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보살선계경(菩薩善戒經) 3권
보살선계경 제3권
구나발마 한역
최윤옥 번역
7) 조복품(調伏品)어떤 것을 보살조복(菩薩調伏)이라 하는가? 조복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성조복(性調伏)이며, 둘째는 중생조복이며, 셋째는 행(行)조복이며, 넷째는 방편조복이며, 다섯째는 숙(熟)조복이며, 여섯째는 숙인(熟印)조복이다.
성조복에는 착한 종자(種子)가 있어서 선법을 닦으며, 선법을 닦으므로 두 가지의 장애를 깨뜨리니, 첫째는 번뇌장이며, 둘째는 지혜장이다. 선법(善法)을 닦으므로 신심(身心)이 청정하고, 신심이 청정하므로 선우(善友)와 불보살을 만나든 만나지 못하든 능히 번뇌와 지혜의 두 장애를 깨뜨린다. 이것은 종기가 곪[熟]은 경우 의사를 만나든 만나지 못하든 모두 낫는 것과 같다. 비유하자면 와기(瓦器)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익었다고 말하며, 암라과(菴羅果) 등이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역시 익었다고 말한다. 모든 중생의 경우도 역시 이와 같다. 선도(善道)를 수집(修集)하여 그 결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자 할 경우, 이것을 숙(熟)이라 하며, 이것을 성조복이라 한다.중생조복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성문의 성품이 있어 성문도(聲聞道)를 얻는 것이며, 둘째는 연각의 성품이 있어 연각도를 얻는 것이며, 셋째는 불성이 있어 불도를 얻는 것이며, 넷째는 인천의 성품이 있어 인천락(人天樂)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그 네 가지인데 이것을 중생조복이라 한다.행조복에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근조복(根調伏)이며, 둘째는 선근(善根)조복이며, 셋째는 지혜조복이며, 넷째는 하(下)조복이며, 다섯째는 중(中)조복이며, 여섯째는 상(上)조복이다. 근조복은 근인연(根因緣)을 조복하기 때문에 수명이 길고 모습과 종성(種姓)이 뛰어나며 자재하고 큰 힘을 얻으며 말과 음성이 미묘하고 남자의 몸을 얻으며 또한 능히 이길 자 없음을 얻는다. 이 과보를 구족하게 성취한 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항상 중생을 위하여 고행(苦行)을 수집(修集)하며, 애초부터 마음에 우수나 회한이 없다. 이것을 근조복이라 한다. 선근조복은 그 성품이 악업을 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오개(五蓋)가 경미하여 모든 악한 각관(覺觀)이 점점 약해져서 청정하고 순수하고 선한 말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을 선근조복이라 한다. 지혜조복은 보살마하살이 지혜를 수집하기 때문에 심행(心行)이 광대(曠大)해서 경전을 잘 받아 지니고 독송하며, 선과 악의 뜻을 풀이해서 사유 분별하여 널리 중생을 위하여 말하는 것을 말한다. 지혜를 수집하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마음대로 얻는다. 만일 근조복ㆍ선근조복ㆍ지혜조복을 구족한다면 능히 지장(智障)을 청정히 할 수 있으며, 근조복을 구족하면 보장(報障)을 청정히 할 수 있으며, 선근조복과 지혜조복을 구족하면 지장 및 번뇌장을 청정히 할 수 있다. 하조복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무량세 중에서 선법을 수집하지 않는 것이며, 둘째는 선근(善根) 지혜를 추구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인 바, 이 때문에 이름을 하조복이라 한다. 중조복은 무량세 중에서 선법을 수집하여 선근조복을 얻었으나 지혜조복은 얻지 못한 것으로서 이를 중조복이라 한다. 상조복은 위의 세 가지를 구족한 것으로서 이를 상조복이라 한다.방편조복에는 스물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계증장(界增長)이며, 둘째는 현재인(現在因)이며, 셋째는 입어출가(入於出家)이며, 넷째는 초발(初發)이며, 다섯째는 비초발(非初發)이며, 여섯째는 원정(遠淨)이며, 일곱째는 근정(近淨)이며, 여덟째는 장엄(莊嚴)이며, 아홉째는 지심(至心)이며, 열째는 시식(施食)이며, 열한째는 시법(施法)이며, 열두째는 신통을 보여주어 신심(信心)을 생기게 하는 것이며, 열셋째는 법을 말하여 신심을 생기게 하는 것이며, 열넷째는 심밀장(深密藏)을 말하여 널리 법을 분별하는 것이며, 열다섯째는 하장엄(下莊嚴)이며, 열여섯째는 중장엄이며, 열일곱째는 상장엄이며, 열여덟째는 청법(聽法)이며, 열아홉째는 사유수집(思惟修集)이며, 스무째는 섭취(攝取)며, 스물한째는 가책(呵責)이며, 스물두째는 부대청설(不待請說)과 대청설(待請說)이다.계증장은 착한 종자(種子)를 구족하는데, 착한 종자를 구족하기 때문에 타세(他世)에서 선근이 다시 증장하며, 현재의 법종자(法種子)를 수집하기 때문에 타세에서 법종자가 또한 증장한다. 이것을 계증장이라 한다.현재인은 현재세 중에 설법이 잘못되지 않고 청법(聽法)이 잘못되지 않아 법대로 수지함으로써 이전 세상의 인(因)을 따라 현재인을 증장하고 현재인을 따라 미래인을 증장하며 또한 현재인이 현재인을 증장하는 것이 현재인이다.입출가(入出家)는 선우(善友)와 불보살들을 친근하여 신심(信心)을 얻는 것이니, 신심을 얻기 때문에 세간법을 버리고 떠나서 출세간법을 받아 지녀 수행하는 것이다. 출세간법이란 보살계를 말한다. 만일 사문(沙門)이란 이름을 얻을 수 없으면 출가(出家)라고 하지 않으니, 욕법(欲法)을 끊어버리기 때문에 출가라 한다. 이와 같이 보살계를 받지 않은 이는 궁극적으로 영구히 욕법을 끊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모든 애착을 끊는 것을 출가라 하며, 궁극적인 낙을 얻은 것을 출가라 하며, 즐겁고 쉽게 도를 행하는 것을 출가라 하며, 불법을 증장하는 것을 출가라 하며, 금계(禁戒)를 기꺼이 받아 지니는 것을 출가라 한다. 이것을 입출가라 한다.초발은 처음 발심할 때에 생사를 즐거워하지 않는 것이다. 생사를 즐거워하지 않기 때문에 신심(信心)이 생겨서 도를 수집하여 불법을 증익한다. 이것을 초발이라 한다.비초발은 발심한 뒤에 모든 부처님과 불제자를 친근히 하고, 금계를 받아 지녀서 독송하고 베껴 써서 널리 중생을 위하여 말하며, 나아가 상상선법(上上善法)을 증장하는 것이다. 이것을 비초발이라 한다.원정은 예를 들면 보살의 금계를 받아 지니지 않아서, 독송하고 베껴 쓰고 해설하지 못하는 것이며, 가르치는 스승을 따르지 않고 게으르고 나태해서 무량겁이 지나도록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을 원정이라 한다.근정이란 금계를 받아 지녀 독송하고 베껴 써서 중생을 위해 해설하고, 가르치는 스승을 따라 열심히 닦아 정진하여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니, 이것을 근정이라 한다.장엄이란 지극한 마음으로 위없는 불도(佛道)를 열심히 구하는 것이다. 보리를 위하기 때문에 보살계를 받아 지니며, 왕사(王師)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화상(和上)을 높이며, 명칭을 위하기 때문에 보살계를 받아 지닌다. 이것을 장엄이라 한다.지심이란 불법을 지극한 마음으로 계념(繫念)하여 의심의 그물이나 불인(不忍)의 마음이 없이 정법(正法)을 호지(護持)하고, 보살장과 보살 마이(摩夷)1)로써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다. 스승ㆍ화상(和上)ㆍ장로[耆舊]ㆍ장숙(長宿) 및 유덕한 이에 대하여 깊이 공경하고, 삼보(三寶)에게 열심히 공양하되 쉼이 없으며, 깊이 삼보를 믿어 상주불변(常住不變)하는 이것을 지심이라 한다.시식이란 보살마하살이 굶주린 자를 보고 음식을 베푸는 것인데, 종전에 필요로 했던 것에 따라 모든 것을 공급한다. 이것을 시식이라 한다.시법은 보살이 만일 일구일게(一句一偈) 나아가 반게(半偈)와 일부일장(一部一藏)으로 널리 중생을 위하여 그 뜻을 연설할 경우, 보리를 위하기 때문에 선을 행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이것을 시법이라 한다.신통을 보여 신심을 생기게 하는 것이란, 보살마하살이 커다란 신통을 모든 중생들에게 보여주는 것인데, 연민을 하며, 중생의 마음을 청정케 하고자 하며, 중생에게 신심이 청정함을 알게 하여 중생에게 청정한 장엄(莊嚴)을 보여주며, 중생으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신통이라 한다.법을 말하여 신심(信心)이 생기게 하는 것이란, 보살이 이익이 있지 않음을 스스로 아는 것이다. 이타(利他)를 위하기 때문에 법을 풀어 말하며, 또한 남을 이익되게 하는 것에 기인한 것임을 알기 때문에 능히 자신의 죄를 멸하고 법을 풀어 말하며, 또한 남을 위하여 법을 말하면 역시 자신이 닦은 선을 증장한다는 것을 스스로 안다. 이것을 설법이라 한다.심밀장을 말하여 널리 법을 분별하는 것이란, 보살마하살이 방편력(方便力)을 써서 능히 중생을 위하여 여래의 깊고 깊은 밀장(密藏)을 열어 보이는 것이다. 중생으로 하여금 그 뜻을 이해하게 하고, 지혜로운 이와 선근(善根)을 증장하는 이를 위해 깊은 뜻을 말하기 때문에 이를 심밀장을 말하여 널리 법을 분별하는 것이라 한다.하장엄이란 무상(無上)한 성현의 행을 지극한 마음으로 늘 행하지 못하는 것인데, 이것을 하장엄이라 한다.
중장엄이란 비록 지극한 마음으로 성행(聖行)을 수집한다 하더라도 계속하여 행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을 중장엄이라 한다.
상장엄은 항상 계속해서 하며 지극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니, 이를 상장엄이라 한다.청법이란 만일 위없는 불법을 수집하는 경우, 지극한 마음으로 십이부경을 들어 채택하여 이를 받아 지녀 베껴 쓰고 독송하며 해설하는 것을 청법이라 한다.사유수집이란 법을 들은 뒤 신심이 적정(寂靜)하고, 그 뜻을 사유하고 의심을 깨뜨려서 정(定)ㆍ혜(慧)ㆍ사(捨), 세 가지 상(想)을 수집(修集)하는 것을 사유수집이라 한다.섭취란 탐욕이 없는 마음으로 중생에게 법을 말하고, 제자를 받아 길러서 잘 교계(敎誡)하며, 음식과 의복을 베풀어주고 병이 들면 의약을 지급하며, 번뇌가 생기는 것을 알아서 그 병통에 따라 법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을 섭취라 한다.가책이란 만일 일어나는 번뇌를 스스로 보아서 알 경우, 신심(身心)을 가책하는 것을 말한다. 번뇌가 일어나는 자는 자신도 이롭게 못하고 남도 이롭게 하지 못하여 경죄(輕罪)가 중죄(中罪)로 인정되고 중죄가 중죄(重罪)로 인정된다. 만일 중생이 마음이 어지러워 허방에 빠졌다면, 빠진 뒤에 또다시 떨어져서는 안 되며, 번뇌가 일어나면 당연히 조복해야 한다. 만일 제자가 조금이라도 번뇌를 일으키는 것을 보면 반드시 가책해야 하고 그가 하는 예배나 공양에서부터 양치와 세숫물에 이르기까지 받지 말아야 하며, 만일 큰 죄를 범하면 당연히 빈출갈마(擯出羯磨)로 벌한다. 가책이란 자신을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가책이라 하는 것이다.부대청설이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깊은 뜻을 받아 지녀 독송하고 해설하며, 중생들에게 일어나는 번뇌를 깨뜨리고 중생들이 행하는 선법을 증장하기 위해 법을 말하는 것이다. 자신이 지닌 것에 따라 말하고 법대로 머문다. 어째서인가? 보살이 만일 법대로 머물지 못하면 중생들이 업신여기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래 자신도 법에 따라 머물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을 가르친다고 하는가? 그대가 지금 막 딴 사람으로부터 법을 받고도 어떻게 도리어 남을 위해 설법하겠다고 하는가?”
이것을 부대청설이라 한다. 대청설이란 수지한 금계(禁戒)대로 열심히 닦아 정진해서 선근(善根)을 구족하는 것이며, 기꺼이 고요하고 한적한 곳에 처해서 언제나 모든 자들의 공경을 받으며, 풀어 말하는 것은 중생들이 모두 믿고 받아들이고, 뜻과 말을 알아서 잘 설법하는 것을 말한다. 만일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있다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부디 대사(大士)께서는 중생들을 조복하여 감로문(甘露門)을 열어젖히소서.”
이것을 대청설이라 한다.이와 같은 스물두 가지를 누가 조복하는가? 소위 여섯 가지 지(地)에 주(住)하는 여섯 종류의 보살이니, 이러한 보살이 능히 중생을 교화하여 조복한다. 어떤 것이 이 여섯 가지 지인가? 첫째는 지극한 마음으로 전념하는 보리행지(菩提行地)이며, 둘째는 정심(淨心)으로 하는 보리도지(菩提道地)이며, 셋째는 법에 따라 하는 주지(住地)이며, 넷째는 정지(定地)이며, 다섯째는 필경지(畢竟地)이며, 여섯째는 성취보리도지(成就菩提道地)이다. 이것을 여섯 가지 지라 한다.무성(無性)의 중생을 조복하고자 인천(人天)의 낙(樂)을 말하여 퇴전(退轉)하지 않게 하며, 유성(有性)의 중생을 위하여 말해서 조복을 얻어 선법을 증장하게 하는 것을 숙조복(熟調伏)이라 한다.숙조복인(熟調伏印)이란 성문인(聲聞人)이 무량세에 선근(善根)을 수집하는 것인데, 이것을 하숙조복인(下熟調伏印)이라 한다. 또한 하숙조복인을 하연심(下軟心)ㆍ하장엄(下莊嚴)ㆍ하선근(下善根)이라고도일컫는데,삼악도의 보과를 깨뜨리지 못하여 현재에 네 가지 사문과(沙門果)와 열반과를 얻지 못한다. 이것을 하숙조복인이라 한다.어떤 것을 중(中)숙조복인이라 하는가? 가령 중심(中心)ㆍ중장엄ㆍ중선근을 얻어서 삼악도를 깨뜨리지만, 현재의 네 가지 사문과와 열반과를 얻지 못하는 이것을 중숙조복인이라 한다.상(上)숙조복인이란 상심(上心)ㆍ상장엄ㆍ상선근으로 삼악도를 깨뜨리고 현재에도 능히 네 가지 사문과와 열반을 얻는 것인데, 이것을 상숙조복인이라 한다.연각에도 역시 이와 같이 두 가지 승(勝)이 있다. 첫째는 도를 수집하는 승이고, 둘째는 스승이 없이 도를 얻는 승이다. 보살마하살이 여기에 주하여 보살행지에 전념하면 이것을 하숙조복인이라 하며, 제이지(第二地)에 주하면 중숙이라 하며, 제삼지에 주하면 상숙이라 한다.
초지(初地)의 보살은 그 마음이 미연(微軟)하고 장엄(莊嚴) 또한 마찬가지이니, 삼악도에 떨어져 수행이 이미 초아승기겁을 지났으나, 초아승기겁에서는 아직 무동(無動)ㆍ무상(無上)ㆍ청정의 삼십칠품을 구족하지 못한다.중숙조복인이란 보살의 중심(中心)ㆍ중장엄(中莊嚴)이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수행이 이미 제이아승기겁을 거쳐서 비록 청정한 부동전(不動轉)의 선을 얻어 삼십칠품을 구족하였으나, 아직 최대적정(最大寂靜)의 삼십칠품은 얻지 못한 것이다. 이것을 중숙조복인이라 한다.상숙조복인이란 보살마하살이 상숙조복인에 주(住)하여 상심(上心)ㆍ상장엄으로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수행이 이미 제삼아승기겁을 경과하여 청정한 부동전의 선을 구족하며 대적정의 삼십칠품을 획득한 것을 말하는데, 이것이 곧 보살의 무상도(無上道)이므로 대정부동순선최대적정(大淨不動純善最大寂靜)이라 하는데 이것이 상숙조복인이다.
하숙조복인에 세 가지가 있으니, 하하(下下)ㆍ하중(下中)ㆍ하상(下上)이며, 중숙(中熟)에 세 가지가 있으니, 중하(中下)ㆍ중중(中中)ㆍ중상(中上)이며, 상숙에 세 가지가 있으니, 상하(上下)ㆍ상중(上中)ㆍ상상(上上)이다.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조복(調伏)들을 구족하면, 능히 위없는 불법을 증장하여 중생을 교화하고 제근(諸根)을 조복해서 지혜가 맹리(猛利)하여 능히 중생을 위해 삼승(三乘)을 열어 보인다.
8) 보리품(菩提品)무엇을 보리라 하는가? 보리란 두 가지 해탈과 두 가지 지혜를 말한다. 두 가지 해탈이란 첫째는 번뇌장해탈이며, 둘째는 지장(智障)해탈이다. 두 가지 지혜란, 첫째는 능히 번뇌장을 깨뜨리는 것이며, 둘째는 능히 지혜장을 깨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위없는 보리란 정지(淨智)ㆍ무애지(無礙智)ㆍ일체지(一切智)로서 모든 습기(習氣)를 끊어버리고 모든 무기(無記)와 무명(無明)을 끊어 없애는 것을 말한다. 정지란 모든 습기를 끊고, 일체계(一切界)ㆍ일체법(一切法)ㆍ일체행(一切行)ㆍ일체세간(一切世間)ㆍ일체시(一切時)ㆍ일체대치(一切對治)를 아는 것이다.계(界)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세계(世界)이고, 둘째는 중생계(衆生界)이다. 법(法)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유위(有爲)이고, 둘째는 무위이다. 행(行)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번뇌장을 깨뜨리는 것이고, 둘째는 지혜장을 깨뜨리는 것이다. 세간(世間)에도 둘이 있으니 첫째는 지(智)이고, 둘째는 우(愚)이다. 시(時)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과거ㆍ현재ㆍ미래이다. 대치에 세 가지가 있으니 부정관(不淨觀)ㆍ자관(慈觀)ㆍ십이인연관이다. 이들을 정지라 한다.
무애지란 장엄ㆍ사유ㆍ입정(入定)을 빌리지 않고 능히 일체계ㆍ일체법ㆍ일체행ㆍ일체세간ㆍ일체시ㆍ일체대치에 통달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무애지라 한다. 무애지가 또 있으니 백사십불공법(不共法)을 말하는 바, 여래가 가진 무쟁삼매(無諍三昧)ㆍ원지(願智)ㆍ사무애지(四無礙智)를 무애지라 하고 보리라 이름한다. 어떤 것을 백사십불공법이라 하는가? 삼십이상(三十二相)ㆍ팔십종호(八十種好)ㆍ사정행(四淨行)ㆍ십력(十力)ㆍ사무소외(四無所畏)ㆍ삼념처(三念處)ㆍ삼불호(三不護)ㆍ대비불망(大悲不忘)ㆍ단일체습(斷一切習)ㆍ일체행무승지(一切行無勝智)인 바, 이것을 백사십불공법이라 말한다. 뒤의 주품(住品)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어떤 것을 위없는 보리라 하는가? 일곱 가지 위없음을 구족한 것을 위없는 보리라 한다. 그 첫째는 신무상(身無上)이며, 둘째는 수지(受持)무상이며, 셋째는 구족(具足)무상이며, 넷째는 지혜무상이며, 다섯째는 불가사의무상이며, 여섯째는 해탈무상이며, 일곱째는 행(行)무상이다.
신무상이란 삼십이상 장엄신(莊嚴身)을 말하며, 수지무상이란 모든 불보살이 자리이타(自利利他)하여 중생에게 능히 인천(人天)의 낙을 베푸는 것이며, 구족무상이란 모든 불보살이 사구족(四具足)을 가진 것을 말하는 바, 수명구족(壽命具足)ㆍ견(見)구족ㆍ계(戒)구족ㆍ행(行)구족을 말한다. 지혜무상이란 사무애(四無礙)를 말하고 불가사의무상이란 육바라밀을 구족하는 것을 말하며, 해탈무상이란 여래가 능히 두 가지 장애를 깨뜨리는 것이다. 행무상이란 성행(聖行)ㆍ천행(天行)ㆍ범행(梵行)을 말하는데, 성행은 세 가지 삼매인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과 멸진정(滅盡定)을 말하고, 천행은 사선(四禪)ㆍ사무색정(四無色定)을 말하며, 범행은 사무량심(四無量心)을 말하는 바, 이 세 가지 행은 부처님의 사행상락(四行常樂)의 수집(修集)에서 나온다.어떤 것을 네 가지 성행(聖行)이라 하는가? 이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공삼매(空三昧)이고, 둘째는 멸진정(滅盡定)이다. 천행에 한 가지가 있으니 제사선(第四禪)을 말한다. 범행에도 한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대비(大悲)이다. 여래가 이 대비인연으로써 밤낮의 여섯 때를 통해 항상 중생을 보면서, “누가 선근(善根)이 없는가? 마땅히 종자를 베풀어야겠다. 누가 선근을 심었는가? 이를 증장(增長)시켜야겠다. 나아가 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지 않는가? 내가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해야겠다”고 한다.
여래가 이와 같은 무상신(無上身)을 쓰기 때문에 대장부(大丈夫)라 하며, 수지무상(受持無上)이기 때문에 대비(大悲)라 하며, 구족무상이기 때문에 도피안(到彼岸)이라 하며, 지혜무상이기 때문에 일체지(一切智)라 하며, 불가사의무상이기 때문에 아라가(阿羅呵)라 하며, 해탈무상이기 때문에 대열반이라 하며, 행무상이기 때문에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라 한다.이 때문에 여래에게는 열 가지 명호(名號)가 구족하니, 여래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라 말한다. 허망(虛妄)함이 없기 때문에 여래라 하며, 거룩한 복전(福田)이기 때문에 응공이라 하며, 법계를 알기 때문에 정변지라 하며, 삼명(三明)을 구족하였기 때문에 명행족이라 하며, 되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선서라 하며, 두 세간을 알기 때문에 세간해라 하는데 첫째는 국토세간(國土世間)이고, 둘째는 중생세간이다. 중생들의 신심(身心)의 악을 조복하기 때문에 무상사ㆍ조어장부라 하며, 능히 중생을 위하여 안목(眼目)을 짓고,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정지(正知)ㆍ정법(正法)ㆍ정의(正義)ㆍ정귀(正歸)하게 하며, 모든 중생을 위하여 널리 진리를 말씀하시고, 능히 모든 번뇌의 고통을 깨뜨리고, 능히 중생의 의망심(疑網心)을 깨뜨리고, 모든 법의 깊고 깊은 뜻을 열어 보이며, 모든 선법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천인사라 하며, 선법취(善法聚)ㆍ불선법취(不善法聚)ㆍ비선비불선법취(非善非不善法聚)를 아시기 때문에 부처님이라 한다. 마왕 파순(波旬)을 깨뜨리며, 얻기 어려운 여래신(如來身)을 능히 얻었기 때문에 이름을 바가바(婆伽婆)라 하니, 무량겁 중에 한 부처님도 출세(出世)함이 없기 때문에 얻기 어려운[難得] 것이다.무량세계에 무량부처님이 있고 시방세계에 무량보살이 있는데, 모두 동시에 같은 원(願)을 수집 장엄(修集莊嚴)하고, 동시에 함께 보리심을 내며, 일시(一時)ㆍ일일(一日)ㆍ일월(一月)ㆍ일세(一歲)에 함께 보시하고, 지계하며 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를 닦는다. 이러하기 때문에 시방세계에 당연히 무량무변의 부처님 국토가 있으며, 결코 한 부처님 국토 안에서 두 부처님이 일시에 출세(出世)하는 일이 없다. 만일 시방의 무량세계가 없다면, 이처럼 무량무변한 보살이 다함께 선행을 닦는 것이 과보가 없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시방에 무량무변한 모든 부처님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안다. 왜냐 하면 한 부처님 국토 안에 두 부처님이 없기 때문이다.보살마하살은 처음 발심할 때 이렇게 말한다.
“나 혼자서 능히 무량무변한 중생으로 하여금 번뇌의 고통을 끊고 열반에 들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원력(願力)으로 과보를 획득했기 때문에 여래께서 능히 삼천대천 무량세계를 위하여 법을 말씀하시고 교화하셔서 중생을 조복한다. 이러하기 때문에 한 부처님 국토 안에 두 부처님이 나오지 않는다. 만일 한 부처님 국토 안에 두 부처님이 나오신다면, 중생이 기꺼이 선법을 닦을 수 없으며, 공경심과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부처님만을 본다면 불가사의의 마음이 생겨나서, “부처님께서 혹시 열반할 지도 모르니 우리 모두는 다 함께 제때에 선법을 닦되, 열심히 수행 정진하여 생사에서 벗어나야겠다”고 한다. 그리하여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과 공경하는 마음이 생겨서 단바라밀을 닦고 나아가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를 수집(修集)한다. 그래서 한 부처님 국토 안에 두 부처님이 나오시지 않는 것이다.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오직 네 가지 만을 제하고 그 나머지는 일체와 평등하여 구별이 없으니, 그 첫째는 수(壽)이며, 둘째는 성(姓)이며, 셋째는 명(名)이며, 넷째는 신(身)이다. 보살은 결코 여자의 몸으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없다. 어째서인가? 보살마하살은 이미 첫[初] 아승기겁에 여자 몸 되는 것을 끊었기 때문이다. 여자의 몸은 탐욕이 많고 두 갈래로 갈라지는 지혜[二指智]이므로 이러한 악지(惡智)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없다.
보리는 불가사의이다. 어째서인가? 모든 성문과 벽지불 등이 얻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상보리는 무량공덕이 성취하는 것이다.
9) 보리력성품(菩提力性品)보살마하살이 보살계를 배우려 한다면 마땅히 신해(信解)를 닦아서 항상 기꺼이 법을 구하고 항상 기꺼이 법을 말해야 한다. 법을 받아 지닌 자를 보면 깊이 공양할 마음이 생기고, 법에 따라 주(住)하며, 제자를 가르쳐 정법(正法) 안에 주하게 하고, 신(身)ㆍ구(口)ㆍ의(意)의 업의 방편을 잘 알아야 한다.어떤 것이 보살이 신해(信解)를 수집(修集)하는 것인가? 삼보(三寶)와 그 공덕을 분명하게 믿고 불보살이 불가사의함을 믿으며, 진실의(眞實義)를 믿고, 인과(因果)가 있다는 것을 믿고, 모든 중생이 갖가지 업과 갖가지 업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으며, 알맞은 방편[善方便]과 그렇지 못한 방편[非方便]을 알고, 기필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는 것을 스스로 믿으며, 득의(得義)를 스스로 아는 것이다.
의(義)란 무상보리며, 지(智)보리며, 방편보리이다. 방편이란 보살계에서부터 나아가 삼십칠품(品)에 이르기까지를 말한다. 보살계란 설법을 들을 때 마음에 인내하여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니, 십이부경(十二部經)을 보살계라 한다.보살계를 배우는 자는 마땅히 두 가지를 수집해야 하는데 첫째는 자심(慈心)이고, 둘째는 신심(信心)이다. 보살은 이러한 두 가지 법을 수집(修集)하여 신해심(信解心)을 얻는다.
법을 구한다는 것은 무엇을 구하는 것인가? 무엇을 구하며 왜 구하는가? 구하는 것이란 보살장(菩薩藏)ㆍ성문장(聲聞藏)이며 일체세론(一切世論)과 일체세사(一切世事)이다. 보살장이란 비불략(毘佛略)0)을 말하며, 나머지 십일부는 성문장이라 한다. 세론(世論)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인론(因論)이며, 둘째는 성론(聲論)이며, 셋째는 의방론(醫方論)이다. 일체세사란 예를 들면 금보 공장(金寶工匠)의 모든 방술(方術)과 같은 것이다. 방술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내술(內術)이며, 둘째는 인술(因術)이며, 셋째는 성술(聲術)이며, 넷째는 병의 원인을 알아서 치병(治病)하는 방술이며, 다섯째는 모든 작사(作事)를 아는 것이다. 보살마하살은 항상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방술을 구한다.내술(內術)은 십이부경을 말하는데, 보살마하살이 두 가지 일을 위하기 때문에 십이부경을 구한다. 그 첫째는 인과를 아는 것이며, 둘째는 지은 업은 잃지 않고 짓지 않은 업은 받지 않는 것이다.
인론(因論)을 구하는 것은 두 가지 일 때문인데, 첫째는 외도(外道)의 과환(過患)을 알기 위한 것이며, 둘째는 외도의 모든 논사(論師)를 깨뜨리기 위한 것이다. 성론을 구하는 것 역시 두 가지 일을 위한 것으로 첫째는 모든 법계의 뜻을 풀기 위한 것이며, 둘째는 모든 언어의 소리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치병술(治病術)을 구하는 것은 네 가지 일 때문인데, 첫째는 병의 상모(相貌)를 알기 위한 것이며, 둘째는 병의 인연을 알기 위한 것이며, 셋째는 병의 치료를 알기 위한 것이며, 넷째는 병이 나은 뒤의 재발 여부를 알기 위한 것이다.십이부경을 구하는 것이 인과를 알기 위함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법에 열 가지의 인(因)이 있으니 생사든 해탈이든, 선이든 불선이든, 안이든 밖이든, 중생이든 비중생이든 간에 진인(眞因)이 모든 인을 상섭(相攝)함을 말하는 것이다.
열 가지란 무엇인가? 첫째는 유포인(流布因)이며, 둘째는 종인(從因)이며, 셋째는 작인(作因)이며, 넷째는 섭인(攝因)이며, 다섯째는 증장인(增長因)이며, 여섯째는 전인(轉因)이며, 일곱째는 불공인(不共因)이며, 여덟째는 공인(共因)이며, 아홉째는 해인(害因)이며, 열째는 불해인(不害因)이다.유포인이란 모든 법이 이름을 따라 그 체상(體相)을 얻으며, 체상을 얻었기에 이를 선설(宣說)할 수 있는 이것을 유포인이라 말한다. 가령 손을 인하여 물건을 취하고, 말을 인하여 길을 걸으며, 몸을 인하여 오고 가고 앉고 눕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을 종인이라 한다. 씨앗을 따라 열매를 얻는 것과 같은 것을 작인이라 한다. 씨앗을 떠나서 그 밖의 것을 따라 열매를 얻는 것을 성인이라 한다. 씨앗이 썩어 싹이 트고 싹이 자람을 따라 열매를 얻는 것을 증장인이라 한다. 씨앗을 따라 곡식이 나서 자라고 곡식이 나서 자람을 따라 씨앗이 생기는 것을 전인이라 한다. 종자를 따라 열매를 얻는 것을 불공인이라 한다. 지ㆍ수ㆍ화ㆍ풍 같은 것을 공인이라 한다. 네 가지 무거운 금계(禁戒)를 범하고, 선법(善法)을 원망해서 해치는 것을 해인이라 한다. 만일 범하지 않을 경우 불해인이라 한다.해인(害因)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성해(聲害)이고, 둘째는 생해(生害)이며, 셋째는 불공주해(不共住害)이고, 넷째는 원해(怨害)이며, 다섯째는 정해(定害)이다. 성해란 세간의 논의에서 처음에는 잘 말하다가 나중에 잘못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인데, 또 해로움이란 모든 법이 일체 무상한 것이 마치 허공과 같다고 말하고, 모든 상(常)이란 생(生)ㆍ노(老)ㆍ사(死)를 일컫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성해라 한다. 생해란 인이 없이 과를 낳고 인이 있어도 과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고, 불공주해란 명암ㆍ탐에(貪恚)ㆍ고락과 같은 것이며, 원해란 뱀과 쥐, 이리와 말 또는 물소, 살쾡이와 쥐와 같은 것이다. 정해란 부정관(不淨觀)으로 탐심(貪心)을 제거하고 자심(慈心)으로 진심(瞋心)을 제거하고 비심(悲心)으로 해심(害心)을 제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팔성도분(八聖道分)이 모든 맺힘을 제거하는데 다시 두 인(因)이 있으니 첫째는 진실인(眞實因)이고, 둘째는 방편인이다. 진실인이란 이른바 종자를 말하며, 방편인이란 그 나머지 연(緣)과 같은 것이다. 방편인에 네 가지 연이 있으니 첫째는 인연이며, 둘째는 차제연(次第緣)이며, 셋째는 연연(緣緣)이며, 넷째는 증상연(增上緣)이다. 인연이란 모든 법의 생인(生因)이며, 증상연이란 방편인을 말하며, 차제연과 연연은 심(心)과 심수법(心數法)을 말한다. 이것이 네 가지 연이다.
이와 같은 열 가지 인(因)이 어떻게 모든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만들어 내며, 어떻게 생사를 끊어버리며, 어떻게 생사를 끊지 못하는가?
예를 들어 세간 중에는 갖가지 곡식으로 목숨을 증장(增長)하는 것에 갖가지 이름이 있는데, 이른바 보리ㆍ밀ㆍ콩ㆍ팥ㆍ경량(粳粮)ㆍ깨 등이다. 이것을 유포인(流布因)이라 한다. 기갈로 인해서 기력이 없으므로 이 걱정을 없애야만 몸이 힘을 얻기 때문에 보리ㆍ밀에서 나아가 깨를 구한다. 맛좋은 음식에 대한 생각 때문에 마음에 탐착(貪箚)이 생기고, 이 탐착심 때문에 방편을 찾는다. 이것을 종인(從因)이라 한다. 저들 종자처럼 서로 닮은 열매를 낳는 것을 작인(作因)이라 한다. 흙ㆍ물ㆍ불ㆍ바람ㆍ분토(糞土)ㆍ인공(人工) 같은 것들을 섭인(攝因)이라 하며 씨앗에서부터 자라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을 증장인(增長因)이라 한다. 씨앗이 자라면 열매를 맺듯이 열매가 다시 인(因)을 낳는 것을 전인(轉因)이라 한다. 마치 보리가 보리를 낳듯이 팥이 스스로 팥을 낳는 것을 불공인(不共因)이라 한다. 씨앗을 떠나서 그 나머지를 따라 열매를 맺는 것을 공인(共因)이라 한다. 씨앗이 우박을 만나거나 불에 태워지거나 새에 먹히는 것 등을 해인(害因)이라 한다. 우박이나 불, 새에서 벗어나는 것을 불해인(不害因)이라 한다.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의 인(因)이 세간의 법과 출세간의 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다시 십이인연이 가진 명상(名相)을 풀어 말하리니, 무명(無明)이 행(行)으로 인연하며, 행이 식(識)으로 인연하며, 식이 명색(名色)으로 인연하며, 명색이 육입(六入)으로 인연하며, 육입이 촉(觸)으로 인연하며, 촉이 수(受)로 인연하며, 수가 애(愛)로 인연하며, 애가 취(取)로 인연하며, 취가 유(有)로 인연하며, 유가 생(生)으로 인연하며, 생이 노사(老死)ㆍ우비(憂悲)ㆍ수뇌(愁惱)ㆍ대고(大苦)ㆍ취집(聚集)으로 인연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유포인이라 한다.
무명이 행에 인연하는 데서부터 생이 노사에 인연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탐착(貪箚)하고 분노하기 때문에 십이인연을 끊지 못한다. 이것을 종인이라 한다. 현재의 애가 미래의 무명을 취하는데 이것이 작인이며, 현재의 유가 미래의 행을 취하는데 이것이 작인이며, 현재의 식이 미래의 생을 취하는데 이것이 작인이며, 현재의 명색ㆍ육입ㆍ촉ㆍ수가 미래의 생ㆍ노사를 취하는데 이것을 작인이라 한다.선우(善友)를 가까이 하지 않고, 법을 즐겨 듣지 않고, 진리를 사유하지 않고, 법에 따라 주(住)하지 않는 이 네 가지 일이 무명에서부터 생과 노사에 이르기까지를 섭취한다. 이것을 섭인이라 한다. 악업으로 인해 무명에서부터 노사까지를 증장하면 이것을 증장인이라 한다.
무명에 세 가지가 있으니 상ㆍ중ㆍ하를 말한다. 하는 중의 인이 되고 중은 상의 인이 되며 노사(老死)에까지 이른다. 이것을 전인이라 한다. 무명이 있으면 지옥에 떨어지며, 무명이 있으면 축생에 떨어지며, 무명이 있으면 아귀에 떨어진다. 이것을 불공인이라 한다.모든 중생이 평등하게 십이인연을 공유(共有)하는 것을 공인이라 한다. 무명의 인연 때문에 구족성(具足性)이 없어서 여래와 함께 한 나라에 같이 태어나지 못해 선우(善友)와 멀리 떨어지고, 법을 얻어 듣지 못해서 진리를 사유하지 못하고, 법에 따라 주(住)하지도 못하고, 삼십칠품(品)을 수집(修集)하지도 못한다. 이것을 해인이라 한다.
무명을 제거하였으므로 성(性)이 구족함을 얻고, 성이 구족하기 때문에 여래와 함께 같은 나라에 태어나 선우를 가까이 함으로써 정법(正法)을 얻어 듣고, 정의(正義)를 사유하고, 법에 따라 주하여 삼십칠품을 수집한다. 이것을 불해인이라 한다. 이렇기 때문에 이 열 가지의 인이 세간의 법을 낳는다.어째서 열 가지 인이 세간의 법을 생출(生出)한다고 하는가? 만일 삼십칠품의 명상(名相)을 말한다면, 보리명상에서부터 열반명상에 이르기까지를 유포인이라 한다.
사념처(四念處)로 인하여 사정근(四正懃)을 얻고, 사정근으로 인하여 여의족(如意足)을 얻고, 여의족으로 인하여 오근(五根)을 얻고, 오근으로 인하여 오력(五力)을 얻고, 오력으로 인하여 칠각분(七覺分)을 얻고, 칠각분으로 인하여 팔성도(八聖道)를 얻고, 팔성도로 인하여 열반을 얻는다. 이것을 종인이라 한다. 무명이 멸하므로 모든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하므로 식이 멸하고, 식이 멸하므로 명색이 멸하고, 명색이 멸하므로 육입이 멸하고, 육입이 멸하므로 촉이 멸하고, 촉이 멸하므로 수가 멸하고, 수가 멸하므로 애가 멸하고, 애가 멸하므로 취가 멸하고, 취가 멸하므로 유가 멸하고, 유가 멸하므로 생이 멸하고, 생이 멸하므로 노사가 멸하고, 노사가 멸하므로 열반을 얻는다. 이것을 종인이라 한다. 성이 구족하기 때문에 삼십칠품을 닦고, 삼십칠품을 닦기 때문에 열반을 얻는다. 이것을 종인이라 한다.성이 구족하기 때문에 삼십칠품에 이르기까지 능히 보리를 낳는다. 이것을 작인이라 한다. 선우를 친근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법을 듣고, 그 뜻을 생각하여 법에 따라 주하며, 제근(諸根)을 조복해서 팔성도를 닦는다. 이것을 섭인이라 한다. 삼십칠품이 능히 두 가지 열반의 인이 되니, 이것을 전인이라 한다. 성문성(聲聞性)을 구족하면 성문과를 얻고, 연각성을 구족하면 연각과를 얻으며, 불성을 구족하면 무상도(無上道)를 얻는다. 이것을 불공인이라 한다. 이와 같이 세 종류의 중생이 모두 함께 삼십칠품을 수집하면 이것을 공인이라 한다. 성이 구족하지 못하여 팔난(八難)에 태어나서 정법(正法)을 듣지 못하면 이것을 해인이라 한다. 해인을 깨뜨려서 정법을 얻어 들으면 불해인이라 한다. 팔성도의 인연을 수집하여 성문보리와 벽지불보리를 얻고 불보리를 얻으면 이것을 증장인이라 한다.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의 인이 세간의 법과 출세간의 법을 낳는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두 법에 각각 삼세(三世)가 있으니, 이른바 과거ㆍ미래ㆍ현재이다. 만일 이 열 가지 인을 떠나서 또 인이 있다고 말한다면 옳지가 않다.무엇을 과(果)라 하는가? 과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보과(報果)이며, 둘째는 여과(餘果)이며, 셋째는 해탈과이고, 넷째는 현작과(現作果)이며, 다섯째는 증상과(增上果)이다.
불선(不善)한 법은 삼악보(三惡報)를 얻고, 유루선법(有漏善法)은 인천과(人天果)를 얻는다. 이것을 보과라 한다. 악을 지으면 즐겨 악업을 쌓고 선을 닦으면 즐겨 선업을 수집한다. 이것을 여과라 한다. 팔성도를 닦아 멀리 번뇌에서 떠나면 해탈과라 한다. 범부(凡夫)는 비록 도를 닦아 번뇌를 떠났더라도 해탈과라고 이름하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필경(畢竟)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중생이 현세에 갖가지 방편으로 힘써 노력해서 재물을 얻는다면, 이것을 현작과라 한다. 안근(眼根)과 안식(眼識)에서부터 의법(意法)ㆍ의식(意識)에 이르기까지를 증상과라 한다.보살마하살이 인과를 아는 것으로 작력(作力)을 증장하고 도를 수집함으로써 짓지 않으면 받지 않고, 지으면 그 과를 잃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보살마하살이 인과를 알기 때문에 십이부경을 구해서 받아 지녀 독송하고 베껴 써서 해설하여 제이의 업력(業力)을 얻는다. 만일 보살이 중생의 업의 인과를 믿지 않는다면 결코 보리 금계(禁戒)를 얻을 수 없다.보살이 어째서 십이부경을 구하는가? 보살은 지극한 마음으로 보살계를 염하고 불법을 열심으로 구하며, 나아가 일구(一句)ㆍ일게(一偈)ㆍ일의(一義)에 이르기까지 말하는 자를 보면 공경심이 생겨 기쁜 마음으로 즐거이 듣는다. 설법하는 이를 가벼이 여기지 않고 설법하는 이를 자기 자신처럼 여겨 그 허물을 구하지 않으며, 지극한 마음으로 받들어 공경하기를 마치 부처님으로부터 듣는 것과 같이 한다. 만일 설법하는 이가 법을 아껴 베풀지 않으면, 당연히 돈과 재물 나아가 신명에 이르기까지 바쳐서 봉헌한다. 만일 보살로서 능히 이와 같이 하는 이가 있다면 의(義)보살이라 한다.보살이 만일 지극한 마음으로 일구ㆍ일게ㆍ일의에 이르기까지 들어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삼계(三界)의 번뇌가 모두 시들면서 보살계를 갖추게 된다.
보살이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구할 때는 법을 갈구하는 마음이 중하여 신명을 아끼지 않으니, 설사 뜨거운 무쇠나 불길이 타오르는 데를 밟더라도 근심스러워하지 않는다. 보살마하살이 하나의 게(偈) 때문에도 오히려 몸을 아끼지 않는데 하물며 십이부의 경(經)이겠으며, 하나의 게를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는데 더구나 그밖의 다른 재물이겠는가?
법의 이로움을 들으면 몸이 편안하고 즐겁고 깊이 믿는 마음이 생겨서 유연한 마음을 얻는다. 직심(直心)과 정견(正見)으로 설법하는 이를 보되, 마치 부모처럼 보아서 마음에 교만함이 없다.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지극한 마음으로 법을 들으나 끝내 자신을 위해 듣지 않으며, 중생들이 가진 선근(善根)을 증장하고 정법(正法)을 청수(聽受)하되 이양(利養)을 위하지 않는다.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보살계를 받는 것이라서 자신의 이로움을 위하지 않는다. 정법을 위하는 것이므로 왕난(王難)이나 기갈ㆍ한열(寒熱)ㆍ호랑(虎狼)ㆍ악수(惡獸)ㆍ도적 같은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먼저 번뇌의 제근(諸根)을 스스로 조복한 다음에 법을 들으며, 그렇지 않을 때는 듣지 않는다. 지극한 마음으로 법을 듣되 말하는 이를 공경하고 법을 존중한다. 이것을 보살이 보살계를 구족하였다고 한다.
어떤 것이 보살이 지극한 마음으로 법을 듣는 것인가? 법을 듣는 데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지심(至心)이며, 둘째는 일심(一心)이며, 셋째는 일체심(一切心)이며, 넷째는 선심(善心)이다. 이것을 보살이 열심히 십이부경을 구한다고 한다.보살은 어째서 십이부경을 구하는가? 모든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유포하고자 하기 때문이며, 모든 불법을 증장(增長)하고자 하기 때문이며, 세간으로 하여금 불법을 믿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며, 무량한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살이 십이부경을 구한다.보살이 왜 인론(因論)을 구하는가? 인론의 모든 과죄(過罪)를 알기 위해서이며, 방편을 넓혀서 중생을 조복(調伏)하기 위해서이며, 여래의 말뜻과 세간의 말뜻을 분별하기 위해서이다. 이 때문에 보살이 인론을 구한다.
보살이 왜 성론(聲論)을 구하는가? 말을 청정하게 장엄하기 위함인데, 청정하지 못한 말은 뜻을 명료하게 선설(宣說)할 수 없기 때문이며, 모든 진리를 이해하여 알기 위해서이며, 바르지 못한 말과 교만한 마음을 깨뜨리고 사견(邪見)을 파괴하기 위해서이며, 방편을 터득해서 중생을 조복하기 위해서이다. 이 때문에 보살이 성론(聲論)을 구한다.보살이 왜 여러 가지 의방(醫方)을 구하는가? 중생으로 하여금 사백네 가지 병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위해서이며, 연민하기 때문이며, 중생을 조복하여 신심(信心)이 생기고 희심(喜心)이 생기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 때문에 보살이 여러 가지 의방을 구한다.
보살이 왜 세간의 방술(方術)을 구하는가? 쉽게 재물을 얻어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이며, 모든 중생에게 신심(信心)이 생기게 하기 위해서이며, 세간의 일을 알아 교만을 깨뜨리기 위해서이며, 중생을 조복하기 위해서이며, 모든 법의 갖가지 암장(闇障)을 깨뜨리기 위해서이다.
만일 보살이 이상과 같은 다섯 가지를 구하지 못한다면, 결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일체지(一切智)를 이룰 수 없으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위해서 이 다섯 가지를 구한다.보살이 보살계를 성취하는 것은 중생에게 말하기 위한 것이다. ‘무엇을 말하며’, ‘어떻게 말하며’, ‘무엇 때문에 말하는가?’ ‘무엇을 말하는가’라는 것은 십이부경을 두고 하는 말이며, ‘어떻게 말하는가’라는 것은 다섯 가지를 성취하는 것이며, ‘무엇 때문에 말하는가’라는 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기 위함인 것이다.말하는 데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차제설(次第說)이고, 둘째는 청정설(淸淨說)이다. 차제설이란 처음에 혜시(惠施)를 말하고, 다음에 금계(禁戒)를 말하고, 다음에 천락(天樂)을 말하고, 다음에 삼매(三昧)를 말하고, 다음에 십이부경을 받아 지녀서 그 뜻을 생각하고 법대로 주(住)하는 것을 말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차제설이다. 청정설이란 중생이 높은 곳에 있고 자신이 낮은 곳에 있으면 설법하지 않으며, 병환을 제거해 주려 해도 마음에 믿지 않는 자에게는 설법하지 않으며, 생사를 싫어하지 않는 자에게는 말하지 않으며, 중생들이 있기 전에는 말하지 않으며, 사람 가운데 머리가 덮인 자에게는 말하지 않으며, 과실(過失)을 구하는 이에게는 말하지 않고, 그 밖의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와 수다라(修多羅) 중에서는 모두 말하는 것이다. 어째서인가? 모든 부처님과 보살은 법을 공경하기 때문이다. 만일 법을 말하는 자가 법을 존중하면 법을 듣는 자도 또한 받들고 공경하는 마음이 생겨서 지극한 마음으로 받아들여 경만(經慢)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것을 청정설이라 한다.차제설은 일체를 말하고 일체가 말하는 것은 일체를 말하는 것이다.0) 인색함을 깨뜨린 법심(法心)이 교만함이 없어서 일구일게(一句一偈)이든 나아가 반게(半偈)이든, 말이든 뜻이든, 법설(法說)이든 의설(義說)이든 법의설(法義說)이든 간에 이롭고 기쁜 것임을 제시해 가르치니, 때로는 가책하고 때로는 직접 말하고 때로는 비유로 말하여 경우에 따라 응설(應說)하며, 혹은 얕고 근접되게 말하고 쉽게 들어가도록 말하여 어디서나 요설(樂說)한다. 이것을 보살의 차제설이라 한다.청정설은 보살마하살이 원증(怨憎) 중에서 자심(慈心)을 수집(修集)하는 것이다. 자심을 얻고 나서는 악한 중생과 방일(放逸)한 자에 대해 갖가지 방편을 써서 그들을 위해 설법하여 즐거움에 이르게 하며, 마음이 교만하고 방자한 이와 탐착(貪箚)하고 빈궁한 이에 대하여 방편으로 개시(開示)해서 그들을 위해 설법하니, 자신을 찬양하고 남을 헐뜯어 욕하거나 음식ㆍ이양(利養)ㆍ명예 따위를 얻으려고 설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보살의 청정설이라 한다.법에 따라 주(住)하는 이는 신ㆍ구ㆍ의의 업이 착한 법을 수집(修集)하고 진리를 바르게 사유한다. 이것을 법에 따라 주한다고 한다. 어떤 것을 보살이 진리를 사유한다고 하는가? 보살이 신ㆍ구ㆍ의의 업을 조복하여 기꺼이 고요하고 한적한 곳에 처하며, 스스로 받아 지닌 것이든 남을 따라 들은 것이든 간에 바른 진리를 사유하고 옳지 않은 것은 생각하지 않으며, 진실의 뜻을 지극한 마음으로 사유하고, 보리의 도를 위해 마음을 두어 사유하되 실의(實義)에 의거한다. 문자에 의거하지 않고 사유로 분별하여 ‘이것은 부처님 말씀이며 이것은 부처님 말씀이 아니다’라고 한다. 비사유(非思惟)와 두려워하는 마음의 혼란을 버리기 때문에 곳에 따라 소리를 듣고 소리를 따라 뜻을 생각해서 다른 말을 따르지 않는다. 비록 뜻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결코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이것이 바로 모든 부처님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보살마하살은 뜻에 의하고 문자에 의하지 않아서 능히 여래의 깊고 깊은 뜻을 알고, 법과 비법(非法)을 알아서 능히 동전(動轉)함이 없다. 이러한 보살은 인욕(忍辱)을 얻지 못한 자라도 이제 이미 인욕을 얻은 것이며, 삼매를 얻지 못했더라도 이제는 삼매를 얻은 것이다. 이것을 보살이 법에 따라 주한다고 한다.어떤 것을 수집(修集)이라 하는가? 수집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사마타(舍摩他)이고, 둘째는 비파사나(毘婆舍那)이며, 셋째는 애요(愛樂)수집이고, 넷째는 어디서나 수집하여 기꺼이 그 가운데 주(住)하는 것이다.사마타는 보살마하살이 사선(四禪)과 사무색정(四無色定)을 수집하는 것이다. 마음을 모아 선정에 인연해서 능히 오개(五蓋)를 깨뜨리고, 선정의 주(住)에 인연하기 때문에 진실행(眞實行)을 이해하며, 능히 모든 나쁜 각관(覺觀)으로부터 이탈한다. 그 마음이 어지럽지 않아서 능히 안팎 법계의 뜻을 생각하여 법상(法相)을 순리로 따르며, 심법(心法)과 심수법(心數法)이 한 인연에 안주(安住)한다. 이것을 사마타라 한다.
비파사나는 사마타를 수집하여 능히 법계를 보아 법상(法相)을 분별하는 것이다. 선법을 구하고 악법을 멀리 이탈하며, 지혜로 바르게 보지 거꾸로 보지 않아 진리를 잘 이해한다. 이것을 비파사나라 한다.애요수집은 지극한 마음으로 위와 같은 두 법을 수집하는 것이다. 지극한 마음으로 수집한다는 것은 항상 방일(放逸)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애요수집이라 한다. 낙주수집(樂住修集)은 사마타와 비파사나를 수집할 때 방편을 빌리지 않고 뜻에 따라 주하는 것이다. 이것을 낙주수집이라 한다. 보살마하살이 항상 두 법을 수집하는 것을 또한 낙주(樂住)라 하며, 또한 청정이라 하며, 또한 신심적정(身心寂靜)이라 하며, 또한 광지(廣智)라 한다.
보살마하살이 이 두 법을 닦으면 곧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근본을 얻으니, 보살이 보살계를 성취하는 것은 이 두 법을 얻는 것이다. 이것을 수집이라 한다.무엇을 교(敎)라 하는가? 교에는 여덟 가지가 있으니, 보살마하살이 삼매(三昧)를 성취하여 중생을 가르치고자 할 때는 응당 먼저 정(定)에 들거나 더불어 공주(共住)한 다음이라야 능히 이 여덟 가지로써 교화할 수 있다.
어떤 것이 이 여덟 가지인가? 첫째는 지심(知心)이고, 둘째는 지근(知根)이며, 셋째는 선근(善根)이고, 넷째는 번뇌이며, 다섯째는 대치(對治)인데, 대치는 탐심(貪心)이 있는 이에게는 부정(不淨)함을 보도록 가르치고, 에심(恚心)이 있는 자에게는 자심(慈心)을 수집하도록 가르치고, 치심(癡心)이 있는 자에게는 인연을 보도록 가르치고, 나쁘게 각관(覺觀)하는 이는 호흡을 세어보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이것을 여덟 가지라 한다.이와 같은 여러 선방편(善方便)으로 중생을 교화하여 단상(斷常)의 마음을 타파하고 중도(中道)를 말한다. 실제로는 작상(作相)이 없는데도 작상을 지으며, 진실은 얻는 것이 아닌데도 득상(得想)을 지으며, 진실은 촉(觸)이 없음에도 촉상(觸想)을 지으며, 진실은 증(證)이 없음에도 증상(證想)을 지으니, 이 여덟 가지가 능히 이와 같은 망상과 교만을 깨뜨리는 것이다.다시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마음이 만일 지주(止住)하지 않으면 능히 연(緣)에 머물게 하는 것이며, 둘째는 지주한 뒤에 능히 정법(正法)을 보는 것이며, 셋째는 알맞은 방편(方便)을 아는 것이다.
만일 알맞은 방편을 알고, 중생의 심근(心根)과 선근(善根) 및 번뇌를 알면, 이 네 가지로 능히 산심(散心)을 연중(緣中)에 지주(止住)케 해서 단상(斷常)의 견(見)을 타파해 법을 말할 수 있다. 이것을 능히 정법(正法)을 본다고 한다. 탐심을 깨뜨려야겠기에 부정(不淨)함을 보도록 말하며, 진에심(瞋恚心)을 깨뜨려야겠기에 자심관(慈心觀)을 말하며, 우치(愚癡)를 깨뜨려야겠기에 인연관을 말하며, 나쁜 각관(覺觀)을 깨뜨리고자 수식관(數息觀)을 말한다. 이것을 선방편을 안다고 한다.만일 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이 계신 곳이나 보살이 있는 곳에서 스스로 이 여덟 가지를 배우고, 다시 이 법을 가지고 중생을 교화하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청정한 여덟 가지 힘이라 한다.
그 여덟 가지란 무엇인가? 첫째는 모든 선정과 해탈을 아는 힘이고, 둘째는 지근력(知根力)이며, 셋째는 해력(解力)이고, 넷째는 세계력(世界力)이며, 다섯째는 지지처도력(知至處道力)이고, 여섯째는 숙명지력(宿命智力)이며, 일곱째는 생사지력(生死智力)이고, 여덟째는 누진지력(漏盡智力)이다. 이것을 여덟 가지라 한다.또 교화하는 데에는 다시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악을 멀리 하도록 가르치는 것이고, 둘째는 선법을 수집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며, 셋째는 범계(犯戒)한 자를 가르쳐서 참회하도록 하는 것이고, 넷째는 갈마(羯磨)에 대한 억념(憶念)을 짓도록 가르치는 것이며, 다섯째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빈출갈마(擯出羯磨)를 짓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보살마하살은 이 다섯 가지를 가지고 중생을 교화하니, 연민심(憐愍心)이 있기 때문이며, 청정심이 있기 때문이다. 보살마하살이 만일 성내는 마음으로 중생을 교화한다면 보살의 금계를 얻을 수 없다.
만일 가르침을 받는 자가 법대로 받아들인다면 당연히 공경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우러러보고, 마치 부모나 불보살처럼 공양드리고 존중할 것이다. 어째서인가? 법대로 가르침을 받기 때문에 능히 신속하게 성문보리와 연각보리를 얻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다. 이것을 보살의 가르침이라 한다.선방편(善方便)은 보살마하살이 일체로 소유한 신ㆍ구ㆍ의업으로써 모두 중생을 위하여 조복하는 것이다. 이것을 선방편이라 한다. 선방편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혜시(惠施)이고, 둘째는 연어(軟語)이고, 셋째는 이익(利益)이고, 넷째는 동의(同義)이다.
보살마하살이 능히 중생에게 의복ㆍ음식ㆍ방사(房舍)ㆍ와구(臥具)ㆍ질병의 의약 등을 베풀면, 혜시를 받는 이가 이를 받고 나서는 보살의 처소에 대해 애념(愛念)하는 마음이 생겨서 지극한 마음으로 말하는 것을 들으며, 들은 뒤에는 이를 받아 지닌다. 받아 지니기 때문에 보살은 이를 연어(軟語)로 찬탄하며, 찬탄하여 주기에 받아 지닌 자가 기뻐하고, 기쁘기 때문에 능히 악심(惡心)을 깨뜨리고 선법을 수지한다.악심을 깨뜨리는 것이기 때문에 보살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미 신(信)ㆍ계(戒)ㆍ문(聞)ㆍ시(施)ㆍ혜(慧)를 구족하였으니 너희들도 마땅히 구족해야 할 것이다.”
보살이 만일 이 다섯 가지를 구족하지 못하면 모든 중생을 교화할 수 없다. 도리어 중생들이 말하기를, “당신 자신도 구족하지 못했으면서 어떻게 남에게는 구족하라고 하는가”라고 할 것이다. 이러하기 때문에 보살이 다섯 가지를 구족하는 것이니, 이것을 보살이 선방편을 써서 중생을 교화한다고 한다.
방편이란 선조복(善調伏)이며, 선조복이란 불기(不棄)ㆍ부전(不轉)ㆍ불퇴(不退)이다. 이것을 선방편이라 한다.
'매일 하나씩 > 적어보자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어보자] #4617 보살선계경(菩薩善戒經) 5권 (2) | 2024.08.07 |
---|---|
[적어보자] #4616 보살선계경(菩薩善戒經) 4권 (0) | 2024.08.07 |
[적어보자] #4614 보살선계경(菩薩善戒經) 2권 (0) | 2024.08.06 |
[적어보자] #4613 보살선계경(菩薩善戒經) 1권 (0) | 2024.08.06 |
[적어보자] #4612 보살생지경(菩薩生地經) (0) | 2024.08.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