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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637 보살영락경(菩薩瓔珞經) 8권

by Kay/케이 2024.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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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보살영락경(菩薩瓔珞經) 8

 

보살영락경 제8권

축불념 한역
장용서 번역

22. 무식품(無識品)
그때에 보살이 있었으니 이름을 정관(淨觀)이라 하였다. 그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댄 채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경전을 받아 지녀서 외면, 저는 대신하여 기쁘겠나이다. 왜냐하면 모두 다 과거 모든 여래의 집착하는 바 없는 등정각께서 닦아 행하신 바요, 미래의 모든 여래도 또한 마땅히 이 법을 익혀서 성취하게 될 것이요, 저처럼 오늘 부처님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이 법을 널리 펴시어 선권(善權)의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그리고 정관보살은 다시 부처님에게 아뢰었다.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이 법을 선전하여 현세 사람에게 펴 나타내면, 그 공덕에 스무 가지 행이 있으니, 어떤 것이 그 스무 가지인가.
총지영락(總持瓔珞)은 법계를 헐지 않고, 종성(種姓)영락은 집에 거처하면서 성취하고, 선권(善權)영락은 온갖 법을 감하거나 축내지 않고, 화생(化生)영락은 포태(胞胎)를 받지 않고, 정교(淨敎)영락은 속이거나 다투는 법이 없고, 법신(法身)영락은 이해의 성품이 청정하고,수입(受入)영락은 공행(空行)을 성취하고, 중생(衆生)영락은 온갖 것을 교화하기 때문이고, 멸도(滅度)영락은 티끌과 때가 없기 때문이고, 생진(生盡)영락은 본래 심식(心識)이 없음이요, 무량(無量)영락은 때[垢]가 스스로 청정하기 때문이고, 겁수(劫數)영락은 멀고 가까움이 없기 때문이고, 지생(知生)영락은 본래 없음을 찬탄하기 때문이고, 도덕(道德)영락은 행(行)이 스스로 멸하기 때문이고, 대승(大乘)영락은 모든 근(根)이 갖춰지기 때문이고, 해탈(解脫)영락은 중생을 보지 않기 때문이고, 법왕(法王)영락은 설법이 다함없기 때문이고, 무염(無厭)영락은 법을 받아서 피로하지 않기 때문이고,문자(文字)영락은 억지로 기억하여 잊지 않기 때문이고, 법계(法界)영락은 행(行)이 구족하기 때문이고, 법본(法本)영락은 열반이 본래 없기 때문이고, 법성(法性)영락은 나고 멸함이 없기 때문이고, 홍서(弘誓)영락은 도의 성품[道性]이 자성(自性)이기 때문이고, 진여(眞如)영락은 선의 근본[善本]이 구족하기 때문이고, 청정(淸淨)영락은 생(生)을 여의어서 본래 없기 때문이고, 무애(無礙)영락은 통달하여 오고 가기 때문이고, 법기(法起)영락은 3처(處)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법 영락(法瓔珞)을 받아 지녀서 외면, 마땅히 스무 가지의 공덕을 갖출 것이고 법문을 총지(總持)할 것이옵나이다.”그때에 정관보살이 다시 부처님에게 아뢰었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두루 가득한 삼천대천세계에 낱낱의 중생의 수만큼 7보의 탑(塔)을 세운다 하더라도,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법을 외우는 것만 못하니, 법 영락은 그 공덕과 복을 가히 헤아릴 수 없나이다.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모두 이를 말미암아 성취를 얻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7보의 탑을 세워서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차게 하더라도 선남자나 선여인이 법 영락의 업(業)을 받아 지녀 외우는 것만 못하니, 그 공덕과 복은 가히 측량할 수 없나이다.”그때에 부처님께서 정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족성자(族姓子)여. 이제 능히 여래 앞에서 사자후(獅子吼)를 내는구나. 어떠한가, 족성자여.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법 영락을 받아 지니고 외운다면, 항하 모래 수만큼의 중생이 5계(戒)를 성취한 것보다 그 복이 많겠느냐 적겠느냐?”
정관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선남자와 선여인이 법 영락의 다함없는 곳간을 얻는 것만 못하니, 그 공덕과 복은 가히 측량할 수 없어서 백배ㆍ천배ㆍ만배ㆍ거억만배(巨億萬倍)의 비유로도 견줄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한 항하의 모래알 수만큼의 중생이 5계를 성취함은 모두 법 영락을 말미암아서 모든 도(道)의 과보를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만일 한 항하의 모래 수효만큼의 중생들이 다시 5신통[五通]을 얻어서 모조리 성취했고, 게다가 5계와 10선(善)을 더 닦았다고 하면, 그 공덕과 복이 많겠느냐 적겠느냐?”
정관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따라서 선남자와 선여인이 법 영락의 업을 받아 지니고 외면, 그 공덕과 복은 가히 측량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이 5신통을 모조리 얻어 각각 성취함은, 모두 법 영락을 말미암아서 모든 도의 과보를 갖추기 때문이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만일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이 네 가지 평등한 마음[四等心]인 사랑함[慈]ㆍ어여삐 여김[悲]ㆍ기쁘게 함[喜]ㆍ수호함[護]을 행하고 제1선(禪)ㆍ제2선ㆍ제3선ㆍ제4선을 행하고, 기쁘고 편안[喜安]함을 생각하고 지녀서 스스로 지키며, 다시 네 가지 공의 정[四空定]을 행하여 낱낱이 갖추었다면, 그 공덕과 복은 많겠느냐 적겠느냐?”정관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는 선남자와 선여인이 법 영락의 업을 받아 지녀서 외는 것만 못하니, 그 공덕과 복은 가히 측량할 수가 없느니라. 왜냐하면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이 네 가지 평등한 마음인 사랑하는 마음ㆍ어여삐 여기는 마음ㆍ기뻐하게 하는 마음ㆍ수호하는 마음을 행하고, 제1선ㆍ제2선ㆍ제3선ㆍ제4선을 행하며, 기쁘고 편안함을 생각하고 지니면서 스스로 지키고, 네 가지 공한 정을 행하는 것은, 모두 법 영락을 말미암아서 모든 도의 과보를 갖추기 때문이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만일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이 모두 수다원(須陀洹)의 과를 얻어서 온갖 망령된 생각을 끊어 모조리 성취하고 분명하게 통달하였다고 하면, 그 공덕과 복은 많겠는가, 적겠는가?”
정관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는 선남자나 선여인이 법 영락의 업을 받아 지녀서 외우는 것만 못하니, 그 공덕과 복은 가히 측량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들이 모조리 수다원의 도를 얻어 낱낱이 성취함은, 모두 법 영락을 말미암아서 모든 도의 과보를 갖추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정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만일 한 항하의 모래 수효만큼의 중생들이 사다함(斯陀含)의 과를 모두 얻어서 다시는 의심[狐疑] 없이 모조리 성취하였다 하면, 그 공덕과 복이 많겠는가, 적겠는가?”정관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선남자나 선여인이 법 영락의 업을 받아 지녀서 외는 것만 못하니, 그 공덕과 복은 가히 측량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들이 모조리 사다함(斯陀含)을 얻어서 낱낱이 성취하여 의심함이 없음은, 모두 법 영락을 말미암아서 모든 도의 과보를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만일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들이 아나함(阿那含)과를 얻어서 다시 의심할 것이 없이 모조리 성취하였다고 하면, 그 공덕과 복이 많겠느냐, 적겠느냐?”
정관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는 선남자나 선여인이 법 영락의 업을 받아 지녀서 외는 것만 못하니, 그 공덕과 복은 가히 측량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들이 모조리 아나함을 얻어서 낱낱이 성취하여 의심할 것이 없음은, 모두 법 영락을 말미암아서 모든 도의 과보를 갖추기 때문이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만일 한 항하의 모래알 수효만큼의 중생들이 아라한(阿羅漢)의 과를 모두 얻어서 다시 의심할 것이 없이 모조리 다 성취하였다고 하면, 그 공덕과 복이 많겠느냐 적겠느냐?”
정관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는 선남자나 선여인이 법 영락의 업을 받아 지녀서 외는 것만 못하니, 그 공덕과 복은 가히 측량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들이 모조리 아라한을 얻어서 낱낱이 성취하여 의심할 것이 없음은, 모두 법 영락을 말미암아서 모든 도의 과보를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정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만일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들이 벽지불을 모두 얻어서 낱낱이 성취하여 다시 의심할 것이 없다고 하면, 그 공덕과 복이 많겠느냐 적겠느냐?”
정관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는 선남자나 선여인이 법 영락의 업을 받아 지녀서 외는 것만 못하니, 그 공덕과 복은 가히 측량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들이 모조리 벽지불을 얻어서 낱낱이 성취하여 의심할 것이 없음은, 모두 법 영락을 말미암아서 모든 도의 과보를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만일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들이 1주(住)의 행(行)을 이루어 뜻을 발하여 도(道)에 나아가서 열여덟 가지 법[十八法]과 37품(品)과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닦으면, 그 공덕과 복이 많겠느냐, 적겠느냐?”
정관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는 선남자나 선여인이 법 영락의 업을 받아 지녀서 외우는 것만 못하니, 그 공덕과 복은 가히 측량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들이 모조리 1주의 행을 이루어서 뜻을 발하여 도에 나아가 열여덟 가지 법과 37품과 공ㆍ무상ㆍ무원을 닦아서 낱낱이 성취하여 의심할 것이 없음은, 모두 법 영락을 말미암아서 모든 도의 과보를 갖추기 때문이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만일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들이 1지(地)를 초월하여 2지에 머물면서 여덟 가지 법을 수행하고 나아가 열여덟 가지 법과 37품과 공ㆍ무상ㆍ무원을 닦았다고 하면, 그 공덕과 복이 많겠느냐, 적겠느냐?”
정관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는 선남자와 선여인이 법 영락의 업을 받아 지녀서 외우는 것만 못하니, 그 공덕과 복을 가히 측량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들이 1지를 초월하여 2지에 머물면서 여덟 가지 법을 수행하고 나아가 열여덟 가지 법과 37품과 공ㆍ무상ㆍ무원을 닦아서 낱낱이 성취하여 의심할 것 없음은, 모두 법 영락을 말미암아서 모든 도의 과보를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만일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들이 1지와 2지를 뛰어넘어 3지 가운데 있으면서 다섯 가지 청정한 법을 닦고, 다섯 가지 관하는 법을 행하고, 여덟 가지 법과 열여덟 가지 법과 37품과 공ㆍ무상ㆍ무원을 닦아 행할 것 같으면, 그 공덕과 복이 많겠느냐, 적겠느냐?”
정관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따라서 선남자와 선여인의 법 영락의 업만 못하나니, 그 공덕과 복을 가히 측량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들이 1지 내지 2지를 뛰어넘어 3지 가운데 있으면서 다섯 가지 정법을 닦고, 다섯 가지 관하는 법을 행하며, 아울러 여덟 가지 법과 열여덟 가지 법과 37품과 공ㆍ무상ㆍ무원을 닦아서 낱낱이 성취하여 의심할 것이 없음은, 모두 법 영락을 말미암아서 모든 도의 과보를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만일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들이 1지, 2지, 3지로부터 4지 가운데 머무르면서 네 가지 법[四法]과 일곱 가지 관행[七觀行]과 다섯 가지 깨끗한 법을 닦고, 다섯 가지 관법을 행하고, 여덟 가지 법과 아울러 열여덟 가지 법과 37품과 공ㆍ무상ㆍ무원을 닦아 행하면, 그 공덕과 복이 많겠느냐, 적겠느냐?”
정관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는 선남자나 선여인의 법 영락의 업만 못하나니, 그 공덕과 복은 측량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들이 제4지에 있으면서 네 가지 법과 일곱 가지 관행을 닦아 행하고, 다섯 가지 깨끗한 법을 닦고 다섯 가지 관법을 행하고, 여덟 가지 법과 및 열여덟 가지 법과 37품과 공ㆍ무상ㆍ무원을 닦아 행해서 낱낱이 성취하여 의심할 것 없음은, 모두 법 영락을 말미암아서 모든 도의 과보를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만일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들이 5지에 머물면서 열두 가지 법[十二法]을 닦아서 심의(心意)가 미혹하지 않아 교화를 감당하며, 아울러 네 가지 법을 닦고, 일곱 가지 관행을 행하고, 다섯 가지 깨끗한 법을 닦고, 다섯 가지 관법을 행하며, 여덟 가지 법과 열여덟 가지 법과 37품과 공ㆍ무상ㆍ무원을 닦아 행하였다면, 그 공덕과 복이 많겠느냐, 적겠느냐?”
정관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는 선남자나 선여인의 법 영락의 업만 못하니, 그 공덕과 복은 측량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들이 5지에 머물면서 열두 가지 행을 닦아서 심의(心意)가 미혹하지 않아 교화를 감당하며, 아울러 네 가지 법을 닦고, 일곱 가지 관행을 행하고, 다섯 가지 깨끗한 법을 닦고, 다섯 가지 관법을 행하며, 여덟 가지 법과 열여덟 가지 법과 37품과 공ㆍ무상ㆍ무원을 닦아 행해서 낱낱이 성취하여 의심할 것 없음은, 모두 법 영락을 말미암아서 모든 도의 과보를 갖추기 때문이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만일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들이 6지에 머물면서 6바라밀인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一心]ㆍ지혜를 행하고, 열두 가지 법을 닦아서 심의(心意)가 미혹하지 않아 교화를 감당하며, 아울러 네 가지 법의 행과 일곱 가지 관행을 닦고, 다섯 가지 깨끗한 법을 닦고 다섯 가지 관법을 행하며, 열여덟 가지 법과 37품과 공ㆍ무상ㆍ무원을 닦아 행하였다면, 그 공덕과 복이 많겠느냐, 적겠느냐?”
정관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는 선남자나 선여인의 법 영락의 업만 못하니, 그 공덕과 복은 측량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들이 6지에 머물면서 6바라밀인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를 행하고, 열두 가지 법을 닦아서 심의(心意)가 미혹하지 않아 교화를 감당하며, 아울러 네 가지 법의 행과 일곱 가지 관행을 닦고, 다섯 가지 깨끗한 법을 닦고 다섯 가지 관법을 행하며, 열여덟 가지 법과 37품과 공ㆍ무상ㆍ무원을 닦아서 법 영락 업의 그 공덕과 복을 가히 측량할 수 없는데, 이를 낱낱이 성취하여 의심할 것 없음은, 모두 법 영락을 말미암아서 모든 도의 과보를 갖추기 때문이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만일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들이 7지 가운데 있으면서 불퇴전(不退轉)에 이르는 열세 가지 법을 행하여 마침내 뜻이 굳건해지고, 무상정등각을 이루어서 4무외(無畏)를 얻고, 네 가지 변재를 얻으며, 6바라밀인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를 행하고, 열두 가지 법을 닦아 심의(心意)가 미혹하지 않아 교화를 감당하며, 아울러 네 가지 법의 행과 일곱 가지 관행을 닦고, 다섯 가지 깨끗한 법을 닦고 다섯 가지 관법을 행하며, 열여덟 가지 법과 37품과 공ㆍ무상ㆍ무원을 닦아 행한다면, 그 공덕과 복이 많겠느냐, 적겠느냐?”정관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는 선남자나 선여인의 법 영락의 업만 못하니, 그 공덕과 복은 측량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들이 7지 가운데 있으면서 불퇴전(不退轉)에 이르는 열세 가지 법을 행하여 마침내 뜻이 굳건하여 무상정등각을 이루어서 4무외(無畏)를 얻고, 네 가지 변재를 얻으며, 6바라밀인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를 행하고,열두 가지 법을 닦아 심의(心意)가 미혹하지 않아 교화를 감당하며, 아울러 네 가지 법의 행과 일곱 가지 관행을 닦고, 다섯 가지 깨끗한 법을 닦고, 다섯 가지 관법을 행하며, 열여덟 가지 법과 37품과 공ㆍ무상ㆍ무원을 닦아, 법 영락 업의 그 공덕과 복을 가히 측량할 수 없는데, 이를 낱낱이 성취하여 의심할 것 없음은, 모두 법 영락을 말미암아서 모든 도의 과보를 갖추기 때문이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한 항하의 모래 수의 중생들이 8지 가운데 있으면서 동진행(童眞行)에 입각하여 열두 가지 묘한 법[十二妙法]과 다섯 가지 지혜의 업[五慧業]을 성취하고 열세 가지 법을 행해서, 마침내 뜻이 굳건하여 응당 무상정등각을 이루게 되어서 4무소외를 얻고, 네 가지 변재를 얻고, 6바라밀인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를 행하고, 열두 가지 법을 닦아서 심의(心意)가 미혹하지 않아 교화를 감당하며, 아울러 네 가지 법의 행과 일곱 가지 관행을 행하고, 다섯 가지 깨끗한 법을 닦고 다섯 가지 관행을 행하며, 여덟 가지 법과 열여덟 가지 법과 37품과 공ㆍ무상ㆍ무원을 닦는다고 하면, 그 공덕과 복이 많겠느냐 적겠느냐?”정관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는 선남자나 선여인의 법 영락의 업만 못하니, 그 공덕과 복은 측량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들이 8지 가운데 있으면서 동진행에 입각하여 열두 가지 묘법(妙法)을 성취해서 심의(心意)가 미혹하지 않아 교화를 감당하며, 아울러 네 가지 법의 행과 일곱 가지 관행을 행하고, 다섯 가지 깨끗한 법을 닦고 다섯 가지 관행을 행하며, 여덟 가지 법과 열여덟 가지 법과 37품과 공ㆍ무상ㆍ무원을 닦아서 법 영락 업의 그 공덕과 복을 가히 측량할 수 없는데, 이를 낱낱이 성취하여 의심할 것 없음은, 모두 법 영락을 말미암아서 모든 도의 과보를 갖추기 때문이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들이 9지 가운데 있으면서 반드시 마땅히 굳게 머물러 부처님의 한량없는 신덕(神德)의 업을 얻으며, 온갖 법을 다 버려서 다시는 닦아 익히지 않으며, 나아가서 반드시 성불(成佛)하여 다시는 퇴전하지 않는다면, 그 공덕과 복이 많겠느냐 적겠느냐?”
정관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는 선남자나 선여인의 법 영락의 업만 못하나니, 그 공덕과 복은 측량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한 항하의 모래 수효 중생들이 9지 가운데 있으면서 동진행에 입각하여 열두 가지 묘한 법을 성취해서 심의가 미혹하지 않아 교화를 감당하여 이와 같이 하매, 시방 항하 모래 수효를 가득 채우고 앞의 1지와 2지 나아가 9지까지 채웠으나, 이는 법 영락의 업만 못하기 때문이니, 그 공덕과 복은 측량할 수 없어도 낱낱이 성취하여 의심할 것 없음은, 모두 법 영락을 말미암아서 모든 도의 과보를 갖추기 때문이니라.”그때에 부처님께서 정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나는 오늘날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으로서 삼계에 홀로 존귀하여 삼천대천세계를 모두 통솔하고 있어서 하늘 중의 하늘[天中天]이라고 불리고 있나니, 이것은 법 영락의 업으로 말미암아 성취하게 된 것이니라. 법 영락의 공덕과 복은 가히 측량할 수 없고 깊고 요긴한 갖가지 도의 과보를 갖추었느니라.”그때에 보살이 있었으니 이름을 변통(辯通)이라고 일렀다. 그는 즉각 자리에서 일어나 꿇어앉아서 합장한 채 부처님께 여쭈었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마음과 뜻을 다하여 기꺼이 법 영락을 닦아 익히고자 하면, 어떻게 마음을 쓰고 어떠한 법을 마땅히 행하여야 법 영락의 지혜를 성취할 수 있습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족성자여.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법 영락을 닦아 익히고자 하는, 이라면 마땅히 망령된 생각을 버리고 식(識)의 집착을 내지 말아야 하나니, 그래야만 온갖 염(念)을 갖추어서 뭇 정(定)에 들어갈 수 있으며,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노닐면서도 한 부처님의 국토에서 한 부처님의 국토에 이르기까지 여러 부처님 세존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느니라. 왜냐하면 모두 식의 집착하는 상념[識着想]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갖가지 도의 과보를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니라.”

23. 수가섭권행품(受迦葉勸行品)
그때 부처님께서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 및 널리 와서 모인 온갖 대중과 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능히 여래 앞에서 유행(有行)ㆍ무행(無行)의 불가사의한 뭇 지혜[衆智]의 문(門)을 설할 것을 감당하겠는가.”
그때에 온갖 대중이 여래께서 유행ㆍ무행의 불가사의한 뭇 지혜의 문을 말씀하심을 듣고서 잠자코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설상(舌相)의 광명을 놓아서 무수한 한량없는 국토에 널리 비추시어 한량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광명을 보게 하시었는데, 그 광명을 본 자는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無上正眞道意]을 모두 발하였다.그때 여기서 동쪽으로 십억 항하의 모래 수효만큼의 부처님 나라를 지나가서 부처님 나라가 있으니, 이름은 연화정(蓮花淨)이요, 부처님의 이름은 정교(淨敎)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시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큰 광명을 놓아서 삼천대천세계에 널리 비추심을 보시고는 곧 보살 1만 2천 명을 보내셨는데, 그들은 이 사바세계에 와서 부처님 계신 데에 이르자 땅에 엎드려 발아래 절하고는 한쪽에 앉아 있었다.
또 여기서 남쪽으로 10억 항하의 모래 수효 부처님 나라를 지나서 부처님이 계시니, 그 이름은 일도(一道)이시다. 다시 광명을 보시고는 이윽고 보살 8천 대사(大士)를 보내셨는데, 그들은 이 사바세계에 와서 부처님 계신 데에 이르자 부처님 주위를 세 번 돌고나서 한쪽에 앉아 있었다.또 여기서 서쪽으로 일곱 항하의 모래 수효 등의 부처님 세계를 지나서 부처님이 계시니, 그 이름은 무애(無礙)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시었다. 이 광명이 널리 비춘 바를 보시고는 곧 1천2백 대사를 보내셨는데, 모두 신통(神通)을 얻었으므로 마군의 세계를 지나서 사바세계에 와서 부처님 계신 데에 이르자, 땅에 엎드려 발아래 절하고는 한쪽에 앉아 있었다.
또 여기서 북쪽으로 13억 항하의 모래 수효 떨어진 곳에 부처님 국토가 있으니, 그 이름은 여상(如像)이고, 부처님의 이름은 정의(正意)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시었다. 다시 광명이 삼천대천세계를 널리 비춤을 보시고는 이윽고 5만 보살을 보내셨는데, 이들은 모두 다 신족(神足) 등 6신통이 맑고 밝았다. 그들은 사바세계의 부처님이 계신 곳에 이르자, 땅에 엎드려 발아래 절하고는 한쪽에 앉아 있었다.또 여기서 동북쪽으로 8항하의 모래 수효를 지나 부처님 국토가 있으니 그 이름은 제구(除垢)이고, 부처님의 이름은 등행(等行)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시었다. 이 광명을 보시고는 또한 보살 7천 대사를 보내셨는데, 그들은 사바세계에 와서 부처님 계신 데에 이르자, 땅에 엎드려 발아래 절하고는 한쪽에 앉아 있었다.
또 여기서 동남쪽으로 3억 부처님 국토를 지나 부처님 국토가 있으니, 그 이름은 적보(積寶)이고, 부처님의 이름은 선적(善積)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시었다. 또한 광명을 보시고는 이윽고 7백 정사(正士:보살)를 보내셨는데, 모두 신통을 얻고 걸림 없는 지혜[無碍慧]를 얻은 이들이었다. 그들은 사바세계에 와서 부처님 계신 데에 이르자, 땅에 엎드려 발아래 절하고 나서는 한쪽에 앉아 있었다.또 여기서 서남쪽으로 십 항하 모래 수효의 여러 부처님 국토를 지나서 부처님 국토가 있으니, 그 이름은 일상(一相)이고, 부처님의 이름은 등혜(等慧)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시었다. 이 광명을 보시고는 이윽고 1천5백 대사를 보내셨는데, 그들은 사바세계에 와서 부처님 계신 데에 이르자 땅에 엎드려 발아래 절하고는 한쪽에 앉아 있었다.
또 여기서 서북쪽으로 14억 항하 모래 수효의 여러 부처님 국토를 지나서 국토가 있으니, 그 이름은 청정(淸淨)이고, 부처님의 이름은 중덕(衆德)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시었다. 이 광명을 보시고는 이윽고 5천 보살을 보내셨는데, 그들은 사바세계에 와서 부처님 계신 데에 이르자, 땅에 엎드려 발아래 절하고는 한쪽에 앉아 있었다.또 여기서 위쪽[上方]으로 중생계(衆生界)를 지나고 다시 두 항하의 모래 수효만큼의 세계를 지나 부처님 국토가 있으니, 그 이름은 보자(普慈)이고, 부처님의 이름은 홍등(弘等)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시었다. 이 광명을 보시고는 이윽고 5천 보살을 보내셨는데, 그들은 사바세계에 와서 부처님 계신 데에 이르자, 땅에 엎드려 발아래 절하고는 한쪽에 앉아있었다.
또 여기서 아래쪽[下方]으로 32억 항하의 모래 수효를 지나서 부처님 국토가 있으니, 그 이름은 견고(堅固)이고, 부처님의 이름은 불사홍서(不捨弘誓)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시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큰 광명을 놓으심을 보시고는 또한 십천(十千)의 대사를 보내셨는데, 하방으로부터 와서 부처님 계신 데에 이르자, 땅에 엎드려 발아래 절하고는 한쪽에 앉아있었다.이때에 부처님께서 대중들이 자리를 이미 정한 것을 보시고는 문득 와서 모인 이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마땅히 유행(有行)ㆍ무행(無行)을 설하리니, 살펴 듣고 살펴 들어서 잘 생각하여라.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수다원(須陀洹)으로부터 아라한(阿羅漢)에 이르기까지 여래의 도혜장(道慧藏)을 얻지 못한 이들 무리는, 성례(聖例)에 있지 못하느니라.”이때에 좌상(座上)에 9만 2천의 집착 없는 아라한이 다른 방위의 세계에서 이 사바세계로 와서 여래로부터 법 영락의 유행ㆍ무행을 듣고자 했는데, 이제 부처님께서 이와 같은 가르치심, 즉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수다원으로부터 아라한에 이르기까지 여래의 도혜장을 밟지 못한 이런 무리는, 성례(聖例)에 있지 못하다’고 말씀하심을 들었다. 이때 9만 2천의 도를 얻은 아라한은 갖가지 번뇌[漏]가 이미 다하였고 얽히고 맺힌 것이 다 풀려서, 다시는 태어남을 받지 않을 것을 여실히 알았다.그때 마하가섭(摩訶迦葉)ㆍ아야구린(阿若拘隣)ㆍ사리불(舍利弗)ㆍ마하목건련(摩訶目犍連)ㆍ빈두로(賓頭盧)ㆍ마하가전연(摩訶迦旃延)ㆍ이월(離越)ㆍ수보리(須菩提)ㆍ만원자(滿願子) 등 9만 2천 명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땅에 엎드려 부처님 발아래에 절하고는 부처님을 에워싸서 세 번 돈 뒤에 각기 스스로 꿇어앉은 채 앞에 나와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저희들이 비록 4과(果)를 얻어서 6통(通)이 맑고 사무쳤사오나, 오히려 범부의 행을 하는 사람만도 못하옵나이다. 그 까닭은 이제 부처님께서 도혜의 깊은 곳간[道慧深藏]을 말씀하심을 들으니 저희들이 들어갈 바의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옵나이다. 오직 원하옵건대 부처님이시여, 이 법을 얻어 들어서 오래 잠든 중생으로 하여금 영원히 망설임이 없게 하여 주십시오.”이때 부처님께서는 말없이 계시면서 답하지 않으셨다. 그러자 대가섭이 거듭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희들 나한은 비록 불자(佛子)로 칭해지게 되었사오나, 이것은 모두 여래의 허물이지 저희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가령 여래께서 맹세코 3승(乘)을 없앴더라면, 저희들이 어찌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지 아니하였겠습니까? 어찌하여 부처님께서는 성례에 있을 것을 들어주지 않나이까?”
그리고 대가섭과 9만 2천의 진인(眞人)들이 모두 가사(袈裟)를 벗고 애달프게 소리 내어 울면서 오체투지(五體投地)하였다.바로 이때 삼천대천의 세계국토에는 여섯 가지 변화의 진동이 있었는데, 여러 하늘ㆍ용ㆍ귀신ㆍ아수라[阿須倫]ㆍ가루라[迦留羅]ㆍ긴나라[眞陀羅]ㆍ마후라가[摩休勤]ㆍ건달바[乾塔惒], 사람과 사람 아닌 것들이 전에 없던 일이라고 괴이하게 여겼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사람들 마음속의 의심을 풀어 주시고자 문득 오른손을 펴서 가섭을 붙들어 일으키시어 각각 제자리로 돌아가 앉게 하셨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다음의 게송을 말씀하셨다.
본래 없음은 여래(如來)의 업이니
도혜장(道慧藏)의 으뜸이네.
온갖 바라밀의 한량없는 지혜로
차츰 여래의 경계에 들어가네.
대도(大道)에는 3승(乘)이 없거니
하물며 4과(果)가 있을 손가
허공처럼 청정하길 관함은
늙은이 가섭이 해당된다네.
나는 이제 이 마음을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관하니
한량없는 변화를 많이 나타내어
부처의 큰 서원을 버리지 않네.
아득한 옛날로부터
신족영락(神足瓔珞)을 닦았으니
6바라밀의 넓고 큰 법에
어찌 성문의 이름이 있으랴.
부처님 경계는 한계와 끝이 없고
교화하는 바도 또한 같지 않아
이 때문에 중생을 미혹케 함을
소위 도의 약간(若干)이라 한다네.
그때에 좌상에 있던 수없는 중생들이 여래께서 이 게송을 설하심을 듣고 나서는 모조리 다 뜻을 발하였다. 도혜(道慧)의 깊은 장(藏)의 매우 심오한 법을 믿고 즐기면서 듣고자 해서 모두가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발하였고, 다시 무앙수의 중생이 바른 마음으로 해탈하여 진신(盡信:믿음을 다함)의 행을 얻었다.
24. 유행무행품(有行無行品)
그때에 무정상(無頂相)보살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꿇고 합창한 채 앞에 나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감히 부처님 앞에서 한번 유행(有行)ㆍ무행(無行)을 설해보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족성자여. 만일 능히 설할 수 있다면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라.”무정상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본래 없음[本無]을 이해해 요달하면, 이것을 행이 있다고 이르고, 본래 없음은 자연히 비고 고요하여 형상이 없으니, 이것을 행이 없다고 이르나이다.”
광진(廣進)보살이 아뢰었다.
“저 부처님 국토에 나타나서 신족(神足)으로 교화하는 것을 행이 있음이라 이르고, 국토를 보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소위 행이 없음이라 이르나이다.”지생(知生)보살이 아뢰었다.
“열반은 고요하고 조용해서 일어나고 멸함이 없는데, 이것을 행 있음이라 이르고, 열반과 열반의 모습을 보지 않음을 소위 행 없음이라고 이르나이다.”
법보(法寶)보살이 아뢰었다.
“도(道)와 도 아닌 것을 설함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도가 있음도 아니요 도가 없음도 아님을 행 없음이라고 이르나이다.”정묘(淨妙)보살이 아뢰었다.
“청정한 법관(法觀)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청정한 법관을 보지 않음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취도(趣道)보살이 아뢰었다.
“부처님의 신력(神力)을 보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부처님도 보지 않고 신력도 또한 없음을 소위 행 없음이라고 이르나이다.”
보시(普施)보살이 아뢰었다.
“현재 정(定)에 들어 있음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닦아 행함도 보지 않고 또한 정에 들어 있음도 보지 않음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월광조(月光照)보살이 아뢰었다.
“불신(佛身)의 모습이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가득 찬 것을 봄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부처님 및 상호(相好)를 보지 않음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애세(哀世)보살이 아뢰었다.
“나[吾我]와 목숨[壽命]이 있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목숨도 보지 않고 또한 나도 보지 않음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무외(無畏)보살이 아뢰었다.
“법을 설하되 법의 상념[法想]이 없음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법을 보지 않으면서도 법이 없지 않음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이렇게 보살마하살이 행 있음과 행 없음에서 문득 보살영락을 갖추게 되었다.
무량(無量)보살이 아뢰었다.
“부처님의 양(量)을 지나감으로써 한정할 수없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양을 보지 않고 또한 양 아님[非量]도 보지 않음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심념(心念)보살이 아뢰었다.
“6신통(神通)으로써 온갖 부처님 나라에 노닐면서도 스스로 신통의 도[神通道]를 기리고 찬탄하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국토를 보지 않고 제접하여 건네주는 바가 있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현호(賢護)보살이 아뢰었다.
“일체를 능히 변화하여 모두 부처의 형상이 되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변화도 보지 않고 부처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무변제(無邊際)보살이 아뢰었다.
“부처님 세계의 한량없음을 총지(摠持)하여 잊지 않음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본래 총지(總持)도 없고 삼보도 없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상비(常悲)보살이 아뢰었다.
“온갖 중생을 두고 대승의 마음[大乘心]을 발함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대승도 없고 다시 도(道)도 있지 않은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부사의(不思議)보살이 아뢰었다.
“부처님은 부사의하시고 바른 법도 또한 그러하며 법도 부사의하고 받는 과보[受報]도 또한 그러함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사의(思議)도 보지 않고 부사의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주선(周旋)보살이 아뢰었다.
“공의 지혜[空慧]는 하나로서 지혜가 없지 않은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지혜는 또한 비고 고요해서 지혜가 있지도 않고 지혜가 없지도 않은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법조(法造)보살이 아뢰었다.
“여래는 하나이시고 진제(眞際)도 또한 그러하다고 하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여래를 보지도 않고 진제도 보지 않으며 하나도 없고 하나 아님도 없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선권(善權)보살이 아뢰었다.
“혜관(慧觀)으로 일체 모든 법을 분별하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혜관도 없고 다시 온갖 법도 없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무여등(無與等)보살이 아뢰었다.
“한 모습[一相]이어서 무상(無相)이라 하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상(相)도 보지 않고 무상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행 있음과 행 없음에서 문득 능히 보살영락을 갖추었다.
공훈(功勳)보살이 아뢰었다.
“또한 남[生]을 보지 않고 나지 않음[不生]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남 또한 남이 없고 다시 남 없음도 없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각오(覺悟)보살이 아뢰었다.
“항상함이 있고 항상함이 없는 것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항상도 보지 않고 항상 아님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성취(成就)보살이 아뢰었다.
“몸의 행[身行]을 짓지 않고 또한 집착한 바도 없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반면 짓는 것도 보지 않고 또한 짓지 않는 것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원락(願樂)보살이 아뢰었다.
“입의 행[口行]을 짓지 않고 또한 집착한 바도 없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짓는 것도 보지 않고 짓지 않는 것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무처소(無處所)보살이 아뢰었다.
“뜻의 행[意行]을 짓지 않고 또한 집착한 바도 없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짓는 것도 보지 않고 짓지 않는 것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무애지(無碍智)보살이 아뢰었다.
“깨달으면서도 깨닫는 바가 없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깨달음도 보지 않고 또한 다시 중생의 상념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향적(香積)보살이 아뢰었다.
“도(道)의 본래 없음이 법의 성품[法性]과 다르지 않음을 이해하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도를 보지 않고 다시 법의 성품도 없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전법륜(轉法輪)보살이 아뢰었다.
“보리수[樹王]아래에 있어서 네 가지 도[四道]의 과증(果證)을 선포해서 연설하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법을 설하되 법의 상념[法想]이 없고 또한 네 가지 도를 보지 않는 것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자관(自觀)보살이 아뢰었다.
“색(色)ㆍ통(痛)ㆍ상(想)ㆍ행(行)ㆍ식(識)의 공함을 설하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5음(陰)의 성패(成敗)를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나이다.”중지(衆智)보살이 아뢰었다.
“그 4의지(意止)를 관하여 안팎이 공한 줄 아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뜻의 그침이 본래 좇아온 바가 없고 가도 또한 이르는 바가 없음을 분별하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다문(多聞)보살이 아뢰었다.
“온갖 법과 37품(品)까지 타오르게 하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타오르는 것과 일체 모든 법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법신(法身)보살이 아뢰었다.
“일체 모든 법에서 움직여 옮기는 것과 움직여 옮기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움직여 옮기지 않거나 움직여 옮기지 않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무노(無怒)보살이 아뢰었다.
“온갖 법은 스스로 그러하니 법관(法觀)도 또한 그러하고, 법관이 스스로 그러하니 온갖 법도 또한 그러한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본래 온갖 법이 없고 또한 법관도 없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상수(上首)보살이 아뢰었다.
“부처님의 슬기를 분별해서 그것의 비고 고요함[虛寂]을 아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부처님의 깊은 지혜는 본래의 성품이 스스로 그러해서 또한 명호도 없음을 관하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도의(道議)보살이 아뢰었다.
“5분법신(分法身)을 요달해서 멀리 여읨이 없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성품은 스스로 형상이 없고 또한 일어나고 멸함이 없다고 낱낱이 관찰하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본조(本祚)보살이 아뢰었다.
“일체 모든 법은 또한 의지하는 바가 없어서 안의 공[內空]에도 의지하지 않고 또한 밖의 공[外空]에도 의지하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안팎의 공 및 일체 모든 법을 요달하여 생겨나는 것도 보지 않고 멸하는 것도 보지 않아서 모조리 집착한 바 없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권현(權現)보살이 아뢰었다.
“주선(周旋)하고 오고 가면서 여러 부처님께 절하고 섬기면서 부처님 국토의 깨끗하거나 깨끗지 않음과 중생의 좋고 나쁨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자기의 몸 및 여러 부처님 나라의 좋고 나쁘고 맑고 탁함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무상착(無想着)보살이 아뢰었다.
“온갖 법이 어지럽지 않아서 담연하여 옮기지 않으므로 괴로움과 즐거움, 항상함과 항상하지 않음, 좋다거나 추하다는 것을 계교하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한량없는 지혜는 모조리 공으로 돌아가서 산란과 혼침, 괴로움과 즐거움, 좋음과 추함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대자(大慈)보살이 아뢰었다.
“온갖 법의 취(趣)가 있고 취가 없음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영원히 취가 있지 않아서 또한 취를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인행(忍行)보살이 아뢰었다.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 및 허공식계(虛空識界)의 진여일성(眞如一性)을 아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공ㆍ무상ㆍ무원도 공이고, 공도 또한 이 공ㆍ무상ㆍ무원으로서 다시 보응(報應)이 없는 것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보장(寶掌)보살이 아뢰었다.
“하나의 정의(定意)에 들어가서 여러 부처님의 위의(威儀)로 행하시는 법칙(法則)의 도를 모조리 아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비록 선정(禪定)에 들었으나 영원히 법의 상(法相)이 없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희경(喜慶)보살이 아뢰었다.
“3독(毒)의 근본은 자연히 일어났다 멸하는데, 생겨나되 생겨나는 까닭을 알지 못하고 멸하되 멸하는 까닭을 알지 못하니, 이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3독(毒)의 근본이 스스로 형상의 조짐이 없어서 영원히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 없다고 관하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고 이르나이다.”
관진(觀進)보살이 아뢰었다.
“계율[律]을 받들어서 지켜 범하는 바가 없고 또한 범함이 있음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본래 율이 있지 않고 또한 범함도 있지 않아서 본래의 성품이 스스로 그러한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상희(常喜)보살이 아뢰었다.
“열두 가지 법문(法門)을 분별해서 해탈하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해탈 및 여러 법보(法寶)의 일어남과 멸함이 있음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선창(宣暢)보살이 아뢰었다.
“법이 생겨나고 괴로움이 생겨나도 본래 처소가 없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괴로움의 본제(本際)를 알아도 가히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수도(修道)보살이 아뢰었다.
“큰 도는 일상(一相)이고 열반은 형상이 없어서 위없는 도를 뜻으로 구함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연설한 도(道)라도 정미(精微)함이 없고 법계는 스스로 그러해서 능히 돌고 도는 것이 없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강법(講法)보살이 아뢰었다.
“건립한 도(道)가 불가사의해서 비록 더럽고 탁한 데에 처해 있지만 처한 바가 없는 듯한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다섯 가지 깨끗함[五淨] 및 다섯 가지 탁함[五濁]의 성질은 본래 허망하여 참되지 않고 또한 있는 바도 아님을 완전히 아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이때에 시방의 무앙수 항하 모래 수효의 여러 보살들이 각각 스스로 ‘행 있음ㆍ행 없음’을 아뢰고 나서 각기 돌아가 제자리에 앉았다.
그때 대가섭이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바로 여미고 꿇어앉아 합장한 채 앞에 나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도 또한 행 있음ㆍ행 없음을 감히 말해보겠나이다. 만일 허락해 주시오면 감히 품고 있는 생각을 아뢰겠나이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대중이 모여서 목마르게 바란 지 오래되었느니라. 만일 감당하여 말할 수 있으면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라.”그때에 대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바른 율법[正律]인 열두 가지 두타행의 얻기 어려운 법[十二頭陀難得法]을 받들어 지니면서 누실(漏失)되는 바가 터럭만치도 없게 하고, 또한 상념을 일으켜서 옳다 그르다 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제일가는 행의 있음이라 하나이다.”
그리고 대가섭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다시 선남자나 선여인이 한뜻으로 생각하는 바를 오로지 정밀하게 하여 잊지 않고, 도의 가르침을 능히 연설하여 각각 지취(志趣)를 채우고, 나아가 성불에 이르기까지 큰 서원을 고치지 않는다면, 이것도 또한 이름하여 제일가는 행의 있음이라 하나이다.”그리고 대가섭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다시 선남자와 선여인이 배움에 나아가 선관법문(禪觀法門)을 닦아 익히고, 갖가지 통혜(通慧)에 물들어 집착한 바가 없고, 도에 뜻을 두고 구하는 이를 각각 즐겁게 하며, 다시 능히 달래고 인도하여 도의 길을 가져다 보여주고, 앞 사람의 마음을 따르면서 그 원하는 바를 성취하게 하고, 대승(大乘)을 구하는 이는 끝내 뜻을 성취하여 중간의 장애에 떨어지지 않게 하며, 만일 다시 벽지불을 얻고자 하는 이는 또한 다시 수호하여 무위(無爲)를 얻게 하니, 이것도 또한 이름하여 제일가는 행의 있음이라 하나이다.”그리고 대가섭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무행법(無行法)을 닦아 익히고자 한다면, 온갖 중생의 죄의 뿌리는 깊고 단단하여 뽑기가 어렵나이다. 그렇지만 이 죄인은 저와 더불어 인연이 없으므로 제도를 얻게 할 수 없나이다. 그런데 우리 세존께서는 권교점사방편(權巧漸伺方便)을 은밀히 베풀어서 저들의 거취(去就)를 알아 인연을 만들어서 덮개[覆蓋]를 입게 하시니, 이것을 소위 행의 없음이라 이르나이다.”그리고 대가섭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본래 도의 마음이 없어 범부의 경지에 있다면, 곧 능히 가르쳐 주어서 도의 뜻을 발하여 마지막까지 성취하도록 해서 끝내 중간에 타락하여 2지(地) 가운데 있지 않사오니, 이것을 소위 행의 없음이라 이르나이다.다시 부처님이시여.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수없는 겁으로부터 공과 덕을 쌓아서 큰 서원을 발하기를 ‘만일 내가 도를 이루어서 아무 나라에 태어나면 아무 성현의 제자로 만날 터인데, 좌우로 따르는 사람[翼從]들도 또한 각각 이와 같이 하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 선남자와 선여인은 본래의 소원과는 어긋나게 중간에 현성(賢聖)을 만나서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심이 있으면 곧 저 부처님을 좇아 멸도를 취하니, 이것을 행의 없음이라 이르나이다.”그때에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만두게 그만두어, 늙은 사람아, 자네는 지금 혼탁하고 편협한 마음으로 능히 헤아리려고 하는 것일세. 왜냐하면 근(根)을 세우고 힘을 얻은 보살마하살도 오히려 행의 있음과 행의 없음을 다하지 못하거든, 하물며 자네 적은 도량[小節]으로 다 얻고자 하는가. 이것은 그렇지 않으니, 도로 자네의 자리로 가서 평소의 위의(威儀)대로 하라.”그러자 대가섭은 얼굴빛이 변하고 크게 부끄러워하면서 부처님 발아래 절하고 도로 본 자리로 물러갔다.
그때에 장로(長老) 아야구린(阿若拘隣)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앞에 나와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지금 부처님 앞에서 감히 도의 가르침의 행 있음ㆍ행 없음을 베풀어 말씀드리려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구나, 족성자여. 지금이 바로 그때다. 너의 말할 바를 마음대로 하여라.”그러자 아야구린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8정도(正道)를 닦고서 여덟 가지 법[八法] 가운데에서 의심[狐疑]을 일으키지 아니하면, 이것을 행의 있음이라 이르나이다. 만일 다시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이 한량없는 법의 지혜[法慧]를 얻어 여덟 가지 법을 분별하여 있는 바가 전혀 없어서 본래 한 법도 없거니와 하물며 여덟 가지 바른 것이 있으리까. 이리하여 명호(名號)의 법도 없고 또한 소굴도 없으면, 이것을 제일의 훌륭한 행 없음의 법이라 이르나이다.다시 부처님이시여.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4선(禪)의 행에서 낱낱이 사유하여 뜻이 흩어지지 않고 뜻을 밝음에 붙들어 두어 법의(法儀)를 잃지 않아서 반드시 과(果)가 있음을 의심함이 없으면, 이것을 부처님이시여, 제일의 행 있음이라 이르나이다. 만일 다시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단정히 앉아서 여러 형상 없는 법을 사유하여 출생이 본래 단서(端緖)가 없고 명호도 허망해서 참도 아니고 있음도 아님을 보지 않으면, 이것을 곧 이름하여 행 없음의 법이라 하나이다.”그리고 장로 아야구린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공의 지혜[空慧]를 분별하여 마음이 공(空)에 물들지 아니하지만 공에서 공을 구하여 뒤바뀐 상념을 낸다면, 이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나이다. 만일 공의 지혜에서 오염을 내지 않고 망령된 소견을 일으키지 않으며, 약간의 뜻으로 ‘본래 스스로 근본이 없거늘 하물며 마땅히 지금이 있으랴’함을 일으키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다시 부처님이시여. 만일 다시 선남자나 선여인이 안으로 사유한 밝은 지혜와 비고 고요한 정의(定意)로 마음을 굳건하게 가져서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나이다. 안팎의 6정(情)을 분별해도 주재자가 없고 본래 6정도 없거늘, 하물며 이제 식(識)이 있으랴. 식은 3세가 아니며 3유(有)에도 집착하지 않으니, 이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이때에 장로 아야구린이 보살마하살의 행 있음ㆍ행 없음을 말하고 나서 곧 부처님 발아래 절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족성자여. 여래의 깊고 묘한 법을 펴서 창달하였으니, 매우 기이하고 매우 특별하며 실로 전에 없던 일이로구나. 도로 너의 자리에 돌아가서 평소의 위의대로 하여라.”
이때에 존자(尊者) 사리불(舍利弗)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법복을 가지런히 바로잡고 꿇어앉아 합장한 채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의심을 품은 지 오래되어서 여쭈어 보고자 하오니, 오직 원하옵건대 부처님께서는 낱낱이 풀어 주소서.”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좋구나, 족성자여. 묻고자 하는 것이 있거든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여래는 낱낱이 너의 물음에 답하겠노라.”
그러자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어떤 것을 행 있음이라 하고 어떤 것을 행 없음이라 합니까. 부처님의 말씀대로라면, 지음[造]을 나타내면 행 있음이요, 본래 없으면 행 없음이나이다.이제 부처님께 여쭙겠습니다. 행 있음이었다가 행 없음에 이르기 때문에 이름하여 행 없음이라 하나이까, 아니면 행 있음은 늘 있고[有], 행 없음은 늘 없기[無] 때문에 이름하여 행 없음이라 하나이까. 만일 행 있음은 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존자 대가섭이 선포한 행 있음이 그릇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가령 행 없음은 늘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말의 가르침[言敎]이 없나이다. 그러하니 어떻게 말의 가르침이 없는 법으로 말의 가르침을 있게 하시나이까. 오직 원하옵건대, 부처님이시여 낱낱이 분별하여 주십시오.”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사리불이여, 행 있음의 체성은 공(空)한가?”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행 있음의 체성은 공 그대로의 공이나이다.”
부처님께서 다시 사리불에게 물어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행 없음의 공한 성품은 어떠하냐?”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행 없음의 공한 성품은 곧 행 있음의 공한 성품 바로 그것이옵나이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행 없음의 공한 성품이 곧 행 있음의 공한 성품이라면, 이제 대가섭이 무슨 까닭으로 행 있음만 말하고 행 있음의 공함을 말하지 않았으며, 또한 행 없음도 말하지 않고 또한 행 없음의 공함도 말하지 않았느냐?”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어떤 것이 행 있음의 공한 성품이고, 어떤 것이 행 없음의 공한 성품이나이까?”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살펴 듣고 살펴 들어서 잘 생각하고 생각하여 보아라. 내가 마땅히 너에게 그 뜻을 펴서 말해 주겠노라.”
대답하였다.
“그러하겠나이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5음(陰)의 몸을 이루어 4대(大)를 성취하여 본래의 생겨난 바를 버린 이와 같은 중생은, 만일 밖에서 색(色)을 보면 안식(眼識) 가운데서 스스로 번뇌[塵勞]를 일으키면서 ‘이 식은 밖으로부터 온 것도 아니고 또한 안으로부터 나간 것도 아니다’라고 분별하는데, 이러한 식의 분별을 말미암아서 이런 걱정을 만들어내느니라.
어떠한가, 족성자여. 5음의 법계는 모두 그러한가, 그렇지 않은가?”
사리불이 아뢰었다.
“그러하고 그러하나이다, 부처님이시여. 모두 안식으로 말미암아 이 번뇌를 일으키나이다.”
부처님께서 다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만일 어떤 눈[目] 있는 사람이 안식을 사유하여 번뇌가 본래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디로부터 멸하는 것인가를 분별하여 번뇌의 소굴을 구하고자 한다면, 얻을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안 되나이다, 부처님이시여. 안식은 형상이 없어서 가히 볼 수가 없나이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고 그러하느니라. 사리불이여, 이것을 이름하여 행 있음의 공한 성품이라고 하느니라.
다시 사리불아,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공에서 공을 여의어 공의 식[空識]에 물들지 않고, 마음을 쉬어 영원히 멸하여서 상념의 집착을 일으키지 않고 잠자코 말이 없다면, 이것을 곧 이름하여 행 없음의 공한 성품이라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선남자나 선여인은 귀로 바깥의 소리를 듣고, 코로 바깥의 향기를 맡고, 혀로 바깥의 맛을 알고, 몸으로 바깥의 바뀜[外更]과 안의 즐거움을 알고, 뜻의 법체[意法體]로 바깥의 행을 아는데, 이 식을 생각하면 바깥으로부터 온 것도 아니요 또한 안으로부터 나온 것도 아니니, 단지 망령된 분별을 말미암아 이런 근심이 일어난 것이니라.
어떠한가, 족성자여. 5음(陰)의 법계가 그러한가, 그러하지 않은가?”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러하나이다, 부처님이시여. 이 식의 법[識法]을 말미암아 온갖 번뇌를 내나이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만일 눈 있는 사람이 법의 식을 사유하여 번뇌가 어디로부터 오며 다시 어디로부터 멸하는가를 분별해서 번뇌의 소굴을 구하고자 하면, 얻을 수 있겠는가, 없겠는가?”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불가하나이다, 부처님이시여. 법의 식은 형상이 없어서 볼 수 없나이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느니라. 사리불이여, 이것을 곧 이름하여 행 있음의 공한 성품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공에서 공을 여의어서 공식(空識)에 물들지 않고, 뜻을 멸하여 영원히 고요해서 상념의 집착을 일으키지 않고, 고요하여 말도 없고 또한 도의 가르침도 없으면, 이것을 곧 이름하여 행 없음의 공한 성품이라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대저 모든 법의 성품은 머물면서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다. 법이 일어나면 일어나고, 법이 멸하면 멸한다. 일어나도 일어나는 까닭을 알지 못하고, 멸해도 멸하는 까닭을 알지 못하느니라. 눈 있는 사람이 관찰하여도 일어남을 보지 못하고 또한 멸함을 보지 못하니, 이 까닭에 이름하여 본무(本無) 여래(如來)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위(明行成爲)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라 호칭하니, 삼계를 초월하여 천인존(天人尊)이 되었느니라.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깊은 법요(法要)인 행 있음ㆍ행 없음의 법의 근본[法本]을 받아 지녀서 외우면, 문득 뭇 상념[衆想]의 지혜를 갖출 수 있느니라.”부처님께서 이 행 있음ㆍ행 없음의 법을 설하실 때에 백 억 나유타의 중생이 본래의 행을 버리고 굳은 서원을 일으켜서 부처님 수레[佛乘]의 불퇴전 경지로 나아갔다. 그리고 다시 여러 하늘과 세상 사람인 무앙수의 무리가 모두 도인(道忍)을 얻어 범부의 경지를 여의었다.
이때에 존자 대목건련(大目犍連)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땅에 엎드려 부처님 발아래 절하고는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도 또한 행 있음ㆍ행 없음의 부사의(不思議)한 법을 감히 연설하겠나이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구나, 족성자여. 만일 기꺼이 설하려거든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라.”
목건련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지금 여래께서는 식(識)의 온갖 법을 행 있음ㆍ행 없음으로 여기신다고 말씀하셨나이다. 그러나 제가 관찰한 여래의 바른 법은 저희들 성문(聲聞)의 행 있음ㆍ행 없음이 아니나이다. 그 까닭은 제자 연각(緣覺)은 갖가지 근(根)이 순박하고 맑아서 다시 평등정각(平等正覺)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니, 저는 여래께 곧 행 없음이옵나이다. 만일 여래께서 슬기의 바다를 버리고 온갖 지혜를 버리게 해서 제자 연각이 되는 도를 구하시게 하면, 여래는 저에게 곧 행 없음이나이다.”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체 모든 법은 모두 비었고 모두 고요해서 나고 멸하고 집착하고 끊음(斷)이 없느니라.”
“그와 같이 살피신다면, 어찌하여 다시 제자 연각은 성례(聖例)에 있지 않다고 제한하시나이까. 더욱이 우리 9만 2천 제자로 하여금 다 여섯 신통으로 갑절이나 의심을 내게 하나이다. 또 부처님의 말씀을 듣사오니, ‘나의 법은 공대하고 변애(邊涯)가 없고, 나[吾我]를 헤아려서 중생에게 집착함이 없다’고 하였사온데, 만일 마땅히 그렇다면, 여래는 오늘 청정한 법계에서 곧 빠트림이 있나이다.”그때에 부처님께서 목건련에게 말씀하셨다.
“좋고 좋다, 족성자여. 이에 능히 여래 앞에서 이 문을 펼쳐서 말하는구나. 내가 이제 너에게 물으리니, 너는 마땅히 낱낱이 나에게 답하여라.”
목건련이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어떠한가, 목건련이여. 행에 과보가 있느냐?”
목건련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행에 과보가 있나이다.”또 목건련에게 물어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행의 과보이냐?”
목건련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 연(緣)에 상응해서 선(善)에는 선한 과보가 있고, 악(惡)에는 악한 과보가 있나이다.”
부처님께서 다시 물어 말씀하셨다.
“목건련이여, 어떤 것을 선에는 선한 과보가 있고, 악에는 악한 과보가 있다고 하느냐?”
목건련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3도(塗)와 8난(難)과 때리고(拷) 볼기치고(掠) 매질(榜)하고 태질(笞)하는 것은 소위 악한 과보라 이르고, 열반이 길이 고요하여 나고 멸함이 다시없는 것을 소위 선한 과보라 이르나이다.”부처님께서 다시 목건련에게 물어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오늘 본래 없음[本無]의 여래는 과보를 얻느냐, 아니냐?”
목건련이 대답하였다.
“아니옵나이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목건련에게 물어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지금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의 몸에 황금색 뭇 상호(相好)를 갖추심은 어떠한 과보가 되느냐?”
목건련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여래의 상호는 형질(形質)의 과보이니, 열반의 과보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목건련에게 물어 말씀하셨다.
“너의 체(體)는 열반이냐. 어떻게 선에는 선한 과보가 있음이 열반의 과보임을 아느냐?”목건련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일체 모든 법은 모두 가짜 이름으로서 진실이 있지 않나이다. 이른바 열반도 또한 가짜 이름일 뿐이오니, 그러므로 열반을 설함에 선에는 선이 있다고 한 것입니다.”
이때에 부처님께서 목건련에게 말씀하셨다.
“여래는 너에게 곧 행 없음이니, 이 또한 가짜 이름으로서 진실이 있지 않느니라. 네가 위없는 정등각을 구하고자 하는 자라면 여래의 처소에서는 곧 행 없음이니, 이 또한 가짜 이름이다. 가짜 이름의 법 가운데서 행 있음과 행 없음을 분별하고자 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느니라.”이때에 부처님께서 이 가짜 이름의 법을 설하자, 9억의 중생이 큰 서원의 뜻을 발하고, 염원의 기꺼움으로 행 있음ㆍ행 없음의 보살영락에 미쳐 이르고자 하였다. 그리고 한량없는 중생은 총지법문(總持法門)을 얻었고, 다시 3억의 중생은 온갖 번뇌[漏]가 끊어지고 뜻이 풀리면서 아라한을 얻었다.
그때에 존자 빈두로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앞에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도 또한 보살영락의 행 있음ㆍ행 없음을 설해서 선남자와 선여인으로 하여금 닦아 행함을 얻게 함을 감당하려 하나이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족성자여. 만일 말하려면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라.”
그때에 빈두로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초선(初禪)의 경지에서 5음(陰)의 더럽고 깨끗지 못함을 알아서 이 가운데서 탐내고 집착할 만한 것이 없다고 사유한다면, 이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나이다. 만일 정의(定意)에 들어서 있는 바 없음[無所有]이 비어서 참이 아님을 관하고, 다른 사람의 몸도 또한 마찬가지라고 관한다면, 이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다시 부처님이시여,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현재 몸의 냄새 나는 곳에서 깨끗지 못한 것이 흘러나오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깊이 본말(本末)을 관하여 그것이 공인 줄 아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다시 다음에 부처님이시여,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선지(禪地)에서 네 가지 행[四行]을 갖추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이 선지가 모조리 공으로 돌아간다고 아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다시 부처님이시여,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스스로 능히 깨쳐서 중생의 무리를 가르치매 청정한 마음을 버리고 깨끗하지 못한 상념을 일으킨다면, 이것을 행 있음이라 이르고, 깨끗한 상념이 본래 있는 바가 없다고 이해해 요달하는 것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다시 부처님이시여,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3선(禪)을 사유하여 번뇌[塵勞]를 깨끗이 없애고 스스로 이룬 바가 있다고 칭찬하지 않으면, 이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번뇌의 이룸과 이루지 않음을 보지 않으면, 이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다시 부처님이시여,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4선지(禪地)에 있으면서 5음(陰)을 사유해서 뜻을 붙들어 매어 잊지 않는다면, 이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4선을 분별하여 영원히 괴로움과 즐거움과 갖가지 얽히고 맺힌 집착을 없애버리면, 이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니, 이와 같이 선남자나 선여인이여, 보살마하살은 영락의 행 있음ㆍ행 없음을 고요히 관하나이다.”
그때에 존자 빈두로는 이 법을 설하고 나서 도로 제자리에 돌아갔다.이때에 존자 대가전연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 발아래 절하고는 앞에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도 이제 부처님 앞에서 행 있음과 행 없음을 설하여 중생의 무리로 하여금 닦아 행함을 얻게 함을 감당하려 하나이다.
가령 선남자나 선여인이 열여섯 가지 성행(聖行)에서 의심을 내지 않는다면, 이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얽매이고 집착함(縛著:번뇌)을 사유하여 본래의 성품이 스스로 깨끗하면서도 또한 열여섯 가지 성행의 이름이 본래 없다고 한다면, 이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하나이다.”가전연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3독(毒)인 음행[婬]ㆍ화냄[怒]ㆍ어리석음[癡]의 법을 뽑아내어 끊고, 저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살펴서 무명(無明)의 마음이 있나 없나, 애욕(愛慾)의 마음이 있나 없나, 애해(恚害)의 마음이 있나 없나를 모조리 능히 분별하면서도 착오가 없으면, 이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3독(毒)은 본래 있는 바가 없어서 생겨남도 보지 않고 멸함도 보지 않아서 비고 고요하여[虛寂] 형상이 없다고 관하여 알면, 이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가전연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번뇌[結使]의 덩어리를 완전하게 끊고 또한 다시 번뇌를 지어 일으키지 않는다면, 이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번뇌에서 궁극적 끝남이 있고 없음을 보지 않고 또한 번뇌의 걱정을 만들어서 내지 않는다면, 이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이와 같은 것을 선남자나 선여인의 보살영락의 행 있음과 행 없음이라 하나이다.”가전연이 부처님 앞에서 행 있음ㆍ행 없음을 설하고 나서 일어나 부처님 발아래 절하고는 도로 제자리에 돌아갔다.
그때에 존자 이월(離越)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서 부처님 발아래 절하고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도 또한 감히 보살영락의 행 있음ㆍ행 없음을 설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 이월에게 말씀하셨다.
“설하는 것을 감당할 수 있거든 바로 말하여 보아라.”이월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생겨남이 없는 법[無生法]에서 나고 죽음을 초월하되 초월함이 있음을 보지 않는다면, 이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열반의 공(空)에 빠져 고요하여 형상이 없어서 상념을 전혀 일으키지 않는다면, 이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다시 부처님이시여,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현성(賢聖)의 율법[律]을 얻고 온갖 과증(果證)을 받아서 열두 가지 법을 닦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만일 온갖 법의 근본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모이고 흩어진다고 관해서 다하면 태어나지 않고 다시는 받아 얻지 않음을 안다면, 이것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다시 다음에 선남자나 선여인이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늘 설하신 법인 고(苦)ㆍ집[習]ㆍ멸[盡]ㆍ도(道)라는 성현의 보배 곳간[寶藏]으로 열반의 일어나고 멸함이 없는 법에 나아가 취한다고 하면, 이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현성도품(賢聖道品)의 법 및 열반의 길을 보지 않는 것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이와 같은 것이 선남자ㆍ여인의 보살영락의 행 있음과 행 없음이나이다.”이때에 존자 수보리(須菩提)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아래 절하고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본무(本無)의 행으로부터 일체지(一切智)에 이르기까지 형상이 없어서 볼 수 없다고 관하여 요달하면, 이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본무에서 갖가지 법을 출생(出生)함을 보지 않고 보살영락도 또한 다시 마찬가지라서 보살영락이라 보지 않고 보살영락이 아니라고도 보지 않으니, 이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그때에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물어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너는 무슨 뜻으로 이것은 보살영락이고 이것은 보살영락이 아니라는 말을 하느냐?”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구경(究竟)의 법에서 단멸(斷滅)을 내지 않고 항상하다는 상념[常想]을 계교하는 것을 소위 보살의 행 있음의 영락이라 이르고,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본래 없는 법 가운데서 모든 법이 다 공하여, 안으로 공하고 밖으로 공하며, 일어나거나 멸하지 않는 공이고 생겨나는 바가 없는 공이며, 도(道)도 공이고 열반도 공해서 일체 모든 법이 다 공이면서 공인 듯하다면, 이것을 보살의 행 없음의 영락이라 이르나이다.”수보리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으로서 공정(空定:일체가 공하다고 관하는 선정)의 청정한 뜻[淨意]을 얻은 자라면, 성현의 법률(法律)에서 일체 모든 법의 소굴을 갖추어서 수다원(須陀洹)ㆍ사다함(斯陀含)ㆍ아나함(阿那含)ㆍ아라한(阿羅漢)ㆍ벽지불(辟支弗)로부터 위로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에 이르기까지 열반의 길을 장엄하여 갖추는 것을 소위 보살마하살의 행 있음의 영락이라 이르고, 만일 다시 선남자나 선여인이 쉰다섯 가지 법의 허공정요(虛空正要)를 닦아 행해서 낱낱이 분별하여 마음이 치달리지 않고 다 공에 돌아가고, 공무(空無)의 법 가운데서 나고 멸하고 집착하고 끊음이 없다고 한다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행 없음의 영락이라 이르나이다.”존자 수보리가 이 공한 성품의 행 있음ㆍ행 없음의 보살영락을 설할 때에 13억의 발심한 보살이 본래 등의(等意)여래의 처소에서부터 처음 도의 마음(道心)을 세웠는데, 그 이후로 중간에 게을러졌다가 이제 수보리가 모든 법은 비고 고요해서 나고 멸하고 집착하고 끊음이 없다고 설하는 것을 듣고는 각자 뜻을 가다듬어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無上正眞道意]을 발하였으며, 나아가 본래의 서원을 구하여 보살영락의 행 있음ㆍ행 없음을 성취하고자 하였다.그때에 존자 빈누문타니자(邠耨文陀尼子)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계신 데에 이르자 땅에 엎드려서 부처님 발아래 절하고는 꿇어앉아 합장한 채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공행법성(空行法性)을 사유하고 분별하여 모든 법에서 ‘나[吾我]’라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면, 이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뜻을 거두어 항상 정(定)하고 마음이 허공 같아서 삼계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온갖 법의 생겨남이 없는 마음[無生心]을 강론하고, 금강삼매(金剛三昧)로 8지(地)를 뛰어넘어 본래 훈습한 모든 것을 버리면, 이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만일 다시 선남자나 선여인이 멸의삼매[滅意度]를 얻어서 한뜻으로 그 몸을 영락하고,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無上正眞道意]에 나아가되 성불을 쾌락으로 삼지 않고, 비록 중생에 있더라도 수고롭게 여기지 않고 금강의 마음을 헐지 않으면, 이것을 소위 보살영락의 행 있음ㆍ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이와 같이 9만 2천의 번뇌가 다한 아라한이 각각 보살영락의 행 있음ㆍ행 없음을 선포하며 창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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