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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614 보살선계경(菩薩善戒經) 2권

by Kay/케이 2024.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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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보살선계경(菩薩善戒經) 2

 

보살선계경 제2권

구나발마 한역
최윤옥 번역

5) 진실의품(眞實義品)어떤 것을 진실의(眞實義)라 하는가? 진실의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법성(法性)이고, 둘째는 법등(法等)이다. 다시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세류포(世流布)이고, 둘째는 방편유포(方便流布)이며, 셋째는 정번뇌장(淨煩惱障)이고, 넷째는 정지혜장(淨智慧障)이다.어떤 것을 세류포라 하는가? 세간의 법은 그 이름을 같이한다. 즉 중생이 땅을 보면 참으로 그것이 땅인 줄로 알며 결코 그것을 불[火]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불은 진실로 불로 여길 뿐 땅이라고 하지 않는다. 물과 바람,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의복ㆍ음식ㆍ영락(瓔珞)ㆍ기물(器物)ㆍ기악(伎樂)ㆍ명암ㆍ남녀ㆍ사택(舍宅)ㆍ전업(田業)ㆍ고락(苦樂)이 모두 그렇다. 고(苦)는 진실로 고일 뿐 결코 낙(樂)이라고 말하지 않으며, 낙은 진실로 낙일 뿐 결코 고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옳고 이것은 그르다 하여 정해지지 않은 것을 정한다. 세간의 모든 것은 예로부터 이처럼 이름과 모양이 전해 와서 저절로 아는 것이지 수집(修集)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세류포의 참된 뜻이다.
어떤 것을 방편유포라 하는가? 예를 들면 세간의 지인(智人)이 먼저 헤아려보고는 다음에 경서(經書)의 내용에 맞추어서 논의하는 것을 방편유포라 한다.어떤 것을 정번뇌장이라 하는가? 모든 성문과 벽지불 등이 무루지(無漏智)와 무루도(無漏道)로써 번뇌를 깨뜨려 무애지(無碍智)를 얻는데 이것을 정번뇌장이라 한다. 번뇌를 깨뜨리기 때문에 지혜가 밝고 청정하며, 지혜가 밝고 청정하기 때문에 신심(身心)에 걸림이 없다. 이것이 정지혜장의 참된 뜻이다.다시 진실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진실을 사제(四諦)라고 하는데 이른바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이다. 이 사제를 보아서 참된 지혜를 얻는 것을 성문ㆍ벽지불이라 한다. 성문ㆍ벽지불은 오음(五陰)을 분별하여 관한다. 그래서 오음을 떠나서는 전혀 아(我)와 아소(我所)를 보지 않으며 12인연을 분관한다. 이 때문에 오음을 떠나서는 중생과 사부(士夫)를 보지 않는데, 이것이 정지혜장의 참된 뜻이다. 만일 지혜가 경계(境界)를 알지 못하면 지장(智長)이라 하며, 능히 지장을 깨뜨리고 경계를 아는 것이 정지혜장이란 이름의 참된 뜻이다. 참된 뜻이란 말하자면 부처님이나 보살이 모든 음입(陰入)ㆍ음계(陰界)를 깊이 보기 때문에, 아(我)는 아가 아니며[無我], 중생은 중생이 아니며, 사부(士夫)는 사부가 아님을 보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정지장(淨智障)이라 한다.모든 법계(法界)가 선설(宣說)할 수 없는 것임을 보며, 세제(世諦)를 알아 법계를 분별하며, 모든 법계의 진실한 성품을 아는 것을 무승혜(無勝慧)라 한다. 무승혜는 모든 장애를 깨뜨린다. 그래서 정지혜장 진실의라 한다. 진실의에는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유(有)이며, 둘째는 무(無)이다.유(有)는 이른바 세류포라 하는데, 세류포란 색(色)ㆍ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과,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과,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과,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과, 선(善)ㆍ불선(不善)ㆍ무기(無記)와 출법(出法)ㆍ멸법(滅法)ㆍ종연생법(從緣生法), 그리고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유위(有爲)와 무위(無爲), 차세(此世)와 타세(他世)의 기간[日月], 견문과 지식으로 얻은 각관(覺觀) 및 수집(修集)ㆍ수지(受持)에서 열반까지이다. 이것을 세류포의 유(有)라 한다. 세간에서 말하는 유란 법성(法性)을 말하는 것이다. 무(無)는 세류포의 유(有)인 색(色)에서부터 열반까지가 자성(自性)이 없는 것이므로 무라 하는 것이다. 중생들이 보기 때문에 유라 하며, 법성(法性)이 본래 없기 때문에 무라 한다.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 말씀하신 유와 무는 이름의 진실이다. 진실을 중도(中道)라 하는 바,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것이 중도이다. 중도를 무상도(無上道)라 한다. 이와 같은 중도로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장애를 깨뜨려 없앴기 때문에 일체지(一切智)라 하지만, 보살마하살은 아무리 이 같은 중도를 배운다 하더라도 아직도 장애가 남아있기 때문에 일체지란 이름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보살의 지혜는 방편이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인(因)이라 한다. 어째서인가? 보살마하살이 비록 중도의 지혜를 구족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생사상(生死相)과 유ㆍ무ㆍ유포(流布)ㆍ무상불법(無上佛法)을 말하며, 비록 생사 중에 있다 하더라도 역시 능히 생사의 과환(過患)을 분명하게 알아서 마음에 싫어하거나 뉘우침이 없다. 만일 생사의 과환을 모르는 이라면 번뇌의 맺힘을 풀 수 없으며, 만일 마음에 싫어하는 이라면 중생을 교화하고 불법을 옹호해서 속히 열반을 얻을 수 없다. 만일 열반을 얻는다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없다. 중생들을 교화할 수 없는 이라면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하겠는가? 이 때문에 보살이 생사 중에 있으면서 보리의 도리를 닦으면, 열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열반을 구하지도 않는다. 보살이 만일 열반을 두려워하는 이라면 보리의 도리를 구족하게 장엄할 수 없으며, 또한 무량한 중생을 위하여 열반을 찬탄할 수 없고, 열반이 있는 곳에 대해 믿고 기뻐하여 전념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 때문에 보살은 열반이 있는 곳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만일 보살이 열반을 구하는 이로서 그 열반을 곧장 얻는다면, 그 얻은 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어서 불법으로써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보살로서 생사의 과환을 깊이 보지 못하고 혹시 이를 싫어해 멀리 하면서 열반을 두려워하거나 열반을 구하거나 한다면, 이를 보살이 선방편(善方便)이 없다고 한다. 만일 보살이 능히 생사의 과환을 깊이 관찰하고 기꺼이 그 안에 처하여 열반을 두려워하지 않고 구하지도 않는다면, 이를 보살이 선방편이 있다고 한다. 선방편이란 제일의(第一義)의 공(空)이라고 푼다.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제일의공을 수집한 것을 보살계대방편(菩薩戒大方便)이라 하나니 여래의 무상지(無上智)를 얻었기 때문이다.만일 이러한 보살계를 수집하여 진실지(眞實智)를 얻으면 모든 법이 아(我)와 아소(我所)가 없음을 지견(知見)해서 모든 법의 성품[性]을 알게 된다. 이 때문에 법에 대하여 집착하는 마음이 없으며, 또한 세제(世諦)와 제일의제(第一義諦)를 말해서 모든 법을 보매 그 마음이 평등하여 능히 크게 혜시(惠施)한다. 이 혜시의 인연으로 해서 세사(世事)를 잘 아는 것이니, 비록 세사를 배우더라도 마음에 싫어하지 않고 모두를 분명하게 알아서 커다란 염력(念力)을 얻는다. 비록 세사를 알더라도 교만한 마음이 없으니, 언제나 중생에게 인색한 생각을 갖지 않도록 가르치고, 공교로운 방편으로 중생에게 세간의 일을 잘 가르친다. 이는 중생으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보살은 이런 세간의 일에 대해 성실한 마음으로 수집하되, 싫어함이 없다. 만일 중생이 고뇌를 당하는 것을 볼 경우, 곧장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증장(增長)시킨다. 보살이 이처럼 선법을 증장하고 교만심을 일으키지 않으면 중생들에 대하여 어여쁘고 사랑스러운 마음이 생긴다. 보살이 이처럼 지혜를 증장하고 교만심을 일으키지 않으면 중생들의 온갖 사견(邪見)을 깨뜨린다. 보살이 만일 세간의 삼매와 출세간의 삼매를 얻어서 자신의 덕을 나타내지 않고 남의 공양을 받지 않으면 세간법의 더럽힘을 받지 않는다. 보살이 이때에 무량 공덕을 성취하여 구족하는 것을 보살계라 하며, 보살마하살이 가진 선법이 모두 보리도로 회향(廻向)하는 것을 보살계라 한다.과거의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은 모두 보살의 금계를 성취한 데서 연유한다. 현재나 미래의 보살도 역시 이와 같다.보살마하살은 삼세(三世)의 모든 보살의 법을 수지(受持)하여 능히 불법으로써 중생을 교화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보리의 도를 수행한다. 보리의 도를 위하기 때문에 신명을 아끼지 않는데, 신명을 아끼지 않는 것이 바로 보살계이다. 신명을 아끼는 이는 결코 보살의 금계를 얻을 수 없으며, 한 푼어치라도 재물을 아까워하는 이는 역시 보살의 금계를 얻을 수 없다. 보살마하살은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몸을 받고 재물을 비축한다. 만일 이 두 가지에 대해 인색한 마음을 가진다면 가짜 보살이지 참된 의미의 보살이 아니다. 보살이 만일 재물과 신명을 아끼지 않을 수 있으면, 반드시 알라. 능히 중생을 이익되게 할 수 있으며, 능히 인욕(忍辱)을 행하며, 능히 진에(瞋恚)와 질투의 마음을 깨뜨려서 세상의 일을 잘 해결하는 방편을 분명히 알고, 능히 중생들이 가진 의심을 깨뜨리고 능히 스스로 보리의 인과를 증장하여 가지고 있는 여러 근[諸根]을 잘 조복해서 네 가지 전도[倒]에 치우치거나 동요되지 않으며, 능히 모든 법의 깊고 깊은 뜻을 풀이하고, 능히 사무량심(四無量心)을 얻어 구족하고, 오통(五通)과 사무애지(四無碍智)를 성취하고, 필경에는 능히 12인연을 보아서 보살의 일자지(一子地)에까지 이르게 되며, 능히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의 몸을 얻고 크게 자재한 무상열반을 얻어서 방편열반을 잘 열어 보인다.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무량한 공덕을 성취하는 것은 모두 금계(禁戒)의 인연에 의하여 얻는 것이다. 보살마하살로서 보살계를 성취하여 구족한 자는 능히 모든 중생을 노복으로 부릴 수 있다. 만일 중생으로부터 발악이나 욕설이나 구타나 겁탈을 당하게 되면 자심(慈心)이 생기고, 만일 중생들의 무거운 번뇌를 보게 되면 연민심이 일어나 중생들의 번뇌를 깨뜨려 주려 한다. 마음을 써서 여러 좋은 방편들을 생각하며, 중생들에 대하여 간사하고 왜곡한 마음이 없이 그 능력에 따라 중생들에게 즐거움을 베풀고, 보답을 바라지 않으며 미움이나 원한을 갖지 않는다. 중생들의 번뇌나 미움의 마음을 깨뜨리려 하기 때문에 그 방편을 생각하며, 은혜를 알아서 은혜를 생각한다.
구하는 이가 없어도 먼저 알아서 베푼다. 만일 자기가 가진 것을 구하는 자에게 베풀지 않으면 보살의 금계를 성취할 수 없다. 구하는 자가 세 번을 와도 베풀지 않으면 이를 범중(犯重)이라 한다. 범하지 않는 자는 방편으로써 좋은 말로 위로하여 구하는 자로 하여금 원한을 갖지 않도록 한다.구하는 자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가난이며, 둘째는 사견(邪見)이다. 가난한 자에게 베풀지 않으면 곧 죄를 얻지만 사견에 대하여 베풀지 않는 것은 범(犯)하는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범하지 않는 것을 선행이라 한다. 선행의 보살은 법계가 선설(宣說)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며, 계의 성품[性]을 알고 세류포(世流布)를 안다.
세류포란 색ㆍ수ㆍ상ㆍ행ㆍ식에서 열반에 이르기까지이다. 색에서 열반까지는 진실이라 하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이 색이란 유(有)도 아니며 무(無)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아가 열반까지도 모두 유도 아니며 무도 아니다. 유도 아니며 무도 아닌 것을 어떻게 진실이라 하겠는가?비유(非有)란 무엇인가? 중생은 거꾸로 알아서 색을 보고 나[我]라 하며, 열반까지를 모두 잘못 판단하여 나라 한다. 이것을 비유라 하는 것이다. 비무(非無)란 무엇인가? 세류포며, 허광(虛誑)이 아니며, 선설(宣說)할 수 있기 때문에 비무라 한다. 이런 것이기 때문에 비유며 비무다. 법을 말하는 것과 같이 유를 말한다면 한 법 가운데에도 무량한 이름이 상응하며, 이름이 무량하기 때문에 무량한 성품이 있다. 어째서인가? 하나하나의 법 가운데에 무량한 이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름을 무량명(無量名)이라 하는가? 예를 들면 색은 빛깔이란 하나의 법이지만, 또한 청(靑)ㆍ황(黃)ㆍ적(赤)ㆍ백(白), 장(長)ㆍ단(短)ㆍ방(方)ㆍ원(圓)이고, 거칠고 미세하고, 볼 수 있고 볼 수 없고, 상대가 있고 상대가 없고, 껄끄럽고 매끄럽고, 가볍고 무거운 것 등을 말한다. 이런 이름들은 말할 수 있는 것들이다. 말을 하는데 따라서 있는 것들은 한 법 가운데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상(相)이 있다. 따라서 밝혀 말할 수 있는 것이 실로 무정성(無定性)이다. 말로써 말하기 때문에 세상에 유포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말할 것도 없고 진실성도 없다. 일체의 모든 법이 역시 이와 같다. 가령 색에서 열반에 이르기까지 실성(實性)이 있는 것은 응당 청ㆍ황ㆍ적ㆍ백에서부터 경중에 이르기까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만일 실성이 없다면 아직 유포(流布)하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전해질 수 있다고 하겠는가? 유포성(流布性)이 있기 때문이니, 처음 비롯함이 없기 때문에 유포할 수 있다. 아직 색이 없을 때에도 유포가 있는 것이라면, 어떤 인연으로 색이 없을 때는 유포하지 않는 것인가? 말하자면 유포가 능히 색성(色性)을 짓는 것이니, 어찌 유포하면서 색의 무량성을 짓지 못하겠는가? 이 때문에 법성(法性)은 선설(宣說)할 수 없다. 색ㆍ수ㆍ상ㆍ행ㆍ식에서 열반에 이르기까지가 역시 이와 같다.불법을 멀리 벗어난 두 종류의 중생이 있는데, 불제자(佛弟子)가 아니라서 영구히 불법을 잃는 것이다. 첫째는 색에서 열반에 이르기까지에 진실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며, 둘째는 세류포성을 믿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중생은 보살의 금계를 받아 지니는 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설사 받는다 하더라도 그 받은 것을 스승으로 삼지 못한다면 죄가 있는 것이다. 어째서 얻지 못한다고 하는가? 실법(實法)을 비방하여 비법(非法)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비록 받았다 해도 결코 금계를 얻지 못한다. 만약에 금계를 얻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 법 안에서 불제자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멀리 불법을 떠났다고 한다. 보살계란 입으로 얻는 것이 아니며 입과 마음이 화합한 뒤에야 얻는 것이다. 이 두 종류의 중생은 도무지 실심(實心)이 없는데 어떻게 얻을 수 있다고 하겠는가? 만일 색에서 망녕되이 헤아려 집착을 일으킨다면 불법에서 보면 영원히 잃는 것이 된다. 만일 색이 곧 유포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이를 모든 법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중생은 영구히 불법을 잃는다. 이렇기 때문에 있느니 없느니 하고 선설(宣說)할 수 없는 것이다. 어째서인가? 만일 오음(五陰)에 의한다면 나와 남[人]과 중생과 사부(士夫)가 있으며, 만일 오음이 없다면 이와 같은 이름들은 유포될 길이 없는 것이다.색 또한 이와 같다. 색이 있기 때문에 갖가지 명자(名字)가 유포된다. 그렇지만 진실의 법에는 유포가 없으며 진실법을 떠나서도 또한 유포가 없다.어리석은 자가 모든 법이 공(空)하다고 말한다면 큰 죄를 얻는다. 만일 대승경전 속에서 모든 법이 공하다고 말했다고 해도 역시 큰 죄를 얻는다. 대승경전의 뜻을 잘 해석하지 못하고 교만심이 생겨서 내가 잘 해석한다고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망녕되게 생각한 것을 남들에게 널리 말해도 역시 큰 죄를 얻는다. 만일 모든 법의 법성이 없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세상에 유포될 수 있겠는가? 역시 큰 죄를 얻는다. 어째서인가? 모든 법을 비방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법을 비방하는 것은 곧 외도(外道)인 부란나(富蘭那) 등의 진짜 제자가 되는 것이다. 부란나는 모든 법의 법성이 없다고 했지만 불법 중에선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만일 누군가 모든 법이 공하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함께 지내고 함께 논의하면서 보살계를 펼치기에 적합한 이가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함께 지내면서 보살계를 말한다면 큰 죄를 얻는다.어째서인가? 공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이익되게 하지 못한다. 그래서 대승경전에서 말하기를, ‘공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리석은 사람만도 못하다’고 하였다. 어째서인가? 어리석은 사람은 물질[色]을 나[我]라 말하고 나아가 식(識)을 나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견(我見)을 가진 이는 불법을 파괴하지 않지만 공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는 불법을 영구히 파괴하여 없어지게 한다. 아견을 일으키는 사람은 삼악(三惡)에 이르지 않지만, 공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널리 남들에게 말하는 이런 사람은 반드시 아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아견을 가진 사람은 삼보(三寶)를 비방하지는 않지만 함부로 공을 말하는 사람은 삼보를 비방한다. 내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중생을 속이지 않으며, 실성(實性)을 비방하지 않으며, 법성을 해치지 않으며, 중생을 해치지 않으며, 해탈을 획득해서 남들에게 금계를 훼범(毁犯)이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공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모든 법을 비방하며, 실성(實性)을 이해하지 못하며, 법성(法性)을 이해하지 못하며, 해탈을 방해하며, 여러 중생들과 함께 나쁜 지식(知識)을 짓는다. 자신이 계(戒)를 지키지 못하고 남들에게 금계를 범하라고 가르친다. 언제나 짓는 것도 없고 받는 것도 없다고 선설(宣說)하기를 즐긴다. 그리하여 여러 중생들의 지옥을 증장(增長)시킨다. 이렇기 때문에 무상불법(無上佛法)을 멀리 떠났다고 하는 것이다.어떤 것을 공(空)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는가? 만일 비구나 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수공(受空)을 믿지 않고 공을 이해하지 못하고 법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것을 공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어째서인가? 모든 법은 본성이 자공(自空)하여 인연공(因緣空)이 없다고 말하며, 모든 법이 또한 처소(處所)가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만일 처소가 없다면 어떻게 공이라고 하겠는가? 이것을 공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어떤 것을 참으로 공의 뜻을 이해한다고 하는가? 만일 비구나 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모든 법에 성품이 없다고 하면 이것을 공이라 하며, 법은 또한 공한 것이 아니다 하면 이것을 공을 이해한다고 한다. 이렇게 이해하는 이는 뜻을 해치지 않으며 삼보를 비방하지 않는다. 이것을 바르게 이해해서 잘못됨이 없다고 한다.
어떤 것이 바른 이해인가? 예를 들어 색(色)을 말하는 색에서 열반에 이르기까지 온갖 모습과 성품이 없다는 것을 분별하면 이것이 색공(色空)이며, 색이 진실로 세상에 유포했다고 하면 이것이 불공(不空)이다. 이러하기 때문에 색을 말하는 하나의 법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이 두 가지를 이해하기 때문에 법이기도 하고 공이기도 하니, 결코 심중에서 망령되게 헤아려 집착을 일으켜선 안 된다. 이것을 참으로 공의 뜻을 이해한다고 한다. 그래서 대승경전에서는 게송[偈]으로 말하였다.
한 법이 많은 이름을 지녔지만
실법(實法) 중에는 없나니
법성(法性)을 잃지 않기 때문에
세간에 유포하여 간다네.
색(色)에서 열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름들이 있는데, 색에는 자성(自性)이 없다. 자성이 없는 것은 많은 이름도 없으니, 많은 이름이 있는 것을 유포(流布)라 한다. 이렇기 때문에 잡장(雜藏) 중에서 말하기를,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유포에 집착하지 않는다. 보거나 듣거나 생각하고 깨달아 아는 것으로 색명(色名)에서 열반명까지를 유포라 하는데,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끝내 이를 말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유포성(流布性)이 있기에 물들어 집착함이 생긴다. 어째서인가? 무너뜨리고 전도(顚倒)하기 때문이다. 물들어 집착함이 있는 것을 전도라 하지만 여래는 모든 악견(惡見)을 이미 끊었기 때문에 물들어 집착하지 않는다.
보지 않으며, 말하지 않으며, 물들어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정견(正見)이라 한다. 그래서 여래께서는 가전연 비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전연아, 나의 제자는 지정(地定)ㆍ수화풍정(水火風定)ㆍ공정(空定)ㆍ식정(識定)ㆍ무소유정(無所有定)ㆍ비유상비무상정(非有想非無想定)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 세계[此世]도 아니고 다른 세계[他世]도 아니며, 해도 아니고 달도 아니며, 보는 것도 아니고 듣는 것도 아니며, 헤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취하거나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각(覺)도 아니고 관(觀)도 아닌 것을 선정(禪定)이라 한다.”어떤 것을 일러 비구가 지정(地定)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비구는 지(地)에 대하여 지상(地相)을 짓지 않으며 각관에 이르기까지 각관상(覺觀相)을 짓지 않는다. 이것을 지정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각관에 이르기까지 역시 이와 같다.만일 비구가 능히 이처럼 선정을 수집(修集)한다면 즉시 여러 하늘ㆍ석천(釋天)ㆍ범천(梵天)과 시방의 모든 부처님 및 대보살의 찬탄을 받는다. 다들 나무대사(南無大士) 나무대사 하지만 나는 도무지 너희가 무슨 선정에 있으며 무슨 선정을 수집하는지 모르겠다. 만일 지상(地相)과 지명(地名)에 물들어 집착한다면, 반드시 알라. 그는 이름이 불수공(不修空)이며, 만일 색(色) 중의 명(名)과 상(相)에 물들어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는 이름이 수공(修空)으로 유포되기 때문에 지상과 지명을 선설(宣說)한다.만일 색상과 색명에 물들어 집착하면 증장상(增長相)이라 하며, 색상과 색명을 깨뜨리면 방사상(放捨相)이라 한다. 증장도 방사도 하지 않는 것이 중도(中道)이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상(相)을 수집하므로 지정(地定)에서 각관(覺觀)까지를 수행한 비구라 한다. 비구가 만일 이와 같이 선정을 수집하면 실상(實相)이라 한다. 실상이기 때문에 비구는 법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없으며, 모든 법의 성품은 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또한 비구는 언급하는 것이 없다. 만일 모든 법이 말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말할 수 없다는 말을 하며, 만일 말할 수가 없다면 어떻게 듣는다고 말하는가? 만일 말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다면 어떻게 모든 법이 선설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겠는가? 알 수 있기 때문에 말하여서 유포시키는 것이다.어리석은 이는 세류포(世流布)를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므로 모든 법에서 여덟 가지의 오류를 일으킨다. 그 첫째는 성류(性謬)이며, 둘째는 분별류(分別謬)이며, 셋째는 취류(聚謬)이며, 넷째는 아류(我謬)이며, 다섯째는 아소류(我所謬)이며, 여섯째는 애류(愛謬)이며, 일곱째는 불애류(不愛謬)이며, 여덟째는 비애비불애류(非愛非不愛謬)이다. 이 여덟 가지 오류 중 처음의 세 가지 오류가 곧 모든 오류의 근본이다. 성(性)에 물들어 집착하고 명(名)에 물들어 집착하여 유포란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로부터 전전(展轉)하여 한없는 오류를 일으킨다. 아류와 아소류를 아견(我見)이라 한다. 아견은 다시 제견(諸見)의 근본이 된다. 이 두 가지의 오류는 교만을 따라 생기기 때문에 교만은 제견의 근본이다. 뒤의 세 가지 오류는 삼독(三毒)을 따라 생긴다. 이 여덟 가지 오류가 모든 맺힌 번뇌를 섭취하여 모든 중생을 삼유(三有)에 회전하게 한다.어떤 것을 성류라 하는가? 만일 색이 색상(色想)을 짓고, 나아가 중(重)이 중상(重想)을 지을 경우 이것을 성류라 한다. 어떤 것을 분별류라 하는가? 만일 색을 분별하여 이것은 색이고 이것은 색이 아니라고 하며, 이것은 볼 수 있고 이것은 볼 수 없다고 하며, 이것은 대(對)가 있고 이것은 대가 없다고 하면 이것을 분별류라 한다. 어떤 것을 취류라 하는가? 만일 색 중에서 나와 중생ㆍ사부(士夫)ㆍ수명(壽命)을 보고, 옥사(屋舍)ㆍ사중(四衆)ㆍ군려(軍旅)ㆍ의식(衣食)을 보고, 연화(蓮華)ㆍ거승(車乘)ㆍ수목(樹木)ㆍ적취(積聚)를 보아, 이런 것들 속에서 각기 하나의 상(相)을 짓는다면 이것을 취류라 한다.어떤 것을 일러 아류라 하며 아소류라 하는가? 유루(有漏) 중에서 나와 아소를 취하며, 무량세 중에서 항상 나와 아소를 헤아리는데 집착하여 취하면 이것을 아류라 하며 아소류라 한다. 어떤 것을 애류라 하는가? 정물(淨物) 중에서 탐하여 집착하는 마음이 생기면 이것을 애류라 한다. 어떤 것을 불애류라 하는가? 부정물(不淨物) 중에서 진에(瞋恚)하는 마음이 생기면 이것을 불애류라 한다. 어떤 것을 비애비불애류라 하는가? 모든 정물 및 부정물 중에서 탐에(貪恚)하는 마음이 생기면 이것을 비애비불애류라 한다. 이상이 여덟 가지 오류이다.보살마하살이 어떻게 이 여덟 가지 오류를 알 수 있는가? 네 가지 일을 응당 추구해야 한다. 어떤 것이 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추명(推名)이며, 둘째는 추물(推物)이며, 셋째는 추성(推性)이며, 넷째는 추분별(推分別)이다. 어떤 것을 추명이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오직 이름의 이름됨만 알고 이름의 사물을 보지 못하면 이것을 추명이라 한다. 어떤 것을 추물이라 하는가? 오직 그것이 사물이란 것만 알고 그 나머지를 모르면 이것을 추물이라 한다. 어떤 것을 추성이라 하는가? 이름의 유포함을 아는 것을 추성이라 한다. 어떤 것을 추분별이라 하는가? 이름에서 사물을 보지 못하고 사물에서 이름을 보지 못하면 이것을 추분별이라 한다.보살마하살이 어째서 이름을 추구하는가? 이름과 실명(實名)을 알기 때문에 이름을 추구한다. 보살이 체관(諦觀)하는데 만일 색(色)의 이름이 없다면 어떻게 색을 말하며, 만일 색을 말할 수 없다면 어떻게 색을 관찰하며, 만일 색을 관찰할 수 없다면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는가? 이 때문에 보살이 이름을 알기를 추구한다. 보살이 어째서 사물을 추구하는가? 만일 사물이 없다면 어디에 이 이름이 있겠는가? 그리고 이 이름은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만일 말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어찌 모든 법의 성품을 알게 된다고 말하겠는가? 이 때문에 보살이 사물을 추구한다. 보살이 어째서 성품을 추구하는가? 보살마하살은 색성(色性)에서부터 나아가 열반성에 이르기까지를 알며, 색유포(色流布)에서부터 나아가 열반유포에 이르기까지를 안다. 어떤 것을 색성을 안다고 말하는가? 이 색성이란 거울 속의 모습ㆍ환술ㆍ변화ㆍ꿈ㆍ그림자ㆍ메아리ㆍ치열할 때의 불꽃 또는 물속의 달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안다. 이것을 성품을 추구한다고 한다.보살이 어째서 분별을 추구하는가? 보살마하살이 만일 이름을 분별하고, 사물을 분별하고, 성품을 분별하고, 법을 분별하고, 비법(非法)을 분별하고, 유와 무, 시색(是色)과 비색(非色), 가견(可見)과 불가견(不可見)을 분별하면 이것을 분별이라 한다. 분별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며 이 때문에 보살이 분별을 추구한다.
보살마하살은 팔류(八謬)를 깨뜨리기 위해 이 네 가지 일을 추구한다. 보살이 어째서 이 팔류를 깨뜨리는가? 팔류는 사견(邪見)을 증장(增長)하는 인연이기 때문이다. 사견이 증장하기 때문에 번뇌가 증장하고, 번뇌가 증장하기 때문에 생사가 증장하고, 생사가 증장하기 때문에 십이인연이 증장한다. 보살이 만일 이와 같은 네 가지 일을 수집하면 사견을 끊어 없애고, 사견을 끊어 없애면 번뇌가 없어지고, 번뇌가 없어지면 생사가 없어지고, 생사가 없어지면 십이인연이 멸함을 알고, 십이인연이 멸함을 알면 무상도(無上道)를 닦고, 무상도를 닦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면 중생들의 이와 같은 여덟 가지 오류를 능히 깨뜨리고 중생들이 능히 세류포를 알아서 진실의를 말하도록 가르친다. 만일 중생의 이와 같은 여덟 가지 오류를 제거하여 없애면 대열반이라 한다. 능히 현세의 큰 자재함을 얻으며, 크게 신통함을 얻으며, 큰 방편을 얻으며, 큰 선정을 얻으며, 큰 일체지를 얻으며, 퇴전(退轉)하지 않고 타락하지 않는 곳을 구하여 얻으므로 이를 대열반이라 한다.큰 자재함을 얻으면 보살마하살이 다섯 가지 일을 성취한다. 그 첫째는 마음에 적정(寂靜)함을 얻는 것이며, 둘째는 세간의 일과 출세간의 일을 분명하게 아는 것이며, 셋째는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나고 죽는 가운데 처해 있어도 마음에 걱정이나 번뇌가 없는 것이며, 넷째는 여래의 깊고 깊은 비장(秘藏)을 분명하게 아는 것이며, 다섯째는 보리의 마음을 깨뜨릴 자가 없는 것이다.보살은 어째서 마음의 적정을 얻는가? 능히 현재 중생의 번뇌를 깨뜨릴 수 있기 때문에 마음에 적정을 얻는다. 중생을 조복(調伏)하여 불법을 얻으려는 것이기 때문에 세간의 일과 출세간의 일을 분명히 알며, 중생으로 하여금 이근(利根)을 얻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기꺼이 나고 죽는 가운데 처해서도 마음에 걱정이나 번뇌가 없으며, 중생으로 하여금 의심을 깨뜨리게 해서 여래의 깊고 깊은 비밀스런 뜻을 받아 지니고 독송해서 분명히 알도록 한다. 법을 비법(非法)이라고 말하면 능히 불법을 더럽히고 멸하며, 범(犯)을 비범(非犯)이라고 말하면 축생의 여덟 가지 부정한 사물을 받는다. 이러한 악인들을 물리치기 위해 여래의 깊고 깊은 비밀스런 뜻을 받아 지녀 해설한다. 비록 외도(外道)의 미세한 글을 알아서 그 뜻의 취지를 논하여 풀이한다 하더라도 결코 보리의 마음을 깨뜨리지 않는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일은 보살의 보리사(菩提事)를 섭취하는 것으로서 또한 오사(五事)라 하며, 또한 다섯 가지 공덕(功德)이라 한다. 어떤 것을 보리사라 하는가? 능히 자신을 이익되게 하여 중생을 조복하고, 불법을 수지하여 보살이 닦는 금계(禁戒)를 깨뜨리지 않고, 보리의 마음이 결코 기울거나 동요하지 않으며, 열심히 닦아 정진해서 사견(邪見)들을 깨뜨리고 삼승(三乘)의 도를 말하는 것이다. 보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일을 성취하는 데는 세 가지가 있으니 상ㆍ중ㆍ하이다. 두 가지를 구족하면 하(下)라 하고, 세 가지를 구족하면 중(中)이라 하고, 네 가지를 구족하면 상(上)이라 한다.
6) 불가사의품(不可思議品)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불가사의라 말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자재삼매(自在三昧)를 얻어서 발심(發心)을 하면 이미 무량한 공덕을 얻은 것이며, 업(業)을 짓지 않고도 과보를 얻고, 성도(聖道)를 닦지 않고도 성심(聖心)을 얻는다. 이것을 보살의 불가사의라 한다. 약간의 선업(善業)을 짓고도 큰 과보를 얻으며, 보리를 위하기 때문에 무량한 세월 동안 온갖 고행을 닦는다. 보살이 진실로 중생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서 능히 이들을 위하여 부지런히 고행을 닦으며, 짓는 이도 없고 받는 이도 없다는 것을 알아서 능히 받는 이를 짓는 이것을 보살의 불가사의라 한다.불가사의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육통(六通) 불가사의이며, 둘째는 법(法)불가사의이며, 셋째는 공생(共生)불가사의이며, 넷째는 불공생(不共生)불가사의이며, 다섯째는 공불공(共不共)불가사의이다. 어떤 것을 육통이라 하는가? 신족(神足)ㆍ천이(天耳)ㆍ천안(天眼)ㆍ타심지(他心智)ㆍ숙명지(宿命智)ㆍ누진지(漏盡智)를 육통불가사의라 한다. 어떤 것을 법불가사의라 하는가? 법이란 단바라밀ㆍ시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바라밀ㆍ반야바라밀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법불가사의라 한다.어떤 것을 신통(神通)이라 하는가? 신통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변(變)이고, 둘째는 화(化)이다. 어떤 것을 변이라 하는가? 진동(振動)ㆍ출화(出火)ㆍ광명(光明)ㆍ시현(示現)ㆍ자전기신(自轉其身)ㆍ혹현거래(或現去來)ㆍ현종종색(現種種色)ㆍ대중은현(大衆隱顯)ㆍ장타신통(障他神通)ㆍ언사무애(言辭無恚)ㆍ시타억념(施他憶念)ㆍ시중환락(施衆歡樂)ㆍ방대광명(放大光明)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변신통(變神通)이라 한다. 어떤 것을 진동이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자재삼매(自在三昧)를 얻어 능히 사택(舍宅)ㆍ취락(聚落)ㆍ촌읍(村邑)ㆍ성곽ㆍ국토를 움직이되, 사천하(四天下)에서부터 천세계(千世界)ㆍ이천세계ㆍ삼천대천세계ㆍ백 삼천대천세계ㆍ천 삼천대천세계ㆍ천만 삼천대천세계 더 나아가 무량무변세계까지 이르는 것을 진동이라 한다. 어떤 것을 출화(出火)라 하는가? 몸 위에서는 불을 내고 몸 아래서는 물을 내며, 몸 위에서는 물을 내고 몸 아래서는 불을 내며, 혹은 온 몸에 불을 내서 갖가지 색을 만들되, 청ㆍ황ㆍ적ㆍ백ㆍ자ㆍ흑의 파리(頗梨:수정)를 만드는 것을 출화라 한다. 어떤 것을 광명이라 하는가? 몸에서 광명을 내어 집과 취락ㆍ촌읍에서부터 무량무변의 삼천대천세계에 이르기까지를 가득 채우는 것을 광명이라 한다. 어떤 것을 시현(示現)이라 하는가?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지옥ㆍ축생ㆍ아귀ㆍ천인(天人)ㆍ잡류(雜類)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迦樓羅)ㆍ긴나라(緊那羅)ㆍ마후라가(摩羅伽)를 나타내어 보여주며, 혹은 다시 시방세계의 무량무변한 항하(恒河)의 모래처럼 무수한 모든 국토와 그 불신(佛身) 및 모든 대보살을 나타내어 보여주고, 모든 부처님의 이름을 말하여 모든 중생들이 듣고 알게 하는 것, 이것을 시현이라 한다.어떤 것을 전(轉)이라 하는가? 모든 불보살이 자재삼매를 얻어 능히 땅을 바꾸어 불을 만들고 불을 바꾸어 물을 만들며 바람도 또한 이와 같이 하고, 색을 바꾸어 향을 만들고 향을 바꾸어 색을 만들며, 색ㆍ향ㆍ미ㆍ촉을 바꾸어 초목ㆍ의식(衣食)ㆍ영락(瓔珞)ㆍ기물(器物)ㆍ석패(石貝)ㆍ유리ㆍ진주ㆍ금은 등의 산을 만들고, 좋은 색을 나쁜 색으로 만들고 나쁜 색을 좋은 색으로 만드는 것, 이것을 전이라 한다.
어떤 것을 거래(去來)라 하는가? 혹은 범처(梵處)에 갔다가 범처에서 다시 돌아오며, 혹은 아가니타천 위에 갔다가 다시 거기서 돌아오며, 혹은 동쪽ㆍ남쪽ㆍ북쪽을 가는 등 사유상하(四維上下)에서부터 나아가 무량무변 세계에 이르기까지를 또한 모두 이와 같이 하며, 먼 것을 가깝게 만들고 가까운 것을 멀게 만들며, 수미산을 작은 먼지로 만들고 작은 먼지를 수미산으로 만드는 것, 이것을 거래라 한다.어떤 것을 종종색(種種色)이라 하는가? 능히 자신을 나타내어 남녀나 크고 작은 아이들, 수림과 초목을 만드는 것, 이것을 종종색이라 한다. 어떤 것을 대중은현자재(大衆隱顯自在)라 하는가? 대중을 자기 몸 안에 받아들여도 마음이 두렵거나 몸에 지장을 받지 않으며, 이들 대중들이 모두 저마다 내왕한 처소를 모르고, 가끔 바라문 대중[婆羅門衆]에게 가서 그들과 같은 모습을 나타내면, 모습이 같고 옷이 같고 형질(形質)의 장단이 그들과 차이가 없고 음성도 구별이 없으며, 그들이 말하는 것도 말하지만 그들이 말하지 못하는 것도 말하며, 방편을 써서 그들을 잘 인도하고, 자신을 보여주고는 금방 없어져도 그들은 무엇이 나타났다가 없어졌는지, 인(人)인지 천(天)인지 모른다. 이들 바라문 대중처럼 찰리중(刹利衆)ㆍ대회중(大會衆)ㆍ장자중(長者衆)ㆍ사천왕중(四天王衆)ㆍ삼십삼천중(三十三天衆)ㆍ야마천중(夜摩天衆)ㆍ도솔타천중(兜率陀天衆)ㆍ화자재천중(化自在天衆)ㆍ타화자재천중(他化自在天衆)ㆍ범중(梵衆)ㆍ범사천중(梵師天衆)ㆍ대범천중(大梵天衆)ㆍ소광천중(少光天衆)ㆍ무량광천중(無量光天衆)ㆍ정광천중(淨光天衆)ㆍ소선천중(少善天衆)ㆍ대선천중(大善天衆)ㆍ무변선천중(無邊善天衆)ㆍ무운천중(無雲天衆)ㆍ복생천중(福生天衆)ㆍ광과천중(廣果天衆)ㆍ무난천중(無天衆)ㆍ무광천중(無誑天衆)ㆍ선견천중(善見天衆)ㆍ애견천중(愛見天衆)ㆍ아가니타천중(阿迦膩吒天衆)들이 또한 이와 같다. 이와 같은 여러 천중(天衆)들 속에서 잠깐 사이에 백 번을 나타났다가 백 번을 사라지며, 천 번을 나타났다가 천 번을 사라지며, 천만 번을 나타났다가 천만 번을 사라진다. 이런 것을 대중은현자재라 한다.어떤 것을 장타신통(障他神通)이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은 불세존(佛世尊)을 제외하고는 동행(同行)ㆍ동성(同性)ㆍ동정(同定)이다. 후변생(後邊生)보살이 얻은 신통과 승여(勝餘) 내외의 모든 신통을 장타신통이라 한다. 어떤 것을 언사무애(言辭無礙)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설법을 할 때, 말이 끝이 없으며 의미가 끝이 없으며 요설(樂說)이 끝이 없으니 이것을 언사무애라 한다. 어떤 것을 시타억념(施他憶念)이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설법을 할 때 무량 중생이 무량세에서 잃어버린 모든 생각들을 모두 다시 기억하게 하는 것을 시타억념이라 한다.어떤 것을 시타환락(施他歡樂)이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설법을 할 때 중생들의 신심(身心)을 안락케 해 번뇌장을 깨뜨리게 함으로써 듣는 이가 제삼선(第三禪)처럼 즐거워하고 사대(四大)의 모든 악이 일시에 소멸하여 모든 악귀들이 그들의 편익을 얻지 못하는 것을 시중환락(施衆歡樂)이라 한다.어떤 것을 방대광명(放大光明)이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큰 광명을 방출하여 시방의 무량세계를 두루 비추고, 지옥에 가서 지옥의 고통을 깨뜨리고, 방일천(放逸天)에 가서 인법(人法)을 교수(敎修)하여 인신(人身)을 얻어서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오도록 하며, 시방세계의 무량 보살을 불러서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 모아 중생을 가르치는 것을 방대광명이라 한다. 이런 것들을 변신통이라 하는데 법성(法性)을 회전시키기 때문에 변신통이라 하는 것이다.어떤 것을 화신통(化神通)이라 하는가? 사물이 없는데 사물을 만들어 내므로 화신통이라 한다. 몸으로 화하기도 하며 소리로 화하기도 한다. 화신(化身)은 자기몸을 닮기도 하고 다른 이의 몸을 닮기도 하는데 제근(諸根)이 구족한 경우도 있고 구족하지 않은 경우도 있으며 나머지는 전(轉) 속에서 다시 또 변화하여 무량한 몸이 된다. 제불보살이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무량한 몸으로 화하여 무량한 세계를 두루 비추는 것이다. 부처님이나 보살이 화신(化身)으로 두루 나타나는데 환(幻)인 경우도 있고 진실인 경우도 있다. 의식(衣食)ㆍ금은ㆍ유리ㆍ진주ㆍ파리(頗梨)ㆍ가패(珂貝)의 경우 또한 이와 같으니, 중생의 가난과 고통을 깨뜨리기 때문에 화신이라 한다.화성(化聲)이란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호성(好聲)ㆍ질성(疾聲)ㆍ묘성(妙聲)ㆍ자설의성(自說義聲)ㆍ타설의성(他說義聲)ㆍ무의성(無義聲)ㆍ설법성(說法聲)ㆍ교화성(敎化聲)으로 화하여 나타나는 이들 여러 소리가 중생들의 방일(放逸)한 마음을 깨뜨릴 수 있기 때문에 화성이라 한다. 부처님과 보살의 소리는 심원(深遠)하기가 천둥과 같으며, 가릉빈가(迦陵頻伽)새의 소리나 사람이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소리, 변만성(遍滿聲)ㆍ사유성(思惟聲)ㆍ요료성(了了聲)ㆍ이해성(易解聲)ㆍ희문성(喜聞聲)ㆍ무소착성(無所箚聲)ㆍ무가가성(無可呵聲)ㆍ무진성(無盡聲)과 같다. 보살마하살의 이와 같은 여러 소리들은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천중(天衆)ㆍ인중(人衆)ㆍ성문중(聲聞衆)ㆍ벽지불중(辟支佛衆)ㆍ보살중이 가깝거나 멀거나 간에 빠짐없이 얻어 듣는다. 이러한 소리들에서 갖가지 법이 나와서 중생을 이익되게 한다.자화성(自化聲)은 자설법(自說法)과 같은데 방일한 중생을 위하기 때문이며, 타화성(他化聲)은 부처님의 화신이 남을 위하여 설법하는 것과 같은데 방일한 중생을 위하기 때문이다. 무의성(無義聲)은 허공에서 나오는 소리와 같으며, 설법성(說法聲)은 어리석은 중생을 위한 것이며, 교화성은 방일한 자를 위하여 방일하지 않는 일을 증장(增長)하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이처럼 신통한 일들을 화출(化出)하여 그 전전(展轉)이 무량하므로 이를 헤아려 칭할 수는 없다.이처럼 무량하여 칭계할 수 없는 신통과 변화는 두 가지 일을 위한 것이다. 그 첫째는 중생에게 신심(信心)이 생기게 하여 불법을 지향하게 하는 것이며, 둘째는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중생에게 무상복전(無上福田)을 보여주는 것이다.어떤 것이 숙명지(宿命智)인가? 보살마하살이 숙세(宿世)로부터 이들 중생과 함께 공주공행(共住共行)함을 스스로 알며, 명자(名字) 및 타명자(他名字)를 스스로 알며, 자기 종성(種姓)과 다른 종성을 알며, 스스로 먹고 마시는 것과 다른 이가 먹고 마시는 것을 알며, 고락(苦樂)과 다른 이의 고락을 스스로 아는 것이다. 보살이 이러한 숙세를 스스로 알고, 또한 그들을 교화하여 숙세를 알게 하고, 무량한 세간의 일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알게 하며, 또한 그들을 교화하여 무량세의 거친 것이나 미세한 것이나 모든 것을 알게 하니, 이것을 숙명지라 한다. 이 숙명지의 세력(勢力)을 쓰기 때문에 능히 본석(本昔)의 보살인연을 말해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불법에 대해 현재에 신심(信心)이 생기도록 한다. 모든 보살의 본인연경(本因緣經)ㆍ사타가경ㆍ아부타나경(阿浮陀那經)을 말하고, 업인연(業因緣)의 악업과 선업을 말하여 중생의 상견(常見)과 무상견(無常見)을 깨뜨리므로 보살의 숙명지라 한다.어떤 것을 천안(天眼)이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청정한 천안으로 인안(人眼)을 넘어서서 모든 중생이 이승에서 죽어서 저승에 태어남을 보며, 좋은 모습이든 나쁜 모습이든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간에 중생의 선업ㆍ악업 등과 선악과를 분명히 보며, 늙든 젊든, 스스로 짓든 남을 시켜 짓든, 거칠든 가늘든, 인천의 모습[人天色]이든, 삼악도의 모습이든, 나아가 무량한 시방세계의 무량한 불토(佛土) 중생의 모습이든 간에 무량한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의 연설법시(演說法時)를 분명히 안다. 이것을 천안통(天眼通)이라 한다.어떤 것을 천이(天耳)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듣는 소리는 하늘 소리 같고 사람 소리 같고, 거룩한 소리 같고 거룩하지 않은 소리 같고, 거친 소리 같고 미세한 소리 같고 화성(化聲) 같고 실성(實聲) 같고, 먼 소리 같고 가까운 소리 같다. 하늘 소리란 욕천(欲天)으로부터 아가니타와 나아가 상방(上方) 무량세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하늘의 음성을 모두 다 듣기 때문에 하늘 소리라 한다. 사람 소리란 시방 무량세계의 것이며, 거룩한 소리란 모든 부처님과 보살ㆍ성문ㆍ연각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불법을 선설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가령 보시ㆍ지계의 선업을 찬탄해서 악업을 깨뜨리며, 불경을 독송하고 해설하며 베껴 쓴다면, 이것을 거룩한 소리라 한다. 거룩하지 않은 소리란, 이른바 거짓말ㆍ이간질하는 말ㆍ험악한 말ㆍ내용 없는 말 등의 말과, 아래로 삼악도에 이르고 위로 욕계(欲界)에 이르기까지에 있는 모든 하늘의 시방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이와 같은 네 가지 험악한 말을 거룩하지 않은 소리라 한다. 어떤 것이 조잡한 소리인가? 대중이 내는 소리[大衆聲]를 말한다. 대중이 내는 소리가 지옥성ㆍ뇌진성(雷震聲)ㆍ패성(貝聲)ㆍ고성(鼓聲)인 바, 이것이 조잡한 소리이다. 미세한 소리란 속삭거리는 소리ㆍ분명하지 않은 소리ㆍ타비라국성(陀毘羅國聲)ㆍ속특성(粟特聲)ㆍ월지성(月支聲)ㆍ대진성(大秦聲)ㆍ안식성(安息聲)ㆍ진단성(眞丹聲)ㆍ법사성(法沙聲)[법(法)은 거란본에서는 거(佉)로 되어 있다.]ㆍ나형성(裸形聲)ㆍ선비성(鮮卑聲)을 말하는 이와 같은 변지(邊地)의 소리를 미세한 소리라 한다. 어째서인가? 질투와 번뇌의 인연으로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보살이 이와 같이 천이(天耳)를 성취하여 모든 중생들이 내는 선성(善聲)ㆍ찬탄ㆍ공경을 듣고, 불법을 가르쳐 안주케 해서 신심(信心)이 생기도록 하며, 널리 십이부경과 보살의 비장(秘藏)을 분별한다. 만일 나쁜 소리를 들으면 즉시 가책(呵責)하고 악업의 허물을 말해서 대치문(對治門)을 연다. 이것을 천이통(天耳通)이라 한다.어떤 것을 타심지통(他心智通)이라 하는가? 보살이 시방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공번뇌심(共煩惱心)과 불공번뇌심, 번뇌계심(煩惱繫心) 및 불계심(不繫心), 선원심(善願心)과 악원심, 의심과 무의심(無疑心), 상심(上心)과 하심, 탐ㆍ에ㆍ치심, 욕계심ㆍ색계심과 무색계심, 나아가 모든 축생의 중생이 받는 고락심(苦樂心)과 무고무락심(無苦無樂心), 일심(一心)으로 한 중생을 보는 마음 및 일심으로 무량한 중생을 보는 마음을 타심지통이라 한다.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타심지통이 중생의 근기의 예리하고 둔함을 알고 중생의 모든 종성(種性)을 알기 때문에 이 중생이 선심이 있다는 것을 알면 곧 십이부경과 보살장을 연설(演說)하고, 악심이 있음을 알면 곧 가책하고 악업의 허물을 말한다. 이것을 보살의 타심지통이라 한다.누진지통(漏盡智通)이란, 보살마하살이 번뇌를 끊기 위해 도를 수집(修集)하며, 스스로 번뇌를 깨뜨리기 위해 도를 수집하며, 중생들의 모든 번뇌를 깨뜨리기 위해 법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유루(有漏)의 교만한 중생을 깨뜨리고 비도(非道)로 도(道)를 가늠하는 중생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다. 보살마하살이 비록 중생을 위해 누(漏)가 다하는 법을 말해도 스스로는 누가 다한다고 하지 않으며, 비록 누가 다하지 않아도 물들어 더럽혀지지 않는다. 보살마하살의 누진지통은 불가사의하니, 누진통을 닦아서 중생을 교화하여 교만을 깨뜨리기 때문에 누진통이라 한다.무엇을 법(法)이라 하는가? 단바라밀에서부터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의 과(果)를 법이라 한다. 이 여섯 가지의 과에는 모두 네 가지 일이 있다. 첫째는 도를 수집(修集)하는 것이며, 둘째는 보리를 장엄하는 것이며, 셋째는 자타를 이익되게 하는 것이며, 넷째는 후세의 대선과(大善果)를 얻는 것이다.
보살은 보시를 행하여 간탐을 깨뜨리고, 보리의 도를 장엄해서 중생을 섭취하고, 보리의 도를 위하여 보시를 행하게 한다. 보시를 할 때 하고 싶어하고 보시를 한 뒤에는 기뻐하는 것을 자리(自利)라 하며, 중생의 기갈ㆍ고뇌ㆍ한열ㆍ공포를 끊어 없애는 것을 이타(利他)라 하며, 이 몸을 버리고 커다란 자재(自在)를 획득하여 재물이 넉넉하고 존귀한 것을 대과(大果)라 한다. 이상을 보살 보시의 네 가지 일이라 한다.보살마하살은 금계를 수지하여 악계(惡戒)를 제멸(除滅)하고, 보리의 도를 장엄하여 중생을 섭취하고, 보리의 도를 위해 금계를 수지하게 한다. 계에 대한 두려움을 깨뜨려 벗어남으로써 누워도 안락하고 깨어나도 안락하여 마음에 회한이 없이 기쁘고 즐거운 것을 자리(自利)라 하며, 모든 중생에 대하여 해치려는 마음이 없고 중생들에게 무외(無畏)를 베푸는 것을 이타(利他)라 한다.
계(戒)를 지키는 것으로 인해 인천(人天)의 즐거움을 받아서 도를 얻어 열반하는 것을 대과(大果)라 하며, 이상을 보살의 계를 지키는 네 가지 일이라 한다.
보살마하살은 인욕(忍辱)을 닦아 불인(不忍)을 깨뜨리고, 보리의 도를 장엄하여 중생을 섭취하고, 보리의 도를 위해 인욕을 닦게 한다. 자신과 남을 포외(怖畏)로부터 멀리 떠나게 하면 이것을 자리이타(自利利他)라 한다.
인욕의 인연으로 진심(瞋心)이 없고 권속(眷屬)이 무너지지 않고 고뇌를 받지 않고, 마음에 회한이 없으니 이 육신을 버리고 나서 인천(人天)의 즐거움을 받아 도를 얻어 열반하면, 이를 대과(大果)라 한다. 이상을 보살 인욕의 네 가지 일이라 한다.보살마하살은 열심히 닦고 정진해서 게으름을 깨뜨리고, 보리의 도를 장엄하여 중생을 섭취하고, 보리의 도를 위해 닦아 정진하게 한다. 누워도 편안하고 깨어나도 편안해서 모든 번뇌를 떠나 선법을 증장(增長)하여 몸이 안락함을 받으면, 이것을 자리(自利)라 한다. 보살이 정진하여 중생을 번뇌하지 않게 하고 가매(呵罵)를 던져버리면 이것을 이타(利他)라 한다. 이 육신을 버리고 나서 인천(人天)의 즐거움을 받아 몸이 대력(大力)을 얻어 보리의 도를 획득하면, 이것을 대과(大果)라 하며, 이상을 보살이 정진하는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보살은 선정을 닦아 난심(亂心)을 깨뜨리고, 보리의 도를 장엄해서 중생을 섭취하고, 보리의 도를 위하여 선정을 닦게 한다. 현세에 낙을 받아 신심(身心)이 적정(寂靜)하면 이를 자리라 하며, 신심이 적정해서 중생을 번뇌하지 않게 하면 이것을 이타라 한다. 이 육신을 버리고 청정한 몸을 받아 안온(安隱)하고 쾌락하여 도를 얻어 열반하면 이것을 대과라 하며, 이상을 보살 선정의 네 가지 일이라 한다.보살마하살은 지혜를 성취하여 무명(無明)을 깨뜨리고, 보리의 도를 장엄해서 사섭법(四攝法)으로써 중생을 섭취하고, 보리의 도를 위해 지혜를 수행하게 한다. 법계를 알아 몸이 안락을 받으면 이를 자리라 하며, 중생에게 능히 세간의 일과 출세간의 일을 가르치면 이를 이타라 한다. 능히 지혜와 번뇌의 두 장애를 깨뜨리면 이를 대과라 하며, 이상을 보살 지혜의 네 가지 일이라 한다.공생불가사의(共生不可思議)란 보살마하살이 숙명지(宿命智)가 아닌 것으로 숙세(宿世)의 일을 기억하여 중생의 선업과 악업 등을 관찰함으로써 고통받는 자와 함께 하며 이익되게 하려는 것이다.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 처하여 수명을 성취한 데는 세 가지의 뛰어남이 있다. 첫째는 수승(壽勝)이며, 둘째는 색승(色勝)이며, 셋째는 명칭승(名稱勝)이다. 처음 내려온 때 큰 광명을 놓아 시방을 두루 비추어서 처음으로 모태(母胎)에 들어갈 때와 머물 때와 나올 때를 스스로 분명히 알았으며, 열 방면(方面)을 향하여 일곱 걸음을 걸을 때도 아무도 붙들어주는 사람이 없이 이렇게 말하였다.
“나의 지금 이 몸은 최후변(最後邊)의 몸이다.”그리하여 여러 하늘의 귀신과 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가 온갖 꽃과 향과 미묘한 기악(伎樂)과 깃발과 덮개로써 공양을 드렸다. 삼십이상(三十二相)이 그 몸을 장엄하여 능승(能勝)할 자가 없고, 자선(慈善)의 힘으로 마병(魔兵)의 무리를 깨뜨리니, 몸 하나하나의 지절(支節)이 나라연이 얻은 대력(大力)과 같았다. 어린 나이에 세간의 일을 배우지 않고도 잘 알았으며, 스승 없이 배워도 저절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범천(梵天)이 중생들을 위해 바른 법륜(法輪)을 굴릴 것을 권청(勸請)하였고, 삼매(三昧)를 바로 받아들여서 천둥 소리를 진동하지 못하게 했다. 온갖 짐승들이 부모처럼 사랑하며 친부(親附)하였으며, 축생(畜生)이 부처님의 마음을 알아서 음식을 봉양하였다. 운신(雲神)이 비를 내려 그 몸을 씻기고, 나무들이 가지를 늘여뜨려 그 몸을 가려주었다. 도를 성취하는 육 년 동안에 악마가 항상 엿보고 노렸으나 그 헛점[短處]을 찾지 못했다. 언제나 선정에 들어 염심(念心)을 이루었으며, 각관(覺觀)의 일어남과 멸함을 잘 요지(了知)하였다. 이것을 보살의 공생불가사의라 한다.불공생(不共生)은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려는 것인 바, 마치 미친 사람이 여래를 보는 것으로 인해 다시 본심(本心)을 찾고, 소경이 눈을 뜨며, 도산(倒産)이 순산(順産)으로 바뀌고, 귀머거리가 소리를 듣고, 탐ㆍ진ㆍ치를 모두 멸하여 없애는 것과 같다. 이것을 불공생불가사의라 한다.또 공생(共生)이란 여래가 행한 불가사의이니, 항상 사자왕(師子王)처럼 오른쪽 옆구리를 대고 누웠으나 풀이나 잎이 어지러이 움직이는 것이 없었고 수람(隨藍)의 강한 바람도 옷자락을 흔들지 못했다. 발을 옮기어 걷는 모습이 사자왕이나 백아왕(白鵝王) 등과 같았으며, 걸으려고 할 때는 오른발을 먼저 떼었고, 가는 곳에는 언덕이나 웅덩이가 모두 평지가 되었다. 식사는 배를 가득 채우거나 지나침이 없이 밥알을 남겨 입에 두었다. 이것을 공생불가사의라 한다. 여래세존께서 열반하실 때는 땅이 진동하고 큰 광명을 놓아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었으며, 모두가 다 기악(伎樂)의 소리를 들었다. 이것을 공생불가사의라 한다.무엇을 공(共)이라 하는가? 성문이나 연각은 불공(不共)이다. 성문과 연각의 불공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세(細)이며, 둘째는 행(行)이며, 셋째는 계(界)이다. 여래께서 모든 중생의 무량한 번뇌를 다 알아서 무량하게 대치(對治)하는데, 이를 세라 한다. 행이란 육통(六通)ㆍ육바라밀ㆍ법성(法性)ㆍ자생(自生)불가사의라고도 한다. 계란 모든 세간의 걸림없는 지혜인 이것이 계이다. 이상을 불공불가사의라 한다. 성문 신통(神通)은 이천세계와 가지런하며 연각 신통은 삼천대천세계와 가지런하다. 모든 부처님과 보살은 무량무변의 세계에 통하니, 이것을 불공(不共)이라 한다. 공(共)이란 위의 세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 일체의 법을 말하는데, 이것을 공이라 한다.이 때문에 성문과 벽지불 등이 아직도 부처님이나 보살과 함께 공하지 못할 것이니, 더구나 범부(凡夫)ㆍ인천(人天)ㆍ외도(外道)의 사견(邪見)이겠는가? 보살마하살의 육바라밀의 법성은 공생(共生)과 불공생(不共生)이며, 성문과 연각은 공법(共法)과 불공법이다. 이것을 불가사의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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