 나는 마땅히 온갖 세계를 초월했다고 말하니, 또한 세계로써 안팎의 공한 법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니라.왜냐하면 허공은 성품이 그러하여 법계를 부수지 않고, 법계는 허공의 성품을 부수지 않기 때문이니라. 보살마하살은 그 가운데에서 허공의 성품을 얻어 갖가지로 일체 법계를 관하는데, 또한 법계를 관하지 않기도 하고 또한 법계를 부수지 않기도 한다. 이 세계에 약간의 형상이 있음을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중생의 착한 행과 악한 행의 과보도 보지 않고 낱낱이 분별하여 그 일을 찾아 연구하느니라. 이는 성품의 공함이 스스로 그러할 뿐이지 능히 그렇게 시키는 것은 없다. 관하고 나서 다시 관하여 3유(有)를 분별하는데, 그 가운데서 12인연을 계교하느니라.어리석음을 말미암아 안식(眼識)을 일으키는데 세 가지 행의 일이 있나니, 어떤 것이 셋이 되는가. 마치 족성자가 눈으로 외부의 색깔은 보지만 착하고 착하지 않은 것은 모두 분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는 본식(本識)을 말미암아 무명이 물들임을 행하는 것이니라. 혹은 다시 선남자나 선여인이 몸ㆍ입ㆍ뜻을 일으켜 세 가지 착하지 못한 법을 행하다가 점점 스스로 깨달아서 ‘애달프구나, 내가 본래 지은 것은 무명의 근본을 말미암아 지금 12인연을 초래했구나’ 하면서무명을 좇아서는 스스로 고칠 수 없음을 아느니라. 다시 다음에 선남자나 선여인이 어리석음을 말미암아 행을 초래해서 뭇 죄의 근원이 죄를 말미암아 생겨난다. ‘나는 이제 고요한 정의(定意)를 마땅히 염(念)해서 이 12인연이 어리석음을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인가, 행으로부터 이루어진 것인가를 관해야 한다’고 하고,다시 스스로 사유하기를 ‘무명의 맑고 고요한 은닉(隱匿)의 법이 무엇을 말미암아 온갖 반연의 집착을 능히 내는가. 나의 몸ㆍ입으로 행하고 짓지 않은 것이면 말미암아 생길 수 없으리라’고 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세 가지 행을 분별하여 있는 바가 없음이라고 말하느니라.보살마하살이 공관(空觀)의 정의(定意)를 얻어서 12인연을 분별하는데, 어리석음을 반연하여 행이 있으면 문득 반연의 과보가 있지만, 어리석음이 본원이 아니라면 무엇을 말미암아 행이 있으랴. 몸ㆍ입ㆍ뜻의 법인 세 가지 일이 서로 원인이 되어 온갖 법을 내고 있으니, 그 까닭에 여래는 수없는 겁에서 12인연을 분별하고 사유해서 지금 성불하여 비로소 믿고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처음 뜻을 발하여 보살의 도를 구하면서 몸을 버리고 몸을 받으면서도 12인연을 분별하여 고통의 근본을 사유했지만 그 근원을 다하지 못하였다. 지금 내가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을 이루고서야 비로소 12인연을 창달하였느니라.”부처님께서 과행 비구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네가 비록 여래 앞에서 12인연을 말하였지만, 그 근본은 능히 갖추지 못하였다. 어째서 근본이 없느냐.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 이 세상에 머물면서 항하 모래알과 같이 많은 겁을 지나도록 12인연을 선포해 말씀하여도 오히려 능히 다할 수 없는 것이거늘, 하물며 네가 이제 다하려고 하느냐.”
그때 저 비구가 여래의 앞에서 몹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장차 저는 신족을 잃지 않겠습니까?’하면서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아래에 엎드려 절하고는 문득 물러나 떠나갔다.

11. 심품(心品)
그때 자리에 있던 여러 욕계의 천인(天人)과 여러 색계의 천인, 하늘ㆍ용ㆍ귀신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전다라ㆍ마후라가는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이 매우 깊은 법을 설하신 걸 듣자 모두 목마르게 우러러 뵙는 마음이 있어서 여래의 정심정의(正心定意)를 얻어 보고자 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을 아시고 모인 대중으로 하여금 마음을 삼매에 정(定)하고자 하셨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 즉시 평상 위에서 면현정의(面現定意)에 드셨다.이에 모든 보살마하살이 모두 다 이것을 보았다.여기서 열다섯 강하(江河)의 모래알과 같이 많은 국토를 지나면 부처님의 국토가 있으니, 그 이름을 여환(如幻)이라 부르고 부처님의 명호는 등심(等心) 여래ㆍ지진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이고 불세존이라 칭하신다. 그 나라는 청정하여 상념의 집착에 의지하지 않으며, 아귀ㆍ축생ㆍ지옥의 갈래가 없으며, 행하는 것이 순수하고 두터워서 ‘나’를 스스로 계교하지 않으며, 마음이 소승에 나아가지 않고 또한 성문이나 벽지불의 소리도 없는데, 온갖 모인 대중으로 하여금 다 보게 하였다.그때 부처님께서 저 정(定)에서 일어나 다시 월성정의(月盛定意:삼매)에 드시어서 온갖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금색(金色)을 뵙게 하시고,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모습 없는 행[無相行]을 설하심을 모조리 듣게 하시었다.
“무엇을 무상(無相)이라 하는가? 온갖 법은 본래 고요하여 담박하고 형상이 없으며, 온갖 법은 일어남이 없어서 모든 분노와 성냄을 참으며, 온갖 법은 마음을 거두어서 바깥 상념을 일으키지 않으며, 온갖 법은 정의(定意)로 나라의 청정함을 나타내며,온갖 법을 잘 관하면 겁수로써 한정하지 않으며, 온갖 법은 행을 즐겨서 영원히 은애(恩愛)를 여의며, 온갖 법은 밝음을 나타내서 어리석은 상념을 낳지 않으며, 온갖 법은 탐심(貪心)을 버려서 보시(布施)바라밀을 갖추며, 온갖 법은 범하는 것이 없어서 계(戒)바라밀을 갖추며,온갖 법은 화내는 상념을 일으키지 않아서 인(忍)바라밀을 갖추며, 온갖 법은 정진하여 게으름이 없어서 정진(精進)바라밀을 갖추며, 온갖 법은 어지러운 뜻을 일으키지 않고 마음을 거두어 일으키지 않아 항상 선(禪)을 즐겨함으로써 선(禪)바라밀을 갖추고, 온갖 법은 어리석은 미혹을 다 없애어 다른 생각이 없어서 지혜(智慧)바라밀을 갖추었느니라.다시 이름하여 4의지(意止)가 있다. 보살마하살의 닦아 행하는 법이니, 어떤 것을 네 가지 뜻의 그침이라 하는가?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있어 내신(內身)의 의지(意止)를 분별하는데, 머리부터 발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분별하여 부정관(不淨觀)을 일으킨다. 스스로 자기의 몸을 관하고 남의 몸을 관하며,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관하고 남의 마음을 관하는데, 안팎의 모든 법이 다 이와 같다.
보살마하살은 다시 온갖 법의 4의단(意斷)과 4신족(神足), 5근(根)과 5력(力)과 7각의(覺意)과 8현성행(賢聖行)을 스스로 관하여야 한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무상행이라고 말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스스로 자기의 몸을 관하고 다른 사람의 몸을 관하는데, 낱낱이 분별하여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청정하지 못하다는 상념을 일으켜야 한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안팎 몸이 다 있는 바가 없음을 관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그때에 부처님께서 곧 게송으로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심(心)ㆍ의(意)ㆍ식(識)에 의지하지 않고
온갖 행의 근본을 분별해서
도(道)는 보존하되 상념은 없다면
비로소 현성의 진리[賢聖諦]에 응하리라.
부처님 지혜는 끝이 없어서
합하고 여읨을 보지 못하나니
성불(成佛)은 상 없음[無相]을 말미암아야
비로소 불과(佛果)의 행에 응하리라.
부처님 도[佛道]는 본래 둘이 없고
또한 한 모습[一相]도 없네.
참 사람[眞人]은 인자한 마음으로
약간의 법을 널리 나타내 보이도다.
본래 내가 나를 짓지 않았건만
‘있음[有]’에 물들어 5음(陰)을 이루었네.
성제(聖諦)의 지혜가 한량없어
나아가 스스로 뜻을 멸하네.
‘있음’도 아니고 또한 ‘없음’도 아니지만
나고 죽으면서 염착(染着)을 일으키나니
상(相)을 멸하면 부처를 저절로 이루므로
‘하늘 중의 하늘’이라고 호칭하도다.
사람 세상[人道]에 태어나기 어렵고
6근(根) 완전히 갖추기 어려우며
12인연 끊기 어렵고
하늘에 태어나 복 받기 어려워라.
성현을 만나 뵙기 어렵고
정(定)에 들어 상념 끊기 어렵고
안팎의 몸을 관하기가 어렵고
성현의 가르침 직접 받기 어려워라.
이때 부처님께서 이 게송을 말씀하시고 나시자, 자리에 있던 여러 하늘의 백성들과 하늘ㆍ용ㆍ귀신 등 8부의 대중이 위없는 바르고 참다운 도의 뜻을 모두 발하였고, 다시 수없는 중생들이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얻었다.
12. 사성제품(四聖諦品)
그때에 부처님께서 문수사리(文殊師利)에게 말씀하셨다.
“지나간 세상 무수 아승기겁에 부처님이 계시었으니, 그 이름은 대신(大身) 여래ㆍ지진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이고 불세존이라 호칭했으며, 세계의 이름은 공적(空寂)이었다. 바로 이곳에서 위없는 등정각을 이루어서 사부대중에게 미묘한 법인 4성제(聖諦)를 설하여 중생을 널리 교화함으로서 누구나 남음이 없는 열반[無餘涅槃]의 경계에 이르러 멸도를 취하게 하셨다.어떤 것이 4성제인가? 첫째는 무량(無量) 성제이니라. 보살로써 이 진리를 얻은 이는 일념 가운데 마음의 번뇌[垢]를 스스로 멸하고 다른 이의 번뇌도 멸할 수 있으며, 또한 번뇌[塵垢]의 다함 있음과 다함없음도 보지 않느니라.
둘째는 이름하여 행진(行盡) 성제라고 하느니라. 보살로서 이 진리를 얻은 이는 일념 가운데 중생으로 하여금 몸ㆍ입ㆍ뜻의 행을 다 깨닫게 하여서 선(善)이거나 악(惡)이거나 모두 도(道)의 문에 나아가게 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남음이 없는 열반의 경계에 이르게 하느니라.셋째는 이름하여 질속(疾速) 성제라고 하느니라. 보살로서 이 진리를 얻은 이는 능히 온갖 중생으로 하여금 손가락 튀기는 사이에 모두 부처님 도를 이루게 하여, 제한 없고 한량없어서 일컬을 수조차 없이 많은 수효가 하루 사이에 도를 이루게 하느니라.다시 무수 아승기 찰토의 중생 무리로 하여금 각각 착한 마음을 내어서 모든 부처님에게 공경심을 일으켜 공양하게 하는데, 향과 꽃과 비단을 바치고 온갖 풍악을 울리며, 아승기의 모든 부처님 국토를 한 개의 보배양산으로 변화시켜서 그것으로 공양하니, 여러 하늘과 세상사람 위에 뛰어나며, 모두 천상자연(天上自然)의 음식ㆍ의복ㆍ침대ㆍ이부자리ㆍ병 고치는 의약을 가져와서 한 생각 동안에 모조리 능히 차리느니라.넷째는 이름하여 평등 성제이니라. 보살로서 이 진리를 얻은 이는 능히 온갖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똑같이 약간의 모습도 없는 경지에 나아가게 하여 남음이 없는 열반의 경계에서 열반에 들게 한다. 마치 불꽃과 같고 허깨비 같고 아지랑이같이, 세계는 공적하고 형상이 없어서 소유하여 가질 수 없으니, 보살마하살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중생을 교화하고 부처님의 국토를 청정하게 하지만, 중생 가운데 제도를 얻은 이가 있음을 보지 않고 다시 교화를 받은 이도 보지 않으니, 중생이 있지 않음도 아니고, 중생이 없지 않음도 아니며,청정한 중생이 있지 않음도 아니고, 청정한 중생이 없지 않음도 아니며, 탁함이 있지 않음도 아니고 탁함이 없지 않음도 아니며, 태(胎)를 받음이 있지 않음도 아니며, 태를 받음이 없지 않음도 아니며, 있음이 있지도 않으며, 있음이 없지 않음도 아니며, 나고 죽음이 있지 않음도 아니고, 나고 죽음이 없지 않음도 아니다.이처럼 낱낱이 분별해도 있는 바가 없으니, 12인연을 아는 것도 또한 마찬가지여서, 어리석음으로부터 12인연에 이르기까지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다. 마치 아지랑이와 같이, 세계는 얻어 가질 수 없어서 가까움도 없고 먼 것도 없다. 중생을 비록 교화했어도 교화함이 있음을 보지 않으니, 보살마하살도 또한 마찬가지니라.모든 부처님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을 관하니, 일어남이 있음을 보지 않고, 멸함이 있음을 보지 않으며, 또한 모습이 있음도 보지 않고, 또한 모습이 없음도 보지 않는다.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모습 없는[無相] 법으로 중생을 교화하고 부처님 국토를 청정하게 하니, 비록 부처님이 있어도 부처님이 있다는 상념이 없으며,비록 법이 있어도 법이 있다는 상념이 없으며, 비록 비구승이 있어도 비구승이 있다는 상념이 없느니라. 이것을 일러서 이미 무상법을 얻은 문수사리 보살마하살이 불퇴전(不退轉)에 머물러서 걸림이 없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비유하여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국왕이 되기도 하고 전륜성왕이 되기도 하지만, 깨고 나서는 문득 꿈속에서 지은 바를 잊어버리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마하살도 마찬가지라서 여러 중생이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을 이루는 것을 관하는데, 성취함이 있는 모습도 보지 않고 성취함이 없는 모습도 보지 않느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모인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때 대신(大身)여래께서 법을 설하셨지만 청정하고 형상이 없어서 볼 수가 없었느니라.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함부로 이러한 관(觀)을 짓지 말라. 왜냐하면 그때의 대신여래가 지금의 문수사리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문득 이 게송을 말씀하셨다.
지나간 수없는 세상에
대신여래 부처님 계셨으니
여기서 정각 이루시어
삿된 행이 없으셨네.
항상 모습 없는 법[無相法]으로
4성제(聖諦)를 분별하시고
권도(權道)를 나타내어 세계를 유행(遊行)하며
물어서 받은[諮受] 바를 나타냈네.
부처님의 도는 불가사의하고
신력(神力)은 다할 수 없으니,
교화한 중생의 무리를
다 똑같은 한 모습[一相]으로 만드네.
나는 이제 스스로 부처 이루어
삼계에서 가장 존귀하니
저에게 물들지 않고
다시는 나고 늙고 죽지 않을 것이네.
부처님께서 이 게송을 설하시고 나자, 한량없는 중생이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無上正眞道意]을 모두 발하였다.
13. 성도품(成道品)
그때에 보살이 있으니 이름이 무외(無畏)였다. 지나간 세상에서 수없는 부처님들께 일찍이 공양하였고, 이미 총지(摠持)를 얻어서 3세(世)의 이루어짐과 무너짐의 나아가는 바를 분별하였다. 그 보살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팔을 들어내고 합장한 채 꿇어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렇사옵니다, 부처님이시여. 이제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설한 네 가지 성현의 있기 어려운 법을 들었사온데, 일찍이 들은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4제(諦), 즉 4성제(聖諦)의 이름을 받아 지니고 읊고 외운다면, 문득 남에게 훌륭한 도움의 복전(福田)을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왜냐하면 부처님이시여, 이 선남자나 선여인은 큰 서원을 세워서 자기 자신만을 위하지 않고 공제(空際)에서 중생을 제도하여 모두 남음이 없는 열반의 경계에 이르러서 열반에 들게 하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보살마하살로서 이 4성제를 얻은 이는 중생은 다 있는 바가 없다고 관하니, 공관(空觀)의 보살은 스스로 몸이 있지 않고 또한 중생도 없는지라 큰 서원의 마음을 잡아서 공(空)으로 공(空)을 들어 수없는 겁에서 공(功)을 쌓고 덕을 쌓나이다.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심을 관하여 보니, 온갖 법에 형상과 모양이 없음을 분별하여서 세상의 이익인 이롭고 쇠하는 것, 헐고 기리는 것, 칭찬하고 꾸짖는 것, 괴롭고 즐기는 것에 집착하지 않으시고, 또한 중생ㆍ나[我]ㆍ남[人]ㆍ수명ㆍ오는 세상ㆍ지나간 세상ㆍ지금 세상의 심식(心識)을 알아서 낱낱이 분별하여 능히 성취케 하나이다.”이때 무외(無畏)보살이 다시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어떠하나이까, 부처님이시여. 중생의 무리는 일컬어 기재할 수 없을 정도로 많으니, 이것은 아라한이나 벽지불이 미칠 바가 아닙니다. 지나간 세상 항하 모래 무앙수의 부처님이 자못 뜻을 발하여 보살도를 구하면서 말하기를 ‘나는 아주 오랜 후에 마땅히 바르고 참다운 도를 이룰 것이니, 나는 능히 허공제(虛空際)를 다해서 허공제의 중생의 근본을 알리라. 이미 허공의 중생을 분별할 수 있었다면, 다시 식의 유취(有趣)와 무취(無趣)를 능히 분별할 수 있다’고 해서, 이와 같은 중생을 모조리 하루 안에 능히 도를 이루게 하는 일, 이것이 있을 수 있나이까 또는 없나이까?”그때 부처님께서 무외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오는 세상ㆍ지나간 세상ㆍ지금 세상의 식은 그대의 경계로서는 분별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지금 그대가 한 질문은 모두 부처님의 위신이니라. 왜냐하면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라야 비로소 낱낱이 깊은 법을 선포해 창달할 수 있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족성자여, 지나간 세상의 식은 그대가 물은 바와 같다. 식이 유전(流轉)하는 천상과 인간의 네 갈래에서 8부에 이르기까지를 다 알아서 식이 거치고 나아간 바를 능히 다 분별하느니라.”무외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큰 서원의 마음을 발하여서 모두 오는 세상ㆍ지나간 세상ㆍ지금 세상을 능히 빼내어 건져주시나이다. 어떻게 하여 하루 사이에 모두 부처를 이루게 하시나이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외보살이여, 질문이 참으로 훌륭하구나. 이제 그대를 위하여 낱낱이 분별하여 나아갈 바와 묻는 바를 알게 하리라. 과거의 식(識)은 과거 속에서 과거의 식으로 하여금 부처를 이루게 하지 못하게 하며, 현재 속에서 현재의 식으로 하여금 부처를 이루게 하지 못하게 하며, 미래 속에서 미래의 식으로 하여금 성불에 이르게 하지 못하게 하느니라. 왜냐하면 과거의 식은 본래 과거의 식이 아니며, 미래의 식은 미래의 식이 아니며, 현재의 식은 현재의 식이 아니기 때문이니라.무외보살이여, 반드시 알아 두어라. 과거의 성불에 세 가지 일의 행이 있으니, 어떤 것이 셋이 되는가. 초심(初心)이 있고, 생심(生心)이 있고, 중생심(衆生心)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초심(初心)인가? 무외보살이여, 반드시 알아 두어라. 본래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없이, 곧 중생들을 교화하여 한 날 한 시에 모두 불도를 이루도록 하니, 이것을 소위 ‘초심’이라고 말하느니라. 어떤 것이 생심(生心)인가? 이른바 ‘생심’이란 이미 티끌과 때[塵垢]를 받았으면 바야흐로 마땅히 마음을 멸하여 때를 없애야 하는 것을 말하느니라.어떤 것이 중생심(衆生心)인가? 만일 어떤 중생이 겁에서부터 겁에 이르고, 나아가 백천 겁에 이르기까지 다시 무수한 생사(生死) 번뇌를 다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저 무수한 번뇌를 멸하고 아울러 무수한 중생을 제도하여야 하느니라. 이것을 무외보살아, 과거 속에서 세 가지 일을 성취하였다고 말하느니라.
무외여, 마땅히 알아 두어라.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미래에서도 또한 세 가지 법을 꼭 갖추어야 하나니, 어떤 것이 셋이 되는가.가령 미래의 마음은 현재에서는 아직 받지 못하였으니, 이것은 또한 나아가야 하느니라. 다시 무외여, 미래의 마음은 이미 하루가 지나가면 문득 티끌과 때가 있나니,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하루의 티끌과 때를 멸해 없애야 하느니라. 족성자여, 마땅히 알아 두어라. 미래의 이전(移轉)이 한 겁에서부터 백겁에 이르고 나아가 무수 아승기겁에 이를지라도,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이 신식(身識)과 번뇌를 아시나니, 이것을 미래 속에서 이 세 가지 법을 꼭 갖추어야 한다고 말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현재 속에서 다시 세 가지 법을 반드시 갖추시어야 하나니, 어떤 것이 셋이 되는가.
초식(初識)은 현재 아직 번뇌에 물들지 않았으니, 곧 그 식으로 하여금 하루에 멸도케 하며, 하나든 둘이든 문득 번뇌를 낳거든 능히 하나와 둘의 번뇌를 멸해 없애야 하나니, 그리하면 저가 비로소 성불할 수 있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현재에서 한 몸으로부터 백천 몸에 이르기까지 온갖 번뇌를 낳으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현재 속에서 세 가지 법을 갖추었다고 말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무외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과거에서 초심(初心)으로 하루에 제도한 이는 바로 과거의 보시(普施)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시다. 과거에서 생심(生心)으로 제도를 받은 이는 바로 무등(無等)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시다. 과거에서 중생심으로 제도를 받은 이는 바로 원본(原本)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시다.미래에서 처음 마음으로 제도를 받을 이는 바로 공색(空色)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시다. 미래에서 한, 두 몸으로 제도를 받을 이는 바로 공문(空門)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시다. 미래에서 무수한 몸으로 제도를 받을 이는 바로 정의(定意)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시다.
현재에서 처음 마음으로 제도를 받은 이는 바로 무신(無身)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시다. 현재에서 한, 두 몸으로 제도를 받은 이는 바로 선성수(善星宿)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시다. 현재에서 무수한 몸으로 제도를 받는 이는 바로 월광(月光)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시다.어떠한가, 족성자여. 그대는 아홉 가지 품 가운데서 어느 곳을 지향하는가. 과거의 초심을 좇고자 하느냐, 과거의 생심이냐, 과거의 중생심이냐. 미래의 처음 마음을 좇고자 하느냐. 미래의 한, 두 마음이냐. 미래의 수없는 겁의 마음이냐. 현재의 처음 마음을 좇고자 하느냐. 현재의 한, 두 마음이냐. 현재의 수없는 마음이냐?”무외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가령 제가 처음에 마음을 발하여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구할 때는 능히 어떤 도를 구할지 스스로 알지 못하였는데, 이제 여래께서 아홉 가지 품의 행을 말씀하심을 듣게 되니, 이제 비로소 큰 서원의 큰마음을 발하여서 과거의 초심(初心)으로 티끌과 때를 아직 받지 않은 이를 제도하고자 하나이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치어라, 그만 그치어라. 족성자여, 그대는 지금 이미 초심에 떨어졌구나. 어떻게 초심에서 위없는 등정각을 이루고자 하는가. 이것은 이룰 수 없는 것이니라.”
무위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제 과거의 초심에 이미 떨어졌사오니, 원하옵건대 과거의 생심(生心)으로 중생을 제도하여 보편적이고 동등한[普同等] 지혜로 위없는 등정각을 이룰 것을 구하고자 하나이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이제 이미 이 경계를 넘어서 아래 경지로 떨어졌다. 중생을 제도하여 위없는 등정각을 이룰 것을 능히 판별하지 못하였느니라.”
그때에 무외보살이 다시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어떠합니까, 부처님이시여. 과거의 번뇌의 중생에게 큰 서원의 마음을 발하여 위없는 등정각을 이룰 수 있사옵니까, 안되옵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안되느니라. 왜냐하면 과거의 수없는 것은 이미 멸하였고 이미 다했으며, 지금 나타난 몸은 저 번뇌를 다하지 못하느니라. 이런 까닭으로 위없는 등정각은 이룰 수 없느니라.”
무외보살이 다시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제가 지금 과거의 세 부분[三分]으로부터 영영 얻은 바가 없나이다. 위에 있었고 아래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위없는 지진 등정각을 얻지 못하나이다.”“왜냐하면 그대는 본래 큰 서원의 마음은 발하였지마는 저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룰 수 없느니라.”
무외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떠하나이까. 부처님이시여, 제가 이제 미래의 한, 두 몸을 버려서 미래의 번뇌를 버리고자 하나이다. 다시 현재의 처음 마음으로부터 위없는 등정각을 이룰 수 있겠나이까, 못 얻겠나이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안되느니라. 그대가 본래 뜻을 발한 마음은 매여 있는 데가 있나니,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그 변화에 따라 국토를 관하여 보아서 매여 있음에 알맞게 응할 뿐이지 그대의 본원(本願)에는 있지 않느니라.”
무외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미래 속에서 한마음, 두 마음을 버리고, 다시 미래 속에서 번뇌의 중생을 버리고, 다시 현재에서 현재의 중생을 버리고, 자못 현재에서 한마음, 두 마음의 중생으로 하여금 위없는 등정각을 이루게 할 수 있겠나이까, 없겠나이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없느니라. 왜냐하면, 그대의 본래 뜻을 발한 마음이 매여 있고, 그대의 본원(本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니라.”
무외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또한 한마음, 두 마음을 버리고, 다시 미래의 중생 번뇌를 버리고, 다시 현재의 처음 마음을 버리고, 다시 현재의 한마음 두 마음을 버리고서 이제 현재의 번뇌 중생에게서 서원을 발하고자 하는데 될 수 있겠나이까. 없겠나이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안 되느니라. 왜냐하면 이 경계는 이미 지나갔느니라.”
그때 무외보살이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오늘날 부처님께서는 아홉 가지 품 가운데 어느 경지[地]에 계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과거의 셋과 미래의 셋과 현재의 셋을 다 버렸느니라.”“다시 미래의 처음 마음에서 등정각을 이루어 미래의 처음 마음의 중생으로 하여금 등정각을 이루게 할 수 있나이까, 없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없느니라. 왜냐하면 그대의 몸이 미래가 아니기 때문이니, 어떻게 등정각을 이루어서 미래의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가. 이 일은 그렇지 못하느니라.”무외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이제 미래의 처음 마음에 떨어졌사오나, 다시 큰 서원을 발하여서 미래의 한, 두 마음에서 등정각을 이루고자 하나이다. 안되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대의 원하는 바를 열매 맺었느니라. 왜냐하면 그대는 본래 무수 아승기겁에 항상 큰 서원과 광대한 마음을 발하였으므로 즉각 이 몸으로 위쪽의 청정세계에 반드시 올라가서 그 가운데 부처를 이룰 것이니라. 이제 그대의 명호는 무외(無畏)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니라.”무외보살이 수기를 받고 나자 기뻐 날뛰면서 즉시 자기 얼굴로 청정세계를 보니 교화된 중생이 자기와 다름이 없었다. 왜냐하면 모두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그들을 모조리 보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때에 무외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이제 큰 서원의 마음을 발하여 무수한 항하 모래 수효의 여러 부처님께 공양하겠나이다. 그리고 원하옵건대, 미래의 번뇌 중생을 제도하고 그 가운데서 등정각을 이루고자 하옵는데, 얻을 수 없겠나이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그대는 도를 구한 이래로 마음이 중제(中際)가 아니라 둘을 없애서 번뇌 중생 가운데 있으므로 여래ㆍ지진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를 이루어서 불세존이라고 하니라.”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