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보살영락경(菩薩瓔珞經) 9권
보살영락경 제9권
축불념 한역
장용서 번역
25. 유수품(有受品)
이때에 용진(勇進)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이제 부처님께서 매우 깊은 법과 여러 성현의 율[賢聖律]에 들어가는 문을 설하심을 들었나이다. 이 법을 듣고 알아서 요달한 자는 집착도 보지 않고 또한 해탈도 보지 않고, 공무법(空無法)에서 손(損)한 바가 없어서 온갖 법의 좇아온 바가 있고 좇아간 바가 있음을 보지 않나니,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법의 좇아온 바가 없고 좇아간 바가 없음을 깊이 관하면, 그대로 밝게 통달하니 그 이름을 해탈이라 하나이다.일체 모든 법은 각각 달라서 그 말하고 보는 바가 모조리 각각 흩어져서 합하여 짝함이 없으며, 다시 온갖 법에서 상념(想念)을 내지 아니하여 이루는 바가 있으며, 또한 다시 해탈이 있음을 염(念)하지 않는 자는 관하는 모든 법이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으며, 또한 멀리에도 있지 않고 또한 가까이에도 있지 않나이다. 지혜를 얻은 보살은 본래 없음[本無]을 깊이 깨닫고, 이것을 안 이는 잘난 체하는 마음을 버리고 교만을 일으키지 않으니, 이것을 선남자와 선여인이 온갖 선한 법[善法]에서 해탈을 얻어서 문득 나고 멸함이 없는 경지[無生滅地]에 머물게 되었다고 하나이다.‘그 머묾’이란 머묾이 있음을 보지 않고, 다시 온갖 법에 머물면서도 머무는 바가 없으며, 또한 온갖 법을 보아도 보는 바가 없으니, 이것을 소위 선남자나 선여인이 그 성행(性行)을 바르게 하여 그릇되고 삿됨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르나이다. 그 바른 소견[正見]을 짓는 이는 문득 안의 성품[內性]에서 색상(色相)을 관하여 요달해서 색을 두지도 않고 또한 색을 보지도 않으면서 색이 있나이다. 왜냐하면 온갖 법을 알아서 본래 공하여 형상 없음을 관하고, 그 본래의 공함이 색과 같으면서 색이 있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온갖 법에서 받음이 있지도 않고 또한 받음이 없지도 않으니, 이것을 소위 선남자와 선여인이 온갖 법에서 해탈을 얻음이라 이르나이다.”이때에 용진보살이 이 유수품(有受品)을 설할 때, 13억 중생이 이 법을 듣고 나서 모두 불기유순법인(不起柔順法忍)을 얻고 이구동성으로 각각 이 설법을 칭송하였다.
“오늘 용진보살이 온갖 집착을 여의고 또한 우리들로 하여금 이 법을 이루게 하였다. 우리들 인자(仁子)들아, 마땅히 이 법으로 나머지 사람을 가르쳐서 우리와 다름이 없게 하고 모조리 해탈을 얻게 하여 마침내 집착이 없게 하자.”이때에 부처님께서 용진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저 열반의 마음은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으며, 또한 다시 두 중간에도 있지 않다. 다만 받음 있는[有受] 보살의 나고 멸함이 없는 곳은, 여러 보살의 마음과 도가 평등하여 둘이 없고 또한 약간도 없느니라. 도의 마음이 적합하게 평등하여 약간도 없다함은 온갖 사람에게 반드시 평등하여 둘이 없는 마음이니, 이것을 소위 보살이라 이르며, 그 까닭에 이름하여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고 말하느니라.”이때에 좌중에 있던 5백 천자(天子)가 여래의 받음이 있고 받음이 없는 평등한 법을 듣고서 온갖 번뇌[塵垢]가 다하면서 법안(法眼)의 청정함을 얻었다.
다시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 5백여 무리가 모두 수다원 도를 얻었고, 다시 한량없는 수의 하늘ㆍ용ㆍ귀신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하라가ㆍ사람과 사람 아닌 것이 뜻을 대승(大乘)에 두고 나아가 모두 위없는 평등한 도의 뜻을 발하였다.
26. 무착품(無着品)
이때에 부처님께서 사부대중인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 및 여러 보살마하살ㆍ하늘ㆍ용ㆍ귀신 등 8부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일체지(一切智)에 미치고자 하거나, 보살의 지위에 오르고자 하거나, 금강삼매(金剛三昧)를 얻고자 하거나, 마군의 관속(官屬)을 항복시키고자 하거나, 일체 모든 법문의 총지(總持)에 이르고자 하거나, 피차(彼此)의 분별을 여의고자 하거나, 부처님의 나무[佛樹]를 장엄하고자 한다면, 선남자나 선여인으로서 마땅히 여래의 집착 없는 행을 익혀야 하느니라.다시 다음에 선남자나 선여인이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이 해서 중생을 교화하고, 한 부처님 나라로부터 한 부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여러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면서 예경하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여래의 집착 없는 행을 배워야 하느니라.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래의 기특한 법으로 매우 존귀하고 소중한 것을 얻고자 하며, 또 어떤 중생이 삼계에서 색음(色陰)의 형상을 받지 않고 다섯 가지 근심[五患]을 여의고 5도(道)에 처하지 않게 하고자 한다면, 이런 선남자나 선여인은 마땅히 여래의 집착 없는 행을 닦아 익혀야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선남자와 선여인이여, 내가 반열반[般泥洹]을 한 뒤에 바른 법[正法]이 점점 쇠퇴하면, 많은 중생들이 법복(法服)에 의탁하여 적은 이양(利養)을 탐내느라고 도의 마음을 거짓으로 발하여 바른 법을 훼손하고 청정한 뜻이 없어지리니, 삼보(三寶)의 지극히 어진 행을 믿지 않는 이와 같은 무리의 사람들은, 비록 나의 대중 가운데 속해 있지만 나와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느니라. 만일 다시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래의 집착 없는 행을 닦아 익히면, 비록 범부(凡夫)에 있으면서 보살 지위에는 못 올라갔더라도 마음을 굳건히 잡아서 도의 뜻을 버리지 아니하니, 이와 같은 사람은 가령 억백천만 유순(由旬)밖에 있더라도 오히려 나와 거리가 가까우니라. 왜냐하면 이 선남자나 선여인은 여래의 집착 없는 행을 닦아 익혔기 때문이니라.”이때에 이름이 명관(明觀)이란 보살이 있었는데, 그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땅에 엎드려 발아래 절하고는 앞에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어떤 것을 이름하여 여래 지진의 집착 없는 행이라 하나이까. 오직 원하옵건대, 부처님께서는 낱낱이 분별하시어 모인 이들로 하여금 각각 깨우쳐 이해하도록 하여 주십시오.”부처님께서 명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그대에게 물으리니, 그대는 마땅히 나에게 답하여라. 어떠한가, 족성자야. 그대는 무슨 까닭으로 명호를 명관(明觀)이라고 하였는가? 색(色)을 밝게 관찰하기에 그렇게 불리는 것이냐. 통(痛)ㆍ상(想)ㆍ행(行)ㆍ식(識) 때문이냐. 몸으로 인(因)함이냐, 이름[名]으로 인해 그러한 것이냐. 무엇을 인해 명호를 명관이라 하였느냐?”이때에 명관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색을 관하오니 색이 아니고 또한 색이 있지도 않나이다. 색의 성품은 스스로 공하여 또한 색이 있지 않나이다. 나의 색과 다른 색이 본래 있는 바가 없으며, 색의 공은 본래의 공이요 색의 성품은 스스로 공이옵나이다. 모든 법은 스스로 그러해서[自然] 다시 스스로 그러함이 없고, 온갖 법은 치연(熾然)해서 본래 스스로 그러함이 없나이다. 색을 관하오니 생겨남이 없고, 또한 생겨남을 보지 않나이다. 생겨남[生]이 스스로 생겨남이 없거늘 하물며 마땅히 색인들 있겠습니까.다만 중생은 어리석은 마음에 젖어 있어서 능히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마침내 괴로움을 초래해서 생사(生死)에 떨어져 5도(道)를 헤매며, 몸이 죽고 이름이 멸하면 또다시 몸을 받나이다. 그러나 여래 대성(大聖)은 물들어 집착한 바가 없어서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를 알아 온갖 속박과 집착을 여의고, 뭇 행의 근원이 모조리 공에 돌아가니, 통(痛)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또한 다시 마찬가지입니다.식(識)을 관하니 식이 아니고 또한 식이 있는 것도 아니나이다. 식의 성품은 스스로 공하여 또한 식이 있지 않으며, 나의 식과 저의 식이 본래 있는 바가 없나이다. 식의 공은 본래의 공함이요, 식의 성품은 스스로 공하며, 모든 법은 스스로 그러해서 다시 스스로 그러함이 없고, 모든 법은 치연하여서 본래 스스로 그러함이 없나이다. 식을 관하오니 생겨남[生]이 없고 또한 생겨남을 보지 못하며, 생겨남도 스스로 생겨남이 없거늘 하물며 식인들 있겠습니까.다만 중생은 어리석은 마음에 젖어 있어서 능히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마침내 괴로움만 초래해서 생사에 떨어져 5도(道)를 해매며, 몸이 죽고 이름이 멸하면 또다시 형상을 받나이다. 그러나 여러 대성은 물들어 집착하신 바가 없어서 그 근원을 알아 온갖 속박과 집착을 여의시었고, 뭇 행의 근원은 모조리 공에 돌아가니, 집착함이 없는 온갖 행도 또한 다시 마찬가지이나이다. 스스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이루거늘, 하물며 선남자나 선여인이 듣고서 이내 불ㆍ법ㆍ승을 믿어 이해하는 것이겠나이까. 이것을 이름하여 집착 없는 행[無着行]이라 하나이다.”이때에 명관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으로 하여금 여래의 집착 없는 행을 듣게 하고 문득 그 가운데서 보살의 마음을 발하게 한다면, 비록 그런 생각이 있다고 하더라도 또한 여러 부처님 세존께 공양하지 않으면, 이것은 여래의 집착 없는 행에 소모만 있을 뿐이나이다.
만일 다시 선남자나 선여인이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서 집착 없는 행을 기꺼이 닦음을 감당하지 못하더라도, 능히 스스로를 극복하고 질책해서 집착 없는 행을 생각하여 일념 사이에도 잊어버리지 않으면, 문득 위없는 지극히 참된 도의 뜻을 발할 수 있거늘 하물며 독실하게 믿어서 받들어 행함이겠습니까.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래의 금강삼매(金剛三昧)를 얻어서 크나큰 서원의 마음을 발하여, 이를 막거나 헐 수 없다면, 이것은 모두 여래의 집착 없는 성행(聖行)을 말미암아 성취하게 된 것이옵나이다.
만일 다시 선남자나 선여인이 삼매(三昧)를 얻으면, 왕(王)삼매를 이름하여 분신용(奮迅勇)이라 부르는데,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문득 온갖 마군의 권속을 항복시킬 수 있나니, 이는 선남자나 선여인이 모두 집착 없는 성행을 말미암아서 이룬 것이나이다.만일 다시 선남자나 선여인이 공법(空法)의 한량없는 성행(聖行)을 믿을 수 있어서 4의지(意止)를 닦아 생각 생각마다 성취하고, 안팎을 분별하여 비고 고요해서 형상이 없다면, 이것은 모두 여래의 집착 없는 성현의 행을 말미암은 것이옵나이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4신족(神足)을 얻어서 심식(心識)이 자유로워 앉거나 눕거나 거닐거나에 걸림이 없고, 시방 한량없는 세계에 노닐면서 여러 부처님을 예배하고 섬기면서 공양한다면, 이것도 또한 다시 이 여래의 집착 없는 성현의 행을 말미암은 것이나이다.만일 선남자나 선여인 및 보살마하살이 4의단(意斷)으로부터 열여덟 가지 법[十八法]과 37(品)까지 획득하여 부처님 국토를 장엄해서 뭇 상호(相好)를 이루고, 여덟 가지 음성이 범천(梵天)보다 뛰어나서 그 중생이 부처님의 음향을 듣고 해탈을 얻는다면, 이것도 또한 다시 여래의 집착 없는 성현의 행이옵나이다.만일 다시 선남자나 선여인이 낱낱이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사유해서 다시는 물들어 집착함으로 옳고 그름의 상념을 일으키지 않으면, 이 세 가지 관[三觀]을 인연으로 마땅히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이루리니, 이것도 또한 다시 여래의 집착 없는 성현의 행이옵나이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무수한 온갖 부처님으로부터 보살의 수기[菩薩授記]를 받아 마땅히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이루어서 마침내 뜻이 굳건하여, 끝내 중간에서 물러나지 않고 또한 뭇 마군에게 능히 파괴되지 않는다면, 이것도 또한 다시 여래의 집착 없는 성현의 행이옵나이다.”이때 명관보살이 이 여래의 집착 없는 성현의 행을 설할 때에 84억의 중생의 무리가 여래의 집착 없는 성현의 행을 기꺼이 원하면서 구하고자 하였고, 다시 수없는 무리가 명관보살에게 가까이 가서 스승[師宗]으로 삼을 것을 구하였다. 그리고 다시 한량없는 중생이 저마다 이런 생각을 내었다.
‘오늘 명관 보살마하살은 오래 있으면 마땅히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이룰 것이다.’그때에 부처님께서 대중들의 마음이 저마다 이런 생각을 내는 것을 아시고는 문득 명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제 능히 여래의 집착 없는 행을 펼쳐서 창달하였으니, 여래의 거룩한 지혜[聖慧]는 다할 수 없느니라. 앞으로 수없는 아승기겁 후에 여기서 위쪽으로 50항하 모래 수효의 여러 부처님 찰토(刹土)를 지나가면, 부처님의 이름이 무구(無垢)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신데, 순전히 1승(乘)만으로 중생을 교화하므로 연각(緣覺) 제자의 이름은 듣지 못하느니라.이곳에서 그대는 마땅히 부처가 되어서 그 이름을 명관(明觀)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위(明行成爲)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라 하고, 불세존(佛世尊)이라 호칭하리라. 그대가 마땅히 부처가 되면, 그 명호가 이와 같으니라.”그때에 모인 온갖 중생은 여래께서 명관보살에게 수기[決]를 주는 것을 보고는 깨달아 아는 중생도 있고 깨달아 알지 못하는 중생도 있었다.
이때에 부처님께서는 사람들 마음에 저마다 의심을 품은 것을 관찰하셨으며, 부처님께서는 그 뜻을 아시고 문득 명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 대중 속에서 보살에게 수기를 주었는데, 깨달아 아는 이도 있고 깨달아 알지 못하는 이도 있다. 이에 여덟 가지 인연[八因緣]이 있으니, 어떤 것이 여덟인가?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래의 수기를 얻어 마땅히 위없는 평등하고 바른 깨달음[無上平等正覺]을 이루게 되었는데, 온갖 대중이 능히 아는 자가 없다면, 이것을 소위 여래가 중생에게 수기를 주지만 자기 몸은 스스로 깨달아도 나머지 사람은 모른다고 이르느니라.
다시 명관아,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대중 속에 있으면서 여래에게 수기를 받았지만, 나머지 사람은 모조리 보아도 자기는 깨달아 알지 못하면, 이것을 소위 여래가 중생에게 수기를 주지만 나머지 사람은 다 보아도 자기는 깨달아 알지 못한다고 이르느니라.다시 다음에 명관보살마하살아,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러 부처님에게 수기를 받게 되어서 ‘너는 마땅히 부처를 이룰 것이고, 그 명호는 이와 같으니라’고 하면, 자기도 수기 받은 줄 알고 나머지 사람들도 또한 본다면, 이것을 소위 여래가 중생에게 수기를 주시자 자기도 스스로 깨달아 알고 나머지 사람들도 또한 본다고 이르느니라.다시 다음에 명관보살마하살아,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여래에게서 수기를 받게 되는데,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하고 나머지 사람들도 또한 알지 못하면, 이것을 소위 여래께서 중생에게 수기를 주시는데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하고 나머지 사람들도 또한 알지 못한다고 이르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명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여래의 수기를 받는데, 그러나 이 수기를 받은 이는 말석[末行]에 있어서 여래를 가까이하지 못하고, 여래를 가까이하는 이는 스스로 내가 수기를 받았다고 이르니, 이것을 소위 여래가 중생에게 수기를 주시는데, 멀리 있는 이는 깨달아 알고 가까이 있는 이는 깨닫지 못한다고 이르느니라.다시 다음에 명관보살마하살아,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여래에게서 수기를 받게 되는데, 여래를 가까이한 이는 문득 스스로 깨달아 알아서 ‘오늘 여래께서 나에게 수기를 주었다’ 하고, 여래를 멀리한 이는 다시 스스로 일컫기를 ‘여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수기를 주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중생은 응당 수기를 받지 못할 것이다. 이것을 소위 여래가 중생에게 수기를 주시는데, 가까운 이는 깨달아 알고, 멀리 있는 이는 깨닫지 못한다고 이르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명관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러 부처님께 수기를 받게 되어서 ‘장차 부처를 이룰 때에 그 명호가 이와 같다’고 하시면, 가까이 있는 이는 깨닫지 못하고 멀리 있는 이도 또한 알지 못하니, 이것을 소위 여래께서 중생에게 수기를 주시는데, 멀고 가까운 중생이 모두 깨달아 알지 못한다고 이르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명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여래에게 수기를 받게 되는데, 가까운 이가 깨닫기도 하고 먼 이가 알기도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보지 못한다. 이것을 소위 여래의 여덟 가지 인연법[八因緣法]으로 중생에게 수기를 주는데, 가까운 이가 깨닫기도 하고 먼 이가 알기도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보지 못한다고 이르느니라.”그때에 부처님께서 사부대중인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와 보살마하살ㆍ하늘ㆍ용ㆍ귀신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 등 사람과 사람 아닌 이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명관보살이 수기를 받는 것을 보았느냐?”
“못 보았나이다, 부처님이시여.”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여래에게 수기를 받는데, 처음 도의 마음을 발할 때부터 수기를 받음이 같지 않느니라. 이제 이 명관보살이 여래의 수기를 받으매 자기는 스스로 깨달아 알았으되 나머지 사람은 깨닫지 못하였다. 이와 같은 사람은 여래의 4무소외(無所畏)를 얻지 못해서 마음을 발하여 스스로 서원하지만 널리 중생에게 미치지 못하고, 또한 훌륭한 권도의 방편도 얻지 못하였느니라. 이런 까닭에 수기를 받아도 자기 스스로는 깨달아 알지만 나머지는 깨닫지 못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래의 수기를 받으매 뭇 사람은 모두 보지만 자기는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한다면, 이와 같은 사람은 뜻을 발함이 크고 넓어서 널리 중생에게 미치고, 4무외를 얻어서 마음을 발함이 넓고 크며, 훌륭한 권도의 방편이 있어서 중생을 교화하나니라. 이런 까닭에 수기를 받으매 나머지는 모두 깨닫지만 자기는 스스로 알지 못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래에게서 수기를 받으매 자기도 스스로 알고 나머지 사람도 또한 본다면, 이와 같은 사람은 7주지(住地)에 있으면서 공관(空觀)을 분별해서 중생에게 물들어 집착하는 상념[染着想]이 있음을 계교하지 않고, 처음 도의 마음을 발해서도 ‘내가 나중에 부처를 이루면 저 처소의 중생은 제도하고 저 처소의 중생을 제도하지 않으리라’라는 생각을 내지 않고, 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무너뜨릴 수 없다. 그리하여 여래의 4무외를 얻고, 공관삼매(空觀三昧)와 훌륭한 권도의 방편을 얻으니, 이런 까닭에 수기를 받으매 자기 몸이 스스로 알고 나머지 사람도 또한 보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래의 수기를 받으매 자기 몸이 깨닫지 못하고 나머지 사람도 알지 못한다면, 이러한 사람은 7주(住)의 불퇴전 경지[不退轉地]에 있지 못해서 비록 훌륭한 권도의 방편으로 3존(尊)을 믿어 즐기고 여러 부처님을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지만, 그러나 여래의 집착 없는 행을 얻지 못하여서 능히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하게 하고 중생을 교화하지 못하나니, 이런 까닭에 수기를 받지만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나머지 사람도 보지 못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래의 수기를 받으매 먼 곳에 있는 이는 수기를 얻고 가까운 곳에 있는 이는 얻지 못한다면, 이와 같은 사람은 미륵(彌勒)의 몸에 해당되느니라. 왜냐하면 이 선남자나 선여인은 갖가지 근(根)이 갖추어져서 여래의 집착 없는 행을 버리지 아니하기 때문이니라. 이런 까닭에 수기를 받으매 먼 데 있는 이는 스스로 깨닫고, 가까이 있는 이는 알지 못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래에게 수기를 받으매 가까이 있는 이는 깨달아 알고 먼 데 있는 이는 보지 못하며, 또한 모인 대중이 능히 헤아릴 수 없다고 하면, 이와 같은 무리의 사람은 보살의 지위가 있지만 아직은 성현의 행을 능히 연설하지 못하나니, 지금의 사자응(師子應)보살에 해당되느니라. 뭇 상을 갖추어서 법의 근본을 버리지 않고, 상념 없는 법 가운데서 법의 성품을 헐지 않으니, 이런 까닭에 수기를 받으매 가까이 있는 이는 깨달아 알고 먼 데 있는 이는 보지 못하고, 또한 모인 대중이 능히 헤아릴 수없는 것이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래에게 수기를 받으매 가까이 있는 이도 알고 먼 데 있는 이도 본다면, 이와 같은 사람은 뭇 행이 갖추어져서 부사의한 한량없는 불사(佛事)를 행하여 생사의 바다를 초월해 무위의 경지[無爲岸]에 이르느니라. 왜냐하면 이 선남자나 선여인은 갖가지 근이 갖추어져서 여래의 집착 없는 행을 버리지 않고,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노닐고, 부사의함을 일으켜 부처님의 신령한 덕을 드러내기 때문이나니, 지금의 유순(柔順)보살이 이에 해당되느니라. 이런 까닭에 가까운 데 있는 이도 또한 알고 먼 데 있는 이도 또한 보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부처님에게서 수기를 받으매 가까이 있는 이는 알지 못하고 먼 데 있는 이도 보지 못한다면, 이와 같은 사람은 뭇 행을 갖추지 못했고 훌륭한 권도의 방편도 얻지 못해서 비록 5욕(欲)의 한가운데를 떠났다 하더라도 여래의 법장(法藏)을 능히 갖추지 못하니, 지금의 등행(等行)보살이 해당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여덟 가지 인연법을 받들어 지니면서 닦아 익힌다면, 내가 이제 그를 내 몸과 다름없이 볼 것이며, 그는 또한 시방의 여러 부처님에게 옹호를 받게 되리라.”
그때에 석제환인(釋提桓因)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 처소에 이르러 땅에 엎드려 발아래 절하고는 한쪽에 서 있었다. 잠시 후에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 처소에 이르러서 꿇어앉아 합장한 채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의 이름은 구익(拘翼)이요, 호는 천제석(天帝釋)이옵나이다.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여쭈는 바를 들어주십시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구익아, 의심나는 것이 있거든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라.”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이 여래의 집착 없는 행을 일으켜 나타내고, 수기를 받는 여덟 가지 인연법을 갖춘다면, 저희들 모든 하늘들은 마땅히 이 선남자나 선여인을 옹호할 것이며, 마지막 성취에 이를 때까지 끝내 중도에서 물러나 나한이나 벽지불의 도에 떨어지지 않게 하겠나이다.”
그때에 석제환인이 곧 부처님 앞에서 찬탄하는 게송을 읊었다.
본무(本無)는 집착한 바 없어서
온갖 나쁜 갈래 영원히 여의었는데
어째서 여래께서는 지금
수기 주시는 데 높고 낮음이 있나이까.
옛적 수없는 겁으로부터
공훈을 헤아릴 수 없으니
공을 쌓고 뭇 덕을 모아
일체의 뭇 상호 갖추셨네.
여래는 모든 법의 근본
나고 멸하고 집착하고 끊음이 없으니
존자께서 이제 수기를 주시면서
높고 낮은 모습을 논하시네.
정(定)을 얻어 상념을 일으키지 않고
나고 멸함에 있는 바가 없으니
온갖 법은 허깨비 같아서
명호는 진실이 아니라네.
본래 온 바를 알아서
무생(無生)의 법을 원하고 즐기며
세 가지 통달한 지혜를 연설하시어
한계로부터 무한에 이른다네.
이제 제석천을 위하여
온갖 결박을 풀고 맺힘을 없애 주시고
원컨대 세존이시여, 수기를 주십시오.
오래도록 한결같이 하여 정각에 미치겠나이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석제환인에게 답하셨다.
그대 지금 천제석이여
공덕과 뭇 행이 지극하니
바로 무수한 세상으로부터
덕을 쌓은 광명존(光明尊)이라네.
이제 천제의 몸 되어
크고 작은 겁수를 거치면서
36가지의 성패(成敗)가 있었지만
본래의 요긴한 서원은 버리지 않았네.
천 명의 부처 형제가 지나가고
다시 현겁(賢劫)의 이름은 없으며
중간이 영영 끊어져서
24중겁(中劫)이 되었네.
그 후에 곧 부처님이 출현하시니
10력(力)과 무소외(無所畏)
청정한 덕을 갖춘 보존(普尊)이고
찰토(刹土)의 이름은 보인(普忍)이네.
그 부처님 지극히 장수하여
세상에 7겁이나 사시면서
교화를 두루 마치고서
길이 적멸하여 멸도를 취하니,
법을 남겨 세상을 교화하면서
또한 다시 7겁을 지나는데
점점 법이 다해 없어지니
3존(尊)의 이름도 듣지 못하네.
중간이 다시 끊어져서
다시 5겁을 지나야 하지만
그대는 저 찰토에서
반드시 여래의 지위를 이으리라.
내 이제 너에게 주는 수기는
본무(本無) 여래의 인(印)이고
명호는 무착존(無着尊)이니
삼계에서 가장 으뜸가리라.
홀로 걸으며 동등한 짝이 없고
법을 설하매 다함이 없어서
장차 아승기겁에 걸쳐서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하리라.
그때에 석제환인이 부처님께서 이미 수기를 내리심을 듣고는 땅에 엎드려서 발아래에 절하였다. 그리고 부처님을 에워싸고 세 번을 돌고 나서 도로 제자리에 돌아갔다.
이때에 폐마(弊魔) 파순(巴旬)이 마음속으로 스스로 생각하였다.
‘오늘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중생을 교화하시면서 집착 없는 법륜을 굴리시고, 훌륭한 권도의 방편으로 일체의 미치지 못하는 이를 인도하시고, 온갖 보살들의 신통과 지혜 있는 이는 모두 물러나지 않는 경지의 수기를 얻었다. 이 성현들을 나는 의심하지 않겠지만, 이제 석제환인은 나의 부계(部界)에 있으면서 나의 부림을 받는데도 먼저 부처님께 수기를 받았다. 나도 오늘날 마음에 마군의 행[魔行]을 여의고 영화와 애욕[榮冀愛欲] 속에 있지 않거늘, 무슨 까닭에 부처님께서는 나에게 수기를 주지 않으실까?’그때에 부처님께서 마군 파순의 마음속 생각을 아시고는 문득 목건련(目犍連)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능히 여래 앞에서 온갖 보살마하살이 수기 받는 것을 설함을 감당하겠느냐.”
이때에 목건련은 부처님의 위신(威神)을 받들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능히 보살마하살의 수기 받는 법을 설함을 감당하겠나이다.”부처님께서 목건련에게 말씀하셨다.
“감당하여 말하려면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라.”
목건련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온갖 공한 법[空法]에서 물들어 집착하는 마음[染着心]을 내면서 문득 스스로 잘난 체하고 앞서 배운 이를 경멸하면, 이와 같은 선남자나 선여인은 범부의 경지에 있는 것이어서, 응당 보살이라고 칭할 수 없사오며, 응당 수기를 받아 여래의 명호를 얻을 수 없나이다.”목건련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다른 사람이 수기 받는 것을 보고 문득 저만 잘난 체하는 마음[增上心]을 내면서 ‘나는 지금 훌륭하고 높고 귀한데 이 사람은 낮고 천하다’고 한다면, 이와 같은 선남자나 선여인은 그저 범부의 경지일 뿐이지 응당 보살이라 칭할 수 없으며, 응당 수기를 받아 여래의 명호를 얻을 수 없나이다.”목건련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부처님의 밝은 지혜[明慧]를 얻어서 세 가지 관[三觀]ㆍ공ㆍ무상ㆍ무원을 분별하여 문득 여래에게서 수기를 받는데, 어떤 중생이 이 사람이 수기 받은 것을 보고는 문득 미워하고 시기하는 마음을 내면서 ‘부처님은 어째서 먼저 이 수기를 주는가’ 하면, 이와 같은 선남자나 선여인은 그저 범부의 경지일 뿐이지 응당 보살이라 칭할 수 없으며, 응당 수기를 받아 여래의 명호를 얻지 못하나이다.”이때에 목건련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부처님의 신족과 4무외(無畏)를 얻고, 온갖 공계(空界)에 노닐면서 법륜을 굴리고, 훌륭한 권도의 방편으로 걸리는 바가 없고, 연설하는 법의 가르침이 모두 이로운 바가 있어서 문득 여래에게서 수기를 받았지만, 그러나 어떤 중생이 세속의 지혜를 얻어서 변재가 제일인데다 옛 일을 알고 지금 일에 밝아서 3세를 통달하였으므로 속으로 스스로 사유하길 ‘내가 포람(包攬)하는 바는 어떤 일이든 꿰뚫지 않음이 없거늘 여래께서는 어찌하여 나에게 수기를 주지 않으시고 이제 도리어 이 사람에게 수기를 주시는 걸까’라 한다면, 이와 같은 무리의 선남자나 선여인은 그저 범부의 경지일 뿐이지 보살이라 칭할 수 없으며, 수기를 받아 여래의 명호를 얻지 못하나이다.”목건련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어서 네 가지 평등[四等]이 갖추어지고,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노닐면서 이 부처님을 좇아서 도의 마음을 발하지 않고 다시 다른 부처님을 좇아서 그 수기를 받았지만, 그러나 어떤 중생이 속으로 스스로 생각을 내기를 ‘이 사람은 나의 무리가 아니고 나의 부하가 아닌데, 여래께서는 어찌하여 먼저 이 사람에게 수기를 주시고 나에게 수기를 주지 않으실까’ 라고 하면, 이와 같은 무리의 선남자나 선여인은 그저 범부의 경지일 뿐이지 보살이라 칭할 수 없으며, 수기를 받아 여래의 명호를 얻지 못하나이다.”목건련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위없는 법륜을 굴리면서 6신통의 변화가 걸리는 바가 없고, 권도의 임기응변와 교묘한 방편으로 중생을 거두어 잡아서 이 보살마하살이 문득 여래에게 수기를 받았지만, 다시 어떤 중생이 3독(毒)이 골고루 있어서 애착하는 마음이 다하지 못하였고, 적절히 교화하여 온갖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지도 못하였으면서도 속으로 스스로 의심하여, ‘이제 이 사람을 살펴보니 이룬 것이 있는 듯한데, 여래의 위력(威力)에 감응된 바이다’라고 생각한다면,그리하여 이 선남자에게 이런 감화가 있음을 살펴서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우물쭈물하는 상념을 낸다면, 이러한 무리의 선남자나 선여인은 그저 범부의 경지일 뿐이지 보살이라 칭할 수 없으며, 응당 수기를 받아 여래의 명호를 얻지 못하나이다.”목건련이 다시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용(龍) 가운데 태어나 보살의 마음을 발하여서 뭇 행이 갖추어져 새는 바가 없으므로 문득 여래에게 수기를 받았지만, 그러나 어떤 중생이 속으로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사람의 몸을 얻어서 온갖 근(根)이 갖추어지고 바른 법을 밝게 통달해서 6정(情)을 완전히 갖추었거늘, 여래께서는 어찌하여 나에게는 수기를 주지 않으시고 이제 도리어 다시 이 용에게 수기를 주시는가’ 하면, 이러한 무리의 선남자나 선여인은 그저 범부의 경지일 뿐이지 응당 보살이라 칭할 수 없으며, 응당 수기를 받아 여래의 명호를 얻지 못하나이다.”목건련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미 하늘 몸[天身]을 얻어 보살의 마음을 발하여서 갖가지 속박과 집착을 끊어 연모하는 바가 없고, 자기의 영예로운 지위를 버리고 다섯 가지 즐거움도 멀리 여의며, 6정(情)을 막고 청정한 법을 닦으며, 세상의 여덟 가지 법을 여의어서 10악(惡)에 떨어지지 않아서 문득 여래에게 수기를 받았지만, 그런데 어떤 중생이 속으로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제 이 하늘 사람을 보니 뭇 행이 충분하지 못하고, 이 형상을 버리고 사람의 몸을 회복하지 못하였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 이 자에게는 수기를 주시고 나에게는 수기를 주시지 않는가’라고 하면, 이와 같은 무리의 선남자나 선여인은 언제나 범부의 경지에 있지 응당 보살이라 칭할 수 없으며, 응당 수기를 받아 여래의 명호를 얻지 못하나이다.”목건련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중생이 지옥의 형상[地獄形]을 받았을 때 부처님의 신력(神力)으로 가서 그에게 수기를 주었으니, 마치 옛날에 부처님께서 저를 보내셔서 제바달다(提婆達多)에게 수기를 준 것과 같나이다. 그런데 어떤 중생이 속으로 스스로 생각하기를, ‘지옥의 형상을 받으면 고통이 한량이 없다. 가마의 끓는 물에 태워지고 삶아지면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고, 칼산[刀山]ㆍ칼나무(劍樹)ㆍ화로의 숯불[爐炭]ㆍ쇠 바퀴[鐵輪]ㆍ불 수레[火車]ㆍ불꽃 바람[熾風]ㆍ뜨거운 구리 기둥[銅柱]ㆍ방아절구[碓臼] 지옥 속에서 받는 고통의 아프고 독함이 한량이 없으니,이런 때를 당하여 어찌 도의 마음이 있으랴. 그런데도 여래께서는 오늘 도리어 수기를 주어서 여래의 이름을 얻게 하였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미 사람의 몸을 얻었건만 우리에게는 수기를 주지 않으시는가’라고 하면, 이와 같은 무리의 선남자나 선여인은 그저 범부의 경지일 뿐이지 응당 보살이라 칭할 수 없으며, 응당 수기를 받아 여래의 명호를 얻지 못하나이다.”목건련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아귀도(餓鬼道)에 떨어져 아귀의 형상을 받으면, 선견보살(善見菩薩)의 아버지 모양, 사리불(舍利弗)의 할아버지, 선시장자(善施長者)의 어머니로 형상을 받아서 괴롭고 고달파하나이다. 배는 태산(泰山)과 같고, 목구멍은 가는 바늘 같고, 목구멍 길이는 천 길[丈]이나 되는데 천 개의 굽이가 있고, 한 굽이가 천 마디[節]나 되는데, 비록 장물[漿水]을 얻더라도 변해서 고름이나 피가 되고, 눈은 깊은 우물 같아서 천 길의 낭떠러지와 같나이다.이처럼 받는 고통은 이루 측량할 수 없어서 주림의 불에 태워져서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지만,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큰 자비의 마음으로 곧 사리불을 보내시어 저마다 수기를 주어서 도의 마음을 발하게 하시었나이다. 하지만 어떤 중생은 속으로 스스로 생각하기를 ‘아귀(餓鬼)의 고통과 고달픔은 한량이 없고, 주림과 추운 고통의 극심함은 이루 헤아릴 수 없거늘, 그런데도 이제 여래께서는 도리어 저들에게 수기를 주시고 나에게는 수기를 주시지 않으신다’고 하면, 이와 같은 무리의 선남자나 선여인은 그저 범부의 경지일 뿐이지 응당 보살이라 칭할 수 없으며, 응당 수기를 받아 여래란 명호를 얻지 못하나이다.”그때에 세존께서 목건련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족성자여. 보살의 수기를 받고 걸림 없는 행을 잘 연설하였구나. 진실한 불자(佛子)는 욕심을 내어 수기를 받기를 바라지 않느니라.”
그때에 폐마 파순이 스스로 생각하였다.
‘아, 이것은 내가 행한 잘못이 아니던가. 이제 대목건련 존자의 말씀을 들으니, 이 말은 여러 사람을 위함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함이로구나.’이때에 파순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잘난 체하는 생각을 없애고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는, 앞에 나아가 부처님 처소에 이러 땅에 엎드려 발아래 절하고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지금 어리석고 미혹하여 오래도록 삿된 소견에 처해 있으면서 참 도[眞道]를 알지 못하였나이다. 이제 석제환인은 제가 통솔하고 있는데, 부처님께서 오늘 그에게 수기를 먼저 주자 저는 곧 뜻을 일으켜서 비방하는 마음을 내었나이다.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저의 뉘우침을 받아주셔서 욕심의 근본을 소멸하고 영화에 탐착하지 않도록 해 주소서.”부처님께서 폐마 파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좌상에서 미륵(彌勒)보살을 보는가?”
파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예,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파순에게 말씀하셨다.
“이 미륵보살이 마땅히 너에게 수기를 주어서 보살의 명호를 얻게 하리라.”
27. 정지제구품(淨智除垢品)
여기서 동쪽으로 37항하 모래 수효를 가면 부처님의 나라가 있으니, 그 이름은 화엄(華嚴)이고 부처님 명호는 일의(一意) 여래ㆍ지진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이고 불세존이라 하였다. 저 부처님이 한 보살을 보내었니, 그 이름을 정일체지(淨一切地)라 하였다. 그는 뭇 행의 근본을 갖추어서 정의(定意)가 어지럽지 않았고, 삼매를 바로 받아서 걸리는 바가 없었으며, 부처님 머무는 곳을 다 밟아 다니면서 법계에 물들지 않았고 ‘나’라는 상념도 버렸다.그 보살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꿇어앉아 합장한 채 앞에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여쭙고자 하는 바가 있사오니, 만일 들어주신다 하오면 감히 여쭙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족성자여, 여래에게 의심을 품은 것을 묻고자 하거든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라.”정일체지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야 선남자나 선여인이 모든 부처님에게 공양하되 모든 부처님이란 상념이 없고, 모든 법의 근본에서도 또한 마찬가지이오며, 비록 중생을 제도하면서도 중생이란 상념이 없고, 보살의 도를 행하면서도 근본 뜻을 잃지 않고, 갖가지 원을 갖추어서 덕행이 충만하며, 수기를 받아 마음이 청정해서 밝은 지혜를 여의지 않겠습니까?”세존께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대승행(大乘行)의 근본인 불가사의하고 깊고 그윽한 곳간[藏]을 분별하고 사유하려면, 먼저 정의(定意)의 정수(正受)를 반드시 익히고 배워서 어지러운 상념의 행[亂想行]을 없애고, 그런 뒤에 6바라밀을 갖추어서 몸의 공(空)함을 스스로 관하고 남의 마음도 또한 마찬가지라고 관해야 하느니라.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등정삼매(等正三昧)에 들어서 마음이 동요하거나 변하지 않고 일체의 온갖 행을 능히 다 분별하려면, 어떠한가, 선남자와 선여인이여, 정(定)삼매에 들어서 온갖 법을 사유하고 분별하면서도 그릇됨이 없어야 하느니라. 그래서 족성자여,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근(根)을 세우고 힘을 얻어서 불퇴전(不退轉)에 미치려면, 문득 능히 정에 들어서 스스로 몸의 근본을 관하여 본래 온 바를 하나하나 분별해서 일어나고 멸함을 다 알아야 와도 온 바를 모르고 가도 간 바를 모르니라.이 선남자나 선여인이 정의(定意)로부터 일어나서 다시 바깥 몸의 정의(定意)에 들어가 중생의 무리를 하나하나 분별하여 다시 한량없는 부처님 국토에서 형상을 받은 이와 형상을 받지 않은 이를 볼 것이니라. 어느 때에는 선남자나 선여인이 다시 정에 들어가 안팎의 몸을 관해서 ‘저 몸과 나의 몸은 발하여 나아감[發趣]에 차이는 있지만 몸의 행은 공동이니라’라고 하여, 내가 관찰한 바로 대승에 나아가는 이는 중생을 버리지 않고, 연각(緣覺)을 구하는 이는 청정함을 부처님 국토에서 구하지 않고, 배우는 제자는 소리를 듣고 가르침을 받아서 3유(有)를 여의니, 이것을 소위 안팎으로 관정(觀定)하면 몸의 행은 공동이지만 발취(發趣)는 다르다고 이르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일체지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등정(等定)에 들어가 삼매를 바르게 받으면, 한량없는 세계로 하여금 모두 교화에 따르게 하며, 교화로부터 제도를 얻게 하여 기꺼이 따르게 하고, 그 심의(心意)를 풀어놓아 백천 삼매에 노닐어 그 가운데서 뜻을 거두어 잡아서 어지럽게 아니하나니, 이것을 소위 선남자나 선여인으로 대승에 나아가는 이는 중생을 버리지 않는다고 이르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한 몸의 정[一身定]에 들어서 문득 능히 중생 마음의 근본에서 음행[婬]ㆍ화냄[怒]ㆍ어리석음[癡]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관찰할 수 있다면, 그 근본 행[本行]을 따라서 제도해 해탈시킬 것이며, 이 선남자나 선여인이 ‘한 몸의 정’으로부터 일어나서 다시 뭇 많은 몸의 정[衆多身定]에 들어가 중생들의 무리에게 본래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관찰한다면,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그때에 세존께서 다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무형관삼매(無形觀三昧)에 들어가면, 중생의 심식(心識)이 생각하는 바와 중생이 약간 생각하는 바가 같지 않음을 두루 관하리라. 다시 삼매가 있으니 그 이름을 중생의 마음을 관찰함[觀衆生心]이라고 하는데, 보살마하살로서 이 정의(定意)를 얻은 이는 문득 인도(人道)의 중생을 능히 관찰해서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알아서 그 근본 행에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定意)가 있어서 열차(閱叉:야차)의 마음을 아니, 보살마하살로서 이 삼매를 얻은 이는 야차의 심식이 생각하는 바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관하여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여러 용(龍)의 마음을 아는 것이니, 보살로서 이 정의를 얻은 이는 문득 능히 용의 길에 있는 중생의 심식이 생각하는 바를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알아서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일체지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아수라(阿修羅)의 마음을 아는 것이니, 보살마하살로서 이 정의를 얻은 이는 문득 아수라의 생각하는 바를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관찰해서 그 근본 행에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여러 하늘의 마음을 아는[知諸天心] 것이니, 보살로서 이 정의를 얻은 이는 문득 천도(天道) 중생의 마음을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알아서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범천의 마음을 아는[知梵天心] 것이니, 보살마하살로서 이 정의를 얻은 이는 문득 정지천(淨志天)의 마음을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알아서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욕계 중생의 마음을 아는[知欲界衆生心] 것이니, 보살마하살로서 이 정의를 얻은 이는 문득 욕계의 중생을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알아서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지옥의 마음을 아는[知地獄心] 것이니, 보살마하살로서 이 정의를 얻은 이는 문득 지옥 중생을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관해서 그 근본 행에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동승신주(東勝身洲:弗于逮)의 중생의 마음을 아는 것이니, 보살마하살로서 이 정의를 얻은 이는 문득 동승신주의 중생을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알아서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남섬부주(南贍部洲)의 중생의 마음을 아는 것이니, 보살마하살로서 이 정의 뜻을 얻은 이는 문득 남섬부주의 중생을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알아서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서우화주(西牛貨洲)의 중생의 마음을 아는 것이니, 보살로서 이 정의를 얻은 이는 문득 서우화주 중생의 심의(心意)를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알아서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북구로주(北俱盧洲)의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아는 것이니, 보살로서 이 정의를 얻은 이는 문득 북구로주의 중생의 마음을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알아서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한 4천하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아는 것이니, 보살로서 이 정의를 얻은 이는 문득 한 4천하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알아서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두 4천하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아는 것이니, 보살로서 이 정의 뜻을 얻은 이는 문득 두 4천하의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을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관하여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세 4천하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아는 것이니, 보살로서 이 정의 뜻을 얻은 이는 문득 세 4천하의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을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관하여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네 4천하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아는 것이니, 보살로서 이 정의 뜻을 얻은 이는 문득 네 4천하의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을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관하여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다섯 4천하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아는 것이니, 보살로서 이 정의 뜻을 얻은 이는 문득 다섯 4천하의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을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관하여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여섯 4천하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아는 것이니, 보살로서 이 정의 뜻을 얻은 이는 문득 여섯 4천하의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을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관하여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일곱 4천하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아는 것이니, 보살로서 이 정의 뜻을 얻은 이는 문득 일곱 4천하의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을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관하여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여덟 4천하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아는 것이니, 보살로서 이 정의 뜻을 얻은 이는 문득 여덟 4천하의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을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관하여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아홉 4천하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아는 것이니, 보살로서 이 정의 뜻을 얻은 이는 문득 아홉 4천하의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을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관하여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열 4천하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아는 것이니, 보살로서 이 정의 뜻을 얻은 이는 문득 열 4천하의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을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관하여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백 4천하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아는 것이니, 보살로서 이 정의 뜻을 얻은 이는 문득 백 4천하의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을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관하여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천 4천하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을 아는 것이니, 보살로서 이 정의를 얻은 이는 문득 천 4천하의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을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관하여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만 4천하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을 아는 것이니, 보살로서 이 정의를 얻은 이는 문득 만 4천하의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을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관하여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억만 4천하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을 아는 것이니, 보살로서 이 정의를 얻은 이는 문득 억만 4천하의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을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관하여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하나의 부처님 나라 중생들이 마음속 생각을 아는 것이니, 보살로서 이 정의를 얻은 이는 문득 하나의 부처님 경계의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을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관하여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열 부처님 찰토의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을 아는 것이니, 보살로서 이 정의를 얻은 이는 문득 열 부처님 찰토의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을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관하여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백 부처님 찰토의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을 아는 것이니, 보살로서 이 정의를 얻은 이는 문득 백 부처님 찰토의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을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관하여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만 부처님 찰토의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을 아는 것이니, 보살로서 이 정의를 얻은 이는 문득 만 부처님 찰토의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을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관하여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정의가 있어서 억 부처님 찰토의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을 아는 것이니, 보살로서 이 정의를 얻은 이는 문득 억 부처님 찰토의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을 능히 관찰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음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두루 관하여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하느니라.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이 정의에서 온갖 삼매왕(三昧王)을 다 갖출 수 있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법문을 받들어 지니면서 닦아 익힌다면, 문득 여래의 뭇 상호[衆相]를 갖춤을 얻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정일체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삼매의 정의(定意)를 얻는다면, 훌륭한 권도의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고, 다시 열 가지 일[十事]로 공덕의 업[功德業]을 얻나니, 어떤 것이 열인가?첫째는 말씨[口氣]가 청정하여 사람이 많이 신용(信用)하고, 둘째는 본뜻을 잃지 아니하여 상대의 받음을 꾸짖지 않고, 셋째는 산수(算數)에 아주 밝아서 예순네 가지의 변화를 알고, 넷째는 공(空)하여 형상 없는 법을 분별하고, 다섯째는 장래의 법을 알아서 해탈하여 반연이 없고, 여섯째는 현재의 법에서 증명을 성취하는 법을 염(念)하고, 일곱째는 과거의 행을 기억하여 상 없음[無相]을 알고, 여덟째는 상(相) 없는 법도 본래 없어서 스스로 그러하고, 아홉째는 일어나고 멸함이 스스로 그러해서 3세(世)에 집착하지 않고, 열째는 보살의 정의(定意)에서 순서를 잃지 않는 것이니라.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정삼매(定三昧)에 들면 문득 억 부처님 찰토의 중생의 마음속 생각에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있는 것과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는 것을 능히 관찰하여 그 근본 행을 따라 제도해 해탈케 한다고 이르느니라.”
28. 무단품(無斷品)
부처님께서 다시 등행(等行)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 뜻을 발하고 보살의 마음을 발하였다면, 다섯 가지 법을 닦아 행하면서 겁약(怯弱)한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하나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 법인가?첫째는 앞 사람을 권하여 나아가게 하고 도의 마음을 버리지 않도록 하고, 둘째는 법계를 분별하여 법의 성품을 헐지 않고, 셋째는 한뜻[一意]으로 청정하여 그 밖의 다른 상념이 없고, 넷째는 권도방편[權方便]을 행하여 제도(濟度) 못한 이를 제도하고, 다섯째는 서른두 가지 업을 얻어서 정의(定意)가 어지럽지 않는 것이니라.
이것을 소위 등행보살마하살아,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보살의 마음을 지키면서 이 다섯 가지 법을 닦아 도의 뜻을 버리지 않은 것이라 이르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 도의 마음을 발하면, 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으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3세를 분별하여 공무(空無)를 여의지 않고, 둘째는 자기의 국토를 깨끗이 하여 중생을 기르고, 셋째는 안식(眼識)을 분별하여 밖에서 들어옴[外入]을 받지 않고, 넷째는 신족신통(神足神通)으로 염(念)하면 곧 앞에 있고, 다섯째는 현재의 뭇 지혜로 스스로 영락하는 것이니라.이것을 소위 등행보살마하살아,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이 다섯 가지 법을 닦아서 성취하게 되어 의심이 없고, 앞으로 나아가 부처를 이루는 데 겁내거나 약한 마음을 품지 않는다고 이르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은 보살의 마음을 발하면 마땅히 다섯 가지 법을 행하여 스스로 영락하여야 하나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여기에서 족성자여, 만일 보살이 처음 도의 마음을 발하여 평등한 정의(定意)에 들어가면 능히 시방 천하로 하여금 다 7보(寶)가 되도록 해야 하고, 둘째는 자기 국토의 중생으로 하여금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을 끊게 하고, 셋째는 성불하고 난 때에는 세 가지 공혜(空慧)를 닦아야 하고, 넷째는 일상(一相)을 장엄하여 지혜의 뿌리[慧根]를 여의지 말고, 다섯째는 6신통을 행하되 스스로 칭찬하거나 기억하지 말아야 하나니라.
이것을 소위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보살의 도를 행하고, 이 다섯 가지 법을 행해서 스스로 영락한다고 이르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보살도를 행하는데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나니, 어떤 것이 다섯이 되는가.
첫째는 여래의 형상 없는 법[無形相法]을 사유하고, 둘째는 모든 부처님의 요긴한 맹서가 본래 성품에 어긋나지 않고, 셋째는 스스로 본명(本命)을 인식해서 근본을 알고, 넷째는 나와 남과 수명[我人壽命]을 헤아리지 않아서 다섯 가지 고난을 여의고, 다섯째는 법은 본래 스스로 그러해서 일어나고 멸함을 보지 않는 것이니라.
이것을 소위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다섯 가지 법을 닦아서 스스로 영락한다고 이르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보살도를 행하는데 마땅히 다섯 가지 법의 불가사의[五法不可思議]를 행해야 하나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첫째는 여러 부처님의 신덕(神德)의 불가사의요, 둘째는 여러 부처님의 협장(篋藏)의 불가사의요, 셋째는 행하는 업(業)과 받는 과보의 불가사의요, 넷째는 여러 부처님 찰토의 불가사의요, 다섯째는 도의 가르침을 펼치는 불가사의니라.
이것을 소위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 도의 마음을 발하면서부터 이 다섯 가지 행의 불가사의를 닦고, 나아가 부처를 이루어서 스스로 영락한다고 이르느니라.”
그때에 부처님께서 대중 가운데 계시면서 이 게송을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 부사의(不思議)하시니
펼치고 창당하는 도 역시 그러하네.
중생의 근본을 사유하시면서
본말을 보지 않으시네.
4성제(聖諦)의 횃불 잡아
저 무명의 뿌리를 비추고
항상 항상함이 없음을 생각하매
번뇌[結縛]의 병을 없앨 걸 염(念)하네.
겁의 수(數)는 다함이 없으니
다함이 없음은 다함 있음이 아니라네.
다만 중생의 미혹함 때문에
본래 없는 마음을 알고자 하네.
배움이 먼저 있고자 하여
깊고 그윽한 법을 듣고서 받음은
또한 2승의 행으로
능히 헤아릴 바가 아니네.
부처님은 5도(道)의 심연을
본래 스스로 없애려고 헤아려 맹서하니
행이 다함은 평등한 마음을 말미암기에
이 때문에 인중존(人中尊)이라 호칭하네.
부처님 지혜는 끝 간 데가 없고
신령한 지혜도 한량이 없으며
몸의 괴로움을 근본으로 하지 않아서
3세의 어려움을 영원히 없애네.
여러 부처님의 영락법은
스스로 깨치어 스승에게 받지 않고
마음의 정(定)은 허공과 같지만
늘 상념으로 상념의 반연을 즐기네.
나는 무수한 겁으로부터
정(定)에 들어가 공을 여의지 않고
한뜻[一意]으로 하나의 도를 이루니
그 까닭에 인중존이라 호칭하네.
다시 무수한 겁에
여러 부처님 받들어 섬기고
생을 다하도록 집착 없음에 미쳐서
스스로 최정각(最正覺)을 이루었네.
여러 부처님 세상에서 교화하는데
바른 법으로 도의 즐거움 닦고
능히 온갖 부처님 나라를 깨끗이 하여
3유(有)의 즐거움에는 물들지 않네.
그때에 부처님께서 이 게송을 설하시고 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다섯 가지 부사의하고 깊고 그윽한 법을 받들어 지니면서 닦아 익히면, 시방의 여러 부처님이 모두 와서 옹호해 주시어, 뭇 마군도 능히 틈을 얻지 못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보살의 마음을 행하는데 마땅히 다섯 가지 법의 불가사의를 행하여야 하나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첫째는 자기의 정의(定意)로 중생에게 두루 베풀되 모두 부처님 처소에 있으면서 불퇴전(不退轉)하는 것이요, 둘째는 세 가지 도(道)에도 의지하지 않고 과증(果證)을 받음이요, 셋째는 한량없는 법의 바다가 모두 나타나 앞에 있음이요, 넷째는 뭇 상(相)의 법문에서 지혜의 변재를 갖춤이요, 다섯째는 몸을 나누어 교화하여 6바라밀의 지혜를 얻음이니라.
이것을 소위 족성자여,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보살의 마음을 행하는데, 이 다섯 가지 법의 불가사의를 행해서 문득 여래의 뭇 행을 능히 갖추었다고 이르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으로서 다섯 가지 괴로운 법의 근본[五苦法本]을 사유하고 분별하려 한다면, 어떤 것이 다섯이 되는가.
첫째는 색(色)의 근원을 분별하여 식의 집착[識著]을 내지 않음이요, 둘째는 백여덟 가지 받아들임[痛:受]에 괴로움과 즐거움이 있지 않음을 생각함이요, 셋째는 뭇 상념을 영원히 끊어서 어지러운 뜻을 일으키지 않음이요, 넷째는 12인연(因緣)에 본래 이 행(行)이 없음을 이해함이요, 다섯째는 식신(識神)은 형상이 없어서 궁구해 다할 수 없음이니라.
이것을 소위 등행보살아, 선남자나 선여인이 다섯 가지 괴로운 법의 근본을 분별하고 사유한다면, 부처님 곳간[佛藏]을 가까이해서 성현의 온갖 도의 근원을 여의지 말아야 한다고 이르느니라.”부처님께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보살의 마음을 닦는데 다시 다섯 가지 법의 다할[窮盡] 수 없음이 있나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무수한 공훈은 다할 수 없고, 둘째는 여든네 가지 지혜는 다할 수 없고, 셋째는 여래의 법의 지혜는 다할 수 없고, 넷째는 온갖 법의 요긴한 정[要定]은 다할 수 없고, 다섯째는 여덟 가지 음향은 다할 수 없느니라.
이것을 소위 등행보살아,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보살의 마음을 닦는데, 이 다섯 가지 법의 다할 수 없음을 닦으면 문득 여래의 법을 능히 갖추었다고 이르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보살의 마음을 닦는데, 6바라밀의 불가사의 법을 닦아 행하여야 하나니,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여기서 선남자나 선여인이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은 채 앞서 찾는 바에 따라 사람의 뜻을 거스르지 않아서 그 가운데서 보시바라밀을 갖추며, 비록 보시바라밀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계를 지닌 사람을 거두어서 계의 성품을 헐지 말아야 하며, 폭역(暴逆)한 이를 보면 인욕(忍辱)하도록 권해야 하며,만일 사람이 게으르다면 정진(精進)하도록 권해야 하며, 혹은 어떤 중생이 예순두 가지 소견[六十二見]에 집착해서 심의(心意)가 어지러워서 텅 빈 열반의 큰 도를 알지 못한다면, 저 중생을 거두어서 한뜻[一意]의 선정(禪定)으로 어지러운 상념을 없애서 두 가지 소견을 내지 못하게 하며, 혹 어떤 중생이 영원히 어둠 속에 있으면서 어리석은 마음을 품고 있다면, 권도의 방편으로 저 중생을 거두어 지혜의 밝음[慧明]을 보게 하여야 하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보살의 마음을 닦는데, 하나의 바라밀 속에 문득 6바라밀을 갖추어야 하나니,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의 바라밀 속에 문득 6바라밀을 능히 갖추는 것인가?혹은 어떤 중생이 한마음으로 계를 지녀서 계의 성품을 헐지 않고, 계를 지니는 가운데 보시(布施)를 갖추며, 상대의 받음을 꾸짖지 않으면서 늘 인욕을 행하며, 어떤 중생이 헐고 욕하는 이가 있더라도 어지러운 상념을 일으키지 않고 화내고 성내는 마음이 없으며, 밤낮으로 부지런히 정진하여서 게으른 마음이 없어야 하며, 비록 금계(禁戒)를 갖더라도 정의(定意)는 어지럽지 않으며, 계의 성품 가운데서 선(禪)을 헐지 말며, 지혜(智慧)를 펼쳐서 어리석고 우매한 마음을 없애야 하느니라.
이것을 소위 보살이 지계(持戒)바라밀에 있으면서 문득 6바라밀을 갖추었다고 이르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에 뜻을 발하면서부터 보살의 마음을 닦는데, 인욕(忍辱)바라밀을 얻어서 심의(心意)를 조복시켜 잘난 체하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면, 인욕바라밀에서 다시 6바라밀의 법을 갖추어야 하느니라.인욕의 마음을 버리지 말고 보시(布施)를 행할지니, 비록 보시한 바가 있더라도 상념의 집착을 일으키지 말 것이며, 그 가운데서 계의 성품의 법을 갖추어야 하고, 어떤 사람이 치고 때리더라도 어지러운 상념을 일으키지 말고 스스로 심의(心意)를 거두어서 인욕바라밀을 닦아 익힘을 갖추어야 하고, 정의(定意)를 갖추어서 선법(禪法)을 헐지 말 것이며, 인욕바라밀 속에서 선행(禪行)을 갖추어야 하며,만일 다시 선남자나 선여인이라면 이미 인욕바라밀을 얻고서도 5음(陰)의 성패(成敗)의 일어나는 바를 분별해야 하며, 3독(毒)을 사유하여 어리석음과 애착으로부터 생겨남을 알아서 도의 지혜[道慧]로 영원히 나는 바가 없음을 관찰하여야 할 것이니, 이것을 소위 선남자나 선여인이 인욕바라밀 속에서 6바라밀을 갖춘 것이라고 이르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보살의 마음을 닦는데, 선정(禪定) 속에서 다시 6바라밀을 갖추어서 중생을 거두어 어지러운 상념을 없애야 하나니,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선정 속에서 여섯 가지 도를 갖추는 것인가?
여기에서 선남자나 선여인이 공(空)한 몸의 모습[身相]을 관해서 일어나고 멸함을 보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하여 어지럽게 하지 않아서 보시를 행하면서도 중생 및 재물과 보배를 보지 않고, 또한 ‘지금 내가 보시한 뒤에 큰 과보를 얻어서 부처님 국토의 본무청정(本無淸淨)을 장엄한다’는 마음을 내지 않으면, 문득 능히 지혜바라밀을 갖추는 것이니라.”부처님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보살의 마음을 닦는데, 지혜바라밀에서 6바라밀을 갖추어야 하나니, 어떻게 하면 선남자나 선여인이 지혜바라밀에서 6바라밀을 갖출 것인가?
여기서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미 지혜바라밀을 능히 닦아 익혔다면, 상념 없음을 분별하여 그 밖의 다른 행이 없고, 낱낱이 명신(名身)과 구신(句身)을 분별하고, 뜻을 거두어 계를 지녀서 계의 성품을 헐지 않고, 만일 사람이 헐고 욕하더라도 걱정하고 근심하는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하나니, 이것을 소위 지혜에서 계의 성품을 갖추었다고 이르느니라.
만일 다시 선남자나 선여인이 지혜바라밀에서 인욕을 닦아 행해서 마음이 허공과 같아 더러움과 악함을 받지 않았다면, 이것을 소위 지혜바라밀에서 인욕의 마음을 얻었다고 이르느니라.”부처님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지혜바라밀을 얻고, 뜻을 거두어 정진(精進)해서 게으른 마음을 버리고, 눈 경계[眼界]의 불가사의를 분별해서 게으른 이를 보면 정진하도록 권한다면, 이것을 소위 지혜바라밀에서 정진을 갖추었다고 이르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지혜바라밀을 얻어서 선정(禪定)을 분별하여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면, 한뜻[一意]과 일념(一念)으로 백천 겁을 지나도록 뜻을 거두어 스스로 조복해서 36바라밀을 모두 다 분별하나니, 등행보살마하살아, 이것을 소위 뭇 행의 근원이라고 이르느니라.”그때에 부처님께서 등행보살과 함께 이 법을 설하실 때에, 본래 마음을 발하여 연각에 나아갔던 한량없는 중생들이 이에 모두 뜻을 돌려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발하였다. 그리고 다시 무수한 온갖 하늘과 세간 사람이 모두 믿음을 다한 행을 얻어서 대승(大乘)을 여의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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