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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630 보살영락경(菩薩瓔珞經) 1권

by Kay/케이 2024.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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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보살영락경(菩薩瓔珞經) 1

 

보살영락경(菩薩瓔珞經) 제1권

축불념(竺佛念) 한역
장용서 번역

1. 보칭품(普稱品)
이와 같이 들었다.어느 때에 부처님께서 마가다의 보승강당(普勝講堂)에서 큰 비구 대중과 함께 계셨는데, 비구 1만과 보살 1만 5천 그리고 온갖 큰 성현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지 않음이 없었다.
그들은 많은 덕을 갖추어서 잃어버리지 않고 총지(摠持)하며, 그 뜻이 크고 넓어서 감싸지 않은 바가 없으며, 변재가 통달하여 의심의 그물을 없애버렸으며, 신통을 통해 깊은 뜻을 풀어 설명했고, 권도(權度)의 방편으로 적절히 교화하여 시의(時宜)에 맞게 하였고, 자비함[慈]이 열등한 이에게까지 미쳐서 피안(彼岸)에 이르게 되었다.또 여래(如來)의 삼매정수(三昧正受)를 널리 창달하며, 여러 부처님이 찬탄하시고 천상과 인간이 공경하며, 원하는 바가 자재해서 걸림이 없으며, 탁월하고 뛰어난 경지(境地)에 널리 노닐며, 신족(神足)의 변화로 온갖 모습[衆相]을 갖추고, 뭇 마군을 항복시켜서 법의 슬기를 깨우치게 하였으며, 여러 가지 법을 분별하여 본제(本際)를 깊이 알고, 중생의 옛날 근원된 곳을 살피며, 도품의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펼쳐서 창달하며,세상의 여덟 가지 일에 물들어 집착함이 없으며, 대자비를 더욱 가해서 중생을 구제하며, 몸과 입과 뜻을 단속하여 삿된 소견이 없으며, 뜻을 정진에 두어 숭상하고 마음이 금강 같으며, 비록 부지런히 노력하면서 무수한 겁을 지났지만 마음은 언제나 용맹하여 싫증내거나 게으름이 없으며, 여러 대중들과 있으면서 사자의 위엄을 나타내며, 다른 학파를 항복시켜 다시 빠지거나 떨어지지 않게 하며, 거룩한 별호(別號)로써 인가(印可)를 하며, 여러 부처님이 유행(遊行)한 곳은 모조리 밟고 다니니, 이 모두가 정각(正覺)이 닦아 행하는 바이다.장엄하고 청정한 도량이 크고 높아 한량이 없으며, 다니거나 앉거나 간에 밑바닥 없는 지혜에 들어가며, 마음이 늘 기꺼워서 겁내거나 나약함이 없으며, 법을 강연하는 바도 평등하여 둘이 없으며, 이룬 이나 못 이룬 이나 똑같이 평등하게 보며, 공로의 칭송이나 명예의 훈장에 늘 초연(超然)하며, 깊은 법요(法要)를 닦아서 도(道)의 가르침으로 훈도하며, 대중 가운데 있으면 위엄스런 모습의 광휘가 빛나고, 신령한 지혜가 묘하게 통달해서 뭐라고 형용하거나 이름할 수 없느니라.손가락 튀길 사이에 한량없는 여러 부처님 국토에 노닐면서 시방(十方)의 정각(正覺)들에게 공양하나니, 그 이름은 환요(歡曜)보살ㆍ산뢰(山雷)보살ㆍ혜밀(慧密)보살ㆍ보명(普明)보살ㆍ제피(濟彼)보살ㆍ총지(摠持)보살ㆍ금강(金剛)보살ㆍ석마왕(石磨王)보살ㆍ뇌진(雷震)보살ㆍ우제(雨渧)보살ㆍ선산(善算)보살ㆍ지적(智積)보살ㆍ법상(法上)보살ㆍ식의(息意)보살ㆍ제환(除幻)보살ㆍ선칭(善稱)보살ㆍ허공장(虛空藏)보살ㆍ위력(威力)보살ㆍ염광(焰光)보살ㆍ식기(識機)보살ㆍ진혜(盡慧)보살ㆍ무변제(無邊際)보살ㆍ견고지(堅固志)보살ㆍ월광(月光)보살ㆍ법치(法熾)보살ㆍ무견(無見)보살ㆍ무등(無等)보살ㆍ일성명(日盛明)보살 등이니라. 이처럼 시방 부처님 세계의 뭇 보살들이 구름처럼 두루 모여서 사바세계에 나아가려 함은 여래께서 설법하시는 영락대지근문(瓔珞大智根門)으로 보살장(菩薩藏)에 취향(趣向)하여 불가사의한 방편의 나타냄이 한량없음을 듣고자 함이니라.그리하여 현겁(賢劫) 가운데의 미륵(彌勒), 유수(濡首), 16대성(大聖), 발타화(颰陀和) 등, 8대신사(大神士), 제석사천왕(帝釋四天王)과 도리천(忉利天) 사람, 구염천(具焰天:야마천), 도솔천[兜術天], 불교락천(不橋樂天), 화자재천(化自在天), 마자도사(魔子導師), 범천왕(梵天王), 범정천왕(梵淨天王), 선범천왕(善梵天王), 범구족천왕(梵具足天王), 대신묘천(大神妙天), 정거천(淨居天), 이구광천(離垢光天) 등 위로는 일선주천(一善住天)에 이르고,연거천(燕居天)의 선신(善神) 및 여러 나무 신들, 산신(山神), 금시조신(金翅鳥神) 및 나머지 온갖 여러 대존신(大尊神)과 각각의 존귀하고 존귀한 이들, 그리고 여러 하늘ㆍ용ㆍ귀신ㆍ아수라[阿須倫]ㆍ가루라[迦留羅]ㆍ긴나라[眞陀羅]ㆍ마후라가[摩休勒] 등 사람인 듯 사람 아닌 것들이 각각 권속들과 함께 부처님 처소에 와서 머리 숙여 절하고 서 있었으며, 비구ㆍ비구니와 청신사(淸信士)ㆍ청신녀(淸信女)가 각각 스스로 공경함을 내어 앞에서 부처님께 절하고 각각 한쪽에 앉았다.그때에 세존께서는 백천(百千)쯤 되는 대중에게 둘러싸이셨는데, 부처님께서는 청정하게 장엄된 높고 넓은 사자좌에 오르셔서 여러 대중들에게 법 영락(法瓔珞)을 설하셨다. 부처님께서 대중 가운데 수미산(須彌山)처럼 계시면서 환하게 빛나심이 마치 황금 노적가리 같으시며, 위신(威神)의 광명이 세간을 초월하여 짝할 이 없으며, 도덕과 위의가 우뚝 높아서 한량이 없으며, 큰 광명을 놓아서 비추지 않는 데가 없었다.다시 신통변화로써 시방을 감응해 진동시키자, 때에 맞춰 공중에서 백천의 보배 교락[寶珓珞] 일산이 갖가지 보배가 섞인 채 그 위를 널리 덮었고, 값을 따질 수없는 보배구슬과 허공을 비추는 보배구슬이 공중에 매달려 그 빛이 구슬로부터 나오니 그 빛깔과 모양이 비할 바가 없었다. 그 공중에서 미미한 구름이 일어나서 갖가지 향기로운 꽃을 비처럼 내리니, 당시 공중에서 내린 꽃이 무릎까지 쌓였다. 그리고 다시 큰 소리를 내어서 세계에 두루 채우셨다.그때 보살이 있었으니 이름을 보조(普照)라고 하였다. 부처님의 거룩하신 뜻을 받들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앞에 꿇어앉아 합장한 채 부처님께 여쭈었다.
“지금의 신령스런 감응은 일찍이 보고 들은 적이 없나이다. 이것은 무슨 상서로운 감응이기에 이 정도까지 이른 것입니까? 오직 원하옵건대, 부처님께서는 그 뜻을 펼쳐 연설하시어, 여기 모인 사람들로 하여금 의심이 완전히 없어지게 하소서.”부처님께서 보조에게 말씀하셨다.
“네 자리로 돌아가 있어라. 내가 마땅히 너를 위하여 법 영락의 뜻[法瓔珞義]을 낱낱이 밝혀 주리라. 그리하여 근문(根門:感官)을 새로 고쳐 세우고 망상을 초월해서 일체지(一切智)의 온갖 통달한 슬기의 경지에 다가가게 하리라.”그때 세존께서는 다시 신족(神足)으로 여러 보살이 들어간 선정의 뜻을 관찰하였다. 그 법의 이름은 도수(道樹) 영락이니, 여러 대사의 장엄 도량을 깨끗이 하고, 바른 법을 깨달아서 두려운 바가 없고, 여러 거룩한 슬기에 노닐어서 자재함을 얻고, 들어간 도(道)의 문(門)에서 변재를 잃지 않고, 다시 신통으로 그 자리를 영락으로 장엄하고, 물러나지 않는[不退轉] 경지를 분별하여 펼치고, 하나의 법계(法界)가 공(空)하여 있는 바가 없음을 이해하고, 중생의 날카롭고 무딘 성품을 관찰하고,그 마음을 견고하게 하여 온갖 법을 결정하고, 번뇌를 제거하여 법의 요체(要諦)를 수순하고, 말에 신용이 있어서 물들고 집착함이 없으며, 응대함에 의심이 없고 오고 감에 영접과 전송을 하며, 걸림 없는 지혜[無礙智]를 설해서 속박과 집착을 영원히 여의며, 공을 쌓고 덕을 모으면서 희망을 품지 않으며, 설해진 모든 법이 진여(眞如)로 진리[諦]를 살피며, 유위(有爲)를 계교하지 않아도 반드시 판단력을 이루며, 상념(想)이 곧 상념 없음[無想]으로 상념의 행위를 일으키고, 깊고 미묘한 12연기(緣起)를 완전히 깨닫고, 근원을 궁구(窮究)하면서도 한정할 수 없다.이때 보조보살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나아가 여쭈었다.
“원하옵건대 여쭙고자 하는 것이 있사옵니다. 들어주시길 허락하시면 스스로 모두 여쭙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다, 묻고 싶은 대로 물으라. 만일 의심이 있거든 스스로 펼쳐 내거라. 여래는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자세히 말하리라.”이때 보조는 허락을 얻자 크게 기뻐하다가 이윽고 여쭈었다.
“어떤 것을 보살의 법 영락의 몸이라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그 망령된 소견을 제거함이라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세간을 초월해 나가는 법이라고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세계를 유행하여 이름이라고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여래를 가까이함이라고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어머니 태(胎)에 처하지 않는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나면서 문득 신식(神識)의 착란이 없다고 하며,어떤 것을 보살이 돈독한 믿음을 품는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스스로 자기를 위하지 않는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뭇 인연의 고통을 구원한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의 법 보시와 재물 보시[財施]라 이르며, 어떤 것을 보살이 공의 뜻을 분별함이라고 이르며, 어떤 것을 보살이 그 번뇌[陰蓋]를 없앤다고 이르며, 어떤 것을 보살이 법의 계(戒)를 널리 빛낸다고 이르며, 어떤 것을 보살이 법을 듣되 싫증을 냄이 없다고 이르며,어떤 것을 보살이 지관(止觀)에서 유희한다고 이르며, 어떤 것을 보살이 금계(禁戒)를 받들어 닦는다고 이르며, 어떤 것을 보살이 세상의 법을 완전히 여읜다고 이르며, 어떤 것을 보살이 가업(家業)에 처하지 않는다고 이르며, 어떤 것을 보살이 집착함이 없다고 이르며, 어떤 것을 보살이 한번 앉고 한번 일어섬이라고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입은 비밀스럽고 마음은 연민한다고 이르나이까? 이 질문한 뜻의 요지는 이와 같나이다.”부처님께서 보조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바로 여래에게 이와 같은 뜻을 물었으니, 너는 이제 귀 기울여 듣고 잘 사유해야 할 것이며, 마음에 품고서 범부의 행실처럼 버리지 않아야 하느니라.”
보조보살이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예,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대성인(大聖人)의 법을 기꺼이 듣길 원하옵나이다.”이때 부처님께서 보조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의 도를 행하매 마땅히 열 가지 덕을 생각하여서 그 몸[體]을 영락(瓔珞)하여야 하느니라.
몸ㆍ입ㆍ뜻의 법에 남의 단점을 말하지 말고, 같이 배우는 이들을 경시하거나 업신여기지 말며, 마음이 허공처럼 평등해서 또한 늘거나 줄어듦이 없으며, 여러 악취(惡趣)를 여의어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저 중생들을 보기를 자기와 다름이 없이 하며,뜻은 몸을 말미암은 앎이 다함없음을 얻으며, 4제(諦)로써 중생을 가르치며, 마음을 고요하게 지녀서 깨달음을 이루게 하며, 다시 뭇 지혜로써 묘문(妙門)을 영락하며, 3승1)을 가르치고 교화하여 갈 바에 이르게 하고, 대승을 부지런히 배워서 온갖 법을 달관하게 하며, 여래의 행을 닦은 공훈의 덕으로 점진적으로 가르치고 인도하되 너무 사납게 하지 말며, 자기의 허물을 스스로 살피고 남의 단점을 인식하지 말며, 뭇 어려움을 뛰어넘어서 늘 법을 사랑하고 즐길지니라.고요한 선정으로 흐트러짐이 없고, 갖가지 의심과 망령된 소견의 일을 덜어 없애며, 망설이는 자가 있거든 제때에 깨침을 얻게 하며, 도의 마음이 세운 덕의 근본을 버리지 말며, 또 사람을 교화하되 계(戒)를 허물게 하지 말며, 언제든지 크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남을 위하여 경전을 설하며, 유행(遊行)는 세계에서 여러 부처님을 여의지 말며, 금계(禁戒)를 선언해 보여서 일체지(一切智)에 이르러야 하느니라.다시 찬란히 비추는 영락으로 여러 부처님의 보배롭고 청정한 도량을 장엄하고, 광명의 영락이 두루하지 않음이 없이 삼천대천세계를 모조리 비추어서 저 해와 달을 가리어 광명이 없게 하며, 신묘한 제석ㆍ범왕ㆍ사천왕이 갖춘 위엄의 빛도 모조리 다시 나타나지 못하게 하지만, 여래의 지극히 참되고 헤아리기 어려운 광명은 홀로 밝고 홀로 나타나서 견줄 이가 없느니라. 보조야, 이것을 보살의 도를 닦아서 열 가지 덕의 영락으로 스스로 감싼[纏裏] 것이라고 이르느니라.항상 여러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여래께 공양하고, 성현의 가르침을 찬탄하면서 중생에게 권하고 교화하여 도의 문에 들어가게 하며, 다시 중생에게 고하여 큰 서원을 발하게 하며, 그 취향(趣向)한 곳에서 부처님의 명호를 듣고 장차 싹을 길러 저 나라에 태어나길 원하며, 뜻이 크고 넓어서 겁이나 나약함을 품지 않고, 성현의 지혜에 깊이 들어가서 아래 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며,미묘함을 항상 즐겨서 말하는 바가 부드럽고 온화하여 자만함이 없으며, 욕심 없이 살기를 좋아해서 온갖 탐욕과 질투를 없애버리며,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이를 보면 그를 대신하여 기뻐하며, 공덕의 힘으로써 보리수[道樹]를 영락(瓔珞)하나니, 과보의 힘과 마음의 힘과 젖 먹이는 힘乳哺力은 여러 성현이 거처하는 해탈의 힘이니라.언제나 이 법으로 중생을 양육하며, 자비로 기쁘게 수호하여 중생을 버리지 아니하며, 여러 연(緣)을 수호하여 그 근본을 빼어 버리며, 3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없어서 선악의 보응이 도무지 생기는 바가 없다고 관하여 요달하며, 법마다 스스로 멸하고 법마다 스스로 생해서 법의 멸함도 봄이 없고 법의 생겨남도 봄이 없으며, 마음에 상념이 없으니 나도 남도 수명도 없으며, 또한 가고 옴도 없고 돌아갈 곳도 없느니라.다시 공한 법으로 여러 근(根)을 영락해야 하나니, 나의 옛적 성불은 모두 청정하고 공무(空無)한 상념으로부터 저절로 정각을 불러들였고, 선의 근본을 닦아 행해서 온갖 연을 짓지 않았으며, 선한 법을 일으켜서 방일한 행이 없었고, 세속 일을 멀리 여의어 세속 법에 처하지 않았으며, 연설한 바는 가히 시방에 유포하였으며, 여러 부처님 세존을 친히 모시고 배알(拜謁)했으며, 보시가 청정해서 탐심을 버리고 욕심이 없었으며, 마음과 뜻이 곱고 깨끗하여 때나 더러움이 없었으며, 슬기가 끝없고 모든 것을 훤히 꿰뚫어 보았으며, 세 가지 걸림과 6진(塵)이 영원히 사라져 다하였으니, 이것을 보살법의 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보살은 다시 큰 서원을 내는 마음을 마땅히 발하여 지(智)바라밀을 장엄하고 영락해서 그 근기(根機)에 따라 법을 수여해야 하느니라. 들은 바의 지혜대로 문득 건립할 수 있어서 응당 그와 같이 행한다면 퇴전(退轉)하지 않을 것이며, 집념의 뜻이 견고하고 선한 벗을 따르면 행하는 언교(言敎)가 끝내 허망하지 않으리라. 생각[念]은 늘 공경히 하여 경업(經業)을 어기지 말며, 마음이 익힌 깊은 지혜를 받아들여서 잃지 말며, 항상 일심(一心)에 전념해서 생각을 흐트러뜨리지 말며, 병의 깊고 얕음을 밝게 깨달은 뒤에 약을 투여하며, 뜻은 인욕을 즐기고 다닐 때는 제(諦)를 살피며,보시하는 재물에도 또한 시비(是非)를 가림이 없고, 그 뜻이 맑고 밀밀해서 번거롭고 심란함이 없으며, 근본을 배워 익혀서 마음이 흘러 달아나지 않으며, 사람이 법을 듣고자 하면 평소대로 가르쳐서 요긴한 도를 알게 하며, 곤경에 빠져 스스로 구제하지 못하는 이를 보면 능히 은혜롭게 보시하되 자기의 진기한 보배를 내놓으며, 게다가 선의 근본인 온갖 묘함의 행으로 계를 지니라고 남에게 권하며, 배운 지혜로 보살의 도를 이루며, 가령 배우는 사람이 범지(梵志)에 처해 있더라도 다시 능히 건립하며, 생기는 바를 깨달아 요달해서 인욕을 여의지 않으며,가업을 버리고서 정진을 닦으며, 무상한 인연의 근본을 관해 요달하며, 온갖 미움과 애착에 대해 두 가지 상념을 일으키지 않으며, 하는 바의 평등으로 중생으로 하여금 좇아 일어난 바 없는 법인[無所從生法忍]을 얻게 하며, 늘 그 무극(無極)의 대애(大哀)에 능히 의지하며, 점진적인 가르침으로 큰 서원의 법을 권하여 인도하며, 일체에게 베풀어서 배워서 알게 하며, 뜻의 성품[志性]이 고요하여 ‘나’가 없음을 알며,한마음의 선사(禪思)로 그 지혜를 일으켜서 끊어지지 않게 하며, 그 시설하는 것에서 4은(恩)을 여의지 않으며, 위난과 재액을 구제하여 무위(無爲)에 이르게 하며, 몸과 입의 허물을 수호해서 3사(事)2)을 범하지 않으며, 지극히 참되고 위없는 법을 건립하며, 뜻이 끊어지고 뜻이 그친 진여 법성을 닦아서 잃지 말아야 하느니라. 보조야, 이 모두가 보살의 영락이 건립한 바라고 하느니라.다시 보조야, 보살은 다시 마땅히 바라밀을 사유하고 계교하고 헤아림에 한계가 없어야 하느니라. 즉 보시를 행하고, 계행을 닦고, 온화한 얼굴로 인욕(忍辱)하고, 정진하고, 적정(寂靜)하고, 뜻의 그침[意止]을 잃지 말아야 한다. 다시 거룩하고 밝은 일심의 정해진 뜻으로 감로(甘露)의 길인 4제(諦)를 깊이 살펴서 무위에 곧장 이르러 다시는 허망한 거짓이 없어야 하니, 이것을 지혜로 영락한 것이라고 말하느니라.언제나 한뜻으로 그 마음을 순수하고 맑게 해야 하며, 온갖 가지고 있는 것을 보시하면서 아끼지 말아야 하며, 공훈(功勳)을 개화해서 공탈문(空脫門)을 이해해야 하며, 만일 행업에 있으면 금계를 가르쳐 인도해야 하며, 중생을 널리 접해 수순(隨順)하면서 제도해야 하며, 그리고 특별히 훌륭한 인화(仁和)의 덕이 있어야 하며, 약간의 품류(品類)를 시의 적절하게 깨우쳐 요달해야 하며, 그 자비심을 선포하되 괴롭고 즐거움에 집착하지 말아야 하며, 온갖 것을 불쌍히 여겨서 큰 어려움을 피하지 말아야 하며,저 중생을 일깨워서 응당 정법으로 가르쳐야 하며, 베푸는 마음이 세상에 가득해서 성취하도록 수호해야 하며, 영락의 광명으로 비추지 않음이 없어야 하며, 온갖 것을 널리 불쌍히 여겨서 피안으로 건너가도록 해야 하며, 어떤 사람이 은폐된 곳에 있으면 그 어두움을 없애서 영원히 여지가 없게 해야 하며, 두려움 없는 힘으로 일체의 방일함을 연민하여 길러야 하며, 그 늙고 병드는 것을 없애서 방일한 행이 없게 해야 하며,인도하는 스승[導師]이 이르렀던 가르침에 따르지 않음이 없어야 하며, 바다처럼 담고서 남에게 배움을 베풀어야 하며, 번뇌를 개화(開化)하여 망상이 없게 해야 하며, 거처하는 곳은 꽃처럼 애착함이 없어야 하며, 온갖 법의 적멸과 청정을 요달해야 하며, 그 연설한 가르침으로 인연을 분별해야 하며, 짓고 있는 덕의 근본을 익혀서 이루어야 하며,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고통을 애달프게 여기므로 중생을 가르쳐야 하느니라.허공은 실답지도 않고 또한 참으로 있지도 않으니 세간의 법은 물거품 같고 허깨비 같은 줄 알아야 하느니라. 중생이 깨어나지 않더라도 익혀서 버리지 말며, 비록 집에 있더라도 삶의 고난을 능히 여의며, 도의 눈이 청정하여 또한 연꽃과 같으며, 신령한 덕이 높고 높아서 말로는 헤아릴 수 없으니, 가령 세계의 중생들이 모두 다 찬탄해도 그 근원을 알 수 없느니라.”이때 세존께서 보조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무릇 도행(道行)에 의거했다면 가고 옴이 없음을 알아야 하나니, 만일 가고 옴을 보면 상념의 집착이 있는 것이다. 죄와 복도 또한 일어나고 멸함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니, 이는 모두 자연히 공(空)하여 있는 바가 없는 것이다. 상(相)의 머묾은 본래 주재(主宰)함이 없어서 본말이 없으며, 또한 원하고 구한다 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이와 같은 법을 능히 스스로 밝게 아는 것을 소위 보살이 성도(聖道)에 나아간다고 하느니라.다시 마땅히 3세의 법을 분별해서, 나도 없고 남도 없는 무이(無二)이고 온갖 경계가 비어서 있는 바가 없음을 알아야 하느니라. 만일 옴이 있다고 보면 이는 보응연기(報應緣起)의 법이니, 일어남도 없고 멸함도 없음이 바로 도의 가르침에 응하는 것이니라. 소리[聲]에 음(音)이 있다고 따지지만 음에는 형상이 없으며, 글자를 분별하지만 이 모두가 실다움이 없으니, 일체를 밝게 통달하면 통하지 않음이 없느니라.보살의 영락은 진실하여 허망함이 없으며 또한 걸림도 없으니, 가리고 있는 덮개[陰蓋]를 없애면 다 있는 바가 없느니라. 만일 보시하는 바를 세우면 어디서나 바라는 바이며, 설사 세우지 못한다 해도 이는 응당 보시바라밀이다. 마음에 삼감[謹愼]을 품고서 온갖 옳지 못함을 버리면, 이 마음을 갖는 자가 곧 계율에 응하여 온갖 법을 밝게 깨달아서 자연히 머묾도 없고 본제(本際)도 없다. 부지런히 닦고 사유해서 처소를 건립하고, 정진과 선정[禪思]으로 행동과 말과 마음을 거두어 다스리고, 슬기의 밝음이 스스로 빛나면서 갖가지 더러운 행을 버리면, 이것이 바로 지혜에 감응함이니라.보조야, 다시 알라. 신통이 미치는 바로 그 보응(報應)을 얻고, 그 천안으로 문득 사무치게 보게 됨은 모두 보시의 행과 금하는 계율을 닦아 받들고, 항상 정견(正見)에 순응하여 헐거나 범함이 없고, 법의 영락을 닦아서 천이(天耳)의 청취(聽取)를 이루고, 생각과 행으로 권하고 도와서 도의 뜻을 발했기 때문이니라. 혹은 다시 식념(識念)의 신통을 성취하여 지나간 세상의 일이 모두 다 스스로 그러해서[自然] 중생의 무리가 되었음을 기억하는 까닭에 공덕을 쌓되 매양 저 증득에 스스로 미치지 못함을 책망하며, 신통변화의 다함이 없음을 품고서 온갖 식(識)의 집착을 버리고 사유와 선정이 평등하여 둘이 없으면, 이것이 인연 보응의 과보를 아는 것이니라.슬기의 신통으로 여러 가지 번뇌를 소멸하며, 그 삼매로 인해 거룩한 법을 궁구해 창달하며, 그리하여 불이(不二)에 들어가 온갖 유루(有漏)를 다하며, 도의 뜻을 잃지 않고 남에게 덕을 닦게 하며, 세속의 보시의 덕을 더욱 사모하며, 비록 보시의 은혜가 있어도 그 과보를 바라지 말며, 수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법을 기뻐하고 힘쓰게 하며, 온갖 것을 능히 알아 통달하지 않음이 없게 하며, 보살의 법을 능히 받들어 행하게 하며, 모두가 정진으로 말미암아 게으름을 일으키지 않으며,사랑과 연민으로서 저를 수호하여 일체를 성취하며, 중생이기 때문에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자기 몸과 진기한 보배의 재물을 탐하지 말며, 태어나는 곳에서 도의 뜻을 받들며, 앞 사람의 추구를 의심하거나 논란하지 말며, 슬기를 배우고 보시를 믿어서 망설이지 말며, 행해진 말과 가르침을 다 함께 신용해야 하며, 여래의 지극한 진리는 걸리는 바 없으며, 행하는 바가 적정(寂靜)해서 또한 방일함이 없으며, 굳게 인욕하여 한가로운 생활을 즐길지니라.다시 중생을 교화하면서 스스로 미치지 못함을 질책하며, 선정과 사유의 해탈문을 올바로 받아서 어지럽게 하지 않으며, 항상 신통에 노닐면서 스스로 즐기며, 다시 무극(無極) 광명의 비춤으로 때에 맞게 의당함을 따르고, 온갖 글귀의 뜻과 이치를 분별하며, 온갖 근심을 소멸해서 감추어 숨김이 없으며, 항상 한마음으로 성현의 지혜를 열어 인도하며, 수없는 사람에게 보응의 결과를 보이며, 온갖 덕을 갖추어서 맹렬한 힘에 의해서도 침노당하지 않으며, 3세(世)가 도무지 있는 바 없음[無所有]을 밝게 깨달으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일이 늘거나 줄지 않느니라.그런 뒤에 비로소 지(智)바라밀에 응하고, 능히 보시함으로써 스스로 도의 뜻을 발하고, 중생 모두를 널리 편안케 하고자 하며, 스스로 온갖 번뇌를 흩어버리고서 자기 몸을 근심하지 말며, 만일 다른 사람이 몽둥이로 때리더라도 능히 참으며, 또한 남도 교화하여 인욕을 능히 행하게 하며, 온갖 덕의 근본을 갖추어 더욱더 전심전력하며, 여러 부처님의 가르침을 닦아서 중생들에게 권하며, 출가하여 도를 배워서 잘못 드러난 만물의 청정치 못함을 스스로 관하고,문득 악취(惡趣)를 싫어하여 공훈을 마쳐야 하며, 행한 바 선업으로 그 마음을 기쁘게 하며, 지혜를 깊이 체달하여 한을 품지 말며, 금계를 독실하게 믿어서 스스로 착한 덕을 이루고, 다시 온화한 마음과 부끄러움으로 미혹되지 말며, 항상 신지(神志)를 다루어서 추악한 데에 집착하지 말며, 지옥의 끓는 물과 뜨거운 불의 고통을 생각하며, 하늘에서 받는 복의 지극한 즐거움을 찬탄하며,고요해서 근심이 없고 다시 탐욕이 없으며, 은혜롭게 보시해도 세 가지 상념을 없애며, 마음이 안으로는 의지함이 없고 밖으로는 번뇌를 일으키지 않으며, 도의 법을 닦아 행해서 온갖 욕망을 쉬어버리며, 분별 지혜로 스스로 그 마음을 깨달으며,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으로 해탈문을 건립하며, 뒤바뀜을 없애서 상해(傷害)하는 바가 없나니, 보조야, 이것을 보살의 영락심은 집착하는 바가 없다고 이르니라.그 뜻이 평등하고 공하여서 두루하지 않음이 없고, 망상을 품지 아니하며, 보시로써 갖추어 뜻을 고르게 하고, 남을 위하여 법을 설하되 공의 뜻을 여의지 않으며, 온갖 것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겨서 행하매 빠뜨리거나 잃지 않으며, 그 중생이 받은 법식(法式)을 관하고, 그 뜻의 성품을 알아서 개화하며, 노니는 곳마다 일체를 위하여 인도하며, 성명(聖明)을 준수하고 닦아서 도의 뜻을 나타내며, 지극하고 크나큰 연민의 마음으로 남김없이 제도하며, 또한 훌륭한 권도(權度)와 방편의 힘으로 외도의 다른 학파 속에 들어가서 저들의 법칙에 따라 제사에 순종하다가 그 뜻의 취향을 보아 도탈(度脫)을 시키며,여러 범지로 하여금 복을 일으킴이 한량이 없게 하며, 혹 나쁜 도둑들 속에 있으면 인도하고 이끌어서 그 행을 나타내 보이며, 이를 인연으로 수없는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며, 지나간 옛 세상에서 공덕을 이미 갖추었으므로 모두 기뻐하며 공경하지 않음이 없음을 보며, 감로도법(甘露道法)의 맛을 비처럼 내려서 중생의 성냄과 원한의 맺힘을 없애주어야 하며,만일 다시 앞의 사람이 약간의 번뇌로 침범해 오더라도 싫어하거나 근심하지 말고 적멸의 법을 보여주어서 그 일으킨 바가 참되지도 않고 실답지도 않음을 알게 해야 하느니라. 보조야, 이와 같이 보살이 닦는 심의(心意)의 영락으로 그 속에서 노닐면서 항상 이것을 즐기되, 즐기는 바를 보지 않고 즐기는 바 없음을 즐김이 참다운 법의 성품으로 즐기고 좋아하는 것이니라.중생의 근본이 나아가는 바를 밝게 알아서 구제하고 제도하여 갖가지 번뇌를 없게 하며, 위해(危害)의 근심을 영원히 남기지 않게 하며, 그 마음을 허공처럼 평등하게 다루어서 4대(大)의 일어나고 멸함을 분별하며, 중생을 교화하고자 가르치고 훈도함에 그 설함이 참되고 옳아서 미움이나 애착이 없으며, 온갖 삿된 소견의 마음을 없애버리고 견고한 마음으로 견고함의 깃발을 영락하며,약간의 법품(法品)으로 함께 싸우는 것이 마치 용맹한 큰 군사의 장수가 외적을 항복시켜 법률에 들게 함과 같으며, 만약 익숙한 세속에 들어가서 법의 가르침을 베풀면, 그 베풂이 과보를 받아서 계를 지녀 하늘에 태어나나니, 지은 덕에는 모두 보응이 있다고 제도함으로써 무위(無爲)에 이르게 해야 하느니라.무릇 보살이 되면 스스로 영락에 순종해서 마음이 애초부터 악한 벗의 말을 따른 적이 없어야 하느니라. 그러한 뒤에 대사(大士)의 행을 온전히 하면, 품은 뜻이 맑고 깨끗해 ‘나’라고 하는 집착이 결코 없고, 마음가짐이 산과 같아서 이지러지거나 새는 행(行)이 없고, 지혜가 일체에 두루함이 마치 달이 처음 비추는 것과 같으니, 대중에게서는 능히 미칠 자가 없느니라. 보조야, 이것을 보살의 영락이 일체에 두루 원만하다고 말하느니라.비고 고요함을 깨달아 마쳐서 공(空)하여 있는 바가 없으면, 태어나는 곳에서 항상 광명을 보며, 듣는 바를 문득 알아서 불도의 성취에 이르며, 근문(根門)의 요체를 나누어 펼 것을 항상 생각하며, 스스로 업을 건립해도 침해받음이 없으며, 본성이 자연히 일어나고 멸함을 전부 보며, 세상의 여덟 가지 법[八法]을 지나가면서도 걸리는 바 없으며, 몸ㆍ입ㆍ마음 뜻을 일찍이 속인 적이 없느니라.다시 방편과 슬기로써 중생을 구제하되, 곤궁하고 재액 있는 사람은 넉넉히 만족케 하며, 마음가짐을 땅처럼 해서 세 가지 허물을 범하지 말며, 날로 그 도에 나아가서 방일(放逸)하지 않으며, 물러나지 않는 견고한 마음에 이르며, 법인(法忍)을 일으키지 않고도 앞에 나타나 있으며, 10력(力)과 4무외(無畏)와 7각지(覺支)와 8정도(正道)로 올바로 관해서 나와 남과 수명을 버리며, 유(有)와 무(無)의 법을 분별하고 사유하며, 한량없는 부처님 나라를 감동으로 변화시키고, 이 신통을 말미암아 자재를 얻느니라.보살이 선포한 바는 언사(言辭)의 영락이니, 갖가지 소견을 초월하여 다시 욕망이 없고, 마음은 바른 길을 향하면서 또한 뒤바뀜이 없고, 변재는 걸림이 없어서 막히는 일이 없으며, 두루 돌아가면서 오고 가지만 상념의 집착을 내지 않으며, 일체의 모든 속박과 번뇌[結使]를 끊어 없애며, 교만과 자기 과신을 영원히 남김없이 멸하며, 그 소리와 음향은 마치 사자의 부르짖음 같고 천둥치는 것 같아서 소리를 듣지 못함이 없으며,영원히 구경(究竟)에 서서 멸도에 이르며, 다함없는 영락의 구름을 발하며, 연설한 법은 천둥소리이고 법고(法鼓)이고 번갯불이며, 해탈의 맛을 비처럼 내려서 7각의(覺意)를 선포하며, 법의 청정함을 염(念)해서 삼보를 여의지 않으며, 마음은 밝은 달과 같아서 또한 더러움이 없으며, 통달하여 오고가면서도 바른 업을 없애지 않으며, 온갖 모습의 훌륭한 법을 갖추느니라. 보조야, 이것을 보살의 영락이 무궁무진함이라 말하느니라.상선(上善)ㆍ중선(中善)ㆍ하선(下善)과 중간의 통리(通利)가 품고 와서 비추어도 금계(禁戒)를 잃지 않으니, 과거와 미래의 항하(恒河) 모래 수효와 같은 성현들이 이 보살의 덕을 찬탄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보조야, 이처럼 성현의 도품(道品)과 묘법(妙法)의 곳간은 진귀한 보배의 문으로서 다하질 않느니라.”
2. 식정품(識定品)
그때에 자리 위에 보왕보살(寶王菩薩)이 있었는데, 곧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 앞에 나와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예, 그러하나이다. 부처님이시여, 보살이 익힌 의식(意識)의 영락은 깨우치는 바가 많아서 제도를 입지 않음이 없으니, 바로 지금 시방 항하의 모래알과 같이 많은 여래와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멸도한 이들입니다. 영락의 계품을 어떻게 닦고 배워야 피안에 이르게 해서 중생들로 하여금 그 향훈(香薰)을 널리 듣게 하오리까?”이때에 부처님께서 보왕에게 말씀하셨다.
“잘 듣고 자세히 들어서 잘 사유해 보아라. 내가 지금 그대를 위하여 그 뜻을 부연해 말하리라. 보살이 계품(戒品)의 영락을 익히고 행하면 공덕의 향훈이 저절로 몸을 영락하느니라.”
보왕은 답하여 아뢰었다.
“기꺼이 듣고 따르겠습니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도법(道法)을 받들어 준수할지니, 바로 계율과 선정과 해탈의 슬기를 닦고, 중생들에게 계를 독실하게 믿으라고 권하고, 그 뜻의 성품이 각기 원하는 바를 충족하길 원하며, 밝게 깨달아 마땅함을 따라서 본래의 서원(誓願)을 잃지 말고, 아울러 온갖 어리석은 미혹의 마음을 없애고, 도량을 청정히 장엄해서 온갖 품의(品宜)를 갖추고, 거칠고 추악한 번뇌로 그 마음을 물들이지 말고, 뜻은 늘 일생보처(一生補處)에 원하며, 바른 법의 심원한 곳간을 총지(摠持)하고, 뜻은 늘 백천 삼매에서 노닐어야 하느니라.감동하여 변화함을 깨달음으로 삼지 말아야 하니, 일체 만물은 모두 무상(無常)하여 귀한 보배도 믿고 의지할 것이 못되며 권도의 방편을 행하되 머무는 바가 없어야 하며, 중생 마음의 미혹은 정도(正道)를 알지 못하고 마음은 ‘나’에 집착해서 무상함을 알지 못하니, 보살은 큰 서원을 일으켜 이러한 중생들을 위하여 분별하여 설하고, 일체가 비고 허망해서 참이 아님을 밝게 깨닫게 하며, 비록 대도를 숭배하지만 2승(乘)을 버리지 않고, 노니는 세계[刹]가 경축을 받지 않음이 없고, 정진을 더욱 가해서 도의 업을 갑절이나 행하고, 여러 경법(經法)에서 그 망령된 생각을 버리고,보살의 법요(法要)는 10지(地)를 여의지 않고, 윗자리에 다음하여 그 순서를 넘지 말고, 지혜로 가하여 온갖 번뇌를 녹여 버리고, 도에 미치지 못한 이는 도의 문을 스스로 이루고, 항상 생각하고 질책하면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보시하는 이는 누구이며, 받는 이는 어떤 사람인가’ 하고, 재물과 보배를 모두 주인이 없는 것처럼 관(觀)하며,설사 헐고 욕먹는 일이 있더라도 응당 뜻을 자제하며, 뒤에 만약 과보를 받으면 단정하고 남달리 뛰어날 것이며, 노니는 곳에서 기뻐하지 않음이 없음을 보며, 만일 가난하고 헐벗은 이를 보면 몸소 스스로 바다에 들어가서 여의주를 가져오며, 바른 법으로 말하여 반복을 알게 하고, 감로의 법으로 온갖 어려움을 녹여 없애고 생각이 치달리지 말아야 하느니라.보왕아, 따라서 보살의 도과(道果)를 영락함은 뜻이 자재해지는 것이고, 다시 용맹한 큰 힘의 가르침으로 건립하고 가르치면 수순(隨順)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다니든 앉든 10념(念)을 여의지 말아야 하고, 마음이 3존(尊)에게 있어서 일찍이 잊은 적이 없고, 지옥 고통의 고달픔을 요달해 알고, 지극한 마음의 적정(寂靜)으로 번뇌의 때를 없애고, 온갖 악한 일을 범하지 않아서 능히 윤회하지 않으며,응당 올바른 이치로 금하는 법을 받들어 닦고, 덕의 광명을 널리 비추어서 다 윤택을 입게 하고, 스스로 가진 바를 헤아려서 탐내거나 인색하지 않고,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보시하면서 상념의 집착을 일으키지 말지니라. 혹시 방편의 슬기로 왕과 교제하게 되면, 문득 왕으로 하여금 높은 지위를 능히 버리게 하며, 어떤 사람이 와서 머리나 눈이나 귀나 코나 입을 달라고 하면, 곧 기꺼이 보시할 수 있어서 그 사람의 뜻을 거스르지 말아야 하느니라.”그때에 자리에 있던 일체의 제자와 여러 보살들은 이 공훈영락(功勳瓔珞)의 덕을 듣고서 기뻐 날뜀을 스스로 억제치 못하고, 생각이 깊고 그윽해져서 착한 마음이 생겨났다. 그리하여 각자 스스로 공경심을 일으켜서 다 함께 공양을 올렸으며, 온갖 이름난 꽃과 약간의 진기한 보배를 흩으면서 일시에 똑같은 목소리로 그 덕을 찬탄하였다.
“저희들은 숙세의 복으로 좋은 이익을 만난 탓에 남달리 묘한 영락의 가르침을 들었나이다.만일 당장 중생이 이 법의 가르침을 들으면, 보살의 식정(識定)의 요체를 권유하고 발하므로 온갖 복과 공훈이 측량할 수 없을 것이며, 연설한 데에 편안히 머물러서 헛되지 않으리라. 만일 보살로서 이 식정(識定)의 영락을 만나는 이가 있다면, 온갖 법을 관찰해 깨달아서 처소가 없음을 이해하리라. 식정의 영락은 신심(神心)의 맑음이니, 다시는 음식을 탐내지 않고 즐거운 생각 자체를 음식으로 삼으며, 권하고 도움으로써 복의 업을 일으키느니라.옛적에 나는 부처님께 다섯 줄기의 꽃을 올리면서 스스로 성불(成佛)을 이룩하여 도과가 썩지 않고 정법을 흥성시키며, 다시 금계(禁戒)로써 온갖 더러움을 녹여 없애며, 저 온갖 고통을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구원하며, 갖가지 액난을 반드시 제도 받게 하겠다고 뜻을 세워 크게 서원하였다. 스스로 생각건대, 지난날 바다에 들어가 보배를 구할 적에 마갈어(摩竭魚)와 수형산(水形山)을 만났는데,나는 길잡이가 되어서 식정(識定)의 영락에 들어갔다. 이윽고 착한 신이 좋은 길을 가르쳐 주므로 쾌락하고 편안하게 본국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서원해서 정진하여 물러서지 않은 탓에 조그만 상념도 없는 선정삼매에 들어가, 모든 부처님이 노니는 당(堂)에서 중생을 범천과 무상천(無想天)에 태어나도록 권하였으니, 이 모두가 식정의 영락이 이룩한 것이니라.만일 인간의 시방 국토에서라면 세속의 물듦에 따라 세상을 제도하는 도를 강설하고, 다시 온갖 도의 과증(果證)인 10선(善)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여 공혜(空慧)를 통달케 하고, 일체에게 선포해 보여서 성인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으며, 본래 공하여 도무지 지을 바 없음을 이해해 알고, 심은 덕의 근본이 스스로 자기를 위하지 않아서 누구나 도법의 과보를 얻게 할 것이다. 만일 법이 기울어져 없어지면 능히 무거운 책임을 지고, 만일 괴로움과 고달픔을 만나면 영원히 근심과 슬픔이 없고,또한 망상과 집착하는 마음도 없고, 몸과 입을 기르되 누실치 않게 하며, 권도의 방편으로 생사(生死)에 깊이 들어가서 8해탈과 정수(正受)의 맛을 설하고, 세속을 건립하여 불도를 사모해 숭배하되, 일교(一敎)나 혹은 약간의 품(品)을 연설해서 성현의 법[律]에 들어가도록 인도하고 점점 이끌어 보여서 멸도케 하고, 능히 바른 법을 약간의 겁(劫)에 머무르게 하고, 남음 있는[有餘] 중생을 남음 없는[無餘] 고요한 열반에 이르게 해서 나고 늙고 죽고 형상을 받는 근심을 없애 주고,4대(大)인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에 의지하지 않게 하고, 여러 가지 삿된 소견[邪見]과 어리석은 미혹의 부분에는 정견(正見)이란 한 길[一道]의 법을 보여주며, 혹은 한가한 곳에서 열두 가지 법의 부지런한 행을 닦고, 나무 밑에 기대는 바 없이 정좌하여서 선법(禪法)을 사유하며 오직 공(空)에만 힘쓰며, 일심(一心)의 고요한 선정으로 그릇됨이 없어야 하느니라.보살의 식정 영락이란 보배도 색의 모습 있음[有相]과 모습 없음[無相]을 생각지 아니하니, 모습은 스스로 비어서 적멸하며 종호(種好)도 또한 마찬가지니라. 안과 밖을 분별하여 하나로 밝게 깨닫고, 3세(世)가 공적하여 과거ㆍ현재ㆍ미래가 없고, 식정심(識定心)으로 다시 5음(陰)의 성품인 갖가지 쇠(衰)ㆍ지(持)ㆍ입(入)이 어디로 좇아 왔으며 어디로 좇아 멸하는가를 관해서 낱낱이 분별하여 교묘한 거짓임을 아느니라.그리하여 생멸을 두지 아니하고 희망(希望)을 일으키지 아니하며, 또한 다시 옳고 그름이 있음을 보지 않으며, 심의(心意)를 인하지 않고 도의 가르침[道敎]을 발하며, 식이 일어나면 일어나고 식이 멸하면 멸하고, 상상(相像)을 보지 않고 또한 아상(我想)도 없으며, 또한 다시 머물고 서있는 처소에 집착하지 않나니, 안팎의 6진(塵)에도 역시 마찬가지니라. 귀와 눈을 계교해도 오히려 있는 바가 없거늘, 하물며 당면해서 보고 듣는 일이 있으랴. 이것은 그렇지 않느니라.보왕아, 반드시 알라. 보살의 영락심에서 식정법(識定法)은 일어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았으며 또한 끝이나 처음도 없느니라. 연(緣)이 일어나면 일어나고 연이 멸하면 멸하나니,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을 보지 않고 멸해도 멸하는 것을 보지 않느니라. 안으로 늘어나고 줄어드는 뜻을 스스로 사유하여 괴로움과 즐거움의 상념이 없으니, 그 까닭은 ‘나’라는 생각을 여의었기 때문이니라.비록 다시 욕망의 온갖 고통 가운데 있을지라도 마음에 염착함이 없어서 삼계인 욕계ㆍ색계ㆍ무색계를 멀리하고 뜻은 금강과 같아서 헐어 부술 수 없느니라. 근본의 숙명과 구경의 근원을 알아서 갖가지 번뇌를 끊는 것이 어렵다고 여기지 말지니, 유극(有極)을 보지도 않고 무극(無極)을 보지도 않는다. 이것을 보살의 식정 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세상의 가르침을 따라 존장(尊長)을 공경하고 받들되 그 과보를 바라지 말고, 백천 겁에 걸쳐 부지런히 닦고 정진해서 도혜(道慧)의 법을 모두 성취하며, 여러 보살의 평등지인(平等持忍)을 선포해서 외우고 통달하고 깨우쳐 지니어서 잊지 아니하며, 여래 법신의 5분(分)의 성품을 낱낱이 창달하되 말[言]을 꾸미지 아니하며, 말을 할 때는 항상 웃음을 머금고 마음은 집착하는 바가 없으며, 단(斷)과 멸(滅)의 두 소견의 상념을 내지 않느니라.만일 대중 가운데 있으면 꼭 해야 함도 없고 꼭 해야 하지 않음도 없으며, 공무(空無)의 법에서는 상념도 없으며, 내실(內實)로 충만하나 밖으로 자문(諮問)을 받으며, 그러면서도 ‘나의 행(行)은 넘치는 것이 있는데 그는 모자란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 온갖 이양(利養)을 여의어서 희망하는 바가 없으며, 항상 스스로 사유해서 몸에 주인이 없음을 알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본래 없다고 밝게 깨달아 알며, 6바라밀을 수행해서 고정된 바가 없고 여러 가지 법을 계교해도 다 거짓 이름일 뿐임을 알며, 실제가 없어서 일체의 온갖 법은 볼 수가 없고 음향을 분별하여도 들을 수가 없음을 아느니라.보왕아, 이처럼 보살대사로서 법 영락의 식정법을 닦는 이는 착한 일을 보아도 기뻐하지 않고 나쁜 일에 대해 들어도 슬퍼하지 않나니, 그런 뒤에야 비로소 정진(精進) 영락에 응하여 백천의 선정에 들어가 흔연하여 상념이 없느니라. 그래서 천둥과 지진과 번개와 벼락에도, 또 산이 무너지고 물이 넘치고 사자가 으르렁대어도 심의(心意)가 고요해서 영원히 혼란이 없느니라.어떤 때는 보살이 선정에 들어가 정수(正受)하면서 한 겁(劫)이나 백천 겁을 지나더라도 몸이 부드럽고 아름답지만 다시 밥을 쳐다보지 않으며, 이 선정의 뜻을 말미암아 선(禪)의 법열로 밥을 삼고 8해탈로 음료[漿]를 삼느니라. 어떤 때는 보살이 다시 신족(神足)으로 보조(普照)라고 하는 삼매에 들면 동쪽 강(江)ㆍ하수(河水)의 모래 보리수같이 많은 부처님 국토에 나타나서 절을 하고 공양하되 위의를 잃지 않고, 이와 같이 남쪽이나 서쪽이나 북쪽의 강과 하수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부처님 국토에서 모든 부처님께 다 공양하고 식정의 영락을 연창(演暢)하고 사유하느니라.보왕아, 이처럼 보살이 선정에 들어가 느끼는 바가 이와 같으니라.
또 시방의 강과 하수의 모래수의 세계는 그만 버려두고라도, 낱낱의 세계들의 그 속에 티끌을 채우고, 다시 한 개의 티끌을 모든 부처님 세계[佛刹]에 비긴다고 하자. 이 티끌은 오히려 다할지언정 부처님의 국토는 헤아리기 어려우니라. 보살의 삼매는 온갖 대중의 모임을 모조리 보고, 또한 저 부처님께서 연설하는 영락신식정(瓔珞神識定)의 뜻을 들어서 모든 법의 근본이 비고 적멸해서 주재자가 없음을 요달하느니라.처음 배움을 일으키면서부터 도량에 이르기까지 영락의 도수(道樹)를 사유하고 발의(發意)하여 온갖 번뇌인 음행ㆍ성냄ㆍ어리석음의 병을 모조리 거치면서 그 마음이 굳건하여 옮겨지지 않나니, 가령 하늘의 마군이 억해(億垓)의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식정(識定)의 뜻을 무너뜨리고자 해도 끝내 저들에게 굴복되지 않으며, 삿되게 되어서 그르침을 당하지도 않느니라. 그 뜻은 바다처럼 넓어서 포용하여 받아들이지 않음이 없으며, 뭇 덕의 영락이 다 판단력을 성취해서 항상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몸이 아니니, 상(常)이라 해도 상(常)이 있지 않은데 어찌 몸이 있으랴. 상(常)을 계교하는 자들은 선정의 원대함을 여의어서 나고 죽는 데에 떨어져서 스스로도 구제할 수 없느니라’라고 강설하느니라.보살의 닦음은 오직 도에만 힘쓸 뿐이고, 그 마음이 편안해서 뭇 상념이 영영 없고, 모든 부처님이 지으신 덕의 업을 여의지 아니하며, 뜻은 태산과 같아서 옮길 수 없으며, 세계를 홀로 걸으면서도 무서워하는 바가 없으며, 네 가지 지혜의 변재로 모든 법을 포용해 받아들이며, 중생에게 지혜의 요체를 알도록 가리켜 보이며, 내실(內實)이 질박하고 곧아서 속이거나 아첨하는 일이 없나니 그 까닭은 본래 청정하기 때문이며, 온갖 더러움이 이미 없고 갖가지 어둠이 사라져버렸으며,지혜의 광명이 널리 비추어 혜택을 입지 않음이 없으며, 마음은 크고 넓어서 그 끝이 없고, 뜻의 더러움을 씻어내어 신선하고 밝게 하며, 세상의 좋아하는 것을 따라 모조리 능히 이룩하고, 보리수 아래에 나아가 스스로 법의 뜻을 닦고, 온갖 법에 대해서 의심나는 것이 없고, 모든 연민과 지혜를 모두 성취하고, 온갖 배움을 따르면서 조금 앎을 구제하며, 영락의 정의(定意)로 어지러운 자를 구제하고, 아울러 온갖 익힌 바에서 고요한 선정을 늘 얻으며, 성현의 여덟 가지 도의 품(品)을 닦아 행하며, 일체의 사람을 세워서 바른 법을 보게 하느니라.보왕아, 이것을 보살의 식정 영락의 요체라 말하느니라. 이를 배우고 지녀서 가슴속에 품고 있는 자는 모든 부처님을 일찍이 멀리 여의지 아니하고,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에서 물러나지 않게 되리라.”
부처님께서 이 식정영락(識定瓔珞)을 설하실 때에 자리에 있던 한량없는 억백천의 하늘ㆍ용ㆍ귀신ㆍ인(人)ㆍ비인(非人)이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발하였고, 다시 다른 곳의 보살 6만 2천 명이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얻었으며, 다시 8천의 청신사ㆍ청신녀가 번뇌를 멀리 여의고 법안(法眼)의 청정함을 얻었으며, 5천의 비구는 누진(漏盡)의 뜻을 알았으며, 9만의 천자는 온갖 탐욕을 여의었다.
3. 장엄도수품(莊嚴道樹品)
그때에 부처님께서 여러 현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옛적 무수한 아승기겁 동안에 공을 쌓고 행을 더하여 청정한 법을 닦았는데, 앉으나 누우나 다니거나 4등(等:慈ㆍ悲ㆍ喜ㆍ捨)을 버리지 아니하고, 일시(一時), 일행(一行), 일념(一念) 사이에 열 가지 법을 닦았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첫째는 도솔천으로부터 신(神)을 내려 하계에 태어나서 시방의 수없는 부처님 세계를 다 보고, 여러 일생보처 보살들이 모두 도수(道樹)에 나아가 청정한 영락을 닦음을 보고, 그들이 오른발을 들어 도량에 나아가서 중생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자 삼천대천세계가 모두 다 진동하는데, 보살이 스스로 생각하길 ‘내가 옛적에 맹세한 소원을 오늘 다 이루었으니, 반드시 마군의 세계를 헐어 없애고 부처님의 국토를 장엄하겠다’라고 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자(大慈)의 영락으로 도량에 나아가는 마음이 물러나지 않음이라고 말하느라.둘째는 삼천대천세계 보살대사의 심식(心識)으로 생각하는 바와 또 정의(定意) 삼매에 들어가서 흐트러지지 않음을 다 보고, 혹은 보살이 공(空)에서 도를 이룸을 보고, 혹은 한가하고 고요한 나무 밑의 처소를 보며, 혹은 수광공계삼매(水光空界三昧)에 들어가서 도수(道樹)를 장엄하며 대비(大悲)를 여의치 않음을 보느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대비(大悲)의 영락으로 도량에 나아가는 마음이 물러나지 않음이라고 말하느니라.셋째는 보살마하살이 삼천대천세계를 널리 보고 도량에 나아가서 기쁜 마음을 버리지 않는 것이니라. ‘내가 이제 성불함은 필연으로 의심치 않는다. 내 법의 근본으로 일체를 널리 윤택케 하리라’고 하면서 중생과 더불어 똑같은 황금빛 32상(相) 80종호(種好)이다. 한량없는 대중에게 앞뒤로 둘러싸여서 마군의 그물을 헐고 자기의 국토를 이룩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기쁨을 닦는 영락의 마음이 물러나지 않음이라고 말하느니라.넷째는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고자 하여 보리수 밑에 나아가서 시방 아승기 세계를 다 보니, 일생보처 보살대사가 닦고 수호하는 마음을 다하여 도수(道樹)를 장엄하고, 무수한 중생으로 하여금 자기와 똑같은 수호하는 마음으로 온갖 영락의 정의(定意)를 내버리지 않게 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서 수호하는 마음과 정수(正受)의 마음이 물러나지 않음이라고 말하느니라.다섯째는 보살마하살이 다시 시방의 무수한 세계를 보니, 일생보처 보살대사가 모두 법륜을 굴려서 물러나지 않는 행을 하고 있느니라. 법은 말이 없고 또한 형상도 없으며, 일상(一相)이 무상(無相)이고 공계(空界)는 형상이 없으니, 공도 오히려 공이 없거든 하물며 법계가 있으랴.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공무(空無)를 영락하는 무형의 법이라고 말하느니라.여섯째는 보살마하살이 시방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세계를 널리 보니, 지혜를 통달한 중생은 근(根)들이 맑고 정숙해서 뜻이 3승을 향하고 법인(法忍)을 버리지 않으며,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의 마음으로 여섯 가지 중한 법을 행하며, 4무애지로 한결같이 도인(道忍)을 향해서 수기를 받음을 스스로 아느니라. 또한 다시 남에게 수기를 주는 것을 보며, 혹은 아라한ㆍ벽지불에게 수기를 주는데, 보살은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느니라.‘나는 무수한 아승기겁으로부터 몸을 버리고 몸을 받은 것이 모두 허깨비의 화현(化現)으로서 진실한 법이 아니다. 이제 수기를 받아 위없는 정진의 도에 나아가 최정각을 이루어서 허공을 걸림 없이 오고 가리니, 한 때[一時], 한 곳[一處]에서 총지정(摠持定)을 얻었다.’여러 부처님이 고(苦)ㆍ습(習)ㆍ진(盡)ㆍ도(道)를 찬탄하고 있다. 이 고(苦)는 고가 아니니, 고는 무엇을 말미암아 생기었는가? 고를 이해해서 고가 없으면 곧 밝은 슬기에 감응한다. 습(習:集)은 애착을 말미암아 일어나고, 애착은 본래 형상이 없어서 또한 볼 수 없다. 생(生)의 근본은 생이 없음이니, 하물며 법에 멸함이 있으랴. 중생이 어리석고 미혹해서 다시 쾌락을 일으켜서 익히고 얻는다 해도, 익힘을 이해해서 익힘이 없으면 곧 밝은 슬기에 감응하느니라.모든 법은 생겨남이 없어서 마멸의 법이 된다. ‘다함[盡]’이란 생겨남이 없어서 또한 다함이 있지도 않고, 모든 법은 다함이 없느니라. 중생이 어리석고 미혹해서 다함을 다함이 아니라고 일컬으며, 그 중에서 상념을 일으켜 모든 법을 사지 않지만, ‘다함’은 진실로 다함이니 이를 밝은 슬기라고 말하느니라. 도는 형상과 모양이 없어서 눈의 경계로 능히 보이는 바가 아니며, 8직평정(直平正)으로서 평탄하여 걸림이 없나니, 이를 밝은 슬기라 이르느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수(道樹)에 나아가서 마음이 물러나지 않음이라 말하느니라.일곱째는 보살마하살이 삼천대천세계를 모조리 보니, 중생의 근기가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하고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였다. 혹은 여래의 심식과 똑같은 취향이며, 근본행이 공통으로 합해서 지혜가 늘거나 줄지 않으며, 대자대비로 그 몸을 영락하며, 보시와 지계와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와 훌륭한 방편과 열여섯 가지 묘한 행과 백천 가지 총지가 있으며, 그 마음이 광대하여 협소하지 않아서 비록 아라한과 벽지불의 행을 볼지라도 마음에 물듦이나 집착이 없어서 그들을 추종하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수를 장엄하는 마음이 물러나지 않음이라고 말하느니라.여덟째는 보살마하살이 8백 총지법문(總持法門)과 덕행법문(德行法門)을 닦아 행하는 것이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온갖 행이 갖추어져서 보리수[道樹]를 장엄하며, 다시 널리 참는 법문[普忍法門]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온갖 것을 널리 윤택하게 하려고 감로의 법을 비처럼 내리며, 다시 모습 없는[無相]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공(空)의 행으로 물러나지 않는 경지에 다 들어가며,다시 음향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8등(等)의 행을 갖추어 다른 소리를 듣지 못하며, 다시 몸으로 행하는[身行]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몸의 행실이 청정하여 여러 가지 나쁜 일을 짓지 않으며, 다시 입으로 행하는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네 가지 허물을 짓지 않고 다른 나쁜 행도 없으며, 다시 뜻으로 행하는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뜻이 상념으로 치닫지 않고 고요해서 멸진(滅盡)하며,다시 무념(無念)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서 형상 없음을 다 관하며, 다시 구경(究竟)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차안(此岸)으로부터 피안(彼)에 이르며, 다시 무집착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생사의 법에 물듦이나 집착을 일으키지 않으며, 다시 걸림 없는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통달하여 오고 가면서 생사에 걸리지 않으며,다시 소리에 응하는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행을 따르면서 나아가되 저가 받은 것을 꾸짖지 아니하며, 신족통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변화가 자재해서 여러 부처님을 절하여 섬기며, 다시 청정한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지혜가 청정하여 국토의 상념이 없으며, 다시 공행(空行)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모든 법이 비고 거짓이어서 참되지 않음을 알며,다시 환화(幻化)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중생의 권사(權詐)로 합한 수가 형상을 만져볼 수 없다고 관하며, 다시 형상 없는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중생의 근원은 궁구하여 다할 수 없다고 하며, 다시 도의 종자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37도품을 닦아서 끊지 아니하며, 다시 의지(意止)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안팎의 몸을 관하여 생각 생각마다 끊기지 아니하며,다시 의단(意斷)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모든 법을 관찰하여 약간의 상념도 없으며, 다시 신족(神足)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머무는 수명이 무수의 아승기겁이며, 다시 여러 근(根)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도의 슬기가 몹시 깊어서 굳건하여 걸림이 없으며, 다시 신력(神力)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모든 법에 편안히 처해서 무너뜨릴 수 없으며,다시 각의(覺意)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각의의 꽃으로 티끌과 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며, 다시 도품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선정에 들어 걸림이 없어서 마음이 어지럽지 않으며, 다시 공한 지혜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중생에 편안히 처하면서도 욕심과 분노를 영원히 여의며,다시 모습 없는[無相]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은 보살은 중생의 무리로 하여금 도를 품게 하며, 다시 무원(無願)의 법문이 있으니 이 법문을 얻는 보살은 중생을 교화해서 원하여 구함을 없애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8백 총지라고 말하느니라. 그 요긴한 것만을 간략하게 말하자면, 도량에 나아가서 보리수[佛樹]를 장엄하는데 마음이 금강과 같아서 무너뜨릴 수 없느니라.아홉째는 보살마하살이 이 삼천대천세계의 한 발[足]ㆍ두 발ㆍ세 발ㆍ네 발을 가진 것으로부터 수없는 발을 가진 것에 이르기까지 애욕의 마음이 있는가, 애욕의 마음이 없는가, 화내는 마음이 있는가, 화내는 마음이 없는가, 어리석은 마음이 있는가, 어리석은 마음이 없는가,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이 있는가.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이 없는가를 관찰하는데, 일시(一時), 일기(一起), 일념(一念) 사이에 모두 능히 분별해서 괴로움이 공(空)하고 나라는 생각[我想], 남이라는 생각[人想]이 없음을 설하여 주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무상정(無想定)을 행해서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열째는 보살마하살이 다시 삼천대천세계를 관하여 미래ㆍ과거ㆍ현재 마음의 모든 근(根)이 적정(寂靜)해서 그 행(行)이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에 응함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族性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처음에 오른쪽 발을 들고 첫 걸음을 걸어갔고, 그 중간에서는 열 가지 법을 수행해서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였는데,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첫째는 보살마하살이 오른쪽 발을 들어 땅을 밟을 때에 명호를 스스로 일컬으면서 말씀하였다.
‘삼계에서 지극히 존귀하다. 항하의 모래알과 같이 많은 과거의 부처님도 모두 일곱 걸음을 걸으셨고,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또한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지금 현재에 세상에 출현하였으니, 삼계에서 홀로 존귀하여 나와 짝할 이가 없구나. 모든 부처님의 표식(標式)은 누설할 수가 없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서 부처님의 나무를 장엄함이라 말하느니라.다시 다음 보살이 오른발을 들어서 땅을 밟을 때에 문득 이렇게 생각을 하였다.
‘내가 이제 불퇴전(不退轉)의 경지에 이미 이르렀으니, 중생들도 나와 똑같이 나아가게 해서 크나큰 서원의 넓고 큰마음을 버리지 아니하겠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보리수를 장엄하고 도량에 나아감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 보살이 처음 오른발을 들어서 땅을 밟을 때에 다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지나간 세상의 여러 부처님도 이 법을 먼저 행하시었느니라. 마땅히 일생보처의 보살로서 나의 처소를 이을 자를 관해야 하리니, 그 명호가 누구인가?’그리고는 곧 오른쪽으로부터 돌아서 미륵을 돌아보시고 이르기를 ‘경(卿)이 뒤에 머지않아 나처럼 부처를 이루리라’고 말씀하시니, 백천의 하늘 사람이 이를 듣고 모두 기뻐하면서 각기 다른 목소리로 똑같은 말을 하면서 한량없이 좋다고 칭송하였다.
‘명쾌하고 만족스럽나이다. 부처님[世雄]이시여, 부처님의 씨는 끊어지지 않게 되었나이다.’
바로 이때 11나술(那術)의 천상사람과 백성들이 미륵에게 인봉(印封)을 맡기심을 보고 모두가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일으켰으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보리수를 장엄하고 도량에 나아감이라고 말하느니라.다시 다음 보살이 오른발을 처음 들어서 땅을 밟을 때에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는 이제 온갖 지혜의 자재함에 이미 이르러서 신령스런 슬기가 걸림 없고 변재에 통달하였다. 이 중생들은 오랜 세월 의심을 품은 채 번뇌의 혼탁함에 빠져서 벗어나길 구하지 않으니, 내가 이제 지혜의 불로써 마음속 의심의 덤불을 태워버리겠노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보리수를 장엄하고 도량에 나아감이라고 하느니라.다시 다음 보살이 오른발을 처음 들어서 땅을 밟을 때에 문득 다시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가 이제 무위(無爲)의 해탈을 이미 얻었으니, 반드시 유위(有爲)의 해탈을 접하여 제도하리라. 지난 세상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부처님들도 모두 나와 똑같은 무위의 해탈을 얻었고, 오는 세상의 부처님들도 또한 이 법을 얻으리로다. 유쾌하고 기쁘구나, 복의 과보란 끊어져 멸하지 않는구나. 망령된 생각은 이미 다했으니 탐내어 구할 것이 없도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다시 다음 보살마하살이 오른발을 처음 들어서 땅을 밟을 때에 다시 이런 마음을 내었다.
‘중생이 삿된 소견의 뒤바꿈에 영원히 머물러서 삼향공무(三向空無)의 지혜를 보지 못하는구나. 내가 이제 수호하는 마음의 청정함을 연설하리라. 지각도 없고 관함도 없어서 법의 성품은 비고 고요하다. 부끄러움을 알고 창피를 아는 것은 뭇 행의 근본이다. 괴로움이 공하고, 몸이 아니고, 인상(人相)도 없고, 수자상(壽者相)도 없구나. 마땅히 이 마음으로 일체를 널리 덮어주어야겠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서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다시 다음 보살이 오른발을 처음 들어서 목욕하는 연못으로 나아가고자 하니, 유리와 수정 등 7보(寶)로 된 동산에 오리ㆍ기러기ㆍ원앙새ㆍ이상한 종류의 기이한 새들과 여러 천상사람들이 이끌려 따라옴이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 몸을 드러내는 것은 옳지가 않다. 혹시 세속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면 벌거숭이 모습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할 터이니, 마땅히 가사를 구하여 몸을 가려야겠다.’당시 천자가 있었는데 이름을 복개라고 하였다. 그는 보살의 마음속 생각을 즉각 알아채고는 이윽고 8만 4천의 금실로 짜서 만든 가사를 바쳤다.
보살은 스스로 생각하였다.
‘지나간 세상의 모든 부처님 법복은 어떠하였는가. 나아가고 다니고 오는 데에 어떠한 법을 썼는가?’
허공신천(虛空神天)이 합장하고 여쭈었다.
‘지나간 세상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금실로 짜서 만든 가사를 입으셨는데, 오늘 여러 하늘 사람들이 드린 것과 꼭 같나이다.’보살이 즉시 8만 4천의 금실로 짜서 만든 가사를 받으시어 도의 신통력으로써 한 개의 가사로 합쳐서 몸에 걸치시니, 32상과 80종호가 모두 다 밖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옛날 옛적에 무상(無想)의 보답을 베푸시고 바라밀을 행했기 때문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서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 보살이 오른발을 들었을 때에 이런 마음을 문득 내시었다.
‘대다수의 중생들은 성품과 행동이 같지 아니하니, 나는 이제 지혜의 광명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널리 비추리라.’그리고는 정수리의 광명을 즉시 놓으셔서 시방의 모든 부처님 나라에 널리 비추니, 중생의 무리로서 광명을 본 자는 모두 구름같이 모여서 사바세계로 나아가 여래를 받들어 섬기고 향과 꽃으로 공양하였다. 위신(威神)이 감응한 바로서 하늘과 땅으로 하여금 여섯 번이나 반복하여 진동하게 하시었으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서 보리수를 장엄한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 보살이 발을 들 때에 마음에서 저절로 생각을 내었다.
‘생(生)의 분수가 이미 다했으니 다시는 태(胎)를 받지 않겠다. 삼계에서 홀로 존귀하여 짝할 이가 없도다.’그 이름을 불(佛)ㆍ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이라 하고 10호(號)를 갖추신 분께서 시방세계의 여러 부처님의 그 국토에 사부대중과 하늘ㆍ용ㆍ귀신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사람이면서 사람 아닌 것들에게 말씀하셨느니라.
‘오늘 사바세계에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셨다. 갖가지 상호가 갖춰져서 마치 별 가운데 달과 같으시며, 중생을 복으로 제도하시니 천상과 인간이 은혜를 받으리라. 공경의 마음을 일으켜서 저 부처님께 공양코자 하거든 바로 이때임을 알아야 하느니라.’이때에 시방 모든 부처님 세계의 신통보살이 변재가 갖추어졌고 총지문을 얻었다. 그리고 천7백77억 나술(那術)의 대중이 모두 구름같이 모여서 이 사바세계에 나아가 공양을 바치니 꽃이 무릎까지 쌓였다. 다시 80만 해(姟)의 천마(天魔) 파순이 모두 사바세계에 나아가 공양을 올리고 보살을 섬기었다. 다시 백천억 해의 신력용왕(神力龍王) 중에 각각 일곱 수장(首長)이 향기로운 탕을 바치면서 보살을 목욕시켜 씻어드리니, 이것은 옛날 옛적에 감로의 싫거나 족함이 없는 법을 연설하신 데에 말미암음이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서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다시 다음 보살이 안으로 스스로 생각을 내었다.
‘중생이 유(有)에 집착하여 미혹에 빠진지 오래되었다. 설령 공무(空無)하고 고요한 법을 듣더라도 두려운 뜻을 품어 몸의 털이 곤두설 것이다. 부처님 법은 깊고 오묘해서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다. 차츰차츰 차례대로 도의 근원을 설명해서 중생의 근원이 말미암는 바를 분별하고, 3세(世)의 생겨나는 법과 멸하는 법을 그윽이 비추어보아서 상념의 집착을 없애고 탐내고 인색한 마음을 없애 주리라. 무수한 겁 동안 행을 쌓아 왔는데도 도를 얻지 못하는 까닭은 모두 은혜와 애착을 말미암음이니, 내 이제 마땅히 은혜와 애착의 뿌리를 없애고 중생을 구제하여 무위(無爲)에 편안히 처하도록 하겠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족성자여, 이와 같이 보살 대사가 신(神)을 내려 태어날 때 땅에 떨어지면서 오른발을 드는 가운데 열 가지 법을 사유하여 보리수[道樹]를 장엄하고 또한 물러나지 않았느니라.
다시 다음의 족성자여, 보살이 처음 태어날 때에 땅에 떨어지자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금궤(金机)에 나아가고자 하였다. 그 다음에는 왼발을 들면서 안으로 스스로 사유하였느니라.
‘여러 부처님의 말씀하신 뜻은 한량이 없고 도의 법은 순수하므로 응당 바라밀의 무기멸법(無起滅法:일어나고 멸하는 법이 없음)으로 생멸 없는 불가사의를 행하리니, 이는 아라한과 벽지불이 미칠 바가 아니다. 도는 마땅히 한뜻일 뿐이니 많은 생각은 도가 아니며, 도는 마땅히 욕심이 적어야 하니 욕심이 많음은 도가 아니며, 도는 마땅히 만족을 알아야 하니 구하는 것이 많음은 도가 아니며, 도는 마땅히 바른 소견이어야 하니 삿된 소견은 도가 아니니라.’그리고 이때 보살은 다시 이런 생각을 하였느니라.
‘지난 세상의 모든 부처님이 행하신 바른 법은 무엇을 말함인가?’
또다시 이런 생각을 하였느니라.
‘지나간 세상에 항하의 모래알과 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타나셔서 신족의 힘으로 몸의 위덕(威德)을 나타내시니, 열 가지 근본의 뜻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구나. 어떤 것을 열 가지라 하는가?’그래서 족성자여, 보살마하살이 왼발을 먼저 들자 3천(千) 허공의 경계에 두루 찼는데, 중생의 깨쳐 앎이 없는 자를 희롱하지 않았다. 그 중 어떤 중생이 발의 상륜(相輪)을 보고 모두가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발하였는데, 이는 옛날 옛적 예배하고 공경한 과보를 말미암은 것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다시 다음 족성자여, 이때 보살이 왼발로 땅을 밟자 마음이 스스로 생각을 내었느니라.
‘옛날에 모든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실 적에 구절과 몸의 의미를 어떻게 분별하셨으며, 무엇이 지나간 세상의 모든 부처님께서 나아가시고 머무시고 가시고 오시는 위의(威儀)의 법칙이었으며, 한 글귀의 뜻으로 한량없는 부처님의 법장(法藏)을 연출하신 것인가. 겁으로부터 겁에 이르고, 나아가 백겁에 이르기까지 한 구절의 뜻도 능히 궁구하여 다할 수 없으니, 여래의 비밀하고 요긴한 뜻[秘要]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으며, 이것은 소절(小節)로는 능히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보살이 그때에 한 털구멍의 광명을 놓아서 한량없는 여러 부처님의 국토에 두루 비추시었다. 그 광명 속에서 6바라밀의 평등한 큰 법과 공(空)ㆍ무상(無想)ㆍ무원(無願)ㆍ불기법인(不起法忍)을 연설하고, 또한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뜻을 굳건하게 해서 모두가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발하게 하였으니, 이것을 보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다시 다음의 족성자여, 보살은 그때에 속으로 스스로 사유했다.
‘나는 이제 반드시 삼매의 정수(正受)로써 허공의 모든 부처님 법계에서 두루 유행(遊行)하겠다.’
그때에 보살은 즉시 형상이 없는 선정(禪定)에 들어가서 허공의 여러 부처님 법계에 두루 노니시니, 좌우에서 추종하는 하늘과 땅의 백성들도 아는 자가 없었다. 이를 일러서 보살이 금궤(金机)에 나아감이라 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다시 다음에 족성자여, 즉시 하나의 형상으로 변화하여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채웠다가 다시 돌아와 그대로이지만, 중생의 무리들은 깨달아 아는 자가 없으니, 이것을 보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족성자여, 보살이 이때 혜명(慧明)의 빛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시고, 낱낱의 빛 속에서 모두 다음과 같이 음성을 내었다.
‘오늘 석가모니 불ㆍ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께서는 남섬부주에서 법륜(法輪)을 반드시 굴려서 아직 제도 못한 이를 제도하고 중생을 복으로 이롭게 해서 그 명성이 멀리까지 퍼지리라.’이것을 보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 족성자여, 보살이 그때 한 생각[一念] 사이에 시방세계의 여러 부처님으로 하여금 각각 손을 펴서 보살을 부축하시게 하시었는데, 일체의 대중 회상에서 모두 보았으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 족성자여, 모든 부처님의 법장(法藏)은 깊고 오묘해서 헤아리기 어려우니라. 나는 반드시 3승의 연각ㆍ성문ㆍ보살의 도를 차례로 펼쳐 나타냄으로써 법을 듣고 깨달아서 끝내 중간에 걸리지 않게 하리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다시 다음에 족성자여, 지나간 3세의 모든 부처님이 ‘나는 이제 무위(無爲)의 큰 도를 이루고자 하오니, 모두 마땅히 증명하여서 나로 하여금 도를 이루게 하옵소서’라고 하시자, 여러 부처님이 모두 앞에 서 계시면서 훌륭하다고 칭찬하셨다. ‘그대는 아승기겁으로부터 무수한 고행을 하면서 보시와 지계의 6바라밀을 갖추었고, 국토나 재물이나 아내나 자식에 애착하거나 인색한 바가 없었으니, 이제 반드시 부처를 이루어 중생을 널리 제도해야 하느니라. 우리들은 그대를 부축하여 위로 성불(成佛)에 이르게 하지 중도에 머무르게 하지는 않으리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다시 다음에 족성자여, 보살이 지나간 세상ㆍ지금 세상ㆍ오는 세상을 분별하니, 공(空)ㆍ무상(無想)ㆍ무원(無願)이 역시 모든 부처님께서 응한 행법(行法)이니라. 처음 뜻을 발함으로부터 성불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세 방향의 도와 네 가지 평등한 큰 사랑과 여덟 가지 걸림 없는 도를 닦아 익혀서 그 몸을 영락하였느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함이라고 말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다음에 오른발을 들어서 땅을 밟을 때 이 신족(神足)의 열 가지 지혜의 불가사의를 반드시 갖추었으니, 무엇을 열 가지라 하는가?
신족의 지혜를 이름하여 집착 없음이라고 말하는데, 보살로서 이 지혜를 얻은 이는 모든 부처님의 깊고 요긴한 법장(法藏)에서 노니는 것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다시 신령스런 지혜가 있어서 그 이름을 형상 없음이라고 말하는데, 보살로서 이 신령스런 지혜를 얻은 이는 싫어함이 없는 정의(定意)에 들어가서 시방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물어서 받느니라.
다시 둘 없는 신령스런 지혜가 있는데, 보살로서 이 신령스런 지혜를 얻은 이는 중생을 권하여 위없는 등정각을 이루게 하고 성문이나 벽지불의 도는 취하지 않게 하느니라.
다시 허공의 신령스런 지혜가 있는데, 보살로서 이 신통한 지혜를 얻은 이는 세계의 공(空)함과 나도 없고 남도 없음을 다 관하느니라.다시 모습 없는[無相] 신령스런 지혜가 있는데, 보살로서 이 지혜를 얻은 이는 모든 법을 창달하여 한 모습과 모습 없음[一相無相]을 알고, 나고 멸함에 집착하거나 끊는 법이 없느니라.
다시 공관(空觀)의 신령스런 지혜가 있는데, 보살로서 이 지혜를 얻은 이는 모든 부처님의 국토가 이루어지고 파괴되는 것을 손바닥의 구슬 보듯 하느니라.
다시 목숨을 버리는 신령스런 지혜가 있는데, 보살로서 이 신령스런 지혜를 얻은 이는 목숨의 반연된 과보로 형상 버리는 것과 형상 받는 것을 보느니라.다시 언설(言說)이 없는 신령스런 지혜가 있는데, 보살로서 이 신령스런 지혜를 얻은 이는 법을 설해도 법상(法想)이 없고 또한 약간의 생각도 없느니라.
다시 가깝고 먼 것이 없는 신령스런 지혜가 있는데 보살로서 이 신령스런 지혜를 얻은 이는 모든 법의 소굴(巢窟)의 멀고 가까움을 보지 않느니라.
다시 나고 멸하는 것이 없는 신령스런 지혜가 있는데, 이 신령스런 지혜를 얻은 이는 12인연의 근본을 분별하여 ‘남’이든 ‘멸함’이든 모두 있는 바가 없느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신족의 지혜로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처음 태어나서 왼발을 들 때에 마땅히 열 가지 업의 한량없는 구경(究竟)을 갖추어야 하나니, 무엇을 열 가지라 하는가?
그래서 족성자여, 모든 부처님 여래의 수행한 바로서 여래께서 형상을 내려서 세상에 출현하여 교화하시는데, 3세(世)의 12견련(牽連:연기)과 삼계(三界) 5도(道)의 티끌과 더러움과 얽힘과 집착을 분별하여 여러 가지 결사(結使)를 깨끗이 씻어서 티끌의 음산함을 영영 없애니, 이것을 보살이 제1의 업을 닦아서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다시 다음에 족성자여,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사 온갖 중생들을 교화하시는데, 3승에 편안하게 처해서 그의 원대로 따르시니라. 혹 어떤 중생은 그 뜻이 아라한으로 나아가지 부처님 문을 향하지 않고, 혹 어떤 중생은 연각의 행을 익혀 부처님 도에 나아가지 않고, 혹 어떤 중생은 위없는 도를 닦아서 성문ㆍ연각ㆍ벽지불을 향하지 않으며, 혹 어떤 중생은 부처님 도에서 물러나 소승에 뜻을 두어 사모하였다. 그때에 보살은 앞서 나간 사람을 권하여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게 하였으며, 혹 어떤 중생은 범부의 경지에서 방편을 구하여 3승으로 오르려고 하지 않으므로 보살이 나아가길 권해서 3승의 도를 이루게 하였으니, 이것을 보살이 제2의 업을 닦아서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여래가 세상에 출현해서 언교(言敎)를 펼쳐 나타내시고, 권도의 방편으로 중생을 알맞게 교화하시고, 무거운 짐을 짊어져서 남을 위해 중임을 맡으시고, 혹은 중생과 더불어 나타나서 부모와 형제와 벗이 되며, 혹은 국사(國師)와 존장(尊長)과 도사로 나타나며, 혹은 큰 부호나 신력귀왕(神力鬼王)으로 나타나서 가난하고 곤궁한 사람에게 두루 공급하되 7보(寶)를 보시하고, 도의 가르침을 열어서 3승의 과보를 이루게 하니, 이것을 보살이 제3의 업을 닦아서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여래가 세상에 출현하여 위없는 법륜을 굴리시면서 네 가지 변재(辯才)를 잃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관찰하여 열 가지 선행을 맡기고,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를 분별해서 연창(演暢)하고, 혹은 미혹을 낳아서 삼계에 빠지면 권도를 행하여 구제해서 생사를 영영 여의게 하나니, 이것을 보살이 제4의 업(業)을 닦아서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해서 항상 대비(大悲)로써 중생을 감싸는데,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마음에서 여의지 않느니라. 비유하자면 이라발다라(伊羅鉢多羅)용왕이 수미금복산(須彌金福山) 주변의 7보(寶)로 꾸민 궁전에 살면서 여러 용녀들과 서로 재미있게 놀다가 만일 도리천궁에 올라가서 공양을 올리고자 하면, 몸을 7만 유연(由延)의 서른두 개의 머리로 변화해서 낱낱 머리의 가장자리에 일곱 개의 어금니가 있고,낱낱 어금니 위에 보배로 된 목욕 연못[浴池]이 있고, 낱낱의 연못 가운데 7백의 연꽃이 피어 있고, 낱낱의 연꽃에서 7백의 옥녀가 서로 재미있게 놀면서 노래와 음악을 하며, 거문고와 비파와 북을 연주하는 소리가 끊어지지 않으며, 다시 7보를 비처럼 내려서 무릎까지 이르게 하듯이, 보살대사도 마찬가지라서 네 가지 평등한 마음으로 중생을 가피(加被)하고 7각의(覺意)의 다함없는 법재(法財)를 비처럼 내려, 그 지향(志向)에 따라 모두 도의 열매를 이루니, 이것을 보살이 제5의 업을 닦아서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여래가 권도의 방편으로 때에 맞게 적절히 교화해서 다녀야 할 때 다닐 줄 알고, 앉아야 할 때 앉을 줄 알고, 말해야 할 때 말할 줄 알고,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할 줄 안다. 중생의 심식(心識)이 생각하는 바에 두루 들어가서 병에 따라 치료하되 더하거나 덜하게 하지 않으며, 널리 무위(無爲)의 언덕에 영원히 처하게 하나니, 이것을 보살이 제6의 업을 닦아서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다시 다음에 족성자여,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여서 중생을 교화하여 인도하시면서도 스스로의 안위를 돌보지 않으시고, 일체의 사람을 위하기 때문에 백천 겁을 지나도록 저 사람을 대신하여 고통을 받는 걸 싫어하거나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부처님 지혜에 편안히 처하여서 위없는 도를 이루나니, 이것을 보살이 제7의 업을 닦아서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모든 부처님이 출현해서 법계를 무너뜨리지 않으시나니, 법의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면서도 스스로 그렇지 않으며, 여여(如如)한 진제(眞際)는 무너뜨림이 있지 않고 또한 무너뜨림이 있지 않음도 아니며, 닦아서 두려워하지 않고 또한 무서워하지도 않나니, 이것을 보살이 제8의 업을 닦아서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시면 마땅히 다시 일상(一相)이면서 무상(無相)임을 갖추시나니, 손가락 튀기는 동안에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법 가운데서 3세의 모든 부처님을 낳는데, 실다워서 다르지 않으며 또한 변하여 바뀌지도 않으니, 이것을 보살이 제9의 업을 닦아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부처님은 세상에 출현해서 중생을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하루의 수(數)로써 3세를 1겁이 되게 하지만, 그 속의 중생은 깨달아 아는 이가 없느니라. 이것을 보살이 처음 태어나 땅에 떨어질 때 왼발을 들고 제10업을 닦아서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佛樹]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처음 태어나 땅에 떨어지면서 일곱 걸음을 걷는데, 그 중간에서 다시 마땅히 열 가지 법을 사유하여 외도를 항복시키고 마군의 그물을 찢어버렸으며, 또 온갖 하늘사람의 호위 속에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고 나아가 멸도에 이르기까지 끝내 버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어떤 것들이 열 가지인가.여기서 족성자여, 먼저 마땅히 마군을 항복시켜야 하나니, 몸에는 자비와 인애(仁愛)의 갑옷을 입고, 손에는 지혜의 칼을 잡고 훌륭한 방편으로 앞을 인도하며, 머리에는 무외(無畏)의 꽃다발[華鬘]을 이고 교만한 무리를 꺾어 없애서 자만(自慢)함을 없애느니라. 족성자여, 이것을 먼저 제1의 얻기 어려운 법을 닦아야 함이라고 말하느니라.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다시 마땅히 현묘함의 넓은 뜻을 생각하여 번뇌를 끊고 증득을 취해야 하느니라. 저 외도를 다스려 우두머리가 되어서 신족(神足)과 신력(神力)의 한량없음으로 가해야 하나니, 상대가 하나를 나타내면 나는 반드시 둘을 나타내어서 삿된 무리로 하여금 바른 소견에 편히 처하게 하여야 한다. 족성자여, 이것을 보살이 제2의 얻기 어려운 법을 반드시 염(念)하면서 닦아야 함이라고 말하느니라.다시 다음에 족성자여, 보살대사는 중생을 교화하면서 법의 기쁨을 받는데, 반드시 견고함에 이르러야지 다른 도에 나아가지 말아야 하나니, 이것을 보살이 제3의 얻기 어려운 법을 수행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모든 부처님의 항상 행하시는 법은 낮과 밤 네 때[四時]에 중생을 관찰하면서 손가락 튀기는 동안에 시방 항하 모래알과 같이 많은 세계를 두루하시는데, 두루하고서 다시 시작해도 삼계에 집착하지 않으시니, 이것을 보살이 제4의 얻기 어려운 법을 수행함이라고 말하느니라.다시 다음에 족성자여, 걸림 없는 지혜를 행함이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원만하여, 비록 중생을 제도했으되 제도를 행하였다고 여기지 않으니, 이것을 보살이 제5의 얻기 어려운 법을 닦아 익힘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보살대사가 신족의 힘으로써 시방 항하 모래알과 같이 많은 국토에 두루 노닐면서 중생의 심식(心識)이 생각하는 바를 두루 관찰하는데, 어떤 경우엔 하나의 몸이 백천의 몸으로 변화하였다가 도로 합해서 하나가 되지만 깨달아 아는 이가 없으니, 이것을 보살이 제6의 얻기 어려운 법을 수행함이라고 말하느니라.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보살이 4무애지를 사유하는데, 이는 아라한이나 벽지불의 닦는 바가 아니며, 또한 하늘ㆍ용ㆍ귀신ㆍ8부 대중이 능히 미칠 바가 아니니, 이것을 보살이 제7의 얻기 어려운 법을 수행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여래의 신력은 불가사의해서 시방의 한량없는 부처님 국토들을 하나의 티끌 구멍에 집어넣고 두루 돌면서 오고 가되 걸림이 없고, 원래로 회복해도 예전 그대로이지만 깨달아 아는 이가 없으니, 이것을 보살이 제8의 얻기 어려운 법을 수행함이라고 말하느니라.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네 가지 변재와 생멸이 없는 지혜를 얻어서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원만하나니, 이것을 보살이 제9의 얻기 어려운 법을 수행함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모든 부처님은 다함없는 법문을 행하여 중생을 덮어 주시니, 10력(力)과 4무외(無畏)와 열여덟 가지 함께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의 법이다. 이것을 보살이 제10의 얻기 어려운 법을 수행하여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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